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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고교생들, 5·18묘지서 애국가 연주

    “한국은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준 이웃 나라입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15일 한국의 민주화를 대표하는 광주의 국립 5·18묘지에서는 일본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를 연주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일본 고치(高知)현 중앙고 취주악단 학생 16명과 교사 2명은 이날 오전 10시 5·18묘지를 찾아 민주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분향과 묵념을 올린 뒤 ‘애국가’와 우리의 대표 노래인 ‘아리랑’을 차례로 연주했다. 학생들을 이솔한 마에다 마사야(前田正也·48) 교장은 “올해 ‘8·15’는 한국에는 광복 60주년, 일본은 패전 6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날”이라며 “한국의 독립과 번영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한국 문화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아리랑을 연주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마에다 교장은 이어 “한국은 고대 일본에 문화와 종교를 전파해준 은혜로운 나라”라며 “다양한 한·일 교류를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주에 참여한 아베 도모미(16·고2년)양은 “한국과 일본이 항상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이 고등학교는 지난 2000년부터 수학여행 등을 통해 한국과 교류를 시작했으며 지난 5월에는 사이클링부 학생들이 고치현을 출발, 광주까지 520㎞의 자전거 대장정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참배 뒤 전남 장성의 복지시설 프란치스코의 집을 방문해 위문연주회를 가졌으며 16일에는 목포 공생원을 방문하고 진도 실업고 학생들과 합동 연주회도 가질 예정이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 이후 처음 이뤄진 북측 인사들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놓고 환영과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 화해의 일대 전기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6·25에 대한 참회 없는 참배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소지가 많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학자의 진단을 통해 전환기를 맞은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동족상잔 전쟁 마침표 남북공존 전향적 몸짓”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정부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의 요구가 아니라 북측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점은 더더욱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진전되었지만 양측 모두 금기의 영역이 존재했다.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문제는 직접 건드릴 수 없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 측의 건국 및 호국 인사들이 안치되어 있는 묘소 참배 문제였다. 특히 전쟁까지 직접 치른 남북으로서는 상대방의 국립묘지가 곧 바로 적군의 묘지였고 상대방의 호국영령은 곧 전범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남북 현대사의 멍에와 상처를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전향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은 이제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그 자체도 인정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현충원 참배는 최근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전술적 일회성보다는 구조적 진정성을 기대하고 싶다. 장기 소강국면 끝에 지난 5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었고 이후 진행과정은 오히려 북한이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6·17 평양 면담,15차 장관급 회담,10차 경추위, 개성과 백두산 개방 허용 등이 모두 그랬다. 이같은 적극 행보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결단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6·15 5년을 맞는 지금,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남북관계의 진전은 오히려 북에 절실하고 불가피한 선택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현충원 참배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이념적 화해라는 의미 말고도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과제와 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된 현충탑을 북측 대표단이 참배한 것은 동족 상잔의 전쟁상태를 종료하고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자는 보다 적극적 해석까지 가능한 대목이다. 전쟁이 아직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은 정전체제하에서 실제 교전 당사자인 상대방의 국군묘지에 참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유감표시와 함께 이제 전쟁을 실제적으로 끝내고 평화상태를 회복하자는 간접적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북핵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고 있다. 이번 현충원 참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에 금수산 궁전 참배를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는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일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정말 소심의 극치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대범해야 한다. ■ “반역사적인 무력남침 참회없는 참배 무의미”북한이 6·25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실과 통한의 뉘우침을 담은 사과절차 없이 북측 8·15 축전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같은 행위는 자칫 남과 북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고 김일성 주석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행한 무력도발의 반(反)역사성을 묻히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경계를 요한다. 아직도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신성시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의 본질적인 변화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는 방편으로 민족 감정을 활용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인식과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막말로 해서 항상 전략과 전술로 남북문제를 재단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선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정보의 흐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당국은 이번의 참배를 그들의 구미에 맞게 정치적으로 요리해 체제유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남한의 친북 세력을 지원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북문제로 분열돼 있는, 우리 사회내에서 사상적으로 이질적인 집단간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 갈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도 대북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정된 미국과의 벌어진 틈새가 더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출발점’이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감상적이고 순진한 발언은 앞으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위험한 대북관의 노출이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측의 이러한 참배 제의를 받아 들인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서 아무 곳에도 기댈 곳이 없는 북한체제에는 북한식 통일전선전술의 전개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남아 있는 한·미동맹의 틀을 허물어 가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대북 지원시 엄격한 상호주의의 적용을 주장하는 우리 사회내의 목소리는 반(反)민족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유독 북한의 체제 선동이 지향하는 상호주의는 우리 대표단의 방북 시 김일성 시신 조문 요구 및 기타 지역 참배요구로 연결될 것이다. 현충원 참배가 지금 휴회 중인 6자회담에서 북측이 북핵과 연관시켜서 거론 중인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와 ‘평화협정체결’을 더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선전·선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사전에 정지 작업하는 차원에서 보는 견해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한·미간의 공조 틈이 더 벌어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될 수 있는 북 대표단의 국립묘지 참배 허용을 관련 정부부처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부정적인 여파를 차단하는 후속 대책이 하루 속히 세워지길 바란다.
  •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 北대표단 현충탑 참배 안팎 그들의 얼굴 앞에 포연(砲煙) 대신 향연(香煙)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14일 ‘8·15 민족대축전’ 북한 대표단이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가 모셔진 현충탑 앞에서 참배하는 장면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긴 여운을 남겼다. 50여년 전 서로 총부리를 들이댔던 쌍방이 무덤 앞에서 참배의 형식으로 만나는 그림은 전쟁 당시는 물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의 표정과 행동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고, 참배 절차와 시간도 최대한 짧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날 오후 3시쯤 대형버스로 현충원 현충문 앞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 32명은 김기남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민간대표 단장을 선두로 해 5열 종대로 줄을 맞춰 현충탑으로 향했다. 고경석 현충원장과 송기호 현충과장이 좌우에 서서 대표단을 안내했다. 이때 양옆에 도열한 국군의장대가 “받들어 총”이라는 구령과 함께 거총 자세로 예우를 갖췄지만 대표단은 일체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했다.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굳어 있었다. 대표단은 50m가량을 걸어서 2분여 만에 현충탑에 도착했다. ●행동경직… 참배시간 모두 5분정도 걸려 현충탑 앞에 도열한 대표단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례관의 구호에 따라 약 5초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단은 묵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 현충문으로 나왔으며 이때 의장대가 다시 “세워 총”이라는 구령으로 거총 자세를 취하면서 참배는 마무리됐다. 전체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김기남 단장은 나오는 길에 고경석 원장에게 현충원의 시설과 규모에 대해 물었다. 이어 그는 “이렇게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안경호 단장은 기자들이 몰려들자 “역사적인 장면이니까 취재 경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는 헌화→분향→묵념 등 순으로 진행되지만 북측은 이날 헌화와 분향 절차를 생략했다. 다만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현충원측에서 향을 피워놓아 묵념 당시에는 하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통일부측은 “우리와 북측은 참배 관행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회원 24명 연행 격리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 등을 참배할 때 헌화는 하지만 분향은 하지 않는다. 앞서 오후 1시45분쯤 현충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보수단체 회원 24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강제 격리됐으며, 대표단 버스가 현충원 정문을 통과할 때도 40대 남성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버스에 달려들며 반북구호를 외치다가 연행됐다. 김상연 이효연기자 carlos@seoul.co.kr ■ 헌화·분향 않고 왜 묵념만 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묵념만 하고 5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단은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 가운데 헌화와 분향 순서를 생략했다. 이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의 참배 관행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북측은 김일성 동상과 혁명열사릉 등 현충시설을 참배할 때 분향은 안 하지만 꽃다발과 꽃바구니로 헌화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은 5초 정도의 짧은 묵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현충탑을 떴고, 내내 경직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북한내 강경파와 대남관계의 수위 조절을 두루 감안한 것 같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충탑에 헌화할 경우 김일성 동상에 대한 예우와 맞먹는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이 받을 충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남한과의 공조 방침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에 너무 최고의 예우를 할 경우 나중에 남북관계가 부정적으로 흐를 때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민족대축전 이모저모 1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5만 인파의 우렁찬 통일 함성으로 진동했다. 함성은 이어 벌어진 통일축구로 절정에 달했다. ●“말복 폭염도 통일열기 못 따라와” 나흘간 계속되는 8·15 민족대축전은 오후 5시10분 남·북·해외 대표단의 민족대행진(상암동 평화공원∼월드컵경기장)으로 막을 열었다. 북한 대표단은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 기치 밑에 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여나가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행진했다.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은 “오늘이 말복이라 날씨가 덥고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통일열기는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표단이 경기장에 도착한 오후 6시 각각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그 순간 한반도기가 게양됐다. 개막식은 백낙청 남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의 개막선언과 북측 당국 대표단장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남측 당국 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개막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세종로서도 축구 보며 남북 동시응원 오후 7시 남북 통일축구 경기 시작에 앞서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최갑순씨 등 정신대 할머니 3명과 경기 하남시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학생 28명이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경기가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은 물론 차량의 통행을 막은 세종로에 모인 시민들까지 남북 양측을 모두 응원하며 통일을 향한 염원을 실어보냈다. 통일연대 등 진보단체는 15일 0시쯤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가졌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에는 학생 등 1만6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이례적으로 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국인 단체) 등 해외인사들도 참석했다. 당초 행사는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세대측과 연세대총학생회의 반대로 장소가 변경됐다. 유영규 이효연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李玖)씨의 영결식이 24일 서울 창덕궁 희정당에서 오전 10시에 열렸다. 고인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영친왕(英親王)의 왕세자로서 조선왕가의 마지막 적통이었다. 이날 영결식은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이환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세손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상주는 지난 22일 고인의 양자로 입적된 이원(李源)씨가 맡았다. 영결식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유홍준 청장, 주한일본대사, 박진·이낙연 등 현직 국회의원과 문중인사, 취재진 등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마침 창덕궁을 둘러보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번 행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해찬 총리등 1000여명 인파 몰려 또 조선왕조의 마지막 행사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인지 일부러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나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방학 숙제 주제로 잡고 이번 행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무더위 때문에 일부 관람객들은 쓰러지기도 해 119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영결식은 운구 운반→개식 선언→묵념→조악(弔樂) 연주→고인의 약력보고(이용규 장례부위원장)→인사(이환의 이사장)→식사(유홍준 청장)→조사 낭독(이해찬 총리)→유족과 조문객 분향→조악(弔樂) 연주→퇴회식 순서로 진행됐다. 이해찬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 저하의 훙서(薨逝)를 진심으로 애도하오며, 영령께서 사랑하시는 부왕(영친왕)과 모후(이방자)를 만나 현세에서 다하지 못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돈화문~종로3가~종묘 노제 영결식 뒤 운구 행렬은 창덕궁 돈화문과 종로 3가를 거쳐 종묘에 도착해 노제(路祭)를 지냈고, 노제 뒤에는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영친왕 묘역인 영원(英園)으로 옮겨 고인을 안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동안 종로3가는 교통이 통제됐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황세손의 마지막 길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왕손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휴일을 맞아 극장가에 나온 젊은이들은 행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무심코 지켜보기도 했다. 행사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반영하듯,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편에서는 군악대와 국군의장대, 캐딜락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취타대와 만장 행렬 등이 함께 했다. ●3년상위해 낙선재에 상청 설치 논의 9일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식은 고궁 내에서 치른 마지막 장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에라도 양자가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고인의 사망으로 조선왕실의 적통은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고인과 결혼했으나 ‘외국여자인 데다 후손도 없다.’는 이유로 강제 이혼당한 줄리아는 노제가 열린 종묘공원 맞은 편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장례는 고인의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1989년 장례절차를 기록해둔 ‘의민황태자비 장의록’에 따라 치러졌으며,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우제’는 낙선재에서 25일 열린다. 종약원측은 3년상을 위해 낙선재에 상청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계속 협의키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유족회 야스쿠니 참배 재고요청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강력한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회장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가 11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유족회 간부에게 전화,“총재가 되면 반드시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약속, 이것이 총재선거 공약이라며 4년 연속 참배해 왔다. 한마디로 고이즈미 총리와 전몰자를 추도하는 유족회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선 ‘2인 3각(脚)’과 같은 관계여서 유족회의 참배 재고 요청이 사전조율을 거쳤든 안거쳤든, 향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계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12일 분석했다. 유족회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통해 “야스쿠니 참배는 유족의 비원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싶은 일이지만, 이와 함께 영령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근린제국을 배려, 이해를 얻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린제국 등의 반발과 그로 인한 역대 총리들의 참배 재고 요청 등으로 인해 영령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가 회장과 오쓰지 히데히사 후생노동상 등 간부들이 모임을 가진 뒤 발표한 성명은 또 한국과 중국 등 상대국의 입장에 대한 배려와 이들 국가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총리의 신사참배가 정치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신사참배에 앞서 이들 국가의 비난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유족회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의 분사(分祀)문제에는 정치가 개입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으며, 야스쿠니신사가 유일한 영령의 위령시설이기 때문에 새로운 추도시설의 건설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성명이 나온 뒤 유족회의 일부 간부는 “회장 개인의 생각으로 전체적인 동의를 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몰자 유족의 전국조직으로 약 100만 가구가 가입해 있고, 집권 자민당의 강력한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가 이같은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유족회는 그동안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요구해 왔을 뿐 아니라 “(총리 참배는) 유족회 활동의 중점사항”이라고 밝히는 등 총리의 신사참배를 강력히 지지해온 단체이다. 아울러 일본역사교과서 역사왜곡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단체로 알려졌다. 한편 도쿄신문은 이날자 사설을 통해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일본외교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며 “자국 독선을 억제하라.”고 촉구했다. taein@seoul.co.kr
  •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강북구 우이동·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묘역 등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들과 함께 이들 명소를 산책하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건강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가면 큰 교육 효과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 4·19묘지는 1960년 4월19일 자유당 부패정권과 3·15 부정선거를 맞서 민주화 꽃을 피운 애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난 63년 9월 건립된 묘지에는 당시 사망한 274명의 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정부의 성역화 사업으로 93년 10월 1만 3000평을 4만 1000평으로 넓혔다. ●4·19묘지 ‘2개 코스’ 각각 90분 걸려 4·19묘지를 중심으로 두 가지 코스를 만들어볼 수 있다. 모두 1시간30분 안팎으로 산책할 수 있다. 4·19묘지에서 백련사를 올라가는 길에 현제명(조선음악가협회 창설)→신숙(천도교 상하이에 전파·한국독립군 참모장)→김도연(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서상일(대동청년단 조직)→김창숙(매국 5적 상소로 옥고,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양일동(상하이 임시정부 가담으로 옥고) 선생의 묘지가 있다. 또는 4·19묘지에서 이준 열사(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고종밀사로 참석했으나 일본 반대로 자결)→신익희(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김병로(항일 변호사단체 창설·독립투사 무료 변론)→광복군 합동묘역→이시영(만주 신흥무관학교 창설·임시정부 법무총장·초대 부통령)→유림(한·중 항일군 조직·부흥회 조직) 선생의 묘역을 돌 수도 있다. ●3·1운동 지도자 길러낸 봉황각 우이동 유원지에서 도선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봉황각(鳳凰閣)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1912년 천도교 교역자들에게 종교적 수련을 통해 일제시대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지도자를 훈련시키던 장소다. 이 곳에서 양성된 교역자들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1919년 3·1운동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0m 떨어진 곳에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건물 평면이 ‘궁을’(弓乙)자형으로 천도교의 핵심사상인 우주만물의 순환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궁을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식 목조건물로 건축사적인 의미도 뛰어나 서울시 유형문화재 2호로 지정됐다. 도선사는 신라경문왕 때(862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시대 말기인 1904년 국가기원본찰로 지정됐다. 도선사 마애석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34호로 지정됐다. 석불 앞 대리석 바닥은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석진 선생 순국한 창녕위궁재사 번동 드림랜드 입구에 있는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齊舍)는 조선시대 제23대 순조의 둘째딸인 복온공주와 부마 김병주 선생의 재사(齊舍)다. 인조 때 영의정까지 지낸 신경진의 별장이었으며 복온공주의 후손인 김석진 선생이 한일합병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순국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현충일 50주년을 맞아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이 날을 기리는 뜻에서 ‘6·25 참전전우회’가 선정한 ‘6월의 가요’를 마련했다.‘전선야곡’,‘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통해 당시 민족의 아픔을 추모하며, 이미 고인이 된 최갑석씨의 그때 그 모습 ‘삼팔선의 봄’을 들어본다. ●생활의 달인(SBS 오후 7시5분) 칼 한자루로 주방을 평정한 과일 깎기의 달인 이길호 조리장. 주방장 경력 15년의 깎기 비법을 공개한다. 경마중계 아나운서 김경준씨는 1분에 400단어를 내뱉는 언변의 달인이다. 과연 그 속도의 비결은? 마지막으로 주차의 달인 김현복씨의 놀라운 후진 주차 기술을 공개한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지난해 9월과 올 1월, 국내 한 대학이 독일 지멘스사, 미국 하버드대학과 손잡고 ‘PET-MRI 뇌영상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국내 의료계와 전 세계 뇌 과학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세계적인 과학자 조장희 박사. 세계 뇌 과학을 선도하는 조장희 박사를 만난다. ●애니토피아(EBS 오후 10시50분) ‘애니의 전설’ 코너에서는 벨기에 애니메이션의 전설인 라울 세르베의 ‘밤의 나비’를 만나본다.‘밤의 나비’는 마치 꿈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시각화한 듯 몽환적이고 낯선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으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폴 델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안녕! 프란체스카(MBC 오후 11시5분) 프란체스카를 위해 차를 빌려 온 두일이 덕분에 처음으로 놀이공원 나들이에 나선 프란체 가족.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유이용권이 너무 비싸다. 가족들을 위해 놀이공원을 포기한 소피아는 공원 밖에서 가족들을 기다린다. 한편 어렵게 빌려온 고물 자동차가 부실해 안드레는 차에 갇히고…. ●폭소클럽(KBS2 오후 11시5분 ‘떴다!김샘’에서는 학생들의 장래 희망, 간단한 질문으로 알아보는 아이큐테스트 등이 소개된다.‘매직 타임’에서는 박기훈 마술사 등이 관객과 함께하는 신기한 멘탈매직이 펼쳐진다. 또 ‘록기 & 루키 개그퍼레이드’에서는 홍록기와 신인 개그맨 3팀의 개그퍼레이드가 펼쳐진다.
  • 현충일 10회 ‘비목 문화제’ 여는 한명희씨

    현충일 10회 ‘비목 문화제’ 여는 한명희씨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을 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위해 나섰지요.”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가곡이 있다. 바로 6월의 노래 ‘비목’이다.‘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 작사의 주인공은 한명희(66)씨. 지난해 서울시립대에서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남양주에서 ‘피스밸리(6·25추념문화단지)’ 조성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의 비무장지대에 한 초급장교가 배속됐다. 최전방 순찰에 나선 그는 잡초 우거진 양지 바른 산모퉁이에 멈춰섰다. 이끼 낀 돌무더기가 군홧발에 걸렸기 때문. 무심코 돌무더기를 밀쳐냈다. 유골이 녹슨 철모에 끼여 있었다. 장교는 자신과 비슷했던 젊은 용사였다는 점에 그만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이때였다. 초저녁 달빛에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새하얀 산목련이었다. 국민가곡 ‘비목’은 이렇게 탄생했고 당시 초급장교가 바로 한씨다. 이같은 사연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5년부터 매년 현충일에 ‘비목문화제’를 열어왔다. “국내 유일의 호국문화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국민 모두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는 의미에서 시작했지요.” 올해가 10회째. 이를 위해 오는 현충일 오후 평화의 계곡(평화의 댐) 특설무대에서 위령제 및 추모공연 등을 마련했다고 한씨는 밝혔다. 유명 인사들도 대거 초청됐다. 장사익씨가 ‘찔레꽃’‘동백아가씨’ 등을 부르고 명창 신영희씨가 씻김굿으로 혼을 달랜다. 아울러 박명숙 현대무용단,50여명의 연합 합창단원 등 1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출연한다. 또한 30여명의 전직 군 장성,60여명의 주한외교사절 등 500여명의 관람객이 함께 참여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땅에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없이 죽어간 넋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한씨는 39년 충북 충주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다.‘인생이 뭐냐.’는 물음에 자꾸 빠지기도 했다. 삼수 끝에 친구의 권유로 서울대 국악과(2회)에 합격했다. 대학 1학년 시절 서울대 음대 학장인 현제명 박사의 장례식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광경에 가슴 뭉클하는 감동을 느끼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6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2기 소위로 임관, 전방부대인 7사단에 배치받았다. 이때 비무장지대에 배추심으려고 흙을 파면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광경을 보고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전두환씨 본인이 오면 좋았을 것을…”

    “제가 가짜가 아닌, 진짜 본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MBC 특별기획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기하고 있는 이덕화씨가 2일 민주화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광주 국립 5·18묘지를 찾아 참배했다.MBC 신호균 책임프로듀서(CP)와 임태우 프로듀서(PD) 등 제작진도 함께했다. 이씨는 이날 “연기 생활을 하면서 광주에 많이 왔지만,5·18묘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드라마를 찍기 전에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했었는데 너무 늦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먼저 유족들을 찾아뵙고 양해를 구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더 홀가분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5·18 당시 최초 사망자였던 고 김경철씨와, 영혼 결혼식을 올린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합장묘 등 신묘역과 구묘역을 1시간여 동안 둘러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특히 고 김경철씨 묘 앞에서는 “제 나이와 비슷하다.”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파왔다.”고 깊이 머리를 숙였다. 신군부 미화 논란에 대해 이씨는 “드라마 전개가 긴박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면서 “하지만 눈앞의 나무만 보고 뒤에 있는 큰 산은 보지 못하는 격”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5·18 부분의 대본을 연습하다 보면 (신군부에 대해) 저절로 안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5·18 당시 광주의 실상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씨는 “상식적인 보도만 봤다.”면서 “호남 친구들과 선·후배로부터 많이 알게 됐고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씨는 이날 방명록에 ‘오월 영령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후 5·18기념재단으로 자리를 옮겨 광주민주화운동 생존자들과 함께 한 간담회에서 이씨는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면서 “만약 사실이면 다시 연기를 하지 않거나,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잘라 말했다. 임 PD는 “오늘 이곳을 찾으니 마음이 새로워졌다.”면서 “당시 광주 실상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묘역 안내를 맡았던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 등은 이 자리에서 “제작상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가능한 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모든 젊은 세대 등 모든 국민이 5·18의 실상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달하며 의견을 나눴다. 현재 광주와 서울 등에서 촬영되고 있는 ‘제5공화국’의 5·18 부분은 오는 11일부터 2주 동안 4회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다. 광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기고] 호국보훈의 달… 역사의 교훈 되새기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넋이 짙은 녹음으로 우러나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왔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맘때가 되면 길거리의 가로수와 그 이파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고 숙연하게 다가온다. 특히 올해는 광복 60년, 6·25전쟁 55년, 4·19혁명 45년, 5·18민주화운동 25년인 해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호국보훈의 달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예우하고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겨 국민통합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 희생을 뜻하는 영어 ‘sacrifice’는 ‘신성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숭고하지 않은 희생이 없겠지마는 그중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위한 헌신은 공공의 이익과 안녕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기억의 정치’라 하여 과거 국가적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국가를 지켜낸 분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기억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국민적 합의 위에서 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민적 단합과 연대의식을 높이고 있다. 역사학자 카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위한 교훈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국가보훈의 진정한 의미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를 개척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데 있다.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숱한 시련과 반성 그리고 성찰의 교훈이 누적되면서 발전한다. 도도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사회지도층의 투철한 도덕 의식과 솔선하는 공공 정신,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국가 발전의 역동성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로마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초기 로마사회에서는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이 확고했는데, 한니발(Hannibal)이 지휘하는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으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국가위기 시에 책임을 다하는 사회지도층이 있었고 지난 세기만 보아도 수많은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있었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 숱한 애국선열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일신을 초개와 같이 버렸고,6·25 전쟁과 월남전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피를 흘렸으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숱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은 국가의 흥망성쇠는 정신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로마제국도 결국 도덕적 타락과 정신문화의 약화로 멸망을 맞이했다. 결국 한 국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의 책임의식과 건전한 정신문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독립·호국·민주 정신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헤쳐나가는 정신적 좌표로 삼아 희망찬 미래를 준비해 나가도록 하자.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 요란스레 찾아들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랜다며 짙푸른 5월의 광주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허탈감에 온몸이 뒤틀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광주를 찾은 386정치인들이 도우미가 딸린 단란주점에서 유흥 잔치를 벌였다던 소식에 분노를 삼키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건만 뇌리에서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권을 꿈꾸는 서울시장이 5·18국립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참배하고 나오다 파안대소했다는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라면 광주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요란을 떨며 다들 희생당한 영령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5·18 묘역을 순회한다지만 정녕 광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누구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졌는지 ‘용서와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규명이 되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광주의 5월정신은 그 숭고한 역사적 의미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가고 정권이 바뀌었건만 여전히 소외받고 낙후된 지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광주시민들이 어떤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국토균형발전’이라는 현 정권의 정책에서 우선권을 부여받으려 한다거나, 혹은 핍박받았던 역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생각해 보라.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는데 망월동 5월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제6회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의 와르다 하피즈 여사는 “광주는 아시아의 등대와 같은 곳으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배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하며 “광주정신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5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 가치를 배우고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를 추앙하고 있건만 광주시민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실미도 사건’과 대학생들의 강제징집을 야기한 ‘녹화사업’을 대상으로 진상규명에 임한다는 공언을 반복해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위원회에서 발표할 안건이라며 결정을 유보해왔다. 드디어 군 관계자 5명과 민간인 8명 등 총 13명으로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는데, 과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위원회에서는 당연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하루속히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부에서 직접 망월동 5·18묘지의 관리를 맡겠다고 나서서 광주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아직 진상의 배경과 최초발포명령자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가 국방부장관 명의로 국회에 ‘국립묘지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출, 입법예고한 것이다. 그런 후 4·19나 3·15 묘지와 함께 공동관리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군 관련 희생자들과 민주영령들 묘지의 성격을 동일시하여 관리하겠다니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일인가. 그보다 국방부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김밥을 눈물로 삼키며 항거하던 민주영령들과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 거북선 승선자 40명 선착순 모집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5월28일 2시부터 3시까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서 일반시민과 실향민들을 초청,‘통일 염원 한강 거북선 운항’ 행사를 갖는다. 거북선은 6월6일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들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촌 거북선 나루터를 출발하여 한강대교 및 여의도 밤섬까지 6.6㎞를 운항한다. 거북선 행사에 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24일(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선착순 접수를 받는다. 거북선 승선자 40명, 관광선 승선자 40명 등이다. 문의는 (02)3780-0797.
  • “5·18이 ‘경축’할 일이냐” “기념위 요청… 사과하라”

    5·18 기념탑 문구로 서울시와 열린우리당이 한바탕 설전을 펼쳤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이 지난 13일 “서울역에 세워진 5·18 기념탑에 ‘경축’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며 서울시를 비난한 것이 발단. 서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서울시의 광주항쟁 ‘경축’은 얼마 전 이명박 서울시장의 5·18 영정 앞 파안대소와 함께 시장과 그 수하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분노하는 국민과 광주영령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경축’ 문구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한상석 5·18 민중항쟁 25주년 서울기념행사위원장은 이날 “서울시는 행사위원회와 서울지방보훈청의 요청대로 ‘경축’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직접 해명했다. 그는 나아가 “이제 5·18 기념탑에도 ‘경축’이라고 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이런 한 위원장의 해명에도 열린우리당이 홈페이지에 서 부대변인의 논평을 그대로 두자 김병일 대변인 명의로 맞비난 성명을 내고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성명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군대 동원’ 발언으로 큰 사고를 친 열린우리당 대변인실이 5·18 기념탑에 ‘경축’이라는 문구가 왜 들어갔는지 시에 확인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 식의 논평을 내는 등 또다시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한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5·18 묘지를 방문하고 기념으로 심은 나무의 표지석이 잇따라 파손돼 관계자들이 복구에 나섰다. 15일 오후 2시쯤 이회창 전 총재의 기념식수 밑에 있는 표지석이 받침석에서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관리소 직원이 발견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기념식수 표지석도 잔디에 눕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세웠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가족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에 10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한강둔치의 ‘성수대교 희생영령 위령비’앞. 지난 94년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참사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족 10여명과 당시 참사로 8명의 학생을 잃은 무학여고 후배 학생 10명, 교사 4명이 참석해 영령을 위로했다. 10년의 세월에도 유족들의 한숨섞인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소식이 계속될 때마다 10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며 가슴아파했다. 묵념으로 추도식을 시작한 유족들은 헌화와 분향을 하면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10년 동안 이곳에 와서 명복을 빈 것은 우리 유족들뿐이었다.”면서 “꽃 한송이 바치지 않던 사람들이 10주기라니까 갑자기 찾아와 생색을 내려 난리법석”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사고로 친형을 잃었던 유족대표 김학윤(39)씨는 추도사에서 “슬픔의 상처는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아물고 있지만 이땅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면서 “32명의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성수대교가 튼튼한 교량으로 다시 태어나 제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슬픔을 나누는 사람은 유족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실투성이인데 정부에서는 성수대교 참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이 추도식을 갖기 직전 붕괴지점인 성수대교 중간부분에서는 대형 붕괴사고에 대한 자성과 재해유자녀 지원 등을 위해 2000년 발족한 ‘건설교통연대’ 회원 40여명이 별도의 추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붕괴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승영(여·당시 서울교대 3년)씨의 외삼촌 김갑순(58)씨가 참석했다. 김씨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이곳을 10년만에 다시 찾았다.”면서 “다리는 말끔하게 고쳐놨지만 여전히 아픈 사연들이 서려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같은 아픔을 겪어온 다른 유족들을 만나고 싶었다는 김씨는 “아직도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족들을 보니 안타깝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송두율교수 광주 방문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재독 철학자 송두율(60) 교수가 2일 광주를 찾았다.고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난 지 45년 만에 광주를 찾은 송 교수는 이날 오전 9시쯤 부인 정정희씨와 함께 광주공항에 도착,곧바로 국립 5·18 묘지를 방문했다. 송 교수 부부는 방명록에 ‘긴 외국생활에 용기를 줬던 광주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고 적은 뒤 관리사무소측의 안내를 받아 추모탑 아래서 헌화·분향했다. 송 교수는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뒤 전남대 교수를 지낸 부친 송계범(1996년 작고)씨를 따라 광주에서 중앙초교와 광주서중을 졸업했다. 그는 오후 6시 전남대 용봉문화관에서 교수와 후원자,친구 등 지인 100여명과 만찬을 가진 후 3일 오전 고향인 제주도를 방문,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 서울 구혜영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白骨兵團 /손성진 논설위원

    ‘적진 800리의 혈투’에는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의 6·25 참전 실화가 담겨있다.이 책을 엮은 전인식씨는 작전참모로 참전했으며 종전후 전우회장을 맡아 백골병단의 명예를 찾기 위해 애써왔다.부대가 창설된 것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월초 1·4후퇴 무렵이었다.대원들은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중사∼대위의 계급이 주어졌지만 정식 군번은 없었다. 그해 1월30일 인민군 복장에 2주일분의 미숫가루와 고추장만 갖고 혹한의 영월 전선에 투입된 대원들은 대관령 너머 적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폭설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대원들이 백골병단이란 이름으로 재정비된 것은 1951년 2월20일 강원도 명주 퇴곡리에서였다.사령관은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지낸 당시 채명신 중령이었다.대원들은 2월28일 인민군 군관 등 3명을 생포하고 1급 기밀문서를 노획하는 첫 전과를 올렸다.이 정보는 인민군 제69여단을 격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3월10일부터 이들은 강원도 인제에 진출,최대의 전과를 거두었다.필례마을을 정찰하던 대원들은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의 은거지를 찾아내 길을 포함해 군관 13명을 체포했다.그러나 인제 군량밭과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이어 벌인 전투에서 100명 넘는 전우를 잃었다. 최대의 비극은 인제 단목령에서 일어났다.고개로 행군하다 인민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많은 대원들이 총탄에 맞아 숨졌고 단목령으로 뿔뿔이 피신한 대원들은 영하 30도의 추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이곳에서만 120명이 희생됐다.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2일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그러나 돌아온 이들에게는 무공훈장은 고사하고 보급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전씨 등 생존대원들이 동분서주한 끝에 1990년에야 전적비를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 세울 수 있었지만 공식적인 보상은 얻어내지 못했다. 백골병단이 해체된 지 53년만에 국방부가 대원들에게 병적을 주고 1000여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고 한다.늦게나마 그들의 공을 인정함으로써 아직도 유해를 확인하지 못한 대원 303명을 비롯한 영령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현충원 외곽 18만평 47년째 ‘꽁꽁’

    국립현충원 안팎을 시민들이 친근감 있게 이용하도록 ‘국민 기념공원’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정부의 무성의로 10년째 묵살되고 있다. 27일 서울시와 동작구에 따르면 지난 1994년부터 용도상 ‘묘지공원’인 현충원의 담장 밖을 ‘근린공원’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국방부와 협의했으나 국방부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시민들은 담장과 철책으로 둘러싸여 요새를 연상하게 하는 현충원의 담장을 허물고 대규모 녹지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동작구 관계자는 “군사정권 때나 있을 법한 정문 통제가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이 접근을 꺼려한다.”면서 “현충원에는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만큼 국민과 호흡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담장 제거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묘지공원으로 돼 있으면 추도 분위기를 해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어떤 시설도 설치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재 현충원은 담장안 143만 3042㎡(43만 4255평)와 담장 외곽 61만 4782㎡(18만 7000여평) 등 모두 204만 7824㎡(62만 553평)가 묘지공원으로 지정돼 바깥에 있는 사유지에도 아무런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담장 위엔 철조망까지 처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우거진 자연녹지 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반대로 편의시설을 갖출 수 있는 근린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하지 못해 57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사실상 ‘죽은 땅’이 돼 버렸다.이에 따라 시는 2000년 6월 국방부에 담장 외곽지역에 대해 근린공원으로 변경이 곤란할 경우 토지보상계획을 세워 민원을 해소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마저 거절당했다.서울시 관계자는 “국방부가 보안을 이유로 내세워 시민편의와 재산권 행사를 막는 발상은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기고] 서울신문과 민족혼의 부활/오의교 3.1민족정신 선양회장

    망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한시바삐 깨어나야 한다.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현재 우리의 삶에 절실한 교훈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개국이념으로 인류사회에서 평화를 선도해 왔고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었다.숭고한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민족은 너무도 선량했기에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많은 침해·약탈의 고통을 겪어왔고,아직도 지구상에 단 하나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숭고한 선열들의 인류평화 선도정신은 아예 포기하고 망각 속에서 갖가지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음은 선열들의 영령 앞에 너무도 죄스럽다.시급히 좌절과 포기·망각에서 깨어나 숭고한 선대의 큰 뜻을 이어받은 후예들로서 인류사회에 공헌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이에 우리의 민족 정통언론인 서울신문은 새로운 언론문화의 선도자로서 헌신적인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일찍이(100년전) 숭고한 우리 민족혼을 담아 창립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강압으로 약탈당했고 그 뒤를 이은 서울신문은 광복 후 독재정권의 집권체제 유지에 악용되었기에 한때 국민에게 버림받은 신문이 되었다.이제 서울신문은 정통 민족신문으로서 부활하고자 발 벗고,팔 걷어올렸다.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문화는 한마디로 어지럽다.일부 언론사는 사명을 망각한 채 국리민복과 인류사회에 누가 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다.언론은 모름지기 국익과 민생복리 그리고 인류평화에 해가 되는 일들(편견·편파·선동성 보도)은 자제할 줄 알 만큼 성숙해야 한다.정도를 벗어난 보도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언론이 죄책감을 갖기는커녕 무책임한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이에 우리 민족의 정통신문인 서울신문은 민족혼을 담아 부활해야 한다.민족혼을 담아 언론의 정도(正道)로 나아갈 때 국민의 사랑을 받고 힘차게 날갯짓할 것이다.정통 민족신문으로서 국리민복,그리고 통일과 인류평화에 공헌하는 정겨운 신문으로 약진하기를 기대한다. 오의교 3.1민족정신 선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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