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영국군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과거사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요거트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사무국장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골키퍼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72
  • [월드피플+] 2차 세계대전 당시 ‘단신 군인과 장신 포로’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닫던 지난 1944년. 연합군 소속의 한 병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포로로 잡힌 한 나치 병사를 몸수색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보도돼 세계적인 화제에 올랐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밥 로버츠 상병, 포로는 독일군 제이콥 나켄이었다. 두 사람의 사진이 화제를 모은 것은 로버츠는 160cm의 키로 영국군 중 최단신 중 한 명, 반대로 나켄은 229cm로 최장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서구언론들은 '다윗과 골리앗'을 운운하며 이 사진을 헤드라인에 걸었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상징처럼 평가했다.   이 사진을 최근 영국언론들이 다시 보도하고 나선 것은 얼마 전 사진 속 주인공인 로버츠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나치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킨 공로를 기려 그에게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뒤늦게 우편으로 보냈다. 참혹한 전쟁이 끝난지 70년. 이후 사진 속 두 주인공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먼저 이제는 92세의 증조 할아버지가 된 로버츠는 영국 도싯에 살고있다. 캐나다에서 성장한 그는 지난 1942년 입대했으며 벨기에와 네덜란드등 유럽 각지의 전장을 누볐다. 전투 중 옆 전우가 포탄에 사망하는 광경을 지켜본 것은 물론 저격수 총에 맞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것은 빼놓을 수 없는 그의 무용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친동생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결혼해 네 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그렇다면 또다른 주인공 나켄의 삶은 어땠을까? 사실 그의 삶은 더욱 파란만장하다.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인 나켄은 전쟁 전 미국의 서커스단에서 일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30대의 늦은 나이에 모국으로 돌아가 군에 입대한다. 이후 그는 사진에서처럼 연합군의 포로가 됐지만 종전 후 삶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 사진 한장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브로드웨이 배우로 활동하며 전국구 스타가 됐다. 이후 말년에 고향 독일로 돌아간 그는 지난 1987년 81세 나이로 작고했다. 로버츠는 과거 인터뷰에서 "당시 그를 키 큰 독일군 병사로만 기억했으며 이름이 뭔지도 몰랐다" 면서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잘해 나중에 미국 서커스단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회고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전쟁의 참상은…아프간 참전 英병사 전쟁 전-중-후

    전쟁의 참상은…아프간 참전 英병사 전쟁 전-중-후

    전쟁의 참상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시선을 끌고 있다. 영국 사진작가 랠러지 스노우는 영국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 1대대 병사들을 7개월간 추적하며 그들의 아프카니스탄 참전 전·중·후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에는 단 7개월만에 이들의 외양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나 그들이 겪었을 전쟁의 잔혹함을 짐작하게 한다. 각 인물의 첫 번째 사진은 파견되기 전 에딘버러에 있는 막사에서 촬영한 것이고 두 번째 사진은 아프간 현지에서 찍었다. 마지막 사진은 복귀 3일 후에 촬영됐다. 랠러지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병사들의 얼굴이 짧은 기간동안 원래의 근심 없는 표정에서 단련된 병사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는 과정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랠러지는 병사들의 사진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장에서 느낀 경험을 직접 인터뷰 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벤 프라터 일병(21)은 아직도 동료병사였던 워턴이 적의 습격에 부상당하던 순간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한다. 프라터는 “그 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엄폐물을 찾지 못한 워턴은 다리에 총격을 받았다. 부상당한 그를 이끌고 구조 헬리콥터까지 탈출하던 과정은 악몽과도 같았다”고 전한다. 그는 “집에 돌아온 지금은 10분 만 가만히 있어도 지루함을 느낀다. 반면 전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감이 닥쳐왔기 때문에 늘 무슨 일이든 손에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조 야발라 일병은 전장에 있는 동안은 불안감과 공포에, 전장에서 돌아온 지금은 간혹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짜증에 시달리고 있다. 야발라는 “원래는 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만 기도를 했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모든 순간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렸다”며 당시의 불안함을 전했다. 그는 이어 “돌아온 지금은 늘 조금 화가 나있는 상태다. 특히 실내에서 오래 머물 때는 간혹 체온이 갑자기 상승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15살 때부터 군인의 삶을 늘 꿈꿔왔던 션 패터슨 일병(19)은 이제 인생에 대해 조금 다른 전망을 가지게 됐다. 패터슨은 “사람들은 삶이 그저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버스에 치이기라도 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며 “내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이다. 전장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국군이 간섭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다”면서 “팔다리를 2~3개 씩 잃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마땅한 직업도 얻지 못할 것 ”이라고 말해 전쟁에 대한 회의를 드러냈다. 사진=ⓒ랠러지 스노우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스마트워치·스마트글래스 장착한 영국 보병 공개

    스마트워치·스마트글래스 장착한 영국 보병 공개

    영국 국방부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2015 국제 안보장비전’(DSEI)에서 2020년대 중반부터 활약할 ‘미래 영국 보병’의 첨단 장비들을 공개해 화제다. 이번에 공개된 미래보병의 모습은 향후 영국 병사들에게 첨단 장비를 지급하겠다는 영 국방부의 장기 계획인 ‘퓨쳐 솔저 비전’(Future Soldier Vision, 이하 FSV)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FSV는 이미 등장한 기술, 혹은 현재 실제로 연구 중인 기술에 기초해 기획중인 만큼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 더 관심을 끈다. 국방과학기술연구소의 로스 존스는 “FSV 프로젝트는 10년 후 미래 병사의 모습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는 국방부, 산업계, 학계가 이러한 미래의 실현을 위해 향후 무엇을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알려주는 좋은 토대가 된다”고 전했다. 공개된 장비들은 영 육군,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Defence Science and Technology Laboratory), 그리고 사설업체인 키네어 듀포트(Kinneir Dufort)와 SEA 등이 함께 개발 중인 것이다. 핵심 장비들은 다음과 같다. ▲ 전술정보 출력 스마트글래스 미래 영국군 병사들은 일종의 스마트글래스를 지급받게 된다. 사령관들은 이 스마트글래스의 화면에 주변 지도, 전술 숙지사항, 적의 위치, 드론 정찰기의 관측영상 등을 전송해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병사들은 눈앞 화면에서 즉각적으로 필수적인 전투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전자 나침반을 출력해 방위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 카메라 장착 경량 헬멧 미래 영국 보병들이 착용하는 경량 헬멧에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장착될 예정이다. 동료 병사와 지휘관 모두 이 카메라에 촬영되는 영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함정이나 기습 등의 위협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 병력이 빠르게 이에 대처하게 된다. 또한 헬멧에는 골전도 방식(고막이 아닌 뼈를 울려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 헤드폰이 내장돼 있어 전장의 소음 속에서도 보다 명확하게 무선 메시지를 청취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 병사의 건강을 책임지는 스마트워치 병사들이 착용한 전투복 상·하의에는 심장 박동 수, 혈압, 산소 흡입량 등을 체크하는 첨단 센서들이 내장돼 있다. 이 센서들에 수집된 정보는 병사들이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에 종합적으로 표시된다. 이를 통해 의무병들은 각 병사의 건강상태를 빠르게 확인, 효과적인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지휘관들 역시 휘하 장병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병사를 임무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용이해진다. 더불어 이 스마트워치에도 스마트글래스와 마찬가지로 주변 지도나 아군 및 적군의 위치 또한 표시될 예정이다. ▲ 그 외 미래 영국 병사들은 이외에도 스마트폰 형태의 첨단 무선 컴퓨터, 내구력과 기동성이 모두 강화된 신형 방탄복 등을 지급받게 된다. 다소 평가가 좋지 못한 영국 육군 제식 돌격소총 SA80 또한 개량된다. 개량된 신형 SA80에는 디지털 조준경 또한 설치될 예정인데, 이 조준경엔 각 병사들이 조준하고 있는 표적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화력 집중이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사진=ⓒ영국 국방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미래 병사의 모습? ‘스마트’ 한 영국 보병 공개

    미래 병사의 모습? ‘스마트’ 한 영국 보병 공개

    영국 국방부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2015 국제 안보장비전’(DSEI)에서 2020년대 중반부터 활약할 ‘미래 영국 보병’의 첨단 장비들을 공개해 화제다. 이번에 공개된 미래보병의 모습은 향후 영국 병사들에게 첨단 장비를 지급하겠다는 영 국방부의 장기 계획인 ‘퓨쳐 솔저 비전’(Future Soldier Vision, 이하 FSV)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FSV는 이미 등장한 기술, 혹은 현재 실제로 연구 중인 기술에 기초해 기획중인 만큼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 더 관심을 끈다. 국방과학기술연구소의 로스 존스는 “FSV 프로젝트는 10년 후 미래 병사의 모습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는 국방부, 산업계, 학계가 이러한 미래의 실현을 위해 향후 무엇을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알려주는 좋은 토대가 된다”고 전했다. 공개된 장비들은 영 육군,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Defence Science and Technology Laboratory), 그리고 사설업체인 키네어 듀포트(Kinneir Dufort)와 SEA 등이 함께 개발 중인 것이다. 핵심 장비들은 다음과 같다. ▲ 전술정보 출력 스마트글래스 미래 영국군 병사들은 일종의 스마트글래스를 지급받게 된다. 사령관들은 이 스마트글래스의 화면에 주변 지도, 전술 숙지사항, 적의 위치, 드론 정찰기의 관측영상 등을 전송해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병사들은 눈앞 화면에서 즉각적으로 필수적인 전투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전자 나침반을 출력해 방위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 카메라 장착 경량 헬멧 미래 영국 보병들이 착용하는 경량 헬멧에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장착될 예정이다. 동료 병사와 지휘관 모두 이 카메라에 촬영되는 영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함정이나 기습 등의 위협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 병력이 빠르게 이에 대처하게 된다. 또한 헬멧에는 골전도 방식(고막이 아닌 뼈를 울려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 헤드폰이 내장돼 있어 전장의 소음 속에서도 보다 명확하게 무선 메시지를 청취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 병사의 건강을 책임지는 스마트워치 병사들이 착용한 전투복 상·하의에는 심장 박동 수, 혈압, 산소 흡입량 등을 체크하는 첨단 센서들이 내장돼 있다. 이 센서들에 수집된 정보는 병사들이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에 종합적으로 표시된다. 이를 통해 의무병들은 각 병사의 건강상태를 빠르게 확인, 효과적인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지휘관들 역시 휘하 장병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병사를 임무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용이해진다. 더불어 이 스마트워치에도 스마트글래스와 마찬가지로 주변 지도나 아군 및 적군의 위치 또한 표시될 예정이다. ▲ 그 외 미래 영국 병사들은 이외에도 스마트폰 형태의 첨단 무선 컴퓨터, 내구력과 기동성이 모두 강화된 신형 방탄복 등을 지급받게 된다. 다소 평가가 좋지 못한 영국 육군 제식 돌격소총 SA80 또한 개량된다. 개량된 신형 SA80에는 디지털 조준경 또한 설치될 예정인데, 이 조준경엔 각 병사들이 조준하고 있는 표적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화력 집중이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사진=ⓒ영국 국방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英 ‘여왕 암살 모의’ 자국인 IS조직원 ‘드론 살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달 시리아에서 무인기(드론) 공습을 단행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영국인 조직원 2명을 살해했다고 뒤늦게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의회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공습을 진행한 뒤 의회에 사후 보고했다는 점과 더불어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7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각각 카디프와 애버딘 출신의 영국 국적 IS 조직원 레야드 칸(21)과 루훌 아민(26)이 지난달 21일 영국군의 드론 공습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영국인 조직원 주나이드 후세인(21)은 지난달 24일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15일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살을 모의했다. 앞서 5월 유럽 전승기념일과 6월 국군의 날 행사 등을 겨냥해 테러 음모도 꾸민 것으로 전해졌다. 캐머런 총리는 “이들이 올여름 전승기념일 등 관심이 집중된 공공 행사에서 테러 공격을 벌이려 했다”며 “영국 국민 안전을 위한 목적의 법무장관 승인을 거친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적법한 공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리엇 하먼 노동당 당수 직무대행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독립기관의 진상 조사를 요청하고 나섰다. 노동당의 새 당수로 유력한 제러미 코빈 의원은 “이번 공습을 긴급 사안으로 고려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의 케이트 앨런 지부장도 “영국군이 미국의 공중 즉결 처형에 가담한 셈”이라고 우려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SF영화가 현실로...美, 수송기서 ‘드론 출격과 ·착륙’ 프로젝트

    SF영화가 현실로...美, 수송기서 ‘드론 출격과 ·착륙’ 프로젝트

    하늘 위 수송기에서 여러 대의 드론(drone)이 출격,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귀환하는 SF영화같은 장면이 현실이 될 것 같다. 최근 미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폭격, 정찰 등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드론들을 하늘에서 발사해 귀환시키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름도 특이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그렘린 프로그램'(Gremlins program). 잘 알려진대로 '그렘린'은 지난 1984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하고 조 단테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 그렘린의 시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파일럿이 목격했다고 주장한 요정의 이름이다. 그렘린을 목격하면 비행기가 고장나는 일이 발생해 사실 '악동 요정'으로 더 유명하다. DARPA가 구상하는 그렘린 프로젝트의 목적은 간단하다. 먼저 다목적 임무가 가능한 여러 대의 드론을 싣고 수송기가 발진하고, 작전 지역에 도착하면 드론이 발사된다. 이후 임무를 완수한 드론은 다시 수송기로 복귀한다. 마치 전투기들을 싣고 전세계를 누비는 항공모함과도 같은 원리인데 이를 통해 얻는 이점도 같다. 일반적으로 드론은 작전 반경이 짧기 때문에 수송기를 이용하면 이같은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또한 이 드론은 20차례 재사용이 가능하게 제작돼 경제성도 높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 DARPA가 공개한 ‘비행항공모함’(Flying Aircraft Carrier) 구상안과 맞물려 있다. 비행항공모함은 영화 '어벤저스'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 나는 항공모함이다. 그렘린 프로젝트의 핵심 역시 드론이 안전하게 이륙하고 착륙하는 수송선의 개발로, 영화에서처럼 근사한 비행항공모함이 될 가능성보다는 기존 수송선을 개조할 가능성에 무게감이 쏠린다. DARPA 프로그램 책임자 단 퍼트는 "다목적 임무가 가능한 드론을 하늘에서 발사해 회수하는 작전 개념을 기술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 이라면서 "무인 시스템으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면 경제적인 비용으로 전세계 위험지역에서의 작전이 가능해질 것" 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수송기서 드론 출격과 착륙…美 ‘그렘린 프로젝트’

    수송기서 드론 출격과 착륙…美 ‘그렘린 프로젝트’

    하늘 위 수송기에서 여러 대의 드론(drone)이 출격,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귀환하는 SF영화같은 장면이 현실이 될 것 같다. 최근 미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폭격, 정찰 등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드론들을 하늘에서 발사해 귀환시키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름도 특이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그렘린 프로그램'(Gremlins program). 잘 알려진대로 '그렘린'은 지난 1984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하고 조 단테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 그렘린의 시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파일럿이 목격했다고 주장한 요정의 이름이다. 그렘린을 목격하면 비행기가 고장나는 일이 발생해 사실 '악동 요정'으로 더 유명하다. DARPA가 구상하는 그렘린 프로젝트의 목적은 간단하다. 먼저 다목적 임무가 가능한 여러 대의 드론을 싣고 수송기가 발진하고, 작전 지역에 도착하면 드론이 발사된다. 이후 임무를 완수한 드론은 다시 수송기로 복귀한다. 마치 전투기들을 싣고 전세계를 누비는 항공모함과도 같은 원리인데 이를 통해 얻는 이점도 같다. 일반적으로 드론은 작전 반경이 짧기 때문에 수송기를 이용하면 이같은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또한 이 드론은 20차례 재사용이 가능하게 제작돼 경제성도 높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 DARPA가 공개한 ‘비행항공모함’(Flying Aircraft Carrier) 구상안과 맞물려 있다. 비행항공모함은 영화 '어벤저스'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 나는 항공모함이다. 그렘린 프로젝트의 핵심 역시 드론이 안전하게 이륙하고 착륙하는 수송선의 개발로, 영화에서처럼 근사한 비행항공모함이 될 가능성보다는 기존 수송선을 개조할 가능성에 무게감이 쏠린다. DARPA 프로그램 책임자 단 퍼트는 "다목적 임무가 가능한 드론을 하늘에서 발사해 회수하는 작전 개념을 기술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 이라면서 "무인 시스템으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면 경제적인 비용으로 전세계 위험지역에서의 작전이 가능해질 것" 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위안부 없는 곳 없었다… 싱가포르·인니 섬 어딜 가도”

    “위안부 없는 곳 없었다… 싱가포르·인니 섬 어딜 가도”

    “어딜 가도 (조선인) 위안부가 없는 데가 없었습니다. 싱가포르에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도 다 있었어요. 수마트라 팔렘방 지역에는 제1명월관, 제2명월관 두 곳에 나뉘어 있었는데 그곳을 한국인 형제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1993년 8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 발표 22주년을 하루 앞둔 3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군무원으로 전범 재판을 받았던 한국인의 육성 증언 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싱가포르에서 B·C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던 일본군 군무원 출신 송복섭(작고)씨가 1990년대 초 증언한 인터뷰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송씨는 생전에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의 조선인 위안부 61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송씨는 영상에서 “수마트라섬 팔렘방 지역에는 한국인 위안부들이 ‘제1명월관’, ‘제2명월관’이라는 두 곳에 나뉘어 있었다. 군인들이 치른 요금은 50전이었고, 문 앞에도 ‘한 발(一發)에 50전’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명월관 운영자는 송씨 성을 가진 한국인 형제로, 이들이 일본군의 ‘끄나풀’이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 형제는 일본 패망 후 조선인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고 말했다. 위안부들이 종전 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가 자신이 돌봐 줬던 영국군 포로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송씨는 “담배와 커피를 몰래 가져다 주면서 친분을 쌓았던 영국군 포로인 리즈 중령이 아프리카에서 날아와 나를 위해 증언해 줬다”며 “이후 무죄로 풀려났는데 싱가포르에서 재판받은 한국인 중 무죄로 풀려난 사람은 두 명뿐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 이후에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법정에 다시 섰던 송씨는 계속해서 감금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1947년 5월 일본 사세보로 갔다가 부산을 거쳐 고향인 전남으로 귀환했다고 진술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송씨는 1940년대 초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일본군 군무원으로 입대, 인도네시아에서 포로 감시원과 보급병 등으로 일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팔렘방 지역의 자치조직인 ‘조선인회’에서 감찰 역할을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대통령의 스캔들 정책 결정에 영향 끼쳤다

    대통령의 스캔들 정책 결정에 영향 끼쳤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래리 플린트·데이비드 아이젠바흐 지음/안병억 옮김/메디치/432쪽/1만 8500원 역사가들은 사적인 스캔들 들추기를 꺼려 한다. 정사(正史)의 사료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흔히 영웅담과 신화는 ‘허구’라 불린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들은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켰고 그 파장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기 일쑤였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은 그 신화와 진실의 간극을 파고들어 흥미롭다. 저자는 성인잡지 ‘허슬러’의 설립자이자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사를 강의하는 데이비드 아이젠바흐 교수다. 그들이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사생활을 들춰냈다. 건국 초기부터 빌 클린턴까지 훑어 미국사의 민낯을 보여 준다. 책의 특징은 숨은 스캔들 공개에 그치지 않는 데 있다. 두 저자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방탕함은 자유이다. 말릴 수도 없다. 하지만 그 행각이 현실의 중요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제어할 수는 있다.” 책의 큰 흐름은 미국사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 주는 식이다. 신문 기사며 각종 사료를 동원해 풀어낸 상관관계가 생생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빌 클린턴 대통령-르윈스키 스캔들과 9·11 테러의 연관성이다. 클린턴은 1998년 12월 알카에다가 항공기를 납치해 테러를 벌일 계획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스캔들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그해 8월 알카에다는 아프리카의 미 대사관 두 곳에 폭탄을 던지면서 테러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클린턴은 정보 당국에 오사마 빈라덴 사살과 테러기지 공격을 주문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당시 참모들은 대통령이 스캔들에 쏠린 관심을 분산하기 위해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군 통수권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 부인에 얽힌 이야기도 충격적이다.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여러 비서와의 성관계와 밀애로 숱한 염문을 뿌렸다. 이에 충격받은 대통령 부인은 동성애자들과 어울리며 정체성을 찾았고 여성·인권운동의 기수로 변신했다. 대통령 부인은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한 뒤 남편의 뉴딜 정책을 비롯한 정책의 대변과 홍보에 나서 결국 대공황과 2차대전의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위엄 있고 점잖았다’고 여겨지는 건국 초기의 위인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마흔둘의 나이에 여러 언론사를 거느린 미국 최초의 언론재벌이 된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유분방한 카사노바로 명성을 떨쳤다. 독립전쟁 초기에 영국군과 미국 반란군의 규모는 두 배나 차이가 났다. 프랑스의 지원이 필요했던 대륙회의(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논의한 식민지 대표자 모임)는 감수성, 특히 성 규범에 개방적인 프랑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로 프랭클린을 선발했다. 프랭클린은 특유의 카사노바 기질을 발휘해 미국 지지 바람을 일으켰고 루이 16세는 워싱턴 장군의 오합지졸을 지원하려 육해군을 파병했다. 루이 16세가 미국 독립전쟁 지원에 지출한 13억 리브르 때문에 프랑스 재정은 파산했다. 책에서는 이것 말고도 다양한 가설이 역사적 사실과 자료들에 얹혀 풀어진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정부(情夫)가 베르사유조약과 국제연맹·제2차 세계대전에 미친 영향,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동성 비밀 연애와 노예제도 존속의 관련성, 매카시즘으로 잘 알려진 조지프 매카시의 몰락과 동성애 사건, 최장수 FBI 국장을 지낸 후버의 애정 행각과 직무 유기…. 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스캔들을 이용하는 세력들이다. 저자들은 정치인의 합리적 정책 결정을 막는 건 그 사생활이 아니라 흠집 내고 학대재생산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또 다른 정치인과 언론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 지도자의 섹스 스캔들을 대하는 유럽인의 경우와 미국을 비교한다. 성 스캔들에 관심을 덜 가지면 정치 전반을 좀 더 성숙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책을 읽는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 같다. 한쪽은 스캔들을 따라잡는 재미의 탐닉이다. 번역자가 말했듯이 책은 침실과 성관계까지 까발려 외설적으로 비칠 수 있다. 다른 쪽은 그 스캔들을 어떻게 사회의 긍정적인 면에서 해석할지를 생각하는 부류다. 결국 무엇을 얻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 치료 이국종 교수 해군 홍보대사에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 치료 이국종 교수 해군 홍보대사에

    해군은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당한 석해균 당시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46) 아주대 의대 교수를 해군 홍보대사에 임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교수는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기지를 발휘해 작전의 성공을 도와 ‘아덴만 영웅’이 된 석 선장 치료 이후 해군·해병대 부상 장병 치료에 헌신해 왔다. 이 교수도 해군 출신으로 1992년 해군에 입대해 갑판병으로 근무했다. 이 교수는 2007~2008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연수 기간에 영국 해군 군의관들과 함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부상당한 영국군 장병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2년 동안 해군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베스트셀러 기관단총 ‘우지’ 제작사 주인 바뀐다

    전 세계 특수부대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관단총인 이스라엘제 우지(Uzi)의 제작사 주인이 바뀐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국영기업체 민영화 작업의 일환으로 우지 기관단총 제작사인 국영 방산업체 IMI의 정부 소유 지분 매각 절차에 나섰다. 이스라엘 정부는 내년 초까지 완료 예정인 IMI 지분 매각을 통해 8억 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다. IMI는 이스라엘 건국과 역사를 함께한다. 영국군 점령하에서 불법적으로 군사 활동을 벌이던 비밀 군사조직 ‘하가나’가 1933년 텔아비브 해변 부근에서 동물 가죽 가공 공장으로 위장해 총기 등을 제작하면서 출범했다. IMI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51년 제작된 우지 기관단총 덕분이다. 이스라엘 건국 뒤 정식 군사 무기로 채택됐고 지금까지 1000만정가량 팔렸다. 분당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이 총은 권총과 비슷하지만 유효 사거리가 200m나 되는 데다 접이식 개머리를 접으면 길이가 불과 47㎝밖에 되지 않는다. 우지가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게 된 계기는 1981년 3월 30일 미국 워싱턴DC의 힐튼호텔 앞에서 발생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 저격 시도 사건이다. 외투 차림의 경호원들이 우지를 뽑아 들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또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터미네이터’도 우지의 유명세에 한몫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캐머런 “젊은 무슬림, IS 가담해도 총알받이일 뿐”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영국군의 역할 확대를 시사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자국 내 극단주의 저지를 위해서도 칼을 뽑았다. 캐머런 총리는 20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저지를 위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랐으나 나라에 대한 애착이 없고 소외감을 느끼는 젊은 무슬림을 적극적으로 껴안아 자생적 테러리즘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날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2대 도시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버밍엄의 한 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S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말 것으로 호소했다. 그는 “여러분은 그 집단(IS)의 중요한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들을 위한 총알받이일 뿐”이라며 “소년들을 세뇌시켜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자폭하도록 하고, 소녀들은 노예로 만들어 학대한다. 이게 IS의 잔인한 현실”이라고 역설했다. 최근 영국 사회는 젊은 무슬림들이 IS 가담을 위해 잇따라 가족과 조국을 등지면서 충격에 빠졌다. 지난 2월 무슬림 10대 소녀 3명이 IS 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떠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세 자매가 자녀 9명과 함께 IS에 몸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약 700명의 영국인이 IS에 가담했으며 이 중 절반가량이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캐머런 총리는 IS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직접적인 조치로 자녀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가담할 것으로 우려되면 부모가 자녀의 여권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日미쓰비시, 강제노동 美포로에게 공식 사과… “왜 韓·中만 빼놓고 사과하나”

    日미쓰비시, 강제노동 美포로에게 공식 사과… “왜 韓·中만 빼놓고 사과하나”

    “미쓰비시가 강제 노동(forced to work)을 행한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합니다.”(기무라 히카루 미쓰비시 머티리얼 상무) “70년 동안 기다린 사과입니다. 오늘의 영광을 기억하겠습니다.”(강제 노동 미군 포로 제임스 머피) ●구두 사과만… 금전적 배상 없어 일본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에 동원된 미군 포로 피해자를 찾아가 머리를 숙여 공식 사과했다. 전쟁 때 강제 노동을 시킨 일본 기업이 한 첫 사과다. 하지만 한국, 중국, 영국, 네덜란드, 동남아시아 국민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이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기무라 상무 등 대표단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이먼비젠탈센터에서 징용 피해자인 머피(94)에게 사과했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기무라 상무는 “당시 미군 징용 피해자 900여명이 미쓰비시 운영 탄광 4곳에서 혹독한 강제 노동을 했다”면서 “포로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머피는 기무라 상무와 악수하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1942년 필리핀 전선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힌 뒤 구리 광산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던 머피는 “종전 이후 지금까지 사과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기무라 상무는 다음달 15일 종전 70주년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유독 미군 포로에게만 사과한 까닭에 대해 “지난해 7월 강제 징용 피해자 단체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나라 징용자에 대한 사과도 검토할 수 있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한국과 중국 징용자에 대한 유감 표명이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2차 대전 당시 강제 징용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의견을 밝힐 수 없다”고 회피 반응을 보였다. 머피에게 구두 사과만 했을 뿐 금전적인 배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쓰비시가 사법절차적 고려에 따라 미군에 우선 사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회사가 미국만 우대했던 전례에 비쳐볼 때 이번 사과는 ‘선별 사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타카 마사토 주미 일본대사관 대변인은 “(이번 사과에) 일본 정부는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인 포로 징용 문제에 대해 앞서 2009년과 2010년 공식 사과했다. ●英 참전군인·유가족 “왜 사과 않나” 한편 영국 참전군인과 유가족들은 머피와 같은 처지였지만 미쓰비시가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성토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이날 전했다. 미쓰비시에서 강제 노동을 한 영국군 포로는 672명이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英참전군인 포로 유족 “미쓰비시, 우리에게도 사과하라”

    英참전군인 포로 유족 “미쓰비시, 우리에게도 사과하라”

    지난 19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 대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영국, 네덜란드, 한국 등 다른 피해 국가는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영국 참전군인 유가족들이 미쓰비시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미쓰비시의 강제노역 피해자면서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영국인 피해자 및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42년 일본군 포로로 잡혔던 영국군 제임스 깁슨은 3년 동안 미쓰비시 소유 탄광 및 조선소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뒤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다가 1982년 사망했다. 제임스 깁슨의 아들 샌디 깁슨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미쓰비시가 제임스의 고충에 대해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기온이 매우 낮았지만 포로들에겐 원래 입고 있던 얇은 옷 이외 어떤 의류도 지급되지 않았다. 적십자 구호품은 일본 군인들이 독식했기에 포로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부족한 물자에 배가 고파 소량의 음식을 훔친 병사는 잔인하게 구타당한 뒤 처형되기도 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제임스는 마침내 포로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가혹한 취급으로 생긴 심신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았다.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항상 강박적으로 많은 식량을 집안에 비축해두고 살았으며 말년에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쟁포로 출신 영국인들은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없이 살다가 죽었다”며 “그들은 모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지속적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95년에 사망한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레슬리 휴튼의 아내 베라 휴튼은 설령 사과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지나치게 늦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지금 이루어지는 사과는 본인들이 아닌 그 증손들에 의한 것일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가 운영한 6개의 강제 노역장에서 일한 전쟁포로는 총 2000여명, 그 중 30%가 넘는 672명은 영국인이었으나 미쓰비시는 당시 미군 포로였던 제임스 머피를 위시한 미국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했을 뿐 다른 국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프로젝트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등 미국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미쓰비시, 우리한테도 사과하라” 英 참전군인 유족 요구

    “미쓰비시, 우리한테도 사과하라” 英 참전군인 유족 요구

    지난 19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 대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영국, 네덜란드, 한국 등 다른 피해 국가는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영국 참전군인 유가족들이 미쓰비시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미쓰비시의 강제노역 피해자면서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영국인 피해자 및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42년 일본군 포로로 잡혔던 영국군 제임스 깁슨은 3년 동안 미쓰비시 소유 탄광 및 조선소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뒤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다가 1982년 사망했다. 제임스 깁슨의 아들 샌디 깁슨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미쓰비시가 제임스의 고충에 대해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기온이 매우 낮았지만 포로들에겐 원래 입고 있던 얇은 옷 이외 어떤 의류도 지급되지 않았다. 적십자 구호품은 일본 군인들이 독식했기에 포로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부족한 물자에 배가 고파 소량의 음식을 훔친 병사는 잔인하게 구타당한 뒤 처형되기도 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제임스는 마침내 포로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가혹한 취급으로 생긴 심신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았다.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항상 강박적으로 많은 식량을 집안에 비축해두고 살았으며 말년에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쟁포로 출신 영국인들은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없이 살다가 죽었다”며 “그들은 모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지속적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95년에 사망한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레슬리 휴튼의 아내 베라 휴튼은 설령 사과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지나치게 늦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지금 이루어지는 사과는 본인들이 아닌 그 증손들에 의한 것일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가 운영한 6개의 강제 노역장에서 일한 전쟁포로는 총 2000여명, 그 중 30%가 넘는 672명은 영국인이었으나 미쓰비시는 당시 미군 포로였던 제임스 머피를 위시한 미국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했을 뿐 다른 국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프로젝트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등 미국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패전 70년, 군국주의 상징 ‘제로센’ 다시 날아오르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패전 70년, 군국주의 상징 ‘제로센’ 다시 날아오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태평양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갔던 일본 군국주의 광풍(狂風)이 멈춘 지 70년이 된 해이다. 같은 전범국이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독일이 반세기 넘도록 사과와 반성을 거듭하면서 국제사회의 모범 국가로 대접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종군위안부와 징용을 부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면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패전 70년에 즈음해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된 일본이 이제는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열었던 침략의 상징 ‘제로센(零戰)’ 전투기 복원을 준비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 태평양 전쟁의 상징 1941년 12월 7일 이른 아침, 대규모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휴일을 맞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일본군 전투기 부대의 대공습을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로써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와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가 이끄는 일본해군 연합함대는 항공모함 6척에 441대의 전투기와 공격기를 싣고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9척의 대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하와이에 접근해 방심하고 있던 미 해군을 대상으로 파상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미 해군 전함을 공격했던 기종은 97식 함상공격기였지만, 하와이 상공의 제공권을 잡으며 미군 전투기들을 사냥했던 전투기는 제로센, 이른바 '0식 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만든 ‘바람이 분다’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개된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郎)가 설계한 이 전투기는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는 했지만 등장 당시에는 태평양 전선 최강의 전투기로 악명을 떨쳤다. 지로는 제로센을 설계할 당시 일본해군의 “최대한 멀리 날 수 있고 최대한 빠르고 날렵한 전투기를 만들라”는 요구에 대단히 고심했다. 전투기가 빠르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고성능 엔진이 필요한데 당시 일본의 공업기술력으로 이러한 엔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은 ‘기체 경량화’였다. 제로센은 장갑판을 최대한 생략했고 동체와 주익 외피에 사용된 금속판은 최대한 얇게 만들었으며, 골조 내부를 비게 만들어 최대한의 경량화를 달성했다. 제로센의 무게는 연료와 무장을 제외한 자체 중량이 약 1.7톤이었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라이벌이었던 미 육군 항공대의 P-40 전투기보다 1톤 가까이 가벼운 수준이었다. 기체가 가볍다보니 제로센은 발군의 기동력을 자랑했다. 속도는 물론 가속성능과 선회 능력이 대단히 우수했는데, 이 때문에 개전 초기 태평양 지역의 미군과 영국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속도가 빠르고 선회 능력, 즉 더 빠른 속도로 더 작은 공간에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제로센을 발견했다 싶으면 어느 순간 꼬리가 물려 있는 상황에 종종 처했다. 이러한 이점으로 제로센은 개전 초기 2년 동안은 무적의 전투기로 군림했지만, 이러한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무기체계 관련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과 노력을 투입했던 연합군과 달리 일본은 전투기 성능 개량이나 개발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제로센이 기술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사이 미군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로센보다 더 강력한 무장과 장갑을 갖추었음에도 속도가 더 빠른 F-6F 헬켓(Hellcat)이나 F-4U 콜세어(Corsair)을 배치했고 한때 태평양 상공을 주름잡았던 공포의 전투기는 같은 회사의 G4M 폭격기와 더불어 ‘원 샷 라이터(One-shot lighter)’로 전락했다. 한두 발만 맞춰도 불덩이가 되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별명처럼 제로센은 급격히 몰락했다. 기체 중량을 줄이기 위해 무장이 기관총 정도밖에 없다보니 두꺼운 장갑판을 두른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어려웠고, 반대로 제로센은 미군 전투기나 대공포로부터 몇 발만 맞아도 기체에 구멍이 뻥뻥 뚫리며 추락했다. 이 같은 화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20mm 기관포를 탑재하는 개량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개량 때문에 기체가 무거워지면서 그나마 장점이었던 기동성이 희생되어 제로센의 피해는 더 커져만 갔다. 결국 1943년을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제로센은 1944년부터는 제대로 된 공대공 전투보다는 자살 돌격작전, 즉 가미카제(神風) 작전에 동원되었고 수많은 젊은 조종사들이 ‘일왕 만세(天皇陛下萬歲)’를 외치며 허망하게 죽어갔다. ▲ 패전 70년, 일본 군국주의 부활 원년? 제로센 전투기는 엄청난 사상자를 낸 태평양 전쟁의 신호탄을 쏜 무기이자 침략자 일본 왕을 위해 옥쇄(玉碎)도 불사한다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기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전국 곳곳에 이 전투기와 조종사들의 활약상(?)을 기리는 박물관과 전시장이 11곳이나 존재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내 전쟁박물관 한복판에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전투기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지난 70여 년 동안에는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하늘로 날리려 하는 ‘패기’를 가진 이들은 없었다. 이 전투기가 복원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것은 곧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날갯짓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내외 반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 세력은 이 전투기를 대중에게 친숙한 아이템으로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일본 NHK 방송의 경영위원이자 소설작가인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가 제로센 전투기와 자살 돌격대를 미화한 『영원의 제로(永遠の0)』라는 소설을 출간해 500만 부 이상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방위성과 육·해·공 자위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인기 아이돌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 주연으로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영화는 70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이러한 ‘전범 미화작업’이 일본 문화계 전반에 걸쳐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한 고발 소설을 써 극우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던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는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치부이며, 이들은 자발적인 죽음이 아니라 군부 세력의 강요에 의해 희생됐다”고 지적하면서 극우 세력의 제로센과 가미카제 미화 작업을 비난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은 이러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로센을 다시 띄우기 위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미쓰비시중공업 제품 올 8월 비행 예정 일본 극우세력들은 지난 2013년, 모금을 통해 조성한 자금으로 ‘주식회사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이라는 기업을 만들어 제로센 전투기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일본인 이시즈카 마사히데(石塚政秀) 소유의 전투기를 지난 2008년 구입, 수년에 걸쳐 이 전투기를 여러 파트로 분해해 일본으로 반입했으며, 지난주에 엔진 구동 시험을 마치고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형식 승인까지 얻어냈다. 이러한 복원작업 전 과정은 일본 방위성과 자위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제로센 전투기가 격납되어 있는 곳도 해상자위대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이며, 해자대는 제로센 복원 작업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일본은 이 제로센 전투기를 패전 70주년이 되는 올 8월 하늘로 띄울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8월에는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제로센’이라 불리는 일본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 ATD-X(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or-Experimental) 심신(心神)의 첫 비행이 계획되어 있으며, ‘공격무기의 상징’인 상륙돌격장갑차 시제차량 공개도 예정되어 있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제로센 전투기와 ATD-X, 신형 상륙돌격장갑차를 만드는 회사가 모두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라는 것이다. 패전 70주년에 맞춰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활시키고 70년 전 침략 전쟁의 선봉에 섰던 전투기를 복원시키며, 더 나아가 그 전투기를 만들었던 회사에서 신형 스텔스 전투기와 공격용 장갑차까지 개발해 패전했던 그 날에 공개한다는 계획! 이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나치 암호기계 ‘에니그마’ 2억6천만원 낙찰

    나치 암호기계 ‘에니그마’ 2억6천만원 낙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사용한 암호기계 ‘에니그마’(Enigma I)가 경매에 나와 우리 돈으로 무려 2억6000만 원이 넘는 거액에 낙찰됐다. 14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소더비 경매에 나온 에니그마가 당초 예상가의 2~3배에 해당하는 14만9000파운드에 익명의 입찰자에게 팔렸다. 수수께끼라는 뜻을 가진 에니그마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군이 사용했던 기계식 암호화 장치로, 4만 년이 걸려도 해독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침몰하는 나치의 U보트에서 영국군이 이 암호기계와 함께 암호를 푸는 데 필요한 코드북을 입수했고 이후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연합군은 나치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앨런 튜링의 일대기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도 그려졌고, 에니그마는 영화 소재로 사용됐다. 에니그마는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인 1918년 독일인 아르투르 슈르비우스에 의해 처음 고안돼 1919년 특허 신청 이후 상업적으로 쓰이다가 2차 대전 당시에는 나치군이 사용했다. 공개된 사진은 휴대용 상자 안에 들어있는 에니그마로 앞부분이 자판이며, 뚜껑 안쪽은 화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주의사항이 붙어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니그마는 문자를 교체하는 대체 암호화 방식을 사용한 암호화 장치로, 자판으로 암호화할 문장을 입력하면 문자 하나하나마다 암호화가 진행돼 암호화된 문자를 램프에 표시한다. 또 이 암호기계는 구조 자체가 해독의 단서가 될 수 있어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나치군이 스스로 파괴해, 현재 존재하는 수가 많지 않아 몇몇 박물관과 소수의 개인 수집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정도다. 사진=소더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 한다.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한 국제전이었던 이 전쟁은 결코 잊지 못할 전쟁임에도 정치, 이념적 시선에 따라 판이하게 평가된다. 우리 민족에겐 여전히 상흔이 씻기지 않는 최대의 비극이다. 6·25전쟁 발발일을 즈음해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룬다. 논란이 분분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아 주목된다. 이 가운데 ‘맥아더’(플래닛 미디어), ‘6·25전쟁과 미국’(청미디어)은 한국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와 미국 수뇌부 동향을 집중 분석했다. 미국의 전쟁전문가 리처드 B 프랭크가 쓴 맥아더 평전 ‘맥아더’는 당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의 진짜 얼굴이 도드라진다. 책 속의 맥아더는 ‘최고의 업적과 최악의 실패가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은 특히 그에겐 ‘최고 영광과 최악 수모를 함께 안겨 준 사건’이다. ‘5000대1 확률’의 도박 같은 인천상륙을 감행, 전세를 역전시키고도 중공군 개입을 불렀다. 합동참모본부 명령과 반대로 국경 근처까지 돌진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맥아더는 제3차 세계대전 확산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고 맞서 해임됐다. 책에서 그 해임 사건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국가 정책에서 벗어나 해임당한 것이며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된다.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 731부대장이 전후 전범재판서 무죄받는 조건으로 미국에 실험자료를 건넨 거래에 맥아더가 개입됐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언론인 출신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 ‘6·25전쟁과 미국’도 맥아더 행적을 촘촘하게 추적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과 비교한 맥아더의 전쟁 수행 과정이 도드라진다. 트루먼 행정부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군사력으로 방어할 대상 국가에서 제외한 한국에 지상군까지 파병하기로 결정한 과정이 명쾌하다. 당초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를 목적으로 했던 유엔군 작전 목표를 북진통일로 바꾼 과정, 북한 완전 점령을 눈앞에 둔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 개입으로 참패한 원인도 흥미롭다. 맥아더 해임을 놓고는 “맥아더의 아시아 중시주의에 대한 트루먼과 애치슨의 유럽 중시주의의 승리”라고 잘라 말한다. 트루먼, 애치슨이 전략적으로 유럽을 중시하고 한반도에 깊게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한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한반도를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 차이가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책에 혼선을 불렀다고 본다. 전쟁 전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빼는 애치슨 발언이나 트루먼이 1951년 4월 맥아더를 해임하고 휴전으로 나아간 것도 유럽 중심주의 때문이다.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 척결을 위해 북진 당시 평양∼원산 라인에서 방어선을 치고 중국 참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압록강까지 진격해 패했다는 주장이다.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다면 맥아더 해임 사태가 없었을 것이며 6·25전쟁도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6·25전쟁 당시 외국 군대의 개입 배경과 전쟁 실상을 추적한 책들도 눈길을 끈다.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책미래 펴냄)은 영국군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상군을 조명하고 있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이 50여명의 생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책에서 저자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치른 전쟁 중 가장 인명 피해가 크고 잔인했다. 그럼에도 당시는 물론 지금도 영국인들은 그 전쟁을 모르고 있다.” 전쟁에서 영국군은 포클랜드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사자를 모두 합친 수(783명)보다도 더 많은 1087명이 전사했다. 영국 제27여단과 41코만도 부대, 그리고 왕립오스트레일리아연대의 참전기를 통해 전황이 가장 격렬했던 1950년 마지막 몇 개월의 최전선 상황이 생생하다. 특히 불과 1주일 전에 출발 명령을 받아 무기나 보급품도 제대로 없는 상태로 파병된 영국군의 부산 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작전 수행 등 극적인 순간들이 소개된다. 박실 전 의원이 쓴 ‘6·25전쟁과 중공군’(청미디어 펴냄)은 1990년대 이후 풀리기 시작한 공산권 공문서·자료를 통해 전쟁 시기 중공군의 움직임을 집중 추적했다. 북한 인민군의 주력이 된 팔로군의 조선인들, 전쟁을 앞두고 김일성이 40여 차례나 스탈린을 조른 이야기, 마오쩌둥의 아들까지 참전한 배경, 마오쩌둥의 지구전 방침, 38선 경계를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이 실감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나치의 전설적인 조종사 ‘꼬리날개’ 경매 나오다

    나치의 전설적인 조종사 ‘꼬리날개’ 경매 나오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벌벌 떨게 만든 나치 독일의 전설적인 조종사가 있다. 독일 공군의 탑건이자 세계 최고의 야간 격추 에이스로 불리는 하인츠 볼프강 슈나우퍼(1922-1950년)다. 최근 영국의 도미닉 윈터 옥션이 주관한 경매에서 슈나우퍼가 전쟁 당시 탑승한 전투기의 꼬리날개가 수수료 포함 총 107,550파운드(약 1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 이 꼬리날개가 당초 예상가 보다 5배나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된 것은 역시 슈나우퍼가 몰았던 비행기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인물인 슈나우퍼는 지난 1942~1945년 사이 총 164번의 출격에서 총 121기의 연합군 비행기를 격추시킨 전설적인 조종사다. 특히 모든 격추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야간에만 이루어져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영국군 측은 그를 '밤의 유령'이라고 부를 정도. 슈나우퍼의 이 전투기는 지난 1945년 3월 30일 연합군에 의해 격추됐으며 꼬리날개에 보이는 총탄 자국이 그같은 흔적을 증명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격추 당시 조종사는 슈나우퍼가 아니라는 점. 그가 사망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늘 위가 아닌 도로 위였다. 나치 패망 후 영국군 포로였던 그는 석방 후인 지난 195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이 꼬리날개가 지금까지 보관된 사연도 재미있다. 지난 1960년대 한 역사가가 독일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가 가정집 지붕으로 쓰이던 이 꼬리날개를 발견한 것. 이 꼬리날개가 슈나우퍼 비행기의 잔해라는 증거는 상대를 격추할 때 마다 꼬리에 새긴 비행기 그림 덕분이었다. 경매회사 측은 "이 꼬리날개는 전쟁에 대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증언하는 역사" 라면서 "나치를 추모하는 기념품 같은 것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나치 전설적인 조종사 ‘꼬리날개’ 경매서 고액 낙찰

    나치 전설적인 조종사 ‘꼬리날개’ 경매서 고액 낙찰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벌벌 떨게 만든 나치 독일의 전설적인 조종사가 있다. 독일 공군의 탑건이자 세계 최고의 야간 격추 에이스로 불리는 하인츠 볼프강 슈나우퍼(1922-1950년)다. 최근 영국의 도미닉 윈터 옥션이 주관한 경매에서 슈나우퍼가 전쟁 당시 탑승한 전투기의 꼬리날개가 수수료 포함 총 107,550파운드(약 1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 이 꼬리날개가 당초 예상가 보다 5배나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된 것은 역시 슈나우퍼가 몰았던 비행기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인물인 슈나우퍼는 지난 1942~1945년 사이 총 164번의 출격에서 총 121기의 연합군 비행기를 격추시킨 전설적인 조종사다. 특히 모든 격추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야간에만 이루어져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영국군 측은 그를 '밤의 유령'이라고 부를 정도. 슈나우퍼의 이 전투기는 지난 1945년 3월 30일 연합군에 의해 격추됐으며 꼬리날개에 보이는 총탄 자국이 그같은 흔적을 증명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격추 당시 조종사는 슈나우퍼가 아니라는 점. 그가 사망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늘 위가 아닌 도로 위였다. 나치 패망 후 영국군 포로였던 그는 석방 후인 지난 195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이 꼬리날개가 지금까지 보관된 사연도 재미있다. 지난 1960년대 한 역사가가 독일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가 가정집 지붕으로 쓰이던 이 꼬리날개를 발견한 것. 이 꼬리날개가 슈나우퍼 비행기의 잔해라는 증거는 상대를 격추할 때 마다 꼬리에 새긴 비행기 그림 덕분이었다. 경매회사 측은 "이 꼬리날개는 전쟁에 대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증언하는 역사" 라면서 "나치를 추모하는 기념품 같은 것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