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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도옹 동정」 싸고 추측 난무/아주대회 개막식 불참에 설왕설래

    ◎보수파 공격에 주춤… 공석출현 자제설 유력/“개방ㆍ개혁추진 따른 권력투쟁 심화” 주장도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로 알려지고 있는 등소평이 지난 22일의 북경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갖가지 억측을 자아내고 있다. 관측통들은 그가 당연히 개막식에 참석,외국 귀빈들과 만날 것으로 예측했다. 때문에 그의 개막식 불참은 건강이 악화됐거나 정치적인 곤경에 빠진게 아닌가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등은 지난 7월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돌아보고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으며 9월 초순 휴양지인 북대하에서 북경에 돌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의 구람 이스학 칸 대통령,일본의 노브로 다케시다 전 수상,베트남 보구엔 지압 부수상,북한의 이종옥 부주석 등 아시안게임 참관을 위해 북경에 온 외국 귀빈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이는 전례에 없던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등은 비록 공직에서는 은퇴했지만 『외국 귀빈들과는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계속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고 또 종전까지중국을 방문했던 외국 저명인사들은 으례 등을 예방했다. 다시 말해 외국귀빈들과 만남으로써 그는 중국의 막후 최고실권자임을 간접적으로 과시했고 이같은 자리를 빌려 중국의 주요 정책방향을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던 것이다. 관측통들은 등이 16일동안 계속되는 아시안게임기간중 모든 귀빈들을 만나기에는 86세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시안게임 이후 곧 개최될 제13기 중앙위원회 7차전체회의(7중전회)를 앞두고 최근들어 진운 중앙고문위 주임을 비롯한 강경보수파들이 개혁세력에 대한 공격을 강화함에 따라 등이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됐고 이러한 상황에서 몸을 사리느라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더욱 중대한 이유로 꼽히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진운등 강경보수원로들은 급진적인 개방ㆍ개혁을 경고하는 의미깊은 정치적 발언을 했고 등이 후계자로 정한 강택민 당총서기가 제3세대의 진정한 영도자 노릇을 하기 힘들다고 평가,등의 권위를 깍아내리는 자세를 보였다. 또 전국정협주석 이선념도 파키스탄 대통령과 얼마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제3세대 영도자는 강택민 당총서기와 이붕총리 등이다』라고 공언,평소 『앞으로 중국은 강을 최고 정점으로 한 새로운 영도계층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등에게 도전하는 기미를 보였다. 이와 함께 진운의 직계로 알려지고 있는 이붕도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일본대표단과 만나 강이 제3세대의 유일한 최고영도자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비췄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측통들은 현재 중국지도층 가운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강경보수파들이 등의 개방ㆍ개혁에 맞서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면서 정치적 기반이 약한 강을 점차 소외시키는 전략을 취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사담 후세인 압정내막 낱낱이 폭로(세계의 사회면)

    ◎「공포의 공화국」 유럽서 불티/“사담,범아랍권 지배를 갈망… 전쟁이 필요한 인물”/사찰ㆍ처형 밥먹듯… 정적은 아예 씨말려/자치요구 소수족 6천명 독가스 살해 「겁없는 사내」로 통하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겁나게 하는 책이 있다. 「공포의 공화국」이 바로 그책. 런던에 체류하고 있는 이라크의 망명학자 사미르 알 할리가 지어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후세인의 집권과정과 폭정의 내막을 낱낱이 폭로,바그다드로부터 저자에 대한 암살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저자는 보복이 두려워 공개석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책의 출판도 전화와 우편연락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름도 물론 가명을 사용했다. 페르시아만 사태 이후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이 책속에 나타난 후세인과 그의 압정의 실상을 간추려 소개한다. 바그다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유혈속에서 생을 마친다. 소위 「인민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합리화 된다. 주요건물의 옥내외 기념물,큰 거리 교차로 등지에는요소요소 비밀감시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다. 탄압의 집행자는 비밀경찰이다. 후세인은 집권후인 73년 비밀경찰 조직을 재정비,확대 개편했다. 이라크의 정보조직은 암,에스티크 바라트,무카바라트 등 3개 기구로 나뉘어진다. 그중 암은 종전의 비밀경찰을 현대화한 기구로 국내 사찰을 전담하고 있다. 소련 KGB와 협력협정을 맺고 있는 암은 KGB의 조언에 따라 비밀 탐지기 도청장치 등을 설치 관장하며 KGB등 소련 정보기관 파견요원 교육,소련과 국교가 없는 나라에 대한 첩보활동을 맡고 있다. 에스티크 바라트는 망명 이라크인의 추적 감시,외국군사 정보탐지,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지중해 연안국가들에 대한 정보수집 등 대외적인 첩보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무카 바라트는 정치사찰 담당기구이다. 이라크에서는 이들 정보사찰기구들에 의한 고문이 긴급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설명되고 있다. 직장에서 혹은 밤중에 자택에서 연행되어 간 사람이 몇주 또는 몇달뒤에서야 가족에게 사망사실이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시신은 육안으로 분간하기조차힘들다. 「소사」또는 「익사」라는 간단한 공의의 사망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을 뿐이다. 밀고는 나라 어느 구석에서나 의무처럼 행하여지고 있으며 정보원은 자기 친구나 동료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도 한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집권층을 욕하는 말은 반드시 수집,보고되게 마련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라크에서 3백50명의 사상범이 사형당했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또다른 기구에서는 7백89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확인할 길은 없다. 얼마전에는 40명의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식중독」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이는 식중독이 아니고 생선속에 투입된 극약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 이것이 비밀경찰의 수법이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총리,군사령관,혁명위원회 위원장,집권 바트당 제1서기,문맹퇴치위원회 의장 등 그에게 붙여진 직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라디오에서는 한시간에 30분 이상,그러니까 2분에 한차례 꼴로 그의 이름이 직함과 함께 흘러나오곤 한다. 그는 「암흑속에 빛나는 큰 별」이며 「위대한 인민의 영도자」로 추앙된다. 그의 생일은 국경일로 정해져 온 국민이 경축토록 강요당한다. 젊은 나이에 정치적 암살극의 주동인물로 등장한 후세인은 68년 바트당의 쿠데타에 참여,혁명위 부위원장이 됐으며 79년 아메드 하산 알 바크르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최고의 실권자가 됐다. 그의 잔혹성은 이란과의 전쟁때 코람샤 전투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군장교 3백여명을 처형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스스로 사형집행의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집권과정에서도 숱한 고문과 숙청을 자행했으며 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건 제거하고야 만다. 특히 쿠르드족에 대한 그의 학대는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날 이라크는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쿠르디스탄지방에 독가스 폭격을 가해 사흘만에 6천명을 살해했다. 이같은 공격은 석달동안이나 지속됐고 그로인한 사상자는 숫자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의 탄압은 후세인의 영원한 명령이다. 74년에는 인구 2만5천명의 자코마을과 2만명의 칼라 알 디자마을을 없애버렸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산으로 도망했고 그들의 도피생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지도이념 즉 바트당의 노선은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혼합한 것이며 절대지배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역사마저도 사실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서 기술되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바트당의 범아랍권 지배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같은 그의 오랜 꿈은 실현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그에게는 전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전쟁이든 간에.
  • 포연속에 사라진 중동 평화구도/유정렬 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보고… ①이라크 혁명평의회는 『쿠웨이트의 혁명세력이 알 사바 국왕정부를 전복했으며 이 혁명세력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진입시켰다. 이라크군은 사태정상화 여부에 따라 수일 또는 수준안에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이 명분하에 지난 2일 새벽에 탱크 3백50대를 앞세운 14개 사단을 투입해서 수시간내에 쿠웨이트의 주요 정부청사와 왕궁을 점령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쿠웨이트 자유임시정부」로 알려진 새 정부의 영도자가 알 사바 국왕의 가족중의 한사람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란­이라크전 악몽에 이란­이라크 전쟁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의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한 저명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는 「1984」에 미소간의 제3차 세계대전이 이 페르시아만에서 「석유」를 애워싸고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1979년에 한 적도 있으니,이 지역은 전쟁의 화산이 아닐 수 없다. 이 학자는 1984년을 1914년에 흥미롭게 비교하였다. 이번 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당사국과 주변 아랍국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면 지난달 17일과 18일에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과잉생산으로 원유가를 하락시키고 있으며 쿠웨이트가 국경분쟁지역에서 24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채굴해 갔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쿠웨이트는 이에 맞서 지난달 20일에 이라크의 비난은 이란­이라크전비의 채권국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중재에 나선 이집트의 무바라크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쿠웨이트 분쟁해결 회담개최계획을 7월24일에 발표하였다.(분쟁 발발후에 무바라크대통령이 이라크방문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따고 한다. 이 분쟁해결에 가장 유력한 입장에 있는 아랍국가는 이집트이다) 지난달 26일에는 제네바에서 OPEC 석유장관회의가 개최되어 유가인상에 합의했는데 이때 이라크의 강력한 주장이 작용됐었다. 7월31일에는 이라크의 대군이 쿠웨이트국경에 집결되는 가운데 제다에서 양국간의 회담이 개최됐으나 8월2일에 이 회담은 결렬되고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라크,영유권을 주장 ②7월3일의 제다회담을 앞두고 이라크는 국경분쟁지역에서 훔쳐간 원유의 대가로 수십억달러를 쿠웨이트는 변상하고 양국간의 영토분쟁에 관한 추가 회담을 개최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초강경 입장을 표명,이를 쿠웨이트에 강요하였다. 이 양국간의 국경선은 획정되어 있지 않아 과거에도 문제가 되었는데 양국이 오토만제국 치하에 있다 해방되고,또 오늘의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가형성후에도 국경선획정의 필요성을 못느껴 왔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인들이 이 분쟁지역을 드나들면서 석유를 채굴해 갔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이란전 발발후부터 이 지대에서 쿠웨이트의 석유 채굴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하며,1983년까지 계속된 쿠웨이트의이라크에 대한 전비지원으로 문제가 잠복해 있다. 전후에 쿠웨이트의 부채상환 요구가 이라크를 자극한 면도 있다. 1984년에 이라크의 대외채무는 약 60억달러이며 쿠웨이트를 포함한 아랍제국으로부터의 무이자 원조를 포함하면 약 3백억달러에 이르렀다. 쿠웨이트가 독립이후 이라크 역대 정부는 계속 쿠웨이트에 대한이라크의 영유권을 주장해 왔으며 한때는 영국군이,또 한때는 아랍연맹의 이집트·사우디·요르단 및 수단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쿠웨이트 안보를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 1973년에는 이라크군이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군 초소들을 점령한 사건이 있었으며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이라크는 와르바와 부비얀 두 섬에 대한 영유권도 계속 주장하였다. ③이번 이라크의 군사행동의 원인중의 하나는 국경문제 해결을 통한 세력확장이라는 정치적인 욕심이라고 본다.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의 종언이 몰고 온 이란­이라크전쟁도 사트 알 아랍수로의 영유권문제가 근인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이번의 쿠웨이트 침공도 설명될 수 있다. 팔레비의 몰락으로 사라진 페르시아만 지역의 패권의 재형성 과정의 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다른 원인은 경제·재정적인 문제로 수백억에 달하는 대외채무와 전후복구에 필요한 재원조달과 경제난 해소이다. 이라크는 연초에 배럴당 20달러이었던 유가가 6월말 13달러60센트로 하락한 책임을 쿠웨이트에 돌리고 있으며,전비로쿠웨이트에 진 채무는 약 2백억달러에 이른다. 쿠웨이트는 이 채권을 포기할 의사를 밝히면서 국경분쟁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지난주 OPEC회의도 이라크의 압력을 받아들여 유가를 배럴당 3달러씩 인상시킨 것도 이라크의 재정난 해결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력사용은 자제해야 중요한 것은 페르시아,나아가서는 중동지역의 평화구조의 구축문제이다. 누구를 주축으로 어떤 관계와 질서가 편성 유지되어야 하느냐가 아직도 미궁에 처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GCC)가 있고 또 아랍연맹도 있으며 국제연합도 있어 각기 평화회복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당사자들간의 중재에 의한 정치협상이 시도되어야 되겠다. 무력사용은 자타가 부인하며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우리는 상호존중해야 될 것이다.
  • “김일성에 권좌 이양이란 없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퇴설」 분석

    ◎김정일의 호칭변경은 정치적 위상 부각조치/김일성 생존하는 한 일부승계는 큰 의미 없어 김일성의 은퇴설이 올들어 심심찮게 나도는 가운데 지난 16일 홍콩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또다시 김일성의 조기퇴진설을 들고 나왔으나 대부분의 국내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또는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에서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가시화되리라고 전망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도 불구하고 폐쇄의 담을 더 높이 쌓아가고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고 개방압력 또한 날로 점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이 죽기 전에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아들 김정일에게 주석자리를 넘겨줌으로써 비판의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김정일의 권력관리 능력을 키워 궁극적으로는 세습체계를 더욱 확실히 다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점칠 수 있으나 그 과정이 그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김창순씨(북한문제연구소 이사장)는 『건강이 유지되는 한 김일성은 종신군주로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는 김일성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체제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의 원로그룹 등 측근들이 허용치 않을 것이며 또 신진세력 또한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체제 아래서 개혁정책을 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김정일의 호칭중 「경애하는」 또는 「친애하는」이라는 접두어를 「위대한」이라고 바꾼 것은 그의 정치적 인격을 격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나 「지도자」를 「수령」으로 지칭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사실과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성철교수(경희대)는 『북한정권이 권력이양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김정일의 생일에 맞춰 이같은 조짐을 외부에 시사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과 내부불만을 다른 방향으로 호도하기 위한 선전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등소평의 은퇴에 비유해 김일성의 퇴진을 예측하는 주장 또한 등이 지난해 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를 간과한 성급한생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김일성이 국가주석ㆍ정무원총서기ㆍ당총비서ㆍ당군사위위원장 등 현재 누리고 있는 최고직위중 하나 정도를 조만간 김정일에게 승계할 수는 있지만 이 문제 또한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큰 의미가 없으며 북한권력 내부에 큰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김갑철교수(건국대)는 『현재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방향제시,김정일의 정책수행 형태가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이 후계체제를 바꾸려 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구축되어 있으나 김일성이 자신의 생일인 오는 4월15일 또는 가까운 시일내에 권력승계를 공식화할 조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경제정책의 실패 등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올해안에 노동당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하고 김일성이 나이가 80세가 되고 제3차 경제7개년계획이 끝나는 오는 92년쯤 제7차 당대회가 열릴 것이며 이때 가서야 김일성의 은퇴문제가 보다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일성의 사망 또는 건강악화라는 우발적인 상황발생에 따른 김정일의 전면등장 ▲김일성의 개인숭배에 대한 외부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등소평식의 2선후퇴 등 김일성의 조기퇴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몇가지 예외가 있겠지만 김일성이 살아있으면서 실권을 이양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본사 논평위원인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도 『김일성 사후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의 권력승계 때 일어났었던 전임자의 격하,주변인물에 대한 숙청 등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고 시대적인 흐름인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김일성 스스로 은퇴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이 문제가 단시일내에 급격히 진행되리라는 기대는 성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변화 ▲73년 9월 당중앙 ▲75년 6월 유일한 지도자 ▲83년 2월 영도자 경애하는 지도자 ▲83년 5월 최고사령관 ▲86년 2월 인민의 어버이 ▲87년 5월 위대한 영도자 ▲90년 2월 위대한 지도자
  • 김정일 생일축하 유인물 서울등 4곳서 대량발견/반제청년동맹 명의

    서울을 비롯 광주ㆍ전주ㆍ창원지역의 대학 등에서 15일 북한 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는 유인물과 불온서적 등이 무더기로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날 하오2시30분쯤 동국대 사범대 학민관1층 화장실에서 「민족의 영도자이신 김정일수령님의 48회 탄생일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유인물 20장을 경비원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또 이날 하오3시40분쯤 단국대 학생회관과 고려대 서문에서도 같은내용의 유인물이 각각 발견됐다. 「반제청년 동맹중앙위원회」이름으로 16절지에 타자글씨로 된 이 유인물에는 「김정일수령님의 48회 탄생일을 맞은 남한의 모든 민중은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과 친애하는 김정일수령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북녘동포들과 뜨겁게 상봉할 그날을 꿈꾸며 크나큰 포부와 꿈을불굴의 투지로 다지며 뜻깊은 이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담겨 있었다.
  • “김정일 출생지는 백두산”날조/생일을 계기로 본 우상화의 실상

    ◎75년이래 공휴일로… 쌀ㆍ고기ㆍ소주 “특별배급”/정초부터 경축행사… “위대한 영도자”특집도 오는(16일)은 북한이 「민족의 명절」로 내세우고 있는 김정일의 48회 생일. 북한주민들은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사흘간의 연휴를 보내며 모처럼 술과 고기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지난 74년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했던 북한은 75년 김정일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한데 이어 86년에는 생일 다음날까지 공휴일로 연장했으며 생일인 16일에는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과 정권수립일인 9월9일 등과 마찬가지로 쌀과 고기 소주등이 주민들에게 특별배급된다. 김일성부자의 세습체제확립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북한은 동구권의 개혁과 소련공산당의 권력독점폐지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도 아랑곳 없이 올해도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연초부터 각종행사를 잇따라 개최하는등 김정일 우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90년대 벽두인 지난 1월5일 중앙방송 논설프로그램에서 『오늘 우리당의 혈통은 당건설과 혁명위업을 완성해나가는 보람찬 투쟁속에서 김정일동지의 세련된 영도에 의해 빛나게 고수되고 발전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방송매체를 통해 김정일 우상화를 위한 특집시리즈물을 내보내는가 하면 연초부터 그의 생일날 주민들에게 지급할 당과류 술 고기 학용품 등의 생산을 독려해 왔으며 각 도단위의 기념경축공연 예술경연대회 「백두산 상체육대회」「정일봉달리기」등 갖가지 경축행사를 펼쳐 왔다. 특히 중앙방송은 이달들어 「지ㆍ인ㆍ용을 겸비한 위대한 영도자」라는 특집시리즈물을 통해 『김정일동지를 후계자로 모신것은 민족의 대행운』이라고 강변하면서 김정일을 「김일성의 인품과 덕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절세의 위인」「현세와 내세를 밝혀주는 찬란한 향도」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한은 또 주민조직망별로 「2월의 명절을 빛나게 맞이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인민의 지도자」「지도자의 품」「아! 정일봉」등 김정일우상도서에 대한 독서회와 「언제나 향도의 별과함께」「친애하는 지도자 고맙습니다」등 개인찬양 노래모임을 개최해오고 있다. 북한은 또 해외의 친북인사를 동원,김정일의 「위대성과 영도력」을 찬양케해 마치 그가 해외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인양 선전하고 있는데 해외친북인사들이 보내온 「축전」「축하편지」등을 주민들에게 보급,이를 암송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부주석 이종옥,당비서 박남기,최고인민회의의장 양형섭등 고위간부들이 참가한 김정일 문헌연구토론회가 지난달 18일 평양에서 개최된 것을 비롯해 도별 연구토론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있으며 청소년학생들이 참가하는 정일봉달리기는 지난 11일 청진시를 시작으로 개막됐다. 북한은 최근 신문ㆍ방송등 선전매체를 총동원,80년대에 이룩한 정치ㆍ경제등 모든 분야의 성과를 김정일의 「영도」로 치켜세우고 있는데 올해는 김정일이 80년 제6차 노동당전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선임된지 10년이되는 해이고 제7차 전당대회가 가을에 개최된다는 점에서 이같은 김정일 우상화작업은 「김일성의 수렴청정」설과 함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정일은 현재 최고정책결정기구인 당정치국회의를 김일성과 번갈아 주재할 정도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외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사실과 달리 조작되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본래 1940년 2월16일 소련의 원동지방인 오케얀스카야에서 태어났으나 북한은 그의 출생지를 혁명의 성산이라고 일컫는 백두산 밀영으로 조작,김정일의 「혁명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82년 김일성의 70회생일을 계기로 출생연도까지 42년으로 고쳤다는 것.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은 40∼41년도에는 소련 및 만주지방에서 생활했다. 북한은 지난 87년2월 백두산 와사봉 수림지구에 백두산 밀영을 조성하고 이곳에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귀틀집을 지어놓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참관시키고 있는데 지난 3년동안 50만명의 주민이 참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김일성왕조 멸망은 시간문제”/영 카터교수,파이낸셜타임스 기고

    ◎루마니아사태는 평양정권에 대한 경종/붕괴는 필연적… 「언제 어떻게」가 주목거리 영국 리즈대학의 국제정치학교수인 아이단 포스터 카터씨는 29일 동독과 루마니아에서의 혁명적 변화가 북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북한 공산정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김일성에 대한 동구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내다보았다. 포스터 카터교수는 리즈대학에서 한국문제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중국내에서도 국제정치와 한국관계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포스터 카터 교수의 기고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동구에서의 공산주의 붕괴는 여타 지역에서도 이것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일성이 45년간이나 통치해 온 북한만큼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 일어난 여러가지 결정적인 사건중에서도 특히 동독과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일들은 북한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베를린장벽이 철거됨에따라 양독간의 통일은 소원의 차원에서 정치의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상황과 독일을 비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남북의 분할이 1945년 연합군에 의해 잠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독일이 패전국이었던 반면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얻은 입장이었다. 차이는 있지만 독일에서의 변화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 2천명 가운데 일부는 지난번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한국은 하나」라고 쓴 깃발을 치켜 올렸으며 북한 학생 2명은 서울로 탈출하기 위해 동베를린에서 서쪽으로 넘어오기도 했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해 동독처럼 개방할 것을 요구하자 북한의 김일성은 완전한 자유왕래와 교류 제의로 응수하여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조건을 붙였다. 하나는 남측이 먼저 휴전선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남측은 그런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또 하나는 남한의 정치단체들과 이런 문제들을 토의하자고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암암리에 남한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하나 한국과 독일과의 큰 차이점은 바로 이러한 수사들이다. 베를린 공수작전과 베를린장벽 등 분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은 일종의 공존공생 방식을 누려왔다. 양독 정부는 대화의 채널을 유지해 왔으며 일반 시민들은 편지ㆍ전화ㆍ상호방문을 통하여 또는 단순히 서로의 TV를 시청함으로써 접촉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동서냉전이 열전으로 돌변한 곳은 베를린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었다. 지금에 와서 역사학자들은 한국 전쟁을 김일성의 도박이라고 보고있지만 당시에는 국제공산주의의 진군으로 여겨졌다. 수백만의 한국인이 죽었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으며 적대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에는 아직 평화조약은 없고 서로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하거나 찾아갈 수도 없다. 한국인들은 한세대가 넘도록 상대편에 있는 친족이나 친척과의 접촉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남한은 월등한 경제력과외교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벌수 있는 여유가 있으나 문제투성이인 북한은 그렇치가 못하다. 북의 경제는 아주 오랫동안 활력을 잃어버렸으며 20여년간이나 침체 상태를 계속해 왔기 때문에 언필칭 「위대한 영도자」도 시인하고 있는 소비재의 부족을 비롯하여 통제 경제가 빚어내기 마련인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게 되었다. 김일성은 이제 그가 딛고 서 있던 외교적 기반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헝가리 폴란드 유고 등 동구 3개국이 현재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체코도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소련까지도 남한과의 경제적 유대를 확대해 가고 있다. 여기에 대해 북한의 대응은 복합적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 문제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면서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에서의 새 정권 탄생을 보도하고 축하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서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할 때마다 사회주의 배신자라는 등 갖은 비난과 험구를 퍼붓고 있다(특히 체코의 하벨대통령은 김일성의 축하편지를 받고 분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과연 루마니아가 간 길을 갈 것인가.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구조적으로도 두 나라는 비슷하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차우셰스쿠나 김일성이나 모두 무자비한 공업화로 밀어붙였다. 그들은 또 경제통계를 조작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두사람 모두 공산당원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살아가기 위해서 당원증을 갖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 결과로 최상층에서는 족벌주의가 횡행하고 사회 모든 계층이 부패했다. 북한도 루마니아와 똑같은 비밀경찰제도를 갖고 있다. 즉 김일성에게는 무한히 충성하는 대신 다른것은 증오하도록 길러진 전쟁 고아들로서 특별부대를 만든것이다. 루마니아사태는 김일성에게 경종을 울렸음이 분명하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유혈 참극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구정권은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따라서 지금은 북한 정권이 멸망할 것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망하느냐가 문제라고 하겠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서서히 사라지는 공화국」이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망하는 김일성정권」이라고나 할까.〈런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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