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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회연속 올림픽 출전 확정한 한국여자컬링, 중국에 석패하며 아쉬운 4위…흥행엔 성공

    4회연속 올림픽 출전 확정한 한국여자컬링, 중국에 석패하며 아쉬운 4위…흥행엔 성공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확정한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이 안방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에 패하며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스킵 김은지, 서드 김민지, 세컨드 김수지, 리드 설예은, 핍스 설예지로 구성된 한국은 23일 경기도 의정부빙상장에서 열린 2025 LGT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 3~4위전에서 중국(스킵 왕루이)에 4-9로 졌다. 동메달결정전에서 중국에 패한 뒤 선수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며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던 스킵 김은지는 12년 만에 다시 밟을 동계 올림픽 무대를 고대하고 있다. 김은지는 “모든 선수에게 꿈인 올림픽 무대를 한 번 밟아봤는데 메달을 못 따봤다”며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생각에 1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달려가고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꼭 성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홈팬 응원을 바탕으로 한국 컬링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지만 준결승에서 캐나다에 고배를 마신데 이어 예선은 물론 지난달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두 차례나 승리했던 중국과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아쉽게 4위에 올랐다. 한국은 2022년 ‘팀킴’ 강릉시청(스킵 김은정)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에 이어 이번 대회 4위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출전권을 확보했다. 다만 이번대회에 출전했던 경기도청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올림픽에 출전할 팀은 6월 개최되는 2025 한국컬링선수권대회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대회 운영면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이번 대회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유료 관중을 받는 컬링 국제대회로 국내에서 열린 컬링 대회 중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았다. 개막일인 15일에는 9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이 모두 만석을 기록하며 좌석 점유율 100%를 초과했다. 대회 기간 중 평균 점유율 또한 50%를 넘어섰으며 대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 전설의 복서 조지 포먼, 76세 일기로 타계…최고령 헤비급 챔프

    전설의 복서 조지 포먼, 76세 일기로 타계…최고령 헤비급 챔프

    현역 시절 ‘KO 머신’으로 세계 복싱계를 평정했던 복서 조지 포먼이 타계했다. 향년 76세. 미국 매체 TMZ는 21일(현지시간) 포먼 유족의 성명서를 인용해 그가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유족은 “포먼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후 이듬해 무함마드 알리에게 권좌를 내어줄 때까지 40연승 무패 행진을 달렸다. 또한 은퇴 10년 후 링에 복귀, 1994년 45살의 나이로 헤비급 최고령 챔피언으로 등극한 전설적인 복서다. 포먼의 가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도주의자이자 올림피언,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던 그는 선의와 힘, 규율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가족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고인을 기렸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랐던 포먼은 어린 시절 폭행과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살다가 직업학교에서 복싱을 접하고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탁월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빠르게 헤비급 강자로 올라섰던 포먼은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복싱 헤비급 결승에서 요나스 체풀리스(당시 소련)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69년 프로로 전향한 포먼은 1973년 무패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해 TKO 승리를 따내며 최정상에 올랐다. 두 차례 방어전에 성공한 포먼은 1975년 알리와 ‘정글의 대소동’이라 회자되는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포먼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링에서는 알리의 지능적인 경기 운영에 점점 끌려들어 갔고, 결국 8라운드에 KO로 쓰러졌다. 프로 첫 패배를 당한 포먼은 알리와 재대결을 희망하며 승리 행진을 벌이다가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하며 링을 떠났다. 은퇴 후 목사로 목회자의 삶을 살던 포먼은 청소년 센터 기금을 련하고자 1987년 38세의 나이로 복귀를 선언했다. 이어 1994년 45세의 나이로 마이클 무어러를 꺾고 최고령 헤비급 복싱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포먼의 통산 성적은 81전 76승(68KO) 5패다. 1997년 링을 완전히 떠난 포먼은 성공학 강사와 복싱 해설위원, 목회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평온한 노년을 보냈다.
  • 일몰 촬영을 끝으로…달 탐사선 ‘블루 고스트’ 임무 종료

    일몰 촬영을 끝으로…달 탐사선 ‘블루 고스트’ 임무 종료

    일출 사진을 시작으로 임무 시작을 알린 미국 민간 달 탐사선 ‘블루 고스트’가 일몰 사진을 끝으로 임무 종료를 알렸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과 우주기업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이하 파이어플라이)는 블루 고스트가 ‘눈을 감기 전’ 촬영한 고화질 일몰 사진을 공개했다. 블루 고스트가 16일 임무를 종료하기 5시간 전 촬영한 이 사진 속에는 달의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태양이 눈부시게 환하게 빛난다. 또한 지구와 작은 점의 금성도 배경으로 보여 인근에 사는 가족사진이 완성됐다. NASA 과학 임무 탐사 부문 책임자인 조엘 컨스 부국장은 “정말 아름답고 미적인 이미지”라면서 “태양이 지며 어둠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은 최초의 고화질 이미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이어플라이 한국계 최고경영자(CEO) 제이슨 김도 “이번 임무는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면서 “달 착륙에 성공한 직후 탑재된 장비를 작동시켜 모든 과학 자료를 수집해 지구로 전송했다”고 밝혔다. 앞서 1월 15일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블루 고스트는 약 38만 4400㎞를 날아 지난달 13일 달 궤도에 진입했다. 특히 2일 블루 고스트는 애초 목표대로 달 표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는데 민간 기업으로서는 역사상 두 번째다. 이어 3일 블루 고스트는 달 표면에서 촬영한 일출 사진을 소셜미디어 ‘엑스’에 공개했다. 어둡고 울퉁불퉁한 달 표면을 배경으로 강렬하게 떠오른 태양 모습이 인상적인 이 사진은 하루의 시작이자 임무 시작을 알리는 상징처럼 보였다. 또한 북미 대륙에서 개기월식이 펼쳐진 14일 블루 고스트는 반대로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촬영해 공개하며 우주의 신비로움을 보여줬다. 달 구성, 지질 특성, 열 흐름, 날씨 등을 파악하기 위해 달을 탐사한 블루 고스트는 2주간의 탐사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6일 영면에 들었다. 다만 달의 긴 밤이 끝나는 4월 초 태양전지를 충전하게 되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 일출·일몰·일식을 보고…美 탐사선 ‘블루 고스트’ 달 표면에 잠들다 [우주를 보다]

    일출·일몰·일식을 보고…美 탐사선 ‘블루 고스트’ 달 표면에 잠들다 [우주를 보다]

    일출 사진을 시작으로 임무 시작을 알린 미국 민간 달 탐사선 ‘블루 고스트’가 일몰 사진을 끝으로 임무 종료를 알렸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과 우주기업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이하 파이어플라이)는 블루 고스트가 ‘눈을 감기 전’ 촬영한 고화질 일몰 사진을 공개했다. 블루 고스트가 16일 임무를 종료하기 5시간 전 촬영한 이 사진 속에는 달의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태양이 눈부시게 환하게 빛난다. 또한 지구와 작은 점의 금성도 배경으로 보여 인근에 사는 가족사진이 완성됐다. NASA 과학 임무 탐사 부문 책임자인 조엘 컨스 부국장은 “정말 아름답고 미적인 이미지”라면서 “태양이 지며 어둠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은 최초의 고화질 이미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이어플라이 한국계 최고경영자(CEO) 제이슨 김도 “이번 임무는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면서 “달 착륙에 성공한 직후 탑재된 장비를 작동시켜 모든 과학 자료를 수집해 지구로 전송했다”고 밝혔다. 앞서 1월 15일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블루 고스트는 약 38만 4400㎞를 날아 지난달 13일 달 궤도에 진입했다. 특히 2일 블루 고스트는 애초 목표대로 달 표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는데 민간 기업으로서는 역사상 두 번째다. 이어 3일 블루 고스트는 달 표면에서 촬영한 일출 사진을 소셜미디어 ‘엑스’에 공개했다. 어둡고 울퉁불퉁한 달 표면을 배경으로 강렬하게 떠오른 태양 모습이 인상적인 이 사진은 하루의 시작이자 임무 시작을 알리는 상징처럼 보였다. 또한 북미 대륙에서 개기월식이 펼쳐진 14일 블루 고스트는 반대로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촬영해 공개하며 우주의 신비로움을 보여줬다. 달 구성, 지질 특성, 열 흐름, 날씨 등을 파악하기 위해 달을 탐사한 블루 고스트는 2주간의 탐사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6일 영면에 들었다. 다만 달의 긴 밤이 끝나는 4월 초 태양전지를 충전하게 되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 “음악은 영원할 것”… 故휘성, 동료·팬들 눈물 속 영면

    “음악은 영원할 것”… 故휘성, 동료·팬들 눈물 속 영면

    지난 10일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가수 휘성(본명 최휘성)이 연예계 동료들과 팬들의 배웅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다. 고(故) 휘성의 영결식과 발인식은 16일 오전 6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비가 오는 이른 새벽에도 유족과 연예계 동료·선후배, 팬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상주이자 고인의 동생인 최혁성씨가 추모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최씨는 “최휘성이라는 인간의 육신의 삶은 끝나지만, 가수 휘성의 음악과 영적인 삶은 영원할 것”이라며 “형의 노래가 이 세상에 들리고, 불리는 그날까지 저희 형은 곁에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김나운은 추모사에서 “2005년 휘성이 제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인연으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며 “이번 결혼 20주년에 노래 몇 곡이든 불러줄 수 있다는 휘성은 정말 아름답고 영원한 우리의 아티스트”라고 했다. 휘성과 절친했던 힙합듀오 마이티 마우스 멤버인 래퍼 추플렉스는 고인에 대해 “음악밖에 모르던, 음악이 전부였다”고 기억했다. 휘성의 팬클럽 회장은 “휘성은 남다른 재능과 독보적 음색으로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행복이고 위로인 음악을 23년간 선물했다”며 “팬들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미안해하던 가수 휘성의 팬일 수 있어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눈물로 애도했다. 추도사에 이어 휘성의 생전 무대 영상과 그의 노래 ‘다시 만난 날’이 흘러나오자 영결식장은 팬들의 눈물과 오열로 가득 찼다. 동생 최씨는 팬들에게 “저희 형의 노래는 언제든 원하면 들을 수 있고,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도 휘성을 회자할 수 있도록 노래를 들려줬으면 한다”며 “다음 세대도 휘성의 ‘위드 미’(With Me)를 흥얼거리면서, 그렇게 형은 우리 곁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플렉스와 가수 하동균 등이 운구를 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팬들은 그 뒤를 따랐다. 휘성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애초 유가족은 큰 슬픔과 휘성 모친의 건강 등을 이유로 가족끼리만 조용히 장례를 치르려고 결정했으나, 생각을 바꿔 고인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함께 해달라며 지난 14일 뒤늦게 빈소를 마련했다. 장례 기간 가수 아이유, 이효리, 김태우, 김범수, 케이윌, KCM, 영탁, 빅마마 이영현, 윤하, 알리, 에일리, 방송인 유세윤, 지상렬, 조세호 등 연예계 동료들이 빈소를 찾았다. 1982년 2월생인 고인인 그룹 생활을 거쳐 2002년 솔로 데뷔한 이후 국내 가요계에서 손꼽히는 가창력으로 주목받았다. 히트곡 ‘안되나요’, ‘위드 미’, ‘결혼까지 생각했어’, ‘불치병’, ‘인섬니아’(Insomnia) 등 히트곡으로 2000년대 알앤비(R&B) 열풍을 주도했다. 윤하의 ‘비밀번호 486’, 에일리의 ‘헤븐’(Heaven) 등 2000~2010년대 여러 히트곡 가사를 쓰면서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로도 역량을 발휘했다.
  • 중랑 무료 셔틀버스 타고 망우역사문화공원 가볼까

    중랑 무료 셔틀버스 타고 망우역사문화공원 가볼까

    서울 중랑구가 방문객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11월까지 망우역사문화공원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5일 밝혔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근현대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 등 60여명이 영면한 역사적 공간이다. 전국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4.7㎞ 산책로와 다양한 전시 공간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공원이 언덕에 있어 어르신과 어린이 등 교통약자의 접근성이 낮다. 그래서 중랑구는 2023년 6월 무료 셔틀버스를 도입했다. 현재까지 6만명이 이용했다. 셔틀버스는 하루 19회 운행한다. 운행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다. 휴무일 없이 매일 운행한다. 배차 간격은 20~30분이다. 셔틀버스는 ▲망우역사문화공원(중랑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공원 제2주차장 ▲중랑캠핑숲 ▲양원역 ▲양원숲속도서관 ▲나들이 공원 등 6개 정류소를 순환한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더욱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 있도록 셔틀버스를 지속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애국지사의 묘역을 방문하고 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77년 만에 찾은 이름…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77년 만에 찾은 이름…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4·3희생자 유해 2구에 대한 신원확인 결과보고회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에 확인된 희생자들은 예비검속 희생자 고 김희숙(1921년)씨와 9연대 군인 희생자 고 강정호(1926년)씨다. 김 씨의 아들 김광익씨는 “4·3관계자 여러분, 아버지 유해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며 목메어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었을까. 그동안 참아왔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세번씩 외치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치 만세하듯 두손을 불끈 올리며 울먹이자 장내가 숨죽인 듯 숙연해졌다. 그동안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마다 알뜨르 비행장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만지며 소리쳤던 회한의 세월을 떠올렸다. 강씨의 조카 강중훈씨도 “작은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그렇게 덧없는 세월이 어느덧 70여년이 흘렀다.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했던 숙부님 이름을 이제야 불러본다”며 “당시 제 나이 8살 되던 해, 숙부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 모두 성산포 터진목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 사연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하고 숨기며 살아왔다”고 통한의 세월을 토로했다. 그는 “가슴 아픈 혼돈의 세월이었다”며 “제 나이도 85살이 됐으며 돌아가신 가족을 추모하던 어머니도 102살에 세상을 뜨셔서 이제 우리 곁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늦었지만 그래도 숙부님 신원이 확인된 건 하늘의 은혜”라고 말한 뒤 “4·3평화공원에도 환한 봄기운이 찾아든다. 용서와 화해의 기운으로 샘솟고 있다”며 부디 영면하길 기원했다. 제주4·3 당시 최대 학살터로 알려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 묻혀 있던 두사람. 그동안 이름표 없이 번호로만 안치됐던 유해의 신원이 유가족의 채혈로 확인되면서 7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한림면 저지리 출신 김 씨는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편에서 발굴됐다. 한경면 저지리에 거주하던 고인은 고인은 1948년 소개령이 내려지자 해안마을인 고산리로 이주해서 살다가 저지리 마을재건 명령 떨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6·25전쟁 발발 직후 시행된 예비검속으로 인해 1950년 7월쯤 이유도 모른채 모슬포경찰서로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2009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편에서 수습된 희생자 강 씨는 성산읍 오조리가 고향으로 1948년 제주 출신 9연대 소속 군인들이 집단 희생당했을 때 함께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강씨는 모슬포에서 군인으로 복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1948년 4·3이 발발했을 때, 제주에 들어온 9연대는 강경진압작전에 나섰지만 이에 동조하지 않은 일부 군인들이 탈영 이후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애초에 두 분은 섯알오름과 모슬포에서 각각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번 신원확인을 통해서야 제주공항에서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역사의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령들이 하루빨리 제 이름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직계와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을 해주길 바란다”며 “제주도정은 4・3평화재단과 함께 4・3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밝히고, 그들이 가족 품에 돌아와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봉 도의회의장은 “오랜 세월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두분의 유해 신원 확인됐다. 여전히 이름을 찾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이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한 분도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4·3 진실을 기억하고 알리는 모든 과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김광수 교육감도 “제주4·3은 아직도 진행형인 역사이며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며 “신원 확인과정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국 시인(제주작가회의 회장)은 ‘속절없이 울고 가는 정뜨르 바람이여/ 빈 들판 풀잎을 흔들리 마라/목숨하나 허덕이는 처절한 모습일지라도/ 동녘이슬 소박하게 맞아/동백꽃 붉게 붉게 눈물로 피워낸다//…사멸의 불바람이/휩쓸고 간 죽음의 시대/돌아오지 않을 새 봄을 꿈꾸며/허지기진 배 쥐어잡고/간절했던 목숨하나 호소했건만/아, 고향땅 성산포/마룻장 밑 짧은 사랑이여/말한마디 손가락질 하나가/죽음으로 가는 죄였구나//… 칠십오년 세월 사뿐히 건너/태 사른 땅 한라의 대지에서 편히 쉬세요/작별하지 않을 약속을 위해/우리 제주섬 후손들 손 꼭 잡아주세요’ 라며 헌시 ‘진혼애가’를 바쳤다. 한편 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표석 4064기가 아직 주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7명이다. 도내에서 발굴된 유해 417구 중 아직 272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광주분향소 21일 운영 종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광주분향소 21일 운영 종료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강기정 광주시장은 21일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245 합동분향소에서 마지막 합동참배를 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광주시는 이날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전일빌딩245 1층에 마련한 광주 합동분향소의 운영을 종료했다. 합동분향소 종료는 희생자 유가족 대표와 협의해 이뤄졌다. 광주시는 또 누리집(홈페이지)에 개설한 ‘온라인 분향소’도 이날 함께 종료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5·18민주광장에 마련돼 2024년 12월30일부터 지난 1월4일까지 운영했으며, 1월5일부터는 인근 전일빌딩245 1층 실내로 옮겨 48일동안 운영했다. 2곳의 합동분향소에는 총 2만9027명의 참배객들이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온라인 분향소에는 7094명이 헌화하고, 4375명이 추모글을 남겨 희생자들을 기렸다. 광주시는 이날 합동분향소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합동참배를 거행했다. 합동참배에는 강기정 시장, 박한신 유가족협의회 대표와 유가족들, 박미경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정영일 광주NGO시민재단 이사장, 이상갑 문화경제부시장, 공직자 등이 참석했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유가족들은 서로를 돌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며 “분향소를 운영하고 도움 주신 공직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픔을 함께 나눠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참사 원인규명, 유가족 심리치유 등 많은 과제가 남아있는 만큼 지금처럼 마음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앞으로 유가족·시민 등 피해자들의 심리 안정 및 치유를 위한 자조공간이자 일상회복 지원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지원 특별법’이 제정돼 지원 근거가 마련되면 ‘1229 마음센터’를 건립, 종합적 재난 심리 지원이 가능한 종합플랫폼으로 기능을 확대할 방침이다.
  • 인기 마스코트 담당자 숨지자 日 야구계 ‘애도 물결’

    인기 마스코트 담당자 숨지자 日 야구계 ‘애도 물결’

    “지금까지 쓰바쿠로를 담당했던 직원이 영면했습니다. 구단 마스코트를 여기까지 키워 준 공적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19일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 구단 홈페이지) 과거 임창용 선수가 소속됐던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인기 마스코트 ‘쓰바쿠로’를 31년간 맡아 온 담당자가 세상을 떠나며 열도가 슬픔에 잠겼다. 구단은 쓰바쿠로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20일 야쿠르트 구단의 춘계 캠프지인 오키나와 우라소에의 ‘쓰바쿠로 신사’에는 전날 담당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팬들의 애도 발걸음이 이어졌다고 현지 스포츠 매제들이 전했다. 쓰바쿠로가 좋아하는 오리온 맥주나, 야쿠르트1000 제품 등을 제단에 올리고 손을 모으거나 헌화하는 팬들도 보였다. 제비 모양의 캐릭터인 쓰바쿠로는 1994년 4월 9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공중회전’ 등의 재주를 선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귀여운 외모지만 독설에 가까운 입담을 선보이며 4차원 캐릭터로 구단을 넘어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 활동 20주년을 맞은 2014년에는 마스코트로는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진출을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 롯데 마린스가 FA 보상선수로 쓰바쿠로를 지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연봉 6만엔(약 57만원)에 야쿠르트 음료를 무제한으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담당자는 2월 1일부터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했지만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장기 휴양’을 발표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그는 폐고혈압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두 번이나 울렸던 거포 내야수이자 올해 야쿠르트의 주장을 맡은 야마다 데쓰토는 이날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연습 경기 전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면서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스왈로스의 일원이며 앞으로도 그와 함께 싸우고 싶다”고 애도했다.
  • FA선언·연봉 협상까지…日야구 인기 마스코트 담당자 사망에 애도 물결

    FA선언·연봉 협상까지…日야구 인기 마스코트 담당자 사망에 애도 물결

    “지금까지 쓰바쿠로를 담당했던 직원이 영면했습니다. 구단 마스코트를 여기까지 키워준 공적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19일 일본 프로야구 야구르트 스왈로즈 구단 홈페이지) 과거 임창용 선수가 소속됐던 일본 야구르트 스왈로즈의 인기 마스코트 ‘쓰바쿠로’를 31년간 맡아 온 담당자가 세상을 떠나며 열도가 슬픔에 잠겼다. 구단은 쓰바쿠로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20일 야구르트 구단의 춘계캠프지인 오키나와 우라소의 ‘쓰바쿠로 신사’에는 전날 담당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팬들의 애도의 발걸음이 이어졌다고 현지 스포츠 매제들이 전했다. 쓰바쿠로가 좋아하는 오리온 맥주나, 야쿠르트1000 제품 등을 제단에 올리고 손을 모으거나 헌화하는 팬들도 보였다. 제비 모양의 캐릭터인 쓰바쿠로는 1994년 4월 9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공중회전’ 등의 재주를 선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귀여운 외모지만 독설에 가까운 입담을 선보이며 4차원 캐릭터로 구단을 넘어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 활동 20주년을 맞은 2014년에는 마스코트로는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진출을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 롯데 마린스가 FA 보상선수로 쓰바쿠로를 지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연봉 6만엔(약 57만원)에 야쿠르트 음료를 무제한으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담당자는 2월 1일부터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했지만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장기 휴양’을 발표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그는 폐고혈압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두 번이나 울렸던 거포 내야수이자 올해 야구르트의 주장을 맡은 야마다 데쓰토는 이날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연습경기 전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며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스왈로즈의 일원이며, 앞으로도 그와 함께 싸우고 싶다”고 애도했다.
  • “새론, 끝내 소주 한잔 못 사줘”…이종혁, 故김새론 추모

    “새론, 끝내 소주 한잔 못 사줘”…이종혁, 故김새론 추모

    배우 이종혁이 배우 고(故) 김새론을 추모했다. 이종혁은 18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새론, 생일이 같던 동네 꼬마 후배, 영면하길”이라고 적었다. 그는 “끝내 삼촌이 소주 한 잔 못 사줬구나. 그 곳에선 밝게 웃길 바란다”고 덧붙이며 국화꽃 사진을 올렸다. 김새론은 지난 16일 오후 4시 54분쯤 서울 성동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가 자택에서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외부 침입 흔적 등 범죄 혐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변사사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새론은 2022년 5월 18일 서울 청담동 부근에서 음주운전해 변압기 등을 들이받았다. 당시 김새론은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거부했고 인근 병원에서 채혈한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227%로 면허취소 수준(0.08%)을 훨씬 웃돌았다. 김새론은 다음해 4월 벌금 2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후 김새론은 SBS TV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하차했고, 2023년 6월 공개한 넷플릭스 ‘사냥개들’에서도 대부분 편집됐다. 김새론은 지난해 4월 연극 ‘동치미’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비판이 쏟아지자 물러났다. 올 상반기 개봉을 앞둔 11월 영화 ‘기타맨’(감독 신재호) 출연 소식이 전해졌으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발인은 19일 오전 6시 20분이며, 장지는 통일로 추모공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한 손엔 지갑, 한 손엔 마이크… 故 송대관 “한세상 소풍 왔다”

    한 손엔 지갑, 한 손엔 마이크… 故 송대관 “한세상 소풍 왔다”

    “인생 무지개 잠시 잠깐이지. 팍팍 열어라. 지갑이 형님이여. 한세상 소풍 왔다. 나머지 인생은 쿨하게.” 지난 7일 별세한 가수 송대관의 생전 무대가 16일 KBS 1TV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방영됐다. “우리 가요계의 문화유산, 송대관 형님이 첫 무대를 꾸민다”는 사회자 남희석의 안내 멘트를 따라 오프닝 무대에 선 고인은 신곡 ‘지갑이 형님’을 열창했다. 화려한 무늬의 재킷을 입고 나온 그는 한 손에 지갑을,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좌중을 휘어잡았다. 다소 여윈 얼굴이었지만 마지막 구절 박자를 늘이는 무대 매너도 돋보였다. 전국노래자랑 측이 이날 정오에 내보낸 방송분은 충남 당진시 편으로, 지난해 10월 22일 당진실내체육관에서 녹화됐다. 제작진은 송대관의 무대에 앞서 ‘본 방송은 2024년 10월 22일 녹화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자막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2주간 결방했고, 이어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하며 2주를 또 결방했다. 이에 따라 고인이 포문을 연 당진시 편 역시 평소보다 공개가 늦어졌다. 송대관은 당진시 편을 녹화하고 나흘 뒤인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양화 한강공원 축구장에서 녹화한 영등포구 편에서도 초대 가수로 무대에 올랐다. 전국노래자랑 측은 다음달 2일 영등포구 편을 방송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국노래자랑 3월 2일 방송분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79세로 별세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뒤 ‘해 뜰 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80년대 후반엔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부활을 이끌면서 ‘트로트 4대 천왕’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9일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 日 위안부 피해자 영면…‘평균 연령 95.7세’ 생존자 이제 7명

    日 위안부 피해자 영면…‘평균 연령 95.7세’ 생존자 이제 7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길원옥 할머니가 16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명만이 남게 됐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길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다”며 애도를 표했다. 아울러 신 직무대행은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떠나보내게 되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생전에 많은 풍파를 겪으셨던 만큼 평안을 찾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이다. 그러나 길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7명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에 달하며, 이 중 96세 이상이 5명, 90~95세가 2명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에 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울과 대구, 경북, 경남에 각각 1명씩 거주하고 있다. 신 직무대행은 “여성가족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면밀히 살펴 지원하는 한편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지속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김하늘 양 눈물 속 영면(종합)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김하늘 양 눈물 속 영면(종합)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김하늘(8) 양이 14일 영면에 들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던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의 하늘 양 빈소는 눈물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활짝 웃고 있는 하늘이의 사진 앞에 선 유족들은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10일 하늘이를 처음 발견한 하늘이 할머니는 “오늘은 하늘이를 보내주는 날이야.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라”면서도 “하늘아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흐느끼던 하늘이 어머니는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해. 애기야 잘가”라며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내리쳤다. 유족들이 한동안 빈소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자 주변의 친인척들은 “하늘이를 위해서라도 힘내야 한다”며 부축해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슬픔 속에 이어진 발인 예배에서 목사는 “하늘이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뛰어놀 것”이라고 말하자 하늘이 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가 누워있는 작은 관이 운구차에 실릴 때는 곳곳에서 통곡 소리가 터졌다. 차마 딸을 보내지 못하겠다는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돼”라는 말만 반복하며 오열했고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운구차에 올라야 했다. “내 새끼 살려달라”며 관을 부여잡고 우는 할머니와 고통 속에서 하늘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모습에 현장은 숙연했다. 하늘이가 탄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나가자 영결식장에 있던 시민과 학교 선생님들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훔쳤다. 2017년 10월 22일 세상에 나온 하늘 양은 이날 하늘의 별이 됐다. 김하늘 양은 지난 10일 돌봄 수업을 마치고 학원으로 가던 중 책을 준다는 교사 A씨를 따라 시청각실에 갔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자해 후 병원으로 후송된 A씨는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이날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압수 물품과 증거자료 및 범행 동기와 계획범죄 여부 등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다만 A씨가 조사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대면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A씨는 범행 당일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무단 외출해 흉기를 구입해 학교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전에 범행 도구를 준비하는 등 계획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김하늘 양 눈물 속 영면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김하늘 양 눈물 속 영면

    “하늘이는 제일 예쁜 별이 될 거야.”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김하늘(8) 양이 14일 영면에 들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던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의 하늘 양 빈소는 눈물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활짝 웃고 있는 하늘이의 사진 앞에 선 유족들은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10일 하늘이를 처음 발견한 하늘이 할머니는 “오늘은 하늘이를 보내주는 날이야.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라”면서도 “하늘아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흐느끼던 하늘이 어머니는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해. 아기야 잘 가라”며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내리쳤다. 유족들이 한동안 빈소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자 주변의 친인척들이 “하늘이를 위해서라도 힘내야 한다”며 부축해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슬픔 속에 이어진 발인 예배에서 목사는 “하늘이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뛰어놀 것”이라고 말하자 하늘이 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가 누워있는 작은 관이 운구차에 실릴 때는 곳곳에서 통곡 소리가 터졌다. 차마 딸을 보내지 못하겠다는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돼”라는 말만 반복하며 오열했고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운구차에 올라야 했다. “내 새끼 살려달라”며 관을 부여잡고 우는 할머니와 고통 속에서 하늘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모습에 현장은 숙연했다. 하늘이가 탄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나가자 영결식장을 찾은 시민과 학교 선생님들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훔쳤다. 2017년 10월 22일 세상에 나온 하늘 양은 이날 하늘의 별이 됐다.
  • 58년 트로트 대부 영면…오열 속에 열린 송대관 영결식

    58년 트로트 대부 영면…오열 속에 열린 송대관 영결식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후배 가수들이 송대관의 대표곡 ‘해 뜰 날’을 합창하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한가수협회 회장인 이자연은 조사를 통해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오빠,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라며 오열했고, ‘절친’으로 꼽히는 태진아는 “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 대관이 형, 잘 가”라며 울먹였다. 58년 동안 노래로 국민을 위로한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가수 강진, 설운도 등 동료 7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약력 소개로 시작했다. 가수 이자연과 태진아가 각각 조사와 추도사를 올렸고,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며 애도했다. 이후 강진, 김수찬 등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 뜰 날’을 조가로 합창하며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송대관은 앞서 지난 7일 79세로 별세했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그는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뒤 ‘해 뜰 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70년대 경제 발전 시기에 서민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로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5년 ‘해 뜰 날’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이듬해 국내 방송 3사의 가요대상을 석권하고 가수왕까지 올랐다. 1980년 미국 이민 길에 오른 그는 198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발표한 ‘정 때문에’를 시작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차표 한 장’, ‘인생은 생방송’,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히트곡을 잇달아 내면서 명실상부한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후반엔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부활을 이끌면서 ‘트로트 4대 천왕’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 “쨍하고 해뜰날” 희망 부른 故송대관 영면…태진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 잘 가”

    “쨍하고 해뜰날” 희망 부른 故송대관 영면…태진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 잘 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후배 가수들이 도열해 가수 송대관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합창하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희망찬 노래 가사에도 노래를 부르는 후배들은 슬픔에 잠겨 먹먹한 표정이었다. 50년 넘는 세월 노래로 대중과 호흡한 고(故) 송대관의 영결식이 9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배우자는 식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북받친 감정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생전 고인의 라이벌이자 막역한 후배였던 가수 태진아는 눈물을 참으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태진아는 “형님은 항상 저에게 멘토였다. ‘형이 가는 길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길래 정말 따라갔다”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방송하는 것도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특히 태진아는 송대관과 라이벌 디너쇼를 계획 중이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는 “(디너쇼) 세트리스트 정리 중이었는데 그다음 날 돌아가셨다”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치매를 앓는 제 아내 ‘옥경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대관이 형이 그만큼 우리하고 가깝게 지냈으니 기억해주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추도사 말미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며 고인의 영정에 손을 흔들며 슬픔을 삼켰다.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 형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이어 태진아, 설운도, 강진, 김수찬 등 동료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합창했다. 생전 고인이 아꼈다는 후배 김수찬은 ‘해뜰날’ 모창과 성대모사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자아냈다. 영결식은 동료 가수들의 작별 인사로 마무리됐다. 이후 유족과 가수들이 관을 운구하고 식장을 떠났다. 고인은 컨디션 난조로 최근 병원을 찾았다가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지난 7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 기간 태진아, 설운도, 하춘화, 현숙, 김흥국 등 동료 가수와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해뜰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로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부터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태진아, 설운도, 고(故)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도 불렸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 ‘이순신 장군’ 축제 위해 맞손 잡은 서울 중구와 충남 아산시

    ‘이순신 장군’ 축제 위해 맞손 잡은 서울 중구와 충남 아산시

    서울 중구와 충남 아산시가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축제를 열고자 맞손을 잡았다. 5일 구에 따르면 지난 3일 구청에서 이순신 장군 축제 개최와 관련해 구와 시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날 관계자들은 이순신 축제의 정체성과 축제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 상호 교류가 가능한 부분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후 이들은 구 마른내로 명보아트홀과 인현동 신도빌딩 앞에 있는 이순신 생가터 비석을 찾기도 했다. 앞서 구는 지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2014년을 제외하고는 매해 이순신 장군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또는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 구 인현동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에 있는 훈련원공원은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장소기도 하다. 아산시도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순신 장군이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고, 영면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구와 시는 향후 개최할 이순신 축제의 성공을 목표로 상호 교류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김길성 구청장은 “민족의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의 애국정신과 용기, 헌신은 우리 모두가 배울 점”이라며 “이순신 장군 480주년을 기념해 보다 뜻깊은 축제를 개최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 하승진 “시간을 가지고…” 가슴 찢어지는 소식 전했다

    하승진 “시간을 가지고…” 가슴 찢어지는 소식 전했다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하승진(38)이 모친상을 당했다. 하승진은 2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오늘은 무거운 소식을 전하게 돼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라며 “2025년 1월 26일 오전 1시 10분, 저희 어머님께서 영면에 드셨다”고 전했다. 그는 “당분간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리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아 영상 업로드와 라이브를 잠시 멈추려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어 “시간을 가지고 감정을 잘 추스른 뒤,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하승진은 국내 최장신 센터이자 한국인 최초로 NBA에 진출한 농구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2019년 은퇴 후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유튜브 콘텐츠 제작, 방송 해설위원,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 시즌2 등에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팬들은 하승진과 그의 가족에게 위로와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구민이 구민 돕는 ‘복지 플랫폼’… 40만 중랑구민 덕에 성공할 것” [2025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구민이 구민 돕는 ‘복지 플랫폼’… 40만 중랑구민 덕에 성공할 것” [2025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닻 올린 ‘중랑 동행 사랑넷’도움 필요한 구민·봉사할 구민 연결 현물 지원·건강·멘토링 등 세분화민간 참여 유도로 복지 사각 해소중점 추진 구정은면목선 경전철 3년 내 착공 목표교통 넘어 지역상권 활성화 기대균형 발전 위한 SH공사 이전 촉구살기 좋은 중랑장미축제 키워 ‘100년 유산’으로근현대사 품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숲·산책로 어우러진 명소로 정비류경기 서울 중랑구청장이 전에 없던 복지 실험을 올해 시작했다. 중랑구가 지난 1일 문을 연 온라인 복지 플랫폼 ‘중랑 동행 사랑넷’을 통해서다. ‘40만 중랑구민이 40만 중랑구민을 돕는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도움이 필요한 구민, 도움을 주고 싶은 구민이 중랑 동행 사랑넷에 글을 올리면 구가 나서서 구민과 구민을 연결한다. 봉사의 효율화, 활성화가 기대된다. 류 구청장은 이 플랫폼이 국가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음은 류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중랑 동행 사랑넷이 지난 1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만든 중랑구만의 온라인 복지 플랫폼이다. 중랑구에는 복지 수요가 많다. 인구의 21%가 65세 이상 어르신이다. 등록 장애인이 2만 68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3만 73명, 1인 가구가 6만 6906가구다. 매년 복지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61%인 6500억원이었다. 이렇게 노력해도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있다. 민간과 공공, 주민 간의 협력을 통해 이 공백을 메우려 한다. 40만 구민이 40만 구민을 돕는 것이다. 그간 복지 서비스와 봉사는 온오프라인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봉사하려는 사람, 봉사가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연결이 안 됐다. 이것을 중랑 동행 사랑넷으로 한데 모아 연결하자는 것이다. 봉사하고 싶은 구민, 봉사가 필요한 구민이 중랑 동행 사랑넷에 내용을 등록하면 구청 담당자가 검증한 뒤 이어 준다. 구청 복지정책과에 전담팀을 만들었다. 또 봉사 분야를 현금 또는 현물 지원, 관계망 형성, 재능 나눔, 건강과 교육, 멘토링 등 164개로 세분화해 실효성을 높였다. 이 시스템을 만드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다소 생소한 모델인데. “중랑구민 덕분에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중랑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로 구민이다. 중랑구에는 농촌문화와 도시문화가 혼재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이 살아 있다. 주변에 이웃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따뜻한 인정, 공동체 의식 등 중랑구만의 강점을 살려 서로 화합해 행복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 사업 성패는 주민 참여에 달려 있다. 중랑구에는 많은 봉사자와 단체가 있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구민들이 많다. 중랑 동행 사랑넷을 통해 언제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활동 우수자 ‘온라인 명예의 전당’을 운영하는 등 구민 동참을 유도할 방법을 찾고 있다.” -중랑구 최대 잔치인 ‘장미축제’, 올해는 어떻게 달라지나. “이름이 달라진다. 지난해에는 그냥 ‘중랑서울장미축제’였다. 올해부터는 몇 회 축제인지를 표기할 것이다. 축제의 역사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장미축제는 올해로 17회를 맞는다. 그래서 올해 장미축제 정식 명칭은 ‘제17회 중랑서울장미축제’다. 중랑서울장미축제 역사 전시, 중랑 장미 추억 사진 공모 등 이 축제의 역사를 담은 프로그램도 진행할 것이다. 지난해 이틀에 걸쳐 진행했던 메인 행사를 사흘로 하루 늘렸다. 장미 전시관도 만들 것이다. 거기서 장미 굿즈도 판매할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 장미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장미 향수, 장미 화장품, 장미 오일을 만들어 판매하려 한다. 당연히 장미도 더 심을 것이다. 이미 국내 최장 장미터널과 장미 1000만 송이가 있지만, 축제가 열리는 주변 동네에 장미를 계속 심어 ‘장미 마을’을 만들 생각이다. 중랑서울장미축제는 100년을 이어 갈 중랑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면목선 경전철, 구민들 기대가 큰 것 같다. “면목선 경전철 사업이 지난해 예비타당성 심의를 통과했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7호선 면목역, 6호선 신내역을 연결하는 면목선 예비타당성조사는 지난해 서울에서 유일하게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사업이다. 구민의 열망과 이를 실현하려는 구·구의원·국회의원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1조 810억원짜리 사업이다. 전체 길이는 9.15㎞다. 애초 제3기 서울지하철 계획에 포함돼 10호선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외환 위기로 인해 취소됐고 민자 사업으로 하려다 잘 안돼 재정 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중랑구는 사업비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 서울시에 제시하고, 진행 중인 주택개발 사업 등 사업성 확보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제출해 설득했다. 면목선은 중랑구의 남북을 연결할 뿐 아니라 지하철 1·6·7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과 연결된다. 앞으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C 노선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철도 교통에서 소외됐던 우리 구민의 불편을 크게 덜어 줄 것이다. 새로운 역세권 형성으로 면목선 인근 우림시장, 동원시장 등 지역상권 활성화 및 신내동 일대 기업 유치와 주택 개발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중랑구에 면목선이란 과거의 베드타운, 현재의 교통 관문에서 미래의 경제·교육 중심지로 변신할 초석이다. 더 살기 편한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사업이 빨리 추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3년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이전은 어떻게 되나. “SH공사는 로드맵이 다 만들어져 있는데도 지난 3년간 지지부진했다. 중랑구는 SH공사 이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서울시·중랑구·SH공사 3자 간 협약 체결, 도시계획변경 결정, 지방공기업평가원을 통한 타당성 검토를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이전 촉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공포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위한 근거도 마련했다. 또한 2023년 9월 SH공사 본사 이전, 600석 규모의 공연장 설치라는 사업계획(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SH공사 측에서 사업성 개선, 혁신 디자인 적용 등을 이유로 지연시키고 있다. SH공사 이전은 강남북 균형 발전이라는 원칙에서 접근해야 한다. 더군다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했던 사항이다. 서울시와 SH공사의 미온적인 태도가 아쉽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중랑의 큰 자산이다. 활용 방안은. “중랑구 정체성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아오고, 이 공간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시설물을 조성하고 있다. 중랑구는 그간 중랑망우공간과 산책로, 전망대, 주차장을 신설하거나 정비했다.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60만명이 다녀갔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가꿀 수목 전문가도 채용했다. ‘망우’라는 이름 그대로 근심을 잊고 편안하게 역사와 삶을 돌아볼 공간을 만들겠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한 인물들의 정신적 문화유산도 널리 알리고 있다.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의 묘소와 아름다운 숲, 최고의 산책로가 어우러진 전국 최고의 명소로 가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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