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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프리뷰] ‘호빗:뜻밖의 여정’

    [영화프리뷰] ‘호빗:뜻밖의 여정’

    피터 잭슨 감독은 ‘반지의 제왕’보다 더 욕심을 냈다. 판타지의 거장 JRR 톨킨(1892~1973)의 또 다른 작품 ‘호빗:뜻밖의 여정’(13일 개봉)이다. 반지 마니아들은 기억 속에 가물가물 존재했던 캐릭터들을 하나둘 꺼내들 시간이 됐다. 공교롭게도 딱 10년 만이다. 반지 시리즈로 판타지 영화의 새 문을 연 잭슨 사단이 ‘반지의 제왕’에서 60여년을 거슬러 올라 ‘호빗: 뜻밖의 여정’으로 돌아왔다. 취향에 따라 약간 늘어진다는 평을 받아온 전작에 비해 ‘호빗’은 더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특징이다.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은 ‘반지의 제왕’ 못지않고 한층 더 웅장해진 특수효과는 명불허전이다. 영화는 회색 마법사 간달프의 선택(?)으로 뜻밖의 여정을 떠나는 젊은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의 모험을 그렸다. 무자비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난쟁이들의 왕국, 에레보르를 되찾는 모험에 동참하게 된 배긴스는 난쟁이족 왕자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이 이끄는 13명의 난쟁이 원정대와 함께 고블린과 오크, 흉악한 괴수 와르그 등에 맞서 싸운다. 전작 주인공 ‘프로도’가 고뇌하는 영웅이라면 젊은 배긴스는 훨씬 발랄하고 통통 튀는 유쾌한 영웅이다. 영화 분위기는 감독이 아닌 캐릭터가 만든다는 이야기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관계도나 심리적 갈등은 전작보다 가볍고 단순해졌지만, 상상력의 넓이만큼은 기대 수준을 넘어선다. 물론 ‘반지의 제왕’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만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젊고 깜찍한(?) 골룸이 등장하는 대목은 웃음 포인트다. 이중인격자에 혼자놀기의 달인인 골룸의 원맨쇼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호빗’의 골룸은 ‘반지의 제왕’의 늙은 골룸보다 이빨도 몇 개 더 있으니 작은 디테일에 주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작품에서 배긴스가 어떻게 골룸에게서 절대반지를 얻게 되는지도 공개된다. 골룸 역은 이번에도 앤디 서키스가 연기했다. 호빗을 위해 전작의 배우들도 한데 뭉쳤다.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 역의 이언 매켈런을 비롯해 엘프의 여왕 역에 케이트 블란쳇, 요정들의 왕 엘론드 역에 휴고 위빙이 출연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프로도 배긴스 역도 일라이저 우드가, 늙은 빌보 배긴스도 이언 홈이 계속해서 출연한다. ‘호빗’의 원래 계획은 3부작이 아닌 2부작이었다. 제작 초기 겨우 300쪽짜리 원작으로는 무리라는 반대도 적지 않았고 추가 예산 문제도 큰 부담이었다. 전작이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이라면 이번엔 적은 분량의 원작을 스크린에 확장하는 작업이었을 터. 잭슨 감독은 아쉬운 여백들을 채우려고 원작 외 많은 글을 참조했다고 했다. 원작자 톨킨이 ‘호빗’ 확장판을 계획하면서 썼던 글들을 들춰 보며 부족한 부분은 감독의 상상력으로 채워 나갔다. 결국 ‘호빗’은 톨킨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지만, 원작과 다른 잭슨 감독만의 색다른 변주인 셈이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영웅’ 아바스, 앞으로 어쩌나

    팔레스타인의 유엔 옵서버국 승격을 이끌어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일(현지시간) 시민들의 뜨거운 환대 속에 금의환향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아바스 수반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임시 수도 라말라에 도착, 축포를 쏘고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시민 5000여명 앞에서 “이제 우리는 국가다. 세계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으며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독립을 지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냈다.”면서 “긴 여정이었고, 압박도 거셌지만 우리는 굳세게 버텨내 마침내 승리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아바스는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자격을 얻으려다 실패한 데 이어 자신이 속한 파타당과 대립관계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최근 이스라엘과의 교전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상이 축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옵서버국 승격으로 단번에 영향력을 회복하게 됐다. 자신감을 되찾은 아바스는 팔레스타인의 내부 통합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파타당과 하마스 간 화해”라면서 “통합에 필요한 과정들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하마스의 고위 간부 살라 바르다윌도 화해를 위한 신속한 만남을 제안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영웅’ 아바스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 총회 결정 직후 서안지구에 3000여채의 정착촌 건설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일에는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징수했던 세금의 송금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이어갔다.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공무원의 월급 대부분을 이 세금에 의존하고 있어 송금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했다. 3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정부는 각각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불법 정착촌 건설안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엄중한 조치가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독일 정부도 우려를 표시하며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슈&이슈] 제주 한라산 상징서 천덕꾸러기로… ‘포획 합법화’ 14일까지 마지막 절차만 남아

    [이슈&이슈] 제주 한라산 상징서 천덕꾸러기로… ‘포획 합법화’ 14일까지 마지막 절차만 남아

    ■ “年13억 피해… 안 당해보면 몰라” 농민의 눈물 제주시 해안동 해발 500m에서 농사를 짓는 홍모(54)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밤마다 노루들이 나타나 밭을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홍씨는 “노루들이 나타나면서 밭이 쑥대밭으로 변하기 일쑤”라며 “동네에 노루로 인한 농작물 피해 농가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안 당해본 사람들은 심정을 모른다.”고 호소했다. ●1만 7756마리… 농작물 피해 급증 노루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수년 전부터 제기돼 온 지역 농민들의 단골 민원이다. 참다 못한 농민들은 이제 생존권마저 위협한다며 당장 노루 포획을 허가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도가 이를 놓고 계속 고민하자 제주도의회가 총대를 멨다. 구성지·김명만 의원은 노루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 포획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을 마련해 10월 25일 입법 예고했다. 조례안은 도의회 제2차 정례회(11월 12일~12월 14일)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구 의원은 “노루로 인한 농작물 피해로 농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이제는 포획을 허가해 노루 개체 수를 적절하게 조절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라산의 노루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으나 1987년 이후 보호활동을 하면서 크게 늘어났다. 제주환경자원연구원이 지난해 5∼11월 해발 600m 이하 지역(면적 1127.4㎢)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루 개체 수는 1만 7756마리다. 이는 2009년 3∼11월 도 전역을 조사한 1만 2881마리보다 37.9%(4875마리)나 늘어난 것이다. 노루 때문에 발생한 농작물 피해 신고액은 2010년 218농가 6억 600만원, 지난해 275농가 13억 6200만원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주요 피해 작물은 콩·더덕·고구마·조경수 등이다. 유해동물 지정 권한은 환경부에서 지난해 4월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제주도로 이관됐다. 환경부는 현재 참새와 까치, 어치, 까마귀, 멧비둘기, 고라니, 멧돼지 등을 유해동물로 지정했으나 노루는 빠졌다. ●이번에 허가 안되면 15만 농민 일어날 것 전국총농민회연맹제주도연맹 등 10개 농민단체는 10월 26일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조례 제정을 압박하고 있다. 박태관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은 “노루를 쫓던 농민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등 해마다 유사 사고가 잇따른다.”며 “노루를 마구잡이로 없애자는 게 아니라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체 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이번에 조례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15만 제주농민이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경단체 “더 큰 재앙 우려… 신중 접근을” 하지만 환경단체와 동물애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안민찬(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 운영위원) 제주도수의사회 회장은 “포획을 위해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옳은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안목 없이 쉬운 방식으로만 해결한다면 나중엔 복원할 수 없는 등 더 큰 재앙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노루 포획 허가에 반대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은 “노루 포획 허가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연간 10억여원에 이르는 농작물 피해 보상은 도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고 보상금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루를 포획해 중산간 지역 마을목장 등에 공간을 만들어 이주시키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제 탓만 아닌데… 제발 총질만은” 노루의 눈물 저는 한라산에 사는 노루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한라산의 상징이자 명물이라고 부르지요. 다들 등산하면서 제가 귀엽게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신 적 있겠지요. 저는 조상 대대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라산에서 잘 살아왔습니다. 먹을 게 귀한 겨울철에는 사람들이 먹이를 갖다 주는 등 저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 준 덕분이지요. 감사드려요. 여러분의 넘치는 사랑 덕분에 식구들도 많이 늘어났지요. 그러면서 농민들이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을 탐내는 친구들도 생겨났어요. 너무 죄송해요. 저는 요즘 밤잠을 설칩니다. 먹잇감이 부족한 겨울이라서가 아닙니다. 농작물 파괴의 주범이라며 마구 총질을 해대려고 합니다. ●골프장에 밀려 산 아래로 아래로 제발 살려 주세요. 저의 하소연도 한번 들어봐 주세요. 저는 원래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서 평화롭게 잘 살아왔어요. 겁이 많은 족속이라 사람 곁에는 가까이 가려 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중장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이리저리 길이 뚫리고 제가 살던 중산간은 골프장이 됐어요. 골프장에 뿌려대는 농약에 신음해야 했고 수시로 날아오는 골프공을 피해 다니기 바빴어요. 저희는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지요. 살 곳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더러는 농작물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게 됐어요. 농민들이 분노하는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도 조금만 헤아려 주세요. ●지금도 밀렵꾼 설치고 노루 고기 유통되는데 합법화되면…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저희를 잡아 죽여서 개체 수를 적정하게 조절하겠다고요? 사람들을 좀 압니다. 지금도 밀렵꾼들이 설치는데 저희가 얼마나 살아남을까요? 지금도 노루 고기 먹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공공연한 비밀인 거 잘 압니다.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는 유명한 나라공원이 있어요. 일년 내내 관광객이 몰리는데 이유가 바로 사슴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사슴들이 사람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주민들은 사슴을 몰아내는 대신 1959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합니다. 부러워요. ●사슴 몰아낸 대신 유명 관광지 만든 日나라공원 같은 곳, 안될까요 제주에도 거친오름에 노루생태관찰원이 있어요. 친구 200여명이 관광객들을 맞으며 오순도순 살고 있어요. 갇혀 있지만 총 맞을 일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딘가요.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릴게요. 제주의 넓은 마을공동목장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안전 공간을 군데군데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부디 저의 간곡한 바람을 헤아려 주세요. 저는 아름다운 한라산에서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제발 저희에게 총질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한라산 노루 올림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임꺽정에서 진주갑부까지

    임꺽정에서 진주갑부까지

    임꺽정은 16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명종실록 14년(1559년) 음력 3월 27일 영의정 상진 등 3정승이 “개성부 도사를 무신으로 뽑아 보내 도적을 잡을 방도를 논의”하면서 임꺽정이 처음 거론된다. 3년 뒤인 명종 17년 음력 1월 13일 임꺽정의 책사 서림의 처리를 논의하는 내용까지 모두 18건의 이야기가 실록에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월북 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가 소설 임꺽정을 쓰기에는 턱없이 적은 자료였다. 그렇다면 홍명희는 어디서 핵심적인 자료를 얻었을까? 임형택 전 성균관대 한문교육학과 교수는 ‘한문서사의 영토 1·2’(태학사 펴냄)에서 박동량(1569~1635)이 쓴 ‘기재잡기’(奇齋雜記)를 통해 자료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량은 연암 박지원의 직계 조상이다. 기재잡기에는 조선 초부터 명종조까지 인물 일화가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이외에 임꺽정이 등장하는 최초의 야사 기록이다. 박동량은 기재잡기에서 임꺽정이 영특하고 기지가 놀라우며 종실인 단천령의 음악을 좋아하고 인간미도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의 백부인 박응천이 임꺽정을 잡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생생한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영웅이 아닌 반란 집단의 괴수임을 강조한다. 박동량은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 지 3년 만에 다섯 고을의 수령이 죽임을 당했고 관군이 패배했다. 여러 도의 군대를 동원해 겨우 도둑 하나를 잡았는데 양민의 사상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다.”라고 전모를 요약해 놓았다. 기재잡기에 실린 대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도 의적이라기보다는 담대한 도적 임꺽정이 그려져 있다. 기재잡기에는 남치근이 작전을 편 뒤 임꺽정의 부하 서림이 투항했다고 나오는데 이는 오류이며 기밀에 속하는 일이라 잘 몰랐을 것이라고 임 전 교수는 해석해 놓았다. 임 전 교수는 이 책에 ‘실사와 허구의 사이’라는 부제가 달아 15세기 말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를 시작으로 오성 이항복(1556~1618), 한음 이덕형(1561~1613)은 물론 19세기 초까지 이름 없는 조선의 선비들이 쓴 한문 서사까지 다 뒤적거려 아주 재미있는 ‘옛날 옛날에~’를 만들어 놓았다. 15세기 무렵의 패관을 소개한 글로 화씨가 발견한 완벽한 옥을 이야기한 ‘화씨벽’(和氏璧)이나 자유 연애에 대한 고사인 ‘한연투향’(韓?偸香)과 같은 중국의 역사와 고사를 알고 있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선비들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적은 것도 있다. 홍성민(1536~1594)이 야인(野人)이라 부르는 여진족들과 소금과 곡물을 바꾼 ‘소금무역’이라든지, 이정귀(1564~1635)가 임진왜란에 참여해 싸운 이야기를 다룬 ‘임진피병록’과 같은 르포도 있다. 조선 조정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곡식을 받고 벼슬을 팔던 납속제도가 조선의 신분제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주는 이희평(1772~1839)의 ‘납속동지’와 이동윤(1727~1809)의 ‘진주갑부’ 등도 있다. 이희평의 아버지이자 예조참판이었던 이태영은 자식이 귀향을 떠나자 낙향해 마을 주민들과 천렵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한 유생이 찾아와 ‘이태영 참판 영감 댁’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유생이 이태영의 망건에 달린 금관자를 보고 그가 납속으로 벼슬을 얻은 줄 알고 대화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한문 원문은 2권 중반부터 소개돼 있다. 서사로 번역한 글만 읽어도 좋고 한문 실력이 좋으면 원문을 대조해 가며 읽어도 좋겠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일본도를 쥐고 있네, 광화문 이순신 동상

    2010년 11월14일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이 갑자기 사라졌다. 1968년 4월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 잡은 지 42년 만의 일이었다. 동상이 이곳에 서게 된 배경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에 변형된 조선 시대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드니, 그 대신 광화문 사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라고 지시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문화재 전문가들은 여러 차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건립과정에서 고증이 잘못됐음을 지적했고, 결국 1979년 5월 다시 만들어 세우는 것으로 결정됐으나 몇달 뒤 발생한 10·26사건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실현되지 못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비롯해 국보 274호로 지정된 거북선총통이 사기극으로 드러난 일, 2011년 7월 짝퉁 거북선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허와 진실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왔다. 비록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은 40일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뒤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20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년이 저물어가는 요즘, 이순신과 관련해 흥미를 끄는 신간 ‘How are you? 이순신’(혜문 지음, 작은숲 펴냄)이 나왔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이순신을 말하다’라는 부제처럼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우리 시대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냉정하게 바라보고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순신을 둘러싼 허술한 고증과 무성의한 행정처리 등을 질책했다. 예를 들어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둘러싼 다섯 가지 의혹, 즉 일본도를 오른손에 쥐고 있는 점, 중국갑옷을 입은 점, 이순신의 얼굴이 왜 표준영정과 다르며, 장군이 지휘하는 북은 왜 누워 있는지 등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순신이 실전에 사용했던 쌍룡검이 사라졌는 데 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현충사에 기증된 모형 거북선이 전시공간이 협소해 돛을 내리고 있는 모습 등을 지적했다. 저자는 일제에 강탈당했던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를 찾아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혜문스님으로 지난 4년동안 이순신 표상에 대한 연구를 해오면서 많은 문제점을 찾아낸 결과물들을 이번에 책으로 내놓았다. 이순신의 표준 영정의 문제점, 거북선, 난중일기, 현충사에 심어진 일본식 조경인 금송과 석등, 이순신 기념관 등 수많은 형식으로 표상화된 상징물에 관해 언론기사를 꼼꼼히 살피며 직접 확인해 기록했다. 이순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각종 거짓과 이권, 그리고 위선과 반복된 사기극들을 정리했다는 점도 새롭게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1만 5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Weekend inside] 공연티켓값의 불편한 진실

    [Weekend inside] 공연티켓값의 불편한 진실

    “한 가족이 배우 얼굴이라도 보이는 자리에서 뮤지컬을 보려면 50만원은 족히 든다. 말이 되나.” “제작비를 맞추려면 더 올려야 하는데 사회적 인식 때문에 그렇게 못 하고 있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공연 티켓 가격의 적정 수준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가족끼리 또는 직장 동료와 함께 공연을 많이 보게 되는 연말이면 결제창을 앞에 두고 망설이게 된다. 연말 고정 레퍼토리인 가족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경우 R석(VIP석 바로 다음 단계)이 5만~7만원(서울과 다른 지역 차이)이고 대작 뮤지컬은 보통 10만~11만원 선이라 너덧 명이 공연을 보려면 경제 사정이 웬만한 집이 아니고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뮤지컬 ‘영웅’의 제작사인 에이콤인터내셔날이 보여준 시도에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10월 16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한 달 동안 공연한 ‘영웅’의 표값을 3만~5만원으로 낮췄다. 윤호진 대표는 “기형적으로 부풀려진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지나치게 비싸진 티켓 가격을 상식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방법”이라며 “장사한다는 생각이라면 팔아서 이윤만 남으면 그만이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이런 식으로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며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일단 결과는 성공적이다. 표값을 절반 이하로 줄이자 40회 공연의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이 79%를 기록하고 1600석 공연장에 하루 평균 1263명이 들었다. 2009년 초연 당시 80회 공연에서 유료 객석 점유율이 71%(1100석 규모), 하루 평균 784명이 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면 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다른 공연도 이 같은 시도를 하면 안 되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공연물은 일반 생필품처럼 박리다매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격을 낮춰 모객을 하려면 어느 정도 작품성이 보장돼야 그나마 가능하다. 일단 공연기획사가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적어도 공연에 투입된 제작비는 뽑아야 회사가 굴러간다. 제작 비용의 대부분이 관람료 수익으로 충당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제작비가 대체 얼마나 들어가길래 관람료가 그렇게 비싸지나 하는 문제로 의문이 옮겨 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작비는 ‘움직이는 만큼, 눈 돌리는 만큼’이다. 앞서 윤 대표가 말한 ‘기형적으로 부풀려진 제작 비용’이라는 부분이 그래서 나온다. 최근 국내 최고의 공연장에서 단 하루 독창회를 한 클래식 연주자를 예로 들면 이렇다. 공공기관이었던 덕분에 그나마 하루 대관료가 400만원 수준이었다. 1100~1600석 규모의 민간 공연장은 대관료가 20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이날 공연에 들어간 비용은 50인조 오케스트라 합주 2000만원, 지휘자 출연료 300만원, 코러스(4명) 1인당 30만원, 무용팀(5명) 1인당 10만원, 음향팀(15~20명) 1200만원, 조명팀(10명) 1500만원 등이다. 코러스와 무용팀에는 리더와 안무, 편곡비가 따로 들어갔다. 이것만 해도 대략 6000만원이다. 포스터·프로그램 제작, 운영 인건비, 홍보·마케팅비가 빠진 비용이다. 신문·방송 매체에 광고라도 할라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사례를 예로 들어 제작비로 1억원이 든다고 가정했을 때 적정 관람료는 어떻게 되나.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티켓 판매로만 제작비를 뽑아낼 경우 공연장 객석 수가 2000석 정도였으니 100% 판매율이라고 하면 1인당 5만원이 적정선이 된다. 하지만 관람료 5만원이 고스란히 기획사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인터넷으로 티켓 판매를 하면 수수료 5.5%가 붙고 관람료 부가세는 9%다. 관람료를 5만원으로 책정했을 경우 실제로 기획사에 들어오는 돈은 한 장 팔았을 때 4만원 정도다. 역으로 계산하면 적어도 6만~7만원을 받아야 기획사가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오케스트라, 야외 오페라 공연 관람료가 50만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지난 8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 무대에 오른 프랑스 오랑주페스티벌 야외 오페라 ‘라보엠’(제작비 50억원)의 VIP석 티켓값은 57만원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수들과 스태프, 무대 장비까지 ‘옮겨 와야’ 하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프랑스에서 볼 때(최고 243유로·35만원)보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제작비 22억원) 공연의 VIP석도 45만원으로 말들이 많았다. 베를린필의 최고가는 미국 25만원(222달러), 호주 57만원(495달러), 중국 30만원(1680위안), 일본 57만원(4만엔) 등이다. 유럽에서 멀어질수록 비싼 게 원칙이다. 이웃 나라 중에는 일본이 우리보다 비싼 듯 보이지만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참 싸다. 그렇다고 분개할 일은 아니다. 유명 오케스트라들은 중국, 일본을 찾으면 2~3개 도시에서 최소 3~4회 공연한다. 오케스트라는 단원, 스태프 등 120명 안팎이 움직인다. 만만치 않은 항공·체재 비용을 감안하면 공연 회차를 늘릴수록 제작비를 보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클래식 소비층이 얇은 탓에 2회 공연을 최대치로 본다. 따라서 티켓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베를린필 공연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두번 모두 매진된다고 해도 티켓 판매액은 12억원 안팎일 것이다. 협찬이 없다면 10억원쯤 적자가 난다. 45만원을 고가라고 비난할 수만도 없다. 그나마 대기업 후원이 없으면 한국에선 베를린필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협찬, 후원 관행도 여전히 문제다. 기업들은 자사 VIP 고객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협찬 금액의 50~70%에 해당하는 티켓을 가져간다. 기획사에서 더 많은 협찬금을 받아내려고 일부러 최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도 한다. 협찬 기업에서 티켓 가격을 높게 표시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VIP 고객에게 생색을 내려는 의도다. 팝 공연 티켓 가격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해외 팝 스타가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때 몸값을 그렇게 많이 달라고 한다면서?라는 것이다. 해외 음악가의 개런티는 S급의 경우 100만~200만 달러(약 11억~22억원) 정도다. 티켓 평균 가격을 12만원 정도로 보고 1만명이 들어가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매진된다고 해도 들어오는 돈은 12억원에 불과하다. 개런티와 호텔, 차량, 비자 등 출연자 비용은 공연 제작비의 50~60% 정도다. 무대 제작·프로덕션(20%)이나 홍보·마케팅(15%) 비용이 추가로 든다. 북미와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 공연의 티켓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다. ‘호텔 캘리포니아’로 유명한 록밴드 이글스의 지난해 내한 공연 때 가장 비싼 티켓은 33만원이었다. 전설적인 밴드의 사상 첫 내한 공연인 만큼 당연히 매진됐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처럼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오페라나 발레처럼 무대를 꾸미는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개런티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다. 하지만 최고가만 보고 ‘한국 관객이 덤터기를 썼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 최고가 티켓은 특정 국가에서 해당 가수의 인기나 공연의 희소성에 따라 비싸진다. 유명 음악가의 월드 투어 때 티켓 평균 가격은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맞추는 게 불문율이다. 이글스 공연 역시 티켓 평균값은 13만~14만원 정도였다. 11월 27일 엘턴 존의 서울 공연 최고가는 25만원, 오는 4일 홍콩 공연의 최고가는 36만원(2588 홍콩달러)이다. 5일 스팅의 서울 공연 역시 최고가가 19만 8000원. 2일 열리는 홍콩 공연의 최고가는 19만원(1388 홍콩달러)이다. 엇비슷한 수준이다. CJ E&M의 김동준 글로벌콘서트 팀장은 “록페스티벌이 활성화되고 신뢰도 높은 대기업들이 공연시장에 관여하면서 해외 아티스트들도 한국을 반드시 챙겨야 하는 시장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과 중국에 비해 공연 회차는 한국이 적지만 그렇다고 티켓값까지 비싼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인건비가 비싸고 공연 제작 단가가 높다. 중국은 이동 거리가 멀고 아직까지는 공연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진정한 혁명가라면 인간을 사랑해야 부친은 존엄성·용감함 직접 보여줘”

    “진정한 혁명가라면 인간을 사랑해야 부친은 존엄성·용감함 직접 보여줘”

    쫓겨다니던 혁명가 체 게바라는 변장을 하고 가족을 찾았다. 당시 다섯 살이던 딸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52)에게도 ‘아버지 친구’라고 둘러댔다. 평소 붉은 와인에 물을 섞어 마시던 체 게바라는 정체가 탄로날까 봐 와인만 마셨고 딸에게도 그냥 ‘꼬마’라고만 불렀다. 그러자 꼬마 알레이다가 쪼르르 달려가 와인잔에 물을 부었다. “아저씨, 우리 아빠는 와인에 물을 섞어 마셔요.”라며. 딸과 체 게바라는 그렇게 교감했다. 알레이다는 “엄마, 비밀인데 저 아저씨가 날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수줍게 말했다고도 했다. 체 게바라는 얼마 후인 1967년,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체포돼 총살당했다. ●“버려졌다는 느낌 받은적 없어” 중년이 된 알레이라는 “아빠가 변장하고 찾아온 그 밤이 평생 나를 지켜줬다.”면서 “짧았지만 사랑을 듬뿍 느꼈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웃었다. 알레이다가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모를 털어놨다. 한·쿠바교류협회(AICC)와 쿠바국제우호협회(ICAP)의 초청으로 방한한 알레이다는 30일 서울대 가온홀에서 ‘나의 아버지 체 게바라’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아버지는 진정한 혁명가라면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치, 박치이면서도 자장가를 불러주던 체 게바라의 자상한 모습과 그가 탱고를 추던 기억, 썰렁한 유머감각 등을 소개했다. 알레이다는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본인의 삶으로 직접 증명하셨다.”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용감함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처럼 소아과 의사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쿠바에서는 의사가 봉사직인데 어렸을 때부터 국민의 애정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은혜를 갚는 방법으로 이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자장가·탱고 추던 기억 등 소개 한편 체 게바라 사후 45주년 기념으로 제작돼 지난 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체 게바라: 뉴맨’에는 볼리비아의 군사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새로운 문서 자료는 물론 체 게바라의 생전 육성과 가족, 친구들의 증언이 녹아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씨줄날줄] 시인의 정치/임태순 논설위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국가’에서 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시)이 사람의 이성을 북돋우지 않고 감정을 조장해 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은 사람의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오히려 문학을 옹호했다. 시를 포함한 문학, 음악 등 예술은 시대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시나 소설이나 모두 현실의 부조리,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전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 에 ‘초상지풍(草尙之風) 초필언(草必偃) 수지풍중(誰之風中) 초부립(草立)’이란 구절이 나온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강의’라는 책에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다시 풀이 일어선다는 것을”이라고 번역한 뒤 위정자들에게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일어서는 민초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일어서는 풀의 착상은 1960년대 저항시인 김수영의 시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풀’이란 시에서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고 해 암울함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민중을 노래했다. 일제시대 이육사나 이상화도 대표적인 참여시인이자 저항시인이다. 이육사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갈망하며,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하며 나라 잃은 현실에 울분을 토로했다. 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도현의 행보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이타적 삶의 자세를 간결하게 표현한 시로 유명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시민캠프선거대책위원장인 그가 엊그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후보론에 대해 “공주가 여성을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하다.” “남편 수발, 자식 수발하면서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면 모르겠지만…”이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힘겨루기를 할 때만 해도 안 후보는 소멸하는 태풍이라며 사뭇 시인다운 비유를 구사했지만 정치판에 휘말리면서 입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행보가 거듭될수록 그의 시 또한 다시 보게 된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지만 시인은 민주화를 넘어 보수, 진보로 진화한 시대에 정치하기가 더욱 어렵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해군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열린세상] 한국해군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중국 해군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에서 중국 독자개발 전투기인 J15전투기의 이·착함 동영상이 공개됐다. 시진핑 주석의 5세대 중국이 동아시아 해상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가 됐다는 신호탄으로 보일 정도로 J15전투기의 이륙은 위압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추가로 2척 이상의 항공모함을 더 건조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도 2만 8000t급의 항공모함 두 척을 건조 중에 있고 잠수함을 16척에서 22척으로 늘린다. 미국도 동아시아에 상시 2개의 항공모함전단을 배치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도 프랑스로부터 구입하는 두 척의 최신예 대형 상륙함을 극동함대에 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으니, 동아시아는 세계 최강대국들의 해군력 각축장이 되었다. 그만큼 동아시아의 해상 패권 장악이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해저의 이권 또한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독도·이어도·7광구 등을 놓고 주변국들과 해양영토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많은 상황임은 누구나 아는 바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런 상황을 1990년대부터 예측해 왔다. 북한 해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고 주변국들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미군이 2차대전 때 쓰다가 준 군함들을 폐기하고 현대적인 구축함과 잠수함들을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 군함 숫자가 증가하고 덩치가 커지면 당연히 많은 승조원이 필요하기에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4만 1000명가량이던 해군 병력을 2015년까지 5만 3000명으로 늘리는 계획을 승인했다. 1998년 이후 우리 해군은 12척의 구축함과 6척의 잠수함을 전력화했고 독도함을 만들었다. 구축함 한 척에 300명, 잠수함 한 척에 40명가량의 승조원이 필요하니 그동안 우리 해군은 4000명가량의 병력을 더 늘려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갔다. 해군 정원이 2007년 국방개혁법에 의해 4만 1000명으로 못 박혀 버린 것이다. 해군은 군함 한 척을 전력화할 때마다 육상지원부대의 인원을 감축해서 배를 태웠다. 부대를 통폐합하고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게 해서 군함을 전력화해 나갔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국방부나 합참의 3군 균형 보직에 대해 해군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불러도 보낼 인원이 없다. 군함에 태울 인원도 없는데 국방부나 합참에 갈 인원이 어디 있겠는가. 3군 합동성을 부르짖으며 밥그릇 챙기는 것조차 지금 해군엔 사치인 것이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영웅인 해군 특수전여단 UDT는 1000명이 안 되는 대령급 부대다. 청해부대의 신화적 전공에 고무된 이명박 대통령은 UDT의 확대를 지시했다. UDT 여단장을 준장으로 하고 인원을 300명가량 늘리는 것인데 국가적으로 보면 최강의 전사 집단이 커짐은 환영할 일이지만, 해군에는 또 다른 재앙이다. 가뜩이나 없는 인원에 300명을 또 짜내서 UDT에 보내야 한다. 짜고 또 짜서 이제는 더 이상 나올 국물도 없지만 또다시 짜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앞으로 예정된 해군의 중기계획상 추가되는 전력에 소요되는 인원이 지금보다 2500명 더 필요하다. 여기에다 추가로 국회에서 주변국의 위협에 대응할 최소전력으로 기동함대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이 전력에 3600명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즉, 지금보다 6000여명의 병력이 더 필요하게 되니 결국 국방개혁법에 묶여 있는 해군 정원을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해양영토분쟁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최일선 전력인 해군력이 이렇게 허우대만 멀쩡하고 하체는 빈약한 사상누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우리 군이 전체적으로 병력 감축의 추세가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해양군사력 각축장인 동북아시아에서 세계 8대 경제대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군력이 우습게 보일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주변국에 대한 억지력을 가질 강력한 전력이 필요하고, 그 전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한 대선후보들에게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이 점을 꼭 정책에 반영해 줄 것을 촉구한다.
  • 미얀마 수치·테인 세인 대통령, 美 FP 선정 ‘올해의 사상가’ 1위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는 테인 세인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올해의 글로벌 사상가’ 공동 1위에 뽑혔다. FP는 이날 2012년을 빛낸 100인의 사상가 명단을 인터넷에 발표하면서 “가장 영웅적이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힘을 합해 세계에서 가장 압제적인 독재국가를 개방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치 여사는 2010년 20년간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뒤 지난 4월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이 같은 변화는 테인 세인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일정 부분 힘입었다. 2011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한 군부 출신의 테인 세인 대통령은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 등 일련의 개방 정책으로 서방의 신뢰를 얻었다. FP는 “이들은 한 개인의 생각이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고 평했다. 이어 인권운동가 출신인 문시프 마르주끼 튀니지 대통령이 2위에 올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공동 3위에,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공동 5위에 뽑혔다. 무인 자동차를 개발한 서배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는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탈레반에 피격당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5)가 6위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폴 라이언 미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각각 7위와 8위에 뽑혔다. 이 밖에 앙겔라 메르켈(12위) 독일 총리, 벤 버냉키(15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마이클 샌델(55위) 하버드대 교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88위), 슬라보이 지제크(92) 등이 위대한 사상가로 선정됐다. 한편 가택연금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9위)과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26위)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49위)도 포함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송년뮤지컬 12월18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울시뮤지컬단(단장 유인택)은 송년뮤지컬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하 ‘밥퍼’)을 오는 12월 18일(화)~12월 29일(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120만부 베스트셀러인 원작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도서출판 다일/최일도 저)이 창작 뮤지컬로 초연되는 이번 작품은 밥퍼 목사로 알려진 최일도의 인생 스토리를 담는다. 창작뮤지컬인 뮤지컬 <밥퍼>는 현존인물을 뮤지컬 무대로 옮기는 작업이 최초로 시도되는 초연작품이다. 뮤지컬 <밥퍼>는 최일도의 인생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목사 최일도 뒤에 숨겨진 인간 최일도의 모습을 집중 그림으로써 그의 인생이 말하는 승화된 사랑, 진정한 나눔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한다. 5년 연상의 수녀와 전도사의 파격적인 사랑이 험난하고 척박한 청량리 588에서의 나눔활동으로 승화되는 드라마와 같은 실화를 그대로 무대화 할 예정이다. 최일도의 절친 故김현식의 음악 <내사랑 내곁에> <사랑사랑사랑>을 뮤지컬 넘버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이번 작품의 묘미다.최일도 역할을 맡게 될 주인공은 박봉진(서울시뮤지컬단)과 임현수가 맡았다. 박봉진은 서울시뮤지컬단원으로 2009년 한일문화예술교류공연 ‘침묵의 소리’를 통해 일본 투어공연에서 일본 언론사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연기파 배우이다. 특히, 임현수는 2010, 2011년 ‘피맛골 연가’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뒤 1년 만에 주역이 되어 대극장 무대를 다시 찾는다. 현재 ‘영웅’에서 안중근 역할로 열연을 펼치고 있으며 서울시대표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창작뮤지컬 지원육성사업 선정작 ‘인당수 사랑가’ 등 유난히 창작뮤지컬에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 차기작품 역시 창작뮤지컬을 선택해 우리공연을 위해 땀 흘리는 뮤지컬계의 국민배우로 설 것으로 기대된다.최일도 목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5년 연상의 로즈수녀 역은 서울시뮤지컬단 대표 여배우인 홍은주가 맡게 된다. 관람료는 3만원부터 12만원까지이며, 서울시뮤지컬단은 조기예매할인 30%(11월 21일까지 예매자에 한 함), 첫술할인(첫 공연) 40%, 선거Day 할인 40% 등 다양한 할인이벤트를 마련했다. 문의 02-399-1114 온라인뉴스부iseoul@seoul.co.kr
  •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까칠한 X맨 울버린’ 그가, 손톱을 빼고 노래를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슈퍼히어로 영화 ‘엑스맨’(2000)을 통해서다. 미 육군의 극비 실험 결과 탄생한 까칠한 돌연변이로 수컷의 매력을 물씬 풍긴 ‘울버린’이 그다.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엑스맨’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스핀오프-‘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만들어졌다. 슈퍼히어로 영화 주인공은 대개 여성 관객의 외면을 받기 쉽지만 그는 예외였다.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캐릭터인 동시에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란 점에서 끌렸을 것이다. 물론 189㎝의 훤칠한 키와 섬세한 근육질 몸매, 깊고 슬픈 눈,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춘 우월한 하드웨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피플지(誌)가 그를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올려놓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눈치를 챘겠다. 호주 배우 휴 잭맨(44)이다. 그가 6100만 달러짜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갸우뚱한 이들도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짐승남의 이미지가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잭맨의 이름을 처음 호주 밖에 알린 건 고전 뮤지컬 ‘오클라호마’였다. 1998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로열내셔널극장 무대에 오른 ‘오클라호마’로 잭맨은 올리비에상 후보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당시 잭맨을 캐스팅한 인물은 영화 ‘레 미제라블’의 공동제작자인 캐머런 매킨토시였다. 2004년에는 1970년대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 피터 앨런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85년 10월 바비컨센터 초연 이후 런던에서 27년 동안 1만회를 훌쩍 넘는 최장기 공연 기록을 이어가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과정에서 잭맨이 가장 먼저 거론된 건 당연했다. ●“난, 준비된 뮤지컬 배우” 잭맨이 다음 달 북미와 한국 등에서 개봉을 앞둔 ‘레 미제라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제왕’ 매킨토시와 함께 왔다. 잭맨은 26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뮤지컬 영화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시점이 딱 맞았다. 내가 먼저 톰 후퍼 감독에게 연락해 장발장 역을 맡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엑스맨’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많지만 장발장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고결한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킨토시는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20년 전에는 잭맨이 너무 어렸다. (그가)나이를 먹어야 이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렸다.”며 웃었다. 이어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도 마찬가지다. 해서웨이의 어머니가 ‘레 미제라블’의 미국 투어 때 판틴 역을 했는데 그때 해서웨이는 꼬마였다. 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러셀 크로도 내가 시드니에서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열었을 때 응시했다고 하더라. 20여년 전 앨런 파커 감독이 영화화하려다가 무산됐는데 운명인 것 같다. 덕분에 지금 배우들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셀 크로·앤 해서웨이·어맨다 사이프리드… 호화 캐스팅 ‘레 미제라블’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킹스스피치’로 지난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톰 후퍼가 메가폰을 잡았다. 잭맨은 물론, 러셀 크로(자베르 경감), 앤 해서웨이, 어맨다 사이프리드(코제트), 에디 레드메인(마리우스) 등 호화 캐스팅을 했다. 제작방식도 독특했다. 지금껏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은 출연배우들이 미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한 뒤 상대배우와 연기를 펼치며 립싱크를 하는 식이었다. 반면 ‘레 미제라블’은 촬영 현장에 아예 피아노를 갖다 놓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배우들은 무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대 배우의 리액션으로 고조된 감정을 실어 노래했다. 뮤지컬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브 녹음을 했다는 얘기다. 잭맨은 “라이브로 노래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배우를 직접 보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박자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론 배우의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잠기기도, 갈라지기도, 속삭이기도 했지만 후퍼 감독은 이를 고스란히 살렸다. 이와 관련, 잭맨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기를 하는 건 레이싱과 같다. 드라이버가 본능에 따라 기어를 바꾸듯이 나도 현장의 감정에 의지해 노래를 했다. 음정이나 박자가 맞는지를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다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손꼽히는 배우들의 틈에서 가장 돋보인 건 잭맨이다. 굶어 죽어 가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의 옥살이를 했던 장발장이 가석방된 시점부터 판틴과 코제트를 만나 새 인생을 찾고, 숨질 때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분장이 아닌 목소리 높낮이와 성량, 눈빛으로 표현했다. ‘엑스맨’ 시리즈와 ‘반 헬싱’ ‘리얼스틸’ 등 액션영화가 주를 이룬 그의 커리어에 오랫동안 남을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액션을 고대한 팬들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새해에는 공동 제작 겸 주연을 맡은 두번째 스핀오프 영화 ‘울버린’을 통해 짐승남으로 돌아온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0세기 3체급 석권 복서 카마초 괴한 총탄에 뇌사

    20세기 3체급 석권 복서 카마초 괴한 총탄에 뇌사

    최근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던 푸에르토리코의 복싱 영웅 헥토르 카마초(50)가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카마초가 입원해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센트로 메디코 외상센터는 22일(현지시간) 카마초가 임상적으로 뇌사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고 EFE통신이 전했다. 의료진은 “23일에 생명유지장치를 뗄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역 시절 3체급을 석권한 ‘무적 프로복서’가 인생의 마지막 승부에서 패배한 셈이다. 카마초의 아버지는 아들이 뇌사 상태임에도 병원 측에 인공호흡기 사용을 좀 더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카마초의 아들이 병원에 온 뒤 생명유지장치 제거 시점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카마초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기가 기증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카마초는 지난 20일 푸에르토리코 수도 산호세 외곽에서 친구와 함께 주차된 차량에 앉아 있다 괴한들이 쏜 총에 얼굴을 맞았다. 카마초는 1980~1990년대 세계 프로복싱 슈퍼라이트급, 라이트급,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3체급을 석권했고 2010년에 은퇴했다. 통산 전적은 79승 3무 6패(38KO승). 한때 사각의 링을 주름잡았지만 은퇴를 전후해 범죄에 빠져 구설에 올랐다. 2004년에는 미국 미시시피에서 절도죄로 감옥에 갔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마약 복용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아들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뒤 이혼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중국의 역사 속 악인 30명 난세를 살아가는 자기변명

    인간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선(善)과 악(惡)은 시대의 고금과 양(洋)의 동서를 떠나 가장 극단의 대칭 개념으로 꼽힌다. 악행의 예방과 근절을 통해 사회의 공동선을 지향하자는 종교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어느 분야에서건 이 선악의 분별은 피할 수 없는 영원한 명제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이 선과 악의 분별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고정의 가치 기준을 갖는 것일까. ‘난세기담 30’(쉬후이 지음, 이기흥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은 그런 측면에서 ‘악’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흔히 ‘영웅담’이나 ‘위인전’처럼 모범과 전범의 인물을 추앙하는 구성이 아니라 악명 높은 인물군을 소개해 거꾸로 선을 대비시킨 착상이 돋보이는 책이다. 비록 재야 사학자이지만 중국 5000년 역사 속 악인 30명을 건져내 요즘 사회에 비춰 보이는 구성이 독특하다. 책에 등장하는 악인 30명은 모두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선보다는 악을 택했던 인물들이다. 물론 역사서나 기록에 등장해, 후세로부터 악인으로 낙인된 공통점을 갖는다. 황제에게 잘 보이려 친아들을 쪄서 요리로 바친 끝에 권력을 얻은 제나라 환공의 궁중요리사 역아, 그저 태아의 성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임신부의 배를 가른 제나라 황제 소보권,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 고문으로 수천명을 죽인 최초의 고문관련 서적 ‘나직경’의 저자 삭원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악인이 대부분이지만, 어지러운 난세에 악인으로 둔갑한 반전의 인물도 적지않다. 공주와의 간통죄로 사형당했다는 기록과 달리 그저 권력 다툼의 희생양에 불과했던 ‘대당서역기’의 필사자 변기, 고려인 공녀 출신이면서 고국 고려를 침략해 욕을 먹었던 원나라 마지막 황후 기황후의 가슴 아픈 사례들은 당대 손가락질 받던 ‘악인’의 평가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캐묻게 만드는 사례들이다. 저자는 인간이 본래 착하거나 악하게 나뉘어 태어난다는 성선설·성악설, 그리고 난세가 악인을 만든다는 주장에도 결국 선인과 악인의 구분은 ‘개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주장을 책 곳곳에 비친다. ‘역사가조차 때로는 실수하고 만다’는 주장은 그래서 눈 시퍼렇게 뜨고 잘못된 역사를 가려내야 한다는 역설로 모아진다. 권력자에 아부하며 고문으로 무고한 목숨을 파리 죽이듯 빼앗은 삭원례는 우리의 ‘고문 경관’에 얹혀지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축재로 일관했다 ‘내 재산은 고작 화장대 하나뿐’이라고 둘러댔다는 당나라 황후 유씨는 한 전직 대통령의 변명과 닮아있다. 2만 5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를 위한 에너지버스(존 고든 글, 코리 스콧 그림, 공경희 옮김, 찰리북 펴냄) 7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에너지 버스’의 어린이판. ‘에너지 전도사’로 불리는 존 고든이 직접 썼다. 늘 우울하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조지가 버스기사 아줌마가 가르쳐준 규칙들을 실천하며 달라지는 일상을 그려냈다. 1만 1000원. ●어린이 성경(베르너 라우비 글,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그림, 손성현 옮김, 북극곰 펴냄) ‘오스트리아 아동청소년 도서상’을 수상한 베르너 라우비와 독일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안네게르트 푹스후버가 함께 만들었다. 예수님을 흑갈색 머리카락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셈족으로 묘사했다. 2만 8000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유진 옐친 글·그림, 김영선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2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소설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슷하다.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하는 북극곰을 디자인한 유진 옐친의 첫 번째 소설.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학교에서 영웅의 아들로 추앙받던 열 살 소년 사샤가, 아버지가 비밀경찰에 끌려가며 겪게 되는 이틀간의 사건을 서술했다. 9000원. ●강 너머 저쪽에는(마르타 카라스코 글·그림, 김정하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밤낮으로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이 자리한다. 소녀가 사는 강 이쪽 마을과 소년이 사는 강 건너 마을. 소녀의 부모는 강 건너 사람들은 이상하고 소란스러운 사람들이니, 소녀에게 절대 강을 건너거나 쳐다보지 말라고 한다. 편견에 저항한다. 9000원.
  • 전쟁영웅서 불륜남 추락 퍼트레이어스 대학 강단 갈까? 토크쇼 진행할까?

    ‘전쟁 영웅’에서 졸지에 ‘불륜남’으로 추락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자택 칩거… 친구들과 전화·이메일 교환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측근들의 입을 빌려 현재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자택에서 칩거 중인 그에게 대학 4곳이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해 왔으며 뉴욕 출판사들은 책을 내자고 제의했다고 전했다. 기업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방송 토크쇼 진행자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퍼트레이어스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거물급 변호사인 로버트 바네트를 고용했다. 자발적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그는 친구들과 이메일이나 전화를 주고받거나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퍼트레이어스의 절친한 친구 잭 케인 전 합참 부의장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라며 “목소리에서 예전과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퍼트레이어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아내 홀리의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홀리는 연방정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에서 군인 가족들의 금융 문제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부인은 매일 출근… 남편일 언급 안해 CFPB 대변인에 따르면 홀리는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 홀리는 이번 주 소비자금융보호국의 웹사이트에 2건의 글을 올렸지만 전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관한 내용이었을 뿐 남편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퍼트레이어스의 친구인 존 네이글 예비역 중령은 “홀리가 워낙 관대한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진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비잔틴제국 멸망일 승자와 패자의 고뇌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한 이슬람의 전쟁은 지상전, 지하전, 해전, 공중전, 심리전, 첩보전, 외교전 등 모든 전략과 전술이 총동원됐다. 오스만튀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자 세계사는 확 바뀌었다.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열어야만 했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로, 아프리카 희망봉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오스만튀르크는 고구려와 흉노, 그리고 우랄 알타이어 계통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런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역사에서 관심을 덜 받고 있다. 세계의 정복자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 그는 수많은 배를 이끌고 산을 넘어갔다. 철벽수비로 막힌 바닷길을 뚫기 위해 험한 산등성이와 비탈진 언덕을 넘었다. 또 다른 사나이가 있다. 승산이 전혀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자신이 사랑하는 제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한 비잔틴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이런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영화의 한 장면이다. 신간 ‘술탄과 황제’(김형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는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날을 중심으로 50여일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두 제국의 리더십과 전쟁의 과정,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그리고 두 영웅의 인간적 고뇌를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되살렸다. 전개방식은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본격 역사서인 독특한 장르를 추구해 눈길을 끈다. 콘스탄티노플을 둘러싼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 3중이듯이, 이 책 또한 3중 구조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스타일이 독특한 3중 구조의 액자소설이다. 화자도 이례적으로 세 사람이다. 작가-황제-술탄, 이 세 주인공이 각각 1인칭 관찰자 및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저자가 전 국회의장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차례 현지를 방문하고 꼼꼼하게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연구했다. 마치 당시 ‘종군기자’가 된 것처럼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때로는 저자 개인의 인간적 고뇌까지 담으면서 역사의 한순간을 그려냈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적 사건을 정교하고 탁월하게 재현해냈다는 점 외에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기존의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군사들을 독려하는 술탄과 황제의 연설문을 다룬 것도 인문학적 재미를 높인다. 많은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가 당시의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게 만들었다. 한 아마추어 사학자의 노력이 얼마만큼 역사 속 전쟁의 한복판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지 기대되게 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6·25 전쟁의 영웅들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

    6·25 전쟁의 영웅들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해군 영웅들이 유도탄고속함(PKG)으로 부활했다. 해군은 2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최첨단 유도탄고속함 10~12번함 진수식을 거행하고 함명을 각각 임병래함, 홍시욱함, 홍대선함으로 명명했다. 해군 관계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고자 함명으로 제정했다.”고 말했다. 10번함과 11번함의 주인공인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이등병조(현 계급으로 중사)는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이다. 당시 28세와 23세의 청년이던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개시 한 달 전인 1950년 8월 13일 상륙작전에 앞서 사전 첩보작전을 위해 영흥도에 투입됐다. 이들은 적의 해안포 위치와 북한군 군사기밀 탐지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9월 14일 철수하던 중 북한군과 교전을 벌였고 나머지 대원들을 먼저 탈출시킨 후 포로로 잡혀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해 자결했다. 12번함 함명의 주인공 홍대선 삼등병조(현 계급으로 하사)는 1952년 1월 서해안 옹진반도 앞 순위도 주민 840명을 피란시키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당시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진 옹진반도에서 적들의 주의를 돌리고자 단정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해 23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이날 진수된 유도탄 고속함은 승조원 40명이 탑승하며 최대속력이 40노트(시속 74㎞)에 이른다. 이 밖에 사거리 150㎞의 국산 대함유도탄, 76㎜함포, 46㎜함포를 장착해 기존 참수리급 고속정과 비교해 대함전·대공전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전통신화에 인생 담은 만화 ‘신과 함께’ 완간

    한국 전통 신화와 3년간 동고동락하던 만화가 주호민(31)의 ‘신과 함께 3부-신화편’(왼쪽·애니북스 펴냄) 단행본이 마침내 나왔다. 2010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된 ‘신과 함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였다. 직장인 대상 만화도 아니었는데 30, 40대 남녀 네티즌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1부 저승편(전 3권)은 물론 2부 이승편(전 2권), 3부 신화편(전 3권)까지 고루 사랑받았다. 그 인기를 타고 2010년 1월에 내놓은 1부 저승편은 단행본만 각 권 2만 5000부씩 모두 7만 5000부가 팔렸고 이듬해 나온 이승편도 1만권씩 2만권이 팔렸다. 권당 가격은 1만원이 넘는다. 올해 각종 문학상과 상금을 휩쓴 소설가 정영문이 내놓은 소설 10권을 합쳐도 1만권이 채 팔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화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부 저승편이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면서 이승에서 지은 죗값에 따라 벌을 받는 장면이 7단계로 나와 있다. 작가는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은 1단계를 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질 것이다. 자신이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됐다. 단순한 권선징악인데 감동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는 것이 독자들의 고백이다. 2부 이승편은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해 재개발과 강제 이주의 문제점을 가택신을 중심으로 그렸다. 가택신은 집터를 지키는 성주신, 부엌을 가꾸는 조왕신, 화장실을 점령한 측신, 된장·고추장·간장 맛을 관장하는 철융신 등 이제는 낯설어진 전통신들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를 보호하고 자신의 터를 지키려는 신들의 악전고투가 눈물겹다. 우리 가택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며 고속성장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했다. 3부 신화편은 일종의 프리퀄(전편들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1, 2부의 신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경기, 제주 신화 등을 참고해 일부는 각색하고 일부는 창작했다. 이를테면 대별소별전에서 대별왕이 하늘의 태양을 파괴하는 내용은 모든 백성이 참여하는 것으로 각색했다. 작가는 “영웅보다는 개인의 참여가 중요하고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참정권 등을 강조하기 위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주호민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인생을 살아봐야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앞으로도 그리겠다.”고 했다. ‘성인만화가’ 선언이다. 저승편은 영화 ‘광해’를 제작한 리얼라이즈 픽처스에서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내년에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고우영 ‘십팔사략’ 컬러판 출간 만화가 고우영(1938~2005)이 그린 ‘십팔사략’(오른쪽·전 10권)이 컬러판으로 새로 나왔다. 중국의 역사를 만화로 축약한 것인데 1990년대 초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언어 표현이 돋보인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오바마의 5시간 40분, 美 -미얀마 ‘20년 악연’을 풀다

    오바마의 5시간 40분, 美 -미얀마 ‘20년 악연’을 풀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미얀마 땅을 밟았다. 이에 맞춰 이날 미얀마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수용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오랜 세월 적대관계였던 미국과 미얀마 관계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기점으로 급속히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이에 비례해 미국의 ‘중국 봉쇄’와 ‘북한 고립’ 정책도 탄력을 받는 양상을 보인다. 재선 후 첫 해외순방으로 동남아 3국을 택한 오바마는 이날 오전 대통령 전용기로 두 번째 방문국인 미얀마의 양곤에 도착, 5시간 40분 동안 체류하면서 역사적인 발걸음을 남겼다. 그는 먼저 테인 세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정치범 석방 등 과감한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촉구했다. 또 북한과의 핵 개발 등 군사협력을 끊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의 정치개혁 진전 여부에 따라 향후 2년간 1억 7000만 달러(약 1850억원)를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인 대통령은 IAEA의 핵 사찰을 수용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이 미얀마 정부를 향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끝내라.”고 촉구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세인 대통령은 또 회담에서 전날 수감자 66명에 대해 추가 사면령을 내렸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시간가량의 회담 후 오바마와 나란히 취재진 앞에 선 세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미얀마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키자는 데 동의했다.”면서 “미얀마의 번영을 위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인권을 보호하도록 미국과 협력해 두 배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오바마는 ‘버마’라는 국명 대신 그동안 군사정부를 용인하는 인상을 줄까봐 사용을 꺼렸던 ‘미얀마’라는 국명을 미국 정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구사하면서 세인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오바마는 이어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을 찾아 면담했다. 그는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되는 등 지난해 미얀마에서 고무적인 발전의 징후들을 목격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미얀마 민주화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급격한 정치개혁이 ‘성공의 신기루’가 될 위험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오바마는 반정부 투쟁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양곤대에서도 연설했다. 그는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있는 미얀마의 경제 재건에 미국이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기 양곤에서 아시아 지역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서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와 전진의 길을 택하면 미국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타고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오바마 일행이 공항을 떠나 시내로 이동할 때 거리에 운집한 수만명의 미얀마 시민들이 성조기와 미얀마 국기를 들고 “미국”을 연호하며 열렬히 환영했다. ‘사랑해요 오바마’, ‘당신은 세계의 영웅이자 전설’ 등의 포스터를 들고 있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사정부의 압제에 신음하던 나라의 풍경으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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