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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정신 인터넷 타고 세계로

    “국내외 네티즌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고 인터넷상에서 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광주지역 20∼30대 직장인들로 구성된 ‘빛고을공동체’(회장 차혁렬)는 인터넷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5·18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지난 97년 5월 홈페이지(www.518.org)를 개설한 뒤 지금까지 한글과 영어로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제공,‘5·18 대중화’에 큰 역할을담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9만여명의 네티즌이 이곳을 다녀갔다. 빛고을공동체가 결성된 것은 지난 94년.우연히 컴퓨터 통신으로 5·18과 광주 지역사회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다가 뜻있는 회원 13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회원들은 자료수집 등 2달여에 걸친 밤샘 작업 끝에 97년 3월에는 홈페이지를 완성,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뒤 회원들은 매주 광주시 동구 수기동 ‘참여자치’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최신 자료를 첨가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망월동 묘역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안내도를 실었다.온라인상에서 당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190명의 묘소를 방문,직접 헌화및 참배를 할 수 있다. 자료실 등에는 당시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5·18부상자 동지회’에서 제작한 5∼20분짜리 동영상 5편도 볼 수 있다. 특히 홈페이지에는 외국인들도 5·18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영문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5·18 19주년인 올해 회원들은 ‘전남대 5·18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당시 성명서와 판결문,미국무성 관계 서류 등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으며 지난 11일 천리안과 나우누리에도 5·18 사이트를 개설했다. 초대 회장을 지낸 박인배(朴仁培·35)씨는 “컴퓨터 세대인 젊은이 상당수가 5·18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서 “5·18 알리기에 조그마한 보탬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국은행 창립이후 처음 女行員출신 조사역 탄생

    지난 50년 한국은행이 창립된 이래 처음으로 여행원 출신의 조사역(과장급)이 탄생했다.한은은 지난 15일 실시한 대규모 정기인사에서 인사부 후생과에 근무하는 이미경(李美炅·36)씨를 4급 조사역으로 승진시켰다. 이씨는 지난 83년 해성여상을 졸업한 뒤 고졸 행원으로 한은에 입행했으며,입행 이후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야간대학(동국대 영문학과)을 졸업했다.88년에는 대졸자 자격으로 종합직 행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국제부와 조사부 등을 거친 이씨는 “업무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여자 행원을 낮게 평가하는 외부의 인식을 견디기가 힘들었다”면서 “남자 직원들보다 2∼3배 더 노력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승호기자 osh@
  • 사이버공간서 市長돼 ‘미래의 서울’ 꾸미세요

    ‘꽉 막힌 도로,목이 칼칼한 공기….내가 만약 시장이 된다면 수도 서울을이렇게 바꾸겠다’ 서울시는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시장이 돼 자신의 구상대로 미래의 서울을꾸며볼 수 있는 도시경영 시물레이션 컴퓨터게임 ‘버추얼 서울’을 개발,13일 시연을 갖고 6월부터 시판에 들어간다. 개당 5,000원. 3억여원의 예산을들인 이 게임은 지난해 미국에서 개발돼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심시티 2000’과 비슷하지만 현실감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다. 게이머는 2000년부터 2150년까지 가상의 서울시장이 돼 주어진 예산을 활용,환경·문화·복지·첨단 등 4개 테마분야에서 마음껏 시정을 펼칠 수 있다. 테마에 맞춰 도시를 건설하고 주택 환경 교통 범죄 취업 전통문화 등을 수치화한 데이터를 토대로 도시를 관리한다.테마에 맞게 도시를 꾸미면 점수가올라가지만 기반시설을 제대로 만들지 않거나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하면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결국 시는 부도가 나 게임이 끝난다. ‘버추얼 서울’은 이밖에 ‘2002년 월드컵’‘IMF 금융위기 탈출’‘남북통일’‘세계과학박람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가질 수 있게 꾸며져 서울의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시는 국문과 영문판으로 만들어진 ‘버추얼 서울’을 각급 학교에 배포하고 해외주재관과 외국대사관 및 문화원 등에 보급,서울에 대한 ‘사이버 홍보’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 독자의 소리-韓·佛 도서반환협상 지지부진 안타까워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도서 반환문제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9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도서교환 기본원칙이 합의된지 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이 지지부진하다. 지금은 한·불 양국 모두 새로운 대통령으로 주체가 바뀌었다.외규장각 도서반환과 관련한 한·불협상이 지난달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협상결과에 대해 언론에서 별 언급이 없다.다음 협상은 언제개최되는지 궁금할 따름이며 혹시 협상이 프랑스측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안타깝기도 하다. 도서반환 문제는 전 국민적 관심사고 우리 자존심과도 직결돼 있는 사안인만큼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협상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며 언론에서도그 결과를 상세히 알렸으면 한다. 박동현[서울 관악구 봉천동]
  • 인터뷰-불교 진각종 宗祖 탄생98돌 행사준비 각해總印

    ‘밀교(密敎) 전통의 중흥’과 ‘불교생활화’의 기치를 내걸고 창종한 대한불교 진각종이 98회 종조 탄생절(10일)과 불기 2543년 부처님 오신 날(22일)을 앞두고 기념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다.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진각종 통리원으로 각해(覺海·74·본명 宣泰植)총인(조계종 종정에 해당)을 찾아 진각종 창종의 의미와 진로에 대해 들어보았다. 종조이신 회당(悔堂) 손규상 대종사께서 진각종을 창종한 뜻? 역사적으로 볼 때 민중 속에서는 밀교가 우세했습니다.사찰 법당의 단청마다 육자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는 것이 그 증거지요.단순히 부처님의 법을 믿는 불교가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는 불교가 돼야 한다는 뜻에서 진각종을 창종하셨습니다.조계종이 수행 중심의 전통 비구종단이라면 진각종은 재가불자들이 불교의 생활화를 실천해가는 재가종단입니다. 진각종의 수행법은? 밀교는 우주의 내밀한 이치를 온 몸으로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입니다.입으로 육자진언을 외우고 손으로는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운 뒤 왼손으로감싸쥐는 결인(結印)을 하며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원래 모습인 비로자나불을 생각합니다. 부처님오신 날과 종조탄생절을 맞는 소감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뜻을 새기고 우리가 종조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지를 경책하는 계기로 삼고 있지요. 지난번 조계종 분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불제자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마음을 비우면 싸울 일이 없을텐데….끼니를 채우고 몸을 가리는데 필요한 것 말고는 모두 부처님께,즉 일체중생께 공양해야 합니다.그렇게 하지않으면 불교의 발전은 요원합니다. 진각종은 영남종단이란 평가가 있는데… 전국에 심인당이 124개 있는데 전남에 1개,전북에는 4개에 지나지 않습니다.호남쪽 교세확장을 위해 호남출신의 진각종도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현지 포교를 맡길 생각입니다.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진각종에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진각종의 세계화를 위해 경전의 영문화작업에 이미 착수했습니다.앞으로 포교는 물론 복지,교육,문화 등 활동영역을 넓혀나가 한국불교 4대종단으로서 위상에 걸맞는 종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경남 밀양 출신인 각해 총인은 64년 대구 정원심인당에서 첫 교화를 시작한 뒤 종의회 의장과 탑주심인당 주교,사감원장,통리원장 등을 거쳐 96년 8대진각종 총인으로 취임했다. 박찬기자 parkchan@
  • 안양천 수질개선대책협 11개區·市 오늘 발족

    안양천 유역 11개 기초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안양천 수질개선대책 협의회’가 29일 오후2시 서울 구로구청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한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이 발원지로 총길이 32.2㎞이며 왕곡·오전·당정·산본·학의·삼성·개화·시흥·목감천 등 지류가 9개에 이른다.상류의 수질이 50ppm을 웃돌고 하류도 수질환경기준인 10ppm을 넘어서는 등 수질오염이 날로 악화되는 실정이다. 협의회는 앞으로 안양천 수질개선을 위한 공동사업,수질 생태계 공동조사,하상퇴적물 준설,주민참여 프로그램 운영문제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협의회에는 서울의 구로·양천·강서·금천·영등포·동작·관악구와 경기도의 안양·광명·군포·의왕시가 참여한다. 초대회장은 박원철 구로구청장. 김재순기자 fidelis@
  • “한국지성 죽어간다”…인문학 실상 분석

    ‘인문학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며,그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최근 국내 학계와 지성계의 ‘화두’로 등장한 ‘인문학의 위기’를 두고한 인문계 학과 교수는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극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순히 인문·사회학계 뿐만이 아니라 대학사회,나아가 한국지성계 전체의 존립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이 문제는워낙 해묵은 고질병이어서 비방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IMF 이후 소위 문사철(文史哲),즉 문학·사학·철학 등 재래학문으로 불려지는 인문계 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급격히 줄었다.일부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과 지원자의 급감 내지 전무(全無)로 학과가 폐과 위기에 몰린 곳도 있고,일부 학과에서는 몇몇 강좌가 폐강된 사례도 있다.반면 취업에 유리한 일부 인기학과는 강의실이 미어터지는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학과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실제로 모 대학에서는 영문학과에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학생들이 새벽 3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얘기도 있다.이는 졸업후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좇는 세태의 한 단면이자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학문편식현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히 보면 ‘인문학의 위기’는 최근 우리사회에 몰아닥친 경제난으로 인해 생겨난 일시적인 현상 정도로 볼 수도 있다.그러나 이같은 ‘위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라는 것이 인문계 안팎의 중론이다.우선 지나치게 전공을 세분한 탓으로 학문간의 벽이 높아 실천적 면모를 상실한데다 학과 이기주의,위인설강(爲人設講)식으로 개설된 교과목,게다가 연고주의·파벌 등까지 가세해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터지는 인문계내부의 자탄이다.일각에서는 ‘우리 대학에 국문학이나 영문학은 존재할지모르나 인문학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부의 자성과 함께 이 ‘위기’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는 시각도 많다.우선 자본의 무한지배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의 경쟁논리를 대학사회에적용한 것이 인문학을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그것이다.외국어나 컴퓨터 등 ‘실용학문’과 첨단과학 분야를 집중투자 대상으로 지목하는 교육당국이나 대학당국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인문학계 교수들은 교육당국이 시장논리를 앞세워 효율성과 실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최근 모 대학에서는 졸업요건으로 토플 성적 550점 이상을 받아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의 계획을 세웠다가 교수·학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받은 사례도 있다.이 대학의 한 교수는 “차라리 미국의 한 주(州)로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또 교육부의 정책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크다.‘세계화’ 정책의 한 줄기이자,국가 산업경쟁력 강화를 모토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별 특성화 정책과 학부제 실시는 현재의 위기를 해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즉 대학구조개혁과 교수충원,교육여건개선사업 등에 필요한 재정지원은 하지않은 채 미국식 제도만을 도입할 경우 인문학의 고사(枯死)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인문학의 경우 학문적특성상 투자를 해도 당장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닌데도 지나치게 성과와‘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인문학계에서는 우리사회와 교육당국이 인문학의 본질적 가치와 특성을 이해하고 ‘기다림의 여유’를 배워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국문학·국사 등 한국학 연구자들에게까지도 외국학술지 논문게재를 평가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는 현행 평가정책이 인문학의 연구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沈利澤 대한항공 신임사장 인터뷰

    대한항공 심이택(沈利澤·60) 신임 사장은 22일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대회의실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안전 확보를 위해 운항편 감축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심사장은 “인명을 중시하는 과학적 경영을 모토로 삼아 안전운항에 최대역점을 두겠다”면서 “운항절차를 철저히 지키지 않는 직원에게는 가차없이 책임을 묻는 대신 처우개선을 통해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말했다. 심사장은 안전확보와 관련,“5명의 이사 가운데 운항본부에 적어도 1명의외국인 이사를 발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그동안 언론을 통하여 보도된 국민들의 여러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 “미흡한 부분을 메꾸고 가다듬어 단기간에 정말로 신뢰받는 국제적인 항공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심사장은 서울고,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68년 한진상사에 입사,31년만에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69년 대한항공이 민항으로 바뀐 뒤 72년 기획관리실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자재부장,영업이사,정비담당 상무,항공기 제조담당 전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80년 만 41세 때 이사로 승진,대한항공내 ‘최연소 이사’ 기록을 세웠다. 기획,자재,영업,정비,객실 등 중요부서를 모두 거친 대한항공내에 몇 안되는 항공분야 전문 경영인으로 손꼽힌다.영어실력이 탁월해 해외협상 때는 외국의 항공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지난 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때는 사고대책본부장을 맡아 원만히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4월 괌사고 희생자 및 부상자대책위원회 간부 4명에게 2억5,000만원의 뇌물을 제공해 구속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중앙대 영문과 교수인 부인 김혜련씨(58)와 3남. 김성수기자 sskim@
  • 외신대변인 공정위 宋喆復씨

    “Quite well(상당히 잘 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송철복(宋喆復·44)외신대변인이 요즘 입에 달고 다니는 ‘외국어’다.“구조조정이 제대로 돼가고 있는 거냐”는 외신기자들의 연이은 문의에 대답도 정형화된 것.물론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냐”는 질문이 으레 뒤따라 진땀을 빼기 일쑤다. 경향신문 외신부기자 출신인 송대변인이 기자를 상대하는 일은 ‘기본’에불과하다.“외신대변인중 가장 다양한 업무영역을 개척하고 있다”(朴東植공보관)는 말을 듣고 있다. 얼마전 발간된 공정위 소개용 ‘영문 브로셔’도 그의 작품이다.최근에는공정위 관련 주요법령에 대한 영문 해설판을 만들어 외신기자단에 배포했다. 지난 2월에는 과거 홍콩특파원으로 일한 인연을 살려 대만의 유력 경제일간지인 ‘경제일보’에 전윤철(田允喆)위원장의 인터뷰를 주선,우리나라의 경제개혁 실상을 알리기도 했다. ‘집안살림’에도 열성이다.지난달 직원들을 상대로 ‘올바른 언어사용법’을 강의해 큰 호응을 얻었다.보도자료에서 ‘관(官) 냄새’를 빼는 요령도줄기차게 지도하고 있다.“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외국인이나 언론의관점에서 깨우쳐준다”(朱舜埴독점정책과장)는 평가다. 요즘 ‘벌이고 있는’ 일을 묻자 송대변인은 “단발성이 아닌 기획성 홍보기법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그가 붙인 이름으로는 ‘프로그램 홍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엘리자베스 英여왕 訪韓-이화여대 방문 안팎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여왕도 한 사람의 섬세한 여성이었다.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20일 한국의 여성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방한 이틀째인 이날 오후 대표적 여성교육기관인 이화여대를 방문한 것이다.여성들의 사회진출 현황과 교육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여왕은 체어맨 승용차 편으로 대학 정문을 거쳐 본관과 김활란동상을 통과하면서 태극기와 영국기를 흔드는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여왕은 옛 약학관 정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상 총장과 정의숙 이사장,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 최주리 교수(영문과)의 영접을 받았다. 이어 신관 210호 생약학실험실에서 고려인삼의 성분과 효능 등에 대해 이상국 교수의 설명을 듣고 대학원생들과 인삼의 효능을 소재로 대화를 나눴다. 여왕은 이후 학생문화관으로 이동,학생대표로 나온 이수미(23) 총학생회장과 전미희(21) 이대학보사 편집국장 등의 마중을 받았다.이때 관현악과 학생 10명이 베르디의 가곡 ‘아이다’중 개선행진곡을 연주했다. 여왕은 인간적 면모도 보여줬다.학생문화관내 학생종합정보센터에 들러 시각장애인 김예진(20·특수교육3)씨 등 장애인 학생 5명과 홍차를 마시며 격려한 것이다.마침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 대학 출신 전문직 여성과의 대화가 피날레 일정이었다.여왕은 전문직 여성 테이블로 이동,금융감독원 이성남 검사총괄실장,서혜석 국제변호사,김영사 박은주사장,영화감독 변영주씨,국제축구심판 임은주씨 등과 환담했다. 장상 총장은 “세계적으로 학교를 홍보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 [대한광장] ‘말’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가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이것은 그러나 하늘 밑의 벌레들이 게걸 떼지 못하는 이상 늘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운동의 법칙에 지나지 않으니 차라리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겠고.문제는 ‘말’이 무너진다는 데 있다.말이 무너지면 글이 무너지고,글이 무너지면 얼이 무너지며,얼이 무너지면 민족이무너진다.말이 무너지면서 그 말을 두리로 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민족자체가 사라져버린 지경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아 왔다. 삶의 고갱이는 문화이고 문화의 고갱이는 학문과 예술일 것이다.학문과 예술을 둘러싸서 외 붓듯,가지 붓듯 잔병없이 잘 자라게 해주는 바람벽은 바로 교육이요,언론이며 그리고 출판일 것이다.그런데 이 바람벽이 무너지고 있다.바람벽이 무너지면 집이 허물어지듯이 교육과 언론과 출판이 바로 서지않으면 문화가 무너지고,문화가 무너지면 삶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삶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숨탄 것의 차원에 지나지 않을 터다.문화 없는 삶을 어찌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데올로기의 쟁투가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종교로 들어선 것이 이른바 매스컴이다.그 가운데서도 텔레비전이 가장 막강하게 교세가 넓은 종교인데,하나같이 영어로 시작해서 영어로 끝나고 있다.‘굿모닝 코리아’로 시작해서‘뉴스 데스크’를 거쳐 ‘뉴스 퍼레이드’로 끝나는 문화방송과 ‘뉴스 네트워크’로 시작해서 ‘뉴스 파노라마’를 거쳐 ‘뉴스 라인’으로 끝나는한국방송공사와 ‘뉴스 퍼레이드’로 시작해서 ‘뉴스 투데이’를 거쳐 ‘나이트 라인’으로 끝나는 서울방송이 그것인데,이 3사의 프로그램 300여개 중 영어를 머리로 한 외국말을 쓰는 것이 36개나 된다고 한다. 신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머리부분을 ‘SPORTS’ ‘BUSINESS’따위의 영어로 달아놓고 그 곁에 깨알만한 글씨로 ‘스포츠’ ‘경제’라고 써놓는 판이니,기사에 나오는 영어는 더이상 말할 것도 없다.국한문 혼용에서 국영문혼용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벌써 오래 전부터다. 외국어학원에 다니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들 거의 모두가 영어이름을 갖고 있다더니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영어로 이름을 짓고 있다 한다.귀에 익은 철수나 영희가 ‘리처드’ ‘토이’ ‘줄리아’ ‘앤더슨’으로 되고 ‘타이거’ ‘라이언’ 등 동물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미니’ ‘미키’ ‘해피’ ‘브래드’ 등 우스꽝스런 이름들도 많다고 한다. 노래패들의 이름 모두가 영어이고,여성잡지의 이름도 모두가 영어이며,영화제목도 영어로 달고,소설제목 또한 영어로 짓는다.이러니 머리칼에 노랑물감 빨강물감 들인 ‘리처드’와 ‘줄리아’가 ‘다이어리 데이’ ‘로즈 데이’ ‘실버 데이’ ‘와인 데이’ ‘성패트릭스 데이’와 ‘할로윈 데이’ 같은 서양 명절까지 알뜰히 챙기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허겁떨이 하는 게 아니다.21세기에는 영어 등 몇몇 언어만 남고 현존하는세계언어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우리의 말과글을 영어로 바꿔나간다면 머지않아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말이 나올 것이다.나오고 있다.됨새를 보아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만주족(滿洲族)의 지난 잘못을 미좇아 가게 될 것이다.금나라 청나라를 세워 중국대륙을 두 차례나 다스렸던 만주족이다. 먼 윗대로 올라가면,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를 가진 만주족.곧 여진족(女眞族)에게는 그들만의 말과 글이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한족(漢族) 위에 군림하면서 중화(中華)의 문화에 젖어드는 사이 시나브로 잃어버리게 된 말과 글이었으니,민족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은 그러므로 또한 지극히 마땅한 일이었다. 김성동 작가
  • 「엘리자베스 英여왕 訪韓」3박4일 일정과 준비상황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방한은 1883년 한­영 수교이래 양국간 ‘최대 이벤트’로 꼽히고 있다.영국 최고통치권자로 처음 이뤄진 여왕의 3박4일 방한 일정 동안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외교일정 19일 도착 당일은 동작동 국립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청와대 공식 환영식과 정상환담을 갖고 이튿날은 산업시찰과 한·영 재계회의 참석자들을 접견한다. 영국여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관행에 따라 실제 통치 능력이 없는 상징적 존재다.양국이 정상회담이 아닌 ‘정상환담’으로 공식명칭을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환담내용도 정치적인 분야는 가급적 피하고 양국간의 우호협력 증진 방안과 문화·예술 등 공동 관심사에 집중될 예정이다. 20일 청와대 국빈만찬엔 150여명의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참석한다.특히20∼30대 ‘신세대 주자’들을 만찬에 참여시키는 ‘파격’도 연출할 계획이다. 21일 저녁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KBS홀에서 ‘한영 친선음악회’를 관람한 뒤 생일파티를 겸한 리셉션을 갖는다. 서울행사 준비 엘리자베스여왕의 방문을 앞두고 있는 서울 미동초등학교·이화여대·인사동 등에서는 다채로운 행사준비가 한창 진행중이다. 19일 오후 여왕이 방문하는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는 60여명의 남녀 학생들로 구성된 ‘태권도 시범단’이 매일 방과후 1시간씩 연습을 하며 여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학생들은 여왕 앞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태권도 시범을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고조된 분위기다. 20일 오후 여왕을 맞는 이화여대는 장상(張裳)총장을 비롯,교직원들이 여왕이 둘러볼 건물과 동상 등을 점검하는 등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특히 약학대학 학부·대학원생 30여명은 여왕에게 선보일 인삼의 생약성분 추출실험을 준비하는데 열심이다.대학 관계자는 “장애학생들과 전문직 동문들이 여왕과 함께 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날 여왕이 둘러볼 서울 종로구 인사동도 여왕을 맞을 준비로 활기에 넘치고 있다.인사동 상인 모임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회원들을 중심으로 거리간판을 정비하고 화분을 재진열하는 등 거리청소가 활발하게 이뤄졌다.여왕이 직접 방문할 필방과 도자기점,서예점 주인들은 여왕을 만난다는 기쁨에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며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안동방문 준비 안동시는 엘리자베스여왕 맞이 준비를 끝내고 최종 점검작업을 하고 있다. 시는 여왕의 첫 방문지인 하회마을 입구에서 충효당까지 300m에 걸쳐 음식점 및 민박간판 30여개를 모두 정비했으며,지난 여름 수해때 허물어진 충효당 부근 담장 50m를 새로 단장했다.서후면 봉정사 진입도로 포장과 일주문에서 절까지 300여m 흙길을 마사토로 다지는 한편 기와가 낡아 비가 새는봉정사 대웅전의 기와 교체작업도 끝냈다. 또 농산물도매시장은 주변 청소 등 정비를 마쳤다.이와함께 예천공항에서하회마을과 농산물도매시장,봉정사 입구를 비롯한 여왕이 지나가는 도로와안동시내 곳곳에 여왕방문을 환영하는 한글과 영문으로 된 현수막 60여개를일제히 내걸었다. 당일 여왕이 받을 생일상도 안동지역 우리음식연구회가 과일 편육 육포 등47가지 전통음식으로 준비중이며,안동시의 선물로는 200년된 오리나무로 제작한 하회탈(양반탈)로 정했다.이경락(李京洛)부시장은 “가장 한국적이고자연스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뜻에 따라 여왕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국측 준비 주한대사관을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내실있는 여왕맞이’가 한창이다.여왕부부의 ‘세일즈 외교’에서 ‘문화외교’까지 치밀한 일정관리를 통해 왕실외교를 뒷받침할 계획이다.한국측 의전팀과 물샐틈 없는 경호를 숙의하면서도 ‘부드러운 의전’을 원칙으로 세웠다.스테판 브라운 주한영국대사는 “우아하면서 위엄있는 영국왕실의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심을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오일만 김미경기자·안동 김상화기자 oilman@
  • 유적지 안내표지판 한자 병기

    오는 7월 말까지 경주 부여 공주 등 전국의 8개 관광지와 유적지의 안내표지에 한자가 들어간다. 건설교통부는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의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15개 관광거점 가운데 8개 지역에 한자 병기(倂記) 관광안내표지를 오는 7월 말까지 시범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표기방법은 ‘출구 예고표지’의 경우 파란색 바탕 중 좌측 하단 일부에 한글-한자-영어로 표기하고 한글-한자-영문의 크기비율은 100 대 80 대 60으로하기로 했다. 박건승기자 ksp@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2)-창작과 비평사

    진시황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앗은 자들은 늘 그러했다.저항을 부르고 수많은 ‘금지’를 낳았다.우리 현대사에도 ‘지상의 양식’을 지향하다 ‘잉크를 묻힌 죽은 물체’가 돼버린 옥고들이 많다. 시집 ‘신동엽전집’(75),‘국토’(조태일),‘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82)‘대설 남(南)’(〃,82),‘8억인과의 대화’(리영희,77)…등도 그 대열에있다.당국의 붉은 딱지가 붙은 이 책들은 모두 모태가 같다.69년 등록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다. 저항의 첫 발은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66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문우출판사에서 발행한 132면의 문예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그것. ‘…대중의 소외가 혹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수준을 고수하는 소수 작가·지식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국토분단과 기성사회의 모순을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특권을 간직할 수 있는 소수를 제한다면,적어도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잠재적으로나마 우리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창작과 비평’창간호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자세’의 일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영문학자 백낙청교수의 의도에 공감한 국악인 황병기씨 등 지인들과 문우출판사 오영근사장 등이 쌈지돈을 모았다.‘비평의 정신’을 싹틔운 주역은 백교수와 소설가 한남철,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조교 김상기,기자이던 임재경·이종구씨 등 5인이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69년 백낙청교수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염무웅교수(영남대 독문학)가 편집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70년대를 버텼다.염교수는 ‘창비의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과학이나 현실에 발딛고 기본 민주주의 성취,실학·국학시리즈로 민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분단 극복 지향,기층 민주주의 역량성장에 이바지등 3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최대로 추구하면서 이런 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목적주의 문학이나 천박한 참여문학과는 차별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에 발행한 ‘신동엽전집’(창비신서 10,75년)이 긴급조치 9호의 미움을 사면서 창비의 ‘화려한 금서 리스트’가 막을 연다.이어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창비신서 18)로 편역자 리영희교수와 발행인 백낙청교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리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불구속 기소되었다. 수난속에서도 명맥은 유지하던 ‘창비’는 80년에 이르러 ‘절망적인 탄압’에 직면한다.7월말 국가보위입법회의로부터 계간 ‘창비’의 강제 폐간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암중모색하던 ‘창비’는 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 33)로 새벽을 열려고 나섰다.이화여대·연세대 앞에서 불티나게 팔리던시집은 학원사찰팀의 눈에 띄여 판매금지·압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압수된 책이 작두로 잘렸다”는 ‘창비인’들의 회고는 당시 검열의 상징이다.심지어 국세청 세무사찰로 추징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비열한 수단도 동원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대설 남’ 1권을 내놓았으나 문공부가 판매금지하고 전량을 봉인했다. 끊임없이 ‘비판의무기’를 갈던 ‘창비사’는 85년 부정기간행물(무크)로 얼굴을 달리하여 ‘창비’ 57호를 간행했다.이번에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정기간행물을 냈다는 꼬투리를 잡아 ‘출판사 등록 취소’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제 ‘창비’는 혼자가 아니었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중문화운동협의회 등의 항의농성 및 성명발표와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등 11개 출판사 대표의 항의성명이 이어졌고 문인·학계 인사가 중심이 돼 등록취소에 항의하는 ‘범지식인 서명운동’을 펼쳐 2,853명의 서명록을 문공부에 전달했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윤수교수(영남대)는 “회사가 없어져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면서 “‘창비’를 살리려고 문공부 담당국장과 10개월의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힌다.그 과정에 당국은 ‘창비’ 회생조건으로 백교수가 손을 떼고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어렵사리 사태를 수습한 김윤수 발행인은 86년 8월5일 ‘창작사’로 신규등록했다.87년 2월6일 부정기간행물 형태로 ‘창비 1987’(통권 58호)을 간행했다.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작사’는 87년 2월17일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되찾았고 다음해 계간 ‘창비’도 다시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89년 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다시 수난시대로 접어든다.이시영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시영 상임고문은 “11월 23일 퇴근 길에 남산으로 끌려갔는데 안기부는그동안 저를 통해 최대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문단에 대한 총점검을 하려고했다”면서 “‘창비’ 매호를 낱낱이 분석하고 필자들 성향까지 꿰뚫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숨가쁜 ‘창비’의 발자취에는 일그러진 현대사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기름지게 한 거름이기도 하다.정해렴 김윤수 고세현씨등으로 이어지는 발행인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역들을 일궈냈다. 고은 조태일 김지하 신경림 이성부 이시형 김용택 곽재구 김남주 고정희 김명수 등이 시로 독재자에‘침을 뱉었다’.이문구 황석영 현기영 방영웅 김한수 등이 소설이라는 쟁기로 척박한 땅에서 리얼리즘의 열매를 일구었다.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씨 등은 우상을 깨고 이성을 외쳤다.‘창비’는이들의 ‘사상의 거처(居處)’였다. 이제 ‘창비’의 나이 33세.‘잔치를 끝내지 않으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96년 ‘영원한 창비인’ 백낙청교수(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미)가 창비 30년을 정리하면서 밝힌 입장에서 ‘창비’의 앞날은 여전히 튼실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창비’ 고유의 지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혹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겠습니다”이종수기자 vielee@
  • [오늘의 눈]주롱지의 화려한 ‘외출’

    주롱지 중국총리가 14일 미 매사추세츠주 공과대학(MIT) 연설을 끝으로 방미일정을 마치고 떠났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합의는 실패했다 치더라도 그의 방미결산은대부분 성공적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나타난 결과는 없지만 내용은 성공이었다는 역설은 그가 들른 곳마다 들리는 연설내용과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히 가늠된다. 그가 미국에 온 순간까지만 해도 미국내에서는 중국의 핵기술 절취를 비롯해 비윤리적 국가운영문제,반체제인사 탄압,티베트 독립,대미무역흑자와 높은 무역장벽 등 숱한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비난이 한층 고조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와서 주목받는 신분의 위치를 십분활용,그 비난에대해 직접 하나씩 해명해 나갔다. 때로는 농담도 하고 지루해질만 하면 엄포성 발언도 섞었으며 중국에 대한비난에는 정면으로 대응해 나갔다. 그의 연설은 중국어 특유의 괴성섞인 억양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미국인들의귀에 ‘듣고 싶은 말씀’쯤으로 여겨졌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절대 그의 발언에 과장이 없다는 것이다.유치한 과장이나 공치사는 없이 철저한 자기파악이 전제된뒤 이어지는 비교적 정직한 그의 답변은 아무리 말하기 어려운 질문일지언정 토론에 익숙한 미국풍토에서 오히려 호소력이 있었다는 평이다. MIT의 연설에서는 반체제인사로 수감된 슈웬리의 딸이 강연장 밖에서 시위하고 딸의 친구가 “언제 중국은 독재정권을 끝낼 것인가”를 물었다. 주총리는 답변을 피하지 않았다.“중국의 인권문제는 개선점이 있다는 것을잘 안다”고 인정한 뒤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간 장내는 한 국가지도자의 고뇌를 공감하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만약 총리가 아니고 보다 아래급 관리가 와서 연설한다면 이같은 대답이 가능했으며 이런 주목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는 미지수이다. 15년만에 보여진 중국 정상 지도자는 특유의 유머와 센스를 지닌채 미국무대에서의 화려한 공연으로 중국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일조했다. 총리는 아니지만 이홍구 주미대사도 조만간 미국 도시를 돌 예정이다.바로한국이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제 투자를 해도좋다는 홍보행사인 ‘캐러밴’행사를 위한 것이다. 그도 당당한 모습으로 많은 미국인 청중들의 관심을사로잡기를 기대한다. 최철호 워싱턴 특파원hay@
  • 국민회의, 鄭亨根의원 인권위 연설 강력대응

    국민회의는 ‘고문혐의’로 피소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제55차국제인권위원회에 참석,현 정부 인권문제를 ‘규탄’하는 것과 관련,양성철(梁性喆) 당 국제협력위원장,이기문(李基文)당 인권위원장,김재일(金在日)부대변인 등을 16일 중 유엔인권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제네바에 급파,부당성을알리는 등 강력 대응할 것을 검토중이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는 15일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실에 정의원의 전력(前歷)과 연설의 부당성을 알리는 영문 홍보자료를 배포했다. 유민기자 rm0609@
  • 臨政 80돌 이모저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일인 13일 전국에서는 기념식과 자료전시회,추모제전,백일장 등 다채로운 행사가 잇따랐다.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임정 80주년 기념축시 공모 당선작인 ‘깃발이여 나부낄진저’가 낭독되자 분위기는 한순간숙연해졌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임시정부의 역사는 국난에 처할수록 더욱 강인해진 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준 겨레의 위대한 기록이자 유산”이라면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되살려 나간다면 조국을 21세기 인류 역사를 이끄는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전 11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료전’ 개관식에는 김총리와 이종찬(李鍾贊)국가정보원장,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최규학(崔圭鶴)국가보훈처장,고건(高建)서울시장,윤경빈(尹慶彬)광복회장,차일석(車一錫) 대한매일신보사 사장,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자료 가운데는 중국 상하이 ‘만국공묘’에 방치돼 있던 박은식(朴殷植)선생의 묘소 사진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金농림부장관에 따르면 당시 묘비에 선생의 이름은 한글이나 한자가 아닌 영문 ‘PAH EUM SIK’으로 잘못 표기돼 있었다.金장관은 89년 상하이에 들렀을 때 이를 발견,안병준(安秉俊)연세대교수와 함께 즉석에서 미화 200달러를모아 독립운동가 후손인 최은자씨에게 줬고 최씨가 이를 정정했다.그 뒤에야 관광객들은 이 묘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선생의 묘인 것을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오후 2시 용산구 효창원에서는 최보훈처장과 광복회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정요인 7명의 위업을 기리는 ‘효창원 7위 선열 추모제전’이 열렸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부처 외신대변인 산자부 李銀衡씨

    경제부처 외신대변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지 수개월째다.정부조직개편으로 개방형 임용제가 도입될 예정이어서 민간인 출신이 포함된 이들이공무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외신대변인제의 도입으로 과연 대외경제홍보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또 이들의 공무원 생활은 어떤지 짚어본다. 봄볕을 머금은 미소가 따뜻하다.산업자원부 외신대변인 李銀衡씨(35). 지난해 12월 낯선 직함으로 과천 정부청사 3동의 산업자원부에 들어온 지석달을 조금 넘겼다.몇해 전 기자 신분으로 드나들며 만나던 관료들이 지금은 상사,동료,그리고 부하가 됐다. 짧은 기간이지만 외신대변인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는 게 산자부의 평가다. 올해 들어 朴泰榮 산자부 장관이 가진 외국언론과의 인터뷰만도 4차례에 이른다.미국의 블룸버그,프랑스의 르 피가로,영국의 더 타임스,미국의 CNN 등등,모두 李대변인의 ‘작품’이다.지난달 9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 50여명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도 가졌다. 李대변인은 최근 일을 하나 만들었다.산업자원부를 소개하는 50쪽짜리 영문책자 1,500부를 제작,주한 외국상무관과 외신기자,국내의 외국경제인들에게돌렸다.한국의 통상정책과 산업현황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안내자가 되자는 생각에서다. ‘굴러온 돌’로서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처음 생긴 자리라 결재단계나지휘계통이 두서가 없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처음 받은 월급명세서에는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 있었다.2년간 4급 서기관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기로계약하고 들어온 그가 펄쩍 뛰어 다음달부터는 ‘전문직’으로 바뀌었다.흔한 고시출신이 아닌 탓에 뿌리를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처음엔 부초(浮草)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부지런히 터를 닦고 밭을 간 덕분일까.재정경제부 노동부 등 6개 부처 외에 조만간 정보통신부와 농림부 등도 외신대변인을 두려한다는 소식이다.“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국가정책을 올바로 해외에 알리는 외신대변인의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멀지 않아 민간기업으로까지 확대돼외신대변인이 전문직종으로 자리잡을날도 오겠죠”.‘내가 잘해야 외신대변인이라는 자리가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각오다. 陳璟鎬 kyoungho@
  • 1단계 외환자유화 시행 첫날

    1단계 외환자유화 시행 첫날인 1일 한국은행과 외환은행 등에는 환전상,비거주자의 원화예금,교포의 국내부동산 매각대금 반출 등과 관련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재경부와 한은은 외환자유화에 따른 외국인의 투기성 단기자금유출입 등 외환시장 움직임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는 외환전산망을 가동했으며,서울 명동 은행회관에 설립된 국제금융센터도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보수집 및 분석업무를 시작했다. ●환전영업 등록업무를 맡고 있는 한은 국제부 외환심사과에는 담당직원 4명이 자리를 뜰 수 없을 정도로 문의 전화가 쇄도.한 직원은 “문의 내용은 환전영업을 하기 위한 등록절차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직접 찾아와 상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설명. ●환전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명예퇴직자나 슈퍼마킷·약국 운영자,오퍼상이 대부분으로,겸업을 허용한 외환자유화 조치는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된다.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柳모씨(50)는 이날 오후 2시30분쯤 등록신청을 해‘등록 1호’를 기록.그는 “무역업을 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환전상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 왔다”고 언급. ●외환은행은 1일부터 본점 지하 1층 외환센터에 ‘해외교민 전담 데스크’를 설치,교민들의 국내예금 가입과 송금업무 등을 원스톱(One-Stop)으로 처리해 주고 있다. 외환업무팀 李鍾冕과장은 “재일교포들이 국제전화로 비거주자의 원화예금과 영주권자에 대한 국내 부동산 매각대금 반출 허용에 대해 물어본다”고말했다.외환은행은 “한국 금융기관에 투자하면 해외에서보다 많은 수익을올릴 수 있고,나라경제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 “한국 금융기관의 신용도는 믿을만 하다”는 내용을 일본 ‘교포일보’에 실어 홍보하는 방안도 검토중. ●환전상 등록절차: 일반개인은 주민등록증,개인사업자는 사업자등록증,법인은 법인등기부등본을 제시하면 된다.건물 등기부등본이나 임대차 계약서,환전영업자 표기(국문,영문 혼용),외국환매매율 게시판을 준비해야 한다.환전영업자 표기나 외국환매매율 게시판은 입증할 수 있는 사진을 제시해도 된다. 주거래은행을 정하고, 금전등록기와 위폐 감식기를 산 영수증 사본을 내면된다.한은은 서류를 심사해 바로 등록증을 내주고 있다. 吳承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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