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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사이비 異端을 경계하며

    사이비 이단단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이는 기독교계 자체의 문제는 물론 이제 사회,국가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사이비 이단 문제의 본질은 전통 기독교와 교리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사회적 윤리적으로 잘못되어 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대체로 현대 사이비·이단들은 비윤리적이요,반사회적이라는 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그렇게 되는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를 든다면 바로 ‘교주 신격화’와 ‘시한부종말론’ 사상이라 볼 수 있다. ‘교주 신격화’는 교주는 일반인과 달리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아,그야말로 신이 되든지 신격화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이것이 사이비·이단단체가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준다.교주를 신(神)과 같이 숭배하는 신도들에게 있어 아무리 교주가 비인격적,비이성적,비상식적 말이나 행동을 해도 그 교주를 비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됨으로 불가능한 것이 된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이재록씨(만민중앙교회)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않다.소위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나는 물 위를 걷는 것외에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이다’,‘나는 하나님과 하나이다’,‘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기에 해와 달에 나타나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는 등의 비성경적,비상식적인 설교를 이용해 자신을 신격화 시켜온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이유라고 본다. 결국 이씨는 자신의 신격화사상을 토대로 도박,음주등의 비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이번에 MBC를 점거,방송 중단사태를 야기하고 난동을 부리는 등 도저히 정상적인 신앙인으로는 할 수 없는일이 발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금년 들어 또다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는 ‘시한부종말론’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시한부 종말론’은 사회적으로 혼란스런 상황을 직면하면 그야말로 극에 달하는 것이다.즉 세기말,기근,전쟁,또는 사회혼란 등의 상황과 만났을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그래서 전쟁후 메시아가 범람했는데 이는 이와같은 이치이며,국가가경제적 파탄에 빠질 때 사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도같은 현상이다. 지난 92년 10월28일 휴거사건도 그 당시 걸프전을 통해 더 불이 붙었다.마찬가지로 최근에는 나토의 유고공습같은 전쟁이 터짐으로써 더욱 시한부 종말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이처럼 교주의 신격화와 시한부 종말론이 만나면 사이비·이단사상은 극에 달하게 되고 만다.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것이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래 전부터 사이비·이단세력에 의해 심대한 피해를 입어 왔다.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87년의 구원파 오대양 집단변사사건,92년 10월28일시한부종말론 휴거소동,93년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피살사건과 영생교사건,97년 아가동산 사건 등 열거하기조차 끔찍한 일들이 이들 사이비·이단 세력들에 의해 발생했다.이로 인한 아픔이 아직도 제대로 치료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하여,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교회가 교회답고,교인이 더욱 교인다워야 할 것이다.사이비·이단은 ‘기독교같은’ 것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사이비·이단단체로 인해서 기독교 자체가매도당해서는 안될 일이다.오히려 사이비·이단을 척결하는데 기독교와 사회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최삼경[월간'교회와 신앙'발행인,빛과 소금교회 담임목사]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14)경기 동두천시/方濟煥시장

    조해일의 중편소설 ‘아메리카’는 주한 미군만이 드나들 수 있는 특수유흥업소를 중심으로 기지촌의 애환을 그렸다.그 무대는 경기도 동두천이었다.동두천이 기지촌의 대명사로서 ‘리틀 시카고’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던 것은 전후 미군 주둔과 함께 했던 도시 성장사의 산물이었다.그러나 그같이 어둡던 도시 이미지가 환한 색깔로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동두천시가 기지촌이란 오명을 털어 내고 21세기 수도권 전원휴양도시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미군 공여지(供與地) 반환으로 도시 전체에 공원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미군부대앞 보산동 일대는 재개발돼 쇼핑센터로 변모하고 시민광장과 청소년 놀이광장이 조성된다.군사도시의 응달에 가려 녹색벨트에 묶여왔던 천혜의 관광보고 소요산 일대가 관광특구로 개발되고,전흔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건립이 추진돼 차별화된 관광도시로 급변하고 있다.수도권전철 연장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출퇴근권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소요산 개발사업 소요산은 경치가 4계절 빼어나 제2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주변에 한탄강과 산정호수,신북온천 등 휴양지까지 산재해 있다. 지난 77년 국내 처음으로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소요산의 면적은 24만4,000여㎡.시는 이를 29만㎡ 가량 늘려 관광벨트화하는 소요산 확대개발이란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다. 보존지인 산림지역은 처녀림으로 최대한 보호하되 주변 211만㎡의 부지에골프장 스키장 콘도 등을 건설,대단위 위락시설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케이블 카와 모노레일 등을 설치하고 가족단위 휴양시설을 대폭 확충해 나가는 사업이다. 여기에 지난해 관광특구로 지정된 미군부대 주변 보산동 일대 11만여㎡를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안보관광지로 개발,독특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해나갈 계획이다.이곳에 대형쇼핑센터와 보세품 전문코너 등을 유치,이태원에버금가는 쇼핑관광명소로 육성해 나간다는 구상도 세웠다.재개발 작업은 연말부터 시작된다. 관광열차를 운행시켜 소요산과 미군병영투어를 시작으로 전쟁박물관∼판문점∼태풍·통일전망대∼DMZ∼제3땅굴로 이어지는 테마관광코스를마련중이다. 탑동계곡 일대 90만㎡에는 내년말까지 동점부락에 산촌종합개발을 추진해민박촌과 특산품판매장 일일 체험농장 등을 운영해 나간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오염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던 신천과 한탄강 일대 정화사업. 방제환 시장은 “관광전원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 중심을 관통하는 신천 정화 등을 통한 도시환경 정화사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신천변에 난립한 피혁 염색업체를 한곳에 모으기 위해 이미 특화단지를 따로 조성해 업체 이전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전철 연장 및 택지개발 시의 최대 현안인 경원선 복선화 겸 수도권전철 연장사업은 오는 2002년 완공된다. 수도권 광역전철 5개 노선중 가장 많은 24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현재토목공사와 교량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전철이 들어오면 서울∼동두천간 통행이 1시간이내로 단축돼 출퇴근도 가능하고 관광하기도 편해진다.총연장 22.3㎞중 시 구간은 6.8㎞.그러나 운행구간이 소요산역까지 미치지 못해 구간연장을 호소하고 있다. 전철 운행을 계기로 생연·송내동지역의 택지개발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된다.이미 이곳 132만㎡에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돼 오는 2001년 인구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시가지가 조성될 계획이다. 전철운행과 맞물려 서울 등 대도시 인구 유입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반환된 미군공여지 개발계획 지금까지 미군부대로 쓰였던 공여지 면적은 4,874만㎡.시 전체면적의 51%이자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다.이 가운데 1차로 2,000만㎡가 지난해 반환돼 개발이 진행중이다. 농지나 산림지역은 준도시지역으로 도시계획을 변경 또는 재정비하고 시가지지역에는 대규모 시민휴식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시는 또 이곳에 외국인 전용공단과 전원택지 조성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 方濟煥시장 인터뷰 “도시계획을 재정비해 관광자족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최대 과제입니다” 방제환(方濟煥) 동두천시장은 “도시가 자족기반을 갖추려면 인구가 적어도 20만명은 돼야 한다”며 “미군 공여지와 군사보호구역의 해제나 재조정을포함한 도시계획을 새로 짜 외부인구 유입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시 발전 전략은. 시 전체면적의 90%이상이 군사시설 등 각종 규제로 묶여 있어 공업도시나 상업도시로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소요산 일대 등 관광지 개발에 적극 힘써 주민소득 기반을 미군에만 의존해오던 구태에서 벗어나 푸르름이 가득한전원주택도시,통일도시로 차별화된 발전전략을 펴나갈 계획이다. 인구 유입 촉진 대책은. 현재 시 인구는 7만4,000여명이다.지난 81년 동두천읍 인구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은 상태다.가장 큰 문제는 교통문제라고 본다.우선 경원선 복선화 사업이 오는 2002년까지는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현재 추진중인 의정부∼동두천간 우회도로(39번 국도)가 뚫리면 수도권 어디서든 출퇴근이 가능한 1급전원주거지로 부상할 것으로 본다.이와 함께 생연 송내지역에 1만5,000가구의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건설되고 소요산 줄기에 전원택지가 조성된다. 도시 이미지를 탈바꿈시키기 위한 방안은. 과거를 일시에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를 자원으로 지역소득과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기지촌의 암운을 걷어내는 작업에 착수해 미군 부대주변을 중심상권으로 개발해 나갈 생각이다.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미군병영생활과 연계한 안보관광코스를 개발하고 관광특구로 지정된 보산동 일대 11만㎡를 서울 이태원에 버금가는 상가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주변은 대단위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해 나갈 예정이다. 동두천 박성수기자-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년말 개관 전흔의 역사현장을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자유수호평화박물관’(조감도)이 6·25 당시 최대 전적지였던 동두천시 상봉암동에 들어서 안보관광명소로자리잡게 된다. 4만여㎡ 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1,980㎡ 규모로 내년말 완공된다. 시는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국가안보의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건립을 추진해왔다. 각종 전쟁유물만을 전시하는 용산의 전쟁기념관과는 개념이 다르다.전쟁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6·25당시 지역전투상황과 16개 참전국의 전쟁유물 뿐 아니라 참전국들의 민속품과 음식 등을소개하고전투복과 병기 등 각국 병사들의 사용품들도 한자리에 전시한다. 박물관 1층에는 강의실과 휴게실이 마련되고 2층은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들이 폈던 당시 지원상황과 물품들을 소개한다. 3층은 동두천시의 연혁물 전시공간으로 쓰이며 여기에 한국전 당시 사용했던 각종 병기와 화기 군 용품들을 낱낱이 소개한다. 특히 박물관 야외에는 육·해·공군이 사용했던 야외 대형무기전시공간이마련돼 헬리콥터와 대포 야전차포 등이 전시된다.이곳에는 당시 전사한 내·외국인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도 건립된다. 총 사업비는 국·도비 지원 등을 합해 80억여원이다.시는 이중 30억원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중이다.나머지 사업비는 국·도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동두천 박성수기자
  • [외언내언] 태양절

    지금 북한에서는 주인 없는 생일잔치가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다.사망한 김일성(金日成)의 87회 생일을 축하하는‘태양절’행사가 그것이다.북한은 97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3주기를 맞아 그가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여주체연호를 사용하고 생일인 4월15일을 태양절로 제정했다.이에따라 민족최대의 명절로 찬양하던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한 이후 그의 영생을 위한 생일잔치를 다채롭게 치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소위 꺾어지는 5년 해로 제1회 김일성화(花)전시회를 비롯해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행사에도 46개국 80여개 예술단과 교예단을 초청하는 등 성대한 경축행사를 준비했다.아울러 전체 주민들에게 태양절을 맞아 김일성 태양민족의 긍지를 살려 김정일(金正日)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이처럼 북한이 해마다 죽은 김일성 생일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은 그의 카리스마를 빌려 김정일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정권유지 차원에서 개인 우상화의 극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당면한 경제난과 헐벗고 굶주리는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개인의 우상화를 강화하는 것은 정권도덕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왜냐 하면 북한은 해마다 김일성 생일행사에 많은 외화를 소비하고있기 때문이다.북한은 그의 사후 4년 동안 생일행사 비용으로 약 1억달러를소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해 평균 2,5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이 우상화 비용으로 낭비된 셈이다.생일행사 비용으로 소비된 1억달러는 국제곡물시장에서 최소 40만t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도덕성에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 김일성 사후 그가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역사적 평가다.때문에 그의 개인우상화정책을 통해 실패한 역사를 영구히 호도하거나 보상받을 수는 없다.다시 말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오늘의 북한체제를 그의 우상화정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그리고 우리가 개인우상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북한을 의도적으로 비판하려는것이 결코 아니다.민족의 화해를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민족자존의 시대를 창조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다만 이같은 북한의 정권유지를 위한 개인우상화정책에 의해 민족의 정통성이 말살되고 역사가 오도되어 결국은 민족통일에도 장애요인이 된다는점에서 하루속히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청수 논설위원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국정개혁 보고-국방부·통일부

    ▒위기관리 및 대비태세 전면전에 대비,대북 조기경보 및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미군 신속억제전력과 증원전력의 적시전개를 보장하는 등 한·미연합방위 태세를 확고히 구축한다.주한미군에 화학대대를 증편하는 등 화생전 대비전력을 증강하고 아파치헬기를 교체하는 등 육군항공전력을 개선한다.북한의침투 및 국지도발에 대비, 한·미연합 정보공조체제를 유지한다.후방지역 침투를 방비하기 위해 대잠(對潛)전대를 창설,운영하는 등 해안경계를 강화한다.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비해 오는 6월 화생방방호사령부를 창설하고 미사일 요격용 방어전력(SAM-X)을 확보한다.다목적방독면을 개발,민방위대원에게 100% 보급하고 접적지역과 수도권주민에게 구매토록 권장하는 등 유사시 민·관 대비태세를 공고히 한다. ▒국방개혁 추진과제 미래전에 대비,2003년까지 온라인 정보통신망 및 컴퓨터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북한 등 외부세력의 정보침투 방어를 전담할 해커대응팀을 오는 12월까지 창설,운영한다.장군의 계급정년을 2001년까지 1년 이내에서 단축하고임기제 진급제도 및 명예진급제도를 확대시행해 2003년까지 육군 소장 12명 등 초과인력을 완전히 해소한다.다음달 대북정보수집부대와 정보사령부를 정보본부로 통합하고 2000년 이후 지상작전사령부와 후방작전사령부를 창설하는 대신 후방군단을 해체한다.다음달 중순까지국방개혁추진위원회 내에 군사혁신기획단을 설치,미래전에 대비한 한국적 군사혁신 방책을 수립한다.병영생활의 명랑화,합리적 부대관리로 신바람나는한국적 병영문화를 창출하고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통신 등 95개 분야 특기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2건국운동과 연계,병영을 건전한 민주시민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킨다. - 통일부 ▒대북 경협 활성화 여건 조성 북한항만의 설비지원을 통해 물류체계 개선을 추진한다.민간경협 방식으로 속초∼나진∼훈춘간 해륙연계 교통로 개설을추진한다.특히 1만t급 카페리의 주 2∼3회 운항을 추진한다.북한 서해안 시범공단(100만평)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을 북측과 협의한다.국수공장·공동목장 운영 등 협력사업 방식의 대북 지원 활성화를 유도한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추진 대북 지원의 지속적 추진을 통한 적십자 협의채널유지 및 적십자회담 개최 분위기를 조성한다.적십자회담으로 이산가족문제의 최우선적 해결을 추진한다.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추진하되 생사확인·서신교환 실현에 역점을 둔다.국군포로·납북자와 출소 남파간첩 등의 송환문제는 포괄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차원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하반기 남북대화 돌파구 마련 실무차원의 접촉창구 마련을 위해 남북관계현안문제의 타개점을 모색한다.공개·비공개 등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추진한다.‘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남북대화체제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운영한다.남북당국간 대화창구를 특사교환,장·차관급 상설대화기구로 발전을유도한다. ▒농·어업 협력사업 활성화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차원의 농업협력을 지속 추진한다.국제옥수수재단의 북한내 시험재배지역을 지난해 83개지역에서 1,000개 지역으로 확대한다.한국담배인삼공사의 잎담배 시범포(3㏊) 운영 및 1,000t 계약재배를 추진한다.감척(減隻)어선 등 국내유휴장비와북한의 어장·인력제공을 활용한 어업협력사업을 추진한다.어획물은 가공수출 또는 국내반입하는 협력방식을 추진한다.북한이 확보한 해외어장에서 공동어로를 추진한다.
  • “경찰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죽는다”

    ‘새로 태어나는 경찰’ 李茂永 신임 서울경찰청장이 경찰 내의 비리를 스스로 고백하며 경찰이 거듭날 수 있는 ‘제2의 창경(創警)정신’을 강조했다.李청장은 지난달 16일일선 경찰서장과의 간담회 대화 내용을 정리한 A4용지 40쪽 분량의 ‘고백록’을 서울 시내 경찰서 형사반장급 이상 경찰간부들에게 배포,교양자료로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李청장은 고백록에서 “교통사고 조사 등에서 부탁하고 ‘빽’을 쓰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는 등 확 뒤바뀌어버리기 때문에 (국민들이)믿질 않는다”며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비리부터 털어놓았다. 형식적인 경찰의 근무태도도 질타했다.李청장은 “경찰이 범죄꾼을 잡으러가지는 않고 순찰함에 사인만 하고 나오는 식의 형식적인 순찰만 하고 있다”면서 “혹시 순찰함을 뒤져 사인을 하지 않은게 적발되면 징계를 받을까두려워 주적을 범법자가 아닌 감찰과 파출소장,외근감독관들로 삼는 등 주된임무를 잊고 있다”고 지적했다. 李청장은 “경찰의 개혁은 자율,창의,책임 세가지로 요약돼야 하는데 이는상하관계의 신뢰에서 출발한다”면서 “우리 경찰의 80%가 인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데서 드러나듯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내부 문제도 꼬집었다. 경찰조직에 대해서는 “없어야 될 때는 뭉쳐 있고,있어야 될 때는 없고,할일은 안하고 안할 일은 하고 있는 등 근무방법이 잘못됐다”며 비효율성을고백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앞두고 자율적이고 창의력을 갖춘 조직으로 바뀌지 않으면 경찰은 완전히 죽고 망한다”며 위기감을 강조했다. 한편 李청장은 최근 시내 31개 경찰서장들에게 정의·공정·진리를 상징하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그림을 보내 서장실에 걸도록 했다.정의를 지킨 왕만이 영생(永生)의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의 그림으로 비리를 저지르지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 己卯年­토끼가 달려온다/沈雨晟 공주민속극박물관장(대한광장)

    호랑이를 보내며. 늠름하고도 날랜 호랑이 해를 맞는다며 포부도 당당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겨우 꼬리 끝털만 남았다. 그나마 요만큼이나마 수습을 했고,갈피도 잡히기 시작하질 않았느냐 하는 이도 있겠지만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얽히고 설킨 암담한 세월이었다. 어쩌면 그처럼 망해 놓을 수가 있었을까. 그러고도 뭣이 또 모자라서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괴상망칙한 일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지른단 말인가. 우리 설화 속의 호랑이는 산천을 지켜주는 지킴이요,용맹하면서도 착하고 의리있는 대장부의 기상인데 1998년의 호랑이는 전혀 그렇지를 않았다. ○만신창이된 戊寅年 호랑이 호랑이면 다 호랑인가. 아니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호랑이도 잘못된 인간세상을 살다 보니 교활해 지질 않았을까. 간교로운 인심으로 해서 만신창이 된 무인(戊寅)년 호랑이는 이제 훨훨 떠나 보내자. 묵은 시름 잔뜩 짊어지고 비호인냥 사라지려므나. 토끼가 달려 오는데. 1999년은 ‘기묘(己卯)’ 토끼의 해이다. 지난 해의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토끼 역시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 가장 친근한 동물로 자리잡고 있다. 그 뿐인가. 옛날 옛적부터 무한히 흘러가는 시공(時空)을 가늠하는 거울인 달속에 살고 있는 영험스런 존재이다. ○토끼는 재생·영생·공생 시사 꾀 많은 인간이 달 정복을 골백번 한다해도 억겁을 이어 갈 달에 대한 관념을 씻어낼 수는 없으리라. 자 그러면 여기서 고구려 벽화의‘월상도(月象圖)’를 살펴보자.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와 그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두꺼비가 있다. 두꺼비가 달을 이지러지게 하면 토끼는 다시 차 오르게 한다니 재생·영생·공생을 시사하는 것이렷다. 달에만 산다는 계수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찍어도 찍어도 바로 아물어 버린다’니 재생과 영생의 같은 속성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 맞는 띠를 예찬한다. 그러나 띠라는 것은 좋고 나쁜것이 따로 없다. 열두 띠가 모여 사바세계를 이루는 것이니 다섯의 길고 짧은 손가락이 다 제 구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는 이와 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큰 힘을 이루어 내는 톱니바퀴에비유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하나인 토끼는 12지(支) 중 넷째 지지(地支)인 ‘묘(卯)’로 방위는 동쪽,시간으로는 오전 5∼7시 사이,달로는 음력 2월,음양으로는 ‘음’,오행으로는 ‘목(木)’,색으로는 ‘청(靑)’이다. 이는 동쪽,새벽,만물이 소생하는 음력 2월을 가리키며 태어남과 번성함을 내포하는 ‘음(陰)’‘목(木)’‘청(靑)’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귀여운 자식을 일러 ‘토끼 새끼’라 한다. 밝고도 지혜로운 심성으로 기묘년을 설계하자. 끔찍이도 험난했던 묵은 해의 상채기를 토끼의 민첩한 판별력으로 두루 살펴 하나하나 치유해 보자. 다만 토끼의 지나친 성급·경솔함은 조심해야 한다. ‘재승덕박(才勝德薄)’이라 하지 않았는가. 재간만 앞세워 큰 덕을 잃고 보면 역시 허사이겠기 말이다.
  • 韓­埃 수교 3주년기념 ‘유적대탐험전’

    ◎파라오와 함께 고대이집트 여행/미라 마스크·관 등 진품유물 150점 전시/투탄카멘 무덤 등 재현/발굴현장 온듯 생생 한·이집트 수교 3주년 및 서울·카이로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이집트 유적대탐험전’이 내년 1월5일까지 서울 여의도 63빌딩 1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기존의 쇼 케이스에 진열된 유물을 감상하는 평면적인 전시에서 탈피,관람객들이 탐사단 일원으로 발굴현장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체험할 수 있도록 테마파크형 전시회로 꾸며져 있다. 이집트 고대유적의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진품유물 150점을 비롯해 카이로박물관측이 공인해 현지에서 제작한 투탄카문왕의 황금마스크 및 대표적인 보물,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의 무덤벽화,람세스 2세의 초대형 석상과 미라 등이 공개된다. 진품 유물들로는 죽은 자가 저 세상으로 가는 길에 심부름하라고 같이 묻었던 샤브티,미라의 얼굴에 씌웠던 마스크와 관,살아있는 신상,영생의 상징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신구와 램프 등 일상용품,그리고 콥트시대의 직물 등이포함돼 있다.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발굴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투탄카멘왕의 무덤이 나타난다. 내부는 주제별로 ‘비운의 파라오 투탄카멘왕의 무덤’‘투탄카멘과 함께 잠들었던 보물’‘절대자 파라오의 삶’‘고대 이집트신들과 만남’‘영생의 문을 여는 열쇠,미라의 비밀’‘네페르타리왕비의 무덤여행’등이 이어진다. ‘이집트보석전’‘의상전’등 이벤트도 열리며 피라미드에서 뿜어져나오는 불가사의한 힘의 정체를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피라미드 파워실험장’이 펼쳐진다. 또 다양한 ‘이집트 풍물시장’도 펼쳐진다. 전시회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밤 10시,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입장료는 성인 8천원이며 노인과 소인은 5천원이다.(02)789­5554
  • 숨진 신도 폐속에 그을음/영생교회 7명 부검 결과

    ◎‘산채로 불에 타 사망’ 확인 영생교회 신도 집단사망 사건을 수사중인 속초경찰서는 7일 사망자 7명에 대해 부검을 한 결과 이들의 목과 폐에서 다량의 그을음이 검출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불에 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속초의료원에서 부검을 집도한 김봉수 외과의원 원장은 “사망자의 신체에서는 골절 등 외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정밀검사를 해 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으나 위점막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볼 때 극약과 같은 약물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사이비 종교/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사이비(似而非)종교가 인류사회에 끼친 폐해는 막심하다. 그런 가운데 첨단과학을 선도하고 있는 북미지역에서 광신적 교주의 반이성적 신비체험을 앞세운 사이비 신앙이 세계에서 가장 극성을 부리고 있는 사실은 매우 아이로 니컬하다. 또 문제는 이들 그릇된 신앙의 끝은 결국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나아가 집단자살과 같은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3월26일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 랜초 샌타페의 한 호화 주택에서 있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천국의 문’ 신도 39명의 집단자살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모두 ‘하이어 소스’라는 인터넷 웹 제작회사의 컴퓨터 전문가들인데다 “이제 지구에서의 학습기간은 끝났다”며 기쁜 표정으로 진정제와 사과주스를 섞어 마시며 차례로 자살을 결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며칠 후인 4월 1일 지구에 최접근했던 헤일­보브 혜성을 ‘영생’의 열쇠로 믿었던 것이다. 이는 지난 78년 인민사원 교도 914명이 남미 가이아나 존스타운 정글에서 교주 짐 존스의 주도로 벌인 집단자살극과 지난 93년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가 경찰과 50여일간의 대치끝에 화재를 일으켜 80여명의 신도들을 사망케 한사건,94년 3월 캐나다의 퀘벡과 10월의 몬트리올 및 스위스 남·서부의 두농가에서 벌인 ‘태양의 신’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과 궤를 같이 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하겠다. 북미지역 다음으로 사이비 종교가 많은 곳이 아시아지역,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이다. 지난 87년의 ‘오대양 사건’과 92년 ‘영생교도 17명 실종사건’,96년 ‘아가동산 신도살해사건’,95년 일본 ‘옴진리교’신도들의 ‘도쿄지하철 독가스 살포사건’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가윗날 아침 강원도 양양에서 있었던 봉고승합차 화재사건도 광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으로 밝혀짐에 따라 사이비 종교의 말로가 얼마나 처참한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종말론(終末論)’을 신봉한다. 아울러 절대자(絶對者),즉 유일신(唯一神)을 인정하지 않고 교주 자신이 바로 재림신이라고 주장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집단이다. 국내에 이런 사이비 종파가 200여개나 되며 ‘인간 하느님’,또는 ‘인간 예수’가 50여명이나 된다는 한 조사결과는 우리의 퇴영적인 종교현실을 잘 말해준다. 사이비 종교의 창궐은 사회가 어수선하고 살기 어려우며 기성 종교가 제역할을 하지 못할 때일수록 심하다. 6·25전쟁 직후와 80년대,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지금이 그런 시절인 것 같다. 올바른 종교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성적이며 상식선을 넘지 않는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열심히,착하게 살며 대비하라는 가르침이 있을뿐이다.
  • 목사·신도 등 7명 자살/양양서 승합차 불질러

    ◎서울 묵동 영생교회 소속/“순교하러 간다” 집 떠나 극단적인 염세주의에 빠진 특정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으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발생 및 수사=지난 5일 오전 6시쯤 강원도 양양군 포월리 낙산대교 건설현장 인근 남대천 둑에 세워져 있던 서울 6코 1784호 12인승 베스타승합차(소유주 禹제홍)에서 불이 나 차에 있던 남녀 7명이 불에 타 숨졌다.사망자는 영생교회 목사인 禹鐘振씨(53·서울 중랑구 묵2동 235의 91)와 禹씨의 부인 崔순자씨(54),둘째 아들 제홍씨(27) 등 일가족 3명과 신도인 李영희(52·여·성북구 석관동 215)·崔계자(37·여·평택시 세교동 463)·崔수웅(27·성동구 행당동 168)·朴혜숙씨(25세 가량) 등 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영생교회 신도이며 지난 8월부터 순교할 장소를 찾으러 강원도로 떠났다는 진술을 확보,순교를 위해 집단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경찰은 이들이 종류를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생교회와 禹씨=禹鐘振씨는 지난 82년 서울 은평구 S신학대학을 졸업했다.태백시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다 87년 면목동에 영생교회라는 개척교회를 설립,목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최근까지 서울시내를 전전하며 선교활동을 해왔다.89년 교회를 구의동으로 옮기면서 신도수는 100여명으로 늘어났으나 자신을 신격화하면서 신도들이 줄기 시작해 사건발생 이전까지 신도는 집단 자살한 7명이 전부였다. 禹씨는 교회를 면목동,상봉동 등으로 옮긴 데 이어 90년대 초 현재의 묵2동으로 근거지를 옮겨 전세방을 얻어놓고 폐쇄적인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공사장 인부나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교회운영 경비 등을 조달해 왔다는 것이다. 禹씨는 또 3년전부터 순교은사(죽어서 하늘로 승천하는 것)를 받았다고 주위사람들에게 말한 후 순교장소를 찾아 다녔고 평소 가족들에게도 “날짜만 잡히면 순교하러 간다”는 말을 자주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禹씨 일행이 93년 8월부터 세들어 살았던 서울 중랑구 묵2동 2층 집은 30여평 공간에 방 3개와 화장실 1개가 딸려 있으며 베란다에 대나무 발을 쳐 놓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돼 있었다.
  • 文奎鉉 신부 사전영장/보안법 위반

    ◎법원,구인장 발부… 오늘 실질심사 서울지검 공안2부(申泰暎 부장검사)는 26일 방북 기간중 통일대축전 행사 등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소속 文奎鉉 신부(49)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지법은 이와 관련,이날 하오 文신부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했으며 27일 영장 실질심사를 벌일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文신부가 방북 중 주도적으로 친북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난데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방북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엄중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文신부는 지난 15일 북한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고 金日成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방명록에 金의 영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文신부와 함께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전종훈 신부에대해서는 타의에 의해 참가했던 것으로 밝혀져 사법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사제단 일행 7명은 통일대축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文신부는 남북 천주교 교류와 평양성당 건립 10주년 기념미사 봉헌 등을 위해 방북하겠다며 통일부의 승인을 얻어 신부 8명과 함께 지난 11일 방북했다가 19일 귀국했다.
  • 병역비리 회오리바람 지켜보면서(박갑천 칼럼)

    조선시대 전적을 뒤적이노라면 가끔 “백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여버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서민들에겐 아들 선호사상이란 것도 없었던 걸까. 아니다. 다만 군포(軍布)바치기가 힘겨워서 였다는 것뿐이다. 군포란 병역면제대신 바치는 삼베하며 무명베. 한데 조선후기 부패한 관료사회는 사내일 때 갓난애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가렴주구했다. 이른바 황구첨정(黃口簽丁)의 폐단이다. 숙종때 등과하여 나중에 좌의정까지 오르는 李健命도 상소문에서 그폐해를 지적한다().남정(男丁)의 의무를 다못할 때 친족이나 이웃에까지 떠넘기니 아예 자식을 죽여버리는 세태라면서. 李德懋의(耳目口心書편)에 실려있는 광주(光州)촌부의 7세 5세 두아들 얘기는 참으로 자닝스럽다.그들이 군적에 오르면서 군포를 바쳐야했다.어머니는 밤새 물레를 돌리다가 두아들의 고추를 만지며 이것때문에 이 고생이라 한숨짓는다.이를 잠결에 들은 형제는 이튿날 고추를 잘라버린다. 영조때 시인 鄭敏僑의‘군정탄’(軍丁嘆)은 외딴마을 아낙네의 통곡을 노래한다. 남편은 지난해 세상을 떴지만 뱃속엔 아기가 있었다.‘천행’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배내털이 마르기도 전에 관가에 보고되어 군적에 오른다. 군포 바치라는 독촉. 아기를 업고 점호를 받으러 간날 먼길에 눈보라는 몰아쳤다. 점호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아기는 죽어있었다. 정민교는 아낙네 울음을 대신운다.“원님은 오직 상사가 두려울뿐/제잇속만 차리니 백성괴로움 돌볼리 있겠는가”고.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조선말기학자 月巖 李匡呂도‘양정어미’(良丁母)라는 시에서 똑같이 탄식한다. “…해마다 각사(各司)로 올라가는 군포하며 돈하며/반쯤은 젖비린내 나는 애들 몫이라네/젖내나는 애들이야 그래도 나은편/이미 죽은 애것도 빼지 않았다지…”. 양반사회 자제들은 이 병역의무에서 빠졌다.그런역사를 가져선가,오늘의 일부 힘있고 돈있는‘양반사회’자제들도 이핑계 저핑계로 병역의무에서 빠져오고 있다. 그 실상이 자드락나면서 일어난 회오리바람이 지금도 분다. 형태는 달라도 흘러내린 부패기류 때문이었을까. 전쟁중도 아니려니와 병영생활또한 50∼60년대의 그것과는 판이해져 있는 것을. “군대 갔다오더니 사람됨이 아주 성숙해졌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오늘의 ‘양반사회’ 자제들이야말로 ‘빽을 써서라도’보내야 할곳 같건만.
  • 숱한 화제속 ‘사인펠드’ 대단원

    ◎평균 3,000만명 시청 美 최고인기 코믹드라마/최종회 30초 강고료 24억/주인공 1회 출연료 14억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자기도취적인 뉴욕의 30대 초반 베이비붐 세대 4명의 일상생활을 코믹하게 그린 미국 최고인기 TV 드라마 ‘사인펠트’가 8천만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89년부터 NBC­TV에 등장한 이주간 시츄에이션 코미디는 한국전 참전미군의 병영생활을 소재로 한 코메디 ‘매쉬(M.A.S.H.)’가 83년 종영할 때의 1억6백만명 보다는 고별시청자가 적었지만 피날레에 대한 국내외 팬과 언론의 관심은 훨씬 컸다.마지막 회분이 촬영에 들어간 지난 4월 타임과 뉴스위크지는 실명과 극명이 같은 주인공 제리 사인펠트를 비롯 4명의 주요인물을 표지인물로 다뤘다.또 사인펠트의 폭소 코미디와 현학적 대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던 뉴욕타임즈는 사설로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매년 1월부터 5월까지 목요일밤에 방영된 연 22회의 시리즈물 사인펠트는 미국에서만 평균 3천만명이 시청해왔는데이같은 시청율은 케이블 채널 홍수시대에서 경이적인 인기도였다.미국 문화를 ‘깔보는’ 프랑스에서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라는 철학적 모토를 가진 이 코미디의 시청자가 상당수에 달하는 등 해외팬들이 많다.극에 나오는 맨해튼의 식당,‘나치’ 수프,‘주니어민트’ 껌은 매상이 엄청나게 늘었다. 밤 9시의 황금시간대 1시간을 독차지해온 사인펠트는 피날레 프로그램에 이례적으로 105분을 할애했으며 30초당 단위 광고료로 사상 최대기록인 1백70만달러(24억원)가 붙었다.이로써 NBC방송은 이날 밤 4천만달러의 광고료를 올렸다. 사인펠트의 최종회 방영을 맞아 경쟁사인 ABC의 수요일 주간극 ‘다마와 그레그’는 하루전인 13일 극 속에 모든 시민이 사인펠트를 시청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 시가지가 텅텅 비어있는 틈을 타 다마­그레그 커플이 뉴욕거리에서 옥외정사를 갖는 장면을 내보냈다.고전 연속극을 재방하는 TV랜드 케이블 채널은 14일 밤 9시의 같은 시간에 정규프로 대신 “사인펠트가 끝난후 정규프로를 방영할 것”이라는 자막 메시지만 보여줬다. 사인펠트 바로 앞뒤 시간에 방송되는 극들도 자인펠트 후광으로 뜻밖의 인기를 누려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했었다.지난해 6월에는 NBC와 배우들 간에 출연료를 둘러싸고 싸움이 붙었다.결국 1회당 주인공 사인펠트는 1백만달러(연 2천2백만달러·3백10억원),조연급인 제이슨 알렉산더(극명 조지),줄리아 루이스­드레이퍼스(엘렌,여) 및 마이클 리처즈(크래머) 등은 각각 60만달러씩 받기로 합의했다.조연급들이 연봉으로 무려 1천3백만달러를 받은 것이다.제리 사인펠트는 지적인 대사로 유명한 이 극의 극작가겸 제작자이기도 한데 지난해 연말 1회당 2백만달러(28억원)를 줄테니 제작을 계속하자는 NBC의 간청을 뿌리치고 자신이 키운 사인펠트를 종영하기로 결정,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 태양절 제정이후 첫 金日成 생일 평양 모습

    ◎‘유훈통치’ 강화 경축행사 요란/어제 중앙보고대회 김정일은 불참 【金炅弘 기자】 북한의 4월15일은 ‘주체 87년’ 첫 ‘태양절’이다.지난해 7월 金日成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와,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한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처음 맞는 태양절을 경축하는 각종 행사를 요란하게 벌여 金日成의 ‘영생’을 찬양하고 있다.사망한 金日成의 86회 생일잔치의 핵심은 金日成의 영생을 주민들에게 부각시키는 것이다.‘유훈통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金正日로서는 金日成의 영생을 부각함으로서 통치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14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일성의 86회 생일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도 이종옥 부주석은 전체 주민이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수령결사옹위투사·진짜배기 충신’으로 준비할 것을 역설했다. 보고대회에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미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명절이 있지만 태양절 같이 인류의 태양을 칭송하는 가장 경사스러운 명절은 없다”고 선전하고 있다.또 △혁명전적지 및 사적지 답사 △金부자에 대한 충실성 따라배우기 학습 등 주민사상 교육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에 2만5천그루의 나무를 심는 등 대대적인 식목행사를 벌여 전시효과도 노리고 있다.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는 미국 스 스위스 등 서방국가 및 중국 러시아 예술단 등 45개국 86개 단체가 초청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개최하고 있다.이같은 대내행사 외에도 각국의 무명 친북단체들을 동원한 각종행사를 열어 마치 세계가 金日成을 흠모하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金正日은 군부에 대한 충성 유도차원에서 13일 중장 崔성수를 상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군장성 22명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북한은 金日成 사망후 3년상을 치른 97년까지 총 3억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금수산기념궁전 조성 등 金日成 우상화 작업에 탕진했다.또 북한 각지에 金日成 동상 70여개,영생탑 50여개가 새로 세워졌다.金日成 시신 관리비만도 연간 2백만달러가 소요되고 있다.지난 3년간 ‘망자(亡者)의 생일잔치’ 비용만으로도 6천9백만달러를 쓴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관계자들은 북한이 경제난에 허덕이지만 첫 태양절임을 감안,올해 행사비용도 지난해보다 적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군 교육용 만화 나왔다/초대 육군작가 이현세씨 작 ‘까치병장’

    ◎신세대장병 병영생활 적응과정 그려 인기 만화작가 이현세씨가 군 교육용으로 그린 만화 ‘까치병장­오대장성’이 발간됐다. 육군은 3일 초대 육군 만화작가로 위촉된 이씨가 병영생활을 만화로 엮은 까치병장 제1탄 ‘오대장성’편 3만3천부를 발간해 일선 장병들에게 배포했다고 밝혔다.‘오대장성’은 병사의 최고참인 병장을 대장 중장 소장 준장과 함께 일컫는 병영내 속어이다. 모두 160쪽 분량의 이 작품은 주인공인 ‘까치’(오혜성)가 ‘오대장성’가운데 하나인 병장으로 ,‘엄지’가 까치의 애인으로 등장해 까치가 초년병 시절 이민을 떠난 엄지를 그리워하며 탈영직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참이 된 뒤 갓 전입온 신병을 참다운 군인으로 이끌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군에서 자체 제작한 만화교재가 신세대들로부터 외면 당해 왔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해 이씨를 초대 육군 만화작가로 위촉해 신세대 취향에 맞는 만화교재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5월말까지 장병과 군무원을 상대로 강릉무장간첩 침투사건 등에 대한 만화소재를 공모해 까치병장 2탄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604명 명단

    총무처는 제39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604명을 확정,18일자로 발표했다. 합격자 가운데 최고득점자는 제2차 시험에서 평균 64.07점을 얻은 이시열씨(29.서울대 물리학과 졸)가 차지했으며 최고령자는 백종인씨(45.단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최연소자는 위인규씨(22.서울대 사법학과 4년 재학)이다. 여성합격자는 전체 차석을 차지한 설윤정씨(25.서울대 공법학과 졸) 등 49명이었으며 전체의 8.1%를 기록했다. 총무처 관계자는 “2차 합격자 604명은 성적과 자질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3차에서 한명도 불합격처리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해 사법고시에는 2만551명이 응시해 35대 1의 경쟁율을 기록했으며 합격자 평균성적은 50.92이다. 합격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기탁 변성국 이승현 장찬 장영달 오재혁 박춘하 김종수 최용석 허성욱 유기인 장경욱 신철민 이창환 정경모 어영강 이형범 이재우 노태선 손석천 권오석 오기형 최관수 최창훈 권두섭 이명수 최상원 구자헌 이병삼 이승민 박지훈 양중* 변태종 박정무 장정환 민경천 이상훈 안식 박정길 김완규 남순표 김태광 한정화 노호성 문대근 김중원 조성오 김홍경 강동욱 임동번 김순부 강인구 김태훈 신안재 최수영 이효제 정영식 조기민 윤웅기 이태관 양진호 이영환 조민석 최종민 고범석 정진우 임병석 김희제 신치수 박재윤 남현수 이용균 김성훈 부경복 이규주 정진석 김도균 김녕민 이영상 김재호 최재무 김창모 박병규 서형주 강종헌 이진렬 양문식 정경근 정재수 이재석 정인재 김민기 송태섭 윤원상 송석봉 이오영 박종국 신익철 손제현 김현영 서안교 고지환 정상규 한중석 김상연 채석현 김재용 양귀환 서동칠 손주철 당우증 손준성 이명신 경규석 이상호 김용환 조영하 이유형 허준서 박승권 김장구 김태우 허성희 김호운 조진구 김태권 권순정 김태균 김종견 강경국 김선웅 신인수 권낙균 석현수 김순렬 이정하 조웅 김규석 안영환 김제동 문홍식 구본성 황병주 이형관 정영학 황남석 조병규 신영욱 송승룡 주상용 조영식 장재영 박세현 박찬익 최종우 김학민 최낙준 이시열 이철원 배종렬 노정석 김용규 조현철 신대철 안정환 김윤천 이훈재 진상훈 김승주 정도성 염호준 신계렬 이경환 정대정 김정호 남기송 김기현 고경민 권형수 조봉규 이관희 박공우 김장생 김승태 이한조 최석규 이철호 김성우 정진웅 김진호 배성렬 배진덕 서해택 서창교 남수환 이웅 양시복 이준서 박선희 정수인 김병준 김재호 김명식 심현욱 전보성 조찬영 손창완 김지웅 이준택 정진 원대희 정재훈 박봉희 최승재 윤석주 정원 이민석 서성호 김춘수 한상철 이준철 한성수 이영삼 하재홍 이상현 채승우 민성철 정주백 마은혁 김영생 김형석 홍현필 노만석 김두헌 성낙일 채승원 임대진 소윤수 전병찬 박종운 손헌태 최석진 정성호 정경록 김영수 김영현 노진영 최성만 김형선 한기봉 임성환 정철(0138410) 유주상 이헌영 박종림 염우영 이준희 최성완 신승호 김영준 정철(0138426) 홍승현 채승준 문정환 김성진 정연헌 신길호 조형수 전승만 이철기 민기영 이민호 김상훈 형진휘 박재억 김종환 김봉원 구광현 박상진 윤태영 송선양 김문주 최재형 구상엽 김도현 임성훈 문준섭 위인규 김성문 이영철 방이엽 배창대 김경훈 유형영 기세운 심학진 이준식 오수환 박윤석 신병동 김현순 이재호 조재빈 김정호 최호영 전국진 이남석 김종근 유길룡 강우찬 구자현 김성환 김동빈 김정민 정문수 이경수 신봉수 강지현 손영호 유지원 소홍철 조중래 하성원 황혁 정경인 강창문 김기수 서경배 이원근 이창열 이진수 이상호 유창훈 박창주 이문성 강유호 박영준 안형준 권성수 윤영석 박대규 강창균 문성관 한창수 우관제 박상현 양석조 임영민 이종건 김성우 전종만 조명수 이상민 유지열 강문대 김정헌 배성효 김진욱 강현중 우인성 민철기 송강 김형배 정승식 김명환 이준엽 윤대해 신우정 김형준 김웅렬 노로 서기호 정영훈 조재호 전준용 조영호 정재욱 이종석 이남균 김영수 손호관 이종민 이경훈 김현철 안효정 최재원 이영광 도상범 이재성 최성도 강태환 우관수 양인철 김준배 김용빈 이상준 김봉규 정승규 박광배 김선재 최기엽 조면식 이병철 이종경 김동원 이재은 정진환 이종훈 백철우 한두희 오현철 김우정 최기영 주진암 김경민 정진형 송우룡 양승종 김효권 장창호 오대혁 윤정섭 최용규 장선 김양수 김형연 김준효 조영보 여운철 한범석 이상오 김형근 장훈열 이명재 마성영 최일권 이상준 송경호 이동건 이성훈 김웅 윤상호 김길수 이남권 허상수 김규일 장언석 유헌주 이승철 옥성대 전문우 송우섭 신현성 이수광 고창은 김택균 박억수 유경문 이은태 반성관 안종석 이경창 박형삼 송영환 최찬실 차경남 오종근 정호경 문흥만 채윤주 최주현 박길배 허일승 서재국 김권영 이정환 최상묵 김준성 김동규 박관수 이경천 조정웅 전영준 김범희 김기태 주용완 정재헌 박승규 신영식 김동욱 조현주 이영준 김승훈 박상국 박성문 이현곤 안관주 이석화 홍진표 신현일 이정훈 안영수 조경헌 윤희찬 성기권 김성원 김진한 김선일 권경일 이공재 황중연 서기원 신용호 박의호 윤복남 여영학 변필건 노승익 홍원의 김복기 엄상섭 황선철 박재호 이현용 이명상 김병주 조민제 조길원 김의식 위광하 양원석 김재훈 안종화 한석종 백종인 김판봉 민기호 나승권 김호춘 조성래 문종렬 배재일 김동오 김성률 신광식 조현호 박기준 이진효 이윤호 채시호 박운삼 김영준 박찬호곽용석 이강민 권성연 임지아 신한미 차진아 이지원 송현경 임정하 박순덕 김현아 김영심 이정민 임성희 김정민 정소민 설윤정 최은주 이영경 문경화 김태진 신교임 정옥자 백혜련 이영희 이진화 박은정 김선주 이미현 임선지 김윤영 문선영 장윤정 노행남 황은경 조영숙 김지연 송혜정 남해숙 김현정 이주영 이언주 박지영 박민정 홍종희 조혜정 신진화 윤은경 박선영 왕미양 공숙영 ◎수석합격 이시열씨/‘합금의 전자구조’ 연구한 물리학 석사/“재정·통상분야 국제변호사 되고파” “외국의 통상 압력에 맞서는 국제변호사로 국익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제39회 사법시험에서 평균 64.07점으로 수석을 차지한 이시열씨(29·서울 종로구 동숭동)는 이례적으로 이학도 출신이다. 91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93년 합금의 전자구조를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신병으로 1년반 가량 요양을 했던 이씨는 사법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95년 3월 서울대 법대로 학사 편입했다.현실사회의 전면에나서고 싶은 강한 욕구 때문이었다.“학문의 세계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어려서는 공부가 재미 있어 공부밖에 몰랐지만 점차 사회의 움직임에 눈을 뜨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가뜩이나 국가 우수인력이 고시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변신이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고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비법대 출신 후배들에게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겠지만 일단 전환을 생각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공과 사법시험이 학문적 연관성은 거의 없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익혀둔 논리전개와 사고력이 시험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95년 1차시험에 실패한 뒤 이듬해인 96년 재도전,1차에 합격하고 올해 수석의 영광을 안았다. 앞으로 로펌(Law Firm)에 들어가 증권·금융 분야의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사법연수원을 마친뒤 미국의 법대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이씨는 “우리나라에 경제 전문법률가들이 부족해 최근 IMF 협상이나 통상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통상산업부나 기업의 재정·통상 분야의 자문을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연소 합격 위인규씨/초등교부터 수석 안놓쳐/“전문분야 법조인 될터” “공부하는 동안 건강 때문에 힘들었지만 고생하신 부모님께 합격의 기쁨을 안겨드려 기쁩니다” 최연소 합격의 영예를 차지한 위인규씨(21·서울대 사법학과 4년)는 “앞으로 전문분야를 가진 법조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전남 여천 율촌 산수초등학교와 율촌중 순천고를 다니는 동안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이다.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후 3학년 2학기때인 지난해 9월부터 사시 공부를 시작,하루 10시간 이상씩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했다.농사를 짓는 아버지 위계춘씨(66)와 어머니 한기남씨(60)의 1남 4녀중 막내다. ◎최고령 합격 백종인씨/“고생한 아내에 보답” 눈시울 붉혀 최고령으로 합격한 백종인씨(45)의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2평짜리 지하방은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백씨는 “45살의 나이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며 “모두 어렵게 공부했겠지만 아내에게 그동안 고생의 대가를 조금이라도 건네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지난 85년 단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3년을 근무하다 사시에 뛰어들어 8전9기만에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고시원 비용마련을 위해 막노동에서부터 학원강사,대학정문 경비까지 했다.부인 이점숙씨(42)는 “지하 월세방에 살면서 비가 와 방안으로 물이 스며들 땐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합격을 의심하지는 않았다”며 아들 수현군(2)과 딸 수진양(4)의 손을 꼭 잡았다. ◎이색 합격자 오기형씨/면접하루전 임용자격 회복 ‘행운’ 지난해 사법고시 2차시험에 합격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멍에 때문에 3차 면접에서 탈락했던 오기형씨(31)가 17일제 39회 사법고시 최종 합격의 영예를안았다. 3차 면접 하루 전인 지난 11일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하루 차의 행운’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공무원법은 ‘집행유예기간이 끝난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86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법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오씨는 92년 12월12일 ‘서울대 활동가 조직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세무공무원 김영생씨 현직 세무공무원이 국세청 사상 처음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국세청 납세지도과 김영생 사무관(34)은 84년 행정고시 28회에 합격한 뒤 13년만에 사시까지 합격했다.김사무관은 “”소송업무 및 부가가치세 예규 등을 담당하면서 조세제도 체계화의 필요성을 느껴 사시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김사무관은 “2년간 시험 준비를 해왔으며 퇴근후 집에서 5시간 가량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고 밝혔다.낮엔 본연의 직무를 다하고 밤에 시험공부를 하느라 남들보다 더 건강에 신경서야 했던점이 어려웠다고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사무관은 행시합격후 서울지방국세청 송무4계장,영등포세무서 부가가치세 2과장,대방세무서 법인세과장을 지냈다.
  • 김정일일가 우상물 올 59개 건립

    ◎경제­식량난 불구 규모 코고 호화 치장/총비서 승계후 박차… 생모 김정숙것도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올들어 많은 돈과 인력을 동원,김정일일가에 대한 우상물 건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들어 건설된 김정일가계 우상물은 지난 2월15일 남포 강서구역 혁명사적지에 김일성현지지도사적비를 세운 것을 비롯,3일 김책공업대학에 건립된 김정일-김정숙 말씀판까지 무려 59개에 이른다.사람별로는 김일성에 관한 것이 31개,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49년 사망)에 관계된 것 19개,김정일의 것이 9개이다.우상물은 김일성의 영생탑을 비롯 현지지도표지비,혁명사적비,말씀판 등이다.올해 진행된 북한의 우상물 건립의 특징은 ▲김일성의 치적에대한 재평가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박차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우상화에 의한 ‘혁명혈통’ 강조 ▲김정일의 총비서직 승계후 건설이 급증하고있는 점 등이다. 북한은 올해 김일성의 3년 탈상을 맞아 김일성을 신격화에 힘썼다.지난 7월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를 사용키로 했으며 이에 앞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에서 ‘태양절’로 격상했다.이는 김정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김일성에 대한 업적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김일성이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는 것을 과시하고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통치의 그늘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의 우상물을 규모가 크고 호화스럽게 치장돼 있다.지난 7월7일 금수산기념궁전지구 금성거리 입구에 세워진 김일성의 영생탑은 높이가 92.52m나 된다.북한은 이 탑을 제막하면서 금수산기념궁전의 성역화사업의 완료를 선언했다.지난 10월말 남포시 청산리에 세워진 김일성동상도 규모가 크다.부지만 무력 8만4천㎡에 이른다.지난 9월10일 태권도전당에 세워진 김일성의 현지교시판에는 김일성의 모습을 각종 보석을 넣어 그려놓았다. 김정숙에 관한 우상물 건축도 부쩍 늘었다.지난해 12월22일 청진시 청암구역에 김정숙의 혁명사적비를 세운 것을 시발로 올해만 19개의 우상물을 만들었다.북한은 최근 김정숙 출생 80주년(12월24일)을 앞두고 함경남도 이원군차호노동자구를 김정숙혁명사적지로 지정,성역화하는 등 우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는 김일성에 대한 숭배와 더불어 처인 김정숙을 ‘3대장군’의 한명으로 추켜세워 위대성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이 가진 ‘혁명가계의 혈통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의 우상물은 지난 2월14일 평남 맹산군에 김정일현지지도 사적비가 올들어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7월24일엔 판문점대표부에 현지지도표식비가 들어섰다.올해 세워진 김정일우상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난 7월 금성정치대학에 세워진 ‘김정일·김일성말씀판’이다.각각 길이 40m,높이 4m 크기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많은 우상물 제작에는 엄청난 돈과 인력이 동원돼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북한은 앞으로도 민생문제 해결보다는 김정일 일가의 우상물 건립을 계속 늘려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남산골 공원/도심속에 재현된 600년전 서울

    ◎2만4천평 규모의 시민공원 조성/타임캡슐광장­생활문물 600점 매장… 2394년 공개/전통정원 조성­향토수중 식재… 옛남산 정취가 물씬/한옥마을 복원­민속적 가치 높은 한옥 5채 재건립 서울은 도읍지가 된지 600년이 넘었지만 ‘역사속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경복궁,비원 등 일부 고궁과 남대문,동대문 등의 유적이있지만 전체적으로 유구한 역사에 비해서는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보존보다는 허물고 새로 짓는데 길들여진 탓이다. 내년 봄이 되면 서울 남산에 서울의 과거,현재,미래를 볼수 있는 곳이 들어선다. 중구 필동 옛 수도방위사령부 터 2만4천여평에 조성되고 있는 남산골 공원이 바로 그 곳.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한옥마을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이 공원은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은 이미 조성이 끝났고 한옥마을은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다. 남산골 공원의 상층부에 위치한 타임캡슐광장은 서울의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서울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문물 600점이 지하 15m에 매장돼 있다.서울 정도 600주년인 지난 94년 11월29일의 일로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타임캡슐은 정도 천년이 되는 2천394년에 공개될 예정이다.그래서 분화구모양으로 된 광장의 회랑을 거닐면 600년전과 400년뒤가 함께 느껴져 상념에젖게 한다. 타임캡슐광장에서 내려오면 전통정원과 마주친다. 남산의 산세를 살리기 위해 구릉지와 계곡을 완만하게 조성한 이 정원에는 소나무 등 향토수종이 주로 배치돼 있으며 느티나무,수양버들 등이 뒤를 바치고 있다.옛 남산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골짜기도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았다.하류의 연못에서 물을 끌어올려 계곡으로 방류하는데 내년 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골짜기 중턱에는 수필집을 통해 청렴,결백으로 상징되는 남산골선비의 모습을 일깨워준 일석 이희승 선생의 추모비가 서 있다. 또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꿩과 까치가 양지바른 곳 잔디밭에서는 한가롭게 뛰노는 모습을 볼수 있으며 곳곳에 정자가 있어 발걸음을 쉬게 한다.전체적으로 번잡하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여서 도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곳이 전통한옥 복원지역.2천400여평에 형태가 독특하고 원형을 잃지 않아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정규엽가옥 등 5채가 복원되고 있는데 11월1일 현재 92%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올 연말까지면 벽지,천정,장판,창호지 마감작업 및 마을 공동광장 마사토 포장이 모두 끝나게 된다. 이와 함께 내년 3월까지 가옥 내부에 장롱,문갑,뒤주 등 전문가의 고증을거쳐 제작한 가재도구를 배치할 예정인데 현재 75%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한옥촌이 문을 열면 침선,공예,민화교실과 서당 등 다양한 취미강좌가 개설돼 시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한편 한옥촌 초입에 있는 공예전시관은 이미 공사가 끝났다. 이곳에서는 나전칠기 전통매듭 등을 만드는 방법이재현되고 각종 공예품도 판매된다. 공예전시관 앞 빈터는 소극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소극장은 누각과 연못을 마주보고 있어 널뛰기 그네뛰기,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전통혼례식을 개최하기에 적격이다. ◎남산골 공원지역 유래/조선시대 벌칭 청학동… 시인 묵객 많이 살아/1730년경 군대첫 주둔… 이후 군사용 활용 남산골 공원이 조성되는 곳은 옛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살아 조선시대에는 청학동이라고 불려져 왔던 곳이다. 도교에서 청학은 영생하는 학을 말하는데 경치가 절경인 곳에서 산다.이곳이 청학동이라고 불린 것은 청학이살만큼 산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빼어난 산수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을 끌어 모운다. 조선조 초기 좌의정을 지낸 용재 이행은 이곳에 천우각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여름철 더위를 피했다.그는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에 오면 찾았을 정도로 시에 능했다.또 그의 증손자인 이안눌도 시문에 뛰어났다. 남산은 수도 서울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시민들의 쉼터도 될수 있지만 군사목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조선초 태조가 인왕산,남산을 연결하는 도성을 축조한 것이라거나 봉수대로 활용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남산골 공원이 군사용으로 활용된 것은 한참뒤의 일이다.영조때인 1천730년대 조정은 이곳에 139칸의 집을 짓고 수도 서울을 지키는 남별영이라는 군대를 주둔시켰다.얼마전까지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묘한 인연이다. 일제시대에는 헌병대사령부가,해방후에는 수경사가 들어서 지난 94년까지 주둔했다. 남산골 공원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 4호선 충무로 역에서 내려 ‘한국의 집’쪽으로 가면 된다.공원내에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다.전통 한옥촌은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미 완공된 타임캡슐광장과 전통정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 ◎복원예정 한옥 5채의 특징/정규업 가옥­순종때 지은 왕제사 행차용 집/이진승 가옥­철종때 부마 박영효의 개인집/서용택 가옥­정문 계단 난간석은 미의 극치/김홍기 가옥­안채∼사랑채 연결한 사대부집/조흥은 가옥­유리문 등 개량한옥 양식 도입 서울시내에 산재해 있다 남산골로 이전 복원되는 5채의 한옥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동대문구 제기동 정규업 가옥은 조선 순종의 처삼촌인 윤덕영이 왕의 제사행차때 편의를 돕기 위해 지은 제사가옥이다.위에서 내려봤을때 사당을 정점으로 가옥구조가 으뜸 원꼴을 하고 있으며 목재는 경운궁을 헐면서 나온 홍송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경인미술관에 있던 이진승가옥은 조선말 철종때 영혜공주의 사위 박영효의 집으로 서울 8대가 중의 하나다.부엌과 안방이 일자로 남향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보기 힘든 개성지방의 주택양식이다. 종로구 옥인동 서용택 가옥은 조선말 순종 윤비의 저택이었다고 전해진다.이 가옥은 정문 계단 양쪽의 난간석이 매우 아름다운 구한말 최상류층의 가옥이다. 종로구 삼청동 김홍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다.사대부의 가옥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말기 서민주택의 양식을 볼수 있다. 중구 삼각동 조흥은행 관리가옥은 전통적인 안채와 별당채를 갖추면서도 유리문 등 개량한옥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지붕의 한쪽이 길고 한쪽은 짧은 특이한 양식을 띠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이들 한옥을 뜯어 남산으로 옮겨 복원하려 했으나 70% 정도는 새 것으로 교체했다.대부분 지은지 100∼200년이 지나 목재의 상당부분이 썩거나 안전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러나 외국산 소나무를 전혀쓰지 않고 강원도 강릉과 설악산에서 소나무를 벌채,6개월간 건조시켜 사용했다.
  • 국경도시 흑하의 애환(흑룡강 7천리:13)

    ◎69년 소련군 침공… 주민들 공포의 한달/지금도 흑룡강 국경엔 러 순시선 왔다갔다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흑룡강성 애휘진은 오늘날 작은 촌락에 불과했다.1천여 가구가 사는 애휘진은 100여년전 흑룡강장군이 주둔했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국경지대의 중요 거점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1개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7련소속인 이들 병력은 중소긴장이 해소된 탓에 평화스러워 보였다. ○예휘진 1개중대 병력 주둔 그래서 지역봉사와 영농활동에 나서는 병사들이 많았다.애휘역사진열관을 방문했을때 진열관 뜰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전사들을 만났다.오정양 관장은 이들이 윤번으로 매주 한 차례씩 와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렇다고 군에 사기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부대에서 실시하는 정신교육과 더불어 주민을 돕는 봉사활동을 통해 오히려 병사들은 인민의 전사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최근 들어서는 러시아 원동군의 방문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지난 1992년 초겨울에는 골바프중장이 이끈 러시아 원동군 대표단이 애휘진에 와서 7련 산하 여러 부대를 시찰했다.그렇듯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관계는 호전되었지만,국경은 여전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흑룡강성에 걸친 중러국경은 3천45㎞.국경선 18개 현·시·구(구·현급 행정구역)를 지나갔다. 국경경비는 5련이 최북단 낙고하 초소를,7련과 8련은 애휘초사와 흑하초소를 각각 맡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출신 연장은 5련을 지휘하는 최광일 대위(31)밖에 없다.흑룡강성 밀산시에서 자란 그는 목단강 조선족중학교를 거쳐 대련군관학교를 나왔다.그 말고도 5련에는 조선족 한 사람이 더 복무한 적이 있으나 지난해 대퇴(제대)했다.최태건이라는 계동현 사람인데,그는 군에서 나와 지금은 막하향우전국에 근무하고 있다.최광일 대위는 스스로 복받은 세대의 군인이라고 했다.지난 세대의 군복무에 비하면 요순시대를 사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자신이 실제 체험한 것은 아니나 국경부대에 두고두고 전해오는 80년대이전의 병영생활을 실감나게 이야기했다.그의 말을 들으면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꼽씹었다.“흑룡강 군인들은 시대별로 전혀 다른 병영생활을 체험했디요.60년대는 옛 소련군과 총뿌리를 겨누어야 했던 전시를 살았다 말입네다.기리고 70년대는 길을 닦고 철도를 깔아야 했디요.말이 군인이었디 실은 노동자였슨다.순라가 주임무였던 80년대도 고달프기는 매한가지였다고 기래요.흑룡강이 얼면 강 한복판 얼음위에다 널빤지 하나를 달랑 깔고 보초를 섰답네다.오죽 추웠겠습네까.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연속 8시간씩 보초를 선다고 생각해 보시라요” 흑하시 강변의 왕숙공원을 산책하노라면 순라병들과 함께 달리는 군견을 만날수 있다.주둥이가 몽툭하고 허리가 잘쑥한 잘 생긴 개들이다.그 군견을 모는 순간 중소국경분쟁이 일어났던 시절에 보도되었던 기사 하나가 얼핏 떠올랐다. 기사는 70년대 어느 겨울 얼음이 언 흑룡강 빙판위를 중소 순라병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그런데 중국군 군견은 수놈이고,옛 소련군 군견은 암놈이었다는 것이다.우수리강 진보도 국경분쟁에 따른 전투를 겪고난 터라 여차하면 서로 총을 갈겨댈 그런 때였다.순라병들 끼리는 서로 스치고 나면 행여 뒤에서 총질을 하지 않을까 싶어 모골이 송연했는데,양쪽 군견은 뒤를 돌아 보면서 사랑의 눈길을 주었다. 그런 어느날 소련군 군견이 중국군 초소 군견우리에 불쑥 나타났다.중국쪽 초소는 발칵 뒤집혔다.적의 군견이 나타났으니 필경 소련군이 강을 건너왔을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이는 곧 심양군구에 보고되었다.그리고 동북군은 일급 전쟁태세를 갖추었다.그럴 즈음에 소련군쪽에서 군견을 찾아달라는 통보를 해왔다.긴장국면은 바로 풀렸지만 사랑을 찾아 강을 건너온 군견으로 해서 전쟁이 일어날뻔 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는 1969년 겨울 진보도국경분쟁으로 일어난 중소전쟁에서도 나타났다.문화대혁명 당시 반동분자로 몰렸다가 간신히 풀려나왔던 흑하시 한정순씨(64)는 그 전쟁현장을 목격한 조선족이다. ○조선족 지휘관 최광일 대위 “모두가 피란을 가노라 법석을 대다 흑하시가 텅 비었디요.집 사람도 애들을 데리고 떠나자고 졸라댔지만,나는 거절을 했수다.조선전쟁(한국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 민간인들을 어찌 하겠냐는 생각으로 버텼디요.도망질은 문화혁명에 앞장을 섰던 극렬분자들이 먼저 칩데다.전쟁은 근 한 달만에 끝나고 사람들도 돌아왔으나 얻은 것은 하도 없었디요.맨 잃은 것 뿐이었다 말입네다” ○70년대 군견으로 전쟁위기 전쟁은 사람들 정신까지도 빼앗아갔다.중국 군인들은 소련군 탱크 앞에 빨간 비닐 표지를 씌운 ‘모택동 어록’만을 흔들었다.‘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귀절을 외웠던 중국군들은 총을 겨누기 커녕 어록만을 흔들어 댔던 것이다.그렇다고 중국군은 소련의 탱크 T62를 때려잡을 무기를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중국군은 탱크 격파용 포는 물론 철갑탄도 만들지 못했던 시절이다. 중국군 수뇌부는 다급했다.그래서 엽검영원수는 역사논쟁에서 밀려 노동개조를 받고 있는 신세로 전락한 무기전문가 유광지 박사를 부랴부랴 불러들였다.결국 탱크 격파용 포와 철갑탄을 개발했으나,소련은 인공위성을 통해 이를 감지했다고 한다.어떻든 중소관계는 1979년 중국이 월남을 침공한 잠깐 동안의 전쟁을 마무리한 이후 지금까지 호전되는 기미를 보여왔다.이번 여행에서 흑룡강 강심을 가른 유람선을 타보았다.마침 러시아 순라선이 군기를 펄럭이며 지나갔다.관광객들이 손을 흔들자 순라정 이물에 섰던 러시아 수병이 부동자세를 취했다.그리고 거수경례를 부쳤다.흑룡강에 정녕 평화는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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