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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석·강호동·최양락 등 故 송해 운구…“별앞에서 전국노래자랑 외치길”

    유재석·강호동·최양락 등 故 송해 운구…“별앞에서 전국노래자랑 외치길”

    고(故) 송해(95·본명 송복희)의 영결식과 발인이 오늘 진행됐다.  10일 오전 4시30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송해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의 사회는 코미디언 김학래가 맡았으며 엄영수(개명 전 엄용수) 장례위원장이 조사를, 코미디언 이용식이 추도사를 진행했다. 이날 약 50여명의 코미디언 후배 및 대한가수협회 가수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영결식 의자 첫째 줄에는 두 딸을 포함한 유족들과 김학래, 엄영수, 이용식이 착석했다. 둘째줄에는 코미디언 유재석, 조세호, 이상벽이, 셋째줄에는 최양락, 이수근, 임하룡, 강호동과 설운도, 이자연 등 대한가수협회 가수들의 자리했다.● “최고의 MC셨습니다” 엄영수는 “남들은 은퇴할 나이인 61세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서 방송사에 빛나는 기록을 세우셨다”며 “‘전국노래자랑’ 1700여회, 34년 연속 1000만 명 이상 시민을 만났고, 최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95세 최고령 MC로 등극하신 최고의 MC이셨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명MC, 명예능프로그램, 그 신기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무작정 가출하셔서 이북에서 무작정 워남하셨고, 피난 후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하시고 무작정 데뷔하시고, 악극 배우로 무작정 데뷔하신, 무작정 송해 선생님 인생이다”라며 “우리는 이 무작정을 믿는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무작정 일어나시어 선생님이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딴따라’라 하면서 한없이 몸을 낮추신 선생님, 전국노래자랑 무대는 그냥 노래하는 곳이 아니었다”라며 “예술 연출자이신 우리의 선생님을 모시는 할머니, 할아버님을 하나하나 청춘극장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 스타를 만들어주시는 독특한 화술이 있다”고 추도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은 ‘이제 방송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힘이 부쳐 못하겠다, 나는 하차하겠다’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일생 부정적이거나 포기하신 말을 하신 적이 없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그러면서 “올겨울에도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불같이 극복하며 일어나셨고, 힘드실 때도 겨우 2~3일 입원하셨을 뿐이다, 또 송해길을 조성하셔서 전국민들을 위한 휴게소를 만드셨고 2000원짜리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으시고 2000원 국밥을 드시며 시민들과 동고동락하시던 선생님. 우리가 갈 길이 먼데 이렇게 일찍 가시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라며 침통해 했다. 끝으로 그는 “하늘나라로 가신 선생님, 영원히 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그곳에서 편안히 자유롭게 잠드십시오”라며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몹시 보고싶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선생님이시고 스승님이시다” 엄영수 조문 후 이용식이 추도사를 읊었다. 이용식은 “(송해 선생님은) 저를 코미디언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이시고 스승님이십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평소에 스승님께서 그렇게 보고싶어하신 많은 인재들이 선생님 영정 앞에 모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시고 뭐가 그리 바쁘시다고 가셨는지”라고 애도했다. 이어 “항상 먼저 하늘나라로 간 후배들의 영정을 어루만지시면서 못된 놈이라고 나보다 먼저 갔다고 그렇게 혼내시더니 이 새벽에 이별이라뇨”라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별들이 떠있는 천국에 가셔서 그렇게 형이라고 부르시던 구봉승, 이주일 선배님도 만나셔서 우리 후배들 잘 있다고 안부 좀 전해달라”고 눈물을 보였다. 또 “이곳에선 전국 노래자랑을 많은 사람들과 힘차게 외쳤지만 이제 수많은 별들 앞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쳐달라”며 “저 멋진 훈장 살아계셨을 때 목에 걸으셨으면 얼마나 좋으셨을까”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받은 금관문화훈장을 세상을 떠난 후에 받은 것을 안타까워 했다. 마지막으로 “사모님과 아드님과 반갑게 만나서 이젠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시길”이라며 “우리 나라는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가 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쇼”라고 했다.● 송해 육성으로 “전국” 외치자… 조사와 추도사를 마치고 고 송해의 생전 육성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고 송해의 목소리로 “전국”을 외치자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노래자랑”을 이어받았다. 이어 설운도, 이자연 외 5명의 대한가수협회 가수들이 앞으로 나와 고 송해의 주제곡 ‘나팔꽃 인생’을 열창했다. 분향과 헌화, 고 송해의 막내딸의 감사 인사를 마지막으로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고 송해의 막내딸은 “존재만으로 희망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삶을 기억할 것이고 사랑을 많이 주신 많은 분들의 일상도 행복하길 바란다”며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이어 임하룡, 전유성, 최양락, 강호동, 유재석, 양상국 여섯 명의 코미디언 후배들이 고인을 운구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과 발인식 이후 운구차는 서울 낙원동에 소재한 송해길에서 진행되는 노제를 거쳐 KBS 본관을 들른 뒤 경북 김천시에 위치한 화장터로 향한다. 이후 고인의 유해는 아내 석옥이씨가 안장된 송해공원으로 향해, 곁에 안장된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열렸다. 앞서 송해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유족으로는 두 딸, 사위, 외손주가 있으며 60년을 해로한 아내 석옥이씨는 지난 2018년 사망했다. 아들은 1986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송해 선생, 내 아버지이자 롤모델… 소주 한 잔 올립니다

    송해 선생, 내 아버지이자 롤모델… 소주 한 잔 올립니다

    흉상 앞에는 조화 수북… 소주도전국 각지서 모여 헌화하고 추모 “아들아 열심히 살아라 하셨는데갑작스러운 비보에 억장 무너져” 오늘 발인… ‘노래자랑’ 악단 배웅‘2000원짜리 국밥, 이발소, 지하철, 소주 한잔.’ ‘국민 MC’ 송해(95·송복희)의 삶은 소박한 서민 그 자체였다. 그런 삶을 증명하듯 생전 송해가 자주 오갔던 ‘송해길’에는 9일 거센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송해 선생’ 흉상 앞에는 근조 화환과 흰 국화꽃 100여송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종이컵에 따라 두고 간 소주 한 컵과 해바라기 등 꽃다발도 함께 있었다. 송해길 안내판 옆에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악단장에게 용돈을 뺏어 어린이에게 주시던 재미난 장면이 그립다’는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 시민들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헌화를 하거나 송해의 흉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묵념을 하거나 흉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도 많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와 빗속에서 헌화한 이명수(59)씨는 생전 송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휠체어를 타고 폐지를 줍다가 마주쳐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형님이라고 하라’며 장난 섞인 호통과 함께 국밥이나 믹스커피를 사 주곤 했다”며 “장애인 운동선수 활동을 하며 딴 메달을 보여 주니 ‘아들아, 나보다 열심히 살아라’며 칭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에서 왔다는 정춘길(68)씨는 “송해가 60대에 전국노래자랑 MC를 시작해 30년간 꾸준히 진행하는 걸 보고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면서 “라디오를 진행하던 30년 전부터 송해는 나의 롤모델이자 인생 선배였다”고 말했다. 생전 송해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2000원짜리’ 국밥집에도 송해를 기억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송해의 단골 메뉴였던 우거지 국밥을 먹은 박영수(66)씨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강서구 화곡동에서 찾아왔다”면서 “우거지와 고기를 뭉텅이로 넣고 막 끓인 2000원짜리 국밥을 먹던 이 시대의 큰 별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은 한 그릇을 처음으로 싹싹 비웠다”고 말했다. 송해가 찾았던 이발소에도 종일 그를 기억하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상록회 사무실 인근의 송해 단골 이발소 주인은 “오늘 오는 손님마다 송해 이야기를 꺼내며 저마다 기억하는 송해를 그리워했다”며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주변 식당과 상점은 모두 다닌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틀째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우 최불암·이순재·전원주, 방송인 전현무·임성훈, 코미디언 김숙, 가수 이미자 등이 오전부터 빈소를 찾았다. 10일 오전 4시 30분 영결식 뒤 운구차는 낙원동 송해길과 여의도 KBS 본관을 들른 뒤 장지인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으로 향한다. KBS에서는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마지막 길을 연주로 배웅한다.
  • 송해 동상 앞 국화꽃과 소주…“아버지 그립습니다” 시민들 추모 물결

    송해 동상 앞 국화꽃과 소주…“아버지 그립습니다” 시민들 추모 물결

    송해 별세 이틀째, 시민들 추모 행렬낙원상가 앞 송해길엔 국화꽃과 소주고인 생전 단골 국밥집 찾아 그리움 나눠서울대병원 빈소에도 조문 이어져‘2000원짜리 국밥, 이발소, 지하철, 소주 한잔.’ ‘국민 MC’ 송해(송복희·95)의 삶은 소박한 서민 그 자체였다. 그런 삶을 증명하듯 생전 송해가 자주 오갔던 ‘송해길’에는 9일 거센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송해 선생’ 흉상 앞에는 근조 화환과 흰 국화꽃 100여송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종이컵에 따라 두고 간 소주 한 컵과 해바라기 등 꽃다발도 함께 있었다. 송해길 안내판 옆에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악단장에게 용돈을 뺏어 어린이에게 주시던 재미난 장면이 그립다’는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시민들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헌화를 하거나 송해의 흉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묵념을 하거나 흉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도 많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와 빗속에서 헌화한 이명수(59)씨는 생전 송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휠체어를 타고 폐지를 줍다가 마주쳐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형님이라고 하라’며 장난 섞인 호통과 함께 국밥이나 믹스커피를 사 주곤 했다”며 “장애인 운동선수 활동을 하며 딴 메달을 보여 주니 ‘아들아, 나보다 열심히 살아라’며 칭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에서 왔다는 정춘길(68)씨는 “송해가 60대에 전국노래자랑 MC를 시작해 30년간 꾸준히 진행하는 걸 보고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면서 “라디오를 진행하던 30년 전부터 송해는 나의 롤모델이자 인생 선배였다”고 말했다.생전 송해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2000원짜리’ 국밥집에도 송해를 기억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송해의 단골 메뉴였던 우거지 국밥을 먹은 박영수(66)씨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강서구 화곡동에서 찾아왔다”면서 “우거지와 고기를 뭉텅이로 넣고 막 끓인 2000원짜리 국밥을 먹던 이 시대의 큰 별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은 한 그릇을 처음으로 싹싹 비웠다”고 말했다. 송해가 찾았던 이발소에도 종일 그를 기억하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상록회 사무실 인근의 송해 단골 이발소 주인은 “오늘 오는 손님마다 송해 이야기를 꺼내며 저마다 기억하는 송해를 그리워했다”며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주변 식당과 상점은 모두 다닌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틀째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우 최불암·이순재·전원주, 방송인 전현무·임성훈, 코미디언 김숙, 가수 이미자 등이 오전부터 빈소를 찾았다. 10일 오전 4시 30분 영결식 뒤 운구차는 낙원동 송해길과 여의도 KBS 본관을 들른 뒤 장지인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으로 향한다. KBS에서는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마지막 길을 연주로 배웅한다.
  •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해…내가 양딸” 송해 빈소서 새벽 소동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해…내가 양딸” 송해 빈소서 새벽 소동

    ‘국민 MC’ 송해(본명 송복희·95)의 빈소에서 9일 새벽 한 여성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경찰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따르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오전 5시쯤 자신을 “송해 선생님 양딸”이라고 주장하는 A(51)씨가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A씨는 남색 원피스에 슬리퍼 차림으로 목발을 짚고 나타나 자신을 ‘송해의 양딸’이라고 주장하며 조문하겠다고 고집했다. 이에 장례식장 관계자가 오전 6시 이후 조문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A씨는 “연예인이 아니면 조문도 못하느냐”고 소란을 피웠다. A씨와 실랑이가 이어지자 장례식장 측에서 경찰에 신고해 경찰관이 출동했다. A씨는 이날 오전 7시쯤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후에도 “전국노래자랑이 연예인 나와서 노래하는 프로냐”,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하느냐”고 소리쳤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현재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조문객 방문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방문객은 6시 이전에 방문하고 이후에는 소란을 피워 제지했다”며 “송해님 빈소는 일반 조문객도 조문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이 조문하고 싶다고 소란을 피워 현장에 출동했다”며 “실질적인 피해는 없고 유족 측이 사건화를 원치 않는다고 해 현장에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등에 따르면 송해는 전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해 측은 “인근에 살면서 전날까지 저녁 식사를 챙긴 따님이 자택을 찾았다가 선생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988년 5월부터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이달 2년여 만에 재개되자 하차를 고심하면서도 스튜디오 녹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출연을 이어 가는 방안 등을 놓고 제작진과 논의해 왔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러지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4시 30분에 진행된다.
  • “송해, 쫓아갈 수 없는 선배님”…둘째날도 조문행렬

    “송해, 쫓아갈 수 없는 선배님”…둘째날도 조문행렬

    원조 ‘국민 MC’ 송해(본명 송복희·95)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10일 연예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송해가 생전 자신을 ‘사람 부자’라고 불렀듯 이날 빈소에는 오전부터 배우 최불암, 이순재, 전원주, 방송인 전현무, 임성훈, 코미디언 김숙, 가수 이미자, 이찬원 등 후배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현무는 조문을 마치고 나와 “평생 해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며 “어떤 영역에 있든, 어떤 나이대든 (출연자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다. 그 모두를 똑같이 진행하는 게(대하는 게) MC로서는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성훈은 “쫓아가고 싶어도 쫓아갈 수 없는 선배님이셨다”며 “100세가 되셨을 때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축하드리고 싶었는데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이미자는 “1960년대 지방의 낙후된 곳에서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같이 공연하면서 고생스러운 시간을 함께 지냈다”고 회고했다. 이어 “얼마 전에 전화하셔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더 아쉽다”며 “아이나 어른이나 지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나 가림 없이 대해주셨고 그렇게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희극뿐 아니라 MC로도 상징적인 분으로 대중문화의 핵”이라고 고인을 평했다. 이어 “송해 선생님이야말로 입체적으로 당신의 역할을 다하셨다”며 “평생 이 분야를 위해 헌신하시고 마무리하셨다”고 했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러지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4시 30분에 진행된다. 95세 나이에 ‘현역 MC’로 활동해온 송해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쓰러져 타계했다. 1988년 5월부터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이달 2년여 만에 재개되자 하차를 고심하면서도 스튜디오 녹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출연을 이어 가는 방안 등을 놓고 제작진과 논의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 ‘좋은데이’ 소주 무학그룹 최위승 창업주 별세

    ‘좋은데이’ 소주 무학그룹 최위승 창업주 별세

    경남 지역의 소주인 ‘좋은데이’를 생산하는 종합주류기업 무학의 창업주 최위승 무학 명예회장이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최 명예회장은 1932년 경남 고성군 대가면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던 중 17세에 ‘성공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 주류 회사에 곡식을 납품하는 대리점을 운영했다. 33세가 되던 1965년 마산에서 무학을 창업했다. 1973년부터 2008년까지 회장으로서 무학을 이끌었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명예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생전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마산상공회의소 10~12대 회장(1979~1988년), 대한적십자 경상남도 회장(1989~1995년), 민주평통자문회의 경남도 부의장(1995~1998년), 경남지역발전협의회 이사장(1998~2020년) 등을 지내며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섰다. 유족은 정우, 재호(무학그룹 회장), 동호(MH에탄올 부회장), 정호(용원컨트리클럽 부회장), 한겸씨 등 4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창원 에스엠지연세병원 장례식장 302호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5일이다. 영결식을 마친 후 고인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선영에 영면한다.
  • 김정은, 현철해 관 운구하고 흙 끼얹어…코로나 확산에도 애도 인파

    김정은, 현철해 관 운구하고 흙 끼얹어…코로나 확산에도 애도 인파

    국가 원로의 장례라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 확산되는데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장례식에 임하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사망한 현철해 인민군 원수를 떠나보내는 22일 발인식과 영결식에 모두 참석한 것은 물론, 시신이 든 관을 직접 운구하기도 하고 흙을 손에 퍼담아 무덤에 끼얹는 등 예우를 다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영구발인식에 참석했다고 23일 보도했다. 사진들을 보면 4·25문화회관 앞에 지도부는 물론 군인들이 엄청나게 동원돼 빼곡히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날까지 280만명이 고열 환자로 집계되고 68명이 누적 사망자로 확인된 마당에 이렇게 사회적 거리 두기도 하지 않은 채로 군중이 운집한 것은 야릇하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가장 존경하던 혁명 선배이며 우리 군의 원로였던 견실한 혁명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하시며 고인의 영구를 메고 발인하시였다”고 전했다. 영구차는 고인에게 경례하는 조선인민군 군기종대와 명예위병대 앞을 지나 모터사이클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에 나섰다.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 위원장이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도 참석, 손수 유해에 흙을 얹었다. 군은 현철해의 유해를 안치하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180발의 조총을 발사했다. AP 통신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장례 이후 이 나라에서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장례식 가운데 하나였던 이날 장례식 도중 김 위원장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른 거의 모든 간부들은 마스크를 쓴 채 식에 임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노(老)혁명가는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가지만 현철해라는 이름은 장군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그의 고귀한 넋과 정신은 날로 승승장구하는 우리 당의 위업, 위대한 우리 국가와 공화국 무력의 눈부신 강화발전과 더불어 영생할 것”이라고 추도사를 했다.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별도로 애도사를 했다. 노동신문은 1면과 2면에 김 위원장이 슬픔에 잠긴 얼굴로 직접 관을 옮기는 사진을 실어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발인식과 영결식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최룡해, 조용원, 김덕훈, 리병철 등 고위급 인사들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들, 유가족들이 참석했다.현철해는 노동당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위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등을 맡은 군부의 핵심 인물로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에 후계자 수업을 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신규 발열 환자는 이틀째 10만명대에 머물렀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인용해 지난 21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 전국적으로 새로 발생한 발열 환자는 16만 7650여명이라고 밝혔다. 치료된 환자 수는 26만 7630여명이며 한 명이 사망해 누적 사망자는 68명이다. 북한은 치명률이 0.002%라고 주장했는데 AP는 기록적으로 안정적인 치명률이라고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누적 발열 환자는 281만 4380여명이며 이 가운데 82.9%에 해당하는 233만 4910명이 완쾌됐고 나머지 47만 940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 신규 발열 환자가 18만 6090명이라고 밝히며 확진자 관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北김정은, 현철해 마지막 길 ‘직접 운구’로 배웅

    北김정은, 현철해 마지막 길 ‘직접 운구’로 배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사망한 현철해 인민군 원수의 발인식과 영결식에서 모두 참석했고, 특히 시신이 든 관을 직접 운구하는 등 극진한 예우를 표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4ㆍ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영구발인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가장 존경하던 혁명 선배이며 우리 군의 원로였던 견실한 혁명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하시며 고인의 영구를 메고 발인하시였다”고 전했다.  영구차는 고인에게 경례하는 조선인민군 군기종대와 명예위병대 앞을 지나 모터사이클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에 나섰다. 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 위원장이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도 참석, 손수 유해에 흙을 얹었다. 군은 현철해의 유해를 안치하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180발의 조총을 발사했다. 김 위원장은 “노(老)혁명가는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가지만 현철해라는 이름은 장군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그의 고귀한 넋과 정신은 날로 승승장구하는 우리 당의 위업, 위대한 우리 국가와 공화국 무력의 눈부신 강화발전과 더불어 영생할 것”이라고 추도사를 했다. 노동신문은 1면과 2면에 김 위원장이 슬픔에 잠긴 얼굴로 직접 관을 옮기는 사진을 실어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날 발인식과 영결식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최룡해, 조용원, 김덕훈, 박정천, 리병철 등 고위급 인사들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들,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현철해는 노동당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위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등을 맡은 군부의 핵심 인물로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에 대한 후계자 수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가 가야 했는데” 애통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가 가야 했는데” 애통

    임권택 감독이 고(故) 배우 강수연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강수연의 빈소를 찾은 영화인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이날 방송에서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의 첫인상에 대해 “아마 무슨 방송에서 처음 봤을 거다. 드라마에 출연한 걸 보고 연기자로 캐스팅하고 싶단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수연이 워낙 좋은 얼굴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외모를 연기에 과장도 안하고 그렇다고 또 안으로 수줍게 감추는 것도 없이 그냥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해냈던 연기다다. 선천적으로 연기자로서 자질이 갖춰진 사람”라고 극찬했다.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에 주연으로 출연해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제16회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사랑받았다. 임권택 감독은 ‘씨받이’에서 21세에 산모 역할을 열연한 강수연에 대해 “그때 출산하는 산모의 연기를 꽤 잘했다. 21살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는데 수연이가 이것저것 많이 보고 왔다고 느낄 정도로 꽤 능숙하게 연기를 해서 내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을 보내는 장례식에 가는 길에 ‘나는 나이가 있으니 곧 죽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내 영결식 조사든 뭐든 수연이가 와서 읽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된 상황이다. 참 말이 안돼”라며 “나하고 수연이하고 바뀐 것 같다. 내가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하고 수연이는 더 많이 살다가 가야했는데”라고 털어놓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고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5시 40분 경 서울 강남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지난 7일 오후 3시께 만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 가야 되는데…”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 가야 되는데…”

    임권택 감독이 배우 강수연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퍼했다.  15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향년 55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의 삶을 재조명하는 특집으로 꾸며졌다. 영화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의 출연작을 보며 “수연이가 ‘어디서 이것저것 많이 보고 왔구나’라는 것을 (제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꽤 능숙하게 (연기를 해서)속으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며 “(결혼도 안 한 애가) 어떻게 (그 감정을) 느꼈는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 젊었는데 너무 빨리 죽었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임 감독은 강수연과의 첫만남을 떠올리며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마도 무슨 방송에서 (처음) 봤을 거예요, 드라마에 출연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도 방송에서 보고 연기자로 기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라고 했다. 이어 “(배우로서)워낙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외모를 (연기에) 과장도 안 하고 그렇다고 또 안으로 수줍게 감추는 것도 없이 그냥 당당하게 해냈던 연기자고 선천적으로 연기자로서 자질이 갖춰진 사람”라고 덧붙였다. 임 감독은 강수연의 영결식에 가는 길에 “내가 나이가 있으니까 곧 죽을 텐데 조사나 뭐가 됐든 간에 ‘수연이가 와서 (추모사를) 읽어 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된 (상황이잖나) 참 말이 안돼, 더 많이 살다가 가야 되는데”라고 했다. 한편, 강수연은 지난 5일 심정지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흘 만인 지난 7일 오후 사망했다. 원인은 뇌출혈로, 고인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긴 후에도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됐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 “천상의 별이 된 강수연… 한국 영화 끝까지 지켜 줄 겁니다”

    “천상의 별이 된 강수연… 한국 영화 끝까지 지켜 줄 겁니다”

    “지상의 별은 졌어도 천상의 별로 한국 영화를 끝까지 지켜 줄 겁니다.” ‘월드 스타’ 강수연이 11일 영화인들과 팬들의 슬픔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영화인장으로 엄수된 고인의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100여명의 영화인이 참석했고,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1만 5000여명의 팬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배우 유지태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고인을 추억하며 비통함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 스타라는 왕관이자 멍에를 졌지만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며 스타답게 잘 견디면서 살아왔다”면서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했던 선배였고, 부산영화제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았던 영화제의 별이자 상징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통해 강수연을 월드 스타 반열에 올린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서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갔냐. 편히 쉬어라”라는 짧고도 가슴 먹먹한 추도사로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후배들의 눈물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고인과 ‘송어’를 함께한 배우 설경구는 “영화인으로서 애정과 자존심이 충만했고 어디서나 당당했던 선배님은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이자 모든 영화인을 아우르는 거인 같은 대장부였다”면서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제게 용기와 희망을 준 영원한 사수”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선배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문소리도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의 마음 잊지 않겠다. 다음에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고인의 유작이 된 ‘정이’의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작업실로 돌아가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선보일 새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수많은 사람에게 선배님의 새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하겠다”며 울먹였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영화제 수상과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제니퍼 자오 대만영상위원회 부위원장, 차이밍량 감독, 배우 양구이메이 등 외국 영화인들도 추모 영상으로 고인을 기렸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경기 용인공원에 봉안됐다.
  • “독재 견딘 건 김지하라는 정부 덕”… 새달 25일 추모제

    “독재 견딘 건 김지하라는 정부 덕”… 새달 25일 추모제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시로 197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시인 김지하가 11일 영면했다. 지난 8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인의 발인식이 이날 오전 9시 강원 연세대 원주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고인의 두 아들인 김원보 작가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생전 고인과 인연이 있던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정을 든 차남 김 이사장의 뒤로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장남 김원보 작가 등 유족이 뒤따랐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 연출가,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지인과 후배들도 함께했다. 발인에 앞서 열린 가족예배에서 김 이사장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가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청산 전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 속에서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김지하라는 우리들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땅의 민주주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의 유해는 오전 10시 화장된 뒤 부인 김영주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안장됐다. 시인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의 외동딸이자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씨와 1973년 결혼했다. 김씨가 2019년 11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3년여 만에 한 공간에서 영면하게 됐다. 1970년대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수차례 투옥됐던 고인은 1980년대 이후 동학과 전통 사상을 접목한 새로운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다. 또 이를 토대로 많은 시를 썼다. 1991년 조선일보에 운동권을 비판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게재해 논란을 불렀다.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진보 진영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빈소에는 나흘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이재오 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상임고문인 이창복 전 국회의원 등 고인과 오랜 세월 친분을 쌓은 원로 정치인들이 빈소를 지켰다. 고인의 사상과 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가 이어진다.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운동가 등은 49재에 맞춰 다음달 25일 서울에서 화해와 상생 차원의 추모문화제 ‘생명 평화 천지굿’을 열 예정이다.
  • 이순재 “야무지고 제대로 연기하던 강수연, 잊혀지지 않을 것”

    이순재 “야무지고 제대로 연기하던 강수연, 잊혀지지 않을 것”

    고(故) 배우 강수연의 조문 마지막 날인 10일에도 추모 물결이 이어진 가운데, 원로 배우 이순재가 “강수연은 야무졌고 제대로 하던 배우”라면서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이날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1976), ‘하늘 나라에서 온 편지’(1979)에서 아역 배우였던 강수연과 호흡을 맞춘 그는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나하고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혼자왔길래 엄마는 안 데려왔냐고 하니 ‘엄마가 왜 와요. 나 혼자면 되지’라고 할 정도로 당돌했다”면서 “심한 소리를 들어도 울지도 않고 ‘참 야무진 아이다’, ‘잘 되겠구나’ 생각했고, 대성을 했는데 너무 일찍 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영화) 작업이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펴고 있어 얼마든지 재평가를 받고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면서 “수연이는 참 제대로 하는 배우 중 하나였다. 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현재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 창립멤버로 영화계 행사를 함께 주최하며 고인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은 손숙도 “24시간 그냥 배우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성격이 굉장히 호방했다. 대장부 같았는데 (사람들을) 많이 아우르고, 리더십도 있었다”면서 “우리를 (선배들이 죽으면) 와서 추모해야 하는데, 거꾸로 돼 당황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배우 정준호는 “평소에는 참 조용조용하신데도 술자리에서 후배들과 있으면 호탕하셨다”면서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옆집 누나처럼 편안하게 많이 응원해주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조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빈소를 나서던 설경구는 “머릿속이 어지럽다”면서 침통해했고, 박소담은 조문을 마치고 간 뒤 소속사를 통해 “선배님의 따스한 말씀과 눈빛, 저를 안아주셨던 그 온기를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또한 차태현, 박희본, 김인권, 김보연, 최명길, 안연홍, 김정훈 등 동료 배우들도 빈소를 찾았고, 평소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스포츠해설가 심권호씨도 조문했다. 강수연이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영화 ‘씨받이’(1986),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조문이 시작되기도 전인 7일부터 매일 지팡이를 짚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장례위원장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도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고, 강수연과 친분이 두터웠던 배우 예지원도 연일 빈소을 찾았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오던 강수연은 7일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에 영결식이 치러지며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생중계될 예정이다.
  • ‘강수연은 왜 숨졌나’ 유튜브 제목 사과한 홍혜걸…“제가 부족했다”

    ‘강수연은 왜 숨졌나’ 유튜브 제목 사과한 홍혜걸…“제가 부족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강수연이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의학전문기자 출신 방송인 홍혜걸이 유튜브에 올린 고(故) 배우 강수연 관련 콘텐츠 제목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8일 홍혜걸은 유튜브 채널 ‘의학채널 비온뒤’에 배우 강수연의 사망과 관련해 ‘강수연은 왜 숨졌나’란 제목의 영상을 게시했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은 ‘무례한 제목’이라며 고인을 조회 수에 이용했다는 비판과 함께 단편적인 정보로 사망을 다룬 것은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홍씨는 해당 영상의 제목을 ‘강수연 별세의 원인과 대책’으로 변경한 뒤 사과문을 올렸다. 홍씨는 “오늘 제가 올린 강수연 씨 사망 원인에 대한 유튜브 영상에 약간의 비판이 있다. ‘강수연은 왜 숨졌나’란 제목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팬들에겐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은 예민하게 정서를 살폈어야 했는데 제가 부족했다. ‘강수연 별세의 원인과 대책’으로 바꿔 올리기로 했다”며 “이 자리를 빌려 마음 상한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라고 전했다. 해당 영상에서 홍씨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이라고 추측했다. 영상에서 홍씨는 “어제(7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 강수연씨가 안타깝게 숨졌다”며 “사흘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결국 별세하고 말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분이 돌아가실 때까지의 과정을 의학적 궁금증을 위주로 설명드리기로 하겠다”며 “이분이 혈압이 높았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술을 좋아하시는지를 전혀 모르고 지금까지 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위주로 제가 취재한 내용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것이니 확정적인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유력하게 생각하는 원인은 뇌동맥류라는 질환이다. 뇌동맥류가 주머니처럼 불거져 나오면서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게 터지는 경우다. 중년 이후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인구에서도 검진을 통해 상당히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라 말했다. 홍씨는 “강수연씨 뇌출혈은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로 강력하게 의심을 한다”며 “의학적인 이유는 이분이 쓰러지기 전에 두통을 반나절 이상 앓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게 중요하다. 선행되는 증상이 있다. 그게 없이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풍으로 생기는 뇌출혈이다. 뇌동맥류로 인한 출혈은 선행 증세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또한 홍씨는 뇌출혈로 인해 심정지가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뇌출혈이 심하게 생기면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온다”며 “우리 뇌는 두개골이라는 닫혀있는 공간 안에 있는데,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혈액이 나오기 위해 압력이 올라가고 뇌의 염증으로 인한 부종이 생기면 뇌조직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간은 심장과 맥박을 뛰게 한다. 그런데 여기가 가장 먼저 눌리면서 망가지게 되는 거다. 그래서 뇌사에 빠진 것”이라며 “식물인간과는 많이 다르다. 인공적인 방법으로 호흡과 혈액을 돌린다 해도 대개 며칠을 못 가고 숨지게 된다”고 전했다. 홍씨는 “뉴스에 따르면 고인이 두통을 호소했고 가족들이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 고인은 참겠다며 조금 지체를 했다고 하더라. 그게 굉장히 좋지 않았다고 다들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뇌동맥류가 갑자기 터질 때도 있지만, 초기에는 서서히 소량씩 피가 샌다. 이걸 선행 출혈이라고 하는데 이때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수술로 출혈 부위를 막아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거다. 그 시간에 안타깝게도 병원에 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나이가 50세가 넘어가면 건강검진을 하는데 추가로 돈이 든다고 하더라도 MRA라는 뇌혈관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며 “또 내가 과거의 겪었던 두통이 아니고 난생 처음 경험하는 두통이 생기면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고 강수연은 지난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에서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으며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사흘 만인 7일 오후 3시 별세했다.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이며, 조문은 8일부터 10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능하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질 계획이다.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 “장마 피해 식당에 600만원”…가슴 먹먹한 故강수연 미담

    “장마 피해 식당에 600만원”…가슴 먹먹한 故강수연 미담

    한국 영화계의 큰 별, 배우 강수연이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삼일째인 9일에도 온오프라인 공간서 고인을 추모하는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영화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도 고인을 향한 추모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고인의 지인들이 뒤늦게 밝힌 미담이 네티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강수연과 절친했던 윤영미 아나운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단골 식당 주인에게 들은 강수연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윤 아나운서는 “그녀가 종종 술을 마시던 식당이 장마로 물이 차 보일러가 고장 나 주인이 넋을 놓고 있었는데, 강수연 그녀가 들어와 연유를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비 600만원을 헌사했다”고 전했다. 이어 “듣기론 그녀도 당시 넉넉하지 않은 사정에 온 가족을 부양하는 자리에 있었다는데 참 통 크고 훌륭한 배우”라면서 “참 통 크고 훌륭한 배우 그러나 외로웠던 여자. 강수연, 그녀를 애도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강수연의 가마꾼을 연기했던 엑스트라가 촬영장에서 고인과 있었던 일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뉴스 댓글을 통해 “제가 2001년 엑스트라 할 때 ‘여인천하’ 나왔을 때 강수연(배우가 연기한) 난정이 가마꾼 한 적이 있다”며 “(촬영이 끝나고) 가마꾼들 수고하신다고 흰 봉투로 10만원씩 넣으셔서 4명에게 직접 주셨던 것을 잊지 못한다. 그때 일 끝나고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동료 배우들도 추모글을 올리며 애도했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상대 역으로 호흡을 맞춘 문성근은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 아픕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문성근과 강수연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남녀주연상을 나란히 받았다. 강수연과 SBS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에 함께 출연한 배우 안연홍은 “촬영장에서도 늘 편안하게 대해 주고 나처럼 새카만 후배도 항상 따뜻하게 챙겨젔던 언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언니와 같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했던 건 나의 자랑거리 중 첫 번째였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히 행복하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5일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병원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7일 오후 별세했다. 고인의 장례는 5일 동안 영화계 인사들이 주관하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의 영결식은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다.
  • “영정, 소품 같아 실감 안 나”… “등대 같은 분, 너무 일찍 가셨다”

    “영정, 소품 같아 실감 안 나”… “등대 같은 분, 너무 일찍 가셨다”

    임권택·봉준호 감독 등 발길영화인장… 영결식 11일 열려강수연이 세상을 떠난 지 이틀째이자 조문 첫날인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어졌다.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다시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고인에 대해 “워낙 영리한 사람이라 그 많은 세월 일하면서도 영화 촬영에 지장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제 입장에서는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영화가 좀더 빛날 수 있었고, 여러모로 감사한 배우였다”고 추모했다. 임 감독은 고인을 ‘월드 스타’로 만든 ‘씨받이’(1987) 때부터 인연을 이어 온 사이다. 전날 큰 충격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는 임 감독은 이날 두 시간 넘게 빈소를 지키며 “좀더 살면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먼저 가니 안타깝다”고 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역시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지켰다. 지난 5일 고인이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직후부터 병원에서 곁을 지킨 김 전 이사장은 최근까지 고인과 연락을 주고받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비보라 모두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영화계 분위기를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종종 뵙고 이야기도 길게 나누곤 했다”며 “그래서인지 영정 사진도 영화 소품같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안 난다”며 애통해했다. 이 밖에도 문소리·문근영·박정자·김혜수·이미연·김윤진·한지일·류경수·예지원·김학철·전노민·홍석천 등 동료 배우와 연상호·윤제균·류승완·배창호·이장호·임순례·민규동·정지영 감독 등 수많은 영화인이 고인을 찾았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훈장 추서 계획을 밝히고 “지금보다 더 크게 대한민국 영화사에 큰 역할을 하실 분인데 이렇게 일찍 가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부겸 국무총리,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배우 전도연·강동원·마동석 등도 조화를 보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경마장 가는 길’(1991)의 상대역이던 문성근은 소셜미디어에 “대단한 배우”라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남겼다. 배우 김규리는 2015년 부산영화제를 회상하며 “저에겐 등대 같은 분이셨습니다.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 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라고 슬퍼했다. 영화감독 겸 배우 양익준도 “누나 같았고,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던 분이 돌아가셨다”며 명복을 빌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장례 절차는 유족 뜻에 따라 사진 촬영 등 언론 취재에 일부 제한을 뒀지만 오는 11일 오전 10시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 [속보] 배우 강수연 영결식 11일 오전 10시…유튜브 생중계

    [속보] 배우 강수연 영결식 11일 오전 10시…유튜브 생중계

    ‘원조 월드스타’ 영화배우 강수연씨가 55세의 나이로 7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강수연 영화인장 장례위원회가 오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을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다만 조문을 비롯한 장례 절차는 취재진 등에 비공개로 진행할 계획이다. 장례위원회는 유족의 의사 등을 감안해 이렇게 결정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은 장례위원회에는 동료 영화인 49명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이창세 제작자와 배장수·오동진 평론가가 대외업무를 맡기로 했다. 강수연씨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지만 안타깝게도 7일 오후 3시 별세했다.21살 때 영화 ‘씨받이’ 한국 최초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나이 네 살 때 아역으로 데뷔한 뒤 배우이자 문화행정가로 활동하며 반세기 넘게 한국영화와 함께 했다. 스물한 살 때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었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배우는 고인이 최초였다. 1989년에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당시 공산권 최고 권위였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SBS TV 드라마 ‘여인천하’로 정난정 역을 맡으며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고인은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 투혼으로 많은 영화인들의 귀감이 됐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촬영 당시 여배우로서 삭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1985년 ‘고래사냥2’에서는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35%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한겨울 촬영 때 얇은 소복만 입은 채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다음은 장례위원 명단. 강우석 강제규 강혜정 권영락 김난숙 김한민 김호정 류승완 명계남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박광수(여성영화제) 박기용 박정범 방은진 배창호 변승민 변영주 봉준호 설경구 신철 심재명 양익준 예지원 원동연 유인택 유지태 윤제균 이광국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창동 이현승 전도연 장선우 정상진 정우성 주희 차승재 채윤희 최동훈 최재원 최정화 허문영 허민회 홍정인
  • [STOP PUTIN] 열세 살의 아들 묻는 우크라 부모들의 비극 언제까지

    [STOP PUTIN] 열세 살의 아들 묻는 우크라 부모들의 비극 언제까지

    우크라이나 남성 에브헨 랴부콘은 아들과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듯 아들이 누운 관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는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부인 인나는 아들 엘리세이가 미소 짓는 영정을 꼭 껴안았다. 다음달이면 아들은 열네 살이 될 것이었다. 엘리세이가 러시아군에 목숨을 잃은 지 한달 만에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동쪽 브로바리 시의 한 교회에서 영결식이 거행됐다고 영국 BBC가 18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가족과 친구들, 급우들, 이웃들이 페레모하 마을에서 살다 희생된 사랑스러운 소년과 작별을 나눴다. 전쟁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던 동네가 오랜만에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소년은 정직하고 겸손하며 도움을 주려 애쓰는 아이였다고 주위 사람들은 추모했다. 싸움도 안하고 드잡이를 하는 스포츠도 사양할 정도였다. 인나는 “지난달 11일이었다. 러시아인들이 우리 보고 떠나도 좋다고 했다. 그들은 작별의 손짓도 했고 행운을 빌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들판을 건넌 뒤 우릴 향해 모든 방향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어이없어 했다. 피란민들을 태울 차량은 다섯 대가 준비됐는데 엘리세이는 2호차에 올랐다. 그 차에 오르려던 이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난 엎드려 기어 나오며 세 살짜리 아들이 입고 있던 재킷의 후드를 손으로 끌어 그의 목숨을 구했다. 우리 중 누군가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고 돌아봤다. 어린 아들이 목숨을 유지한 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이유가 됐다. 인나는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해 아들의 죽음에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빌고 있다. “난 세계가 러시아의 범죄에 대해 알도록 하고 싶다. 난 모든 희생자들에게 이유를 찾아주고 싶다. 난 러시아가 사람들과 아이들, 여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이 나라 정부에 따르면 침공 이후 지금까지 희생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은 200명 이상, 다친 이는 몇백명이다.여섯 살배기 다니일 애브딘코는 이달 초부터 러시아 군에 포위되고 포격을 받은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다니일과 부모 모두 집 밖에서 박격포 공격에 다쳤댜. 셋 다 바닥에 내던져졌다. 아버지 올렉산드르는 아내의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봤다. 그는 가방 끈을 풀어 지혈에 이용했고, 그 덕에 다리를 절단하지 않아도 됐다. 아빠는 아들을 불러 괜찮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소년이 일어서려 하자 심하게 다쳤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온몸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 피를 너무 흘렸다.” 셋 모두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올렉산드르는 “처음 나흘은 누가 살아 있는지, 누가 죽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들이 입원했을 때 병원에 이름조차 등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키이우의 병원에서 셋은 만났다. 다니일의 머리에 박힌 파편은 제거했는데 등에는 여전히 박혀 있었다. 의료진은 당장 빼내려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여러 군데 다쳤고, 다리마저 골절돼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들은 대체로 잘 견뎠지만 간호사가 약을 바르거나 하면 아프다며 울곤 했다. 지하실에 빨리 대피하라는 아빠 말을 안 듣고 좀더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이런 일을 당했다며 자책했다. “아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다니일은 전쟁이 시작하자 많은 질문을 아빠에게 던졌다고 했다. “총소리가 들리면 ‘아빠 지금 누가 쏘는 거에요?’라고 물었는데 난 ‘우리 편’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또 ‘그럼 지금은요?’라고 물었고, 난 ‘우리 용사들이 공격받는 거란다’라고 답했다. 밤에는 잠들면 꿈에 탱크들을 볼 것 같다고 했다. 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아이는 깜짝 놀라 깨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그는 재미있어 했다. 하지만 그 일 뒤에 급격히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의 어린 세대는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의 즐거움을 빼앗겼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이 나라의 780만 어린이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유민 신세를 지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동부와 남부에 피해가 집중됐지만 이제 폴란드와의 국경이 멀지 않은 서부 도시 르비우까지 러시아의 공습을 받고 있어 이 나라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더욱이 문제는 이 어린이들이 언제 일상을 되찾을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 “말할 기회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말할 기회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정두환 경감 아들 추도사 이어동료 “형제 희생 빛나게 더 노력”“국민과 가족을 위한 거룩한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해양경찰관 3명의 합동 영결식이 12일 부산 강서구 강서실내체육관에서 해양경찰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정봉훈 해경청장, 유족, 동료 조종사, 동기생, 부대원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순직한 정두환(50) 경감, 차주일(42) 경사, 황현준(27) 경사에 대한 경례에 이어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정두환 경감의 아들 정모군은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존경한다고 표현하지 못했다. 살면서 말할 기회가 넘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정말 미안하고,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 줘서 고맙고,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들의 동료 강변찬 경장은 “함께 먹고 자고 배우며 위기가 있는 바다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나갔지만, 우리의 안전은 지켜내지 못했다”면서 “남은 대원들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형제들의 희생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해경은 정 경감을 손꼽히는 베테랑 조종사, 팀의 막내인 황 경사를 유능한 전탐사, 차 경사를 쉬는 모습 없이 일한 최고의 엔지니어였다고 소개했다. 유족들은 헌화대 앞에서 영정을 황망하게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장식을 마친 뒤 순직자들은 대전 현충원으로 옮겨져 영면에 들었다.
  • 헬기추락 순직 해경 눈물의 합동영결식

    헬기추락 순직 해경 눈물의 합동영결식

    타이완 해역 조난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가 추락한 헬기의 동체가 사고 발생 사흘 만에 인양됐다.  사고로 순직한 해경 대원 3명의 합동 영결식은 오늘(12일) 오전 10시 부산 강서 실내체육관에서 해양경찰청장으로 엄수됐다. 1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추락헬기 순직 해경 합동영결식에서 동료들이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경은 영결식을 마친 뒤 대원들의 시신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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