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면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밀라노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목욕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삭제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전염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82
  • 유수연 사망...3일전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과 헤어진뒤 연락 두절

    유수연 사망...3일전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과 헤어진뒤 연락 두절

    ’유수연 사망...3일전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과 헤어진뒤 연락 두절’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여성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새벽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정황으로 볼 때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은 지난 19일 연습을 마치고 헤어진 유수연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이날 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 유수연의 집에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유수연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유가족과 논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유수연 사망 그녀의 노래 다시 못듣는건가”, “유수연 사망 소식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영면하길” 등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유수연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밴드 멤버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수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밴드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랐다. 빈소는 서울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연락두절에 119 신고했더니...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연락두절에 119 신고했더니...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연락두절에 119 신고했더니...’ 4인조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여성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새벽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자기 집 화장실에서 유수연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밴드 멤버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은 19일 연습을 마치고 헤어진 유수연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유수연을 발견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수연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밴드 멤버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수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유가족과 논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유수연 사망 그녀의 노래 다시 못듣는건가”, “유수연 사망 소식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영면하길” 등 반응을 보였다. 소속사 관계자는 “고인이 최근 기획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 중에 있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녀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밴드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랐다. 빈소는 서울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4년 전 아버지 여읜 뒤 우울증 악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4년 전 아버지 여읜 뒤 우울증 악화

    ’유수연 사망...4년 전 아버지 잃은 뒤 우울증 악화’4인조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여성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새벽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자기 집 화장실에서 유수연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밴드 멤버들이 발견했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은 19일 연습을 마치고 헤어진 유수연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유수연을 발견했다. 경찰은 유수연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밴드 멤버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수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유가족과 논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유수연 사망 그녀의 노래 하늘에서도 계속되길”, “유수연 사망 소식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등 반응을 보였다. 소속사 관계자는 “고인이 최근 기획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 중에 있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녀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밴드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랐다. 빈소는 서울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베리안허스키’ 유수연 사망, 자택서 목매 자살..멤버들이 발견 ‘원인은?’

    ‘시베리안허스키’ 유수연 사망, 자택서 목매 자살..멤버들이 발견 ‘원인은?’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보컬 유수연이 사망했다. 지난 2010년 KBS2 ‘톱밴드2’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시베리안 허스키’ 여성 멤버 유수연은 평소 우울증을 앓다 아버지가 사망한 4년 전부터 증세가 악화돼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지난 4월 3집 정규앨범인 ‘오드 아이즈(ODD EYES)’를 발매해 활발한 밴드 활동과 더불어 멤버 별 개별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이 연습 후 연락이 닿지 않는 유수연의 집에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22일 새벽 시베리안 허스키 측은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보컬 유수연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시베리안 허스키 측은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을 게재했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1999년 결성됐으며 재작년에는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밴드’ 16강에 오르며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정말 안타깝다”,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목소리 진짜 좋은데”,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 방송 캡처 (‘시베리안 허스키 밴드’ 유수연 사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3일만에 집에 갔다가 ‘경악’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3일만에 집에 갔다가 ‘경악’

    ’유수연 사망...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 연락두절에 119 신고했더니...’ 시베리안 허스키의 여성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사망한 채 발견됐다. 유수연이 속한 4인조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멤버들은 이날 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자기 집 화장실에서 유수연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은 19일 연습을 마치고 헤어진 유수연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유수연을 발견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수연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밴드 멤버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수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유가족과 논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유수연 사망 그녀의 노래 다시 못듣는건가”, “유수연 사망 소식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영면하길” 등 반응을 보였다. 소속사 관계자는 “고인이 최근 기획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 중에 있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녀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밴드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랐다. 빈소는 서울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4인조 록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여성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새벽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자기 집 화장실에서 유수연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밴드 멤버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베리안 허스키 멤버들은 19일 연습을 마치고 헤어진 유수연이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소방대원들과 함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유수연을 발견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수연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4년 전 아버지를 잃은 뒤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밴드 멤버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수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점은 없으며 유가족과 논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유수연 사망 그녀의 노래 다시 못듣는건가”, “유수연 사망 소식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영면하길” 등 반응을 보였다. 소속사 관계자는 “고인이 최근 기획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 중에 있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녀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밴드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랐다. 빈소는 서울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베리안 허스키 보컬 유수연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기도해주세요”

    시베리안 허스키 보컬 유수연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기도해주세요”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숨졌다.  22일 새벽 4시10분쯤 시베리안 허스키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 글과 함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유수연은 자택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빈소는 강서장례식장, 발인은 24일이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유수연(보컬)과 이용운(기타), 임승준(베이스), 최혁(드럼)으로 구성된 록 밴드다. 2006년 싱글 앨범 ‘트라이앵글’로 데뷔한 뒤 2012년 KBS 2TV ‘톱 밴드2’에 출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4월 3집 앨범 ‘오드 아이즈(Odd Eyes)’를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 “재니스 조플린같은 목소리...왜”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사망, “재니스 조플린같은 목소리...왜”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의 보컬 유수연(35)이 22일 숨졌다. 뮤지션들이 충격에 빠졌다.  22일 새벽 4시10분쯤 시베리안 허스키 페이스북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유수연 양이 6월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가족들 품에서 행복하게 영면하도록 기도해주세요” 글과 함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유수연은 자택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유수연(보컬)과 이용운(기타), 임승준(베이스), 최혁(드럼)으로 구성된 록 밴드다. 2006년 싱글 앨범 ‘트라이앵글’로 데뷔한 뒤 2012년 KBS 2TV ‘톱 밴드2’에 출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4월 3집 앨범 ‘오드 아이즈(Odd Eyes)’를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신해철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시베리안 허스키 보컬 유수연양의 명복을 빕니다. 재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아이. 왠지 억울합니다. 지금은 ‘고스트스테이션’도 없고 아무런 여력이 없으나 인디씬의 모든 분들에게 그저 마음과 성원 보냅니다.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글로 애도했다. 재니스 조플린은 미국의 백인 여성 블루스 가수다. 빅 브라더 앤드 홀딩 컴퍼니에서 활동, 큰 인기를 얻은 뒤 스스로 밴드를 조직했다. 거침없는 음악 스타일과 함께 ‘여가수’라는 관습적 제약에서 벗어난 가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미국이 사랑했던 배우, 인권운동가 루비 디, “은퇴란 몸이 아닌 정신...” 타계

    미국이 사랑한 배우이자 영화제작자, 연극인, 인권운동가였던 루비 디가 11일 밤(현지시간) 뉴욕주 뉴 로첼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91세. 루비 디의 딸 노라 데이비스 데이는 “어머니가 노환으로 사망했다. 세 자녀들과 7명의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감으면서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먼저 사망한 남편 오시 데이비스와 56년을 함께 하며 연극, 영화, 방송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83세인 2007년 ‘아메리칸 갱스터’에 출연, 제80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에미상 등을 수상했다. 2001년 AP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란 자기 몸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향해 ‘나는 은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삶의 강조점이 달라질 뿐, 그 순간에 맞는 적당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언제나 해내야 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숨을 쉬고 있는 한 은퇴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1995년 국가예술훈장, 2000년 영화배우조합의 평생공로상을 받은 데다 2004년 케네디 센터에 부부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50년간 전통장례문화 물품 수집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50년간 전통장례문화 물품 수집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삶’과 ‘죽음’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웰빙’과 ‘웰 다잉’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평생 ‘삶과 죽음’의 공존 속에 숨 가쁘게 살다가 편안한 ‘쉼’의 세계로 떠난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한 ‘쉼 박물관’은 이 같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 주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현충일 이틀 전인 지난 4일 박물관을 찾았다. 입구 벽에 걸려 있는 명문목판(銘文木板)의 한시(漢詩)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나서 백년 누리기는 어려우나 죽어서는 천추를 누리니/돌아가는 객의 낯빛 속에 청산이 어리었구나/만금의 재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이 몸은 어디에 들거나 청산으로 가리라’ 또 있다. 동화작가 권영상의 ‘새’에 나오는 내용이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가끔씩/깃털을 버리는가 보다/버릴 것은 버리면서/가볍게/하늘을 나는가 보다’ 박물관의 내부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끼게 하는 글귀다. 주택가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2007년 10월 개관했다. 박물관장이 20대 때부터 꾸준히 모아온 상여, 상여 장식, 요여 등 전통장례 용품 1000여점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내부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조상들의 해학과 순수성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편안히 누워 쉬고 있다는 생각으로 안방 침실에 상여를 전시한 것을 비롯해 옷방과 식당이 꼭두와 용수판, 자개 문갑 등 여러 가지 상여장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물구나무를 선 꼭두 등 눈길을 끄는 많은 목조각들이 진열돼 있으며 화장실에는 심청전, 오성과 한음, 도깨비 방망이, 이수일과 심순애 등 전통 이야기에 맞춰 전시품들을 배열하고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한다는 용, 봉황, 새, 닭 등 날개 달린 짐승의 상여조각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가지런히 벽 쪽에 진열돼 있다. 용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하늘을 오르는 상여조각, 칼을 든 도깨비 양쪽 어깨에 용의 모습이 장식된 상여조각들도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례문화의 면모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죽음을 장식했기에 박물관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창밖으로 보이는 북악산의 경치와 박물관 주변에 빙 둘러 서 있는 나무와 꽃 등이 더욱 그러하다. 이 박물관의 지하 특별 전시실은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그동안 이걸재 소리꾼의 서민상여 퍼포먼스(2007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전(2008년), 한국 보자기와 부채전(2011년), 국제 보자기포럼 특별전(2012년) 등을 비롯해 2010년부터 세계인형전을 매년 열고 있으며 지금은 독일의 미술가 게하르트 바치전, 그리고 박물관장이 직접 제작한 부채와 보자기전이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상례문화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여는 등 조선시대의 장례절차와 분묘, 묘비, 상여에 대한 논문 발표의 장소가 되기도 하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장례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박물관은 개관 당시 혼자 사는 한 여인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박기옥(75) 박물관장과 마주 앉았다. “집도 쉼이고, 만남도 쉼이고, 영면도 쉼입니다. 죽음은 분명 슬프지만 제 남편이 자는 듯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진정한 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 그래서 쉼 박물관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박물관이 비록 서울 도심 복잡한 곳에 있지만 잠깐 쉬듯 관람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습니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삶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죽음의 철학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시실 한편에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들을 지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슬프다기보다는 웃는 모습이다. 어릴 적 시골 동네에서 들었던 소리가 얼핏 들리는 듯하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일세 에헤 에헤~’ 박 관장은 “예부터 조상들은 죽은 자와 산 자들을 가급적 연결시키도록 했다. 죽은 자의 거처를 마련하고 기념하는 것도 그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왜 살고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자기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졌다”고 대답한다. 박물관을 만든 계기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50년 전이다. 평소 우리의 민속품을 좋아해 서울 인사동 등 골동품 가게를 자주 찾았다. 처음에는 나막신이나 떡살, 작은 소반 같은 것을 모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박한 상여에 부착된 여인의 목조각, 목조형물 등을 보고 우직한 오방색에 매료돼 그것을 수집했다. 보면 볼수록 옛날 서민들의 삶 등 하나하나에 특색과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계속 모으게 됐다. 결혼 후에도 상여에 부착된 여러 목조각들의 수집은 이어졌다. 남편한테 “그 빈대 나오는 것들 그만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10년쯤 지났을 때에는 남편도 오히려 협력자가 됐으며 나중에는 미술 하는 세 딸과 아들도 박 관장의 수집을 이해하고 도와줄 정도가 됐다. 그러던 중 2005년을 전후해 시어머니와 친어머니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죽음은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6년 10월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철학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과정이자 연장이고 잠자듯 쉬는 거라는 것을 느끼게 됐지요. 또한 우리의 전통장례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북망산천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어서 다시 살 거처도 마련해 주거든요. 전통장례는 장엄하고 엄숙하지만 일종의 새로운 곳을 향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박 관장의 안방에 상여를 배치한 것도 남편이 편히 쉬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인테리어는 박 관장이 직접 했으며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던 막내딸이 소장품 배치를 도왔다. 개관 기념으로 소리꾼들을 불러 지게놀이 등 서민 상여 퍼포먼스를 하면서 상여 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출발하게 됐다. 7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도 많아졌으며 프랑스 박물관 포털사이트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도 전통장례문화와 관련된 물품들을 모으면서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박 관장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있기에 잠시 자랑을 하겠다고 말한다. 고인이 된 남편 남방희씨는 호남정유 계열사 중역으로 일했다. “거제에서 태어났고 남몰래 학비를 도와주는 등 불우이웃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또한 기부문화를 몸소 실천했고 가족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향 후학들에게는 덕불고(德不孤), 그러니까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했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주변에 새들이 많다. 땡그랑, 풍경소리도 들려온다. 평소 알고 지내는 소리꾼 장사익씨가 바로 윗집에 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장씨는 즉석에서 노래 한 곡을 읊어댄다. ‘잎사귀 가지 하나 놓는다/한세상 그냥 버티다 보면/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 될 줄 알았다/기적이 운다/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다시 장례 얘기로 돌아왔다. “예전 장례는 통곡했는데 그 이유가 한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울음으로 한을 표출하잖아요. 물론 슬프지만 축제처럼 슬픔을 승화시켜 기왕 가시는 분에게, 잘 가시라고 하는 마음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박물관에는 코믹하게 물구나무 놀이하는 꼭두도 있고 장난기 있는 해학적인 조각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여꾼들도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꾼들이 조각도 만들고 조형물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강조한 부분을 다시 얘기한다.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부터는 우리의 전통 상여는 없어지고 온통 흰 국화로 장식한 운구차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기자가 서양화가 권옥연 화백과 함께 장례식 광경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국장이나 국민장은 이제라도 우리 전통 장례식으로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삶과 죽음은 공존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국장만큼은 전통장례식으로 치러야 한다. 그 운동을 펼칠 것”이라면서 뒤돌아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기옥은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옛 물건에 관심이 많았고 골동품 수집을 좋아했다. 이화여대 사학과 1회 출신이다. 결혼한 뒤 지금의 박물관 자리에 집을 꾸몄다. 1968년 동아일보에서 ‘꽃꽂이’를 테마로 집이 소개됐으며 대한민국 베스트 드레서 10위 안에 선정됐다. 1986년 ‘뿌리깊은 나무’에 ‘한국의 맛집-미더덕 찜’, 1989년 ‘행복이 가득한 집’에 ‘그림이 있는 집’ 등으로 소개됐다. 1999년 예술의전당 ‘코닝페어’를 시작으로 2002년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모시작품전에 부채와 적삼 등 여러 작품을 출품했다. 2007년 박물관을 개관한 이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전(2008년), 한국 보자기와 부채전(2011년), 국제 보자기포럼 특별전(2012년) 등 매년 굵직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 눈물로 단 카네이션

    눈물로 단 카네이션

    “이쁜 지혜쌤(선생님)! 은혜 보답해 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세린, 승정 올림.” 15일 경기 안산 단원고 교문 앞.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로 여전히 4명의 교사가 돌아오지 못한 가운데 스승의 날을 맞은 단원고 담장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적으세요’라고 적힌 커다란 나무판이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커다란 하트 모양의 그림 속에 2학년 7반 고(故) 이지혜 담임교사를 향한 애틋한 심정을 적어놓았다. 여느 스승의 날이라면 새벽부터 카네이션과 선물을 들고 등교했겠지만, 이날 학생 대부분은 빈손이었다. 오전 8시쯤 버스에서 내려 삼삼오오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다행히 휴교를 끝내고 다시 등교를 시작한 지난달 말보다는 밝아진 표정이었다. 단원고 앞에서 교통안내 자원 봉사를 해온 김재경(60)씨는 “학생들이 많이 밝아졌지만 그래도 노제를 지내러 희생자들의 운구차가 다녀가면 학생들이 울고불고한다”면서 “학교 측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자제하도록 했는지 조용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숨진 단원고 교사 7명의 영정이 모셔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는 카네이션이 국화를 대신해 교사들의 영정 사진을 둘러쌌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이하 희생자 가족 대책위)는 희생된 교사들을 위해 카네이션을 준비했다. 학생 유족들은 학급별로 한 명씩 분홍색 바구니에 담긴 붉은 카네이션을 양손에 들고 분향소로 들어갔다. 희생자 가족 대표가 먼저 학생과 교사, 일반 승객들의 영정을 향해 대표로 헌화한 뒤 묵념했다. 곧이어 단원고 전 교감과 교사들의 영정이 한데 모여 있는 제단 앞으로 향했다.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엄마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시고 안아주신 은혜 잊지 못할 겁니다. 끝내 피어보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하신 선생님, 부디 영면하시고 그곳에서도 저희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꿈에서라도 환하게 웃는 모습 뵙기를 기도합니다.” 한 유족이 미리 준비한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유족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학생 유족들은 분향소를 나서기에 앞서 희생 교사들의 영정 앞에서 이젠 떠나버린 아들, 딸들을 대신해 희생된 교사 부모들의 가슴에 대신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학생 유족과 교사 유족들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말을 되풀이하며 혈육을 잃은 슬픔을 나눴다. 안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사설] 국가도 언딘도 숭고한 희생 나몰라라 하나

    세월호 수색 현장에서 숨진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에 대한 사후 보상과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아들 또래의 어린 학생들이 컴컴한 바닷속에서 20여일 넘게 방치된 게 못내 안쓰러웠던 그는 부름을 받자 기꺼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고, 안타깝게도 싸늘한 시신이 되어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에겐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진도 앞바다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오로지 잠수사로 활동한 자신의 30년 경력을 보태 어린 학생들을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숭고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고인의 이런 숭고한 희생정신을 고양하기는커녕 욕되게 하는 짓거리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애초 잠수자격증이 없었다는 얘기가 떠돌더니 그의 사망 책임을 놓고 민간 잠수사 투입에 관여했던 해경과 수색업체 언딘이 서로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며 발뺌하고 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해경은 “우리는 언딘 측에 민간 잠수사 소집을 요청했을 뿐”이라 하고, 반면 언딘은 “언딘과 이씨는 정부의 징집으로 일하게 된 동등한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하고 있다. 상처받은 유족들은 발인을 미뤘고, 고인은 차디찬 영안실에 안치된 채 영면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자 지정도 진척이 안 되고 있다. 그제 빈소를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어느 것 하나 딱 부러진 답변도 못한 채 황망히 자리를 떴다고 한다. 정 총리가 남양주시 등에 “의사자 지정 등을 신속히 진행하라”고 했다지만 퇴임이 예정된 그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될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게다가 유족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과를 하거나 사후 수습에 대해 설명해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전문이다. 의로운 일을 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이토록 소홀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UDT 출신의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잠수사로 활동해온 이씨의 공인자격증 보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소집령에 따라 ‘애국하러’ 진도에 내려갔고, 언딘에 배속돼 물속에 들어갔다가 불귀의 몸이 됐다. 그의 희생이 공적인 이유다. 의사자 지정 등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가도 외면하고, 사회도 모른 체한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기꺼이 재난과 참사 현장에 뛰어들어 구조와 복구작업에 힘을 보태겠는가.
  • [세월호 침몰-눈물의 단원고] 생애 가장 힘든 등교… “너무 슬프고, 텅빈 것 같아” 비통

    [세월호 침몰-눈물의 단원고] 생애 가장 힘든 등교… “너무 슬프고, 텅빈 것 같아” 비통

    “학교에 오고 싶었어요. 근데 막상 오니까 너무 슬프고 허전해요. 텅 빈 것 같고….” 24일 오전 7시 30분 경기 안산 단원고. 평소 같으면 수다를 떨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학생들로 시끌벅적했을 거리에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만이 가로수에 매달려 무심한 듯 흩날렸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역에서 침몰한 지 8일 만에 첫 등굣길에 오른 3학년 학생들의 발걸음은 납덩이라도 달아놓은 듯 무거웠다. 낯익은 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교정이 못내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7일 임시휴교 조치 이후 1주일 만에 학교에서 재회한 학생들은 “잘 지냈느냐”며 눈인사를 건넸지만 학교 앞에 몰려든 취재진을 보고는 이내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2학년 학생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들이 오전 8시 10분쯤 학교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날 발인을 한 조모(17)양이 영면에 들기 전 마지막 등교를 하러 오는 길이었다. 운구차를 본 몇몇은 고개를 떨군 채 묵념했고 또 다른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권모(18)군은 “2학년 후배들을 다 알지는 못해도 오며 가며 늘 보던 애들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교문에는 실종된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쪽지 글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가득했다. 한 남학생은 “2학년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일본어 선생님이 아직 안 돌아오셨다. 나를 무척 예뻐해 주셨는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내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3학년 학생 480명(결석 25명 제외)은 담임선생님과의 조회 시간 뒤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트라우마 떠나보내기’ 시간을 가졌다. 김학미 3학년 부장교사는 “학생들 대다수가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로 등교했지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는 과정에서 아픔을 이겨내는 분위기”라면서 “오히려 교사들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위로해 교사들이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숨진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안산올림픽기념관 임시 합동분향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 설치 이틀째인 이날 늦은 밤까지 몰린 조문객수는 4만명을 넘어섰다. 경남 함안에서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안산에 왔다는 대한적십자사 경남지부의 한 여성 회원은 “멀어도 와 봐야 하지 않겠나. 다 내 자식 같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다”면서 “이곳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내일 늦게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통한 표정으로 분향소를 나서던 김모(40·여)씨는 “안산에 뿌리를 내린 지 10년이 됐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면서 “요즘 계속 TV에서 나오는 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고 있으면 6살짜리 막내아들이 ‘엄마 울지 마. 형이랑 누나들은 죽은 게 아니야. 깊은 잠에 빠진 거야. 곧 깨어날 거야’라고 말하는데 진짜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워리어 사망, 18년 만에 복귀했지만..‘단 하루 만에 사망한 이유는?’

    워리어 사망, 18년 만에 복귀했지만..‘단 하루 만에 사망한 이유는?’

    ‘워리어 사망’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는 9일(이하 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얼티밋 워리어가 세상을 떠났다. WWE는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 그는 WWE 슈퍼스타들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존재였다”라고 얼티밋 워리어(본명 제임스 헬위그, 55)의 사망을 알리며 조의를 표했다. 이날 얼티밋 워리어는 애리조나 호텔 밖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정확한 사인은 파악 중에 있다. 그는 지난 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스무디킹 센터에서 열린 WWE RAW에서 18년 만에 컴백했다. 특히 워리어의 사망은 WWE 복귀 무대를 가진 후여서 팬들 사이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얼티밋 워리어가 WWE 복귀 3일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가운데 프로레슬링계의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WWE의 슈퍼스타 트리플 H는 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얼티밋 워리어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한다. 그는 WWE의 상징이었고 친구였다. 워리어의 부인 다나와 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조의를 표했다. 과거 얼티밋 워리어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헐크 호건 역시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워리어여. 영면하기를. 오직 사랑을. 헐크 호건으로부터”라며 추모의 글을 게재해 프로레슬링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워리어 사망’에 네티즌들은 “워리어 사망, 아쉽다” “워리어 사망, 편히 쉬세요” “워리어 사망, 정말 그리울 거야”, “워리어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얼티밋 워리어의 사망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사진 = 헐크 호건 트위터, WWE 홈페이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헐크 호건 “워리어여 영면하소서”…라이벌 사망에 눈물의 추모글

    헐크 호건 “워리어여 영면하소서”…라이벌 사망에 눈물의 추모글

    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살아있는 전설’인 헐크 호건(61)이 8일(현지시간) 사망한 라이벌 얼티밋 워리어의 죽음을 애도했다. 헐크 호건은 9일 오후 1시15분 트위터에 “워리어여. 영면하소서. 오직 사랑을. 헐크 호건이”(RIP WARRIOR. only love. HH)라는 짧은 추모의 글을 적었다. 트윗은 한 시간여 만에 4500건 넘게 재배포 됐다. 헐크 호건과 워리어는 1980~90년대 WWF를 지탱하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었다. 워리어가 호건의 챔피언벨트를 빼앗은 레슬마니아6의 타이틀매치는 지금까지도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경기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WWE는 8일 얼티밋 워리어가 향년 54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아직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WWE에서 부사장을 맡고 있는 프로레슬러 트리플 H는 “얼티밋 워리어는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이자 ‘친구’”라고 애도했다. 얼티밋 워리어는 WWE의 전설 헐크 호건과 함께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은퇴를 전후해 WWE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1996년 7월 이후 WWE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단체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트리플 H가 얼티밋 워리어의 복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최근 극적으로 화해했다. WWE는 얼티밋 워리어를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한편 공식 홍보대사 계약을 체결하는 등 관계 회복에 주력해왔다. 얼티밋 워리어 역시 사망 전날 사망 전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스무디킹 센터에서 열린 WWE RAW에 모습을 드러내 환호를 받았다. 얼티밋 워리어는 “그 누구도 혼자 전설이 될 순 없다. 얼티밋 워리어는 팬들이 만든 전설”이라면서 “나와 같은 전설들이 탄생하기 위해선 팬들의 선택이 필요하다. 팬들은 또 다른 전설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얼티밋 워리어의 영혼은 영원할 것”이라는 짦은 말과 함께 로프를 흔들어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것이 얼티밋 워리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회찬,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애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

    노회찬,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애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사망 소식에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8일 자신의 트위터에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장미 한 송이를 보냈는데 오늘 새벽 그대는 떠났네.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이제 근심 걱정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게.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시게”라며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죽음을 애도했다. 앞서 노동당은 이날 오전 홈페이지를 통해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본인상을 알렸다.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는 이날 새벽 4시 30분께 숨을 거뒀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고 있으며 9살 아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빈소는 서울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0일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北 김정은 외조부의 제주 헛무덤 언론 보도 하루 만에 친족이 없애

    北 김정은 외조부의 제주 헛무덤 언론 보도 하루 만에 친족이 없애

    언론에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사라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외할아버지의 제주 ‘헛무덤’(점선·시신 없는 묘)은 친족이 없앤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김 제1위원장 외가의 가족묘지 가운데 외조부인 고경택의 헛무덤이 갑자기 사라졌다. 김 제1위원장 외가의 가족묘지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간 지 하루 만의 일이다. 고경택의 묘가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며 온갖 추측이 나돌았으나 고씨 친족 중 한 사람이 묘 표석과 묘 주변 경계석 등을 거둬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제주에 사는 친족이 언론의 관심 등에 부담을 느껴 옮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출신인 고경택은 김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의 아버지로, 가족묘지에는 고경택의 헛무덤을 비롯해 김 제1위원장의 외증조할아버지 고영옥의 묘 등 평장 묘 13기와 봉분이 있는 묘 1기가 조성돼 있었다. 고경택의 묘 표석에는 ‘1913년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9년 귀천하시어 봉아름에 영면하시다. 사정에 따라 허총을 만들다’라고 적혀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와 아들 여섯 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北 김정은 외할아버지 ‘제주 헛무덤’ 친족이 없애

    가족묘지 현장에서 사라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외할아버지의 제주 ‘헛무덤’(시신 없는 무덤)은 친족이 없앤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제주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고씨 친족 중 한 사람이 제주시 봉개동 탐라고씨 신성악파 흥상공계 가족묘지에서 김 제1위원장 생모인 고영희의 아버지 고경택(1913∼1999) 묘 표석과 묘 주변 경계석 등을 거둬가 헛무덤을 없앴다. 지난 28일 이곳에 김 제1위원장 외가 일가의 가족묘지가 있다는 보도가 나간 지 하루만이다. 애초 묘가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며 갖가지 추측이 나돌았으나 묘가 있던 자리가 주변 흙으로 평평하게 메워지고 평장 묘 부분만 사라져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된 점 등으로 미뤄 가족묘와 관계가 있는 일가친척이 옮겼을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한편 현장에서 사라진 고경택의 묘 표석에는 ‘1913년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9년 귀천하시어 봉아름에 영면하시다. 사정에 따라 허총을 만들다’라고 적혀 있었으며 아버지 고영옥의 이름과 아들 여섯 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확인중”이라며 “당사자가 언론 보도에 따른 신분 노출 등이 부담돼 옮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김정은 외가는 제주 사람…묘·기록 확보

    北 김정은 외가는 제주 사람…묘·기록 확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의 아버지 등 외가 일가의 가족묘지가 제주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고향은 제주시 조천읍이었다. 28일 제주시 봉개동 탐라고씨 신성악파 흥상공계 가족묘지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이곳에는 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고영희의 아버지)인 고경택(1913∼1999)의 ‘헛묘’(시신 없는 묘)를 비롯, 외증조할아버지 고영옥(1876∼1945)의 묘 등 평장 묘 13기와 봉분이 있는 묘 1기가 조성돼 있다. 묘지 앞에는 약 2m 높이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이 비석에는 1990년 3월 이 묘지가 조성됐다는 내용과 함께 조성 배경,이곳에 묻힌 일가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고경택의 묘에는 ‘1913년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9년 귀천하시어 봉아름에 영면하시다. 사정에 따라 허총(헛묘)을 만들다’라는 내용과 함께 아버지 고영옥의 이름과 아들 여섯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러나 고영희와 여동생인 고영숙의 이름은 가족묘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김 제1위원장의 외가 일가는 제주시 조천읍 출신인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고씨 족보에는 고경택이 영곡공파 중시조 31세손으로,1913년 8월 14일 태어났으며 청주 한씨 여성과 결혼했고 아들을 여섯명 낳은 것으로 적혀있다. 이밖에 고경택의 아버지인 고영옥이 ‘종사랑’ 벼슬을 했고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묻혔다는 내용과 고경택의 친형으로 큰아버지에 입양된 고경찬(1903년생)이 조천면장을 지낸 사실 등도 기록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베일 벗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 가보니

    [커버스토리] 베일 벗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 가보니

    우리나라 공공건축물로는 역대 최대의 예산(총 4840억원)이 투입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DDP)가 논란 속에 베일을 벗었다. DDP의 운영 주체인 서울디자인재단은 공식 개관을 70여일 앞둔 10일 내부 기물을 들이기 전의 온전한 공간을 언론에 공개하고 향후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3월 21일 개관 예정인 DDP는 세계 건축계의 핫 아이콘으로 꼽히는 이라크 출신의 영국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대지 면적 6만 2692㎡, 연면적 8만 6574㎡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각기 다른 모양의 알루미늄 외장 패널 4만 5133장이 사용된 건물 외관의 면적만 따지면 일반 축구장의 3.1배나 된다. 백종원 재단이사장은 “DDP는 ‘시민이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최고 가치로 삼아 디자인과 창조산업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DDP가 역사성을 무시한 채 들어선 건축물이라는 비난을 무마할 만큼 공공건축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재단 측의 구상대로 운영면에서 100% 자립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기이한 외관만큼이나 내부 공간의 생경함이 문제로 지적된다. 건물이 지하 3층, 지상 4층이라고는 하지만 비정형 건축물의 특성상 층간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거대한 공간의 동선이 끝없이 연결되다 보니 입구가 24개로 분산돼 있다. 재단 측은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간송미술관 소장품전을 기획하고 디자인스포츠전 등 개관 초기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기획전을 마련했다. 그러나 연간 300억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는 “DDP를 짓는 데 50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들었다지만 실제 땅값까지 계산한다면 1조원을 넘을 것”이라며 “운영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초대형 건물을 지으면서 역사성과 경제산업적 중요성을 무시하고 구체적 건물 활용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어마어마한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공간 배분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것이 자명하다”는 우려와 함께 “이제 와서 부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이라도 주변 지역의 역사성을 살리고, 패션지구의 산업적 맥락을 짚어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는 자산활용 계획과 공간 운용 방안을 세심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