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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전사 당한 동료 심폐소생술 시도하는 원숭이

    감전사 당한 동료 심폐소생술 시도하는 원숭이

    감전으로 죽은 동료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원숭이의 가슴 아픈 모습이 포착됐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최근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카르곤(Khargone)에서 발생했다고 2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보도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원숭이 한 마리가 피복이 벗겨진 전깃줄에 닿아 감전사했고 죽은 원숭이의 친구가 다가와 마치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처럼 흉부 압박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익명의 마을 주민은 “원숭이는 의식이 없었고 다른 원숭이는 그를 깨우려 했다”면서 “원숭이는 죽은 동료를 깨우기 위해 입으로 인공호흡까지 시도했지만 친구를 살리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후 12마리 정도의 원숭이가 더 모였으며 그들은 거의 1시간가량 죽은 동료 곁을 지켰다”고 덧붙였다. 원숭이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힌두교 의식을 거친 뒤, 땅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에서 원숭이는 영웅적인 존재의 신 하누만(Hanuman)으로 간주된다. 하누만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 라마왕자의 납치된 아내를 구출하고 그를 왕위에 올리는 데 헌신한 영웅이다. 사진·영상=Mailonline, TOP NEWS TV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산 속에 조난당한 남자 구한 유기견의 사연

    [반려독 반려캣] 산 속에 조난당한 남자 구한 유기견의 사연

    주인없는 유기견이 산 속에 조난된 남자를 구한 감동적인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 등 유럽언론은 루마니아 세메니크 산에서 벌어진 구조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16일. 이날 산악자전거를 타던 마리온 이온(40)은 산 중 깊은 곳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큰 부상을 당했다. 나홀로 어두운 산중에 고립된 그는 특히 부상으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곧바로 휴대전화로 구조요청을 했다. 그러나 어두운 밤, 그것도 깊은 산 중에 낙오된 그를 구조대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산 속이라는 특성상 곧바로 온도는 떨어져 그에게 저체온 증상이 나타나던 위기의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유기견 한마리가 나타났다. 이온은 "갑자기 개가 나타나 이리 오라고 부르니 곧바로 다가왔다"면서 "마치 담요를 덮은 듯 꼭 안고 있었으며 끝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구조대가 도착해 그를 응급차에 태우는 순간에도 유기견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개는 마치 이온이 걱정이라는 듯 응급차를 따라 끝까지 쫓아왔다. 현지언론은 "개가 끝까지 조난자 옆을 지켜준 덕에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면서 "개는 사람을 구한 영웅견이 됐으며 카라슈세베린 주 의회 부의장에게 입양됐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카자흐 ‘한인 피겨 영웅’ 데니스 텐 장례식에 5천명 넘는 인파

    카자흐 ‘한인 피겨 영웅’ 데니스 텐 장례식에 5천명 넘는 인파

    카자흐스탄의 한국계 피겨스케이트 영웅으로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사망한 데니스 텐의 장례식이 지난 21일 5000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한 가운데 시민장으로 거행됐다.인테르팍스통신 등에 따르면 비극적인 사건 현장인 알마티에 있는 발라샥 스포츠센터에서 이날 카자흐스탄의 국민적인 영웅인 텐의 시민장이 엄수됐다.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이 늘어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텐의 영전에 조화 등을 바치며 애도했으며 카자흐스탄 출신의 세계적인 프로복서 게나디 골로프킨이 미국에서 달려오는 등 동료 선수와 시민, 문화체육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아르스탄벡 무하메디울 문화체육장관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며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애도했다. 노보스티통신은 알마티에서 장례식이 열리는 시간에 수도 아스타나의 스포츠센터에서도 수백 명이 참여한 가운데 별도의 시민장이 개최됐다고 전했다. 장례식 후 고인은 알마티 인근 공동묘지인 ‘우정의 마을’에 묻혔다. 앞서 텐은 지난 19일 알마티에서 자동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남성 2명과 다투다가 흉기에 찔렸다. 그는 행인에 의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한국계 후손인 텐은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의병장이던 민긍호(1865~1908) 선생의 외고손자다. 의병장 후손으로 이름을 알린 텐은 국내에서 개최된 아이스쇼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텐은 2014년 소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2015년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데니스 텐 차량 사이드 미러 가격 얼마였길래…살해 용의자 2명 모두 검거

    데니스 텐 차량 사이드 미러 가격 얼마였길래…살해 용의자 2명 모두 검거

    카자흐스탄 피겨 영웅 데니스 텐(25)을 살해한 2명의 용의자가 모두 체포된 가운데, 이들이 훔치려던 사이드 미러 가격은 얼마였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1일 연합뉴스가 현지 매체 카진포름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데니스 텐의 렉서스 GX460 차량 사이드 미러 중고품은 현지에서 약 1만 7000원부터 거래되고 있다. 해당 차량 사이드 미러 좌우 양측의 호환 부품 새 제품이 약 17만원이고, 정품은 약 50만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품상에 따르면 훔친 사이드 미러는 되판다고 해도 17만원 이하에 거래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고급 차종 사이드 미러 도난 사고가 흔하게 벌어진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카자흐스탄 옛 수도이자 경제중심 도시인 알마티시에서 10년째 자동차 부품상을 한다는 상인은 최근 사이드 미러를 팔러 오는 사람이 오면 어디서 구했느냐고 묻고 바로 경찰에 연락한다고 전했다. 한편 데니스 텐을 살해한 용의자 2명은 21일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카자흐스탄 내무국장은 “체포된 두번째 용의자는 23세의 (카자흐 남부) 키즐오르다 주 출신 아르만 쿠다이베르게노프”라고 밝혔다 쿠다이베르게노프는 자신이 데니스 텐을 흉기로 공격했다고 자백했다고 내무국장은 전했다. 앞서 카자흐 경찰은 데니스 텐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첫번째 용의자인 남부 잠빌주 출신의 누랄리 키야소프(24)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키야소프도 변호사 앞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현지 매체가 검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데니스 텐은 지난 19일 오후 3시쯤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괴한 2명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알마티 출신인 데니스 텐은 대한제국 시절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의 외고손자다. 그의 성씨인 ‘텐’은 한국의 정씨를 러시아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데니스 텐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카자흐스탄 최초로 동메달을 따면서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라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데니스 텐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스포츠 인사들은 물론 카자흐스탄 내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데니스 텐의 장례는 오는 21일 오전 10시쯤 알마티 시내 발루안 숄락 스포츠 센터에서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와 알마티시 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식 뒤 시신은 알마티시 인근의 ‘우정의 마을’ 공동묘지로 옮겨져 안장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데니스 텐 살해 용의자 2명 모두 검거…21일 문화체육부 장으로 장례

    데니스 텐 살해 용의자 2명 모두 검거…21일 문화체육부 장으로 장례

    카자흐스탄 피겨 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25)을 한낮에 흉기로 찔러 살해한 용의자 2명이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20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내무국장을 인용, 데니스 텐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 중이던 두 번째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내무국장은 “체포된 두번째 용의자는 23세의 (카자흐 남부) 키즐오르다 주 출신 아르만 쿠다이베르게노프”라고 밝혔다 쿠다이베르게노프는 자신이 데니스 텐을 흉기로 공격했다고 자백했다고 내무국장은 전했다. 앞서 카자흐 경찰은 데니스 텐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첫번째 용의자인 남부 잠빌주 출신의 누랄리 키야소프(24)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키야소프도 변호사 앞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현지 매체가 검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카자흐 검찰청과 내무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특별 관리하에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도 이날 자국 내무장관과 검찰총장에게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또 유족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데니스 텐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데니스 텐은 지난 19일 오후 3시쯤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괴한 2명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알마티 출신인 데니스 텐은 대한제국 시절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의 외고손자다. 그의 성씨인 ‘텐’은 한국의 정씨를 러시아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데니스 텐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카자흐스탄 최초로 동메달을 따면서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라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데니스 텐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스포츠 인사들은 물론 카자흐스탄 내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데니스 텐의 장례는 오는 21일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와 알마티시 장으로 치러진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장례식은 오는 21일 오전 10시쯤 알마티 시내 발루안 숄락 스포츠 센터에서 거행된다. 장례식 뒤 시신은 알마티시 인근의 ‘우정의 마을’ 공동묘지로 옮겨져 안장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데니스 텐 장례식 문화체육부장으로 21일 엄수…살해 용의자 1명 검거

    데니스 텐 장례식 문화체육부장으로 21일 엄수…살해 용의자 1명 검거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데니스 텐의 장례가 오는 21일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와 알마티시 장으로 치러진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장례식은 오는 21일 오전 10시쯤 알마티 시내 발루안 숄락 스포츠 센터에서 거행된다. 장례식 뒤 시신은 알마티시 인근의 ‘우정의 마을’ 공동묘지로 옮겨져 안장된다. 데니스 텐은 지난 19일 오후 3시쯤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괴한 2명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20일 용의자 1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 용의자는 변호사 앞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현지 매체가 검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경찰은 다른 용의자 1명의 신원도 밝혀내고 추적하고 있다. 데니스 텐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스포츠 인사들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알마티 출신인 데니스 텐은 대한제국 시절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의 외고손자다. 그의 성씨인 ‘텐’은 한국의 정씨를 러시아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데니스 텐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카자흐스탄 최초로 동메달을 따면서 카자흐스탄에서도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라 큰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보물선’ 돈스코이의 기구한 항로와 두 남자 이야기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보물선’ 돈스코이의 기구한 항로와 두 남자 이야기

    30분 만에 결정난 해전 150조 원의 금궤를 실었다는 보물선 돈스코이호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으로 복더위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실려 있는 금궤의 추정량은 200톤에서 0.5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진실은 가라앉아 있는 돈스코이만 알고 있을 뿐이다. 1904년 10월 15일, 러일전쟁 중 발틱 함대의 일원으로 발트 해의 리바우 항을 출발, 아프리카를 에둘러 극동에 이르는, 장장 2만 9000km라는 사상 최장의 원정길에 올라, 7달의 항해 끝에 이듬해 5월 동해에 도착했지만, 일본 연합함대의 집중포화를 받고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돈스코이의 침몰 뒤에는 두 사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바로 발틱함대의 제독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와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太郞)가 그 당사자들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맞부딪친 이 57살 동갑내기 두 남자의 이야기를 간략히 풀어보기로 하자. 로제스트벤스키는 당시 세계 2위의 전력을 자랑하는 러시아 발틱 함대의 제독이었고, 그의 맞수인 도고는 러-일전쟁 때 “나라의 운명이 이 일전에 달렸다”면서 출전하여, 당시 막강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깨부순 일본 연합함대의 제독이다. 일본에서는 구국의 영웅이자 전신(戰神) 같은 존재다. 50척에 이르는 대선단을 거느린 발틱 함대와 상대적으로 열세인 일본함대가 맞닥뜨린 것은 1905년 5월 27일 02시45분, 쓰시마 해협에서였다. 당시 세계 최강인 영국해군과 프랑스 해군은 3 대 1의 전력 우위에 있는 발틱 함대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일본 조야도 망국의 불안감에 짓눌려, 신사를 찾아 승전을 기원하는 인파가 끊이질 않았다. 발틱 함대는 한 척의 순양함을 앞세우고 2열 종대로 항진해오고 있었다. 모두 50척에 이르는 대선단이었다. 발틱 함대는 애초 여순항을 목적지로 삼았지만, 여순항이 일본군에게 함락되는 바람에 침로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돌렸다. 오랜 항해로 피폐해진 전력을 가다듬어 일본함대와 결전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길목을 일본연합함대가 막아서 있었다. 연합함대의 도고는 3배나 우세한 발틱 함대를 맞아 유명한 정(丁)자 전술을 구사해 교전한 끝에 놀랍게도 압승을 거두었다. 이 전술은 2열종대로 오는 적함들을 일자형으로 가로막고 맨 선두 함에다 포화를 집중시킨다는 개념이었다. 적함은 종대로 오기 때문에 함포 사격에 크게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한 일본 군사학자에 의하면, 이 정자 전법이 이순신의 학익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포격전의 승패는 30분 만에 갈렸다. 함대의 기동과 병사의 훈련도, 포 명중률과 발사빈도에서 발틱 함대는 연합함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노쇠하고 부패한 러시아 제국의 축소판이었다. 3대 1의 전력차라는 것은 허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포술에 매진했던 일본해군의 포 명중률은 거의 10%에 달했다. 열 발을 쏘면 한 발은 적함을 충격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발틱 함대의 명중률은 연합함대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급 지휘관들은 부패했으며,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로제스트벤스키는 작전명령의 번복을 거듭하며 오락가락했다. 어쨌든 이 해전에서 발틱 함대의 45척 함정 중 일본군의 함포를 피해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으로 간신히 돌아간 것은 구축함 2척, 경순양함 1척이 고작이었다. 주요 전함 12척 중 8척은 격침, 나머지는 포로, 순양함 5척, 구축함 7척 침몰, 전사 4,800명, 포로 6천 명. 그야말로 발틱 함대의 궤멸로, 세계가 경악한 완패였다. 러시아 최강의 대함대가 한순간에 소멸해버린 것이다. 두 남자의 이야기 그러나 러시아 해군에게는 이보다 더한 치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상을 입고 기함에서 어뢰정으로 옮겨져 탈출하던 발틱 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가 포로로 잡히고 만 것이다. 포세이돈의 저주가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세계 해전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해전의 경우 패배한 쪽의 제독은 대개 끝까지 항전하다가 자침을 선택하는 것이 종래의 전통이었던 것이다. 군의관인 아버지 덕으로 일찍이 출세가 보장된 해군사관학교에 어렵지 않게 입학했던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총명함과 강한 의지, 청렴한 성품으로 임관 후에도 승승장구, 쉬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마침내 발틱 함대의 사령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무인은 못되었다. 불 같은 성격이었으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주위의 호감을 모았다. 자연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엽색행각도 보통을 넘었던 모양으로, 자기 상관의 부인과도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전투에 임해서는 소심해졌고, 냉철함을 잃고 허둥댔다. 그는 결코 겁 많은 사내는 아니었다. 오히려 강철의 의지와 위엄을 갖춘 몇 안되는 러시아 제독 중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부하와 배를 믿을 수 없었고, 자신감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함대를 패전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으며, 부하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도고가 117명의 전사자를 낸 데 비해 그는 무려 그 40배가 넘는 4,830명의 부하를 잃었다. 반면, 도고 헤이하치로는 궁벽한 시골의 하급 무사 집안 출신이었다. 생업 꾸리기에도 급급하던 집안이었지만, 애국심만은 남달라 16살에 벌써 영국 함대와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 경험으로 오직 강한 해군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을 품게 되어 지방해군에 투신했고, 메이지 유신 때는 막부 해군과 싸웠다. 나중에 영국해군사관학교에 8년 동안 유학하며 해전과 넬슨을 공부했다. 도고는 작달막한 키에다 외모도 별 볼 것이 없었고, 그런 데는 관심도 갖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의 머리속에는 ‘해군’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나라의 흥망이 걸린 건곤일척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조국을 지켜냈으며, 부하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냈던 것이다. 더불어, 그 동안 3류 국가로 취급받던 일본을 단번에 서구 열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쓰시마 해전은 이 같은 두 남자의 전 생애가 맞부딪쳐 승부가 결판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돈스코이의 영웅적인 저항 지금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발틱 함대의 순양함 돈스코이는 개전 이튿날인 5월 28일 오후 일본 군함의 추격을 받으며 북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돈스코이 함장 레베데프 대령은 적의 끈질긴 항복 권유를 뿌리치고 혼자서 11척의 일본 순양함, 어뢰정들과 맞서 영웅적으로 항전했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함장 자신도 큰 부상을 입고 패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도착, 한밤중에 승조원들을 하선시킨 돈스코이는 5월 29일 이른 아침 저동 앞바다에서 자침하게 되고 승조원들은 보트로 탈출했다. 돈스코이의 영웅적인 항전은 오늘까지도 러시아 해군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쓰시마 해협, 곧 대한해협을 지나는 러시아 해군과 여객들은 113년 전, 쓰시마 해협에서 울릉도 해역에 이르는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4,830명 승무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의식을 올리고 푸른 파도 위로 꽃다발을 던진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구국의 영웅이 된 도고가 쓰시마 해전이 끝난 후 세계 각국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세계 해전사상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제독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한 영국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물론 ‘넬슨 제독’이라는 답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고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영국의 넬슨 제독은 내가 감히 견줄 수 있겠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내가 그 신들메를 맬 자격도 없소이다.”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25대 30의 열세에서 싸워 이겼고, 도고는 3 대 1의 열세에서 승리했으나, 이순신은 10대 1, 20대 1 열세의 전투에서도 23전 23승 전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도고 함대가 출전을 앞두고 함상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가졌다는 사실에서도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고는 또 “충무공이야말로 군신이다. 나를 충무공에 비교하지 말라. 군신에 대한 모독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메이지 때부터 일본 해군은 이순신학을 배워 전통으로 삼았으며, 그후 정기적으로 통영 충렬사를 방문해 이순신 장군 진혼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의 한 군사학자는 이순신을 두고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세계의 전사에서 그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한 분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데니스 텐의 구상 영화화 베크맘베토프와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데니스 텐의 구상 영화화 베크맘베토프와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25세 짧은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은 지난해 9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홈페이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각본을 써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잇단 부상의 늪에 빠져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27위로 마감한 뒤 은퇴만 선언하지 않았지 사실상 운동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은 그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기 엿새 전인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출신 영화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57)가 주최한 ‘스크린라이프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2008년 제임스 맥어보이와 앤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원티드’로 이름을 널리 알린 뒤 2016년작 ‘벤허’ 로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텐은 청각장애 소녀와 말을 못하는 남자의 관계에 대한 영화로, 모든 대사가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스크린라이프 방식으로 촬영하겠다는 구상을 털어놓았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진 뒤 인터넷에서 그의 구상이 스크린에 옮겨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요구가 빗발쳤고 베크맘베토프 감독이 응하기로 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20일 전했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엄청난 비극”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한 뒤 “재능 많았던 텐에게 영화를 바칠 수 있도록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이미 같은 기법으로 영화 제작을 끝낸 뒤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안나 에렐의 자전소설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In the Skin of a Jihadist)’을 스크린에 옮긴 ‘프로파일’이. 에렐은 이슬람 국가(IS)의 리쿠르트망에 걸려 들어 지하드(성전)에 가담했다가 탈출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방송기자가 IS에 잠입 취재를 시도하며 겪는 얘기를 책으로 냈는데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주인공의 데스크톱으로만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식으로 연출했다. 그는 이미 같은 방식으로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Unfriended’와 다음달 3일 미국 선댄스 영화제 초청작인 ‘서칭’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피겨선수 데니스 텐 사고현장 CCTV…용의자들 생명 빼앗고도 뻔뻔

    피겨선수 데니스 텐 사고현장 CCTV…용의자들 생명 빼앗고도 뻔뻔

    카자흐스탄 피켜스케이팅 선수 데니스 텐(25)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카진포름 등 현지매체는 데니스 텐이 알마티에서 괴한에게 피습당해 19일(현지시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데니스 텐은 이날 오후 3시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는 범인 두 명과 난투극을 벌이다 흉기에 찔려 약 23분 만에 구급차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약 3ℓ의 출혈이 있었다. 예르잔 쿠트고진 중앙병원 부원장은 텐의 사망 경위에 대해 “우측 상부 세 번째 갈비뼈 부근의 자상이 깊어 온갖 응급조치에도 끝내 사망했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언론이 사고 직후 공개한 CCTV 영상에는 데니스 텐의 살해 용의자 2명이 환한 대낮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유유히 현장을 벗어나는 모습이 담겼다. 목격자 중 한 사람인 세르게이는 구급차에 실려 갈 당시 데니스 텐의 한쪽 다리에 혈흔이 낭자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 2명을 수배하고 있다.데니스 텐은 구한말 의병장인 민긍호 선생의 고손자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선수 이력에 ‘한국 민긍호 장군의 후손’이라고 표기했고, 한국 역사책을 읽으며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2013년 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카자흐스탄 사상 첫 메이저 국제대회 피겨 메달을 획득했고,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카자흐스탄 피겨 영웅이 됐다.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와 올해까지 4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인대 부상에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해 참가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웃었던 그였지만 평창올림픽이 열린 해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연아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무 충격적이다. 정말 성실하고 피겨스케이팅을 너무 사랑했던 선수였다. 가장 열정적이고 훌륭한 스케이터를 잃어 너무나 슬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추모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데니스 텐과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며 추모했고, 알마티시민들은 사건 현장인 쿠르만가지-바이세이토바에 꽃을 놓으며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여기는 남미] 메시와 베트맨의 멋진 콜라보…어린이 병원에 선행

    [여기는 남미] 메시와 베트맨의 멋진 콜라보…어린이 병원에 선행

    아르헨티나의 '평범한 영웅' 베트맨이 또 다른 영웅담을 썼다. 이번엔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와의 멋진 콜라보를 통해서다. 19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베트맨은 최근 메시의 대표팀 유니폼을 경품으로 내건 추첨행사를 통해 얻은 수익금 11만2100페소를 라플라타 어린이병원에 전액 기부했다. 미화로 환산하면 약 4000달러, 원화로는 약 455만원이다. 어린이병원은 전달 받은 돈을 병동 보수공사에 쓰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베트맨은 "십시일반 힘을 보태주신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면서 "덕분에 아픈 아이들이 지금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평범한 영웅'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 베트맨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선행가다. 그가 슈퍼히어로 베트맨 복장을 하고 처음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3년 4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주도 라플라타의 한 병원을 찾아간 베트맨은 입원치료 중인 아이들을 위로하고 사라졌다. 슈퍼히어로가 난데없이 등장하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이후 그는 한 주도 빼지 않고 금요일마다 라플라타의 병원들을 순회하며 어린이 환자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있다. 사정이 어려운 병원엔 도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입원치료를 받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지금까지 그가 기증한 대형 TV만도 25대에 이른다. 그런 그를 이번엔 메시가 도왔다. 메시는 싸인한 자신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베트맨에게 지원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아이들을 도우라는 취지였다. 베트맨은 메시의 유니폼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를 추첨행사했다. 누구든 원하는만큼 돈을 내면 참가할 수 있는 오픈형 이벤트였다. 추첨에서 행운을 잡은 건 라플라타에 사는 한 할머니였다. 베트맨은 메시의 유니폼을 액자에 넣어 할머니에게 전달하고 수익금은 라플라타 어린이병원에 전액 기부했다. 베트맨은 "추첨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나에겐 바로 로빈"이라면서 "든든한 로빈이 많아 이 세상은 분명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진=디아리오이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카자흐 피겨 영웅 데니스 텐 흉기 사망…민긍호 항일 의병장 외고손자로 유명

    카자흐 피겨 영웅 데니스 텐 흉기 사망…민긍호 항일 의병장 외고손자로 유명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영웅이자 ‘의병장의 후손’인 한국계 데니스 텐(25)이 19일 한낮에 흉기에 피습당해 숨졌다.카진포름 등 현지 매체는 데니스 텐이 이날 알마티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병원에 후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아구르탄벡 무하메디울리 문화체육부 장관은 데니스 텐이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는 범인 2명과 난투극을 벌이다 칼에 찔렸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엘나르 아킴쿠노프 보건부 대변인은 텐이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데니스 텐과 난투극을 벌인 범인 2명을 수배하고 있다. 알마티 출신인 텐은 대한제국 시절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이다. 그의 성씨 텐은 한국의 정씨를 러시아어에서 쓰는 키릴 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텐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와 계약을 맺었으며 올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민긍호 선생은 1907년부터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나 이듬해인 1908년 일본군에 의해 피살, 순국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6살이던 1888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돌연 극동 무역업에 뛰어들면서 세 아들에게도 일을 맡기는데, 이는 나중에 베델이 한국을 찾아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토머스 행콕은 15년 넘게 브리스톨의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다가 1886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본 무역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샐러리맨이 불혹(不惑)의 나이에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동업자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지원이 컸다. 19세기까지 ‘대영제국’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글로벌 무역 패권을 장악한 중심 국가였지만 상대적으로 일본과의 무역은 활발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한국과 일본을 지금도 ‘극동’(Far East)이라고 부르듯 당시 영국인들에게 일본은 ‘세상의 끝’이었다. 당시 니콜은 이미 일본에서 골동품 사업으로 상당한 부를 모은 때였다. 그는 영국과 거리가 멀어 경쟁자가 많지 않은 일본과의 무역을 ‘블루오션’(신성장 사업)으로 보고 사업을 키우고자 토머스 행콕에게 동업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토머스 행콕은 니콜과 함께 일본으로 가 효고현 고베에 ‘니콜 앤드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워 일을 시작했다. 당시 고베는 일본이 외국인에게 사업을 허용한 거류 지역이었다. 2년간 일본에서 업무를 익힌 토머스 행콕은 1888년 영국으로 돌아가 런던 중심가에 ‘베델 앤드 니콜’을 세웠다. 니콜이 고베에서 ‘니콜 앤드 컴퍼니’를 통해 일본산 도자기 등을 보내면 토머스 행콕은 런던에서 ‘베델 앤드 니콜’을 통해 이를 되팔았다.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들의 첫 번째 회사가 ‘니콜 앤드 베델’이 아닌 ‘니콜 앤드 컴퍼니’였다는 점이다. 회사 이름에 동업자인 토머스 행콕이 빠졌다는 것은 사업 초기 그의 기여도가 크지 않았음을 뜻한다. 아마도 니콜이 이 회사 설립 자금 대부분을 대고 토머스 행콕은 시쳇말로 ‘바지사장’ 역을 맡은 것 같다.그렇다면 ‘전주’(錢主)인 니콜은 왜 ‘사업 문외한’인 토머스 행콕과 손을 잡았을까. 두 사람의 동업은 추후 베델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껏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신문은 베델 취재 과정에서 이들이 동서지간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니콜의 후손을 통해 토머스 행콕의 아내 마사 제인 홀름(1848~?)과 니콜의 아내 세라 홀름(1953~1898)이 자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간 ‘P.A. 니콜’로만 알려졌던 그의 정확한 이름도 찾아냈다. 니콜은 동서인 토머스 행콕이 회계와 영업 일을 해 사업의 기본을 갖췄고 가족이어서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던 것 같다. 1909년 주한 영국총영사 아서 하이드 레이는 조선에서의 베델의 경력을 본국에 소개하기 위한 보고서에 니콜을 베델의 아저씨(uncle)라고 썼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표현을 후견인이나 보호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서울신문 취재로 이모부를 뜻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59)은 “주로 사무실에서만 일하던 증조 할아버지(토머스 행콕)가 왜 갑자기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접고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후손들도 늘 궁금하게 여겼다”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업 관계가 그러하듯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화가 생겼다. 결국 토머스 행콕은 런던에 ‘베델 앤드 니콜’을 설립한 지 3년 만인 1891년 이 회사 이름에서 ‘니콜’을 지우고 ‘베델 앤드 컴퍼니’로 개명했다. 니콜 역시 토머스 행콕과의 교류를 끊고 고베에서 혼자 ‘니콜 앤드 컴퍼니’를 운영했다. 동업이 끝난 것이다. 이후 토머스 행콕은 5년간 혼자 사업을 하다가 1896년 극동 무역을 하는 세 회사와 통합해 ‘프리스트·마리안스·베델·모스 앤드 컴퍼니’라는 긴 이름의 회사를 새로 차렸다. 두 번째 동업이었다. 대외적으로 하나의 회사지만 영업은 기존 네 곳 대표가 독립적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를 묶어 구매력을 높이고 운송·물류비도 줄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 네 개의 무역상이 한데 모인 이 회사 역시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 이해관계가 부딪혀 ‘팀워크’가 깨졌다. 결국 이 회사는 통합 3년 만인 1899년 총회를 열어 기존 이사진을 교체했는데, 토머스 행콕도 이때 손을 뗐다. 두 번째 동업도 막을 내렸다. 이 회사는 지금도 ‘프리스트·마리안스 앤드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남동부 항구도시 켄트에 터를 잡고 영업 중이다.베델은 아버지 토머스 행콕이 런던에 ‘베델 앤드 니콜’을 만든 1888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와 이모부(니콜)가 함께 시작한 무역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모자란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당시 베델은 16살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다.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독립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혼자서 일을 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는 고베에 있던 ‘니콜 앤드 컴퍼니’에 들어가 이모부에게 실무를 배웠다.토머스 행콕은 1896년 네 무역상을 통합한 회사를 차린 뒤로 줄곧 일본 지점을 맡아 일했다. 하지만 1899년 이들과의 동업이 깨지자 자신의 일본 사업을 도울 새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는 장남 베델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와서 무역 일을 배운 지 10년이 넘어 자금과 능력은 충분했다. 아버지의 동업 실패가 베델에게 창업 기회를 준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같은 해 동생 허버트(1875~1939)와 런던에 무역회사 ‘베델 브러더스’를 세웠다. 이때 토머스 행콕이 50살, 베델이 27살이었다. ‘베델 브러더스’는 베델 형제 무역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베델과 허버트는 일본에서 활동했고 런던 사무소는 주로 막내동생 아서 퍼시(1877~1947)가 지켰다. 세 아들이 협력해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본 토머스 행콕은 이들을 믿고 일선에서 물러나 부유한 은퇴 생활을 즐겼다. 이후 ‘베델 브러더스’는 처음 문을 연 런던 쇼디치 폴 스트리트 87·89번지에서 100년 가까이 영업하다가 1991년 영국 중부 리즈로 이전했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최근 경영이 어려워져 폐업했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베델)의 유산이 이렇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베델 회사가 있던 건물은 지어진 지 100년이 넘어 ‘리스티드 빌딩’(등록문화재)에 올라 있다. 바로 옆 사무실인 91번지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영국인 피터 설링스는 “(베델 브러더스가 있던) 쇼디치 지역은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극단을 운영했던 곳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에 베델과 같은 숨은 영웅의 이야기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감탄했다. 런던·브리스톨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美FBI, 2008년까지 만델라 위험인물로 여겨 감시했다

    美FBI, 2008년까지 만델라 위험인물로 여겨 감시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영웅이자 인종차별 철폐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사진?·2013년 사망) 전 대통령을 미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로 간주해 2008년까지 감시했던 사실이 드러났다.로이터통신은 18일(현지시간) 미 시민단체 ‘국민의 재산’이 수년간 정보 공개 소송을 통해 이런 내용이 포함된 정부 문서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라이언 셔피로 국민의 재산 대표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1950∼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흑인 인권 운동가)를 조사한 것처럼 미국과 남아공 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반대 운동을 공산주의 음모와 연계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미 정부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해 경제 제재를 부과하던 시기(1980년대)는 물론 만델라가 석방되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FBI는 여전히 만델라와 그가 이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다 보고 지속적으로 감시했다”고 덧붙였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1994~1999년)를 마치고 물러난 뒤인 2008년까지 FBI의 감시 명단에 올라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냉전 당시 남아공이 미국·소련 간 첩보전이 활발히 벌어지는 장소였고 인근 국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가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아공 집권 여당인 ANC는 남아공공산당(SACP)과 연정을 하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아스달 연대기’ 측 “송중기·장동건·김지원·김옥빈, 출연 검토 중”

    ‘아스달 연대기’ 측 “송중기·장동건·김지원·김옥빈, 출연 검토 중”

    송중기, 장동건, 김지원, 김옥빈이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출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tvN 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김원석) 측 관계자는 “송중기, 장동건, 김지원, 김옥빈에게 출연을 제안한 것은 맞으나 현재 최종 조율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tvN 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한국 최초로 고대 인류사를 그리는 판타지 드라마다. 가상의 땅에서 ‘나라’를 만들어가는 영웅, 반영웅의 이야기가 담기는 ‘아스달 연대기’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를 공동 집필한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차기작이며, 드라마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이 합류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tvN 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오는 2019년 상반기에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자문역 71주년 순교자의 날 참배

    [포토]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자문역 71주년 순교자의 날 참배

    미얀마 국가자문역 및 외교장관인 아웅산 수치여사가 국가공휴일인 제71주년 순교자의 날을 맞이하여 독립영웅이자 아버지인 아웅산장군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순교자의 날은 독립영웅 아웅산이 암살당한 날이다. AFP=연합뉴스
  • [인터뷰 플러스] 美 카네기홀에 ‘황해도 굿’ 선보인다… 한민족 신명 춤사위 ‘덩실’

    [인터뷰 플러스] 美 카네기홀에 ‘황해도 굿’ 선보인다… 한민족 신명 춤사위 ‘덩실’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우리 민속 ‘황해도 굿’이 오를 전망이다. 강신무로 황해도 굿을 전승한 운바기 선원 무당금파(본명 이효남·51·사무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공연예술 황해도 굿이다. 그의 카네기홀 공연은 우리 민속 굿이 공연예술의 한 장르로서, 또 한국인 무당으로서는 처음이다. 무당금파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카네기홀 공연기획자와 만나 내년 초 공연을 열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세부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카네기홀 공연이 결정되는 과정과 시기를 보니 ‘이게 내 뜻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는 시대에 한민족 평화의 봉화를 높이 드는 것 같다”고 전제한 다음 “하늘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무당금파에 따르면 그의 이번 카네기홀 공연프로젝트는 ‘한민족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2015년 11월 1일 ‘치우천황 넋을 기리며’란 주제로 열린 ‘나라 통일굿’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민족의 역사문화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무속인과 민속굿’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몇몇 위정자들에 의해 폄훼되고, 심지어 말살되는 아픔이 있다. 특히 한민족의 걸출한 영웅인 배달 한국의 14대 환웅 치우천황이 탁록에서 황제헌원에게 패함으로써 그 몸이 100각으로 잘려 흩뿌려진 원한으로 상징된다. 하지만 그 원형은 황해도 굿에 담겨져 전승돼 온 만큼 카네기홀 공연은 한민족의 한풀이인 동시에 세계로 웅비하는 신명 춤이란 해석이다. 특히, 최근 국제정세가 동북아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의 이행에 집중되는 시점과 맥을 같이하면서 ‘카네기홀 황해도 굿 공연’이 갖는 상징성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축하공연’이란 성격에다 한민족의 한풀이 내지는 살풀이에 비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당금파는 “한반도의 대전환으로 세계가 평화로 나가는 변곡점을 지나는 만큼 한민족의 살아있는 정신이자 혼을 담은 ‘예술로서의 굿’으로 세계와 소통할 새로운 굿을 창작할 때가 왔다”면서 “황해도 굿에 뿌리를 둔 새로운 공연 굿으로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아리랑 굿’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무당금파는 1999년 수원 팔달산에서 무불통신 후 신내림굿으로 무속인이 된 다음 6년에 걸쳐 황해도 굿의 세 장르인 도시굿·산굿·배굿을 대표하는 세분의 선생으로부터 6년에 걸쳐 전수받아 이를 종합한 ‘새로운 황해도 굿’을 선보여 왔다. 셋이 모여 독창적인 ‘금파무당만의 황해도 굿’으로 재해석·재창조 됐다는 의미다. 나아가 카네기홀 공연을 계기로 ‘금파의 황해도 굿’이 세계의 아리랑 굿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무당금파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 운바기 선원 창밖으로 비친 정원을 가리키며 “학이야, 두리미야, 뭐야, 아침부터 저기에 날아와 지금껏 노닐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고개 돌려 보니 백로였다. 백로는 우아하고 고귀한 자태로 청결·강직하고 주체성이 강해 신선이 탄다는 학(鶴)과 함께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임하여 민족의 염원대로 평화로운 대한민국, 번영하는 한반도가 속히 오길 기대해 본다. 무당금파와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한 운바기 선원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편집자 주→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내년 초순경에 ‘황해도 굿’을 무대에 올리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예상 밖으로 신선한 도전입니다. -3~4년 전부터 샌프란시스코 시티홀 공연을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한인사회의 주류이다 보니 용납이 안 됐습니다. 우리 민속의 전통을 간직하며 전승돼 온 전통예술로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외국 사람들의 경우 우리나라 굿을 보면 같이 뛰고, 같이 춤추면서 되레 ‘반한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미쳐요. 제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황해도 굿을 하면서 ‘이것은 예술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1999년 무당이 된 후 2001년 경기도 이천 도자기 축제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 후 2015년에는 광화문에서 ‘치우천황을 기리며’란 주제로 기우제 성격의 공연예술로 하늘굿을 했습니다. 당시의 공연은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자’는 취지였죠.그러다 지난달 미국 뉴욕을 업무차 방문하게 됐는데요. 카네기홀 공연기획자를 우연히 만나게 됐고, 그 자리에서 내년 초순경에 황해도 굿을 카네기홀에 올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우리 민속의 예술성을 해외 무대에 올려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시작했는데요. 합의되는 순간 몇 년 전부터 준비는 제가 해 왔지만 ‘이것은 내 뜻이 아니구나. 하늘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주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고, 한반도가 세계 평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시점에서 ‘카네기홀의 황해도 굿’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잖습니까. 하늘의 뜻이라고 저는 봅니다. →황해도 굿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겁니까. -물론 강신무로 신내림을 받을 때 황해도 굿과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황해도 굿은 크게 개성을 중심으로 한 도시굿, 산신을 모시는 산굿, 서해안의 용궁을 모시는 섬굿이라고도 하는 배굿 등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저는 이 세 굿을 당시를 대표하는 세분의 선생들로부터 6년에 걸쳐 배웠습니다. 세분 선생을 모시고 같이 굿을 하다 보니 손짓, 발짓, 몸짓에서 뿜어내는 추임새에서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엮어진 거죠. 어느 순간에 배워진 거죠. 삼법귀일이라고 할까요. 셋이 모여 무당금파만의 황해도 굿으로 승화됐습니다. 특히 연극을 전공한 덕분으로 무대예술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을 생각해 줘야 했고, 손·발·몸짓의 동작과 추임새 하나하나를 관객들의 시선에 맞추다 보니 ‘무당금파 스타일’로 황해도 굿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통 굿을 전승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통은 아닌 거죠. 저는 그래서 ‘짬뽕이다’고 말합니다. →앞서 ‘한민족 바로 알기’로 ‘치우천황을 기리며’란 주제로 공연을 하셨다고 했잖습니까. 어떤 연유인가요. -저는 치우천황을 모신 무당입니다. 제게 신으로 오실 때 ‘시커먼 양반이 도깨비다’하시면서 오셨죠. ‘도깨비라니, 무슨 신이지?’ 하면서 한민족의 역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마고 할매와 한인·한웅·단군이 엮이고 단군만 해도 한 분이 아니라 마흔일곱 분이 계신 거예요. 사실 저는 단군이 한 분인 줄 알았거든요. 그때 혼란이 왔죠. 또 도깨비란 배달 한국의 14대 환웅이신 치우천황을 말하는 거고, 또 전쟁 신으로서 전쟁을 하면서 청동 가면을 쓰신 연유로 도깨비로 불리게 됐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탁록 전투에서 황제헌원에게 패함으로써 그 몸이 100각으로 잘려서 천지사방으로 흩뿌려졌다는 것도 알게 됐죠. 분명히 우리 조상이고, 역사인데도 학교에서 국사 시간에 전혀 배우지 못한 사실들을 알게 된 거죠. 한 예로 황해도 굿에 ‘군웅푸리’가 있습니다. 돼지를 육각, 팔각으로 뜨는 행위가 치우천황의 한풀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됐죠. 그렇다면 돼지는 황제헌원이겠죠. 그래서 2015년 11월 1일 ‘나라 통일굿’으로 기우제 성격의 하늘굿을 공연했습니다. 민족혼이 스며 있는 민족굿의 공연예술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자는 취지였던 것, 맞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에서 말하는 황해도 굿과 ‘공연예술로서의 굿’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요. -굿은 보통 재가집이라고 의뢰자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굿을 하게 되면 보통 2박 3일을 합니다. 굿에는 거리라고 해서 여러 거리가 있는데요. 연극으로 하면 장막에 비유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그 순서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재가집에 초점을 맞춰 재가집의 발복, 복을 빌어줘야 하는 거죠. 반면 공연예술로서의 굿은 관객입니다. 신을 모시되 2박 3일 분량을 1~2시간 분량으로 압축해 예술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신을 모시되 퍼포먼스를 극대화시켜야 하는 만큼 위험성도 더 커집니다. 가장 큰 위험은 작두타기죠. →현판이 ‘운바기 선원’이던데요. 유튜브를 보면 ‘운바기 기도법’이 나옵니다. 어떤 기도법인가요. -운바기는 ‘운명을 바꾸는 기도법’의 준말로서 한마디로 ‘나만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까지 각자의 종교가 내려왔는데, 그게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내 안의 생명, 양심이 있잖습니까. 많은 성현이 ‘하나님, 한울님’으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내 안의 생명은 나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안의 생명을 찾으면 그 생명이 빛을 발하게 되고, 그러면 유전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암도 고치고, 알코올 중독자도 고침을 받습니다. 내 안의 생명이 깨어나 빛을 발한 결과인 거죠. 그러니까, 기도란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고를 풀어내는 겁니다. 내 안의 하나님, 부처님을 찾는 것이 기도인 거죠. 저는 이를 ‘운바기’라고 이름 붙인 거죠. 그런데 말이죠. 운바기를 하다 보면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상들이 나옵니다. 자살과 타살로 가신 분, 청춘에 가신 분, 세월호처럼 억울하게 간 혼령들이 나옵니다. 자기네가 억울하게 가신 조상들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기도만으로 풀어서 해원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때 굿으로 그분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겁니다. 무당금파가 굿을 많이 하는 이유죠. 그래서 운바기는 자신의 업과 조상의 업을 풀어내는 신법, 불법, 도법으로 나뉘는데요. 죽어서 극락 가고, 천당 가자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자는 거죠. 그러자면 스스로 유전병을 고치고, 미리 병을 발견해서 치유하자는 겁니다. 그래야 원귀가 안 되고, 후손들이 편하다는 거죠. →그럼, 무당은 어떻게 되셨고, 앞으로 비전은 무엇인가요. -1999년도에 수원 팔달산에 소주 들고 인사 갔다가 새벽 4시경에 무불통신으로 신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돈이 없어 종살이 5년 하기로 하고 ‘신내림굿’을 했는데, 그 신굿이 6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50만원 월셋집에 15만원을 내지 못해 비 오는 장마에 짐을 마당에 비닐로 씌우고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9년을 그렇게 전전긍긍으로 살다가 2008년 태백산 약수암으로 갔습니다. 잠잘 집과 먹을 것이 없어 어쩔 수가 없었죠. 그렇게 3년, 1060일을 꼼짝 못 하고 갇힌 신세가 되어 기도로 세월을 보냈죠. 3년 기도를 마칠 즈음 ‘운바기 기도법’을 터득했고, 2011년 하산했습니다. 운바기 기도가 점차 알려지며 2015년 말부터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꽃이 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한풀이란 우리 민속의 굿을 세계 속에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무당이 되어 나의 한도 풀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계 속에서 치우천황의 한을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황해도 굿으로 카네기홀에 가지만, 다음에 갈 때는 ‘아리랑 굿’으로 승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에는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모 방송에 얻어맞을 때는 화도 나고, 위축도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 치우천황의 탁록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은 아닙니다. 황해도 굿은 단군을 뿌리로 한 전통입니다. 원형을 지켜가겠지만 중간 중간에 음악 등 창작을 결합해서 계속 발전시켜 젊은 세대로 대중화해 나갈 겁니다. 아리랑 굿으로 승화시켜 세계 속에 한민족의 혼을 드높일 겁니다. 응원을 부탁합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천진난만 동굴 밖 소년들 “엄마한테 혼날까 겁났다”

    천진난만 동굴 밖 소년들 “엄마한테 혼날까 겁났다”

    “동굴에 갇혔을 때 (무섭다기보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혼날까 봐 겁났어요.”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동굴에 최장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가 18일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구조된 뒤 치료를 받아 온 이들은 이날 붉은색 멧돼지가 인쇄된 팀 유니폼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자신들을 구조한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과 치료를 담당한 의사 등과 함께 회견장에 나온 이들은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등 건강한 모습이었다. 소년들을 치료해 온 의사는 “치료 기간 아이들의 몸무게가 3㎏가량 늘었고 혈액검사 결과도 좋다”고 말했다. 당국은 앞서 실종 상태에서 열흘을 굶었던 아이들의 몸무게가 2㎏가량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밝은 얼굴로 각자 이름과 나이를 소개하고 고립 당시 상황 등을 설명했다. 소년들을 발견한 영국 잠수전문가와 영어로 대화해 주목을 받았던 아둔 삼온은 “영국에서 온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고 놀랐다”며 구조대와의 첫 만남의 소감을 밝혔다. 동굴에 남아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내 영웅이 된 엑까뽄 찬따웡(25) 코치는 “동굴 안에 들어갔을 때 음식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고 소년들은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만 마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치앙라이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클럽 소속 유소년 선수와 코치인 이들은 지난달 23일 팀원의 생일파티를 위해 매사이 지구의 탐루엉동굴에 들어간 뒤 연락이 끊겼다.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2명의 영국 전문가들에 의해 동굴 안쪽 깊숙한 에어포켓 공간에서 소년들이 발견됐으며, 10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5명을 구조함으로써 13명 전원이 생환했다. 치앙라이 주 정부는 지나친 관심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아이들은 물론 가족들도 일절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포토] 만델라 탄생 100주년 전시회 찾은 해리-마클 왕자 내외

    [포토] 만델라 탄생 100주년 전시회 찾은 해리-마클 왕자 내외

    영국 해리 왕자(오른쪽)와 메건 마클 왕자비 부부가 17일(현지시간)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린 고(故)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참석하고 있다. 흑백 혼혈인 마클 왕자비는 평소 만델라 전 대통령을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이라고 밝혀왔다. AFP 연합뉴스
  • 레지옹 도뇌르… 공항서 에스코트…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레지옹 도뇌르… 공항서 에스코트…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佛대표팀 전원에 국가 최고 훈장 수여 수십만명 운집… 전투기 9대 축하 비행 크로아티아팀 귀국에 55만명 환영“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레퓌블리크(프랑스 만세, 공화국 만세).” 16일 프랑스 파리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는 1.7㎞ 구간의 대로변을 가득 채운 수십만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러시아월드컵에서 20년 만의 우승을 일군 축구대표팀이 이날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금의환향했기 때문이다. 파리 시내는 화려한 축제 현장으로 변했다. 개선문에는 선수들의 행진을 맞아 초대형 삼색기가 내걸렸고, 프랑스 공군의 곡예비행편대 소속 전투기 9대가 청·백·적색의 프랑스 국기 색깔의 연기를 뿜으며 샹젤리제 상공을 수차례 저공비행했다. 개선 행진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우승컵을 안고 돌아온 대표팀을 열렬히 환호했다. 킬리안 음바페, 폴 포그바, 앙투안 그리에즈만 등 선수들과 디디에 데샹 감독 등 코치진은 버스 위에 서서 시민들과 축제를 즐겼다. 주장인 위고 로리스 등 선수들은 우승컵을 번갈아 치켜들고 사인 볼과 수건을 던져 주며 시민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이들이 입은 흰색 티셔츠에는 ‘월드컵 2회 우승’을 상징하는 파란색 별 2개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프랑스는 자국에서 개최한 1998년 월드컵에 이어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후 대표팀은 인근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표팀 전원에게 국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 우승 선수단에게도 이 훈장을 수여했었다. 정부는 월드컵 우승을 기념해 파리 지하철 6개역 명칭을 당분간 주요 선수들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사상 첫 결승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 낸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도 이날 시민 55만명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 크로아티아 공군은 선수단이 탄 비행기가 모스크바를 출발해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에스코트하며 최고의 예우를 했다. 대표팀은 지붕이 없는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수도 자그레브의 반옐라치치 광장까지 가면서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일론 머스크, 영국 출신 태국 동굴소년 구조 영웅에 ‘소아성애자’...막말로 또다시 구설

    일론 머스크, 영국 출신 태국 동굴소년 구조 영웅에 ‘소아성애자’...막말로 또다시 구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15일(현지시간) 태국 동굴소년들을 구조한 영국 잠수 전문가 번 언스워스를 겨냥해 ‘소아 성애자’라고 비난하는 트윗을 올려 도마에 올랐다. 현재 태국 치앙라이주에 살고 있는 언스워스는 지난 8~10일 탐 루엉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 ‘무 빠’(야생 멧돼지) 소속 13명을 구조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태국 네이비실과 함께 현장을 지휘한 인물로 알려졌다. 앞서 그는 지난 13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보낸 구조용 소형 잠수함 ‘미니서브’는 ‘홍보용’에 불과하다. 머스크는 현장에서 빨리 떠나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제작한 사람이 동굴 안의 통로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수함은) 사용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잠수함은 (동굴 안의) 굴곡진 부분이나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용됐다면) 부서지고 처박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머스크는 갑작스런 폭우로 동굴 속에 불어난 물 때문에 고립됐던 ‘무 빠’(야생 멧돼지)를 위해 소형 잠수함을 제작해 지난 10일 구조 현장을 찾았다. 잠수함은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 우주개발 업체인 ‘스페이스X’의 팔콘 로켓 이송관(원통형)에 공기통 등을 부착한 것으로 길이 2m의 원통 형태다. 그러나 구조 당국은 잠수함이 동굴구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잠수대원이 2인 1조로 생존자들을 직접 동행해 탈출하는 방식으로 13명 전원을 구조했다. 머스크는 언스워스의 인터뷰를 본 뒤 트위터에 적대적인 태도로 감정섞인 반박 글을 올렸다. 그는 언스워스를 ‘소아성애자’라고 지칭하며 “동굴5(5번째 거점)까지 소형 잠수함이 문제없이 진입해 구조에 성공했으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비디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영국인(언스워스)을 보지 못했다. 당시 동굴 내 수위는 매우 낮고 안정적이었다. 소형 잠수함은 소년들이 있는 데까지 문제 없이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맞섰다.자신의 과격한 표현이 논란이 되자 머스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데 1달러를 건다”고도 올렸다. 22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머스크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트윗은 삭제된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타인에 대한 공격, 겁박 등을 목적으로 한 트윗 남용을 금지하는 윤리규정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며, 머스크의 트윗이 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머스크는 앞서 지난 5월 실적 발표 컨퍼런스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을 향해 ‘멍청한 질문은 별로다’, ‘제발 우리 주식을 팔고 사지 말라’ 등의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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