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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프리뷰] ‘초한지:천하대전’

    진나라 말기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대결을 그린 중국의 역사 소설 초한지. 난세를 이겨내는 처세술과 천하를 경영하는 전략,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 등이 담겨 삼국지, 수호지와 함께 중국의 인기 고전의 하나로 꼽힌다. 이를 스크린에 옮긴 ‘초한지:천하대전’은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스케일에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두 영웅의 길고도 질긴 대결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기원전 200년 황제의 실정에 반발해 반기를 든 항우(펑사오펑)와 유방(리밍)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된다. 뛰어난 무용을 지닌 항우는 희대의 지략가 범증의 도움을 받아 천하통일의 8부 능선을 넘지만, 덕과 용기를 겸비한 유방이 걸림돌이다. 장량과 한신 같은 뛰어난 책사와 무인들이 유방 곁으로 속속 넘어가면서 위기감을 느낀 항우는 홍문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준비한다. 이 작품은 진나라 말기부터 패왕 항우와 그의 여인 우희의 이별을 다룬 패왕별희, 유방의 토사구팽(兎死狗烹)까지 초한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영화의 재미는 역사 속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눈앞에서 확인하면서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금의환향(錦衣還鄕), 다다익선(多多益善),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등 유명한 고사는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 이를 바탕으로 귀족 집안에서 자라나 기개를 갖춘 항우와 비천한 출신이지만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역사 속 승자로 기록된 유방은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그들의 전술 참모인 범증과 장량이 펼치는 지략과 전략의 맞대결 또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삼국지:용의 부활’을 연출한 리옌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중국영화의 미덕 중 하나인 거대한 스케일과 볼거리가 매력이다. 중국 북서부의 산시성 둔황에서 촬영된 해하대전과 홍문연에서 범증과 장량이 한 수 한 수 바둑판을 보지 않고 펼치는 대결은 이전에 비해 세련된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규모를 강조한 탓인지 섬세한 매력은 부족하다. 역사를 나열한 듯한 평면적인 구성 역시 밀도가 떨어져 인물들의 내면까지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때문에 항우와 유방, 우희의 삼각 로맨스도 다소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배우들의 호연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리밍은 ‘첨밀밀’, ‘유리의 성’ 등에서 선보인 편안한 로맨티스트의 모습과 달리 한층 살이 오른 얼굴로 영웅의 두 얼굴을 표현했고,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 펑사오펑의 매력도 뛰어나다. 유역비도 비중은 작지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오는 12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아이들이 동화책 통해 올바른 길로 갔으면…”

    “아이들이 동화책 통해 올바른 길로 갔으면…”

    5일 오전 11시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고아원 ‘은평천사원’은 특별한 손님을 맞았다. ‘하버드대 고아를 위한 동화’(HCSO) 소속 학생 가운데 한국 학생 5명이다. 천사원에서 생활하는 원생 17명에게 자신들이 주인공인 동화책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HCSO는 지난 2008년부터 페루, 폴란드 등의 고아원을 찾아 직접 만든 동화책을 선물하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동아리다. ●원생 개개인 사연 담은 동화책 만들어 동화책은 HCSO 학생들이 지난해 천사원 측에 ‘원생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뜻을 밝힌 뒤 원생들 몰래 제작됐다. 천사원은 지난해 원생들이 좋아하는 색깔, 취미, 장래희망 등을 조사해 학생들에게 건넸다. 학생들은 삽화를 곁들여 원생 개개인의 사연을 담은 동화책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원생 한명 한명에게 책을 나누어 줬다. 자신의 얘기를 담은 동화책을 신기해 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해 아리송해하던 원생들은 학생들이 친절하게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 해석해 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경제학과 박지현(23·여)씨가 쓴 ‘수지 해피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받은 이모(16·여)양은 “제출한 제시어로 mp3, 시골, 영웅을 냈는데 내가 말한 제시어로 이러한 내용의 동화책이 만들어지니 신기하다.”며 연신 기뻐했다. 수지 해피 바이러스의 이야기는 비밀 어린이 조직단을 구성, 스마트폰 등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서로 호출하고 화상통화를 하면서 미션을 받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문학과 김푸른샘(23·여)씨는 김모(17)군을 위해 수의사가 되려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김푸른샘씨는 “아이 취향에 맞게 쓴다는 것이 어려웠다. 초급 수준의 영어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중학생 수준의 내용이 있어야 해서 까다롭긴 했어도 아이들이 동화책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고 말했다. ●3일동안 영어 수업하며 꿈과 희망 전해 조성아 부원장은 “아이들 중에 부모의 폭력이나 방치에 노출된 아이들이 많은데 동화책을 통해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3일간 천사원에서 영어 수업을 하면서 원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할 예정이다. 글 사진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김난도 교수 등 4명 명예검사로

    김난도 교수 등 4명 명예검사로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이 검찰 명예검사로 위촉됐다. 대검찰청은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김 교수와 엔씨소프트 윤 부사장, 배우 이민호·문채원씨를 제4기 명예검사로 4일 위촉했다. 김 교수는 위촉식에서 “명예검사를 제안받고 27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면서 “어린 시절 저에게 영웅이었고 제가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처럼 검찰의 신뢰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부친은 고(故) 김태원(고등고시 5회) 검사다. 김 교수는 또 “교정시설에 제 책을 기증하는 등 어려운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도 “검찰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밝혔다. 위촉식을 마친 김 교수 등은 오후 서울중앙지검 검사실과 여성아동녹화조사실을 둘러보고 검찰시민위원회 사건심의 등을 참관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동국아, 너 믿고 감독직 수락했어”

    “동국아, 너 믿고 감독직 수락했어”

    최강희(왼쪽) 축구대표팀 감독과 ‘비운의 라이언 킹’ 이동국(오른쪽·33·전북)이 한배를 탄다. 전날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이례적인 합동 기자간담회를 가졌던 최 감독은 4일 전화 통화에서 “이동국은 (대표팀에) 당연히 뽑는다. 그 아저씨 안 뽑으면 누굴 뽑나.”라고 되물으며 웃었다. “동국이 믿고 감독 한다고 한건데.”라고도 했다. 지난달 2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은 현 상황에서 첫째로 뽑아야 할 스트라이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애제자’에게도 이미 언질을 줬다고 했다. 최 감독은 지난달 30일 이동국과 만나 “내가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건 너 때문에 한 거다. 네가 해결해라.”고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영광보다 시련이 많았던 이동국은 잔뜩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다고. 그러나 최 감독은 “나하고 재미있게 하면 되지, 부담을 왜 갖느냐. 충분히 잘할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그의 이동국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해 이동국을 불러 백업 멤버로 굴욕(?)을 안긴 조광래 전 감독에게 “동국이가 20살 신예도 아니고 땜빵용으로 쓸 거면 부르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최 감독은 성남에서 퇴물 취급을 받던 이동국을 전북으로 불러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발 빠르고 힘 좋은 측면 자원들을 배치해 부담을 줄여줬고, 경기마다 풀타임을 뛰게 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이동국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부상을 당했을 때도 한결같았다. 이동국은 2009년 득점왕, 지난해 도움왕으로 보답했다. 전북의 트레이드 마크인 ‘닥공’(닥치고 공격)의 중심도 이동국이었다. 최 감독과 이동국은 3년간 호흡을 맞추며 두 번의 통합우승(2009·2011년)을 합작했다. 최 감독이 이동국을 대표팀 멤버로 점찍은 건 당연했다. 김상식(36·전북)도 다음 달 29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의 ‘해결사’로 뜬다. 최 감독은 “기본적으로 기성용-김정우인데 부상이나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 식사마(김상식)를 원포인트로 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동국·김상식 외에 ‘닥공 신화’를 함께 한 전북맨 2~3명을 더 발탁할 예정. 3일 신년간담회에서 밝혔듯 쿠웨이트전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어서 자신의 전술을 잘 아는 선수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봉동 이장’에서 하루 아침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어차피 영웅 아니면 역적인데, 소신껏 해야죠.”라고 ‘쿨하게’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지방시대] 도시 스토리의 힘/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도시 스토리의 힘/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려면 왠지 머리에 꽃을 꽂고 가야 할 것 같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가우디의 건축 얘기를 미리 듣고 가야 할 것 같은, 중국 베이징에 가기 위해서는 자금성의 영욕의 역사를 읽고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그 도시가 내뿜는 스토리의 힘이리라. 최근 세계의 도시들은 이른바 스토리 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 변화를 주도하는 건축의 영향력은 말할 나위 없이 막강하다. 그러나 그 건축물이나 건조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은 스토리의 힘이다.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마천루는 그 자체로 마천루일 뿐이다. 그러나 볼품없는 자그만 우물 하나도 풍부한 스토리가 있을 때는 마천루 이상의 감흥을 준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를 지상 최고의 독특한 건축도시로 만드는 것은 건축물의 외양만이 아니라, 천재적 건축가 가우디와 그의 절친한 후원자 구엘과의 애증의 스토리, 아직 끝나지 않은 웅대한 성 가족 성당 건축을 둘러싼 스케일 넘치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 도시의 스토리는 천재적, 영웅적, 성공적 스토리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어느 건조물을 만드는 데 천재적인 노력, 어느 영웅적인 헌신, 웅대한 업적의 스토리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통 서민의 애환이나 어두운 역사의 단면도 좋은 도시 스토리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즉,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관광자원화하는 경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수많은 외침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국토의 다양한 스토리 자원들이 천재적 성공의 스토리를 유지하지만, 애환의 스토리들도 많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스토리 자원들을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로 애써 외면하거나 사소한 것들로 치부하여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분은 우리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했지만,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가 스토리의 보고여야 한다. 아무리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이야기의 원재료들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스토리로 엮이고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기껏해야 200여년의 역사적 흔적을 엄청나게 세밀하게 밝히고 조명하고 있다. 기간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역사책보다 훨씬 얇아야 할 책 두께가 우리보다 두껍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의 유명한 역사관광지라고 찾아가봐야 기껏해야 남북전쟁이나 독립전쟁의 역사 등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얼마나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여 세심하게 역사적 스토리 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문제는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스토리의 자원은 무엇보다 역사 자원이 필수적이다. 역사에는 사건과 인물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 자원뿐만 아니라 마을과 동네마다 얽힌 사연들도 충분히 스토리 자원이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도시의 스토리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서 지역과 마을의 스토리 개발과 스토리텔링에 눈을 떠서 이를 관광자원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한국 金 13개 ‘톱10’ 목표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한국 金 13개 ‘톱10’ 목표

    제30회 런던올림픽이 영국 런던에서 오는 7월 27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개막해 8월 12일 막을 내린다. 런던은 1908년과 1948년 대회에 이어 근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세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올림픽의 주제는 친환경이다.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26개 종목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펼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가 이번 대회부터 제외됐다. 소프트볼도 빠졌다. 복싱 가운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여자 종목이 치러지는 게 특징이다. 이번 대회 마스코트는 외눈박이 모습의 ‘웬록’(Wenlock)과 ‘맨더빌’(Mandeville·장애인올림픽)이다. 둘 다 영국의 지명에서 이름을 따온 가상의 캐릭터다. 두 지역 모두 철강이 유명한 곳이라 마스코트 전체가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게 특징이다. 웬록은 슈롭셔의 한 지역으로 올림픽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의 시초가 된 대회를 개최한 곳이다. 맨더빌도 패럴림픽이 처음 열린 스토크의 한 지역이다. 성화 봉송은 5월 18일부터 70일간 진행되며 8000여명이 참여해 영국 전역을 돌 예정이다. 특히 성화 봉송 주자 가운데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평범한 사람 95명이 포함돼 있다. 숨은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은 영국 31개 대학과 올림픽 후원사인 삼성전자가 함께 선발했다. 삼성은 이들이 일상에서 펼친 선행을 알리는 캠페인을 펼쳐 왔다. 한편 한국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따내 톱 10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한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수확하며 종합 7위에 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의 금메달 텃밭인 태권도와 양궁에서 경쟁국들의 실력이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간 유에스에이투데이가 최근 예측한 한국의 성적을 봐도 그렇다. 금메달 4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13개에 그친다고 내다봤다. 이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 이후 가장 적은 금메달 수로, 종합 19위에 해당한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FTA 진두지휘 ‘검투사’ 떠난다

    FTA 진두지휘 ‘검투사’ 떠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진두지휘한 김종훈(59)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본부장은 30일 청와대가 발표한 개각에서 박태호(59)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후임 본부장에 내정됨에 따라 4년 5개월 만에 집무실을 비우게 됐다. 한·미 FTA 체결 주역이자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산 증인’인 김 본부장은 ‘박수’와 ‘비난’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는 공직자였다. 2006년 4월 한·미 FTA협상 수석 대표를 맡아 9차례의 협상을 주도한 끝에 이듬해 4월 극적인 타결을 이끌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등은 그에게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는 별명을 붙이며 ‘영웅’ 대접했다. 김 본부장은 협상 당시 언쟁이나 벼랑 끝 전술을 피하지 않았고, 귀가를 포기한 채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2007년 협상 때는 남편의 갈아입을 옷을 전하기 위해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아 세간에 회자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한·미 FTA가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쉼표 하나 고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재협상에 나섰다. 올해 초 번역오류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책임지겠다.”며 용퇴의사를 밝혔으나, 비준안을 끝까지 마무리하라는 청와대 요청에 뜻을 굽혔다. 비준안 처리과정에서는 민주당 등 한·미 FTA 반대 진영으로부터 ‘매국노’ ‘이완용’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김 본부장은 다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한 달여 만에 옷을 벗게 됐다.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지 37년 만에 공직을 떠난 것이다. 김 본부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공화국 영웅’ 김정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한 지난 19일 김 위원장에게 최고의 명예 칭호인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또 이날 ‘천만군민이 드리는 다함없는 인사’라는 제목의 다른 기사에서 “김 위원장이 1975년 2월과 1982년 2월, 1992년 2월에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으시었다.”고 밝혀 김 위원장이 이 칭호를 모두 4차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에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4차례 받은 사람은 김 위원장이 유일하다. 지난 1994년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1953년 7월과 1972년 4월, 1982년 4월 등 3차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바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정령에서 “김정일 동지께서는 당과 인민을 현명하게 영도하시어 조국과 인민, 시대와 역사 앞에 영구불멸할 혁명 업적을 쌓아올리시었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금별 메달 및 국가훈장 제1급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아듀! 2011년

    다시 아쉬움 속에 한 해를 보낸다. 2011년, 우리는 그것을 파란의 역사로 기억한다. 나라 안팎으로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가 달리 있었을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변화의 불길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을 줄줄이 잿더미로 만들었다. 30년 넘게 철권을 휘두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물러났고,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40년 절대독재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도저한 아랍의 봄도 동토의 왕국 북한의 ‘냉동정권’을 녹여내진 못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들어선 김정은 3대 세습 체제는 한반도를 다시 한번 불확실성의 먹구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 갈지 모르는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 한 해 우리 정치·경제·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속 시원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 해머에 최루탄까지 나뒹구는 폭력국회의 참상은 외신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저축은행의 부실사태는 서민의 피눈물을 뽑아냈다. 농협 전산망에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까지 전방위로 확산된 해킹사태는 그야말로 ‘디도스 노이로제’에 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우두망찰 저무는 해를 바라볼 수만은 없다. 우리 모두 ‘대각성’(Great Awakening) 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 아직 희망의 빛이 남아 있다. 올해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4년을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또한 우리 경제영토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경제 양극화로 등골이 휠 대로 휜 서민·중산층에겐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지만, 그것은 ‘축복’이다.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소말리아 해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있고, 기부의 삶을 산 ‘철가방 천사’ 고(故) 김우수씨도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원이 넘는 돈을 슬그머니 넣은 익명의 손길도 있다. 그런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 ‘흔들리며 피는 꽃’을 노래한 시인의 말대로 올 한해의 어려움은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소중한 모퉁이 돌이 될 수 있다. 이제 가위눌림의 기억은 뒤로 하고 희망의 임진년, 새로운 해를 준비하자.
  • “安의사 31살때 이토 저격… 저는 안중근役 꿈 이뤘죠”

    “安의사 31살때 이토 저격… 저는 안중근役 꿈 이뤘죠”

    지난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2년 만에 뮤지컬 ‘영웅’의 조연 ‘조도선’에서 주연 ‘안중근’이란 새 옷을 갈아입은 배우 조휘(30·본명 조성범)의 공연이 시작됐다. “극 중 거사(이토 히로부미 저격)를 치른 뒤 교도소에서 어머니가 직접 지어 주신 수의를 입고 장부가를 부르며 혼자 사형대로 걸어가는데 평소보다 더 눈물이 나고 힘들더라고요. 커튼콜 때는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노래를 못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초연 멤버 정성화와 더블 캐스팅 된 안중근 역은 그가 데뷔 9년 만에 따낸 대형 뮤지컬의 첫 주인공이다. 2009년 안중근 역을 노리고 ‘영웅’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돌아온 배역은 조연(안중근의 동지 조도선)이었다. 안중근의 커버 배우(주연배우가 부득이하게 무대에 오르지 못할 때 대신하는 배우)로 기회를 엿본 지 2년 만에 주연으로 당당히 선 것이다. ●뉴욕 공연길 제작사에 “기회 달라” 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조휘에게 부모님은 안정적인 교사의 길을 걷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반드시 훌륭한 배우가 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고, 스스로도 이를 악물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와 그의 가족이 2011년 크리스마스에 10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휘는 “초연 때 커버 배우를 한 만큼 앙코르 공연 땐 내심 안중근 역할을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정성화 선배, 양준모 선배, 신성록씨에게 주인공이 돌아가 다시 한번 열심히 커버 준비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8월 ‘영웅’ 팀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을 때도 내심 기대를 했단다. 정성화 단독 주연으로 공연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는 없었다. “뉴욕 공연 길에 오르기 전에 제작사에 얘기했어요. 안중근으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달라고요. 제가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2012년 새 시즌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오디션에 응모했다.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20대 후반에 안중근 역에 처음 도전하고 실패한 뒤 결심했어요. 안 의사가 31살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듯 저 또한 31살이 됐을 때 안중근 역을 꼭 꿰차기로 말이죠.” 그는 우리 나이로 31살 끄트머리에 그토록 바라던 안중근이 됐다. ●‘지킬 앤 하이드’ CD 튕겨날 때까지 노래연습 “오디션에 합격하고서 안 의사의 사진을 전부 휴대전화에 저장했어요. 걸을 때마다 꺼내 봤지요. 유년 시절, 청년기, 결혼식 직후, 독립운동 시기, 거사 직후, 사형당하기 직전의 모습들을 보면서 안 의사의 얼굴이 매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닮아 가려고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진짜 닮았단 말을 많이 해요.” 그러고 보니 수염부터가 안 의사와 무척 닮았다. 처음엔 분장용 수염인 줄 알았는데 안 의사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수염을 그렇게 길렀단다. 걸음걸이도 대한의군 참모중장(안 의사의 생전 직책)처럼 씩씩했다. 차분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안 의사가 거사에 성공하면 (자신이 죽인)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허락해 달라고 나무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라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판단해 천주교 교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천도교 신자이지만 3개월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천주교 교리 수업을 듣고 있단다. 조휘의 ‘안중근’에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2002년 데뷔 이후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졌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2년 동안 노래와 춤 연습에 매진했다. 언젠가 꼭 도전하고 싶다는 ‘지킬 앤 하이드’도 CD가 튕겨 나갈 때까지 듣고 또 들으며 노래 연습을 했다. 소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서도 매일 연기 연습을 한 뒤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향했다. ●오디션 숱하게 낙방… 눈에 띄려 이름 외자로 “삼각김밥으로 뒤늦은 저녁을 때우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면서 울기도 많이 했다.”는 그는 “전략적으로 지은 예명이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며 웃었다. “숱하게 오디션에 떨어지면서 느낀 건 응시자들 이름이 대부분 세 글자란 거였어요. 외자로 하면 눈에 띄겠구나 싶었죠. 빛날 휘(輝)를 선택했지요.” 이름처럼 그는 ‘빛나는’ 배우가 됐다. “더 갈고닦아 사람들이 이름만 듣고도 표를 예매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정은, 운구차 붙잡고 눈물… 운구행렬 평양 40여㎞ 돌아[동영상]

    김정은, 운구차 붙잡고 눈물… 운구행렬 평양 40여㎞ 돌아[동영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8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영면에 들며 37년간 북한의 절대 통치자로 군림했던 영욕의 세월을 내려놓았다. 냉·온탕을 오가는 대외정책으로 한반도 정세를 쥐고 흔들었던 1인자가 사라진 북한의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 영결식이 진행된 이날은 온종일 회색빛을 띠었다. 김 위원장 운구 행렬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수천명의 인민군을 마지막으로 사열하며 영결식 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영정이 내걸린 선두 차량 뒤로 검은색 리무진 등이 호위하듯 따랐고, 국화와 붉은기로 장식된 영구차가 중앙에 섰다. 그 뒤로 흰색 리무진 수십여대가 꼬리를 이었다. 영구차는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주석의 시신 운구에 사용됐던 것과 같은 포드사의 최고급 리무진 ‘링컨 컨티넨털’이었다. ●김정은 주위 당·군 지도부 ‘호위’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검은 상복 차림으로 영구차의 오른쪽 맨 앞에 서서 영구차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눈길을 걸었다. 표정은 침통했으나 금수산기념궁전에 도열한 조선인민군 군기 종대와 육·해·공군 및 노농적위대 의장대를 지날 때는 거수경례로 자세를 바꿔 지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영구차의 오른쪽에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왼쪽에는 리영호 총참모장 등 군 지도부가 호위하듯 섰다. 김 위원장 ‘옹위세력’이었던 인민군과 당·국가기관 구성원들은 운구 행렬이 광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금수산기념궁전 정문으로 올 때까지 90도로 허리를 굽힌 자세를 유지하며 예를 표시했다. 운구 행렬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여성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울음을 터뜨렸고, 인민군 군관들은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을 중계하던 조선중앙TV 리춘희 아나운서는 “가장 비통한 마음과 전 세계 뜨거운 추모의 마음이 모여든 금수산궁전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결식을 엄숙히 거행하고 우리 장군님을 생전 모습 그대로 정중히 모신 자동차가 영웅거리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인민군은 인터뷰에서 “하늘도 눈물처럼 눈을 끊임없이 쏟고 있다. 대국상에 하늘인들 울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군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운구 행렬은 평양 시내를 돌았다. 개선문,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통일거리, 충성탑, 평양체육관, 조국해방전쟁기념탑, 옥류교 등 40여㎞를 돌아오는 거리였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도로에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평양 시민들이 도열해 김 위원장을 떠나보내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록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김 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날 때마다 모자를 벗어 예를 갖췄다. 하지만 카메라와 멀리 떨어진 뒷줄의 주민들은 앞줄과 달리 덤덤한 표정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운구 행렬은 군악대, 김정은 부위원장 대형 화환, 군인들이 탑승한 모터사이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 운구차, 장의위원들이 탑승한 차량 순으로 이어졌다. 장의위원과 당 고위 간부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은 김 위원장이 즐겨 타던 벤츠가 다수를 차지했다. ●평양 시민들 도열해 오열 김 위원장 영결식은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당초 시작될 예정이었던 오전 10시보다 늦은 오후 2시에 열렸다. 북한은 아침부터 많은 인력을 동원해 제설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운구차가 지나기로 예정된 길은 평양 시민들이 나서 깨끗하게 눈을 치운 상태였다. 북한 매체들은 특보체제를 이어 갔다. 조선중앙TV는 오전 7시부터 김 위원장의 일대기와 사진, 업적 등을 담은 방송을 시작해 사실상 종일 방송을 했다. 방송은 오후 2시 넘어 영결식 중계를 시작하며 ‘실황중계’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거리 행진을 마친 김 위원장의 시신은 오후 4시 40분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돌아와 중앙방 가운데의 투명한 유리 안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데스크 시각] 상가(喪家) 취재/안미현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상가(喪家) 취재/안미현 문화부장

    예나 지금이나 취재하기 참 꺼려지는 곳 중의 하나가 상가(喪家)다. 뼈를 발라내는 것 같다는 부모의 참척(慘慽) 고통 앞에서, 말간 눈으로 영정을 바라보는 어린 자식 앞에서, 혼이 다 빠져나간 듯한 배우자의 얼굴 앞에서, ‘심경’을 물어야 하는 탓이다. 더러 고인의 사진을 빼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훗날 술자리 영웅담으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오열하는 유족을 뒤로한 채 사진을 뒤지고 있노라면 ‘기자놈들’이란 말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초년병 기자 딱지를 떼도 상가 취재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상가의 성격이 ‘사건사고’에서 고위공직자나 유명 인사의 부모 상(喪)으로 옮겨가곤 한다. 다행히 고인의 사진을 훔쳐내는 따위의 못할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러 기삿거리를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기자들은 이걸 ‘물 먹는다’고 표현한다). 상주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 보니 상주나 조문객의 말 한마디가 그대로 기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소(親疎) 관계를 떠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상가에 기자들이 어김없이 진을 치는 것은, 물 먹을 위험이 높은 곳이 상가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 조의(弔意)는 건성인 채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호상(好喪)인 경우는 떠들썩하게 술잔도 부딪친다. 죄의식이 덜하긴 해도 상가를 빠져나올 때면 가슴 한쪽이 걸리기는 매한가지다.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상가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의 상가였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역에서 물러난 지 이미 몇 해 뒤라 언론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잠시 망설이다가 빈소를 찾았다. 그래도 조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눈이 벌개져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이니, 역시나, 유족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신분’을 밝히고 서둘러 상가를 빠져나왔다. 그날의 상가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것은 초면의 상주에게 나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민망함이나, 누가 기자를 반긴다고 꾸역꾸역 찾아갔을까 하는 잠시잠깐의 자책 때문은 아니었다. 빈소의 썰렁함 때문이었다. 범부의 상가에 비하면야 북적댔지만 생전의 사회적 직함에 비하면 상가는 다소 스산했다. 그렇다고 고인의 인품이 훌륭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정승집’ 속담을 떠올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내내, 마음이 헛헛했다. 2011년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사람이 운명을 달리했다. 자식을 앞세우고도 구수한 청국장 냄새에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가던 순간, 아직은 더 살아야겠구나 하고 느꼈다는 박완서 작가가 연초 우리들 곁을 떠났다. 열린 예배를 전파한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죽음으로 법을 만든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그토록 사랑했던 친정 팀(롯데 자이언츠)감독을 끝내 맡아 보지 못한 최동원 투수,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까지 낱낱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허락했던 애플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 떠나는 길조차도 선명하지 못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상가에 얽힌 기억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온 것은 아마도 세밑까지 계속된 ‘죽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 힘든,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 기쁜 해(年)였으리라. 하지만 이 땅을 사는 대부분의 소시민에게는 여전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팍팍한 한 해였을 것이다. 시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문단의 축복 속에 늦장가를 든 함민복 시인이 쓴 시 중에 이런 게 있다. 전봇대에서 전깃줄을 걷어내고 꽃줄로 집과 건물을 연결하는 꽃봇대를 만들자는,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신작시집 ‘꽃봇대’에 수록된 ‘세월’이란 시다. ‘죽고 싶도록 속상하던 마음도/ 세월이 지나면/ 마음결 평평하게 펴져/ 미소 한 자락으로/ 떠오르기도 하지요’ hyun@seoul.co.kr
  • 영웅은 평범한 민초였다

    영웅은 평범한 민초였다

    ‘아랍의 봄’을 만든 영웅은 평범한 민초였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에 불을 붙인 건 하메드 부아지지(당시 26세)였다. 소도시 시디부지드에 살던 그는 대학 졸업 뒤 취업을 못해 무허가 과일 노점상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단속 경찰에 생계 수단을 빼앗기자 분신했다.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75) 대통령의 독재 정권에서 숨죽이던 민심은 들끓었고 2주 뒤 정권이 무너졌다. 이집트 청년 칼레드 사이드(29)도 죽음으로 자국의 민주화 시위의 불쏘시개가 됐다. 부패한 경찰이 마리화나를 거래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의문사당한 그는 올해 초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뒤늦게 주목받았다. 이후 경찰에 끌려가 구타당한 탓에 심각하게 손상된 사이드의 시신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구글 임원으로 일하던 와엘 고님(31)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청년층을 단합시켰다. 고님은 이집트 당국에 납치·감금됐다가 여론에 밀려 11일 만에 풀려났고 이후 ‘이집트 혁명의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北 김정은시대] 28일 김정일 영결식 ‘김일성 전례’ 따를듯

    [北 김정은시대] 28일 김정일 영결식 ‘김일성 전례’ 따를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1994년 김일성 국가주석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것으로 보인다. 사망 발표 전 특별방송을 예고하고 차기 지도자가 사실상 장의위원장으로 첫 참배하는 등 지금까지의 장례절차도 김 주석 때와 같다. 따라서 영결식 등 남은 장례절차도 김 주석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의 영결식은 그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해 1시간 안팎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결식에 앞서 장의위원장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고위간부를 대동하고 아버지 김 위원장의 영구(靈柩)를 한 바퀴 돌며 마지막으로 조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석단에는 김 부위원장과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자리한다. 영결식에서는 의장대장이 영결 보고를 하면 김 위원장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육·해·공군 및 노농적위대의 명예의장대 앞을 지나고, 조포와 조총 24발이 발사되며 의장대의 분열이 이어진다. 분열이 끝나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은 김일성광장을 향해 거리행진을 시작한다. 거리행진 때는 군악대 차량이 선두에서 ‘김정일 장군의 노래’와 장송곡 등을 연주한다. 이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과 김 위원장의 영구를 실은 대형 리무진 등 차량이 뒤를 따른다. 금수산기념궁전을 나선 영구는 평양의 보통강변을 따라 금성거리~영흥네거리~비파거리~혁신거리~전승광장~영웅거리~천리마거리~충성의다리~통일거리~낙랑다리~청년거리~문수거리~옥류교 등을 지나 김일성광장에 도착한다. 김일성광장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돌며 평양 주민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뒤 만수대언덕과 개선문광장을 지나 시신의 영구보존 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영결식은 마무리된다. 김 위원장의 영구가 지나는 평양시내 연도에는 수많은 주민이 운집해 고인을 애도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내외에 결속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결식 다음 날인 29일 오전 10시에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열린다. 김 부위원장이 정중앙에 선 주석단 정면에는 검은색 띠를 두른 김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걸리고 광장 국기게양대에는 조기가 걸린다.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연주되고 김 부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또는 당 중앙군사위원 가운데 한 명이 추도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도사가 끝나면 군인, 노동자, 농업근로자, 재외동포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추도연설이 이어진다. 대회 폐막 직후에는 북한 전역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주민은 3분 동안 묵념을 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지상좌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29세 청년수령 김정은, 그의 정신세계&리더십

    [지상좌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29세 청년수령 김정은, 그의 정신세계&리더십

    스물일곱 살 청년이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북녘 체제의 뿌리였던 ‘수령’(首領)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북녘 체제의 기둥인 ‘당중앙’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외모에 아버지의 성정을 닮았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그를 ‘위대한 영도자’라고 칭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어는 이제 그의 것이 됐다. 무려 60여년을 키워 온 권력도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남녘에도, 북녘에도 이 ‘27세의 권력’은 낯설다. 과연 김정은은 북한 사회를 영도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23일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권준수 서울대 정신과 교수와 통치자들의 리더십을 연구해 온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에게 김정은에 대해 물었다. 두 전문가가 분석한 김정은의 정신세계를 좌담 형식으로 싣는다. →27세 김정은이 정치적 리더십을 갖췄다고 볼 수 있나. -권준수 교수 20대 초가 되면 두뇌의 구조적 성숙은 마무리된다. 27세 정도면 타인에 대한 친밀감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27세가 돼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정신적 성숙도는 개인 간 차이가 크다. 김정은은 아마도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정치적 리더십을 체득했을 수 있다. 김정은을 평균적인 남성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최진 소장 정치적 리더십 발달과정을 보면 20대 중후반은 ‘정치 입문기’이자 ‘리더십 준비기’다. 협의·조정 능력과 조직 관리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다.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향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나이 때 장교가 되고 싶어 만주로 떠났다.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려면 카리스마, 조직 장악력, 판단력, 국정경험이 있어야 한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을 받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형적 카리스마를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일의 넷째 부인인 김옥이 김정은에게 90도로 머리 숙여 조문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조직 장악력, 판단력, 국정운영능력은 모두 의문투성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올랐지만, 그들은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나이와 리더십은 상관관계가 큰가. -권 교수 나이가 리더의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이 외에도 교육과 훈련, 사회체제 등 수없이 많은 변수들이 리더십과 관계가 있다. 다만 20대가 지도자가 되려면 여러 세대와 계층이 갖고 있는 ‘20대’라는 인식이 리더십에 대한 의문으로 변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제왕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행동을 체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젊은 사람들은 충동적인데, 김정은은 심리적 요인에 휘둘리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계산된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 소장 나이는 단순히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리더십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앞서 말한 대로 20대는 ‘리더십 준비기’이고, ‘리더십 형성기’인 30대를 거쳐 40대가 돼야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완성하게 된다. 40대가 ‘리더십 완성기’인 것이다. 40대가 돼야 지도자로서 자신감이 형성되고 ‘40대 기수론’처럼 리더로서 ‘깃발’을 세울 수 있다. →김정은은 일찍이 생모를 잃었다. 그의 성장 과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권 교수 김정은이 출생할 때는 퍼스트레이디가 김정남의 친어머니인 성혜림이 아니라 김정은의 친어머니인 고영희였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을 것이다.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이어서 북한 상층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신분이었고, 1988년부터 유선암으로 고생하다 2004년에 숨졌다. 김정은은 중병을 앓고 있는 재일동포 출신 어머니에게 매우 강하게 집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집착에 비례해 심리적 경쟁자인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라는 강력한 존재를 닮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상태임을 습득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성격은 김정일과 매우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유년 혹은 모성에 대한 결핍이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사생활은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최 소장 모성애가 결핍된 지도자들은 여성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극소수 여성에게 빠져드는 양극단의 모습을 보인다. 김정일도 ‘어머니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여비서와 함께 살았고, 배우 최은희를 납치했다. 더욱이 김정은은 어머니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어서 ‘형제 콤플렉스’를 겪었을 수도 있다. →복잡한 형제 관계도 김정은의 리더십에 영향을 끼칠까. -권 교수 부모 관계뿐만 아나리 형제 관계도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은 매사에 조용했던 친형 김정철과 달리 경쟁심이 강했다고 한다. 여동생인 김여정이 오빠가 아닌 작은오빠라고 부르자 심하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정은이 형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퍼스트레이디가 자신의 친어머니였기 때문에 비록 김정남이 장남이었지만, 이미 권력의 향배는 김정철과 김정은에게 넘어왔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장자가 세습 구도에서 멀어지면 나머지 아들들의 라이벌 관계가 훨씬 심해진다. 김정철의 성격이 유약했고, 아버지가 김정철에게 뚜렷한 권력승계 의지를 밝히지 않아 김정은은 ‘나에게 기회가 오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경쟁심을 가졌을 것이다. -최 소장 어머니가 여러 명이어서 형제 관계가 복잡하면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중심이 되려는 강한 권력의지가 발동한다. 선의의 경쟁보다는 형제를 제압하고 완벽한 1인자가 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만큼 영웅주의와 폐쇄적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폐쇄적 신비주의는 처음에는 사람들을 열광시키지만, 장기화되면 소통 부족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진다. →김정은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권 교수 김정은은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여전히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군부가 존재하고, 주체사상으로 뭉쳐 있다. 그의 내면에는 서구의 ‘어린아이 시선’과 북한 사회의 ‘성인 시선’이 혼재할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방어기제가 바로 ‘분리’(splitting)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폐쇄국가의 성격을 유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서구화된 문명을 향유하는 사생활을 즐길 개연성이 있다. 이 둘을 통합해 사회를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길로 나아갈지, 분리된 상태로 놓아둘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최 소장 미국의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1902~1978)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은 ‘선동가형’ 리더에 가깝다. 자기 과시욕이 강하고, 극과 극을 오가며, 예측 불가능하지만 변화 지향적이다. 김정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영화를 좋아하고, 자동차 광이며, 만능 스포츠맨이다. 선동가형은 기본적으로 속도를 좋아한다. 김정은의 성장과정을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1930~2004)의 리더십 유형에 대입해 보면 왕성하게 일하면서도 권력욕과 승부욕이 강한 ‘적극(Active)-부정형(Negative)’에 가깝다. 방송 화면을 살펴보면 원로들을 볼 때도 겸손함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의연하고 차분하게 포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정은이 ‘청년 리더십’을 보인다면 우리는 ‘아버지 리더십’으로 대응해야 한다. 송수연·이범수기자 songsy@seoul.co.kr ●권준수(52) 서울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의대 방문교수, 서울대 신경정신과 임상교수,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부교수,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연구지원실장을 거쳐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교실)와 의약품심사평가 선진화사업연구단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대한정신분열병학회 이사장과 대한인지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저서 강박증의 통합적 이해(학지사, 2009), 정신분열병 AtoZ(군자출판사, 2003),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역)(시그마프레스, 2003),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올림, 2000) ●최진(51)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행정학 연구교수, 미국 남가주대(USC) 초빙교수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정책홍보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주요 저서 대통령리더십 총론(법문사, 2007), 대통령리더십과 국정운영스타일의 심리학적 상관관계(고려대, 2005), 인간 김대중과 새로운 리더십(보림, 2004), 김정일의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연구(고려대, 1995)
  • S-오일 ‘올해의 시민영웅’ 시상

    S-오일과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S-오일 사옥에서 ‘올해의 시민영웅 시상식’을 개최했다. S-오일은 고 김택구(51)·신상봉(37)씨의 유족에게 시민영웅 상패와 상금 1500만원을 수여하고, 시민정신을 발휘한 김태영(36)·송현대(28)씨 등 18명에게도 상금과 함께 상을 수여했다. 시민영웅으로 선정된 김택구씨는 지난 9월 경기 안산시 메추리섬 선착장 앞에서 물놀이를 하다 익사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살린 뒤 탈진해 숨졌다. 신상봉씨도 작년 8월 부산 해운대 방파제에서 큰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열린세상] 캐나다쇠고기 수입현안 연말까지 처리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캐나다쇠고기 수입현안 연말까지 처리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처리 여파로 공전 중이던 국회가 다시 열렸다. 그럼에도 통상 현안에 대한 여야 간 타협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주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무효화 결의문을 채택하고 수권 정당이 될 경우 FTA를 폐지하기로 당론까지 정했다. 북한 김정일 사망 등으로 한·미 협력관계의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진보정권에서 이미 수용하기로 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빌미로 이제 와서 한·미 FTA를 전면 폐기하자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러한 야당의 극단적 반발 가능성을 알면서도 날치기 처리한 여당도 반성해야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회에서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해 시급히 연내에 처리해야 될 통상 현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캐나다 쇠고기 수입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6년 이래 미국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재개 조치를 취한 바 있으나, 캐나다 쇠고기에 대해서는 2003년 5월 이래 전면 수입금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의해 미국과 동등한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획득한 캐나다는 2009년 4월 우리나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여 패널이 설치된 바가 있다. 우리의 패소 판정은 거의 확실시되었으며, 판정에 따른 악영향은 가히 치명적이라 예측되었다. 판정이 내려져 버리면, OIE 기준에 따라 캐나다 쇠고기를 전면 수입 재개해야 함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여러 쇠고기 수출국이 앞으로 두고두고 압력을 행사할 국제법적 근거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금년 6월 말 패널 판정이 내려지기 직전에 캐나다 측과 극적으로 양자협상을 타결시켜 광우병위험물질 범위, 검역주권 행사, 현지 실사에 관한 조건 등에서 미국과 맺은 수입위생조건보다도 우리 측에 더 유리하게 관철시킨 바가 있다. 합의의 골자는 금년 말까지 우리가 30개월령 미만 캐나다 쇠고기를 수입 재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패널 절차를 잠정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심의절차가 필수적인데, 정부 측은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국회가 제 구실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수입 재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초 캐나다 측이 합의 위반을 이유로 패널 절차 속개를 요청하게 되고, 곧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 8년을 기다려온 캐나다 입장에서는 이제 패널 판정에서 승리하면 그만이다. 주요 20개국(G20)에서 보호무역주의 배격을 주창하고 있는 통상대국인 한국이 WTO 패소 판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한폭탄은 우리 손에서 째깍거리고 있는데, 아무도 정치적 부담을 지려 하지 않기에 12월 말로 임박한 수입 재개 시점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우리 통상정책 결정체제의 초라한 모습이다. 서구의 선진 의회 정치에서도 통상 현안을 놓고 진보와 보수 간에 치열한 논쟁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일정한 논쟁 과정을 통해 국익에 입각한 결정 방향이 정해지면 여야가 협력 모드로 돌변해 통상정책 추진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 더구나 대외개방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교열위 국내 산업에 이익이 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통상정책 결정이 신속히 내려짐은 물론이다. 폭탄돌리기 행정이 초래할 대폭발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축산농가에 떨어질 텐데도 당장 정치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결정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 행태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일부 무책임한 시민의식부터 개선돼야 한다. 당장 캐나다 쇠고기를 수입 허용하게 되면 광우병 괴담이 재등장할 테고, 국민 건강을 무역 가치로 팔아먹으려 한다는 선동적이고 비과학적인 논리가 전파될 염려가 있다. 이제는 무분별한 정부 비판으로 일관하거나 무조건적 반개방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국내 열위산업에 해가 되는데도, 영웅시되는 풍토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임시방편적 문제 해결 관행을 끊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 해결해 나갈 때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돼야 한다. 그래서 이제 대폭발을 막을 마지막 일주일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프로야구 선수 출신 신영웅, 일본 성인비디오 출연

    프로야구 선수 출신 신영웅, 일본 성인비디오 출연

     프로아구 선수 출신 에로배우가 일본 성인영화에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유명 AV(어덜트 비디오·성인 비디오)회사인 루비는 최근 “‘서울의 사랑’이란 신작 AV에 한국인 신영웅(40)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해 유명 여배우 기리오카 사츠키(43)와 호흡을 맞췄다.”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서울의 사랑’은 서울을 찾은 연상의 일본 여인이 한국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부제인 ‘한류 이케멘(훈남)과의 사랑을 꿈꾸는 일본 숙녀들’을 타겟으로 한 작품이다. 작품에 출연한 신영웅 역시 ‘한류 이케멘’의 상징적 존재인 ‘욘사마’ 배용준의 모습을 본딴 갈색 웨이브 머리를 하고 있다.  신영웅의 본명은 김현수로 1992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지만 1군 데뷔를 앞두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야구선수다. 은퇴후 이름을 바꾼 신영웅은 각종 국내 성인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주목받는 남자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지난해에는 한 케이블TV 채널 다큐멘터리에 출연, 에로배우로 변신한 삶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석해균 선장 “생사의 기로에서 굴복할 수 없었다”

    석해균 선장 “생사의 기로에서 굴복할 수 없었다”

    “저는 저희 배의 선장으로서 생사의 기로에서 결코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럽고 두려운 위기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이 19일 경기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 객원교수로 위촉됐다. 석 선장은 위촉식에 이어 중앙부처 5급 사무관 승진 대상자 290명을 대상으로 ‘삼호 주얼리호’ 피랍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구조 과정 등을 내용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석 선장은 “납치와 구출 작전 당시 저는 해적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겼다.”면서 “비록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그런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지금도 선량한 선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해적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며 “바다에서 35년간 선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이번 일처럼 두렵고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지만 갑작스럽고 두려운 위기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공직사회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공무원은 항상 국민들이 여러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연합함대와 연계하고, 위험구역에서 해적의 접근을 살필 수 있는 제도를 마련 하는 등 우리 선박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윤은기 중공교 원장은 “석 선장이 선박과 선원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보여준 위기 관리 능력과 그 정신이 공무원 교육의 기본 가치와 맞아떨어져 명예 객원교수로 위촉했다.”면서 “위기 관리 대응이야말로 공무원 교육의 기본이며,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공무원 교육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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