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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레이 제언] “관광객 1000만달성”/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

    [릴레이 제언] “관광객 1000만달성”/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

    한국방문의 해 2년차인 올해 한국 관광은 외래관광객 1000만명 달성이란 미증유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편으론 동일본 대지진이란 돌발변수를 만나 다소 고전도 예상됩니다. 한국 관광산업이 중대 전환기를 맞은 지금, 관광대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관계와 학계, 여행업계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2012년 5월 여수세계박람회의 개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박람회가 열리는 여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남해안은 직선거리로는 300㎞밖에 되지 않지만 해안선의 길이가 8000여㎞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2000여개의 섬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또한 세계해전사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 유적지와 동북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장보고 유적지 등 역사·문화자원의 보고이며, 먹거리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남해안은 교통이 불편하고 숙박시설 등 관광기반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관광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래관광객은 약 880만명으로 2009년에 비해 약 100만명이나 증가했으며, ‘2010-2012 한국방문의 해’의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외래관광객 1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이 꾸준히 발전해 오고 있지만,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서울, 경주, 부산 중심으로 지역 편중이 심하다는 점이다.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는 여수 등 전남 지역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교통·숙박·쇼핑·음식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관광객들이 찾지 않고 여행사들도 상품개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또 수요가 없으니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관광이 내실 있게 성장하려면 지역적 편중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12여수세계박람회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최대의 국제적인 행사로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해안 관광산업 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기차와 자동차로 5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곧 남해안 지역의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돼 서울에서 3시간대, 부산에서 2시간대에 여수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여수와 인근지역에 호텔과 콘도 등 고급 숙박시설 5300여실이 건설될 예정이며, 8만t 규모의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크루즈 터미널도 들어서게 된다. 남해안은 풍부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전통문화예술의 향취, 빼어난 해안 등 자연환경과 인정이 어우러져 특색 있는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때문에 관광 인프라만 개선된다면 내국인 관광 활성화와 외래관광객 유치 증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남해안 여행지로서의 장점을 이 기회를 통해 잘 알릴 필요가 있다. 여수박람회가 3개월간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남해안 지역의 관광 발전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전기로 작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정부, 업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 도미 니카공화국 끝없는 매력 속으로

    도미 니카공화국 끝없는 매력 속으로

    EBS ‘세계테마기행’은 11일부터 14일까지 매일 오후 8시 50분 ‘라틴 아메리카의 시작, 도미니카공화국’을 방영한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해와 대서양 사이에 있는 에스파뇰라 섬의 오른쪽에 있다. 야구팬들에게는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왕 새미 소사의 고향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최근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아이티의 인접 국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번 가본 사람들은 그 매력을 잊을 수 없다. 어떤 매력이 숨어 있기에 그럴까. 우선은 천혜의 자연환경. 가장 눈부신 것은 옆에 끼고 있는 카리브해의 절경이다. 여기에는 천국이라 불리는 라스 아길라스가 있다. 하라구아 국립공원의 일부인데 해안 절경이 기가 막힌다. 한동안 방치됐으나 뒤늦게 거주민을 이주시키고 해변 개방 시간을 제한하는 등 보호 조치에 돌입했다. 또 사마나만으로 가면 진귀한 손님 혹등고래도 만날 수 있다. 새끼를 낳기 위해 추운 북극해에서 잠시 내려온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1인당 100페소, 우리 돈으로 3500원을 내야 한다. 환경보전기금이다. 호수와 산도 있다. 중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 엘리키요. 땅이 융기하면서 바다가 호수로 바뀐 곳이라 독특한 생태를 선보일 뿐 아니라 특이한 선인장과 악어, 이구아나 등이 살고 있다. 피코 두아르테 (Pico Duarte)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영웅인 두아르테 장군의 이름을 붙인 이 봉우리는 카리브해 최고봉이다. 여기다 산 자체도 험하기 이를 데 없다. 1844년 독립을 성취한 뒤 100년이 지난 1944년에서야 비로소 정상 등반을 허락했다. 이 거친 길로 시청자들을 안내한다. 이런 천혜의 환경이건만,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는 아픔이 많다. 수도 산토도밍고는 서양인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콜럼버스가 세운 도시다. 당연히 스페인 치하였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로, 다음에는 아이티로 종주권이 넘어갔다. 복잡한 역사이다 보니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만든 인형에는 얼굴이 없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뒤섞이다 보니 눈, 코, 입을 제대로 그려넣을 수 없어 얼굴을 텅 비워둔 인형이 나온 셈이다. 식민 시기 도미니카의 주 생산물은 사탕수수였다. 덕분에 사탕수수를 주 재료로 하는 럼주가 나왔고, 부모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혹독하게 노동할 동안 아이들은 야구를 하고 놀았다. 새미 소사의 고향이 바로 도미니카의 최대 사탕수수 생산지 산 페드로다. 혹독한 노동에서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흥겨운 메렝게다. 재미난 것은 이 음악이 언제 어디서나 계속 울려퍼진다는 것.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춤추는 모습이 재밌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CEO 칼럼] 진심어린 칭찬은 영웅을 만든다/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CEO 칼럼] 진심어린 칭찬은 영웅을 만든다/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표창장, 직장인 여러분, 당신들은 서울을 빛낸 진정한 영웅입니다.” 요즘 서울시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서울시는 연초부터 가로판매대, 지하철 역사 등 3900여곳에 표창장 광고판을 내걸었다. 광고의 주인공은 직장인을 비롯해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건설노동자, 운전기사 등 친숙한 서민들로 선정해 눈길을 끈다. 행인들은 처음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흐뭇한 표정으로 광고판을 지나친다고 한다. 광고판을 보는 이들이 한순간이나마 즐거워했다면 표창장 광고는 일단 성공적이다. 이런 광고 문구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칭찬과 격려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칭찬을 들으면 사람의 뇌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보상중추를 자극함으로써 즐거운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말처럼 동물도 잘한 일에 대해 응당한 보상과 칭찬을 받으면 안정감을 느껴 더욱 발전된 행동을 보인다. 작은 칭찬 한마디가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동물까지도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얘기다. 칭찬의 놀라운 효과는 큰 성공을 이뤄낸 위인들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친구들과 대화도 못 하는 말더듬이 아들을 향한 “두뇌 회전이 빨라 혀가 따라가지 못할 뿐”이라는 어머니의 격려가 잭 웰치를 훗날 세계적인 기업 GE의 회장으로 만들었다. 거듭된 실패로 절망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당신 몸속에 위대한 능력이 잠자고 있다.”는 의사의 조언이 러시아의 위대한 음악가 라흐마니노프를 낳았다. 뒤늦게 시작한 발레 열등생에게 “동작 하나하나가 한편의 시와 같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지금의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을 있게 했다. 이들 모두 칭찬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내면에 묻혀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낸 경우다. 물론 이들의 성공에는 칭찬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스스로가 진심 어린 칭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만약 이들이 주변의 칭찬을 단순한 위로로 치부했다면 그들의 삶에서 칭찬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칭찬은 서로가 존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교감될 때 비로소 개인과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사회가 칭찬을 중요한 실천 덕목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에서 칭찬은 ‘칭찬경영’이란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몇해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동료 칭찬 프로그램’(Peer Recognition Program)이 미국 주요 기업 중 35% 이상에서 시행될 만큼 업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이 직접 우수 직원을 선정해 칭찬 서신을 보내고, 회사는 문화상품권·베이비시터 이용권·자전거 등 작은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회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이직률을 크게 낮추는 등 적은 비용으로 기업성과 향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외 국기업과 달리 우리기업은 아직까지 칭찬에 인색하고 어색해 보인다.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常不輕) 보살’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항상 상대방을 가벼이 보지 않고 진실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상불경의 마음처럼 상대방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칭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우리도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기업문화를 정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서울시의 표창장 광고기획자는 “지금처럼 잘살게 된 건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해 온 시민들 덕분이며, 맹활약해 준 시민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의 칭찬처럼 직장인,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건설노동자, 운전기사 등 우리 이웃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대접받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추! 5경기만에 쾅! 담장 너머로 부진 날렸다

    클리블랜드의 추신수(29)가 마침내 시즌 첫 홈런을 폭발했다. 시즌 개막 이후 5경기 만이다. 그것도 일본의 ‘야구 영웅’ 마쓰자카 다이스케(31·보스턴)가 제물이었다. 극심한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추신수에게 도약의 기폭제가 아닐 수 없다. 3년 연속 3할타와 ‘20홈런-20도루’를 향한 본격 시동이 걸린 셈. 추신수는 7일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벌어진 미프로야구 보스턴과의 홈 경기에서 3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1회 첫 타석에서 통렬한 2점포를 쏘아 올렸다. 지난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개막전에서 첫 안타를 때린 이후 3경기에서 1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던 추신수의 시즌 첫 홈런과 첫 타점. 2005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6년 만의 개인 통산 60호 홈런. 하지만 아직 도루는 없다. 추신수는 0-0이던 1회 1사 1루에서 마쓰자카의 시속 145㎞짜리 컷 패스트볼을 걷어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대형 포물선을 그렸다. 추신수는 마쓰자카를 상대로 홈런 2방 등 통산 14타수 4안타(타율 .286)를 기록했다. 그러나 추신수는 2회 1사 1·2루의 찬스에서 아쉽게 2루 병살타를 쳤다. 5회 세 번째 타석에서도 2루 땅볼로 물러났다. 6회 4번째 타석에서는 아스두르발 카브레라의 3점포로 팀이 7-2로 멀찌감치 달아난 가운데 좌익수 플레이로 잡혔다. 4타수 1안타를 때린 추신수는 .063까지 추락했던 타율을 .100(20타수 2안타)으로 끌어올렸다. 클리블랜드는 8-4로 이겨 개막 2연패 후 3연승. 강호 보스턴은 개막 이후 5연패. 추신수의 홈런은 5경기 만에 터졌다. 하지만 20개와 22개를 친 2009년과 지난해에 견주면 늦은 페이스는 아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 2년 차였던 2009년에는 개막 후 3경기 만에, 지난해에는 6경기 만에 마수걸이 포를 쐈다. 추신수는 지난해에도 첫 홈런이 나오기 전까지 18타수 2안타로 부진했다. 하지만 홈런을 계기로 3경기 연속 ‘멀티히트’의 상승세로 돌아섰다. 당초 추신수는 올 시즌 30홈런에도 의욕을 보였다. 팀 내 주포로 자리매김한 만큼 30개는 때려내야 한다는 생각. 이날까지 4월 8개, 5월 7개를 쳤고 무더위가 찾아든 6월에는 11개를 터뜨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8월에는 각 6개와 9개로 주춤했다가 무더위가 한풀 꺾인 9월에는 가장 많은 17개를 작렬했다. 추신수가 조급함만 버린다면 지난해를 뛰어넘는 최고의 시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입니다. 7호선 환승은 9호선 동작→4호선 이수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이에요. 지금 제 앞에는 30개 남짓한 계단이 있어요. 많은 건 아니지만 전 쉽게 올라갈 수가 없답니다. 유모차와 제가 타야 하는 계단의 전동 리프트 앞에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만 달랑 한장 붙어 있거든요.이 안내문대로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 동작역, 이수역을 거쳐 두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얘기군요. 엄마는 난감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저와 유모차를 한꺼번에 ‘으랏차차’ 들어올려 계단을 타볼까 고민하는 듯합니다. 저는 엄마 눈치를 봅니다. 남보다 체구가 작은 엄마가 훌쩍 커서 무거워진 저와 유모차를 동시에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엄마는 역무실에 전화를 겁니다. 고장안내문 밑에 전화번호도 없어서 결국 지금 서 있는 지하철역의 전화번호를 114에 연락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한참을 목소리 높여서 다투시네요. 역무원이 엄마한테 “지금 어느 방향에 계세요?”라고 묻습니다. 계단 위쪽에 서 있으면 3호선이나 9호선 역무실에 전화하고, 계단 아래쪽이면 7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 그럼 중간쯤 가다가 섰으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뭐 어느 쪽이든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항상 그랬거든요. 결국 또 택시를 불러야 하겠죠. 아, 제 소개를 빼먹었네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인사부터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전 서울 상도동에 사는 6살 이수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을 앓고 있고 지금까지 14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선 암은 거의 완치 단계랍니다. 하지만 암세포가 척추를 눌러 다리를 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네요. 엄마는 입버릇처럼 “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못하는 게 많다는 걸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휠체어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로 불리는 일본사람 구니에다 신고입니다. 구니에다는 9살 때 척수종양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지만,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5년 연속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영웅입니다. 저도 구니에다처럼 꼭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많이 배워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처럼 불편한 아이들이 외출하기엔 너무 힘든 나라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고속터미널역의 안내문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서요. 오늘 하루 반나절의 나들이에도 엄마는 여러 차례 답답해했고, 전 멀뚱멀뚱 엄마만 지켜보고 있어야 했어요. 엄마와 전 건국대병원에 가기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 노선은 10개가 넘습니다.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지만 전 계속 기다립니다. 유모차가 올라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잘 안 오거든요. 오늘은 그나마 20분만 기다렸으니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번엔 비오는 날에 4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결국 지하철을 두번 더 갈아타고도 우리는 정작 건대입구역에는 내리지 못합니다. 저희 집에서 가는 방향에는 병원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없거든요. 예전엔 역무원 아저씨가 도와줬는데, 언제부턴가 역무실이 비어 있더군요. 자동화인가 뭔가 시설이 좋아져서 역무원 아저씨들이 필요없게 된 거래요. 엄마는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어린이대공원에서 돌아오는 방법을 생각해냈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모차를 들어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는 가능한 한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은 거라면서 항상 스스로 하는 습관을 고집합니다. 아참, 우리 엄마는 요즘 이사를 하려고 고민 중이신데요. 어린이집이랑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깝고, 덜 갈아타는 곳으로 가고 싶대요. 적당한 아파트도 찾았대요. 근데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네요. 마을버스는 유모차로 못 올라가는데. 어제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TED라는 행사에서 저처럼 걷지 못하던 어맨다라는 여자가 일어서는 모습이었지요. 스키를 타다 다친 어맨다는 “절대로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평생을 절망 속에 살았대요. 근데 이더 벤더라는 과학자가 어맨다를 일으켜 세운 거죠. 로봇 같은 뼈를 입은 어맨다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숨죽여 우시더라고요. 그러고선 “수민아. 엄마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저거 사줄게.”라고 했어요. 저 로봇다리가 얼른 싸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걸 신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편하게 타고 싶어서냐고요? 아니요. 다른 애들처럼 달려보고 싶거든요. 글 사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글로벌 시대]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억/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억/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우주의 콜럼버스, 지구의 사신, 최초의 우주인.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유리 가가린은 이렇게 다양하게 불린다. 오는 12일은 가가린이 역사적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가가린은 우주비행선 ‘보스토크-1’에 탑승하여 중력을 극복하고 지구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돈 뒤에 지상으로 귀환했다. 이 공적으로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 우주비행을 준비하는 데는 수년이 소요되었다. 가가린 이외에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을 할 후보들이 20명 선발되었다. 그들은 시험비행 조종사들 가운데 선발된 사람들로, 모두 중력가속도, 스트레스 상황, 급격한 압력 변화에 익숙한 조종사들이었다. 우주비행사 제1진은 의학적, 심리적 기준 및 기타 기준들에 따라 선발되었다. 20명의 후보 가운데 6명이 선발되었고, 그들 중에서 다시 2명, 즉 유리 가가린과 그의 대체 우주비행사로 게르만 티토프가 선발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우주선 개발자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1961년 4월 20일 유인 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련은 4월 11일에서 17일 사이에 우주선을 발사하기로 계획했고, 결국 12일로 발사일이 확정되었다. 우주선 발사에 앞서 소련의 타스 통신은 세 가지 보도를 준비했다. 첫째는 ‘발사 성공 보도’, 둘째는 가가린이 공해 또는 타국 영토에 착륙할 경우에 대비한 ‘외국 정부를 위한 보도’, 셋째는 가가린의 우주비행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 대비한 보도였다. 그러나 가가린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프트니크-1’이 우주로 발사된 지 4년 만에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108분 동안의 우주비행이 가가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의 우주비행에 관한 뉴스는 순식간에 전세계에 퍼졌고, 소련의 산부인과 병원들에서는 수많은 산모들이 아기의 이름을 유리라고 짓기도 했다. 가가린은 계획되었던 착륙 지점이 아닌 사라토프 주에 착륙했다. 그곳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후에 가가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우리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여, 저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말고 보존하여 더 키워 나가자.” 특히 오늘날 그의 이 말은 더욱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가가린은 그 후 수년 동안 많은 나라를 방문하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벌였다. 1961년 한 해만 해도 30개 국가를 방문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18~20차례 연설을 했다. 이는 당시 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자 가가린은 다시 우주비행사로 복귀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8년 3월 27일 가가린은 동료 조종사와 신형 전투기를 조종하다가 츠칼롭스키 비행장 근처에서 추락했다. 소련은 국장(國葬)을 선포했다. 국가 원수가 아닌 사람이 사망한 경우 국장을 선포한 것은 소련 역사상 처음이었다. 가가린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아주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인류의 우주개발사상 최초의 거대한 도약에 관한 기억을 남긴 것이다. 이제 경쟁적인 우주개발 시대는 과거가 되었다. 우주개발 분야의 기술 수준과 투자 규모가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지구 궤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우주정거장이 운용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주개발 분야에서 많은 나라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 이후 약 50년 동안 500명 이상이 우주비행을 했고, 35개 국가가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독자적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기술수준을 확보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8일 우주비행사 이소연이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다녀왔다. 이제 한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우주선이 높이 날아오를 날도 머지않았다.
  • “만화 보고 키운 야구 꿈… 열정으로 보여줄 것”

    “만화 보고 키운 야구 꿈… 열정으로 보여줄 것”

    13살 소년은 야구 선수를 꿈꿨다. 야구 만화 ‘거인의 별’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주인공 호시 휴마는 온몸에 스프링을 둘렀다. 근육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훈련도 했다. 승객 얼굴 하나하나를 구별했다. 그래야 선구안을 키울 수 있다. 휴마는 거인(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별이 되기 위해 연습에 매달렸다. 꿈을 이루기까지 강조한 건 근성이었다. 소년 김택진도 그걸 따라했다.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찼다. 그러고 학교에 가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던지고 싶은 건 커브였다. “몸이 작아 강속구를 던지진 못했다.”고 했다. 커브를 던지기 위해 야구 서적을 샀다. 그립을 따라 쥐고 몇달 동안 골목에서 벽에다 대고 공을 던졌다. 밤을 새운 날도 여러번이었다. 나중에 커브 하나는 기막히게 잘 던졌다. ●“어린 시절 야구 연습에 매달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어린 시절 “야구에 빠져 살았다.”고 했다. 매일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했다. 마침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이 공원이었다. 집 앞 전봇대엔 폐타이어를 매달아 타격 연습을 했다. 잠잘 때도 글러브를 옆에 뒀다. 김 대표는 “당시 내겐 야구가 전부였다.”고 고백했다. 김 대표는 야구 선수가 되진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학교는 공원에서 멀어졌다. 직접 못하는 야구의 열정은 프로야구가 채워줬다. 당시 김 대표의 영웅은 최동원이었다.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4승 투수. “내 마음속에 영웅이란 이런 모습이란 걸 심어줬습니다.” 김 대표 눈이 반짝였다. 대학 다니면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야구를 대신했다. 게임회사를 창업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인이 됐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졌던 야구의 꿈은 그대로였다. “IMF 경제 위기가 오고 회사가 힘들 때마다 박찬호의 모습. 많은 야구선수들의 열정을 보면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저를 버티게 한 힘은 야구입니다.” 그런 김 대표가 어린 시절 꿈을 다른 형태로 이뤄냈다. 프로 야구단을 창단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본 뒤 야구단 창단 계획을 막연하게 품었다. 지난해 12월 창단계획서를 제출했고 지난 29일 최종 승인을 얻었다. 그리고 31일 연고지 창원에서 창단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대표는 “프로야구 9번째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우리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 근성, 감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에 9번째 별이 떴다. ●야구단 명칭 11일부터 공모 이날 김 대표는 감독 선임에 대해선 “시즌이 끝난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스카우트 팀장으론 박동수 용마고 감독을 선임했다. 야구단 명칭은 오는 11일부터 공모에 들어간다. 창원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씨줄날줄] 김(金)의 전쟁/이춘규 논설위원

    1928년 일본 시즈오카현 출신 김희로. 일본을 상대로 ‘김의 전쟁’을 벌였다. 그는 원래 권희로였다. 세살 때 생부가 숨져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김희로가 됐다. 극빈층 조선인. 초등학교 때부터 민족차별을 겪게 되자 조선인은 다닐 곳이 못된다며 학교를 그만뒀다. 의부의 학대에 시달리다 열세살에 가출, 굶주림에 음식을 훔쳐먹었다. 일본의 냉대 속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전과 6범. 일본인의 조선인 멸시·차별에 대한 그의 항거는 집요했다. 1968년 2월 20일.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빚독촉을 하던 야쿠자 2명이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하자 격분해 권총으로 사살. 직후 미나미알프스 산록 스마타쿄온천 여관에서 13명을 잡고 인질극을 벌인다.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며 일본의 사과만 요구했다. 88시간 만에 경찰에 체포된다. 구마모토 형무소 등지에서 32년을 복역. 1992년 영화 ‘김의 전쟁’의 모델이 됐다. 그는 귀국해 지난해 부산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일본 시사사전의 소개는 비아냥조다. ‘(생중계돼 유명해진)극장형 범죄의 첫 사례다. 채무관계가 범죄의 동기였지만 경찰과 인질극을 벌이는 내내 조선인·한국인 차별에 대한 사과만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차별과 싸운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됐다. 형무소에서는 독방의 열쇠를 채우지 않는 등 특별대우를 받았다. 법무성 교정국장 이하 13명이 정직·감봉·경고·훈계 등 처분을 받았다. 칼 차입을 도운 의혹을 받은 간수는 뒤에 음독자살했다.’ 김의 전쟁은 재일 한국인의 저항을 상징한다. 한국·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일본에서 갖은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한(恨)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종전 후 일본에 남겨진 재일동포는 70여만명이지만 일본인들의 차별과 배척은 일제식민지시대 못지않게 심했다. 한국·조선 국적을 버리고 일본인이 되라는 귀화 압력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지금은 40여만명만 남았다. 독도 지킴이 가수 김장훈이 ‘김의 전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일본의 왜곡교과서 검정 발표날인 그제 “일본 각료·정부가 야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변함없이 야욕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에 계속 맞서겠다고 밝혔다. 제2 김의 전쟁이다. 김장훈의 말대로 일본은 원래 그런 나라다. 왜곡·조작을 서슴지 않는다. 집요하다. 우리가 지진 복구를 지원해 줬다고 일본이 변할 것이라 기대하면 순진하다. 착각 말라. 김장훈처럼 집요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조지 클루니·호날두가 베를루스코니 구할까

    조지 클루니·호날두가 베를루스코니 구할까

    ‘베를루스코니 총리 재판정은 별들의 집합소?’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왼쪽·50)와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오른쪽·26)가 다음 달 이탈리아 법정에 증인으로 설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성년자와의 성추문으로 궁지에 몰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를 변호하기 위해서다. 베를루스코니의 변호인단은 다음 달 6일(현지시간) 시작하는 베를루스코니의 성매매 혐의 재판에 부를 78명의 증인명단을 29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명단에는 장관 4명과 이탈리아 연예계 거물급 인사 등의 이름이 올랐으며 클루니와 호날두도 포함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변호인단은 두 유명스타의 증언을 통해 베를루스코니에게 돈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고 주장하는 나이트클럽 댄서 카리마 엘 마루그(18·여·일명 루비)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계산이다. 루비는 검찰 진술을 통해 지난해 베를루스코니가 주최한 ‘붕가붕가(성관계를 뜻하는 속어) 파티’에서 클루니와 그의 여자친구인 이탈리아 출신 모델 엘리자베타 카날리스를 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카날리스는 파티에 참석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고 클루니도 “베를루스코니를 수단 다르푸르 돕기 행사에서 만났지만 난잡한 파티에 참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루비는 지난해 1월 호날두로부터 돈을 받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호날두는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이 밖에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과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담당 치위생사 출신으로 여당 의원을 지낸 여성 니콜 미네티 등도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부르기로 했다. 한편 검찰도 베를루스코니 쪽에 맞서 루비 등 파티에 참석한 32명의 여성을 포함, 모두 132명의 증인명단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변호인단은 루비에게 성관계의 대가로 베를루스코니로부터 현금과 보석류를 받았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을 계획이다. 재판부는 양쪽의 명단을 검토한 뒤 증인으로 채택할지를 결정하며 만약 증인이 심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200유로(약 31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UDT 전설’ 한주호 준위 동상으로 부활

    ‘UDT 전설’ 한주호 준위 동상으로 부활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동상이 3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해양공원에 우뚝 섰다. 해군이 3억원을 들여 제작한 동상은 진해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높이는 좌대를 포함해 3.6m. 해군의 영웅이자 수중폭파팀(UDT)의 전설로 불리는 한 준위가 총을 겨눈 채 보트를 타고 작전 지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동상 뒤에 세워진 석탑에는 ‘UDT/SEAL’의 부대 마크와 함께 ‘불가능은 없다.’라는 구호가 새겨졌다. 석탑 위에는 불굴의 해양수호 정신이 불꽃 형태로 표현됐다. 제막식에는 고 한 준위의 유가족과 천안함 46용사 유가족 대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UDT 예비역,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한 고 한 준위의 부인 김말순(56)씨는 “남편이 떠난 후 저희 가족은 혼란과 실의에 빠졌으나 이제는 수많은 사람이 남편의 정신을 이어받으려 해 남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소탕작전, 어렵고 복잡한 구조현장 등 가장 힘들고 위험한 곳에 항상 그가 있었으며 불굴의 기상이 담긴 저 동상은 나라 사랑의 정신이 무엇인지, 살신성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바로 엊그제 같은데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면서 “세월이 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 1주년인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용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추모식에 앞서 청와대 천안함 유족 초청 행사에서 1억원을 성금으로 냈던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와 천안함 46용사의 묘역을 매일 수습하는 고(故) 임재엽 중사의 어머니 강금옥씨 등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윤씨에게 “지난번 청와대에 와서 보내주신 돈으로 무기도 샀다.”면서 “가족들 모두 한이 맺혔을 텐데 어머니가 거꾸로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윤씨가 “아들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자 “이 사람들(희생자)이 죄가 있느냐. 우리가 못 지켜준 것으로, 다 우리 잘못”이라면서 “앞으로는 진짜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천안함 46용사와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숨진 병사들의 묘비를 일일이 돌며 어루만지고, 유족들이 올려 놓은 가족사진을 비롯한 유품을 보면서는 아무 말 없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 대통령은 또 민 상사의 묘비 앞에서 어머니 윤씨가 “피눈물 흘리는 줄 알겠죠.”라고 눈시울을 붉히자 “어머니,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라며 다독였다. 한 준위의 묘비 앞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 아들 상기 씨에게 “당시 날씨도 차고, 어렵다고 했었는데 후배를 건지려고 그런 것”이라면서 “우리의 영웅이었다.”고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관련 희생자의 묘역을 참배한 뒤 즉석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사망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묻힌 곳도 찾아 헌화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인물사진의 거장이 돌아왔다

    인물사진의 거장이 돌아왔다

    유명인 인물 사진의 대가 유섭 카쉬(1908~2002)의 작품이 돌아왔다. 2009년 한 차례 전시돼 개막 한달여 만에 1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전시다. 이번에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은 몇 가지 다른 포인트를 잡았다. 우선 캐나다의 유섭 카쉬재단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디지털프린팅이 아니라 카쉬가 직접 찍고 인화한 오리지널 필름이 전시된다. 또 지난번 전시가 워낙에 잘 알려졌던 작품들 위주로 선정됐다면,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모두 100여점이 전시되는데 이 가운데 80%가 새로운 작품이다. 넬슨 만델라, 크리스티앙 디오르, 엘리자베스 테일러, 앤디 워홀, 무하마드 알리, 샤갈 등이 새로 공개된다. 가령, 1941년 라이프지 표지에 실려 카쉬를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게 했던 윈스턴 처칠 사진의 경우 이제까지 알려진 것은 시가(cigar)를 빼앗겨서 불퉁하니 고집스러운 얼굴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뒤 처칠이 웃으며 말하는 사진도 공개된다. 2차대전의 영웅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적으로는 불퉁한 사진이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처칠 가족들은 웃는 얼굴 사진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또 동갑내기 배우로 미모와 우아함을 두고 한판 대결을 벌였던 그레이스 켈리와 오드리 헵번 사진도 함께 공개된다. 콘서트 대신 스튜디오 작업에만 집중할 정도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록 꺼렸던 바흐 전문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가 미친 듯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각 인물 사진 밑에는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지기 때문에 사진 찍을 당시의 분위기, 카쉬와 인물 간 사진에 대한 의견 조율 과정 등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여기에다 카쉬가 찍은 ‘손’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카쉬는 손에 인물의 성격과 직업에 따른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보고 인물 사진들 못지않고 무척이나 손 사진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5월 22일까지. 6000~9000원. 1544-168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말 영화]

    ●바람의 전설(EBS 일요일 밤 11시) 처남이 경영하는 총판 대리점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관리사원 박풍식(이성재·왼쪽). 주부들의 판매실적을 체크하고, 할부금 입금을 독촉하는 것이 주된 일과인 그는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지겨운 30대 가장이다.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만수(김수로·오른쪽)를 통해 알게 된 사교댄스는 깜깜한 그의 인생에 한줄기 구원의 빛으로 다가온다. 만사 의욕상실이었던 풍식은 ‘하나, 둘, 슬로, 슬로, 퀵, 퀵’ 스텝을 밟아 갈수록 진정한 춤의 매력에 빠져 인생의 활력을 되찾아 간다. 그러나 오랜만에 맛본 일상의 행복도 잠시. 만수의 제비행각으로 잘나가던 사업은 풍비박산의 지경에 이르게 되고, 친구의 배신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풍식은 그제서야 전정한 춤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대한민국 일류 댄서가 되기 위해 혈혈단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춤의 고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는 자이브의 대가 박노인을 만나 춤의 철학과 정신에 대한 기본부터 철저히 연마하게 된다. ●대한민국 1%(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웬만한 남자도 버티기 힘들다는 해병대 훈련 과정을 일등으로 통과한 최초의 여자 부사관 이유미(이아이).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한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군사 훈련 만년 최하위 팀인 3팀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자신을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팀원들과 진급을 위해 자신의 1팀을 최고로 이끌어야 하는 왕하사(임원희)의 방해공작에 유미와 3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엄격하지만 묵묵히 유미와 3팀을 믿어 주는 강중사(손병호)의 지원 속에 드디어 그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마지막 훈련이 시작되지만, 왕하사의 계략에 휘말린 유미와 3팀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연 수색대 최초 여부사관 유미와 만년 최하위 3팀은 사단급 훈련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을까.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일(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시애틀 방송국의 잘나가는 리포터 레이니. 화려한 금발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늘씬한 몸매, 그리고 시애틀의 영웅인 최고의 야구 스타 남자친구까지. 레이니는 단 하나, 전국 방송 리포터가 되는 꿈만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잘나가는 여자다. 그러던 어느날 레이니의 상사는 능력있는 카메라맨인 피트와 몇달 동안 호흡을 맞추라는 조건을 전제로 전국 방송 리포터로 레이니를 추천한다. 피트는 몇년 동안이나 레이니의 둘도 없는 철천지원수다. 그러나 레이니는 전국 방송 리포터가 되기 위해서 이쯤은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꾹꾹 참지만 도대체가 5분만 함께 있으면 싸울 일이 꼭 생긴다. 레이니의 스타일이 구겨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히어애프터’ 개봉으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

    ‘올해 나이 여든하나!’ MBC ‘무릎팍도사’의 개그맨 유세윤 버전으로 그렇다. 그런데 이 ‘사내’-2008년작 ‘그랜토리노’의 고집불통 참전용사를 떠올리면 할아버지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지칠 줄을 모른다. 환갑을 넘긴 1990년 이후 감독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19편을 연출했다. 다작이면 작품 수준이 들쭉날쭉할 법한데, 그렇지도 않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으로 오롯이 두 시간을 끌고 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얘기다. 그의 신작 ‘히어애프터’(Hereafter)가 24일 개봉했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영화) 3부작-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석양의 무법자-의 총잡이와 1970~80년대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망나니 형사가 어떻게 거장이 됐는지 56년 영화인생을 더듬어 봤다. ●선악이 모호한 총잡이와 무대포 형사 1955년부터 B급 영화의 단역으로 나서던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1959년 CBS 서부연속극 ‘로하이드’였다. 주인공 로디 역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때문인지 감독이던 토마스 카는 “게으르다. 한 번도 촬영 시작을 같이한 적이 없다.”고 뒷담화(?)를 남겼다. ‘로하이드’의 인기가 쇠할 무렵 기회가 왔다. 무명에 가깝던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원제:A Fistful of Dollars)였다. 이때가 1964년. 레오네 감독은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을 원했는데 거절당했다. 이스트우드는 “모두에게 친절한 영웅에 신물이 나던 찰나였다. 안티 히어로가 될 때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저예산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은 흥행은 물론,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판초를 뒤집어 쓰고 시가를 씹어대는 고독한 카우보이는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정통 서부극의 영웅과는 정반대 지형에서 관객의 뇌리에 각인됐다. 1970~80년대는 ‘더티 해리’ 5부작과 보냈다. 샌프란시코의 강력계 형사 해리 캘러헌이 법망을 피하는 악당들을 매그넘44 권총으로 단죄하는 이 영화는 ‘파시스트적인 폭력’이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관객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전성기에도 그의 연기에 대해 “뻣뻣한 나무 막대기” “얼굴 찌푸리고 서 있는 것 외에 할 줄을 모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연기는 고함치고, 울부짖고, 감정을 쥐어짜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감독 20년 만에 거장 반열 경력이 쌓이면 카메라의 뒷사정이 궁금해지는 모양. ‘더티 해리’ 돈 시겔 감독의 연출 권유에 솔깃해진 그는 1971년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찍으면서 제작사 맬파소프로덕션을 차렸다. DJ와 스토커를 다룬 데뷔작은 흥행은 물론, ‘소름 끼치는 스릴러이자 아름다운 음악영화’란 호평을 얻았다.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20년이 지난 뒤. 악명을 떨쳤던 무법자가 은퇴 이후 조용히 살려고 하지만, 악덕 보안관과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결국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용서받지 못한 자’로 1992년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쓸었다. 배우 출신으로는 5번째 감독상 수상. 2005년에는 30대 여성복서와 늙은 트레이너의 ‘유사 부녀’ 관계를 다룬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또한번 거머쥐었다. 필름 바깥의 삶도 흥미롭다. 1952년 공화당원이 됐고, 68·72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베트남·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인 척하는 것은 질색했다. 스스로는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라고 말한다. 1986~88년 카멜시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소기업과 환경 보호에 힘썼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히어애프터’는 어떤 영화 기획자로 나선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협업으로도 화제를 모은 ‘히어애프터’(12세 이상 관람가)는 사후세계를 다룬다. 영혼과 대화하는 심령술사 조지(맷 데이먼)와 쓰나미에 휩쓸려 죽다가 살아난 여기자 마리(세실 드 프랑스), 모든 걸 의지했던 쌍둥이 형을 잃은 마커스(프랭키 맥라렌)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발짝 물러서 관조한다. 죽음의 위험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결국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이스트우드는 “저 세상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믿는 바는 있지만 모두 가설일 뿐이다. 가 봐야 아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화 속 사후세계의 영상은 평화롭다. 노감독은 죽음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故조오련 아들 조성모 “정신 제대로 차려야죠”(인터뷰)

    故조오련 아들 조성모 “정신 제대로 차려야죠”(인터뷰)

    스타부모 밑에 태어난 이들을 두고 축복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불행하다는 사람도 있다. ‘아시아의 물개’ 故조오련의 아들 조성모(27)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박태환 등장 전까지 간판급 수영선수였던 조성모에게 아버지의 명성과 후광은 뛰어넘을 수 없었기에 늘 힘겨운 것이었다. 2년 전 큰 나무와 같았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스러졌다. 그 충격으로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급격히 체중이 불어난 조성모는 세상에서 꼭꼭 숨어버렸다. 지난해 잠시 SBS ‘스타킹’에 출연해 30kg넘게 체중감량을 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또 찾아왔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한 지 8개월. 만나는 사람이라곤 친구 몇 명과 친형, 정신과 주치의, 트레이너 숀리가 전부였다. 세상에 나서는 게 여전히 두려웠지만 최근 조성모는 용기를 냈다. 대우증권 CF ‘대한해협’ 편에 출연한 것. “목숨처럼 수영을 아낀 아버지를 기억 속에만 남길 순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움직였다. ◆ “대답 없는 이름, 아버지”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냐고요? 돈 없는 아버지요, 하지만 존경하는 분이요.” 조성모는 담담하게 이렇게 아버지를 떠올렸다. CF에 나오는 영상처럼 “정신 지대로 차리라!” 고 호통 치던 조오련은 호랑이 수영코치였고, 대한해협을 건너기 위해 사비를 쏟아 부어 빚더미에 오른 무모한 열정을 가진 가장이었다. “CF에 출연하면서 아버지의 성함을 3번 팔았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다 말썽을 일으켰을 때 처음 아버지 성함을 댔고, ‘스타킹’에 출연할 때가 2번째였죠. 수영선수로 활동할 때는 ‘조오련 아들’이란 말을 듣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알게 됩니다.” 조성모는 2004년 아시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부산아시안게임 1500m 은메달을 딴 ‘에이스 국가대표’였다. 하지만 좋은 기록도, 값진 은메달도 ‘수영영웅’ 조오련의 아들로서는 부족한 것이었다. 무거운 부담감과 만성적인 허리디스크로 고통받던 조성모는 결국 박태환 등 쟁쟁한 후배에 자리를 양보하고 태릉선수촌을 나와야 했다. ◆ “대한해협, 아버지 아닌 나의 꿈” 한차례 뜨겁게 타올랐다 꺼져버린 양초처럼, 무성했던 잎들을 떨어뜨려버린 앙상한 나무처럼 전성기가 지나간 조성모에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고 막막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가끔 아버지 꿈을 꾼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아버지 생전에 왜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해드렸는지…” 회한으로 고개를 숙였던 조성모는 꿈에 대해서는 힘줘 말했다. “사실 대한해협을 건너겠다는 건 즉흥적인 생각이었어요. 수영을 그만둘 때 수영복 절대 안 입겠다고 맹세했거든요. 근데 ‘스타킹’ 오디션 도중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거죠. 하지만 생전 아버지를 떠올리면 분명 제 꿈을 칭찬해 주실 거예요.” 조성모의 꿈은 아름답지만 이루기 쉽지 않은 것이다. 스폰서십을 구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대한해협을 건너는 일은 해남 바다소년이었던 조오련이 자라서 아시안게임 2연속 2연패를 한 기적보다 더 이루기 힘든 일이었다. 조성모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일이라서 저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대한해협을 건너는 건 제 꿈이 됐어요. 선수시절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수영을 했지만, 이젠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해 꿈을 꾸고 노력할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사진·동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존자를 한명이라도 구조했어야 했는데….”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가장 늦게 빠져나온 정부 긴급 구조단의 일원으로 지난 23일 귀국한 최종춘(43) 소방장<서울신문 3월 19일 자 3면>은 진한 아쉬움이 남은 듯했다. 이번에 파견된 105명의 구조대원 중 가장 많은 65명을 파견한 중앙119구조대 소속인 최 소방장은 25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했다. 그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시신 18구밖에 수습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나라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의 노력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5년 소방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최 소방장은 지난해 한 정유사가 주관한 최고 영웅 소방관으로 선정돼 ‘제야의 종’ 타종에 나서기도 했다. →23일 귀국해서도 집에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데.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 이후 매뉴얼 얘기가 많았다. 성남공항에 도착해 방사선 검사를 받았지만 국립의료원으로 직행해 종합검진을 한 결과 괜찮다는 판정을 받고 밤 10시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3대의 군 수송기를 이용하느라 시간은 더 걸렸지만 많은 장비, 특히 현지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던 기름 등을 싣고 갈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샤워는 물론 세수도 제대로 못 했다고 들었다. -13일 출국 허가가 떨어졌지만 14일 새벽에야 떠나 실제론 9박 10일을 머물렀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점심은 현장에서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 식량으로 해결했고 아침, 저녁은 컵라면과 햇반으로 때웠다. 주민들이 세수할 물도 아끼는 것을 보고 차마 얼굴을 씻을 수 없어 가져간 물티슈 등으로 닦았고 양치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니가타 소방학교로 옮겨 간 7일째에야 처음 샤워를 했다. 10m가 넘는 쓰나미가 시속 600㎞ 속도로 휩쓴 지역이라 생존자가 버틸 최소한의 공간마저 없어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시신 18구를 수습하는 데 그쳤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그것밖에 못 했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국민들에게 면목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서울, 경기, 강원 등 지방 구조대 대원 40명 중 상당수가 해외 원정이 첫 경험이었는데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아이티 등 재난 현장을 많이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할 때 일본은. -지금까지 중국, 인도, 터키 등 우리보다 발전이 더딘 나라들을 다녀왔는데 처음으로 선진국을 경험했다. 그리고 105명이란 대규모 인원을 파견한 것도 처음이라 낯설었다. 이만한 인력과 장비, 물자를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일본은 사유재산 개념이 확고해 폐허가 된 집이라도 주인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 작업할 수 없었다. 차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입로를 열지 못해 복구가 더뎌지기도 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차츰 ‘일본 문화가 이렇구나.’ 인정하면서 경찰에 입회해 달라고 요청해 잔해를 수색하곤 했다. →일본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데. -시신 발굴 건수를 일절 알리지 말라고 외무성에서 심하게 압박했다. 국민들이 동요한다는 이유였다. 우리도 이를 유념하고 작업했다. 경찰이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한 센다이시 가모지구에서 가끔 마주친 일본인마다 우리를 보곤 두손을 모으며 ‘아리가토!’라고 인사했다. 정말 이따금 서투른 우리말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시신을 인계하면서 경례하거나 일본식으로 두손 모아 예를 갖춰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귀국길에 들른 니가타 공항의 청사 창문에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쇄된 A4용지 여러 장이 붙어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성남공항에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가 영접하러 나와 깜짝 놀랐고 자부심도 느꼈다. →26일 돌아올 예정이었다가 앞당긴 건 일본 요청에 따른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현지에서 하려던 일은 시신 수색보다 생존자 구조였다. 출발이 지연돼 적기를 놓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쓰나미 위력이 워낙 대단했던 터라 더 이상 구조에 희망을 걸 수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일본 정부와 협의해 돌아왔다. →가족들 걱정이 많았겠다. -첫날은 전화가 터지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 전화가 터져 하루 한번, 저녁에 아내(김종희·40), 두 딸과 통화했다. 국내 언론이 일본보다 더 떠들썩했던 것 같다. 아내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시골 부모님들은 대단하셨다. 귀국 후 안부 전화만 드려 죄송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인공호흡으로 애완견 살린 소방관 ‘영웅 대접’

    개에게 인공호흡을 해 목숨을 살린 소방관이 영국서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메트로가 지난 22일 보도했다. 마이크는 최근 불이 난 현장에서 애완견을 구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개를 구했지만 당시 개는 어떤 생명의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개가 죽은 것으로 알고 안타까워했지만 마이크는 포기하지 않고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심장마사지 뿐 아니라 인공호흡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연습훈련 당시 동물에게 인공호흡을 실시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 뒤 망설이지 않고 응급조치에 집중했다. 인공호흡을 시작한지 약 30분 후 개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자 호흡을 시작했고, 개는 곧장 인근 동물병원으로 후송됐다. 그의 동료들은 개와 ‘키스’를 나눈 그를 장난스럽게 놀리는 한편, 그의 봉사정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개의 주인은 “개가 밖으로 실려 나왔을 때 분명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면서 “가족과도 같은 애완견을 살려준 소방관 마이크는 우리에게 영웅이나 다름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이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동물도 사람과 같은 목숨이니 살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사막의 라이언/박홍기 논설위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오마르 무크타르(1862~1931)다. 무크타르는 1910년 제국주의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구국의 지도자다. 이탈리아가 옛 로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미명 아래 침공하자 반목을 일삼던 부족들을 결집시켜 20년간 이탈리아를 상대로 항전했다. 서구세력의 팽창에 맞선 비서구권, 이슬람권의 응전이었다. 이탈리아는 1911년 트리폴리에서부터 벵가지에 이르는 리비아 지역을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20년 동안 무크타르가 이끄는 원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교착상태에 빠진다. 무크타르의 영웅담은 1981년 할리우드의 아랍계 감독 무스타파 아키드에 의해 영화 ‘사막의 라이언’으로 되살아났다. 감독 아키드는 “서방에 살면서 이슬람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밝혔다. 3500만 달러의 오일머니가 투입됐다. 카다피가 가장 큰 투자자로 나섰다. 영화 속에서 리비아인들은 유목민족 베두인의 후예답게 말을 타고 이탈리아 탱크부대와 처절하게 싸운다. 무크타르는 중과부적으로 이탈리아군에 패해 포로가 된 뒤 정복자의 논리에 따라 ‘식민정부에 대한 반역’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무크타르는 공개 교수형에 앞서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이다. 투쟁은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상영금지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리비아 공사 수주 등과 맞물려 1981년 12월 개봉됐다. 카다피는 2009년 이탈리아를 방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보란 듯이 무크타르의 사진이 가슴에 새겨진 제복을 입고 나왔다. 베를루스코니가 65년 만에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데 대한 화답으로 이탈리아를 찾았을 때다. 리비아 10디나르 지폐에 새겨진 초상화도 무크타르다. 카다피가 원하는 이상인 셈이다. 카다피는 유엔에 의해 인권을 유린한 독재권력으로 낙인찍혔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다국적군은 유엔 결의에 따라 ‘국민보호’를 목적으로 리비아 공격에 나섰다. 벌써 3차례 폭격했다. 카다피는 다국적군의 공습을 ‘십자군 침공’, ‘식민전쟁’으로 규정해 이슬람권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나아가 “마지막 총탄이 다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항전의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국민의 뜻과는 달리 마치 ‘사막의 라이언’이라도 되는 듯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카다피 축출’ 싸고 이견

    ‘카다피 축출’ 싸고 이견

    다국적군이 리비아 공습 이틀째인 20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국가원수 관저의 행정건물을 조준 폭격하면서 작전의 최종 목표물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고 있다. 애초 리비아 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목표로 군사행동에 나섰으나 그 과정에서 카다피를 제거할 것인지를 두고 연합군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리엄 폭스 영국 국방장관은 이날 BBC방송에 출연해 “카다피는 (이번 공격의) 정당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이 유엔 제재 결의안에 맞춰 진행될 것이라면서 리비아인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면 카다피 역시 공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다피 축출’이 작전 개시 때 명시적 목표가 아니었더라도 ‘리비아 국민 보호’를 명분 삼아 시작된 공습인 만큼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면 무엇이든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와 함께 군사행동에 나선 미국은 다른 입장을 보였다.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 “카다피 정권 교체는 이번 공격의 목표가 아니며 카다피의 뒤를 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하루 전인 19일 “제한적 군사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혀 확전을 꺼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존 케리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장 역시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또 이 작전은 카다피 제거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각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은 나라마다 다른 작전명을 사용하고 있는데서도 상징적으로 알 수 있다. 미국의 작전명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오디세이 새벽’(Odyssey Dawn)이다.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영웅 오디세우스는 당초 지중해를 무대로 한 트로이전쟁에 나서기를 거부했지만,참전 후 맹활약하며 트로이 원정에 성공했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을 놓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거쳤지만,끝내는 오디세이처럼 군사행동에 나섰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의 작전명은 아르마탕(Harmattan)이다.아르마탕은 12월부터 2월에 걸쳐 사하라 사막에 부는 동북 무역풍으로,사막의 풍진을 동반하는 건조한 열풍을 뜻한다. 영국의 작전명은 ‘엘라미(Ellamy)’이며,캐나다는 ‘모바일(Mobile)’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왕따의 반격’으로 호주서 영웅된 왕따 소년

    ‘왕따의 반격’으로 호주서 영웅된 왕따 소년

    ’왕따의 반격’ 이란 동영상에서 왕따를 참지 못하고 반격을 가한 호주 소년이 인터넷 영웅이 돼 20일 호주 채널9의 시사프로그램인 ‘커런트 어페어’에 출연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10학년의 16살 케이시 헤인즈. 헤인즈는 뚱뚱한 체형과 소극적인 성격으로 거의 매일 왕따를 당해 왔다. 아이들은 헤인즈의 뒤통수를 때리며 뚱뚱하다고 놀렸고, 심지어는 테이프로 기둥에 묶어 놓기도 했다. 그런 폭력에도 헤인즈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헤인즈는 방송 중에 ”왕따가 너무 심해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고 고백했다. 3주전 부터는 동영상에서 헤인즈를 폭행한 7학년 12살 리처드 게일이 주축인 된 집단으로 부터 집중적인 왕따와 폭행을 당했다. 14일에도 학교 수업 시간표를 확인 하러 가는 길에 게일 집단에게 걸렸다. 게일은 헤인즈를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헤인즈는 “그날은 3년여 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 한 듯하다.” 며 “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고 말했다. 그날의 반격으로 게일은 발목을 다쳤고 두 소년은 정학을 받았다. 헤인즈의 반격 동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투브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뉴스에까지 방송되면서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23만 명의 팔로워가 정학을 받은 헤인즈 구명운동에 동참했고, 그를 ‘영웅’으로 부르는 신드롬이 일어났다. 블로거 웨인 맥코이는 “헤인즈는 왕따를 당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삶에 변화를 주었다.” 고 적었다. 그러나 “그가 행사한 반격으로 자칫 상대편 학생의 목이 부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인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며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놀려대지도 않는다.” 고 말했다. 사진=호주 채널9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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