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염려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수단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교량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평안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파산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768
  • “러, 우크라 침공 남일 아냐” 사격 배우는 대만인 급증

    “러, 우크라 침공 남일 아냐” 사격 배우는 대만인 급증

    총을 들어본 적 없는 대만인 사이에서 사격을 배우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일(현지시간) 여행 가이드부터 문신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일부 대만인은 태어나서 처음 사격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이 대만에 대해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총기 규제가 엄격한 대만에서는 에어소프트건으로 사격 교육을 진행한다. 공기총과 원리는 비슷하나 공기 압력이 훨씬 낮으며 발사하는 탄의 재질도 다르다. 금속제 탄을 발사하며 사냥에 사용할 수 있는 공기총과 달리, 안전 장비를 착용하면 부상 염려 없이 모의 전투도 할 수 있다. 수도 타이베이 외곽의 한 사격 교육 업체 대표는 “대만에서 사격을 배우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2년 전 중국 전투기가 대만에 근접 비행을 시작한 이후로 증가 추세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로는 예약이 서너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우크라이나 전쟁에 서방의 눈이 빼앗기는 사이 중국에 대만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일부 대만인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중국은 무력에 의한 대만 통일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위협에 대비해 사격을 배우는 문신 예술가 쑤천(39)은 “(대만) 정부가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나와 같은 예비군을 소집하면 사격을 배워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다수 사람처럼 나 역시 전쟁이 싫지만, 불행히도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정신적으로라도 준비는 돼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사격 교육 초급 과정에 참석한 여행 가이드 장유(34)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의 위협을 더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만을 지키기 위한 총기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린핑유 의원은 최악의 상황에 대해 비상식량 등 생존 대책을 준비해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존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일상의 모든 것을 잃는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 BTS 지민, 건보료 체납으로 ‘나인원한남’ 압류

    BTS 지민, 건보료 체납으로 ‘나인원한남’ 압류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건강보험료 체납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지민은 2일 방탄소년단 공식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미국 백악관 행사를 마무리하고 귀국한 소감, 지난 4월 말 불거진 건강보험료 체납 건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지민은 “감사하고 영광스럽게도 다양한 인종, 국가, 문화를 가진 아미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여러분을 대표해 이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며 “다만 여러분을 대표해 와 있는 제가 아직은 너무 미숙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동안 저의 미숙함 때문에 걱정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는 염려하시는 일 없도록 더 성숙한 제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지민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올 1월 고가의 아파트 나인원한남(지난해 5월 약 59억원에 매입) 압류 조치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81조 등에 의거,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독촉을 받은 자가 그 납부기한까지 보험료 등을 내지 않을 시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 체납 처분을 진행한다. 건강보험료의 경우 법적 세금은 아니지만 체납 시 국세 체납의 예에 따라 강제 징수된다. 보험료 성실 납부자 보호, 국민 형평성 제고 등을 위한 조치다. 이와 관련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뮤직 측은 “아티스트 숙소로 도착한 우편물을 회사가 1차적으로 수령해 아티스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부 우편물에 대한 착오로 누락이 발생했다. 지민은 지난해 연말부터 진행된 해외 일정 및 장기 휴가와 이후 해외 스케줄 등으로 연체 사실 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를 확인한 즉시 체납액을 전액 납부해 현재 본 사안이 종결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회사의 업무 과실로 인해 아티스트 및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 말씀드린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지민은 뒤늦게 연체 사실을 인지하고 체납금 전액 납부를 마쳐 사태를 수습했다.
  •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4번째 한미 금리역전 오나… “자금 엑소더스보다 경기침체 더 걱정”[뉴스 분석]

    4번째 한미 금리역전 오나… “자금 엑소더스보다 경기침체 더 걱정”[뉴스 분석]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렸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6~7월에도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염려와 달리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더라도 국내 시장에서 외국계 자본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강력한 긴축 정책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지난 26일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1.75%)과 미국(0.75~1%)의 기준금리 차이는 현재 0.75~1% 포인트로 벌어졌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준이 6~7월에 빅스텝을 재차 밟을 경우 연말이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26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과 관련해 국내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해 금리 역전 허용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올해 현실화되면 이는 1995년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금융기관 간 초단기 대출금리) 운용 목표를 공표하기 시작한 이후 1996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 이어 네 번째다. 이에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면 외국계 자본의 유출이 가속화해 국내 채권시장은 물론 주식시장도 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신흥국 국채는 우량 안전 자산인 미 국채보다 금리가 높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과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금리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단기간 대거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국내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국부펀드”라며 “이들은 금리 역전 그 자체보다는 거시건전성 지표를 충족하는 국가 가운데 자산가치를 보전해 줄 수 있는 국가에 자금을 분배하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세 번의 시기 중 두 시기(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도 외국인 주식 자금이 일부 빠져나갔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금이 유입됐다. 그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우리나라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미국의 상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며 “수출국인 한국이 더는 미국으로부터의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경기 침체 우려가 가시화되면서 투자 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자본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4번째 한미 금리 역전 오나...“자금 엑소더스보다 경기침체가 더 걱정”

    4번째 한미 금리 역전 오나...“자금 엑소더스보다 경기침체가 더 걱정”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렸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6~7월에도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염려와 달리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더라도 국내 시장에서 외국계 자본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26일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1.75%)과 미국(0.75~1%)의 기준금리 차이는 현재 0.75%~1% 포인트로 벌어졌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준이 6~7월 등에 빅스텝을 재차 밟을 경우 연말이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현상과 관련해 국내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해 금리 역전 허용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올해 현실화되면 이는 1995년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금융기관 간 초단기 대출금리) 운용 목표를 공표하기 시작한 이후 1996년 6~2001년 3월, 2005년 8~2007년 8월, 2018년 3~2020년 2월에 이어 4번째다. 이에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면 외국계 자본의 유출이 가속화해 국내 채권시장은 물론 주식시장도 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신흥국 국채는 우량 안전 자산인 미 국채보다 금리가 높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과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금리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단기간 대거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국내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국부펀드”라며 “이들은 금리 역전 그 자체보다는 거시건전성 지표를 충족하는 국가 가운데 자산가치를 보전해줄 수 있는 국가에 자금을 분배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세번의 시기 중 두 번(2005년 8~2007년 8월, 2018년 3~2020년 2월)에도 외국인 주식자금이 일부 빠져나갔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금이 유입됐다. 그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우리나라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긴축 정책으로 미국의 상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며 “수출국인 한국은 더는 미국으로부터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경기 침체 우려가 가시화되면서 투자 심리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면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자본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이재명, 윤호중·박지현 손 잡고…“원팀으로 승리”

    이재명, 윤호중·박지현 손 잡고…“원팀으로 승리”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찰음을 냈던 더불어민주당 투톱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원팀’을 외쳤다. 윤·박 위원장은 30일 오전 인천 계양구 ‘이재명 캠프’ 사무실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연단으로 걸어 나와 이재명 후보(인천 계양을)의 즉석 제안에 따라 양손을 서로 포개는 ‘원팀 세리머니’를 했다. 이 후보는 “많은 국민과 지지자들이 걱정하시니까 우리가 전혀 갈등을 겪고 있는 게 아니고, 목표는 같지만 속도와 과정에 약간의 이견이 있던 것을 이제는 한데 모아서 손잡고 가기로 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이어 이 후보는 윤·박 위원장의 두 손에 자신의 손도 얹고는 “꽉 잡아주세요. 확실하게 제가 책임지겠다”며 “우리는 원팀이다. 힘을 모아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다”라고도 했다. 지난 24일 박 위원장의 단독 ‘대국민 사과 회견’으로 당내 갈등이 촉발된 지 엿새 만에 총괄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이 후보가 ‘중재자’로 나선 셈이었다. 박 위원장은 ‘윤 위원장과의 갈등은 많이 해소됐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국민과 지지자들이 많이 염려했는데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게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며 “갈등이라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진통을 겪었다고 봐주면 감사하겠다”고 답했다.윤 위원장도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갈등 봉합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봉하마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에도 (박 위원장과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충분히 의논했다”며 지도부 갈등설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까스로 내홍을 수습한 민주당 지도부는 지방선거를 이틀 앞두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막판 화력을 집중했다. 이들은 이날 합동 기자회견에서도 입을 모아 지지를 호소했다. 윤 위원장은 “뼈를 깎는 각오로 민주당을 혁신하고 정치를 교체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꿔나가겠다”며 “민주당과 함께 해달라. 절망과 분노의 크기만큼 투표장에서 균형과 인물 선택해달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도 “더 젊은 민주당, 더 엄격한 민주당, 약속 지키는 민주당, 언어폭력 없는 민주당, 미래정책 준비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지방선거 직후 5대 혁신안을 모두 실천해 똑같은 약속을 다시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도 “여전히 색깔과 지역에 따라 (후보를) 판단하는 분들이 있다”며 “그보다는 유능한 일꾼을 선택하는 게 지역과 국가 발전은 물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제2공항 건설, 도민들의 뜻대로[6·1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인터뷰 제주]

    제2공항 건설, 도민들의 뜻대로[6·1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인터뷰 제주]

    “코로나19 이후 일상회복을 위한 민생경제 활력 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2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위해 당선 즉시 역대 최대 규모인 7000억원 수준에서 1차 추경예산안을 편성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관광·문화예술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코로나 회복 사각지대가 없도록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21대 국회의원 시절 유족회 등과 협의를 통해 4·3 희생자 보상 문제를 풀어내 ‘4·3 해결사’로 통한다. 그러나 배·보상금을 9000만원이 아니라 최대 1억 3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주장하는 국민의힘 허향진 후보를 향해 “포퓰리즘 아니냐”고 되레 반문했다. 제2공항 건설 논란에 대해서는 “우선 진정 대한민국과 제주도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도자라면 갈등 심화를 막아 내기 위한 조정 역할에 충실하면서 도민 통합을 끌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2공항과 관련된 갈등을 풀어 가는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제주지역 항공 인프라 확충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주와 도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 셋째는 제주의 미래는 도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서 7년간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도민 통합을 이룰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공약 키워드가 ‘미래’와 ‘사람 중심’이라는 오 후보는 “본인의 주거지를 중심으로 도보와 자전거, 대중교통 등으로 15분 거리 안에서 학교와 의료시설, 쇼핑, 문화 등 다양한 생활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15분 제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 자문 결과 현재 시행 중인 도시재생 사업과 농촌 활력 사업, 생활복합 SOC 사업 등을 잘 연결하면 제주형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오 후보는 또 “환경 보전의 패러다임을 규제 일변도에서 인센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는 곶자왈·오름 등을 소유한 마을이 생태계서비스 보전·증진 활동을 하는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오 후보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동전의 양면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고, 보존만 하라고 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면서 잘 보전할 수 있도록 행정적 차원의 관리가 요구된다”면서 “환경부에서 시범 실시하고 있는데, 제주에서는 도 전역에 시행할 수 있어 지속가능한 제주를 실현하는 좋은 방안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1968.12.14.(53세)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대 경영학 석사 ▲20·21대 국회의원 ▲(전)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재산: 6억원
  • 임세령, 8년♥ 이정재 칸 영화제서 ‘포착’

    임세령, 8년♥ 이정재 칸 영화제서 ‘포착’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포착됐다. 8년째 공개 열애 중인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 프리미어 상영회에서다. 20일(현지시간) 0시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의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는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영화 ‘헌트’ 프리미어 상영회가 열렸다. ‘헌트’는 1980년대 안기부 에이스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남파 간첩 총책임자를 쫓으며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이정재는 박평호 역을 맡아 배우도 겸했다. 임세령 부회장은 이정재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정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화를 즐기셨길 바란다. 무척 감사드린다(I hope you enjoy this film. Thank you so much)”고 영어로 말한 뒤 불어로 “메르시 보쿠(Merci beaucoup)”라고 감사인사를 덧붙였다. 이때 노란 드레스를 입은 임 부회장이 뒷좌석에 앉아 박수를 치는 모습이 뤼미에르 극장 대형 스크린에 포착됐다. 임 부회장은 레드카펫과 ‘헌트’팀의 상영 기념 애프터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상영관에서는 모습을 드러냈다. 감독으로 데뷔한 이정재와 그의 영화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될 것을 염려해 조용한 응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재는 지난 2015년 1월 임 부회장과 데이트 사진이 공개되자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했다”고 연인 사이임을 인정했다. 지난해 11월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LACMA(라크마·LA카운티 뮤지엄) 아트+필름 갈라’에 다정한 모습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애니멀S] 강제 교배·출산의 연속…´번식 기계’였던 개 포슬이 사연

    [애니멀S] 강제 교배·출산의 연속…´번식 기계’였던 개 포슬이 사연

    바람 한 점 햇빛 한줄기 들지 않는 무허가 불법 번식장, 그곳에서 개들은 수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기계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분뇨가 눌어붙어있고 거미줄 가득한 철조망 사이로 개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개들은 제대로 돌봄받지 못한 모습으로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만나게 된 포슬이는 번식장 외부에서 길러지며 마당을 지키는 개였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고 예쁜 품종견인 포슬이도 번식의 도구로 쓰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당을 지키게 되었을 것입니다.번식장 속에 갇혀 지내지는 않았지만 포슬이는 마당에 방치된 채 살고 있었고 회색 빛으로 물들고 엉킨 털이 포슬이의 삶을 짐작케 했습니다. 온전히 쉴 곳도, 편히 먹을 곳도 없는 곳에서 포슬이는 살고 있었습니다.  포슬이를 포함한 총 14마리의 개들은 구조 후 카라 더봄센터에 오게 되었습니다. 구조 후 진행된 구조견들의 검진은 번식장 속 동물들의 현실을 일깨워 줍니다. 품종견들이 갖게 되는 유전병과 더불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피부병, 안구질환 등 다양한 질병이 발견되었습니다. 포슬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포슬이는 심장사상충 3기와 그로 인한 심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심장사상충은 적정 주기마다 예방약만 급여한다면 손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번식장 마당에 방치된 포슬이가 심장사상충 3기의 진단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을 생산을 위한 도구로 보는 번식업자에게 제대로된 돌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포슬이는 9살로 추정되는 나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번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그 후에는 방치된 채 길러진 포슬이 짧고도 긴 삶.  포슬이는 현재 카라병원에서 지내며 보다 세심하게 건강상태를 파악하며 치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심장사상충 치료와 함께 심장약을 급여 중인 포슬이는 여전히 건강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흥분하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구조 후 지금까지 목욕도 하지 못하여 여전히 회색빛 엉킨 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장사상충 치료를 마치면 미뤄두었던 중성화수술과 함께 묵은 때를 벗을 예정이며 모든 치료를 마치면 포슬이도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병원생활이 꽤 익숙해진 포슬이는 나름대로 평온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번식장을 지키던 것처럼 병원 문 앞에 서서 맹렬하게 병원을 지키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한 여러 개들과 옹기종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아직 사람은 좀 낯설어 하지만 차분히 손길을 느끼는 모습은 포슬이의 모습은 포슬이의 반려견으로서의 견생을 기대하게 합니다.  포슬이를 비롯한 구조견들은 더 이상 강제로 교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오물이 가득한 환경에서 지내지 않아도 됩니다. 꾸준히 치료와 돌봄을 받으며 번식장의 묵은 때를 벗고 있습니다. 그중 몇몇 강아지들은 평생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더봄센터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8마리의 개들은 더봄센터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직 치료가 필요한 포슬이는 가족을 찾는 일 보다는 건강을 회복하는데 주력하려 합니다.  펫숍에서는 작고 예쁜 동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물을 사지 않았다면, 동물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포슬이의 삶도 달라졌을까요. 펫숍에 진열된 동물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팔리지 않는 동물들은 어디로 가는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마주봐야할 때입니다. 불법 번식장에서 방치된 채 길러진 포슬이와 같은 생명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사지 않고 입양에 동참해 주세요.
  • 망각은 축복, 머리보다 몸… 당신이 알던 뇌를 뒤집다

    망각은 축복, 머리보다 몸… 당신이 알던 뇌를 뒤집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신체 활동을 관장하는 중추 기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뇌’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뇌의 능력을 극대화해 더 많은 기억력을 갖게 되면 살아가는 데 더 편리하고, 우리의 나머지 몸은 지능을 담당하는 뇌를 감싸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와 눈길을 끈다. 정신의학자인 스콧 A 스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를 통해 뇌의 한계처럼 여겨진 ‘망각’이 오히려 인체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섣불리 치매를 염려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현대인의 ‘기억 강박’이 불러온 환상통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기억을 잘하던 뇌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에 ‘망각하기 위한 도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고자 인간이 망각하는 능력을 잃었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 보여 준다. 우선 자폐증 환자들은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뛰어난 암기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세부 사항을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 탓에 고통을 겪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자폐증 환자들은 늘 기억 그대로의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로 인식할 뿐 얼굴 전체를 통합해 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도 세부 사항을 잊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없어서 생긴다. 얼굴 전체를 인식하며 일반화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뇌에 저장되도록 하려면 망각이 필요하다. 끝없이 변하는 세상에서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적응해 나갈 수 있다. 졸업 앨범을 뒤적거리다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의 사진을 보더라도 불쾌한 감정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정상적 망각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공포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인간이 잠을 자는 이유도 잊기 위해서다. 미래의 기억을 받아들이도록 새로 단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 망각은 우리 머리를 비워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축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이 밖에 영국 비즈니스 인류학자 사이먼 로버츠는 ‘뇌가 아니라 몸이다’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은 뇌뿐 아니라 몸에서도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뇌를 신성시하고 지능의 핵심으로 여기는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경구에서 보듯 인류는 지식을 정신을 작용시킬 때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왔다. 즉 뇌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활동을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우리 몸도 타당하게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는다. 우리 몸이 체화하는 지식은 관찰, 연습, 즉흥성, 공감, 보유의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스콧 A 스몰 지음/하윤숙 옮김 북트리거/284쪽/1만 7500원특히 문화 안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완전하게 습득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고 편안하게 느끼며, 상황이 바뀔 때도 본능적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중추적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배우가 대사를 외울 때도 앉아서 암기하는 것보다 그 대사를 연기함으로써 더 쉽게 외울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로 도로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행자와 다른 차량 등이 뒤섞인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와 시선을 맞추고 신호를 보내는 등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기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뇌가 아니라 몸이다 사이먼 로버츠 지음/조은경 옮김 소소의책/312쪽/1만 8000원결국 우리가 우리 몸에 보유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 기억과도 연관돼 있으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려 할 때 몸과 뇌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책을 되짚어 보면 결국 우리가 타고난 기억과 망각,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모두 신뢰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름길임을 알게 된다.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도 많으니 인간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즐기면 되지 않을까.
  • “바닥으로 내동댕이”…조민아, 가정폭력 암시 그 후

    “바닥으로 내동댕이”…조민아, 가정폭력 암시 그 후

    그룹 ‘쥬얼리’ 출신 배우 조민아가 가정폭력 상황을 암시하는 글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앞서 조민아는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들 강호가 잠든 사이 과호흡성 쇼크를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같이 반복되던 숨막힘 끝에 엄마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과호흡성 쇼크로 정신을 잃었고 119와 경찰이 왔다”라며 “강호를 만나고 어제 처음으로 과호흡이 와서 엄마 너무 놀랐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엄마 보호 받고 싶다”라는 해시태그도 붙였다. 지인들이 염려하는 댓글을 남기자 그는 “어제도 안방 문고리 발로 차서 부수고 목덜미 잡아서 바닥으로 집어 던져서 나 고꾸라지고 119 앞에서는 심폐소생술 미리 하고 있고 가고 나서는 다시 폭언 퍼붓고 매일이 지옥 같아. 살려줘”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과거 남편과 불화가 있는 듯한 게시물도 다시 관심을 받았다. 2020년 12월 조민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느 부부나 마찬가지겠지만 뼈저리게 깨닫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가족’을 위한다고 적극적으로 바꾸진 않을 테니 똑같은 문제로 부딪힐 거고 늘 좋기만 한 집은 없을 것”이라며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최소한 그 기간만이라도 특히 말조심해주고 충분히 생각하고 배려하고 행동해달라“고 했다. 가정폭력 암시 후 지난 17일에는 블로그에 ”엄마는 강호를 지켜야 하니까 지금까지 다 이겨내 왔어. 꾹꾹 눌러가며 참아왔던 아팠던 거 다 치유하고 사랑하는 내 아가랑 평생 행복만 할 거야“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게재했다. 이후 다이어트 커피 홍보글을 올렸다. 또 18일 오전에는 아들을 위해 직접 만든 이유식 사진을 공개했다. 추가 상황 설명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공유하자 네티즌은 안도하는 한편 염려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조민아는 2020년 6세 연상의 피트니스 센터 CEO와 혼인 신고 후 결혼식을 올렸으며 지난해 6월 득남했다.
  • “윤재순, 성폭력 예방 교육 담당이 적절?” 여가부 장관 “좀 맞지 않다“

    “윤재순, 성폭력 예방 교육 담당이 적절?” 여가부 장관 “좀 맞지 않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19일 검찰 재직 시절 성 비위로 징계성 처분을 받은 윤재순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대통령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대해 “좀 맞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윤 비서관이 대통령 성폭력 예방 교육을 담당한다는데 알고 계시느냐”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지금 위원님께 들어서 알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김 장관은 “대통령께 (윤 비서관을) 자진사퇴 시켜야 하지 않냐고 건의할 생각은 없느냐”는 양 의원의 질문에는 “그것은 임명권자로서의 대통령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대통령님이 결정하리라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당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언행으로 경고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윤 비서관은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을 둘러싼 성비위 논란에 대해 “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여러 국민들께서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있다. 더 잘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상처가 되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당연히 사과를 드려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먼저 사과 드리겠다”고 말했다. 윤 비서관은 다만 “사실은 첫번째로 제가 조사를 받은 적도 없다. 20년 전의 일이고, 두번째로 사실관계의 선후가 바뀐 점이 없지 않다”며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고 사실관계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부분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드리면 또 다른 불씨가 되고, 그래서 그러한 설명은 안 하는 게 적절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윤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대검 운영지원과장을 맡았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 “국민에 불쾌감 줬다면 사과”…성비위 윤재순 해명 더 논란

    “국민에 불쾌감 줬다면 사과”…성비위 윤재순 해명 더 논란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17일 검사 시절 성비위 논란에 “국민들에게 상처가 되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당연히 사과를 드려야 맞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으나, 해명 과정에서 내놓은 발언으로 다시 논란을 불렀다. 윤 비서관은 이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여러 국민들께서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있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을 맡았던 최측근 인사인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당시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언행으로 경고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2002년 출간 시집에서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논란이 일었다. 윤 비서관은 부적절한 접촉에 대해 원색적으로 해명하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말해 빈축을 샀다. 윤 비서관은 “그때 제가 윗분들로부터 열심히 일한다고 격려금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었다”며 “10여명의 직원들이 있었고, 소위 말하는 ‘생일빵’이라는 것을 처음 당해 봤다. 케이크가 얼굴에 뒤범벅이 됐고, ‘생일날 뭐 해줄까?’ 해서 제가 화가 나서 ‘뽀뽀해 주라’고 한 것은 맞다. 그래서 볼에다가 (뽀뽀를) 하고 갔던 것”이라고 했다. 윤 비서관은 “제가 주로 활동한 곳이 서초동인데, 제가 식사하면서 2차를 안 간다는 것은 많은 직원이 알고 있다. 다른 간부들이 끌고 가더라도 모셔다 드리고 저는 도망가는 게 소문이 다 나 있다”며 “그런데 어떤 언론사를 보니 2차에서 어쨌다는 둥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비서관의 발언에 대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김 실장은 “저도 오늘 처음 들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런 행위에 대해선 (윤 비서관이) 이미 (검찰 징계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윤 비서관 등의 사례를 들며 “대통령실 비서진 검증을 제대로 했느냐”고 따졌다. 김 실장은 “일부 언론이나 지적되는 부분에 대해 눈높이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며 “거기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고 의원은 이날 윤 비서관이 2012년 7월 대검찰청 사무관 재직 시절 2차 회식 자리에서 ‘러브샷을 하려면 옷을 벗고 오라’고 하고 여름철 스타킹을 신지 않은 여직원에게 ‘속옷은 입고 다니는 거냐?’라고 말해 ‘경고’ 처분을 받았다”는 자료를 회의장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 ‘성 비위 논란’ 윤재순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조사 받은 적 없어”(종합)

    ‘성 비위 논란’ 윤재순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조사 받은 적 없어”(종합)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 충분히 느껴”“변명 않고 싶지만 사실관계 다른 부분 있다”여직원 부적절 신체접촉·시인 당시 표현 논란이준석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 임해야”민주 “사소한 실수라니 경악, 경질해야”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17일 과거 시인으로서 활동했을 당시의 표현 등 성 비위 논란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상처가 되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당연히 사과를 드려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먼저 사과 드리겠다”고 밝혔다. 윤 비서관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 “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여러 국민들께서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있다. 더 잘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90도 인사를 하기도 했다. “20년 전 일, 변명하고 싶지 않다”“미주알고주알 설명하면 다른 불씨” 윤 비서관은 다만 “사실은 첫 번째로 제가 조사를 받은 적도 없다. 20년 전의 일이고, 두 번째로 사실관계의 선후가 바뀐 점이 없지 않다”면서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고 사실관계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부분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드리면 또 다른 불씨가 되고, 그래서 그러한 설명은 안 하는 게 적절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당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언행으로 경고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민정, 윤재순 문제 발언 공개김대기 “말 자체는 부적절, 말 한 줄로 징계할 순 없어”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윤 비서관의 과거 논란을 빚었던 발언의 적절성을 물으며 윤 비서관의 발언을 화면에 띄웠다. 고 의원은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통해 윤 비서관이 검찰에 재직하던 2012년 7월 회식 자리에서 ‘러브샷을 하려면 옷을 벗고 오라’, 여름철 스타킹을 신지 않은 여직원에게 ‘속옷은 입고 다니는 것이냐’ 등 발언으로 경고 처분을 받은 내용을 밝혔다. 김 실장은 “말 자체는 부적절하다고 본다”면서도 ‘징계 수위가 적절했다고 보느냐’는 고 의원의 질의에 “사람을 징계할 때는 (발언) 한 줄 가지고 징계를 할 수는 없다. 상황을 보고…”라고 답했다. 김 실장은 고 의원이 ‘경고 처분이 적당했는가’라고 재차 묻자 “예”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 의원은 2021년 남성 경찰관들이 신입 여경에게 ‘음란하게 생겼다’고 발언해 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던 점을 거론하며, 윤 비서관의 과거 발언과 경찰관들의 해당 발언 중 어떤 것이 심각하다고 보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윤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을 맡았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앞서 한국일보는 윤 비서관이 1996년 10월 서울남부지청에서 검찰 주사보로 재직하던 시절 여직원을 상대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해 ‘인사조치’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대검 정책기획과에서 검찰 사무관으로 재직하던 2012년 7월에는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외모 품평 발언을 하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해 ‘대검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기관장 경고는 해당 사안에 참작할 점이 있고 경미할 때 이뤄지는 조치”라면서 “정식 징계 절차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 비서관은 2002년 11월 출간한 시집의 ‘전동차에서’라는 시에 ‘전동차에서만은 짓궂은 사내 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 ‘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보고/엉덩이를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등의 구절을 넣어 논란을 빚고 있다. 윤 비서관이 2001년 출간한 ‘석양의 찻잔’ 시집에는 해당 시의 원문이 실리기도 했는데 이 구절 또한 왜곡된 성 인식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문 마지막 구절에는 ‘요즘은 여성전용칸이라는 법을 만들어 그런 남자아이의 자유도 박탈하여 버렸다나’라는 구절이 있다. 시 제목에도 ‘전철 칸의 묘미’라는 괄호가 달려 있다. 윤 비서관은 후속 시에서는 마지막 문장과 괄호 내용을 삭제했다.이준석 “윤 표현, 국민과 큰 시각 차이”거취 연결은 안해 “탁현민도 사과했다” 앞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윤 비서관의 성 비위 논란과 관련해 “윤 비서관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면서 “윤 비서관이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했던 여러 표현은 지난 20여 년간 바뀐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일반적인 국민들의 시각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대표는 윤 비서관의 거취 문제로 연결 짓지는 않았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탁현민 (의전)비서관도 과거 ‘남자마음설명서’라는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부적절했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일이 있다”면서 “윤 비서관은 시인으로 활동하며 썼던 여러 표현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윤 비서관의 검찰 재직 시절 성 비위 징계 전력에 대해 “국민은 성추행 비서관을 감싸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성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경질을 촉구했다. 민주당 신현영 대변인은 전날 서면 브리핑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사소한 실수라는 것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에 뿌리 깊게 박힌 정서인 것 같아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 [속보] ‘성 비위 논란’ 윤재순 “국민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

    [속보] ‘성 비위 논란’ 윤재순 “국민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 충분히 느껴”과거 시인 활동 당시 표현 부적절 논란이준석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 임해야”민주 “사소한 실수라니 경악, 경질해야”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17일 과거 시인으로서 활동했을 당시의 표현이 성 비위 논란을 야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상처가 되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당연히 사과를 드려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먼저 사과 드리겠다”고 말했다. 윤 비서관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 “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여러 국민들께서 염려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윤 비서관은 2002년 11월 출간한 시집의 ‘전동차에서’라는 시에 ‘전동차에서만은 짓궂은 사내 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 ‘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보고/엉덩이를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등의 구절을 넣어 논란을 빚고 있다.이준석 “윤 표현, 국민과 큰 시각 차이”거취 연결은 안해 “탁현민도 사과했다” 앞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윤 비서관의 성 비위 논란과 관련해 “윤 비서관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면서 “윤 비서관이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했던 여러 표현은 지난 20여 년간 바뀐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일반적인 국민들의 시각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대표는 윤 비서관의 거취 문제로 연결 짓지는 않았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탁현민 (의전)비서관도 과거 ‘남자마음설명서’라는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부적절했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일이 있다”면서 “윤 비서관은 시인으로 활동하며 썼던 여러 표현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윤 비서관의 검찰 재직 시절 성 비위 징계 전력에 대해 “국민은 성추행 비서관을 감싸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성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경질을 촉구했다. 민주당 신현영 대변인은 전날 서면 브리핑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사소한 실수라는 것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에 뿌리 깊게 박힌 정서인 것 같아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 강형욱, 훈련 도중 피흘리며 긴급 병원行

    강형욱, 훈련 도중 피흘리며 긴급 병원行

    강형욱 훈련사가 입질견에 물려 병원을 찾았다. 강 훈련사는 16일 방송한 KBS 2TV 예능물 ‘개는 훌륭하다’에서 심하게 짖고 공격성을 보이는 고민견 행동 교정을 시도했다. 진돗개와 시바견 믹스 라오는 할머니 보호자와 가족들에게 무차별로 입질해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공격성을 드러냈다. 할머니 보호자는 라오의 눈치를 보며 “어릴 때는 예뻤는데 지금은 무섭다”고 토로했다. 제작진에게도 잇몸을 드러내며 경계했다. MC 이경규와 장도연이 먼저 투입됐고, 이경규는 “짖지 마”라며 단호하게 라오를 통제했다.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오는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강 훈련사가 라오네 집을 방문했다. 강 훈련사는 “라오가 지금 보호자를 리드한다. 다칠까 봐 염려하지 말고 목줄로 확실하게 통제해야 한다”며 “장난으로 시작된 공격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렸을 때 입질을 받아주며 습관이 됐다. 으르렁거리는 순간 라오가 원하는 걸 들어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복 훈련으로 라오는 점점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방송 말미에서 강 훈련사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동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라오와 기싸움 도중 상처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장도연도 “피가 많이 나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상처를 소독하던 강 훈련사 역시 긴장이 풀린 듯 “여기 너무 아프다”고 털어놨다.
  • 명문거족 출신 문사<文士>…민관합동 의병 일으켜 30차례 왜군 격파[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명문거족 출신 문사<文士>…민관합동 의병 일으켜 30차례 왜군 격파[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조선군이 개전 초기 왜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려 국토를 모두 잃다시피 했고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고 나서야 수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동강 서쪽 경상우도의 경우 의병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왜군의 침입을 막아 낸 것은 물론 전투 경험이 쌓이면서 아예 왜적을 지역 밖으로 몰아내는 분투가 있었다. 그 중심에 고령 출신의 의병도대장 김면이 있다.개산포전투는 김면 의병이 왜적에게 거둔 최초의 승리다. 경상북도 고령의 동쪽인 개진면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구시 달성 현풍읍과 마주 보고 있다. 김면 부대는 1592년 6월 9일과 10일 개산포에서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 도성을 비롯한 점령지에서 약탈한 물건을 남쪽으로 실어 나르던 왜군 선박에 타격을 입혔다. 개산포(開山浦)는 개경포(開經浦)라고도 불린다. 고려 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왜구의 찾은 침입에 해를 입을까 염려해 합천 해인사로 옮기는 데 이 포구를 이용했다. 주변에는 2001년 개경포기념공원이 세워졌다. 하류로 조금 내려가면 나타나는 개포리의 남쪽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이 이어진다. 고령군이 정비한 ‘개산포너울길’의 초입에 개호정(開湖亭)이 있다. 개호정은 1747년 고령 현감 이형중이 세운 것이라니 왜란 당시에는 없었던 정자다. 이정표는 900m 앞에 ‘개산포전투 전적비’가 있음을 알린다. 그렇게 너울길을 걷고 있노라면 의병이 어떻게 왜적과 싸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수풀이 우거진 벼랑길은 의병이 은신해 적선을 기다리기에 최적이다. 노략질한 물건을 가득 실은 왜선이 수심 깊은 너울길 쪽으로 접근했을 때 총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개산포전투는 김면 초기 의병의 돌격장 박정완이 주도했다. 박정완은 훗날 개산포에 어목정(漁牧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전적비에서 1200m쯤 벼랑길을 더 가면 나타나는 ‘어목정 유허비’는 그 흔적이다.김면 의병은 첫날 전투에서는 80명 남짓한 왜병과 포로로 끌려온 조선 여성 대여섯 명이 탄 적선을 공격해 적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이튿날 전투에선 적선을 노획했는데 약탈한 보화가 가득했다. 김면은 이를 초유사 김성일에게 보내 선조가 머무르던 행재소(行在所)에 전하도록 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은 이날의 전리품을 소나 말 50마리에 등짐으로 실어 옮길 만큼의 분량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대와 가토 기요마사의 제2군에 이은 왜군 후속부대는 4월 중순 김해에 상륙한 뒤 창원, 영산, 창녕을 거치고 낙동강을 건너 고령 무계와 성주, 개령, 상주, 충주를 지나 북상했다. 그런데 모리 데루모토 부대는 개령에 주둔하며 경상도 공략에 나선다. 보급품 및 약탈품 수송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고령 의병이 잇따라 수송선을 공격하고 무계의 보급품 수송기지를 초토화시키며 낙동강 중류를 장악하자 왜군의 보급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면 부대는 개전 초기 변변한 전투도 없이 흩어졌던 관군의 산졸(散卒)을 대거 흡수해 세력을 키우면서 일종의 민관혼성군으로 왜적에게 맞섰다. 김면(金沔·1541~1593)은 고령 개진 양전동에서 태어났다. 선조들이 조선 전기부터 벼슬을 했고, 1만석의 경제력까지 갖춘 명문 거족의 일원이었다. 김면은 경상좌도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경상우도의 대학자 남명 조식의 제자다. 송암(宋菴)이라는 아호도 스승으로부터 받았다. 남명의 제자로 경제력을 갖춘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는 배경은 의령의병장 곽재우(1552~1617)와 닮은꼴이다. 김면, 곽재우와 더불어 ‘경상우도의 의병장 트로이카’를 이루는 인물은 합천의병장 정인홍(1536~1623)이다. 남명의 수제자인 정인홍은 남명학파의 대표로 광해군 시대 북인의 영수가 되어 정권을 잡기도 했다. 문(文)과 함께 무(武)의 중요성을 강조한 남명이다. 그 제자들이 다투어 창의(唱義)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김면은 정인홍보다 다섯 살이 적다. 조식 문하에서 발언권도 정인홍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면은 의병총대장 격인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에 오른다. 곽재우와 정인홍은 각각 의병좌장과 의병우장이 됐다. 두 사람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진성향의 ‘북인정신’에 충만하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더욱 거칠 것 없는 행동대장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경상도관찰사 김수와 갈등이 대표적이다. 김면은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관군과 관군, 의병과 의병이 대립할 때마다 중재를 도맡았다. 곽재우와 김수의 갈등도 그의 중재로 해소됐다. 김면은 남명 문하에 들어가기 전에는 배신(1520~1573)의 제자였다. 배신은 조식에게 수학하고 이황의 문인으로도 활동했다. 김면은 남명과 퇴계의 문인, 곧 북인과 남인 모두와 중도적 입장에서 어울릴 수 있었다. 조정은 김면의 이런 정치적 바탕을 높이 샀다.왜적의 남진을 막은 우두령전투는 6월 15일 있었다. 우두령은 고령에서 북쪽 60㎞ 남짓한 개령과 거창 사이의 고갯길이다. 지금은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김면이 직접 지휘한 우두령전투에서 좌부장 황응남과 우부장 김준민이 크게 활약했다. 황응남은 창원 제포만호, 김준민은 거제현령이었으니 민관 합동 조직이라는 김면 부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전투에서 산척(山尺)을 이끌고 분전하다 전사한 우두령 복병장 이형 역시 김수의 군관이었다. 산척은 사냥을 주업으로 산중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우두령 정상에는 ‘김면장군공원’이 세워졌다. 7월 말 8월 초의 김천 지례전투는 김면 부대가 본격 영토 수복에 나선 전환점이다. 김면 부대는 왜군이 점거하고 있던 객사, 관아, 사창을 포위하고 불을 질러 적군 대부분을 죽게 하고 도망치는 잔당까지 복병으로 공격해 지례를 수복했다. 성주성은 8월 19일과 9월 10일 두 차례 공격했지만 물러나야 했다. 12월 중순 세 번째 공격에서 의병의 포위에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왜군은 언덕을 이룰 만큼 많은 전사자를 남겼다고 한다. 성주성의 왜군은 결국 이듬해 1월 중순 철수했다. 김면이 의병도대장에 임명된 것은 1592년 11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오른 것은 이듬해 1월이다. 경상우병사 시절 김면의 종사관이었던 문위는 ‘모계일기’에 ‘김면은 기병한 해 몇 달 동안이나 갑옷을 벗지 않았으며 또 싸우지 않는 날이 없어서 낮에는 왜군을 유인한 다음 포위하여 격침하고 밤에는 왜군이 태만한 틈을 타서 기습하는 등 큰 싸움을 10차례 남짓 했고, 왜군을 물리치기를 30차례 남짓 했다’고 적었다. 김면은 전라도와 충청도 의병과 연합해 오늘날의 김천인 김산(金山)으로 진격할 준비를 하다 1593년 3월 과로에 역질이 겹치면서 군막에서 순국했다. 선조수정실록의 졸기(卒記)는 ‘김면은 문사(文士)로 의병을 일으켜 여러 번 싸워 공이 있었으므로, 발탁하여 병사로 삼아 여러 군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김면은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항진(行陳)을 떠나지 않았는데, 처자가 가까운 지역에서 떠돌며 굶주려도 한 번도 서로 만나 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충성을 칭송하였다’고 했다.
  • 왜군 물리치기 30차례, 경상우도 지킨 의병총사령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열전]

    왜군 물리치기 30차례, 경상우도 지킨 의병총사령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열전]

     임진왜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조선군이 개전 초기 왜군에 일방적으로 밀려 국토를 모두 잃다시피했고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고 나서야 수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동강 서쪽 경상우도의 경우 의병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왜군의 침입을 막아낸 것은 물론 전투 경험이 쌓이면서 아예 왜적을 지역 밖으로 몰아내는 분투가 있었다. 그 중심에 고령 출신의 의병도대장 김면이 있다.  개산포전투는 김면 의병이 왜적에게 거둔 최초의 승리다. 경상북도 고령의 동쪽인 개진면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구시 달성 현풍읍과 마주 보고 있다. 김면 부대는 1592년 6월 9일과 10일 개산포에서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 도성을 비롯한 점령지에서 약탈한 물건을 남쪽으로 실어나르던 왜군 선박에 타격을 입혔다.  개산포(開山浦)는 개경포(開經浦)라고도 불린다. 고려 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왜구의 찾은 침입에 해를 입을까 염려해 합천 해인사로 옮기는데 이 포구를 이용했다. 주변에는 2001년 개경포기념공원이 세워졌다. 하류로 조금 내려가면 나타나는 개포리의 남쪽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이 이어진다. 고령군이 정비한 ‘개산포너울길’의 초입에 개호정(開湖亭)이 있다. 개호정은 1747년 고령 현감 이형중이 세운 것이라니 왜란 당시에는 없었던 정자다. 이정표는 900m 앞에 ‘개산포전투 전적비’가 있음을 알린다. 그렇게 너울길을 걷고 있노라면 의병이 어떻게 왜적과 싸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수풀이 우거진 벼랑길은 의병이 은신해 적선을 기다리기에 최적이다. 노략질한 물건을 가득 실은 왜선이 수심 깊은 너울길 쪽으로 접근했을 때 총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개진포전투는 김면 초기 의병의 돌격장 박정완이 주도했다. 박정완은 훗날 개산포에 어목정(漁牧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전적비에서 1200m쯤 벼랑길을 더 가면 나타나는 ‘어목정 유허비’는 그 흔적이다. 김면 의병은 첫날 전투에서는 80명 남짓한 왜병과 포로로 끌려온 조선 여성 대여섯명이 탄 적선을 공격해 적군을 전멸시키다시피했다. 이튿날 전투에선 적선을 노획했는데 약탈한 보화가 가득했다. 김면은 이를 초유사 김성일에게 보내 선조가 머무르던 행재소(行在所)에 전하도록 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은 이날의 전리품을 소나 말 50마리에 등짐으로 실어 옮길 만큼의 분량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대와 가토 기요마사의 제2군에 이은 왜군 후속부대는 4월 중순 김해에 상륙한 뒤 창원, 영산, 창녕을 거치고 낙동강을 건너 고령 무계와 성주, 개령, 상주, 충주를 지나 북상했다. 그런데 모리 데루모토 부대는 개령에 주둔하며 경상도 공략에 나선다. 보급품 및 약탈품 수송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고령 의병이 잇따라 수송선을 공격하고 무계의 보급품 수송기지를 초토화시키며 낙동강 중류를 장악하자 왜군의 보급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면 부대가 개전 초기 변변한 전투도 없이 흩어졌던 관군의 산졸(散卒)을 대거 흡수해 세력을 키우면서 일종의 민관혼성군으로 왜적에 맞섰다. 김면(金沔·1541~1593)은 고령 개진 양전동에서 태어났다. 선조들이 조선 전기부터 벼슬을 했고, 1만석의 경제력까지 갖춘 명문 거족의 일원이었다. 김면은 경상좌도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경상우도의 대학자 남명 조식의 제자다. 송암(宋菴)이라는 아호도 스승으로부터 받았다. 남명의 제자로 경제력을 갖춘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는 배경은 의령의병장 곽재우(1552~1617)와 닮은꼴이다.  김면, 곽재우와 더불어 ‘경상우도의 의병장 트로이카’를 이루는 인물은 합천의병장 정인홍(1536~1623)이다. 남명의 수제자인 정인홍은 남명학파의 대표로 광해군 시대 북인의 영수가 되어 정권을 잡기도 했다. 문(文)과 함께 무(武)의 중요성을 강조한 남명이다. 그 제자들이 다투어 창의(唱義)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김면은 정인홍보다 다섯살이 적다. 조식 문하에서 발언권도 정인홍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면은 의병총대장 격인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에 오른다. 곽재우와 정인홍은 각각 의병좌장과 의병우장이 됐다. 두 사람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진성향의 ‘북인정신’에 충만하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더욱 거칠 것 없는 행동대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상도관찰사 김수와 갈등이 대표적이다.  김면은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관군과 관군, 의병과 의병이 대립할 때마다 중재를 도맡았다. 곽재우와 김수의 갈등도 그의 중재로 해소됐다. 김면은 남명 문하에 들어가기 전에는 배신(1520~1573)의 제자였다. 배신은 조식에게 수학하고 이황의 문인으로도 활동했다. 김면은 남명과 퇴계의 문인, 곧 북인과 남인 모두와 중도적 입장에서 어울릴 수 있었다. 조정은 김면의 이런 정치적 바탕을 높이 샀다. 왜적의 남진을 막은 우두령전투는 6월 15일 안팎에 있었다. 우두령은 고령에서 북쪽 60㎞ 남짓한 개령과 거창 사이의 고갯길이다. 지금은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김면이 직접 지휘한 우두령전투에서 좌부장 황응남과 우부장 김준민이 크게 활약했다. 황응남은 창원 제포만호, 김준민은 거제현령이었으니 민관 합동 조직이라는 김면 부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전투에서 산척(山尺)을 이끌고 분전하다 전사한 우두령 복병장 이형 역시 김수의 군관이었다. 산척은 사냥을 주업으로 산중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우두령 정상에는 자그마한 ‘김면장군공원’이 세워졌다.  7월 말 8월 초의 김천 지례전투는 김면 부대가 본격 영토 수복에 나선 전환점이다. 김면 부대는 왜군이 점거하고 있던 객사, 관아, 사창을 포위하고 불을 질러 적군 대부분을 죽게 하고 도망치는 잔당까지 복병으로 공격해 지례를 수복했다. 성주성은 8월 19일과 9월 10일 두 차례 공격했지만 물러나야 했다. 12월 중순 세번째 공격에서 의병의 포위에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왜군은 언덕을 이룰만큼 많은 전사자를 남겼다고 한다. 성주성의 왜군은 결국 이듬해 1월 중순 철수했다. 김면이 의병도대장에 임명된 것은 1592년 11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오른 것은 이듬해 1월이다. 경상우병사 시절 김면의 종사관이었던 문위는 ‘모계일기’에 ‘김면은 기병한 해 몇 달동안이나 갑옷을 벗지 않았으며 또 싸우지 않는 날이 없어서 낮에는 왜군을 유인한 다음 포위하여 격침하고 밤에는 왜군이 태만한 틈을 타서 기습하는 등 큰 싸움을 10차례 남짓했고, 왜군을 물리치기를 30차례 남짓 했다’고 적었다.  김면은 전라도와 충청도 의병과 연합해 오늘날의 김천인 김산(金山)으로 진격할 준비를 하다 1593년 3월 과로에 역질이 겹치면서 군막에서 순국했다. 선조수정실록의 졸기(卒記)는 ‘김면은 문사(文士)로 의병을 일으켜 여러 번 싸워 공이 있었으므로, 발탁하여 병사로 삼아 여러 군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김면은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항진(行陳)을 떠나지 않았는데, 처자가 가까운 지역에서 떠돌며 굶주려도 한 번도 서로 만나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충성을 칭송하였다’고 했다.  
  • “자책감 빠진 내게 힘 주셨다” 고민정, 文과의 일화 공개

    “자책감 빠진 내게 힘 주셨다” 고민정, 文과의 일화 공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는 9일 문재인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지난 일화를 공개했다. 고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5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요즘이다”라며 “2017년, 대통령님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인생. 첫만남부터 대통령님은 당신의 선거보다 제 가족을 걱정해 주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괜찮겠습니까’. 영입을 위한 저와의 만남을 마치고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며 “회사를 그만 두고 밥벌이 대책도 없는 저를 진심으로 염려해 주셨던 걸 기억한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 부대변인 시절 모든 게 낯설고 힘들기만 했다”며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를 쉼없이 달려오면서 몸도 힘들었지만 더 견디기 힘든 건 사람과의 관계였다”고 회고했다. 고 의원은 “정치부 기자도 아니었기에 정치적언어는 입에 잘 붙지 않았고, 인맥으로 모든 정보가 흐르는 그곳에서 저는 늘 외로운 섬이었다”고 했다. 이어 “제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자책감에 빠져있던 제게 대통령님은 오히려 힘을 불어넣어주셨다”고 덧붙였다.그는 “우리 정부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라이브(유튜브), TV방송 인터뷰, 대통령님 행사 사회 등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했다”며 “제게 신뢰를 보여주시는 만큼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한창 대변인을 하던 때, 총선에 나와야 한다는 기사가 연일 오르내렸고 결국엔 저를 따로 부르셨다”며 “지금까지는 여러 추측들이 난무할 것 같아 저만의 비밀로 간직해왔는데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고 적었다. 고 의원은 “그 때 대통령님께선 모든 선택권을 제게 주셨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님이 보여주신 정치를 널리 알리고 싶었고 대통령님은 필요없다 하시지만 저는 대통령님을 지키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끝으로 “오는 9일 오후 6시에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통령의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윤건영 의원 제안에 따라 옛 사진을 몇 장 올린다”며 “영광스러운 기억들이다”라며 ‘위드문재인’ 해시태그를 달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