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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오빠’ 이상민 KCC 전설로

    프로농구 KCC가 ‘영원한 오빠’ 이상민(38)의 등 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키로 했다. KCC는 14일 보도자료에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상민이 현대와 KCC에서 이룬 업적과 프로농구 발전에 공헌한 점을 높이 사, 등 번호 11번에 대해 영구 결번식을 거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영구 결번식은 17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리는 KCC의 정규리그 홈 개막전 식전행사에서 열린다. 이상민은 현재 미국 유학 중이라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 이상민은 지난 4월 삼성에서 은퇴를 발표했지만, 전성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프로 생활을 KCC(현대 시절 포함)에서 지냈다. 1997~1998시즌 KCC의 전신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2007년 삼성으로 이적하기까지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맹활약했다. 10시즌 동안 3차례나 KCC를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2007~2008시즌 KCC가 서장훈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상민은 이적 보상선수로 지명돼 삼성으로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삼성에서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 탓에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상민의 은퇴가 결정된 뒤 농구계와 팬들 사이에서는 “이상민의 영구 결번식은 KCC에서 치러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KCC와 삼성 간에 여러 가지 잡음도 있었다. 지금까지 프로농구에서 다른 팀에서 은퇴한 선수의 영구 결번식을 거행한 사례가 없었던 것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KCC는 삼성과 협의 끝에 결국 결단을 내렸다. 영구 결번식에서는 이상민의 활약상을 영상으로 상영하고, KCC에서 이상민과 호흡을 맞췄던 추승균이 직접 11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체육관 천장에 게양한다. 개막전에 입장하는 팬들은 영구 결번 유니폼이 새겨진 손수건을 선물 받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위수동’ vs ‘친지동’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우리 사회에서 ‘위수동’, ‘친지동’이란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이 운동권 헤게모니를 쥔 1980년대 후반 무렵이다. ‘위수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줄인 말이고, ‘친지동’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축약어다. 줄이기 전엔 김 부자에 대한 북측의 찬양의 뜻이 담겼을 게다. 반면 줄임말들은 북측의 우상화 놀음을 추종하는 남쪽 주사파를 겨냥한다. 그런 개인숭배 동조자에 대한 비아냥이란 말이다. ‘위수동’의 주인공이 고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제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방북했던 기독교선교단체 ‘오픈 도어즈’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방북 기간 중 관찰해 봤더니, 과거 김일성을 가리켰던 ‘위대한 수령’이란 호칭을 김정일에게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과 안내원들이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친애하는 지도자’로 구분해 호칭했다고 전제하면서다. 북한 당대표자회의 개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끈다. 3대 세습 정지작업의 수위를 짐작하게 하는 까닭이다. 보도대로라면 ‘친애하는 지도자’란 호칭은 이제 3대 후계자 김정은의 몫임을 시사한다.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바꿔 불렀다는 보도도 세습의 진전 징후다. 북한은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1998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다. 프로야구 대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으로 남겨놓았던 주석직을 김일성에게 다시 ‘헌정’한 꼴이다. 대신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은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씩 올려 세습의 정통성을 강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호칭들은 모국어를 오염시키는 낯간지러운 헌사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체제가 단시일 내에 개혁·개방이란 세계문명사의 큰 흐름를 타기 어렵다는 징표라는 점이다. 권력의 혈연적 승계는 봉건성의 강화로, 시대착오일 뿐이다. 러시아처럼 시장경제로의 대변화와도,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와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3대 권력세습이 어떤 형태로, 언제쯤 완결될지를 점치기란 어렵다. 왕정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에선 유례가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세습 성공이 곧 체제의 안착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 지도부는 개혁·개방만이 고사 직전의 체제를 살리는 외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아듀! 구대성

    아듀! 구대성

    ‘대성불패’ 구대성(41·한화)이 18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프로야구 한화는 15일 “베테랑 좌완 구대성이 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는다.”고 밝혔다. 한화는 다음 달 2일 대전 삼성전에서 구대성의 은퇴식을 마련할 계획이다. 등번호(15번)를 영구결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전고와 한양대를 거친 뒤 한화의 전신 빙그레에 입단한 구대성은 지난 18년 동안 한국 최고의 좌완 투수로 군림했다. 국내에서 뛴 13시즌 동안 통산 568경기 67승71패 18홀드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1996년에는 다승·평균자책점·승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투수 3관왕에 올랐고,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1999년에는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며 MVP를 거머쥐는 등 프로야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야생마’ 이상훈과 함께 한·미·일 3개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구대성은 ‘일본 킬러’로도 이름을 날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 만난 일본을 9이닝 완투승으로 누르며 한국의 첫 동메달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1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 4년간 통산 24승34패 평균자책점 3.86으로 활약했다. 2005년에는 미프로야구 뉴욕 메츠에 입단해 33경기 동안 승패 없이 3.91의 평균자책점을 남겼다. 구대성은 “많은 사랑을 보내준 팬 여러분과 묵묵히 옆에서 나의 야구 인생을 함께해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누구나 야구에 대한 더 큰 욕심이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상황에서 떠나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프로야구]굿바이! 神이라 불리운 사나이여

    [프로야구]굿바이! 神이라 불리운 사나이여

    불혹을 넘은 나이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 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41·삼성)이 결국 아름다운 은퇴를 택했다. 양준혁은 26일 구단을 통해 “아직도 체력적 문제는 없지만 팀의 리빌딩을 위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나와 팀을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며 18년 선수생활을 마감할 뜻을 밝혔다. ●9월 대구서 축제의 은퇴경기 프로야구 삼성은 양준혁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지만, 시즌을 마칠 때까지 1군 선수들과 동행하며 타격 등을 조언하도록 했다. 은퇴 후 진로는 시즌이 끝난 뒤 본인이 결정하도록 배려했다. 삼성은 또 9월 대구 홈 경기 중 한 경기를 양준혁 은퇴경기로 정해 팬들과 함께 축제의 장을 열 계획이다. 신(神)과 같은 기량을 지녔다고 해서 ‘양신’으로 불리는 양준혁.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3년 삼성에 입단한 그해 신인왕을 시작으로 각종 타이틀 기록을 휩쓸었다. 프로야구 통산 최다 경기출장(2131경기), 최다안타(2318개), 최다홈런(351개), 최다타수(7325타수),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루타(3879개), 최다사사구(1380개) 등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산 증인이다. ●프로 통산 최다 출장·안타·홈런 휩쓸어 양준혁의 올 시즌 성적은 홈런 1개에 타율 .252(135타수 34안타) 20타점 10득점. 하지만 18시즌 동안 통산 타율은 .316에 달한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타격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데뷔 후 2001년까지 9년 연속 3할타율을 기록했고, 데뷔 첫해인 1993년을 비롯해 1996년, 1998년, 2001년 등 4번이나 타격왕에 올랐다. ●9년 연속 3할타율·타격왕 4번 기록 양준혁은 “그동안 구단과 많은 팬의 사랑과 관심으로 오늘의 양준혁이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시원섭섭한 기분이 없지 않지만 선수로서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점 가슴깊이 팬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또 감독과 코칭스태프, 동료선수들과 구단에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양준혁은 “마지막으로 기회가 된다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2010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붓겠다.”며 변함없는 열정을 내비쳤다. 한편 삼성 김응용 사장은 은퇴를 선언한 양준혁의 업적을 높게 평가한 뒤 그의 등번호(10번)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뜻을 밝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양준혁 은퇴 선언…구단측, 영구결번 검토

    양준혁 은퇴 선언…구단측, 영구결번 검토

    국내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 양준혁(삼성 라이온스, 41)이 은퇴를 선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구단측이 그의 등번호 영구결번에 대해 논의중인 사실이 전해져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68) 사장은 “양준혁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오직 야구밖에 모르는 성실한 선수의 교과서다. 이만수의 기록보다 오히려 낫기 때문에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양준혁의 업적을 높게 평가, 등번호(10번)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양준혁은 26일,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통보했다. 이를 받아들인 구단측은 이날 양준혁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향후 양준혁은 해외 연수 등을 거쳐 지도자의 길을 밟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삼성라이온스 홈페이지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우지원 은퇴 발표

    ‘황태자’ 우지원(37·모비스)도 코트를 떠난다. 모비스는 3일 우지원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우지원은 “선수생활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올 시즌 주장으로서 팀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는 등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판단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우지원은 선수생활은 그만두지만, 모비스에 계속 남아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된다. 우지원은 “유학도 생각해 봤지만 유재학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는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재학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농구대잔치 스타로 군림했던 우지원은 프로에 입문한 뒤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프로원년인 1997년 대우에서 프로생활을 시작, 군복무 시기인 1998~99시즌을 제외하고 13시즌 동안 573경기에 출전, 경기당 평균 12.8점, 2.5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모비스는 우지원의 공로를 인정해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시키기로 했으며, 2010~11시즌 개막전에 앞서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을 갖기로 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비운의 야구스타들

    비운의 야구스타들

    올해 41세 임수혁은 10년 가까이 침대에 누워 있다 떠났다. 인생의 4분의1을 식물인간으로 살았다. 프로야구 선수로 뛴 7년보다 길다. 사고 당시 31세였다. 포수로선 가장 활발하게 뛸 나이다.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죽음이다. 구장엔 또 다른 비운의 스타들이 있다. 해태(현 KIA) 김상진. 1999년 6월 위암으로 숨졌다. 당시 22세였다. 김상진은 촉망받는 투수였다. 1997년 LG와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했다. 해태 우승을 결정지었던 마지막 5차전을 완투승으로 장식했다. 20살 프로 2년차로선 예상치 못한 활약이었다. 전문가들은 “해태의 다음 10년을 이끌 에이스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딱 1년 만인 다음해 10월 병이 발견됐다. 저녁식사를 하다 피를 토했다.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해 12월 “꼭 마운드에 다시 서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입원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한 번도 병원 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6개월 만에 전신에 암이 퍼져 사망했다. 2001년 김상진 팬들은 ‘천상비애(天上飛愛)’란 팬클럽을 만들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기도 했다. 1986년 MBC(현 LG) 김정수가 승용차를 운전하다 시내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팀 동료 안언학, 김경표와 병역특례 보충역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다른 둘은 중상을 입었지만 살았다. 그러나 3년 뒤 생존자 김경표에겐 묘한 불운이 찾아왔다. 훈련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1988년에는 해태 투수 김대현이 광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다 화물트럭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당시 조수석에 있던 이순철(49·MBC ESPN 해설위원)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고 있어 목숨을 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수도 있다. 1985년 OB(현 두산)에 입단한 포수 김영신, 이듬해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김영신은 김경문, 조범현에 가려 경기 출장기회가 거의 없었다. 김영신의 등번호 54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2001년 7월에는 롯데 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을 거뒀다. 현직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순직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목포 갓바위 천연기념물 500호에

    국가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이 지정 500호를 돌파했다. 문화재청이 지난 3월 지정예고했던 전남 목포시 ‘갓바위’가 28일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됨에 따라 1962년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한 이래 47년 만에 지정 500호를 돌파했다. 목포 갓바위가 500호라고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416건뿐이다. 지정 대상 중 동·식물이 많아 태풍, 전염병 등 각종 재해로 천연기념물들이 죽거나 지정 해제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500호 안에는 일제강점기 때 천연기념물이었다는 이유로 지정했다가 곧바로 해제한 북한 내 천연기념물들까지도 포함돼 있다. 천연기념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의 지정번호는 만약 그 문화재가 지정해제되더라도 그 번호에 다른 문화재를 지정하지 않고 영구결번 처리한다. 이번에 영광의 500번 자리를 차지한 목포 갓바위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 풍화 작용과 해안침식 작용을 동시에 받아 삿갓 쓴 사람 형상으로 깎여나간 풍화혈(風化穴)이다. 자연이 빚어낸 독특한 조각품이란 점이 높게 평가됐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日 ‘야구거인’ 이젠 전설로…

    7일 저녁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의 홈구장인 미야기현 센다이시 크리넥스스타디움으로 상대 소프트뱅크가 방문했다. 4시간 7분 12회 연장 대혈전이 펼쳐졌고, 소프트뱅크는 12회말 결국 0-1로 패하고 말았다. 경기 중간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칠 줄을 몰랐고, 그 비에 흠뻑 젖은 팬들은 스탠드에서 모두 일어선 채 떠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일본 야구를 상징했던 거인이 역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 전 보여준 마지막 뒷모습에 무한한 존경심을 헌사했다. 이날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시즌 최종전은 지난달 23일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오 사다하루(王貞治·68) 감독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소프트뱅크는 이날 패배로 64승3무77패 최하위가 됐다.1996년 이후 12년 만에 나온 최악의 성적. 감독 통산 2507경기를 치른 오 사다하루 감독으로서는 1315승 74무 1118패. 오 사다하루 감독은 “승부사로서 최후를 승리로 장식할 수 없었던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12회까지 하게 된 점은 야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경기였다. 좋았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2년 전 위암 수술 등 치료를 받으며 건강이 지나치게 손상된 것. 닛칸스포츠와 산케이스포츠 등 일본 언론들은 “하나의 야구계 역사가 막을 내렸다. 하늘도 함께 울었다.”고 보도했다. 1959년 요미우리에 입단한 이후 외다리타법으로 80년 은퇴하기까지 프로야구 세계 최다인 868개의 홈런을 날렸고,1984∼1988년 요미우리 감독을 맡아 87년 우승을 이끌었다.95년부터 소프트뱅크(당시는 다이에 호크스) 지휘봉을 쥐었다.2006년에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대표팀을 맡아 초대 챔프에 올려놓기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오 사다하루 감독이 늘 애착을 표시해 왔던 등번호 ‘89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오 사다하루 감독은 요미우리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1번’에 이어 두 개의 영구 결번을 가지게 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No.80 호나우지뉴를 통해 본 등번호 굴욕사

    No.80 호나우지뉴를 통해 본 등번호 굴욕사

    등번호 10번의 상징적 존재인 ‘R10’ 호나우지뉴가 AC밀란에서 80번을 달게 됐다. 밀란은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선수에게 등번호를 바꿔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미 10번은 클라렌세 세도르프가 사용하고 있다. 그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호나우지뉴는 자신이 생년인 1980년을 나타내는 80번을 새로운 등번호로 선택했다. 사실 밀란은 독특한 등번호로 이미 유명한 팀이다. 지난 1월 등번호 9번을 대표하는 호나우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적했을 당시 9번이 아닌 99번을 부여했으며 라치오에서 이적해 온 마시모 오또에게도 44번을 배정한 바 있다. (이 또한 이미 9번과 4번을 달고 있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독특한 등번호가 밀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타 리그에 비해 세리에A에는 유독 높은 숫자의 등번호가 많은 편이다. 아틀란타의 88번 마이클 시아, 피오렌티나의 54번 마누엘 다 코스타, 라치오의 88번 시모네 산타렐리, 삼프도리아의 99번 안토니오 카사노 등 리저브 멤버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등번호가 널려있다. 세리에A가 타 리그에 비해 독특한 등번호가 많은 이유는 영구결번에 비교적 관대한 리그의 특성과 특정번호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등번호의 영구결번은 번호 선택의 폭을 좁혔고 특정 번호에 애착이 강한 선수들은 다른 번호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등번호를 중복 사용해 77번 내지는 99번을 달곤 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번호를 기존의 선수가 사용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다른 등번호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언급한 호나우지뉴와 호나우두가 대표적인 최근 사례라 할 수 있으며 과거 인터밀란 소속이었던 칠레 출신의 이반 사모라노가 호나우두 때문에 18번을 달아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호나우두 못지않게 등번호 9번을 좋아했던 사모라노는 호나우두가 9번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다른 등번호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독특한 발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다. 18번 사이에 +를 넣어 1+8번으로 만든 것. 당시 사모라노의 엉뚱한 등번호는 아직까지도 가장 재미있는 등번호로 회자되곤 한다. 이밖에 7번으로 대표됐던 데이비드 베컴 역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등번호를 23번으로 변경해야만 했다. 이미 팀에는 팀의 아이콘인 라울 곤잘레스가 7번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베컴은 자신이 좋아하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인 23번을 택했고 LA캘럭시로 이적한 지금도 23번을 사용하고 있다. 14번으로 유명한 티에리 앙리도 처음부터 14번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반 바스텐을 존경하는 앙리는 12번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아스날 이적시 이미 팀에는 12번을 사용하는 선수가 있었고 그로인해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14번이었다. 결과적으로 더 유명한 등번호가 탄생했으니 괜찮은 차선택이 된 셈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soccerview.ahn@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광장] ‘국보 1호’를 비워두라/진경호 정치부차장

    [서울광장] ‘국보 1호’를 비워두라/진경호 정치부차장

    늘있었다. 앞으로도 죽 있을 줄 알았다. 한강처럼, 남산처럼. 그런 숭례문이 사라졌다. 출근길 매번 그 앞에서 차를 돌리면서도 올려다본 건 숭례문의 수려한 처마 끝이 아니라 그 앞에 매달린 신호등이었다. 숭례문은 그런 존재였다. 언제든 있을 테니까 보지 않는…, 보지 않아도 되는…. “세계적인 유산 숭례문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습니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 취임사를 숭례문은 어떻게 들었을까. 육백 성상(星霜)의 시련과 영화를 꿋꿋이 견뎌냈건만 하룻밤 화마(火魔)에 이리도 허망하게 무너질 것을 숭례문은 예감했을까. “노숙자들이 ‘확 불질러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숭례문 개방은 바람직했지만 너무 경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탁상에서 답하지 마시고, 한번 현장에 나가보십시오. 한숨만 나옵니다. 잘못하면 조만간 누가 방화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지난해 2월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경복궁을 스물아홉차례 답사했다는 스물두살 청년의 절박한 호소다. 시청역에서 쫓겨난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으로 몰려갔다는 얘기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번이라도 들어봤을까. 나가보고, 들었는데도 숭례문은 무너졌을까. 문화재와 너무 친숙해서인지 제 집 안마당인 양 왕릉에서 가스불을 피워댄 문화재청장 유모씨는 멀쩡한 광화문을 뜯어 옮기기에 앞서 그 돈으로 숭례문 안에다 소화기라도 몇 개 더 갖다 놓겠다는 생각은 정말 하지 못했나. 티가 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이 미치지 않았나. 유모씨가 낸 사표를 굳이 퇴임 이틀 전에 수리하겠다며 가슴에 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심사는 대체 뭔가.“숭례문이 근 1세기 만에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것은 뜻 깊은 일”이라며 자서전을 통해 자찬을 아끼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숭례문이 서둘러 시민 품을 떠난 지금 왜 한 줄의 자탄도 없나. 국민 가슴을 숯덩이로 만든 숭례문 잿더미 속에서 또 다른 절망의 불씨가 피어 오른다.“3년 안에 복원”,“국보 1호 유지”,“복원은 국민 성금으로….” 복원에 쓸 부재(部材)를 말리는 데만 3년 걸린다는데 무슨 재주로 3년 안에 복원인가. 그렇게 숭례문을 새로 지어 ‘국보 1호’라 외치면 불살라진 조선의 혼과 얼, 민초들의 숨결이 되살아나는가. 숭례문이 스러진 지 반나절도 안 돼 터져나온 국민성금 발상은 이번 숭례문 참화의 절정이다. 앞집 옆집 한푼두푼 모은 국민성금으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터진 이 국가적 흉액을 국민 총화의 계기로 반전시키겠다는 역발상의 기민한 위기대응능력에 혀를 내둘러야 할지, 혀를 차야 할지 그저 헷갈린다. 무슨 철거가옥도 아닐진대 포클레인으로 숭례문 잔해를 거둔다는 소식엔 말문이 막힌다. 당장 가림막부터 걷어치우라. 지금은 복원을 말할 때가 아니다. 아니 복원이란 말로 재건(再建)을 가릴 때가 아니다. 숭례문 잿더미 속을 헤집어 복원 때 쓸 서까래 대들보 조각을 찾을 때가 아니다.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불태운, 천박한 우리의 자화상부터 끄집어 내야 한다. ‘국보 1호’를 영구 결번으로 비우고, 그 자리에 이 부끄러운 자화상을 담아 두자. 한없이 비정하고 그래서 가슴이 저미지만, 재건한 숭례문을 ‘국보 1호’로 둔갑시키는 자기기만은 버리자.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워야 국보 2호,3호를 살린다. 숭례문은 죽었다. 진경호 정치부차장 jade@seoul.co.kr
  • [NBA] ‘우편배달부’ 말론 굿바이

    미국프로농구(NBA)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꼽히는 ‘우편배달부’ 칼 말론이 14일 유타 재즈의 홈구장 델타센터에서 은퇴회견을 갖고 있다. 말론은 “지난 19년은 내게 축복이었지만, 모든 좋은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정든 NBA코트와 유타팬에게 작별을 고했다. 말론의 등번호 ‘32’는 유타에서 영구결번되며 명예의 전당 입성도 확실시된다. 솔트레이크시티(미 유타주) 연합
  • [하프타임] 故김현준 농구장학금 3명에 전달

    프로농구 삼성은 18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오리온스와의 홈경기에서 제5회 고 김현준 농구장학금 전달식을 갖는다. 이번 전달식에서는 장학생들이 모두 모여 삼성에서 영구 결번된 ‘전자슈터’ 김현준 코치의 유니폼을 체육관에 게양하고 고인을 추모한다. 올해는 서울시 중고농구연맹의 추천자 중 정재철(홍대부고), 박찬희(경복고), 김덕일(구로중)을 장학생으로 뽑아 각각 210만원씩을 전달한다.
  • [씨줄날줄] 上場 1호 기업/오승호 논설위원

    ‘000010’. 국내 주식시장 상장 1호 기업인 조흥은행의 종목 코드 번호다.10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 은행인 조흥은행이 오는 7월 상장 폐지돼 증권 시세표에서 이름이 사라진다.1956년 3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를 시작한 지 48년 만이다. 조흥은행의 전신은 1897년 2월19일 설립 인가를 받은 한성(漢城)은행.최근 우리은행과 한국금융학회가 펴낸 ‘한국의 은행 100년사’에 따르면 한성은행은 고위 관료와 서울의 상인들에 의해 창립됐다.중추원의관,궁내부 협판,궁내부 대신 서리 등을 역임한 민영찬,서울에서 금을 매매했던 상인인 권영석,대금업자로 유명했던 한치조 등이 발기인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 번호 23번처럼 조흥은행의 상장 번호도 영구 결번으로 역사에 남게 되길 바랍니다.”지난해에 신한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된 조흥은행의 최동수 행장은 지난 24일 상장 폐지 승인 건 등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임시 주총에서 “은행장으로서 참으로 아쉽고 유감스럽다.”면서 끝내 눈물을 떨어뜨렸다고 한다.조흥은행의 주식은 신한지주가 100% 소유하고 있다. 한때 조흥은행 임직원들의 자존심은 대단했다.가장 오래된 은행인 데다 영업력도 좋아 후발 은행을 우습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외환 위기 발생 2년 뒤인 지난 99년에는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하는 등 외형도 키웠다.그러나 부실 규모가 커져 진통을 거듭한 끝에 신한지주의 자회사로 전락하고 말았다.내년에는 신한지주와의 통·폐합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유럽의 스트라틱컨설팅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역사가 비교적 긴 유럽과 일본 기업의 평균 수명은 13년에 불과하다.초대형 다국적 기업도 평균 수명이 50년 미만인 예가 많다.그렇지만 장수 기업도 많다.우리나라에서 ‘눈물의 주총’을 여는 기업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모두 100년 이상 장수하길 빌어 본다.1802년 화약회사로 출발한 듀폰,1892에 설립된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미국의 의료기기 및 문구류 제조업체인 3M 등 처럼…. 오승호 논설위원˝
  • “허재, 당신은 영원한 영웅”

    “학창 시절 당신의 모습에서 패기와 열정을 배웠고,나이가 들면서 패배를 인정하는 여유도 배웠습니다.불혹이 된 지금 당신에게서 인생을 배웁니다.허재.영원한 나의 영웅.수고하셨습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수비의 눈을 속이는 노룩 패스와 물처럼 부드러운 드리블,돌고래처럼 솟구쳐 오르는 레이업슛,안정된 점프와 강한 스냅에서 터지는 클러치 3점슛,그리고 붕대 투혼….‘농구 천재’가 30년 동안 보여준 농구의 ‘정석’은 이제 낡은 비디오 테이프나 추억 속에서 찾아야 한다. ‘제2의 이충희는 있을 수 있어도,제2의 허재는 없다.’는 찬사를 받아온 ‘농구 대통령’ 허재(39·TG삼보)가 2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은퇴경기를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체육관을 가득 메운 열혈 팬들은 권좌에서 내려오는 ‘농구 대통령’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겠노라며 기립박수를 보냈다.허재 자신이 직접 고른 24명의 기라성같은 후배들은 청팀과 백팀으로 갈려 대선배의 마지막 땀방울을 함께 나눴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허재를 두 번이나 울린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조성원(KCC),허재가 늘 ‘문띵’ 이라며 놀려댄 문경은(전자랜드)은 지도자의 길을 떠나는 선배에게 격려의 3점포를 쏘아 올렸다.천하의 허재도 부러워하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이상민(KCC),허재가 한국 최고의 선수라고 주저없이 평가하는 서장훈(삼성),가장 아끼는 후배 김주성(TG)도 기꺼이 잔치의 조연이 됐다. 허재를 가장 애틋하게 바라보는 선수는 역시 강동희(38·LG).‘튀는’ 허재 뒤에는 언제나 우직한 강동희가 있었다.허재는 “동희가 있었기에 내가 빛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고,강동희는 “허재 형은 변함없는 나의 큰 산”이라고 말했다. 허재는 전반에는 중앙대 농구의 ‘대부’ 정봉섭 대학농구연맹 회장이 감독을 맡은 백팀에서,후반에는 용산중·고 은사인 양문의씨가 이끈 청팀에서 뛰었다.종료 직전 골밑에서 후배들에게 들려진 허재는 최후의 덩크슛을 꽂아 넣었고,팬들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허재는 영구결번이 된 등번호 ‘9’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10이 완성을 의미한다면 9는 도전을 뜻한다.나는 항상 부족한 1을 채운다는 심정으로 뛴다.”팬과 후배들의 가슴에 ‘9’를 남겨 놓고 나머지 ‘1’을 찾아 떠나는 허재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원주 이창구기자 window2@˝
  • 프로농구 우승 뒷얘기

    ‘농구 대통령’ 허재(39·TG삼보)는 등번호 ‘9’를 영구결번으로 남기고 고개를 떨군 채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허재가 떠난 코트에는 최후의 승자들이 부둥켜 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KCC가 지난 10일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TG를 83-71로 완파하고 챔프에 오른 프로농구 03∼04시즌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와신상담’ 5년 만에 3번째 챔피언 반지를 차지한 KCC의 축배는 11일 새벽까지 계속됐다.승자들의 후일담도 밤새도록 이어졌다. ●지성이면 감천 10일 자정과 새벽 5시 KCC의 연규선 사무국장은 선수들이 잠든 숙소 방문 앞에 소주를 뿌리고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다 절을 하는 ‘비밀 고사’를 지냈다.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간 추승균의 어머니가 비밀리에 가르쳐준 방법이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중길 단장도 ‘외도’를 했다.이 단장은 지인이 건네준 부적을 경기 시작전 유도훈 코치의 호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지면 머리깎고 치악산 갈것” 생애 최초로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이상민은 이날 아침 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폭탄 선언을 했다.지면 머리깎고 원주 치악산으로 들어가겠다는 것.99년 결혼 이후 남편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 노심초사했던 부인도 “스님이 되든,은퇴를 하든 오늘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답했다. ●울보 조성원·독종 추승균 ‘챔프전의 사나이’ 조성원은 승리가 굳어진 경기종료 2분여부터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축포와 함께 울음을 터뜨려 10분 가까이 눈물을 흘렀다.지난해 12월 트레이드로 SK에서 친정팀에 3년 만에 복귀해 다시 챔피언 반지를 낀 조성원은 “이상민,추승균과 함께 뛰는 내가 가장 행복한 슈터”라고 말했다.챔프전 7경기 동안 몸무게가 무려 7㎏이나 빠진 추승균은 “1쿼터부터 눈앞이 노랗게 보였지만,하프타임 때 윗몸일으키기로 땀을 내니 다시 체력이 회복됐다.”고 말했다.추승균은 경기중 교체 사인을 내는 신선우 감독에게 손을 절래절래 흔들며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역대 최고의 보너스 구단 고위관계자는 “최고의 우승 보너스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01∼02시즌 우승팀 오리온스와 02∼03시즌 챔피언 TG는 우승 상금과 해외 여행 등 포상으로 각각 6억원을 내놓았다.두 팀보다 재정 사정이 훨씬 좋은 KCC는 7억원에 이르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허재 은퇴 공식선언

    “몇점을 넣었는지는 이제 관심이 없습니다.당신이 뛰는 모습만 봐도 절로 힘이 솟습니다.‘이태백’ ‘삼팔선’ ‘오륙도’가 넘쳐나는 힘든 세상,당신은 희망이었습니다.” ‘농구 대통령’ 허재(39·TG삼보)가 권좌에서 명예롭게 내려왔다.서울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이후 30년 가까이 투혼을 불사른 허재는 8일 서울 논현동 KBL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팬들의 사랑을 가득 품은 채 코트를 떠난다.”고 밝혔다. 허재는 이날 은퇴를 선언했지만 TG가 정규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에 따라 챔피언결정전 2연속 제패를 위해 이번 플레이오프까지는 뛸 계획이다.이후 5월쯤 2년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TG는 그의 등번호 ‘9’를 영구결번으로 공시할 예정이다. ●챔프전 끝으로 5월 美지도자 연수 한국농구의 ‘고봉’인 김영일-신동파-이충희의 뒤를 이은 허재는 70년대에는 ‘농구신동’으로,80년대에는 학원스포츠의 우상으로,90년대에는 농구대잔치 간판스타로,2000년대 들어서는 30∼40대의 희망으로 늘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물론 한국농구가 낳은 ‘지존’이라는 데 토를 달 이는 별로 없다. 허재는 97년 KBL이 출범하자 33세의 늦깎이로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열살 아래의 후배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원년시즌 소속팀 기아를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았고,97∼98시즌에는 기아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그쳤지만 ‘붕대 투혼’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02∼03시즌에는 TG 플레잉코치로 변신,후배들을 다독이며 다시 한 번 챔피언트로피를 품었으며,값진 모범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허재의 전성기는 역시 아마추어 시절이었다.78년 용산중학교에 입학해 그해 4개 전국대회를 휩쓴 것을 시작으로 중앙대 졸업 때까지 그는 ‘우승 인증서’로 통했다.86년 가을철대학연맹전 단국대전에서는 혼자 75점을 넣는 진기록을 세웠다.88년 기아에 입단한 뒤에는 8차례의 농구대잔치 가운데 7차례 우승을 이끌며,세 차례나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이기겠다고 마음먹은 경기에서는 진 적이 없다는 ‘불패신화’의 주인공이었다. ●대학연맹전서 75득점 진기록·MVP 3회 용산고 3학년 시절,대학들은 ‘농구 천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됐다.허재가 어느 인터뷰에서 “중앙대도 가고 싶고,고려대도 가고 싶다.”고 하자 양교는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쳤다.당시 중앙대 감독이던 정봉섭 현 중앙대 체육부장은 낚시에 전혀 취미가 없었음에도 낚시광인 허재의 아버지 허준씨를 밤낮없이 쫓아다녀 결국 데려왔다. 30년 농구인생 가운데 가장 뼈아픈 기억은 97아시아선수권(ABC).당시 허재는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공교롭게도 최강 중국은 최약체 팀을 파견했고,한국은 우승했다.허재로서는 15년 대표선수 생활에서 유일하게 우승이란 두 글자를 새길 기회를 날려버렸다.허재는 “내 주량이 얼마인지 나도 모른다.”는 애주가이자 시합전에도 담배를 태우는 자유분방한 선수였다.그러나 이 모든 것도,서른이 넘어서도 밤 새워 슛을 던지고 승리를 위해 쥐가 난 다리를 스스로 옷핀으로 찌르면서까지 출전을 강행하는 승부사의 진면목을 덮지는 못한다.팬들은 이제 ‘천재 지도자’ 허재를 기다리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프로농구 /10번 “그를 위하여…”

    “이기면 이길수록 선배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람보슈터’ 문경은(사진·33)의 가슴에는 언제나 그만의 우상이 살아 숨쉬고 있다.지난 1999년 11월 2일 시즌 개막을 닷새 앞두고 체육관으로 향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김현준 전 삼성 코치.서른아홉에 요절했지만 ‘전자슈터’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 전 코치는 문경은을 끔찍이 사랑했다.광신중·고와 연세대,삼성의 직계 후배이기도 하지만 신동파 이충희와 자신으로 이어지는 한국농구 슛쟁이 계보를 이을 대들보로 여겼기 때문이다. 문경은 역시 94년 대학 졸업 당시 자신을 둘러싼 ‘스카우트 전쟁’에서 미련없이 삼성을 택했을 만큼 김 전 코치를 믿고 따랐다.2001년 6월 SK 빅스(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면서 문경은이 맨처음 한 일은 김현준의 등번호 ‘10’을 선택하는 것이었다.삼성에서는 10번이 영구결번이었기 때문에 달 수 없었다. 그러나 트레이드 이후 문경은은 선배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팀 성적도 변변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플레이 자체가 팀과따로 놀았다.지난 시즌에는 3점슛왕에 등극했지만 팀은 7위에 머물렀다.영양가 없는 ‘공갈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어느새 팀의 맏형이 된 문경은은 03∼04시즌 시작과 함께 주장을 맡고 새롭게 변신했다.마음 한편에 끈질기게 붙어 있던 ‘스타 의식’도 싹둑 잘라냈다.변신은 시즌 중반이 지나자 꽃을 피우고 있다.‘도깨비팀’ 전자랜드가 그의 투혼과 함께 시즌 최다인 7연승을 달리며,4강 직행이 가능한 단독 2위까지 넘보고 있다.4라운드 들어서는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전자랜드 유재학 감독은 “연승보다 문경은의 안정된 플레이가 더 기쁘다.”고 말했다.최근 3경기만 보더라도 감독의 말이 공치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8일 SK전에서는 3쿼터에서 3점포 3개를 터뜨려 승기를 잡았고,10일 KTF전에서는 용병 앨버트 화이트와 55점을 합작해 완승을 이끌었다.11일에는 흥분한 후배들을 다독이며 공수에서 맹활약,강팀 KCC를 무너뜨렸다.경기가 끝난 뒤에는 코트에서 춤까지 추며 분위기를 돋웠다. 정기적으로 물을 빼내야 하는 무릎과 석회화가 진행되는 아킬레스건의 통증을 참고 뛰는 문경은은 “김현준 선배의 등번호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제2의 이승엽’ 누가 될까/이호준·김태균 ‘1순위’

    ‘포스트 이승엽’은 누구냐. 이승엽(삼성)은 2일 아시아 최다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운 뒤 “실패하든,성공하든 큰 물에서 운동하고 싶다.”며 해외진출 의사를 분명히 했다.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막상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천명하자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국내 프로야구의 침체를 걱정한다.상당수 팬들도 “야구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시원한 홈런인데 이승엽이 없으면 그만큼 재미가 반감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3년 연속,통산 5번째 홈런왕에 오른 이승엽이 빠진 내년 시즌 홈런왕 판도는 일단 ‘헤라클레스’ 심정수(현대)의 독주로 여겨진다.올시즌 내내 이승엽을 위협하며 3개 모자란 53개의 홈런을 쏟아냈고,내년에도 이승엽의 기록에 도전할 만한 거포다.그러나 관건은 해외진출 여부.그도 “더 늦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말해 왔고 현대측도 최근 “올시즌 우승을 일궈낸 뒤 거론할 수도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심정수가 내년에도 국내에서 뛴다면 그와 홈런왕을 다툴 선수로는 삼성의마해영(38개) 양준혁(33개),그리고 놀랍게 성장한 이호준(사진·36개·SK)과 ‘제2의 이승엽’ 김태균(31개·한화) 등. 마해영과 양준혁은 이승엽의 그늘에 가렸지만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재목이다. 이호준과 김태균은 내년에 가장 눈여겨 봐야할 선수.이호준은 지난해 23개를 터뜨린 뒤 올시즌 자신의 첫 30홈런 고지를 넘었다.성장세를 감안하면 ‘다크호스’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후반기 본격 출장해 무려 20개를 몰아쳐 단숨에 신인왕에 오른 김태균은 지난해 ‘2년생 징크스’에 시달리다 올시즌 31개의 홈런을 빼냈다.21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4번타자 자리를 꿰차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들이 주춤하다면 홈런왕은 지난 98년 타이론 우즈(전 두산)처럼 외국인 선수들의 몫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삼성은 이승엽의 등번호(36번)를 국내 프로야구 사상 여섯번째 영구결번키로 결정,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경우에도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기로 했다. 김민수기자 kimms@
  • 하프타임 / 이만수 등번호 22번 영구결번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 홈런을 쳤고 3차례 홈런왕에 오른 ‘헐크’ 이만수(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의 등 번호가 영구 결번됐다.삼성은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이만수 코치가 한국 프로야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그의 등번호 22번을 영구 결번으로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이로써 프로야구에서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은 선수는 최초 200세이브를 달성한 LG 김용수(41번)와 국보급 투수 선동열(당시 해태·18번),86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영신(당시 OB·54번),원년에 22연승 대기록을 세운 박철순(당시 OB·21번) 등 5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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