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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거리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지난 27일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국회장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시민들과 동료 의원, 각계 인사 등 2000여명이 모여 고인과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런데 이날 국회도서관 앞 도로변에서 19명의 노동자들이 땡볕에서 서 있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 정현관 앞으로 들어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고인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국회 앞 도로변에 나와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이 그들을 보듬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2016년 당시 국회사무처는 본청 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사무실과 휴게실을 내주면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고인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다행히 국회의원회관 9층으로 휴게실과 사무실을 옮겼지만 청소노동자들은 고인의 한마디를 잊을 수 없었다.고인의 과거 ‘명연설’에 등장한 ‘6411번 버스’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중략) 이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중략)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은 투명인간입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호소였다. 그 호소가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라면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라고 애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길에 연세대 장례식장이 있다. 운전기사가 “운구하나 보다”고 하는 말이 들려 버스 커튼을 열어보니 취재진과 관광버스, 검은 장례식 차량 등이 잔뜩 몰려있다. 문상을 가려고 4일째 검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겨우 조문했다.오늘, 2018년 7월 27일은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발인날이다. 오늘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葬)도 언론으로 생방송됐다.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자리를 지킨 동료 국회의원들과 시민 등 2000여 명이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조사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노회찬을 잃은 것은 (중략)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애도하는데, 눈물이 핑돈다. 2004년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입된 정당투표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가 8명이 대거 국회에 처음으로 입성했고, 비례대표 8번이던 노회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노 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은 없다. 2005년 국회 출입기자일때 점심 먹으러 간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반가워하며 “언제 만나자”는 식의 인사가 전부였다. 2011년인가 대한문 앞에서 심상정 의원과 노 의원은 쌍용차 노동자 복직관련해 단식투쟁했는데, 그때도 그냥 천막을 지나치면서 ‘열심히 하신다’며 혼자서 좋아하던 정도였다. 물론 그는 내가 아끼는 후배의 외삼촌이었다. 2013년부터 늘 그의 활동을 더 눈여겨 봤다.노회찬 의원은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진보정치를 대중화한 촌철살인의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강자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와 진보를 가치를 지켜온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그 존재를 입증한다. 고인도 그러했다. 7년의 의정활동 기간에 1029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3선 의원이지만, 17대 4년하고 18대 낙선하고, 19대 ‘삼성X파일’ 폭로가 유죄가 돼 겨우 9개월, 20대 26개월에 불과했지만, 왕성한 의정활동이었다. 2005년 호주제 폐지법를 시작으로, 차별금지법, 대체복무법, 하도급거래 공정화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등 여성과 장애인, 노동자 등 소수자를 위한 입법에 앞장 섰다.‘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을 아껴달라’는 노회찬의 유언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회의원 6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 정의당의 지지율을 11%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제1야당으로 국회의원 114명(탈당계 제출의원 2명 포함)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11%와 똑같은 지지율이다. 추모 열기가 여전할 8월 첫째 주의 여론조사는 정의당이 한국당을 제치는 골든 크로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 의원의 비통한 죽음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의당 당원에 가입하고 정치 후원금도 내고 있다.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원할 생각을 못했다는 한탄과 함께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의 마음을 행동하는 것이다. 6·13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조짐처럼 수구가 몰락하고 중도와 진보가 확대하는 정치지형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겠다. 현역의원과 거대정당에 유리한 현행 정치자금법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노회찬도 지키지 못한 정치자금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금권정치와 부정부패를 가까스로 막아온 현 제도를 개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2004년 1억 5000억원에 묶어놓은 후원금 한도를 14년이 지난 만큼 물가상승분이라도 반영해 상향조정해야 한다. 원외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들이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현행 선거 120일 전에서 1년 안팎으로 확대해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에 배분하는 국고보조금을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에 50%를 지급하고 남은 50%로 의원 수 등으로 나누는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대신 회계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노회찬의 비극’을 보면서, 큰일과 작은 일을 나눠 사안별로 비판의 경중을 가리는 건설적인 비판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인이 2016년 경기고 동창에게 받은 4000만원은 후원회를 통하지 않은만큼 불법정치자금이 분명하다. ‘드루킹 특검’에서 이를 거론했을 때 노 의원은 ‘안받았다’며 거짓말도 했다. 삼성이 검찰에 건넨 뇌물을 폭로한 ‘삼성X파일’로 의원직까지 상실해 청렴하고 도덕적인 정치인으로 평판이 높았던 노회찬이었다. 만약 노 의원이 고백하고 사과했다면 과연 국민은 그를 용서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비난여론이 태풍처럼 불어 그와 정의당을 초토화했을 것이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정치비판 문화에서는 양심적인 정치인을 지키지 못하고, ‘방탄국회’나 일삼는 후안무치 형 정치인만 국회에 남기게 될 것이다. 수천만원 불법정치자금에 몸을 던지는 양심적인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수천억원의 부정부패을 비난하는 여론에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염치없는 정치인이 공존하는 사회가 한국이다. 잘못의 수준에 맞춰 비판하고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비판문화도 개선되길 희망한다.노회찬 의원! 영면하시길.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노회찬 영면]차마 보지 못하는…

    [노회찬 영면]차마 보지 못하는…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의 장례 마지막 날인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고인의 발인식에서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2018.7.27 연합뉴스
  • 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 엄수…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

    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 엄수…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앞에서 엄수된다. 국회장(葬)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의 영결사 후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 금속노동자 김호규 씨가 조사를 낭독한다. 이후 노 의원의 생전 영상이 상영되고, 노 의원의 큰 조카 노선덕 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다. 유족과 조문객의 헌화와 분향도 이어질 예정이다. 영결식이 끝나면 고인은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포털 댓글 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드루킹’ 김모(49)씨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노 의원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묻던 시대 ‘회색인’으로 자유 찾은 최인훈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묻던 시대 ‘회색인’으로 자유 찾은 최인훈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이 지난 23일 타계했다. 첫 문장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만으로도 시대의 분위기를 오롯이 드러낸 ‘광장’은 남도 북도, 좌도 우도 선택할 수 없었던 ‘이명준’의 고뇌를 통해 지금도 유효한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선생은 등단 이후 소설, 희곡, 평론, 에세이 등을 시시때때로 발표한 성실한 작가였고, 서울예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자취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선생은 오랫동안 ‘광장’의 후광에 가려 있었다. ‘광장’도 그렇지만 ‘회색인’이야말로 ‘인간’ 최인훈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배경은 4·19 직전, 정확하게는 1958년 가을부터 1959년 여름까지로, 소설 쓰는 청년 독고준은 실상 작가 자신이다. 독고준의 주변을 맴도는 김학은 급진적인 행동을 통해서라도 사회 변혁을 이뤄 내야 한다고 믿는 정치학도다. 그런 김학의 열정이 독고준은 버겁기만 하다. 김학은 ‘갇힌 세대’ 동인으로 독고준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그에게 ‘갇힌 세대’는 제호 그대로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일 뿐이다. 현호성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헌신짝보다 못하고, 권력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는 누구보다 빠르다. 뭐든 극단으로 치닫는 주변 인물들을 보며 독고준은 몸서리친다. 공상과 상상을 오가는 사이 독고준은 자신이 시대적 이데올로기, 더더욱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간임을 발견한다. 선생은 ‘회색인’을 두고 “통과의례 규정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어떤 원시인 젊은이의 공방(空房)의 기록”이라고 회상한 바 있는데, 그 원시인 젊은이가 바로 독고준이자 최인훈인 셈이다. 독고준은 경계에 선 인물이었다. 이데올로기의 덫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끝없이 사유의 거리를 활보했다. 외로웠지만 자유로웠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지만, 당시 ‘회색인’은 독고준 혹은 최인훈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경험에 이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끝이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양 극단의 머리를 차지한 사람들을 빼고는, 이 땅을 살아간 모든 이들이 회색인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충돌하는 세계사에서 우리는 주연이 아닌 한낱 엑스트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시대는 암울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물음이 오히려 정당한 시절이었다. 그 안에 갇힌 독고준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은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극단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해야만 했던 시대정신을 위배하고 독고준은 스스로에게 침잠한다. 출구가 어디인지, 아드리아네의 실이 무엇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에 그는 낡은 단어지만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를 찾아 나선다. 시대에 대한 냉소라고 하기보다 초월, 아니 범인(凡人)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일 터.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침잠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 혹은 형태가 무엇인지를 묻는, 어쩌면 최인훈은 20세기 중반을 살면서 21세기적 가치관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광장’의 이명준이, ‘회색인’의 독고준이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을 생각한다. 선생이 명쾌하게 말하지 않고 떠나셨으니 다시 작품을 통해 궁구할 뿐이다. 이데올로기가 충돌할 리 없는 그곳에서 선생이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박중훈, 故 노회찬 의원 추모제 추도사 “그리움 점점 커질 것 같다”[전문]

    박중훈, 故 노회찬 의원 추모제 추도사 “그리움 점점 커질 것 같다”[전문]

    배우 박중훈이 故 노회찬 의원 추모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26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도식에 배우 박중훈이 참석했다. 박중훈은 생전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노 의원 마지막 길에 진심이 담긴 말을 전했다. 박중훈은 이날 추도식에서 “저는 노회찬 의원님을 유권자이자 팬으로 알게 됐다. 14년 전 지인 소개로 알았다. 형님, 아우 하면서 서로 잘 지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평소 의원님이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 잘하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하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쓰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며 “그중에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제게 일러줬고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박중훈은 “제가 노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 인생을 던져서였다”며 “수년 전 같이 선거운동을 하다 너무 과로하시는 것 같아 ‘형님 좀 쉬시죠, 쉬시고 하시죠’ 했더니 그 와중에도 웃으시면서 ‘아우,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된 다음에 충전하는 걸세. 나는 유권자 여러분에게 내 휴대폰 배터리를 모두 쓰고 싶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장 최근에 뵌 것이 1월이었다. 지인과 함께 소주 한잔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형님 왜 이렇게 잘 생기고 멋있어요’ 했더니 껄껄 웃으시며 ‘내가 원래 멋있고 잘생겼어’ 하시면서 웃어넘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게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다”고 털어놨다. 박중훈은 “이렇게 여유롭게 농담은 던지지만 혼자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메인다”며 “마지막으로 형님께 한마디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형님 저 중훈이에요. 듣고 계시죠?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더 절망스러운 건 이 그리움이 점점 더 커질 것 같아요. 형님 이러시면 안되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이 자리 모든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라며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한편 故 노회찬 의원 추도식에는 유가족을 포함해 정의당 관계자, 유시민 작가, 배우 박중훈, 일반 시민 등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내일(27일) 오전 10시에는 국회의사당 청현관(본청) 앞에서 故 노회찬 의원 영결식이 진행된다. 이하 배우 박중훈 추모제 추도사 전문 저는 노회찬 의원님을 유권자이자 팬으로 알았습니다. 14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알았습니다. 형님, 아우하면서 서로 잘 지냈어요. 평소에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을 잘하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하고, 말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쓰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일러주셨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서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 일생을 던져서였습니다. 수년 전 같이 선거운동을 하다 너무 과로하시는 것 같아 ‘형님 좀 쉬시죠, 쉬시고 하시죠’ 했더니 그 와중에도 웃으시면서 ‘아우,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된 다음에 충전하는 걸세. 나는 유권자 여러분에게 내 휴대폰 배터리를 모두 쓰고싶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신 적도 많았지만 누가봐도 되지도 않을, 이기지 않을 선거에서 만나서 말씀 드리면 ‘아우, 나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진적이 없다네.’ 근데 진 적 많았거든요. 얼마전 가장 최근에 뵌 것이 1월, 지인과 함께 소주 한잔 했습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형님 왜이렇게 잘 생기시고 멋있어요’ 했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농담으로 받아주시며 ‘내가 원래 멋있고 잘생겼어’ 하시면서 여유롭게 웃어넘기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렇게 여유롭게 농담을 던지지만, 혼자서 외롭고 힘든시간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메입니다. 제가 형님에게 문자를 보낸적이 있어요. 길지 않은 문자였는데 ‘형님 오랜만입니다. 전 형님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마지막으로 형님께 한 말씀 드리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저 중훈이에요. 듣고 계시죠?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더 절망스러운건 이 그리움이 점점 더 커질것같아요. 형님 이러시면 안돼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이자리 모든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故 노회찬 의원 애도 물결...김제동·박중훈·손석희·김구라도 빈소 조문

    故 노회찬 의원 애도 물결...김제동·박중훈·손석희·김구라도 빈소 조문

    방송인 김구라, 김제동, 배우 박중훈, 손석희 JTBC 앵커 등이 故 노회찬 의원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24일 방송인 김제동과 배우 박중훈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를 찾았다.김제동은 이날 침통한 표정으로 나타나 한참동안 고개를 떨군 채 있었다. 고인의 영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유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제동은 이날 빈소를 지킨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같은 날 배우 박중훈도 故 노회찬 의원을 조문했다. 박중훈은 고인이 된 노 의원과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박중훈은 빈소를 찾기 전 SNS를 통해 “어제, 오늘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프다. 지금 상가에 문상하러 간다”며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난 것에 비통함을 내비쳤다. 그는 “회찬 형님, 정말 좋은 사람,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나하고도 참 연이 깊은 형님이다. 부드럽고 소탈하고 겸양의 지식인이자 신념이 강한 정의파 형님. 내 가슴속 깊이 늘 자리하고 계신 형님과 이제 더 이상 소주 한 잔 나누면서 웃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이 많이 슬프고 아프다. 형님. 부디 편하게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마음을 전했다.한편 이날 JTBC ‘뉴스룸’ 앵커 손석희도 방송을 마치고 고인을 찾았다. 손석희는 이날 ‘뉴스룸’에서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내용으로 故 노회찬 의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생방송을 마치고는 직접 빈소를 찾았다.JTBC ‘썰전’으로 인연을 맺은 방송인 김구라도 비보가 전해진 23일 유시민 작가, 박형준 교수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故 노회찬 의원 빈소는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이다. 사진=연합뉴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혜원, 노회찬 비꼰 곽상도 의원 향해 “인간 탈 쓴 악마 아닐까”

    손혜원, 노회찬 비꼰 곽상도 의원 향해 “인간 탈 쓴 악마 아닐까”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을 놓고 ‘진보 정치인의 이중성’이라고 손가락질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을 향해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분, 혹시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아닐까 의심해 본다”라고 비판했다. 손혜원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곽상도 “노회찬, 이중성 드러내도 무방한 그곳에서 영면하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처럼 밝혔다. 곽상도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여야 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서도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적 없다’고 하더니 유서에서는 돈을 받았다고 했다”면서 “원내대표로서 드루킹 특검법안을 적극 반대한 모습에서 진보정치인의 이중성을 본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그 곳에서 영면하시기 바란다”며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곽상도 의원은 “진보정치의 이러한 이중적인 행태는 결국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수단은 상관없다는 목표 지상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서 “좌파 진영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언행 불일치 등의 이중적인 모습을 국민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곽상도 의원은 해당 글로 논란이 커지자 글을 삭제했다. 손혜원 의원이 곽상도 의원을 향해 쓴 비판글도 현재 볼 수 없는 상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魯후원회장이었던 조국, 유족 붙잡고 통곡… 손학규·유승민·서청원 野 인사들도 “비통”

    魯후원회장이었던 조국, 유족 붙잡고 통곡… 손학규·유승민·서청원 野 인사들도 “비통”

    곽상도 “진보정치인 이중성” 발언 논란 조원진 보좌관, 잔치국수 사진 게재 사과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장례 이틀째인 24일에도 서울 신촌 연세 세브란스병원 빈소에는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정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슬픔에 빠진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윤소하, 김종대, 추혜선 의원이 유족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심 의원은 페이스북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 하루가 갔다”고 했고, 이 대표는 “(고인이) 당부한 대로 ‘멈추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 슬픔을 이겨내자”고 썼다. 오전에 빈소를 찾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 의원에 대해 “정치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참 사람냄새가 나고 향기 있는 삶을 사신 분”이라며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목숨을 끊는다는 결심을 말릴 수 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고인은) 특검법에 따른 수사 대상도 아닌데 왜 노 의원을 수사 선상에 올려서 이런저런 내용을 흘리며 모욕을 줬는지 진짜 이해할 수 없다”며 “특검이 정식으로 사과할 사안”이라고 일갈했다. 2012년부터 노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고, 결국 고인의 부인인 김지선씨를 붙잡고 오열했다. 조 수석은 심정을 묻자 “말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빈소를 떠났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우리 사회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정치를 했던 것 아닌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의당과 함께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했던 민주평화당에선 박지원, 김경진 의원과 정대철 상임고문이 각각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한국당 김정훈, 최교일, 강효상, 김현아, 김선동 의원, 무소속 서청원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분”이라고 빈소에서 탄식했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지상욱 의원과 유승민 전 대표도 고인을 추모했다. 정의당은 오후 5시까지 5000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원내대표로서 드루킹 특검법안을 적극 반대한 모습에서 진보정치인의 이중성을 본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그곳에서 영면하시기 바란다”는 애도의 글을 올린 후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의 보좌관 정모씨는 전날 “잔치국수 드디어 먹었다. 매년 7월 23일을 좌파척결 기념일로 지정하자”는 글을 올려 고인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처벌해달라는 글까지 올라오자 정 보좌관은 결국 사과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곽상도 “진보정치의 이중성” 발언에 노회찬 비서관 분노

    곽상도 “진보정치의 이중성” 발언에 노회찬 비서관 분노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을 두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보 정치인의 이중성”이라고 비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24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충격적인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애도의 문장으로 글을 열었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서도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적 없다’고 하더니 유서에서는 돈을 받았다고 했다”면서 “원내대표로서 드루킹 특검법안을 적극 반대한 모습에서 진보정치인의 이중성을 본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그 곳에서 영면하시기 바란다”며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불법자금과 이중성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면서 “2003년 12월 당시 노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 불법 자금의 10%가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약속했는데 10%를 넘었음에도 사퇴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당시 시세 1300억원의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했지만, ‘노무현 정당’은 세비를 모아 갚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곽상도 의원은 “진보정치의 이러한 이중적인 행태는 결국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수단은 상관없다는 목표 지상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서 “좌파 진영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언행 불일치 등의 이중적인 모습을 국민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종철 노회찬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곽상도 의원의 해당 글을 공유하면서 “한국당 의원들 당신들 주변에 4000만원 받은 것 때문에 괴로워서 자살한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내 입을 닫겠다”면서 “욕을 해주고 싶어도 상 중이라 참는다”며 분노했다. 앞서 23일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의 보좌관인 정모씨도 페이스북에 잔치국수 사진을 올리며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조롱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문을 올렸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새 교황 알린 토랑 추기경 선종

    새 교황 알린 토랑 추기경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을 제일 먼저 세계에 공표하고, 이슬람과의 대화에 노력했던 장 루이 토랑 추기경이 75세로 선종했다.교황청은 지난 6일(현지시간) 토랑 추기경이 미국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온 토랑 추기경은 치료차 미국에 머물러 왔다. 토랑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등장해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라틴어 구절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을 낭독한 인물이다.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평화에 역행하는 범죄’라고 비판했다. 2007년부터는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을 맡아 가톨릭과 다른 종교, 특히 이슬람교와의 대화와 화해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지난 4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종교와 문화가 폭력과 극단주의·테러리즘을 몰아내야 하며, 전 세계가 안정과 안전을 이루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캣츠’ ‘오페라의 유령’… 전설적 안무가 질리언 린 별세

    ‘캣츠’ ‘오페라의 유령’… 전설적 안무가 질리언 린 별세

    일곱 살 린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녀는 학습 부적응자로 찍혔다. 수업 시간마다 안절부절못하며 정서 불안을 드러냈고 성적은 바닥이었다. 담임 교사는 린을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통보했다.린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다. 린과 대화를 나눈 의사는 소녀를 라디오를 켜둔 방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복도 창문을 통해 지켜봤다. 잠시 후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소녀는 온 방을 돌며 춤을 추고 발을 굴렀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아이는 춤에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게 한 게 아이에게 큰 고통이었을 거예요.” 세계 4대 뮤지컬인 ‘캣츠’,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를 창조한 금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질리언 린의 어린 시절 얘기다. 지금으로 치면 그녀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이었다. 지난 2014년 ‘TED’에 소개된 이 일화를 통해 린은 ADHD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깬 대표적 사례가 됐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의 별’로 불린 질리언 린이 지난 1일(현지시간) 92세로 별세했다. 남편인 배우 피터 랜드는 트위터에 “일요일 저녁 런던 프린세스 그레이스 병원에서 린이 영면했다”고 알렸다. 가디언은 2일 “그리자벨라와 매캐비티 등 캣츠 스타들의 춤의 창시자가 별세했다”고 전했고 인디펜던트는 “웨스트엔드 뮤지컬에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을 남겼다”고 평했다. 린은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걸작으로 1981년 초연된 캣츠와 1986년 초연작 오페라의 유령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주역이다. 현재까지도 두 작품의 오리지널 안무는 거의 바뀐 게 없다. 지난달 재개관된 캣츠의 초연 무대인 뉴런던 시어터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질리언 린 시어터’로 명명됐다. 1926년 런던에서 태어난 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발레리나로 활동하며 로열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를 지냈고 이후 뮤지컬 안무가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녀는 2013년 올리비에 어워드 평생공로상을, 이듬해 대영제국훈장과 함께 ‘데임’(Dame) 기사작위를 받았다. 로이드 웨버는 트위터에 “세 세대에 걸쳐 영국 뮤지컬은 그녀에게 큰 빚을 졌다”고 애도했다.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들은 이날 저녁 7시 일제히 조명을 소등하며 린을 기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말빛 발견]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경우 어문팀장

    ‘죽었다’, ‘사망하다’는 감정이나 배려 없이 죽음을 알린다. 죽은 이와 별 관계가 없을 때 주로 쓴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있다면 ‘돌아가시다’, ‘작고하다’, ‘운명하다’, ‘영면하다’처럼 둘러서 말한다.‘운명하다’는 ‘목숨이 끊어지다’, ‘영면하다’는 ‘영원히 잠든다’는 의미를 지녔다. 비유적인 ‘영면하다’가 더 완곡하게 들린다. ‘작고하다’는 ‘고인이 됐다’는 뜻으로 ‘돌아가시다’처럼 죽은 이를 높인다. ‘별세’도 자주 보이는 높임말이다. 신문 부음란에도 흔하다.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다. ‘궂기다’도 ‘윗사람이 죽다’는 말이지만, 흔치는 않다. ‘별세’ 다음에는 ‘타계’가 낯익게 등장한다. ‘인간계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귀인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있다. 예전의 우리는 귀인이 죽었을 때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서거’는 ‘죽어서 세상을 떠남’이라는 뜻이지만, ‘타계’보다 더 높이는 말이 됐다. 대통령이나 교황 같은 이들이 죽었을 때 주로 ‘서거’라고 한다. 특정인의 죽음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사람마다 그의 죽음을 다르게 말한다. 누구에게는 죽음이거나 사망이고, 누구에게는 별세, 누구에게는 타계, 누구에게는 서거다. 김종필 전 총리의 죽음도 이렇게 다 달랐다. 언론의 눈은 어디에 있어야 했을까. 언론은 주로 별세, 타계라고 했다. wlee@seoul.co.kr
  • 영욕의 2인자, 고향 부인 옆에 영면하다

    영욕의 2인자, 고향 부인 옆에 영면하다

    전·현직 정치인 등 250여명 참석 이한동 “자유의 오늘 있게 한 분” 화장 후 부여 가족묘원에 안장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다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7일 그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에 안장됐다. 이곳은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2015년 잠든 곳이다. 가족묘원으로 떠나기 전 김 전 총리는 모교인 충남 공주고등학교에서 밴드부의 교가 연주 속에 동문과 주민 등 1000여명으로부터 마지막 인사를 받았다. 가족묘원에서는 김 전 총리를 따랐던 많은 후배 정치인들과 전·현직 부여군수, 종친회원 등 수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식이 열렸다. ‘영원한 2인자’로 불리는 그의 삶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지만 안장식에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총리는 항상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같은 분이었다”며 “생전에 ‘소이부답’을 언급하셨듯 상대방이 기분 나쁜 말과 행동을 해도 항상 웃음으로 대신하던 모습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 전 총리의 유골함은 사각형 돌 정자의 지붕 아래 가로세로 1.5m 안팎의 사각 석조함에 안치됐다. 석조함에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김 전 총리 아내의 유골함이 들어 있다. 김 전 총리는 생전에 부인 곁에 잠들고 싶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앞서 아산병원에서 열렸다. 영결식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한국당 정우택·정진석·안상수 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위원장인 이 전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김종필 총재는 우리가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고 있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 민주화가 싹트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아들인 나카소네 히로부미 참의원이 대독한 조사에서 “전후 혼란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국이 부흥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책을 맡으시며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지역축제 초청가수 ‘0순위’ ...“청정밴드 고정팬도 많아요“

    지역축제 초청가수 ‘0순위’ ...“청정밴드 고정팬도 많아요“

    “오늘을 기다린 우리의 멀고 먼 지난 날들 반쪽이 반쪽을 만나서 완전한 하나를 이루었네 ...에헤라 데헤라 에헤라 우리들은 하나로세...” ~♪ ♪ ~♪ ♪♬ ~♪ ♪~ 업무에 충실하고 시민을 위해 봉사하면서 일과 후 자투리 시간에 신명나게 공연을 준비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 여주시청 공무원들로 구성된 동아리 ‘청정밴드’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결성 11주년을 맞는 ‘청정밴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즐기며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두린다. 새로운 곡을 선정해 연주할 때에는 몇 번이고 반복 연습하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려 노력한다. 어니언스의 ‘연’ 김광석의 ‘변해가네’ 강산에의 ‘One’ 등이 그룹 청정밴드의 주요 레퍼토리다. 흥에 겨워 기타 반주에 드럼 두두리며 노래를 하면 어느덧 하나가 된다.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한방에 날아간다. 청정밴드가 탄생하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과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들이 6인조로 시작했다. 회원은 꾸준히 늘어 11명이다. 9인조 밴드를 구성하고 있는데 보컬 2명, 기타 3명, 베이스기타 1명, 건반 2명, 드럼 1명 등 이며 모두들 프로급 수준을 갖추었다. 청정밴드라는 밴드명은 경기 동부의 청정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고, 세종대왕이 영면한 고장이자, 남한강 맑은 물 여주쌀이 유명한 고장에서 비롯해 지었다. 2008년 제천한방축제 1회 직장인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2016년 인사혁신처에서 주최한 10회 공무원음악대전에 참가하여 단체부문 55개팀 중 동상(밴드단체부문 2위)을 차지했고 지난해 2017년에도 옥천묘목축제 1회 묘목전국직장인밴드 경연대회에서 인기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 받았다 . 청정밴드는 지역에서 이름난 밴드다. 크고 작은 지역축제가 열릴 때마다 초청가수 ‘0순위’다. 평소 갈고 닦은 연주실력을 선보이고 기쁨을 선사한다. 여주의 최대 축제인 도자기축제는 물론이고 경기도의 10대 축제로 선정 된 오곡나루 축제와 금사 참외축제, 여주 산북 품실문화축제 등에서 멋진 공연으로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행복을 전해 준다. 청정밴드의 혼이 담긴 연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금세 이들이 뿜어낸 열정에 녹아든다. 그리고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된다. 연말연시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도 펼친다.열정으로 가득한 청정밴드지만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밴드를 결성했지만 음악실이 여의치 않아 여주시에서 관리하는 세종국악당 무대 뒤 공간에서 처음으로 연습을 시작했으나 여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하는 수 없이 외곽의 건설회사 자재창고를 임대해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지역 한적한 콘테이너 박스를 얻어 사용해 보기도 하고, 개인 건물을 무상 임대해 사용했다. 또 주택가 소음 제기 민원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그 기간이 10년을 넘는다. 고생하던 차에 한 회원이 소유하고 있던 농막용 콘테이너 박스를 제공해 음악실을 만들어 봤지만 비좁은 공간은 여전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습에 몰두했다. 마침내 회원들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콘테이너 박스 2개를 주문 제작해 구입하고 확장하기에 이른다. 여주에서 제일 환경이 우수한 이들만의 음악실이 지난 2017년 11월에 만들어졌다. 음악실 다운 음악실을 갖추어 다른 밴드들의 부러움을 사고있다. 아주 멋진 음악실을 얻은 청정밴드는 굵은 희망 땀방울을 흘리며 행복을 충전하고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을 즐기고 있다. 유광복 회장은 “청정밴드는 여주에선 이름난 밴드다. 지역 축제에 가면 고정팬도 제법 많다”라며 “앞으로 여주시에서 ‘전국 직장인 밴드 경연대회’를 개최해 여주라는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특별한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포토] ‘부인 곁으로’ 김종필 전 총리, 고향 부여서 영면

    [포토] ‘부인 곁으로’ 김종필 전 총리, 고향 부여서 영면

    김종필 전 총리가 27일 충남 부여 가족묘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납골당에 봉안된 고인의 유골함을 유가족이 쓰다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필 전 총리 영결식…부여 가족묘원 부인 곁에서 영면

    김종필 전 총리 영결식…부여 가족묘원 부인 곁에서 영면

    향년 92세를 일기로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오전 7시 시작된 영결식에서는 장례위원장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조사에 이어 고인의 오랜 친구로 올해 100세가 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조사를 아들 나카소네 히로부미 참의원이 대독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고인이 머물렀던 청구동 자택으로 향해 오전 9시부터 노제를 지내고,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장지로 이동한다. 이어 운구차는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등학교와 부여초등학교 교정, 그리고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부여군 회산면 가족묘원으로 향한다. 이곳은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2015년 잠든 곳으로, 김 전 총리는 부인 곁에서 영면한다. 부인과 천생배필로 불릴 만큼 다정했던 김 전 총리는 생전에 “고향의 가족묘원에 먼저 간 아내와 같이 묻히겠다”며 국립묘지 대신 부인이 묻힌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을 택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3일 오전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타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군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호위함 폭발사고 순직 이다훈 중사 영결식

    ‘해군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호위함 폭발사고 순직 이다훈 중사 영결식

    해군 호위함에서 사격훈련 준비를 하다 포탄폭발사고로 순직한 마산함 무장사 이다훈(21) 중사 영결식이 22일 오전 9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해양의료원에서 이범림(중장) 해군교육사령관 주관으로 엄숙히 거행됐다.이날 영결식은 유가족과 해군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눈물과 오열속에 열렸다. 영결식은 개식사, 고인 약력보고, 해군교육사령관(장의위원장)의 조사, 추도사, 헌화, 조총 및 묵념, 고인에 대한 경례, 영현운구 순으로 진행됐다.이범림 해군교육사령관은 조사에서 “고 이다훈 중사는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한 유능한 무장사였다”면서 “당신은 조국해양수호의 첨병인 해군 부사관으로서 상급자에게는 믿음직한 부하이자 병사들에게는 친근한 전우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 사령관은 “해군은 고 이다훈 중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바다는 우리 전우들이 더 굳건히 지켜나가겠다”며 “이제 고통 없는 하늘에서 무거운 짐들은 모두 이 바다에 묻어두고 영면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고 이 중사 동기생 정광영 하사는 추도사를 통해 “고 이다훈 중사는 훌륭한 인성과 모범적인 생활로 상급자와 동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고 누구보다 무장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높았던 부사관이었다”고 추모했다. 정 하사는 “동기생 고 이 중사는 마산함의 분위기메이커였고 부모님에게는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면서 “우리 동기 6명이 고 이다훈 중사 부모님의 새로운 아들이 되어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릴 테니 부디 하늘에서는 평안히 쉬기 바란다”고 애도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고 이다훈 중사 유해는 이날 오후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해군본부는 고인의 숭고한 군인정신을 기려 순직 인정을 결정하고 하사에서 중사로 1계급 진급을 추서했다. 고 이 중사는 지난 19일 낮 12시 30분쯤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40㎞(25마일) 해상 마산함에서 훈련준비를 하다 일어난 폭발사고로 크게 다쳐 부산대학교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다. 고 이 중사는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친인척을 보고 해군 직업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지난해 3월 입대했다. 주변에 따르면 고 이 중사는 부사관 후보생 양성과정 및 초급반 보수과정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부모에게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만큼 해군 부사관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높았고 효심도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아라가야’라는 이름 앞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데도 우리는 아라가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나라, 1500년 전 경남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진주, 의령 땅의 일부를 차지했던 나라, 철기 기술이 발달해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나라, 간결한 선의 토기에 불꽃무늬 구멍을 낸 나라…. 함안에는 아라가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라가야의 왕들이 잠든 말이산 고분군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득한 옛날에는 고개를 들어 눈도 마주칠 수 없었을 왕의 곁을 걷는 일이, 2018년에는 너무나 쉽습니다. 낮은 언덕을 설렁설렁 올라 산책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길을 안내하듯 고분이 줄줄이 나타나거든요. 연둣빛 고분 곁을 걸으며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왕국, 아라가야를 만나러 갑니다.아라가야의 숨결 품은 함안박물관 가야는 기원을 전후한 삼한 시대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6세기 중반까지 500여년 동안 낙동강 남쪽과 서쪽 일대에 있던 나라들이었다. 나라‘들’이라고 한 건 가야가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등 여러 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토기와 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아라가야는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었고, 다른 가야국이 ‘형님의 나라’라고 칭할 만큼 가야를 대표하는 나라였다. 아라가야가 터를 잡은 곳은 지금의 함안이었다. 북쪽에 낙동강과 남강이, 남쪽에 진동만이 있으니 내륙과 바다로 진출하기 유리했다.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1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낯설기만 한 옛 나라에 발을 들여놓는다.말이산 고분군에서 옛 가야의 왕과 귀족을 ‘알현’하기 전에 먼저 아라가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예의다. 이를 위해 함안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구경 뒤에는 뒷길을 통해 말이산 고분군으로 바로 오를 수 있으니 동선도 효율적이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함안의 역사뿐 아니라 아라가야의 다채로운 유물을 전시한다.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다. 2층 전시실은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함안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제1전시실, 함안의 시기별 무덤 형태를 모형으로 보여 주는 제2전시실, 아라가야 멸망 후 함안의 역사와 문화재를 살펴볼 수 있는 제4, 5전시실 등도 볼만하지만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제3전시실이다. 불꽃무늬 토기, 수레바퀴 모양 토기, 새 모양 장식 미늘쇠, 말 갑옷 등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데 모아 놓았다. 불꽃무늬 토기는 아라가야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라가야 사람들은 불꽃무늬를 좋아했다. 토기 다리에도 동그라미와 세모를 합쳐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를 뚫어 장식했다. 토기는 영남 지역은 물론 고대 일본의 중심지였던 긴키지역에서도 출토돼 당시 아라가야가 왜와 교류했음을 보여 준다. 밝은 회백색 토기는 무심히 빚은 양 담백하다. 대번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적지만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은은한 멋이 있다. 말을 탄 무사 조형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무사보다 말이다. 말 갑옷은 아라가야가 철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말 갑옷은 총 900장 이상의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해 만들었단다. 아라가야의 용맹한 무사들은 말에게 물고기 비늘처럼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히고 전쟁터로 달려나갔으리라.말이산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박물관 건물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다. 해발 68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언덕은 뒷동산을 산책하는 것처럼 경사가 완만하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뜻이 참 잘 들어맞는다. 함안군이 번호를 붙여 관리 중인 고분은 37기지만 발굴되지 않은 고분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의 고분이 있다. 토기, 철기, 장신구 등 고분군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만 해도 9500여점에 이른다(2016년 기준). 그야말로 아라가야의 역사가 담긴 타임캡슐이다. 고분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으며, 김해·고령의 가야 고분군과 함께 2020년 최종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아라가야의 고분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그중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덧널을 넣은 무덤을, 구덩식돌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돌로 네 벽을 쌓은 뒤 시신과 껴묻거리를 묻고 널따란 뚜껑 돌을 덮은 무덤을 말한다. 37기의 고분을 전부 둘러보기는 힘들다. 1호분부터 13호분까지는 산책로가 이어지지만 14호분부터는 길이 나 있지 않아 험하다. 대형 고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가지능선 정상에 몰려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가면 고분 대부분을 둘러볼 수 있다. 유난히 위엄이 넘치는 고분은 규모가 가장 큰 4호분이다. 2, 3호분 사이의 샛길로 올라가면 높이가 아파트 3층과 맞먹는 초대형 고분을 내려다볼 수 있다. 4호분 맞은편에는 파란 천막으로 덮인 고분이 있다. 지난 5월 둥근고리큰칼과 덩이쇠 등의 유물이 출토된 5-1호분이다. 아라가야의 역사는 여전히 새로 쓰이는 중이다. 쉬어가기에 으뜸인 고분은 9, 10호분이다. 산책로에 서면 고분 너머로 함안 읍내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왕들의 무덤과 우뚝 선 고층 빌딩이 조우하니, 이때 고분의 둥근 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처럼 보인다. 9호분 옆의 팔을 늘어뜨린 소나무는 초여름의 훗훗한 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된다. 나무 옆 벤치는 한숨 돌리며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다. 아라가야의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말이산 고분군은 근사한 산책로다. 산 위에 두둥실 솟은 연둣빛 고분들이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고분의 둥그스름한 곡선과 산책로의 직선이 중첩되니 걷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느리게 걷고 고요히 둘러보기, 고분군 산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아라가야 왕들이 영면에 들어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 산책로는 소란스럽지 않다. 초여름 바람이 고분에 무성한 수풀을 스치더니 여행자의 머리를 훑고 지난다. 바람 한 자락에 1500년 전 가야국의 왕과 연결된 느낌, 사뭇 오묘하다. 고분군에는 그늘이 적어 여름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챙기는 것이 좋다.얼큰한 함안 한우국밥 드셔보세요 열심히 걸었으니 빈속을 채울 시간이다. 북촌리에 있는 한우국밥촌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사실 ‘국밥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함읍우체국 맞은편에는 달랑 세 곳의 국밥집이 여행객을 맞는다. 세 곳뿐이라고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 국밥집을 말할 때 함안 오일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함안 오일장은 큰 시장이었다. 함안 사람들과 봇짐을 멘 장사꾼들이 장에서 물건을 사고판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 곳이 장터 국밥집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오일장은 자취를 감췄지만 국밥집에서 옛 장터의 정겨움을 추억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국밥촌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대구식당이다. 2대에 걸쳐 50년째 운영하며 함안 국밥의 명맥을 이어 간다. 함안 국밥은 얼큰한 소고기국밥이다. 한우사골, 양지, 사태 등을 넣고 3~4시간 동안 육수를 뽀얗게 우린다. 여기에 두툼한 소고기 사태, 뭉텅뭉텅 썬 선지, 콩나물, 무 등을 넣고 푸욱 끓여낸다. 얼핏 보면 육개장과 비슷하지만 맛은 훨씬 담백하다. 빨간 국물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 구수하다. ■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진주,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남해고속도로를 따라간다. 함안톨게이트를 통과해 함안 나들목 삼거리에서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함안대로를 따라가면 함안박물관이다. →맛집:한우국밥촌에는 대구식당(583-4026) 한성식당(584-3503) 시장한우국밥(583-5858)이 있다. 자매식당(582-4593)은 오곡 돌솥밥, 모둠생선구이, 다양한 밑반찬을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낸다. 황포냉면(582-2097)은 잘게 자른 육전에 계란 지단과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 진주식 냉면을 판다. →잘 곳:함안버스터미널 근처에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애플모텔(585-1515)은 함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 함안군청 맞은편의 더문모텔(583-3838)은 공중위생서비스평가 최우수등급을 받았으며, JM모텔(583-5898) 역시 아늑하고 깨끗한 시설을 갖췄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김상곤(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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