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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 슈터’에서 ‘명품 감독’으로… NEW BNK, 꿈꾸는 박정은 감독

    ‘명품 슈터’에서 ‘명품 감독’으로… NEW BNK, 꿈꾸는 박정은 감독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있을까. 여자프로농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박정은(44) 부산 BNK 감독을 보면 된다. 현역 시절 ‘명품 슈터’로 불리며 역대 최초로 3점슛 1000개를 돌파한 명선수 출신의 박 감독은 요즘 명감독이 되고자 누구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단 5승만 거두며 압도적인 꼴찌였던 BNK를 맡은 만큼 실패의 부담이 큰 자리지만 박 감독은 고향팀 BNK를 명문 구단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박 감독을 지난달 27일 부산 기장군 BNK농구단 훈련장에서 만나 명품 슈터가 꿈꾸는 명품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뻔한 여자농구 시장? 시작부터 판을 흔들다 지난달 17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전례 없던 대형 트레이드 소식을 전했다. 지난 시즌 용인 삼성생명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김한별(35)이 BNK로 간다는 소식이었다. BNK에서는 식스우먼상을 수상한 구슬(27)과 신인 지명권을 양보했고 삼성생명이 구슬을 부천 하나원큐에 보내고 신인왕 강유림(24)을 받았다. 대형 선수의 이적이 거의 없는 여자프로농구지만 2020~21시즌 챔프전 MVP, 식스우먼, 신인왕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깜짝 트레이드의 중심에는 박 감독이 있었다. 지난 3월 BNK에 부임한 박 감독은 팀에 김한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삼성생명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챔프전 MVP인 만큼 데려올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선수지만 두 사람은 박 감독이 삼성생명에서 뛰던 시절 감독과 선수로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이다. 김한별이 구단에 “박 감독이라면 괜찮다”는 의사를 밝힌 이유다. 박 감독은 “인사이드를 장악하지 못하면 외곽이 불안할 수밖에 없어 인사이드 장악에 가장 독보적인 김한별이 필요했다”면서 “선수 때 한별이한테 ‘나는 꿈이 감독인데 내가 감독을 하면 선수로 오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었다”고 영입 뒷이야기를 전했다. 가볍게 주고받았던 이야기는 박 감독의 부임 이후 현실이 됐고 수차례 협상 끝에 BNK가 김한별을 품을 수 있었다. 박 감독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선수가 유망주에서 스타로 올라서려면 경기를 이길 줄 알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김한별이라는 스타를 통해 우리 선수가 배우고 스타가 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유망주를 봤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면 다시 새로운 유망주에게 밀려나는 모습을 숱하게 지켜봤기에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박 감독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할 수 있어서 지금이 한 번쯤은 시도를 해봐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뻔한 성적? 이제 그냥 지는 경기는 없다 BNK는 지난 시즌 리그 꼴찌에 그치며 팬들로부터 ‘프로팀이 맞느냐’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특히 시즌 최종전에서 아산 우리은행에 29-55로 패하며 팬들의 비웃음을 샀다. 29점은 WKBL 역대 한 경기 한 팀 최저 득점이다. 부산 동주여고 출신으로 고향팀에 감독으로 부임하며 금의환향했지만 박 감독에게 실패의 부담이 큰 이유다.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는데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꼴찌팀을 맡아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역시 실패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여자프로농구는 박지수(23)와 강이슬(27)이 있는 청주 KB의 전력이 워낙 탄탄해 우승을 욕심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박 감독은 BNK가 달라질 거라고 확신했다. 강아정(32)과 김한별의 영입은 박 감독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감독은 “과거엔 BNK가 매번 당연히 지는 팀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맡은 후부터 당연히 지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수들이 승리를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이기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박 감독의 목표는 지금껏 어떤 여자 감독도 하지 못한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WKBL 역대 여자 1호 감독인 이옥자 전 감독, 2호 유영주 전 감독은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박 감독은 “여자 감독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지 않으냐”면서 “여자 지도자는 실패한 게 아니라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례를 만들면 내 후임으로 다른 여성 지도자가 나왔을 때 더 좋은 기록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프로에서 뛴 여자농구 선수 출신이 프로 감독이 된 거니까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뻔한 격언? 명품 지도자 꿈꾸는 명품 슈터 박 감독의 농구 인생은 실패를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시절엔 ‘명품 슈터’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그가 달았던 11번은 삼성생명 최초의 영구 결번이 됐다. 선수 은퇴 후엔 삼성생명 코치에 이어 WKBL 경기운영본부장도 역임했다. 경력이 화려한 만큼 박 감독은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스포츠 격언의 검증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누구보다 박 감독이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박 감독은 “지도자를 시작하는 팀이 변화를 많이 줘야 하는 팀이라 부담이 된다”면서도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많아 재밌고 설렌다”고 말했다. 명품 수식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박 감독은 “BNK를 명품 구단으로 만들어 감독으로서도 명품 수식어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 “BNK가 명문 구단으로 가는 밑거름만 되어도 인정받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감독을 위해 남편인 배우 한상진(43)씨도 나섰다. 한씨는 박 감독의 선임 소식을 듣고 부산에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박 감독은 “남편이 내가 스트레스 안 받게 노력을 많이 한다”면서 “또 내가 좁은 시야로 생각하게 될 때 넓게 볼 수 있도록 방향성을 많이 얘기해 준다”고 자랑했다. 연애 시절을 포함해 오래도록 옆에서 지켜봤기에 한씨는 농구인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췄다. 박 감독은 “객관적으로 농구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 내가 잊고 있는 부분들을 잘 얘기해 준다”고 웃었다. 어떤 농구를 보여 주고 싶은지 묻자 박 감독은 “즐거운 농구”라고 답했다. 박 감독은 “코트에 있는 선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웃지 않더라”면서 “선수들이 즐길 수 있는 농구를 통해 팬들도 같이 즐거워하는 농구를 보여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대장 독수리’ 김태균, 그라운드와 작별

    ‘대장 독수리’ 김태균, 그라운드와 작별

    한국을 대표하는 우타자이자 한화의 ‘대장 독수리’인 김태균(39)이 젊음을 바친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김태균은 지난 2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홈경기에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한 뒤 1회초 플레이볼 선언 직후 노시환과 교체됐다. 이로써 김태균의 공식 출전은 2015번째로 기록됐다. 김태균은 교체 사인을 받은 뒤 모자를 벗고 경기장을 메운 팬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이후 경기 직후 가진 은퇴식·영구결번식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김태균이 팀의 4번 타자로서 무겁게 졌던 52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김태균은 “한화 구단과 계약하기 위해 대전구장을 처음 방문한 날, 재학 중이던 천안북일고 교복을 입었다”며 “선수 생활의 처음과 끝을 비슷한 복장으로 하고 싶어서 교복 스타일의 정장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트를 처음 잡았던 30년 전, 한화는 내게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며 “한화에 지명받아 선수 생활을 했고 이렇게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돼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한화는 현재 큰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며 “팬들이 염원하는 정상에 서는 그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항상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김태균은 역대 한국프로야구 리그 최고의 우타자 중 한명이다. 2001년 한화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현역으로 뛰면서 타율 0.320, 2209안타, 311홈런, 1358타점, 1024득점, 출루율 0.421의 성적을 남겼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치열한 ‘탈꼴찌 전쟁’ 다시 찾아온 조류동맹의 시간

    치열한 ‘탈꼴찌 전쟁’ 다시 찾아온 조류동맹의 시간

    결국엔 1등만 기억되는 프로의 세계에서 꼴찌 싸움은 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두 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서로 딱히 앙금이 있는 사이도 아니지만 서로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는 묘한 자존심 싸움이 있다. 닮은꼴 운명공동체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이야기다. 한화와 롯데가 다시 동맹을 맺었다. 상위권에서 맺으면 좋으련만 공교롭게도 또 하위권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할 만한 사이지만 얄궂게도 서로가 서로를 제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기는 팀은 9위가 되고 지는 팀은 10위가 된다. 운명적인 대결에서 한화가 일단 탈꼴찌에 성공했다. 한화는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1회부터 롯데 마운드를 폭격하며 자비 없는 경기를 펼쳐 12-2로 대승을 거뒀다. 전날 4-3으로 승리하며 꼴찌를 벗어났던 롯데는 하루 만에 다시 꼴찌로 내려가게 됐다. 두 팀의 순위는 20일 맞대결에서 또 바뀔 수도 있다. 한화와 롯데의 탈꼴찌 싸움이 낯설지 않은 것은 불과 2년 전 두 팀이 같은 싸움을 펼쳤기 때문이다. 시즌 막판까지 알 수 없던 탈꼴찌 전쟁은 그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선두가 결정됐을 정도로 치열했던 선두 다툼만큼이나 치열했다.한화와 롯데는 10개 구단 중 유이하게 조류(독수리, 갈매기)를 마스코트로 쓴다. 이런 점에 착안해 팬들은 조류동맹이라고 부르는데 단순히 마스코트가 날개를 가진 생명체라고 해서 동맹 관계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 동맹은 마지막 우승이 20세기이고 2000년대 꼴찌를 양분해 비밀번호가 있다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1999년 한화의 마지막 우승 상대는 롯데였고, 19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 상대는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였다. 그리고 한화와 롯데는 2000년대 꼴찌를 사이좋게 양분했다. 2000년대 성적 기준 롯데는 2001·2002·2003·2004·2019년에, 한화는 2009·2010·2012·2013·2014·2020년에 꼴찌를 차지했다. 이제는 조금 희미해졌지만 8888577과 5886899678은 팬들에게 슬픈 숫자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화와 롯데는 카림 가르시아, 쉐인 유먼 등 외국인 선수를 공유한 경험도 있다. 두 선수 모두 3년 롯데 활동 후 한화 이적이라는 공식도 같다. 한화에서는 둘 다 1년만 뛰었다. 올해 허문회 롯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면 1년 전 한화는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한화와 롯데는 성적 문제로 감독이 중도에 물러나는 그림이 상대적으로 많은 팀이기도 하다. 굳이 또 공통점을 찾자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두 1982년생 거포가 속한 팀도 한화와 롯데였다. 지난해 은퇴한 김태균은 최근 자신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이 됐다. 이대호 역시 상징성이 큰 만큼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 선수 모두 레전드지만 한국에선 우승이 없고 일본에서 우승을 차지한 닮은 점도 있다. 참고로 두 선수의 딸 이름도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여기에 올해는 두 팀 모두 외국인 사령탑이 이끈다는 공통점도 추가됐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래리 서튼 감독 모두 젊은 선수 육성이라는 지상 과제를 안고 팀을 운영 중인데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에 머물며 순위 경쟁을 펼치기가 만만치 않다. 한화와 롯데는 2015년, 2016년엔 8승8패로 비겼는데 탈꼴찌 전쟁이 치열했던 2019년에도 두 팀은 8승8패로 호각세였다. 그해 롯데가 유일한 3할대 승률로 최하위로 밀렸음에도 한화에게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만큼 치열했기에 최하위 팀의 싸움이라도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는 한화가 4승1패로 앞서 있는데 두 팀의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다면 또 호각세를 이룰 수도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최근의 분위기만 본다면 두 팀 모두 반등요소를 찾기가 쉽지 않아 당분간 이 동맹 체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화는 팀타율 0.244로 전체 꼴찌라 방망이가 무디고, 롯데는 팀평균자책점 5.77로 전체 꼴찌라 마운드가 물렁하다. 공통점이 많은 두 팀은 이번 맞대결이 끝나면 다음 달 15일에 다시 만난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누군가 지긋지긋한 동맹 관계를 배신하고 치고 올라갈 수 있을지 여부가 이번 시즌 프로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김태균 52번도 ‘영구결번’ 됐다 한화 리그 최다 4명 보유

    김태균 52번도 ‘영구결번’ 됐다 한화 리그 최다 4명 보유

    한화 이글스가 지난 시즌 은퇴를 선언한 김태균의 현역 시절 달고 뛴 5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장종훈(35번), 정민철(23번), 송진우(21번)에 이어 네 번째로 한화는 영구결번이 가장 많은 구단이 됐다. 김태균은 천안남산초와 천안북중, 북일고를 졸업한 뒤 2001년 한화에 입단했다. 그해 88경기에서 타율 0.335 20홈런 52타점으로 신인왕을 거머쥐며 대형 우타자의 탄생을 알렸다. 김태균은 통산 2209안타로 우타자 1위(역대 3위), 2루타 399개로 우타자 1위(역대 2위), 3557루타로 최다루타 부문 우타자 1위(역대 4위), 4사구 1249개로 우타자 1위(역대 2위) 등 각종 지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김출루’라는 별명처럼 2003~2017시즌 13년 연속 4할대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6년 8월 7일~2017년 6월 3일까지 86경기 연속 출루로 한·미·일 최다 경기 연속 출루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화는 김태균의 영구 결번을 위해 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영구결번 위원회를 열고 김태균의 기록과 팀 공헌도, 프랜차이즈로서의 위상과 사회공헌 활동 등을 고려해 영구결번을 확정했다. 김태균의 영구 결번식은 오는 29일 홈에서 열리는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진행한다. 김태균은 “훌륭한 선배님들께만 허락됐던 영구결번의 다음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한없이 영광스럽다”며 “내가 선배님들을 보며 꿈을 키웠던 것처럼, 내 영구결번이 한화이글스의 후배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구결번 지정을 결정해주신 구단과 지금까지 야구선수 김태균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설교수, 다음 학기는요?

    설교수, 다음 학기는요?

    ‘설교수의 명강의, 다음 학기 개강할 수 있을까.’ 2020~21 프로농구가 7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가운데 안양 KGC의 퍼펙트 우승(플레이오프 10연승)을 이끈 제러드 설린저(29)의 활약이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지 관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설린저는 지난 9일 플레이오프(PO)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서며 KBL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올랐다. 외국인 선수의 PO MVP 수상은 마르커스 힉스(2002년), 데이비드 잭슨(2003년), 테리코 화이트(2018년)에 이어 4번째다. 설린저 개인적으로도 2012년 프로 데뷔 뒤 첫 우승에 첫 MVP라 기쁨이 컸다. 지난 3월 11일 KBL에 상륙한 설린저는 9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까지 정규 10경기, PO 10경기를 뛰며 KBL 24년 사상 가장 강렬한 자취를 남겼다. 대부분 외국인 선수가 공격이 강하면 수비가 미진하거나 수비가 강하면 공격이 아쉬웠는데 설린저는 탁월한 골밑 장악력과 외곽 슈팅 능력에 날카로운 패스까지 발군이었다. 자신이 막히면 동료를 거들고 코트 위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KBL에서의 활약은 설린저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프로농구(NBA) 명문 보스턴 셀틱스에서 주전으로 뛰었지만 부상으로 중국 무대를 거친 뒤 최근 2년 동안 농구를 아예 쉬어야 했던 그가 기량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 시즌 그의 강의는 국내에선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건재함을 증명한 설린저에게 NBA는 물론, 여러 리그에서 러브콜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김승기 KGC 감독은 “2년 쉬고 재기에 성공했으니 더 욕심이 날 것”이라며 “더 좋은 곳, 좋은 팀에 가서 예전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린저에게 우리 팀에 남으라고 했더니 영구결번해주면 남겠다고 해서 남으면 영구결번해준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설린저는 “재기의 기회를 준 감독님과 구단에 마음의 빚을 졌다”면서도 “가족과 상의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하며 여운을 남겼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국대 지도자로 뭉친 여자농구 전설들, 올림픽 영광 위해 쏜다

    국대 지도자로 뭉친 여자농구 전설들, 올림픽 영광 위해 쏜다

    전주원(49)과 이미선(42). 이름만으로도 찬란한 한국 여자농구의 두 ‘레전드’ 언니들은 요즘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여자프로농구 시즌이 끝나고 편히 쉬어야 할 시간이지만 오는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 진출한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를 맡아 올림픽 준비에 분주하기 때문이다. 6일 서울 성북구 소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전주원 대표팀 감독은 “휴가 기간인데도 통화도 자주 하고 벌써 오늘로 다섯 번째 만난다”는 말로 이미선 코치와 함께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한국 여자농구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쓸 때 주역으로 활약했던 전 감독과 이 코치에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계획과 각오에 대해 들어 봤다.국대 감독·코치로 재회 구기종목 첫 女지도자 콤비 지난 1월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전 감독과 이 코치를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과 코치로 확정, 발표했다. 두 레전드에겐 올림픽 단체 구기종목 최초의 여성 지도자 콤비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각각 현역으로 뛰었던 구단에서 이들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남겼을 만큼 선수로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두 사람은 지도자로서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전 감독과 이 코치는 나이 차이가 꽤 있다. 현역 시절 전 감독은 신한은행(전신 현대산업개발 포함), 이 코치는 삼성생명에서만 뛰어 소속팀도 달랐다. 지도자로서도 우리은행 코치, 삼성생명 코치로 팀이 겹치진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국가대표 감독과 코치로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된 것은 현역 시절 국가대표팀에서 룸메이트로 함께한 인연 덕분이다. 이 코치는 “처음에 언니랑 같이 방을 썼는데 나이 차가 나는데도 편안했다”고 회상했다. 전 감독은 “먹는 것도 잘 맞고 한 3~4년 미선이가 방졸을 했는데 나쁜 기억이 없다”며 웃었다. 서로 잘 맞다 보니 전 감독이 이 코치에게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 러닝메이트를 제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 감독은 “미선이가 선수로서도 영리했고 은퇴 후에도 바로 코치를 하고 있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며 파트너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코치는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언니를 믿고 가는 것”이라며 돈독한 신뢰를 자랑했다.화려한 ‘라떼 시절’의 경험 선수들에게 더 와닿을 것 국가대표 감독과 코치가 되면서 두 사람은 소속팀 코치 역할 이외에도 국가대표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생각해야 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선수 누구 하나라도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분석하면서 상대 선수를 같은 팀보다 더 눈여겨보기도 했다. 전 감독은 “비디오를 본다든가 중계를 볼 때 다른 팀 선수들을 많이 살피게 되더라”며 웃었다. 이 코치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박지수(23·KB)의 상태가 신경 쓰였다. 이 코치는 “지수가 챔피언결정전에서 한 번 다친 적 있는데 크게 다친 것처럼 보여서 안 다쳤으면 싶었다”고 했다. 전 감독도 “나도 TV를 보면서 ‘지수 다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고 거들었다. 두 사람이 다른 국가대표 지도자보다 더 많은 기대를 받는 까닭은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고, 올림픽을 직접 경험했으며 프로 무대에서 코치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성공한 농구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라떼(나때)는 말이야’라며 꺼내는 옛날 이야기가 결코 공허한 잔소리가 되지 않는 이유다. 전 감독도 “올림픽을 직접 나가서 경험했으니 우리 얘기가 선수들에게 훨씬 와닿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 여자농구가 13년 만에 나서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의 선전을 위해 두 지도자가 공통적으로 꼽는 과제는 팀워크다. 전 감독은 “시드니올림픽 때 뛰는 선수나 안 뛰는 선수 가릴 것 없이 팀워크가 좋았다”면서 “당시에도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는데 잠깐씩 뛰는 선수들까지 자기 역할을 하며 팀이 하나가 돼 하다 보니 좋은 성적을 냈다”고 했다. 이 코치도 “시드니 때 막내여서 언니들을 응원했는데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희생을 많이 했다”면서 “팀워크에 하나 더 보태자면 베이징올림픽 때는 수비에도 많이 신경을 써서 성적을 냈으니 그 부분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대표팀 주축 전성기… 올림픽 농구 13년 갭이 변수 여자농구 대표팀은 다음주 최종 명단이 확정된다. 가장 고민하는 포지션은 가드다. 정통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하는 선수가 부족하고 여러 선수가 각자의 경쟁력이 있다 보니 고민이 깊다. 같은 조 상대팀 전력이 만만치 않은 문제도 있다. 한국(19위)은 스페인(3위), 캐나다(4위), 세르비아(8위)와 함께 A조다. 1승조차 거두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살펴본 상대팀은 더 무서웠다. 전 감독은 “세르비아와 스페인이 하는 경기를 봤는데 세르비아가 만만치 않았다”면서 “유럽 선수들이 신장도 있는데 스피드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같은 조 국가 중 세르비아가 세계 랭킹이 가장 낮지만 전 감독은 “세르비아가 4년 전 정도부터 두각을 나타내 랭킹이 낮은 거지 지금 실력만 보면 유럽에서 3위 안에 든다”면서 “세르비아가 그래도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슬프더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한국은 박지수를 비롯해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았다는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지난해 12년 만에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전 감독은 “지금 대표팀에 나갈 선수들이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것만 해도 잘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어 고무적”이라면서 “다만 역대 전력과 비교했을 때는 올림픽에서 13년의 갭이 있어 경험이 없는 것이 많은 변수가 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큰 자리지만 두 지도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도자가 불안해하면 선수들이 더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더라도 부딪쳐 보는 게 도전”이라며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니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실패라기보다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초의 여성 지도자란 타이틀이 달리지 않아도 국가대표 감독은 책임감이 정말 큰 자리”라면서 “영광스러운 자리이니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자농구 대표팀을 통해 두 지도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 코치는 “누가 봐도 박수쳐 줄 수 있는 경기를 준비하고 싶다”면서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해 힘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글·사진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우리 군에서 영구 결번된 비운의 국산장갑차 ‘K66‘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우리 군에서 영구 결번된 비운의 국산장갑차 ‘K66‘

    지난 2월 24일 방위사업청은 육군의 주력 자주포 중 하나인 K55A1에 자동화 탄약보급이 가능한 K56 탄약운반장갑차의 3차 실전배치를 지난 2020년 12월에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K56 탄약운반장갑차는 2006년 소요가 결정되어 2008년부터 체계적인 설계와 시제품 제작 그리고 시험평가 등을 거쳐 2011년 10월에 개발을 완료했다. 사실 K55 계열 자주포를 위한 탄약운반장갑차는 과거에도 있었다. ’K66‘이 그것이다. K55 자주포의 탄약보급을 위해 개발된 K66 탄약운반장갑차는, 국내 방산 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결국 사업이 공중분해 되었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흑역사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된 K55 자주포는 K9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실상 육군의 주력 자주포였다. 애초 우리 군은 1980년대 초 자주포의 독자개발을 추진했으나, 국내 기술 부족으로 기술제휴를 통해 자주포의 국내 생산을 추진하게 된다.그 결과 미국의 M109A2 자주포가 채택되었고, 이후 K55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 받는다. K55의 ’55‘는 155mm 자주포를 의미한다. 1985년부터 양산을 시작, 1997년까지 네 차례의 생산을 거치면서 총 1,000여 대가 육군과 해병대에 배치되었다. K55 자주포는 M109A2를 참고로 했지만 우리 전장환경에 맞게 일부 개량되었다. M109A2 자주포의 경우 화학전 상황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K-55는 화학전에 대비한 화생방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또한 피격 시의 화재를 대비한 할론 소화 장비를 갖추고 있어, 원형인 M109A2에 비해 생존성이 향상되었다.K55의 후속사업으로 K66으로 알려진 국산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K55 자주포를 만들던 삼성항공은 1987년 M109A2 자주포의 제작사였던 미 FMC사의 M992 야전포병탄약지원차량을 기반으로 탄약운반장갑차를 개발한다. M992는 지금도 미 육군에서 사용 중인 장갑차로 야전에서 M109A6와 M109A7 자주포에 155mm 탄약을 보급하는데 사용된다. 이에 맞서 당시 대우중공업은 K200 장갑차 차체를 키워 탄약운반장갑차를 만든다. 경쟁 끝에 대우중공업의 탄약운반장갑차가 K66으로 선정되었지만 시험평가에서 떨어지면서 복마전 양상을 띠게 된다. 결국 소송전으로 확대되면서 K66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은 1990년대 중반 유야무야 돼 버린다.K66 탄약운반장갑차 사업은 백지화되었지만 삼성항공은 차체를 활용해 K55 그리고 K9 자주포 부대의 지휘 및 사격통제용 장갑차인 K77을 만들어 육군과 해병대에 납품한다. 이밖에 대우중공업은 개발된 탄약운반장갑차를 기반으로 육군이 운용중인 천마 자주대공미사일의 미사일운반장갑차를 만들게 된다. 천마의 미사일운반장갑차는 국산 장갑차 가운데 수가 적어 희귀아이템으로 꼽힌다. 과거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이 만든 탄약운반장갑차는 지금의 K56과 달리 수동 탄약 보급 방식을 채택했다. 반면 현재 전력화 중인 K56은 로봇형 탄약운반차로 K55A1 자주포의 전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탄약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자동 보급한다.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한화디펜스로 통합되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차별의 담장 넘긴 ‘진짜 홈런왕’

    차별의 담장 넘긴 ‘진짜 홈런왕’

    애틀랜타·밀워키서 755홈런 대기록신기록 근접 땐 백인이 살해 협박도바이든 美대통령 “미국의 영웅” 추모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홈런왕 행크 에런이 22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에 각계의 추모가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트위터를 통해 “에런은 베이스를 돌 때 기록만 좇지 않았다. 에런은 편견의 벽을 깨는 것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줬다”며 “미국의 영웅”이라고 추모했다. 개인 통산 762개의 홈런을 친 배리 본즈는 “에런은 경기장 안팎에서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고 기렸다. 개인 통산 홈런은 본즈가 더 많지만 ‘금지약물 복용 파동’ 이후 많은 사람이 에런을 ‘진짜 홈런왕’이라고 부른다. ‘아시아 홈런왕’인 일본의 오 사다하루(왕정치)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회장도 “에런은 홈런, 타점 등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수였다”며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현역이던 1974년 도쿄에서 열린 대결에서 에런은 홈런 10개를 쳐 9개의 오 회장을 눌렀다. 은퇴한 뒤인 1984년 재격돌했을 때도 홈런 4개로 2홈런에 그친 오 회장을 제쳤다. 에런은 1974년 4월 9일 개인 통산 715번째 홈런을 치며 MLB 홈런 역사를 새로 작성했다. 에런은 13시즌 MVP 투표에서 상위 10명에 들었지만 MVP로 선정된 것은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1957년이 유일하다. 특히 에런과 가족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의 협박에 시달렸다. 베이브 루스(1895~1948)의 714개 홈런 기록 경신 즈음에는 잇따른 살해 협박으로 연방수사국(FBI)의 보호를 받았다. MLB닷컴은 “당시에 ‘더그아웃에서 에런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라는 농담이 들릴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에런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1982년 8월 삼성 라이온즈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에런은 홈런왕 비결과 관련해 “내 손목과 팔은 남보다 강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훈련 외에 홈런왕이 된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만수(당시 삼성), 윤동균(당시 OB) 등 현역 거포와 홈런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1934년 2월 앨라배마주 모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에런은 1954년부터 1976년까지 23시즌 3298경기에 출전해 1만 2364타석, 3771안타(타율 0.305), 755홈런, 2297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 애틀랜타와 밀워키 브루어스는 그의 등번호 4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앞서 에런의 딸은 애틀랜타에 살던 그가 22일 오전 별세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박찬호 은사‘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93세로 타계

    ‘박찬호 은사‘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93세로 타계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은사인 토미 라소다 전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감독이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93세로 별세했다고 AP 통신이 다음날 보도했다. 다저스 구단은 라소다 전 감독이 캘리포니아주 풀러턴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도중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건강 문제로 입원한 뒤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며칠 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76년 다저스 사령탑으로 부임한 라소다 전 감독은 1996시즌 중에 심장병을 이유로 사퇴할 때까지 21년 동안 다저스를 지휘했다.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를 지도하며 남다른 인연을 쌓았다. 라소다 전 감독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듬해 명예의전당에 올랐고, 다저스 구단 부사장과 고문으로 그라운드를 자주 찾는 등 많은 애정을 드러내 왔다. 다저스와의 인연은 무려 71년 이어졌다.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투수로 데뷔한 고인은 빅리그 마운드에서 세 시즌만 던지고 은퇴한 뒤 다저스 스카우트로 시작해 감독까지 올랐다. 총 3040 경기를 지휘하며 1599승 1439패 승률 .526를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2회, 내셔널리그 우승 4회, 서부지구 우승 8회의 굵직한 업적을 쌓으며 다저스의 레전드가 됐다. 등번호 2번은 다저스에서 영구결번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우승을 일궈내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열정적 리더십과 선수들과의 스스럼없는 소통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마이너리그의 많은 선수를 발굴해 메이저리거로 키워내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아홉 명이나 길러냈다. 다저스 구단주 마크 월터 회장은 “라소다는 훌륭한 야구 홍보대사였고, 선수들과 코치의 멘토였다. 그는 항상 팬들을 위해 시간을 내 사인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모두가)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스탠 카스텐 다저스 사장은 “라소다만큼 다저스 정신을 구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그는 결정적 순간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챔피언이었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을 때도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며 그의 정착과 성공에 든든한 배경이 됐다. ‘박찬호의 양아버지’를 자처해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 등의 명언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을 달성한 박찬호도 지난해 6월 미 비영리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할아버지뻘인 라소다 감독은 마치 동년배처럼 친구같이 대해줬다”고 회고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라도나 추모의 힘...옛 소속 클럽 대거 승전보

    마라도나 추모의 힘...옛 소속 클럽 대거 승전보

    세기의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마라도나가 과거 몸 담았던 클럽들이 대거 승리를 거둬 눈길을 끈다. 마라도나가 프로 커리어에서 절정기를 보냈던 이탈리아 나폴리는 30일 새벽 스타디오 산 파올로에서 열린 세리에A 홈 경기에서 로렌초 인시녜, 파비안 루이스 페냐, 드리스 메르턴스, 마테오 폴리타노의 연속골을 앞세워 AS로마를 4-0으로 대파했다. 6승 3패를 기록한 나폴리는 5위에 자리했다. 이날 산 파올로에는 마라도나의 대형 그림과 사진이 내걸렸다. 나폴리 선수들은 경기 전 마라도나의 사진 앞에 헌화하기도 했다. 특히 인시녜는 선제골을 넣은 뒤 마라도나의 등번호 10번 나폴리 유니폼을 손에 들고 세리머리를 펼쳤다.나폴리는 1986년 6월부터 7년간 마라도나가 몸담았던 팀이다. 이 기간 마라도나는 세리에A 첫 우승 등 스쿠데토 2회, 코파 이탈리아 1회 UEFA컵 1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회 우승을 나폴리에 안기며 이탈리아 북부에 견줘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이탈리아 남부의 영웅으로 대접 받았다. 등번호 10번은 나폴리의 영구 결번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4강에서 마라도나가 이끈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이탈리아를 꺾은 일이 빌미가 되어 이탈리아축구협회의 미움을 산 끝에 결국 이탈리아를 떠나게 됐지만 나폴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마라도나의 인기가 높다. 나폴리에 앞서 마라도나가 최초로 몸 담았던 유럽 클럽 FC바르셀로나(스페인)도 전날 밤 라리가 경기에서 오사수나를 4-0으로 격파했다. 마르틴 브레이스웨이트, 앙투안 그리즈만, 필리페 쿠티뉴가 연속 골망을 흔들었고,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각광 받았던 리오넬 메시가 쐐기골을 터뜨렸다. 메시는 유니폼 상의를 벗고 안에 받쳐 입은 아르헨티나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유니폼(등번호 10번)을 드러내며 하늘을 향해 손 키스를 날렸다. 뉴웰스는 마라도나가 현역 말년을 보낸 팀이자 메시가 유소년 시절을 보낸 팀이다. 메시는 이 세리머니로 옐로 카드를 받았다. 나폴리를 떠난 마라도나가 한 시즌 머물렀던 마지막 유럽 팀 세비야도 전날 새벽 우에스카를 1-0으로 제압했다.한편, 마라도나가 숨지기 직전까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던 힘나시아는 마라도나를 기리기 위해 ‘코파 디에고 마라도나’로 명칭을 바꾼 리그 컵 대회 경기에서 벨레스 사르스피엘드를 1-0으로 물리쳤다.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뛰던 시절 몸 담았던 보카 주니어스와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맞대결에선 보카 주니어스가 2-0으로 완승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젠 하늘에서 드리블…마라도나 심장마비로 타계

    이젠 하늘에서 드리블…마라도나 심장마비로 타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오.’‘신의 손’이 신들 곁으로 갔다.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세계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60세.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들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뇌경막하혈종 수슬을 받고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다. 구급차 9대가 출동했으나 끝내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60번째 생일이던 지난달 30일 지난해부터 지휘봉을 잡아온 힘나시아 라플라타의 경기가 열리기 앞서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은 게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대통령 궁에 안치된다. 마라도나는 브라질 펠레(80)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꼽힌다. 그는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포틀랜드 전쟁 등으로 상처가 깊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축구공 하나로 위로한 불세출의 천재였다. 작지만 탄탄한 체격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 수비수 서너 명은 쉽게 제치는 현란한 드리블, 위치를 가리지 않고 왼발로 쏘아 올리는 동물적인 슈팅에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 축구 팬들은 탄성을 질렀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공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마라도나는 16세에 프로에 데뷔했고, 17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정상을 밟았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어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와 관련 마라도나는 “나의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든 골”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에서 7년 간 프로 최고의 시절을 보내던 마라도나는 당시 4강에서 이탈리아를 꺽은 일로 하루 아침에 비난 대상이 되며 나폴리를 떠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나폴리에서 영구 결번이다.네 번째 출전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도중 도핑에 적발돼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며 내리막을 걸었고, 사생활에서 약물 중독, 음주, 폭행, 탈세 등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그라운드를 떠난 마라도나는 2001년 11월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세계 올스타팀과 은퇴 경기를 치렀고, 프로 통산 588경기 312골, A매치 통산 91경기 34골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8강까지 이끌기도 했으나 선수 시절에 견주면 크게 빛나지는 못했다.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다. 월드컵 무대에서 두 번 겨뤘다.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선수로 마라도나를 전담 수비하며 ‘태권 축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마라도나와 지략 대결을 펼쳤던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제가 반딧불이라면 마라도나는 태양이나 환한 달 같은, 감히 기량을 견줄 수 없는 존재였다”고 돌이키며 “조금 일찍 타계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아공 때를 보면 우리와 경기를 앞두고 ‘태권 축구’를 언급하며 심판 판정을 압박하는 등 심리적인 면에서도 수가 뛰어난 승부사라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펠레는 트위터에 마라도나의 사진을 올리며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고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면서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메시도 마라도나와 함께한 사진을 게시하며 “그는 떠나가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에고는 영원하다”고 인사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마법사였다”고 기리며 마라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라도나를 추모하며 기도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교황청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교황청은 마라도나를 ‘축구의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삼성 박한이 ‘숙취운전’ 불명예 은퇴 뒤 코치로 복귀

    삼성 박한이 ‘숙취운전’ 불명예 은퇴 뒤 코치로 복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박한이(41)가 ‘숙취 운전’ 적발로 불명예 은퇴한 뒤 약 1년 6개월만에 팀 지도자로 야구장에 돌아온다. 삼성은 23일 “박한이에게 코치 제의를 했고 입단이 확정됐다”며 “올해 안에 선수단과 인사할 기회를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한이도 “야구장에서 사죄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27일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아침에 차를 운전해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귀가하던 길에 접촉 사고가 났다. 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그의 음주 운전을 적발했다. 박한이는 당일 삼성 구단을 찾아 “책임지고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에서 우승 반지 7개를 끼며 삼성 왕조 주역으로 영구 결번이 유력했던 그는 은퇴식 없이 선수 생활을 마쳤다. 그 후 1년 6개월만에 구단으로부터 코치직 제의를 받은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5월 31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박한이에게 90경기 출장 정지, 봉사활동 180시간, 500만원 벌금의 제재를 부과했다. 박한이는 지난해 5월 은퇴를 발표했지만 문서상 퇴단은 11월에 했다. 출장 정지 징계 중 89경기를 지난해 소화했다. 코치로 복귀하는 2021년에는 1경기 출장 정지 징계만 소화하면 된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라이언킹’의 마지막 투혼… 8번째 별 품고 전설이 되다

    ‘라이언킹’의 마지막 투혼… 8번째 별 품고 전설이 되다

    ‘고별전 선발 풀타임’ 이동국 기쁨의 눈물홈팬들 전반 20분 2분간 기립 박수 화답98년생 팀 막내 조규성 2골… 전설 합작 울산, 광주 이기고도 9번째 준우승 눈물부산, 2부로 강등… 인천·성남 극적 잔류제주, K리그2 우승 확정… 내년 1부 복귀프로축구 전북 현대가 K리그 사상 첫 4연패를 달성하며 역대 최다 8회 우승 기록까지 세웠다. ‘라이언킹’ 이동국(41)은 8번째 별을 품으며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전북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시즌 K리그1 파이널A 최종 27라운드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조규성의 활약에 힘입어 대구FC를 2-0으로 꺾었다. 승점 60점을 쌓은 전북은 이날 26호골을 넣은 주니오 등을 앞세워 광주FC를 3-0으로 제압한 울산 현대와 승점 3점 차를 유지하며 리그 정상에 섰다. 2017년부터 4년 연속 우승이다. 통산 우승에서도 성남FC를 제치고 최다 8회로 우뚝 섰다. 이날 경기는 이동국을 위한 90분짜리 은퇴 잔치였다. 그는 후반 막판 투입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선발 출장해 올 시즌 첫 풀타임을 소화했다. 전북의 자신감이 드러난 대목이었다. 1만 251명의 관중은 전반 20분이 되자 2분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20은 이동국의 등번호다. 맏형을 위한 축포는 막내의 몫이었다. 이동국이 프로 데뷔한 1998년 태어난 조규성은 전반 26분과 39분 거푸 골망을 갈랐다. 이동국은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으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K리그 548경기 228골 77도움으로 23년간의 사자후를 끝냈다. 이겨야 할 때 이기는 법을 아는 ‘승리 DNA’가 다시 한번 빛나며 전북의 역전 우승으로 이어진 시즌이었다. 전북은 15년 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노린 울산에 견줘 스쿼드가 못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공수 전력에서 울산에 밀리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올 시즌 19승(3무5패) 중 10승을 1골 차로 따내며 승점을 챙겨 울산과 박빙의 경주를 펼쳤다. 또 울산과 3차례 격돌해 모두 이겼다. 18~20라운드에서 1무2패로 부진해 5점 차로 뒤졌을 때가 가장 큰 고비였으나 25라운드에서 따라잡더니 26라운드 맞대결에서 순위를 뒤집었다. 이동국은 은퇴식을 아버지, 어머니와 아내, 4녀 1남 자녀들과 함께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그는 “더는 이런 경기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마지막 경기를 자평했다. 또 “은퇴식 내내 다리 경련과 추위에 힘들었지만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내색 안 했다. (끝까지) 정신이 몸을 지배했다”며 웃었다. 전북은 이동국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했다. 울산은 2013년과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막판 역전을 허용하며 눈물을 뿌렸다. 또 준우승만 9회를 기록하며 ‘준우승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털어내지 못했다. 전날 파이널B 최종전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남이 극적으로 잔류하고,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됐다. 개막 15경기 연속 무승(5무10패)에 그쳤던 인천은 5시즌 연속 생존 드라마를 썼다. 5연패로 위기에 몰렸던 성남은 마지막 2경기에서 거푸 역전승하며 잔류했다. 반면 부산은 마지막 2경기에서 거푸 역전패, 한 시즌 만에 2부 리그로 떨어졌다. 한편 1일 K리그2 경기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서울 이랜드를 3-2로 물리치며 남은 한 경기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 2부 강등 한 시즌 만에 1부로 돌아가게 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날개 접는 ‘20년 황금독수리’ 김태균

    날개 접는 ‘20년 황금독수리’ 김태균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 타자 김태균(38)이 20년간의 프로 생활을 접는다. 한화는 21일 “김태균이 최근 성장세를 보이는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싶다며 은퇴를 결정, 구단에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혀 왔다”고 발표했다. 김태균은 내년 시즌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김태균은 “좋은 후배들이 성장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은퇴를 결정했다”며 “팀의 미래를 생각할 때 내가 은퇴를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구단을 상징하는 선수인 만큼 한화는 최고 예우로 은퇴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코로나19로 제한적 관중 입장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은퇴식은 내년에 열기로 했다. 한화는 김태균의 등번호 영구결번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영구결번은 상징성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기존 3명(장종훈, 송진우, 정민철)의 영구결번 선수와 견줘 내부적으로 검토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균은 올해 부상에 시달리며 67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타율 0.219 홈런 2개로 기량이 급격히 하락했다. 지난 시즌까지 지켜 온 11년 연속 3할 타율 기록이 깨진 것은 물론 역대 가장 적은 홈런이다. 김태균은 2001년 데뷔 첫해 타율 0.335(245타수 82안타) 20홈런으로 신인상을 차지하며 ‘홈런왕’ 장종훈을 잇는 한화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2010~2011년을 제외하고 18년을 한화에서 뛰며 통산 2014경기 0.320의 타율과 2209안타(역대 3위), 311홈런(11위), 1358타점(3위) 출루율 0.421 장타율 0.516을 기록했다. KBO리그에서 3000타석 이상에 선 타자 중 김태균보다 높은 출루율을 찍은 선수는 고(故) 장효조(출루율 0.427)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뿐이다. 2000안타 300홈런을 넘은 우타자는 김태균이 유일하다. 2005, 2008, 2016년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그가 있는 동안 팀이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은 커리어의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故 고유민 선수 어머니, “악성 댓글, 우리 딸 비관 극단 선택 원인 아니다”

    故 고유민 선수 어머니, “악성 댓글, 우리 딸 비관 극단 선택 원인 아니다”

    지난달 31일 경기 광주 오포읍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자프로배구 현대건설의 고유민 선수의 유족과 소송 대리인이 고 선수가 의도적 따돌림을 당하고 구단의 사기 계약이 선수를 좌절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고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악성 댓글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라는 것이다.“악플 극단 선택 원인 아냐” VS “악플로 심신 지쳤다는 의사 확인”고 선수 유가족과 고 선수 측을 대리하는 박지훈 변호사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송영길·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고유민 선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건 악성 댓글이 아니라 현대건설 배구단의 의도적 따돌림과 사기 갑질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고 선수 어머니도 “제 딸은 강한 아이라 악성 댓글만으로 비관 자살할 정도가 아니다”며 “제 딸이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감고 있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경찰이 포렌식 수사로 고인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서 찾아낸 자료를 제시하며 “코칭스태프의 의도적인 따돌림은 훈련 배제로 이어졌다”며 “고유민 선수는 숙소에서 자해를 한 동료를 감싸다가 눈 밖에 난 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밝힌 입장문에서 “고 선수는 지난 19~20시즌 27경기 중 25경기, 18~19시즌은 30경기 중 24경기에 출전 하는 등 꾸준히 경기에 참여했고, 과거 시즌 보다 더 많은 경기를 출전했다”며 “경기 및 훈련을 제외 시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자해 사건은 이도희 감독 부임 전에 있었던 일이다”라며 “그 선수도 악성 DM(인스타그램 개인 메시지·Direct Message) 때문에 힘들어 했다고 들었다”고 해명했다. 현대건설은 또 고 선수와의 합의가 ‘계약 해지’가 아닌 ‘계약 중지’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고인은 2019~2020 시즌이 진행 중이던 2020년 2월 29일 아무런 의사 표명없이 팀을 이탈했다”며 “이탈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 고인은 인터넷 악플로 심신이 지쳐 상당 기간 구단을 떠나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구단에서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상호합의 하에 3월 30일자로 계약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고유민 선수, 구단과 트레이드 약속 뒤 계약 해지 합의해또 유가족 측은 고 선수와 구단이 타 구단으로의 트레이드를 전제로 한 계약해지 합의가 있었음에도 임의탈퇴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현대건설은 고 선수에게 ‘트레이드를 시켜주겠다’며 ‘선수 계약 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요구했고 고 선수는 구단의 말을 믿고 3월 30일 사인했다”며 “한달 뒤인 5월 1일 현대건설은 일방적으로 고 선수를 임의 탈퇴 처리했다”고 밝혔다.유가족 측이 이날 공개한 ‘선수계약합의서’에는 3월 30일자로 양측의 도장과 사인이 있다. 1항에는 “선수는 구단과의 2019년 4월 1일 체결된 현대건설 배구단 선수 계약서 계약조건 제 22조 제1항, 훈련태만 및 불참 등에 따른 선수 계약 해지를 아래와 같이 합의하기로 한다”고 나온다.고 선수는 임의 탈퇴 소식을 접하기 전인 4월 20일 현대건설 사무국장에게 트레이드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때 현대건설 사무국장은 “FA 끝나고, 5~6월 사이에 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고 선수가 “트레이드 가능한 팀 알아봐주실 수 있냐”며 “전 제가 필요한 곳에 있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현대건설은 “끝나고 감독님하고 상의할게”라고 답했다.하지만 고 선수가 갑작스러운 임의탈퇴 소식을 접한 뒤 가족, 지인, 동료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어제 연맹에서 임의 탈퇴가 맞냐고 확인 차 전화왔다”, “계약 해지 합의서 들고 올 때는 좋은 조건으로 해준다고 해놓고 말도 없이 임의 탈퇴 공시했다”는 내용이 있다.게다가 유가족 측은 “현대건설은 고 선수에게 2020년 2월분 급여까지만 지급했다”며 “원래 지급해야할 7월까지의 급여는 이후 일절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이로 인해 고 선수가 구단과 계약이 해지됐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현대건설, 임의 탈퇴 후 고유민 의사 한번 더 확인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임의 탈퇴 공시를 한 뒤에도 다른 팀들과 이해관계가 맞으면 트레이드를 할 수 있다”며 “다만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규정 상 선수 계약이 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임의 탈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계약 해지를 하도록 합의서를 받은 것이 임의 탈퇴를 위한 통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KOVO 관계자는 “트레이드는 임의 탈퇴를 해제한 뒤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선수와 상의 없이 임의 탈퇴를 공시했다면 트레이드 의사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현대건설은 “구단에서는 임의탈퇴 공시 후 배구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6월 15일 고인과 미팅을 하며 향후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고인은 배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가 확고해 배구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고유민 등번호 받은 A선수 배번, 유족 말 듣고 발인 다음날 바꿔현대건설은 또 입장문에서 고유민 선수의 등번호 7번을 현대건설 배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7번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임의탈퇴 직후 다른 선수에게 주어졌다가 다시 해당 선수가 다른 번호로 바뀌며 논란이 된 바 있다. 고 선수의 어머니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초등학교 때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등번호 7번을 유지했던 유민이에게 7번은 이름보다 중요한 거였다. 그런데 유민이가 임의탈퇴 신분이 되니까 구단에선 곧바로 유민이 등번호를 다른 선수에게 내줘버렸다. 유민이가 그걸 보고서 충격이 컸다. 등번호 얘기 듣고서 얘가 갑자기 무너졌던 거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5월 11일날 A선수에게 7번을 줬다”며 “이후 8월 3일 고 선수 발인하는 날 장례식 현장에서 어머니로부터 등번호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날인 8월 4일 구단 내부적으로 상의해서 배번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오늘의 눈] 강정호, 진심에서 ‘3년 반’ 떨어진 반성/최영권 체육부 기자

    [오늘의 눈] 강정호, 진심에서 ‘3년 반’ 떨어진 반성/최영권 체육부 기자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님을 만나 많은 회개를 했습니다.” 두 귀를 의심했다. 지난 23일 강정호의 사과 기자회견 현장에서 기자가 ‘2016년에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뒤 야구로 보답하겠다고 했었는데 이유가 뭐였나’라고 묻자 강정호가 “당시만 해도 어리석었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덧붙인 말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는 아들을 유괴해 살인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신에게 구원받았기 때문에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고 평온한 얼굴로 말한다. 충격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신애는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다며 절규한다. 강정호가 속죄해야 할 대상은 지구 반대편 도미니카에 있는 생면부지의 선교사가 아니라 그를 사랑한 야구팬이었고 누군가의 음주운전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가족들이었다. 강정호는 2016년 12월 2일 오전 2시 49분 서울 강남구 삼성역사거리에서 음주운전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달아난 뒤 쫓아 온 경찰관에게 동승자였던 중학교 동창을 앞세워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했다. 하지만 블랙박스를 통해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나자 진술을 번복했다. 그때 운전자가 자신이 아니었다는 거짓말이 들통난 뒤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 “야구로 보답하겠다”였다. 이후 그는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그로 건너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더이상 통하지 않자 한국 복귀를 결심했고 사건이 있은 지 3년 반 만에야 공개석상에서 사과했다. 만약 그가 아직도 메이저리그에서 잘나가는 선수였다면 한국에서 사과했을까. 프로야구의 모토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다. 음주운전 삼진아웃을 당한 선수가 야구장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 주는 게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일까.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7개를 끼고 영구 결번이 유력했던 박한이는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숙취운전’으로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다가 음주 단속에 적발되자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KBO 규약상 강정호에게 중징계를 내릴 수 있었음에도 ‘솜방망이 징계’로 한국 복귀 길을 열어 줬다. 키움 히어로즈가 최종적으로 강정호를 뛰게 한다면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story@seoul.co.kr
  • 히딩크의 어퍼컷이 왜 없나… 독수리 ‘끼리끼리 문화’에 꽂히는

    히딩크의 어퍼컷이 왜 없나… 독수리 ‘끼리끼리 문화’에 꽂히는

    능력보다 친분 우선… 공정 경쟁 어려워 외국인 감독도 전권 없으면 실패 우려 한화가 10여년 동안 하위권을 맴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자 팬들은 아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단순히 국내 감독을 앉혀서는 ‘이상한 구단 문화’를 타파할 수 없는 만큼 선진 야구 시스템을 경험한 메이저리그 출신에게 팀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구각(舊殼)을 깨는 파격적 리더십으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같은 리더십을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한화의 지도부는 선수 시절부터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레전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카르텔’을 깨는 게 개혁의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한 선후배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팀 내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저해하면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현재 한화 단장인 정민철, 1군 수석코치 장종훈, 2군 육성코치 송진우는 모두 대전·충청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한 팀에서 영구결번된 3명의 레전드가 동시에 그 팀 지휘부에서 일하는 것은 3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한용덕 감독은 영구 결번 지정자는 아니지만 한화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명투수로 은퇴한 레전드로, 두산 코치로 가기 전까지 한화 감독대행을 맡는 등 구단에서 오랫동안 코칭스태프로 몸담았다. 이 때문에 이들이 철저한 선후배 관계로 강고한 상층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민주적 의사소통과 과감한 혁신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선수를 능력이 아닌 친소관계 위주로 기용해 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도 곁들여진다. 올 시즌 1위를 구가하고 있는 NC와 상위권의 키움이 주전과 후보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한 반면 한화는 몇몇 고참 선수들에게 과도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야구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 자기관리,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2008년 롯데 야구 부흥을 이끌었다. 한미일 야구를 두루 경험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감독까지 지낸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올해 부임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KIA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야구계의 한 인사는 3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더라도 전권을 주지 않는다면 실패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꼴찌 한화의 이상한 문화 : 경쟁 없는 순혈주의

    꼴찌 한화의 이상한 문화 : 경쟁 없는 순혈주의

    프로는 결과를 증명하는 자리다. 하지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10여년 동안 하위권을 맴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아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단순히 국내 감독을 앉혀서는 한화의 ‘이상한 문화’를 타파할 수 없는 만큼 선진 야구 시스템을 경험한 메이저리그 출신에게 팀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구각(舊殼)을 깨는 파격적 리더십으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같은 리더십을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한화의 지도부는 선수 시절부터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레전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카르텔’을 깨는 게 개혁의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한 선후배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팀 내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저해하면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현재 한화 단장인 정민철, 1군 수석코치 장종훈, 2군 육성코치 송진우는 모두 대전·충청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한 팀에서 영구결번된 3명의 레전드가 동시에 그 팀 지휘부에서 일하는 것은 3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한용덕 감독은 영구 결번 지정자는 아니지만 한화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명투수로 은퇴한 레전드로, 두산 코치로 가기 전까지 한화 감독대행을 맡는 등 구단에서 오랫동안 코칭스태프로 몸담았다.이 때문에 이들이 철저한 선후배 관계로 강고한 상층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민주적 의사소통과 과감한 혁신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선수를 능력이 아닌 친소관계 위주로 기용해 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도 곁들여진다. 올 시즌 1위를 구가하고 있는 NC와 상위권의 키움이 주전과 후보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한 반면 한화는 몇몇 고참 선수들에게 과도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야구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 자기관리,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2008년 롯데 야구 부흥을 이끌었다. 한미일 야구를 두루 경험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하고 감독 경험까지 있는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KIA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야구계의 한 인사는 3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더라도 전권을 주지 않는다면 실패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MLB 전설’ 루 게릭 배트 12억원에 팔려

    ‘MLB 전설’ 루 게릭 배트 12억원에 팔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전설’ 루 게릭(1903~1941)이 사용했던 방망이가 약 100만 달러에 팔렸다. 미국 언론은 9일 “최근 한 소장가가 루 게릭이 1922년부터 사용했던 배트를 미국 헤리티지 경매사로부터 102만 5000 달러(약 12억 5000만원)에 샀다”고 보도했다. 루 게릭이 대학 때와 프로 초반에 사용했던 이 배트는 지난 2월 경매에서 입찰가 95만 달러에 나왔다가 유찰됐지만 한 개인 소장가가 최근 구매 의사를 밝혀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루 게릭은 야구용품 제조사에 비슷한 모델을 여러 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이 배트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 경매사는 밝혔다. 루 게릭은 MLB 최초 영구 결번(4번) 선수다. 1923년부터 1939년까지 양키스에서 뛰며 17시즌 통산 타율 0.340에 493홈런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근육이 굳어 가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은퇴했다. 은퇴 직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년 만에 사망했다. 이때부터 그가 앓던 병은 루게릭병으로 불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네이스미스 메모리얼 농구 명예의 전당은 5일(한국시간) 지난 1월 딸 지아나와 함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브라이언트를 포함해 케빈 가넷, 팀 덩컨 등 8명을 회원으로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려면 선정위원회 총투표수 24표 가운데 18표 이상을 받아야 한다. 브라이언트는 1996년부터 2016년까지 LA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20시즌 내내 활약하며 통산 1346경기에 출전해 평균 25득점, 5.2리바운드, 4.7어시스트, 통산 3만 3643점(역대 4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섯 차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고,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상도 두 차례 받았다. 올스타에는 18차례 뽑혔고, 득점왕에도 두 차례 올랐다. 레이커스는 그가 사용한 등번호 8번과 24번 모두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 미국 농구대표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월한 유연성과 근성 있는 플레이로 아프리카 독사 이름에서 따온 ‘블랙 맘바’로 불렸다. 2006년 토론토 랩터스를 상대로 81점을 몰아넣으며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2위에 빛나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덩컨은 1997~2016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만 뛰며 챔피언결정전 우승 다섯 차례, MVP 3차례 등의 성적을 냈다. 이 밖에 한국 여자프로농구에서도 활약했으며 미국의 올림픽 여자농구 4연패를 이끌었던 타미카 캐칭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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