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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서 분신한 근로자/30시간 만에 숨져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 10일 하오 「노 정권 타도」 등의 구호가 적힌 유서를 남기고 전남대 대강당에서 온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기도,전신 3도화상을 입고 전남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오던 윤용하씨(22·무직·대전시 서구 탄방동 97의20)가 입원 30여 시간 만인 12일 0시1분 끝내 숨졌다. 치료를 담당한 이 병원 소병준 박사(32)는 『윤씨가 심부전증과 분신 때 입은 화상으로 인해 생긴 폐포손상에 의한 호흡정지로 숨졌다』고 밝혔다. 윤씨는 이 병원 3층 중환자실에서 형 용범씨(28) 등 가족과 「강경대학생폭행살인 및 박승희학생분신광주전남대책위」 관계자,의료진 등 8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 윤씨는 11일 하오 9시23분쯤부터 호흡과 맥박이 심하게 곤란해진 끝에 뇌사상태에 이르러 인공호흡과 심장전기충격요법 등 응급조치를 받다가 자정을 넘겨 호흡기를 제거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윤씨의 사체는 곧바로 이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으며 「대책위」는 가족과 장례절차 및 사후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광주·전남지역 대학생 1백여 명은 윤씨가 숨진 뒤 영안실 주변에설 밤새워 농성했다. 한편 윤씨가 사망함으로써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시국과 관련해 분신자살한 사람은 안동대 김영균군,경원대 천세용군,「전민련」 김기서씨 등 모두 4명에 이르고 맨 먼저 분신했던 전남대 박승희양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 분신을 부추기는 세력(사설)

    한 대학 총장의 폭탄 같은 발언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며 이 세력의 실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장은 보통 총장이 아니다. 성직자로 반골적인 행적이 두드러져 체제 쪽에서도 버거워하는 인사다. 이 폭탄발언 이전에 우리는 감지하 시인의 영혼의 떨림 같은 분노의 경고와도 접한 바 있다. 전염력이 무서운 자살을 부채질하며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론…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주고 있는』 행위를 당장 집어치우라고 꾸짖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덜미에 전기충격을 가해준 느낌이 들었다. 분신의 경우마다 그 베일에 묻혀버리는 진상,「계획」의 혐의가 너무 짙은 죽음 양식,난무하는 유언비어,운동권인사들의 무기처럼 등장하는 「자살예고」 등등,그 심상찮은 내막에 대해서 우리는 일찍부터 많은 의문을 품어왔다. 그러나 막상 이같은 무서운 발언들을 접하고는 형용할 수 없이 참담한 생각이 든다.김지하 시인이라면 이 땅의 민주세력을 선구적으로 이끌어온 대표적인 양심세력이다. 운동권 학생들에 배신감을 느껴 강단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한 대학교수의 말처럼 권력이거나 힘센 세력의 부정이나 핍박에 죽음을 불사한 저항으로 해온 이력을 지닌 민족시인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바로 이 땅에서 가장 정통한 민주화운동으로 온갖 수난을 겪은 중심적인 인물들에게,죽음을 부추기는 「검은세력」의 낌새를 그토록 절박하게 느끼게 한 정체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검찰에서는 분신의 배후세력을 조사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배후세력」이 있다는 확증 아래 이런 방침이 정해진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므로 이런 방침이 초래할 수 있는 또 다른 긴장과 갈등의 국면이 염려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변사」는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자살,특히 분사 같은 돌연하고 치열한 죽음은 확실한 「변사」이므로 원인과 결과까지가 철저히 수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검을 운동권에게 탈취당하고 영안실을 봉쇄당해 온 운동권의 죽음은,수사가 제대로 되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배후세력」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밝힐 정황이 못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이를테면 공권력의 직무유기 같은 것이었다. 검찰의 의지가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의 뜻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범국민 대책회의」라는 이름의 민주세력 지도부는 이런 검찰의 태도에 크게 반발하는 듯 하다. 그러나 반발을 할 게 아니라 적극 협조해서 만에 하나라도 정당한 민주세력에 침투한 불순한 세력이 있다면 색출하는 노력도 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실상은,분신자살을 부추기는 세력이 표면화한 것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국민들은 하고 있다는 것을 「민주세력」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분신으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호소했던 말을 상기해 보면 그것은 명백해 진다. 『분신해 죽은 학생을 열사로 호칭하며 떠받들면 그걸 영웅시하는 또 다른 분신죽음이 뒤따른다. 그러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호소의 상대가 누구인가는 분명하다. 그들이 표면화한 분신 부추김의 세력이라는 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분신자살 천군 장례식/마석모란공원 안장

    지난 3일 분신자살한 경원대학생 천세용군(20)의 장례식이 9일 상오 11시30분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경원대 운동장에서 유가족과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학생·시민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천군의 유해는 장례식을 마친 뒤 학교에서 3㎞쯤 떨어진 성남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이날 밤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이날 상오 7시20분쯤 성남시 성남병원 영안실에서 발인식을 갖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으로 옮겨져 김재열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1시간 동안 영결미사를 가졌다.
  • 3·4대의원 정대천씨

    3·4대 국회의원(경기도 파주)과 대한노총 최고위원을 지낸 정대천씨(82)가 6일 하오 7시 서울 성동구 구의동 방지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정씨는 5·16 후 민주공화당에 입당,중앙위원을 지냈고 7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발인은 9일 상오 9시 서울 화양동 건국대 부속 민중병원 영안실,장지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교하리 선산.
  • 노조위장 사인싸고 유족·검찰 대립/한진중 박창수씨 투신의 파장

    ◎유서도 자살동기도 전혀 없어 의혹/유족/가족이 병실 지키고 혐의점 못찾아/검찰 강경대군 구타치사 사건 후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라 발생한 데 이어 한진중공업노조위원장 박창수씨(31)가 입원치료중인 병원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사건이 발생,충격과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사인」을 둘러싸고 유가족·재야와 검찰 등 당국의 입장이 서로 달라 명백한 사인이 가려지지 않는 한 또 한차례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박씨의 사인규명을 위해 사체가 안치된 안양병원 영안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7일 하오 1시30분쯤 유족·근로자·학생들이 지키고 있는 영안실 뒤쪽 벽을 허물고 진입,박씨의 사체를 확보,부검을 실시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부터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재관 박사팀의 집도로 실시된 부검결과 박씨는 척추와 골반뼈·발목뼈 등이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된 것으로 드러나 추락사한 것으로 판정됐으나 이같은 부검소견은 직접사인만을 밝혀주는 정도여서 박씨가 자살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확한 부검결과를 8일중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유족들은 부검이 있은 이날 하오에도 『강제로 실시된 부검은 검찰의 사인조작기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 타살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검찰의 강제부검에 항의,입회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전노협·한진중공업노조·대기업노조연대회의 등 6개 노동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도 『검찰의 강제부검 실시가 박씨의 사인을 조작하기 위한 것』이라며 「진상조사단」을 구성,사인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혀 부검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6일 상오 4시15분쯤 화장실에 간다며 병실을 나가 안양병원 7층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환자복을 입고 링게르주사를 팔에 꽂은 상태에서 2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숨져 있었으며 유서나 소지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 2월12일 대우중공업사태와 관련,의정부시 다락원수련원에서 열린 대기업노조연대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회사 노조 간부 6명과 함께 노동쟁의조정법 위반혐의로 구속됐었다. 병원에 입원한 것은 수감돼 있던 서울구치소 안에서 축구시합을 하던중 벽에 두 차례 머리를 찧어 자해한 때문이라고 박씨가 병원을 찾아온 노조 간부들에게 밝혔다는 것. 유족과 동료 근로자들은 박씨가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화장실에 교도관이 동행하지 않았으며 ▲목격자가 없고 ▲자살할 사람이 링게르병을 꽂은 채 7층 옥상까지 올라갔겠느냐며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 4일 중환자실에서 면회를 했을 때 『여러분의 투쟁에 동참하지 못해 미안하다. 꼭 살아나가 앞장서 투쟁하겠다』고 말하는 등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는 것. 그러나 검찰은 수사결과 박씨가 구치소내에서 단식농성을 한 사실도 없으며 운동시간중 담벼락에 튕겨나오는 공을 다시 받기 위해 돌진하다 창살에 낀 공을 보지 못한 채 담에 부딪쳐 머리를 다쳤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박씨의 사건당시 주변상황과 관련,▲박씨병실에는 박씨 부인이 지키고 있었고 ▲교도관 2명이 최초로 숨진 박씨를 발견한 현장에 박씨의 이복동생도 동행,지켜보았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검찰은 유족·재야 등의 주장과는 달리 박씨가 「납치」나 「유인」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또 ▲박씨 부인 외에도 간호사와 입원환자가 지키고 있었으며 ▲사체 주변에 박씨가 꽂고 있던 링게르병이 박살난 채 박씨로 부터 1m쯤 튕겨나가 있는 점 등을 들어 투신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안양병원 이상택 원장도 『박씨의 양발목이 부러져 있는 점으로 보아 박씨가 옥상에서 떨어질 때 다리가 먼저 땅에 닿은 것 같다』면서 『이 경우 사인은 척추골절상과 뇌쇼크 등 복합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박씨가 중환자실을 나서는 장면을 목격한 입원환자의 보호자 안종우씨(76)도 『박씨가 이날 상오 4시30분쯤 중환자실을 나간 뒤 곧이어 「아」 하는 비명과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진술했다. 아무튼 이번 박씨의 추락사 사건은 정확한 부검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유족 및 재야측의 주장이 계속되는 한 쉽사리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투신 노조위장 사체 강제부검

    ◎한진중 박창수씨 척추·골반등 골절… 추락사 확인/경찰,영안실 벽 뚫고 농성자 해산… 16명 부상 【안양=김동준 기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31)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 강력부(김종빈 부장검사) 박종환 검사는 7일 유족·근로자·학생들이 강력히 반대를 하는 가운데 하오 2시30분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재관·강신몽 박사 등 2명과 안양병원의사 2명 등 4명의 집도로 박씨에 대한 강제 부검을 실시했다. 이날 부검에는 유족들이 입회를 거부,참석하지 않았다. 1시간 여에 걸친 부검결과 박씨는 척추와 골반뼈·발목뼈 등이 부러지고 장이 파열돼 추락사한 것으로 판명됐으나 이 같은 부검소견은 직접 사인 만을 밝혀주는 정도여서 박씨가 자살했는지 타살됐는지를 밝히지는 못했다. 경찰은 이날 하오 1시30분쯤 박씨의 사체가 안치된 안양시 안양병원 주변에 경찰병력 8개 중대 1천여 명을 배치하고 영안실에 진압조 50명을 투입,영안실 벽을 해머로 부순뒤 휴대용 가스분사기를 뿌리며 들어가 사체 인도를 거부하고 농성중이던 유족·근로자 등 30명을 해산시키고 박씨의 사체를 확보했다. 이어 박종환 검사의 지휘로 박씨 사체에 대한 부검이 실시되는 동안 영안실 입구 등에 있던 학생 50여 명은 인근 개인집 지붕위로 올라가 기왓장을 깨뜨려 경비경찰을 향해 던졌으며 병원주변 골목길 등에서는 학생들이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이날 상오 5시쯤 영안실 입구에 모여 있던 전노협소속 근로자,수대협소속 대학생 등 3백여 명에게 최류탄을 쏘며 영안실 진입을 시도했으나 근로자·학생등이 이에 맞서 화염병 1백여 개와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해 영안실 진입에 실패했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근씨(35·서노협 정의부장) 등 근로자·학생 10명과 경찰 6명이 돌에 맞아 팔이 찢어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 한편 학생 및 근로자 1천5백여 명은 이에 반발,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안양시 안양 4동 벽산아파트 앞 8차선도로 2백여 m를 점거하고 항의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1시간 만에 강제 해산됐다.
  • “열사로 부르지 말아다오”/김동진 제2사회부기자(현장)

    ◎안동대 김군 아버지의 오열 『영균이를 죽게 한 노 정권을 타도하자』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가족장을 막는 것은 독재가 아니냐』 안동대생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장례식이 치러진 4일 상오 8시30분쯤 경북대병원 영안실 입구에서는 가족장을 저지하려는 학생 2백여 명과 재야인사 50여 명이 「노 정권 타도」를 소리높여 외쳐대고 또 한편에서는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4·서울시 지적관리계장) 등 유족들이 이들에 둘러싸여 가족장을 한사코 고집하고 있었다. 이날의 장례식은 결국 유족들의 뜻대로 가족장으로 치러지기는 했으나 이 과정에서 아버지 김씨가 「민주국민장」을 요구하는 범시민대책회의 학생들에게 멱살을 잡혀 한때 실신,응급실로 옮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 김씨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링겔을 3개나 꽂은 상태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장례식은 어머니 박옥숙씨(46)와 고모 등 유족 30여 명 만이 참석한 가운데 불과 20여 분 만에 끝났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에도 학생 등 재야인사들은 「타도 노 정권」을 외치고 노래들을 불러댔다. 이처럼 쫓기듯 장례를 마친 김군의 유해는 하오 1시50분쯤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옮겨져 동구 신천동 청구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 주관으로 간단한 노제를 가진 후 수성구 고모동 시립장의관리소로 운구돼 화장됐다. 김군의 유해가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운구될 때에도 김군의 아버지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마지막 가는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내 자식은 죽었지만 더 이상 나와 같은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구차 주변의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뜻을 수용하지 못해 미안하다. 영균이를 열사라 부르거나 영웅시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다만 내 아들이 먼 훗날 의롭게 살다가 죽어간 한 젊은이로 남기를 바랄 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통을 참아내려고 입술을 깨무는 그의 부정에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을 되새기게 했다.
  • 안동대생 어제 가족장/학생들 한때 운구방해,아버지 실신

    【대구=김동진 기자】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지난 2일 경북대병원에서 숨진 안동대학교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장례가 4일 상오 8시30분쯤 경북대병원 영안실에서 30여 명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유족들은 장례식을 마친 후 상오 9시쯤 김군의 유해를 화장장으로 옮기기 위해 영구차를 영안실앞에 대기시켰으나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영안실 입구를 가로막아 운구를 못하고 있다가 이날 하오 1시50분쯤 학생들과의 합의로 시신을 영구차로 옮겨 대구시립화장장으로 떠났다. 학생들이 영안실 입구를 막으면서 유족과 학생들이 대치하자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4)가 졸도,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링게르를 꽂고 아들의 운구를 지켜 보기도 했다.
  • 숨진 안동대 김영균군 아버지 회견

    ◎“분신 영웅시하면 또다른 비극 초래”/“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렀으면” 『나 하나만의 슬픔으로 끝났으면 합니다. 더 이상 젊은 학생들이 분신자살을 하는 비극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강경대군 추모식 도중 분신자살을 기도해 경북대 의대 부속병원에 입원,치료중 숨진 안동대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아버지 김원태씨(서울시 지적관리계장)는 밤을 지새우는 2일간의 간호에도 덧없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아들을 생각하며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경북대 의대 부속병원 옆 청구장여관에서 넋을 잃고 있다. 김씨는 『자기 스스로 곧게 살아가려고 하다 현 사회상의 구조적인 모순을 대하면서 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우발적으로 분신자살을 택한 것 같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일부 학생들이나 재야단체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해 열사라는 칭호를 쓰는 등 영웅시하고 민주국민장으로 하겠다는 것은 또다른 비극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4일 치렀으면 좋겠다』고 일부 재야단체의 민주국민장을 한사코 반대했다. 김씨는『영균이의 죽음으로 인해 과격시위 등 또다른 불상사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일부 학생 및 재야단체가 계획중인 추모집회 등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영균이가 자신의 순수한 마음과 의지대로 죽음을 택한 것이기에 그 고귀한 뜻을 위해서라도 조용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면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주변에 학생들이 쇠파이프 등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하고 연일 추모집회를 여는 것에 대해 『그들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내 스스로 분신이라도 하고픈 심정을 먼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며 일부 대학생들의 과잉행위를 못마땅해 했다. 김씨는 학생들에게 과격시위를 벌이지 말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것을 부탁하면서 정부당국도 과격으로 치닫는 학생들의 시위를 평화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젊은이들의 분신자살 등 극한적인 행동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과격 폭력시위 근절을 호소하면서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자식의 죽음 앞에 슬픔조차 잊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 전대협도 분신자제 호소/부의장 회견/대정부 새 투쟁방안 마련

    ◎9일부터 전면 동맹휴업키로 「전대협」은 앞으로 「노태우 정권퇴진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전대협」 이철상 부의장(24·서울대 총학생 회장)은 분신한 경원대생 천세용군이 3일 하오 10시25분 숨을 거둔 뒤 빈소가 마련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4일 0시30분 기자회견을 갖고 『전남대생 박승희양,안동대생 김영균군,경원대생 천군의 분신을 계기로 노 정권퇴진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히고 『백만학도는 더 이상 분신하지 말고 살아서 투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부의장은 또 『이들의 분신은 정권만의 책임이 아니라 전대협의 투쟁노선에도 책임이 있음을 반성한다』면서 『더욱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정부 투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세기 기자】 부·울총협 학생 2천여 명은 3일 하오 1시 동의대에서 5·3항쟁 계승 및 5월구국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종식 전대협 의장,송인배 부울총협의장,5·3사건 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 5·3사태의 실체적 진상규명을 촉구했다.전대협 의장 김군은 이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5·3사건 전면 재수사 ▲안응모 전 내무장관·치안본부장 서울시경 국장 서부경찰서장 등 즉각 구속 수사 ▲노 정권 퇴진 ▲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하고 경찰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설 것을 선언했다. 또 이들은 민자당 출범 1주년인 오는 9일부터 전면적인 동맹휴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분신 안동대생 사망/장례문제 싸고 유족­재야·학생 이견

    【대구=김동진 기자】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온몸에 3도화상을 입고 경북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2학년 김영균군(20)이 2일 하오 8시10분쯤 화상병동에서 숨졌다. 김군은 이날 상오 9시쯤 심장의 박동이 멈춰 심폐소생술을 받아 깨어났으나 하오 5시40분쯤 다시 심장박동이 중지돼 다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김군을 치료한 성형외과 백봉수 과장은 김군의 사인은 심폐부전이라고 밝혔다. 김군은 아버지 김원태씨(53)와 어머니 박옥숙씨(45),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졌으며 김군이 임종할 때 어머니는 불경을 읽고 있었다. 김군은 지난 1일 낮 12시25분쯤 경북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민주과장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 후 『살인폭력 민중탄압 즉각 중지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몸 전체의 90%화상에 화상부분 80%의 3도 이상 화상을 입고 같은 날 하오 2시30분쯤 경북대병원에 입원,기도절개수술을 받는 등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편 김영균군 사체가 안치된 경북대병원에는 안동대와 경북대 등 대구시내 각 대학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인간사슬을 만들어 병원을 돌며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는 이날 하오 9시30분쯤 영안실 관리직원에게 서울에서 가족장으로 4일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장례준비를 부탁했으며 학생들이 병원영안실에 분향소를 설치하자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재야측에선 대구에서 「민주시민장」이나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을 주장,가족들과 장례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군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안동대 총학생회(회장 김열수·28)측은 3일 상오 교내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한편,규탄대회를 가지기로 했다.
  • 한신대 교수 30명/교내서 철야농성/강군 치사 항의

    한국신학대학 권도용 교수 등 교수 30여 명은 30일 하오 7시 교수휴게실에서 모여 강경대군의 상해치사 사건에 항의,오는 4일까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교수들은 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군이 안치되어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을 방문,조의를 표한 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현정권의 폭력성이 필연적으로 빚어낸 현상』이라면서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억압하고 교묘한 통치술로 회피하는 현정권은 즉각 퇴진하라』는 성명을 냈다.
  • 「강군치사」 추궁 국회 내무위 안팎

    ◎“강경진압 개선하라”… 여·야 한목소리/전경운영등 근본적 수술을 촉구/야선 불법장비 사용 문책을 주장/“안전수칙 무시한 폭력없게 다각조치”/이 내무 국회는 29일 시위진압경찰의 명지대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 처리문제를 놓고 여야 관계가 급속 냉각,한때 공전될 조짐을 보였으나 야권이 각 상임위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공세를 펴기로 방침을 바꿔 외견상으로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민·민주당 등 야권은 조기수습원칙을 세운 민자당의 입장에 반발,▲노태우 대통령의 직접 사과 ▲노재봉 내각 총사퇴 ▲관련공직자의 형사처벌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내무위 등에서 파상공세를 폈다. ○…이날 하오 열린 내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의 현장상황이 이미 공개됐고 관련 장관이 문책·경질된 탓인지 사건의 의혹여부보다는 주로 인책범위 확대 및 사건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집중 추궁.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취재진이 몰려든 점 등을 의식,사건의 본질보다는 신임 이상연 내무장관의답변태도 등을 강도 높은 용어를 사용해 가며 비난하는 등 정치적 효과에 치중하는 모습. 반면 민자당 의원들은 경찰의 시위진압방법의 모순점과 쇠파이프 사용 문제 등 경찰의 장비사용 문제점을 지적,사건의 재발방지 및 근본대책 수립을 요구. 이날 회의는 벽두부터 내무부가 미리 내무위에서 제출한 「명지대 강경대 학생 상해치사 진상보고서」 중 「상해치사」라는 용어사용문제로 논란을 벌였는데 신민당은 『살인사건 내지는 피살사건이 분명한 데도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상해치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용어를 바꾸지 않으면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 여야 내무위 간사들의 협의를 거쳐 결국 「상해」부분을 빼고 「강경대 학생치사사건」으로 용어를 통일. 또 야당 의원들은 회의시작에 앞서 조의를 표하는 묵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내무위원 및 내무부 장관과 직원들이 기립묵념을 한 뒤에야 회의를 진행. 이 장관은 신임 인사를 겸한 발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이라면서 『이번 사고는 일부 전경의 안전수칙을 무시한 폭력으로 인한 사고이며 결코 변명하거나 용서받을 생각은 없으며 앞으로 이 사건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진압경찰을 엄선배치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다각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 질의에 나선 정균환 의원(신민)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쇠파이프라는 불법장구로 시위를 진압토록 한 책임자는 누구이며 장관은 전경들의 불법장구 사용 현황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안응모 장관이 역점을 두고 바꾼 공격형 시위진압 방침을 철회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추궁. 민자당의 김홍만 의원은 『시위진압현장에서 최루탄 직격탄사고가 다발하고 또한 경비근무중이던 의경이 여성을 성폭행한 일까지 발생한 것은 경찰이 더 이상 경찰이기를 포기한 일』이라며 『차제에 전·의경의 운영,경찰근무 기강,경찰의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 등에 대한 근본적 수술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복체포조」의 해체를 주장. 이 내무장관은 답변에서 『소위 백골단이란 경찰관·전경으로 편성된 사복기동대원이며 폭력시위대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착용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칭되고 있을 뿐 결코 특수조직이 아니다』면서 『시위가 각목·돌·화염병 등의 사용으로 극렬해짐에 따라 경찰로서는 현장에서 주동자를 검거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사복기동대의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해체의 어려움을 강조. 이 장관은 또 『사복전경의 설치근거는 서울시와 그 소속기관직제에 기동대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사복착용은 내무부 훈령에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포상휴가는 시위자를 검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시하지 않고 모든 근무면에서 우수한 대원을 선발하여 실시하고 있다』고 답변. 이 장관은 현장지휘책임자 문책과 관련,『현장에서 직접 가담한 폭력행위자는 엄중히 의법조치할 것이며 지휘간부도 사건의 직간접 관련여부를 철저히 수사토록 하겠다』면서 야당측의 치안본부장·서울시경국장 등 문책요구와 관련해서는 『이제는 책임문제의 확대보다는 사태의 수습과 재발장지를 위한 대책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확대문책 불가입장을 피력. 이에 앞서 사건진상보고에 나선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사건발생경위를 『시위학생을 추적하는중 학교담벽을 넘는 학생 1명을 검거·연행하는 과정에서 전경 김영순 등 5명이 집단폭행하여 사망케 하였다』면서 『사체부검을 통한 사인규명·목격자 진술보충·피의자의 범죄사실 구증 등 계속 명확한 진상을 수사해 나가겠다』고 보고. 이 본부장은 또 『전경들의 시위진압출동 전후에 안전수칙 등 교양실시를 강화하겠다』면서 『시위자연행과정에서도 전경들의 폭언·폭행 등을 엄단하겠다』고 답변. 한편 이날 회의 벽두 신민당 의원들은 이 장관에게 『쇠파이프로 사람을 때리면 죽는지 안죽는지 답변해 달라』(최봉구 의원),『노태우 대통령에게 조문을 가도록 건의할 용의는 없는가』(이찬구 의원)라며 일제히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 치안본부장의 보고를 가로막았고 이에 여당 의원들이 『보고를 듣고 질의를 계속해야지 보고도 듣지 않고 말꼬리만 잡아당기느냐』고 맞서 한차례 정회 소동. 야당 의원들의 공격에 대해 이 장관은 『취임 후 강군 영안실에 조문하려 했으나 현장상황이 그렇지 못하고 유족을 위로할 길조차 여의치 못해 안타깝다』면서 『노 대통령도 이미 사건발생 직후 유감을 표시했고 강군과 유족에 대한 조의를 표시했으며 내각도 유감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결의를 했다』고 답변.
  • 「강군부검 」싸고 유족·검찰 공방/강경대군 빈소 언저리

    ◎“진상규명·공소유지 위해 꼭 필요”/검찰/“타살 분명한데 왜 다시 칼 대려 하나”/유족 ○…강경대군 사체부검을 둘러싸고 검찰과 유족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29일에도 부검을 실시하지 못했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정현태·이학성 검사는 29일 이틀째 세브란스병원으로 찾아가 부검협조를 요청했으나 유족뿐만 아니라 대책회의측의 거절로 부검을 못했다. 검찰은 이날 『사체부검을 하지 않고는 명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못할 뿐더러 공소유지 자체가 어렵다』며 부검에 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유족측은 『강군이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것이 분명하고 정부도 이미 관련 전경 5명을 구속시킨 마당에 강군 몸에 칼을 대게 할 수 없다』며 부검거부 이유를 밝혔다. 정 검사 등은 곧이어 상오 10시30분쯤 연세대 학생회관 3층에 마련된 「범국민 대책회의」 상황실에 찾아가 부검에 협조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으나 대책회의측이 『유족의 반대 뿐 아니라 내각총사퇴와 내무부장관·치안본부장·시경국장 등 사건 책임자에 대한 구속처벌 요구가 전혀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 부검은 있을 수 없다』며 거절,결국 부검을 실시하지 못했다. 이같이 유족과 「대책회의」측의 부검반대가 완강하자 검찰은 수사상 부검의 불가피성을 알리는 내용의 4쪽짜리 유인물 50여 장을 「대책회의」의 취재진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유인물에서 ▲부검은 사망경위나 원인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행위로서 부검이 실시되지 못한다면 결국 사인을 추정할 수밖에 없어 공소유지가 힘들고 ▲피의자에 대한 처벌죄명을 정할 수 없고 재판에서도 형량을 결정키 어려울 뿐 아니라 ▲피의자가 폭행에 사용한 도구·폭행방법·상처 정도 등을 가려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부검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정빈 서울대교수 황적준 고려대교수·서재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 등 3명을 부검의로 정했으며 유족들이 원하는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이 참여해도 좋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 검사 등은 28일 상오 10시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강군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들고 연세대에 찾아가 「대책회의」측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었다. ○대책위 「검안」 못 해 ○…유족 및 「대책회의」측은 28일 하오 7시 「인의협」 양길승 박사,「민주변호사협의회」 천정배 변호사,유족 및 보도진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군 사체에 대한 검안을 실시하려 했으나 검찰이 이를 위법으로 간주,병원측에 협조를 요청해 저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검찰측의 부검강행과 대책회의측의 자체검안이 서로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양측은 전날에 이어 29일 상오 11시에도 학생회관에서 협의를 벌였으나 검찰측은 「부검전제검안허용」의 입장을 고수한 반면 「대책회의」측은 부검을 전제하지 않은 검안을 먼저 실시하자고 맞서 결국 실패했다. ○재야 등 1천명 조문 ○…연세대 세브란스에 마련된 강경대군 영안실에는 조문객이 줄을 이어 이날 하룻동안 1천명이 조문. 조문객들은 대부분이 왼쪽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조화를 손에 든 사람도 눈에 띄었다.
  • “치사규탄” 밤늦도록 산발시위/연대·명동성당선 1천여명 철야농성

    ◎일부는 도심서 경찰과 투석전/경찰에 쫓기던 학생 3명 추락,중상 명지대생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29일 밤늦게까지 전국의 대학가와 도심지 곳곳에서 잇따랐다. 학생과 재야인사 등은 이날 일부가 학교에서 철야농성을 했으며 일부는 가두진출을 원천봉쇄한다는 경찰의 방침에도 불구,적게는 1백여 명에서 많게는 2천여 명씩 도심으로 진출,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숨바꼭질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서대문로터리 주변에 있던 학생 2천여 명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도로로 나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폭력살인 자행하는 폭력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경찰과 맞섰다. 명동 종로 을지로 서울역 앞 등에서도 이날 자정을 넘어서까지 산발적인 기습시위가 계속됐다. 또 연세대에선 1천여 명이,명동성당에서는 5백여 명이 철야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의 도심시위가 예상되자 외출했던 시민들은 귀가길을 서둘렀으며 유흥가·상가 등은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다. 이에 앞서 재야·학생단체 등 44개 단체는 이날 하오 6시부터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학생·시민 등 2만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강군의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결의대회」를 갖고 하오 8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었다. 이날 대회는 이수호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문익환 목사의 추모사,강군의 아버지 등 유족의 증언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유족대표로 나온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0)는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무참하게 숨진 경대의 뜻을 이어받아 폭력살인을 자행하는 현정권을 타도하자』고 주장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강군 사건은 현정권이 장기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자당 해체,책임자 구속처벌,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했다. 대회 사회를 맡은 이수호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이 하오 8시쯤 『날도 어두웠는데 그만 대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에 들어가자』고 제의하자 대회참가자들은 일제히 유인물과 신문지 등에 불을 붙여 들고 함성을 질렀다. 한편 이 집행위원장이 대회가 끝날 무렵 장내방송을 통해 『경찰이 부검을 위해 강군의 시신을 빼앗을 조짐이 보인다』고 말하자 서총련 북부지구 소속대학생 5천여 명은 대회장을 빠져 나와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영안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이날 하오 9시5분쯤에는 연대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생 김수정양(20·국문과 3년)이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다 주차장 4m 아래 차도로 떨어져 왼쪽 팔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하오 9시30분쯤 경찰이 쏜 최루탄이 세브란스병원 유리창 2장을 깨고 안으로 날아드는 바람에 입원 환자들과 가족,의료진이 큰 곤욕을 치렀다. 한편 성균관대생 5백여 명은 이날 하오 9시쯤 신촌로터리 주변에 모여 있다가 연대에서 시위하고 있는 학생들과 합류하기 위해 연대 쪽으로 가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골목으로 피해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방에서도 각 대학별로 집회를 갖고 가두로 진출,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대 등 부산시내 8개 대학생 6백여 명은 학교에서 규탄집회를 마친 뒤 이날 하오 7시20분쯤 서면 태화쇼핑 앞에 집결해 8차선 간선도로 가운데 3개 차선을 점거,유인물 2천여 장을 뿌리며 20여 분 동안 도로점거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자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과 서면로터리 사이를 오가며 20∼50명씩 간선도로변과 이면도로에서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부산시경은 시위현장에서 모두 92명을 연행해 동부경찰서 및 영도경찰서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29일 하오 8시50분쯤 「폭력살인」규탄시위를 벌이던 제주대 자연대 학생회장 고귀형군(23·화학과 4년)과 김평국군(21·전자학과 2년) 등 2명이 진압경찰에 쫓겨 제주시 삼도1동 M약국 옥상으로 달아나다 3층 옥상에서 떨어져 고군은 허리와 골반뼈가 부러지고 김군은 귀가 찢어지는 등 중상을 입고 이웃 영동병원과 한국병원에 각각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밖에 경희대 수원캠퍼스 학생들도 이날 하오 4시쯤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 학교 박형희군(21·산업공학과 2년)이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치는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했다.
  • 「강군 치사」 전경 1명 추가구속/검찰

    ◎폭행가담 확인… 다른 6명은 혐의 못찾아/재야등 44개 단체 오늘 규탄대회 명지대생 강경대군(20·경제학과 1년) 치사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 2부 유명건 부장검사는 28일 구속된 임천순 상경(22) 등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 3소대 소속전경 4명 외에 같은 소대 김형두 상경(21)이 폭행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내고 김 상경을 상해치사혐의로 추가구속,영등포구치소에 수감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또 다른 가담자가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김상경 등 시위진압에 동원된 전경 7명을 27일 밤 소환해 조사했으나 다른 6명은 가담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돌려보냈다. 검찰은 김 상경이 푹행에 가담한 사실을 시인하고 구속된 임 상경 등 4명 모두가 김 상경과 함께 강군을 폭행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구속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속된 임 상경 등은 검찰조사에서 숨진 강군을 폭행하던 현장에 김 상경이 걸레막대기를 들고 함께 있었으며 전경버스 안에서 피묻은 운동화를 갈아 신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구속된 장광주상경(22)도 당초 밝혀진 대로 나무막대기로 강군을 구타한 것이 아니라 쇠파이프로 때린 사실도 밝혀냈다. 전경들이 폭행에 사용한 쇠파이프는 지난 17일 경희대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습득,버스 안에 보관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구속된 전경들은 검찰조사에서 강군을 때려 숨지게한 데 대해 『시위를 진압하면서 전경 17명이 다치는 등 학생들의 행동이 격렬해 방어목적으로 때렸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들 전경들의 시위진압을 현장에서 지휘한 4소대장 박만호 경위(37)를 금명간 불러 과잉진압을 지시했는지와 쇠파이프습득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1천여명 철야농성 「전대협」 소속대학생 1천여 명은 28일 하오 5시30분쯤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앞뜰에서 「고 강경대 열사 시신 사수 및 폭력정권 규탄대회」를 갖고 『현정권이 퇴진하고 관련자들이 구속될 때까지 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결의했다. 학생들은 또 『당국이 강군의 시체를 부검해 다시 죽이려하고 있다』면서 『이는 강군의 부검을 통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는 것으로 시신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집회가 끝난 뒤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1시간 가량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이들과 교내에 흩어져 있던 학생 등 1천5백여 명은 3일재 철야농성을 벌였으며 이 가운데 4백여 명은 영안실 주변에 시너를 뿌린 뒤 쇠파이프 등을 들고 밤을 새웠다. 이에 앞서 「전대협」 「국민연합」 신민당 등 재야단체와 정당 등 44개 단체로 구성된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책임자처벌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상오 회의를 갖고 29일 하오 5시 연세대에서 강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 결의대회」를 가진 뒤 시청 앞까지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벌이기로 했다. 「전대협」도 이날 『「범국민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앞서 전국 각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규탄대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학내 집회는 허용하되 가두행진은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이어서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각 단체대표자 55명은 이날 상오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대책회의」 발족식을 갖고 김진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권영길 「업종별 노조회의」 의장,김종식 「전대협」 의장 등 9명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검은 리번 달기운동 이날 회의에서 「대책회의」는 『앞으로 「백골단 해체의 날」을 정하고 「백골단」의 양심선언과 공격적인 시위진압방식을 지양할 것 등을 정부에 촉구하는 한편 오는 5월4일까지 전국민에게 검은 리번달리기운동을 전개하는 등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족 거부,부검 못해 한편 이번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2부 정현태 검사는 이날 상오 11시40분쯤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강군의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갖고 「대책회의」를 찾아가 『공소유지를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으나 강군의 부모와 「대책회의」의 반대로 그대로 돌아갔다. 「대책회의」는 이날 하오 7시쯤 강군이 안치돼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강군에 대한 검안을 실시하려 했으나 검찰이 불법이라며 병원측에 사체를 내주지 말 것을 요청,병원측이 안치소 문을 잠그는 바람에 검안하지 못했다.
  • 대학가 규탄사위 확산/강군 치사 항의/7천명 연대서 집회,투석전

    ◎재야도 내일 「전국범국민대회」 열기로 ▷대학가◁ 명지대학생 7백여 명은 27일 낮 12시쯤 학생회관 앞 민주계단에서 강경대군 사망사건과 관련,「범명지인규탄대회」를 갖고 1㎞쯤 떨어진 성가병원 앞까지 침묵시위를 벌이려다 교문 밖 70m쯤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이날 교문 밖으로 나와 차도를 행진하다 경찰이 저지하자 『인도를 따라 행진하겠으니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이 『어떠한 행진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맞서 40여 분 동안 몸싸움을 벌이다 학교로 되돌아갔다. 「전대협」 소속 대학생 7천여 명은 27일 하오 3시쯤 연세대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 모여 강경대군 상해치사와 관련,집회를 가진 뒤 하오 5시30분쯤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재야인사와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누나 선미양(22·명지대 중문과 3년) 등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집회에서 『관련자들의 즉각 구속,백골단·전경해체 등』을 요구하고 강군의 추모기간인 오는 5월4일까지 재야단체 등과 연대해 대규모 규탄집회를 가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 6시20분쯤엔 연희동 쪽 1백m 지점까지 진출한 학생들이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30여 분 동안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3차례에 걸쳐 교문 밖까지 나갔다가 3시간쯤 뒤 민주광장으로 다시 돌아가 각 대학별로 해산했다. 이들 가운데 1천여 명은 연세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전대협」은 이날 하오 11시30분 학생회관 3층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회의를 갖고 28일 하오 5시에 도서관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진 뒤 「노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전민련」 「전노협」 등 각 재야단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장례일정 및 절차 등을 논의했으나 내각총사퇴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영안실 주변에는 이날도 학생 40여 명이 입구에 화염병 1백여 개와 각목 20여 개를 준비해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한편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회원 20여 명은 이날 하오 10시부터 연세대대강당에서 학생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펼치면서 숨진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 「강군치사」전경4명 구속/검찰,상해죄적용/가담자 더 있었는지 조사

    ◎“쇠파이프 맞고 사망” 확인/중대장등 상급지휘관도 곧 환문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27일 명지대 강경대군(20·경제학과 1년)을 쇠파이프로 구타해 숨지게 한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 3소대 소속 김영순(22) 장광주(〃) 임천순 상경(〃) 이형용 일경(21) 등 전경 4명을 상해치사죄를 적용,구속했다. 검찰은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2부 유명건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을 편성,김 상경 등 4명의 신병을 이날 하오 5시40분쯤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정확한 사고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강군의 사체를 검안한 성가병원 외과 과장 박동국씨(35) 등 의사 2명과 구타행위를 목격한 시민 2명을 불러 참고인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이들을 철야조사한 결과 경찰의 기초조사에서 밝혀진 대로 김 상경 등이 시위 도중 경찰에 쫓겨 달아나던 강군을 뒤쫓아가 쇠파이프 등으로 집단폭행해 숨지게 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 담을 넘어 들어가던 강군을 끌어내린 뒤 이 일경이 쇠파이프로 강군을 구타했으며 장 상경은 각목으로 강군의 몸을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또 김 상경이 끌려온 강군을 붙잡고 있는 사이 임 상경이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어 강군이 구타당하는 현장에 전경 6∼7명이 함께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김 상경 등 4명 말고도 또 다른 가담자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진압전경들을 지휘한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장 김형중 경감(35)과 4기동대 2중대 3소대장 박만호 경위(36) 등 상급자들도 금명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강군의 사체를 부검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고 강군의 사인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학생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부지청 정현태 검사의 지휘로 28일중 사체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받았어도 유가족들과 학생들이 부검을 반대할 경우,그들을 설득해 사체 인도에 대한 동의를 얻은 뒤 부검을 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명지대 앞 시위진압에 투입됐던 사복전경 1백여 명을 상대로 철야수사를 벌인 끝에 김영순 상경 등 전경 4명이 강군을 폭행한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또 이들 전경들이 강군에게 휘두른 것으로 보이는 쇠파이프 2개와 경찰봉 2개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서울시경 이완구 3부장은 27일 상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명지대학 시위에서 김 상경 등 사복 전경 4명이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학교 안으로 달아나려는 강군을 담에서 끌어내린 뒤 경찰봉과 주먹으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6일 하오 5시10분쯤 학교 앞 2차선 도로에서 동료학생 2명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이던 강군이 경찰을 피해 철책이 무너진 가슴높이의 담에 올라서려는 순간 김 상경 등 전경 3명이 강군을 끌어내린 뒤 2m쯤 진압부대 쪽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이어 연행을 완강히 거부하는 강군을 경찰봉과 쇠파이프 등으로 머리 등 온몸을 마구 때렸으며 이 광경을 보고 쫓아온 임 상경도 가세,폭행하다가 강군의 머리와 얼굴에서 피가 흐르자 그대로 철수했다는 것이다. 길바닥에 쓰러진 강군은 곧 스스로 일어나 담에 올라서다 실신,동료학생들에 업혀 학교보건소로 옮겨졌다가 다시이웃 성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사실이 확인돼 이날 하오 6시10분쯤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 대학생 시위 중 절명/명지대생 1명/“도주하다 잡혀 경찰에 맞아”

    ◎경찰,철야 진상조사… 검찰선 공개부검키로 26일 하오 5시10분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교문 앞길에서 이 학교 경제학과 1년 강경대군(20·성동구 중곡1동 231의 4)이 시위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쓰러진 강군을 옮긴 정한기군(23·토목공학과 4년)은 『강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체포조가 쫓아오자 정문 왼쪽으로 40여 m 떨어진 높이 1·2m의 담을 넘어 달아나려다가 사복경찰 5명에게 붙잡혀쇠 파이프 등으로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고 주장했다. 명지대생 4백여 명은 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학생회관 앞 계단에서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2·무역학과 4년)이 「등록금 인상거부투쟁」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데 항의,규탄대회를 갖고 하오 4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며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5백여 개와 돌 5백여 개를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했었다. 학생들에 의해 옮겨진 강군을 처음 검진한 성가병원 박동국 외과과장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동공이 열리고 맥박이정지돼 있었으며 오른쪽 이마가 5㎝ 가량 함몰돼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강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제2기동대 66중대,사복경찰인 제4기동대 94중대,249도보대 등 3개 중대 3백30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었다. 강군의 가족은 아버지 강민조씨(50·국일기업대표)와 어머니 이덕순씨(43) 그리고 누나 강선미양(21·명지대 중문과 3년)이 있다. 강군의 시신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명지대·연세대생 및 「전민련」 등 재야단체 회원 등 6백여 명이 몰려들어 철야 연좌농성을 벌였다. 한편 검찰은 강군의 사인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중시,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 2부 유명건 부장검사를 반장으로 한 전담수사반을 편성,사고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사체부검을 비공개로 할 경우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27일 중에 유가족 학생대표 보도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의 집도 아래 공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혐의사실이 밝혀질 경우 관련자 전원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겠다고 말했다. 치안본부도 이날 사복경찰조인 94중대 1백20명 전원을 서울서부경찰서에 집합시켜 놓고 사고경위 등을 철야 조사했다.
  • 「어느 어머니의 살신성인」/박홍기 사회부기자(현장)

    ◎“병세 호전에 수심 가시는듯 했는데…”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만 하더니』 22일 상오 서울 영등포병원 2층 영안실. 일요일인 21일 새벽 화마에 아내 조영숙씨(57)와 둘째아들 근재씨(27)를 잃은 박노흥씨(72·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33의76)는 눈물도 마른 듯 넋을 잃고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을 자는데 아내가 「매캐한 냄새가 난다」며 잠을 깨우더군요』 박씨가 현관문을 열어보았을 땐 이미 1층에서부터 올라온 시커먼 연기가 3층 계단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상황이 급한 것을 안 조씨는 우선 평소 정신질환을 앓아 늘 신경이 쓰이던 아들 근재씨를 조용히 깨웠다. 조씨는 이어 2층에 세든 「한성완구」주인 조상숙씨(33·여) 남매들에게 인터폰으로 『불이 났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 박씨 가족이 불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3층 옥상 뿐이었다. 박씨가 앞장서고 부인 조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장난감이 타는 지독한 냄새와 시커먼 연기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씨가 벽을더듬으며 옥상에 거의 이르렀을 때 갑자기 뒤에서 『아이쿠』하는 아들의 목소리와 『재근야!』하고 외치는 아내의 애끓는 외마디소리가 들렸다. 이미 계단에는 시뻘건 불길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박씨는 옥상출입문 앞에서 정신을 잃었다.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불을 끄고 난 현장에는 근재씨의 손을 잡으려는 듯 조씨가 손을 길게 뻗고 숨져 있었다. 숨진 조씨는 아들 근재씨가 중학교 3년 때이던 지난 79년부터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한 이후 그 뒷바라지에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S대병원 등 정신과가 있는 유명하다는 병원을 소문만 들으면 전국 어느 곳이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최근 아들의 병이 좀 나아 모처럼 아내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시는 듯 했는데…』 박씨는 아내의 애쓰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불이 났다』는 조씨의 인터폰 연락을 받고 2층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뛰어내려 화를 면한 완구점 주인 조씨 또한 『음식을 만들면 꼭 나눠주며 항상 자상하게 대해주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렇게 급한 상황에서도 저희 3남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며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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