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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본선 좌절, 파나마는 직행, 온두라스가 플레이오프에

    미국 본선 좌절, 파나마는 직행, 온두라스가 플레이오프에

    3위를 달리던 미국이 막판 불의의 일격을 맞고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미국은 11일(이하 한국시간) 코우바의 아토 볼던 스타디움을 찾아 벌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북중미카리브해 예선 10차전을 1-2로 져 승점 12에 머물러 5위로 떨어져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전반 17분 오마르 곤잘레스의 자책골로 허망하게 리드를 빼앗긴 미국은 전반 37분 앨빈 존스에게 추가 골을 얻어맞았다. 크리스티안 풀리시치가 후반 2분 추격 골을 터뜨렸지만 더 이상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미국이 월드컵 본선 좌절의 아픔을 맛본 것은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32년 만의 일이다.경기 전까지 4위였던 파나마는 2위 코스타리카(승점 16)를 2-1로 제치고 승점 13을 쌓아 3위로 올라서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게 됐다. 센터백 로만 토레스가 후반 43분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플레이오프라도 나가야겠다는 미국의 희망은 온두라스에게 짓밟였다. 경기 전까지 5위였던 온두라스 역시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1위 멕시코를 3-2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파나마와 나란히 승점 13이 됐지만 골 득실에서 뒤져 4위를 확정했다. 온두라스는 전날 시리아와의 아시아 플레이오프 2차전을 연장 접전 끝에 2-1, 합계 3-2로 따돌린 호주와 홈앤드어웨이로 본선 진출을 다투게 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美 총기난사범 패덕, 범행 전 보안요원 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스티븐 패덕이 콘서트장 청중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기 전에 호텔 보안요원을 먼저 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패덕이 총기 난사 이후 보안요원을 쏘고 나서 범행을 멈췄다며 보안요원을 ‘영웅’으로 지칭했던 기존 경찰 발표를 뒤집는 것으로 부실 수사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라스베이거스를 관장하는 클라크 카운티 경찰서 조지프 롬바르도 서장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패덕이 만델레이 베이 호텔의 보안요원 헤수스 캄포스를 쏜 시점은 지난 1일 오후 9시 59분으로, 이는 총기 난사 이후가 아니라 이전”이라고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패덕은 지난 1일 오후 10시 8분부터 약 10분간 ‘루트 91 하베스트’ 콘서트에 몰린 청중 2만 2000여명을 향해 자동화기를 난사해 58명의 사망자와 5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앞서 경찰은 패덕이 캄포스를 쏜 시각이 오후 10시 18분이고, 그 이후에는 총기 난사를 멈췄다고 지난 6일 발표했었다. 현지 언론들도 캄포스가 패덕이 머물던 객실 인근에 접근했으며, 그를 발견한 패덕이 청중에게서 관심을 돌리면서 사상자가 더 발생하지 않았다고 캄포스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패덕이 캄포스를 쏜 시점이 바뀌면서 경찰 수사의 신뢰성과 영웅 만들기식 발표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한편 CNN은 패독의 예전 법정 소송 기록을 입수해 그가 과거 불안감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고 전했다. ‘도박광’인 패독은 2011년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폴리탄 호텔 객실에서 넘어졌다고 2013년 호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불안감으로 신경안정제의 일종인 바륨을 꾸준히 복용했다고 증언했다. 바륨은 분노, 공격성 및 과민반응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용띠클럽’ 홍경인 근황, 20년 전 외모 ‘미모의 아내와 함께..’

    ‘용띠클럽’ 홍경인 근황, 20년 전 외모 ‘미모의 아내와 함께..’

    홍경인 근황이 전해져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배우 홍경인이 10일 서울 마포구 KBS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KBS2 새 예능프로그램 ‘용띠클럽 철부지 브로망스’(이하 ‘용띠클럽’)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이날 홍경인은 “20년 동안 살아오면서 굴곡이 있는데 지금 제일 굴곡이 있다”라며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그는 “홍경민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항상 성실하고 주변사람들 잘 챙긴다. 스태프들도 다 느낄 것이다. 홍경민과 저는 가수와 배우로서 자부심이 있어 20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홍경인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미모의 아내와의 셀카 사진 및 일상 사진을 올렸다. 특히 20년 전 20대이던 홍경인의 앳된 외모는 최근 외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편, 홍경인은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한 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등의 작품으로 1990년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망 50년 지나도…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쿠바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지 9일로 50주년이 됐다. 그의 시신이 묻혀 있는 쿠바 산타클라라에서는 8일(현지시간) 5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에스캄브레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추모식에는 6만~7만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참배객들은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사진 등을 들고 그의 혁명 정신을 기렸다. 게바라의 혁명 동지이자 오랜 친구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참석해 묘지 앞에 흰 장미를 헌화했다. 이날 추모식은 국영 TV로 생중계됐다. 1928년 아르헨티나 부유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게바라는 의사로서의 안정적 삶을 박차고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겠다는 뜻을 품는다. 첫 번째 부인 일다 가데아의 소개로 쿠바의 망명 정치가인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56년 쿠바로 건너간 게바라는 게릴라전으로 1959년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혁명에 성공했다. 이후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했지만 1965년 돌연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난다. “쿠바 혁명이 내게 준 임무를 완수한 것 같다. 작별을 고한다. 다른 나라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콩고에서 6개월간의 혁명 노력이 실패한 뒤 볼리비아로 건너간 게바라는 레네 바리엔토스 군부 정권을 무너뜨린 뒤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려고 47명의 게릴라 부대를 조직해 무장투쟁을 벌였다. 7개월간의 게릴라 활동 끝에 1967년 10월 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력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돼 다음날 처형당했다. 비밀 무덤에 묻혔던 그의 시신은 30년이 지난 1997년 전기작가 존 리 앤더슨에 의해 발견돼 쿠바에 다시 안장됐다.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피델은 게바라를 “혁명의 모범”이라 묘사하며 “지킬 명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고 추모했다.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영국 BBC는 이날 게바라가 민중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영웅이지만, 일각에서는 잔혹하고 피에 목마른 무장투쟁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게바라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혁명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힘입어 사회주의 운동가에서 저항의 표상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게바라는 1968년 프랑스 ‘68혁명’ 이후 진보적 젊은이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후 게바라의 반항적 이미지는 그의 사진을 복제한 앤디 워홀의 작품 ‘체 게바라’를 시작으로 티셔츠와 시계, 맥주, 남자 향수 등의 마케팅에 널리 이용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주의 혁명가가 사후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서게 된 셈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도발’ 北, ‘엄포’ 美에 추천할 만한 영화

    [유진모의 테마토크] ‘도발’ 北, ‘엄포’ 美에 추천할 만한 영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메시지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자제하라’는 내용이라는 외신의 분석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이럴 때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감상했으면 하는 영화들이 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등이다. 이들이 올드패션이라면 상업적 목적이 확연한 아카데미조차 ‘아바타’를 외면하고 6개 부문의 손을 들어 준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2010)가 안성맞춤이다. 영화는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는 인용구로 시작된다. 때는 이라크 전쟁 개전 후. 바그다드 주둔 미군 델타부대의 폭발물제거반(EOD) 팀장 제임스 중사는 전우들과 달리 잔인한 폭발물 테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다 못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용기를 보인다. 마치 자신이 슈퍼맨이나 되는 양. 지금까지 800여개의 폭발물을 처리한 그는 영웅일 수도 있지만 내면은 다분히 비정상이다. 아내와 아들이 있음에도 “이혼을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내 집에 머물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가 하면 가족이 그리워, 혹은 내면적 고통에 못 이겨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음에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냥 끊어 버린다. 그는 처리한 폭발물의 기폭장치를 마치 전리품인 양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작전 성공 뒤 팀원들과 축하주를 마시면서 이유 없이 주먹 대결을 벌이는 폭력성을 지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조울증에 가까운 예측이 불가능한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 1년 후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드넓은 대형마트에서 아내와 쇼핑을 하는 그의 표정은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있던 때보다 더 공허하다. 장난감들 속에서 행복해하는 아들에게 그는 “지금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내 나이쯤 됐을 땐 한두 개밖에 안 될 거야. 나는 한 가지지”라고 말한다. 단순히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일까? 어쩌면 전쟁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는 바그다드 미군 군영으로 되돌아간 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정상적인(?)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소중하게 느낄 만한 것도 찾지 못한다.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 속에서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화약 냄새 물씬 풍기는 전쟁터다. 모두가 꺼리는 폭발물과 놀며 긴장감을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이다. 과거의 전쟁은 영토 확장을 통한 자원과 노동력의 증가였다면 언제부턴가 정권 유지 목적의 여론조작을 노린 스케이프 고트의 한 방편이 됐는가 하면 심지어 자국 군수산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치닫고 있다. ‘허트 로커’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한 전쟁의 광기가 아니라 관습화된 행위에 따른 나르시시즘과 어긋난 성취감이다. 제임스는 스나이퍼 등의 공격자가 아니라 폭발물을 안전하게 해체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의 살상을 막는 방어자이지만 실적이 쌓일수록 본분을 잊고 테러범까지 잡겠다고 설치다가 결국 부하를 사지로 몰고 간다. 습관화된 타성에 젖어 관성화된 폭력성이 마약이 되고, 그게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폐인’으로 만든다. 과거의 전쟁에 광기가 똬리를 틀었다면 최근의 그것엔 참된 행복 추구와 숭고한 철학의 고뇌가 아예 없기에 더욱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다.
  • [새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여성판 ‘쉰들러 리스트’

    [새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여성판 ‘쉰들러 리스트’

    1939년 여름 폴란드 바르샤바. 얀과 안토니나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원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폴란드를 뒤덮으며 동물원도 악몽에 빠진다. 독일 나치의 폭격으로 부부가 애지중지하던 동물들이 많이 죽고 다치고 도망간다. 동물원은 독일군에 압류돼 무기고로 사용된다. 망연자실함을 맞닥뜨린 자빈스키 부부는 절친한 유대인 부부가 강제수용소인 게토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그중 부인을 집에 몰래 숨겨 주기로 한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적극 돕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장하기 위해 군인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돼지 농장을 동물원에 열겠다고 독일군에 제안한다. 돼지 사료로 쓸 잔반을 가지러 게토를 오가게 된 얀은 게토에 수용된 유대인들을 몰래 빼돌려 달아나게 하거나 동물원 등에 숨어 지내게 한다. 그렇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부지한 유대인은 무려 300여명.오는 12일 개봉하는 ‘주키퍼스 와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공포와 파괴의 시간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 동물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자빈스키 부부를 영웅으로 과대 포장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 사람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고 위험을 무릅쓰며 기적을 빚어내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옳은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들로 쌓인 부부 사이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안토니나의 몫이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안토니나 쪽으로 기울어진다. 아무래도 안토니나를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20대 후반 늦깎이로 연기에 입문했지만 ‘제로 다크 서티’ ‘마션’ ‘인터스텔라’ ‘미스 슬로운’ 등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그녀다. 앞서 차스테인은 강한 여성상을 자주 선보였으나 이번 작품에선 걸크러시라기보다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외유내강의 연기를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첫 공개 당시 여성판 쉰들러 리스트, 최초의 페미니스트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기적 같은 실화가 책으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지고, 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여성의 힘이 컸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다이앤 애커먼이 안토니나의 일기와 역사적인 사료, 유족과 유대인 생존자의 증언 등을 취재해 논픽션으로 묶은 책은 2007년 베스트셀러가 됐다. 디즈니 ‘뮬란’ 실사판 감독으로 낙점받은 뉴질랜드 출신 니키 카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을 비롯해 프로듀서, 미술감독, 카메라 오퍼레이터, 스턴트 등까지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점은 찍은 것은 물론 차스테인이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oeul.co.kr
  • [월드피플+] 기차에서 쫓겨날 뻔한 자폐아 도와준 20대 청년

    [월드피플+] 기차에서 쫓겨날 뻔한 자폐아 도와준 20대 청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들을 둔 엄마가 연고도 없는 20대 남성의 도움을 받아 기차에서 내쫓길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이브닝스탠다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엄마 가이나 펄링은 아들 잭(5)과 딸 에이미(4)를 데리고 기차 여행 중이었다. 여행이 길어지자 ADHD와 자폐증을 가진 아들 잭이 좌석 위를 타고 넘나들면서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들에게 약을 먹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잭은 고함을 지르고 도망다니며 이를 거부했다. 엄마와 동생을 때리며 가만히 있지 못했다. 엄마 펄링은 이미 잭의 행동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라는 소리를 수십 번도 더 들어왔다. 이날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의 증상을 설명하며 사과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마침 그 상황을 지켜보던 댄 볼(21)은 잭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약을 못먹는다’에 내기를 걸겠다며 잭의 시선을 끌었고 함께 놀아주면서 잭을 진정시켰다. 펄링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이 사람은 ‘나의 영웅’이다. 자폐증과 ADHD가 있는 아들을 떠맡아 진정시킨 덕분에 악몽 같았을지도 모를 기차 여행이 더할나위 없이 완벽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청년 볼을 칭찬하는 펄링의 게시글은 삽시간에 번졌고 13만건에 달하는 ‘좋아요’를 받았다. 1시간 가까이 아이들과 놀아주며 소란스런 상황을 잠재운 볼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뿐”이라며 “사람을 돕는 일은 기적적이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기에 나는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사람들이 잭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지 엄마의 육아방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난 특수아동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자폐증이나 ADHD를 가진 아이들의 행동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잭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보니 엄마 혼자 아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해당 질환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잭을 통해 자폐증과 ADHD를 지닌 가족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볼은 자신의 작은 행동이 소기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 일을 계기로 자폐증과 ADHD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컴 투 마이 레스큐'(Come To My Rescue) 캠페인에 착수했고, 모금 사이트 저스트기빙 페이지를 개설해 국립자폐협회 (NAS)의 자선기금 마련에도 앞장섰다. 볼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1000파운드(약 154만원) 이상의 기금이 모인 상태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오늘 세계 한인의 날... 반크 숨은 영웅 홍보영상 배포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5일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세계 곳곳의 한인 숨은 영웅을 소개하는 영상을 SNS에 배포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반크는 ‘디지털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지금까지 전 세계 재외동포의 활동상을 조명한 영상 26편을 이날 유튜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GxPKAde4cSeV-Zo6C2DJa6YKN6yMB-6c)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vankprkorea)에 올려놨다. 한글, 영어, 일본어 등으로 제작한 26편의 영상은 ‘당신도 제2의 버지니아 기적의 주인공-미주 한인들의 동해 지키기 운동’,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이야기-고려인 재외동포네트워크’, ‘유대인을 능가하는 720만 한민족 네트워크’, ‘하와이 한인 문숙기 할머니의 꿈’, ‘미국 한인 독립운동가, 대한인국민회’, ‘일본 독립운동가, 한국을 향한 재일동포들의 꿈 이야기’, ‘미주 한국 학교의 어머니-허병렬 선생님의 이야기’ 등이다. 이들 영상에는 고국이 IMF로 경제위기에 처하자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로비에 맞서며, 미국 의회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병기하는 법안 타결에 앞장서는 등 재외동포들의 숨은 기여가 담겨 있다. 세계 교과서와 세계지도, 웹사이트 등에서 독도, 동해, 한국 역사를 바로 알리는 방법도 포함돼 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매킬로이 “축구 영웅 로이 킨에게 사인을 거절당한 것이”

    매킬로이 “축구 영웅 로이 킨에게 사인을 거절당한 것이”

    북아일랜드의 골프 스타 로리 매킬로이(28·오른쪽)가 어린 시절 아일랜드의 축구 영웅 로이 킨(46)이 자신의 사인 요청을 거절한 데 대해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골프에 입문한 뒤에도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세계랭킹 1위를 한때 차지했으며 네 차례나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매킬로이는 5일(현지시간) 막을 올리는 알프레드 던힐 링크스 챔피언십 개막 기자회견에서 영국 BBC에 어릴 적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지난주 브리티시 마스터스 대회 도중 젊은 팬들의 날을 마련해 자신의 골프 공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던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을 지냈던 킨이 아일랜드 대표로 나섰을 때의 만남을 돌아봤다.매킬로이는 “포트마녹 링크스 호텔에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그가 ‘노’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난 그 뒤 충격 같은 걸 받았다. 어린 시절 그런 식으로 퇴짜를 맞고 나면 그 뒤 (퇴짜를 놓은)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게 된다. 그래서 꼬마가 내게 사인을 요청해도 난 늘 해주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유명한 세인트 앤드루스의 올드 코스에서 1라운드를 치르는 매킬로이는 라운드당 6~9개의 골프공을 쓴다고 말한 뒤 “새로운 공이 필요할 때마다 군중 속의 어린 친구를 찾아내 쓴 공들을 건넨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아주 짧은 순간이 어쩌면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고 놀라곤 했다. 내겐 아주 작은 일이지만 꼬마에게는 대단한 일일 수가 있다. 그 꼬마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A마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킨이 이제 사인을 요청하면 그에 응할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매킬로이는 “그가 사인을 먼저 해준다면”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울올림픽 성공 기여’ 김운용 타계…세브란스병원에 빈소

    ‘서울올림픽 성공 기여’ 김운용 타계…세브란스병원에 빈소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3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86.김 전 부위원장은 전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날 오전 2시 21분 별세했다고 고인측이 알렸다. 고인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한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때는 역사적인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을 이끌어냈다. ‘태권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하는 등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태권도가 올림픽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 스포츠외교에 독보적인 스타로 존재했지만 말년은 그리 밝지 못했다. IOC 위원으로 선출된 뒤 능숙한 외국어와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01년에는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그러나 19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에 연루돼 IOC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과정에 강원도 평창의 유치 ‘방해설’ 탓에 국회 청문회에도 출석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2004년 2월 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의 죄목으로 수감돼 사실상 국제 체육계를 떠났다. 이듬해 7월 싱가포르 IOC 총회를 앞두고 결국 IOC 위원직마저 스스로 내려놓았다. 하지만 고인은 최근까지도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말 올림픽운동 증진, 한국스포츠 발전과 스포츠외교 강화, 태권도 육성과 세계화 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김운용스포츠위원회를 설립했고 이달 말에는 2017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도 개최할 예정이었다. 더 최근에는 대한체육회가 11월 발간할 예정인 스포츠영웅 김운용 편 구술 작업을 체육언론인회와 진행해왔다. 지난달 27일 열린 진천선수촌 개촌식이 공식 석상에 고인이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자리가 됐다. 2013년 3월 기자가 만났을 때 김 전 부위원장은 두 가지 면에서 기억에 남았다. 첫째는 비상한 기억력이다. 30년이 훨씬 지난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건설에 들어간 건축자재의 수량을 정확히 기억해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리고 특유의 건강 관리.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 한 시간 이상 수영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하늘의 부름을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유족은 장례 절차를 협의 중이다. 족으로는 부인 박동숙 여사와 아들 정훈, 딸 혜원·혜정씨가 있는데 고인은 피아니스트 혜정씨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노환으로 타계…86세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노환으로 타계…86세

    ‘한국스포츠의 거목’인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3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86세.김 전 부위원장은 전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3일 오전 2시 21분 별세했다고 고인 측이 알렸다. 김 전 부위원장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한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때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이라는 역사를 끌어냈다. ‘태권도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하는 등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국기원장도 지낸 그는 특히 태권도가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IOC 위원으로 선출된 뒤 능숙한 외국어와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01년에는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그러나 19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에 연루돼 IOC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걷기도 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과정에서는 강원도 평창의 유치 ‘방해설’이 대두하면서 국회 청문회에도 출석했었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의 죄목으로 수감돼 IOC 위원직 제명 위기에 몰렸고 2005년 7월 싱가포르 IOC 총회를 앞두고 결국 IOC 위원직마저도 스스로 내려놨다. 하지만 고인은 최근까지도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올림픽운동 증진, 한국스포츠 발전과 스포츠외교 강화, 태권도 육성과 세계화 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김운용스포츠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달 말 2017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대한체육회가 11월 발간할 예정인 스포츠영웅 김운용 편 구술 작업을 체육언론인회와 함께 진행해왔다. 지난달 27일 열린 진천선수촌 개촌식은 고인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자리가 됐다. 고인의 빈소는 일단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 일정 및 절차는 유족이 협의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숙 여사와 아들 정훈, 딸 혜원·혜정 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크림반도의 ‘푸틴 장벽’/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크림반도의 ‘푸틴 장벽’/최광숙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잊을 수가 없다. 사냥개에 물려 개를 무서워하는 것을 안 푸틴이 회담장에 시커먼 개를 풀어놓은 것도 모자라 호통을 치다가 다시 목소리를 깔고 강요하듯 말하는 등 거칠게 굴었기 때문이다.푸틴의 이런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회담 장소로 크림반도의 대통령 별장이 선택된 것도 마찬가지다. 메르켈이 호시탐탐 크림반도를 노리던 푸틴과 이에 반대하는 서방국가 간의 중재자로 나서자 푸틴은 일부러 메르켈을 크림반도로 불러들여 기를 죽이고자 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던 크림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탓에 수백년간 동·서 강대국들이 싸우는 각축장이 된 곳이다. 1854~56년 이곳에서는 러시아와 오스만제국(현 터키)·동맹국 간의 ‘크림전쟁’이 벌어졌다. 표면적인 원인은 종교 갈등이었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남진 정책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유럽 각국의 견제였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 전쟁이 낳은 두 명의 영웅이 있는데 한 사람은 ‘전쟁과 평화’를 쓴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다. 그는 20대에 러시아 포병장교로 참전했다. 또 한 사람은 오스만 측을 지원했던 영국군의 부상병들을 간호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구소련은 여러 차례 전쟁을 통해 크림반도를 확보했으나 1954년 우크라이나 출신인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면서 우크라이나 영토가 됐다. 하지만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남진 정책상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흑해의 항구가 필요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크림반도 남쪽의 세바스토폴항을 우크라이나로부터 장기 임차해 흑해함대를 주둔시켜 왔다. 그러다 2014년 러시아군은 무장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크림의회는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의 찬반을 물었는데 크림반도의 90%가 러시아계 주민이다 보니 압도적인 찬성으로 러시아와의 합병이 이뤄졌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국가들은 ‘불법 영토 찬탈’이라며 크림반도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높이 2m, 길이 50㎞의 이른바 ‘푸틴 장벽’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크림반도 지배권을 더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핵 위기의 한반도만큼이나 크림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어른거리는 냉전의 그림자가 걱정스럽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주말 영화]

    ■베스트 오퍼(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언제나 최고가로 예술품을 낙찰시키는 최고 경매사인 버질(제프리 러시)은 타인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며 한편으로는 여인의 초상화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괴짜 노인이다. 어느 날 묘령의 클레어(실비아 획스)로부터 자기 집안의 모든 가구와 미술품을 감정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주는 은둔의 여인의 요청을 처음엔 거절하지만 호기심에 못 이겨 결국 수락하고, 우연히 클레어의 모습을 본 버질은 사랑에 빠진다. ‘베스트 오퍼’는 진짜와 가짜로 세상을 재단하는 노인이 뒤늦게 첫사랑에 눈을 떴다가 좌절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시네마천국’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살아 있는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했다. 2013년작. ■영웅본색(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우위썬 감독이 범아시아 프로젝트 ‘맨헌트’를 통해 20여년 만에 자신의 전공인 누아르로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겐에게 헌정하는 작품으로, 그의 1970년대 주연작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했다. 한국의 하지원 등이 출연한다. 우 감독은 이 신작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올해 처음 방문한다. 그에겐 ‘홍콩 누아르 대부’라는 별명이 있는데, 그 출발점이 된 작품이 바로 ‘영웅본색’이다. 디룽과 저우룬파, 장궈룽이 처연한 액션을 선보이는 이 작품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1986년작.
  • 만화영웅들 부천 ‘만화박물관‘에 모였다

    만화영웅들 부천 ‘만화박물관‘에 모였다

    경기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이 추석명절 한자리에 모인 가족 방문객과 만화 마니아들에게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다.29일 만화박물관에 따르면 먼저 추석 다음날인 10월 5일부터 한글날인 9일까지 5일간 박물관 1층에서 ‘만박(만화박물관) 히어로 데이’가 열린다. 가면과 액세서리·망토 등 히어로 콘셉트의 다양한 소품으로 코스튬 체험이 가능하다.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도 설치될 예정이다. 히어로 장난감을 비롯해 피규어 전시와 만화 캐릭터 관련 상품을 만날 수 있는 장난감 플리마켓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는 8~9일에는 박물관 1층 만화영화상영관에서 한국문학을 소재로 한 ‘한국문학 애니메이션’ 기획상영회가 열린다. 상영작은 한국 단편문학을 원작으로 한 작품 ‘소나기’와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중한 날의 꿈’ 모두 3편이다. 관람료는 전편관람 8000원, 단편관람은 4000원이다. 한글날인 9일에는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 다문화가정 자녀 등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만화나눔 행사가 박물관 1층에서 진행된다. 박물관 무료관람과 캘리그라피 체험으로 한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박물관 입장료 할인 이벤트도 진행된다.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한국만화박물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한 관람객은 본인에게는 박물관 입장료 10%가 할인된다. 한국만화박물관은 추석 연휴인 10월 2~4일 휴관한다. 행사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한국만화박물관 홈페이지(www.komacon.kr/comicsmuseu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군 사이버사령부, 김관진 국방장관 영웅화 작업…“종북 뿌리 뽑아라! 국방V”

    군 사이버사령부, 김관진 국방장관 영웅화 작업…“종북 뿌리 뽑아라! 국방V”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2011~2013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68)을 영웅화하기 위한 합성사진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김 전 장관을 영화 주인공이나 역사적 인물의 모습과 합성하는 방식이다.김 전 장관은 현재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이 MB 및 박근혜 정부에서 벌였던 댓글 정치공작의 ‘몸통’으로 지목돼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다. 28일 경향신문은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서 사이버사 심리전단이 김 전 장관 얼굴을 만화영화 캐릭터 ‘로보트 태권V’의 몸과 합성한 사진을 외부로 퍼날랐다고 보도했다. 이 합성 사진에는 “종북세력을 뿌리 뽑아라! 로보트 국방V”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사이버사령부가 유포한 사진에는 “북한이 어떠한 형태로 도발하든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전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2011년 김 전 장관의 지휘서신을 전하면서 이순신 장군으로 보이는 인물의 몸과 합성한 것도 있다. 김 전 장관이 가죽 재킷에 기관총을 들고 영화 주인공 ‘터미네이터’ 모습을 한 사진도 있었다. 이 사진에는 “핵공격 징후 땐 선제타격”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만화영화 포스터를 소재로 한 ‘타격왕 관진’이라는 그림에는 “북한이 도발하면 진짜 원점 타격이 시작된다!”고 적혀 있다. 또 김 전 장관이 근엄한 표정으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멱살을 잡고 있는 ‘주적’이라는 제목의 포스터도 있다. 이 포스터에는 “2010년 12월 국방장관 취임. 야전 중심의 전투형 군대 육성”이라는 김 전 장관의 공적이 기술돼 있다. 이와 같은 사진이나 포스터는 “국방장관의 강력한 대응의지가 도발 억지에 도움이 됐다”거나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분이죠”라는 글들이 달려 인터넷에 유포됐다. 김 의원은 “사이버사가 국방장관 개인을 영웅화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 충격적”이라며 “김 전 장관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군을 통솔하는 ‘최장수 장관’이 된 것도 이런 영향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관진, ‘사이버국방학과 전원 軍사이버사로’ 지시” 한편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012년 총선 직전 신설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 전원을 사이버사 소속 요원으로 임용하는 방안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당시 국방부가 200명이 채 안 되던 사이버사를 2017년까지 1천750명 규모로 대폭 확대 편성하기로 계획한 가운데 김 전 장관이 우수 인력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창구를 만드는 데 직접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29일 공개한 국방부의 2012년 2월 20일 자 ‘정보보호 전문인력(장교) 추가 양성을 위한 관련 기관 협조 회의 계획’ 문건에는 김 전 장관의 지시 사항이 적시돼 있다. 김 전 장관이 그해 1월 2일 “정보통신 분야의 추가 양성 소요를 판단해 대학에서 전문인력 양성 후 활용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국방부는 이에 부응해 매년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 30명 전원을 사이버사에서 ‘활용’하기로 했다. 졸업생이 나오는 2016년부터 7년 동안 총 210명을 정보보호·연구개발·교육훈련 요원으로 사이버사에 배치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후 사이버국방학과 설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2013년 사이버사 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옥도경 사이버사령관은 고려대에서 특강을 하는 등 두 기관이 활발히 교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모나리자와 수난당한 미술품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모나리자와 수난당한 미술품

    미술품에 대한 감정은 이율배반적이다. 보통은 창조의 산물로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기지만 한편으론 부유층의 사치와 자기과시 그리고 부의 은닉 수단으로 인식한다. 미술품은 문화적 재화지만 유일하게 환금성을 지닌 경제적 재화라는 점 때문에 그렇다. 미술품은 소유욕을 자극해 사기와 절도의 대상이 되어 왔고 가끔은 민족적 자부심까지 보태져 일부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도난당하는 수난도 겪었다.빗나간 애국주의가 낳은 최대 미술품 도난사건은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미술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이다. 세기의 명작이 세계 최대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는 사실과 후일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는 피카소가 연루됐다는 점이 보태져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페르난도 콜로모 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피카소: 명작스캔들’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스페인 영화답게 피카소(이냐시오 마테오 분)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입체주의(Cubism)를 만들었는지 보여 준다. 1900년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로 나온 피카소는 로트레크를 만나 청색시대를 연다. 1904년 영화의 주 배경으로 삐걱대는 목조계단 때문에 ‘세탁선’으로 불리던 화실에서 전성기를 맞는 피카소는 2년 뒤 20세기 회화의 출발점으로 칭송받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세잔의 미학에 감화돼 3차원적 현실을 2차원적 회화로 변환한 입체파의 싹을 틔웠다. 영화는 이 시절을 그린다. 피카소는 어렵지만 항상 몰려다니는 친구들, 시인 막스 자코브, 조각가 마놀로 위그, 문학도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연인 페르낭이 있어 외롭지 않다. 재료조차 구할 수 없던 그를 돕고자 친구들은 미국 여류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릴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때 받은 선금이 ‘아비뇽의 연인들’의 씨앗이 됐다.피카소가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은 친구 아폴리네르의 친구로 남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리 피에레 때문이었다. 피카소는 이들과 함께 간 루브르에서 이베리아 조각을 보고 매료됐다. 며칠 뒤 남작은 루브르에서 그 조각상을 훔쳐 피카소에게 속여 팔았고 이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아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초상을 완성했다. 피카소가 브라크와 함께 피레네 산맥 근처 시골마을에 내려가 그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모나리자 도난사건이 터진다. 남작이 수사 선상에 오르고 조각을 샀던 전력 때문에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도 경찰 수사망에 오른다. 피카소는 아폴리네르를 모른다고 발뺌해 위기를 모면하고 아폴리네르는 감옥에 수감됐으나 며칠 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현실에서 도난사건은 엉뚱하게 풀렸다. 모나리자가 사라진 지 2년 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모나리자를 팔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미술관은 즉시 신고했고 범인인 빈센초 페루자가 붙잡혔다. 이탈리아 출신인 페루자는 임시직으로 루브르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미술관 창고에 숨어 있다가 그림을 훔쳐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침대 밑에 2년 동안 숨겨 두었던 모나리자를 팔려다 걸려든 것이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이탈리아인인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환수하고자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어 고작 6개월 형을 살고 나왔다. 이것이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결말이다. 대개 도난 미술품 시장규모를 연간 약 6조 2000억원으로 추산한다. 내로라하는 미술관들도 도난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1990년 이후 미술품 절도만 봐도 대단하다. 보스턴의 이저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은 1990년 렘브란트의 ‘갈릴리의 바다’(1663)를 포함해 페르메이르의 ‘연주회’(1664~ 1666)등 총 12점, 3억 달러어치의 그림을 도난당했다. 올 초 현상금을 약 112억 5000만원으로 2배 인상했지만 여전히 미궁이다. 2000년에는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 작품 2점, 렘브란트 작품 1점을 도난당했다. 1년 뒤 르누아르 작품 1점을 회수했고, 두 작품은 2005년 미국에서 나왔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600억원에 달한다는 다빈치의 ‘성모와 실패’(1510)가 스코틀랜드 드럼랜리그 성에서 도난당했다가 7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두 번이나 도난당해 유명해진 ‘절규’(1893)는 1994년 4명의 괴한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창문을 깨고 넘어들어와 작품을 훔쳤는데 3개월 만에 경찰이 이를 되찾았다. 2004년 3명의 무장강도가 대낮에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 들어와 수십 명의 관람객을 위협한 뒤 템페라 버전의 ‘절규’(1910)와 ‘마돈나’(1894)를 훔쳐갔다. 두 작품은 2006년에 다행히 되찾았지만, 회수 과정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07년 12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에서도 3인조 도둑이 피카소의 ‘수잔 블로흐의 초상’ 등 627억원어치의 작품을 싹쓸이해 갔다. 또 2008년 스위스 취리히의 에밀 뷔를르 콜렉션이 세잔의 ‘붉은 조끼 입은 소년’을 포함해 모네, 드가, 고흐 등의 작품 4점을 도난당했다가 2012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찾았다. 2012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할은 약 3000억원에 육박하는 피카소, 마티스, 모네의 그림 7점을 도난당했다. 나중에 루마니아에서 범인을 찾았으나 범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죄를 감출 목적으로 불태웠다고 진술해 그림은 찾지 못했다. 도둑이 성하면 잡으려는 노력도 그에 못지않은 법. 인터폴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보험회사와 경매회사들이 출자해 1991년 설립한 도난미술품등록협회(www.artloss.com)가 런던과 뉴욕 그리고 뒤셀도르프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을 도난당한 화가는 단연 피카소(514점)다. 고흐가 43점으로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도둑들도 거들떠보지 않을 작품들도 많다. 국내 방방곡곡에 산재한 흉물스러운 조각과 키치류의 벽화, 조악하기 그지없는 공공미술이 그것이다. 미술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각적 폭력도 문제지만 그런 작품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훔치려는 자치단체장들도 문제다. 이런 단체장들 훔쳐가는 도둑은 어디 없을까.
  • 멕시코 국민영웅견, 지진 피해자 돕기 모델 활약

    멕시코 국민영웅견, 지진 피해자 돕기 모델 활약

    멕시코의 구조견 프리다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프리다를 모델로 한 다양한 ‘지진 피해자 돕기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린 영웅 구조견이 이젠 피해자 돕기 홍보대사(?)로도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기스타를 모델로 피냐타를 만들기로 유명한 한 업체는 최근 ‘프리다 피냐타’를 출시했다. 피냐타는 과자나 장난감 등을 넣은 인형으로 멕시코에선 어린이의 생일에 주로 사용된다. ‘프리다 피냐타’는 구조견 프리다의 모습을 최대한 흡사하게 구현했다. 얼굴엔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몸에 '해병대'라고 적힌 조끼를 걸친 모습까지 똑같다. 등엔 멕시코 국기를 꽂고 있다. 업체는 이 피냐타 판매로 얻는 수익으로 지진 피해자를 도울 예정이다. 또한 털실로 짠 ‘프리다 인형’도 등장했다. 출시된 인형은 25cm짜리와 15cm짜리 등 모두 2종으로 25cm짜리는 400페소(약 2만5000원), 15cm짜리는 200페소(약 1만2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인형을 만든 업체는 최근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제품을 출시했다. 멕시코의 한 할머니가 털실로 프리다 인형을 만든 걸 보고 피해자 돕기를 위한 모금에 적격이라고 판단, 서둘러 제품을 냈다. 업체는 “인형의 판매수익 100%를 지진 피해자 돕기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고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프리다는 멕시코 해병대 소속의 구조견이다.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지난 규모 8.1 강진이 발생한 직후다.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에서 구조작업에 투입된 프리다는 쑥대밭이 된 피해현장에서 주민 52명을 찾아내 구조했다. 그 활약상이 중남미는 물론 멀리 한국과 일본 등에까지 알려지면서 프리다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멕시코 언론은 “멕시코 최고의 구조견인 프리다가 일본에서까지 사랑을 받게 됐다”면서 “2차 강진이 발생한 뒤엔 프리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정찬주의 산중일기] 우리들의 아버지

    [정찬주의 산중일기] 우리들의 아버지

    내 산방을 찾는 손님들 중에서 기억하는 몇 분이 있다. 이해인 수녀님이 먼저 떠오르고 임권택 감독님도 생각난다. 해인사 원각 방장 스님과 안국선원 수불 선원장 스님, LS산전 구자홍 전 회장님도 잊히지 않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유명 인사만 다녀간 것은 아니다. 작가의 삶이 궁금해서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평범한 독자들이 훨씬 더 많다. 내 소설이나 산문집을 보고 머나먼 외국에서 온 손님도 있다. 어느 해 여름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독자 한 분이 찾아왔고, 스위스 베른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분들은 세 번씩이나 다녀갔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온 분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분들이다. 내 책으로 맺어진 작가와 독자로서 정신적인 교유를 하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내 산방을 찾은 가장 독특한 손님은 아마도 노래하는 가수가 아닐까 싶다. 노래와 작곡을 병행하는 60대의 싱어송라이터 구자형씨다. 그를 만난 지는 20년이 넘지만 산방 손님으로 처음 온 것은 10년 정도 된다. 내가 남도 산중으로 내려온 뒤 그가 음반 사업차 내 산방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때 그는 내 산중 생활을 부러워하면서 낙향한 이야기를 가사로 써 줄 수 없느냐고 제의했는데, 그때 만든 곡이 ‘이불재 가는 길’이다. 내가 써 준 가사는 이렇다. ‘상처받지 않은 이 누가 있으랴/ 나 구름이듯 바람이듯 불어가 길 끝나는 곳에 지친 몸 쉬이네/ 허공에 빗방울들 산봉우리에 떨어져 영산강이 되고 섬진강이 되는/ 깊고 깊은 계당산을 아시나요?/ 그 산 아래 이불재가 있다네.’한 달 전에 구씨가 또다시 내 산방에 왔다가 하룻밤 묵고 갔다. 내가 3년째 집필 중인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위한 헌정 곡으로 만들어 왔으니 내게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선율을 들어 보니 트로트풍으로 서민적이고 친근했다. 구씨는 연주곡으로만 작곡했지만 가사를 붙이면 노래도 될 것 같았다. 더욱이 내가 집필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캐릭터는 연전연승의 영웅이나 군신(軍神)이 아닌 자애롭고 속 깊은 아버지상(像)이었으므로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아버지상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은 내가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캐릭터였던 것이다. 한국인의 어머니상으로서는 신사임당이 있지만 우리들의 아버지상이 누구냐고 물을 때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것도 내가 이순신 장군을 주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저녁을 먹은 뒤 구씨는 편안하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기타로 쳤다. 나는 선율을 듣고 그 자리에서 5분 만에 가사를 썼다. 수정하고 말 것도 없었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로서의 이순신 장군이었으므로 쉽게 끝났다. ‘충청 사투리 엄청 쓰시던 밥은 먹은 겨 아버지시여/ 싸우기 전에 밤을 새우며 새벽을 맞은 아버지시여/ 어머니 생각 간절 간절해 눈물 흘리던 아버지시여/ 사랑해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들의 아버지/ 노량의 바다 나의 죽음을 숨기라 했네.’ 구씨는 이순신 장군이 정말로 충청 사투리를 썼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순신 장군 하면 다들 표준말을 근엄하게 쓰신 장군으로 아는데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8세에 충청도 아산으로 내려가 무과급제한 32세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니 당연히 충청 사투리를 쓰지 않았겠느냐고 대답했던 것이다. 당시의 사투리는 요즘보다 더욱 질박하고 구수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오늘 아침에도 구씨의 전화를 받았는데 고흥에 와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수군 지휘관이 됐던 발포만호성에서 노래의 배경을 촬영하고 있다고 전해 준다. 자신의 노래를 유튜브에 올릴 예정인데 영상감독은 소설가 고(故) 김말봉 선생의 외손자란다. 구씨가 작곡, 노래하고 내가 작사한 ‘우리들의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내 바람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이순신 장군도 명장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장졸들과 함께 막걸리를 한 잔 두 잔 마시고, 캄캄한 바다에 보름달이 뜨면 시를 짓고, 자식들 생각을 간절하게 했던 보통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구씨의 노래를 통해 알게 된다면 그것만도 의미가 적잖을 것 같다.
  • 60년 전 독도 영웅 33인 섬 모습과 함께 재현하다

    60년 전 독도 영웅 33인 섬 모습과 함께 재현하다

    역사기록물·활동상 있는 그대로…“국토수호정신 기르는 산 교육장”울릉도에 독도 수호를 상징하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4리에 신축 중인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을 이달 중 준공한다고 25일 밝혔다. 이 기념관은 천부4리 일대 부지 2만 4302㎡에 총 129억원을 들여 지상 2층(연면적 2118㎡)으로 지어졌다. 땅은 울릉군이 무상으로 제공했다. 날씨가 맑으면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곳이다. 기념관 마당에는 독도 형상 조형물이 세워졌다.1층에는 의용수비대가 창설돼 활동(1953년 4월20일~1956년 12월30일)했던 1950년대 독도의 자연을 재현해 놓은 모형과 의용수비대 역사 기록물, 일본인이 독도에 설치했던 독도 팻말 10여점, 목(木)대포, 생활상 등이 설치됐다. 2층엔 의용수비대원 33명의 활동상 및 훈·포장, 포토존, 영상관 등이 자리잡았다. 정부는 1996년 홍순칠 대장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대원에게 각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국토 수호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기르는 교육관과 체험시설도 갖췄다. 준공식은 다음달 24일 열린다. 기념사업회는 최근 기념관 초대 관장에 조석종(61) 전 울릉군 주민복지실장을 뽑았다. 임기는 3년이다. 울릉도 출신인 조 관장은 고 조상달 독도의용수비대원의 아들이다. 조 관장은 “기념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확고한 영토 주권 수호 의지를 계승하는 산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홍순칠 대장(1929∼1986)을 비롯한 6·25 참전용사 16명과 울릉도 거주 청년 17명 등 33명으로 결성됐다. 1956년 경찰에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독도를 침탈하려던 일본 순시선과 수차례 총격전을 벌이며 독도를 지켰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월드피플+] 폭발 직전 사고 차량서 사람 구한 군인

    [월드피플+] 폭발 직전 사고 차량서 사람 구한 군인

    미국에서 한 부사관이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사고 차량에 있던 여성을 구해내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 폭스뉴스 등 현지언론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지난 1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셸비에 있는 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한 한 군인의 의로운 행동을 소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방위군에서 군 복무 중인 코리 힝클 하사다. 그는 이날 오후 샬럿에 있는 기지에서 포레스트 시티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보일링스프링스 고속도로를 지나던 중 갑자기 자기 차량 앞에서 정면충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내 앞에 있던 차들이 서로 충돌해 사방으로 먼지와 연기가 퍼져나갔다”고 회상했다. 지난 15년간 군 복무를 했으며 이라크전 당시 폭발물 제거반으로써 도로에 있던 폭탄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힝클 하사는 사고 차량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그 즉시 차에서 내려 사고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차량에는 운전석에 한 여성이 있었는데 발목이 부러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차량에서는 연기가 점점 거세져 언제라도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다른 차량에서 도와주러 온 한 남성과 함께 여성이 차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여성을 보호하며 함께 도로 옆으로 벗어났다. 그가 빠져나오자마자 차량에서는 불길이 치솟으며 폭발이 일어났고 일부 차량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근처에 있던 힝클 하사 역시 날아온 금속 파편에 발목을 찔렸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현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브랜디 귄(28)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힝클 하사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힝클 하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가 다음에 한 행동은 진정으로 명예로운 것이었다”면서 날아오는 파편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그의 행동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힝클 하사는 “내 행동은 내가 가진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내게도 아내와 두 딸이 있는데 이들이 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 똑같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힝클 하사는 자신이 구한 여성이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또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두 사람은 물론 서로의 가족은 친구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퇴원해 현재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귄은 “난 그에게 영원히 빚을 졌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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