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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직지사 조실 관응스님 열반 경북 김천 직지사 조실 관응(觀應)스님이 28일 거처하고 있던 산내 암자 중암에서 열반했다.세수 94세,법랍 75세.영결식은 3일 오전 11시 직지사 남덕전에서 원로장으로 열린다.(054)436-6174. ●趙胤新(대법원 재판연구관)昇新(인앤아웃커뮤니케이션 이사)榮新(산업자원부 서기관)福新(서울 오주중 교사)씨 부친상 全中正(서울 성모산부인과 원장)씨 시부상 梁琮民(반도해운 대표)崔仁敎(동원증권 투자상담사)諸曷守(머크 대리)씨 빙부상 29일 0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일 오전 6시 (02)3010-2291 ●梁官植(전 한국유지공업협회장)씨 별세 成馝(캐나다 거주)元碩(유케이두아이 상무)碩容(㈜피엠아이전자 대표)씨 부친상 鐸植(전 서울시장)씨 형님상 張斗煥(역사비평사 대표)씨 빙부상 28일 오전 5시 삼성서울병원,발인 3일 오전 9시 (02)3410-6916 ●金完泰(명지대 종신교수)씨 별세 榮敦(대전선명원 재단이사)榮(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씨 부친상 余明錫(서울대 건축공학과 교수)씨 빙부상 28일 오후 10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3일 오전 9시 (02)3410-6919 ●申昇雨(통계청 산업동향과장)씨 부친상 28일 오전 3시 대전 충남대병원,발인 1일 오전 8시 (042)257-6943 ●金在圭(서울 김재규한의원장)在杰(기업은행 분당서현지점 과장)在和(건국재단 직원)在琬(대구 김재완법무사사무소장)在昆(KTF 운용개선팀 차장)永粉(자영업)慶蘭(〃)順照(의정부시 광동여고 교사)씨 모친상 28일 오후 7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3일 오전 7시 (02)958-9545 ●吳成春(장로회 신학대학 교수)씨 빙모상 28일 오후 3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7시 (02)3010-2293 ●朴弘淳(한강아이엔씨 대표)亨敏(수원시 영화초등학교 교사)씨 모친상 孫大均(천안시 중앙고 교사)車鍾浩(경기일보 차장)李先敎(파라다이스 과장)씨 빙모상 28일 오전 9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6시 (02)3010-2235 ●金鍾淵(전 충남 서산시 음암면장)씨 별세 德雨(인도해외은행 서울지점 준법감시인)寬雨(SK증권 법인영업부 차장)亮雨(한국후지제록스 팀장)漢雨(정보통신부 총무과 직원)씨 부친상 金基葉(자영업)徐尙喆(〃)고일주(미국 거주)씨 빙부상 28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8시 (02)3010-2238 ●李相浩(우체국 직원)宋俊錫(네오세미테크 상무)씨 빙모상 28일 오후 5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낮 12시 (02)3010-2262 ●金鎭燮(진성휀스공업 대표)씨 빙부상 28일 오전 11시3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10시 (02)3010-2239 ●高大植(부천시 세종병원 재단이사)允植(자영업)仁植(한국백화점협회 전무)씨 부친상 29일 오전 10시15분 서울 강북삼성병원,발인 2일 오후 1시 (02)2001-1096 ●郭贊信(변호사)씨 별세 根溶(합동연료 대표)夏溶(유넵시스코리아 상무)씨 부친상 朱吉中(우량종합건축 대표)씨 빙부상 29일 오전 10시 전남 순천시 성가를로병원,발인 4일 오전 8시 (061)720-2296 ●朴喜洪(전 외환은행 지점장)씨 별세 尹順姬(서울 수송초등학교 직원)씨 상부 勝用(한일맨파워 직원)씨 부친상 29일 오전 4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2일 오전 6시10분 (02)760-2014 ●宋榮萬(전 담배인삼공사 관리국장)榮民(리얼티소프트 사장)씨 모친상 28일 오전 1시30분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발인 2일 오전 10시 (041)550-7169 ●片永完(전 서울고등법원 판사·전 서울변호사회장)씨 별세 文鍾(메종드마이유 대표)聖豪(타워개발 지원실장)善鍾(흥국생명보험 직원)씨 부친상 28일 오후 11시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3일 오전 8시 (02)3410-6915 ●元哲喜(그린항공해운 대표)滿喜(성균관대 강사)斗喜(CJ시스템즈 부장)씨 부친상 明世煥(한국IBM 부장)씨 빙부상 28일 오후 1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5 ●全惠珍(탤런트)씨 모친상 28일 낮 12시1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일 오전 6시 (02)3410-6917 ●梁龍模(서울신문 제작국)씨 조부상 29일 오후 6시50분 용인장례식장,발인 2일 오전 9시 (031)321-8068
  • 로버트 김 육성테이프 부친 영결식서 공개

    기밀누설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이 15일 부친 김상영옹의 영결식장에서 공개된 육성테이프를 통해 애끊는 사부곡(思父曲)을 전했다.이 테이프는 부인 장명희(61)씨가 갖고 입국했다. 로버트김은 부친 작고에 대비해 두 달 전쯤 녹음한 이 테이프에서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효도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주시고,임종할 수 없는 불효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고 울먹였다.그는 “저의 과오는 사(私)를 생각하지 않고 공(公)을 위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아버님께서 남기신 가훈을 지키면서 정의롭게 살겠다.”고 말했다. 부인 장씨는 “남편은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서쪽 하늘에 대고 절을 하겠다.’며 슬픔을 표시했다.”고 전했다.장씨는 ““남편이 부친의 영전도 지키지 못하는 큰 불효를 저지르게 된 현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한때 조국이 등을 돌렸다는 비통함도 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뜨거운 동포애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남편이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도와달라.”면서 한국 정부가 남편을 인정하고 남편은 조국을 위해 여생을 보내는 것이 진정한 화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부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국내 비판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67)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지병인 대장암으로 타계했다.1968년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2년 정년퇴임하기까지 주로 계급·노동·국가 등의 주제를 비판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딸 기인 등 2남 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른다.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02)760-2018. ●안희경 前경무대 정무비서관 이승만 대통령 당시 경무대 정무비서관을 역임한 안희경 변호사가 1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유족은 미망인 민순기씨와 명기(변호사)·용기(재미공학박사)·덕기(대한승마협회장)·건일(재미기업인)·윤기(연세대 교수)씨 등 5남 3녀.발인 18일 오전 8시,빈소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6호(02)3410-6916. ●元忠喜(유닉스라바 회장)씨 모친상 鍾源(파이낸셜뉴스 런던특파원)씨 조모상 李澤根(전 한미인터내쇼날 회장)金允洙(남원엔지니어링 상무)金容國(전 국민데이타 사장)씨 빙모상 13일 오후 8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14 ●朴俊成(성진화성 대표)씨 별세 昇旭(〃 이사)昇美(독일 거주)씨 부친상 14일 오전 7시25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6일 오전 10시30분 (02)392-0499 ●徐章赫(약사)知賢(버추얼텍 대표)씨 부친상 李尙勳(단국대 의대 교수)洪性根(포천중문의대 교수)金朋年(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高法珉(서울 스타성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14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미사 17일 오전 8시 서교동성당 (02)760-2011 ●金基澤(동서산업 법무관재팀장)永敏(한국경제신문 총무팀장)씨 부친상 朴鍾官(현대모비스카페 마산점 대표)朴義錫(부산 영도구 계장)씨 빙부상 14일 오후 9시 부산 양정동 동의의료원,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51)852-0244 ●金炳翼(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炳(이수화학 감사)씨 모친상 15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9 ●朴東燦(서울여대 교수)씨 부친상 李明俊(세기문화사 직원)씨 빙부상 14일 오후 5시 대구 노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 (053)813-5935 ●琴基(봉화금씨종친회장)彩(충남대 문리대 교수)澔(미국 거주)裕植(해태제과 법정관리인·전 한일은행 본부장)同和(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씨 모친상 金銀愛(연세대 교수)씨 시모상 孟元在(전 건국대 총장)李完成(미국 거주)씨 빙모상 15일 오전 4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92 ●李省勳(KBS스포츠국 기자)씨 모친상 15일 오후 6시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38˝
  • [부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국내 비판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67)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지병인 대장암으로 타계했다.1968년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2년 정년퇴임하기까지 주로 계급·노동·국가 등의 주제를 비판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딸 기인 등 2남 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른다.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02)760-2018. ●안희경 前경무대 정무비서관 이승만 대통령 당시 경무대 정무비서관을 역임한 안희경 변호사가 1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유족은 미망인 민순기씨와 명기(변호사)·용기(재미공학박사)·덕기(대한승마협회장)·건일(재미기업인)·윤기(연세대 교수)씨 등 5남 3녀.발인 18일 오전 8시,빈소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6호(02)3410-6916. ●元忠喜(유닉스라바 회장)씨 모친상 鍾源(파이낸셜뉴스 런던특파원)씨 조모상 李澤根(전 한미인터내쇼날 회장)金允洙(남원엔지니어링 상무)金容國(전 국민데이타 사장)씨 빙모상 13일 오후 8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14 ●朴俊成(성진화성 대표)씨 별세 昇旭(〃 이사)昇美(독일 거주)씨 부친상 14일 오전 7시25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6일 오전 10시30분 (02)392-0499 ●徐章赫(약사)知賢(버추얼텍 대표)씨 부친상 李尙勳(단국대 의대 교수)洪性根(포천중문의대 교수)金朋年(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高法珉(서울 스타성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14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미사 17일 오전 8시 서교동성당 (02)760-2011 ●金基澤(동서산업 법무관재팀장)永敏(한국경제신문 총무팀장)씨 부친상 朴鍾官(현대모비스카페 마산점 대표)朴義錫(부산 영도구 계장)씨 빙부상 14일 오후 9시 부산 양정동 동의의료원,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51)852-0244 ●金炳翼(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炳(이수화학 감사)씨 모친상 15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9 ●朴東燦(서울여대 교수)씨 부친상 李明俊(세기문화사 직원)씨 빙부상 14일 오후 5시 대구 노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 (053)813-5935 ●琴基(봉화금씨종친회장)彩(충남대 문리대 교수)澔(미국 거주)裕植(해태제과 법정관리인·전 한일은행 본부장)同和(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씨 모친상 金銀愛(연세대 교수)씨 시모상 孟元在(전 건국대 총장)李完成(미국 거주)씨 빙모상 15일 오전 4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92 ●李省勳(KBS스포츠국 기자)씨 모친상 15일 오후 6시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38
  • 유족 두번울린 정신나간 경찰

    지난 4일 경찰의 밀수 용의차량 수사에 동원됐다가 컨테이너 차량 폭발사고로 숨진 사람과 부상자의 신원이 뒤바뀐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경찰측은 사고 직후 박모(34)씨가 숨졌고 오모(33)씨가 부상했다고 발표했으나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열린 박씨의 영결식장에서 신원이 뒤바뀐 것이 확인됐다.유족에 따르면 부상자가 온몸에 화상을 입어 강남구 대치동 A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병원측이 혈액형을 확인하던 과정에서 부상자의 혈액형과 오씨의 원래 혈액형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오씨 유족은 오씨가 11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은 사실을 떠올리고 사망자가 있던 신월동 B병원에 연락해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사망자의 시신에 철심이 박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실제 사망한 사람은 오씨였고 화상을 입은 사람은 박씨였음이 뒤늦게 확인됐다.경찰측은 폭발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박씨와 오씨 일행이 ‘사망자가 박씨가 맞다.’고 확인해 줬고 유족들도 시체 확인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고 조사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신원확인이 미진했던 것은 실수다.사망자의 지문을 채취해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YS침묵 정면돌파 '시간벌기’

    “요즘 방송에서 내가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떠들던데,나는 매일 이 곳에 나와 운동을 하고 있다.제대로 알고나 보도하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8일 자신이 칩거하고 있다는 보도에 불쾌감을 표시했다.오전 10시쯤 서울 상도동 실내배드민턴장에서 열린 국민생활체육 동작구 배드민턴엽합회 수도클럽 회장 이·취임식에 참석,주민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최근 보도에 대해선 불만이 있는 듯했다.측근들에게는 “지들이(기자들이) 못 봤으면 칩거가.”라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이날 강삼재 의원의 법정 진술에 대한 기자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고 손사래만 쳤다.이 문제와 관련,YS가 사흘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정면돌파를 위한 시간벌기’로 보고 있다. YS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장고를 거듭했고,때가 되면 여지없이 ‘정면돌파 카드’를 뽑아들곤 했다는 것이다.이날 외출도 ‘오기’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YS가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강 의원의 진술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그만큼 여론도 YS편이 될 수 없다.자금출처나 전달 과정을 밝히라는 강한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YS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이날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일절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박 의원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안상영 부산시장 영결식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7일) 오후 상도동을 찾아 김 전 대통령과 30여분간 강 의원의 진술에 대해 보고도 하고 여러가지 상황 등에 대해 말씀드렸다.”고 전했다.YS가 박 의원을 비롯한 측근들을 통해 여론동향을 파악하고,강 의원의 법정 진술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때까지 ‘함구’를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의원은 YS의 반응과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지금은 말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때가 되면 YS가 직접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YS의 성격상 검찰 소환 등에는 응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상당 기간 침묵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대(對)국민 입장 발표 등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최대표, 안시장 영결식 눈물의 조사

    “이 시대의 처세술을 어찌 너만 모르느냐.진정 목을 매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정치다.3류 정치가 자네를 죽게 만들었다….” 9일 고(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영결식에서 부산고 재학 때 만나 50여년 우정을 이어온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당 대표가 아닌 우인대표 자격으로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지난 설때 자네가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대통령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구치소 앞에서 데모를 해서라도 자네를 병보석시키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놈의 정치 한답시고 무엇을 했는가.사람 잡는 정치를 했을 뿐….젖은 종잇장처럼 무기력한 나 자신이 너무 밉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고인의 중학교 동창인 박관용 국회의장도 조사를 통해 “지금보다 몇천배 힘들었던 때도 무쇠처럼 뛰었던 당신,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당신을 누가 무엇 때문에 허물어지게 했나.”라면서 “죄인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정말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고 흐느꼈다. 이날 오전 10시 부산시청 후정 옥외공연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박관용 국회의장,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민주당 조순형 대표,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안상수 인천시장 등 정·관계 인사와 공무원,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고인에 대한 묵념,창혼(스님이 요령을 흔들며 혼이 극락 세계에 가서 고이 잠들라고 달래는 의식),약력보고와 영결사,조사,고인유지 낭독,육성녹음 근청,헌화 및 분향,유족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오거돈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영결사를 통해 “오늘 기어이 당신을 떠나 보내려니 가슴이 미어질 뿐”이라며 “1만 5000여 부산시 공무원들은 당신의 뜻을 이어받는 데 보다 각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행렬은 남구 남천동 부산시장공관 입구에서 노제를 갖고 광안대로와 동백섬을 거쳐 분향소가 설치됐던 금정구 두구동 영락공원으로 되돌아가 화장한 뒤 오후 4시30분쯤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에 봉안됐다. 고인은 관선과 민선을 포함해 8년 2개월 동안 부산시장으로 재직하면서 특유의 리더십과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부산을 동북아 해양수도로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새하얀 눈꽃 속 극락왕생”서옹스님 다비식 거행

    함박눈이 내린 19일 오후 1시20분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스님의 법구는 좌탈입망(坐脫立亡·앉은 채로 열반)한 모습 그대로 스님과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불총림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다비식(茶毘式)장 연화대에 올랐다. 20분 뒤 “노스님,집에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염불이 경내에 울려퍼지면서 불붙은 솜뭉치로 거화(불을 부침)하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백양사 경내 다비장을 가득 메운 2500여명의 스님과 신도 등 3만여명은 서옹 스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합장했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 불자들은 전날 밤부터 퍼부은 함박눈으로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백양사 안팎을 둘러보며 “덕이 높은 스님이 가시는 날 하늘도 감동했다.”고 추모했다. 수백여명이 백양사 경내 수백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배경으로 추모객들의 움직임을 앵글에 담기 위해 운구 행렬 곳곳에서 장사진을 쳐 이를 정리하는 스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또 폭설 때문에 전국에서 온 차량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백양사 입구 곳곳에는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라는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수십개가 나붙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전 11시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은 조계종 전 교육원장 일면스님의 사회로 봉행됐다.영결법요와 고인의 행장소개,육성법문이 영상화면으로 상영되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사,조계종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의 추도사가 이어졌다.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조사를 했다.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민주당 조순형 대표,열린 우리당 이태일 공동의장,오지철 문화관광부차관이 참석해 헌화했다. 장성 백양사 남기창기자 kcnam@
  • 故전재규대원 내일 영결식

    남극에서 실종된 동료 대원들을 구출하다 숨진 전재규(27) 연구원의 영결식이 16일 거행된다. 한국해양원구원은 전 연구원의 영결식을 16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안산시 사2동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연구원장(葬)으로 열기로 유족과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전씨의 시신은 유족의 뜻에 따라 영결식후 수원 화장장에서 화장되며 유골은 일단 충주 중원사에 안치될 예정이다.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
  • ‘참사랑 운동’ 실천한 ‘보통사람’/13일 열반한 ‘우리시대 최고의 선승’ 서옹 스님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사진) 스님이 13일 오후10시10분 전남 장성 백양사 설선당에서 입적했다.세수 92세,법랍 72세. 서옹 스님은 이날 오후 백양사 주지 스님과 시자들을 주석하고 있던 설선당으로 불러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하는 법담을 나눈 뒤 열반송과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했다. 스님은 동국대 선학원장을 비롯해 도봉산 무문관,대구 동화사,문경 봉암사,장성 백양사 조실을 역임했으며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냈다.영결식과 다비식은 19일 오전 11시 백양사에서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될 예정이다. 스님은 중국 선불교의 대가인 임제 선사의 정맥을 이어 ‘우리시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통하는 선승이었다.특히 상하 귀천이나 성인·범부를 초월해 본래의 선한 면목에 투철한 사람으로 거듭 나자는 ‘참사람 운동’을 주창해 실천한 ‘보통사람’이기도 하다.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양정고보에 재학중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 선생의 영향을 받아 ‘간디 자서전’을 읽다가 불교에 입문했다.이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1932년 백양사에서 만암(曼菴·1876∼1957) 스님을 은사로 출가,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의 지도를 받은 뒤 일본 교토의 인제대에 유학했고 이후 해인사 동화사 파계사 봉암사 등 여러 선방에서 정진을 거듭했다.체계적인 근대식 교육을 받았던 스님은 검증되지 않은 여러 수행법에 대해 우려,무엇보다 사람들이 참선을 근본으로 서로 자비심을 갖고 사리사욕 없이 참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참모습을 깨달아야 한다고 늘상 강조했다.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조사선’을 강조하면서도 “깨달음은 한 번의 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화두참구를 통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며 수좌들에게 쉼없는 정진을 다그쳤다. 특히 “참선이야말로 인생문제가 다 해결되는 인간의 참모습인 만큼 공부하는 수좌들은 참선을 하면서 자기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큰 원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이같은 신념에 따라 지난 98년부터는 백양사 고불총림에서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승속(僧俗)이 한데 모여 서로의 경지를 묻고 답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2년마다 열어 왔다. 중생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심을 갖도록 하는데 힘썼던 스님은 ‘선과 현대문명’‘절대 현재의 참사람’‘임제록연의’‘참사람 결사문’‘사람’ 등의 저서를 남겼다. 김성호기자 kimus@ ●열반송 전문 雲門日永無人至/白巖山頂雪紛紛/一飛白鶴千年寂/細細松風送紫霞(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백암산정에 눈이 분분하네/한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낸다.)
  • 월하스님 어제 영결식

    제9대 조계종 종정과 총무원장을 지내고 지난 4일 입적한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10시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됐다.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총무원장 법장스님을 비롯한 스님 2000여명과 박관용 국회의장,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추미애 민주당 의원,열린우리당 이태일 의장,자민련 주양자 부총재,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등 각계인사와 신도 5만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장에서 4㎞ 떨어진 연화대 다비장으로 옮겨져 오후 2시30분부터 다비식이 거행됐다. 김성호기자 kimus@
  • 월하스님 열반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낸 통도사 방장 월하(속명 윤희중) 스님이 4일 오전 9시15분 경남 양산 통도사 정변전에서 입적했다.세수 89세.법랍 71세.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스님은 1933년 18살에 강원도 유점사에서 차성환 화상을 계사로 득도한 뒤 1940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관련기사 18면 통도사 전계화상과 주지,조계종 총무부장·중앙종회의장·원로의원·총무원장·종정,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 등 조계종단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열반때까지 통도사 방장으로 주석해왔다. 월하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10일 오전 10시 통도사에서 종단장으로 치러진다.(055)382-7182. 김성호기자 kimus@
  • 부고/ 조계종 원로 덕명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남곡당(南谷堂) 덕명(德明·속명 김혜성) 스님이 2일 오전 4시40분 부산 기장군 안적사에서 입적했다.세수 77세,법랍 55세. 스님의 법구는 이날 오전 본사인 범어사로 이운됐으며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 범어사 대웅전 앞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진다.(051)508-3122.
  • 이승 떠나면서도 ‘승단화합’ 강조/ 태고종 종정 덕암스님 입적

    불교 태고종 종정 안덕암 스님이 지난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륜사에서 입적했다.세수 90세,법랍 73세. 경북 문경 출신인 덕암 스님은 열여섯살 때인 1930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최벽산 화상을 은사로 동진출가한 이후 평생 수행과 대중교화를 병행해온 불교계 지도자.‘승단의 화합만이 불교중흥의 길’이라는 소신을 일관되게 실천했으며 광복 이후 비구·대처승 분규의 와중에서 한국불교의 법통과 정통성을 지킨다는 원력을 세워 한국불교 태고종을 세우고 이끌어온 태고종단의 중창주이다. 광복 이후 조계종 재무국장 교무부장,조계종 총무원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불교가 정치에 물들어가는 세태에 불만을 품고 태고종을 창종했다.태고종 총무원장,종무총장,종승위원장,교육원장,법륜사 조실,태고총림 선암사 방장을 거친뒤 86년부터 93년까지 제13대 종정을 지냈고 98년 제16대 종정에 재추대되어 사간동 법륜사에서 주석해왔다.스님은 열반에 들기 사흘 전 종단 간부들과 제자들을 불러 승단의 화합과 불교발전에 대한 유훈을 남겼으며 22일제자들 앞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고 태고종측은 전했다. 영결식은 26일 오전 10시 서울 신촌 봉원사에서 태고종단장으로 치러지며 다비식은 같은 날 오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봉행된다.(02)392-3007다음은 열반송 吾觀法界本無性/生死涅槃亦無相/若人問我去來處/雲散紅日照西天(내가 법계를 살피니 본래 성품이 없으매/생사와 열반 또한 모양이 없도다/만일 내게 오고감을 묻는다면/구름 흩어져 붉은 해가 서천을 비춘다 하리라) 김성호기자 kimus@
  • 정대 스님 영결식 열려

    지난 18일 입적한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正大)스님의 영결식이 22일 오전 10시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용주사에서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됐다. 영결식에는 700여명의 스님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각계 인사와 신자 5000여명이 참석해 스님의 열반을 애도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종사(宗師)의 안목은 사부대중의 지남(指南)이요,종단사(宗團事)에는 시처(時處)를 가리지 않았다.”고 스님의 삶을 높이 평가했다.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영결사에서 “스님은 법명 그대로 바르고 큰 사람이었다.”며 “나누고 베푸는 것이 진정으로 큰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셨다.”고 회고했다.
  • 사돈간의 ‘진실게임’/상속포기 종용 “했다” “안했다” 정인영회장 상가서 회동 주목

    ‘누구 말이 진실일까.’ 지난 8월초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사후 상속포기 문제 등을 두고 정 회장의 장모인 김문희 여사와 정상영 KCC명예회장간의 ‘사돈간 진실게임’이 뜨겁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0일 ‘KCC 정상영 명예회장의 심경’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문희씨가 본인이 상중에 몰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느니 유족의 상속포기를 종용했다느니 하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속포기를 권유한 부분은 고 정 회장의 보증채무가 1조원에 달해 유족을 위해 본인이 정 회장의 금융채무를 대위변제해야 하는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일인데 진의를 왜곡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산상속 여부는 90일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면서 “당연히 상중에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도 김문희씨가 이를 두고 ‘상중에 상속포기를 종용했다.’고 한 것은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매입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고 정 회장 영결식 당일 장례식장에서 적대적 M&A(인수합병)를 우려한 현대그룹의 다급한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문희 여사는 정면 반박했다.김 여사는 “정 명예회장의 엘리베이터 지분 매입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이뤄졌으며,M&A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사주를 내놓으라고 강요했다.”면서 “M&A 방어를 위해서라면 왜 유사시에 의결권이 있는 지분으로 돌릴 수 있는 자사주를 내놓으라고 강요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여사는 “처음에는 설혹 M&A 방어 의도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경영권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대량 매집을 한 것을 보면 경영권을 뺏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김 여사는 “정 명예회장이 자기 뜻에 동의하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도 못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면서 “국민이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주 부인인 김월계씨가 이날 별세,이를 계기로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게 될지 주목된다. 고인은 현 회장에게는 시숙모이자,정 명예회장에게는 형수다.이날 저녁 빈소가 마련된 현대아산병원에는 정 KCC 명예회장,정몽구 현대차 회장,현 회장 등이 들렀으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김성곤기자
  • “우리는 모두 꿈속의 사람인 것을…”/‘당대 최고 행정승’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스님 입적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正大·사진) 스님이 18일 오전 5시 안양 삼성산 삼막사 월암당에서 입적했다.세수 67세.법랍 42세. 전북 전주 출신인 스님은 1962년 완주 위봉사에서 출가해 이듬해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이후 조계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추진력 있는 종무행정과 친화력으로 종단 안정에 앞장서 ‘당대 최고의 행정승’이란 평가를 받았다. 총무원 사회부장·재무부장·총무부장을 거쳐 부원장에 올랐고 8선의 중앙종회 의원,2차례 종회의장을 거친 뒤 1999년 11월 고산 스님의 후임으로 최고 수반에 올랐다.총무원장 자리에 앉은 스님은 조계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오랜 숙원인 총무원 청사 건립,중앙승가대 이전,종단재정 안정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모두 해결했다. 이사(理事)에 모두 능했던 스님은 종무행정에 힘을 쏟으면서도 도봉산 망월사 선원을 비롯해 수덕사·용주사·중앙선원 등에서 참선수행을 병행했다.용주사에 주석할 때 은사인 전강 스님에게 받은 ‘판치생모(板齒生毛·판대기 이빨에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 화두를 잡고 정진,‘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따로 없다.’는 견성(見性)을 이루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출가 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절반은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출가한 몸으로 줄곧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어머니와 사별했을 때 며칠간 밥을 먹지 않은 이야기는 유명하며 지난해 유산과 사재 37억원을 털어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은정장학재단에도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다. 격외(格外)와 무위(無僞)의 삶을 강조했던 스님은 숨김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특히 총무원장 재임 시절 민감한 정치적 발언과 인물평으로 자주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임기를 10개월여 앞두고 올 2월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나 동국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스님은 재정난에 부닥친 동국대 일산병원 개원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나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돼 그동안 수차례 입퇴원을 계속하며투병생활을 해왔다. 스님의 법구(法軀)는 입적 직후 출가 본사인 수원 용주사로 옮겨졌으며 영결식은 22일 오전 10시 용주사에서 학교법인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된다.(031)234-0040. 다음은 임종게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김성호기자 kimus@
  • 청화스님의 수행과 삶/부처님 법대로 주지 마다하고 40년 정진

    12일 평소처럼 태연하게 미소 띤 얼굴로 열반에 든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 청화(淸華)스님.언제 어디서나 죽고 삶에 연연하지 않았던 스님은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했으나 모든 사람을 부처로 여기고 배려하는 큰 인물이었다.이제 육신은 소멸한 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가득한 화택(火宅)에서 벗어났지만 영롱한 사리로 남아 무언의 설법을 전하고 있다.생전 몸은 세속에서 떨어진 채 변함없이 구도의 길에 매달렸지만 마음은 그 누구에 대한 편견 없이 자비와 관용을 향해 열어놓았던 큰 스님.열반 후에도,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전남 곡성 성륜사에는 스님의 극락왕생과 영혼불멸을 기원하는 추모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청화 스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지난 16일 스님의 영결식장인 전남 곡성 성륜사에 모인 스님,신도들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의 주지 소임도 맡지 않은 채 40년간 토굴과 암자를 구름과 물처럼 전전하며 수행에만 매진한 스님이 어떻게 그많은 상좌(제자)를 둘 수 있었을까.스님을 은사로 출가한상좌는 자그마치 136명.그것은 ‘부처님의 법대로 따른다.’며 청정무구한 수행으로 일관한 스님을 추앙하는 납자와 수행승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성륜사 주지 도일 스님은 “스님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겉치레와 형식에 매이지 않은 스님의 수행관과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총무원 간부며 중앙종회 의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으나 번번이 내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원로회의 위원에 추대될 때도 극구 사양했으나 종단의 간곡한 요청에 “위원을 맡되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겠다.”고 선언,단 한 차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좌불와의 수행자’‘일종식 납자’‘염불선의 실천자’….많은 스님들은 “내가 보아온 수많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수행한 스님”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1960년대 한 암자에서 정진할 당시 한겨울 바위틈에서 나오는 찬 샘물을 머리에 부으면서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토굴에서 참선할 때 아무데서나 한가지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 시자들에게‘시간 낭비는 생명낭비’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격식을 싫어해 녹차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맏상좌인 용타(전주 기신사 회주)스님은 “청화 스님이 주위 사람들에게 ‘출가했으면 부처님 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행법이 다르다고 해서 수행의 기본정신이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스님은 종파성을 지양한 통불교(通佛敎)와 함께,선·염불을 하나로 모은 염불선을 주창했다. 임종 직전 상좌들과 법담을 나누던 스님은 “금생에서의 세연이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화합하고 수행을 열심히해 중생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kimus@ ■청화스님 유언 스님은 자신을 지키는 데는 철저했으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을 낮춤 없이 존대한 것으로 유명하다.상좌인 성전 스님(전 옥천암 주지)은 “스님을 한 번이라도 친견한 이라면 모두 귀의할 마음을 가질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잃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성륜사 전국신도회 회장 정해숙(68)씨는 “스님이말과 행동을 달리했던 때를 본 적이 없으며,시봉 스님들에게도 자신을 따르기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그래서인지 의사 교수 예술인 기업가 정치인 등 스님과 인연을 맺어 자주 찾은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홍라희 부부,대상그룹 회장 임창욱·박현주 부부,전 대통령 전두환·이순자 부부,박선자 경상대 교수,이중표 전남대 교수,배광식 서울대 치대교수,윤산 화백,아산 조방원 화백….스님이 임종 때까지 주석하던 성륜사도 아산 조방원 화백이 10만평을 내놓아 건립됐다.미국 카멜 삼보사에 선방을 세울 때도 외국인 불자가 땅을 기증했다고 한다.스님을 찾아오는 이는 반드시 산문까지 직접 나와 배웅했으며,최근까지도 손수 법복을 빨아 다려입었다. 광주 추강사에 주석하던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스님들이 먹을 쌀이 2∼3일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찾아든 딱한 객승에게 쌀독에 남은 쌀을 모두 걸망에 담아주었다.두륜산 진불암에 머물 때는 갑자기 절을 찾아온 낯선 스님을 위해 40리 떨어진 해남까지 내려가 제물을 준비해와 제사의식 가운데 절차가 제일 복잡하다고 하는 구병의식을 베풀기도 했다.스님의 하심은 많은 이들을 감복하게 해 출가토록 했다. 대흥사 상원암 주지도 출가전 무례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으나 “자네는 아주 점잖은 사람”이라고 다독여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상좌다. 스님은 임종 며칠 전 시자들에게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굳이 마지막 가는 길을 호화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며 “죽은 뒤 거적에 말아 일반 화장터에서 화장해 아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청화스님 어록 ●비록 몽매에 사무친 그리운 귀향의 길이라 할지라도 고달픈 나그네에게는 가파른 산 너머 아득한 마을일 것이며 번뇌의 해탈과 영생의 행복을 지향하는 위(끝)없는 정도(正道)일지라도 삼독심(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얽매인 중생들에게는 천리만리 머나먼 꿈나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참다운 자아를 성취한 거룩한 성자들에게는,닿기만 하면 황금빛으로 변한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와도 같이 영원히 행복한 금빛 찬란한 극락정토 아닌데가 없습니다.(1986년 월간 ‘금륜’창간호) ●우리는 죽지 않고 나지 않는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내가 분명히 죽고,나하고 친한 분들도 다 죽는데 왜 죽지 않는 것인가? 헛 것이며 그림자인 우리 몸만 그때 그때 사라지는 것입니다.생명 자체는 절대로 죽음이 없습니다.지금 당장에 어느 분이 인연이 다해서 금생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합시다.그런다 하더라도 그분의 목숨은,생명 자체는 조금도 흠축이 없습니다.다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업을 지었는가의 업장,따라서 지금 그의 몸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안락스러울 것인가,또는 고통스러울 것인가 하는 차이뿐입니다.(1991년 3월 불교방송 초청법어) ●우리가 성불할 때까지는 사뭇 놓치지 않고서 공부를 해야 되겠지만 우리 중생은 모양세계에 놓여 있습니다.모양세계란 것은 그때그때 구분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하루에 세때 먹어야 되고 갈곳은 가야되듯이,모양에 따른 한계가 있어서 쉴 때도 필요하고 푸는 제도나 맺는 제도도 있고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속물이란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 속물입니다.(2001년 동안거 해제법어) ●아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 따로 있단 말입니까? 좋아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똑똑한 척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습니다.모양이 없으면서 분명이 존재하고 한도 끝도 없는 것을 구합니다.모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얼마만큼 크다고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마음은 어디 국한되게 크고 작은 것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한도 끝도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2000년 11월 성륜사 정기법회 법어)
  • ‘下心’ 큰 가르침 남기시고…/성륜사 조실 청화스님 다비식

    “이세상 저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大天界)만큼 큰 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지난 12일 바람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한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 청화(淸華) 스님의 영결식이 16일 오전 11시 전남 곡성군 옥과면 성륜사 설법전 앞 마당에서 원로회의장으로 거행됐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을 비롯한 원로스님,법장 총무원장,각 종단 대표,본사 주지 등 스님 1000여명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대표,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신도 1만여명이 참석해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영결식은 5번 타종하는 명종식을 시작으로 삼귀의,영결법요,행장소개,추도사,헌화 및 분향,문중대표 인사 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장의위원장인 도원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큰 스님이 80평생 이루신 선풍진작과 교화포교의 크신 불사는 종도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법장 총무원장은 조사에서 “반백년이 넘게 오로지 수행과 교화에만 헌신해 오신 큰 스님이었다.”며 “평생을 한결같이 자비로 베푸신 법력과 공덕은 80세납을 거꾸로 헤아린다 해도 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청화 스님의 법구(法軀)는 500m쯤 떨어진 성륜사 입구 오른쪽 연화대 다비장으로 옮겨져 낮 12시30분부터 다비식이 진행됐다. 연화대가 훨훨 타오르기 시작하자 스님과 신도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으며 일부 신자들은 스님의 법명을 부르며 눈시울을 적셨다.스님의 운구와 다비는 유훈에 따라 장엄물과 만장(輓章)을 쓰지 않은 채 검소하게 진행됐다.평생 뼈를 깎는 수행정진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으로 일관한 스님은 입적하기 전 “장례를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라.”고 당부했다. 사리 수습은 습골·쇄골의 의식을 거쳐 17일 오후에 마무리한다. 곡성 김성호기자 kimus@
  • 청뇌 이강훈 선생 어제 영결식/독립운동 거목 가시는 길… 온 국민 애도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지난 12일 타계한 전 광복회장 청뇌(靑雷) 이강훈 선생의 영결식이 16일 서울 보훈병원에서 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이종찬 장례집행위원장,김우전 광복회장,안주섭 국가보훈처장 등 각계 인사와 원로 애국지사,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영결식은 이 위원장의 약력보고와 조사·추모사 낭독,김 전 대통령의 애도사,고인의 육성녹음 근청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은 애도사를 통해 “선생은 일생을 통해 여러가지 압력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국권회복,민주주의 실현,민족정기 보존,사이비 애국자 척결을 위한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선생과 영원히 작별하는 이 자리에서 온 국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이어 “위대한 애국자이자 선각자인 선생은 해방된 조국에서 도리어 3년에 걸친 옥고와 평생을 따라다니는 궁핍을 면치 못했다.”면서 “선생이 살아계신 동안 합당한 평가와 예우를 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고 아쉽게 생각한다.”고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인과 지난 1988년을 전후해 인연을 맺었고,고인이 대장암으로 입원한 2000년 이후 수차례 문병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했으며,김영삼·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고인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한편 항일운동을 방해하려는 일본 고위관리를 살해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고인은 100세로 현존 최고령 독립운동가였다.1903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나 중국 만주 등지를 돌며 무장 항일운동을 펼쳤으며,광복 후 귀국해 독립운동사 편찬위원,독립운동유공자 공적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다.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으며,1988년부터 5년간 제10·11대 광복회장을 역임했다.저서로 해외독립운동사,항일독립운동사,독립운동대사전,마적과 왜적,무장독립운동사,청사에 빛난 선열 등이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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