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부당의 어려움/석지명 청계사 주지(시론)
○어느 신자의 상담에 당혹
지역감정으로 인해 온갖 오해와 고통을 받아온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오랫동안 불편부당을 외쳐 왔었다.그래서 새 정부 인사에는 여러 측면에서 치우침이 없이 사람을 뽑을 것으로 기대했었다.먼저 내정된 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을 보고 능력,지역,보혁성향 등이 골고루 참작된 것으로 생각했다.한 수석의 과거 진보 성향에 대해 특정 신문의 염려가 있었지만,그것을 새 당선자의 보좌진 가운데는 특출한 인물들이 많은 징표로 짐작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 불교신자가 탄식조로 나에게 상담해 왔다.새 정부의 대통령,영부인,총리,여당 총재,대통령 비서실장,경호실장,청와대 수석 모두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여기서 기독교란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를 뜻한다.새 정부의 우두머리에 불교인이나 무종교인이 한 명 없이 모조리 기독교인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역,종교,정치,인맥 등의 인연을 들먹이며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인연을우선적으로 생각해서,그 집착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만 머리와 입에 떠올릴 것이다.또 지역적 편향과 종교적 편향 사이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 것도 싱거운 일이다.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편리한대로 중요성을 말할 것이다. 지역 패권주의의 분쇄와 지역등권론을 외치던 이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종교적 패권주의로 나가면서도 자기는 이 땅에서 불편부당을 실현하려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나는 물러나고 들어설 두 대통령이 기독교에 치우치고 기독교인의 울타리로만 둘라싸여 있게 된 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의 민주화 투쟁 인정
저분들은 과거에 민주화투쟁을 해 오면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불교인들이 호국불교라는 믿음 아래 무조건적으로 군사독재자들을 지원하고 있을 때에,기독교인들은 저분들을 보살피고 뒷받침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외쳤었다.지금까지 정치생명을 지켜오고 정권을 잡기에 이른데도 기독교인들의 공이 많았다.
이 땅의 안보를 돕는 미국과의 관계도 있다.박정희전 대통령이 미국의 비위를 거스리고 핵개발을 시도하다가 미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말은 공공연히 펴져있다.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정치생명이나 육신의 목숨이 끝장난다.김당선자가 일본으로부터 납치되었을 때,5공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또는 여타의 경우에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에는 미국과의 연결망이 있다.불교에는 없다.그래서 5공 때에 불교는 큰 법난을 겪었다.앞으로 경제를 해결하는데도 미국의 도움이 있어야한다.그러니 김당선자에게는 기독교와 미국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고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 시대의 일시적인 현상
특별히 종교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뽑고 보면 기독교인 뿐일 수도 있다.또 강대국의 문화가 종교와 함께 힘을 쓰고 확산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어찌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저 상담자에게 무어라고 대답해야 하나.불교의 이상은 대결의식을 가지거나 속세적인 권력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정권을 잡고 누릴만큼 유능한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은 이 시대의 일시적인 현상이다.앞으로 무상법은 어떻게 틀을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또 기독교인들만 청와대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 관심사는 종교가 아니다.저들의 고민은 나라 경제를 되살리는 일뿐이다.
○국민의 여려 종교 보살펴야
내가 있는 곳의 시장은 골수 기독교인이다.그렇지만 절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려 한다.득남을 하고는 작명을 상의하기도한다.청와대의 기독교인들도 저 시장처럼 공평하게 국민의 여러종교를 보살피면 될 것이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모든면에서의 불편부당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새정권은 그것을 줄기차게 추구해야한다.“민주”“국민정부”“불편부당”은 같은 맥락의 말이 아니던가.하다못해 청와대 청소부를 뽑는데서라도 종교적 치우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