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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서 한국 걸그룹 커버 댄스하던 여성 댄서 성희롱 당해

    뉴욕서 한국 걸그룹 커버 댄스하던 여성 댄서 성희롱 당해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한국 걸그룹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 안무를 커버하는 동영상을 촬영한 댄스팀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404 댄스 크루’의 멤버인 인기는 지난달 25일 저녁에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던 중 성희롱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404 댄스 크루’는 춤이 좋아 모였으며, 돈을 벌기 위해 댄스 커버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 대해 소개했다. 인기에 따르면 여성 댄스팀 네 명이 에스파의 노래 ‘넥스트 레벨’ 안무를 하던 것을 지켜보던 한 남성이 중국 댄서에게 접근했다. 이 남성은 자신의 골반뼈를 중국 댄서에게 들이댔고, 여성 댄서는 뒤로 움직이느라 남성이 접근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이 남성의 존재를 알아챈 인기는 “공포에 질렸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으며, 남성이 그녀를 뒤에서 밀치자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네티즌들은 인기의 성희롱에 대한 지적에 “용감한 남성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면서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댓글을 반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쨌든 남성이 여성 댄서의 뒤에서 접근해 몸을 접촉하는 것은 성희롱이자 잘못된 행동이란 것이다. 뉴욕 경찰이 나서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인기는 몇몇 네티즌들이 춤을 추는 여성 댄서에게 접근한 남성을 ‘국민 영웅’이라고 한 데 대해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또 성희롱을 당연시한 네티즌들로부터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인기는 “성희롱은 매우 불쾌한 일로 여성들만이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12시간 방치” 보고서에 담긴 마라도나 사망 이유

    “12시간 방치” 보고서에 담긴 마라도나 사망 이유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지난해 60세의 나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마라도나는 뇌혈전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상태였고,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마라도나의 두 딸은 뇌 수술 후 아버지가 받은 치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고소를 진행했다. 아르헨티나 검찰은 마라도나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치료를 담당해 온 의사와 간호사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마라도나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20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전문조사위원회를 소집했다. 의료조사위원회는 마라도나가 사망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위원회는 7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마라도나가 사망하기 12시간 전까지 위중한 상태였지만 ‘적절한 모니터링’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담당 의료진이 취한 조치가 “부적절하고 불충분하며 무모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최소 12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은 것이 무시됐으며, 자택이 아닌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의료진 7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16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간호사는 변호사를 통해 “그들(의사들)이 디에고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마라도나를 낮에 돌봤다는 이 간호사는 “마라도나가 죽을 것이라는 경고 신호가 많았지만 아무도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라도나 죽음과 관련해 기소된 의료진의 유죄가 인정되면 8년에서 25년 사이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의료진 중에는 마라도나의 개인 주치의인 레오폴도 루케와 정신과 담당 의사도 포함됐다. 루케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며 눈물로 결백을 호소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낙동강 사수 못하면 죽음… 워커 장군의 신념 기억해야”

    “낙동강 사수 못하면 죽음… 워커 장군의 신념 기억해야”

    “월턴 워커(오른쪽) 장군의 낙동강전선 승리는 한국전쟁의 전환점이자 자유세계의 기적이었지만 저평가돼 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봉규(왼쪽) 부경대 유엔문화콘텐츠연구소장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워커 장군이 6·25전쟁 당시 주둔한 캠프 복원과 경관 조성 사업뿐 아니라 워커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 제작 등을 통해 그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소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워커 장군 70주기 특별추도식을 열고 한국전에서 그의 활약상을 미국의 정치권 등에 알리는 등 자국에서 저평가된 워커 장군의 업적 알리기에도 나섰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면서 워커 장군은 잊혀진 영웅이 됐다. 부경대 대연동 캠퍼스(옛 부산수산대학)에 한국전쟁 당시 워커 장군이 낙동강 전투를 지휘했던 임시사령부인 워커하우스가 남아 있으며 현재 대학 임시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 소장은 이곳을 하고자 한다. 워커하우스 정문 입구 앞에 세울 워커 장군의 흉상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흉상 제작 재능기부를 받는 등 많은 사람이 뜻을 같이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유엔 파크 조성, 유엔문화(영화)예술제, 유엔어린이합창단, 유엔장학재단 설립 등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이 직접 쓴 워커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시나리오인 ‘워커 스토리’를 미국의 영화사 등에 보냈다”고 덧붙였다. 워커 장군은 6·25전쟁 때 파병된 미8군 사령부의 초대 사령관으로 낙동강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지키지 못하면 죽음’(Stand or die)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이 전투의 승리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도 간접적으로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함께 참전한 아들의 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하러 가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국제항공기구 美대표 된 ‘설리’ 조종사

    국제항공기구 美대표 된 ‘설리’ 조종사

    2009년 엔진 고장 비행기를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시켜 155명 탑승객 전원을 구했던 ‘허드슨강의 영웅’ 체슬리 버넷 설렌버거(왼쪽)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 대표로 발탁됐다. 한국계인 줄리 정(오른쪽) 국무부 서반구 차관보 대행은 스리랑카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됐다. 또 톰 나이즈 전 국무부 부장관이 이스라엘 대사로 지명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15일(현지시간) 9명의 대사 또는 대사급 대표를 지명했다. 아직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임명해야 할 대사가 많다고 CNN이 전했다. 설렌버거는 자신이 조종하던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떼와 충돌해 엔진이 고장 나자 뉴욕 빌딩숲을 피해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을 성공시킨 미 공군 출신 조종사다. “항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불시착”으로 평가됐던 당시의 이야기는 2016년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으로도 제작됐다. 비상착륙 이후 설렌버거는 항공 안전, 리더십 관련 강연자로도 활동했는데 70세인 올해부터는 국제 항공안전을 담당하는 공직을 맡게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평가했다. 강연 활동을 하는 동안 설렌버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지난해엔 바이든 지지 선거 캠페인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광고에서 설렌버거는 “53년 동안 비행기 조종을 했다. 그 53년은 허드슨강 비상착륙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념을 지켜 온 많은 시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을 몰아낼 투표를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호소하며 바이든에 투표를 독려했다. 줄리 정 지명자 역시 미 국무부 안에서 여성이자 이민자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9월 한 기고문에서 “외교관 생활 중 ‘진짜 미국인을 보고 싶다’는 질문을 반복해 들었던 것이 이민자 외교관의 고충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섯 살 때인 1977년 이민을 가서 1996년 직업 외교관이 된 정 지명자는 미 국무부 한국과에 근무하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태국과 이라크, 콜롬비아, 베트남, 일본, 중국 등에서 근무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美 공화당, 코로나 영웅 ‘파우치 해고법’ 발의…이유는?

    美 공화당, 코로나 영웅 ‘파우치 해고법’ 발의…이유는?

    미국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해고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일명 ‘파우치 해고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16일(현지시간) 미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몇몇 소수 공화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다. 법안은 미 정부로부터 받는 파우치 박사 급여를 ‘0’으로 줄여 사실상 그를 해고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법안은 이와함께 해고된 그를 대체할 전문 인력도 상원의원이 지정하도록 했다. 미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인 파우치 박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모두 7명의 미 대통령을 보좌해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에 핵심 관계자로 참여해 활동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대응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전 미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왔다. 이번 법안이 발의된 까닭은 보수주의자들이 파우치 박사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해 모순된 충고를 했고, 또 미국인을 오도했다고 주장해서다. 그린 하원의원은 “파우치 박사는 미국인이 선출한 것 아니다. 그는 우리 경제를 이끌고 부모의 자녀 교육을 지배하도록 선택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그는 지난 1년간 우리 삶을 매우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파우치 박사가 미국인을 오도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연구소 유출설 등을 일축했다는 내용이 담긴 그의 이메일을 공개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해당 메일이 공개되자 미 백악관은 즉시 파우치 박사를 옹호하며 그를 “전염병 대응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법안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에서 표결 받지 못할 것이라고 AFP는 내다봤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송영길 “재보선 참패, 집값상승·내로남불에 대한 심판”

    송영길 “재보선 참패, 집값상승·내로남불에 대한 심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민주당의 당심과 민심이 괴리된 결정적 이유는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반성했다. 송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송 대표는 이어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정 세력에 주눅 들거나 자기검열에 빠지는 순간, 민주당은 민심과 유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며 “집값 상승과 조세부담 증가, 정부와 여당 인사의 부동산 관련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이었다”라고 성찰했다. 이어 “지금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며 “정치부터 변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5월 2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선택했다”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5월 3일 첫날 현충원 참배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됐고, 민주당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 산업화와 민주화의 영웅들을 선양하고 계승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야 국회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전수조사와 그에 대한 후속조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송 대표는 “조국의 시간을 국민의 시간으로 전환했고, 내로남불 민주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넘어 12명 국회의원의 탈당을 요구하는, 정당 사상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라며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5당도 국민권익위에 부동산 전수조사를 의뢰했고, 진정성 있는 후속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먼저 부동산 투기의혹 검증을 받아야 LH 직원 등 다른 공직자와 지방의원들의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고 감시 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를 향해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5.18 묘역에서 무릎 꿇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사과한 기반 위에 탄생했다”라며 “잘못을 합리화하는 정치가 아니라 자기반성과 개혁을 통해 국민을 받들고 봉사하는 정치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참여 의사를 표시했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아울러 송 대표는 “6월 임시국회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간다”면서 “이번 국회를 ‘국민의 시간’, 그리고 ‘민생의 시간’으로 만들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소상공인 손실보상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행정명령 대상 업종은 물론 여행업과 공연계 같은 경영위기 업종까지 당과 정부는 폭넓고 두터운 피해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전히 회복이 더딘 서민경제와 골목상권, 고용시장 회복을 위해 재정의 보다 책임 있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라며 “당과 정부는 소상공인 피해 추가지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신용카드 캐시백 등 ‘3종 패키지’를 중심으로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수술실 CCTV설치법’ 처리 역시 시급하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법”이라며 “온전한 ‘국민의 시간’, 그리고 ‘민생의 시간’을 위해 야당의 대승적 협력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야당의 협조를 부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2017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24.4%를 감축하는 것”이라며 “최소한 40%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8년 이내에 관철하지 않으면, 우리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울광장] 민간인 국방장관이 필요한 이유/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민간인 국방장관이 필요한 이유/김상연 논설위원

    1950년 10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며 인해전술을 펴자 12월 이승만 정권은 급히 법을 만들어 17세 이상 40세 미만을 예비 병력으로 모집한다. 애국심 넘치는 청년들이 대거 지원해 50만명 규모의 ‘국민방위군’이 탄생했다. 하지만 부대가 채 자리잡기도 전에 적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국민방위군도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남하 과정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병사가 속출했다. 알고 보니 군 고위층이 병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식량과 의복 예산을 착복해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로 인해 숨진 병사가 수천명에 달했고,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까지 합치면 사망자가 9만명이 넘는다. 길가에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에 가마니를 덮어 둔 참혹한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 등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하자 분노한 여론이 폭발했고 결국 김윤근 사령관 등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절체절명의 전쟁 중에도 부정을 저지르는 우리 군의 놀라운 부도덕성은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한 지금도 그 DNA가 면면히 살아 있는 것 같다. 부하 부사관을 사적인 술자리에 참석하도록 강요한 뒤 다른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버젓이 성추행하고 상관들은 조직적으로 은폐·회유에 나선다. 천문학적 국방 예산은 다 어디에 쓰는지 편의점 도시락만도 못한 급식을 한창 먹을 나이의 병사들에게 거리낌 없이 준다. 대한민국 다른 분야의 수준이 모두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군대처럼 이상한 짓을 대놓고 하는 조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폐쇄성과 상명하복 문화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죄의식이 둔감해졌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국방장관이 사과하고 압수수색을 펼치는 등 뒤늦게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개혁을 다짐한다. 하지만 미덥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반복적으로 들었던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개혁’이란 단어는 원래 살가죽을 벗겨 낸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신의 살가죽을 벗길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개혁하겠다는 다짐은 사실 거짓말이다. 평생 밥 먹는 습관 하나 고치기 힘든 게 인간인데 무슨 수로 그 방대한 조직의 살가죽을 스스로 벗길 수 있다는 말인가. 검찰이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결국은 외부에 의해 개혁을 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흥미롭게도 검찰 개혁을 밀어붙인 여당 안에서도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개혁안에 반대했는데, 그들이 특별히 반개혁적이어서가 아니라 친정(검찰)과 같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검사는 검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사는 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마찬가지로 군인은 군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따라서 군을 정말로 개혁하고 싶다면 민간인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아야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이 나라의 국방장관은 여전히 군인 몫이다. 북한이라는 호전적 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안보 불안을 명분으로 들먹인다. 과연 맞는 말일까.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상시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매일같이 전사자가 나오는 나라다. 하지만 건국 이후 200년이 넘도록 군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은 적은 거의 없다. 한국전쟁 때도, 본토를 핵전쟁 위험에 빠뜨린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미국의 국방장관은 민간인 출신이었다. 자동차 회사 사장 경력을 가진 국방장관도 있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안보를 핑계로 국방장관을 군 출신이 도맡아야 한다는 논리가 군인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의심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대목에서 군에 묻고 싶다. 국방장관이라는 밥그릇은 정말 그토록 악착같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자리일까. 이순신 장군의 압도적 아우라는 마지막 보직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만약 장군의 커리어가 병조판서로 끝났다면 지금만큼의 카리스마가 있을까. 미국의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도 마지막 자리가 사령관이 아닌 국방장관이었다면 지금만큼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을까. 군인에게 국방장관이라는 직함은 커리어의 사족(蛇足)과 같다. 눈부신 제복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장군 출신이 무슨 영광을 더 보겠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국회의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 성우회 등 군 원로들이 앞장서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요구했으면 한다. 계속 이대로 가서 군이 더 망가지면, 그래서 국민적 혐오 집단이 되면 군 출신이라는 명함도 차마 못 돌릴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carlos@seoul.co.kr
  • [윤석년의 소통 가게] 트로트 열풍 뒷이야기/광주대 교수

    [윤석년의 소통 가게] 트로트 열풍 뒷이야기/광주대 교수

    케이팝의 전 세계적 인기만큼 국내 가요, 특히 트로트 열기가 후끈하다. 트로트의 뉴트로 현상이 무척 흥미롭다. 이 열기의 시작은 2019년 2월 말부터 제작 방영된 TV조선의 ‘내일은 미스 트롯’이었다. 송가인이라는 스타가 탄생하면서 당초 예상 외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런 트로트 열풍은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의 부캐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노래가 깜짝 인기를 얻으면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2020년 들어 방송국들은 포맷과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앞다퉈 트로트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지역 축제 등 각종 행사에 단골로 등장했던 트로트 가수들이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면서 각 방송국 트로트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거나 갖가지 경연에 직접 참여했다. 트로트 프로그램 대부분이 10% 후반대의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특히 중장년층 시청자의 정서에 부합된 트로트 프로그램은 동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을 압도할 정도로 인기리에 방송됐다. 지난해 방영된 ‘내일은 미스터 트롯’은 3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올해 시즌 2도 역시 성공리에 마쳤다. 송가인, 임영웅 등 신인 가수들이 스타 반열에 오르는 등 오랜 무명 생활 속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어김없이 보여 주었다. 게다가 이들이 겪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휴먼 스토리도 시청자의 시선을 끌 만했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가수들이 기성 가수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트로트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은 왠지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소 구태의연한 기성 트로트 가수들을 내세운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과 달리 젊은 감각의 연출에 생동감 있고 활기찬 가수들의 노래와 퍼포먼스가 곁들여지면서 트로트 프로그램은 새로 거듭났다. 지난 2년 동안의 트로트 열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았다. 트로트 인기를 처음으로 점화한 TV조선의 ‘내일은 미스 트롯’ 탄생의 배경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2017년 3월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은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재승인에 필요한 점수를 획득하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종합편성채널에 뉴스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 편성을 하도록 조건부 재승인을 허용했다. 이에 뉴스 이외에 드라마와 예능의 제작이 불가피했다. 부랴부랴 전직 방송계의 거물을 회장으로 모시고, 오락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풍부한 지상파 방송 출신 PD를 스카우트했다.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오디션 형식의 ‘내일은 미스 트롯’이 제작됐다. 애당초 기대와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이 났다. 화려하고 다양한 형식의 경연으로 인기를 얻은 이 프로그램은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마무리됐다. 의외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다시 남자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인 ‘내일은 미스터 트롯’을 제작 방영했다. 무려 35.7%의 시청률로 같은 시간대는 물론 전체 오락 프로그램 1위라는 압도적인 성공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오디션에 참여해 좋은 성적을 낸 젊은 트로트 가수들을 여러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트로트의 열기가 여전하지만, 인기가 앞으로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올 하반기 백신 접종이 확대되고 각종 공연과 지역 축제 등 행사가 서서히 개시될 예정이다. 가을에는 야외에서의 행사도 펼쳐질 것이다. 각종 행사장에 가수들의 노래가 빠질 리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젊고 신선한 트로트 가수들이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닐 기회가 분명 늘어난다. 그렇지만 좋은 꽃 노래도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신인 트로트 가수에 대한 대중의 인기도 변덕스러울 수 있다. 트로트의 열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을 지휘해 태평양 전쟁으로 확전시켜 일본 군국주의를 멸망의 길로 이끈 A급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유골이 태평양에 흩뿌려진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히 어느 지점에 흩뿌려졌는지는 미국 정부와 미군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도쿄에 있는 니혼 대학의 다카자와 히로아키 교수가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다가 2018년에야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미국 육군의 연락용 항공기에 탑승한 장교가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 떨어진 태평양 바다 위에 도조와 나란히 교수형이 집행된 전범 6명 등 7명의 유해를 흩뿌린 사실을 기록한 것을 찾아냈다고 영국 BBC가 AP 통신 등의 보도를 인용해 1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후손들이야 늦게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반겼지만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당한 우리 민족으로선 스스로 단죄하지 못한 전범의 유골 존재가 이제야 밝혀진 것을 통탄할 일이다.  도조는 유럽에서의 전쟁을 빨리 매듭지으려던 미국 등 연합군의 관심을 아시아 지역으로 돌려 2차 세계대전을 연장하려 한 원흉이다. 영국 등 옛 제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아시아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야심에서 전쟁을 시작해 수백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전범 중의 전범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48년 11월 사형이 언도됐고, 다음달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교수형으로 처형 당한 도조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함구해왔다. 그곳이 알려지면 애국 영웅으로 여기던 우익 지지자들이 성지로 받들며 순교자로 떠받드는 일이 벌어질 것과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막대한 전쟁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우려해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번에 다카자와 교수가 찾아낸 문서는 루서 프라이어슨 소령이 도조 등의 사형 집행 모습을 참관하고 유해를 화장하는 과정, 항공기에 유해를 싣고 공중에서 살포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는 1948년 12월 23일이라고 찍히고 ‘비밀’ 도장이 박힌 문서에다 “난 다음에 적힌 전범들의 형이 집행된 뒤 이들의 시신을 넘겨받아 화장하도록 감독하고 제8 육군 연락용 항공기에 올라 유해들을 태평양 바다 위에 흩뿌렸음을 확인한다”고 적었다. 그 밑에는 도조 히데키와 다른 6명의 전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장을 마친 뒤에는 유해들을 빠짐없이 모았고, 유해들을 바다 위에서 뿌릴 때도 각별히 주의해 용기를 비워냈다고 적었다.  이듬해 1월 4일 작성한 문서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간대별 상황을 꼼꼼이 기재했다. 그날 새벽 2시 10분쯤 지문 확인을 마친 도조 등 7명의 시신을 담은 관을 2.5t 트럭에 싣고 감옥 밖으로 나와 모터사이클 호송을 붙여 요코하마의 미군 묘지 관리부대에 1시간 30분 뒤 도착해 최종 점검을 했다. 트럭은 다시 아침 7시 25분에 그곳을 떠나 30분 뒤 요코하마 화장터에 이르렀다. 관들을 차례로 트럭에서 내려 각기 “오븐들”에 들어가 10분씩 있었으며 근처를 병사들이 지켰다.  그 뒤 근처 공항으로 옮겨져 프라이어슨 소령이 탑승한 항공기에 유해들이 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대략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쯤 날아가 내가 직접 화장된 유해를 넓은 지역에 흩뿌렸다”고 적었다.  도조의 증손자 도조 히데토시(48)는 “유해가 없다는 것은 유족에게 오랫동안 굴욕이었다”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소감을 뇌까렸다. 그는 “유해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안심된다”면서 “만약 그의 유골이 일본 영해 안에 뿌려졌다면 행운이다. 유해가 뿌려진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헌화하며 묵념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 봉인됐다”면서 “유해를 보존하지 않는 것이 전범재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카자와 교수는 “도조의 유해가 신성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와 함께 미군은 유해를 일본 영토에 돌려주면 일본인이 절대적인 굴욕으로 여길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란 해석인데 우리로서는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고 화가 나는 대목이다.  그는 전범으로 기소된 이가 4000명 이상이며 이 중 92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며 전쟁 재판에 대한 연구를 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배했고 스가 요시히로 현 총리가 공물을 봉납했던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의 유해가 없고, 대신 도조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돼 오늘도 우익들이 찾아 추모하고 있다. 1869년에 세워진 이곳에 위패가 모셔진 일본인은 250만명 가량인데 전범들이 합사돼 오히려 이들의 희생 정신을 퇴색시킨다고 뜻있는 일본인들은 개탄하는데 군국주의 향수에 빠진 우익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육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줄곧 일본 영토 확장을 부르짖었고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해 총리에 올랐지만 1944년 전세가 기울자 히로히토 일왕의 신임을 잃게 됐고 압력 끝에 물러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르렀고, 1945년 9월 11일 미군 병사들이 집을 포위하자 권총으로 극단을 선택하려 했으나 실패해 체포됐다.  도조 히데키가 떵떵거릴 때에도 뜻있는 우익들은 공군력이 절대 열세인 일본이 미국을 끌어들여 자멸의 길로 이끈 책임이 실로 크다고 비판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교활하게 도조 히데키 등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미군정과 결탁해 목숨과 기득권을 부지했다는 비판도 대두된다.  도조 히데키를 체포한 미군 병사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존 윌퍼스가 지난 2013년 93세를 일기로 메릴랜드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윌퍼스가 도조의 자살 시도를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
  •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아니, 어찌 이러오? 봉오동 독립전쟁도 청산리전투도 우리 아버지 최운산이 창설한 부대가 치른 전쟁이고, 총사령관은 큰아버지 최진동이지 않소? 어찌 한국에서는 봉오동 전쟁 총사령관은 홍범도라고 하고 청산리 전투 사령관은 김좌진이라고 하오?” 중국에 살던 최운산의 첫째 딸 청옥은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TV를 보고 이렇게 흥분했다고 한다. 역사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독립운동사도 사료 불충분에 정치적인 이유가 더해져 그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봉오동 전투는 진실과 괴리된 측면이 많다. 홍범도만 영웅이 된 데는 정치적 배경도 있고 잘못된 교과서의 탓도 크다. 극적 효과를 추구한 영화 ‘봉오동 전투’는 왜곡의 정점을 찍었다.●독립운동사 사료 불충분·정치적 이유로 왜곡 청옥의 말처럼 봉오동 전투는 사령관 최진동과 동생인 참모장 최운산이 지휘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이끈 전투였다. 김좌진과 홍범도는 각각 제1연대장, 제2연대장이었다. 교과서는 홍범도가 사령관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가르쳤다. 국민의 뇌리에 두 사람만 화석처럼 굳어져 남아 있는 이유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와 김좌진의 활약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들만을 영웅화하면서 최진동·최운산은 사라져 버렸다. 굳어진 인식은 바뀌기 어렵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후손이 있는 경우는 다르다. 최운산의 맏아들 최봉우는 광복 후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의 딸 최성주씨가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파묻힌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라는 책을 펴내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최씨를 만나 독립운동에 바친 비운의 가족사를 들었다. 최진동 형제의 아버지 최우삼은 함북 온성이 고향으로 1860년에 태어났고 1880년 무렵 만주 옌볜 도태(道台)로 봉직했다. 도태는 조선 말기에 옌볜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였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최우삼은 일가를 이끌고 봉오동으로 이주, 한인 마을을 건설했다.최진동은 중국인 부호 밑에서 일해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만주 군벌 장쩌림 부대에 있었던 최운산은 장쩌림의 목숨을 구해 주는 등의 각별한 인연으로 봉오동 일대에 부산 면적의 6배나 되는 땅을 갖고 있었다. 또 국수 공장, 콩기름 공장, 양조장, 성냥 공장, 비누 공장을 운영했다. 대규모 목장도 소유해 러시아 군대에 곡물과 소를 수출하는 등 간도 제일의 거부(巨富)였다. ●홍범도 영웅 묘사한 영화 봉오동전투 ‘정점’ 형제는 1912년 비적들로부터 동포들을 지킬 목적으로 독립군의 모태가 되는 100여명 규모의 자경단을 만들었다. 또 봉오동 사관학교와 사관연성소를 창설해 독립군 지휘관들을 양성했다. 1915년에는 연병장과 막사를 만들고 두께가 1m가 넘는 토성을 건설해 독립군 기지를 구축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이 되자 최진동 형제는 670명 규모의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해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통합 논의가 일어 1920년 대한군무도독부를 비롯한 북간도 일대의 독립군 부대는 조직을 합쳐 대한북로독군부로 거듭났다. 최진동이 부장(府長·사령관), 둘째 최운산이 참모장, 셋째 최치흥이 참모가 됐다. 막대한 재력을 가진 최운산은 각 부대에 주둔지를 제공하고 식량과 피복을 지급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해주까지 진출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사들였다. 독립군들은 신형 무기로 체계화된 군사훈련을 받았다. 독립군들은 1920년 초부터 봉오동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인 5월까지 두만강을 건너 일제의 관서를 수십 차례 공격했다. 일제는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최진동 형제는 보름 전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한 달 전부터 주민들도 이주시켰다.대한북로독군부는 참호를 파고 의무부대도 후방에 배치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했다. 1920년 6월 7일 새벽부터 일본군은 봉오동을 습격했지만 그들의 패배는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157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를 내고 패주했다.총사령관 최진동 등 지휘부는 최고봉인 봉초봉에 자리잡고 전투를 지휘했다. 전체 작전은 사령관 최진동과 참모들이 세웠다. 뒤늦게 합류한 홍범도는 작전을 준비할 위치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다. 홍범도도 격렬히 싸웠지만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 갑자기 그가 이끌던 2중대를 퇴각시킨 것이다. 이 바람에 자리를 사수하던 신민단 대원들이 수적 열세로 전사하고 말았다. 일종의 전술일 수 있지만 최진동은 항명이라며 홍범도를 엄벌하려 했고 동생 운산이 말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당시 독립군은 영화에서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고 굶주린 게릴라가 아니라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했으며 사격술이 뛰어난 정예군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은 “적(독립군)은 전부 러시아식 소총을 갖고 탄약도 상당히 휴대하였으며 사격도 상당히 훈련되어 있다. 거리 측량이 불확실한 700~800m 거리에서도 사격을 하며…”라고 ‘봉오동부근전투상보’에 썼다. 거기에는 최운산의 부인인 김성녀와 봉오동 주민들의 헌신이 있었다. 김성녀는 수천 독립군의 식사를 제공하고 군복을 제조한 병참 책임자였다. 재봉틀 8대로 군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군복 모자에는 태극 견장이 달려 있었고 매화형 금장이 박힌 견장을 단 예복이 있을 정도였다. 최운산은 1930년대에도 무장 세력을 유지하며 우수리강 전투, 대황구 전투, 안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을 이끌며 독립 투쟁을 계속했다. 1945년까지 대황구삼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양성했다. 1937년에는 보천보 전투의 배후로 지목돼 투옥됐다. 광복 직전까지 6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다. 매번 극심한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다고 한다. 최운산은 광복을 한 달 열흘 앞둔 1945년 7월 5일 평양으로 갔던 길에 고문 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최진동은 일제와 싸우는 동안 부인과 맏아들, 맏며느리를 잃는 아픔을 겪다가 1941년 일제의 압박과 감시 속에서 병마로 사망했다. 최진동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공훈에 비해 등급이 낮다. 최운산은 1977년에야 서훈(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으로 서훈이 올려졌지만 역시 너무 낮다. 홍범도는 2등급인 대통령장, 김좌진은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왜 이렇게 최진동 형제는 낮은 서훈을, 그것도 늦게 받고 공적이 파묻혔을까. 최운산의 손녀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1961년 보훈 업무 담당 직원이 최운산에게 서훈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요구하자 격분한 아버지(최봉우)가 주먹을 날렸답니다. 그 바람에 서훈도 취소됐다고 합니다.” ●부인 김성녀, 군복 제조 병참 책임자 활동 또 최운산의 부인 김성녀는 정부에 낸 진정서에서 이렇게 썼다. “독립운동 당시 하급 지휘관 및 졸병으로 생존한 독립인사가 자신의 공적을 과대 선전하기 위하여 허무맹랑한 사실과 왜곡되고 과장된 조작 사실로 인하여 오점을 남겼으며 일생을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총투입하여 투쟁하였으나 공적이 뒤바뀌어져 있기에 독립운동을 하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이때가 1969년이다. 하급 지휘관이란 철기 이범석을 지칭한다. 이승만과의 친분으로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은 ‘우둥불’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자신을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 과장하고 최진동 형제의 공적을 깔아뭉갰다. 이범석은 당시 20세의 군사학교 교관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최진동의 자녀가 역사를 소설처럼 써서 왜곡했다며 출판을 말리고 이범석과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얼굴을 보면 최운산의 서훈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엄마(최운산의 며느리)가 당고모(최진동의 딸)와 세 번 찾아갔는데 만나 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최진동 형제의 공적이 매장된 배후에는 이범석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진동의 후손들은 중국과 미국에 살고 있다. 일부는 한국으로 들어와 어렵게 살고 있다. 최운산의 자녀들도 만주와 북한으로 흩어졌고 최운산의 부인과 아들 최봉우만 남한으로 내려왔다. 최봉우는 1984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만주에 있던 누나, 동생들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최운산의 딸 계순과 아들 호석은 한중 수교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거부였던 최진동 형제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붓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도 중국에 남았던 후손들은 지주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쓰고 핍박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9만명 숨지고 의료진 과로 내몰렸는데… 獨 ‘소파 뒹구는 영웅’ 공공 캠페인 논란

    공공 캠페인은 늘 조심해야 한다. 독일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캠페인’도 이런 점을 일깨워 준다. 독일 연방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코로나19 관련 캠페인을 위한 3부작 비디오를 순차적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특별한 영웅들’(besondereHelden)이란 제목의 동영상은 미래의 전쟁 영웅들이 어렸을 때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구는) ‘카우치 포테이토’로서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항해 싸운 것을 묘사하고 있다. 유명 코미디언 등이 트윗을 남겨 그 유머러스함을 칭찬하기도 했고, 총리 대변인이 “통상적인 정부 소통 방식으로는 연결되기 어려운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비판이 더 많았다고 미국의 CNN이 14일 보도했다. “전염병으로 거의 9만명을 잃은 상황에서 이렇게 가벼운 어조는 걸맞지 않다”거나, “필수 사업체 직원, 의료 종사자, 서비스 직원 등 ‘게을러질 특권’을 갖지 못한 많은 이들의 상황에 무감각한 것”이라는 얘기들이었다. “집에 머물러라, 접촉을 줄이라는 요청은 심각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전달될 수 있고 요즘은 잘 통하지 않는다”고 베를린 자유대학의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요아힘 트레베는 평가했다. 비디오 제작에 38만 6887달러, 광고와 배급에는 213만 8159달러 등 대략 30억원가량이 소요된 것도 구설에 올랐다. 아랍어 사용자에게 백신 접종을 장려하면서 ‘모든 시온주의자들(유대인)은 이스라엘을 떠나라’고 요구하고 테러리스트 조직 하마스의 무장단체 알 카삼 브리가데를 찬양하는 내용은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이 문제를 삼으면서 해당 비디오는 삭제됐다. 가장 최근 것으로, 보건장관이 “백신 맞고 자유를 찾았다. 너도 할 수 있어”라고 권하는 비디오는, ‘맞을 백신이 부족한데 무슨 백신 접종 캠페인이냐’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전염병 전문기관인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로타르 빌러 소장은 “독일은 국민들의 백신 접종 의향이 ‘매우 높은’ 나라인데, 공급 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이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 바이든 비난하며 12년 만에 물러난 다윗왕 “곧 돌아온다”

    바이든 비난하며 12년 만에 물러난 다윗왕 “곧 돌아온다”

    이스라엘에서 최연소이자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세운 베냐민 네타냐후(71)가 야권 정당의 협공으로 1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왕’으로 불리기도 한 그는 총 15년 넘게 통치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뇌물과 사기 등 각종 혐의에 휘말리며 장기 집권의 무대에서 드디어 내려왔다. 13일(현지시간) CNN은 “네타냐후는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지금의 이스라엘을 만든 보호자다. 작은 국가를 세계무대에서 특출난 경제 대국으로 만들게 도왔다”면서 “그러나 비판자들에겐 극단주의자를 부상시키며 국가의 민주적 제도를 파괴하게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특별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야권 정당들이 참여하는 새 연립정부를 승인했다. 의원 120명 중 60명이 지지했고, 59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시온주의 학자 아버지를 둔 네타냐후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완벽한 동부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보스턴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한 뒤 주미 대사관을 거쳐 뉴욕 유엔 주재 대사로도 일했다. ‘래리킹 라이브’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에서 지명도를 쌓았고, 마드리드 평화회의에서 이스라엘을 대변하며 승승장구하다 43세이던 1993년 보수 성향의 리쿠드당 당수직을 꿰찼다. 네타냐후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최연소 총리 임기에 이어 2009년 3월 31일 이후 지금까지 12년 2개월간 집권했다. 중동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했음에도 아랍 국가들과 네 번의 외교 협정을 맺고, 세계와 좋은 관계를 구축하며 코로나19 이전 10년간 경제 성장을 일군 건 큰 업적으로 손꼽힌다.임기 초반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던 그가 총리로 장수하게 된 비결은 극우 및 종교 색채를 띤 정당과의 ‘거래’를 통해서다. 네타냐후의 전기 ‘비비’를 쓴 칼럼니스트 안셸 페퍼는 “네타냐후는 유대교 근본주의 실천을 표방하는 초정통파를 우파 정당으로 끌어들이면서 자신을 교체 불가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봤다. 이어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유리한 조건을 물려받았지만, 그 기회를 잡으려 한 적이 없다”며 “그가 생각한 유일한 평화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굴복시키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네타냐후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서안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는 이듬해 무위로 돌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2018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받은 것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악화에 불을 질렀다. 집권기에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은 세 차례로 집계된다. 그중 2014년에는 팔레스타인 쪽에서 2200명이 사망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지난 5월에 또다시 발생한 충돌 역시 민간인의 피해가 컸다. 이처럼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 무력 충돌이 잦아지면서 네타냐후도 반대 세력과 부딪치게 됐다. 2016년 뇌물·사기 혐의로 기소된 것도 네타냐후를 몰아내자는 정치 세력에 힘을 실어 줬다. 사업가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등의 혐의로 지난해 이스라엘 역대 총리로서 처음 재판정에 섰는데, 재판 과정에서도 1년 동안 잇따라 열린 세 차례의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네 번째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정당까지 참여해 그의 퇴진을 촉구하며 결국 자리를 내주게 됐다. 이번 투표로 좌파와 우파, 아랍계 등 8개 야권 정당이 동참하는 ‘무지개 연정’이 출범했지만, 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네타냐후가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게 될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기 전반기 총리를 맡게 된 극우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49)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이란에 대한 강경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네타냐후는 “베네트는 나약한 인물”이라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맞서기를 거부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자신이 야당 지도자로 남아 이스라엘 안보를 계속 지키겠다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CNN은 “네타냐후는 여전히 리쿠드당 지도자로 남아 있으며 그 자리를 포기할 것 같지 않다”며 “재판 역시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재판 진행 과정에도 총리직에 다시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동시 임신할 것”…성형수술부터 남편까지 공유하는 쌍둥이 자매

    “동시 임신할 것”…성형수술부터 남편까지 공유하는 쌍둥이 자매

    남친 공유해 약혼까지 한 쌍둥이 자매호주, 약혼이 최선의 방법 호주의 한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남자와 약혼하고 동시에 임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4일 영국 매체 ‘더 선’에 따르면 호주 출신 일란성 쌍둥이 안나와 루시는 오랜시간 함께 해 온 남자친구 벤과 약혼했다. 두 사람은 ‘동시 임신’도 계획 중이다. 과거에는 따로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현재 안나와 루시는 남자친구를 공유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주장했다. 쌍둥이는 “벤은 우리 둘 다 그에게 키스했다. 벤은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인다”며 “벤은 우리를 똑같이 대하고, 우리는 서로 질투를 하지 않느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공유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쌍둥이다. 벤은 우리의 영웅이자 왕자님”이라고 말했다.남자친구 벤, 두 사람에게 똑같은 약혼반지 건네 남자친구 벤은 “안나 당신은 나에게 세상을 의미하고, 루시와 함께 내 인생을 보내고 싶다. 둘 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우리는 정말 이상하지 않다. 한 명의 남자친구가 있고 세 사람 모두 같은 침대를 쓴다”며 “남자라면 마음속에서 두 명의 여자친구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세 사람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벤은 “우리가 호주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약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쌍둥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쌍둥이, 체외수정 통해 동시 임신까지 계획 쌍둥이는 체외수정(IVF)을 통해 동시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쌍둥이는 “우리는 모든 면에서 똑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며 “우리 몸은 똑같아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임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안나는 “내가 임신하면 루시도 곧바로 임신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우리 몸은 똑같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닮은 일란성 쌍둥이’로 알려진 안나와 루시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성형수술, 의상, 식사, 운동은 물론이고 한시도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며 모든 생활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하마스 지지 의사가 백신 독려…獨 정부 코로나19 대책 홍보 잇단 구설

    하마스 지지 의사가 백신 독려…獨 정부 코로나19 대책 홍보 잇단 구설

    독일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책 홍보 활동이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거듭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인기 배우 데이빗 핫셀호프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졌다고 CNN이 14일(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처음 논란이 됐던 독일 정부의 홍보 활동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영상으로, 앞으로 몇십 년 뒤인 미래의 영웅들이 코로나19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회고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이들 영웅은 젊은 시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택 소파에서 누워지내던 이들이다. 이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대변인실은 “젊은이들에게 외출 자제를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서는 이런 유머를 칭찬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를 가볍게 여기는 내용이라는 비판이 집중됐다. 최전선의 의료 종사자들을 비롯해 자택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한 배려심 부족도 지적됐다. 심지어 영상 제작에 38만6887달러(약 4억3200만 원), 홍보와 배포에 213만8159달러(약 23억9000만 원)의 정부 예산이 들어간 사실도 드러나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최근에는 백신 보급을 위한 캠페인이 반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정부의 영상에서 아랍계 사람들에게 접종을 촉구했던 베를린의 한 의사가 반유대주의 조직으로 평가받는 하마스 지지자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독일 대중지 빌트가 지난 8일 이를 보도하자 정부는 즉각 문제의 영상 방영을 중단하고 조사 부족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게다가 독일 보건부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만든 홍보 영상도 화근이 됐다. 얼마 전 트위터에 공유된 이 영상에는 미국의 유명 배우 데이빗 핫셀호프가 출연해 “난 백신으로 자유를 찾았다. 여러분도 찾아낼 수 있다”고 독려하지만, 공급 부족으로 접종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포토]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아시아의 물개’ 故 조오련

    [포토]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아시아의 물개’ 故 조오련

    12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故 조오련 스포츠영웅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2021.6.12 연합뉴스
  • 호날두, 알리 다에이 넘기까지 6골

    호날두, 알리 다에이 넘기까지 6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포르투갈)가 A매치 개인 통산 104번째 골을 넣었다. 남자 축구 A매치 최다골 기록을 보유한 이란 영웅 알리 다에이(109골)와 어까를 나란히 하기까지 5골, 넘어서기까지 6골 남았다. 오는 12일(이하 한국시간) 개막하는 유로2020이 그 무대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포르투갈은 10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이스타디우 조제 알발라드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평가전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2골 1도움으로 앞장서고 호날두, 주앙 칸셀루가 골을 보태 4-0으로 이겼다. 전반 42분 페르난데스의 선제골이 터지고 2분 뒤 호날두는 페르난데스의 침투패스를 받아 강력한 왼발슛으로 추가골을 뽑았다. 호날두는 특유의 ‘호우 세리머니’를 펼치며 기뻐했다. 호날두는 이날 득점으로 A매치 175경기에서 104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호날두는 유로2020에서 남자 축구 A매치 최다 골 기록 경신의 꿈을 부풀렸다. 유로2016 챔피언으로 ‘디펜딩 챔피언’인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위. 만약 포르투갈이 결승까지 간다면 7경기를 치르게 된다. 프랑스, 독일과 함께 ‘죽음의 F조’에 편성된 게 변수이긴 하다. 포르투갈은 16일 헝가리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찍겠습니다, 한국의 영웅이여

    [그 책속 이미지] 찍겠습니다, 한국의 영웅이여

    “그래. 난 한국전쟁 미 해병대 참전용사야.” 6·25전쟁 당시를 설명하는 살바토레 스칼라토의 눈에선 광채가 번뜩였다. 그에게 한국전 참전은 상처이자 자부심이었다. 끔찍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한국인을 위기에서 건져낸 값진 일이었다. 저자는 2016년 대한민국 육군 군복 사진전에서 만난 스칼라토에게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명을 받았다. 무료로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2개국 1500여명의 참전용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책은 그들 중 30여명의 사진과 사연을 담았다. 한국전쟁의 이면을 보여 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값진 기록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 조오련 선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고 조오련 선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이자 체육훈장 청룡장 수상자인 고 조오련 선수가 12일 오후 2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 고인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 수영 자유형 2관왕(400m·1500m)을 달성했다. 또 1978년 은퇴할 때까지 50개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수영 발전에 기여했다. 고인은 1980년 13시간 16분 만에 최초로 대한해협 횡단에 최초로 성공하고, 1982년에는 9시간 35분에 걸쳐 영국 도버해협도 횡단하는 등 도전의 삶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울릉도·독도 횡단으로 독도 사랑을 실천하고 2008년 독도 33회 회영 등 ‘독도는 우리 땅’임을 온몸으로 입증한 애국자다. 고인은 1970년 국민훈장 석류장, 1974년 체육훈장 거상장, 1980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으며 지난해엔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헌액된 바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영원한 No.6… 조포 5발로 배웅하다

    영원한 No.6… 조포 5발로 배웅하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하늘로 떠난 ‘월드컵 영웅’을 기리는 조포 다섯 발을 쏘아 올리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5차전에서 ‘최약체’ 스리랑카를 5-0으로 대파했다. 4승1무로 승점 13점을 쌓은 한국은 투르크메니스탄에 2-3으로 덜미를 잡힌 레바논(3승1무1패)과 차이를 3점으로 벌려 사실상 조 1위를 결정지었다. 한국은 골득실에서 레바논에 16골이나 앞서기 때문에 오는 13일 레바논과 최종전에서 8골 차 이상으로 지지 않으면 조 1위가 된다. 8개 조로 진행 중인 2차 예선은 각 조 1위 8개 팀과 각 조 2위 중 상위 4개 팀이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이날 경기는 불과 몇 시간 전 영면에 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추모하기 위한 ‘메모리얼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부터 ‘그대와 함께한 시간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외침에 투혼으로 답한 그대를 기억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크고 작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킥오프 직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유 전 감독의 폴란드전 득점 장면 등을 담은 헌정 영상이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다. 선수들과 관계자, 관중 4008명(경기장 수용 규모의 10%)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인천 서포터스는 유 전 감독의 사령탑 시절 모습을 담은 통천을 펼쳤다. 전자 광고판에도 추모 이미지가 흘렀다. 한국 선수들은 팔에 검은 밴드를 감고 뛰었다. 붉은 악마는 유 전 감독의 국가대표 시절 등 번호 6번을 기념해 경기 시작 6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응원을 전개했다. 예상대로 벤투 감독은 로테이션을 돌렸다. 5일 투르크메니스탄전 베스트11 가운데 남태희(알사드)를 제외하고 무려 10명을 바꿨다. 장신 골잡이 김신욱(상하이 선화)을 중심으로 송민규(포항 스틸러스)와 황희찬(라이프치히)이 좌우에 서며 ‘플랜B’ 스리톱을 이뤄 몰아쳤다. 2019년 10월 스리랑카를 8-0으로 꺾을 때 절반을 책임졌던 김신욱이 물꼬를 텄다. 전반 14분 남태희가 머리로 공을 떨궈주자 미끄러지며 오른발 슛, 골망을 갈랐다. 김신욱은 유 전 감독의 영문 이니셜과 6번이 적힌 유니폼을 펼쳐보이며 세리머니를 했다. 8분 뒤 이날 A매치 데뷔한 송민규의 크로스를 이동경(울산 현대)이 왼발 중거리 슛으로 연결해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기록했다. 전반 42분에는 황희찬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김신욱이 정면으로 깔아 차 성공시켰다. 전반 세 골에도 집중력이 다소 아쉬웠던 한국은 후반 들어 황희찬, 정상빈(수원 삼성)이 골을 보태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19세 정상빈은 후반 26분 교체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한 지 5분 만에 문전에서 이동경의 슛을 방향만 바꿔 놓으며 골을 기록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4강 신화 일군 영웅… 그가 남긴 꿈☆은 이어진다

    4강 신화 일군 영웅… 그가 남긴 꿈☆은 이어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9일 어머니 곁에서 영면했다. 췌장암 투병 끝에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유 전 감독의 장례가 이날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축구인장으로 엄수됐다. 발인 등 절차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과 일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및 축구인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유족은 부인 최희선씨와 2남 1녀가 있다. 유 전 감독과 함께 4강 신화를 일궜던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최진철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 등이 유 전 감독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유 전 감독은 경기도 용인 평온의숲에서 화장 후 충북 충주 진달래메모리얼파크에 묻혔다. 지난해 3월 역시 췌장암과 싸우다 별세한 유 전 감독의 어머니가 계신 곳이다. 한일월드컵 당시 유 전 감독 등을 지휘하며 한국을 4강으로 이끈 세계적인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전날 국내에 있는 거스히딩크재단을 통해 유족에게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히딩크 감독은 카드에 인쇄되어 전달된 메시지에서 “그대는 나와 한국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 그대의 미소와 환희는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애제자를 기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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