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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대표단 숙소 백화원초대소로 변경 김기남北단장 “정동영선생 열렬히 환영”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첫날인 1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10만여명의 남·북·해외동포들은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민족대축전의 장관을 연출했다. 경기장은 푸른색의 한반도 단일기로 넘실거렸고 북측 여성참가자들은 형형색색의 한복으로 ‘하나’라는 숫자를 수놓아 열기를 고조시켰다. 개막식이 끝난 뒤에 참가자들은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쳐나와 손에 손을 잡고 흥겨운 무도회를 벌이며 한민족의 정을 나눴다. 남측 정부대표단은 개막식이 끝난 뒤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북측 박봉주 내각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공식적인 당국간 만남을 가졌다. 한편 남측 정부대표단의 숙소가 당초 주암·흥부휴게소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변경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13일 선발대로부터 숙소를 두 군데로 잡으면 행사가 원활치 않아 백화원 초대소로 합쳐졌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행사 편의를 위해서일 뿐이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백화원 초대소가 북측의 영빈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숙소변경은 극진한 예우 이상의 상징적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차례 회담을 가졌고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올해 중국의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방북했을 때의 회담장이 백화원 초대소였다. 이에따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가능성에 대한 청신호라는 관측도 나온다. 남측 정부대표단이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하자 북측 정부 대표단장인 김기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동영 장관에게 “김대중 선생님은 잘 계신가.”라고 안부를 물은뒤 “정동영 선생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정 장관은 “남측 정부 대표단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강한 의지”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평양 하늘에는 오후 들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부 대표단은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 지난 오후 5시 5분쯤 출발했다. 오전에 출발한 민간대표단은 일정대로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공동취재단·서울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獨 대십자공로훈장 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은 12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대십자(大十字) 공로훈장을 받았다. 대십자공로훈장은 김 전 대통령의 남북 화해 및 긴장 완화 노력, 한독관계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출신인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수여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에서 미하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가 훈장을 대신 전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수훈 연설에서 “독일은 우리가 군사독재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줬고, 제가 사형언도를 받고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독일 국민과 정부, 국회는 저의 구명을 위해 힘을 다해주셨다.”며 “독일은 또한 2000년 3월 베를린선언을 한 장소로서 이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계기가 됐다.”고 독일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같은 호텔에서 열린 6·15 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참석자 환영 만찬을 주재한 자리에서 만찬사를 통해 “6·15 공동선언은 대체로 양측이 윈·윈의 합의를 이룩해 낸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것은 민족의 화해 협력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우리 모두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서울을 꼭 방문하도록 우리 모두의 뜻으로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한·미 정상회담 진단] 美軍차에 한국여성 사망 부시대통령 유감 표명

    11일(한국시간)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언론회동을 가진 부시 미국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Mr.) 김정일’로 호칭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언론회동에서는 두 정상의 얼굴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게 비치기도 했으나, 양측은 회담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미국측이 표시하는 만족감의 강도가 강해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자 마자 “오늘 미군의 차에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의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안다. 여기에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하며 그 가정에도 조의를 표한다.”면서 한국민의 반미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회담 결과 설명에 나선 노 대통령은 “우리가 만날 때마다 항상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미간에 혹시 무슨 이견이 없는지 그런 걱정을 많이 하는데, 만날 때마다 항상 확인하는 것은 우리 사이에는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언론회동에 이어 65분 동안 진행된 업무 오찬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등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회담이 끝나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아주 훌륭한 회담(Excellent meeting)이었다.”며 “양 정상간 한·미관계와 북핵문제, 동북아 정세, 남북관계 등 아주 폭넓고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협의가 있었던 아주 유익한 회담이 됐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35분동안 접견했으며, 해들리 보좌관은 “정상회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측 인사들은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면서 “폭넓은 의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교환이 있어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정상회담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지난 회담이 다 좋았지만, 이번 회담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고 정상회담 미국측 실무준비자인 해들리 보좌관을 격려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盧-해들리 안보보좌관 ‘따로만남’ 촉각

    |워싱턴 박정현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오전 11시25분(한국시간 11일 0시25분)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언론회동·오찬회동으로 이어지는 회담 자리를 2시간 동안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가졌다. 노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지난 2003년 5월 이후 2년1개월여 만이다. 노 대통령은 백악관 ‘웨스트 윙’에 도착해 도널드 엔세냇 미국 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루스벨트룸에 들어선 뒤 방명록에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서명했다. 노 대통령이 이어 회담장인 오벌 오피스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부시 대통령은 “잘 오셨다(welcome,welcome).”고 두 번이나 말하면서 환영했다. 노 대통령이 영어로 “나이스 투 시 유(nice to see you·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자 부시 대통령은 영어로 “당신의 영어 실력이 내 한국어 실력보다 낫습니다.”라고 화답해 노 대통령은 웃었다. 부시 대통령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 이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소개하자 럼즈펠드 장관은 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영어로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이어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을 소개하자 노 대통령은 “(매클렐런 대변인을)TV에서 자주 봤다.”고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50분 동안 회담을 마치고 낮 12시15분부터 10분 동안 기자들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언론회동을 가졌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이어 12시25분(한국시간 11일 오전 1시25분)부터 오찬을 겸한 회담을 1시간 동안 가졌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오후 2시40분부터 30분 동안 스티븐 해들리 안보보좌관을 접견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에 취임한 해들리 보좌관이 노 대통령 예방을 희망해 이뤄진 것”이라면서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마이클 그린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 빅터 차 NSC 아시아담당 국장이 배석했다.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기억과 현실/이목희 논설위원

    1990년대초 한국과 베트남 수교 직후 하노이에 갔었다. 홍콩에서 탄 베트남 민항기는 프랑스인이 조종했다. 승객좌석에서 조종실의 윈도브러시가 작동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베트남 정부가 운영하는 영빈관에 묵었는데, 장급 여관보다 못했다. 천장에 벌레가 기어다녔고,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았다. 주요 국가건물에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경비요원을 보며 속으로 비웃기도 했다.“한국을 따라오려면 50년은 걸리겠구나.” 자만심도 가져봤다. 일정을 마치고 몇시간 비행으로 싱가포르에 도착하니 마치 별천지에 온 듯했다. 싱가포르 상공에 이르자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일행이 있었다. 6년쯤 뒤 다시 하노이를 방문하고 놀랐다. 거리가 깨끗해졌고, 한국 기업이 지은 호텔이 생겼다. 서울 못지않은 식당과 술집이 여러 곳 있었다. 며칠전 베트남의 발전상을 소개하는 TV방송을 보면서 또다시 놀랐다. 세 부류의 하노이 잔상 중 처음 방문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이제 현실은 아니다.1990년대 중반에 가봤던 인도·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화의 시대에 10년은 긴 세월이다. 기억은 과거로 묻어야 시대를 따라갈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이승만, 북진통일 좌절에 눈물”

    |로스앤젤레스 연합|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 당시 북진 통일이 좌절되자 자신앞에서 눈물을 흘린 일화를 이야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1972년 미ㆍ중 화해의 한국 아이러니’ 논문으로 박사 학위(국제정치)를 받은 국내소장 정치학자 김태완(37)씨는 지난 2003년 5월30일자로 비밀해제된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닉슨-저우언라이 베이징 회담 기록을 인용,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72년 2월23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베이징 영빈관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닉슨은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묻던 저우언라이의 질문에 “부통령이었던 지난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미국은 북진에 동의하지 않으며, 한국이 단독으로 북진을 고집한다면 이를 돕지 않겠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의지를 전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 것을 기억한다.”며 “한국인들, 남과 북 둘다 감성적이며 충동적인 국민들”이라고 말했다. 저우언라이는 “문제는 남북한이 서로 접촉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대화촉진을 주장했고, 닉슨도 “적십자 회담이나 정치적 접촉 같은 것”을 예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와 함께 이 회담에서 저우언라이는 중국과 북한이 백두산 천지를 양분했음을 미국에 구체적으로 처음 설명했다고 말했다.
  • 후진타오·쑹추위 12일 베이징서 회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을 방문중인 타이완 제2 야당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주석은 오는 12일 오후 3시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와 회담을 갖고 양안 관계 회복과 대화 재개 방안을 논의한다. 홍콩 언론 매체들은 후·쑹 회담에서는 지난 1992년 홍콩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92 공식(共識)’과 헌법상 하나의 중국, 그리고 양안간 3통(通航·通商·通郵)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고 보도했다. 후·쑹 회담후 합의 내용이 문서로 정리돼 발표될 예정이며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이 지난달 29일 후 총서기와의 국공 회담후 발표한 형식에 비해 더욱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후·쑹 회담에서 양안 관계 회복과 3통 실현에 진전이 있을 경우 베이징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비밀 철야 회담이 이어질 것이라고 타이완 언론들이 보도했다. 쑹 주석의 수행원 중 친진성(秦金生) 친민당 비서장이 대륙 방문 중 타이완 총통부와 긴급 연락 채널을 가동하고 있으며 쑹 주석과 측근 10여명의 숙소가 댜오위타이로 정해진 점 등도 비밀 철야 회담 준비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타이완 언론은 쑹 주석이 천 총통의 준 특사자격으로 방중했으며 천 총통의 메시지를 휴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쑹 주석은 이를 부인했으나 그의 이번 방중은 양안 정부간 교량 역할을 하는 ‘업무여행(工作之旅)’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oilman@seoul.co.kr
  • KBS 뉴스 앵커서 ‘라디오 DJ’ 변신 정용석 분당FM 사장

    KBS 뉴스 앵커서 ‘라디오 DJ’ 변신 정용석 분당FM 사장

    종군기자와 해외특파원을 두루 거친 퇴역 방송기자가 자그마한 동네 라디오방송국을 만들었다. 마이크를 계속 붙잡으려는 ‘관성의 법칙’이 직업병처럼 작용한 탓이다. 뉴스 앵커로 낯설지 않은 정용석(61)씨는 이달 30일부터 시험방송이 시작되는 분당FM방송의 신규 프로그램 준비로 무척 바쁘다. 정씨는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지역사회에 되돌려 주고 싶었다.”면서 “방송기자 34년의 경험과 ‘두드리면 열린다.’는 신념을 밑천으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23∼30일에는 이미 십여년 동안 동네 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30일부터 시험방송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당찬 자세로 유력 정치인들에게 질문을 쏟아붓는 정치부 기자에 마음을 빼앗겼다. 군복무를 마친 1967년 동화통신 수습으로 기자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1970년 KBS에 경력기자로 채용돼 자리를 옮겼다. 그의 기자 경력은 화려하다.‘방송기자의 꽃’인 9시 뉴스 앵커를 비롯, 특파원 11년, 정치부 기자 10년, 시사프로그램 MC 등 선망의 자리를 거쳤다. 다들 축복받았다고 했지만 여기에는 그의 숨은 노력이 짙게 배어 있다. “일본어를 배운 세대가 아니어서 1979년 도쿄특파원으로 파견됐을 당시에는 일어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NO’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못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히라가나’부터 익히려고 일본 현지에서 고군분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부산 출신이어서 발음에 스며있는 경상도 억양을 근성으로 씻어냈다. 매일 신문을 또박또박 읽으며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했다. ●‘히라가나’부터 시작한 도쿄특파원 그의 기억속에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인상 깊은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 전 의장을 서슬이 퍼렇던 독재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반대를 외친 집념의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이 전 의장은 공화당 비례대표로 의원생활을 시작했다. “당론을 따르지 않아 그는 10년이 넘게 공화당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할 당시 처음에는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의원총회를 가졌는데 대부분이 포섭됐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기자들은 문에 귀를 대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엿듣는다. 당시 총회장 밖에서 도둑취재를 하는데 이만섭 의원의 목소리만 들렸다는 것이다. 주일특파원이던 1982년, 도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사건도 기억이 또렷하다.“주일특파원은 조간신문을 살펴보고 아침 방송에 적합한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항상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 5시면 TV가 자동으로 켜지도록 해놓았는데 그날은 일장기가 화면에 나오지 않고 그냥 벌갰어요. 뉴재팬 호텔의 화재 현장이 나오고 있었던 거죠.” 뉴재팬호텔은 시내에서 가깝고 예전에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들어 있던 곳이어서 한국인에게 친숙했다. 한국 사람들이 그 곳을 즐겨 찾았다. “그런 호텔에 불이 났고 ‘한국인이 죽었다.’는 소리가 들려서 서울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침 6시 뉴스와이드에 ‘뉴재팬 호텔 화재 한국 사상자 있을 듯’이라는 1보를 냈습니다. 당시 김태동 과학기술처장관을 대표로 27명의 무역 사절단이 그 호텔에서 투숙했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사망하는 등 취재기자에게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중앙방송의 ‘사각지대’ 채우는 방송 “라디오는 시선과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친밀한 매체입니다. 자본금은 십시일반으로 마련 중이며 매체의 성격상 운영자금은 적게 들기 때문에 문제 없습니다.” 지난해 6월 지역사회단체인 분당정나눔실천연대 등과 함께 공동으로 분당FM방송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장비는 방송위원회, 소요 경비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무엇이 분당 사람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을까 고심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중앙뉴스가 아니라 노인이나 아줌마들에게 필요한 생활뉴스입니다. 분당 어느 백화점에 가면 무엇이 새로 들어왔는데 얼마만큼 싸다. 이런 정보에 날씨, 교통문제, 행사, 구청정보 등이 아닐까요.” 지난해 11월 일본 방문때 도쿄도(都) 세타가야구(區)와 무사시노시(市)에 위치한 소출력 라디오방송국 두 곳을 찾았다.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1995년 6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고베지진 때 사람들은 동네방송의 위력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중앙방송이 개인의 안부까지 속속들이 방송할 수 없었던 ‘사각지대’를 소출력 방송이 파고든 것이죠. 이후 소출력 방송국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현재 일본의 172개 FM방송국 가운데 절반이 흑자를 내고 있다.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광고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 등으로 수지를 맞춘다. 초창기 출력범위가 1W에서 지난 1999년에는 20W로 확대될 만큼 방송국의 외형도 커졌다. ●“마지막까지 마이크 안 놓으렵니다” “기자는 흥미를 가지고 작은 사건도 집요하게 파헤쳐야 합니다. 사소한 대화에서 1면 기사가 나올 수 있어요. 또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최근까지 시사정보 프로그램의 MC를 맡았던 그는 기자의 리포트와 방송 진행에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리포트는 규격된 틀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돌발상황이 많은 생방송 진행자는 지식과 경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년여 도쿄·런던 특파원을 하면서 외국의 본받을 점을 기획이나 특집으로 엮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서울의 오늘 뉴스만을 쫓다 보니 깊이 있는 기사를 만들지 못한 것 같아요. 또 쫓기다 보면 ‘다음 번에 와서 보자.’고 물러서는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죠.” 그는 영국이란 나라는 묵직한 무엇이 느껴지는 ‘권위 있는 국가’, 일본은 갑자기 부자가 된 나라로 평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국제정세에 어둡다는 느낌을 준단다. “제 소원은 마지막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걸어온 길 ▲1943년 부산 출생 ▲1965년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68년 동화통신 수습기자 입사 ▲1973∼1979년 KBS 정치부 기자 ▲1979년∼1986년 도쿄특파원 ▲1986∼1990년 뉴스파노라마 앵커, 특집3부장, 방송위원 ▲1996∼1999년 도쿄총국장 ▲1999∼2004년 11월1일 해설위원 ▲현재 분당FM방송 사장
  • “창업정신 다시” 현대家 뭉친다

    “창업정신 다시” 현대家 뭉친다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현대가(家)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매개체는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그룹의 모태에 뒤늦게나마 정 명예회장의 흉상을 세우고 추모 사진전을 여는가 하면, 기념관 건립을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창업주의 추모사업이지만 ‘경영권 분쟁’ 등을 거치면서 분열된 현대가의 결속력을 다지고 뿌리를 되찾으려는 ‘현대 바로세우기’ 작업으로 풀이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는 그룹의 뿌리인 현대건설과 정 명예회장이 말년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서산농장에 ‘정주영 흉상’을 세운다. 현대건설은 오는 5월24일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 1층 로비에서, 서산농장은 다음날인 25일 간척지내 영빈관에서 각각 제막식을 갖는다. 현대건설 창립 58주년(5월25일)에 맞춰 ‘현대건설 고향지킴이 모임’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행사다. 이 모임은 자금난으로 현대건설이 채권단 손에 넘어가자 “현대 정신 만큼은 지키자.”며 현대건설 전·현 임직원이 주축이 돼 결성했다. 회원수만 3000여명으로 그동안 2억여원의 성금을 모았다. 정 명예회장의 흉상은 7남 몽윤씨가 이끄는 현대해상 사옥에도 세워져 있지만 현대건설과 서산농장은 창업주의 물질적·정신적 고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정 명예회장의 4주기 기일에 맞춰 21일부터 열고 있는 공동 ‘추모 사진전’에 현대백화점(3남)·현대상선(다섯째며느리)·현대중공업(6남)·현대해상(7남)·현대건설 등 범 현대가가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뿌리찾기와 무관치 않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은 개막 첫날 전시회장을 직접 둘러보며 고인의 창업정신을 기렸다. 정 명예회장의 기념관을 세우는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6남인 정몽준 의원은 전날 형수인 현 회장 등과 함께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을 찾은 자리에서 “아버님의 사진과 편지, 유품 등이 잘 정리돼 체계적으로 관리됐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가족들간에 이미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를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념관 건립은 실질적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맡고 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기념관 건립용’ 서산간척지 부지 매입이 땅주인(채권단)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불발에 그친 것으로 드러나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형제간의 공동 성묘는 비록 무위로 끝났지만 갈수록 합류하는 인원이 늘고 있어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다음달 초 또다른 가족 회동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현대건설 고향지킴이 모임’ 임동진(현대건설 노조위원장)회장은 “가족이나 현대맨이나 정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을 되새겼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美 대한반도 정책’ 세미나

    외교안보연구원(원장 한태규)은 17일 오후 2시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장관 등을 초청,‘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연다.
  • 이건희회장, 전경련 회장 또 고사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은 14일 서울 한남동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이 회장을 만나 재차 설득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로써 차기 전경련 회장 선출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처지에 놓였다. 이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전경련 회장직을 맡기에는 아직 무리”라면서 “거듭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또 “제가 회장을 맡아서 재계 단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 혹은 전경련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을까 등을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긍정적인 답을 구할 수 없었다.”면서 “회장단의 의견을 따르지 못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전경련 회장단은 이 회장의 거듭된 고사와 관련해 “건강 때문에 회장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데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지 않으냐.”면서 이 회장의 뜻을 존중키로 결론을 내렸다. 전경련이 결국 이 회장 ‘모시기’에 실패함에 따라 강신호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오는 23일 총회 전까지 제3의 인물을 추대하기에는 시일이 촉박할 뿐 아니라 현 회장단에서도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강 회장이 지난해 10월 이후 고령을 이유로 연임 불가를 줄곧 밝힌 만큼 이를 어떻게 철회시키느냐가 관건이다. 현명관 부회장은 차기 회장과 관련해 “회장단 내에서 추대위원회를 구성, 이번주 안으로 차기 회장을 추대할 계획”이라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만큼 추대위원회 결의에 반하는 행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만찬을 겸해 이뤄진 이날 면담에는 강 회장과 현 부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등 7명이 참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부패 많은 기관 조직 감축

    부패가 빈발하는 공공기관은 앞으로 조직과 인력이 감축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정부사업계획을 세울 때는 반드시 부패방지계획을 덧붙이는 ‘부패영향평가제’가 도입되고, 시민단체와 정치권, 재계, 정부 등 각계가 참여하는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이 추진된다. 정부는 3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부 주요기관장과 각계 인사 1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5년 부패방지평가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성진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부패방지 5대 추진방향을 설명하고 부패영향평가제 등 구체적 추진과제들을 보고했다. 정 위원장은 “올 하반기부터 부패영향평가제를 본격 시행, 법을 제·개정할 때 공무원들의 과도한 재량권을 적극 차단해 부패발생 요인을 줄이고, 일정규모 이상의 정부사업계획에는 반드시 부패방지계획을 첨부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패방지위는 이와 함께 부패가 빈발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한 제도개선에 소극적인 기관에 대해서는 조직과 인력을 삭감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부방위 관계자는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자치단체, 시·도교육청, 주요공기업 등 90여개 기관이 우선 점검 대상”이라고 밝혔다. 부방위는 특히 인사·교육·법조 등 3대 분야를 부패방지 사각지대로 꼽고, 이들 분야의 부패비리를 근절할 제도적 방안을 중점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정 위원장은 “공기업 인사의 투명성을 강화할 방안이나 국민의 법 감정과 다른 형사처벌, 교육계 촌지 근절 방안 등이 검토 대상”이라고 밝혔다. 부방위는 이밖에 ‘부패전력자 실격제’를 도입, 과거 비리행위를 저지른 사업자는 정부사업 발주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인·허가 때 일정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재계·시민단체 등 4개 주체가 참여하는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을 이달 말 체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부패청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 불신하고 새로운 갈등의 소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잘할 수 있게 격려해 가자.”면서 “모든 사회가 한꺼번에 각 분야가 함께 따라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는 지혜로운 부패청산운동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기업의 투명성과 관련한 집단소송제도 문제에 관해 과거의 분식을 어찌할 것이냐를 놓고 우리 사회가 고심하고 있다.”면서 “그런 고심을 해가면서 서로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저항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정현 진경호기자 jhpark@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이건희회장, 전경련회장 사실상 거부

    [재계 인사이드] 이건희회장, 전경련회장 사실상 거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사실상 고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은 20일 서울 한남동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이 회장을 직접 만나 전경련 회장직 수락을 공식 요청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정부와 손잡고 어려운 경제를 풀어가야 할 시점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이 회장께서 회장직을 맡아달라.”면서 최근 회장단회의에서 이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한 사실을 전달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재계 원로들이 직접 찾아오게 해서 우선 송구스럽다.”면서 “건강 문제와 잦은 해외 출장, 삼성의 신성장 동력 발굴 등으로 전경련이나 삼성 양쪽 모두의 발전에 저해될까 우려된다.”면서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강 회장은 그러나 “건강과 해외 스케줄에 문제가 안되도록 업무 부담을 줄이도록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도 “이 회장께서 고사할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재계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면서 “재계 전체를 위해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학수 삼성 부회장은 “삼성은 현재 이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 만큼 앞으로 1∼2년간 삼성 경영에 전념해야 한다.”면서 회장단의 이해를 요청했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은 “회장단이 강권하다시피 회장직 수락을 요청했음에도 이 회장께서 고사했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앞으로도 이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삼고초려’는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재계는 이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전경련과 삼성측은 다음달 총회 직전까지 물밑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이 회장이 아닌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차기 회장의 윤곽은 다음달 총회 때까지 ‘안개속’을 헤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편 이날 면담에는 강 회장과 현 부회장, 송인상 효성 고문, 김준성 이수화학 명예회장,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허영섭 녹십자 회장 등 회장단과 고문 8명이 참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뉴스플러스] 정부, 알제리 경제개발 참여

    알제리 정부는 500억 달러 규모의 경제개발 계획인 ‘알제리 현대화 사업’에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압델 라지즈 벨카뎀 알제리 외무장관은 18일 알제 시내 영빈관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가진 회담에서 이 같이 요청했으며, 반 장관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신현석 외교부 공보관이 전했다. 알제리측은 특히 시디-압델라 과학신도시 건설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알제리의 IT분야 현대화에 한국의 선진기술과 경험을 전수받고 싶다는 점을 밝혔다.
  • 이건희회장 수락할까

    이건희회장 수락할까

    삼성의 부정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13일 차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이건희 삼성 회장을 공식 추대했다. 이 회장이 일단 고사할 것으로 보여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전경련 회장단 13명은 이날 월례 회장단 회의를 열어 이 회장을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으로 추대키로 결정했다. 또 강신호 회장과 현명관 상근 부회장 등 회장단 5∼6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이른 시일 안에 이 회장을 직접 만나 회장직 수용을 요청키로 했다. 원로 회장단을 ‘설득조’로 투입함으로써 이 회장을 심리적으로 옥죈다는 포석이다. 현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승지원(삼성 영빈관)이든 어디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이 회장을 만날 작정”이라면서 “날짜는 삼성측과 조율해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차기 회장직과 관련해 이 회장의 의중을 타진해본 적은 전혀 없다.”면서 “직접 만나 회의결과와 만장일치 추대 배경을 절절이 설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 부회장은 이 회장을 추대한 배경에 대해 “우리 경제가 중대 전환기에 와 있는 만큼 재계를 대표할 실질적 분이어야 하고 재계 단합을 위해서도 재계를 리드할 분이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얼마전 “(이 회장이) 그룹 경영에 전념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기여하는 길”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모시는 분의 견해이지, 이 회장의 의견은 아니지 않으냐.”며 애써 희망 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본부장의 발언이 이 회장의 의중 확인을 거치지 않고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 회장이 회장직을 수락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재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처남(홍석현)이 최근 주미대사로 발탁된 점도 이 회장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이유 중 하나다. 거꾸로 회장직을 고사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이기도 하다. 공식추대 사실에 대해 삼성측은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경제 올인을 선언한 참여정부가 이 회장을 어떤 카드로 압박하느냐가 최대변수”라고 내다봤다. 현 부회장은 “이 회장이 고사하면 임시 회장단 회의를 열어 다시 논의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상황은 가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면서 정 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회장과 LG 구본무 회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 부회장은 “조만간 두 분 회장님도 찾아뵙고 이건희 회장을 추대한 배경에 대해 양해를 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론 정 회장측도 펄쩍 뛰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슬로바키아 공장 등 벌여놓은 해외사업이 너무 많아 다른 일에 눈돌릴 겨를이 없다.”고 전했다. 회장 선임을 위한 전경련 총회는 다음달 23일 열린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삼각지로터리 일대

    [뒷골목 맛세상] 삼각지로터리 일대

    남산타워에 올라 남산 기슭에서부터 비롯하여 한강에 이르기까지 푸르게 치달려 내려가는 호로병 형태의 드넓은 녹지대를 바라다보면, 무심코 어어!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얼핏 사실로 믿기지 않아서이다. 서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녹지공간이 있다니! 울창한 숲과 잔디밭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서양식 가옥들이 들어선 이국적인 공원 같은 경관은 분명히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녹지공간을 좀더 자세히 바라다보면, 시각적인 구도에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 녹지공간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도로며 건물들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너무 쉽게 눈에 뜨인다. 남산 기슭을 입구로 하여 호로병 형상인 녹지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는 도로며 건물들은 어쩔 수 없이 초라하고 볼썽사납다. 가운데 있는 녹지공간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반대급부로 호로병 바깥 공간은 더욱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60·70년대식 후진 골목… 개발 바람도 잠잠 아름다운 녹지공간은 다름 아닌 미8군사령부다. 용산 동쪽의 대부분을 차지한 채 헬리콥터장이며 골프장까지 갖춘 미8군사령부의 녹지공간을 다치지 않기 위해, 잠수교나 동작대교 같이 한강을 건너 서울 중심부로 달리는 도로들은 왜곡되어 호로병 형상 바깥으로 빙 둘러간다. 어디 도로뿐이랴. 주변의 건물들마저도 군사상 고도제한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불가능하게 되는 바람에 오래된 일본식 적산가옥 따위들만이 호로병 바깥에 무슨 부스럼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런 식이다 보니 삼각지 로터리 어름에 붙어 있는 국방부며 전쟁박물관도 어쩔 수 없이 미8군사령부의 그늘에 가린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전쟁박물관은 육군본부가 들어서 있던 자리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녹지공간 바깥의 호로병 지역에서도 가장 흉물스러운 곳은 삼각지 로터리 부근이었다. 역시 군사상 고도제한에 묶인 데다 주변의 한남동이나 이태원 등은 주로 미8군 소속의 미군들이 즐겨 찾는데 반해, 삼각지 로터리 부근만은 주로 우리 육군본부 소속 군인들이 즐겨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거리며 건물 자체가 다른 곳보다 더 쇠락해진 것이다. 지하철 4호선의 삼각지역에서 내려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단층짜리 우리은행 건물을 돌면, 바로 60,70년대식의 복고조 뒷골목이 나온다. 낡은 적산가옥 건물에 영빈관이라는 중국집이며 오래된 이발관이 있는 뒷골목의 어디에선가는 금방이라도 ‘친구’나 ‘효자동 이발사’ 시대의 주인공들이 뛰쳐나와 한판 싸움을 벌일 듯한 분위기인데, 여기가 바로 70년대 우리의 국민가수 배호가 낮고 흐느끼는 듯 특이한 음색으로 심금을 울린 ‘돌아가는 삼각지’의 본고향이다. 배호의 특이한 음색이 당장에 겨울바람을 타고 긴 꼬리처럼 귓바퀴에 맴돌 듯한 ‘돌아가는 삼각지’에만은 용산 일대에 거세게 불고 있는 개발 바람도 아직 다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가 또한 주민등록식 지번으로는 용산구 한강로 1가에 속하는 이른바 속칭 ‘대구탕골목’이다. 한때 육군본부나 국방부에 근무하는 장교들이며 사병들이 한번쯤은 들르지 않은 이가 없고 그렇게 이곳에 들렀다가 전후방으로 전출해 간 장·사병들 사이에 그 맛을 연연해한 끝에, 삼각지의 대구탕 골목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민간인들보다 군인들 사이에서 먼저 유명해진 골목이기도 하다. 얼핏 둘러보아도 원대구탕, 자원대구탕, 세창대구탕, 참원조대구탕, 등의 간판들이 골목 안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대구탕 골목이라고 해서 딱히 대구탕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양곱창이며 차돌박이를 주로 하는 평양집이며 봉산집이 있고, 이겹살이며 모소리살 같은 돼기고기 특수부위만을 전문으로 하는 삼각정이며 신가생태매운탕 같은 뛰어난 맛집들이 섞여 있다. 어떻게 보면, 고도제한이라는 불리한 지역적 특성이 오히려 서민적인 맛집들을 버려진 들판의 야생화처럼 아름답게 꽃피워낸 것인지도 모른다. ‘원대구탕’(02-717-8222)은 2001년에 작고한 손양원씨가 1979년에 이 골목에 처음으로 대구탕을 시작한 대구탕 골목의 원조격이다. 그러나 그이가 처음부터 이 골목에서 대구탕집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경북 의성 출신인 그이는 원래 같은 골목에 있는 이발소 주인이었고, 부인인 김명희씨가 지금의 ‘자원대구탕’ 자리에서 보신탕집을 했는데, 워낙에 장사가 안 되니까 대구요리로 메뉴를 바꾼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탕, 대구지리, 내장탕으로 대구요리 일색인 단순한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싼 가격에 비해 양이 많으면서도 맛 또한 뛰어나서 주로 육군본부 소속 군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진 때문이었다. ●군데군데 양곱창·차돌박이 등 서민적인 맛집 손양원씨는 이발소마저 때려치우고 부인과 함께 식당일에 매달렸고, 가게는 날로 번성해갔다. 그러자 원래 중국집을 하던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게를 비울 것을 통고해왔다. 그리고 가게가 비자마자 바로 ‘자원대구탕’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구탕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간판에 ‘자’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쓰고 ‘원’자를 크게 쓰는 식이었다. 그이가 낙담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바로 옆 가게가 전세로 나왔다. 그이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조리 모아 전세를 얻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원대구탕’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지금은 아들인 손석호씨가 원대구탕을 운영하고 있고, 딸인 손숙연씨는 금천구 시흥동에서 역시 같은 상호로 대구탕집을 운영하면서 2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양쪽 모두가 대구탕, 대구지리, 내장탕이 6000원씩인데, 대구탕이며 대구지리는 다 먹은 후 공기밥을 넣어 볶아먹을 수 있다. 지하철 삼각지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신아트와 원아트라는 그림재료를 파는 가게의 간판이 보인다. 그 사이로 겨우 리어카 한 대 지나다닐 만한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집’이라는 국수집을 찾을 수 있다. 탁자가 겨우 4개뿐인 서너 평의 좁고 허름한 공간이지만,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할머니 되는 배혜자씨나 그이의 따님 되는 김진숙씨와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만다. 세상에 이렇게 순하고 착한 눈빛을 지닌 이들이 또 있으랴. 그런 느낌으로 온국수를 시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과 함께 국수 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또 한번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세상에 이렇게 맑으면서도 진한 국물 맛이 또 있으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취재를 갔다가 온국수 국물을 훌훌 마시면서, 나는 몇 번이고 까닭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말하기 좋게 선의(善意)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이렇듯 선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선의의 음식을 맛본 적이 얼마만인가. 옛집의 두 모녀가 지닌 선의는, 음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 음식을 먹을 손님을 생각하고, 손님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그런 선의이다. 나는 저녁이 늦어 이미 다른 집에서 식사를 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번이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면서 온국수 한 그릇에다가 김밥 한 줄까지 꾸역꾸역 다 먹어냈다. 만일에 조금이라도 남긴다면 자칫 벌이라도 받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손님의 입맛·주머니 사정부터 헤아려 원래 국수집을 하던 가게를 인수받아 배혜자씨가 1981년에 국수집을 하며 다시 24년이 지났다. 그동안에 단골손님들이 어떻게 하면 그렇듯 맛깔스러운 국물 맛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면, 그이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비법은 무슨 비법이 있겄다요?있다면 손님을 생각하는 정성이제라우.” 큰 들통에 멸치와 다시마, 양파 등을 넣고 4시간 동안 은은한 연탄불로 오래 끓여낸 다음에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여 국물을 만들어 낸다.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라 한 여름에도 연탄불에 끓여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언젠가는 이제는 편하게 장사를 하라는 자녀들의 등쌀에 못 이겨 가스불로 바꾸었지만, 국물 맛이 나지 않아 당장에 다시 연탄불로 바꾸었다. 국물에 넣는 다데기는 해남에 사는 시누이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무공해로 기른 청양고추를 오래 곰삭혀서 재료로 사용한다. 이 집의 주메뉴인 온국수는 2000원이고, 비빔국수가 2500원, 칼국수가 3000원, 수제비가 3000원, 김밥이 1500원, 여름에만 하는 콩국수가 5000원이다. 손님이 원하면 얼마든지 무료로 사리를 더 준다. 얼마 전에 한 가지 메뉴를 추가했다. 이른 아침에 오는 단골손님들이 아무리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다지만 김밥을 먹는 것이 가슴 아파서,2000원짜리 우거지국을 팔게 된 것이다. 단 우거지국은 아침 9시까지만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 시내에서 4식구의 일가족이 외식을 할 수 있는 식당 3곳을 뽑는데, 옛집이 당연히 들었다. ● 걸인도 다독이는 따스함 옛집의 벽에는 모 방송국 PD가 쓴 글이 걸려 있다. 그 글 중의 일부분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삼각지 근처의 국수집 하나를 촬영했을 때의 일입니다. 멸치국물로 진하게 우려낸 국수와 속이 알차 보이는 김밥 정도가 메뉴의 전부이지만, 한 끼를 거뜬히 때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진짜 우리 할머니 같은 주인의 마음씨가 더해지면, 아무리 양이 많은 이도 그득해진 배와 벌어진 입을 추스르며 가게문을 나세게 되는 집이었습니다. 방송 다음날 무심코 제 앞의 전화가 울려서 받았습니다. 한 40대 정도의 남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거기 갔다온 PD를 찾아서 당사자임을 밝혔더니 갑자기 귀가 따가워졌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뒤바뀐 사람입니다.” 황당한 서두였습니다만, 그의 이야기는 길었습니다. 그는 15년쯤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털어먹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앞을 배회하는 서글픈 인생이 된 거죠. 하루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용산역 앞에 늘어선 식당들 앞에서 밥 한 술을 구걸했지만, 그는 어느 곳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답니다…. 박절한 세상인심에 그는 반미치광이가 되어갔습니다.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갔으나 모든 곳에서 박대를 받고나오며 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었지요. 한 집 한 집 지나쳐가다가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간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의 비루한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며 선선히 맞아주었습니다. 허겁지겁 국수를 퍼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뺐었다네요. 그러더니 할머니는 삶은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가져다주더랍니다. 거의 두 그릇 양은 됨직한 국수를 다 털어넣은 뒤에야 할머니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그냥 가, 뛰지 말어, 다쳐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하던 세상,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이 쳐둔 얼음장 속에 숨막혀 가던 자신에게 할머니의 말 한 마디는 그야말로 따스한 불씨 한 조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얼마 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파라과이로 혈혈단신 이민을 떠났습니다.
  • 목회자로 변신 양동생 전 대우조선 노조위원장

    목회자로 변신 양동생 전 대우조선 노조위원장

    한국 노동운동에서 전 대우조선 노조위원장 ‘양동생(52)’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군부의 폭압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987년 대우조선 초대 노조위원장에 선출돼 3년간 강성 노조를 이끌었다. 연이은 분신 등 투쟁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대우조선사태를 보려고 9시뉴스를 보는 이가 적지 않았을 정도다. 대우조선 투쟁을 보도하기 위해 국내 취재진은 물론 외신기자들까지 거제 바닷가에 다 몰렸다. 노동계의 동투(冬鬪)가 급피치를 올릴 무렵 많은 이들이 그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투쟁강도가 세면 셀수록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투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접고 개척교회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여러 날 수소문한 끝에 그의 소재지를 알아냈다. 통화가 되기 무섭게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알려준 대로 서울 양천구 신월2동 한양중앙교회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는 이 교회 담임목사였다. ●운명과도 같았던 노동운동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어서일까.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국내외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강성 노조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없었다. 첫인상이 그처럼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양 목사는 그저 옛날 일이라며 이내 인터뷰에 응했다.“아마 그때가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시기일 겁니다. 경제 중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특혜를 줘서라도 기업인들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상대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거셌습니다.” 양 목사는 당시 시대상황을 기업인에게는 특혜, 노동자에게는 탄압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했다. 그는 노동법을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지만 탄압국면을 맞닥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고 했다. 임시 노조위원장에 이어 87년 8월 대우조선 초대 직선 노조위원장에 선출된 그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노조설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두달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싸웠습니다. 결국 거제군청으로부터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받아냈지요.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대우조선 노조가 설립된 것입니다.”이를 계기로 현대 등 대기업 중심의 노조설립 투쟁이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투쟁원칙에 충실했다. 노조 설립은 회사를 상대로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양 목사는 “졸다가 걸리면 바로 징계를 받고 뼈 빠지게 일해도 분배가 안되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할 투쟁대상이었다.”며 인권보호와 작업환경 개선, 임금 인상 등을 주요 교섭안건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가 있어야 회사가 있고 회사가 있어야 조합이 있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우조선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대정부 투쟁으로 투쟁의 본질이 급격히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이를 주사파의 개입 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자신의 원칙이 대중에 의해 휘둘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감옥에서 쉬고 싶을 정도로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우중 회장과의 일화도 공개했다.“88년 봄으로 기억합니다만 김 회장이 ‘게스트하우스’(영빈관)에서 독대를 요구했어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대우조선 때문에 다른 대기업 노조들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다면서 정부가 시범 케이스로 대우조선을 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회사를 정리하겠다고 말합디다. 피가 거꾸로 솟았지요.” 양 목사는 이런 김 회장을 새벽 4시까지 설득했다고 말했다.“당신이 좌절하면 안된다.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이후 그는 3만여 조합원을 모아놓고 건전한 노조, 합리적인 노조로 가겠다고 선언한 뒤 75%의 조합원으로부터 찬성 서명을 받아냈다. 이어 DJ(김대중)·YS(김영삼)·JP(김종필) 등 야당지도자를 차례로 만나 건전한 노조로의 탈바꿈을 약속하고 회사를 없애려는 기도를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중앙일간지 편집국장들도 다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임기1년 남기고 목회자의 길로 89년 12월 양 목사는 중대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집사였던 양 목사는 노조위원장 임기가 1년여 남았지만 떠날 것을 결심한다. 노동운동이 어느정도 정착된 만큼 목회자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양 목사는 당시 ‘서울로 올라가라.’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가족과 함께 무작정 상경했다고 밝혔다. 이 때부터는 노동운동과도 절연했다.TV도 없애버리는 등 세상일과 등을 졌다. 언론과의 인터뷰 요청도 모두 물리쳤다. 본지와의 인터뷰가 노조위원장을 그만둔 뒤 처음이라고 밝혔다. 서울에 올라온 그는 구로구 궁동에 있는 연세중앙교회에 둥지를 틀었다.10년간 목사가 되기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안수집사, 전도사, 목사고시를 거쳐 99년 11월 양천구 신월2동에 한양중앙교회를 개척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서 태어난 그는 YS와 같은 고향이다. 찢어지게 가난해 고등학교를 못갔다. 나중에 방송통신고를 졸업했다.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시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 군에 다녀온 뒤 77년 대우조선의 전신인 조선공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지나 한국의 노동판을 완전히 뒤바꾸는 중심 인물이 된다. 양 목사는 노동운동은 ‘공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독불장군식으로 해서는 다 깨진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조차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고 비판한 대목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노동계에 충고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seoul.co.kr
  • 盧대통령 “돌팔매 맞고 막느라 정신 없었다”

    盧대통령 “돌팔매 맞고 막느라 정신 없었다”

    “(언론과)건강한 긴장관계가 아니라 건강한 협력관계를 맺기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와 외신기자 130여명을 초청한 송년만찬에서 언론에 이례적으로 애정을 보내는 덕담을 하면서 협력관계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이 보내준 믿음과 사랑의 표현을 느끼면서 마음이 찡했고,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여러분들은 대통령과 참모들을 지켜보면서 뭘 쓸지 고민하면서 참 팍팍했을 것”이라고 인사말을 꺼냈다. 노 대통령은 “2003년을 돌이켜보면 심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 “이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과정이 세련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지난 1년10개월을 돌이켰다. 이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돌팔매를 맞고, 피하고,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서 “쫓기는 2003년이 아니었나 싶고,2004년 상반기까지 쫓기면서 지내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가슴 뭉클한 기사도 있고 ‘이건 아닌데’하고 짜증도 났지만 한지붕 밑에 사는데 만나는 것도 적고 팍팍하게 보냈다.”면서 “마음의 빚이 있다.”고 털어놨다. 노 대통령은 “새해에는 건강한 긴장관계가 아니라 건강한 협력관계를 맺고, 더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었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공직사회·기업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발전에 큰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과연 자랑스럽기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미흡한 점도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내년에 이 자리에서 한국정치와 대통령이 진일보한 모습으로 만나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까지 참모들이 언론관 변화를 느낄 만한 얘기는 없었다.”면서 “일단은 덕담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개각과 관련해 “결코 큰 폭이 아니라 땜질하듯 아주 조금만 할 생각”이라면서 “아직 개각에 대한 제 마음도 다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찬에서는 노 대통령의 민생현장 방문 영상이 상영됐다. 만찬은 1시간50분동안 진행됐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공예문화진흥원 ‘산업발전 오찬회’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이사장 장윤우)은 28일 낮 12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공예인들을 초청하여 ‘공예산업발전을 위한 송년오찬회’를 갖는다.
  • [재계 인사이드] ‘썰렁한’ 전경련 회장단 회의

    전경련 월례회장단 회의는 ‘무늬’만 회장단 회의(?) 올들어 총 9차례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단골 총수’들만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단 회의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회장단 21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참석한 회의는 3,9,10월 등 3차례에 불과하다. 그나마 9월은 7,8월 휴회 뒤 열리는 회의여서 과반수를 간신히 넘긴 12명이 참석했다.10월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초청으로 13명이 참석한 것이 고작이다.3월에는 전경련이 총력을 쏟고 있는 ‘기업도시추진위원회’ 구성이 논의되면서 그나마 12명이 참석, 체면치레를 했다. 나머지 회장단 회의에는 7∼8명 정도만 참여하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지난 6월 회장단 회의에는 5명만 참석했으며,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현명관 부회장을 빼면 실제 참석자는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 풍산 류진 회장, 삼양사 김윤 회장 등 3명에 불과했다. 이른바 ‘빅3’ 중에서는 삼성 이 회장만 10월 회의 때 서울 한남동의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회장단과 원로자문단을 초청해 만찬 간담회를 갖는 형식으로 한 차례 참석했을 뿐이다. 지난 99년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 전경련이 취한 입장에 대해 다소 서운한 감정을 가져온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이후 회장단 회의에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도 2002년 5월 회장단회의 참석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회장단 21명 중에서는 강 회장과 현 부회장 이외에 삼보컴퓨터 이 회장, 삼양사 김 회장,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삼환기업 최용권 회장 정도만 비교적 자주 참석하는 총수로 꼽혔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의견을 결집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활발한 논의는 고사하고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의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겠느냐.”면서 “월례회의를 분기별 회의로 전환하고 회장단이 모두 참석해 대외적으로 단결을 과시할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경련은 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회장단·고문단 송년모임을 갖고 강 회장의 사퇴의사 표명으로 공론화된 차기 회장 인선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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