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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金위원장이 중국에 간 까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신변상의 문제로 외국방문을 꺼리는 김정일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중국을 방문한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하고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방중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조지 W.부시의 새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북·중간의 공조와 의견 조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북한으로서는공화당 정부의 등장이 대북 온건정책에서 강경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에서 북·중간의 정책공조와 의견 조정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이미 예정된 일정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번 그의 방문 경로가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의 루트와 동일하다는 점이다.당시 김영남은 먼저 북경에들러 장쩌민,주룽지,리펑 등 중국의 주요 영도자들과 환담하고,중국의 제2개혁의 핵심지역인 상하이 푸둥(浦東)지구와 농촌 개혁의 시범지역을 방문했다.이번에 김위원장은 상하이 푸둥지구와 중국 정보기술(IT) 단지인 쑤저우를 방문하고,베이징으로 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김영남의 방중 일정은 김정일의 개혁개방지역 시찰을 위한사전답사의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고,그 내부적 조치가 연초에 나온 김정일의 ‘신사고’ 강조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정책은상당히 많은 준비를 거쳐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정일의 방중에서 지적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북·중관계가 한·중수교 이전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그것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가장 먼저 중국에 전달한 점,1999년 6월 남북차관급회담 직전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중,그리고 남북정상회담직전 김정일의 방중을 통해 북한이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 김정일의 방중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이루어졌으며,그것은 북한과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신(新)북방삼각관계의 복원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단지 새로운 북방삼각관계는 과거 이데올로기와 군사적측면을 넘어선 경제와 국제관계 등 다차원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김정일의 서울 답방 직전에 한국정부가 갖는부시 행정부와의 ‘유대(紐帶)의 한계’를 간파한 북한이 중국의 양해하에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 중심으로 몰고가 미국과의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다.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질서는 더욱 복잡하게 진전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은 외교력을 한층 더 발휘해야 하는어려운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 한국의 향후 외교는 우선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를 과거 민주당 정권때보다도 더 긴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정부는 최근 미국 민주당정권의 8년 집권 동안 지나치게 행정부와의 관계개선에만 주력하지않았나 하는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미국의 정책은 행정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의회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더욱이언론과 국민여론에 충실한 과정에서 추진되고 있다.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균형적인 대미 정책을 추진하여야하는 것은 물론 한·미공조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남북한이 중심이 되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정부의 햇볕정책에서도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지지를 확보해 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미국은 물론 중국,일본,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김정일의 서울 답방의 성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속빈 강정이 아닌 가득찬 석류의 열매를 보여줄 때 국민들의 지지는 물론 주변국들도 한반도와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일에 더욱 진지한 자세로 임할 것이다. 김승채 고려대 평화硏 책임연구원
  • [대한광장] 시대착오적 발상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류를 타던 남북관계가 2일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 이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9일이 북한 정권수립일인 관계로내부 행사준비에 바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남북관계 급진전에 따른 내부 조정작업에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어쨌든 남과북은 최고지도자들 간의 통치권 차원의 협상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냈고,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 등 가시적성과를 남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줬다.이제부터는 통치권 차원에서 마련한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제도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남북한 모두 국내 정치적 변수들을 고려하면서법적·제도적 정비를 해나가야 안정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이룩할 수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영도자가 결단을 내리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일체제이다.그러나 북한지도부는 급속한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군부의우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북한이 남북간 ‘적대적 의존관계’ 틀을 깨고 상호의존적인 남북화해·협력정책으로 노선을 수정한 것은 내부적·사상이론적 조정없이 민족대단결론에 따른 것이다.앞으로 북한이 자본주의체제인 남한과 경협 등을 활발히 추진하기위해서는 사상이론적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지도부가 지난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주체노선을 수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북측이 안심하고 사상이론적 조정을 할 수 있는 환경과여건을 남측이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국내사정은 매우 혼란스럽다.여야는 의료분쟁 등 많은 민생현안을 뒤로 한 채 장외에서 사생결단의 대립·투쟁을 하고 있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수호 국민총궐기대회’란 이름으로 ‘김정일-김대중 규탄대회와 서명운동’을 전개할것이라고 한다.김대중 정부의 임기 전반기 국정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86.7%의 국민들이 대북정책을 ‘잘했다’(조선일보·한국갤럽 공동여론조사,8월25일)고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야당과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많은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한나라당은 국정평가백서를 통해 “임기내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한나머지 국내정치가 북한에 인질로 잡혀서는 안될 것”이라고 충고했다.김영삼 전대통령은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간 김대중씨 때문에 한국의 대혼란 시대가 목전에 닥쳐오고 있다”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다.“경의선을 잇고 도로를 새로 만들면 서울은 불과 5시간 내에 무혈 점령된다”고 경고하는 인사도 있다.아직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구축이 안된 상태에서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안보에대한 우려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그러나 탈냉전이라는 시대변화와 남북간 국력격차 등을 무시한채 지나친 북한의 대남 위협강조와 북한·통일문제의 정치적·정파적 이용은 자제돼야 할 것이다. 과거 남북한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틀속에서 서로 상대방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내부권력을 강화하기도 했고,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인정했듯이 남북한의 과거 정권들은 통일문제를정치적으로 활용한것이 사실이다.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당국은 적대적 의존관계를 정권강화에 이용하지 않고 화해·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남북간에도 청산하려고 하는 적대적 의존관계의 틀을 국내정치에서는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지난 40여년간 지속돼온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간의 적대적 의존관계가 그것이다.김영삼전대통령의 퇴임 이후 권력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3김시대는 서서히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김 전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면서 김대중-김영삼 양김간 적대적 의존관계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 김 전대통령의 ‘반 김정일-김대중 규탄대회’ 준비는 반 김대중 정서와 남북간 적대적 의존관계를 활용해 자기세력을 결집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면키 어렵다.남북 간에도 청산하려고 하고 있는 적대적 의존관계 틀과 냉전의 관성을 활용해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고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 [대한광장] 민족의 ‘혈맥’ 다시 잇기

    남북정상이 만나 남북 관계의 기본틀에 관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한 이후남북 간에는 활발한 접촉과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남북 당국자들이 만나기만 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공동선언을 잘 이행하여 민족 앞에 실질적 결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6·15 남북공동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일 뿐 실천하지 않으면 ‘빈 종잇장’에 불과하게 된다.따라서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분야별·수준별 실무회담을 열어 현안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또한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은 정상회담의 정례화를통해서 남북정상들이 추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당국간 대화가 1992년 5월 고위급회담 이후 8년2개월만에 서울에서 열렸다.제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공동선언을 이행하기위한 6개항의 당면사항을 공동보도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공동보도문 제1항에서 남과 북은 장관급회담의 운영원칙으로 첫째 공동이익 추구, 둘째 쉬운문제부터 해결, 셋째 실천 중시 및 평화와 통일지향 등에 합의했다.남과 북이 합의한 이러한 회담 운영원칙은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기능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남측은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교류·협력을 해나가면서 점차 정치·군사적인 문제해결로 나아가는 기능주의 통합론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풀어가고자 했다.이에 비해서 북측은 이른바 ‘근본문제’인 정치·군사적인 문제부터 풀면 기타 문제들은 자동적으로 풀린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그러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측은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남과 북이 당장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추진하자는 데 합의했다.북측은 ‘영도자’가 통일사업에 나선 이상 인민대중들에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남측과 합의가능한 분야부터 접근하면서 남북 당국간 대화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자세를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동보도문에서 합의한 실천사업으로 주목을 끄는 사업은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업무 재개와 경의선 철도 연결사업이다.이 두 가지 실천사업은 그동안 단절됐던 민족의 ‘혈맥’을 잇는 사업이다.남한당국 배제정책의 상징적표시로 지난 1996년 11월에 북측이 일방적으로 폐쇄했던 연락사무소 기능을정상화하는 것은 남북간 정치적 혈맥을 잇는 것이다.그리고 경의선 철도의연결은 민족경제의 대동맥을 잇는 사업이다.경의선 철도의 연결은 남측의 물류비용 절감과 북측 통과운임 수입 획득 및 남북간 인적·물적교류를 증진하여 민족공동번영을 이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손잡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철의 실크로드’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중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한 민족이고 공동운명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입각하여 민족의 혈맥을 이어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을 통일문제의 본질로 규정해왔다.이념적 목적지향은 서로 다르지만 남북한의 두 지도자는 한반도가 하나의 공동운명체 또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점에 동의하고 있다. 남과 북은 지난 반세기 이상 분단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다.그렇다고 시대착오적인 대립·갈등을 지속할 수도 없다.따라서 거부반응이 적게 나타나는 분야부터 끊어진 혈맥을하나하나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따라서 당초 우리측이 기대했던 군사핫라인 설치 및 군사공동위원회 설치 등 긴장완화 조치는 다음 회담에서 점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남북간 끊어진 혈맥을 잇게 되면 ‘빈사상태’에 빠진 북한경제에 ‘긴급수혈’을 해야 할 것이다.남측이 남북공동선언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남북간 경제력 격차 등을 고려해볼 때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초기에는 ‘시혜성’ 남북경협이 불가피할 것이다.그러나 장기적인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확대하면서 ‘호혜적’ 남북경협사업을 발굴하여 민족경제공동체를 건설해나가야 할 것이다.끝으로 이번 8·15를 계기로 우리 민족은 냉전의 관성(慣性)에서 벗어나 남북간·남남간·민단과 총련간에 진정한 민족화해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 [新 김정일 연구](11)통치기반 확대

    ‘인민의 어버이’-.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을 먹여살리고 보살펴주는 자상한 ‘어버이’이다.‘장군님’으로 불리는 그는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충성을 받고 있으며 ‘위대한 영도자'로 통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통치는 인민대중속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인민들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선심을 쏟으면서 소박하고 근면한 지도자로 다가가고 있다.그가입버릇처럼 내세우는 말도 ‘인민을 위해서’이고 인민을 하늘처럼 받든다는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말도 즐겨 앞세운다.김 위원장이 정립했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그는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이고 인민은 그를 받드는 ‘대중’이다. 김 위원장은 자상한 배려로 인민들을 곧잘 감복시킨다.그의 이같은 자세는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정중히 접대하는 과정에서도 잘 나타났다.북한 신문이나 방송엔 그의 이같은 지도자로서의 풍모를 선전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자주 소개된다. 지난 96년 11월24일 새벽.판문점 시찰에 나선 김 위원장은 시간이 너무 일러개성시 인근에서 차를 멈추고 무려 2시간 동안이나 한지에서 기다렸다. 새벽단잠에 빠져있을 병사들을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는 김 위원장이 병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방송에 자주 나온다. 김 위원장은 소탈한 옷차림에 재담과 편안한 분위기 조성 등으로 인민들의마음을 사로잡는 장기가 있다.또 생일상 차려주기,각종 훈장 및 표창 주기,친필서한 보내기,‘감사’ 전달,인민들과의 사진촬영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인민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들어서도 실리 중시를 앞세우고 현지지도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대중속으로 파고들고 있다.현지지도란 군부대,공장,사업현장,마을 등에 직접 찾아가 지도하는 것으로 김 부자가 즐겨사용하는 현장통치방법이다. 올들어서만 30회에 가까운 공개활동 가운데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북한 선전매체들은 그가 쪽잠(잠깐 눈을 붙이는 것)과 줴기밥(주먹밥)으로 분과 초를 쪼개가며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에 나서고 있다고 선전한다.소탈함과 자상한 배려로 상대를 감복시키고 부지런한 김 위원장의 자세는인민들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지와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그러나 이는 오래전부터 그의 몸에 배어온것이기도 하지만 인민들을 다스리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행동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또 인민생활에 기본적인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통치기반에 가장 큰 취약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이와함께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가한 정상회담쇼크를 어떻게 추슬러나가느냐는 것도 김 위원장이 풀어나가야 할 통치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新 김정일 연구](10)권력기반 강화

    “그건 장군님 결심 여하에 달려있습니다”“이건 위원장님께 건의하십시오”지난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 수행원들이나 기자들은 중요 사안에 대한건의나 질문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이러한 답변을 자주 들어야 했다.이처럼북한에선 모든 결정은 ‘장군님’인 김위원장으로부터 나오고 그의 명령은지상 명령이다.‘장군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은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명실상부한 최고통치자로 절대권력을행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그가 지난달 14일 만찬장에서 군최고핵심실세 6명에 대해 남한의 최고통수권자인 김대중대통령에게 술을 권하도록 ‘지시’하는 모습은 군에 대한 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광경이었다. 김위원장이 절대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아버지인 김일성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세습받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김위원장은그 자리를 확실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무려 30여년에 걸친 후계통치수업을 통해 터득한 노련한통치술로 아버지에비해 떨어지는 카리스마를 보강해 절대적 권위를 가진 ‘위대한 영도자’가된 것이다.김위원장의 통치술은 당정군(黨政軍)간부들을 탁월한 용인술과 장악력으로 휘어잡으면서 인민대중들에겐 자상함과 환심사기로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스타일이다.그의 용인술의 요체는 한번 자기 사람이 되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념·사상면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웬만한 잘못은 질책으로 끝내고 정도가 심한 경우에도 이른바 ‘혁명화’과정을 통해 다시 받아들인다.정상회담 때 김위원장의 지근거리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김용순 당비서(대남담당)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김위원장의 측근중심통치나 그가 김주석 6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을 때 당정 수뇌부를 대동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군부 수뇌부만을 데리고 간 것도 용인술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의 용인술에 대해 김주석도 “사람 다루는 솜씨는 오히려 나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 일이 있다. 김위원장의 장악력 역시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자신이 당의 핵심요직을 차지,먼저 당을 손안에 넣은 뒤 분할통치 및 검열 등을 통해 군과 정부기구를 완전 장악해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했다.특히 분할통치는 권력의 누수나 도전을 방지하면서 핵심기관 간부들의 충성경쟁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위원장은 이와 함께 광폭정치,인덕정치를 내세운 파격적이고 과시적인 스타일로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자신의 모자라는 카리스마를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또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잦은 현지지도를 통해 당군은 물론 정부업무 전반에 관해 소상히 파악함으로써 업무면에서도 절대적인 지도력을 발휘했다. 김위원장은 지난번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그는 이어 추후에 있을 서울답방을 그의 통치기반 확대와 그의부족한 카리스마 보강에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나아가 그가부르짖어온 ‘광폭정치’의 대상지역을 북한에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시켜북한인민들에게 ‘통 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선전무대로 이용할 공산이 크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대한광장]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과제

    정상회담은 분쟁 당사국간에 현안을 일시에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대화방식이다.아무리 어렵고 해묵은 분쟁이라고 하더라도 분쟁 당사국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쌍방간의 신뢰조성과 분쟁해결의 극적인 전기를 마련한 전례는 많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도 남북한의 최고당국자 간의 회담이 남북간 현안 해결에 가장 효율적인 회담방식이란 점이 입증됐다. 남한사회의 경우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당-국가체제이다. 북한사회는 무오류성이 보장된 ‘당의 중앙인 영도자(김정일 총비서)’가 결정하면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유일체제’이다.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남북공동선언에 서명했다는 것은 합의문 이행에 대한 일종의 자기 구속력을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남북 간의 첫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통일로 가는 마스터플랜은 마련됐다. 앞으로는 합의 이후 실천 과정상에 나타날 수 있는 과제를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 합의 후불이행’으로 점철해왔던 과거의 악습을 버리고 합의사항을 잘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남북정상이 민족 앞에 엄숙히 선언한 약속이기에 불이행의 책임을어느 누구에게 미룰 수 없다.남북한 당국은 이번 합의사항을 반드시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한반도 분단은 내쟁형과 국제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따라서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도불구하고 남북한 당사자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한반도는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역이다.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구도를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세력각축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 한반도정책은 통일한국으로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한반도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이해상충으로 ‘2+4회담(6자회담)’ 등으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따라서 남북한 당사자 구도를 정착시키면서 외세가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통일외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밖에 남북 통일방안에 대한 공통성 인정을 계기로 목적 지향이 다른 남북한의 통일방안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통해서 집권한 김대중정부는 출범 이후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연방제에 대한 ‘오해’ 때문에 지난번 대선에서는‘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지않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김영삼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현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이다.그러나 실질적인 대북·통일정책은 ‘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에 따라 현재 첫 단계인 남북연합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우리 정부는 통일방안을 둘러싼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번기회에 통일방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남북관계의 진전에따라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신중히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방안과 관련한 합의를 이룬 것을 계기로 통일논의의‘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분단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통일은 ‘방안’을 통해서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통일방안이 없어서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다.따라서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 새로운통일방안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안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통일을 위한전략적 사고이다. 高 有 煥 동국대교수·북한학
  • [新 김정일 연구](1)총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한사람의 세계적인 평화통일지도자와 또 한사람의“스타”가 탄생했다.평화통일지도자는 우리의 김대중대통령이고 어느날갑자기 스타가 된 사람은 바로 북한의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이다.그동안 신비의 인물로 치부돼온 김정일이 베일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김정일도 이번 회담을 통해 통일지도자로 변신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통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 약 33년간의 통치수업,국방위원장에 취임한 93년부터 아버지인 김일성과 함께 해온 분담통치, 94년7월8일 김일성의 타계 이후 3년간 유훈통치,97년 10월 당총비서 추대에이어 98년 9월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이후 40년만의 대변신인 것이다. 우리의 김대중대통령이 61년 강원 인제지구에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음을감안할 때 정치적으로는 김대통령이 훨씬 선배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김정일도 60년대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후계수업을 받은 만큼 통치술에서는대단한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광폭정치,인덕정치를 내세우며 북한을 다스려온 김정일이 이번 역사적인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김대통령이 평양공항에 도착한 13일부터 귀환한 15일까지 김정일은 온 세계 뉴스의 각광을 받았다.텔레비전을 통해 비친 그의 여유있는 웃음,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언행과 제스처는 우리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있을 정도이다.실체적 진실과는 관계없이 이제까지 우리 국민들사이에 각인돼온 김정일의 이미지하고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올해초 김대중대통령은외신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에 대해 지도자로서 판단력과 상당한 식견을 갖춘지도자로 평가한 바 있는 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통령의 평가가 옳았음을 입증한 셈이다. 김정일은 이번에 협상에서 통큰 지도자임을 과시하며 유연함과 치밀한 계산,그리고 상황에 따라 실리를 챙기는 변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김정일은 지난 14일 김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 앞선 환담과정에서 실향민,탈북자,한국식 김치등 북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표현들을 거침없이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특히 탈북자라는 단어를 그가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면서도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에서 했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정일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획기적인 변신을 보인 것은 남북통일방안에대한 공통성을 인정한 것이다.북한은 회담 하루 전인 지난 12일자 노동신문정론을 통해 김정일의 정치철학이자 통일철학은 “자주”라고 못박았으며 통일지도자라며 대대적인 선전을 폈다.김정일은 그동안 조국통일 3대원칙,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등 3가지를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반드시 우리대에 통일위업을 이룩하자고 강조해왔다.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4·8합의문에 김일성주석이 제시했다는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을 명기함으로써 이번 정상회담 의제에 3대원칙을 포함시킨데서 김정일이 이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그러나 김정일이 지난달 29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 1국2체제의 통일방안에대해 관심을 표명한것을 눈여겨 볼 대목이다.특히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단계로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연합[연방]정부가 아니라 지금처럼 남북이 별도로 갖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획기적인일이다. 역사적인 이번 회담을 통해 김정일에 대한 재평가가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김정일이김대통령과의 환담에서 자기를 낮추고 예의를 지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하는 말 가운데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한 점과 모든 것이 계산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조선노동당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며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당과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직함보다는 “장군님”이라는 호칭 사용을 선호하는 김정일이 앞으로이번 합의사항을 얼마나 충실이 이행하느냐에 따라 그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金대통령 北韓 방문 평양TV서 첫 보도

    북한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일행의 평양 방문을 13일 오후 5시 평양TV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보도에서 김 대통령 일행의 평양 순안공항 도착 장면을 비교적상세히 보도하면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 일행을직접 맞이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앞서 남북정상회담이 12일에서 13일로 연기된 데 대해서는 보도하지않았다.
  • 북한 한문교육 강화 눈길

    북한이 한문교육을 강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글전용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고등중학교 1년(남한의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부터 대학교까지 한문을 필수과목으로 지정,3,000여자의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96년 북한의 고등중학교 교육과정에서 한문이 차지하는 시간은 모두 257시간으로 ‘현행 당정책’(77시간),‘공산주의 도덕’(185시간),‘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 혁명활동’(210시간) 등 체제교육보다 더 많이 할애하고있다.고등중학교에서 배우는 한자의 수도 68년 1,475자에서 95년에는 1,523자로 늘어났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진재교(陳在敎)교수는 최근 ‘북한의 한문정책과 한문교육’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북한은 1948년부터 문맹 퇴치,봉건주의 잔재 청산 등의 명분을 들어 한자를폐지하고 국문전용정책을 추진해 왔다.그러나 54년부터 정규 교육에 한문을포함시켰다. 순 한글로만 우리 말을 가르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 교수의 설명이다.김일성(金日成)주석이 통일이후를 대비해한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활성화에 기여했다.진 교수에 따르면 김 주석은 “한문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조국이 통일되면 남반부에서 발행된신문·잡지들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도 김 주석의 정책을 이어받아 “우리 말을 옳게다듬어 쓰자고 해도 한문을 알아야 하며,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자고 해도한문을 알아야 한다.한문 공부를 잘하는 것은 조국 통일을 위해서도 절실히필요하다”고 한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한문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학 등 다른 교과와 체제와 이념에 대한 글 등에 한자 용어를 사용하고 우리 민족의 고전 작품도 교과서에 싣고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한만길(韓萬桔)박사는 “북한에서는 생활 한자 중심의 한문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통일 이후 문화의 동질성을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
  • 朴前대통령 일생담은 사이버기념관 곧 개설

    “박정희 대통령은 고령 박씨 29대 손(孫)으로‥‥” 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사이버기념관이 곧 개설된다. 경상북도 구미시는 인터넷 상에 ‘박 대통령의 사이버기념관’(http:///presidentpark.kumi.kyongbuk.kr)을 임시 개설하고 마무리작업을 진행중이라고19일 밝혔다.공식 개설은 박 대통령에 관한 학술논문과 자료 등을 보충한 뒤8월 초에 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의 사이버기념관’은 ▲인간 박정희 ▲산을 담은 초가집 ▲저도(猪島)의 추억 ▲지나온 발자취 ▲기념사업 ▲사진여행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 박정희’란에는 박 대통령이 쓴 ‘나의 소년일기’등 어린 시절부터 군인 시절까지의 생애가 위인전 형태로 소개돼 있다.‘저도의 추억’에는박 대통령의 저서와 휘호 등이 수록돼 있으며,‘지나온 발자취’에는 주로박 대통령의 연설문이 실려 있다.‘사진여행’에는 200여장의 관련 사진이게재될 예정이다. 구미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을 재조명하고 기념관을 구미에 유치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면서 “정치색은 최대한 배제하고 인간 박정희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시는 등 민족중흥을 이룩하신 영도자”(인간 박정희 중) 등 박 대통령에 대한 상찬(賞讚 ) 일색이어서 논란도 예상된다. 장택동기자 taecks@
  • 파시즘 怪談/서해성 소설가(굄돌)

    거의 날마다이다시피 신문기사나 광고 글귀에서 제국의 나팔소리가 들려온다.그들은 제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연호한다.시황제에서 카이사르,칭기스칸,나폴레옹,저 에굽의 람세스,하물며 히틀러,박정희,영어공용화론까지,때로 터미네이터라는 괴물은 미래의 영도자 혹은 동양적인 관점에서 좀 억지를 부리자면 미륵불의 형상까지 띠고 출몰하고 있다.인터넷은 이들 사이를 매개하는 제국의 거미줄 역할을 수행해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이들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책이나 영화제목들이다. 옆 뒤 안보고 성장으로만 치닫다 닥친 좌절을 숙주로 하여 언제부터인가 이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시쳇말로 파시즘 괴담이라고 해도 좋을 퇴행적 문화 분위기가 바야흐로 마지못해 근신하던 몸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다.다만 그 방식이 시장에 맡겨진 것일 뿐,이것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종의 딴지걸기가 시작되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비록 곳간이 비었다고는 하나 민주주의 원칙을 구구하게 지켜내는 인내를 귀찮아하는 만큼 파시즘은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피어난다는 것을,사회문화적으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전제의 유혹은 결코 멀리 않다는 뜻이다.언론 등속에서 이들에 대해 여과없이 책읽기를 권하는 일은 장마진 뒤 걸러내지 않은 물을 마시게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해 보이기만 한다. 큰물이 쓸고 지나간 구제금융의 여름 끝물, 저녁상을 물리고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끝내 다 읽지는 못할지라도 서로에게 권할만한 책목록을 한번 만들어보는 일은 어떨까.우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민주화의 노정을 이야기 삼는 것 또한 그에 버금가는 일이리라.참과 정의를 구할진대,도란도란 반짝이는 게 어디 밤하늘의 별빛뿐이랴.
  • 성루 썩고 물새고…/中 천안문 대대적 보수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내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50주년을 앞두고 중국의상징인 베이징시 천안문 성루에 대한 대대적 보수공사가 곧 시작된다. 명나라 영락 15년(1417년)에 세워진 천안문의 원래 이름은 승천문(承天門).두차례 불에 탄 역사가 있으며 청나라 순치(順治) 8년(1651년)에 증축된 뒤천안문으로 이름을 고쳤다.원래는 황성의 정문으로 황제가 대전(大典)을 베풀던 곳이었다. 49년 10월1일 마오쩌뚱(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공산당 영도자들이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선언,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천안문은 그 이후 줄곧 중국의 상징이 됐다.61년 중국 국무원은 천안문을 제1호 중점보호건축물로 선정했다.88년 천안문 성루를 대외에 개방,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중국 고대의 건축물은 석조건물 일변도인 서양과는 달리 돌과 나무를 같이 사용한다.그래서 나무부분이 썩기 쉬운 천안문에 대한 보수사업은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71년9월 성루가 재건된 뒤 제1차 검사에서 일부 목재가 건조해 갈라터지고 어떤도금주(圖金柱·금박이 기둥) 밑부분은 물이 스며들었다.또 어떤 철골은 헐거워지는 등의 현상을 발견했다. 중국정부는 71∼97년의 26년동안 모두 28차례나 천안문을 보수했다. 하지만 현재 나무가 썩고 함수량이 높으며 성루 양측에 빗물이 새는 상황이 발생했다.성대(城臺)에는 상대적으로 소금기가 돋아나 있으며 전원선로(電源線路)가 노화했다.배전·전기시설이 너무 노후화돼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금수교(金水橋),동서화표(東西華表),쌍 돌사자(石獅)상 등 석질(石質)문물을 검측,보수공사의 기본자료를 확보했다. 지금은 국기대(國旗杆)와 기념비에 대한 종합평가에 들어갔다.천안문 성루를 본격적으로 보수하기에 앞서 정지작업이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 5·10 제헌국회총선 의미/徐仲錫 성균관대 교수·사학(특별기고)

    제헌국회총선거가 오는 10일로 50주년을 맞는다.1948년 5월10일 치러진 5·10선거는 분단을 고정화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를 통하여 민주공화국을 탄생케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상 첫 보통선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치열해짐에 따라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 어려워지자 그해 9월 미국은 한국문제를 국제연합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였다.그리하여 국제연합 총회에서는 11월14일 남북 총선거를 통한 한국정부 수립안과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다면 90일 이내에 미소 점령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였다.그러나 예상한대로 소련과 북측은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이 38도선을 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국제연합 소총회에서는 1948년 2월26일 가능한 지역에서만의 선거 실시를 건의하여,미군정에 의하여 5월10일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5·10선거에는 각 정치세력의 폭넓은 참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한국은 그때까지 분단을 경험한 적이 없어 한반도에는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만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통일정부의 수립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좌익은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격렬히 벌였다.金九 金奎植 등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선거는 미소가 획정한 38도선을 국제적으로 합법화시키는 행위이고,따라서 남과 북에 들어서는 정부는 미소의 영향력 아래서 자주성을 갖기가 어렵고,참혹한 동족상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5·10선거를 반대하고,4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선거에 통일운동세력도 참가해 제헌국회에서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다. 曺奉岩과 지방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지만 이 선거에 입후보하였다.金九 金奎植같은 지도자들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기 때문에 해방이 분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또 민족의 대의를 위해서도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국제관계로 분단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이 선거에는 되도록 각 정치세력이 많이 참여하여새 정부에 대한 지지를 폭넓게 할 필요가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承晩·한민당 세력은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출마하는 것에 대하여 민중은 그들의 정체와 야욕을 간파하여야 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그만큼 그들은 편협성 편파성이 강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새 정부와 자유민주주의에 짙게 암영을 드리우는 것이었다. ○전체유권자 75% 투표 5·10선거에서는 만 21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친일파를 제외하고 25세 이상이면 피선거권이 있었다.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졌고,제헌국회였기 때문에 임기는 2년으로 제한하였다. 의원후보자는 선거인 명부 등록자 200인 이상의 서명 날인이 있는 추천장을 첨부하여야 했는데,이 제도는 李承晩이 출마한 동대문구에서 악용되었다.5·10선거에는 8백13만여명의 유권자중 7백84만여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고,그중에 7백48만여명이 투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전체 유권자의 75%가 투표한 것이다.제주도의 두 지역에서는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여 198명이 당선되었다.북측에서 선출할 의원 100명은 공석으로 놔두었다. 이 선거에서는 한민당이 미군정 시기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그러나 개표 결과 한민당 이름으로 나온 후보들은 불과 29명밖에 당선되지 못하였고,李承晩을 영도자로 한 독립촉성국민회의가 55석을 차지하였으며,무소속으로는 85명이 당선되었다.우리나라 선거는 이변이 적지 않은데,바로 첫 번째 선거가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우리선거사상 첫 이변 5·10선거에서 시행된 보통선거에 대해서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선거가 미국에 의하여 이식된 것이라고 말한다.선거도 민주주의도 모두다 이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이 선거가 보통선거가 아닌 제한선거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놀랍게도 일찍부터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일제침략기에 왕정복고를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또 공화국은 보통선거로 수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독립운동세력한테는 일반적이었다.이미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것은 등장하였고 趙素昻의 삼균주의에서 정치의 평등이란 보통선거를 가리켰다.일제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민주공화국을 상정하였다가 나중에는 인민공화국을 내세웠고,1930년대에는 소비에트 체제까지 구상하였다. 해방후의 혁명적 분위기에서 모든 정치세력은 당연히 보통선거를 실시할것을 주장하였다.이러한 분위기에서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이다.다만 李承晩·한민당세력은 나이 먹은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고 봉건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권자의 연령을 높이려고 입법의원때부터 노력하였지만,그것도 성사될 수 없었다.따라서 한국인은 선거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지나친 권력욕때문에 선거가 요식행위나 치장물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장파의원 발언 강화5·10선거 이후 제헌국회에서 소장파들의 발언이 강화된 것도 주목하여야할 것이다.정부수립 얼마후부터 ‘소장파 전성시대’라는 말을 듣게 되거니와,소장파의원들은 金九 金奎植과 입장을 같이하여 통일운동을 벌였고 친일파 처단을 올바로 하여 민족정기를 세우고자 하였다.그들은 농민위주의 농지개혁을 위하여 보수세력과 싸웠고,민주주의적인 지방자치법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제헌국회내 소장파 의원들은 金九 선생 암살이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무력해졌다.이로써 의회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1948년 5월31일 소집된 국회는 제헌국회라는 이름 그대로 헌법제정에 힘을 쏟았다.권력형태는 李承晩의 고집으로 하루밤 사이에 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이 헌법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경제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색이다.한마디로 헌법자체는 서유럽의 그것에 별반 손색이 없었다. ○민중 우습게 알면 안돼 7월17일 헌법이 공포된후 제헌국회에서는 대통령에李承晩,부통령에 李時榮을 선출하였다.국회의장은 申翼熙,대법원장은 金炳魯가 되었다.8월15일 정부수립이 공포되었다.金九 金奎植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는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5·10선거는 두가지의 교훈을 주고있다.그것은 정치인들이 민중을 우습게 알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선거는 결코 말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중 국가주석 강택민 유임/전인대 최고지도부 인선

    ◎부주석 호금도·상무위원장 이붕 선출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중국의 최고 영도수반인 국가주석에 장쩌민(강택민·72) 현 주석이 유임되고 부주석에 후진타오(호금도·55) 공산당 중앙정치국상무위원이 선출됐다. 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회 위원장(국회의장)엔 리펑(이붕·69)이 선출됐다. 중국 제9기 전인대는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이날 전인대는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인선도 마쳤으며 주석엔 장쩌민 현주석이 유임됐다.이에 따라 장주석은 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 주석 등 당과 군의 최고 실권에 이어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국가주석에 재취임 명실상부한 최고 영도자임을 확인했다. 이날 전인대는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톈지윈(전기운)전 전인대 부위원장,장춘윈(강춘운) 국무원 부총리,추지아화(추가화) 국무원부총리,세페이(사비)전 광동성 당서기 등 19명을 새로 뽑았다.
  • 텅 빈 대학졸업식/이은웅 충남대 전기과 교수(굄돌)

    어느해인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려니까 식장의 졸업생 일부가 돌아앉는 사건이 발생했다.그후 오랫동안 대통령 참석이없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일이 있었으나 연례행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국가의 영도자가 대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학에의 관심과 격려를 나타내려는 것이다.어쨋든 언제부터인가 졸업생들이 식장에 들어오지 않고 주변에서 가족·친지들과 어울려 사진 찍는 일에만 열중하는 사태가,학부졸업생들에게서 이제는 석사학위 취득자들에게도 번지고 있다.그런데 같은 석사학위를 받는 졸업생이라도,본인들이 사회생활하면서 절실한 필요때문에 시간을 낸 산업대학원이나 교육대학원과 같은 전문대학원 졸업자들이나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반드시 참석하는 것을 본다.삶을 더 살면서 인격을 수양하였고 스스로 벌어서 학비를 냈기 때문에 학위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 한가지가 예의를 갖추는 것이며,인간은 누구나 보다 나은 단계로 오르고자 시작하고 매듭짓는 의식을 반드시 갖추어왔다.그렇지만 입학식이나 졸업식만은 어디까지나 교육받는 기회를 가진 사람만이 누리는 의식이지,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의식이다.이같은 졸업식에 전원이 참석하여,매우 절도있게 치른 입학식 행사후 4년동안 소정의 학식과 인격을 함양하였음을 인정받아야 할텐데도,식장에 참석치 않고 교통마비가 될 정도로 차량이 모이고 꽃다발이 너절하게 나뒹구는 들뜸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문화는 대학에 다니도록 선택된 사람만이 소유하는 특권이고 그들에 의해 창출된다.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인격을 도야하고 전문지식을 함양한 자신이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 달라이 라마­티베트에서 온 편지

    ◎인류의 미래에 보내는 순수한 영혼의 메시지/티베트 문화·피폐한 현실 등 폭 넓게 다뤄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우리는 정신적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최근 티베트 혹은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과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인지 모른다.‘티베트의 사랑과 마법’(알렉산드라 다윗 닐 지음)·‘티베트에서의 7년’(하인리히 하러 지음) 등의 소설이 잇따라 선보인데 이어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 개봉됐고 ‘쿤둔’ 또한 곧 개봉될 예정이다.이러한 흐름에 맞춰 최근 또 한권의 ‘지혜의 서’가 출간됐다.도서출판 혜윰에서 펴낸 ‘달라이 라마­티베트에서 온 편지’(매튜 번슨 지음,김기홍 등 옮김)가 그 것이다.특히 이 책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소사에서부터 오늘의 피폐한 티베트 현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달라이는 티베트어의 ‘갸초’에 해당하는 몽골어로 ‘큰 바다’를 의미한다.라마는 티베트어로 ‘무상의 스승’이란 뜻.달라이 라마란 곧 대해와 같이 넓고 큰 덕을 지닌 고승을 말한다.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정작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는 것을 피한다.대신 ‘걀와린포체’ 즉 ‘보석과 같은 승자’라고 부른다.이러한 달라이 라마의 칭호는 3대 종정인 소남 갸초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이어 초대와 2대에도 이 칭호가 추증됐다.달라이 라마는 5대에 이르러 구파 불교세력을 몰아내고 티베트 전토를 통일했으며 성속양권을 아울러 지니게 됐다.그 뒤 달라이 라마의 정권이 확립됐지만 정국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달라이 라마는 잇따라 희생됐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의 생애와 영적인 가르침이다.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는 1935년 티베트 동북지방의 타크처라는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두살 때 달라이 라마의 화신으로 인정받았고,네살 때 티베트의 수도인 ‘금단의 성시’ 라싸의 포탈라 궁전에 모셔졌다.이때부터 그의 특별한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그는 장난감이나 시계,영사기 등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호기심 많은 소년으로 성장했다.하지만 장대한 불교의식에서 영도자의 역할을 다하는 그의 흔들림 없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1951년 중국에 의해 점령당한 티베트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모택동·주은래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상을 벌이는 등 모든 노력을 다했다.그러나 20세기 초까지 고립된 왕국으로 신의 말씀 안에서 살았던 티베트의 발언권은 극히 적을 수 밖에 없었다.결국 1959년 중국의 식민적 수탈과 정치적 탄압에 맞서 티베트 국민들은 일제히 봉기,3천여개의 불교사원이 파괴됐고 1백2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학살됐다.그해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망명정부를 세웠다. 남녀합환상 부처 앞에 오체투지의 고행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정복되지 않은 숨겨진 대지와 순연한 인간의 미소가 스며있는 땅,먼지 알갱이 하나까지 살아 숨쉬는 듯한 신비의 땅….그러나 이 책은 생경한 티베트 문화의 단면들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고립화 정책과 인권탄압 등 식민정책의 현주소를 고발하는 데에도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중국정부는 1966년 티베트어의 사용을 금했으며,계획적인 이민정책의 여파로 티베트 문화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중국은 2020년까지 티베트에 약 6천만명의 중국인을 거주토록 한다는 방침이다.이같은 중국측의 폭압에 맞서 달라이 라마 14세는 일관되게 비폭력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벌여오고 있다.그는 소년시절부터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라는 비폭력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1989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 14세를 ‘아발로키테시바라’ 곧 ‘자비의 부처님’으로 받아들인다.그들은 또한 존경하는 스승을 특별히 ‘쿤둔’이라고 부른다.티베트어로 ‘쿤둔’은 ‘존재’를 뜻하는 말로,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힘과 달라이 라마의 영험함을 동시에 나타낸다.평화와 사랑,종교,동포애,인권 등 인류의 영원한 화두에 관해 영감으로 충만한 메시지를 전하는 달라이 라마.그의 드넓은 지혜의 숲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된다.
  • “월북전 김대중씨와 서신 교환/압수한 오익제씨 편지에 담겨”

    ◎안기부 7개항 질의서 국가안전기획부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국제편지를 통해 월북 전에 김후보와 여러번 전화통화를 하고 편지를 교환했다고 적시함에 따라 김후보에게 지난 2일 서면질의서를 발송하는 등 경위 조사에 나섰다. 안기부 고성진 대공수사실장은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5일 오씨 편지에 대해 법원의 압수영장을 발부받은 것은 대공수사 차원에서 취한 적법한조치”라고 전제한 뒤 “편지 내용 중에 오씨와 김후보의 관계를 암시하는 민감한 부분이 담겨있다”며 조속한 답변을 촉구했다.안기부가 김후보의 답변을 요구한 부분은 ▲김후보가 오씨와 통화한 횟수와 내용 ▲오씨가 월북 전 미국에서 김후보에게 발송한 편지 수취 여부 및 내용 ▲김후보가 오씨에게 양해편지를 보냈는지 여부 ▲오씨에게 이북의 영도자와 협의해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소신을 표명한 사실이 있는지 등 7개 항이다.
  • 황장엽씨 ‘김정일 승계 비판’ 기고

    ◎북 정권 승계에 정책변화 기대는 ‘환상’/시대 뒤떨어진 세습 감추려 3년3개월간 고심 흔적 ‘역력’/쇄국·민족배타 노선 버리고 평화 통일 ‘열린 길’로 나서라 오늘 북한 통치자들은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놓고 마치 새로운 태양이 솟아 오른 우주의 대사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후계자의 권력승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1974년 2월 노동당 조직비서로서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수령의 유일독재체계는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원칙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되어 실권은 완전히 후계자가 장악하고 수령은 더욱 신격화되었을뿐 좋은 경우에 후계자의 최고 고문의 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그러므로 수령이 사망하였다고 하여 통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한다고 하여 김정일의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김정일이 공식승계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승계 23년전 마감 그러면 북한 통치자가 3년3개월이나 공식승계를 미루는 남다른 변덕을 부리다가 오늘은 또 공인된 정상적 선거절차도 밟지 않고 공식승계를 슬쩍 해버린 의도는 어디에 있겠는가? 첫째로 김정일에게 가장 아픈 약점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습승계를 한다는 점이다.이 문제를 무마시켜 보려고 매우 고심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쇠퇴 몰락이 그 이론이나 그것을 구현한 사회체제의 본질적 결함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령의 후계자를 잘못 선발한데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놓고 저들의 세습적 승계를 정당화해보려고 하였다.그들은 이러한 논리적 기만술책만으로는 부족하여 후계자인 ‘광명성’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태양’의 지위를 승계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허황한 미신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승계를 미루면서 부친의 방조없이도 자체의 힘으로 능히 영도자의 지위를 지키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신격화된 계승 중요시 둘째로 김정일은 총비서라든가 국가주석 같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보다는 절대적으로 신격화된 수령의 초법적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데서 첫째가는 조건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수령에 대한 자기의 충성과 효성을 과시하여 수령의 지위 승계를 위한 도덕적 권위를 높이는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따라서 수령의 사망후 굶어죽어가는 수많은 주민들은 돌보지 않고 부친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화려한 궁전을 건설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탁월한 사상이론가’라는 영상을 높이기 위하여 글만 쓰는 학자들도 무색케 할 정도로 연이어 글을 발표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우상화 수준과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수준을 비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김정일은 당규약과 세계가 공인하는 선거절차를 무시하고 총비서 추대를 선포함으로써 자기가 초법적이며 초국가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정권 본질은 결코 불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대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것만큼 큰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첫째로 북한통치자들은 세계 어떤 경제적 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여 왔는데 그것을 누가 다 망쳐먹고 북한땅을 가장 가난한 나라,빌어먹는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권력을 다 틀어쥐고 있는 북한 통치자가 민생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북한 인민은 수령복을 누린다고 하는데 수령복의 내용이 주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인가? 우리는 19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만 하여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가고 있다. 북한당국자들은 어째서 세계 각국에 식량을 구걸하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 더욱이 엄중한 것은 남한동포들이 순결한 동포애적 심정으로부터 북한동포들의 민생고를 책임지고 풀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왜 가로막는가? 앞으로 남한동포들이 보내는 식량과 의약품 등 구제물자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무조건 받아들이겠는가,않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알고 싶다. 둘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된 일대 감옥으로 만든데 대하여 응당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고 인권유린국 반성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부를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조선사람은 수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하면서 수령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 이상 더 큰 인권유린이 어디 있으며 인민을 노예화하는 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령을 우상화하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고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이제는 우리민족의 자랑인 금강산·묘향산·백두산 같은 명승지에 자연경치까지 못쓰게 만들고 있는데 이 죄과를 인정하는가? ○언제까지 굶길 것인가 셋째로,북한 통치자는 무엇 때문에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계속 전쟁준비에만 내몰고 있는가? 북한 사람들을 굶겨죽이다 못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행복과 번영을 쟁취한 남한동포들까지 죽일 작정인가? 북한 주민도 먹여살리지 못한 통치자가 무슨 염치로 전조선을 통치해 보겠다는 망상을 가지려고 하는가? 청년학생들이 군사훈련과 충성의 무슨 운동 때문에 재학기간에도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13년간이나 군대에 복무하면서 수령옹위의 총폭탄이 되는 연습만 하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청춘의 희망을 꽃피울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만행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넷째로.북한 통치자는 입으로는 ‘민족대단결’이요 ‘민족통일’이요 떠들지만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평화통일의 의지가 있단 말인가? 미국이나 일본하고는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동족끼리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속셈이무엇인가? 일본인 처는 고향방문을 허용하면서 남북간에는 편지거래조차 못하게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절대 반대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벼랑끝’ 외교전술 중단 다섯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고 손쉽게 개인독재를 실시하기 위하여 쇄국정책을 계속 실시하고 있는데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왜 외면하고 있는가? 북한 통치자들은 주변대국들의 모순을 조장시켜 어부지리를 취하고 전쟁과 테러로 평화애호 인민들을 위협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벼랑끝 전술’을 김정일이 발명한 대단한 외교지략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이렇게 한 모든 선행자들의 말로가 비참하였다는데 대하여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이 없을뿐 아니라 스탈린주의로부터도 멀리 후퇴·변질하였다.그들의 사상은 무자비한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계급주의이고 쇄국주의를 주장하는 민족배타주의이며 철저한 개인숭배에 기초한 전제주의적 개인독재 사상이며 폭력을 신성화하는 군국주의 사상이다.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역겨운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이른바 ‘고전적 노작’들을 대담하게 버리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
  • 중앙위소집 절차 안거쳐/김정일 총비서 승계

    ◎노동신문 “역사에 없는 사변” 김정일은 지난 8일 당총비서에 추대되면서 당중앙위 전원회의 소집 등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총비서직을 이양받은 것으로 10일 밝혀졌다. 북한은 이날 김정일의 당총비서 승계를 축하하는 노동신문 사설에서 “어떤 실무적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당적인 일대 정치적 사업으로 당의 최고 영도자를 추대한 것은 노동계급의 당건설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사변”이라고 밝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노동신문은 이어 김정일이 김일성의 정책과 유업을 그대로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 북은 시대 착오적 신격화 중단하라/황장엽씨 특별기고문

    ◎“‘소련 붕괴’교훈 외면 수령 우상화·독재 고집/위대한 영도의 결과가 세계 최악의 민생고인가”/“50여년간 대이은 통치 대남 무력통일에 혈안/군사비 등 몇%만 아껴도 주민 식량난 거뜬 해결”/“북 사회주의는 허울뿐 실상은 봉건주의 불과/7천만 겨레 염원 부응 남북대화·교류 나서라” 북한은 자기 수령의 탈상을 계기로 ‘주체연호’를 쓰기로 결정함으로써 다시금 세상 사람들을 개탄케 하고 있다.스탈린주의와 소련의 붕괴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준 심각한 역사의 경고였다. 많은 개인주의 나라들이 뜻하지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훈을 찾고 개혁 개방의 길을 모색하였다.유독 북한 통치자들만은 스탈린주의의 가장 나쁜 면인 수령 우상화와 개인독재를 몇배로 증폭하여 그것을 당과 국가건설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국민생활을 지배하는 기본원리로 전환시켰다.그 결과 이번에는 북한의 통치체제 자체가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북한은 오늘 세계 최악의 민생고를 겪고 있으며 빌어먹는 나라라는 수치를 무릅쓰고 국제사회의 자비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체제가 겪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주는 역사의 마지막 경고라고 볼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경고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는 대신에 봉건주의 냄새가 그대로 풍기는 ‘주체연호’를 사용하여 김일성 왕조를 유지해 보려 함으로써 시대와 건전한 상식에 도전하고 온 겨레와 세계인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심중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아직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주체연호’까지 내놓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는 것은 파산된 개인독재 체제를 더욱 버림받게 하고 그 종말을 촉진하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을 것이다.북한은 수령 우상화와 개인독재가 인민들에게 어떤 불행과 고통을 들씌우고 멸망하지 않을수 없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산 역사박물관을 방불케 하고 있다.개인독재는 민주주의를 배제하게 되고 민주주의를 배제하면 민주주의 이전 사회인 봉건사회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오늘 북한은 봉건주의와 전체주의적 통치수법이 결합되어 사회주의의 탈을 쓴현대판 봉건주의의 전형이다.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롭게 살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개인독재는 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포악한 폭력수단과 정신적 기만수단에 의하여서만 유지될 수 있다.북한에서는 중앙으로부터 하부 말단에 이르기까지 조밀한 폭력독재망에 의하여 주민들의 생활의 구석구석이 통제되고 있으며 수령절대주의의 봉건도덕이 사람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북한 통치자들은 주민의 삶의 목적은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데 있다고 설교하며 수령은 곧 조국이라고 하면서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노래까지 보급하고 있다.수령과 후계자는 천재적 예지와 고매한 덕성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위인중의 위인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렇다고 하자.그러면 어째서 수령과 후계자는 북한을 오늘의 비참한 상태로 이끌어 왔으며 왜 수백만 주민들이 굶어죽어가는 것을 구원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재능있고 근면한 북한동포들이 겪고 있는 오늘의 고통과 불행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50여년간 부자가 대를 이어 실시하여온 봉건적 개인독재의 산물이라는 것은 더 논의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금 북한의 경제는 크게 당의 경제,군대의 경제,정무원 경제의 3부분으로 갈라져 있다.외화벌이에 유리한 공장 기업소들은 당경제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장비 수준이 비교적 높은 군수공장들은 군대경제에 속해 있으며 나머지가 정무원이 관리하는 일반 국민경제로 되고 있다.당경제,군대경제는 영도자의 개인소유나 다름없다.이 부분경제의 수입과 지출에 대하여서는 위대한 영도자 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며 또 감히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알맹이는 다 빼앗기고 남은 정무원 경제마저 정무원총리를 비롯한 경제일군들이 주견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영도자의 비준과 지시 밑에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북한의 영도자는 자기가 경제관리와 인민생활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을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들이 경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이 겪고 있는 현 위기는 또한 북한 통치자들의 고질적인 대남 무력통일정책과 결부되어 있다.북한 통치자들은 인민군대를 조국통일의 주력군으로 간주하고 ‘군대는 곧 국가이고 인민이며 당’이라고 하면서 철저한 군국주의와 군사독재를 표방하고 있다.북한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위하여 국가가 필요하며 국가예산의 한 부분을 군대가 군사비로 쓰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쓰고 남은 것이 국가예산이 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북한통치자들은 당장 북침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허위선전을 일삼고 있는가 하면 적을 일격에 소멸하고 전쟁위험의 근원인 남한의 존재자체를 없애 버리겠다고 호언장담 하고 있다.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남한이 군국주의이고 전쟁을 바라고 있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며 반대로 북한이 군국주의가 아니고 전쟁과 테러로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취약한 경제력을 의식하고 있는 북한 통치자들은 선제공격과 전격전을 기본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배신적 선제공격과 전격전의 요행수가 결코 군국주의자들에게 전쟁승리의 열쇠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평화적 경쟁에서 여지없이 참패한 북한이 비평화적 방법으로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통치자들은 현 경제위기의 원인이 자연재해와 외국의 경제봉쇄에 있는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천만부당하다.북한 영도자의 신년사를 보면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도 만풍년을 이룩하였다’는 말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또 자립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장담하며 무기를 마음대로 팔아먹으면서 외국의 경제봉쇄 운운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만일 북한통치자들이 방대한 군사비와 수령 신격화에 쓰는 거액의 낭비의 몇 %만이라도 절약한다면 주민들의 식량을 해결하는 것쯤은 문제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4천5백만의 남한동포들은 북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북한 군국주의자들의 그 어떠한 도발도 물리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오늘 남한동포들의 한결같은 의지는 동족상잔의비극을 절대로 되풀이하여서는 안되며 전대미문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하루빨리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뜨거운 동포애로 집약되고 있다.날로 융성번영하는 대한민국은 북한동포들을 손쉽게 구원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남한동포들은 이북동포들을 마음껏 도와주지 못하여 안타까워 하고 있다.지금 북한 동포들에 대한 남한동포들의 지원을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것도 아름아닌 북한 통치자들이다. 우리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아직도 폭력혁명론과 군국주의 망령의 포로가 되어 동족상잔의 새전쟁 도발에 몰두하고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으며 얼마나 큰 죄악으로 되는가에 대하여 냉정하게 심사숙고할 때가 왔다는 것을 충고하고 싶다. 출로는 명백하다.역사의 흐름에 배치되는 ‘주체연호’와 같은 우상화 놀음으로서는 오늘의 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북한통치자들은 이미 실패와 파산이 역사적 현실로 된 시대착오적인 봉건개인독재 체제와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며 7천만 겨레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남북대화와 교류를 실현하는데로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역사와 민족앞에 더이상 엄중한 죄과를 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북한의 모든 각성된 사람들은 눈을 가리우고 귀를 막은채 썩고 병든 개인독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여온 오랜 잠에서 깨어나 민족이 평화적 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 나설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이와 함께 우리는 북한동포들의 불행을 가슴아파하고 있는 모든 애국적 해외동포들은 북한이 그릇된 노선과 정책을 버리고 개혁개방과 평화통일의 길로 나가도록 사심없는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떠밀어줄 것을 진심으로 부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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