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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신경영 20년] 미래의 삼성은

    [삼성 신경영 20년] 미래의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 영생불사는 없다.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 졸면 죽는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노키아도, 소니도 과거의 명성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이폰은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조크(joke) 같은 제품이다. 우리가 정한 것이 표준이다.”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는 2007년 처음 등장한 애플 아이폰을 비웃었다. 방심과 자만의 대가는 참담했다. 6년 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시장에서 노키아란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이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10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노키아는 큰소리칠 만했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반 이상을 장악했고, 그 덕에 2006년 매출은 핀란드 정부 예산보다도 많았다. 잘나가는 삼성이 내일을 위해 긴장의 고삐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래를 위해 삼성이 풀어야 하는 과제는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에 편중된 이익 구조를 벗어나야 하고, 동시에 새 먹거리를 선점해야 20년 후를 약속받을 수 있다. 단순히 성공한 기업이란 이미지를 넘어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삼성의 재무제표는 쏠림현상이 심해졌다. 지난해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은 380조원. 이 중 삼성전자의 매출이 201조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의 53%를 차지한다. 특히 삼성전자 안에서도 휴대전화사업이 주를 이루는 IM(IT·모바일)사업부의 매출은 108조 5000억원이다. 삼성전자 매출의 53.9%, 그룹 전체 매출의 28.5%에 달한다. 영업이익만 보면 편중은 더 심하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IM사업부의 비중은 2011년에 51.9%로 절반을 넘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66.9%로 올라갔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중 3분의2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어느샌가 알토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고 있는 셈이다. 이런 편중된 이익구조에서 탈피해야 삼성그룹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삼성그룹이 2010년 5대 신수종사업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당시 삼성은 2020년까지 바이오·의료기기·2차전지·태양광·LED(발광다이오드) 분야에 무려 23조 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그린카 보급이 지지부진하면서 자동차용 전지부문에서 보조를 맞추던 독일의 보쉬는 삼성과 합작관계를 끊었다. 또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던 국내 업체들은 시장 침체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잇따라 사업을 접고 있다. ‘낮은 전력 소모’와 ‘긴 수명’이라는 장점으로 고속성장을 예상한 LED는 2010년 중국이 끼어들면서 벌써 공급과잉에 빠졌다. 바이오제약과 의료기기는 아직 다국적기업과 맞서기엔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삼성이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매달 연구개발(R&D) 비용만 1조원 이상을 쓴다. 올해 삼성그룹의 전체 시설투자는 31조원으로 지난해보다 11% 늘어날 예정이다. 또한 연구개발 투자는 13조 6000억원, 자본투자는 3조 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경영권 승계 문제도 늘 변수다. 경영권은 자식에게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비판적인 시선을 의식해 승계 운운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재계는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차기 회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화답도 삼성이 고민해야 한다. 저성장 사회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국민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요구는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시장에 돈도 안 돈다는 푸념이 나올 때마다 국민은 현금을 쌓아둔 재벌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어록을 모은 ‘지행 33훈’이란 책이 있다. 삼성 임직원들에겐 일종의 교과서다. 지행 33훈의 마지막 부분은 ‘삼성이 존경받은 국민기업이 돼야 한다’로 끝맺는다. 삼성이 존경받는 기업이 될지 아니면 돈만 많이 번 재벌기업으로만 남을지는 앞으로 20년에 달렸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화성시에 8개시 공동 종합장사시설 건립

    화장장이 없는 경기도 8개 시가 공동으로 종합장사시설을 건립한다. 화성시는 10일 부천·안양·평택·시흥·군포·의왕·과천시 등 8개 시장과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 대회의실에서 ‘화성시 공동형 종합장사시설’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한다고 8일 밝혔다. 장사시설부지는 화성시로 정했으며 30만㎥ 규모의 후보지 공개모집과 타당성 조사용역을 거쳐 오는 9월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시는 2018년까지 1200억원을 들여 화장로 10기 내외, 장례식장, 봉안당, 자연장지 등의 장사시설을 설치한다. 총비용 가운데 220억원은 국비와 도비로 충당하고 나머지 비용은 8개 시가 나눠 부담한다. 2020년 인구증가에 따른 화장로 증설계획도 포함하기로 했다. 공동장사시설 설치는 경기지역 화장률이 2010년 73.8%, 2011년 77.5%로 매년 3∼4% 포인트씩 증가하고 있으나 시설은 수원과 성남, 지난 1월 개장한 용인 등 3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주민들은 타지역 화장장을 20배까지 비싼 이용료를 지불하고 이용해야 해 불만이 늘고 있다. 성남시영생관리사업소 이용료는 지역주민이 5만원인 데 반해 지역외 주민은 100만원, 수원시연화장도 지역외 주민은 100만원(지역주민 10만원)으로 최고 20배가 비싸다. 인근 서울원지동추모공원과 인천가족공원도 11배 비싼 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지역주민들에게 오전 시간을 우선 주는 바람에 지역외 주민은 경제적, 정신적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시는 장사시설 유치지역에 50억원 이내의 마을발전기금과 한시적으로 화장시설 수익금의 5∼10%를 기금으로 적립해 주기로 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배설 선생은 세계에 일제 야욕을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분”

    “배설 선생은 세계에 일제 야욕을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분”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대한의 동포를 구하라.”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에 앞장섰던 영국인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4주년 추모식이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1일 열렸다. 이곳은 배설 선생과 함께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장소다. 배설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이철휘 서울신문사 사장,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처장, 스콧 와이트먼 주한영국대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언론인 배설 선생은 영국인이었지만 어느 애국지사 못지않게 우리 민족을 사랑했고 인류애를 실천했던 분”이라면서 “대한제국 말기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 창간을 통해 일제의 침략 야욕과 만행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세계 만방에 알렸다”고 소개했다. 와이트먼 대사는 “올해는 한국과 영국의 국교 수립 13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배설 선생은 한국과 영국의 관계를 크게 증진시킨 인물”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군악대의 추모연주로 시작된 행사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이조 전 서울시무용단 단장은 추모춤 ‘거룩한 님이시여’를 공연했고 대한독립군가선양회는 ‘배설 송가(頌歌)’를 불러 그를 기렸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에 왔다. 같은 해 6월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항일투쟁의 대변자 역할을 하던 배설 선생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1909년 5월 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그에게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김재원 배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후손들에게 배설 선생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진실은 똑같아”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진실은 똑같아”

    지난 3월을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청문회가 있었고 ‘성 접대 논란 뉴스’가 큰 화제가 됐다. 그런 와중에 만화가 ‘꼬마비·앙마비’(필명)가 최근 3권으로 펴낸 ‘S라인’(애니북스 펴냄)을 읽다가 픽 웃음이 나왔다. ‘성 접대 논란’의 시시비비가 ‘S라인’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쉽게 해결될 텐데 싶었기 때문이다. ‘S라인’의 ‘S’는 사회(Social)이거나 과학(Science)일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섹스(Sex)다. 어느 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붉은 선이 나와 다른 사람과 이어지게 된다. 이 붉은 선은 자신과 성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선이다. 대전에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꼬마비(일러스트)는 지난 10일 “일본, 중국의 하늘이 이어준 인연들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붉은색 비단실로 연결돼 있다는 민담과 설화를 차용한 것”이라며 “공항에서 각 비행사의 항로가 붉은 선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남자들이 섹스를 남용할 때마다 얼굴에 뾰루지가 나거나 붉은 반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여성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뽕 하고 나타난 이 붉은 선 때문에 연인이 싸우고, 남편은 막 태어난 갓난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일까 의심하고, 청순한 매력으로 호감을 산 아이돌 스타는 온갖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설교하던 목사는 수백 개의 붉은 선이 노출된 탓에 교회에서 쫓겨나고, 성폭행당한 어린 소녀는 억울한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포토샵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붉은 선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지우개’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마다하지 않는다. 블랙코미디다. 꼬마비는 네이버에 이 만화를 연재할 때 블로그에 “절대 비밀이 있다면 그 덕분에 환장할 사람은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쪽일까, 비밀을 간직해야 하는 쪽일까”라고 질문했었다. 어느 쪽일까. 그는 “눈에 보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진실은 똑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모른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라고 말한다. 꼬마비라는 필명은 “대학 4년 내내 술 먹은 집”에서 따왔다. 그는 무명 만화가 7년 만이던 2011년 펴낸 ‘살인자ㅇ난감’으로 대한민국 콘텐츠어워드 만화신인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독자만화대상 심사위원상 등 그해 만화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면서 ‘만화가’가 됐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죽음 3부작 중 2부까지 끝냈다. 대중성, 예술성을 겸비한 만화를 그리려는 만화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3부작을 조만간 시작할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잃어도 영생할 수 있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고흐 같은 만화를 나도 그리고 싶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대한매일신보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대한매일신보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나는 죽으나,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했던 파란 눈의 영국인 청년 배설(裵說·본명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전기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가 출판사 기파랑에서 나왔다. 일제의 식민 통치가 극에 달한 1909년 언론인 배설은 낯선 땅 한반도에서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다. 배설 선생의 불꽃 같은 삶의 궤적을 다룬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명예교수가 서재필기념회의 제안으로 펴낸 것으로, 26년 전 발간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의 개정판에 해당한다. 정 교수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일본 외교문서, 대한매일신보 지면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배설 선생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러일전쟁 특파원 자격으로 한반도 땅에 발을 디뎠지만 일제에 억압당하는 조선인의 고통을 목격한 배설 선생은 ‘한국 동포’의 편으로 돌아서 항일 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한매일신보는 고종의 밀서를 사진 기사로 대서특필하고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을 널리 알려 구국 투쟁의 선봉을 지켰다. 정 교수는 “배설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숨을 던졌다”면서 “그가 창간한 신문의 항일정신은 찬란한 금자탑이 되어 영원히 빛을 발한다”고 적었다. 김균미 기자 kmkim@seoul.co.kr
  • 문경 국군체육부대 3년8개월만에 완공

    국군체육부대 새 보금자리가 경북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일원에 마련됐다. 문경시는 2009년 7월 사업비 3907억원을 들여 착공된 체육부대 이전 사업이 3년 8개월 만에 완공됐다고 2일 밝혔다. 146만 8000㎡ 크기의 부대는 주경기장을 비롯해 수영·펜싱·레슬링 실내훈련장, 야구·축구·양궁·럭비 등의 실외전용경기장, 병영생활관, 선수통합숙소 등을 갖춘 종합 스포츠타운이다. 주경기장 육상트랙, 전광판, 방송시설은 국제 수준의 최첨단 시설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2015년 110여개국이 참가하는 경북 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개막식과 주요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군인체육대회를 위해 현재 1만석인 관중석이 1만 8000석으로 증설된다. 문경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언제까지고…오 그대여 변치 마오

    언제까지고…오 그대여 변치 마오

    짧으면 한 달, 길어야 석 달 안에 프로그램의 생사가 판가름 난다는 방송가에서 10년 이상 장수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소리 없이’ 오래 가는 이 프로그램들은 매 시즌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상파 방송국 간 편성 전쟁을 겸연쩍고 부끄럽게 만든다. TV와 라디오에선 각각 EBS의 ‘장학퀴즈’(40년), KBS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49년)가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기념비적이지만 제작진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하다. “방송은 삶이며 시청(청취)자와 소통하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1980년 11월 막 올린 ‘전국노래자랑’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KBS의 간판 프로그램 역할을 해 왔다. 이미 1648회를 넘겼고, 내년 상반기 1700회를 맞는다. 일요일 오전 안방극장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며 시청자와 고락을 함께했다. 방방곡곡의 숨은 재주꾼을 찾아내 ‘슈퍼스타K’ 등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조로도 불린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TV유치원’(1982년 9월)도 최근 8750회를 넘겼다. 예능에 ‘전국노래자랑’이 있다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는 ‘추적 60분’(1983년 2월)이 있다. 지난달 27일 1065회를 맞았다. 그동안 영생교, 천안함 등 사회적 의제를 제시했다. 강희중 PD는 “시청자의 기대치와 요구가 더 높아지고 내·외부의 압박도 커졌다”면서 “전문성, 심층성, 현장성을 강화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MBC의 ‘출발! 비디오 여행’(1993년 10월)은 올해 중순쯤 1000회 방송을 앞두고 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전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단편적인 영화정보를 알려주던 예전 프로그램과 달리 1시간 동안 영화 소식만을 소개한다. 시사 프로그램인 ‘PD수첩’(1991년 5월)은 지난달 940회를 넘겼다. 광우병, 4대강사업 등 사회적 이슈를 몰고 다녔으나 정치적 외풍에 휘말리며 최근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SBS에선 ‘TV동물농장’(2001년 5월)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말 600회를 맞았다.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소통을 추구한다는 의도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전 같은 시간대 최강자다. 첫 방영 당시 ‘동물의 왕국’이나 ‘퀴즈탐험 동물의 세계’에 한정됐던 동물 소재 프로그램의 영역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가를 들었다. 박두선 PD는 “단순히 볼거리만 제공하는 데서 벗어나 솔직 담백하게 교감하며 ‘진정성’을 전달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600회를 맞은 ‘도전 1000곡’은 2000년 처음 방영됐다.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란 타이틀을 얻은 데는 가수, 탤런트, 작곡가, 아역배우 등 직업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 출연진이 일조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998년 5월)도 지난해 7월 700회를 맞았다. 별난 사람들의 별난 삶의 방식을 담아 왔다. 지난달 18일 방송 40주년을 맞은 EBS의 ‘장학퀴즈’(1973년 2월)도 빼놓을 수 없다. 방송 횟수만 1950회, 출연자 수는 1만 6000명에 이른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출연자만 600명에 가깝다. 장학퀴즈는 MBC에서 첫 방영됐다. 정동 MBC에서 녹화가 있는 날이면 경찰이 나서 인파를 통제해야 할 정도였다. 1996년 10월 종영돼 공백기를 거친 후 1997년 1월 EBS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영홍 EBS PD는 “40년간 고교생 전문 퀴즈프로그램이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면서 “이곳을 거쳐간 유명인은 가수 김광진, 한수진 전 SBS 앵커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라디오에선 유독 장수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매체의 특성상 프로그램 진행자만 바꿔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년 50주년을 맞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대표적이다. DJ 유영석이 “학창시절 이불 속에서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워 왔다”고 말할 정도다. 22년 전 처음 방송된 심야 음악프로그램 ‘음악세계’, 15년간 매일 직장인의 출근길을 열어온 ‘황정민의 FM대행진’도 빼놓을 수 없다. MBC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1969년 3월), ‘싱글벙글쇼’(1973년 6월), ‘2시의 데이트’(1975년 10월), ‘여성시대’(1988년 4월) 등 다양한 장수 프로그램이 있다. SBS의 경우 1996년 11월 개국과 함께 방송을 개시한 ‘이숙영의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이 쌍두마차다. 박소연의 러브게임(1999년 4월)도 반열에 올랐다. 은지향 CP는 “지명도 있는 진행자를 내세워 청취자의 충성도가 높고, 이 덕분에 다양한 상승작용이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시청자가 꼽은 이들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은 단연 ‘흡인력’.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전국노래자랑·세상에 이런 일이)이나 동물(TV동물농장)을 다룬다. 라디오에선 독자가 투고한 일상의 사연을 들으며 동질감을 극대화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자 참여형이란 공통분모도 지녔다. 비슷한 아픔과 상처, 결핍 등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거나 자신을 위로한다. 이를 통해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TV프로그램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에 편성 시간이 집중돼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기 쉽다는 강점도 지녔다. 덕분에 10% 안팎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한다. 시청자들이 눈치 채기 어려운 비결도 있다. 제작진 간 팀워크다.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했던 한 KBS 관계자는 “제작진끼리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이야말로 장수 프로그램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PD저널리즘 원조 ‘추적 60분’ 30주년

    PD저널리즘 원조 ‘추적 60분’ 30주년

    국내 최초의 탐사 프로그램인 KBS 2TV ‘추적 60분’이 오는 27일 방영 30돌을 맞아 8개월째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물고 있는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단독 인터뷰했다. 어산지는 “힘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게 탐사보도”라며 “전 세계 100여개국 이상의 정보기관이 나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서 어산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CIA 등 미국 정보기관을 비난하는 데 할애했다. 이재오 KBS 시사제작1부 PD는 “어산지를 처음 숨겨준 조력자를 인터뷰하다가 어렵게 어산지와 연락이 닿았다”면서 “오랜 도피 생활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산지는 ‘추적 60분’ 제작진에게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아이슬란드에서 나를 도와주던 18세 소년을 납치했다가 풀어 줬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어떤 형태의 중화기를 썼는지에 대해 상세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2010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과 관련한 미 국무부의 기밀 외교 문서 수십만건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같은 해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 스웨덴 송환 재심 요청이 영국 대법원에서 기각되자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27일 밤 11시 20분에 방영하는 30주년 특집 1065회 ‘추적 60분-그래도 추적하라’(가제)에선 어산지 인터뷰 외에 세계 각지의 취재 현장에서 만난 탐사보도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곁들인다. ‘추적 60분’은 1983년 2월 27일 ‘한국의 할리우드, 충무로 영화가’(1회)로 닻을 올린 뒤 성역 없는 비판을 기치로 국내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PD들이 출연해 내레이션을 맡고 과학적 검증을 시도해 ‘PD저널리즘’이란 신조어도 만들어 냈다. 1995년 영생교, 2000년 매향리 사격장, 2010년 천안함 관련 의문 등 사회를 흔들 만한 화두를 던졌다. 외압도 심해 ‘쌍용양회 사과상자 사건’(1996)은 불방됐고, ‘국방군사연구소는 왜 갑자기 해체되었나’(2000)와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2010)은 각각 3주, 2주간 방영이 미뤄졌다. 그동안 김민전 경희대 교수, 이영돈 PD 등 MC 15명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PD 출신인 길환영 KBS 사장 등 역대 제작진은 140명에 이른다. 박정용 시사제작1부장(PD)은 “30주년을 계기로 내용과 형식에서도 변화를 꾀하겠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北, MB 정권교체 발언에 “최후 발악” 발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언급한 데 대해 16일 “민족반역자의 최후 발악”이라고 맹비난했다. 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행위에 대처한 자위적 조치인 제3차 핵실험 앞에 어떻게나 얼이 나갔는지 시간이 갈수록 넋두리”라고 비난하며 ‘만고역적’, ‘대결병자’ 등 각종 욕설을 동원해 이 대통령을 헐뜯었다. 또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동결상태에 둘 각오가 돼 있다’는 집권 초기의 악담 그대로 지난 수년간 민족공동의 이념과 성과물을 전면 부정하고 체계적으로 말아먹었다”며 한반도에 엄중한 사태가 조성된 것은 미국과 이 대통령의 ‘반공화국 대결책동’ 때문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민원로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없다. 정권이 바뀌고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며 북한의 ‘정권교체’ 필요성을 거론했다. 한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는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1회 생일인 ‘광명성절’을 맞아 당·군 주요인사들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는 인민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노농적위군 명예위병대 대장의 영접보고를 받은 뒤 김 위원장의 시신이 있는 영생홀과 훈장보존실, 열차 보존실 등을 둘러봤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남편과 함께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연을 관람한 이후 40여일 만에 등장한 리설주는 지난번보다 살이 빠진 듯한 모습이어서 출산설에 더욱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이날 “참가자들은 장군님을 천년만년 길이길이 받들어 모시고 최고사령관 동지의 영도 따라 백두의 행군길을 남해 끝까지 이어가며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성해 나갈 불타는 결의를 다짐했다”며 행사 분위기를 전했다. 통신은 또 “제3차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그 어떤 제재도 압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군조선”, “무진막강한 핵 억제력을 가진 천하무적의 백두산혁명강군이 있기에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부각시키는 표현도 잇따라 사용했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 종교인구 줄고 기복성향 심화

    지난해 종교인구가 8년 전에 비해 1.9%포인트 줄었으며 비종교인은 절반에 가까운 44.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이상 성인 남녀 5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1일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조사’ 결과 확인됐다. 조사에 따르면 종교 인구는 전체 응답자의 55.1%를 차지해, 57%였던 2004년 조사 때보다 1.9%포인트 줄었다. 특히 20대의 경우 남자는 39.8%, 여자는 39.5%만 종교인이라고 답해 전체 평균보다 15%포인트가량 낮았다. 종교별로는 개신교 22.5%, 불교 22.1%, 천주교 10.1%, 기타종교 0.5% 순으로 많았으며 비종교인이 44.9%나 됐다. 목회 세습에 대해선 개신교인의 75.4%, 목회자의 71%가 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해 성직자 신자 모두 압도적으로 교회·목회 세습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 목회자 개인 소득 납세 의무화와 관련해선 개신교인의 48.3%, 목회자의 49%가 각각 찬성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사례비는 대도시 243만원, 중소도시 202만원, 읍·면 지역 163만원이었다. 한목협에 따르면 대도시를 기준으로 목회자의 월평균 사례비에 기타 소득을 합한 금액은 287만원으로, 일반 국민(337만원) 소득의 85.1% 수준이다. 한편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의 이유를 물은 결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38.8%), 구원·영생을 위해(31.6%), 건강·재물·성공 등 축복을 받기 위해(18.5%) 등의 순으로 답했다. 이는 2004년 조사에 비해 ‘구원·영생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15%포인트 줄어든 대신 ‘건강·재물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10%포인트 상승해 기복적 양상이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뱀의 해/육철수 논설위원

    한자문화권에서는 점성학·풍수지리학·사주학 등의 역학(易學)이 사람들의 실생활과 심리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역학 가운데 오행(五行)의 기운을 살펴 개인사의 길흉을 알아보는 사주학은 전문가의 영역을 벗어나 뭇사람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해가 바뀌면 토정비결을 보거나, 날마다 신문 운세란을 살피는 일은 재미가 쏠쏠하다. 일진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좋으면 좋은 대로 기분이 상쾌하고, 나쁘면 나쁜 대로 경계의 마음을 다지기 때문이다. 사주의 바탕은 오행을 음양으로 나눈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다. 천간과 지지의 조합인 60갑자(甲子)를 활용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따져 보면 어지간한 인생의 미래는 다 들어 있다. 운세와 운명이 이런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니 믿어야 할지, 말지는 순전히 마음에 달린 일이다. 이런 분위기를 이용한 ‘띠 상술’도 활개를 친다. 이를테면 천간 가운데 갑을(甲乙)은 푸른색, 병정(丙丁)은 붉은색, 무기(戊己)는 노란색, 경신(庚辛)은 흰색, 임계(壬癸)는 검은색을 나타낸다. ‘황금돼지띠’ ‘백호띠’ ‘흑룡띠’ ‘흑사띠’ ‘백말띠’ 등은 바로 태어난 해의 천간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지난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몇백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띠라 해서 평년보다 4만명이나 더 태어났다. 원래는 ‘붉은 돼지’인데 중국인들이 붉은 것은 재물을 가져다 준다며 황금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행에 ‘정해’는 ‘옥상토’여서 흙처럼 누런 황금색을 띠의 이름 앞에 갖다붙였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단순한 상술이었을 뿐인데, 산모들은 제왕절개까지 하면서 아이를 낳았다. 황금돼지띠 아이들은 유치원 입학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시달린다니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백말띠 여자는 별나다’는 속설 탓에 말띠해엔 여자 아이의 탄생이 줄어든다는데, 진위를 떠나 ‘말(馬)이 웃을 일’ 아닌가. 올해는 뱀띠해(癸巳年), 그중에서 ‘검은 뱀(黑蛇)의 해’란다. 뱀에 대한 좋은 말도 많고 나쁜 말도 많지만, 역술가들은 뱀이 지혜롭고 불사(不死)·영생(永生)에다 풍요와 다산(多産)의 상징이라고 입을 모은다. 뱀은 음양의 귀를 동시에 열어놓는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뱀띠 인물 가운데는 지식과 지혜를 겸비해 두뇌가 명석하고,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파고드는 인재들이 적지 않다. 뱀이 희면 어떻고 검은들 또 어떠랴. 마침 나라에서 올해부터 국민 세금으로 무상보육도 시켜준다. 아무쪼록 튼튼하고 지혜로운 뱀띠 아기들이 올해엔 많이많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분홍빛 바다가 출렁인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토막 난 엉덩이가 바짝 엎드려 있다. 둥근 엉덩이 사이로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페니스들이 서 있다. 페니스들은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부드럽게 흔들린다. 한쪽에서는 실리콘 가슴이 유두를 꼿꼿하게 세운 채 먹잇감을 찾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지개빛깔 콘돔 무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눈꺼풀을 투과한 빛이 안구를 따스하게 감싼다. 빛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뼈마디를 녹인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나는 분홍빛 바다를 부유한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탄력 있게 밀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미는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방향을 틀 때마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하늘거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사십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 위로 분홍빛 조명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껐다. - 천천히 돌아보세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남자의 시선이 뒤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시선이 진열대 쪽으로 튕겨 나갔다. 남자의 눈동자는 진열대에 놓인 성인 잡지와 DVD, 콘돔 상자와 딜도를 빠르게 훑으며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줄리’ 앞에서 멈췄다. ‘줄리’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포르노 여배우가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줄리’의 우윳빛 허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토막 난 몸뚱이를 쓰다듬던 남자는 여배우의 그곳을 구석구석 살피며 촉감을 확인했다. 남자의 턱관절이 점점 느슨해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있을 때도 남자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삼 개월 할부로 몸값을 치르고, 남자는 토막 난 연인을 끌어안은 채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신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자는 매일 밤 포르노 스타와 밀애를 즐기게 될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품 중 완전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분절된 신체기구뿐이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본뜬 고가의 바이브레이터, 살짝 벌어진 여자의 성기,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 가슴 사이에 질이 달린 기형적인 기구까지 온통 토막 난 몸뚱이뿐이었다. 토막 난 몸뚱이들은 나와 제법 어울렸다. 아이처럼 작은 몸에 달린 성숙한 여자의 젖가슴, 근육이 잘 발달된 짧은 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붙어 있는 가늘고 휘어진 다리는 몸통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내 몸뚱이는 버려진 재료를 모아다가 아무렇게나 조립해 만든 결과물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게 안에 분해된 채로 진열된 내 몸뚱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오후 두 시.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노인은 방 안에 쟁반을 밀어 넣은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 의지도 없이 덜렁거렸다. 노인은 나를 방 안에 내려놓은 뒤 문지방에 걸터앉아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 오늘은 유난히 바빴어. 공영주차장 공사가 시작됐거든. 그쪽 인부들이 다 왔지 뭐야. 한동안 바쁘겠어. 노인은 안주인과 함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평범한 상호에, 따로 메뉴도 없이 그날그날 안주인이 만든 국과 반찬을 내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일하는 공업사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 노인은 이 근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다. 안주인은 노인이 일하는 곳 근처에 세를 얻어 식당을 열었다. 공업사와 공구상가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식당은 벌이가 꽤 괜찮았다. 노인은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안주인을 거들거나 상가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세를 얻어 식당을 차린 노인 부부는 이제 식당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노인의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산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노인은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화장실을 개조해 주었다. 노인이 아니었다면 가게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노인은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다 주었다. 때로는 나를 안고 식당에 내려가기도 했다. 한창 바쁘게 손님을 치르고 난 안주인까지 함께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을 때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공업사 사람들은 노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밥알을 씹으며 노인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쑥스럽게 웃으며 “딸자식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갈치조림이야. 손님상에 내려고 만든 건 아니고… 며느리가 보낸 걸 내가 몇 토막 졸여 달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온 노인이 쟁반을 덮고 있던 신문지를 걷어냈다. 매콤한 갈치조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들고 몸통 양 옆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냈다. -이렇게 가시를 미리 빼두면 먹기 좋지. 갈비처럼 손에 들고 뜯어 먹기도 좋고. 양념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빨며 노인이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갈치 살을 발라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발라낸 살을 입안에 넣자마자 연약한 살점이 부서졌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자작자작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입에 넣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를 베어 먹었다. 노인은 남은 갈치 토막을 집어 들고 가시를 제거한 뒤 살점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살점을 씹고, 국물을 삼키는 나를 보며 노인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자꾸만 빨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는 밥그릇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밥알을 떼어 냈다. 손톱으로 접시에 말라붙어 있는 갈치 비늘을 긁어냈다. 손톱 사이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나는 신문지로 빈 그릇을 덮었다. 노인은 쟁반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갈치 기름으로 얼룩진 신문지 귀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올 거예요. -그래,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신었다. -저녁 올려다 주마. 노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방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 쪽으로 기어갔다. 어제 들어온 상품 몇 개를 새로 진열해 놓을 생각이었다. 상자더미 옆에는 계단식으로 만든 나무받침대가 있었다. 노인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였다. 몸집이 큰 그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그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다 속 포유류 같았다. 그가 맞은편에 위치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리고 공업사 2층에 딸린, 내 방에서 마주 보이는 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받침대에 올라갈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업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상자에서 ‘투 러버스’를 꺼냈다. 페니스 모형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상품인데,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질감을 하고 있는 기구였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튜브 걸’도 꺼냈다. 여체를 본뜬 비닐 튜브에 바람을 주입한 뒤, 성기 부분에 실리콘으로 제작한 질 모형을 끼워 넣고 사용하는 상품이었다. 모양이나 촉감은 ‘리얼 돌’에 못 미치지만 저렴한 가격이 ‘튜브 걸’의 장점이었다. 나는 두 개의 상품을 들고 가게로 나갔다. ‘투 러버스’를 딜도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뒤, 납작하게 눌린 ‘튜브 걸’의 몸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밋밋한 얼굴과 유두 없는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흐느적거리던 비닐 다리에도 팽팽하게 공기가 차올랐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튜브 걸’의 다리를 벌리고 핑크빛 질을 끼워 넣은 뒤 무릎 위에 앉혔다. 공기처럼 가벼운 여인을 한 팔로 끌어안고 가게 중앙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춤을 청하듯 정중하게 ‘튜브 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튜브 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동그란 원을 그리듯 휠체어를 밀었다. 멀어질 듯 밀착되고, 흐느끼듯 가라앉다 이내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춤. 오래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을 흥얼거리며 나는 ‘튜브 걸’과 함께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춤추기를 멈췄다. -제법인데. P공업사 사장 최 씨였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게를 찾아왔다. 최 씨는 나에게서 ‘튜브 걸’을 빼앗아간 뒤,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튜브 걸’을 거칠게 낚아채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문을 잠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 씨가 나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코올로 기구를 닦아 내는 동안 최 씨는 양말과 바지, 그리고 팬티를 차례로 벗었다. 나는 최 씨 쪽으로 기구를 밀었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는, 여자의 하반신을 본뜬 기구였다. 최 씨는 내가 건넨 윤활제를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거기 있어. 네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이 되거든. 이곳에 찾아오는 남자들 대부분이 내게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봐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섹스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기구가 아닌 진짜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 갔을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나는 남자들이 기구 안에 사정을 할 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때로는 기구에서 여자의 상반신이 자라나는 상상을 하거나, 기구처럼 남자들의 상반신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친 최 씨가 기구에서 몸을 빼냈다. 나는 전기주전자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잔에 인스턴트커피를 쏟아부었다. 황갈색 커피 알갱이가 잔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하얀 프림이 쏟아지며 커피 알갱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자가 고운 프림은 카리브 해의 모래를 닮았다. 카리브 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가 산다고 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언젠가 TV에서 본 그 해파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장과 퇴행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1cm도 안 되는 이 작은 해파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전 세계 바다로 퍼져 나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해도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태고로부터 멀고 먼 미래까지, 끝없이 헤엄쳐 갈 것이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영생불사의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헤엄쳐 오는 환영. 나는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해파리였다. 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물흐물한 두 다리는 내가 해파리의 삶을 살았다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분출하는 법은 잊었지만, 여전히 분비되고 있는 독이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현기증이 일 때도 종종 있었다. 물이 끓었다. 나는 최 씨에게 커피를 건넸다.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최 씨는 커피값을 기구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해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끝에 태양이 반쯤 걸려 있다. 태양은 바다 위로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다. 황금빛 길을 따라 무언가 해변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다. 그것은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헤엄쳐 온다. 물살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고래다. 고래와 나는 서로 마주 본다. 나는 고래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간다. 고래의 등은 생각처럼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를 태우고 고래는 다시 바다로 헤엄친다. 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고래는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친다. 물살에 발등이 간지럽다. 낯설다.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본다. 길고 튼튼한 다리가 쭉 뻗어 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뻗어 물살을 가른다. 잠결에 쇠가 또 다른 쇠붙이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철컥, 하고 가게 출입문이 열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출입문이 슬며시 닫히는 소리, 쇠붙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잠이 든 게냐? 노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저녁상 봐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노인은 방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저녁은 먹고 자야지.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갈치찌개다. 남은 갈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아주 개운하다. 노인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노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노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노인의 피부는 차갑고 거칠었다. 노인은 내 가슴을 성급하게 움켜쥐었다. 노인은 내 등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고 있는 커다란 곤충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려왔다. 공업사에서는 종종 야간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누워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노인이 긴 숨을 토해냈다. 허물처럼 노인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입맛 없으면 뒀다가 아침에 데워 먹어라. 방문을 닫기 전, 노인이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기구를 소독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배고픈 아기마냥 희미하게 울다가도 이내 앙칼진 비명을 질러댔다. 안주인은 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화벨이 울려도 못 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면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히 교미를 하고 있는 짐승이 아닌, 이제 막 성의 유희를 알게 된 계집 같다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는 노인이 두고 간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공기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밥덩이가 갈치찌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 안에 담은 뒤 나무받침대 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캄캄한 골목길에서 몸집이 작은 고양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생명을 잉태할 어미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할 것이었다. 전봇대 아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쓰레기더미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맞은편, 그가 살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을 하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동차 보닛을 열고 부품을 교체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육중한 부품들을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들어내고 또 갈아 끼웠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자동차는 매끄러운 엔진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붙어 있는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해한 뒤 정상적인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집 창가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기며 받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안주인이 자꾸만 하품을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노인이 두부조림을 반으로 잘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양념장이 간간하니 입맛이 돌 게다. 나는 노인이 얹어 준 두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두부에 배어 있던 물기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고 코다리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안주인이 열무를 집어 먹던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당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안주인의 오랜 습관이었다. 곧 식당 문을 밀고 남자 몇몇이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 중에 그가 있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안주인이 부엌에 들어가 국을 데우는 동안, 노인은 밑반찬을 가져다 날랐다. 나는 밥알을 씹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코다리찜을 한입에 넣고 씹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가시를 뱉어냈다. 그의 젓가락은 계란말이를 자주 집어 들었다. 그는 국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물을 삼켰다. 콧등에 땀이 맺히자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 숟가락질 서너 번 만에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가심을 하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이 맞은편 자리로 와 앉았다. -다 먹은 게냐? 노인이 물었다. 노인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안으려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올려다 줄게요. 그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 옆에 서자 그의 몸집은 더 커보였다. 노인은 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식당 문을 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내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다시 윗입술로 이어지는 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이 들어가 있고 아래턱이 짧아 그는 고집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목덜미가 내 얼굴에 닿을 듯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그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마실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포장하려고 꺼내 놓은 상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나는 상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고 머뭇거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방안을 휘휘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내 방이 마주보이는군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저기가, 그가 손을 쭉 뻗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요. 그가 천진하게 웃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창문 너머 그의 집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나무받침대를 흘끗 쳐다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전기주전자 쪽으로 몸을 끌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손을 짚은 곳까지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꼬리처럼 흐물흐물 따라왔다.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전기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주문 목록을 집어 들고 천천히 훑어봤다. 상품명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다가 그는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며 해당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상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고 나서야 그는 주문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상품들 중 딜도를 손에 쥐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딜도를 포장해 상자에 넣었다.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콘돔 두 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뒤 나는 ‘식스팩맨’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복근부터 허벅지까지 만들어놓은 것으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출시된 상품이었다. ‘식스팩맨’을 개발한 회사에서 상품을 광고할 때 내건 문구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었다. 광고 문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구시대의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레즈비언 커플을 위한 기구를 포장했다.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 여자도 남자의 성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 내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여자의 엉덩이를 본뜬 상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내 손놀림을 곁눈질해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포장했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섰다. 나는 페니스 모형을 말아 쥐었다. 불끈 튀어나온 핏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손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페니스를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는 포장한 엉덩이를 상자에 넣고, 이번에는 실리콘 가슴 모형을 끌어당겼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 한쪽 가슴이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옮겨 왔다. 순간, 아랫도리에 더운 피가 고여 들었다. 나는 실리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슴에 가져다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이 이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두 개의 다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 속을 파고든 그의 손이 몸의 굴곡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온기가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가슴과 배꼽 위에 차례로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치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의 손을 다급하게 막았다. -일 끝내고,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창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여과 없이 보일 터였다. 다리를 보게 되면 햇볕에 말라죽은 강장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한 듯, 그의 눈은 경멸로 가득해질 것이었다. -밤에 다시 와줄래요? 그가 내게서 몸을 뗐다. 그는 몸의 열기를 빼내듯, 숨을 길게 내뱉고 일어났다. 포장이 끝난 상자 몇 개를 한쪽에 쌓아 두고 그는 방에서 나갔다. 오후 일곱 시. 나는 딜도를 크기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DVD를 진열해 놓은 선반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먼지가 묻어났다. 물티슈를 뽑아 선반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내친김에 다른 진열장에 쌓여 있는 먼지도 닦았다. 출입문 손잡이 부분은 늘 손님들의 지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뽑아서 손잡이 부분을 닦았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운터 주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배기사가 상자를 수거해 가고 난 뒤에 방안을 쓸고 걸레질까지 했지만, 나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한 번 더 훔쳐 냈다. 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노인의 냄새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불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욕실 문을 열고 쓰윽 훑어봤다. 거울도, 세면대도, 바닥도 모두 말끔했다. 세면대 옆에 걸어둔 수건이 낡아 보였다. 나는 서랍장을 열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수건을 찾아 욕실에 새로 걸어 두었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파우더 퍼프를 두드려 이마와 콧등의 기름기를 지웠다. 턱을 살며시 들고 마스카라를 덧발랐다. 손거울 안에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제법 도도해 보였다. 나는 턱을 든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기도 하다가 키스를 기다리는 여자처럼 입술에 긴장을 풀었다. 거울을 끌어당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향해 처음 속살을 내보인 패류(貝類)처럼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급히 닫고 미리 띄워 놓은 인터넷 쇼핑몰 창을 들여다보며 주문량을 확인했다.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이었다. -문 닫고 내려가서 저녁 먹자. 일곱 시 사십 분. 평소대로라면 벌써 가게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손님이 올 거예요. 나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자 나는 가게에 불을 켜둔 채 방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걸까. 나는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끌어내렸다. 쿵,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충격에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을 기어갔다. 방바닥에 가로등 불빛이 창문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받침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팔 근육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굵고 튼튼했다. 창밖으로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었다. 공업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나무받침대를 내려왔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카운터로 나갔다. 모니터에 인터넷 쇼핑몰 창을 띄워 놓은 채, 나는 가끔씩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배송해야 할 상품목록을 정리하고, 제조사에서 보낸 신상품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을 기어 나무받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그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무 책상이 보였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다. 침대 모서리 밖으로 하얀 다리가 튀어나왔다. 창틀에 가려져 다리의 일부만 보였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하얀 다리 사이로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하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곧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력 넘치는 근육. 근육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관절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움직임. 실리콘도, 비닐 튜브도 아닌 살아 있는 다리. 만져 보고 싶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켰다. 꼿꼿이 서 있는 딜도와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엉덩이 위로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휠체어를 밀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나는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몸뚱이 앞에서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질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옆에는 실리콘 가슴이 누워 있었다. 나는 계속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잡지에서 종종 봤으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나는 잡지를 집어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면을 찾아 방바닥 한가운데에 잡지를 펼쳐 놓았다. 그 아래로 실리콘 가슴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다시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은밀한 부위, 그리고 여자의 다리를 본뜬 쿠션을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여자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카리브 해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자와 나는 백사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분홍빛 파도가 밀려와 여자와 내 몸을 적신다. 여자의 분절된 몸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라의 아름다운 육신이 부드럽게 출렁인다. 여자는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온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여자는 주문을 외우고 섬세한 손길로 내 다리를 쓰다듬는다. 숨을 불어넣은 ‘튜브 걸’처럼 가늘고 휘어진 두 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감각이 되살아난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두 다리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다리와 함께 내 몸도 붕 떠오른다. 내 몸은 분홍빛 바다 위를 떠다닌다. 따스한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투명한 몸에서 빛을 발하는 해파리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떠올라 해면을 부유한다. 해파리들이 헤엄쳐와 내 몸을 핥듯이 뒤덮는다. 목을 감싸고 가슴 위로 미끄러지고 내 몸 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태양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향해 나는 해파리들과 함께 헤엄친다. [당선소감] 연인이 세상 떠난 벼랑끝, 거짓말 같은 일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쏟아졌고, 나의 연인은 세상을 떠났다. 감당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나’도 잃고 ‘언어’도 잃은 시간이었다. 두려웠다. 벼랑 끝에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려가며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 쪽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언제나 명확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삶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그림.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 동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글’의 힘을, 나는 믿는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쓸 것이다. 제게 ‘숨’인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좌뇌를 물려주신 아빠, 우뇌를 물려주신 엄마,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 등단하면 찾아뵙겠다며 지금껏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조해룡 교수님, 곧 찾아뵐게요. 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 믿고 응원해 준 친구들, 특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식량과 각종 영양제를 배달해 준 재경양,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영원히 방부 보존되어 있을 당신, 그곳에서 늘 지켜봐 주세요. ■약력 ▲1980년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SBS 라디오 작가 [심사평] 인간의 깊은 내부세계 들여다보는 문제작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새롭게 배출하는 자리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은선, 차현지, 김가경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문단에 새로 내놓았고 이들은 이미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힘센’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본심을 맡으면서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열두 작품 정도. 생각보다 많은 예심 통과작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시간적으로도, 마음 씀씀이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미리 배송해 받은 예심 통과작을 읽고 그 가운데 몇 편을 추려 꺼내 놓은 후보작은, 한 사람은 두 편, 다른 한 사람은 네 편. 공교롭게도 한 사람의 네 편 가운데 다른 사람의 두 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두 편의 제목은 조수경의 ‘젤리피시’와 이완의 ‘아빠의 네트워크’. 두 작품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빠의 네트워크’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조명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 화자의 시각이나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가는 인물들 모두의 삶에 흐르는 생기나 활력은 이 소설의 작가가 성숙한 세계인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수경의 ‘젤리피시’는 어떻게 보면 더 독특하면서도 문제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시점을 취한 것은 이 작품을 쓴 사람이 세태와 시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유행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조수경의 ‘젤리피시’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문제작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에 만족한다. 조수경에게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이완은 이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힘내시길.
  • 北, 김정일 안치 금수산태양궁전 개관

    北, 김정일 안치 금수산태양궁전 개관

    북한은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주기를 맞아 그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개관식을 갖는 등 추모행사를 열었다. 특히 이 행사는 17년 전 김일성 주석 1주기 당시와 닮아 김정일의 ‘영생’을 강조해 3대 세습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그의 부인 리설주는 이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경희 당 비서 등 고위 간부들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올해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이름을 바꾸고 리모델링한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1주기를 맞은 지난 1995년 7월 8일에도 김 주석의 집무실이던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명명해 김 주석의 시신을 안치하는 등 성역화시켰다. 이날 개관식에 따라 영구 보존을 목적으로 방부처리된 김정일의 시신을 공개할 가능성도 커졌다. 한편 검은 상복 차림으로 이 행사에 참석한 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는 배가 많이 부른 모습이라 출산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사가 16일 중앙추모대회에 이어 이틀째 김 제1위원장 바로 옆에 등장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생소한 인물로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인물이 로켓의 발사 성공에 기여한 실무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文 “당선땐 전국서 타운홀미팅”

    文 “당선땐 전국서 타운홀미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 후보는 11일 투트랙으로 수도권을 돌며 표심 모으기에 힘을 쏟았다. 문 후보는 경기 지역 7곳을, 안 전 후보는 서울 소재 대학을 각각 1시간 단위로 돌며 강행군을 펼쳤다. 유권자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대선의 전체 판세를 좌우하기 때문에 이날 유세는 여느 때보다 강도가 높았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 유세는 곧 전쟁”이라며 “표가 많다 보니 가장 집중도를 높여야 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경기 고양시를 시작으로 의정부, 성남, 안양, 광명 등 경기 지역 주요 거점을 1시간 단위로 순회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문 후보는 격의 없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그는 “당선이 되면 전국을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과 타운홀 미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호프도 한잔 하겠다.”면서 “대통령이 된 후에는 청와대에만 고립돼 있지 않고 일을 마치면 남대문 시장, 인사동, 노량진 고시촌에 나가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표율 77%가 되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새 정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또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제가 말춤 추는 것을 보실 수 있다.”며 주로 젊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유세를 이었다. 안 전 후보는 고려대, 건국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대학가를 1시간 간격으로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후보는 “청년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가 청년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청년 실업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서 “투표만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저도 청년 문제 해결, 새 정치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면서 “부재자 투표가 14일까지다. 꼭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녁에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을 찾았다. 이날 한 대학 유세 현장에서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민주당 대선 유니폼인 노란색 점퍼를 입고 안 전 후보를 지원하러 나왔다가 접근을 거부당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안 전 후보 측은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점퍼가 조직 동원의 이미지를 줘 오히려 지원 유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 후보는 이날 오전 ‘강군복지 비전약속’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군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사병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대신 육군의 경우 12% 정도 되는 부사관 비율을 20%까지 늘리고 4%에 불과한 여군도 확충해 처우를 개선하겠다.”면서 “의무병의 할 일이 줄고 직업군인을 늘린다면 좋은 군 일자리 대책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군인 급식을 유기농 급식으로 개선 ▲예비군 훈련 기간 단축 ▲병사 학점이수제 도입 ▲계급별 생활관 설치 ▲침대형 병영생활관 확대 등도 약속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co.kr
  • 출구가 꽉 막혀 보이는 현실 해결책보다 문제점을 찾아라

    출구가 꽉 막혀 보이는 현실 해결책보다 문제점을 찾아라

    칙칙한 눈빛과 말쑥하지 않은 턱수염, 성긴 머리칼의 60대 동유럽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63)은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중 하나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대한 격렬한 비판 대열에,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 현장에 지첵이 있었다. 1980년대 정치적 민주주의를 찾았던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책 속에만 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열광의 대상이었으니, 뜨거운 피가 펄펄 끓고 흐르는 지젝은 훨씬 더 열광할 만한 대상일지 모르겠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지젝이 직접 말하고 쓴 두 권의 책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임박한 파국’(왼쪽·이택광 기획, 임민욱·홍세화 취재, 꾸리에 펴냄)과 ‘멈춰라, 생각하라’(오른쪽·주성우 옮김, 이현구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이다. ‘임박한 파국’은 지첵이 올 6월 방한해 인터뷰하고 경희대 등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멈춰라, 생각하라’는 읽다 보면 독해가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무렵에 대충 알아들을 만한 사례를 제시해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게 한다.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마구 외쳐대는 그가 놀랍기만 한데, 그는 조건을 붙인다. “공산주의가 1990년대에 붕괴된 체제를 가리킨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는 중국의 공산주의야말로 (본래 의미의 공산주의가 아니라)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자본가들의 체제라고 고발한다. 출구가 꽉 막힌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대해 지젝은 “우리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 몰락이 임박한 것”이며 “몰락하는 자본주의에 노스탤지어를 느끼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라.”고 주장한다. 1968년 유럽을 휩쓸었던 좌파운동의 이념과 선의의 주장조차도 30~40년이 지난 지금,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것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환경 파괴나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상당한 죄책감을 느낀다. 스타벅스는 “당신이 카프치노 한 잔을 마실 때마다 2센트가 소말리아 아동에게 전달되고, 열대우림 보존에 사용됩니다.”라고 광고한다는 것이다. 소비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조금만 덜 소비하면 죄책감을 해소할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산단계에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느끼는 안도감도 마찬가지다. 지젝은 스타벅스 커피, 공정무역거래,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대의 미신’에 불과하다고 한다. 착한 행위를 하며 살고 있다는 ‘미신의 신념구조’에 갇히는 것이다. 너무나 심각한 현재의 파괴적 행위를 심각하지 않게 느끼게 하는 미봉책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이제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 같은가? 지젝은 남녀 간의 사랑조차도 이제는 너무 쿨하게 진행된다고 우려한다. 사랑에 빠지면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사고, 과도한 금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공주와 키스를 해 사람으로 돌아온 개구리 왕자가 21세기에는 소녀와 뽀뽀해 그 소녀를 맥주병으로 만드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맥주다!!!’라는 선언이다. 유전공학을 두고 지젝은 ‘자연의 종말’이라고 한다. 흔히 과학자들은 ‘Life 2.0’으로 미화하지만, ‘은하철도999’의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경고다. 그는 월가점령시위 때 찬조연설에서 “오늘날 가능한 것이 무엇인가. 달에 여행을 가고, 유전공학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데, 부자들에게 세금을 약간 인상하자고 하면 불가능하다.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료를 인상하자고 하면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한다. 영생을 약속하면서 의료보장을 위해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세상은 무엇인가 잘못됐다. 우리는 더 높은 생활수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생활수준을 원한다. 우리는 공공의 것을 염려하는데, 자연에서 공동의 것, 지적 재산에서 사유화된 공동의 것에 대해 관심을 쏟는다.(중략) 갈망하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길 두려워하지 마라.”고 격려했다. 지젝은 모든 운동은 소수가 시작해서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소수는 전체 구성원의 10%이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에서 실패했지만, 공공의 것(commons)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지젝의 주장이 대학을 나오자마자 실직자가 되는 젊은이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면도날 같은 빛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3년부터 슬라보예 지젝은 경희대 석좌교수로 한국학생들과 만난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사]

    ■감사원 ◇승진△감사청구조사국장 김명운◇전보△재정·경제감사국장 김상윤△공공기관감사국장 강경원△감찰정보단장 박찬석△감사품질관리관 한정수△특별조사국장 손창동△행정지원실장 유병찬△재정·경제감사국 제3과장 이병식△공공기관감사국 제2과장 김용범△특별조사국 조사4과장 백맹기△감찰담당관 엄광섭△심사2담당관 황광돈△사회복지감사국 제1과장 마광열△특별조사국 조사3과장 조승현◇신규보임△감사청구조사국 대전사무소장 정진석△감찰정보단 제1과장 박준홍△결산담당관 김성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실장△기획조정 조규상△조사연구 김종성◇국장△방송심의 최옥술△통신심의 박행석△권익보호 박순화◇팀장△감사 정호근△방송심의기획 김형성△유료방송심의1 이대열△유료방송심의2 장경식△방송광고심의 양귀미△통신심의기획 한명호△권리침해정보심의 송명훈△뉴미디어정보심의 이원모△정보건전화지원 이희영△명예훼손분쟁조정 성호선△민원상담 김철환◇전문위원△방송심의국 김인곤△통신심의국 김양하△조사연구실 함상규 박우귀◇연구위원△조사연구실 김희철 염상민 이종민 이선영 이현희◇사무소장△광주조기진△대구 이종대△대전 이은경△강원 강희영 ■교육과학기술부 △체육예술교육과장 송근현△주명현 ■문화체육관광부 △2013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조직위원회 문화행사1부장 김승규△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 예방치유과장 최태경 ■환경부 △상하수도정책관 이재현△한강유역환경청장 김진석△영산강〃 정회석 ■조달청 ◇승진△품질관리단장 이상윤△대변인 이계학△국유재산기획조사과장 이미숙△경영지원팀장 임근자△쇼핑몰단가계약〃 배완△원자재비축과장 김주생△부산청 장비구매팀장 이석규△인천청 〃 유재봉△감사담당관실 임중식△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이영생△물품관리과 최인기△자재장비과 김기분△시설기획과 홍기수△기술심사팀 문영철◇전보△청장실 비서관 류재일<담당관>△행정관리 고임세△규제개혁법무 박영태<과장>△정보기획 이현호△국유재산관리 유문형△원자재총괄 김종환△국제협력 이형식△정보기술용역 김응걸△쇼핑몰기획 김일수△시설총괄 설동완△예산사업관리 김자연<팀장>△기술심사 차원섭<품질관리단>△품질총괄과장 김경만<서울청>△경영관리과장 김영국△시설〃 문병모<지방청장>△광주 권수혁△충북 정진만△전북 김대수 ■우정사업본부 ◇우체국장△부산금정 김용모△익산 김승만 ■축산물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원 △전략기획실장 조재진△경영지원처장(직대) 김영수△심사1처장 박민서△심사2처장 김병훈△중부지원장 배도권 ■국립산림과학원 <과장>△산림경제경영 전현선△산림병해충연구 정영진△산림생명공학 문홍규△특용자원연구 김세현<연구소장>△남부산림자원 박용배△난대·아열대산림 박정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제협력실장 김형하◇센터장△바이오임상표준 김숙경△무기분석표준 임용현△유기분석표준 김병주△신기능재료표준 추민철△에너지소재표준 남승훈△진공기술 윤주영△나노측정 조현모△안전측정 윤동진△첨단측정장비 안상정△양자측정 하동한△나노바이오융합 한상윤△뇌인지측정 김기웅△의료융합측정표준 임현균△표준보급 박종선△중소기업협력 김윤배△기술사업화 강우현△국가참조표준 채균식 ■보훈공단 △관리이사 정하태 ■한국환경공단 △대기관리처장 정석현△수질오염방제센터장 김종◇임용△기후대기본부장 안연순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 정종호 ■연세대 △경영대학장(경영전문대학원장 겸임) 박영렬 ■신세계 경영전략실 ◇승진 <상무>△홍보팀 한정일△S.com총괄 영업담당 김예철<상무보>△신사업T/F팀장 조두일 ■신세계백화점 ◇승진 <부사장보>△상품본부장 손영식<상무>△의정부점장 김재억△인사담당 김정식△인천점장 손기언△광주점장 유신열△마산점장 이종묵△기획담당 정건희<상무보>△영등포점장 곽웅일△재무담당 오용진△패션연구소장 최민도△충청점장 최주경△패션담당 손문국◇업무위촉변경△본점장 조창현 ■이마트 ◇승진 <부사장>△고객서비스본부장 이갑수<부사장보>△비식품본부장 이영수<상무>△시스템담당 김기곤△마케팅담당 김형석△패션레포츠담당 이연주<상무보>△HMR담당 전병구△생활용품담당 한용식△트레이더스담당 노재악△신선식품담당 민영선◇업무위촉변경△식품본부장 최성재△기획담당 남윤우△CSR담당 이규원△가공식품담당 이태경△재무담당 박성규△점포지원팀장 제용현 ■신세계인터내셔날 ◇승진 <부사장보>△지원담당 양춘만<상무>△해외3사업부장 강효문△해외2사업부장 장철원△GAP사업부장 최영익<상무보>△PL사업부장 서원식 ■신세계푸드 ◇승진 <상무>△외식담당 구태서◇업무위촉변경△지원담당 황진하 ■신세계건설 ◇승진 <부사장보>△지원담당 박근용<상무>△공사담당 문길남<상무보>△기술담당 배진모 ■신세계I&C ◇승진 <상무보>△시스템개발사업부장 전창우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업무위촉변경△지원담당 정철욱 ■조선호텔 ◇승진 <상무>△지원담당 김진영 ■신세계사이먼 ◇승진 <상무보>△지원담당 정의철 ■신세계SVN ◇승진 <상무보>△영업1담당 방종관 ■에브리데이리테일 ◇승진 <상무>△신사업담당 오재경<상무보>△매입담당 최영두◇업무위촉변경△판매담당 성열기 ■동양시멘트 ◇선임△대표이사 전무 김종오◇승진△해운사업본부 대표이사 상무 이상화 ■㈜동양 ◇승진△이사대우 이완형 황정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윤문균 김종도 김환구 한상익 김지원△전무 한영석 김정생 김봉남 윤경구 주영걸 김종민 김문현 김재훈△상무 강영석 이윤식 이성건 이상균 이종욱 김태현 윤종양 조종필 최규명 김종석 김경열 이태영 김명조 조만규 김영환 이상기 공기영 김장천 조성우 정봉기 양동빈△상무보 박승용 박학준 배영만 박영규 윤기영 정일진 김규태 이찬호 안광헌 김지헌 박정락 이호형 김근안 손득균 강성우 김헌성 서덕원 박인권 ■현대미포조선 △전무 이태동 강철수 임상흔△상무 안수복 정동희 문우진 한영삼 서호원 유희철 박태욱△상무보 정성두 홍성구 ■현대삼호중공업 △전무 이택봉△상무 이성규 주종흥△상무보 은희석 유영호 신용완 ■현대오일뱅크 △부사장 문종박△전무 강달호△상무 주영민 정희진 한환규 박주윤 ■코오롱그룹 ◇대표이사 선임·승진△코오롱워터앤에너지 이두원◇승진 <전무>△코오롱 김승일△코오롱인더스트리 안태환 홍성안△코오롱글로벌 김채식<상무>△코오롱 임성만△코오롱인더스트리 최영백 윤재은△코오롱글로벌 한인호△코오롱글로텍 강신혁 노춘식△코오롱패션머티리얼 조충환△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달근<상무보>△코오롱인더스트리 한경애△코오롱글로벌 정용훈△코오롱글로텍 최지철 안정선△코오롱패션머티리얼 김영세△코오롱플라스틱 박상봉◇전보 <상무>△코오롱 김영범△코오롱인더스트리 박성미△코오롱플라스틱 장희구△코오롱베니트 손선익<상무보>△코오롱글로벌 이기원 ■한솔그룹 △한솔PNS 대표이사 서재우◇승진 <부사장>△한솔제지 경영지원본부장 이천현<상무>△한솔제지 대전공장장 이창훈△〃 구매담당 이계성△한솔케미칼 울산공장장 이정우△한솔CSN 영업2담당 하동호△한솔EME 사업관리담당 조희준△신텍 구매담당 선관주△경영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장 김진만 ■한진해운 ◇승진△전무 송영규△상무 김종훈 박진기 심대식 이석현 조재희 정국위 정윤한 정재순△상무보 권기현 김광대 김명성 김종백 박정삼 이국종 이성호 조명덕 ■CJ E&M △대표이사 강석희 ■CJ게임즈 △대표이사 김홍규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8)대구 종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8)대구 종로

    조선 시대 도성에는 종루가 있었다. 종루에서 나오는 종소리로 도성의 문을 여닫았다. 종소리는 시계가 보급되기 전, 사람들이 시간을 인식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종소리가 들리는 만큼을 도성의 중심으로 여겼다. 서울의 중심에 종루가 있었다면 대구에도 읍성 남쪽에 종루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길은 서울이든 대구든 종로로 불린다.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종루는 소리를 잃었지만 종로는 도시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종로는 중심 통로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다. 이 사업을 계기로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대구에 진출했고 이들은 대구역 인근 북성로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일제는 자국민을 위해 신작로를 뚫었다. 경상감영 앞을 동서로 지나는 거리를 만들어 여기에 관청과 금융기관 등을 속속 입주시키며 종로의 세를 조금씩 빼앗아 갔다. 대신 종로에는 요정들이 들어와 대구의 밤 문화를 지배했다. 종로와 수동, 상서동 일대만 요정이 50개를 넘었고 수백명의 기생들이 드나들어 1960년대 후반까지도 불야성을 이뤘다. 종로는 화교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1905년부터 화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방 직후 화교들의 경제활동이 크게 번창하면서 종로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여 특색 있는 건물을 지었다. 당시 대구 화교의 지도자였던 모문금, 연보주 같은 이들의 역할이 컸다. 화교협회, 화교 소학교와 중학교, 화교성당, 화교교회, 그리고 1920년대에 문을 연 지역 최고의 청요릿집 군방각 같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중국인 기술자들이 평양에서 구워온 붉은 벽돌과 금강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지었다고 한다. 1950년 5000명이 넘기도 했던 대구 화교들은 이후 정부의 외국인등록제, 외국인 토지소유금지법 등 여러 규제로 타이완, 미국 등지로 터전을 옮겨 지금은 950여명에 그치고 있다. 화교들에 이어 종로 상권을 장악한 것은 가구상들이었다. 목공소와 농방 등 소규모 점포 5~6개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가구거리의 면모는 1950년대 후반 ‘가구사’란 간판들이 잇따라 내걸리면서 일반인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꾸준히 가구점이 늘어 1970년대 초에는 만경관 네거리~염매시장 입구거리에 50개가 넘는 가구점, 공예사가 있었다. 가구상들이 번성하자 철물점과 금고상 등 관련 업종까지 함께 모여들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유통망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형 가구기업들이 밀고 내려오자 가구상들도 결국 종로의 주인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빈 건물이 방치되다 쇠락의 길로 내 몰렸다. 더구나 인근 동성로에 인파가 몰리고 대중교통전용지구사업으로 차량마저 접근하기 힘들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에 관할 구청인 중구청이 5년전 도심재창조란 주제로 ‘걷고 싶은 거리, 테마가 있는 거리’사업을 펼쳤다. 박동신 중구청 전략경영실장은 “종로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데다 쉼터나 벤치도 조성되지 않아 사람보다는 차가 우선인 거리였다. 또 전통거리로서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쌈지공원과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건물 곳곳에 종로의 역사를 소개하는 벽화를 그렸다. 거리 양쪽에는 청사초롱을 매달아 전통미를 살렸다. 종로 인근이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실제 배경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설 속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주인공 길남이와 길남이 엄마를 형상화한 입체 조형물 2개를 설치했다. 마당 깊은 집 내용과 1950년대 대구의 모습을 담아 시대적 문화를 엿보는 스토리공간인 스토리보드를 설치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종로에는 차, 다기, 천연염색, 골동품 등을 취급하는 40여개의 점포가 성업 중이다. 곳곳에 작고 실험적인 갤러리나 공방 등도 함께해 전통거리라는 명성을 되찾고 있다. 박 실장은 “차와 다기 전문점에 이어 천연염색, 골동품, 전통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데다 이를 전시하는 갤러리들이 최근 생겨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종로의 모습이다.”며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염매시장 떡집들도 종로로 옮겨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동아쇼핑 등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종로 인근에는 원룸촌도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 또 일부 젊은 층들도 동성로에서 종로로 발길을 돌리면서 이들을 겨냥한 식당들도 들어서고 있다. 이 곳에서 식당을 하는 한 주인은 “젊은 층과 주위의 유통업·금융업 등에 종사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저녁 늦게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식당들이 많다.”고 밝혔다. 최병헌 종로상가번영회 회장은 “종로가 먹거리 골목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종로 발전을 위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와 친절로 정성을 다할 것이다. 회원 간의 단합과 정보교류로 삶의 터전인 종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의 문화도 여전히 살아있다. 화교학교와 영생덕 만두집, 복해반점, 경희반점 등은 아직도 남아 과거 이 일대를 장악했던 화교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화교협회가 종로에서 화교문화축제를 7년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종로는 앞으로가 더 주목된다. 종로 일대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국토해양부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데다 지속적으로 종로를 특색 있는 전통거리로 만들어 가겠다는 중구청의 각오 덕분이다. 매월 전통차, 천연염색, 한복 등 테마별로 축제를 열어 대구의 멋과 역사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대구를 대표하는 거리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때마침 이곳 상인들도 전통문화거리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박 실장은 “아름다운 종로로 꾸미는 운동을 펼치겠다. 상가 앞 화분 내놓기 운동 등도 실천하고 자체 축제도 성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29회에는 울산 중구 외솔큰길을 소개합니다.
  • 군대 참 좋아졌네

    군대 참 좋아졌네

    서울 용산 국방부 근무지원단 신축 병영생활관에서 13일 병사들이 개인용 침대와 사물함이 갖춰진 내무반에서 TV시청과 독서 등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군산 내항 진포해양테마공원

    전북 군산 내항의 동쪽 끝에 위치한 진포 해양테마공원은 지역의 역사적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8월, 선박 500여척을 앞세워 쳐들어오던 왜구를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으로 화포를 사용해 격퇴한 곳이 진포, 바로 군산 내항 부근의 앞바다다. 이 전투가 진포대첩이다. 진포는 금강 하구 지역을 말한다. 왜구들은 고려의 주요 쌀 저장소 가운데 하나였던 군산의 진성창을 노리고 쳐들어 왔다. 배후지역인 전라도의 쌀을 모아 저장하고, 개경으로 수송하는 거점이어서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고려 말 ‘화약의 아버지’ 최무선 장군이 화포로 이곳 앞바다에서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 바로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해망로 동쪽 편, 금강이 서해와 만나는 금강 하구에 위치했다. 공원에 들어서면 4080t급 위봉함을 비롯해 LVTP7 해병의 수륙양용 상륙장갑차, 자주포, 육군의 전차, T41B 훈련기, F5A 전투기, 해양경찰의 250t급 경비정 마니산 273함 등 퇴역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위봉함(지하 2층, 지상 4층) 내부에는 최무선과 화약, 해양전 등을 주제로 하는 전시관들이 군산의 역사와 이 지역 특징을 한눈에 보여 준다. 세계 유명 해전과 함정의 역사, 병영생활 및 병영용품을 전시·재현하는 공간도 있어 역사 교육의 장이라고 할 만하다. 위봉함 가판에 오르면 금강 하구둑을 배경으로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위봉함은 전차와 트럭 30대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다. 1959년 우리 해군이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아 상륙 및 수송작전에 사용했다. 1965년 백구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 내전에 참전했고 사관생도 및 해군들의 훈련·실습 등에 사용하다 2006년 퇴역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다 좋아질 거라 말하지 마요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워요

    다 좋아질 거라 말하지 마요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워요

    “난 절박해서 말하는 거거든. 너희들은 소중하지 않다고. 그런데 애들은 그냥 웃고 말아. 난 답답해서 그러는 건데.” 머금었던 맥주 한 모금을 뿜을 뻔했습니다. 이상한 선생님 아닙니다. 실력으로 꽤 인기 높은 여고 수학 선생님의 푸념입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곧장 전문직 여성이 될 것이라 ‘착각’하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 했습니다. 멘토, 힐링, 참 인기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소중한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진정한 너만의 무언가를 찾도록 해라, 참 화려한 말들의 성찬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공허하게 여겨질 때면 몇 년 전에 들었던 ‘너희는 소중하지 않아.’라던 저 수학 선생님의 일갈이 떠오릅니다. 따스한 위로의 말을 시니컬하게 비웃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수평적 대화를 내세우는 멘토나 힐링을 볼 때면 좀 뜬금없어 보이지만 위르겐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이 떠오릅니다. 하버마스는 근대 이성의 수호성인답게 의사소통이론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대화해서 잘 풀자는 거지요. 비판도 거셉니다. “대화? 좋긴 좋은데 왜 의사진행봉은 당신이 잡고 있는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직원들 고충을 직접 듣겠다고 할 때 정말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사단장님이 힘드냐고 묻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대답하는 병사는 바보입니다. 서로가 너무 잘 아는 이런 게임 같은 상황이 소통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까닭은 겉으로만 동등한 척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선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버마스는 근대 이성을 전 세계에 퍼뜨린 사람이 유럽인이니 어떻게 해서든 고쳐 써야 한다고 선언한 사람입니다. 의사소통이론을 두고 순진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서구 문명에 대한 하버마스의 절박한 책임감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힐링도 그렇습니다. 멘토들이 내세우는 말은 대부분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입니다. 그 선의와 진정성은 존중받아야겠지요. 다만 형식적인 동등성에 그치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송태욱 옮김, 사계절 펴냄) 출간을 계기로 조금 다른 방향에서 힐링을 말하는 책을 꼽아 봤습니다. 빅토르 프랑클의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박현용 옮김, 책세상 펴냄), 윌리엄 어빈의 ‘직언’(박여진 옮김, 토네이도 펴냄)까지 모두 3권입니다. 이들은 따뜻한 낙관보다 차가운 비관 쪽에 기울어 있습니다. ‘소중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외치기보다 ‘우리는 소중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각자의 색깔도 제각각이어서 매력적입니다. 강상중은 문학에서, 프랑클은 심리학에서, 어빈은 철학에서 답을 찾습니다. 구체적으로 강상중은 나쓰메 소세키, 프랑클은 자신이 정립한 심리학 로고테라피, 어빈은 로마시대 스토아철학을 거론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한 꼭지씩만 뽑아 볼까요. 재일교포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3·11 대지진으로 2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고 오랫동안 신경증을 앓던 아들을 마침내 먼저 떠나보낸 강상중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자살에 실패한 사람 등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대의 병리로 취급하지 않고, 자기 실현에 실패한 평범한 무리로 보지 않고,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라며 잘라 버리지 않고,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자기다움의 탐구로 내모는 현실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달아날 수 있었으나 부모를 버릴 수 없어 오스트리아에 남았고, 사랑을 버릴 수 없어 나치 당국의 허락 아래 결혼하는 마지막 유대인 커플이 됐고, 결국 여동생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을 수용소에서 잃어버렸으나 그 경험을 로고테라피로 승화시킨 프랑클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리 치료 속의 심리주의와 싸우면서 아픈 것이 절대로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나는 요즈음 이것을 로고이론이라 부르곤 한다. 로고테라피는 모든 것을 병리학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주장과 맞서 싸울 것을 선포한다.” 둘에 비하면 어빈은 굉장히 소박합니다. 행복하고 싶어 한때 선불교에 심취했으나 “너무나 분석적”인 성격 탓에 스토아철학으로 옮겨 갑니다. 대표적인 스토아철학자는 세네카지요. 아시다시피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최고의 명예를 누리다 광폭해진 네로에게 내쳐져 자진하라는 명령을 받고 손목을 긋는데 그게 안 되니 발목 등 다른 곳을 긋고, 그래도 안 되니 증기탕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입니다. 울부짖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온한 얼굴로 “스토이즘을 잊지 말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런 세네카는 자신의 목표에 대해 “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악덕을 줄여 나가고 실수를 책망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발전하는 것”이라 해 뒀습니다. 이런 접근들이 와 닿는 이유는 이들이 섣불리, 그러니까 지식, 지위, 경험을 발판으로 미래를, 희망을, 내일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의 찬란한 삶보다는 오늘 하루하루를 잘 버텨 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것이 삶의 참된 의미라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반짝거리는 힐링의 말씀들에 비해 훨씬 더 민주적이고 그 덕에 한층 더 윤리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들은 한결같이 종교보다 인간 이성을 앞세우는데도 함부로 행복과 영생을 얘기하는 종교인들보다 훨씬 더 짙은 종교 냄새를 풍깁니다. “이성과 영성은 양립 가능하다.”는 강상중, “삶의 최종적인 의미는 우리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프랑클, “(스토이즘은) 내세관이 없을 뿐 종교와 다를 바 없다.”던 어빈의 얼굴은 하루하루 버텨 내는 우리의 얼굴과 닮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쯤이면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동등해졌다고 해도 될까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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