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생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청소년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사과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유럽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흡연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46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82) 제철·화학에 이어 태양광·바이오로 활로찾는 OCI 경영진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82) 제철·화학에 이어 태양광·바이오로 활로찾는 OCI 경영진

    백우석 회장, 샐러리맨으로 44년만에 회장에 올라김택중 사장, 최고경영자로 ‘3인대표체제’의 한 축곽기훈 사장, 35세에 중국 총괄 사장에 올라OCI는 지난 3월 백우석(67) 부회장을 회장으로, 이우현(51) OCI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수영 전 회장이 2017년 갑작스럽게 작고한 뒤 비상경영체제를 꾸려오다 오너인 이 부회장을 당분간 전문경영인 출신인 백 회장의 밑에 두는 ‘안전 경영’을 선택했다. 백 회장은 1975년 OCI의 전신인 동양화학공업에 말단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44년만에 조직의 최고 타이틀인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회림 창업주, 이수영 회장에 이어 OCI의 3대 회장이 됐다. 백 회장은 경영기획 본부장을 역임하며 미국 와이오밍 소다회 공장 인수, 콜럼비안 케미칼 인수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OCI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OCI의 건설부문 자회사인 이테크건설의 CEO를 맡아 성공적인 기업 공개를 이끌고 회사 매출을 5배 이상 성장시켰다. 2005년 OCI CEO 및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폴리실리콘 사업을 OCI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해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역량을 발휘했다. 2013년 부회장이 된 뒤 6년만에 샐러리맨 최고봉에 올랐다. 경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김택중(61) OCI 사장은 3월부터 최고경영책임자 CEO로 선임돼 OCI의 경영 및 사업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김 사장은 배재고와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중앙연구소장과 태양광사업의 핵심소재 폴리실리콘을 담당하는 RE사업본부장을 거치면서 신사업을 육성했다. 2017년 말레이시아의 폴리실리콘 사업장인 OCIMSB의 사장으로 임명돼 조기에 공장을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안정화시키는데 기여했다. 김청호(50) OCI 솔라파워 사장은 이우현 부회장과 같은 홍대부고 동문이다. 건국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입사해 OCI 엔터프라이즈 CFO를 거치면서 2017년부터 OCI 솔라 파워 사장에 임명됐다. 텍사스 주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500㎿ 이상 규모의 태양광발전소인 Alamo 프로젝트와 여러 태양광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며 북미 태양광발전사업을 총괄하고 있다.허관(54) OCIMSB 사장은 전주 영생고와 전북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군산공장 RE증설담당 임원과 공장장으로 근무하며 원가 절감 프로젝트인 FCR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OCI의 폴리실리콘 생산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정권(64) DCRE사장은 신흥고와 광운대 전기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 동양화학(현 OCI) 익산공장 인사 상무, 군산공장 부공장장, 포항공장장, OCI 그룹 관리본부장을 지내는 등 현장전문가다. 2017년부터 47만평에 달하는 인천 용현∙학익지구의 도시개발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DCRE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곽기훈(36) OCI 차이나 사장은 중국 난카이대 부속고교와 난카이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중국통’이다. 중국사업전략팀장을 거쳐 OCI 차이나 부총경리로 임명됐다가 지난해 파격적으로 35세에 총경리로 승진했다. 다소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알려진 OCI에서 의외의 인사로 화제가 됐다. 중국 내 OCI 투자 및 사업전략을 실행하는 OCI 차이나와 중국 태양광발전사업을 담당하는 OCI 솔라 차이나를 이끌고 있다.허기무(51) OCI 파워 사장은 대일외고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먼트 석사, 한양대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취득한 ‘인텔리’다. 2011년 OCI RE사업본부 상무로 입사해 미국 선 액션 트랙커 사장을 맡아 북미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함께 진두지휘했다. 에너지솔루션사업부 본부장에 이어 국내 태양광발전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OCI 파워 사장을 맡고 있다. 김재신(67) OCI SE 사장은 배재고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경영기획팀 이사, 포항공장 공장장, 케미컬 사업본부장을 역임했으며, 2013년 OCI 사업총괄 사장(COO)으로 사업부와 영업부를 총지휘했다. 현재 OCI의 새만금 열병합발전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OCI SE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권세기(58) OCI 스페셜티 사장은 배재고와 중앙대 화학과 출신이다. 2010년부터 사업개발부 임원, 군산공장 부공장장을 역임했다. OCI가 중국 마안산강철회사와 합작 설립한 Masteel OCI 동사장을 맡다가 태양광 산업소재 및 부품을 생산하는 자회사인 OCI 스페셜티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신용인(57) OCI 페로 사장은 마산 중앙고와 서울시립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부터 타르 & BTX 사업부와 PU·FS 사업부 등 케미칼 사업부 임원을 지냈다. 중국 콜타르정제공장 해외 계열사인 산동 OCI 법인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부터 국내 계열사인 OCI 페로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김기홍(55) OCI정보통신 사장은 재현고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케미칼 사업부, RE사업부, 태양광발전사업부, 사업개발본부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지난해부터 OCI의 IT 전문기업인 OCI정보통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금요칼럼] 이런 전시 어때요/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이런 전시 어때요/황두진 건축가

    전시란 작가 입장에서는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다. 반대로 관객에게는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호소하는 작가를 발굴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기회일 것이다. 한때는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작가 정신의 발로라고 칭송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작업은 밀실에서 하더라도 가끔 광장에 나와 자기를 남들 앞에 드러내고 평가받아야 한다. 요즘 한국 사회는 가히 전시의 천국이다. 민간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개인전, 단체전부터 시작해서 공공기관이 개입된 수많은 정기적 전시에 각종 부대 행사까지 포함하면 갈 데도 많고 볼 것도 정말 많아졌다.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 큐레이터 혹은 전시 디자이너 전담 조직이 생긴 지도 한참 되었다. 그 결과 전시물은 물론이고 전시 자체의 수준도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즐겁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풍요로움 속에서 배부른 투정을 하나 하자면, 좀더 호흡이 긴 전시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매년 열리는 전시는 물론이고 격년으로 열리는 비엔날레,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 등도 숨가쁘다. 새로운 경향이나 세상을 선도하는 작가를 즉시 보여 주는 일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 호흡이 너무 가쁘면 과연 그 새로움과 예리함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궁금해진다. 사람은 정말 몇 년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가.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다. 과감하게 100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센테니얼(centennial) 정도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 전시의 주기가 이 정도가 되면 전시에 관한 기존의 개념은 거의 다 무너질 것이다. 우선 누구라도 이 전시에 두 번 나갈 확률은 거의 없다. 작가는 물론 기획자, 관객들에게도 이 전시는 인생에 단 한 번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전시를 계기로 사람들은 평소에 못 해 보던 정말 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0년 후를 내다보는 전시를 한다는데 짧은 주기로 벌어지는 각종 유행이나 트렌드, 고만고만하게 튀는 생각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물론 100년도 찰나라며 시간이 주는 중압감을 호기 있게 회피하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헤아리기 어려운 큰 틀 속에서 애써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할 것이다. 즉 이것은 문명적 사고를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앞을 보고 사는 것일까.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를 짧은 시간 속에서 파악하고 분석하고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 분야인 건축만 해도 세상이 인정하는 건물의 수명은 이제 몇 십 년이 고작인 듯하다. 건물이 물리적으로 그 이상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건축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정말 오래 가는 건물을 원하고 그것에 마땅히 투자할 생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리적 수명보다 사회적 수명이 훨씬 짧은 건물은 결국 노력과 자원의 헛된 낭비에 불과하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이젠 좀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영생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자기의 다음, 혹은 다음다음 세대 정도만이라도 염두에 둔 생각이 세상에 좀더 많아졌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 인위적인 장치를 생각해 본 것이 바로 10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시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그런 전시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1919년, 어떤 세상이었는지 우리는 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살육전인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한반도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제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불과 수십 년 만에 더 큰 전쟁이 온 세상을 휩쓸었다. 그때 사람들이 100년 후의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그런 판을 여기 한반도에서 깔아 보는 것은 어떤가.
  •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안동 권씨를 명문가로 발전시킨 권벌의 닭실마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마을들을 꼽았는데, 경주 양동, 안동 하회와 내앞, 그리고 봉화의 닭실이다. 특히 닭실(유곡)마을은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마을을 감싸는 앞뒤 산이 닭 모양을 하고, 닭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우선 조건은 그 집이 서 있는 위치, 즉 입지이다. 똑같은 크기와 구조의 아파트가 입지에 따라 수십 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학군, 상권, 교통 등 인위적인 조건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과거에는 산과 강,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조건이 중요했다. 명당은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달걀을 품어 금병아리를 부화한다는 믿음대로, 닭실은 이곳에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로 발전시켰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권벌(1478~1548)에서 시작한다. 그가 지은 종가가 실질적인 권씨 가문의 시작이었으며, 대를 이어 후손들의 주거지가 이 마을을 이루었다. 터만 좋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 효를 실천하고(봉제사), 손님들을 환대해(접빈객) 사회적 관계망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닦아 뛰어난 인물이 돼야 한다.권벌은 종가 옆에 충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고, 청암정을 지어 벗들과 교류하는 정원으로 삼았다. 그의 아들인 권동보는 마을 어귀에 큰 규모의 석천정사를 지어 학문 연마와 교육의 장소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근에 부친을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해 가문의 학문과 효를 향촌 공동체의 정규 시설로 승화시켰다. 또한 마을의 뒷산, 재궁골에 충재와 그 선대조상을 모신 선산을 마련하고, 묘 아래에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종가와 별당, 선산과 재실, 정사와 서원까지, 명문가와 명문마을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한 것이다. 닭실은 권벌이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한, 부자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마을이다. 닭실마을의 원래 입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이다. 절경을 이루는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환상적인 장소다. 계곡 입구 너럭바위에 한자 초서로 ‘청하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다. ‘청하’란 해지기 직전 반짝 나타나는 맑고 찬란한 푸른 노을을 뜻한다. ‘동천’이란 신선들이 영생을 사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순간의 찬란함을 영원히 지속하는 곳.” 청하동천의 깊은 뜻이기도 하고, 닭실마을의 꿈같은 바람이기도 하다.●사대부의 인격 드러내는 양용삼칸 ‘충재’·팔작지붕 ‘청암정’ 사대부의 ‘사’는 선비이고 ‘대부’는 벼슬아치다. 사로서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대부로서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쳐 나라를 이롭게 한다. 성리학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 진정한 사대부다. 충재 권벌은 영의정에 추증될 정도의 최고위 관료였고, 진정한 선비로서도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연산군의 폭정기간에 무오, 갑자사화로 이미 많은 선비들이 처참하게 피해를 입었다. 사화란 ‘사림지화’, 즉 선비 무리에 대한 박해를 의미한다. 권벌이 30세로 관직에 오른 때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의 이듬해였다. 조광조 등 급진사림파와 반정의 주인공인 훈구파의 대립이 극심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온건사림인 권벌은 두 세력의 중재를 꾀했으나, 42세 때 기묘사화로 결국 파직을 당한다. 낙향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닭실마을이다. 충재와 청암정을 지은 것도 이때, 14년의 은거생활 중이었다. 1533년 56세에 복직했다가 68세에는 을사사화 때 직언으로 다시 파직당한다.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이른바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평안도 삭주로 귀양 갔다가 유배지에서 71세 나이로 운명했다. 이 사건은 을사사화의 승자인 집권 소윤세력이 나머지 잠재적 정적들까지 말살하려 조작한 역모사건이었다. 권벌뿐 아니라 이언적, 노수신, 유희춘 등 20여명의 큰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이들은 후대에 국가적 추앙을 받게 된다. 서재로 지은 충재는 권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물이다. 2칸 온돌과 1칸 마루의 총 3칸, 지붕도 가장 간단한 맞배지붕이다. 선비들은 자신의 거처가 이른바 ‘양용삼칸’, 즉 부엌-방-마루의 3칸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과욕이요, 낭비다. ‘비어 있는 집’이라는 이름답게 장식도 일절 없고, 오로지 극히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권벌의 호는 충재요, 자는 중허다. 모두 ‘비어 있다’는 뜻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비워 내야 성리학의 도를 깨우칠 수 있고, 국가적 공익을 담을 수 있다. 권벌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비어 있는 충재를 지었다. 아무 기교도 없는 것 같지만 문짝 하나의 모양, 부재 하나의 위치도 의미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소의 물질로 만든, 그러나 선비정신으로 가득한 집이다. 반면 바로 뒤의 청암정은 크기나 형태가 대조적이다. 큰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10칸의 丁자형 건물을 얹은 모습이다. 추녀선을 활짝 펼친 팔작지붕에 단청까지 칠한 화려한 정자다. 거북바위 주위로 둥그렇게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마치 연못 안의 섬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 된다. 물 가운데 있는 정자는 ‘사’()라 하여 매우 귀한 정원 건축으로 친다. 보통의 정자는 멋진 바위를 즐기도록 건너편에 짓는데, 이처럼 바위 위에 올라탄 건물은 극히 드물다. 충재는 그토록 소박하게 만들었는데, 청암정은 왜 이런 호사를 부렸을까? 아마도 충재가 선비(사)의 청빈정신을 드러내는 집이라면, 청암정은 관료(대부)의 호연지기를 발하는 집일 것이다. 사와 대부가 사대부의 양면이듯이, 충재와 청암정은 권벌이 가진 두 방향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집이다.●선비의 피서법… “고요하니 시원하고 비워 두니 서늘하다” 공자는 군자의 조건과 즐거움을 논어 첫머리에서 밝혔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알고, 먼 곳의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리고 남이 나를 무시해도 화내지 않는 이가 군자라고 했다. 맹자는 더 나아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더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교우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정원를 가꾸며, 후학을 기르기 위해 정사와 서원을 세우는 수고는 모두 군자가 되기 위한 투자다. 선비의 궁극적인 롤 모델은 바로 군자이며, 산과 계곡을 거닐며 심신을 수련해 군자가 되려고 평생 노력한다. 이는 곧 선비들의 이상적인 은거생활이었다. 닭실의 충재와 청암정, 석천정사와 삼계서원은 은거생활을 위한 필요충분 시설이었다. 또한 선비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타의 모범이 되도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한여름에도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머리에는 갓을 써야 했다. 아무리 정신적인 존재라지만 푹푹 찌는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정약용은 ‘소서팔사’에서 8가지 대표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을 소개했다.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소나무 아래서 활쏘기/빈 누각에서 투호놀이/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비 오는 날 한시 짓기/달 밝은 밤에 탁족하기.’ 다산이 제시한 피서법은 무언가에 몰입해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몰입을 위해서는 우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대자리와 누각 같은 인공 환경, 숲과 계곡 같은 자연환경이 조건이다. 연못의 정원, 누각과 정자와 같은 건물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었다. 권벌은 더운 여름날, 청암정에 올라 시를 짓고, 주변 연못의 연꽃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다가, 그 앞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 이른바 탁영과 탁족은 선비들의 비교적 적극적인 피서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소극적이다. 갓과 옷을 벗고 냇물에 온몸을 담그지 않는다. 탁족은 오히려 물이라는 자연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자연에 몰입함으로써 더위를 잊는 방법일 것이다. 몰입은 고요한 가운데 정신을 집중하는 지극히 정적인 활동이다. 중국 시인 백거이는 더위를 쫓는 또 다른 방법을 시로 지었다. “마음이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방안이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고요함은 시원함을 일으키고, 비움은 서늘함을 가져온다. 왜 충재는 비어 있고 청암정은 고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벌이 잊고 싶었던 것은 더위만은 아니었다. 모략과 배신 따위의 온갖 세속적인 찌꺼기들을 비우고 잊기 위해,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에 몰입했을 것이다. 선비에게 피서법은 곧 은거법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안동 권씨를 명문가로 발전시킨 사대부 권벌의 닭실마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마을들을 꼽았는데, 경주 양동, 안동 하회와 내앞, 그리고 봉화의 닭실이다. 특히 닭실(유곡)마을은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마을을 감싸는 앞뒤 산이 닭 모양을 하고, 닭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우선 조건은 그 집이 서 있는 위치, 즉 입지이다. 똑같은 크기와 구조의 아파트가 입지에 따라 수십 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지금이야 학군, 상권, 교통 등 인위적인 조건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과거에는 산과 강,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조건이 중요했다. 명당은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달걀을 품어 금병아리를 부화한다는 믿음대로, 닭실은 이곳에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로 발전시켰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권벌(1478~1548)에서 시작한다. 그가 지은 종가가 실질적인 권씨 가문의 시작이었으며, 대를 이어 후손들의 주거지가 이 마을을 이루었다. 터만 좋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 효를 실천하고(봉제사), 손님들을 환대해(접빈객) 사회적 관계망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닦아 뛰어난 인물이 돼야 한다. 권벌은 종가 옆에 충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고, 청암정을 지어 벗들과 교류하는 정원으로 삼았다. 그의 아들인 권동보는 마을 어귀에 큰 규모의 석천정사를 지어 학문 연마와 교육의 장소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근에 부친을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해 가문의 학문과 효를 향촌 공동체의 정규 시설로 승화시켰다. 또한 마을의 뒷산, 재궁골에 충재와 그 선대조상을 모신 선산을 마련하고, 묘 아래에 추원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종가와 별당, 선산과 재실, 정사와 서원까지, 명문가와 명문마을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한 것이다. 닭실은 권벌이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한, 부자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마을이다. 닭실마을의 원래 입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이다. 절경을 이루는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환상적인 장소다. 계곡 입구 너럭바위에 한자 초서로 ‘청하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다. ‘청하’란 해지기 직전 반짝 나타나는 맑고 찬란한 푸른 노을을 뜻한다. ‘동천’이란 신선들이 영생을 사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순간의 찬란함을 영원히 지속하는 곳.” 청하동천의 깊은 뜻이기도 하고, 닭실마을의 꿈같은 바람이기도 하다. ●권벌의 인격을 드러내는 양용삼칸 ‘충재’·팔작지붕 ‘청암정’ 사대부의 ‘사’는 선비이고 ‘대부’는 벼슬아치다. 사로서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대부로서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쳐 나라를 이롭게 한다. 성리학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 진정한 사대부다. 충재 권벌은 영의정에 추증될 정도의 최고위 관료였고, 진정한 선비로서도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연산군의 폭정기간에 무오, 갑자사화로 이미 많은 선비들이 처참하게 피해를 입었다. 사화란 ‘사림지화’, 즉 선비 무리에 대한 박해를 의미한다. 권벌이 30세로 관직에 오른 때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의 이듬해였다. 조광조 등 급진사림파와 반정의 주인공인 훈구파의 대립이 극심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온건사림인 권벌은 두 세력의 중재를 꾀했으나, 42세 때 기묘사화로 결국 파직을 당한다. 낙향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닭실마을이다. 충재와 청암정을 지은 것도 이때, 14년의 은거생활 중이었다. 1533년 56세에 복직했다가 68세에는 을사사화 때 직언으로 다시 파직당한다.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이른바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평안도 삭주로 귀양 갔다가 유배지에서 71세 나이로 운명했다. 이 사건은 을사사화의 승자인 집권 소윤세력이 나머지 잠재적 정적들까지 말살하려 조작한 역모사건이었다. 권벌뿐 아니라 이언적, 노수신, 유희춘 등 20여명의 큰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이들은 후대에 국가적 추앙을 받게 된다. 서재로 지은 충재는 권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물이다. 2칸 온돌과 1칸 마루의 총 3칸, 지붕도 가장 간단한 맞배지붕이다. 선비들은 자신의 거처가 이른바 ‘양용삼칸’, 즉 부엌-방-마루의 3칸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과욕이요, 낭비다. ‘비어 있는 집’이라는 이름답게 장식도 일절 없고, 오로지 극히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권벌의 호는 충재요, 자는 중허다. 모두 ‘비어 있다’는 뜻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비워 내야 성리학의 도를 깨우칠 수 있고, 국가적 공익을 담을 수 있다. 권벌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비어 있는 충재를 지었다. 아무 기교도 없는 것 같지만 문짝 하나의 모양, 부재 하나의 위치도 의미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소의 물질로 만든, 그러나 선비정신으로 가득한 집이다. 반면 바로 뒤의 청암정은 크기나 형태가 대조적이다. 큰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10칸의 丁자형 건물을 얹은 모습이다. 추녀선을 활짝 펼친 팔작지붕에 단청까지 칠한 화려한 정자다. 거북바위 주위로 둥그렇게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마치 연못 안의 섬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 된다. 물 가운데 있는 정자는 ‘사’()라 하여 매우 귀한 정원 건축으로 친다. 보통의 정자는 멋진 바위를 즐기도록 건너편에 짓는데, 이처럼 바위 위에 올라탄 건물은 극히 드물다. 충재는 그토록 소박하게 만들었는데, 청암정은 왜 이런 호사를 부렸을까? 아마도 충재가 선비(사)의 청빈정신을 드러내는 집이라면, 청암정은 관료(대부)의 호연지기를 발하는 집일 것이다. 사와 대부가 사대부의 양면이듯이, 충재와 청암정은 권벌이 가진 두 방향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집이다.●선비의 피서법… “고요하니 시원하고 비워 두니 서늘하다” 공자는 군자의 조건과 즐거움을 논어 첫머리에서 밝혔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알고, 먼 곳의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리고 남이 나를 무시해도 화내지 않는 이가 군자라고 했다. 맹자는 더 나아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더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교우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정원를 가꾸며, 후학을 기르기 위해 정사와 서원을 세우는 수고는 모두 군자가 되기 위한 투자다. 선비의 궁극적인 롤 모델은 바로 군자이며, 산과 계곡을 거닐며 심신을 수련해 군자가 되려고 평생 노력한다. 이는 곧 선비들의 이상적인 은거생활이었다. 닭실의 충재와 청암정, 석천정사와 삼계서원은 은거생활을 위한 필요충분 시설이었다. 또한 선비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타의 모범이 되도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한여름에도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머리에는 갓을 써야 했다. 아무리 정신적인 존재라지만 푹푹 찌는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정약용은 ‘소서팔사’에서 8가지 대표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을 소개했다.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소나무 아래서 활쏘기/빈 누각에서 투호놀이/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비 오는 날 한시 짓기/달 밝은 밤에 탁족하기.’ 다산이 제시한 피서법은 무언가에 몰입해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몰입을 위해서는 우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대자리와 누각 같은 인공 환경, 숲과 계곡 같은 자연환경이 조건이다. 연못의 정원, 누각과 정자와 같은 건물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었다. 권벌은 더운 여름날, 청암정에 올라 시를 짓고, 주변 연못의 연꽃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다가, 그 앞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 이른바 탁영과 탁족은 선비들의 비교적 적극적인 피서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소극적이다. 갓과 옷을 벗고 냇물에 온몸을 담그지 않는다. 탁족은 오히려 물이라는 자연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자연에 몰입함으로써 더위를 잊는 방법일 것이다. 몰입은 고요한 가운데 정신을 집중하는 지극히 정적인 활동이다. 중국 시인 백거이는 더위를 쫓는 또 다른 방법을 시로 지었다. “마음이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방안이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고요함은 시원함을 일으키고, 비움은 서늘함을 가져온다. 왜 충재는 비어 있고 청암정은 고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벌이 잊고 싶었던 것은 더위만은 아니었다. 모략과 배신 따위의 온갖 세속적인 찌꺼기들을 비우고 잊기 위해,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에 몰입했을 것이다. 선비에게 피서법은 곧 은거법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늙음에 관하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늙음에 관하여

    바야흐로 고령 사회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어떻게 해야 잘 늙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키케로가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는 ‘늙음’과 ‘죽음’이다. 먼저 늙음에 대해서다. 노년에 들어 쉽사리 속고 건망증이 심해지며 조심성을 잃는 노인들이 있다. 하지만 키케로는 이런 결점이 늙어서 생기는 결점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혜로운 인간과 우매한 인간이 나뉘는 것은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젊은이 중에도 예의 바르고 자제력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키케로에 의하면, 분별 있는 젊은 시절을 보낸 이에게는 지혜로운 노년이 오고, 욕망에 사로잡힌 젊음을 보낸 이에게는 흐리멍덩한 노년이 오게 된다. “바보들은 젊은 날의 악덕과 결점을 노년까지 그대로 끌고 간다.” 반듯한 자제력은 젊은 날부터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키케로의 글은 ‘죽음’으로 접어 들어간다. ‘늙음’을 논한 다음 ‘죽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는 “만일 죽음과 더불어 영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죽음은 무시해야 하고, 죽음이 영혼을 영생으로 이끌어간다면 죽음은 오히려 간절히 열망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 죽음 이후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절멸과 불멸)을 다 열어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키케로는 영혼 불멸 쪽에 기울고 있다. 키케로는 지상에서의 삶을 덕스럽게 살았다면 죽는 날은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정화된 영혼이 하늘로 되돌아갈 수 있는 영광의 날이라고 말한다. 이 지상의 삶을 덕스럽게 살아낸 자에게는 삶이 고통이고, 오히려 죽음의 날이 영광의 날이라는 것이다. 반듯한 인생을 살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의 날을 맞이하자는 게 키케로의 충고다. 젊어서부터 항심(恒心)을 지키며 제대로 살자는 말이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노인들이 벌이는 무례와 추태가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사곤 한다. ‘노인’은 많아도 ‘원로’(元老)는 찾아보기 힘든 세월이다. 잘 늙어가는 일이 지금처럼 중요한 시대도 없을 것이다. 백발의 두 어르신 뒷모습이 정갈하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이은형의 밀레니얼] 밀레니얼은 어떻게 군인이 되는가

    [이은형의 밀레니얼] 밀레니얼은 어떻게 군인이 되는가

    “스마트폰 중독자, 밤샘 게이머, 오락부장, 셀카 중독자, 눈송이세대, 개인주의 밀레니얼 세대인 당신을 기다립니다.” 영국 육군이 2019년 신입 장병을 모집하는 포스터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다양한 특징을 설명한 내용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문제점으로 얘기되는 특징을 오히려 능력으로 인정하면서 군에 오라고 홍보한다. 스마트폰 중독자의 집중력, 밤샘 게이머의 추진력, 오락부장의 기백, 셀카중독자의 자신감, 눈송이 세대(나약함을 일컫는 용어)의 공감력, 개인주의 밀레니얼 세대의 자기확신을 영국 육군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모병제인 영국 육군은 2018년 목표인원 8만 2500명에 못 미치는 7만 7000명을 모집했으나 그중 47%는 군을 떠났다. 신병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신세대의 성향에 맞게 군을 혁신하고 그들을 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병력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올해 신병 8000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중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크게 늘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한 이후 청년들이 군대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병력 모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국적만 있으면 비전투병 중심으로 뽑겠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계획이다. 덴마크, 벨기에, 아일랜드 등의 국가는 이미 EU 국적자로 신병 모집 대상을 확대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군 문화를 거부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 시행으로 모든 청년이 군에 입대한다. 같은 군복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선배 세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있었다. 훈련병이 유격훈련 나가기 전에 선크림을 바르고, 군에서의 최우선 목표는 ‘몸만들기’라고 말하는 신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데가 없으면 용변을 볼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신병에게 장교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배려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군에 적응 못한 병사들의 일탈이나 인명사고 등이 잇따르면서 장교들의 최대 과제는 ‘관심병사’(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잘 관리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하소연도 들린다. 최근에는 ‘군인의 본분은 강한 기초체력’이라며 강하게 병사를 훈련시킨 중장에 대해 보직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있었다. 아픈 병사를 훈련에 참여시키고 휴가를 제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세대 병사들과 병영문화 사이의 간극이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자 군도 대응책을 내놓았다. 최근 국방부는 병사들이 일과 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잡초 제거 및 제설 등의 사역에 동원되지 않도록 군인복지기본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급식의 질을 개선하고 기능성 방한복과 방탄 헬멧, 전투 조끼 등 신형 장구류도 보급한다고 밝혔다. 그 외 장애보상금을 일반 산재 수준으로 올리고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군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국방부의 노력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 병사들로 하여금 ‘군 복무의 의미’, ‘군대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냉전시대를 경험하지 못했고, 전쟁은 게임 속의 상황이며, 남북한 대치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도 없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풍요롭게 성장한 그들에게 ‘왜’를 설명하지 않고 ‘다 가야 하는 거니 군대 가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를 국가에 반납하고, 사생활이 없는 병영생활을 견뎌야 한다면,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과 격리되어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면 그 의미를 알게 해주어야 한다. 군에서의 의사소통, 군의 기강, 지휘계통의 작동방식 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 만약 기존의 가치와 시스템의 정당성을 잘 설명할 수 없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대에 맞는 군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 효율적이며 강력한 군대를 위한 최적의 조직구조를 운영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게 군 생활을 하면서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응답해야 할 사안이다.
  • “배우는 즐거움 얼마나 큰지”… 인문학에 빠진 수원

    “배우는 즐거움 얼마나 큰지”… 인문학에 빠진 수원

    5060 중심 강의실 복도에도 ‘인산인해’ 임정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재조명도“이집트 문명을 공부하며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 수원시 9개 도서관이 오는 11월까지 운영하는 각종 인문학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고 있다. 13일 수원시에 따르면 북수원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사업에 선정돼 지난달 21일부터 ‘세계 고대 문명,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제목의 강좌를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황하 문명, 아스테카와 마야 문명, 그리스 문명을 주제로 한 강좌가 이어진다. 지난 9일 강좌에는 정원 120명을 훌쩍 넘긴 150명의 인파가 몰려 복도에서 강의를 듣는 풍경도 펼쳐졌다. 대부분 50~60대 중년층이다. 이봉화 북수원도서관 주무관은 “강당 책상을 밖으로 빼고 열람실·사무실 의자까지 가져오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부족하다”고 열기를 전했다. 영국 리버풀대에서 이집트 상형문자 등을 전공한 강주현 작가가 강의를 맡고 있다. 앞으로 ‘영생을 위한 완벽한 아름다움의 추구, 고대 이집트 예술’, ‘신들의 언어, 거대 이집트 상형문자’ 등 주제의 강의가 이어진다. 광교홍재도서관은 지난달 30일부터 8월 9일까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한국근현대사 다시 읽기’를 주제로 ‘역사, 문학에 빠지다’, ‘역사, 사진에 빠지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백범 김구’ 강좌를 진행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백범 김구’는 청소년을 위한 강의다. 마지막 강의 때 성인, 청소년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 화서다산도서관은 오는 10월 2일까지 ‘1919 외치고, 2019 새기다’를 주제로 ‘과학, 독립을 외치다’, ‘예술, 독립을 외치다’, ‘문학, 독립을 외치다’ 등의 강좌를 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강연한다. 대추골도서관은 오는 18일부터 9월 24일까지 ‘인문학, 삶의 의미를 더하다’(청년과 시니어를 위한 인생 재설계)를 주제로 ‘영화로 삶을 성찰하다’, ‘그림이 전해주는 삶의 모습’ 등의 강연을 연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부고] 엄복태씨 모친상, 소정섭씨 모친상, 박태일씨 모친상, 이학성씨 장인상

    ●엄영태(전 오상고 교장)·엄태분·엄태희·엄정희·엄강태·엄복태(스타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씨 모친상, 3일 오전 8시44분께, 대구 수성구 삼덕동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특101호실, 발인 5일 오전 7시30분, 장지 경북 군위 선영. 053-200-6141 ●소정섭(알렉산드르드파리 한국지점 대표)·소 섭(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 사무관)씨 모친상, 4일 오전 4시2분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 6일 오전 5시30분, 장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선영. 02-3410-6912 ●박태일(㈜fn이노에듀 대표이사)씨 모친상, 김윤정(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위원)씨 시모상, 3일 오후 11시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5일 오전 9시, 장지 성남 영생원. 02-3410-6902 ●백순이씨 남편상, 김대용·김성용·김혜경씨 부친상, 이학성(LS산전㈜ DT총괄 사장)씨 장인상, 4일 오전 1시51분께,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6일 오전, 장지 경기도 광주시 시안가족추모공원. 02-2227-7556
  •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대표적인 인물은 이동휘(대통령장,1995년) 선생이다. 2005년 3·1절에 몽양 여운형(대한민국장) 등 사회주의 계열 54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는 등 2007년까지 다수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주세죽이 있다.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 코뮤니스트. 당대의 ‘얼짱’.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항일투사. 여성해방운동가.” 주세죽의 일생은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이다. 주세죽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수년 전 손석춘 작가의 ‘코레예바의 눈물’과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이야기’를 통해 생애가 알려졌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손 작가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여행을 갔다가 발견한 주세죽의 자필 기록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주세죽은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01년생이다.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영생여학교 고등과에 다녔고 피아노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3일 함흥 장날,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주세죽도 참가했다가 붙잡혔다. 한 달 동안 입에 담기 어려운 모멸적인 성고문을 받고 출소했다. 풀려난 주세죽은 함흥 시내 병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했다. 일본인 의사의 성추행에 또다시 진저리를 친 주세죽은 중국 상하이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는 한 살 아래 친구 허정숙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상하이에서 주세죽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허정숙의 소개로 박헌영을 만났다. 박헌영, 김단야 등은 주세죽이 오기 한 달 전인 1921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했다. 박헌영은 책임비서였고 주세죽도 고려공청에 가입해 기관지 ‘올타’를 편집하는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박헌영을 뒤따라 주세죽은 1922년 3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국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었다. 먼저 갔던 박헌영과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김단야는 귀국 정보를 알아낸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다. 주세죽은 여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통했다. 박헌영의 친구인 소설가 심훈은 대리석으로 깎은 얼굴이라고 했다. 주세죽을 모델로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도 썼다. 주세죽, 허정숙, 김단야의 동거녀 고명자를 당시 언론은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렀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은 남자 삼총사였다. 주세죽과 허정숙은 반봉건, 여성해방의 뜻으로 단발머리를 했다. 주세죽은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1924년 5월 서울 천도교회관에서 조선여성동우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이었다. 고무공장, 비단공장, 정미소를 찾아다니며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 항일운동단체 근우회에도 동참했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을 추동할 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도 창립했다. 박헌영이 고려공청 책임비서를 맡았고 주세죽은 후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우발적인 술자리 사고로 조직이 탄로 났다. 김단야만 피신했고 주세죽,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이 검거됐다. 주세죽은 증거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순종의 국장일인 1926년 6월 10일,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또 보름 만에 풀려났다.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기획한 공청 중앙위원이었지만, 박헌영이 아니라고 보호했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심한 고문을 받았고 정신이상자가 됐다. 그러나 이는 위장이었다. 박헌영은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주세죽과 박헌영은 요양을 이유로 함흥으로 간 뒤 소련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타고 탈출했다. 임신한 주세죽은 도착하자마자 딸 영(影)을 낳았다. 1928년이었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단야가 먼저 가 있었다. 김단야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선담당관이었다. 주세죽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박헌영은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했다. 박헌영은 주세죽에게 ‘코레예바’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줬다. 고려의 여성이라는 뜻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1932년 초 딸을 국제유아원에 맡겨놓고 상하이로 갔다. 영에게 ‘비비안나’라는 다른 이름을 지었다. 상하이에서 주세죽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원하고 기관지를 국내로 들여보냈다. 이듬해 7월 박헌영은 체포됐다. 그 사이 주세죽과 김단야는 도망쳤다. 김단야는 박헌영이 고문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주세죽을 연모한 김단야의 거짓말이었다. 그러고는 사랑을 고백했다. 둘은 1934년 1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박헌영이 죽었다고 믿은 주세죽은 김단야와 결혼했다. 1937년 소련은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김단야를 체포했다. 이성태란 사람의 모함이었다. 이듬해 2월 13일 석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주세죽도 5년 유배형을 받았다. ‘제1급 범죄자의 아내로서 사회적 위험분자’라는 죄목이었다. 1938년 5월 주세죽은 유배지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에 걸려 죽었다. 유배지 크질오르다는 사할린에서 활동하던 홍범도 장군이 강제이주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 지하에서 활동하던 박헌영은 월북한 뒤 194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주세죽은 프라우다지에 난 기사를 보고 박헌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당시 18세이던 비비안나에게 아버지임을 알렸다. 박헌영은 주세죽이 유배된 사실을 알고 최대한의 배려를 요청했다. 주세죽은 그다음 날 거주 제한이 풀렸다. 박헌영은 비비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주세죽을 만날 의사는 없었다. 주세죽은 스탈린에게 조선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거부했다. 주세죽은 딸에게로 가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휴전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나이 52세 때였다. 두 남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3년 후 죽임을 당했다. 주세죽의 첫 남편은 미제 스파이, 두 번째 남편은 일제 스파이로 몰려 죽은 것이다.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지내고 1991년 89세로 사망했다. 고명자는 일제의 고문으로 원치 않는 전향을 했다가 친일적인 글을 쓰기도 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1989년 소련 당국은 주세죽과 김단야를 사면했다. 1991년 박비비안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박헌영의 고향 충남 예산에서 가져간 흙을 주세죽의 묘비에 뿌려줬다. 비비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덤이라도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비안나는 무용수와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2013년 사망했다.우리 정부는 2007년 주세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단야에게는 독립장을 추서했다. 임원근은 앞서 1993년 애국장을 받았다. 중국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사망한 윤세주(독립장)와 진광화(애국장)도 건국훈장을 받았다. 님 웨일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장지락)에게도 2005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빨갱이’에게 무슨 훈장이냐”는 우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현실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념의 무덤에서 독립유공자를 파내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고려항공 첫 화면에 뜬 예약시스템… 외무성 홈피는 역시 김정은 선전글

    고려항공 첫 화면에 뜬 예약시스템… 외무성 홈피는 역시 김정은 선전글

    해외언론 글로 美대북정책 우회 비판 쇼핑몰 ‘만물상’ 지재권관리 ‘불보라’ 사이트 주소 모두 北도메인 kp로 끝나북한이 운영하는 공식 인터넷 웹사이트가 최소 37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무성 등 국가기관과 교육기관, 상업기관, 언론기관, 사회단체 등의 웹사이트들은 개설 시기는 달랐지만 대부분 8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북한 전문가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는 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주오스트리아 북한대사관으로부터 어제 북한 웹사이트의 공식 목록을 받았다”며 37개의 웹사이트 이름과 주소 목록을 공개했다. 프랑크 교수는 “일부 사이트는 널리 알려졌고 다른 사이트는 그렇지 않다”며 “연구에 유용한 자원이지만 접속 전에 당신 국가의 법과 규정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37개 웹사이트 주소는 모두 북한의 국가 도메인인 ‘kp’로 끝난다. 2016년 개설된 온라인 쇼핑 사이트 ‘만물상’을 비롯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지적재산권 대리기관인 삼흥지적자원정보교류사의 웹사이트 ‘불보라’ 등이 목록에 포함됐다. 외무성 웹사이트는 2017년 10월 22일 개설돼 최근까지 외무성의 활동과 입장을 전하고 대외 선전을 수행하는 등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영어 웹사이트도 있어 대외용임을 알 수 있었다. 외무성 웹사이트는 ‘첫페지’, ‘소식’, ‘문헌’, ‘공식입장’, ‘개관’, ‘외교활동’, ‘국제동향’, ‘외무성’ 페이지로 구성됐다. 문헌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문건, 개관은 북한의 역사와 현황, 외무성은 부서 소개와 조직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국제동향 페이지에는 국외 언론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김 위원장을 선전하고 입장을 옹호하는 글이 주를 이뤘다. 지난달 11일 ‘미국의 전문가들 행정부의 현 대조선정책 비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의 상급연구사 다니엘 데이비스는 ‘워싱턴타임스’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북조선의 선비핵화를 강요하려 하면 오히려 실패만 거듭할 것이며 언제인가는 오판을 불러일으켜 나중에는 핵전쟁과 같은 최악의 악몽까지 산생될 것”이라고 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의 웹사이트 ‘영생’에는 금수산 태양궁전의 운영 비용을 모금하는 ‘김일성·김정일 기금’을 홍보하고 있었다. 사이트에는 ‘기부에 참가한 개인과 단체에 기부증서를 수여’하고 ‘특출난 기여를 한 모범적인 기부자와 후원자에게 명예이사장 등의 명예증서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많은 자금과 설비를 기여한 기부자는 북한을 방문할 수 있고 편의를 보장받는다며 회원 유치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었다. 북한의 유일 항공사인 고려항공 웹사이트에는 한국 등 여타 국적 항공사의 웹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첫 페이지에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운임은 블라디보스토크~평양이 230달러(약 26만 8000원), 베이징~평양은 1750위안(약 30만 1000원), 선양~평양은 1280위안, 상하이~평양은 1740위안이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속초 일병 유족 “동생 죽음의 투명한 수사를 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속초 일병 유족 “동생 죽음의 투명한 수사를 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최근 강원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육군 장병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속초 이등병(일병) 자살사건 묻히지 않게 제대로 된 조사를 부탁합니다”란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오는 5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이 청원의 참여자는 현재(25일, 오후 2시 기준) 2만2399명이다. 지난 15일 오전 5시45분경 강원도 속초시 시외버스터미널 남자 화장실에서 육군 모 부대 A(20)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A일병은 휴가 후 14일 복귀예정이었으나 복귀하지 않아 군 현병대가 찾던 중이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숨진 A일병의 친구라고 밝힌 글쓴이가 “항상 밝고 긍정적인 제 친구의 이야기”라며 “유가족 분들께서 이 사건이 묻히지 않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며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에 동의해줄 것을 호소했다. 글쓴이는 “군내 가혹행위는 엄연히 인권을 무참히 무시하는 행위”라며 “가해자를 필히 조사해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적었다. 또한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사건 경위와 진실을 허황되지 않게 알려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글쓴이는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해 단순 자살사건으로 포장해 묻어버린다면, 국방부 얼굴에 오히려 먹칠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며 “확실한 진상규명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의 글은 이후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A일병 형이라고 밝힌 B씨는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부대 내 병영생활관(내무반) 관물대에서 동생이 군대 부서장에게 인원이 적은 부대로 옮겨 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며 “병영생활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B씨는 “동생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청원글을 올린 것으로 안다”며 “제 동생의 죽음에 대해 투명한 수사를 원한다. 또한 군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A일병은 지난해 11월 입대 후 올해 1월 자대배치를 받았고, 관심사병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군 당국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그녀의 사생활’ 박민영, 큐레이터 자질테스트 영상 화제

    ‘그녀의 사생활’ 박민영, 큐레이터 자질테스트 영상 화제

    박민영의 색다른 매력이 돋보이는 큐레이터 자질 테스트 영상이 화제다. 오늘 오전 나무엑터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덕미로운 민영생활’ 영상이 공개되었다.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의 방송에 맞춰 제작된 영상으로 드라마 속 성덕미가 아닌 배우 박민영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서 5년 차 큐레이터 성덕미 역을 맡은 박민영이 큐레이터 자질 테스트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실제 큐레이터와는 상관이 없는 다소 허무한 테스트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임하는 박민영의 모습이 귀여움을 자아낸다. 덕미를 찾아라, 틀린 덕미 찾기, 미술 상식 퀴즈라는 3개의 테스트를 모두 성공해야만 다섯 명의 팬들에게 폴라로이드를 선물할 수 있는 미션이었기에 박민영의 열정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3개의 테스트에 모두 실패했지만 박민영은 폭풍 애교를 보여주며 결국 다섯 개의 폴라로이드를 획득했다. 이 폴라로이드는 나무엑터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공개된 이벤트를 통해 팬들에게 선물될 예정이다. 박민영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담은 ‘덕미로운 민영생활’ 영상은 나무엑터스 공식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그녀의 사생활’은 덕질 로맨스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박민영X김재욱의 심쿵 케미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TV 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지난 22일 발표한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서는 2주 연속 2위를 차지했다. 특히 박민영은 TV 출연자 화제성에서 전체 2위, 여배우 중에서는 1위에 오르며 로코 여신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실히 했다. 직장에선 완벽한 큐레이터지만 알고 보면 아이돌 덕후인 성덕미(박민영 분)가 까칠한 상사 라이언(김재욱 분)과 만나며 벌어지는 본격 덕질 로맨스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매주 수요일, 목요일 밤 9시 3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인터뷰] 박보검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박보검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일상의 감사함, 행복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영화 ‘서복’ 출연을 확정지은 배우 박보검(26)은 드라마 ‘남자친구’(tvN) 종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내내 일에 대한 애정과 욕심을 드러냈던 박보검은 드라마 종영 후 한 달여 만에 차기작 소식으로 2019년도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한해가 될 것을 예고했다. 배우 박보검과 인간 박보검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던 인터뷰를 돌아본다. ‘남자친구’ 종영 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검은 여전히 소년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사히 마쳐 감사하고 시청자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박보검이 2년 만의 복귀작으로 선택한 드라마였다. 박보검은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라 부담감이 없진 않았지만 잘 해내고 싶었다”며 “아쉬움도 있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극 중 캐릭터인 김진혁에 대한 애정 어린 대답도 빼놓지 않았다. 박보검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굉장히 솔직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을 떠나 가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주변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김진혁과 닮은 점을 묻는 질문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그는 “진혁이를 만난 뒤 나 자신을 아끼고 보듬어주는 면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랑을 위해 돌진할 줄 아는 ‘사랑꾼’의 모습도 닮았을까. 만약 실제로 극 중 상황처럼 회사 대표를 사랑하게 된 신입사원이 됐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박보검은 “회사 대표님과의 사랑… 정말 어렵다”며 웃었다. 이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이라며 잠시 말을 멈추더니 “부모님 말씀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다시 순수한 미소로 답했다. 작품 속에서 가장 설?던 장면으로 송혜교와의 영상 통화 장면을 꼽았다. “촬영할 때는 실제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하지 않고 제 얼굴을 보고 했어요. 그런데 촬영 후 그 장면을 보니 진짜 김진혁, 차수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 현실 연애하는 느낌으로 그려주셨더라고요.” 첫회부터 최종회까지 7~9%대 시청률을 오가며 확고한 시청층을 붙잡은 작품이었지만 박보검과 송혜교의 시너지에 많은 시청자들이 걸었던 기대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보검은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촬영장 분위기가 굉장히 즐거웠다. 촬영할 때면 웃음이 많이 터졌다. 감독님, 작님, 스태프들, 배우분들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작품이라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내가 잊고 살았던 것들,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 시간의 소중함 등을 많이 느꼈다”며 “진혁이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아낌없이 표현하는데, 저도 더 표현하고 감사하고 좋아하는 시간들이 많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기회가 된다면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남자친구’에 앞서 공백기를 가졌던 박보검은 연기 욕심이 부쩍 커진 듯 보였다. 그런 그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서복’에서는 영생의 비밀을 지닌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역을 맡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시도되는 복제인간 소재 작품에서 전에 없던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이다. 20대 꽃미남 배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그는 “외모보다 건강한 정신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대답도 내놨다. 그는 또 “누구나 첫 작품을 할 때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 대처할 수 있게 돼서인지 그런 마음이 조금씩 꺾이는 것 같기도 하다”며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박보검, ‘서복’으로 컴백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공유와 호흡

    박보검, ‘서복’으로 컴백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공유와 호흡

    배우 박보검이 영화 ‘서복’(가제·이용주 감독)으로 스크린에 컴백한다. 박보검은 최근 화제가 됐던 tvN 드라마 ‘남자친구’ 이후 차기작이자 영화 ‘차이나타운’ 이후 4년 만에 스크린 컴백이라는 점에서 이번 ‘서복’ 출연 확정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복’은 죽음을 앞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이 영생의 비밀을 지닌 인류 최초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과 그를 차지하려는 여러 세력의 추적 속에서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박보검은 ‘서복’에서 영생의 비밀을 지닌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역을 맡는다. 특히 서복은 한국 영화 최초로 시도되는 복제인간 소재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는다. 이런 특별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박보검이 더 기대되는 이유에는 이용주 감독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점도 한 몫 한다. 이용주 감독은 영화 ‘불신지옥’, ‘건축학 개론’을 통해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이용주 감독과 박보검이 보여줄 ‘서복’의 특별한 이야기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서복’은 죽음을 앞둔 전직 국정원 기헌역으로 배우 공유가 먼저 캐스팅을 확정으며 오는 4월 크랭크인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병사들의 ‘극단적 선택’ 왜 줄었을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병사들의 ‘극단적 선택’ 왜 줄었을까

    군 자살자 5년 만에 97명→54명 감소전체 20대 남성 자살률 절반 밑돌아고충신고 4배 급증했지만 사고는 감소서열문화 등 병폐 깨고 선진화 지속해야오합지졸(烏合之卒), 즉 군기가 빠진 군대를 우리는 흔히 ‘당나라 군대’라고 부릅니다. 최근 수년간 병사 복지 수준이 높아지고 병영 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우리 군을 이런 당나라군에 빗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마치 군대에선 욕설과 구타, 강압적 업무지시가 ‘최선’이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병력규모는 2% 줄었는데…자살사고 급감 기자의 눈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병영문화의 변화에 따라 확연히 줄어드는 수치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군 자살 통계’입니다. 26일 국방부가 지난해 펴낸 ‘2017 국방통계연보’의 ‘군 사망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군 자살(장교·부사관 포함)은 2011년 97명에서 2012년 72명으로 급감하더니 2013년 79명으로 소폭 증가했다가 2014년 67명으로 다시 줄었습니다. 2015년에는 57명, 2016년 54명으로 5년 만에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단순 논리로 ‘병력 규모가 크게 축소됐으니 자살도 줄어든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체 병력은 2012년 63만 9000명에서 2016년 62만 5000명으로 1만 4000명(2.2%) 줄어드는데 그쳤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59만 9000명입니다. 병력 감소와 자살 감소를 직접 연결하기엔 근거가 다소 빈약합니다.2016년 기준으로 전체 군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70.4%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습니다. 정부와 군이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군의 10만명당 자살률은 2016년 8.8명으로 전체 20대 남성 자살률(19.9명)의 절반을 밑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병영 문화는 최근 더욱 획기적인 변화기를 맞고 있습니다. 부대별로 ‘동기’를 1개월~1년으로 묶으면서 군의 큰 병폐였던 ‘서열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3개월 단위로 동기를 묶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일부 전방 사단에서는 1년 단위로 동기를 묶는 부대도 생겼습니다. 사실 현행법상 병사는 선임이라고 해도 보직이 없으면 후임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수 없습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5조(군인 상호간의 관계) 3항은 ‘병 상호간에는 직무에 관한 권한이 부여된 경우 이외에는 명령, 지시 등을 내릴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현행법상 병사는 명령·지시 불가능…과거엔 빈번 그렇지만 과거 군복무한 예비역 중에는 이런 사실을 아직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선임 병사가 암묵적으로 강압적 지시를 내렸고, 일부 간부는 이를 알고도 묵인했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몰래 후임들을 집합시켜 구타하거나 욕설, 얼차려로 짓누르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그래야 분대, 소대, 중대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물론 제가 복무했던 1990년대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막사 곳곳에 병사들의 한숨이 가득했습니다. 늘 ‘군기’를 앞세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자신의 복무 스트레스를 폭력과 폭언으로 푸는 사례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동기제 등 병영문화 개선 사례를 접한 많은 분들은 ‘그럼 누가 일하느냐’, ‘지시를 안 들으면 당나라군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실상은 ‘자살 감소’라는 긍정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2012년 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아예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등의 4개 계급에서 ‘이등병’을 없애자”는 다소 파격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통계 하나를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군 안전사고 사망자에 관한 내용인데, 특히 당나라군이라고 조롱하는 분들이 꼭 봐야할 부분입니다. 병영문화가 개선되면서 군기가 빠지고 기강이 풀렸다면 미숙한 업무 처리 때문에 군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거나 최소한 줄어들진 않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반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2017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차량, 폭발, 항공, 추락, 익사, 화재 등 모든 안전사고 사망자는 2008년 58명이었지만 2011년 42명으로 줄었고 2016년에는 24명이었습니다. 특히 차량 사망사고는 2008년 25건에서 2016년 5건으로 8년 만에 5분의1로 급감했습니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와 군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방헬프콜’에 접수된 병영생활 고충상담은 2014년 1만 6830건에서 2017년 6만 3835건으로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자살자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살예방 정책의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국가가 인권 존중해준 결과“ 병사들의 목소리 새겨들어야 올해부터는 전방 GOP(일반전초) 지역과 해·공군 전투부대의 제초, 청소 작업에 민간인력을 활용하고 2021년에는 전 군으로 확대합니다. 이달부터 군 장병의 일과시간 외 외출을 허용했고, 오는 4월부터는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확대합니다. 가족과의 자유로운 통화와 지인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진로 정보 검색, 문화생활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보안 문제 등으로 우려하는 분들이 많지만 “국가가 군인 개개인의 인권과 삶을 존중해준 결과”, “일과 후 병사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준다면 행복한 병영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고 더욱 발전된 대한민국 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병사들의 반응을 우리는 분명히 주목해야 합니다. 병영은 죄수들을 통제하는 ‘감옥’이 아닙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은 아버지, 삼촌, 형제, 지인들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병폐를 깨고 병영 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과학으로 들여다본 사후 세계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과학으로 들여다본 사후 세계

    천국의 발명/마이클 셔머 지음/김성훈 옮김/아르테(arte)/468쪽/2만 8000원 불교를 공부하는 모임에 오신 분이 스님께 질문했다. “정말 윤회가 있을까요? 윤회가 없다면 내 맘대로 살아버리고 싶어요.” 착하고 반듯하기로 정평이 난 분이었다. 스님은 그저 웃으셨다. 그때 나는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윤회가 없다고 생각할 때랑 있다고 생각할 때, 내 삶이 달라질까?” 아니, 달라질 리 없다. 매 순간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려서 이곳에 왔다. 삶이 유일무이한 것이든, 백번 천번 반복되는 것이든 마찬가지이리라. 결정이 달라질 리 없으니. 매번 최선의 선택을 내리려고 고심했을 테니. 우리는 죽음을 모르기에,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수천 수만의 갈래로 상상이 된다. 누구든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그 이후의 과정을 공신력 있고 명백하게 밝혀낸 이는 없다. 죽지 않은 이는 한 명도 없고, 죽음 후에 돌아와서 검증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도 한 명도 없다. 모를 수밖에 없다고 모르는 채로 두자니 불안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천국과 지옥, 영생의 개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는 지금의 삶도 슬금슬금 압박해 들어왔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를 위한 잡지 ‘스켑틱’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사후 세계의 문제에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물론 과학이 모든 것에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자연적인 일과 정상적인 일, 그리고 우리가 아직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설명을 찾아내지 못한 미스터리가 존재할 뿐”이라고. 이 책은 수많은 기이한 현상을 소개한 뒤,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사건까지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냥 즐기면 된다. 그 안에 담긴 감정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미스터리를 받아들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저 신기한 이야기의 나열로 이 책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선을 다해 과학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증한다. 뇌를 냉동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종교가 주장하는 천국과 지옥에 미치는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영향이 얼마나 확실한지,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가 되는 인간의 ‘정체성’이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저자는 과학적인 사실과 인문적 지식을 총동원해 들려준다. 무척 재미있지만, 재미만으로 읽을 책은 아니다. 죽음 이후 이야기로 지금 현재 이곳의 삶을 비추어 보려는 시도가 묵직하기 때문이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책받침 여신처럼 늙지 않는 진짜 불로초를 발견했다고?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책받침 여신처럼 늙지 않는 진짜 불로초를 발견했다고?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남학생들이라면 ‘책받침 여신’을 기억하실 겁니다. 피비 케이츠(1963년생), 브룩 실즈(1965년생), 소피 마르소(1966년생)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각각 귀여움과 섹시미, 청순미를 대표하는 이른바 미녀 삼총사였습니다. 남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갖고 다니거나 책상 앞에 커다란 브로마이드를 붙여 두고 자기만의 판타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라 한물갔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옛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어릴 적 봤던 배우들이 나이 먹어 가는 모습과 맡은 배역, 연기의 변화를 감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물론 십수년이 흘렀는데도 외모가 그대로인 배우들을 보노라면 부러움과 함께 질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사실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영원한 젊음과 죽지 않는 ‘영생불사’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꿔 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과학기술, 특히 생물학과 화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꿈이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스위스, 스웨덴 등 6개국 18개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단세포생물인 효모는 물론 벌레와 인간세포까지 대부분의 생물종에서 외부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노화를 지연시켜 주는 천연화합물을 발견하고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0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항염증작용이 탁월한 식물로 알려진 명일엽(신선초) 추출물로 효모와 벌레, 초파리의 노화방지 효과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명일엽 추출물을 주입한 효모의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벌레와 초파리, 세포의 노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효과는 명일엽에 포함된 ‘4-4´ 디메톡시 칼콘’(DMC)라는 플라보노이드 성분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밝혔습니다. DMC 성분이 심장세포를 강화해 협심증으로 알려진 심근허혈 증상을 막고 ‘자가포식’(오토파지)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자가포식은 손상된 단백질과 세포 기관을 제거하고 분해해 다른 곳에 재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세포 청소부 역할입니다. DMC가 자가포식 시스템을 활성화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는 명일엽이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연구의 핵심은 ‘명일엽에서 추출한 DMC 성분이 자가포식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세포 보호와 노화 방지에 있어서 자가포식 시스템의 정상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노화를 늦추고 언제까지나 인생을 즐기고 싶은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원초적 욕망입니다. 대중매체들에서는 ‘방부제 미모’, ‘뱀파이어급 동안’ 같은 수식어까지 동원하면서 ‘젊음’이 유일한 선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연예인들이 가는 세월을 원망하며 의학기술을 동원했다가 부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도리어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원인은 바로 ‘젊음만이 좋은 것’이란 집착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필멸의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늙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세대 갈등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dmondy@seoul.co.kr
  • 성남시 설 연휴 교통대책…시내버스 106회 증회, 학교 등 165곳 주차공간 확보

    경기 성남시는 2월 1일부터 7일까지 설 연휴에 시내버스 14개 노선, 226대의 배차 간격을 단축해 106회 증회 운행한다. 모두 1306회 운행한다. 분당구 야탑동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을 오가는 8개 노선, 102대 버스의 운행 횟수는 47회 늘려 627회 운행한다. 분당메모리얼파크를 운행하는 3개 노선, 53대 버스의 운행 횟수는 28회 늘려 309회 운행한다. 하늘누리 제1·2 추모원이 있는 중원구 갈현동 영생관리사업소를 경유하는 3개 노선, 71대 버스의 운행 횟수는 31회 늘려 370회 운행한다. 주차 편의를 위해 차량 1만3147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시는 또 2월 2일부터 6일까지 초·중·고·대학교 운동장과 공영주차장 등 모두 165곳을 무료 개방한다. 운동장을 개방하는 학교는 수정지역 22곳(2206대), 중원지역 20곳(1255대), 공영주차장 123곳(9686대)이다. 일부 학교와 건물식 공영주차장 등은 3일 또는 4일~6일에만 개방하는 등 주차장별로 시민 개방 시간이 다소 탄력적이다. 시 담당자는 “시민들이 설 연휴 기간에 안전하고 편하게 고향을 오갈 수 있게 교통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김형준 전역 소감 “상실감 느꼈던 시간..더 큰 사람 됐다”

    김형준 전역 소감 “상실감 느꼈던 시간..더 큰 사람 됐다”

    그룹 SS501 출신 김형준이 전역 소감을 전했다. 29일 전역한 김형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17년 4월6일 입대할 때 느꼈던 많은 감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새록새록 떠오릅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김형준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존감이라는 거 원래 상당히 크게 가지고 살던 저였는데 제가 어느새 복무하며 내려놓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상실감도 있었습니다”라며 “그래도 여전히 저는 저였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해주시는 모습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신다고 해주셨던 그 말들 하나하나 가슴속에 깊숙한 곳에 새기고 전역합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 기다려주신만큼 예전보다 더 큰 사람이 되었으니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는 게 최선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말 정말로 고맙고 사랑합니다”라고 전했다. 김형준은 지난 2005년 김현중, 허영생, 김규종, 박정민과 5인조 그룹 SS501로 데뷔했으며, 2016년에는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SS301로 활동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영국인들은 왜 8900㎞ 건너와 한국 도왔을까

    영국인들은 왜 8900㎞ 건너와 한국 도왔을까

    쇼, 자신의 배로 독립운동가·무기 운송 매켄지 ‘을사늑약 무효 밀서’ 지면 게재 “한국인 독립정신에 감동받아 진실 알려”국가보훈처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한민족의 항일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생가를 보훈시설로 지정하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영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8900㎞ 떨어진 동양의 나라까지 왔던 영국인들은 처음에는 일본과 더 가까웠지만 한국인의 독립정신에 감화돼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게 된 경우가 많았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26일 “당시 국력이 셌던 영국인들은 동양에 많이 왔고 사실 일본과 가까웠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상을 접한 결과, 한국인의 독립심을 동경하거나 일제강점을 인류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옳지 않다고 본 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인정한 외국인 독립유공자는 총 70명이다. 이 중 영국인은 6명으로 한국 독립운동의 해외 기지였던 중국(33명)과 미국(21명)에 이어 세 번째다. 베델은 1872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1888년부터 일본에서 사업을 했다. 하지만 실패했고 형제간 불화가 겹치며 1904년 영국 데일리크로니클 내한 통신원으로 한국(대한제국)에 왔다.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했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고종 황제의 밀서를 보도했다. 1909년 일본의 추방 소송에 대응하던 중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당시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업가 조지 루이스 쇼는 중국 단둥에서 운영하던 무역회사 이륭양행 안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사무국을 설치토록 했다. 또 자신의 배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무기, 출판물, 자금 등을 운송했다. 1920년 7월 일제에 의해 체포돼 내란죄로 기소됐고 4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멈추지 않았다. 쇼는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한국의 독립운동에 더 쉽게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는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로 일어난 정미의병의 사진, 베델의 재판 사진 등을 통해 일제침략을 고발했다. 영국 트리뷴지의 특별통신원이던 더글러스 스토리는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려 건넨 밀서를 지면에 게재했다. 대한매일신보의 보도는 이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한국임시정부 승인을 지원한 프레더릭 브라운 해리스 목사, 제주 서홍천주교회 신부로 재직하며 신도들에게 항일 교육을 하다 2년간 징역을 살았던 어거스틴 스워니도 영국인이다. 한편 영국 런던의 서리 공사였던 이한응 선생은 1905년 일제에 의해 한국공사관이 폐쇄되자 유서를 남긴 채 음독으로 순국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당시 순국한 외교관은 이한응 선생 혼자였다”며 “그가 근무하던 런던 얼스코트의 주영 한국공사관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