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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복② “데뷔 48년차 원로…제자는 문하생 아냐”

    이원복② “데뷔 48년차 원로…제자는 문하생 아냐”

    ☞<1부에서 계속>  ● 먼나라 이웃나라 ‘초대박 스테디셀러’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만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그렸다. 주인공들이 전세계를 다니며 각국 역사와 특성들을 소개한다는 내용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이 교수가 그림 표절을 인정(치바 테츠야의 ‘오뚜기행진곡’)하고 작품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에서 만화 활동도 하면서 또 다른 업적을 쌓았다. 1984년 독일 일간지 ‘알게마이네 차이퉁’ 창간 150주년 기념 포스터와 기념 만화를 그리게 된 것. 이 교수가 서양미술사 박사 과정을 밟을 때 만화 스타일로 일러스트레이션 졸업 전시회를 했는데 ‘신선하다.’고 화제를 모았고 그 소문이 이 신문사 사장에 들어간 뒤 만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981년부터는 소년한국일보에 ‘먼나라 이웃나라-유럽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원복표’ 만화를 있게 만든 시발점이었다. 해외여행은 물론 외국에 관한 정보가 생소했던 시절, 그가 다룬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유럽편-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단행본으로 나왔고 그 뒤에 일본·한국·미국을 다뤘다. 최근에는 중국편을 한 종합일간지에 연재 중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1500만부 이상이 팔리며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 “제자들은 문하생 아닌 동료 개념”  그는 작품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에서 보고 느낀 걸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만화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 당시만 해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는데, 내 만화의 화두는 국제화와 세계화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교 2학년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48년이 지났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들이 나이가 들어 건강을 이유로 활동을 접었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다.  덕성여대 예술학부 시각디자인전공 교수가 된 것도 그의 작품 활동기간을 늘린 계기가 됐다. 제자들과 함께 작품을 그리면서 작업이 한결 수월해 졌다. 그가 칸을 나누고 대사와 밑그림을 완성하면 제자들이 채색을 하는 식이다. 정작 이 교수는 문하생 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문하생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방법은 비슷할지 몰라도 문하생이 아닌 직장개념”이라며 “문하생은 도제식으로 일일이 다 배우는 걸 뜻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기본기를 쌓은 친구들의 능력을 인정해 협동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자들도 역사·지리·미국 영부인 등 이 교수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분야의 책을 냈다.  ●“내 만화에도 상상력이 필요”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 그는 역사·정치·문화·와인소개 등 교양 부문에 집중한다. 만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특징인 ‘상상력을 배제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이 교수는 “그래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역사는 과거에 벌어진 일로 그걸 기록한 책마다 내용이 다른 게 많다. 그런 부분을 다 취합해 어느 것이 맞을까를 고민할 때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앳되게 웃는 얼굴이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데뷔 48년차에 접어든 ‘원로 작가’다. 현재 나이 예순넷. 여전히 정열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더니 “만화를 그릴 때가 가장 재미있고 스스로 즐겁다.”고 말했다.  만화가는 정년퇴직 없이 하고 싶을 때까지 그릴 수 있어 교수라는 직함보다 만화가가 더 마음에 든다는 이원복 교수.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만화가가 맞습니까.’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졌다.  “만화는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머리로 그리는 것이다. 아는 게 많아야 풀어쓸 내용이 많다. 무슨 만화를 그리더라도 사람이 꽉 차 있어야 좋은 내용이 나온다.” 이 교수가 아닌 이 화백이 후배 만화가들에게 강조한 조언이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영상 인터넷서울신문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 美·佛 영부인 ‘섹스 토크’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를 만났을 때 대뜸 ‘섹스’ 얘기를 꺼내 미셸 여사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선임 편집자인 조너선 앨터는 오는 18일 발매되는 ‘약속: 오바마 대통령, 집권 첫해’라는 저서에서 미국과 프랑스 퍼스트레이디 간에 흔치 않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고 CNN방송 등이 12일 보도했다. CNN이 입수한 책의 내용에 따르면 브루니 여사가 한번은 미셸 여사와 만났을 때 “남편(사르코지 대통령)과 섹스를 마치느라고 외국 정상을 기다리게 한 적이 있다.”면서 “혹시 미셸 여사는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이유로 외국 정상을 기다리게 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미셸 여사는 예기치 않은 질문에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했다. 책에는 브루니 여사가 남편의 바쁜 일정 때문에 충분한 성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주변에 불평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mkim@seoul.co.kr
  • 폴란드 대통령부부 영면에 들다

    지난 10일 러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서거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가 18일(현지시간)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폴란드 국민과 세계 각국의 애도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오후 2시 크라쿠프시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성 마리아 성당의 종이 울리면서 시작된 장례식은 유족과 세계 80여개국의 조문단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영국 찰스 왕세자 등 주요 국가 지도자들은 유럽 전역을 뒤덮은 화산재로 폴란드 공항이 폐쇄되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화산재 구름의 위험을 뚫고 비행기를 이용해 크라쿠프에 도착, 장례식에 참석해 폴란드와의 화해와 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영결 미사는 바티칸 교황청의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집전했다. 미사가 끝나자 폴란드 국기로 덮인 카친스키 대통령의 관과 흰색 바탕에 빨간색 무늬를 한 영부인 마리아 여사의 관이 1㎞ 정도 떨어진 바벨 대성당으로 운구됐다. 안치식은 카친스키 대통령의 쌍둥이 형제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법과정의당(PiS) 당수와 대통령의 딸 마리아 등 유족과 지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고, 대통령 부부의 관은 성당 지하실에 안치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을 비롯한 조문사절단은 바벨 대성당 정원에서 유족과 폴란드 정부에 조의를 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성 마리아 성당과 바벨 대성당 주변에는 15만명 이상의 추모 인파가 몰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장례식 장면을 지켜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관제지시 어긴 착륙 대통령이 지시?

    관제지시 어긴 착륙 대통령이 지시?

    96명이 희생된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추락사고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이 참사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에 따르면 사고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알렉산데르 바스트리킨은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본격적인 기록 분석에 앞서 실시한 예비 판독 결과 비행기 자체에 기술적인 문제는 없었다.’고 보고했다. 전날 조사 당국은 조종사가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니 회항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여러 차례 착륙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일부 언론들이 조종사가 착륙 시도 전 연료를 버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하며 기체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조사 당국은 비행기에는 문제가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조종사가 관제탑의 지시를 어기고 착륙을 시도한 배경에 한층 관심이 쏠리고 있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현지 일간 가제타 비보르타와의 인터뷰에서 “조종사들은 확신이 안 설 때면 정상에게 의견을 구한 뒤 다음 행동을 취한다.”며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혼자 판단하거나 정상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때도 있다.”며 최종 판단은 유보했다. 지난 2008년 8월 카친스키 대통령의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 방문 당시 조종사는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안전을 이유로 착륙을 거부했다. 당시 일로 조종사는 불이익은 받지 않았지만 우울증을 겪었다. 조종사가 정상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은 쌍둥이 형제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전 총리의 확인을 거쳐 폴란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신은 훼손 정도가 심해 지금까지 24명의 신원만 확인됐다. 나머지 시신 중 20구를 제외하고는 DNA 검사가 필요하다고 폴란드 보건장관이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에는 영부인인 마리아 카친스키 여사와 1940년 발생한 ‘카틴 숲 학살 사건’ 희생자 가족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이 이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하자 국민들은 오열했다. 운구 행렬이 군 공항에서 12㎞ 떨어진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동안, 거리는 애도하는 국민들로 가득찼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관은 대통령궁에서 13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며 국민들은 앞으로 1주일간 상복을 입는다. 러시아는 12일을 ‘추모의 날’로 정했다. 러시아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긴장이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포커 페이스’로 유명한 푸틴 총리가 슬퍼하는 광경은 폴란드인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예지 바흐르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는 “사고 후 모든 과정에서 러시아의 연대를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佛영부인 브루니, 영화 속 히로인 데뷔 ‘수포’

    佛영부인 브루니, 영화 속 히로인 데뷔 ‘수포’

    현재 프랑스의 영부인이자 모델 겸 가수로 활약했던 카를라 브루니의 영화배우 데뷔가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우디 앨런 감독의 새 영화에서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던 브루니 여사가 캐스팅에서 좌절했다.”고 보도했다. 배우 겸 감독 우디 앨런이 메가폰을 잡는 이번 영화는 다양한 프랑스인의 삶을 그리는 작품으로 제목은 아직 미정인 상태다. 지난해 앨런 감독은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을 시작하는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프랑스 영부인 역할로 실제 영부인인 브루니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브루니는 앨런 감독의 영화를 통해 배우에 도전하며 아티스트 이미지를 굳히려 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역시 아내의 영화 출연이 자신의 지지율에도 도움을 줄 거라 판단해 적극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앨런 감독은 “브루니는 정치적 위기나 중요한 국가 행사 참석 등을 이유로 촬영에 빠질 수 있어 영화에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탈락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브루니가 원했던 극중 프랑스 영부인 역할은 ‘라비앙 로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코티아르가 맡게 됐다. 지난해 ‘셜록 홈즈’의 연인으로 시선을 모은 미녀 배우 레이첼 맥아덤스도 가세한 이번 영화에서 브루니는 카메오로 잠깐 얼굴을 내비치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사진 = ‘데일리 메일’ 홈페이지 화면 캡쳐 / 사진설명 = (왼쪽부터) 카를라 부르니, 마리옹 코티아르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佛영부인 카를라 브루니 ‘엉짱’ 뒤태 공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부인은 우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도와준 프랑스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43)의 새로운 모습이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인 데일리메일이 지난 18일 공개한 이 사진은 브루니 여사가 모델로 활동한 20대 시절에 촬영한 것으로,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뒤태를 엿볼 수 있다. 경매에 나선 이 사진은 브루니 여사가 25세 때인 1992년, 독일의 유명한 사진작가인 헬무트 뉴튼이 촬영한 것이다. 브루니 여사의 나체 사진이 경매에 나와 큰 인기를 끌기도 한 만큼, 이번 사진 또한 수집가 사이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브루니 여사는 사르코지 대통과 결혼했을 당시 남다른 패션감각과 입담으로 전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모델 뿐 아니라 영화와 음악에까지 재능을 뽐내며 언론의 주목을 즐겼고, 사르코지 대통령과 눈에 띄는 ‘애정행각’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맞바람’을 피웠다는 소문과 함께 성형의혹까지 불거져 깔끔하지 못한 사생활 관리로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 데이트] 한복연구가 박술녀

    [주말 데이트] 한복연구가 박술녀

    “남의 나라 명품 가방은 200만~250만원씩 주고 턱턱 사면서 제대로 만든 150만원짜리 우리 한복은 왜 사지 않을까요?” 한복연구가 박술녀(54)씨는 스스로 ‘포스가 넘친다.’고 말하는 여장부다. 흔히 한복을 짓는다고 하면 차분한 말투에 단아한 스타일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씨는 172㎝로 키도 크고, 직원들을 지시하는 말투에 위엄이 넘칠 뿐 아니라, 평소 간편한 바지 차림을 즐기는, ‘전투적인 비즈니스 우먼’에 가까운 인상이다. ●정상외교때 너무 소홀히 다뤄 안타깝다 박씨가 요즘 안타까운 것은 정상 외교에서 한복이 너무 소홀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예전 정권과 비교하면 영부인이 한복을 입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김윤옥 여사가 한번 한복을 빌려간 적이 있었는데, 체중이 줄어 옷을 못 입었다며 돌려준 적이 있다.”고 박씨는 아쉬워했다. 게다가 한복의 가장 큰 시장인 혼수시장을 결혼 컨설팅 회사가 좌지우지하면서 디자이너 한복이 설 땅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결혼 컨설팅 회사들은 흔히 15% 정도의 커미션을 주는 한복 업체만 신랑 신부들에게 소개하기 때문이다. 박술녀씨는 이영희, 이리자 등 1세대 한복 디자이너에 이어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2세대 한복 디자이너의 대표 주자다. 해마다 국내에서 대규모 한복 패션쇼를 열 뿐 아니라, 스타를 활용한 한복 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추노’에서 여주인공 이다해가 입는 한복은 모두 박씨가 직접 지은 것. 그동안 TV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입은 한복은 대부분 박씨의 손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1223㎡ 넓이의 청담동 건물 지하에는 5000여벌의 한복이 소장돼 있다. 모두 협찬용이다. 기자가 설 직전에 분주한 박씨의 가게를 찾았을 때도 요즘 신세경과 함께 ‘대세’로 꼽히는 탤런트 황정음의 스타일리스트가 맞춤 한복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박씨는 명절에 밥도 못 먹고 뛰어다니는 스타일리스트를 마치 친어머니처럼 안쓰러워했다. 큰 한복 가방을 들고나가는 그에게 데운 가래떡을 직접 먹여주었다. 연예인들에게 한복을 빌려주는 것은 대가가 없는 일이다. 매년 한복 패션쇼를 여는 것도 디자이너 개인으로서는 벅차다. 힘도 들고 주변의 질시도 있지만 꾸준히 스타 마케팅을 하는 것은 연예인들이 한복을 대중에게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해외에 나갈 때도 한복을 입어주길 부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회의원들은 한복을 빌릴 것이 아니라 꼭 사입으라고 당부했다. ●한복 한 벌에 150만원이 비싸다고요? “150만원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치마, 저고리뿐 아니라 비단신, 버선, 가방, 속치마 등 총 9가지가 나갑니다. 정성들여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한복 한 벌은 평생 두고 입을 수 있고, 소장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라도 한복 한 벌에 150만원은 돈이 남지 않고 겨우 직원들에게 월급 줄 정도지요.” 그동안 한복을 팔아서 다른 데 투자해 본 적이 없다는 박씨는 26살에 시작한 한복 만드는 일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청담동 가게의 상호도 ‘한복을 참 잘 만드는 집’이다. 매년 여는 패션쇼도 아이디어가 바닥날 법하지만 “조선시대 우리 조상이 입었던 옷을 찬찬히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컨셉트가 떠오르기 마련이지요.”라며 여유를 보였다. 많은 연예인이 앞다퉈 패션쇼에 출연해 도움을 주겠다며 나선다고 한다. ●2~3년내 일본 도쿄돔서 패션쇼 열고파 그의 꿈은 한국인 최초로 파리 패션쇼에서 한복을 선보였던 이영희씨처럼 2~3년 안에 일본 도쿄돔에서 패션쇼를 여는 것이다. 동방신기가 콘서트를 했던 도쿄돔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한복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고 박씨는 강조했다. 그는 또 한복을 입으려면 제대로 입으라고 조언했다. 가끔 여배우들이 레드 카펫에서 저고리는 빼고 한복 치마만 드레스처럼 입는 것은 질색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베니스영화제 등 국제행사에서 이영희씨의 한복을 비녀로 쪽진 머리와 함께 소화해낸 이영애가 가장 제대로 한복의 멋을 살려낸 경우라고 밝혔다. “한복은 가끔 입어도 오래 입고, 민족의 얼이 밴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외 명품보다는 한복에 더 관심을 두었으면 해요.”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MB 순방길 딸·외손녀 동반

    │뉴델리 김성수특파원·서울 유지혜기자│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인도 순방 때 딸과 외손녀를 동반한 사실이 26일 확인되자 야당이 비판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의 큰딸(39)과 초등학생 외손녀(11)는 이번 인도·스위스 방문(24~30일)을 위해 대통령과 함께 특별전용기를 타고 인도에 갔다. 이들은 26일 뉴델리 대통령궁 중앙도로에서 열린 인도공화국 선포 60주년 행사를 비롯,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산스크리티 학교 방문(25일) 등 일부 공식행사 때에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말로는 정상외교를 하면서 가족여행으로 특별기를 이용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 정상 외교를 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외교행위지만, 딸과 손녀의 해외여행을 위해 국민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대통령 가족이 해외순방에 무임승차했다는 식의 민주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인도 측에서 비공식적으로 가족동반을 요청했으며, 가족들의 행사 비용은 자비부담으로 사후 정산하게 된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상외교에서 대통령이 가족을 동반하는 것은 국제적인 관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sskim@seoul.co.kr
  • 뉴욕에서 띄운 진주알 편지

    뉴욕에서 띄운 진주알 편지

    모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께 미국에서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제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여러분께 편지를 띄우려 합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들 만남의 인연으로 인해 삶이 조금은 더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큰 원을 세워봅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제가 경험한 ‘영혼을 드높이는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시아 여성 신학자로서 지난 20년간 세계 80여 나라를 다니며 배우게 된 진주알 같은 이야기들이지요. 여러분들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세상살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 목에 걸어줄 진주 목걸이 하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첫 편지는 새로운 미국을 열어가는 버락·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 관한 것입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던 밤, 제가 살고 있는 맨해튼에서는 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각종 악기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밤을 새워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노예의 후손들로 구박받으며 살아왔던 흑인들의 공동체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생한 것입니다. 아직도 인종차별 문제로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서 자신들의 리더를 흑인으로 뽑았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지요. 기쁨에 들떠 텔레비전 기자와 인터뷰하던 젊은 흑인 엄마의 목소리에서 미국 역사의 기운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아이가 ‘엄마, 나는 커서 뭐든지 다 될 수 있어요?’ 하고 물을 때 ‘그럼’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그걸 믿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젠 자신 있게 내 아이에게 말할 수 있어요.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고!” 울먹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제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서 미국의 깊은 비극과 저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오바마 부부가 백악관으로 들어가면서 미국이 많이 밝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미국을 여는 희망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지요. 아프리카 무슬림 전통의 케냐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그 존재 속에 이미 세상을 넓게 포용할 내공이 쌓여 있습니다. 지구의 많은 이웃이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을 기뻐합니다. 로마제국처럼 변해가며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에 실망하고 분노하다가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세계인의 희망에 발맞춰나갈 새로운 미국의 가능성을 그를 통해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려고 노벨 평화상도 세계 평화를 위한 예방주사처럼 그에게 주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정치적 이유보다 그가 다정한 남편, 자상한 아버지라서 더 좋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욕을 먹어가면서도 뉴욕에 와서 브로드웨이 쇼를 보며 아내와 데이트하는 남편, 바쁜 일정에도 딸들과의 휴가 약속을 지키는 아빠. 가족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이 세심한 대통령이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도 잘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버락 오바마를 볼 때마다 그가 ‘여자의 남자’라서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없이 할머니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잘 자란 남자, 여신 같은 아내와 두 딸의 여성성에 둘러싸인 남자. 그가 연설을 마치고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지배와 폭력의 가부장적 권위가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의 여성적 권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떨림을 느낍니다. 저는 그 떨림에서 새로운 미국을 예감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를 더욱 감동시킨 사람은 미셸 오바마입니다. 미셸은 19세기 후반 6세의 나이에 475달러에 팔려가 15세에 백인 주인의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멜비니아라는 흑인 노예의 후예이지요. 멜비니아의 5대손이 미셸입니다. 넉넉지 않은 흑인 가정에서 자라난 미셸은 프린스턴과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의 직장상사로 있다 그와 결혼하여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됩니다. 흑인 노예 소녀의 자손이 백악관으로 들어가기까지 15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슬픔이고 힘입니다. 미셸을 보십시오! 생명력으로 넘치지 않습니까? 건강하고 당당하며 지혜롭고 자연스러운 미셸,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비하하거나 과시하거나 설명할 아무 필요도 못 느끼는 변형된 유전자의 새로운 흑인 여성입니다. 그녀의 슬픔을 뚫고 터져나오는 힘,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그녀 조상들의 힘과 기도 덕분에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뼈대 없는 나라’ 미국의 새것을 나게 하는 힘입니다. ‘제행무상’이라더니….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인생은 살아볼 만하고 역사는 기다려볼 만한가 봅니다. 밝아오는 새해 날마다 새로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현경 _ 기독교 여성 신학자이며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의 종신교수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생태여성신학, 종교와 평화운동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80여 나라를 다니면서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머레드 맥과이어와 같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함께 종교 간 세계평화위원회의 자문으로 일한 여성·환경·평화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저서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미래에서 온 편지> 등이 있습니다. 글 현경 | 그림 정명화 2010년 1월
  • 미셸 오바마 TV요리프로 출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미국 영부인 중 처음으로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미셸 여사는 3일(현지시간) 방송된 유명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2시간 특집 방송에 등장해 요리 솜씨를 뽐냈다. 미셸 여사의 방송 출연은 어린이들의 식생활 개선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이날 방송에서 미셸 여사는 지난해 4월부터 백악관 남쪽 유기농 채소밭에서 직접 기른 로즈마리, 양상추, 오레가노 등의 채소를 소개하며 건강식과 질 좋은 학교 급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농산물 생산자 직거래 시장 형성, 운동 등을 통한 어린이 비만 문제 해소 등 국민 건강을 위한 자신의 바람도 밝혔다. 미셸 여사가 출연한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는 150만명 이상의 고정 시청자를 둔 인기 프로그램으로 일류 요리사들이 나와 5가지 요리를 선보이며 요리마다 비밀 재료가 사용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심슨가족’ 20돌…美 TV 최장수 코미디쇼 기록

    ‘심슨가족’ 20돌…美 TV 최장수 코미디쇼 기록

    전 세계 수백만명의 팬들에게 웃음치료제 역할을 해온 미국 만화영화 ‘심슨가족’이 오는 17일 방영 20주년을 맞게 된다고 AFP통신이 13일 보도했다. 1989년 12월 17일 폭스사를 통해 처음 공중파를 탄 심슨가족은 미국 TV의 대표적 아이콘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45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고 미국 TV 역사상 최장수 코미디쇼라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심슨’의 인기는 지난 5월 등장인물인 호머, 마지, 버트, 리사, 매기의 캐릭터로 만든 우표가 발행된 데서 잘 알수 있다. 또 지난달에는 호머의 부인인 마지 심슨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괄괄한 목소리와 중력을 거스르는 길쭉한 파란색 머리로 유명한 마지는 만화 캐릭터로는 처음으로 플레이보이 표지를 장식했다. 20년 동안 수십명의 유명 인사를 패러디한 것도 심슨가족의 볼거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폭스사 회장인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 등도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지난달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카를라 브루니 영부인을 등장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폭스사는 심슨가족의 20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다큐멘터리는 영화 ‘수퍼사이즈 미’를 만든 모건 스펄록이 감독을 맡았다. ‘20주년 특별 3D판: 은반 위의 심슨가족’이란 이름의 다큐는 내년 1월10일 전파를 탈 예정이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比 하원의원 이색 후보들

    比 하원의원 이색 후보들

    퇴임하는 현직 대통령, 세계 최고의 권투 챔피언, 사치의 여왕. 2010년 5월에 실시되는 필리핀 하원 의원에 이색 후보들이 줄지어 지원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왼쪽·62)은 1일(현지시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고 고향인 팜팡가주(州) 제2 선거구 출마 후보 등록을 마쳤다. 필리핀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하원의원직에 도전한 것이다. 아로요 대통령의 임기는 상·하원 및 지방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로 끝나기 때문에 이 같은 도전이 가능하다. 이에 야당은 “아로요가 권력을 유지하면서 퇴임 뒤 직면하게 될 부정부패 수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다.”며 비난을 가하고 있다. 세계 프로권투 7개 체급(‘링 매거진’ 페더급 포함)을 석권한 필리핀의 국민 영웅 매니 파퀴아오(가운데·31)는 자신이 창당한 국민챔피언운동(PCM)소속으로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이미 2007년 출마해 패배의 쓴잔을 마신 파퀴아오지만 미국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2)와 함께 세계 권투의 1인자 자리를 겨루게 되면서 필리핀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파퀴아오는 후보자 등록을 마친 1일 선거관리위원회 밖에 운집한 지지자들에게 “나는 이미 준비가 됐고 더 이상 후퇴는 없다.”며 선거 승리를 확신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빵사와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파퀴아오는 지난 3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향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정계 진출의 뜻을 밝힌 바 있다. 한편 3000켤레의 구두로 대표되는 ‘사치의 여왕’으로 알려진, 필리핀 독재자 페르난드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오른쪽·80)도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구두 및 보석 수집광으로 알려진 이멜다는 남편의 고향이자 자신의 지지 기반 세력이 남아있는 북부 일로코스 지역에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멜다는 1986년 민중 봉기로 마르코스 정부가 전복되기 전까지 20여년을 영부인으로 지내며 구두 및 보석 외에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와 같은 거장들의 그림들을 대거 수집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고 각종 횡령과 인권 탄압 혐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심슨 가족, 佛브루니 ‘요부’로 풍자 논란

    심슨 가족, 佛브루니 ‘요부’로 풍자 논란

    미국의 인기 만화인 ‘심슨 가족’이 프랑스 영부인인 카를라 브루니(41)를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요부로 풍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전파를 탄 ‘악마는 나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Nada) 편에서 브루니는 담배를 피우고 남편을 두고 다른 남성과 바람을 피우는 여성으로 묘사됐다. 만화에는 엘리제궁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심슨 가족의 가장인 호머 심슨의 상사 칼을 브루니가 유혹하는 장면이 담겼다. 브루니는 “지금 당장 사랑하고 싶어요.”(I want to make love, right now)라고 칼에게 속삭였고 이후 칼이 호머 심슨을 해고하겠다고 하자 호머는 “네가 시시덕 거린 여자는 프랑스 영부인이야.”라고 폭로한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는 과거에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 같은 유명 인사들을 두루 풍자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게다가 과거엔 당사자에게 사전 동의를 구했지만 이번엔 사르코지 부부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엘리제궁은 이 만화와 관련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탈리아 출신인 브루니는 슈퍼모델로 연예계에 데뷔, 가수 겸 모델로 활동했다. 2008년 2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전에는 유명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 영화에 출연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 시각] 보헤미안 랩소디/김문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보헤미안 랩소디/김문 사회2부장

    가을이 속절없이 저문다. 지천에 붉고 노란 멋진 그림을 실컷 그려 놓더니 말이다. 그렇다. 명작 감상은 늘 짜릿하고 흥분된다. #지킬 앤드 하이드 최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에서 인간의 원초적 ‘선’과 ‘악’을 만났다. 친절하고 인정 많은 지킬 박사가 뮤지컬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지킬과 하이드 역을 맡은 주인공 브래드 리틀이 140분 동안 무대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치도록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선과 악에서 외줄타기 한다.’는 처절한 외침은 고뇌에 찬 토로였다. 그는 결국 악을 이겨 내려고 무진 애를 쓴다. 열정적인 연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랬기에 저절로 박수갈채가 연신 쏟아져 나왔다. 막이 내려지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어섰다. 동시에 ‘앙코르’를 외쳤다. 배우들도 뜨거운 열기에 손바닥으로 입맞춤하는 키스 세리머니로 보답했다. 어떤 관객은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7년 동안 브로드웨이에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온 오리지널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는 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9월 초 한국에 와서 서울과 지방을 거쳐 이날 고양시에서 고별공연을 가졌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명작의 울림은 그렇게 관객들과 ‘빠이빠이’를 했다. #비틀스와 퀸, 그리고 아바 찬바람이 쓸쓸하게 부는 지난 일요일 저녁이었다. ‘위대한 트리뷰트 라이브 콘서트’가 펼쳐진 서울 홍대 앞에 있는 라이브 공연장 ‘상상마당’. 전설의 비틀스와 퀸, 아바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짝퉁’이다. ‘멘틀스’ ‘영부인밴드’ ‘스노키 브라운’으로 이름 지어진 세 팀의 밴드는 그저 음악이 좋아, 비틀스와 퀸을 사랑해, 또 아바를 그리워해 오래전에 결성됐다. 말 그대로 헌정의 밴드다. ‘아이 해브 어 드림’ ‘라디오 가가’ ‘보헤미안 랩소디’ ‘렛잇비’ 등을 부르며 왕년의 감동과 추억을 마구마구 끄집어냈다. 바닥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일어서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손뼉을 마주쳤다. 무대와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세월을 거슬러 삼매경에 빠졌다. 비록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명곡의 위대함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시간 동안의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아쉬워했다. 또 관객들은 무대의 그들에게 아무도 짝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상상마당이어서 그랬을까. 무대를 빠져나오면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올렸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를 가졌다. 음악의 흐름과 가사 내용이 그렇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산사태에 묻힌 것처럼 현실을 벗어날 수가 없네, 눈을 뜨고 하늘을 한번 바라봐.’로 시작되고 ‘어쨌든 바람이 불어오네요(Anyway the wind blow~)’로 이어진다. 퀸 멤버 중 프레디 머큐리가 한 편의 오페라를 연상시키면서 불교적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왜 보헤미안 랩소디라고 했을까. 가사 중에는 보헤미안과 관련된 직접적 언급은 전혀 없다. 알다시피 보헤미안은 체코의 보헤미안 지방에 사는 유랑민족이고, 프랑스인들은 그들을 ‘집시’라고 했다. 영어로는 방랑자(vagabond)를 뜻한다. 이들에게 프레디 머큐리가 랩소디를 붙였을 뿐인데 불후의 명작이 됐다. 인간은 어느 날 매뉴얼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 방랑자로 살아간다. 한 번 왔다가 떠나는 삶이지만, 그 과정에는 감동이 있어야 할 테고 기승전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의 명품을 만들어 냈던 가을이 떠난다. 보헤미안처럼 랩소디만 남기고. 이제 1년의 마지막 방점, 한 해의 기승전결 중 ‘마무리(결)’를 할 때인가 보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서’ 다들 오리지널이든 짝퉁으로든 열심히 한 해를 달려 왔을 터. 과연 인생 명작이었을까. 김문 사회2부장
  • [CEO 칼럼] 패셔니스타 영부인을 기다리며/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CEO 칼럼] 패셔니스타 영부인을 기다리며/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미셸 오바마의 패션은 전통적인 영부인의 그것을 넘어섰다. 유쾌하고 스릴이 넘친다. 그래서 미셸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만큼이나 관심을 받는다. 그녀의 당당한 패션은 나이와 시대를 넘나든다. 1950년대에나 볼 수 있는 큰 리본에서 타이트한 청바지, 하늘색의 언밸런스한 카디건, 펑키한 블랙벨트, 코믹한 나팔소매 재킷, 민소매 원피스, 스니커 비닐 운동화, 페이크 진주 목걸이, 일본 ‘사쿠라’ 원피스까지 다양하다. 스패니시룩에서 차이니스룩, 유러피언룩, 컨트리룩까지 5대양 6대주를 넘나드는 미셸의 패션은 튼실한 미국·다양성이 존중받는 미국·자유로운 미국을 대변한다. 파격적이면서도 친근한 그녀의 패션 덕에 미셸은 때로는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때로는 농염한 매력을 발산한다. 재기 발랄한 소녀가 되는 등 변신은 무한하다. 그래서 오바마는 “그녀는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강하고, 확실히 나보다 근사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캐시미어 코트에 기대어 비행기 안에서 잠든 오바마 부부 사진을 보면 그녀만 있으면 오바마가 담요도 필요 없이 만사형통할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안락함과 평화로움에 기대 미국 시민의 행복을 꿈꾸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그들의 패션코드에 담겨 있다. 미셸 덕분에 미국의 디자이너들도 행복할 것 같다. 자신이 구상한 노란색 러플 재킷에 어울리는 초록색 장갑과 초록색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코디를 부탁하는 미셸을 그려보면 미국 디자이너들이 부럽다. 게다가 현재 미셸이 만나서 의뢰하고 대화하는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다른 국적을 갖고 있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달려온 그녀의 내면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 흑인이자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차별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온 그녀이기에 이미 유명한 브랜드는 식상하다.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고 함께 의논하고 변죽을 맞추는 상상력이 풍부한 디자이너가 미셸에게 어울린다. 1950년대 재클린 케네디는 당대의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재클린이 애용한 구치 핸드백은 아예 재키백으로 불리고, 루돌프 발렌티노와 랠프 로런 등 유명 디자이너들도 재클린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셸은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도 않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시카고의 디자이너 마리오 핀토에게 5년 동안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멋진 색상과 원단의 도움을 얻어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워싱턴의 패션 에디터인 로빈 지브한은 미셸을 “멋을 알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진정한 패셔니스타”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의 옷에서 자유의지나 재미, 스릴을 찾기는 좀처럼 힘들다. 한복을 입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철갑을 두른 듯 지루하거나 답답한 감도 있었다. 이제 김윤옥 여사가 당당하게 꽃무늬 블라우스로 대중을 들뜨게 하고, 가죽 재킷을 카리스마 있게 걸치면 어떨까. 점자원단(브레이얼) 블라우스로 따뜻함을 표현하고 자라나는 디자이너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동대문의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손수 쇼핑한 영부인 덕에 한국 아줌마들이 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따라 입는 해프닝을 기대해 본다. 후대에 패션 아이콘이 되고, 많은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린 영부인으로 기억된다면 한류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 비틀스·퀸·아바 홍대앞에 뜬다?

    비틀스·퀸·아바 홍대앞에 뜬다?

    비틀스, 퀸, 아바…. 어느 한 팀이라도 ‘전설’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 서울 홍대 앞에 모인다. 15일 오후 6시부터 KT&G 상상마당에서 합동 라이브 공연을 갖는 것. 일부 멤버들은 세상을 떠났고, 해체한 지 이미 오래된 팀들이 공연을 갖는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실제 비틀스와 퀸, 아바가 아니라 이들의 트리뷰트 밴드들이 뭉치는 것. 멘틀스, 영부인 밴드, 스모키 브라운이 그 주인공으로 공연 제목은 ‘더 그레이트 트리뷰트 투 비틀스 퀸 아바’이다. 트리뷰트 밴드는 특정 밴드 또는 뮤지션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아 그들의 음악은 물론, 무대 매너와 외모, 악기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재현하는 밴드를 말하며 단순한 카피 밴드, 커버 밴드와는 구분된다. 멘틀스는 국내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들 가운데 가장 고참격인 밴드다. 2002년에 결성된 애플스 시절부터 7년 동안 오로지 비틀스 음악만 연주했다.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 밴드는 무려 12년 동안 퀸의 음악을 재현하는 데 몰입해 왔다. 지난해 결성된 스모키 브라운은 아바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언더그라운드 밴드 드림걸스 멤버들이 별도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 세 팀은 각각 45분 동안 자신들의 축적된 연주 및 노래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세 팀은 저마다 특별한 컨셉트를 가지고 무대를 장식한다. 멘틀스는 1969년 비틀스가 발표한 걸작 앨범 ‘애비로드’의 B면 팝 오페라를 재현한다. 영부인 밴드는 퀸의 최고 라이브 공연으로 꼽히는 몬트리올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퀸 록 몬트리올’을 되살린다. 스모키 브라운은 ‘아바 명작 3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현실 속에서는 건설회사 간부이며, 멘틀스에서는 존 레넌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홍씨는 “비틀스와 아바, 퀸은 빼어난 예술성에다 젊은 세대가 배울 수 있는 교육적 가치들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합동무대는 전 세대의 관객을 관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2만 5000원(예매 2만원). (02)330-6211~2.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청와대, 배용준 초청…영부인과 담화

    청와대, 배용준 초청…영부인과 담화

    배용준이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만났다. 이날 오전 영부인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찾은 배용준은 상춘재에서 김윤옥 여사와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배용준은 1년 간의 전통문화 체험을 담은 에세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출간했으며,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배용준은 홍보대사 위촉식 당시 위원장인 김윤옥 여사와 만남을 가졌고, 이번 담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배용준의 소속사 관계자는 “배용준이 김윤옥 여사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한편 배용준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출판기념회장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부인 미유키 여사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대담: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 만에 이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 만에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도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경호를 하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 중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텐데.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들어봐야 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호실장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 뻔했는데, 그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 김 주석이 사망했다.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됐다. →그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씨가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씨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 줘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 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기에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 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많이 다녔나.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없었다. 그런 걸 그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전남) 광양으로 바뀌었다.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니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모는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다. 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1974년 영부인이 서거한 뒤 굉장히 외로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때 건설됐다. 안면도에는 제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하다. 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박상범 전 靑 경호실장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극과 극 아프리카 영부인

    17일 아프리카 쪽에서 영부인 관련 소식 2건이 전해졌다. 한 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착한 영부인’, 다른 한 명은 짐바브웨의 ‘나쁜 영부인’이었다.남아공 최대 부족 줄루족 출신인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일부다처제 부족 전통에 따라 3명의 퍼스트레이디를 두고 있다. 그 중 첫째 부인 시자켈레 쿠말로 주마(왼쪽·68) 여사의 소박한 면모가 이날 현지 일간 ‘더 스타’에 보도됐다.남편이 지난 5월 최고 권력자가 됐지만 쿠말로 여사는 대통령 관저 대신 줄루족의 터전인 콰줄루나탈주(州)의 시골 마을 은칸들라에서 갈대로 지붕을 인 전통가옥이 딸린 농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농장에서 그녀는 채소 등을 손수 재배해 시장에 내다 팔고, 닭과 염소도 키운다. 달라진 것이라곤 집 주위에 전기 펜스가 설치되고 경호원이 배치된 것과 집 안에 TV, DVD 등 가전제품이 들어선 정도다.같은 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오른쪽·43)가 홍콩에 16일 도착,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9개월 전 있었던 그녀의 ‘엽기적인 주먹질’ 때문이다. 그녀는 1월 홍콩의 대표적 쇼핑지역 카우룽 침사추이에서 나오다가 이를 촬영하는 영국인 사진기자의 얼굴을 수차례 구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중국 정부는 외교적 면책특권을 이유로 그녀를 처벌하지 않았고, 이에 홍콩 법조계와 인권운동가들은 격분했다. 많은 나라들이 부정부패로 악명높은 무가베 일가의 방문을 금하고 있지만, 중국은 짐바브웨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여 년간 짐바브웨를 철권 통치하고 있는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인 그레이스는 세계 각지를 돌며 명품을 사들이는 쇼핑광으로 유명하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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