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아 살해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남긴다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위치추적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중수부장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중환자실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3
  • 3주 된 아들 죽여 뇌 일부 먹은 ‘엽기’ 엄마

    미국 텍사스 남부의 샌안토니오에서 오티 산체즈(33)라는 여성이 태어난 지 3주 된 아들을 칼로 살해하고 아들 뇌의 일부를 먹는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몇 달 전, 정신병 판정을 받은 산체스는 어머니, 언니와 함께 살았으며,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집을 떠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6일 새벽 5시 경, 산체스의 어머니는 거실에 나왔다가 손자가 피투성이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 했다. 출동한 경찰은 산체즈의 침실에서 영아 시체를 발견했으며, 당시 산체즈는 “악마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안토니오 경찰은 이 여성이 식칼 한 자루와 도끼 두 자루로 영아의 목을 벤 뒤, 뇌 일부를 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윌리엄 맥매너스 경관은 “산체즈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계속해서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아들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산체즈는 가슴과 복부를 자해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겉멋 버린 철학, 먼로의 점을 논하다

    겉멋 버린 철학, 먼로의 점을 논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어마어마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미국에 최악의 해는 2001년일 것이다. 그해 9월11일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미 의학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1만 8000여명이 의료보험이 없어 숨지고 있다고 한다. 9·11 사태가 매년 여섯 번씩 일어나는 것과 같은 수치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의료보험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라보시에는 ‘마릴린 먼로의 점에서 소크라테스를 읽다’(문세원 옮김, 글로세움 펴냄)를 통해 상아탑을 떠나 현실로 내려온다. 현실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것. 대중의 시선이 꽂혔던 톱 여배우 먼로와 고대 철학자를 결합시킨 책 제목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책 내용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독자들은 비디오게임의 폭력을 규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만적인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는 소크라테스, 인터넷 해킹을 이야기하는 존 로크, 진정한 사랑을 옹호하는 칸트 등도 만날 수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통해 애국을 고민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국 내에서도 전쟁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막상 침공이 시작되자 국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애국심이 맹위를 떨쳤다. 부시 대통령의 눈에는 충성을 강조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훌륭한 국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아니올시다.’ 이다. “진정한 애국자란 언제나 지도자가 하는 일이 국가의 최선을 위한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에는 성가시게 구는 존재가 필요하며 그 존재들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나 영화 등 영상물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흔하다. 이와 관련해 예술이 감정에 호소하며 사람들을 감정에 굴복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 플라톤과, 실제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 않은 작품은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반대 입장일 것이다. 저자는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을 살면서 가상의 평화에 집착하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현실문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고르고 싶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 별의별 민간요법이 있었던 시대를 지나 이젠 염색체나 배아를 활용한 과학적인 방법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태아의 성별을 부모가 결정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아이를 갖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차를 사러 온 사람에게 어떤 모델을 살 것인지를 다트판을 돌려서 결정하라고 우기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태아 성별 선택은)낙태나 영아 살해를 방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도 여럿 있어 일부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적인 전개가 반드시 맞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인터넷, 대중매체, 유전자 변형, 스팸메일, 남녀평등, 동성애, 민주주의, 애국심, 고문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철학과 논리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의견과 주장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佛법원 징역 8년형 선고

    │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등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베로니크 쿠르조가 18일(현지시간)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 서부 투르의 앵드르 에 루아르 중범재판소는 8시간의 토의를 거친 뒤 이날 저녁 자신이 낳은 영아를 세 차례 목졸라 죽인 뒤 유기한 혐의로 베로니크에게 검찰 구형량 10년보다 가벼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9일 시작한 1심 재판은 그동안 베로니크가 영아를 살해할 당시 임신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임신 거부증에 걸려 있었는지 여부를 놓고 정신분석의들 사이에 팽팽한 논쟁이 오갔다. 1심 재판 결과를 놓고 투르 지역신문 라 누벨 레퓌블리크는 “재판부의 관용이 적용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프랑스판 서래마을’ 사건 재판 1심 재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한 바 있어 이날 선고 형량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했다. vielee@seoul.co.kr
  • 서래 영아살해 佛여성 10년형 구형

    │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베로니크 쿠르조에게 프랑스 검찰이 17일(현지시간) 징역 10년형을 구형했다.프랑스 서부 투르 지방검찰청의 필립 바랭 차장검사는 이날 오후 6시쯤 “이번 사건은 대단히 중대하다.”며 “베로니크 쿠르조를 악마로 만들어서도 안 되지만 우상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앞서 바랭 검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한 듯 2시간여 동안 구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신분석의들의 설명 등을 감안할 때 베로니크의 책임감은 완화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들을 냉정하게 살해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18일 변호인의 변론을 들은 뒤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지난 9일부터 재판을 받고 있는 베로니크는 이날 오전 탈진한 모습으로 울먹거리면서 “세 아이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재판 기간 동안 논란이 된 임신거부증과 관련, “당시 임신을 감춘 것은 아니고 임신거부증 상태였다.”며 전날 일부 전문가들이 임신거부증이 아니라 임신을 감춘 것이라고 설명한 것에 대해 반박했다. 남편 장 루이 쿠르조도 “아내의 행동은 분명히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며 “베로니크는 병을 앓고 있으며 그 병은 중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옹호했다. 베로니크는 2002년과 2003년 서울의 서래마을에 살던 당시 자신이 낳은 영아 2명을 살해했으며 한국으로 가기 전인 1999년 프랑스의 집에서도 영아 1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수사를 받아왔으며 이번에 처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vielee@seoul.co.kr
  • ‘프랑스판 서래마을’ 여성에 8년형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판 서래 마을 사건’으로 수감된 프랑스 여성에게 12일(현지시간) 징역 8년형이 선고돼 3차례 영아를 살해 유기한 베로니크 쿠르조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역의 코트 다모르 중죄재판소는 이날 2007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한 뒤 냉동고에 버린 발레리 세레(36)에게 징역 8년과 보호감찰 5년을 선고했다. 주간 주르날 드 디망시 등 프랑스 언론들은 판결 소식을 전한 뒤 “이 사건은 서울 서래마을의 ‘쿠르조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며 “이번 판결 뒤 논쟁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쟁의 초점은 세레가 임신 거부증에 걸려 영아를 살해한 것인지 일부러 임신 사실을 숨긴 것인지다. 세레는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브르타뉴 지역의 생브뤼외크의 한적한 농가에서 살았다. 정신분석의들 주장에 따르면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이 임신 소식을 알까 두려워 한 세레는 임신 사실을 속인 채 아이를 낳아 살해한 뒤 냉동고에 버렸다. 정신분석의 브리지트 엘고지는 “이번 사건은 쿠르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일어난 ‘전염 효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세레는 범행 당시 ‘임신 거부증’에 걸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신분석의 등 전문가들은 세레가 구속 수감 중인 지난해 9월 딸을 낳았는데 교도소 직원이나 수감 동료들이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그녀가 범행 당시 임신 사실을 고의로 감췄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이 판결이 내려진 12일 베로니크 쿠르조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다양한 정황 증거를 내세워 베로니크가 세 차례 범행 당시 임신 거부증에 걸려 있었다고 주장했다. vielee@seoul.co.kr
  • 서래 영아살해 佛여성 “나도 감정이 있다”

    │파리 이종수특파원│“저 역시 감정이 있습니다.” 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가 11일(현지시간) 사건 이후부터 최근 심경을 상세히 진술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 3일째인 이날 조르주 도메르그 재판장이 “당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베로니크는 “상황을 설명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문을 연 뒤 또박또박 말하려 애쓰면서 “교도소에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 상태가 나아졌다.”고 말했다고 일간 르피가로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베로니크는 이어 재판장의 격려를 받은 뒤 진지한 자세로 약간 목소리를 높여 “나 역시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심경과 관련, “세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너무 끔찍했다.”면서 “내가 결코 보지 않기를 원했던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큰 쇼크 상태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vielee@seoul.co.kr
  • 서래 영아살해 佛여성은 ‘임신 거부증’

    │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사건으로 구속 수감됐던 베로니크 쿠르조가 9일(현지시간) 첫 재판을 받으면서 프랑스에서 ‘임신 거부증’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일간 르몽드와 르피가로 등은 이날 베로니크 재판 장면을 상세히 전하면서 이번 재판을 계기로 그녀의 범행 원인으로 제기된 ‘임신 거부증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신거부증은 임신으로 고통을 느끼는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 사실을 부인하고 임신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베로니크가 2002년과 2003년 서울의 서래마을에서 자신이 낳은 영아 2명을 살해하고 한국으로 가기 전인 1999년 프랑스에서도 또 다른 영아 1명을 살해한 것은 임신거부증에 걸렸기 때문이라며 재판할 때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낭트 대학 병원의 정신분석가 소피 마리노풀로는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임신거부증에 걸렸다고 모두 영아를 살해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여성이 혼자 출산을 하게 되면 세상과 단절됐다고 인식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우발적으로 영아를 살해할 수도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임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모성애를 전혀 갖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재판과 관련, “베로니크는 구속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며 “이제 더 이상의 범행 가능성도 없는 그녀를 현실과 유폐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옹호했다. 또 “고통받는 한 여성을 괴물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 가엘 게르날레크-레비는 2007년 펴낸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임신 거부증 조사’라는 책에서 프랑스 여성 가운데 매년 800~2000명이 임신거부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vielee@seoul.co.kr
  • 300년전엔 서양이 동양을 흠모했었다

    300년전엔 서양이 동양을 흠모했었다

    정복한 땅의 크기를 볼 때 세계사적으로 최고의 정복왕은 누구일까.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일까, 서양 문화의 원형이 된 로마제국의 카이사르일까, 동유럽인 헝가리에까지 침략의 손을 뻗친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일까. 답은 물론 12~13세기 유럽을 경악시킨 칭기즈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동양이 현재 시점에서 겪고 있는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가 세계사를 거꾸로 1000년만 돌리면 우월감으로 변화되고, 최소한 300년만 돌려도 그 콤플렉스는 찾아보기 힘든 여러 정황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만남(1500~1800)’(데이비드 문젤로 지음, 김성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동양과 서양 간의 문화교류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 베일러대 교수로 19세기 말 어떤 힘에 의한 일방적인 소통의 시대로 나가기 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부제인 ‘대항해 시대, 중국과 유럽은 어떻게 소통했을까’가 제시하듯 16세기 동양(정확하게는 중국)의 철학과 예술은 유럽의 종교와 과학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시대에는 일방적인 쏠림현상이 없다. 오히려 중국의 차와 실크, 도자기가 유럽으로 밀려들어간다. 도자기의 경우 17세기가 돼서야 유럽은 중국이 유럽에 수출한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그 사이에 유럽의 귀족과 왕들은 중국 도자기 방을 만들고, 도자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16세기 유럽의 왕·귀족 中도자기 수집 열광 고리타분해 보이는 유학과 공자가 서양에 소개되면서 서양 철학사와 사상사에 일대 반향이 일어난다. 볼테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중국 사회와 유럽의 부패한 가톨릭 사회를 대조했다. 볼테르는 중국의 종교는 미신이나 터무니없는 전설이 거의 없다고 호평한 반면, 기독교에는 미신 등이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영국의 철학자 마르크스,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같은 미국 정치인들도 중국의 법률 체계와 귀족 정치를 흠모했다.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와 같은 저명한 지식인은 스스로 발견해낸 우주의 진리가 유가 철학에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17세기 중국의 역사는 유럽의 정체성에 지적인 도전도 이뤄낸다. 유럽에서 학문의 여왕은 신학이었지만, 중국에선 역사였다. 세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문명을 가진 중국은 전문 학문으로서 역사학이 있었다. 역사학을 만난 17세기의 유럽은 성경에 정확한 연대기를 만들려는 열정을 갖게 됐다. 결국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는 라틴어로 된 ‘신구약 편년사’를 출판해 아담 창조의 시기를 기원전 4004년, 노아의 홍수를 기원전 2349년 등으로 정하기도 했다. 그럼 동양의 서양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콤플렉스(일부 동양인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는 언제 시작됐나. 19세기 말 중국 필리핀 마닐라 등이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 200년간 쌓여온 감정이다. 원래 중국은 자신들 세계의 밖을 ‘오랑캐’에 불과하다고 했지 않았나. 동양에 대해 서양인들이 우월한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 15세기 말~16세기 ‘대항해의 시대’를 통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을 식민지로 성공적으로 개척한 불과 200년 안팎에 형성된 감정일 뿐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동양에 대한 우월의식 사실 바스코다 가마(1497)나 콜럼버스(1492) 등을 유럽의 ‘대항해 시대’ 또는 ‘지리상 발견의 시대’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도 서양의 시각에서 그럴 뿐이다. 이보다 70년 전 명나라 영락제 때 환관 정화는 함대를 이끌고 1405~1433년까지 7차례나 ‘서양원정’을 떠났다. 그때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것이다. 더 나아가 영국 해군 제독 출신인 개빈 멘지스는 ‘1421년 가설’을 통해 정화가 호주와 아메리카 발견까지 해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주장은 현재 가설로 존재하고,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 측에서 배를 띄우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시기에 동서양 문화의 가교는 예수회 신부들이었다. 문젤로 교수는 초기 예수회 신부들이 영아 살해, 아동 인신매매, 매춘 등이 자행되는 중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했다. 1740년대 중국을 방문한 영국의 해군지휘관 조지 앤슨도 중국을 비열한 관리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나라라고 맹비난했다. 번역자인 김성규 전북대 역사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지금까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을 규정해온 것들은 모두 서양 중심주의적인 것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서양이 동양을 압도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그 이전의 시기를 돌아보면 동양의 우월성이 도드라지는 만큼 중국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동양의 여러 문제를 새롭게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16년간 문맹 퇴치 美모텐슨 ‘파키스탄 민권운동상’

    “남자 아이 한 명을 가르치면 한 ‘사람’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만 여자 아이 한 명 가르치면 한 ‘공동체’를 가르치는 것이 된다.” 미국의 인도주의자 그레그 모텐슨(51)은 이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았다고 했다. 교육받은 여성이 많을수록 영아 사망률이 크게 감소하고 급격한 인구 증가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팔을 걷어 붙였다. 무려 16년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맹률 퇴치에 앞장섰고 이제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모텐슨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파키스탄 최고 권위의 민권운동상인 시타라-에-파키스탄(파키스탄의 별)상을 수상하게 됐다. 아시아넷은 22일 “모텐슨이 지난 16년 동안 시골 소녀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교육에 헌신한 공로로 파키스탄 최고 권위의 민권운동상인 시타라 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상을 받은 외국인은 지금까지 모두 3명뿐이다. 모텐슨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시골 구석구석에 78개 학교를 세웠다. 교육의 기회가 전무했던 2만 2000여명의 여자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그의 명성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농촌지역의 살아 있는 영웅이 됐다. 미국인임에도 불구, 부족장 등 현지인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도 얻었다. “무지는 곧 증오를 조장한다. 교육을 통해 여성의 문맹을 퇴치하는 것이 바로 평화의 중심 통로다.”는 그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그는 1996년 파키스탄에서 8일간 무장 괴한들에 납치됐다 살아나기도 했다. 친(親) 이슬람적 행보에 미 중앙정보국(CIA)의 수사를 받았으며 무슬림 어린이들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같은 미국인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도 그의 철학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모텐슨은 수상에 대해 “보잘것없는 일에 비해 너무나 큰 영광”이라면서도 “이런 명예는 어려움에도 불구, 교육을 통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교사 및 학생 그리고 선량한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비영리 단체인 중앙아시아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며 29개국에서 출판된 국제적 베스트 셀러 ‘세 잔의 차(Three Cups of Tea)’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反인륜범’ 사진·실명 공개합니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反인륜범’ 사진·실명 공개합니다

    서울신문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피의자의 인권보호 측면과 국민의 알권리,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론입니다. 본지는 앞으로 유사한 사례에 이런 방침을 준용하기로 했습니다. 즉,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은 물론, 증거가 명백한 반(反)인륜범죄자에 대해서는 얼굴 사진과 실명을 공개할 방침입니다. 2004년 무렵 ‘인권수사’가 강조되면서 국내 언론은 흉악범죄 피의자라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을 지켜 왔습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 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돼 인권침해 논란이 일면서부터였습니다. 이듬해 경찰청이 마련한 ‘인권보호를 위한 직무규칙’이란 훈령에 “경찰서 내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초상권 침해금지 규정이 포함됐습니다. 이후 경찰이 피의자에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주는 관례가 생겼고, 연쇄살인범 유영철(2004년)과 정남규(2006년) 사건 때도 국민들은 범인의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지는 이번에 고심 끝에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범죄 규명 및 예방과 같은 공익의 신장이 더 소중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법조계와 학계 등의 찬반론과 언론의 사회적 책임 등을 폭넓고 균형있게 감안한 결론입니다. 즉,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초상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익적 목적에 근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선진국의 추세도 참고했습니다. 미국에선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아동 성범죄자처럼 보도로 인한 공익 신장 가능성이 크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관행도 비슷합니다. 지난 2004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때 프랑스 언론들은 체포된 프랑스인 부부의 얼굴을 즉각 보도했습니다. 경찰도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여론을 감안한 듯 1일 실시된 현장검증에서 마스크를 벗겨 강의 얼굴 윤곽을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다만 본지는 흉악범죄 보도시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해 증거가 명백할 경우에 한해 공익을 위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것입니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사회적 응징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와 함께 독자들의 제보를 통해 경찰의 추가 수사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박경리 선생이 잠든 통영

    박경리 선생이 잠든 통영

    지난 9일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원했던 대로 고향인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자락에 묻혔다. 한산도 등 아름다운 섬을 품은 통영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선생이 그토록 사랑한 통영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수구초심(首丘初心)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선생이 나고 자란 ‘뚝지먼당’에서 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인 간창골, 해저터널 등을 거쳐 영면한 미륵산자락까지 하나하나 짚어봤다. #박경리 선생에게 통영이란… 통영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해군 사령부격인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이다. 전쟁의 험악한 기운으로 가득찼던 통영은 그러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예술의 향기 그윽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통영이 고향인 시인 유치환은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중앙동 우체국에서 이영도에게 연서를 썼고, 그 우체국 앞길은 현재 ‘청마거리’로 명명돼 있다. 그뿐 아니다. 음악가 윤이상과 시인 김춘수,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시조시인 김상옥 등 당대를 풍미했던 예술인들이 펜으로, 또 붓으로 통영에 대한 사랑을 읊고 그려냈다. 하지만 고 박경리 선생에게 고향 통영은 애증이 엇갈린 도시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김순철 통영시청 문화예술계장에 따르면 선생은 27∼28세 나던 해 고향을 떠난 후 2004년 처음으로 통영땅을 밟았다. 피보다 붉은 뚝지먼당 동백꽃이 50번도 넘게 피고 진 세월이다. 김 계장은 “몇몇 동창들과 감격적인 해후의 시간을 갖긴 했으나, 끝내 생가가 있는 뚝지먼당 등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가난에 시달렸던 유년기를 추억하기 싫어서였을까. 앞서 유방암과 싸웠던 1973년에는 토지 1부 자서를 통해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단 말인가.”라며 심경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선생의 생가에 대해서는 친구들간에도 견해가 엇갈리는데, 김 계장은 선생의 기억과 호적 등의 자료를 토대로 역추적한 결과 문화동 328의1번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지인들이 뚝지먼당이라 부르는 곳이다. 삼도의 수군통제사들 중 으뜸이 되는 원수의 깃발을 모신 사당을 ‘뚝사’라 하는데,‘뚝지’는 ‘뚝사’,‘먼당’은 ‘고개’의 사투리다. 즉 ‘뚝사가 있는 고개’가 뚝지먼당인 것.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뚝사는 사라지고 말았다. #문단의 거목 키워낸 뚝지먼당 선생은 뚝지먼당에서 ‘박금이’(朴今伊)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다. 돈 있는 사람이 고갯길 골목에 사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뚝지먼당 또한 마찬가지. 굽어진 골목마다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이웃들이 그러했듯 가난에 시달렸던 ‘문학소녀’의 생가는 이미 허물어졌고, 그 자리엔 붉은 벽돌집이 들어섰다. 골목길 입구의 ‘김약국의 딸들’ 작품비만이 그 시절을 웅변하고 있을 뿐. 선생은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강신연(84), 김천수 할머니 등과 자주 어울렸다. 강 할머니는 당시의 박금이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금이는 작은 키에 예쁘장했제. 친구들도 잘 사꼬.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서도, 부산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다아이가. 원래 내가 있는 통영초등학교에 올라꼬 했는데 자리가 없었어. 그래가 산양읍에 있는 산양보통학교(현 진남초등학교)를 잠깐 다니다 4학년 때 다시 통영초등학교로 전학온기라.” 강 할머니는 선생이 어린 나이에도 소설책 읽기를 즐겼다고 전했다.“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다 소설책을 피놓고 봤다니께네. 공부를 열심히는 안 했지만서도, 그래도 잘한 편이었어. 그 가시나가 얘기도 참 잘했따꼬. 정신없이 금이 얘기 듣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퍼뜩 정신차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니께네.” 뚝지먼당 아랫마을이 간창골이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무대다. 작품 속 서문고개는 슬프고 기구하다.‘김약국의 둘째딸’ 용빈의 독백을 들어보자. 명망 높았던 한 가족의 몰락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하략”‘토지’의 시작이나 ‘김약국의 딸들’이나 하나같이 비극적인 이유가 혹시 뚝지먼당이 심어준 정서 때문은 아닐까. 뚝지먼당에서 보면 통영항은 물론, 세병관과 남망산 등 통영의 전체적인 윤곽이 잡힌다. 선생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진주여고에 들어갈 무렵 아랫동네 명정동으로 이사를 간다. 명정동 골목집 바로 앞은 윤보선 전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 여사의 생가로도 유명하다. #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잠들다 2007년 12월 선생은 세번째로 통영을 찾는다. 그곳이 산양읍 미륵산 자락의 양지농원이다. 선생이 통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자, 영원한 잠을 자게 된 곳이다. 양지농원 정대곤 대표에 따르면 원래는 현 묏자리 바로 아래에 선생이 거처할 집을 짓기로 했었다. 양지농원 내 2층짜리 전원주택풍의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선생은 통영 앞바다의 수려한 풍경에 “왜 이제사 여기에 왔을까.”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생전에 집을 짓지는 못했어도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일까. 통영 읍내에서 차로 통영대교, 또는 충무교를 넘거나 혹은 걸어서 해저터널을 건너면 닿는 곳이 통영에서 가장 큰 섬인 미륵도다. 미륵산은 미륵도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내친 걸음, 미륵산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등산로는 빽빽한 편백나무 숲 사이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절집 미래사에서 시작된다. 관광 케이블카가 수리 중인 탓에 가파른 산길을 40분쯤 걸어 올라야 했다. 정상에 서면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경이 주르륵 펼쳐진다. 흰 거미줄을 뽑아내듯 바닷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어선들이 한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을 종횡으로 엮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관광엽서에서 흔히 보는 한려수도 사진은 십중팔구 이곳에서 찍는다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의 풍광이다. 선생의 묘지가 있는 미륵도는 오후에 찾을 것을 권한다. 한 굽이 돌 때마다 해안절경을 토해내는 22㎞의 산양일주도로는 해질녘 달려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특히 해가 다도해의 섬들 뒤편으로 사라지고 난 뒤 만들어내는 붉은 기운은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글 사진 통영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경부고속도로→대전 분기점→대전·통영중부고속도로→통영. ▶주변 명소:통영 시내에 윤이상 생가, 청마문화관, 화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집, 전혁림 미술관 등이 있다. 시민문화회관 부근에는 15명의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조각공원, 유치환의 ‘깃발´ 시비도 있다. 산양일주도로변 달아공원은 국내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곳. 통영시청 문화예술계 650-4510, 문화관광과 650-4610. ▶맛집:울산다찌집(645-1350), 통영사랑 다찌집(644-7548), 만성복집(645-2140). #‘토지´ 속 또 다른 명소 ‘토지’ 4부에 등장하는 충무교 옆 해저터널은 한번쯤 걸어보는 것이 좋겠다.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둔 유인실과 좌파 지식인 오가다 지로는 서로 사랑하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란 처지 때문에 선뜻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통영에 내려와 처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곳이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통영 읍내와 미륵도를 연결한다.1932년 완공후 30여년 동안은 차들이 다니기도 했으나, 요즘엔 도보로만 오갈 수 있다. 세병관을 지나 서문고개 끝자락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공대천의 원수’를 기리는 곳일 텐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별다른 피해 없이 용케 살아남았다.‘토지’5부에서 송영광(길상과 서희 부부의 수양딸 양현과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색소폰 연주자)의 상념을 통해 잠깐 등장한다. 충렬사 앞의 명정우물(정당샘)도 가볼만 하다. 선생이 진주여고에 입학하면서 이사한 명정동 집에서 3분거리다. 일정(日井)과 월정(月井) 두 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월을 합해 명정(明井)이라 부른다.1670년쯤 우물을 하나만 팠는데, 물이 곧 탁해지고 말라버렸다. 두 개를 파자 그제서야 수량이 풍부해지고 맑아졌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엔 식수원이자 빨래터였다고 한다. 작품 속엔 등장하지 않지만, 선생도 여고시절 이곳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를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 프랑스판 ‘서래마을 사건’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동부 알프스 지역의 알베르빌에서 한국의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과 흡사한 범죄가 또 발생했다. 24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올해 36세의 여성이 영아 시체 3구를 비닐 백에 담아 집안에 숨겨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이 여성과 내연 관계인 동거남(40)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해 집안을 수색한 끝에 영아 시체를 찾아냈다고 밝혔다.숨진 영아는 2001년,2003년,2006년 각각 태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시체는 여러겹의 비닐 백에 싸인 채 집안에 있는 철제가방, 상자, 냉장고 등에 따로 보관돼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동거남은 22일 2구의 영아시체가 부패된 상태로 비닐백에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이들 영아를 이 여성이 실제로 낳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시체가 적발되지 않도록 냉장고 등 서로 다른 곳에 영아 시체를 분산해 숨겨왔다고 시인했다. 이들 커플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지난해 이사를 왔으며 당시 이 여성은 영아 시체를 함께 옮겨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현지언론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한국과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서울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과 비슷해 이목이 쏠린다고 전했다. 프랑스 경찰은 지난해 영아 2명을 살해해 서울 서래마을에 있는 아파트의 냉장고에 시체를 보관해 온 혐의로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를 구속 수감했다.프랑스에서는 지난해에도 10월과 11월에 중부와 남부 도시 등에서 이와 유사한 영아 유기사건이 잇따라 적발된 바 있다.vielee@seoul.co.kr
  • 다이앤 포시著 ‘안개 속의 고릴라’

    몇 년 전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란 책이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에 사로잡히게 한 적이 있다. 그런 구달이 침팬지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면, 비루테 갈디카스는 오랑우탄, 다이앤 포시는 고릴라 연구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 중 다이앤 포시의 자전적 연구보고서 ‘안개 속의 고릴라’(최재천·남현영 옮김, 도서출판 승산 펴냄)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고릴라’의 국내 발간은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동물생물학 분야의 권위자들에 의해 지금에라도 책이 나온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와 까치 생물학자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현영씨가 번역을 맡았다. 최재천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구달과 갈디카스의 연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포시의 연구역정만큼 파란만장하지는 않았다. 밀렵꾼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 나가는 고릴라들을 지켜내려다 자신도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한 포시의 삶은 진정 영화가 되고도 남는다.”라고. 최 교수의 말처럼 다이앤 포시는 198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르완다의 카리소케 야외연구센터 숙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범인은 고릴라 밀렵꾼의 하나로 추측되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시고니 위버가 주연한 영화 ‘정글 속의 고릴라’(1988)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이앤 포시는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를 만나면서 유인원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1963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길에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굴작업을 벌이던 리키 박사를 만난 것은 그녀에게 유인원 연구에 관한 결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후 포시가 고릴라에 관한 몇몇 사진과 기고문을 발표하자 리키 박사는 이를 눈여겨봐 뒀다가 1966년 산악고릴라의 장기 야외 연구를 하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제의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고지대에서의 연구를 위해 맹장수술을 받으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유인원 연구에 대한 갈증으로 이미 ‘발동’이 걸렸던 포시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그녀는 당장 맹장을 떼어 버리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그리하여 1985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18년 동안 포시는 고릴라 연구에 온 열정과 사랑을 바친다. 실제로 포시의 연구처럼 장기간에 걸친 면밀한 관찰이 없었다면 고릴라들의 심성이나 개성은 물론 영아살해, 동종 식육, 동성애나 자위행위,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에서는 드물게 관찰되는 완경(암컷 고릴라의 월경이 사라지는 현상)과 눈물을 흘리는 행동 등은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최재천 교수는 설명한다. 연구뿐만이 아니라 밀렵 방지 활동에도 포시는 최선을 다한다. 밀렵꾼에게 고릴라가 처참하게 도살당한 사건을 언론에 고발하는 한편 멸종 위기종의 보존을 위해 자연서식처를 보호시설로 꾸며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그리고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디지트’라는 고릴라가 밀렵꾼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디지트 기금’(1992년 다이앤 포시 국제 고릴라 기금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설립해 남은 고릴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외유내강의 다이앤 포시가 외강내유의 고릴라들과 함께하며 섬세하게 남긴 이 기록은 보전학자로서의 모험적인 탐구서이자 살아있는 유언장으로 다가온다.2만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랑스 또 영아살해 유기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여성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의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과 유사한 범죄들이 프랑스에서 잇따르고 있다. 1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중부 지방인 루아르 에 셰르 도(道)의 공트르에서 자신이 낳은 아기 3명을 잇따라 살해 유기한 혐의로 39세 여성 마리네트 프쟁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루아르 에 셰르 도는 공교롭게도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의 범인 베로니크 쿠르조의 집이 있는 앵드르 에 루아르 도와 이웃한 지역이다. 프쟁은 그의 옛 집 정원에서 영아 시체 1구가 발견된 지난 1월 말부터 영아유기 혐의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인 10월 중순과 지난 8일 나머지 2구의 영아 시체가 같은 장소에서 현재 집주인과 수사진에 의해 잇따라 발굴됐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발견된 영아들은 1995년과 2000년에 각각 숨진 것으로 보인다. 프쟁은 임신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숨겼다고 진술했고, 아기들의 아버지는 프쟁의 전 남편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프쟁의 정신 감정을 의뢰하기로 했다.15세 이하 미성년자 고의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프쟁은 이미 성년인 자녀 4명을 두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도 유사한 영아 유기 범행이 드러났다. 39세 여성이 2년 전 아파트에서 아기를 홀로 나은 직후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는데, 부검 결과 숨진 영아는 태어났을 때 살아 있었고 질식에 의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네 아이의 어머니인 이 여성은 아기를 냉동고에 넣은 뒤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여성의 과거 내연남이 지난달 31일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냉동고 속의 아기 시체를 발견한 직후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발각됐다.vielee@seoul.co.kr
  • 佛언론 “영아 유기 보도는 佛의 오만”

    프랑스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는 17일 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프랑스가 한국을 깔보며 거만하게 대했다고 비판했다. 르 몽드는 이번 사건에 수많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관심을 끄는 점은 범인인 베로니크 쿠르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신문은 “최근 몇 달간 우리는 한국을 깔보는 시선으로 한국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입증한 사실들을 이해하지 않았었다.”며 “여기서 ‘우리’에는 경찰, 사법부, 변호사, 언론, 여론이 다 포함된다.”고 밝혔다.파리 연합뉴스
  • 서래마을 ‘영아유기’ 남은 의혹들

    |파리 이종수특파원|“그녀가 세상에 거짓말을 했다.” 서울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의 범인으로 드러난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38)를 조사한 한 수사관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수사가 진행될수록 베로니크 입에서는 엽기적 행각이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베로니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추가 범행을 자백했다. 영아 살해 전력이 모두 3번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인 1999년 7월 프랑스에서 ‘홀로 출산’ 뒤 아이를 목졸라 죽인 뒤 시체를 불태웠다. 이어 서래마을에서 발견된 두 영아도 이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2002년,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홀로 출산-교살-유기’라는 범행과정을 거쳤다고 자백했다. 베로니크는 이날 투르 법원에 출두, 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이어 중죄를 담당하는 검사에 해당하는 수사판사에게 넘겨져 오를레앙 구치소에 수감됐다. 남편인 장 루이 쿠르조도 ‘공모 혐의’로 신문받았다. 투르 검찰의 바랭 검사는 “베로니크가 ‘계획적 범행’을 인정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발표했다. 베로니크의 잇단 자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베로니크와 모랭 변호사는 “남편 장 루이는 임신·범행 사실을 전혀 몰랐고 베로니크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장 루이도 이날 살인 공모 혐의로 수사판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바랭 검사는 “장 루이에게 구체적인 혐의는 발견된 게 없지만 그가 세 차례나 벌어진 아내의 범행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공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또 베로니크가 한국에 온 뒤 시체를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냉동고에 보관했는지도 의혹이다. 아울러 어떻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지도 수사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수사가 더 진행되면서 프랑스 수사판사가 또 어떤 ‘양파 껍질’을 벗겨내게 될지 주목된다.vielee@seoul.co.kr
  • 佛쿠르조부인 “영아 모두 3명 살해” 자백

    佛쿠르조부인 “영아 모두 3명 살해” 자백

    ㅣ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김기용기자ㅣ 서울 서래마을의 영아 유기의 범인으로 드러난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38)가 경찰 조사에서 “모두 3명의 아이를 낳은 뒤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으로 로이터 통신이 12일(이하 현지시간) 경찰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뉴스전문 라디오 프랑스앵포는 “베로니크가 ‘모두 세 차례 영아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며 “그에 따르면 한국으로 출국하기 전인 1999년 다른 아이를 몰래 낳아 죽인 뒤 시체를 불에 태우고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 한국에서 영아를 유기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2003년 출산 뒤 질식시켜 죽인 아이들이 애초 알려진 대로 쌍둥이가 아닐 수 있다고 보도해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베로니크가 이날 아침 남편과 대화를 나눈 뒤 수사관에게 “한국에서 잇따라 임신했고 두 아이 모두 질식사시켰다.”고 자백했다.또 2002년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도 다른 아이를 몰래 낳아 시체를 불태웠다고 실토했다.이어 남편 장 루이는 이 사실을 모른다고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로니크는 이날 저녁 중죄를 담당하는 수사판사로 넘겨졌다.투르 검찰은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프랑스 형법에 따르면 친자 살해의 경우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프랑스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애초 언론은 한국측 수사 결과에 의혹을 품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프랑스 경찰과학연구소의 DNA 분석 결과에 이어 베로니크의 자백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12일 오후 베로니크가 한국에 들어가기 전인 1999년에도 아이를 낳아 죽인 뒤 시체를 불태웠다고 실토하자 경악해하는 분위기다.주요 일간지는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냉동 아기 사건’ 등의 제목으로 연일 사건을 대서 특필하고 있다. 앞서 베로니크는 11일 경찰 조사에서는 “더 이상 아이들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욕실에서 15분 간격으로 쌍둥이를 출산한 뒤 질식사시켰다.”고 자백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수사관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한 뒤 “2003년 11월의 출산은 두 아들(9,11세)이 집에 없었던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 인터넷판도 “9세,11세 된 두 아이가 있어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베로니크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중절 수술을 받기에 너무 늦어서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쿠르조 부부의 변호인인 마르크 모랭 변호사는 전날 이들을 면회한 뒤 “장 루이는 충격에 빠진 상태이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베로니크의 자백에 앞서 투르 경찰은 이날 앵드르 에 루아르 도(道)의 수비니 드 투렌에 있는 이 부부의 자택을 1시간 정도 수색한 뒤 컴퓨터 본체를 압수했다.당시 집에는 이 부부의 두 아들이 머물고 있었다고 일간지 르피가로는 전했다. 쿠르조 부부는 10일 프랑스 경찰과학연수소의 DNA분석 결과 영아들 부모로 확인된 뒤 경찰에 긴급 체포,수사를 받아 왔다.체포된 뒤에 이들은 “프랑스측 DNA분석 결과도 믿을 수 없다.”며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한편 프랑스 경찰은 베로니크가 아이를 원하지 않은 이유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이와 관련,리베라시옹지는 경찰이 부부의 성적 관계는 물론 다른 사회적 관계들이 어떠했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vielee@seoul.co.kr
  • ‘영아유기’ 프랑스인부부 긴급체포

    ‘영아유기’ 프랑스인부부 긴급체포

    |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김기용기자|숱한 화제를 뿌리며 미궁에 빠져들었던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 냉동고 영아유기 사건의 미스터리가 실체를 드러내게 됐다. 영아들의 부모는 이들이 숨진 채 발견된 집 주인들로 최종 확인됐다. 이들이 숨진 영아를 혹은 영아를 살해한 뒤 냉동고에 보관한 것이 확실시된다. 프랑스 검찰은 10일(현지시간) 오후 장 루이 쿠르조, 베로니카 쿠르조 부부를 긴급 체포했다. 투르 검찰청의 필립 바랭 검사는 “유전자(DNA) 조사 결과 부부가 숨진 영아 두 명의 부모일 가능성이 99.999%로 나타나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48시간 동안 수사 판사의 조사를 받은 뒤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남편 쿠르조는 이날 프랑스 취재진의 질문에 “할 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사건은 지난 7월13일 주한 프랑스인 밀집지역 서래마을의 한 고급주택 냉동고에서 영아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비롯됐다. 대기업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장 루이 쿠르조는 “본국에 여름휴가를 갔다가 잠시 귀국했더니 집안 냉동고에 영아들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우리 경찰이 주변 인물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정작 아이들의 아버지는 신고 당사자인 쿠르조로 나타났다. 아내 쿠르조에 대한 DNA 분석에서도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 사실을 프랑스에서 통보받은 쿠르조 부부는 지난 8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우리는 절대로 두 아이의 부모가 아니다. 한국 경찰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부부는 현지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투르 경찰청은 지난달 26일 부부에 대해 타액 채취 및 지문 검사를 했으며 같은 달 28일 한국 경찰로부터 DNA 시료를 넘겨받아 분석작업을 해 왔다. 프랑스 신형법에 따르면 고의 살인죄는 징역 30년형에 해당한다. 특히 피해자가 15세 이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재판부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국내 법무부와 검찰은 프랑스측이 쿠르조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비침에 따라 우리 수사팀을 현지에 파견하려던 방침을 철회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프랑스의 DNA 분석 결과가 나왔고 쿠르조 부부가 체포되는 등 상황변화가 생겨 수사팀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쿠르조 부부의 신병인도 요청 여부와 관련해서는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두 프랑스인이고 프랑스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하는 만큼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영아 엄마는 집주인 처…‘유기’ 2년 넘었다?

    영아 엄마는 집주인 처…‘유기’ 2년 넘었다?

    C씨 부부의 아이들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 서래마을 빌라의 냉동고에서 죽은 영아들의 어머니가 집주인 C씨의 부인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의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불륜이 아닌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태어난 아기를 왜 죽였을까. 답이 선뜻 떠 오르지 않는다. 부부 중에 누군가 심각한 유전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V씨의 질환 여부는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해 궁금증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C씨 부부가 이미 두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유전병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부부가 불화로 아이들을 죽였을 가능성도 있다. 산모가 남편과 사이가 나빠 복수를 하려거나 우울증 때문에 영아를 유기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은 V씨가 2003년 12월 산부인과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사실을 확인, 부부가 한국에 살기 시작한 2002년 8월부터 수술받기 전에 출산과 살해, 유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유기된 사내 아이들이 C씨의 정자와 V씨의 난자로 만들어진 수정란을 대리모 자궁에 착상하는 방식으로 2003년 12월 이후 태어났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필리핀 여성 가정부 L씨는 경찰 조사에서 “V씨가 임신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C씨도 “영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맞다면 V씨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된다. 경찰은 “V씨가 자주 집을 떠나 여행을 했으며, 최대 서너달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해 V씨가 임신 사실을 철저히 숨길 수도 있었음을 암시했다. V씨가 직접 아기를 낳았다면 적어도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2003년 12월 전에 출산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2005년 8월부터 거주한 현재의 빌라에서는 낳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C씨 부부가 이사 올 때 영아들의 시신 2구를 싸 왔다는 얘기가 되므로 C씨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아내가 임신해서 출산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에 따라 C씨가 아기들의 유기에 일정 부분 가담했거나 아기들의 유기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C씨가 최대 2년 반 이상 영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있다가 신고했다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죽음을 몰랐더라도 자기 집 냉동고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경찰은 C씨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수사기관을 철저히 속이기 위한 ‘계략’을 꾸몄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서울방배경찰서 김갑식 수사형사과장은 “C씨가 현재는 참고인이지만 수사 진행과정에 따라 용의자 내지는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영아 엄마, 2003년말 자궁 적출수술 확인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의 고급빌라 냉동고에서 죽은 채 발견된 영아들의 어머니는 집주인 C씨(40·프랑스인)의 부인 V(39·프랑스인)씨로 밝혀졌다. 경찰은 V씨를 영아들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하는 한편 국제형사사법 공조를 통해 프랑스로 출국한 V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은 V씨가 2003년 12월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사실을 확인, 수술하기 전에 영아들이 유기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7일 “C씨의 집에서 아내인 V씨 것으로 추정되는 칫솔, 귀이개 등을 찾아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분석을 맡긴 결과 V씨가 영아들의 어머니로 확인됐다.”면서 “V씨가 산모가 아닐 확률은 없다.”고 밝혔다. 결국 집주인 C씨 부부가 숨진 영아들의 부모인 셈이다.V씨가 어머니로 확인됨에 따라 경찰은 필리핀 여성 가정부 L씨,14세 가량의 백인 소녀 등 C씨 주변의 다른 여성들에 대한 수사는 종료하기로 했다.V씨는 지난 6월29일 휴가차 프랑스로 출국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범죄인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국제형사사법 공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경찰 관계자는 “프랑스측에 V씨는 물론 남편 C씨의 한국 입국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