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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무 LG 회장, 20일 오전 별세

    구본무 LG 회장, 20일 오전 별세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LG그룹은 이날 오전 9시 52분쯤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으며,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하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룹 관계자는 “고인은 1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평소 밝혔다”면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공개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 외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게 유족의 뜻”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대 총수’인 고인은 지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잇따라 졸업한 뒤 ㈜럭키에 입사했으며, 이후 럭키 유지총괄본부장에 이어 금성사 이사,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전무, 럭키금성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이밖에 LG상록재단 이사장과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LG프로야구 구단주 등도 지냈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으며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구 회장이 타계하면서 LG그룹 경영의 지휘봉은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쥐게 됐다.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2004년 고인의 양자로 입양된 구 상무는 다음달 29일 열릴 ㈜LG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계기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 상무는 그룹 지주회사인 ㈜LG의 하현회 부회장을 비롯한 6명의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에게 계열사별 현장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큰 틀의 경영 좌표를 제시하면서 신성장 사업 발굴에 주력할 전망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씨와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딸 연경·연수 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력자살 스위스행 호주 최고령 구달 박사 베토벤교향곡 들으며 영면

    조력자살 스위스행 호주 최고령 구달 박사 베토벤교향곡 들으며 영면

    “마지막 듣고 싶은 음악은 베토벤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진정제 혼합 정맥주사 밸브 스스로 열어 104세 생 마감안락사(조력자살)를 결심하고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세) 박사가 10일(현지시간) 오후 평화롭게 생을 마쳤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구달 박사는 이날 낮 12시 30분께 바젤의 라이프 사이클 클리닉이라는 기관에서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투여받고 생을 마감했다. 안락사를 돕는 기관인 ‘이터널 스피릿’의 창립자 필립 니슈케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구달 박사는 평온 속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부분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명한 생태학자인 구달 박사는 안락사를 금지하는 호주의 법을 피해 이달 2일 스위스로 출발했다. 스위스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는 9일 스위스에 도착하기 전 프랑스에 들러 가족을 만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구달 박사는 전날 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더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내일 삶을 끝낼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의료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답지 않게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고 마지막 순간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베토벤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꼽았다. 84세였던 1998년 운전면허가 취소되면서 구달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혼자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내 나이가 되면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점심때까지 앉아 있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약간 먹고 다시 앉아 있다.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올해 초에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에서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집에서 생을 마칠 수 있었다면 모두에게 편한 일이었겠지만 그러질 못했다”며 안락사를 금지하는 호주의 법률 체계를 비판하고 호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안락사 입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호주는 빅토리아주를 제외하고 다른 주는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빅토리아주 역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데 실제 시행은 내년 6월부터다. ‘이터널 스피릿’측은 구달 박사가 마지막 순간 진정제 등을 혼합한 정맥주사의 밸브를 스스로 열어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품위있게 죽고 싶다던 호주 104세 과학자 오늘 낮 편안히 영면

    품위있게 죽고 싶다던 호주 104세 과학자 오늘 낮 편안히 영면

    품위있게 죽고 싶다며 스위스로 떠났던 호주의 104세 과학자가 결국 세상을 떴다. 과학자로서 상당한 명성과 존경을 받았던 데이비드 구달이 10일 오후 12시 30분(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의 한 클리닉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편안히 생을 마쳤다고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돕는 시민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이 밝혔다. 생물학자이자 식물학자로서 상당한 업적을 남긴 그는 지난 2일 호주 서부 퍼스의 자택을 떠나 프랑스 친척을 만난 뒤 스위스로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만 보도됐다. 영국 BBC는 고인이 전날에도 취재진에게 “더 이상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내 나이에, 아니 나보다 적은 나이더라도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호주의 한 주에서도 조력 자살은 합법이지만 불치 환자에만 국한되고 있다. 그는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앓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비쳤다. 또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자신의 결심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쏟아질지 몰라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자신의 생일을 맞아 그는 “행복하지 않다. 죽고 싶다. 특별히 슬픈 일이 아니다. 정말 슬픈 것은 (스스로 마감하려는) 일이 방해받으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수많은 병사 구한 ‘디에페의 천사’ 아그네스 수녀님 104세로 타계

    수많은 병사 구한 ‘디에페의 천사’ 아그네스 수녀님 104세로 타계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희생될 뻔한 캐나다와 영국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 ‘디에페의 천사’로 불렸던 아그네스 마리 발루아 수녀가 10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몇몇 작품을 남길 정도로 아름다웠던 해변을 지닌 디에페에 1942년 8월 19일 연합군이 침투 작전을 펼쳤는데 낙하 지점을 잘못 잡아 6100여명의 병사들이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필이면 콘크리트 구조물에 의해 탈출로가 막힌 곳에 낙하했는데 10시간 만에 3367명이 목숨을 잃거나 독일군에 체포됐는데 대다수가 캐나다 병사들이었다. 1914년 루앙 센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수녀는 1936년 오거스틴 수녀회에 들어갔다. 간호사 수련을 받았던 그녀는 디에페 전투로 다치거나 죽은 병사들을 받은 이 수녀회 수녀 1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생전에 아그네스 수녀는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다”고 당시의 참상을 돌아봤다. 그녀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해변에서 다친 이들을 마을로 옮겨 정성껏 치료해 군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독일군 장교가 캐나다 병사를 향해 권총을 겨누자 가로막아서며 놔주라고 간청한 일로 유명했다.2010년 아그네스 수녀는 한 다친 병사로부터 어머니에게 받을 법한 마지막 키스를 해달라는 간청을 받아들였고 얼마 뒤 병사가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또 캐나다 병사가 자신의 잘라낸 어깨를 간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중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함께 정원에 묻은 일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캐나다군 대위로 퇴역한 팀 플레처는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병사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병사들을 사랑했다. 이른바 ‘우리 캐나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고 일간 내셔널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돌아봤다. 고인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병원에서 일하다 은퇴했다. 매년 디에페 전투 추모 행사에 참석하다가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뒀다. 1992년 프랑스 국가훈장 오데르 메릿을 수여했고, 4년 뒤 레종 도뇌르 기사 작위를, 1998년 캐나다의 메리토리우스 서비스 메달을 가슴에 달았다. 그녀의 죽음이 알려진 뒤 디에페 마을에는 조기가 계양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최은희라는 명작, 해피엔딩”

    “최은희라는 명작, 해피엔딩”

    남편 신상옥 감독 곁에 묻혀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원로배우 최은희가 92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하고 영면에 들었다. 그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인 남편 신상옥 감독 곁에 잠들게 됐다.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최은희의 발인식은 고인의 생전 뜻대로 소박하고 간소했다. 유족과 원로 영화인 등 100여명이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미사를 집전한 조욱현 토마스 신부는 “일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이제 죽음을 통해 출품된 것과 다름없다”며 “하느님이 선생님의 아름다운 작품을 크게 칭찬하고 큰 상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신부가 고인이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와 자활을 위한 시설인 성라자로마을을 후원하며 한센인들을 도운 선행에 대해 언급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있던 1970년대 초반 성라자로마을과 연이 닿았다. 영화계 인사들에게 성라자로마을을 알리며 후원을 독려한 그는 학생들과 함께 시설을 찾아 위문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장호 감독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원로배우 신영균·신성일 등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별세 후 각막 기증으로 주위를 또 한번 감동케 한 고인은 경기 안성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는 신 감독 곁에 묻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남편·아들 대통령 만든 ‘정치명가 大母’

    남편·아들 대통령 만든 ‘정치명가 大母’

    수수한 옷차림·가짜 진주목걸이 소박한 ‘국민 할머니’로 사랑받아 바버라 부시는 조지 H W 부시 미국 41대 대통령의 부인이자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의 어머니로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남편과 아들의 대통령 취임을 모두 지켜본 여성이다. 퍼스트레이디일 때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내조형’으로 이미지를 남겼고, 수수한 옷차림에 가짜 진주목걸이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면서 소박한 ‘국민 할머니’로 사랑받았다. 남편, 장남뿐만 아니라 작은아들 젭 부시도 전 플로리다주 주지사이자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로 성장하면서, 바버라는 미국 정치 명가를 일군 대모(大母)로도 불렸다.부시 가문의 대변인 짐 맥그래스는 17일(현지시간) 바버라의 영면을 알렸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미 주요 매체도 일제히 바버라의 일생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애도를 표했다.바버라는 1925년 뉴욕의 명문가인 ‘피어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16세였던 1941년 크리스마스 댄스 파티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나 1945년 1월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결혼했다. 올해 1월 결혼 73주년을 맞아 미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결혼 생활을 한 대통령 내외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백혈병으로 3살 때 세상을 떠난 로빈 부시를 포함해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뒀다. 손주 17명, 증손주 7명이 있다.바버라는 전형적인 내조형 퍼스트레이디로 꼽힌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사업과 정치를 도왔다. 1989년 1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영부인이 된 뒤에는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했다. NYT는 “그는 판단력이 빠르고 인기 있는 연설자로서 남편의 큰 정치적 동맹이자 자산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임기 초반 조지 H W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아래로 곤두박질쳤을 때도 바버라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했다. 아들 둘을 대통령, 주지사로 키웠을 만큼 자식 뒷바라지에는 더욱 적극적이었다. 평소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데 조심했지만 2016년 젭 부시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었을 때 “트럼프는 여성과 군대에 대해 끔찍한 말을 한다. 사람들이 왜 그를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공격하는 등 자식의 선거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남편 부시 전 대통령이 1981년부터 8년간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바버라는 문맹 퇴치 운동을 주도했다.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한 1989년에는 ‘바버라 부시 가족 독서교육 재단’을 설립했다. 미국인들은 새하얀 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수수한 옷차림을 즐기며, 가짜 진주목걸이를 자랑하는 바버라를 사랑했다. 남편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부시 행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하겠다”면서도 “난 결코 머리를 염색하거나 옷을 바꾸거나 살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는 등 외모에 대한 유쾌한 농담을 즐기며 미국인들에게 친근감을 안겼다. 1992년 1월 퍼스트레이디로서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문화재를 둘러보고 붓글씨로 ‘한미 우호, 임신 새해 바바라 부시’라는 한글 휘호를 남겼다.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어머니는 굉장한 영부인”이라면서 “어머니는 늘 우리가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했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웃게 하신 분”이라고 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와 함께 공동 성명을 내고 “바버라는 미국 가정의 가치를 수호한 사람”이라면서 “이 나라와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장례식은 오는 21일 오전 11시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 마틴 교회에서 열린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Barbara Bush 1925~2018 1925년 6월 8일 출생 / 1941년 조지 H W 부시와 교제 / 1945년 1월 6일 조지 H W 부시와 결혼 / 1946년 7월 6일 장남 조지 W 부시 출산 / 1989년 1월 20일 남편 미 41대 대통령 취임 / 1989~1993년 미 영부인 / 2001년 1월 20일 장남 미 43대 대통령 취임 / 2018년 4월 17일 사망
  • 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최은희씨의 가족은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마음의 고향’(194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성춘향’(1961) 등으로 김지미, 엄앵란 등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오른 최은희씨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거장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최은희씨는 1954년 결혼했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이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인은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이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씨는 1978년 1월 혼자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그리고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믿지 못할 재회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최은희씨는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 영화제 수상 기록이다.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다. 이 때 기회를 틈타 미국 대사관에 진입,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영면하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 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마데우스’ 포르만 감독 별세

    ‘아마데우스’ 포르만 감독 별세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등을 연출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이 별세했다. 86세.AFP 통신은 지난 13일(현지시간) 포르만 감독이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고 보도했다.1960년대 ‘체코 뉴웨이브’를 이끈 대표적 감독으로 꼽히는 포르만은 미국 영화계에서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2013년에는 영화계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감독 조합 공로상을 받았다. 1932년 체코에서 태어난 감독은 1940년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라하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초기작인 ‘블랙 피터’와 ‘금발머리 소녀의 사랑’은 1960년대 체코의 우울한 사회상을 담고 있다. 1971년 작인 ‘탈의’는 다수의 평론가에게 좋은 평가를 얻으며 그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자유를 제한하는 정신병원을 통해서 억압적인 체제를 비판한 1975년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그를 전 세계적인 유명 감독 반열에 올려놨다. 주인공 맥머피 역을 맡은 잭 니컬슨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 작품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했다. 1984년 연출한 ‘아마데우스’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바른 말글] 운명을 달리하다/손성진 논설주간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향년 90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어느 일간지의 인터넷판에 올라 있는 기사의 한 부분이다. ‘(사람이) 죽다’와 동의어로 쓰는 동사는 여러 개 있다. ‘사망하다’, ‘돌아가시다’, ‘별세하다’, ‘영면하다’ 등이다. ‘운명하다’라는 말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뜻하는 ‘운명’은 한자로 ‘運命’이라고 쓴다. 죽다라는 뜻의 ‘운명하다’ 속의 운명의 한자는 ‘殞(죽을 운)命(목숨 명)’이다. 뜻이 다르다. ‘殞命하다’를 ‘殞命을 달리하다’나 ‘運命을 달리하다’라고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죽다’의 완곡한 표현인 ‘유명(幽明ㆍ저승과 이승)을 달리하다(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다)’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유명’과 ‘운명’을 혼동한 것이다.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유족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눈물

    유족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눈물

    ‘잠들지 않는 남도’ 처음 합창 제주 전역에 첫 추모 사이렌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오늘은 너무 기쁜 날이다.”문재인 대통령이 3일 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등 4·3의 완전 해결을 약속하자 유족들과 제주 도민들은 ‘4·3 해결의 희망을 봤다’며 반겼다. 이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추념사 한마디 한마디에 유족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유족들은 “이젠 억울하게 쓰러져 간 희생자들도 편히 영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생후 8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은 고복자(72) 할머니는 “이날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일인데 살다 보니 추념식에서 4·3을 해결해 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들을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훔쳤다. 시아버지 등 일가족 4명을 잃은 윤순자(67·제주시)씨도 “반갑고 좋은 일”이라며 “부디 저세상에 계신 시아버님도 이날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기뻐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문 대통령이 4·3 유족들이 그토록 바라던 소망을 들어줬다”며 “앞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 등이 착실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날 국가 추념식에서는 유족들과 제주도립·시립합창단이 처음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했다. 4·3을 노래한 이 곡은 국가 추념식에서 불린 적이 없다. 2015년 67주년 추념식 때는 식전 행사에 이 곡을 합창하기로 했다가 행사를 며칠 앞두고 정부가 이를 취소해 유족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제주에 이주한 가수 이효리는 추념식 중간중간에 ‘바람의 집’(이종형), ‘생은 아물지 않는다’(이산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김수열) 등의 추모시를 낭독, 4·3의 아픔을 담담하게 전했다. 가수 이은미는 ‘찔레꽃’을 부르며 유족들을 아픔을 위로했다. 400여명이 희생당한 4·3 최대의 참극인 북촌리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4·3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렸던 소설가 현기영은 추모글을 낭독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 전역에서는 묵념 사이렌이 울려 퍼져 추념식장을 찾지 못한 도민들도 4·3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4·3 희생자 추모를 위해 추모 사이렌을 울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우주로 떠난 호킹, 76번의 종소리가 배웅하다

    우주로 떠난 호킹, 76번의 종소리가 배웅하다

    지난달 14일 타계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장례식이 31일(현지시간) 케임브리지대 그레이트 세인트메리 교회에서 엄수됐다. 그레이트 세인트메리 교회는 호킹 박사가 52년 넘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우주의 비밀을 파헤친 케임브리지대학 곤빌 앤드 캐이어스 칼리지 근처에 있다. 장례식은 유족과 지인, 제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치러졌다. 이날 호킹 박사의 친구인 영국 왕립천문학자 마틴 리즈 경과 호킹 박사의 자녀, 제자가 각각 추도연설을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호킹 박사 역을 맡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은 전도서를 낭독했다. 장례식에선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밤하늘 너머’가 연주되기도 했다. 세인트메리 교회는 그의 나이에 맞춰 76회 종을 울리며 영면을 기도했다. 장례식 후 리셉션은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열렸다. 호킹 박사의 유해는 오는 가을 추수감사 예배 중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다. 이곳에는 ‘선배 과학자’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과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묘가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편히 쉬세요”…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 영면

    “편히 쉬세요”…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 영면

    지난달 30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90) 할머니의 발인이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불교식 발인제는 가족과 친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됐다. 이후 수원 승화원 추모의 집에 안치된 안 할머니는 한 많은 생을 뒤로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안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가 1945년까지 위안부 피해를 봤다. 1946년 귀국한 안 할머니는 강원도와 대구 등에서 살다가 58세이던 1986년부터 수원에서 거주했다.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안 할머니는 2002년부터 본격적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다. 수원시는 할머니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할머니의 삶을 다룬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제작,지난 8일 공개하기도 했다. 안 할머니는 당시 영상에서 “억만금을 우리한테 준들 내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데,가해자(일본 정부)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당당하고,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올해 안 할머니와 1월 5일 임 모 할머니,2월 14일 김모 할머니 등 3명이 별세했다. 이제 등록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9명으로 줄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올 들어 벌써 세 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떠나보내게 되어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며 “여성가족부는 고(故) 안점순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분들의 상처치유와 편안한 노후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명예와 존엄회복을 위해 기념사업을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모든 국가에는 그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고 기리는 기념일이 있다. 추모와 기념은 곧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민족독립에 이어 6.25전쟁이란 참혹한 시련을 거쳐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대한민국에 광복절과 6.25전쟁 기념일이 있는 이유이다. 6.25전쟁 이후에도 60여 년간 남북 간에 수많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현재가 6.25전쟁의 종전이 아니라 휴전임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군사적 충돌 역시 당연히 기억되어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이고 국지적인 도발과 남북한 충돌은 도리어 우리의 기억을 무디게 한다.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불안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남북의 무장한 군인들이 마주보고 있는 상태이다. 남북한의 해상 경계를 가르는 NLL 중 도서로 이루어진 서해에서도 북한의 도발이 있었다. 함정을 이용한 전투와 일방적 공격, 민간지역에의 포격 등 도발의 양상도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권과 영해를 지키기 위해 55명의 군인들이 순국하였다. 정부는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를 지키기 위한 우리 군의 활동과 희생을 기려 2016년 국가기념일로 서해수호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안함 피격일에 맞추어 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정하였으며 금년 제3회 기념일은 오는 3월 23일이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55명의 순국 장병들이 영면해있는 대전현충원에서 중앙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지방청과 남부‧북부보훈지청이 공동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거행한다. 서해수호의 날은 비단 서해만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 지속된, 북한의 도발과 무력충돌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남북한의 무력충돌을 억제하고 평화공존으로 가는 미래지향적 관계는 국가수호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는 특정한 정권이나 시기를 초월하는 공통된 국가정체성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공헌과 희생이 더욱 기억되어야 한다. 국가 존립을 위해 공헌,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국민의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 별을 잃고, 별을 읽다

    별을 잃고, 별을 읽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지하 1층. 과학책을 진열하는 코너 가운데 하나인 ‘F-6’을 지나던 이들의 발길이 멈춘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사진과 함께 ‘Stephen Hawking, 스티븐 호킹의 역사’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사진 옆에는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글방)를 비롯한 그의 저서 6권의 표지가 나란히 실렸다. 안내판 아래쪽에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저서와 그의 이론을 소개하는 과학 서적들이 쌓여 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모(41)씨는 “서점에 왔다가 호킹 박사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생각나 돌아보다 이곳을 찾았다”면서 “불편한 몸에도 연구를 이어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가 주장했던 이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궁금해 책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F-6은 전날까지 ‘자연에서 배운다’란 이름의 코너였지만 영풍문고가 이날 급하게 교체했다. 영풍문고 마케팅팀 관계자는 “다른 지점에서도 바로 안내판을 만들어 기획 코너를 꾸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재고 서적들을 급하게 확보해 전국에 보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호킹 박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남긴 저작들이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서점·출판가가 분주해졌다. 호킹 박사 관련 책을 8권이나 낸 출판사 ‘까치글방’에는 이날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온·오프라인 서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출판사 관계자는 “서점들이 ‘기획전을 열고 싶다’며 책과 사진 등을 요청하고 있다”며 “우선 재고를 조사하고 상황을 봐서 관련 기획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온라인 서점들도 호재를 맞았다.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이날 호킹 박사의 저서 판매량은 전일인 13일 대비 무려 40배 이상 증가했다. 공현숙 인터파크도서 자연과 과학 MD는 “자연과 과학, 아동, 청소년 등 스티븐 호킹 관련 11종의 도서 판매량은 일 평균 4~5권 정도였는데 타계 당일인 14일 200권 이상 팔렸다”고 밝혔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글방)는 15일 인터파크도서 종합 베스트셀러 7위까지 뛰었다. 이 밖에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까치글방)와 ‘청소년을 위한 시간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도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서점들의 기획전도 활발해졌다. 교보문고는 타계 당일 발빠르게 교보 이북 홈페이지 검색창에 ‘스티븐 호킹, 영면에 들다’라는 키워드를 넣은 것에 이어 15일부터 서점 홈페이지에 ‘세계 물리학계의 큰별이 지다. 스티븐 호킹 별세’라는 문구와 사진을 넣은 배너를 전면 배치했다. 추모 댓글 달기와 함께 저서를 사면 별자리 포스터를 주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인터파크도서도 ‘물리학계의 큰별이 지다, 故 스티븐 호킹’ 추모 페이지를 마련했다. 도서 전문 콘텐츠 사이트 ‘북DB’에는 고인의 저서 소개 등을 담은 ‘이슈&스토리’도 게재했다. 박형욱 YES24 자연과학 MD는 “독자들이 호킹 박사의 과학적, 인간적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1100만권이 팔린 ‘시간의 역사’가 다소 어려워 쉽게 풀어쓴 책들을 많이 찾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지방시, 뮤즈 헵번 곁으로 떠나다

    지방시, 뮤즈 헵번 곁으로 떠나다

    소매 없는 검은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를 차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년) 속 오드리 헵번의 스타일은 우아함의 전형으로 불린다. 헵번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할리우드 여배우의 사랑을 받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지방시’의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가 지난 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91세.지방시의 오랜 동거인인 필리프 브네는 지방시가 잠을 자던 중 영면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방시는 보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51년 자신의 패션하우스를 열고 이듬해 프랑스 일류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를 기용해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했다. 지방시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이브 생 로랑,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함께 2차 대전 이후의 패션을 재정립한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는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여성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극대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헵번의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헵번은 1953년작 ‘사브리나’에서 몸에 딱 맞는 지방시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다시 이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했다. 정갈하면서 품위 있는 이 ‘리틀 블랙 드레스’는 지방시를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남았다. 헵번은 평소에도 지방시에게 영화 의상과 평상복 등의 제작을 맡기면서 40년간 지방시의 ‘뮤즈’로 활동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프랑스 패션 거장’ 지방시 별세…잠 자다 숨져

    ‘프랑스 패션 거장’ 지방시 별세…잠 자다 숨져

    프랑스 패션브랜드 ‘지방시’를 창립한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지방시의 오랜 동거인인 필리프 브네는 지방시가 지난 9일 잠을 자던 중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고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들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지방시는 1950∼1960년대 여성스럽고 시크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이름을 날렸다. 특히 명배우 오드리 헵번과의 오랜 인연은 지방시를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려줬다. 헵번도 지방시의 드레스로 패션 아이콘으로서 더 유명해졌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3년작 ‘사브리나’에서 헵번은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몸에 딱 맞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출연했고, 지방시는 이 영화의 상업적·비평적 성공에 힘입어 패션업계에서도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 헵번 외에도 재클린 케네디, 제인 폰다 등 여성 명사들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애용했다.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지방시는 파리의 순수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으며, 일찌감치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그가 설립한 지방시 패션 하우스는 “패션에 혁명을 일으킨 지방시는 반세기 넘게 파리의 엘레강스함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면서 지방시를 애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레이엄 목사의 ‘마지막 십자군 운동’

    그레이엄 목사의 ‘마지막 십자군 운동’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거목’이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이 지난 2일(현지시간) 고향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엄수됐다. 100세.이날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를 비롯해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각 종단 지도자 등 각계 인사 20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한 추도 행사로 진행돼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추도사를 하지 않았다.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도 참석해 조사를 낭독했다. 김 목사는 “이 땅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심에, 전 세계 수백만명의 기독교인을 대신해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1973년 그레이엄 목사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복음 집회를 했을 때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레이엄 목사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 왔다. 현지 언론은 이날 장례식을 “빌리 그레이엄의 마지막 십자군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고인의 복음주의 전도 활동이 ‘십자군 운동’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장례식은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밖에 설치된 약 2601㎡ 크기의 흰색 천막에서 진행됐다. 이 천막은 그레이엄 목사가 목회자로서 대중적 명성을 얻는 기폭제가 된 1949년 LA 십자군 운동 때 복음 전도의 무대가 됐던 천막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 대교구의 티머시 돌런 추기경은 “그레이엄은 무엇이 미국 기독교의 최선인지 몸으로 보여 준 산증인”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복음주의 교계의 유명 목사인 릭 워런은 “그레이엄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인이었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포토] ‘시선은 다른 곳에’… 냉랭한 분위기의 트럼프 대통령 내외

    [포토] ‘시선은 다른 곳에’… 냉랭한 분위기의 트럼프 대통령 내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가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21일 영면한 고인의 시신은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에 있다가 이날부터 이틀간 의회로 옮겨져 조문객을 맞는다. 장례식은 내달 2일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에서 엄수된다. 사진=AFP·로이터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년만에… 김훈 중위 넋 달래다

    20년만에… 김훈 중위 넋 달래다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계초소(GP)에서 총상을 입고 의문사한 김훈(당시 25세) 중위의 20주기 추모 미사가 22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추모 미사는 지난해 순직을 인정받고 국가유공자가 돼 국립묘지에 영면한 김 중위의 넋을 달래는 자리였다.미사에는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6·육사 21기·예비역 중장)씨와 어머니 신선범씨 등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해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추기경이 시국사건에 대해 추모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1987년 5월 18일 김수환 추기경이 박종철 열사의 추모 미사를 봉헌한 이후 31년 만이다. 염 추기경은 “김 중위 사건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유족의 의견이 무시되면서 유족은 또 다른 상처를 입었다”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목숨을 잃은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중위 유족뿐 아니라 군에서 아들을 잃은 모든 부모님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중위의 어머니는 미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아들을 위해 와주셔서 감사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오늘에야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며 울먹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친구들 구하고 숨진 왕… 美육사 명예생도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참사 당시 친구들을 지키려다가 숨진 주니어 학군단(ROTC) 대원 피터 왕(사진ㆍ15)이 미 육군사관학교 명예생도가 됐다. 생전에 왕의 꿈은 사관생도가 되는 것이었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미 웨스트포인트에 위치한 육사는 “왕은 육사에 입교하겠다는 꿈을 이뤘다. 그의 영웅적 행동을 기려 사후에 입교 자격을 줬다”고 밝혔다. 왕은 주니어 학군단 단복을 입은 채 영면했다. 왕은 총격사건 당시 친구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문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의 친구 켈시 프렌드는 CNN에 “왕은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았지만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AFP는 육사가 사후 입교를 허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미군은 왕을 포함해 참사 당시 친구들을 구하려 했던 주니어 학군단 대원 알레이나 페티, 마틴 더크 등 3명에게 영웅 메달을 전했다. 미군은 총격 당시 희생된 주니어 학군단 대원과 영웅적인 행동으로 급우의 목숨을 지켜낸 아이들의 사연을 추가로 발굴해 영웅 메달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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