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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대통령 홍콩 방문­기자간담회 문답

    ◎“재벌 개혁 고삐 결코 늦추지 않겠다”/“부진하다” 국제적 비판 주시… 강도 더 높일것/연내 재정 적자폭 추가로 늘릴 계획은 없어/北核 증거있다는 보고 못 받아… 귀국후 확인 【홍콩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19일 오후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취재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올 순방외교를 결산했다.다음은 金대통령과 일문일답 요지. ­중국과 군사교류를 확대할 것이라고 했는데,중국은 북한과도 특수한 관계가 있습니다.어떤 방안이 있습니까. ▲중국과는 지금도 국방차관급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미국과는 가상 적을 상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지만,중국과는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감소시키기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중·북한간 군사교류와 조금도 상충되지 않는 협력입니다.나아가 (중국과 군사교류가) 잘되면 북한과 중국,그리고 우리 3자의 군사지도자들이 교류를 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역내 각국이 내수진작에 나서기로 했는데, 우리나라도 추가로 경기부양책을 쓰고 재정적자폭을 더 늘릴 생각이 있습니까. ▲금년에 내수진작을 위해 추가로 재정적자폭을 늘릴 계획은 없습니다.다만 경기상황을 보고 내년에 2차로 재정적자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경기진작을 위해 재정뿐 아니라 금융부문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21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쟁점은 무엇입니까.북한에 다녀온 찰스 카트먼 특사가 지하핵시설의 증거가 있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한·미정상회담에서 어떻게 논의할 것입니까. ▲나는 아직 그 문제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습니다.지금까지 보고받은 바로는 북한이 영변쪽에 의심스러운 지하공사를 하는 것 같고,핵개발과 연계돼 있는지 모르니 진상을 확인해야 한다는 정도의 보고를 받았습니다.돌아가서 카트먼 특사의 발언 등 보고를 받아보겠습니다. ­이번 중국방문 외교의 최대성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중국은 미·일과 달라 (방문 전에) 상당히 염려도했습니다.그러나 실제 방문해선 중국지도자들과 인간적 교류를 하고 얘기 과정에서 신뢰심도 생겼습니다.특히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는 상당히 깊은 얘기도 하고 우정도 나눴습니다.앞으로 급한 일이 있으면 자유롭게 상의도 할 것입니다.국익차원에서 볼 때 중국이 우리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자신들의 한반도 2대정책이 우리의 3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하는 점을 나와 얘기를 통해 믿을 수 있게 돼 안도감이 생긴 것이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한반도 주변에 막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과 이러한 관계를 맺은 것은 우리 국익에 대단한 진전이라고 봅니다. ­이번 APEC회의에서 금융위기 국가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는데,귀국후 경제개혁 속도와 강도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고어 미 부통령이 우리의 재벌개혁이 부진하다고 말한 것처럼 국제사회로부터 재벌개혁이 부진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우리 경제인들이 국제적 금융기관이나 경제인들로부터 비판받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귀국하면 개혁의 고삐를 절대로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4강외교를 어떻게 발전시킬 구상입니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미국과는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일본과는 정치적으로 가깝습니다.그렇다고 중국,러시아와 나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지난 71년 대선때 4대국 보장론을 주창했습니다.지금은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니 아무도 한반도를 차지하려 하지는 않습니다.4강의 공통된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입니다.그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곤란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과 관계를 잘 맺어 우리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인권문제나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남의 나라 문제는 인권문제라 하더라도 언급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각 국가들이 공개적으로,비공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APEC이 구속력 있는 기구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신 적이 있는데, 참석 후 전망은 어떻습니까. ▲APEC은 구속력 없는 지역협의기구이기 때문에 협의한 내용이 실천된 것도 없고,안 된 것도 없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무역자유화도 지난 밴쿠버회의에서 합의한 것인데 이번에 한 두 나라가 반대해 안됐습니다.세계에는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같은 구속력 있는 기구가 있는데 APEC에선 회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이번에 헤지펀드 등 단기자본 이동을 감시하기 위해 특별대책반을 만들기로 한 것은 그런 면에서 큰 성과입니다. ­북한 당국이 조선일보,KBS 취재진과 통일부 직원 등 20명의 금강산관광 입북을 거부했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귀국 후 북한과 현대간 협약이 어떻게 돼 있고,통일부의 판단이 어떤지 알아본 뒤 대처하겠습니다.
  • 宋月珠 총무원장 후보사퇴 발표

    ◎어제 새벽 또 폭력사태… 7명 부상 宋月珠 조계종 총무원장은 19일 오후 서울 구의동 영화사에서 제29대 총무원장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宋총무원장의 3선출마를 둘러싼 종권다툼으로 내분상태에 빠졌던 조계종 분규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宋원장은 “종무행정 중단 및 종단의 위상 추락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개인적 명분이나 단기적 종단이익을 떠나 한국불교 전체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5시10분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서 宋총무원장의 3선출마 지지세력과 반대세력간에 또 한차례 충돌사태가 빚어졌다.양측은 소화기 분말과 물을 뿌리고 돌과 화분을 던지는 등 30여분간 공방전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청사 1,2층 유리창과 출입문이 부서지고 7명이 머리 등을 다쳐 강북삼성병원과 한국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공식 첫 출항 전날 이모저모

    ◎“월남 50년만에 북한땅 간다” 흥분/100발의 폭죽속 전야제 성황/갑작스런 한파에 포기자 생겨 금강산 관광선 첫 공식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관광객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16일 저녁 외출과 휴식 등으로 시험운항의 피로를 씻은 뒤 17일 오전부터 배에서 먹고 쓸 음식 및 물품을 싣고 객실을 정리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梁在元 선장(40)은 “첫 출항을 위한 준비는 시험운항을 통해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면서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한 객실 서비스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은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뱃길을 통해 금강산에 가는 역사적 순간의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高在鳴씨(67·강원도 춘천시 근화동)는 “월남한 지 50년 만에 다시 북한땅을 밟는다는 생각을 하면 그동안 기다렸던 세월이 아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관광객 중에는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 때문에 막판에 금강산관광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고있다. 고향인 평북 선천에 부모와 아들을 남기고 온 金동선씨(76·경기도 평택시)는 “혹시 가족의 안부를 들을 수 있을까 금강산행을 손꼽아 기다려 왔지만 다리가 불편한 데다 날씨마저 추워 내년 봄에 가기로 했다”며 아쉬워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延정숙씨(80·여)도 추운 날씨에 방한복을 입고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 다음으로 연기했다. ●금강산관광이 지역경제 회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해시는 관광선 출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들뜬 분위기였다. 관광선 취항이 결정된 직후부터 금강산사업지원단을 구성,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동해시 洪璟杓 부시장(59)은 “동해시가 세계적 관광도시로 주목받게 됐다”면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출항 하루 전인 17일 동해항 여객터미널 옆에 대형 무대를 설치,전야제 행사를 가졌다. 전야제에는 가수 조용필 김건모 윤복희 태사자 NRG 현철 설운도,성악가 최현수 김원정,재즈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어린 나이에 흥부가를 완창(完唱)해국악계를 놀라게 했던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등이 출연했다. 100발의 폭죽이 터져 분위기를 고조시킨 데 이어 금강호가 불을 밝히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통화 어떤 경로/평양­인텔샛­도쿄 거쳐 서울로 “아범아,여기는 금강산이란다” 금강산 관광객은 18일부터 금강호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어렵게나마 국내 가족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북한측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선실 내에 국제전화용 전용회선 4개를 확보,공중전화를 설치한다.배에 인공위성을 통해 무선 통화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 있지만 북한측의 불허로 무용지물 상태다. 통화는 일반 국제전화(082)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이뤄진다. 이미 가설된 평양과 금강산 온정리 사이의 전화케이블을 이용한다.평양에서는 위성 인텔샛을 통해 일본 동경으로 연결된다. 여기에다 현대 기술진은 북한측의 협조를 얻어 온정리에서 장전항까지 7㎞에 걸쳐 케이블을 연결했다.그러나 부두에 정박한 금강호에까지 케이블을 연결할 수 없는 실정.따라서 장전항 인근에 특별히 전파를 쏠 송신장치(SR장비)를 설치했다. 현대는 당초 6회선을 확보했으나 두 회선은 현대 공사진과 합영사의 전용회선이어서 금강호가 사용할 수 있는 회선은 4개에 그친다.금강호에는 이를 이용한 카드식 공중전화 4대가 설치된다. 목소리가 금강호에서 장전항∼온정리∼평양∼위성∼일본 동경을 거쳐 즉시 서울(또는 지방)로 생생히 전달된다. 보도진의 기사전송과 육성 생방송도 마찬가지다. 전화요금은 비싼 편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걸때는 1분 통화에 무려 3.79달러로 이를 환산하면 4,927원이나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걸때는 1분에 1,428원이 든다. ◎관광 성사까지/본지 첫 보도… 3차례 위기 끝에 결실 금강산 관광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은 9개월간 산고의 아픔을 겪었는지 모른다.鄭周永 명예회장에게는 지난 89년 이후 9년여만에 성사시킨 필생의 사업이다. 금강산 관광은 대한매일이 지난 5월 중순 보도한 ‘올 가을 금강산 유람선 뜬다’는 제하의 상자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지난 89년 1월 鄭 명예회장이 처음 북한을 방문할 당시 움을 틔운 금강산관광은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경색으로 인해 잊혀져 왔다.그러던 참에 鄭회장이 올 2월14일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북한측 아태평화위 고위관계자를 만나고서부터 금강산관광의 줄기가 잡혔다.북한이 지난해 연말 은근히 현대측에 사업의 재개를 타진해 온 터였다.3월에는 북한과의 화물열차 공동생산이 이뤄졌고,4월에는 金潤圭 현대건설 부사장의 북한 방문이 이뤄졌다.마침내 鄭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6월16일 이뤄졌다.그것도 금세기 마지막 장관이 된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鄭 명예회장 귀환 하루 전날인 6월22일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됐다.한달 가까이 현대와 북한의 고위급 접촉 루트가 끊기면서 간간이 베이징에서 실무접촉만이 이어졌다.현대 고위인사는 이 기간을 “아무 것도 못하고 허송세월한 셈”이라고 술회했다. 두번째 위기는 9월25일 첫 출항을 지키지 못한 데서 찾아왔다.요란하게내 걸었던 약속이 결국 ‘잠수정 정국’에 밀려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31일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이 터졌다.일부 정치권 등 보수층에서 “북한에 준 돈이 미사일되어 돌아온다”며 강력히 반발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鄭 명예회장과 鄭회장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장각서 어떻게/신변안전 걱정 안해도 된다/북서 “보장” 담화 발표/세칙 재협상 장애 안돼 금강산유람선 첫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정부 당국은 적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금강산 관광선 1호인 ‘현대금강호’가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 시험운항을 무사히 끝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그동안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현대­북한간 신변안전 보장 협의 결과가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북한 백학림 사회안전상의 ‘신변안전보장각서’ 만으로는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시험운항 ‘성공’ 이후 일단 유람선관광사업의 전도에 파란불이 켜진 것으로 보고 있다.북측 인사들의 ‘자세’에서 관광사업에 적극적인 의지가 읽혀졌다는 것이다.북한측 사업주체인 아태평화위측도 14일 “우리 관계기관들은 금강산을 참관하는 남조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다만 몇가지 작은 불씨는 남아 있다.북측이 제시한 금강산 관광세칙도 그하나다.현대와 북한은 지난주초부터 관광객에 대한 벌금부과,촬영금지 등 관광세칙에 관한 재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재협상 결과가 결정적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통일부 黃河守 교류협력국장은 “첫 출항일까지 세칙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적용할 세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양측이 세칙에 합의할 때까지 관광객들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세칙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북측의 관광객 ‘선별’ 소지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그러나 정부측은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측의 지난 8월 ‘보장서’를 근거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보장서는 “관광객의 직장·직위를 문제 삼아 관광과 관련,입·출북을 허용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동해시청 沈圭彦씨/“대민행정 지원 아끼지 않을 것”/터미널 도우미 배치/관광객 불편 최소화 “실향민과 남북관계는 물론 동해안지역 경제를 위해 금강산 관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동해시청 금강산관광지원사업소 沈圭彦 소장(43)은 지난 16일 2박3일간의 금강산관광선 시험운항에서 돌아온 뒤 18일의 첫 출항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해시는 동해항이 금강산관광선 출항지로 선정된 지 4일만인 지난 8월1일 지원사업단을 구성했다.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대민·행정 지원 등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동해시는 지금까지 건축허가에서부터 선상에서의 영업허가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허가신청을 낸 당일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沈소장이 시험운항에 참가한 것도 관광객의 불편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沈소장은 출국 절차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여행 터미널에 도우미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숙박시설도 대대적으로 정비키로 했다.배가 밤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동해시에서 묵지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빡빡한 일정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노인들이 출항 하루 전에 동해시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직접 다녀와보니 출항 당일 동해에 도착해 교육을 받고 오랜 시간 배를 탄 뒤 다음날 새벽 산행을 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강호 등에서 선식(船食)으로 사용되는 동해안 해산물의 납품 과정도 살폈다.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역 특산품 개발도 구상중이다.금강산관광객을 동해안 관광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沈소장은 “금강산 관광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관광객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조금도 불편이 없는 여행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對北 경협 돌출변수 점검 비상/현대 사업추진 이후

    ◎신변안전·조난자 구조/각서 내용 허점투성이/재협상 필요 지적 나와 남북 경협시 예상되는 후속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북 사업시 기업들의 투자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다. 경협 과정에서 만일의 불상사라도 생기면 남북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연일 북한 유전개발 등 현대의 일부 경협사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金대통령은 3일 “남북관계는 하나하나 착실히 성공해야지,만일 실수하면 정부 책임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이는 일차적으로 기업측에 신중한 사업추진을 하라는 주의환기다. 나아가 관련 정부 부처도 손을 놓고 있지 말라는 경고다. 돌발변수라도 나오면 경협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차원 이상이다. 자칫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조차 훼손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관광객들의 신변안전보장과 조난자구조문제가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7월 북한 사회안전상 백학림이 보내온 신변보장각서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얘기다. 우선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간에 맺은 ‘금강산관광세칙’은 허점 투성이다. 이를 테면 북한주민과 접촉해 말을 하거나 그들을 사진찍으면 92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는 조항이다. 관광객들의 일상적 행동조차 북측에 의해 ‘정탐행위’로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대안이라면 정부당국이 관광객들에게 철저한 ‘안전교육’을 하는 정도다. 이에 따라 경협시 북한 인력의 활용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서해안공단 등 북한 내 프로젝트들이 성공하기 위해선 북한식이 아니라 ‘경제특구’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당국간 대화와 합의가 긴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鄭周永 명예회장 방북(네티즌 코너)

    ◎“통일초석 기대”“거액 원조 불만” 의견 엇갈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차 방북에 대해 네티즌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그의 방북 결과에 대한 기대와 함께,고령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에 적극 나선 용기에 감탄과 박수를 보냈다. 하이텔 큰마을에는 ID cathy79를 비롯해 TAK21,dangkeun,Retainer,pjkhan 등 많은 네티즌들이 ‘경축! 정주영씨 대단하다’고 북한방문과 소떼의 방북을 축하하고 햇볕정책과 다가올 통일에의 기대를 표현했다. META라는 ID의 네티즌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하에 잘 되기 바란다. 그것은 한반도의 냉전구도를 깨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현재 남북한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모적 감정 싸움을 지양하고 지난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경제적 동반자가 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으며 북한의 석유를 공동 탐사·개발하여 송유관을 통해 공급한다는 합의에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ID mt5450을 쓰는 네티즌은 ‘평양에 석유 잔존? 믿을 수 없다’는 제목으로 ‘김정일이 평양은 석유 위에 떠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송유관을 통해 기름을 보내주기로 확약을 받았다는 말이 너무 쉬워 오히려 해프닝으로 끝나고 마는 게 아닌지 염려했다. BAEBUJUN은 鄭명예회장의 귀환일정을 하루 미루게 한 북한의 태도와 밤 늦은 시각,직접 방문을 한 행동도 ‘벼랑 끝 전술’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회장 및 한국 정부에게 실망과 희열을 적절히 배합하는 심리전을 이용,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김정일 면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하는 북한식 대화협상전술’이라는 것이다. ebb31이란 ID의 네티즌은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북한에 원조해주는 것이 옳으냐고 반문했고,sst2002 등 일부 네티즌은 鄭명예회장이 ‘김국방위원장님’이란 호칭을 사용한 데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 성인영화 전용관 허용해야 하나(쟁점)

    내년부터 모든 영화와 비디오영화에 등급을 부여하는 완전등급제도를 도입되고,성인영화만을 전용으로 상영하는 성인전용 영화관 설립이 가능해 진다. 영화인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지만 청소년보호에 있어선 또하나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란 우려도 크다.성인전용 영화관을 허용하여 자율적 시민의식에 맡겨야할 것인가 아니면 청소년 보호차원에서 막아야할 일인가. ◎찬성/표현영역 넓힐 획기적 계기/정지영 영화감독·순천향대 교수 참으로 기쁘다. 영화에 사전검열제가 없어지고 완전등급제가 도입되면서 성인전용 영화관이 생기게 된 것이야말로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무척 반가운 일이다. 표현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은 한국영화 발전의 획기적인 사건이다.영화감독들은 ‘검열에 걸리지 않을까?’라는 염려로 영화를 만들면서 위축되고 소재와 표현의 한계에 늘 부딪힌다.결국 이런 한계는 상품으로서 영화의 국제경쟁력을 상실케하는 중요한 요소였다.자기검열에서 꺾인 표현의 자유는 바로 영화 발전의 족쇄였기 때문이다. 더욱 일본영화가 개방된 시점에서 한국영화만 묶어두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또 한국영화의 제작편수가 적어 스크린 쿼터제에 따른 한국영화 상영일수를 채울 수 없다는 배급업자및 극장주들의 불만도 제작의욕이 되살아난 영화인들이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게 되면 없어질 것이다. 일부에선 성인영화 전용관을 포르노영화관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일본과 미국 등 X등급 포르노영화관이 아님은 반대론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국내 형법에는 엄연히 음란물배포죄가 명기되어 있어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성인전용관에선 그동안 비디오 영화로는 흔히 본 성애물들이 상영될 것으로 예상된다.금기시되던 성인영화를 전용관에서 볼 수 있다면 한동안 호기심으로 관객이 있을 것이다.성애영화 제작도 조금 늘어나겠지만 외국의 포르노영화관이 사양길에 접어들듯 곧 그렇게 관심이 식을 것이다.물론 성인전용관에 관객이 든다해도 이는 성인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야할 문제다. 성인전용관은 광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들을쉽게 음란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영화 발전의 계기가 마련됐다.정말 반갑다. ◎반대/청소년 유해업소만 늘리는 셈/이승정 서울YMCA청소년사업부장 청소년에게 유해업소가 또하나 더 생겼음에 다름아니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성인전용관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18세 관람가’영화와 ‘등급외’영화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영화심의의 무원칙으로 저급한 성애물도 일부장면이 삭제된 채 유통됐다.소위 ‘∼부인’시리즈도 18세 관람가로 분류되어 유통됐지 않은가.결국 이런 영상물은 등급외로 가지않고 그냥 18세 관람가,성인용으로 남고 보다 선정적인 영화들이 등급외 영화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그렇다면 성인영화 전용관은 선정적인 영상물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또 폭력영화에 대한 법적제재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밀려들어올 폭력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성인영화 전용관에 청소년들이 출입하는 것을 어떻게 철저하게 막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또하나의 유해업소를 확대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검열철폐와 성인전용관 문제는 앞으로 시민단체들에게 보다 더 큰 책무를 줬다.앞으로 시민단체들은 감시와 고발,소송 등을 통해 판례를 만들어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마지막 보루로 예방적 차원에서 벌칙조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영화법의 벌칙조항을 공연법 수준으로 강화하지 않는다면 성인전용관은 청소년들도 어떤 유해업소나 마찬가지로 쉽게 출입할 것임이 분명하다.
  • 돌아온 박세리 ‘혹사’ 우려는 기우/裵成國 체육팀장(데스크시각)

    박세리가 27일 아침 그리던 고국에 왔다.지난해 10월 “성공해 돌아 오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지 꼭 1년만에 ‘20세기 우리의 마지막 영웅’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프로테스트를 당당히 1위로 통과,주목받는 신인으로 투어에 첫발을 내디뎠던 박세리는 몇달 뒤 세계골프계를 놀라게 하며 단숨에 신데렐라가 됐다. 올시즌 초반 9차례의 투어대회에서 한번도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던 박세리는 지난 5월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정상에 올라 ‘박세리 신화’를 창조했다.이것은 전주곡이었다.2개월 뒤 메이저대회 가운데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에서 또다시 우승,LPGA데뷔 첫해에 메이저대회 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일약 그린여왕에 올랐다.그리고 1주일만에 열린 제이미파 크로거대회에서는 4라운드 합계 23언더파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로 LPGA의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여자골프사를 바꿔놓았다.자이언트 이글클래식에서도 1위에 올라 한달동안 3승을 올리는 등 시즌 4승의 신들린 샷을 휘두르며 루키로서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긴장의 연속서 벗어나 메이저대회 2연승을 달성한 뒤 박세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친구들과 만나 얘기도 하고 고국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해왔다.그런 그녀가 마침내 부모와 친구들이 있는 고국에 온 것이다. 비록 1주일동안의 짧은 체류지만 30일부터는 오는 11월 11일 대한매일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신문의 자매지 스포츠서울이 주최하는 98한국여자골프선수권대회(레이크사이드CC)에 출전,세계정상의 기량을 국내 팬들에게 선보인다. 박세리의 지난 1년동안의 미국생활은 훈련과 긴장의 연속이었다.이 때문에 압박감에서 잠시 벗어나 고향을 찾은 그녀에게 국내에서의 대회 출전이 다소 무리가 아니냐는 일부 의견도 있다.그러나 골프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어리둥절했을 법하다. ○검증받은 정상의 기량 골프는 분명 멘탈경기다.그러나 대회 출전의 목적과 내용에 따라 플레이어가 받는 압박감이나 에너지 소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상금이나 명예를 위해 수많은 경쟁자들과 다퉈야 하는 투어대회에서의 경기는 피를 말리는 긴장과 압박감을 가져다준다.이때의 에너지 소비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만일 그것이 플레이오프라면 중압감은 훨씬 더 커진다. 그러나 친구들과 푼돈 내기를 한다든가 고향에 돌아와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의 라운딩은 오히려 경기 감각을 잊지 않게 해주는 레크리에이션이 될 수 있다.박세리의 기량은 이미 세계 골프계로부터 검증을 받았다.메이저대회 우승자가 골프 후발국의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히 잘 쳐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박세리를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들의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골프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세리는 이러한 것들을 초월한지 이미 오래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계적인 골퍼가 된 박세리의 성숙한 플레이와 매너,그리고 고국에서 사랑하는 선후배들과 편안히 라운딩을 즐기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다.팬들 역시 그녀의성적보다는 성숙한 모습을 확인하기를 더 원할 것이다. 박세리는 늘 경기를 할 때가 가장 편하게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선수는 경기장에 있을때 멋있고 자랑스럽게 보인다.그것이 경기감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상(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2)

    ◎‘암흑속 노동’ 고발 ‘암흑속 수감’ 7년/야간고시절 어두운 현실 눈떠/‘노동의 새벽’ 민중문화 기폭제로/85년 본격 노동운동가 변신/수배·은둔·고초… 91년 끝내 구속/지난 8월 광복특사로 ‘햇빛’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통해 노동현장의 어두운 실상을 고발했던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7년간의 감옥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인생의 새벽을 열고 있다.지난 8월15일 상오 10시 경주교도소.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박노해씨(40·본명 朴基平)가 상기된 얼굴로 교도소 문을 나섰다.지난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과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꼬박 7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박씨가 모습을 나타내자 부인 金眞珠씨(43)와 여동생,그리고 장인 장모,친척 등 10여명이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가족들과 뜨거운 인사를 마친뒤 모여 있는 기자들 앞에서 “이 시대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또박또박 읽어내리곤 교도소를 떠났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옆에 앉은 부인의 얼굴을 자꾸만 쳐다보았다.결혼후 수배로 인한 은둔생활과 구속·수감 탓에 밝은 세상을 함께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부부였다.이화여대 약학대 재학중이던 부인 김씨를 알게 된 것은 선린상고 야간시절.야학 여교사와 학생 신분으로 만났다.이들은 사노맹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82년 결혼했다.신분노출을 염려해 서울 명동성당에서 아주 가까운 몇 사람만 초대해 숨죽이며 결혼식을 올렸다.그러나 91년 부인 김씨가 구속됐다.10일후 박씨도 구속됐다.김씨는 95년 먼저 석방된 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주며 뒷치닥거리를 해왔다. 어린시절 작가가 꿈이던 그에게 고교시절 야학은 그의 인생의 물꼬를 새롭게 터주었다.중학교 다닐땐 신부가 꿈이었다.그전엔 한때 정치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하지만 선린상고 야간시절 낮에 공장에 다니면서 체험한 현실 앞에서 신부는 낭만적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그래서 본격적으로 야학에 열중했다.창작과 비평(創作과 批評),사상계(思想界) 등을 탐독(探讀)하면서 명동성당 기도회와 반정부집회 투쟁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고교졸업후 최전방의 기술병을 자원해 군생활을 마친 뒤 곧바로 안양의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입사했다.운전기사와 안내원들에게 의식화 학습을 시키는 등 노동운동을 벌이던중 노동조합 위원장에 출마한다.여기에서 내건 구호들이 당시엔 불온(不溫)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사측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회사는 학력위조란 핑계로 그를 해고시켰다. 84년 발표한 ‘노동의 새벽’(풀빛출판사刊)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이 때 쓰인 것들이다.작업장 한 귀퉁이에서,혹은 기숙사의 한 켠에서 구부린 채 작업일지 등에 끄적거린 것들이다.세상 사람들의 첨예한 관심의 대상이 됐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이렇게 태어났다.‘얼굴없는 시인’이란 별명도 따라붙기 시작했다. ‘노동의 새벽’이 나오자 문단에선 무성한 평들이 쏟아졌다.“이 땅의 조악한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절망과 슬픔,한과 분노의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고 있다”“인간다운 삶을 향해 몸부림치는 서민들,못가진 자들,억압받는 자들의 정서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른바 박노해문학의 등장은 80년대에 확산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들의 문화적 자기표현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계간 문예중앙이 지난 88년 40명의 중견 평론가들에게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 한 편을 선정해 달라고 의뢰한 결과 ‘노동의 새벽’이 뽑혔을 정도였다.또 같은해 실천문학사가 선정한 ‘제1회 노동문학상’을 받았으며 91년 구속때까지 ‘노동의 새벽’은 7만여부가 팔려나가는 인기를 얻었다. ‘노동의 새벽’은 물론 철저하게 신분을 숨긴채 낸 시집이다.형 기호씨가 가톨릭대학 학보에 한 면에 걸쳐 ‘노동의 새벽’에 대한 평론을 게재하면서도 동생의 작품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다.기호씨는 나중에 사실을 알곤 몹시 섭섭해했다고 한다.“여러 사람을 거쳐 시와 평론들을 출판사에 보내거나 공중전화 박스 등 특정 장소를 지정해 원고를 갖다놓는 방법으로 신분을 은폐했습니다.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료 노동자들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덕분에 문단과 노동계에서 ‘얼굴없는 시인’이란 별명이 붙게 됐지요” 본격적인 정치색을 띠기 시작한 것은 85년 8월 창립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 가입하면서부터.서노련 기관지인 서노련신문에 노동해방투쟁을 선동하는 방대한 분량의 시·산문·정치평론을 잇따라 발표했다.본격적인 노동운동가로 나선 것이다.초기시절 ‘노동의 새벽’식의 문학과는 엄청난 변화가 느껴지는 글들이었다.곧 평론가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의 새벽’을 통해 시대적 서정과 비전이 문학적 형태로 충분히 제시됐다고 판단했습니다.다음은 행동의 시기라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분신과 고문,의문사가 계속되는 시점에서 시에 천착하는게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런 분위기에서 행동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중심에 서게 됐다고나 할까요” 86년 5·3인천사태 배후인물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다가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점차 ‘급진적인 노동운동가’‘사회주의적 혁명가’로 변신해 갔다.그리고 89년 11월 마침내 사노맹 출범을선언한 후 공개수배를 받다 91년 영어의 몸이 됐다.암울한 노동현장,경찰수배,구속 등 어둠의 세상에서 탄압받았던 그의 삶과 작품은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사연들/박노해와 박기평/80년대초 폭압의 시절 탄압우려 필명 사용/‘공동단체명’ 등 온갖 추측/90년 사노맹사건 뒤에야 ‘박기평’ 본명 알려져 흔히 ‘얼굴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의 본명이 朴基平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90년 안기부가 사노맹 사건 전말을 발표한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노동의 새벽’이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왕성하게 발표해온 시와 평론들로 인해 한때 박노해가 특정인이 아닌 공동 창작단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도 했다.그러나 朴씨가 검거되면서 결국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는 朴基平이란 전남 함평 출신의 노동자 시인임이 밝혀졌다. 그러면 박노해란 이름은 언제부터 쓰여졌고 왜 박노해인가. 박노해란 필명이 처음 쓰여진 것은 83년 가을 시동인지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을 발표할 때였다.당시만 해도 ‘노동자’라는 말만으로도 ‘빨갱이’ 취급을 받는 폭압의 시절이었다.근로기준법을 내세워 노동현장에 가혹한 탄압이 자행되던 때이기도 했다. “흔히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줄인 말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성씨 박을 그대로 땄고 어감도 좋고 해서 노해란 이름을 썼던 것입니다.물론 노동자 해방의 의미도 어느정도는 담고 있었지요” 닥쳐올 탄압을 우려해 필명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본명으로 시작(詩作)을 계속할 경우 탄압은 물론 노동운동도 지속하지 못할 것 같아 노해라는 이름을 계속 쓰기로 했다는 게 朴씨의 설명이다. 이후 ‘노동의 새벽’은 물론 서노련 기관지 ‘서노련신문’에 지속적으로 발표한 모든 글과 평론에도 이 이름을 썼고 91년 구속때까지 ‘얼굴없는 시인’은 베일에 쌓여 있었다. 그러면 실체가 밝혀진 이상 박노해라는 이름은 살아있을 수 있을까.朴씨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감옥에서 나올 때 ‘상처 투성이’의 이름 박노해를 벗어 버리고기평이란 이름의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하지만 언제 일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른 채 살아야만 하는 불안한 시대임을 피부로 느낀다.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평온한 생활을 찾을 때까지 상처많은 이름 박노해를 운명처럼 계속 써야만 할 것 같다” □그의 길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77년 선린상고 야간부 졸업 ▲82년 金眞珠씨와 결혼 ▲84년 안양 버스회사 정비공으로 입사 ▲83년 시동인지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 발표 ▲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85년 서노련 가입 ▲86년 5·3 인천사태 배후인물로 수배 ▲89년 사노맹 결성 선언문 발표. ▲91년 구속·수감 ▲98년 출감
  • 金 대통령 訪日 경제 외교/金都亨 산업연구원 연구위원(특별기고)

    최근 한·일 경제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양국 교류에 주축이 되어온 기업인들은 자국 경제의 장기침체속에서 과잉 설비인원 조정에 눈코 뜰새 없다. 이런 사이에 양국간 무역과 투자가 동반추락하고 있다. 내 코가 석자라 상대방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탓인지 지금까지 제대로 상호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두 나라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여태까지 동북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칭송되어온 아시아적 가치가 전면부정되는데도 시원한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후 미국 방문에 이어 두번째로 방일을 추진,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이 미국과 함께 우리의 맹방임을 세계에 확인시켰다. 특히 양국이 과거보다 미래에 비중을 두고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현재의 아시아권 경제위기를 감안하다면 더할 나위없이 큰 의미를 지닌다. 과거사 문제는 경제교류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대통령은역사의 두려움을 직시하는 용기와 서로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자고 역설했다. 과거의 오랜 응어리를 걷어내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으로서 세계가 이를 주시했다. ‘보통국가’를 지향해온 경제대국 일본으로서도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된 만큼 큰 외교적 성과인 셈이다. 공동선언문 작성은 최근의 국제적 유행같지만 일본은 이번에 과거사에 대해 반성,이를 문서화했다. 필자는 일본기업이 경제적 이유 말고 반일감정 때문에 한국진출이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제 우리가 좀더 관용을 베풀고 그들 스스로 말을 아끼고 행동을 자제한다면 한·일협력기업의 경영진 상호간 그리고 노사간 신뢰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리고 일본의 30억달러 자금협력은 지난번 단기외채 연장협력에 이어 신용경색과 수출용 원자재난 해소,한·일합작기업 자금난 해소는 물론 일본의 대(對)개도국 지원의 큰 틀을 짜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엔 ‘일본자금’하면 모두가 자기들 기계를 팔아먹으려는 것이거니 했었다. 모두 여유가 없었고 제대로 쓸 줄 몰랐던데서 온 오해와 불신 때문이었다. 그동안 양국협력 실무자들의 인내와 노력으로 비연계성 융자비중을 늘렸고 한·일 합작업체가 4억달러 정도라도 자금지원을 받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들의 한국 영업실적이 개선되면 우리의 대외신용도가 개선되고 해외 잠재투자가를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아시아전역이 신용공황에 휩싸여 ‘일본 자금’을 애타게 기다리는데 유독 한국에만 지원해야 하느냐는 소위 ‘특정성’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내애서 급거 아시아개도국 300억달러 지원 기금안이 등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그러한 일본의 국제적 공헌의 일부는 우리가 유도한 셈이다.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유도한다는 방일의 큰 목표는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 대한 제2선 자금협력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내년 하반기 이후 수입선 다변화 제도 폐지와 함께 일제 고급 소비재와 대중문화가 서서히 우리 안방을 차지할 염려도 있다. 지나칠 때는 사전제어할 수 있도록 이번 합의를 기초로 정부간 또는 민간 협의 채널을 가동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이다.
  • 방송개혁 방향·각계 여론/방송개혁 어떻게

    ◎‘공룡조직’ 축소·기술혁신 등 초점/방개위 ‘21세기 선진형 방송’ 밑그림 제시/새 방송이념 정립·첨단구조 구축 서둘러야 조만간 출범할 방송개혁위원회는 ▲공중파 유선방송 등을 둘러싼 방송구조 ▲프로그램 내용 ▲기술적 혁신 등 세가지에 초점을 맞춰 ‘방송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방송이 21세기 선진국형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방송과 관련한 모든 것을 이처럼 원점에서 다루기는 우리나라 방송 70년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다.그만큼 방송의 지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방송개혁의 필요성은 재야를 중심으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그러나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던 중 최근 급진전하고 있다.금융계·재계 등 경제개혁이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방송개혁의 조기추진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방송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여망은 여러가지 형태로 표출돼 왔다.지난 8월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와 KBS개혁리포트팀이 국민 1,0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도 이같은 여망을 대변한 것이며 결과도 마찬가지로 나왔다.응답자의 60.4%가 “방송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다”고 답변,방송의 독립성을 간접적으로 요청했다. 또 지난달 KBS는 ‘개혁리포트’ 프로그램에서 5공화국시절 민정당 연수행사를 중계하면서 여당을 찬양한 것이나 ‘땡전뉴스’로 비하됐던 사실을 자체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방송개혁과 관련된 논의가 두갈래로 진행돼 왔다.하나는 과거정권에서 추진된 방송정책과 사업의 해부인 방송청문회 개최이고,다른 하나는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한 방송계 전반의 손질이다. 방송청문회는 지금 여권 내부에서조차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언개련 등과 일부 학자들은 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방송청문회가 지역민방과 케이블TV의 실정을 짚는 차원을 넘어 방송정책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재평가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이에 따라 언개련은 지난달 27일부터 방송청문회 개최 등 11개 개혁과제에 대한 범국민 서명작업을 벌이는 중이다.이에 비해 방송개혁위원회는 현실성 때문에 더욱 광범위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8월27일 辛基南 의원(국민회의·국회 문화관광위 여당 간사)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대통령자문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공론화되었다.辛의원은 “진정한 방송개혁을 완수하려면 통합방송법 제정뿐만 아니라 시대적 조류에 걸맞게 새로운 방송이념을 정립하고 첨단을 가는 방송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방송 종사자와 노조 대표,전문가,시청자·시민단체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방송개혁위원회를 구성,대통령자문기구로 두자”고 제안했다. 李協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등 여권 일부에서 당위성에 공감하면서 방송개혁위 추진은 박차가 가해졌다.그러나 정치권 사정에 이은 여야간 맞대결로 국회가 표류하면서 논의가 미루어졌다. 방송개혁위원회 설치와 관련,전국방송노조연합(방노련)측은 “아직 공식입장은 정하지 못했지만 방송현안이 산적해 있고 통합방송위도 내년 초나 돼야 출범이 가능한 상황에서 한시적이나마 방송의 좌표를 모색할 기구가필요하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현행 방송위의 역할과 위상을 침해할 가능성이 염려된다”고 강조했다. 방노련 朴起完 정책실장은 “통합방송위원회가 정치논리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재벌·족벌신문의 방송진입을 제한함으로써 방송의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방송개발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방송개혁위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 “방송 구조조정을 하려면 관련단체의 이기주의가 걸림돌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모여서 현안을 터놓고 공개토론할 수 있는 특별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과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통신과 방송정책의 일원화를 주장하기도 한다.金한길 의원은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걸맞은 방송계의 자기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경영합리화 등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면서 “뉴미디어시대를 맞아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로 이원화된 통신·방송정책을 통합하자”고 말했다.
  • 벼 세우기에 모두 나서자(사설)

    제9호 태풍 ‘얘니’는 전국 도시와 농촌지역에 많은 인명손실과 엄청난 재산피해를 내고 물러갔다.지난 8월 전국을 강타한 수재(水災)가 완전히 복구되기도 전에 다시 재해가 발생하여 크게 염려스럽다.이번 태풍은 벼가 익어가는 시기에 곡창지대를 집중적으로 강타,3년간 연속풍작이 예상되던 올해 쌀 수확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침수지역 주민들에게 당장 급한 식수·식량·전기 가스 등 생활필수품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끊긴 교량·도로·철로 등 시설을 조속히 복구할 것을 당부한다.특히 이번 태풍은 수확기를 앞둔 농산물에 큰 피해를 준 점을 감안,벼를 비롯한 농작물 복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농림부는 태풍 ‘얘니’의 영향으로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벼가 쓰러지거나 침수된 면적이 25만2,000㏊에 달한다고 1일 발표했다.이같은 피해면적은 올해 벼재배면적 105만3,000㏊의 23.9%에 해당된다.특히 전국 쌀생산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전남지역의 피해면적이 11만7,008㏊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경남지역이 5만2,500㏊에 달해 올해 쌀 생산이 당초 예상한 3,564만섬(9월15일 조사)을 적잖게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태풍으로 인한 벼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공공근로사업인력·공익요원·민방위대원·농협 및 축협 직원등 인력을 동원하여 침수된 지역의 배수구를 정비하고 논둑을 군데군데 터 물을 빨리 빼고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펴고 있으나 피해지역이 넓고 인력이 달려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0일과 21일에도 6,000㏊를 일으켜 세웠으나 이번에는 피해면적이 너무 넓고 벼가 다 자라 낟알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벼를 일으켜 세우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완전히 쓰러진 벼와 반쯤 쓰러진 벼를 3일 이내에 세울 경우 각각 8%와 4%가 감산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처럼 벼 일으켜 세우기는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작업이다.그러므로 범정부 차원에서 벼 일으켜 세우기작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도시 유휴인력을 긴급동원하기 바란다. 정부는 벼 일으켜 세우기작업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내고 올해 쌀 수확예상량을 재조사,내년도 쌀 수급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특히 내년도 정부 재고미 비축에 차질이 없도록 정부가 연초에 농민에게 선급금을 주고 수매키로 약정한 쌀이 전량 확보돼 쌀값 안정을 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徐相穆 의원 체포안 처리가 大尾 될듯/여 “稅盜·개인비리 분리”

    ◎‘8일쯤 시도’ 가닥 잡아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강행 처리가 정치권 사정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권이 ‘세도(稅盜)사건’과 개인비리사건을 분리,세도사건에 연루된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선(先)처리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세도사건’에 연루된 徐의원,개인비리 차원인 吳世應 白南治 의원 등 3명의 체포동의안 요구서가 제출돼 있다. 여권은 체포동의안을 처리할 것임을 천명하면서도 머뭇거려 왔다. 국민회의 자민련의 의석수가 과반수를 겨우 넘긴 155석에 불과,6표만 이탈해도 동의안 처리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회의가 세도사건과 개인비리사건을 분리,체포동의안을 처리키로 한 것은 이같은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도사건은 죄질이 나쁘고 개인비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논리다. 동료 의식이 작용할 명분이 약해 체포동의안 처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나라당 내의 미묘한 기류도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강행 처리방침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30일 “徐의원이 어제(29일) ‘동문인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 사실이 있다’고 발언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李會昌 총재의 사전 인지설을 기정사실화했다. 李총재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던 것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여권은 徐의원의 발언 배경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날 것을 염려한 김빼기 작전,또는 李총재와 徐의원의 불화설 등 두 갈래로 파악하고 있다. 徐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빠르면 오는 8일 본회의에서 시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吳世應 의원 등 개인비리 연루 현역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불투명하다.
  • 각계 원로 10인의 시국제언/개혁·司正 철저하고 신속하게

    ◎부패척결은 지속돼야/개혁대상 겸허히 반성/제도 마련 적극 나서야 정국이 혼란스럽다. 여당은 한나라당의 국세청 불법자금 모금사건을 ‘세금도둑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 사정(司正)작업을 계속중이다. 야당은 장외집회와 지역감정 호소를 통해 검찰의 사정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넣고 있다. 이에 더해 일부 언론은 “정부의 사정활동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가 갈 길인가. 방향을 제대로 정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어떤 국가적 혼란이 올지 알 수 없다. 서울신문은 각계 지도급 원로 10인에게 현 국정상황과 관련한 긴급제언을 구해 보았다. 대부분 정치권 사정은 강력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견해였다. 지역감정 촉발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원로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姜元龍 목사=우리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있다. IMF를 벗어나는 문제만이 아니라 수백만에 이르는 실업자 대책,지역·노사간의 갈등해소 등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 상황은 ‘암’초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회복할 수 있으나 늦어지면 치유의 길이 막힌다. 오늘의 개혁은 의사의 수술과 같기 때문에 시간을 끌거나 일부만 잘라내는 식은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정과 개혁은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암’을 의사 혼자 힘으로 치유할 수 없듯이 개혁작업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힘으로 해야 한다. 과거 개혁시도가 실패한 것은 하향식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더러운 물을 퍼내는 식이 아니고 그 밑으로 샘터를 파야 한다. ▲金容雲 한양대 명예교수=지금의 경제위기는 국세청 정치자금 모금 등 사회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에서 비롯됐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개혁을 후퇴시키자는 것은 그러한 요소를 그대로 남긴 채 경제를 살리자는 모순된 주장이다. 병의 요인을 없애야 치료가 가능하듯 고름투성이의 사회전반에 대한 개혁없이는 경제살리기는 불가능하다. 경제위기를 이유로 지금의 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들이자신들이 지금까지 부당하게 누려온 것들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정치논리로 모든 문제를 넘기려는 작태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 특히 안기부의 북풍공작,국세청의 정치자금 모금,권력의 부정융자압력 등은 힘의 논리로 국가기관의 사유화를 시도한 것으로 이같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도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정치권비리 이번 기회에 근절”/‘표적’ 운운은 개혁 발목잡기/언론 기득권층 옹호 말아야/국민이해·지지 바탕 추진을 ▲金鍾林 흥사단이사장=개혁은 어떠한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한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야당파괴 공작이 아니라 정치권 비리를 이번 기회에 완전하게 뿌리뽑자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IMF 위기도 정경유착 때문에 초래됐다. 따라서 정치권 비리를 척결하자는 사정은 이러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야권의 ‘표적사정’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구여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몸보신’을 위한 방패막이로사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비리정치인 수사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사정당국도 국민들에게 야권탄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朴殷秀 변호사(대구시 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장)=최근 사정의 대상이 된 한 정치인의 항변은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왜 개혁 대상인가’. 이 항변에는 오만이 보인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이 시점에 개혁의 대상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사정을 주도하는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개혁의 대상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법치의 완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며 사정에 나서야 한다. 겸손하며 고뇌하는 모습으로 사정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부정부패방지법 제정 등 제도적 장치마련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민이 공감하며 지킬 수 있는 법률의 내용정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徐英勳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정권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야 정치권 사정이 시작된다는 것은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정이 국민을 불안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민생고 등 중첩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야를 초월한 동참과 협력에 의한 거국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민적 단결이 요청되는 만큼 당위성을 띤 사정이라 해도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밑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정작업은 부정행위의 경중에 따라 일벌백계로 엄정 신속하게 결말을 짓고 하루속히 정국을 안정시키고 여야를 초월하여 국난극복에 힘을 합치기 바란다. ▲卨兆 스님=역대 정권의 사정이 정치권에 집중된 것은 그만큼 부정이 많다는 증거다. 정치인에게 영향력이 없다면 누가 정치자금을 흔쾌히 내겠는가. 또 대가성이 없다고 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국민들은 부정부패가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믿고 있다. 지도층이 자신이 저지른 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국가기강이 해이해진다.희망이 있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도 사정과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공직자의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이유 등으로 사정과 개혁을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은 더 큰 병소(病巢)를 만드는 것이다. 언론이 기득권층의 이해득실에 좌우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미래까지도 오도하게 된다. ▲申鉉碻 전 총리=근본적으로는 사회를 맑게 바로잡기 위해서 사정을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의 개혁이다. 어떤 사회라도 맑은 사회가 근본이 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국가 전체로 보아 급한 것은 경제이다. 사정은 해야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경제에 힘을 한데 모으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경제를 살려나가야 한다.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사정을 해야 경제에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일률적으로 언제는 사정을 해도 되고 언제는 하면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는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악습을 하루 아침에 다 고칠수는 없다. ▲李御寧 이화여대 석학교수=어떤 이유에서든 개혁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다만 개혁의 대상과 시점이 문제이다. 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는 과거청산과 과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패의 원인을 찾아내 도려낸다는 점에선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개혁에 총력을 모아야 할 부분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와 미래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도 악과 부패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중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치우치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모든 국민의 여망대로 개혁이 성과를 거두려면 범위와 시점을 정해 모든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게 중요하다. ▲趙永植 경희학원장=해방이후 정권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개혁다운 개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과거 정부주도의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반개혁세력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러한 개혁저항세력에 일부 언론이 힘을 실어준 것도 사실이다. 개혁을 폄하하고 개혁의도를 흠집냄으로써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지켜왔다. 국민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개혁은 지금까지와의 개혁과 비교해 나름대로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언론과 국민이 정부의 개혁추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개혁이 사회구석 곳곳에 퍼지기 위해서는 점진적 사회평화운동이 필요하다. ▲許平吉 부산대 교수회장=어느 정권이나 그 정권에 주어진 고유한 사명이 있다. 우리 국민은 정부수립이후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국민은 金大中 정권이 사회전반에 대한 일대 개혁을 통해 우리 사회가 21세기에 대도약을 준비하라는 역사적 과제를 부여했다. 국민의 정부가 ‘제2의 건국’ 기치를 높이 든 것은 곧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여 정의가 살아 숨쉬게 해야한다. 개혁작업이 지속적이고 철처하게 이루어져 사회정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개혁작업에 국민의 동참이 있어야 한다. 언론매체는 기득권세력의 이해에서 벗어 개혁작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 을사조약 國恥(秘錄 南柯夢:23)

    ◎열사 잇단 자결 애태운 고종 “살아서 나를 돕는 것이 충성”/“乙巳年 망국” 예언 적중/日 남산에 대포설치 위협/고종,끝내 조약날인 거부/맨 먼저 민영환 ‘자결순국’ 조병세·송병선 등 뒤따라/의병들 방방곡곡서 궐기 그들이 있었기에 광복이… 1905년 1월17일 덕수궁에서 ‘을사오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일본군이 남산에 대포를 설치해놓고 위협하는 가운데 체결된 이 조약에 고종은 끝내 국새찍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이 조약은 지금도 원천적으로 무효인 셈이다.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었다. 일찍이 나는 광무 6년 임인년(任寅年 1902)에 말씀 올리기를 광무 9년 을사년(乙巳年 1905) 11월 갑자일이 주역(周易)으로 따져 건괘(乾卦)의 초구(初九) 효(爻)가 발동하는 날이라 반드시 한시대가 끝난다고 예언했는데 염려했던대로 망국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정의 수구파 원로대신들은 모두 두문사객(杜門謝客)하였고 시정의 상민(商民)도 또한 철시해 가게문을 닫았다. 을사오조약을 강요한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이 자는 스스로 한국의통감(統監)이 돼 고종을 농간했는데 뻔뻔하고 교활한 언행은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때 이토가 돈덕전(敦德殿)에 와서 상감께 아뢰기를 “동양 3국이 연합해 동맹국가가 되어야 서양의 돌연한 기습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구구하게 설명했으며 또한 말하기를 “한일 두 나라가 더욱 사이좋게 지내 소의 두뿔이 적을 막듯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기하시거나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이토는 또 고종황제에게 “일본은 이미 영국과 동맹을 맺어 서로 가까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양의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얕잡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차제에 폐하께서는 한번 일본을 유람하시기 바랍니다. 관광할 것이 많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상감께서는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가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이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듣고 있어 한번 가보기를 소원한지 오랬습니다. 그러나 귀국의 명치황제가 유신한지 40년이 됐으나 아직 한번도 서양을 유람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는 “옳은 말씀입니다” 하면서 대한제국 각료들에게 “광무황제는 총명하시고 영특하신데 좌우에서 보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총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손바닥도 한 쪽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의 정치지도자,특히 이토의 후예들인 자민당그룹은 공공연히 아시아의 공생 운운하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데 모름지기 우리는 여기에 속아서는 않될 것이다. 고종황제가 속지 않고 일본관광을 거절한 것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 이토에게 속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있다. 동양삼국 평화 운운한 이토는 바로 그가 죽음을 당한 뒤 우리 안중근의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양삼국 평화론이 무엇인지 저승에서 듣게 된다. 아무튼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우국충신들이 목숨을 끓었다. 맨 먼저 민충정공이 순국하였는데 그의 선혈이 대나무로 되살아났다. 전 의정대신 민영환(閔泳煥)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보고 자기 목숨을 끊었으니 5백년 조국의 종사가 왜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단도로 자신의 몸을 찔러 죽었는데 피가 마루틈으로 흘러 들어가 한 그루의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문상차 들러보고 살펴보아도 과연 자생한 대나무이지 사람이 조작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차탄(嗟歎)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민영환의 처는 재취한 분인데 나이 30이 못된 여인이었고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이때 또한 조병세(趙秉世)가 독약을 먹고 죽었으며 송병선도 따랐다. 병정 하사(下士) 김봉학(金鳳學),용인의 전참판 모씨도 따라 죽었다. 용인의 전 참판 모씨란 홍영식의 형인 홍만식(洪萬植)이었다. 동생 홍영식이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자책하여 늘 미사신(未死臣)이라 자처하던 홍만식이 끝내 자결한 것이다. 송병선에 대해서는 정환덕이 직접 입대를 주선한 일이 있어 자초지종을 따로 소상하게 쓰고 있다. 송산장(宋山丈:山林=송병선)이 경기도 가평에서 상경하였는데 그의 문인 정석채(鄭奭采)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송산장이 상경해 황제를 알현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떤 절차로 입대(入對)할 수 있을까요?” 하고 상의하였다. 그래서 즉시 입궐하여 상감께 말씀드렸더니 상감께서는 “이같이 창황한 때 절차를 따질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사례(私禮)로 들어와보는 것도 가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송병선이 입궐하여 상감을 뵈었으나 퇴궐한 뒤 가만히 생각하니 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이 때에 차라리 한번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문인 제자들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하였다. 선생의 뜻은 바다같이 넓고 산과 같이 높다 하겠다. 상감 부자께서 이 비보를 들으시고 가슴 아파하며 감탄하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심상훈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자결 직전 고종의 부르심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판서 심상훈(沈相熏)도 역시 칼을 빼 목을 찌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감의 부르심을 받게 돼 입궐했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살아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셔서 죽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심상훈은 이듬해 을사오적 암살사건에 연루돼 경무청에 구금됐다. 살아서 애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충신들이 목숨을 끊으니 고종으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고종은 정환덕에게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내가 함녕전뒤 섬돌복도인 북쪽 반침(半寢) 위에 시립(侍立)하고 있었는데 상감께서는 근심을 잊으시기 위하여 자수(自手)로 난로의 재를 닦아내고 계셨다. 그러다 나를 돌아보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늘 을사년 11월 갑자일이 어떠하다 하더니 말대로 되었구나. 운명은 모면하기 어려운 것인가. 민영환이 절의로 죽은 뒤에 원로대신들까지 차례로 따라 죽으니 마음이 괴롭구나”라고 하시었다. 이에 엎드려 아뢰기를 “이런 때를 당해 한 사람도 절사(節死)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리어 상감께서 수치스러운 일이신데 어찌하여 괴롭다고 하십니까”라고 위로말씀을 드렸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야 그렇다하겠으나 나의 심신이 편안하지 않고 심정을 정돈하기가 어렵구나. 속담에도 ‘충신은 나라가 망할 때 많이 나오고 공신은 나라가 흥할 때 많이 나온다’(忠臣多出其國亡 功臣多出其國興)고 했는데,어찌하여 충신만 많이 나오는가. 이것도 운명인가” 하시었다.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충신이 되기는 쉬우나 공신이 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로 말하면 살아도 국가에 유익하지 않고 죽어서도 공로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죽어 한번이라도 보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였다. 을사조약은 사실상의 망국이었다. 그래서 많은 순국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고종이 이들 충신에게 감사하였으나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할 신하는 의병들이었다. 무기를 들고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이야말로 바로 공신(功臣)이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8·15광복과 건국이 있었던 것이다.
  • IMF 결혼 비용/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미국이나 영국 중소도시의 예비신부들은 결혼을 앞두고 중소형 백화점 고객서비스부에 자신이 원하는 선물 리스트를 마련해놓는다고 한다. 벽시계 벽거울 전화기 청소기 커피메이커와 침대커버까지 골고루 적어놓고 친구들이 ‘무엇을 사줄까’ 물으면 각자 분수에 맞게 선물을 고를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값이 나가는 것은 친구 서너명이 어울려 사고 누군가가 먼저 구입한 것은 체크되기 때문에 물건이 겹칠 염려는 없다. 신랑 신부는 집근처의 레스토랑이나 골프장 구내식당에 친지들을 초청해서 답례파티를 연다.실속있고 알뜰한 결혼식 문화다. 우리는 결혼 몇달전부터 냉장고에서 에어컨·TV등 각종 전기제품과 주방용구·침구·응접세트를 사들이고 과소비가 판을 치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700만원짜리 밍크코트며 1,500만원이 넘는 롤렉스시계를 결혼예물로 준비하기도 했다. 한때 의사 변호사등의 신랑감에겐 ‘열쇠 3개’를 줘야한다는 해괴망측한 신풍속이 유행했다. 실제로 지난 95년, 35평짜리 아파트와 학비 2,000만원을 혼수로 지참하고 결혼한주부가 결혼 후 의사남편의 계속적인 금품 추가요구에 시달려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가정법원은 결혼당시 지참한 정도의 위자료와 재산분할금등 2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됐었다. 그런중에도 호화 피로연과 값비싼 야외촬영, 예식장의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 징수 등의 병폐는 끊임없었고 심지어 딸의 혼수를 장만하느라고 빚을 진 가장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어느덧 결혼시즌이다. 마냥 부풀던 혼수거품이 제거되고 결혼비용이 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신혼부부 12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 한쌍 6,900만원이던 결혼비용이 올 상반기에는 5,100만원으로 1,700만원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신혼여행지도 47%가 국내를 선호한다니 다행한 일이다. 지금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의 한가운데서 살고있는 시점이다. 결혼 약속으로 실반지를 나누어 끼고 단칸방에서 한푼의 저축으로 시작되는 알뜰한 결혼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게끔 결혼비용은 좀더 바짝 줄여야 한다. 하객도 가장 필요한것을 사주고 결혼 당사자들도 결혼은 그 무엇보다 사랑이 전제된 애정의 열매임을 인식하는 일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 벌거벗겨진 대통령/蔣正幸 논설위원(外言內言)

    섹스 스캔들은 언제나 세인(世人)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성(性)이 인간 공통의 관심사인데다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들춰보는 재미까지 곁들여있기 때문이다.스캔들의 주인공이 부(富)나 인기,권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일수록 관심은 더하다.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관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의회조사보고서가 온통 화제다.미국은 물론 세계가 충격적이고도 적나라한 보고서 내용에 관심을 쏟고 있다.보고서가 실린 인터넷은 밀려드는 접속희망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언론들도 앞다투어 대서특필하고 있다.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2년여에 걸쳐 10차례의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내용이다.클린턴이 연방대배심 증언에서 이미 시인했던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선 행위들을 ‘섹스’‘성기’‘성교’ 등의 단어들을 동원,실감나게 전하고 있다.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서재에서,화장실에서 벌인 갖가지 놀라운 행위들은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미국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탄핵이냐,사임이냐 최대의 위기에 몰린 클린턴은 눈물과 사죄작전으로 궁지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미국국민들은 대통령의 추잡한 행위에 놀라고 실망은 하지만 대통령직만은 그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직은 높다.백악관측도 대통령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탄핵사유가 될 위증이나 사법방해는 없었다고 방어에 나섰다.그러나 의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다 11월의 중간선거까지 겹쳐 클린턴의 앞날은 아무도 점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뛰어난 그동안의 업무실적이나 여론의 힘을 입어 요행히 탄핵만은 면한다 하더라도 그의 지도력에 치명타를 입을 것은 분명하다.냉전종식 이후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지도력을 잃는다는 것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경제위기,러시아사태,환경재앙,지역분쟁 등 세기말적인 몸살을 앓고 있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지도적 역할을 해야할 미국이 대통령의 사생활로 흔들린다는것은 우려되는 일이다.세계의 주요 증시들은 벌써부터 ‘클린턴 쇼크’를 겪고 있다.미사일 발사에 핵개발 의혹등 북한문제를 안고있는 우리로서는 걱정이 더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의 섹스스캔들로 세계가 멍들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 경제대책 조정회의 ‘점진적 처방’ 안팎

    ◎“개혁 枯死할라” 조심스런 경기진작/돈 풀되 구조조정 훼손 안되게/얼어붙은 소비심리 회복 주력/일부선 “정부가 실물경기 너무 낙관” 강력한 경기진작 쪽으로 치닫는 듯하던 정부대책이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당초 2일 청와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는 ‘큰 것’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회의는 현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그동안 각 부처가 발표했던 사항을 점검하는데 치중했다. 경기대책의 방향도 당초 재정경제부가 마련한 ‘민감한’ 세제지원방안 등 비상대책보다는 통화방출이나 소비자금융 확대 등 원론적인 내수진작책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같이 경기대책의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한 것은 무엇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6개월간 추진해온 구조조정 정책이 자칫 지나친 경기부양으로 훼손될까 우려한 데서 비롯된다. 정부는 최근 잇따라 발표한 중소기업과 수출금융 확대정책으로 돈을 풀고 있는 마당에서 경기부양 효과가 너무 클 경우 퇴출대상인 기업까지 덩달아 살아나는 문제점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이제 막 시동단계에 불과하다.한마디로 정부는 경기를 되살리면서도 구조조정을 예정대로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정책과 병행해 그동안의 정책기조대로 막혀 있는 돈줄을 터주고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되살리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정부는 현재 실물경기에 대해 수출의 경우 일단 한숨놓는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올들어 수출금액은 환율 등으로 전년대비,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물량은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낮은 마이너스 5%로 하향조정하면서도 내년에는 플러스 2%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낙관적인 자세도 엿보였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내수진작을 위한 자동차등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자금융은 곧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경기진작책의 성격은 일단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돈을 푸는 식의 조심스럽고 점진적인 대책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 일각에서는 현재 정부가 실물경기의 심각성을 간과해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外換대책 긴급점검/보유고 최소한 550억弗 돼야

    ◎얼마가 적정선인가/목표 앞당겨 달성 불구 국내 수급사정 불안정/외부 충격 흡수력 감안 여유금액 확보 불가피 외환보유액 확충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여유있는 모습이다. 지난 8월 말 현재 가용 외환보유액이 413억5,000만달러로 IMF(국제통화기금)와 합의한 연말 목표(410억달러)를 4개월 앞당겨 달성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확보해야 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없으나 월평균 경상수입액의 3개월분 또는 경상수지 적자에 단기외채를 합한 수치로 판단한다. 이런 잣대로 볼 때 우리는 외형상으로는 ‘합격점’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국내시장에 가할 충격 등을 감안할 때 안심할 사안이 아니다. 외부환경이 가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우경제연구소 국제경제팀 韓相春 박사는 “경기부양책을 펼 경우 자본재 수입이 늘게 되고 수출은 감소세여서 상품수지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다”며 “200억달러 이상의 단기외채 만기를 연장시킨 점,국제기구로부터 250억달러가 넘는 외화를 차입한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대외여건과 국내 외환수급 사정이 불투명한 점을 감안할 때 가용 외환보유액은 최소 550억달러 이상 확충해야 한다”며 “구조조정이라는 근본 틀을 무너뜨리면서 경기부양에 드라이브를 걸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인도 높여야 ‘외환누수’ 방지/러 경제위기 직접적인 영향 작을것/외환보유고 연말까지 500억弗 전망/“시장논리 존중 개입은 신중히”/韓銀 尹貴涉 부총재보 ­외환보유고를 과연 얼마나 쌓아야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정부에서는 연말까지 5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말하는데.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한 나라의)연간 수입금액의 25% 정도라는 게 통설이었습니다. 지난 52년 국제연합(UN)이 내놓은 기준이죠. 이후 국가간 자본거래가 대폭 늘어나는 등 여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적정선을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500억달러라는 말은 여러 조건들을 감안해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외환보유고를 무조건 늘리는 것만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효율성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낮은 이자로 (외환을)운용해야 하고,보유고를 유지하는 비용도 드는 것이죠. 하지만 만의 하나에 대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러시아사태 등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합니다. 우리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은 없습니까.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채권은 러시아에 12억달러,중남미 20억달러,태국에 20억달러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연초부터 회수를 서둘러 (액수가)많이 줄었습니다. 남미의 경우도 대부분 정부가 보증한 채권이 주류여서 크게 염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안정적인 외환확충을 위해 한은이 공기업 등의 해외차입분을 사들이는 등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시장 개입은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한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입니다. ­외환보유고 확충 외에 다른 대비책은 없습니까. ▲넓은 의미의 외환보유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돈을 말합니다. 가급적 외국돈을 더 많이 들여오고 덜 나가게 해야 합니다.그러자면 신인도를 높여야지요. 또 해외투자의 위험도를 가급적 줄여야 합니다.
  • 국민회의­국민신당 합당선언 의미/정국안정 발판… 정계개편 급피치

    ◎영남교두보 확보 동서화합/개혁적 인사 수혈 黨에 경종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28일 합당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국민대연합’을 향한 큰 틀의 정계개편이 급류를 타고 있다. 특히 여당은 정국안정에 필수적인 과반수 의석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어 앞으로 자신감을 갖고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추진중인 개혁입법과 경제회생 노력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사정 태풍과 전당대회 후유증이 겹쳐 분열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번 합당에 두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국민신당을 사실상 흡수통합함으로써 다수 국민이 바라던 정국안정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계 핵심인 부산 출신 徐錫宰 의원 등 3명을 영입,영남지역의 교두보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趙世衡 총재대행은 “지역갈등을 넘어 동서화합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韓利憲·김운환 의원의 입당시기는 지역 여론 때문에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들의 입당 역시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이번 합당이 DJ와 YS를 묶는 ‘민주대통합’의 전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崔炯佑 의원과 한나라당 민주계 일부 의원들의 연쇄탈당설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번 합당은 국민회의가 치밀하게 계산한 ‘다목적카드’로 여겨진다. 우선 항간에 떠돌던 ‘호남인사 물갈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李仁濟 張乙炳 의원 등 참신성이 돋보이는 개혁성인사를 수혈했다는 점이다. 개혁에 ‘무딘’ 당내 인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개혁전위대로서 당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특히 李仁濟 고문의 영입은 ‘JP의 내각제’를 차단하려는 긴 포석이라는 시각이 많다. 여권은 합당을 계기로 향후 정국일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인다는 전략이다. 개혁과 경제회생이 한낱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두 당의 합당으로 여권은 경제청문회등과 관련,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계 의원들과 한 배를 탈 경우 과거정권의 비리를 캐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합당으로청문회 시기를 늦추거나 청문회의 강도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지분문제를 둘러싸고 후유증을 염려하는 쪽도 있다.
  • 일본 것은 다 나쁘다(林春雄 칼럼)

    1970년대 후반 무렵이다.일본의 자본이 미국의 하와이는 물론 캘리포니아에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미국의 서부에는 가는 곳마다 수학여행을 온 일본 학생들로 붐볐다. 특히 하와이에 대한 일본의 돈공세는 41년 일본의 진주만 대공습에 비견되기도 했다.하와이가 몽땅 일본에 팔려가는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미국 사회 저변에 폭넓게 번져가고 있었다.그때 마침 미국에 있있던 필자의 눈에도 대단히 위험한 상황으로 비쳐졌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일본 문제 전문가였던 스탠퍼드대의 로버트 와드 교수에게 미국 사회의 이런 우려에 대해서 질문을 한일이 있었다. 그런데 와드 교수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했다. 염려할것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다시 물었더니 일본의 국민수준이 아직 미국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캘리포니아 출신 연방 하원의원으로 민주당 대통령경선에 나서기도 했던 매크로스키 의원도 이와 비슷한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의 상층부는 여전히 여유와 자신감을갖고 있었다. ○일 경제력에 미 전역 흔들 1991년 미국에 다시 가게 됐다. 그때는 하와이가 아니라 미국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물론 뉴욕의 주요 건물들이 차례로 일본에 넘어가고 있었다. 할리우드의 반듯한 영화사마저 통째로 일본에 팔려간지 오래였다. 이제는 고인이 됐을 와드 교수를 다시 만나 보지는 못했으나 그때도 그 교수는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을지 지금도 궁금한 대목이다. 91년께는 정계,학계할 것 없이 미국의 상층부도 미국의 앞날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었고 신흥 경제대국 일본의 경제력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맨해튼에서 텍시를 탔을때의 일이다. 운전사가 대뜸 일본에서 왔느냐고 묻더니만 답변을 들을새도 없이 제국(帝國)의 흥망론을 읊어댔다. 로마제국이 망하고 스페인제국이,대영제국이 갔듯이 미국도 이제 다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가 일본을 중심한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예언했다. 마치 그 분야의 전문가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이 미국에 있는 것을 모두 사들인들 그렇다고 그것을 일본으로 다 가지고 갈수야 없는것 아니냐는 가냘픈 희망도 덧붙였다. 그무렵 미국의 좌절은 실로 심각했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져 갔고 실업률은 천정부지였다. 게다가 공화당의 장기집권으로 빈부격차마저 더욱 벌어져 시민들의 분노 또한 작지 않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섹스 스캔들에,성장 배경도 수상한 클린턴 정권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일본 미국의 조야(朝野)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돼 있었고 그때 그런 풍조는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교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는 인상적이었다. 일본식 입시제도를 통해 우수인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평생고용제도도 받아들여야 할 사회제도였다. 일본 것은 다 좋고 미국의 것은 모두가 문제가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본은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을 몽땅 사버릴것 같았던 일본 자본은 빈손으로 돌아서고 있고그 자리에는 여전히 미국이 버티고 서서 남의 나라도 서슴없이 미사일로 공격해 대고있다. 이제 미국은 역시 미국이고 일본 것은 다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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