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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訪韓 영국여왕 체어맨 탄다

    오는 19일 내한하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내외가 방한기간 동안 국산차인 체어맨을 탄다.대우자동차는 영국 여왕 내외의 공식 의전용 차량으로 체어맨 리무진형과 세단형 각 2대씩 모두 4대가 선정됐다고 8일 밝혔다. 여왕이 타게 될 체어맨 리무진은 세단보다 차체 길이가 30㎝ 길고 브레이크와 엔진,변속기에 내장된 컴퓨터칩이 정보를 주고받아 최상의 주행상태를 확보하는 다중통합 전자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등 5,400만원대의 국내 최고급 모델이다. 공식의전 차량으로 롤스로이스와 벤츠를 애용해온 영국 왕실이 국산차를 이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대우는 체어맨이 벤츠와 기술제휴한 모델로 세계적인 품질을 갖추고 있음을 여왕측에서 인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설명했다.
  • 외규장각 도서‘望鄕의 恨’언제 풀리나

    외규장각 도서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프랑스가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을 전담할 권위자로 자크 살로와(58)를 선정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다시 관심이모아지고 있다.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은 6년 넘게 끌어 온 한국과 프랑스간의 현안으로 지난 9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교환 기본원칙이 합의됐다.프랑스가 도서를 영구 임대형식으로 돌려주고우리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고문서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이른바 등가(等價)의 문화재 교환방식이다.그러나 추후 실무자들간의 협상에서 교환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도서반환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답보상태를 거듭해온 도서반환 문제는 지난해 4월 새로운 해법이 제시됐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양국 역사 문화 전문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최근 자크 살로와의 선임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측에 전문가를 선정해줄 것을 요청해왔다.자크 살로와는 감사원 최고감사위원이지만 박물관 협회 회장(89∼93년),문화부 박물관장(90∼94년)을 지내 문화계,학계에서도 폭넓은 교분과 지명도를 갖고 있다.지난해 9월에는 피에르 족스 감사원장을 수행,방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현재 교육부,문화관광부의 협조를 받아 전문가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난달 말에는 교육부와 문화부에서 추천한 10명의 명단을 놓고관계 부처 협의를 가졌다.전문가는 추천인물에 대한 검토작업을 거쳐 이달말 쯤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외교부는 가능하면 정치외교적 감각과 문화적 식견이 있으면서도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인물이 뽑히기를 기대한다.문화재 반환이라는 좁은 시각보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양국의 전반적인 관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전문가 선임은 도서반환 협상의 첫 단추를 연 것이지만 섣부른 예단은 갖지 말 것을 주문한다.서로 반환협상에 부담을 느끼는 탓이다.외교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 파리 특파원발 기사에서 주불대사가 “등가의 문화재 교환원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양국 문화교류 확대,유물 보전기술전수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개인의견이 확대 해석된 것으로 현재로선 완전한 백지상태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전문가가 선임되면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해준 뒤 준비과정을 거쳐 프랑스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그러나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심각한 견해차이를 보여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일례로 프랑스는 당시 책을 가져간 것은 서고가 불에 탔기 때문이며 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한다.또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내법상 공공재산으로 등록돼 있는 국가재산이라며 미리 못을 박는다. 영국,프랑스 등 문화선진국들은 2차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전시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1954년),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등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았다.더욱이 외규장각 도서의 해외 유출사건은 19세기 후반에 발생,전시문화재에 대한 국제협약의 적용을 받지도 않는다.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부담이다.미국과 영국 등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관계 전문가들은 경제협력 등 정치적 해결보다는 학술,학문적으로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즉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법,판례,문화인류학적입장 등을 토대로 반환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한다.이들은 한 나라의 왕실재산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국가재산인 만큼 프랑스가 외규장각도서를 자국의 공공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한다.또 문화선진국들은 문화재 보존기술이 낙후돼 있는 후진국들에게는 귀중한 문화재를 맡길 수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으나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75년 발견당시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또 덴마크가 아이슬랜드의 중세문학 필사본을 250년이 지난 뒤 반환한 데에서 보듯 불법으로 빼내간 문화재는 원소유국으로 반환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고 말한다.한마디로 정치적 타결보다는 각종 관련 국제법에 의한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의 일지]▒1886년 외규장각 도서 피탈▒1975년 박병선씨 외규장각 도서 발견▒1991년 10월 서울대 외무부 통해 반환요청▒1993년 9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합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4∼97년 한불간 협의 난항▒1998년 4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전문가 협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9년 1월 프랑스,전문가 자크 살로와 선정- 외규장각 도서란 외규장각 도서는 세자 및 왕비의 책봉행사와 결혼,국장(國葬) 논의 및 준비과정,의식절차 및 경비,행사 유공자들의 포상 등을 규정한 왕실 의전 궤범이다.보통 4권으로 만들어져 4대 서고에 보관된다.이 가운데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도서는 왕이 보던 어람(御覽)용으로 원본인 셈이다.관청 등에서 이를 복사,보관해왔기 때문이다.게다가 국내 보관본의 3분의1 정도는소실된 상태라 프랑스 보유 문서의 학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외규장각 도서는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가 빼앗아 갔다.현재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지난 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씨가 베르사이유 별관 파손창고에서 처음 발견,세상에 알려졌다.파손 도서는 이후수리 복원됐으며 현재는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돼 있다.고서 반환은 91년 10월 서울대총장이 외무부에 추진을 의뢰,이듬해 7월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 [외언내언] 영국여왕의 방한

    지난 92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 40년을 맞았을 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기념문서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를 지킨 군주로서 그는 1,000년 역사를 지닌 영국 왕의 자리에 활력소를 불어넣었고 대영제국을 영연방으로 순탄하게 변화시키는 외교적 역할을 발휘했다’고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유럽의 다른 나라 왕실들이 공산주의의 물결에 밀려 붕괴한 데 비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왕위와 위엄을 굳건하게 지켜오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그는 연합왕국의 왕인 동시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다시 구(舊)제국에 속해있던 독립국 결합체인 코먼웰스의 수장으로서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전통을 지켜 실제의 정치에는 관여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1년에 두 번으로 제한된 국빈 방문으로 국제 친선에 기여하고 있다.지난 86년,베이징(北京) 방문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여왕으로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계기를 만들었고 94년에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간의 잇단 불화와 추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방문하여 꿋꿋한 왕실의 체모를 과시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영 국교 재수립 50주년 기념으로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나라에 온다.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외방문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 언론의 열띤 취재보도가 따를 것이다.이번 여왕의 한국 방문에는 영국 왕실출입기자 50여명과 세계 각국의 기자 100여명이 동행할 예정이어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TV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방한 스케줄은 이른바 작은 문화답사의 형태로 국립묘지 참배와 金大中대통령 면담후 서울 미동초등학교에 가서 태권도 시범을 관람하고 이화여대와 인사동 거리,남대문시장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국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도 찾아가 ‘서양음악사가 짧은 한국에서 어떻게 가르치기에 그처럼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나오는지’도 확인하고 싶어한다.그리고 사흘째인 21일에는 73세 생일을 맞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담연재(澹然齋)에서 전통한식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한국의 양반 마을에서 신사의나라에서 온 영국 여왕의 생일맞이는 동양과 유럽의 조화를 새삼 실감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 여왕의 한국 방문은 한국으로선 전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과연 인사동과 남대문시장,안동의 하회마을에서 동양적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우리에겐 보여줄 것이 적다는 게문제인 것 같다. 이세기 논설실장
  • 국문판(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5)

    ◎국문교과서 편찬·문법 통일 주창/부녀자·중하류층 대상 사회참여 의식 고취/구국교육에 큰 역할 용기있는 대중지 ‘뿌리’ 대한매일신보는 발간 4년째인 1907년 5월23일부터 한글판을 내기 시작했다. 대한매일은 국·영문판 합본 형식으로 창간했던 만큼 한글판 간행이 두번째였다. 한글판 재발간 당시 대한매일은 한자 위주의 국한문(國漢文)판을 519호까지 내고 있었다. 그러나 새 국문판은 뒤에 나왔지만 대한매일을 일으킨 ‘장자’(長子)라 할 국한문판을 그냥 한글로 옮겨 실은 ‘곁방’신문이 아니었다. 또 창간 때의 한글판을 답습하지도 않았다. 타블로이드 크기 4면을 온전히 한글로 채운 대한매일의 새 국문판 신문은 여러모로 새로웠다. 본래 대한매일은 국·영문으로 창간할 당시에는 독립신문의 정신에 입각해 대중을 상대로 서구적인 민권사상에 의거한 민중 교도와 내정 개혁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다 5개월 동안 휴간한 뒤 국한문판으로 중간하면서 한자에 익숙한 유림 등에게 반외세,국가와 왕실의 수호를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항일의식의 논조는 변함이 없었지만 좀더 유생들에게 친근한 동양의 유교적 정치와 윤리,중국의 고사 등을 수시로 활용하였으며 유림에 기대를 걸고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논설을 자주 썼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나라의 위기상황은 유림 등 지식층에게만 기대를 걸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광범위한 대중 계몽을 모색하게 됐고 여기에서 국문판의 재발행이 기획됐다. 언론 탄압을 향한 통감부의 신문지법이 공포되기 직전에 발간된 국문판은 국한문판과 함께 한일합병 때까지 계속 발행됐다. 이 새 국문판 신문은 다듬어진 국한문판의 틀을 잘 활용해 창간 당시의 한글판보다 훨씬 짜임새가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띄어 쓰고 구어체에 가깝게 풀어서 써 읽기가 편했다. 이에 따라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는 부녀자 및 중하류층의 일반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 국문판이 발간될 1907년 무렵에는 일반 대중이 읽을만한 항일논조의 국문지가 없었다. 기존의 그같은 신문들은 논조가 현저히 위축된 상태였다. 새로운 국문지의 출현을기대하는 일반 민중의 욕구와 국권 회복 측면에서 민중 계몽을 중시하던 지식층의 욕구가 합쳐져 대한매일의 국문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국문판은 대상 독자층이 달랐기 때문에 국한문판과 차이점이 상당했다. 논설은 시사적이라기보다는 계몽적인 내용을 많이 싣고 있으며 경제관계,외국소식 등 딱딱한 기사는 생략하고 있다. 기서는 부녀자 및 일반 대중이 보내온것을 많이 게재했다. 특히 국문판은 역사전기류의 소설과 독자들이 보낸 우스갯소리 등 오락성 있는 연재물에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 학식이나 의식이 뒤지는 부녀자·하류층 등 대중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책이었다. 대한매일 국문판은 국채보상운동·구국교육운동 등에 영향을 끼쳤으며 각처의 의병활동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그 타당성과 봉기의 필연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한글로 신문을 내는데 그치지 않고 한글 문법의 통일과 국문 교과서의 편찬을 주장하는 등 국어 보급에 힘썼다. 또 주 독자층이 여성이었던 관계로 여성교육의 필요성,과부 재가의 정당성,축첩의 부당성 등을강조하고 여성 자신의 자각과 사회참여 의식을 고취,여성 계몽에 앞장섰다. 또 국어학 측면에서 당시 사용되던 우리말을 연구하는 자료로도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일제의 언론 통제로 여타 민족지들이 침묵으로 비켜설 때 뚜렷한 항일 논조로 일반 민중에 다가간 마지막 용기 있는 대중지였다. ◎광고게제 어떻게/맨뒤 4면 전체 할애 1905년 3면 일부 내줘/행당 6전씩 받아 1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문에 있어 광고는 매우 중요하다.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실었다. 월 30전 하는 구독료 못지 않게 행당 6전씩 받은 광고료가 신문사 주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국·영문 합쇄의 초창기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열강 광고뿐이었고 한국 광고주 것은 전무하다시피했다. 국한문판 등장과 함께 상황이 달라진다. 맨뒤 4면 전체를 차지한 광고에 한국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점유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가 확연했다. 무엇보다 광고란 자체가 확장됐다. 국한문판은 발간 3개월까지는 대체로 3면을 기서,추가 잡보 및 연재물로 채웠으나 1905년 말부터 광고가 3면까지 거슬러 올라온다. 1906년 중반 쯤이면 광고가 고정적으로 3면 중간부터 나타났다. 그래서 대한매일 국한문판에는 연재소설이 드물었다. 1908년에는 4개 면중 2개 면 전체에 광고를 싣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며 1909년이 되면 ‘신성한’ 1면까지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모집,책 및 서점 그리고 약광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술,기숙관(하숙) 광고에 이어 제물포 권련연초회사의 원시표 거미표 태극표 및 일본정부 제조 연초인 스타 등 담배 광고가 윤곽 그림과 함께 매일 보였고 미국 수입 우유광고도 자주 나타났다. 약광고는 큰 활자로 국문으로 써 눈에 쉽게 띄었는데 미국에서 수입한 창병(성병)특효약 광고가 1907년에 벌써 나타나고 국문판에 한정됐지만 1909년엔 여성 생리대 광고가 나온다. 명월관 등 요리집도 국문 큰 글씨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작은 활자의 개인 광고도 많는데 자신의 이름을 무엇으로 바꿨으니 이를 알린다는 광고도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은 아들 동생 등 가까운 식구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재산관련 계약을했으나 이것은 무효라고 사전 포고하는 광고였다. 자신의 아들이 허랑방탕하고 사기성이 농후하니 조심하라는 광고도 흔했다. 1909년 3월31일자에 한 간판 광고업자가 대한매일에 실은 광고문구는 당시 이미 신문광고를 통해 활발한 영업활동이 이뤄졌음을 짐작케 한다.
  • 英 해리 왕손 ‘작은 반란’

    ◎찰스 왕세자­카밀라의 공개데이트에 항의 삭발/“아무도 어머니 대신 못한다” 공언 아버지와 갈등 영국 왕실이 이번엔 ‘왕자의 삭발’로 회자되고 있다. 자동차 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둘째아들 해리 왕자가 최근 ‘아버지에 대한 항의성 시위’로 머리를 빡빡 삭발해버린 것.영국에서 머리를 민다는 것은 곧바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왕족이 ‘스킨헤드족’이 되기는 이번이 처음. 미국 글로브지는 최신호에서 해리 왕자와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갈등은 약 한 달전부터 시작됐다고 전하고 있다.찰스 왕세자가 지난 9월 카밀라 파커볼스라는 여인과 비밀스럽게 허니문 성격의 휴가여행을 다녀온 게 도화선이 됐다.여행지는 17년전 다이애나와 함께 신혼 여행을 갔던 에게해 부근의 바로 그 곳.당시의 허니문을 그대로 흉내냈다. 해리 왕자는 아버지의 이번 여행을 죽은지 14개월밖에 안된 어머니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음은 물론 아버지의 결정적 배신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글로브지는 분석했다.또 찰스 왕세자가 여행을 다녀온 후 카밀라와 자주 공개적인 데이트까지 갖자 강력한 항의를 표시하기로 했을 것이라는 풀이다. 해리 왕자는 최근 형 윌리엄 왕자와 함께 공공연히 “아무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카밀라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영국 왕실 역사가인 헤롤드 브룩스 베커는 “찰스 왕세자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론을 두려워않고 카밀라를 왕세자비로 맞을 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며 “요즘 잇따라 보여주고 있는 행동들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밝혔다. 글로브지는 14세의 해리 왕자는 얌전하면서도 수줍음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고 전제,이번 ‘삭발사건’이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의도를 무산시키기 위한 ‘아들의 작은 반란’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 고종 퇴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2)

    ◎순종 승계 강제성 통렬히 고발/황제대리조칙 반박/수차례 논설로 따져/고종 도쿄친행 거부/헤이그밀사 자결 등 호외로 대내외 알려 1907년 7월19일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태자에게 양위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제는 일제와 이에 빌붙은 친일파 내각에 의해 축출당한 것이었다.창간 때부터 고종 황제와 각별한 관계였던 대한매일신보는 고종 퇴위의 강제성을 정면으로 지적하며 이의 부당함을 거세게 따졌다. 을사늑약(勒約)후 2년도 안돼 이뤄진 고종 퇴위는 고종의 헤이그(海牙) 밀사 파견과 관련이 깊다.고종은 일제의 한국 침탈 실상과 조약의 무효함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李相卨 李儁 李瑋鍾 등 3인의 밀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보냈다.고종의 친서를 휴대한 밀사들은 6월25일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본,영국 등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밀사 이준은 울분 끝에 현지에서 분사(憤死)했다. 고종은 대한제국 제위에 오르면서 강한 배일주의 성향을 보여왔다.일본은 밀사 파견을 고종 퇴위의 호기로 보고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 대신들을 앞세워 고종을 핍박했다.7월18일 고종은 내각의 섭정추천 요청을 거부했으나 19일 황태자 대리 조칙을 내린 뒤 20일 양위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일신협약(7월24일),군대해산(8월1일)으로 이어지는 1907년 7월의 급박한 정세 속에서 대한매일은 그간 높이 쳐들어온 반일의 기치에 한 가닥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매섭게 필봉을 휘둘렀다. 7월4일 논설을 통해 “해아 평화회담에서 일본인의 잔학을 호소하려는 한국의 제의가 배척됐지만 한국인은 실망하지 말고 자주독립의 대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층 힘써야 한다”고 격려했고 7월9일에는 “한국이 자국의 명운을 국제 중재에 위탁하기에는 열강의 태도로 보아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면서 “이번에 한국 파견인이 거절된 것을 길조로 여길 수 있다”고 국민들을 위무했다. 이완용의 잦은 통감부 방문을 주시하면서도 일제의 고종 퇴위 속내를 알아채지 못했던 대한매일은 16일 일본報知신문 기사를 전재해 처음으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이 일본 신문은 “한일협약을근저에서 짓밟은 한국 황제를 폐하든지,일본으로 불러 사죄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이에 대한매일은 18일 ‘일본 신문의 무례를 반박한다’라는 장문의 논설로 강경하게 맞섰다. “일본 신문이 논하는 구절구절이 해괴하고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면서 “한국에 대해 일본 사회와 언론의 마음 속에는 병탄 외에는 어떤 생각도 없다”고 갈파했다.그런데 이같은 논설을 내보낸 대한매일은 같은 날 몇시간 후 “황제가 대신들의 섭정추천,동경친행 사과 요구를 거절했으며”“해아밀사 이준이 忠憤을 이기지 못해 자결,만국 사신들 앞에 뜨거운 피를 뿌렸다”는 내용의 호외를 뿌리게 된다. 만 하루가 지난 19일 낮 대한매일은 다시 호외를 냈는데 ‘황제께서 황태자에게 대리를 명하는 조칙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황제가 하룻만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이 호외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대한매일이 조칙에 바로 잇대어 “이 조칙 반포가 황제의 뜻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 일반의 주목거리이나 이 사건이 외인의 강핍과 대신들의 위협으로 된 것은 세상 사람이다 알 바”라고 쓴 점이다. 조금도 곁눈질하지 않고 즉각 고종 퇴위의 강제성을 적시한 것이다.대한매일은 20일 ‘이등후’,21일 ‘대리역사’,25일 ‘禪位’,28일 ‘선위속론’등의 논설을 잇따라 써내면서 퇴위가 외부의 강박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 와중에서도 대한매일은 만국회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위한 호소’라는 연설로 큰 갈채를 받은 밀사 이위종을 한국에 희망을 주는 청년으로 극찬했다(19일).또 한일신협약으로 “한국의 독립이 흔적도 없어졌다”고 한탄하면서도 “한국인이 한국의 이익을 위해 자치하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희망 또한 피력해 마지 않았다.(27일). ◎사설 ‘선위속록’/“왕실의 대리와 선위… 핍박과 위협으로…” 대한매일은 고종 퇴위에 관해 여러 차례 사설을 썼다.이 중 7월28일자 ‘선위속론’의 주요 부분을 발췌한다. 무릇 황위의 전해짐과 물려줌은 천하대사라 동서고금 역사가 이에 관해서는 한층 근엄한 필법으로 사실에 준거해 곧게 쓰는 것을 공리로 하고 있고 이것이 역사가의 정당한 의무로다. 한국 황실의 대리와 선위라는 큰 사건이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에 이뤄졌다.외인의 강한 핍박과 내각 제대신의 위협적인 요청에 의한 것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는 바이다.특히 선위에 있어 내각 대신의 한층 괴이하고 해괴한 행동에 관한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모든 세계 인사와 대한 신민은 이로부터 눈을 돌리지 말고 가슴에 새겨 잊지 말지어다. 선위가 논해질 무렵 아직 조칙이 내려지지 않아 실시할 수 없다고 어느 원로 대신이 지적하자 농공상대신 송병준은 이렇게 하면 어떻고 저렇게 하면 어떻단 말이냐며 벌컥 화를 내면서 그 원로를 포박하려 하니 그 사람이 황겁공포하여 신도 신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또 박영효가 이완용 총리를 면전에서 격렬하게 반박하자 다음날 그를 포박했으며 내관 이병정이 이총리에게 30년 동안 임금을 섬긴 대감은 군신의 의리가 있고 부자와 같은 은공을 입었는데 오늘 이같은 짓이 대감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꾸짖자 그 역시 경무청으로 끌고가 가두었다더라. 이런 사실은 모두 너무 잘 드러나서 숨길 수도 없어 세계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고 붓을 든 사가가 대서특필하지 않을 수 없다.
  • 용감한 美 의원들/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동맹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찔러 워털루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웰즐리 웰링턴(1769.5.1∼1852.9.14)은 런던에서 있은 개선식에서 오늘까지 전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교정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헨리 6세가 1440년 나라의 핵심 지도자로 키울 우수한 학생 70명을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이튼 칼리지다. 전교생 1,200명이 넘는 오늘까지도 왕실 장학생 70명은 오피단(Oppidan)으로 불리는 일반학생과 달리 연간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기숙사비와 학비일체를 면제받는다. 설립목적대로 영국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부분 이학교 출신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반열에 들어 있으나 나라가 위급할 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자신을 바친다. ‘왕과 국민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라는 이 학교의 변함없는 가르침이 이들을 이렇게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길러낸 것이다. 이는 서양 선진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이며 생활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덕률을 어김없이 지키기에 항상 존경을 받는다. 지난 24일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미국 의사당에서 보여준 미국 국회의원과 경찰관들의 희생적이며 의연한 자세도 바로 이 정신의 실천임을 깨닫게 한다. 사건 현장 사무실의 주인인 공화당 수석부총무 톰 들레이 의원은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총상을 입은 범인 러셀 유진 웨스턴 2세가 총을 계속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포에 떨고 있던 관광객들과 직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의사출신인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은 연설을 마치고 지역구로 가던 길에 총격전 소식을 듣고 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쓰러진 경찰관 2명과 범인을 응급조치했다. 그는 또 나중에 범인 웨스턴을 후송하는 응급차에 함께 타고 가며 인공호흡을 계속 해 주기도 했다. 의회경찰을 관장하는 빌 토머스 위원장도 총성이나자 몸을 숨기기는 커녕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관광객과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사후 수습을 주도했다. 2명의 희생자를 낸 경찰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보여주었다. 의회는 이런 아수라장이 됐던 의사당을 계속 개방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쌓았고. 바로 이들이 한 사회를 이끌고 나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풍토의 우리 사회와 너무 대조적이다.
  • 양심수에게 펜과 종이를(金三雄 칼럼)

    金大中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은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백악관의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모두발언에서 金대통령의 옥중서신에 있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않았다’는 구절을 인용, 金대통령의 정치역정에 대한 경탄을 거듭 나타냈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클린턴이 인용한 이 시구는 원래 영국 시인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 “if winter comes, can spring de far behind?(겨울이 만일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이다. 金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은 참담한 상황에서도 셸리처럼 언젠가 찾아올‘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짧은 지면에 긴 글을 썼다. 옥중의 DJ도 여느 수형자들과 같이 한달에 한번 단 한장의 봉함엽서로 그것도 가족에게만 편지쓰는 것이 허락되었다. 손바닥만한 우편봉함엽서에다 그는 깨알만한 크기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적어보냈고 이것이 후일 「김대중옥중서신」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양심수에게 집필이 허용되었다면 그는 6년여 동안의 옥살이에서 많은 글을 썼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문화의 값진 자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金대통령 뿐만 아니라 지난날 어두웠던 시절에 옥살이를 한 수많은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가 주어졌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훨씬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군사정권에 이어 金泳三정권은 양심수들이 글쓰는 것을 철저히 막았고, 지금까지 이런 규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당장 일반 수형자들에게까지 집필을 허용하기가 어렵다면 먼저 양심수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쓸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문명사회이기 때문이다. ○옥중에서 쓰여진 명저 지금 인류의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명저 가운데 상당수가 감옥에서 집필되었다. 니체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피로 쓰여진’저작물들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 옥중에서 ‘사기’를 썼고, 볼테르는 왕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감옥에 갇혀 ‘앙리아드’를 썼으며, 존 번연은 베드포드 군형무소에서 11년간 옥살이하면서 ‘천로역정’을 집필했다. 세르반테스는 왕실감옥에 갇혀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으며, 마르코폴로는 포로가 되어 ‘동방견문록’을 썼고, 오헨리는 ‘점잖은 약탈자’등 주옥같은 단편을 옥중에서 썼다. 프랑수아 비용은 사형을 선고받고 지하토굴에 갇혀서 ‘유언시’를 지었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투옥되어 ‘살로메’ 등 명작을 남겼다. 인도의 네루는옥중에서 ‘세계사 개설’을 썼으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많은 책을 썼다. 그들에게서 펜과 종이를 박탈했을 경우인류의 정신사가 얼마나 황폐했을 것인가 두렵다. ○읽고 쓰는 자유 문명사회의 기본 지금 감옥에는 적잖은 양심수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채 ‘안부편지’정도만 가족과 나눈다. 수백년 수천년 전에 인류는 이미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글을 쓰는 전통이 확립되고, 그 결과물이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터에 문명사회를 자처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수인(囚人)들의 붓과 종이를 빼앗을 것인가. 얼마전 출감한 황석영씨가 옥중에서 소설을 썼다면, 신영복 교수가 집필의 자유를 가졌다면, 우리는 보다 풍성한 문학과 사유의 향연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인의 집필금지는 국력의 손실임을 절감하게 된다. 연장선상에서 박노해씨나 박태웅씨 등이 지금 감옥에서 글을 쓸 수 있다면 후일 값진 문화적 자산을 남기게 될 지도 모른다. 아침햇살에 골안개 사라지듯 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신조를 이유로 양심수들의 집필권을 박탈하는 것은 반문명적 시대착오다. 펜 한자루와 종이 한장이 아쉬워 봉함엽서에 5천여자를 썼던 金대통령의 아픔을 이해한다면 새정부는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를 주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 도쿄 국제기독대학 로저 버클리 교수 IHT 공동 기고(해외논단)

    ◎英·日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을 영국 정부가 공식 방문중인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크게 반기고 있지만 영국 국민들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2차 대전중 일본군의 포로였던 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도쿄 국제기독대학의 역사 교수인 로저 버클리씨와 영국 BBC방송의 유럽전문가 윌리암 호슬레이씨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과거청산이 있어야만 양국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다음은 기고문의 요약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최근 영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공헌도를 강조하며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공조해나갈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영국에 일본의 공장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살인적인 철도 공사현장이나 싱가포르의 창이 감옥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을 잊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왕의 방문은 영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함께 또다른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재향군인회의 한 간부는 영국 왕실이 최고 명예작위를 아키히토 일왕에게 수여하는 것은 당시 참전용사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의 영국군 참전용사그룹은 전쟁에서 입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으로 일단락된 정부 차원의 보상책을 거부하며 가해국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당하게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협정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일시불로 76파운드(약 17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보상책은 악몽과도 같은 전쟁의 상처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모욕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영국 방문에 강도높게 항의하고 있는 영국의 재향군인회와 유가족,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좀더 책임있는 태도를 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서 불성실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던 터다. 향후 다각도의 경제협력을 모색중인 일본과 영국 정부는 좀더 전체적인 협력체제의 모양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정부간의 경제적 이해에 앞서 먼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막고 있는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전쟁희생 당사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한 해결책으로 최근 독일과 체코 정부가 조성한 ‘화해기금’의 사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독일과 체코 정부는 이 기금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체코 상이군인들의 노후생활을 지원키로 했다. 영국과 일본이 이같은 조치들을 함께 실행해 갈 수 있을 때 두 나라 역시 진정으로 아픈 과거사를 묻고 미래를 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국민봉사 정보기관으로”이미지 개선/안기부 17년만의 改名 배경

    ◎국가안보·경제 재도약에 초점/국민의 정부 서비스 개념 부각 국가안전기획부가 지난 81년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로 바뀐이래 17년만에 국가정보원(약칭 國情院,영문명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특히 영문으로 봉사개념의 서비스를 사용,안기부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대정신과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토록 했다.이는 李鍾贊 안기부장이 구상하고 있는 기업 등 민간에 관련정보를 파는 ‘정보의 상품화’와 관련지어 볼 때 새로운 개혁 프로그램의 방향타인 셈이다. 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도 지난 61년 6월10일 중앙정보부로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장장 37년만에 바뀌게 된다.‘정보는 국력이다’로 결정함으로써 이것 역시 향후 국정원의 역할이 국가안보와 경제 재도약을 위한 정보 수집에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안기부가 부명칭과 부훈을 개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50년만의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만큼 부 이미지를 개선하고,국민에 봉사하는 정보기관으로 쇄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기부는 이를 위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지난 6일부터 18일까지 부명칭 652건,부훈 707건을 모집했고,PC통신 하이텔을 통해 128건의 제안을 받았다.이 기간 동안 무려 4천350명의 PC통신 매니아들이 열람,높은 호응도를 기록했다는 게 안기부측의 설명이다. 공모된 개정안은 부회의를 거쳐 명칭은 최종 국가정보부와 국가정보원,국민정보원 등 3개로 압축됐다,그러나 부드러운 이미지에다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의미가 함축된 국정원이 최종 선정되었다는 전언이다.부훈은 ‘국가에 충성,국민에 봉사,역사에 정직’과 ‘알아라 그리고 알려라’ ‘예견하라 그리고 대비하라’ ‘(국가와 국민에게)필요한 정보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정보는 곧 국력이다’ 등 5건이 결선에 올랐다는 후문이다.모두 국가정보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진취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등 나름의 상징성을 갖추었으나 21세기가 무한경쟁시대인 만큼 이에 맞는 ‘정보는 국력이다’로 낙점됐다는 게 안기부측의 설명이다. □세계 주요국 정보기관의 명칭과 부훈 ▷미국◁ ­명칭:중앙정보국(CIA) ­부훈:진리를 알진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명칭:연방수사국(FBI) ­부훈:충성·용기·성실 ▷중국◁ ­명칭:국가안전부 ­부훈:정예간부들이 당에 충성을 해야 한다 ▷러시아◁ ­명칭:해외정보부(SVR) ­부훈:특무원은 반드시 차가운 누되와 뜨거운 가슴, 깨끗한 손을 가져야 한다 ▷영국◁ ­명칭:보안부(SS) ­부훈:왕실을 보호하라 ▷프랑스◁ ­명칭:국토감시국(DST) ­부훈:음지에서는 엄격하고 양지에서는 명철하게 ▷일본◁ ­명칭:공안조사청 ­부훈:먼저 고민하고 나중에 즐거워한다(先憂後樂) ▷스페인◁ ­명칭:국방정보본부(CESID) ­부훈:알면 승리한다 ▷멕시코◁ ­명칭:안전조사총국(CISEN) ­부훈:과거를 기억하라. 현재를 이해하라. 미래를 예견하라. ▷호주◁ ­명칭:호주보안정보부(ASIO) ­부훈:국가안보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한다
  • 애낳다 죽는 경우는 지금도 있다(박갑천 칼럼)

    청(淸)나라때 유희주인(遊戱主人)이 썼다는 (笑林廣記)에 이런 우스개가 있다.애를 낳으면서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아내가 곁에 있는 남편에게 내뱉는다. “이 원수야,나죽겠어.인젠 당신 싫어.애는 필요없단 말야”.계집애를 낳고 이름을 지어주게 됐을때 아내는 눈웃음으로 숙설거린다.“얘이름을 초제(招弟)라 해요”.‘초제’라니.사내동생 보자는 뜻 아닌가. 우스개기는 해도 이것이 여성의 출산과 부부관계.조물주가 그렇게 마련해놓은 것이리라.어쨌거나 출산의 고통은 세상어머니 누구고 겪는다.그를 두고 은 그 은혜 잊지말라고 세상자식들에게 가르친다.“…잉태하여 열달이 지나니 해산의 어려움이 다가오네.그 두려움 어찌 다 기억하리.…슬픔 머금고 친족에게 하는말은 오직 죽지나 않을까 두렵다는 것이네.…자애로운 어머니께서 그대를 낳으신 날 오장이 열리고 벌어졌네.몸과 마음이 까무러쳤고 피는 흘러 양을 도살한것과도 같았네.…” 이런 아픔속에서도 순산만 한다면야 오죽 좋으랴.하건만 지난날에는 산모만 혹은산모·태아 함께 죽는일이 어디 한둘이던가.그랬기에 우리 옛어머니들은 아기낳으러 산실로 저적거리고 들어서면서 벗어놓은 신발 다시 신을수있을까하는 비감에 젖어들었다.왕실에서도 조선 단종(端宗)어머니(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죽었으니 하물며 민간에서 심봉사마누라가 沈淸을 낳고 죽은일이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가슴아픈 여운을 긋는 작품이 헤밍웨이의 아닌가 한다.소설로 영화로 세계인의 마음을 슬프게한 비련 아닌가.세계1차대전때 이탈리아 동북부전선에서 전상자 운반대의 중위로 근무하는 미국인 프레더릭 헨리.그는 어느날 영국인 종군간호사 캐서린 버클리를 소개받는다.열렬한 사랑끝에 캐서린은 임신하고 로잔의 병원에서 난산으로 제왕절개수술을 받았으나 산모와 아기가 함께 죽고만다. 얼마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바에 따를때 애낳다가 죽는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하루 1천600명 꼴이라고 한다.과학 난만한 이시대에도 의료혜택의 사각지대 많은 아프리카쪽에서는 출생아 10만명에 1천명꼴이라는 높은 사망률을보인다.이에비해 북유럽은 12명이고 우리나라는 20명(95·96평균)이다.지지난해 출산중의 자부를 잃고 그 손자를 키우고있는 부산 친구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 21세기 기산점 뒤늦은 논란/英 “2001년부터” 95년 공식화

    ◎중 “2000년이 타당” 최근 반론/국제기구도 이견… 통일 시급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2000년인가,2001년인가”. 눈앞에 닥친 21세기를 앞두고 그 기산점(起算點)을 언제로 할 것인가를 따지는 논란이 벌어졌다.2001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21세기의 기산점을 2000년으로 해야 한다고 중국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온 까닭이다. 신·구세기 교체는 세계적인 관심사이다.2000년대 진입은 더욱이 1천년(millenium) 만에 한번 오는 것으로 국제사회 여러 부문의 활동과 직접 관련돼 있다.세기 구분에 관해서는 1995년 영국왕실의 그리니치천문대가 이미 21세기의 기산점이 2001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인류가 통용하는 연대기 가운데기원 0년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중국천문학명사심사결정위원회는 최근 국제천문학연합회에 공식으로 서한을 보내 21세기를 2000년 1월1일부터 계산하는 한편 세기구분과 2000년 귀속에 관한 통일규범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1900년대가 끝나는 2000년부터 마땅히 21세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중국의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달 베이징 교외의 파다링(八達嶺) 만리장성 기슭에 대형 ‘역산(逆算) 날짜시계’를 설치,매일매일 2000년까지 남은 날짜를 고시하고 있다.누가 뭐라든 중국은 2000년부터 21세기를 계산한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현재 21세기의 기산점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것 같지는 않다.그리니치천문대의 기산점 발표 직후 영국시민들 가운데서도 일부가 이 결정에 반대했으며,많은 국제기구과 국제적 인사들 사이에서도 언제부터 21세기가 시작되는지를 둘러싸고 일부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결국 세기말 계산에서 1년이라는 차이가 나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것이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강력히 일고 있다.
  • 화폐불임/우홍제 논설위원실장(외언내언)

    고대와 중세 서양에서는 이자를 매우 죄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불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돈은 생명체가 아니므로 자식을 낳을수 없다는 식이다.이자를 가난한 자에 대한 악랄한 수탈수단으로 보고 이를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다.로마교회는 9세기에 아예 이자금지법을 제정,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엄한 칙령을 내렸다.교황 그레고리10세의 경우 고리대금업자에게 집만 빌려줘도 파문한다고 으름장 선언을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유태인만은 달랐다고 한다.유태인은 종교적으로 로마교회의 구속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게다가 유태교는 이자받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시절부터 이미 금융업과 상권은 자연 그들 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서양경제사는 적고 있다.영국을 비롯,대부분의 중세 기독교국가의 왕실은 내탕금을 포함한 국고관리를 유태인들에게 맡겼다.이자놀이의 죄악은 유태인에게 떠넘기면서 돈을 불려 가는,눈 가리고 아웅식의 자기기만이라고나 할까.어쨌든 유태인은 이재술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게 됐고 수전노의 불명예도 붙어 다니게 됐다. 그러나 1090년부터 약 180년 동안이나 계속된 십자군전쟁에 의해 전비운반위험의 대가로 기독교세계에서도 점차 이자를 받는 것이 불가피해졌고 이러한 역사적흐름은 산업혁명후 근대자본주의 성립과 함께 금융업발달을 촉진시킨다.이처럼 다사다난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국제금융동향을 결정하는 가장 긴요한 독립변수로 떠받들여지는 이자이건만 엄격한 코란경전의 율법이 지켜지는 중동에서는 아직 푸대접신세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외환은행 바레인지점에 따르면 중동계 은행들은 “단기외채를 중장기로 전환할 경우 이자수수를 금하는 코란에 위배된다”며 한국의 외채상환연기협상에 난색을 보인다는 것이다.이들은 그동안 한달이내의 단기자금을 한국측 은행에 빌려주고 받은 돈은 이자가 아니라 상대방 편의를 봐주고 지급받은 수수료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자국민들의 예금·대출도 이자가 아닌 수익금과 수수료 등으로 취급하는 등 율법 우선의 금융관행이 지켜진다는 것이다.현대의 화폐불임이라고나 할까.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영 윈저궁 복원 공개/92년 화재로 방 1백개 소실

    ◎5년간 930억원 규모 투입 【윈저(영국)AFP 연합】 5년전 큰 불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영국 왕실의 자랑거리 윈저궁이 복원돼 27일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재공개됐다. 공개직후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영국 최대의 역사적인 복원공사의 결과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등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런던 서쪽에 위치한 윈저궁은 지난 92년 11월20일 궁내 소예배실에서 발생한 불로 방 1천개중 1백여개가 소실됐다. 총 3천6백50만 파운드 (약9백30억원)가 든 복원비용은 여왕이 버킹엄궁을 여름철마다 일반 대중에 공개해서 받는 입장료 수입과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사업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 이것이 히트상품이다­주류부문/’97히트상품

    ◎진로­참나무통 맑은소주/깨끗하고 부드러운 맛/올 시장점유율 75% 기록 지난 해 6월 소주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 제품은 프리미엄급 소주 시장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이른바 ‘참통’으로 통하는 이 제품은 기존의 희석식 소주의 단점을 극복했다.즉 희석식 소주의 맑고 깨끗한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증류식 소주의 깊고 부드러운 맛을 내게 했다.진로는 이 제품으로 증류식 소주의 대중화를 앞당기고 프리미엄 소주의 제왕에 오를 수 있었다.올해 시장 점유율 75%가 이를 반증한다. 참나무통 맑은소주의 히트비결은 소비자가 원하는 부드러운 맛을 제품에 제대로 담아냈다는 점과 함께 소비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었다는 점이다.기존병보다 다소 작은 330㎖의 병을 채용하고 포장도 고급스럽게 제작한 데다 제품명도 자연의 순수함과 제품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순우리말을 사용한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순쌀로 빚어 증류한 뒤 참나무통 속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 원액을 첨가해 깊고 부드러운 맛과 마신 뒤의 깨끗함을 특장점으로 내세우는 참나무통맑은 소주의 제품 특성은 소주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지난 한해동안 24개의 상을 진로에 가져다 주었다. 일본시장에서도 판매량을 크게 늘린 공신이 됐다. ◎OB맥주­OB라거/고급 원료·회오리 공법/잡맛­잡향 말끔히 뽑아내 OB맥주의 97년도 야심작이다.최고급 원료와 특수효모인 S­이스트를 이용한 첨단공법으로 생산되는 이 맥주는 소비자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선사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여름 첫 출시된 OB라거는 국내 최초로 이른 바 ‘회오리 바람 공법’을 도입,맥주의 독특한 맛을 저해하는 잡맛,잡향을 회오리의 원심력을 이용,깔끔하게 뽑아내 애주가들에게 항상 첫잔을 마시는 것같은 상쾌한 맛을 제공하고 있다. OB는 이 제품의 생산을 위해 제품개발전략팀을 구성, 1년여동안 18차례에 걸쳐 연인원 20만여명을 대상으로 시음을 거쳤다.또 ‘OB라거’의 레이블도 기존의 깊고 부드러운 맛에 상쾌함이 강화된 맛의 변화에 따라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OB라거의 달라진 맛과 상표에 대한 반응은 지난 해 동종업계 최다 히트상품 수상과 함께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최하는 고객만족 최우수상 수상에 이어 올해도 선정됐다는 데서 나타나고있다.이른바 ‘랄랄라’ 맥주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OB라거 맥주는 수도권지역 판매 1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같은 상승세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두산경월­그린소주/부담스러운 뒷맛 잡아/시장점유율 3년만에 4배로 두산이 부드러운 소주시대의 선주주자로 자부하는 제품이다.‘그린’(녹색)이라는 제품명과 대관령 기슭의 청정수를 사용한 환경친화적 제품이라는 신개념의 이 소주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변화 추세에 힘입어 비약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더욱이 소주 애용자들을 괴롭혀온 희석식 소주의 부담스러운 뒷맛을 ‘확실하게’ 없앴고 다음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숙취라는 단점을 극복했다.올리고당을 첨가한 게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제품특성 외에 세련된 디자인과 온화하고 정감이 있는 녹색의 외형도 기존의 소주병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며 그린의인기몰이에 일조했다.그린소주는 94년 1월 수도권에 첫선을 보인 후 당시 5.1%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이 94년 말 2배 가량인 5.4%,이어 96년 16.8%,지난 5월 20%로 3년만에 4배로 확대해왔다. 희석식 소주시장에서 ‘부드러운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셈이다.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지난 95년 일본에 처음 수출된 그린소주는 수출 3년만인 올해 주류업계 최초로 1천3백만달러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두산경월이 올해 1천만달러 수출탑,철탑산업훈장을 받게된 일등공신이다. ◎하이스코트­딤플/독특한 향에 맛도 일품/국내 최정상의 자리 지켜 영국 헤이그 가문의 하이랜드 몰트 위스키와 최고 품질의 로우랜드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글렌킨치 증류소의 부드러운 몰트위스키가 잘 조화된 부드러운 위스키.독특한 향과 맛이 일품이다.로우랜드 몰트와 하이랜드 몰트의 절묘한 블랜딩이 국내 최정상의 위스키로 군림하는 비결이다. 1627년 영국의 로버터 헤이그가 증류를 시작해 빛을 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증류업자의 이름을 따 ‘헤이그’로 이름지어졌으나 1920년에 딤플로 이름을 바꾸었다.보조개가 파인 듯한 독특한 병모양이 소개된 지 27년 만이었다.딤플이 그 독특한 맛과 향으로 진가를 인정받은 것은 1911년과 1912년 조지 5세로부터 왕실보증서를 받은 게 시초다. 딤플이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58년 미국에서 딤플 병모양이 특허로 등록되면서부터.미국에서는 현재 병모양 때문에 핀치로도 불리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딤플로 자리잡았다.87년에는 세계 주류품평회에서 디럭스 위스키 부문에서 금상을 낚아채기도 했다.숙성이 오래된 하이랜드 몰트 위스키에 혼합된 로우랜드 몰트 위스키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과 함께 풍부한 향을 내 딤플을 국내 최정상의 위스키로 자리잡게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 사진과 함께 영원한 다이애나/내일부터 KOEX서 추모 특별전시회

    유치원 보모에서 왕세자비로 점프.하지만 선망의 순간도 잠깐.바람난 남편,왕실의 버림,아이들과의 이별….상처를 딛고 서려는 긴 몸부림끝에 뭔가 서광이 비칠듯 하던 짧은 순간.그러나 가혹한 운명이 가속도가 붙을락 말락한 희망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낸다…. 얼마전 죽은 영국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이런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더욱 연민의 불꽃을 일으켰다.다이애나가 온정의 손길로 많은 자선,자원봉사 활동을 폈다는 ‘미담’도 관심을 부추겼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사진통신사인 시파 프레스와 함께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사진전을 20일부터 98년 1월25일까지 KOEX 1층 B블록 특설전시장에서 연다. 처녀시절부터 파리에서의 최후까지 전 생애를 200여점의 사진에 담았다.특히 이혼후 사회봉사활동 하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소개된다.문의 738-8503.
  • 영 여왕부처 오늘 금혼식/유럽 왕실인사 축하행사에 대거 참석

    ◎4자녀중 3명 이혼… 가정생활 낙제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71)이 20일 필립공(76)과의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신화같은 비극을 연출한 맏아들 찰스 왕세자를 비롯,맏딸 앤공주,둘째아들 앤드루 등 4자녀 가운데 3명이 모두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생활면에서 왕실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여왕.그래서 그녀의 금혼식은 더욱 세상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저히 ‘여왕’으로 길러진 엘리자베스가 망명 그리스 왕실가족의 일원이었던 필립공과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2차대전 복구가 한창이던 1947년 11월 20일.필립공이 다트머스해군대학 사관생도로 있을때 엘리자베스가 이 곳을 방문하면서 두사람의 만남은 시작됐다.엘리자베스가 스포츠로 단련된 매력적인 미남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26살 필립과 21살의 이지적인 황녀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전후 영국인들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여왕부부에게도 불화설이 없진 않았다.그러나 구체적인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으며 분명한 것은 이들이 공적,사적 생활에서 서로에게 가장 충실한 지원자였다는 사실.필립공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군주인 아내를 ‘여왕님’으로 지칭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릴리벳’으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필립공은 측근들에게 자신의 임무가 ‘여왕이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왕을 애정으로 지원해왔다. 왕실은 여왕부부의 금혼식 행사로 19일 기념오찬회와 음악회,20일밤 윈저성에서 비공식 무도회를 열며 공식행사로 20일 오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축하예배를 개최한다.웨스트민스터 행사에는 1952년 여왕 대관식 이래 최대 규모의 외국 왕실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예배가 끝난 후에는 정부 주최의 공식오찬회가 열린다.
  • 영 유명인 사생활보호 확대/다이애나 사망계기 새 보도지침 마련

    ◎오토바이 추적·자녀문제 기사화 금지 【런던 AP AFP 연합】 다이애나의 사망으로 언론의 취재관행에 비난여론이 드센가운데 영국의 신문사 간부들로 구성된 신문불만처리위원회(PCC)는 25일 자숙 대책으로 새로운 사생활보호 지침을 마련했다. PCC 의장인 위컴경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5개항의 취재 및 보도 규제안을 발표하고 사생활보호 지침이 느슨한 편인 영국 신문사들에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이 지침을 수용해줄 것을 촉구했다. 위컴의장은 다이애나가 파파라치로 불리는 프리랜서 사진사들의 집단추적을 받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취재원을 오토바이로 따라붙거나 미행하고 추적하는 행위 등은 용납될 수 없으므로 이들로부터 사진을 입수한 편집인들은 엄격한 검열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개 주요 지침은 ‘편집인은 사진제공자로부터 사진입수경위를 확인할 의무를 진다’는 파파라치를 겨냥한 규제안을 비롯해 기자들의 취재대상집단 봉쇄 및 괴롭히는 행위 금지,미성년자들에게 취재대가 지불금지,유명인사 자녀들에 대한 기사화 금지 규정 강화,사진촬영을 금지한 개인재산구역의 규정확대 등이다. 영국언론들은 신문편집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환영을 표했으나 일각에서는 규제위반에 대해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 한 왕실가족에 대한 추적은 계속될 것이라며 규제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PCC는 항의가 접수될 경우에 한해 행동에 나설수 있으나 항의에 대한 판정을 신문에 게재토록 요구할 수 있는 이상의 집행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 방송으로 하는 선거(송정숙 칼럼)

    TV가 안방을 차지하기 시작했을때 우리는 이 황당하도록 신기한 매체를 “안방에서 함께 살아야 할 새가족”으로 맞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어느날 깨닫고 보니 그는 그냥 ‘식구’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처럼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신을 규정하는 특징은 사람의 마음속을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고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무소불능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있다.오늘의 전파매체가 하는 일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우리의 온 생활이 TV를 벗어날수 없게 되었으며 지구촌 어느 오지 원시림속의 산간벽지도 TV매체가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그리고 그는 시시각각으로 뉴스를 전한다.‘복음’의 본체는 뉴스다.가족의 일원으로가 아니라 그의 품에 우리를 품고 사는 거대한 ‘능력’으로 TV는 이미 군림하고 있다.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감들이 체신없게시리 에이프런에 프라이팬을 들고 우스개짓을 하고 눈물을 뿌려가며 누선을 자극하는 일들이 연예인 코미디언같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그렇지만 그또한 무한대로 큰 전파매체의 ‘능력’이 하는일일 것이다.국가경영 능력을 증거하고 정책개발 능력을 검증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친화력으로 접근하는 일도 후보들을 알아보는 중요한 역할이므로 이런 프로그램이 그렇게 부정적인 기능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시정에는 있다.그것도 TV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도 좌지우지 이렇게 대통령후보를 입체적이고 다원하게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진 TV가 그 능력을 어떻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일이다.그가 편파로 기울면 사회정의가 기울고 그들이 천박해지면 사회의 품위가 추락한다.시민정신의 전진도 후퇴도 이끌수 있고 모든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그러므로 광장에 ‘백만인파’를 모으며 세로 겨루던 고전적 선거운동방식이 퇴화하고 TV가 모든 기능을 수렴할 수 밖에 없어졌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위하여 벌써 여러번의 방송토론이 있었다.법의 범위안에서 앞으로도 거듭될 것이다.오랜 야당생활로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되던 후보가 노련한 솜씨로 좌중을 사로잡으며 빛나는 화술을 과시하는 실상도 볼수 있었고 그보다는 서툴지만 새로운 주자가 보여주는 신선함도 접할수 있었다.그 자체가 우리시대의 성숙성을 입증하는 것 같아 시청자의 기분은 흐뭇하다.이 자유와 민주도의 체험을 심화시키는 우리 시대가 소중하다.그 소중함을 훼손시키지 않는 책임이 방송에는 있다. ○시청률 경쟁·상업성 경계 대선주자들의 품위를 생각하는 시청자의 소리도 묵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는 경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 세미나에서 중국측 참가자는 이런 비판을 했다.“영국이라나 어디서 죽은 왕실여자 이야기에 그렇게 많은 전파를 쓰는 한국 방송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보다는 어느 고등학생들이 물에 빠진 어린동생들을 구하고 희생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보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요즈음 한국에서는 청소년문제도 심각하다던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참가자다운 반응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는 방송의 공공기능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들어있다.지진이 났을때 일본의 방송이 보이던 보도태도는 우리를 반성하게 했었다.시신을 발굴하는 현장에 휘장을 치고 단 한번도 적나라한 주검을 비친 적이 없었다.하다못해 흰천이 덮인 관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모양도 비친 일이 없었다.유족들의 ‘몸부림’도 보여주지 않았다.희생자들의 ‘품위있는 죽음’의 권리를 철저히 지켜주는 태도가 놀라웠다. ○놀라운 위력만큼 책임도 아직 젊은 매체인 방송은 그 위력의 놀라움에 오랫동안 취해 있는 것같다.잘드는 도끼의 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르지 않아도 좋을 생나무를 자르는 지각없는 호기심도 없지 않다.대선주자들을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는 일이 시청자에게는 그렇게 비칠수 있다.미국에 사는 한인이 흑인과 시비가 붙자 태권도 자세를 취했다가 상대방이 쏜 총에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유족이 총쏜 사람을 고소했지만 재판에선 졌다.태권도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격투기이므로 그 자세를 보고 총을 쏜 것은 정당방위라는 것이다.황당한 것 같지만 이런 논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모든 의견이 있을수 있다. 위력이 놀라운만큼 책임도 크게 따른다.이번 선거가 전적으로 방송매체가 주도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들 말한다.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방송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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