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에 바란다/소신껏,그러나 원만하게/나종일(기고)
새로 국무총리에 취임할 이영덕씨는 매우 큰 부담을 안고 총리직을 시작하게 된다.이 부담은 여러 차원에 걸친 복잡한 성격을 갖는 것이다.신임총리 본인도 취임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영특하고 영민하며 실무에 밝은」 전임총리의 뒤를 잇는다는 것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러나 이영덕신임총리의 부담은 단순히 전임자가 「영특하고 영민하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처신의 원칙」 주목
이회창 전총리가 유능하며 강직한 공인이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바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총리의 사임이 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원칙과 소신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총리직의 진퇴를 건 원칙이 누구에게나 도의적으로 하자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임 총리의 부담은 단순히 개인적이며 심리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도의적·정치적 소신의 문제가 개입되는,그래서 재임기간중에 부단하게 처신의 원칙에 마음을 쓰며 이것이 여러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는 바이라는 점에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이런 원칙의 문제뿐만도 아니다.대통령과 총리가 헌정운영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그 때문에 중망이 있던 총리가 불과 취임 4개월만에 사임을 하였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작은 「헌정의 위기」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말하자면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문제는 이회창총리의 사임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뚜렷하게 제기된 셈이다.앞으로 사람들은 관·민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신임 총리는 이 작은 「헌정의 위기」를 의식하면서 직무수행에 임해야 할뿐만 아니라 이를 제도적으로 치유하여야 하는 부담까지도 떠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헌정의 위기”
끝으로 새 총리가 수행하여야 하는 업무의 내용과 관련된 부담도 이전의 다른 총리들의 경우와는 유달리 특이한 면이 있다.주지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현정권의 구호는 「문민」과 「개혁」이었다.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현정권이 상당한 의욕을 보였고 또 일정한 성취를 이룩하였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의 현실이 항상 말과 행동이,구호와 실천이,내건 이상과 실제가 일치하는 것이겠는가.일부의 시각이지만 전임 총리가 이 점에 있어서 원칙에 「너무」 충실하였기 때문에 「법대로」의 퇴장이 불가피하였다는 해석도 있다.이것은 최근 들어 일련의 사태들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 「안보조정회의」의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이미 그의 퇴임이 예측될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신임 총리는 중론에 의하면 「보수적인」성향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그래서 그의 취임을 현정권의 「보수회귀」로 치부하려는 의견도 나온다.
○현실·이상 틈막아야
그러나 정작 본인은 개혁의 과제가 산적해 있으며,도덕적으로 건강한 나라가 뛰어난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취임소감을 밝혀 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는 전임 총리와는 다른 방식으로,다른 스타일로 같은 의지를 실천해 나가면서 구호와 실제,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틈막이 하여야 한다.끝으로 전임 총리의 직접적인 사임사유가 된 외교안보정책에 관한 문제이다.아마도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이른바 고등정치와 하등정치 사이의 영역구별이 있다는 어렴풋한 이해가 있는 것인가.그러나 요즈음같은 상황에서 두 영역사이의 구별이란 그렇게 명확한 것인가.총리는 국정일반을 책임지면서 자기가 모르게 결정된 고등정책의 뒷치다꺼리를 할 수 있겠는가.
사표도 처신의 원칙을 밝히는 한 방법이다.그러나 물론 그것은 소신을 실천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새 총리는 아마도 원칙을 지키면서 「경직」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고,소신이 있으면서도 「괴팍」하지 않으며,유능하면서도 「원만」하다는 평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