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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열정이 빛나던 최진실처럼 품격있는 여배우가 그립다

    최근 개봉한 영화 ‘도둑들’에서 여도둑 예니콜 역으로 등장하는 전지현은 금고털이 팹시(김혜수)를 두고 “어마어마한 X년”이라는 대사를 뱉는다. 목표물을 발견한 기쁨에 홀로 개다리춤을 추고 욕설을 자연스럽게 툭툭 던지는 껄렁껄렁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에서 청순가련의 대명사 전지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녀는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상황은 역대 한국 멜로 영화 1위에 올라선 ‘건축학개론’에도 나온다. 한가인이 극 중에서 술에 취해 울면서 엄태웅에게 “내가 그 X년이냐.”면서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꼭 욕설을 한다고 해서 연기 변신을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의외의 모습에 놀란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CF상의 이미지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법한 일들이다. 이처럼 요즘 젊은 여배우들은 자신에게 씌워진 이미지의 굴레를 벗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과감한 도전을 하고 성숙하곤 한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외모나 도덕성을 기대하는 대중들 탓에 힘겨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 ‘패션왕’ 등으로 요즘 각광받고 있는 신세대 스타 신세경은 “연기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여배우들의 외모에 대한 기준이 높아 부담스럽고 행동에 대해서도 제약받는 면이 적지 않다.”면서 “드라마 촬영 현장이 아닌 CF 촬영장에서도 여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영화 ‘알투비: 리턴투베이스’로 컴백을 앞둔 여배우 이하나 역시 “각종 드라마와 MC를 맡으면서 인기는 올라갔지만, 대중이 원하는 배우상과 실제 내 모습이 달라 우울증에 빠진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미모에 대한 강박 관념은 많은 여배우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그 때문에 긴박한 추격 장면의 사극에서 머리 한 올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풀 메이크업으로 나와 질타를 받거나, 의학 드라마에서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환자인데도 무결점 물광 피부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여배우의 품격은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도전과 인간적인 성숙함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보이곤 한다. 지난 2008년 3월 인터뷰한 고(故) 최진실은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상당히 소탈하고 겸손했다. 당시 드라마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뽀글 파마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로 인기를 끈 그녀는 촬영장에서 한순간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다. 촬영을 마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톱스타임에도 상대 배우에게 공을 돌리고 “무조건 대본 많이 보고 달달 외우고 노력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 같다.”면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여배우는 바로 윤정희다. 지난 2010년 영화 ‘시’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당시 만난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 여배우의 기품을 보여 줬다. 질문마다 각종 비유를 섞은 시적인 표현력으로 소녀 같은 감수성을 보인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는 프랑스 파리에 오면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건네는 푸근함까지 잊지 않았다. 완벽한 얼굴과 몸매로 판타지의 대상이기도 한 여배우들. 하지만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외모보다 연기 열정이 빛나는 품격 있는 여배우가 아닐까. erin@seoul.co.kr
  • 국내경기 예상보다 어렵자 경제수장들 ‘국민 심리치유’

    국내경기 예상보다 어렵자 경제수장들 ‘국민 심리치유’

    국내 경기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나타나자 경제수장들이 잇따라 ‘심리 힐링(치유)’에 나섰다. 박재완(왼쪽) 기획재정부 장관은 2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주재한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정책 노력이 시든 잎(Yellow weeds)이 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점검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우리 경제가 봄 새싹이 움트듯이 회복세를 보이는 그린 슈츠(Green Shoots)가 되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전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치(전기대비 0.5%)를 밑도는 0.4%였다. 박 장관은 “우리 경제가 쉽지 않은 상황에 봉착했다.”면서 “1998년 US 여자오픈 골프때 박세리 선수가 맨발의 우승 투혼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줬듯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이 경제난에 부딪힌 국민에게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너무 급격히 얼어붙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김중수(오른쪽) 한은 총재는 정책 수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총재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밤에) 자고 일어나면 대외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열린 ‘6월 국제수지 설명회’에서 김영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해외수요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비 여력이 있는 그룹에서 닫힌 지갑을 열어줘야 내수가 살고 기업 생산 증가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한 뒤 “자꾸 나쁘다 나쁘다 하면 더 나빠지는 게 경제심리”라며 지나친 위축을 경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런던올림픽 D-1] 필승! 축구대표팀 단결! 한국선수단

    “기필코 이겨야 한다.” 26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앞둔 올림픽대표팀의 결의는 비장하다. 홍명보호가 올림픽 첫 메달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B조 최강으로 꼽히는 멕시코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겨야 하는 이유는 메달 사냥 말고도 더 있다. 먼저 이번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의 첫 번째 경기란 점이다. 개막식(한국시간 28일 오전 5시)을 이틀 앞두고 열리는 한국 선수단의 첫 경기인 만큼 승리하면 선수단 전체와 국민들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올림픽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질 경우 올림픽 축구 첫 메달의 꿈에 구름이 드리우고 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을 수도 있다. 멕시코전 90분이 16일 동안의 열전 흥행을 좌우할 수도 있는 셈이다.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야구가 이번 올림픽에서 퇴출된 것도 아쉬운 대목.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대표팀은 연승 행진으로 대회 전반의 흥행을 선도했다. 그런 야구가 빠지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축구 몫이 됐다. 국내 프로무대에서 갈수록 야구에 설 자리를 내주고 있는 축구계로선 이번 올림픽이 프로축구 흥행을 다시 지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부고] 美 첫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 하늘로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가 2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61세. AP에 따르면 ‘샐리 라이드 과학 재단’은 웹사이트를 통해 “샐리는 활력과 왕성한 호기심, 지식과 열정, 헌신,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면서 “그녀는 한계를 모르는 정신력의 소유자였다.”고 밝혔다. 라이드는 1983년 6월 18일 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7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탑승해 우주 공간에 진출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1978년에 우주인으로 선발돼 미 항공우주국(나사) 지상 요원으로 일하면서 2호, 3호 우주왕복선 통신 담당으로 활동했다. 2개의 통신 위성을 우주 공간에 배치하고 우주 공간에서 약학 실험을 수행하는 임무를 띤 챌린저호에 탑승해 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로봇 팔을 작동시켜 위성을 회수한 여성 우주인이 됐다. 라이드는 1984년 다시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 나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2부) 선진 공익재단 현장을 가다 ④ 인도 IT제왕 아짐 프렘지의 공교육 혁명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2부) 선진 공익재단 현장을 가다 ④ 인도 IT제왕 아짐 프렘지의 공교육 혁명

    마을 입구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사탕수수밭 길을 20분 정도 달리니 소박한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말 인도의 공교육 개혁 현장을 보기 위해 찾은 남서부 카르나타카주 벵갈루루시 만디아 행정구에 자리한 킬라리 초등학교다. 낡은 교실 바닥에 둘러앉아 수업을 듣던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이방인이 반가운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1~8학년 학생 210여명이 다니는 이 학교에는 교실이 4개, 선생님은 7명뿐이다. 쥐꼬리만 한 정부 지원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도 공립학교 가운데 하나다. 학생 1인당 1년에 5000달러(약 573만원) 이상의 학비를 내는 국제학교가 기숙사, 수영장, 게스트 하우스까지 갖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낙후했다. 1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는 여교사 프라밀라 데비에게 ‘지금 학교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신형 멀티미디어 기기’라는 답변을 예상했지만 그녀는 학교에 딱 한 대뿐인 구형 노트북을 가리키며 “컴퓨터가 있어도 아이들에게 활용법을 가르칠 교사가 없어 안타깝다.”고 답했다. 데비는 지난해 아짐프렘지재단(APF)이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무료 영어교육에 참가했다. 교육비, 교통비 등은 모두 재단이 대줬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육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는 데비는 “내가 배워 보니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신이 나 말했다. APF는 인도의 대표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위프로 테크놀로지’의 최고경영자(CEO) 아짐 프렘지(67) 회장이 2001년 설립한 재단이다. ‘인도의 빌 게이츠’라 불리는 프렘지 회장은 지난 10년간 인도 전역의 13개 주정부와 손잡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열정을 쏟았다. 주정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도에서 초등교육 개혁에 주력하는 재단은 AFP가 처음이다. 이는 프렘지 회장의 평소 신념과 맞닿아 있다. 프렘지 회장은 늘 “인구가 많고 사회·경제적 신분 격차가 심한 인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은 낙후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정·공평·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이라는 재단 이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인도는 국제적으로 수학·과학 수준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전반적인 교육 현실은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학생에 비해 교사가 턱없이 적은 탓에 인도의 교사들이 선택한 최선의 교수법이 ‘주입식 암기 교육’이다.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교육 성취도도 낮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 가운데 7%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5학년 학생 중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학생이 35%나 된다. 때문에 APF의 공교육 개혁 프로그램은 학교 시설을 개선하고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프렘지 회장은 공교육 개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개혁의 주체인 교사가 바뀌어야 하고, 새 교수법과 재단의 교육 철학 등으로 ‘무장’한 교사 양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예 지난해 선진 교수법과 교육 정책·학교 경영·리더십 등을 가르치는 아짐프렘지대학을 세웠다. 이 대학에서 교육 철학을 가르치는 로히트 드한카 교수는 “1960년대 인도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았을 때 정부에서 자질이 부족한 교사들을 많이 고용했다.”며 이들이 교단에서 기존 방식대로 학생을 가르치는 현실을 지적했다. APF가 운영하는 만디아 지역 사무국은 최근 교육기관역량개발(ICD)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만디아에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갖고 각 학교의 문제점을 파악해 고유한 비전과 발전 방안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무국 직원인 미라에게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묻자 “선생님들에게 교육에 대한 열정이 생겼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죠.”라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이 변하기 시작하니까 학생, 학교 그리고 학부모까지 모두 변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사무국은 앞으로 이 지역 교사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지원하고 학교 개혁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APF는 또 올해 전국 4개주 6곳에 시범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일종의 ‘새로운 교육실험의 장’으로 재단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교육 방식에 따라 시범적으로 운영된다. APF의 목표는 2016년까지 100개의 시범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시범 학교가 성공해 인도의 주정부들이 이 교육 모델을 앞다퉈 도입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지역 정치인 마히마 파텔은 인도의 교육 현실을 ‘수리 중인 거대한 배’에 비유했다. 인도의 교육 수준이 대폭 개선되면 선진국으로 뻗어나갈 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인도의 한 부호가 심은 꿈, ‘교육’이라는 값진 연료가 나라 전역에 채워지고 있다. 글 사진 벵갈루루(카르나타카주)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김우영 은평구청장 “60~70대 일자리 제공에 주력”

    김우영 은평구청장 “60~70대 일자리 제공에 주력”

    “앞으로도 지역 발전에 온힘을 쏟아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완성하겠습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점점 팍팍해지는 지방재정 속에 마른 수건을 짜내는 심정으로 정책을 펴겠다. 공무원의 자발적인 참여도를 높이고 서비스를 강화해 복지와 참여가 어우러진 곳으로 가꾸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열정이 담긴 톡톡 튀는 정책 아이디어를 쏟아내 지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남은 임기 동안 한층 더 성숙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주민참여예산제에 관심이 많은데. -취임 직후부터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했다. ‘주민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예산 과정에 직접 참여해 사업의 필요성 판단이나 예산배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2010년 12월 ‘주민참여 기본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국 최초로 구민 700여명이 주민투표를 거쳐 사업 우선순위를 정하는 ‘참여예산 주민총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현재 동별로 참여예산 지역회의가 한창인데 더 성숙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두꺼비하우징 사업에 대해서는. -아파트 위주로 건설되는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마을을 주민들이 함께 고쳐 나가는 사업이다. 일자리 창출 및 지역상권 살리기 등과 연계하면서 추진하겠다. 주민들의 주거권과 행복추구권을 고려해 사업을 전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자리 창출 복안은. -결국 일자리가 복지다. 자립 기반 마련에 초점을 두고 취약계층 일자리를 마련해 고용과 복지를 동시에 해결하겠다. 올해에는 28개 부서에서 79개의 일자리, 8011명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특히 사회 초년병인 30대의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60~70대 어르신의 일자리 제공이 매우 중요하다. ‘은평이랑 콩나물 사업단’과 ‘우산수선·칼갈이 센터’ 등 사회적기업 육성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틈새계층 지원은. -전체 예산의 51%를 복지에 쓰고 있지만 틈새계층을 돌보는 데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16개 동에 ‘우리동네 복지두레’를 구성했다. 현재 다양한 분야의 주민 1700여명이 참여해 독거노인 이불빨래, 무료진료, 이미용, 장학금지원 등 다양한 특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은평 한옥마을은 어떻게 추진되나. -북한산과 진관사 등 우수한 문화·자연유산을 바탕으로 진관동에 한옥 122채(최대 158가구)의 친환경 한옥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은평역사한옥박물관과 한옥체험관도 건립한다. 2014년 하반기에 마무리되면 한옥과 한식, 한복 등 전통문화를 보전·계승하는 ‘한(韓)문화 중심지’가 될 것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사람 살리던 손 캐릭터를 살리다

    사람 살리던 손 캐릭터를 살리다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원제: Brave)은 북미에서 지난 6월 말에 개봉, 2억 274만 달러(약 2312억원)를 벌어들인 흥행대작이다. 한국 개봉이 추석 연휴인 9월 27일로 잡혀 있는 등 해외 개봉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미 본전(1억 8500만 달러)을 뽑았다. 운명을 개척하는 용감한 틴에이저 공주의 모험을 다룬 작품에 투입된 애니메이터는 90명에 육박한다. 그 가운데 한국인 김재형(39)씨도 있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초대받은 김씨를 지난 22일 서울 중구 예장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를 주목한 이유는 의사 출신이란 이력과 게임·애니메이션 업계의 강자인 블리자드와 픽사를 넘나든 경력 때문. 그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1년차 과정을 밟다가 인생의 방향을 튼 몽상가다. 그는 “중·고교 때는 그냥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정도였다. 공부는 좀 했으니까 의대를 갔던 건데 정말 하고 싶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뒤늦게 철이 들어 뭘 먹고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애니메이션 일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는 애를 먹었지만 의외로 아내는 선선히 지지했다. 전세금을 털어 2003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 입학했다. 서른이 되고 시작했으니 늦깎이였다. 하지만 그만큼의 절실함과 열정 덕인지 2006년 졸업하면서 애니메이터의 로망인 픽사의 인턴으로 입사했다. 인턴이 끝나고서 참여한 첫 작품이 ‘라따뚜이’(2007)였다. 잘못된 부분을 잔손질하는 ‘픽스 애니메이터’가 그의 역할이었다. 계약이 끝나고 게임업체 블리자드로 옮겨 ‘스타크래프트 2’의 시네마틱 아티스트로 일했다. 게임 중간에 서너 차례 나오는 처절한 전투 장면이 그의 솜씨다.  1년 4개월쯤 일하다가 2006년 친정으로 유턴했다. “블리자드는 젊은 친구들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면 픽사는 노련한 애니메이터들이 많다. 커리어의 후반부에 블리자드에 갔다면 젊고 재능 있는 친구들과 재밌게 일했겠지만, 갓 2~3년차에 불과했던 나로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픽사를 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복귀 후 참여한 첫 작품 ‘업’(2009)의 엔딩크레디트에 그는 물론 딸의 이름도 올라 있다. ‘프러덕션 베이비’라고 해서 영화 제작 중 태어난 아이 이름을 남겨 주는 회사 측의 배려 덕분이다. ‘토이스토리 3’(2010)를 거쳐 ‘카2’부터 그는 숏(shot) 애니메이터로 승진했다. 숏 애니메이터란 인형극에서 실로 연결된 인형을 다루는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분업화된 컴퓨터 애니매이션 제작시스템에서는 캐릭터를 만드는 콘셉트 디자이너, 2D(평면) 상태인 캐릭터를 3D(입체)로 바꿔 놓는 사람, 옷과 피부·머리 색깔을 담당하는 사람까지 제각각이다. 캐릭터가 컴퓨터에 저장되면 스토리보드(영화의 촬영대본에 해당)와 레이아웃(컴퓨터상에서 카메라 앵글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을 보면서 감독 지시를 참고해 캐릭터의 포즈를 잡고 연기하도록 만드는 게 숏 애니메이터의 역할이다. 정해진 숏에 나오는 캐릭터 움직임을 모두 맡거나 특정 캐릭터의 연기를 숏에 관계없이 전담하기도 한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그는 메리다 공주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곰’의 연기를 도맡았다.  그는 “캐릭터의 이름이나 어떤 역할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다. 답답하고 죄송한데 개봉 전까지는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는 게 픽사의 정책”이라며 웃었다. 못내 아쉬웠는지 작품 자랑을 잊지 않았다. “메리다는 얌전 떠는 공주가 아니라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남성적 캐릭터이다. 엄마인 엘리노 여왕은 공주 역할을 기대하지만, 딸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배경은 스코틀랜드의 왕국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엄마의 갈등이란 점에서 요즘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대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보면 좋을 영화인데 한국에서 애들 보는 만화영화쯤으로 알려진다면 속상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장난감(‘토이스토리’ 1~3편)이나 로봇(‘월E’), 자동차(‘카’ 1~2편), 동물 혹은 곤충(‘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벅스라이프’), 유령(‘몬스터주식회사’) 등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처음으로 여주인공을 내세운 데다 리얼리티를 우선시했다. 때문에 숏 애니메이터만 60명, 군중신을 담당하는 군중 애니메이터와 픽스 애니메이터도 28명이 투입됐다. 그는 “사람이든 곰이든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묘사하는 건 물론 감성 표현에도 역점을 뒀다. 11개월 동안 꼬박 작업했는데 힘이 들었던 만큼 애착도 크다.”고 밝혔다.  그는 픽사의 2013년 최대 기대작인 ‘몬스터대학교’(‘몬스터주식회사’의 속편)에도 참가하고 있다. 야전에 뛰어든 지 6~7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굵직한 프로젝트에 전부 참가하고 있으니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돌잡이에 등장할 만큼 한국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의 상징인 청진기를 내려놓은 지 10년이 흐른 지금, 선택에 후회가 없을지 궁금했다.  “한국에서 의사면허는 살아 있다. 하지만 다시 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사람 목숨 다루는 일인데 나처럼 손을 뗐던 사람이 다시 하는 건 말도 안 될뿐더러 지금 내 일이 너무 재미있다. 픽사에는 월스트리트의 뱅커도 있고, 잘나가던 과학자도 있다. 난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마사 최 게이츠재단 CAO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마사 최 게이츠재단 CAO

    “성공 가능성이 10%를 밑돌아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것이 자선재단의 역할이다.” 세계 최대 민간 공익재단의 정보통신(IT) 및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한국계 여성이 있다. 마사 최(57) 빌&멀린다게이츠재단 최고행정책임자(CAO)다. 교포 여성 최초로 미국 대도시 시의원(시애틀)에 당선되는 등 이민 여성사의 각종 이정표를 써 온 그는 지난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설립자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재단 사업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이어야 한다며 늘 밀어붙인다.”고 전했다. 게이츠재단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세계적 저명인사들이 기부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노하우를 묻는 곳이다. 워싱턴주 무역장관 등 다양한 공직 경험이 있는 그는 “정부와 공익재단 모두 소외 계층의 문제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면서도 “세금으로 사업하는 정부는 (실패) 위험이 큰 프로젝트를 벌이기 어렵지만 민간 재단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얽매여 있는 정부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내는 실험적인 사업을 지원하고 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사회 변화의 지렛대가 바로 21세기 전성기를 맞은 민간 재단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마사 최는 게이츠재단이 지원하는 ‘위대한 도전 탐험’ 사업을 예로 들었다. 재단은 국제 보건 현안들을 해결할 여러 아이디어에 자금을 지원한다. “가능성이 희박해도 파급력이 엄청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사 최는 상사인 게이츠의 리더십에 대해 “빌은 ‘참을성 없는 낙관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긍정적이되 문제 해결의 급박성을 강조하고 끊임없이 독려한다.”면서 “그는 매우 목표 지향적이며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이 투자가 최선이냐’, ‘이 사업이 정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냐’고 계속 묻는다.”고 전했다. 빌이 뿜어내는 열정은 전염성이 강해 직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참을성 없는 낙관주의자’가 돼 버린다고 했다. 결국 훌륭한 기부란 돈만 내놓는 게 아니라 성공한 명사의 에너지와 아이디어, 리더십까지 온전히 제공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1948년 미국으로 이민한 고 에드워드 최 전 한인회장의 딸인 마사 최는 교사와 캘리포니아은행 부사장, 시애틀 시의원, 워싱턴주 무역장관 등을 지내다 2004년 게이츠재단에 합류했다. 시애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다 세상을 떠난 고(故) 진창현(1929∼2012)씨의 기념비가 일본 나가노현에 세워졌다. 나가노현 기소군 기소마치는 지난 21일 오후 신스이공원에서 고인의 부인 이남이씨와 신각수 주일 한국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을 열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진씨는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1957년부터 기소마치에 터를 잡고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소마치는 일본 내 현악기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진씨는 1961년에 도쿄로 활동 거점을 옮겼지만 기소마치는 그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기려 생전에 명예 주민증을 줬다. 비석에는 진씨의 얼굴을 새겼고 비석 옆에는 사망할 때까지 국적을 바꾸지 않은 고인의 뜻을 기려 무궁화를 심었다.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에는 신 대사를 비롯해 다나카 가쓰미 기소정장(면장)과 데즈카 기이치 지방의회 의장, 재일동포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 하정웅씨 등이 참석했다. 진씨는 19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세계에서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칭호를 받았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세계 최상품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13일 도쿄도 조후시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숨졌다. 그는 병상 옆에 태극기를 두는 등 최후의 순간까지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전구 발명가는 에디슨이 아니다”

    킹 캠프 질레트는 왕관 모양의 병뚜껑을 판매하러 다녔다. 그러면서 일회용 제품에 관해 오랫동안 궁리했다. 1895년 어느 날 수염을 깎으려고 면도기를 집어 들었다. 당시 면도기는 두툼한 강철 날을 사용했던 터라 날을 계속 세우려면 가죽 숫돌로 자주 갈아줘야 했다. 이 때문에 귀찮은 데다 날이 금세 낡아 깎으나 마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순간 질레트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주 값싸게 만들어서 부담 없이 쓰고 버릴 수 있는, 종이처럼 얇은 면도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8년 후 1회용 면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하늘을 비행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라이트 형제가 등장하기 900년 전인 1010년 어느 날 영국 맘즈베리에서 에일머라는 이름의 수도사가 직접 만든 날개를 양쪽에 달고는 맘즈베리 대수도원에 있는 탑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불시착할 때까지 무려 200m에 달하는 거리를 날았다. 이 같은 사실은 ‘영국 왕의 역사’라는 책에 실려 있으며 에일머의 비행은 당시 가장 훌륭한 역사적 위업으로 평가받았다.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가장 전설적인 물건을 꼽으라면 백열구다. 그러나 사실 에디슨은 백열구를 발명한 적이 없다. 에디슨이 등장하기 전 이미 20명 이상의 발명가들이 백열전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1844년 신시내티 출신의 19세 천재 소년 존 웰링턴 스타가 진공관에 들어 있는 탄소 필라멘트로 빛을 내는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그러나 22세가 되기 전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백열전구도 잊혔다. 신간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릭 베이어 지음, 오공훈 옮김, RHK 펴냄)는 이러한 내용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내가 모르는 과학적 진실이란 있을 수 없다’며 열렬히 과학 역사를 탐구해 왔다. 따라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여태까지 접하지 못했던 과학사의 은밀한 순간들을 그림과 도표, 설계도 등과 함께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과학 편집광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들이 전구와 전화기의 최초 발명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내용과 함께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한다. 누구는 이름을 알렸고 누구는 무명으로 남았지만 열정적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찾아 헤맸던 사람들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1만 35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나도 당당한 서울주민… 가슴 뿌듯”

    “나도 당당한 서울주민… 가슴 뿌듯”

    웬만한 서울 토박이보다도 더 서울을 잘 알 정도로 서울을 사랑하는 무로야 마도카(30). 평소에도 서울을 더 잘 알기 위해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이런저런 소식과 정보를 찾곤 하던 그가 어느 날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한글 서예 매력에 끌려 한국과 인연 주소지나 직장이 서울에 있는 서울 ‘주민’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는 자격조건에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하고, 다양한 서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추첨에선 떨어졌지만 무로야가 보여준 관심과 열의에 서울시는 감동했고, 박원순 시장이 추천하는 2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주민참여예산위원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서울 주민이라는 걸 인정받았다는 기분도 들고요.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합니다. 부모님과 친구들도 많이 응원해 주고요.” 무로야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국과의 인연은 서예를 통해서 이어졌다. 서예에 관심이 많던 그는 한글 서예가 주는 매력에 끌려 한글을 익혔고 그 인연으로 2002년에는 한국에 어학연수를 오기도 했다. 한·일 교류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참여한 뒤 줄곧 한국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부터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로야가 예산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직장과 연관된 문화관광위원회를 분과위원회로 신청했지만 경제산업위원회에 배정됐다는 무로야는 19일 “예산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고 시에서 예산학교를 통해 모르는 것도 많이 가르쳐 줘서 아주 좋다.”고 시원스레 웃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제안해보고 싶어” 그는 “중요한 건 전문성보다도 애정과 관심, 배우려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예산사업을 많이 제안해 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현대음악 개척 강석희 前서울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현대음악 개척 강석희 前서울대 교수

    오는 27일 런던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성화가 아닐까. 시곗바늘을 잠시 1988년 서울올림픽 현장으로 돌린다. 9월 17일 저녁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숱한 곳을 돌고 돌아온 성화가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제우스 신, 천둥, 번개, 투창대회, 춤 등의 이미지가 컴퓨터와 트럼펫, 여성 보컬 등에 의해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형상화됐다. 그 음악을 타고 성화대에 점화가 되는 순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전 세계 음악인들이 놀라움과 찬사를 아낌없이 보냈다.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음악을 성화에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 오다’라는 제목에 걸맞게 문명의 다양성을 잘 조화시켜 세계 음악사적으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10월 2일 저녁 성화가 꺼질 때에도 이 같은 광경이 다시 연출됐다. 당시 이 음악을 직접 작곡하고 감독까지 맡았던 주인공이 바로 강석희(77) 전 서울대 교수다. 지금도 그날의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세계 음악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1966년 국내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작곡했다. 이를 시작으로 30인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예불’, 관현악을 위한 ‘생성69’, 피아노를 위한 ‘정점’ 등의 작품을 연이어 쏟아냈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음악의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자음악을 비롯한 음악극, 칸타타, 독주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만들어내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아울러 1969년 그가 처음 주도한 ‘판 뮤직 페스티벌’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면서 세계 음악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1970년 일본 오사카 국제박람회 때 그의 창작곡이 연주되면서 일본과 유럽의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984년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주최 세계 음악제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에 선출돼 세계 무대에서 확실히 인정받기에 이른다. ●11월 도쿄·내년 4월 루브르박물관서 연주 올해로 그의 음악 인생은 55년째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모두 80여 곡에 달한다. ‘가야금을 위한 다섯 개의 정경’, 국악 관현악을 위한 ‘취타향’ 등 전통과 접목시킨 것도 있고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 등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보다 유럽과 미국, 남미 등 해외에서 초연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솔로, 오케스트라, 오페라, 실내악 등 전통적 형식의 작품들을 형식에 따라 각기 적합한 어법으로 소화해 낸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젊은 청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악보와 여러 음악 관련 책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그 까닭을 먼저 물었다. “저는 원래 피아노가 없습니다. 작곡할 때 미리 다 소리를 알고 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물론 피아노 앞에 앉아 소리를 들어보며 작곡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지요. 제 경우는 창작할 때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곡을 다 쓰고 나서 어떻게 듣느냐고 했더니 “연주하는 무대 객석에서 처음 듣습니다. 연주는 연주가의 몫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작년에 일본으로부터 위촉받은 ‘8중주’가 있는데 8월 말까지 끝내야 합니다. 오는 11월 도쿄에서 첫 연주회가 예정돼 있거든요. ‘8중주’가 끝나면 곧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를 써야 합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측에서 오래전에 위촉을 받아 놓은 상태거든요. 이 곡은 내년 4월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연주될 예정입니다.” 이렇듯 그의 곡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찾는다.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와 미국 뉴욕에서 그의 오케스트라곡이 연주됐다. 11월에는 일본, 그리고 12월에는 토론토 연주회가 있으니 하반기에만 4차례 해외에서 연주되는 셈이다. “오사카엑스포 당시 오케스트라곡인 ‘생성69’와 실내악 2곡이 연주됐을 때 일본의 신문이나 음악잡지에 크게 게재됐습니다. 얼마 뒤 독일에 갔을 때였지요. 저를 알아보는 음악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대중들이 현대음악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음악이 어려우냐 쉬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라면서 “좋은 음악은 분명 감동을 던져 줍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개 현대음악에는 기립 박수가 없다고들 하지만 1997년 ‘피아노 콘체르토’ 파리 연주 때와 서울 연주 때 등 그동안 기립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작품의 성공적인 연주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함과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고 말했다. 대중들도 음악을 자주 접하다 보면 그런 행복과 감동을 맛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1년에 2곡 정도 작업… 지금까지 80여곡 탄생 그는 한 해에 2곡 정도 쓴다. 곡을 쓸 때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고통을 이겨내며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 듯이 논리적으로 연결해 나가는 작업을 한단다. 마치 건축가가 설계해 놓은 전체의 디자인에 따라 그려 나가듯이. “작곡가가 작곡한다는 것은 순수한 음과의 대결을 의미합니다. 소리는 차갑고 냉정한 것이지요. 그런 소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작곡가가 할 일입니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 구조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흐르는 건축물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어떻게 해서 작곡과 인연을 맺었을까.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탐정과 추리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증조부와 손을 잡고 집을 나섰는데 도착한 곳이 경성공업고등학교 교장 선생 댁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고종 때 장원급제하고 1900년에 일본 유학을 다녀올 만큼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고 경성공고 교장은 바로 할아버지의 제자였다. 이때 할아버지는 경성공고 교장에게 손자를 부탁했다. “그런 인연으로 나중에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경성공고에 진학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대개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과목을 잘하게 되잖아요. 미술 선생님이 좋으면 미술을 공부했고 음악 선생님이 좋으면 음악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미술과 음악, 수학 등을 좋아했지요. 또 32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는데 그게 나중에 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저력을 키우는 원천이 됐습니다.” 그는 음악대학에 진학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6가에 살 때였다. 하루는 서울대 음대에 놀러갔다. 우연히 작곡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이 아주 멋있게 다가왔다. 문득 작곡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청음 실력이 남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였다. 곧바로 책을 몇 권 읽고 서울대 음대에 응시했다. 당시 47명이 시험을 치렀는데 8명이 합격했다. 이강숙, 백병동, 송해섭, 장광열, 이영욱, 임종영, 장성덕 등이 동기들이다. “1964년 급성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습니다. 대학 동기 백병동이 ‘전기와 전자’라는 책을 놓고 갔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어서 단숨에 읽었지요. 전자음악이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퇴원하자마자 KBS 스튜디오를 빌렸고 3개월의 작업 끝에 전자음악을 만들어 냈지요.” 이후 전자음악과 컴퓨터를 접목시키는 등 오늘날까지 한국의 현대음악을 개척하며 꾸준히 이끌어 오고 있다. “예술가란 기존에 닦아 놓은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험한 정글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모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작곡가 강석희는 국내 첫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 발표 1934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46년 경성공고 토목과에 진학했다가 6·25전쟁 때 경북 안동으로 피난 가서 안동고를 졸업했다. 이 무렵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을 접했다. 이후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6년 동안 정신여고 음악 교사로 재직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서양의 현대적 작곡 방식에 관심을 가졌으며 19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첫 작품으로 발표했다. 1968년 잠시 한국에 와 있던 윤이상 선생에게 작곡을 배웠다. 1969년 ‘판 음악제’의 모태가 되는 ‘서울 현대음악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1970~1971년 독일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배웠다. 이후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음향학자 프란츠 빈켈 등을 사사했다. 1982~1999년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4~1990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부회장을 맡았다. 이후 서울올림픽 폐회식 음악감독(1988), ISCM 서울 세계음악제 집행위원장 및 예술감독(1997), 계명대 특임교수(2000) 등을 지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0), 보관문화훈장(1998), 서울사랑시민상(2004) 등이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 [이배용 역사산책] 서원과 인성교육

    [이배용 역사산책] 서원과 인성교육

    요즈음 학교 폭력이 사회적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가해학생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여러모로 제도를 정비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수 있는 학교교육에 대한 폭넓은 점검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룬 원동력에는 교육의 열정이 있다. 특히 전통교육에는 지식의 차원뿐 아니라 심성을 끊임없이 바로잡는 인성교육이 중심에 있었다. 조선시대 사립학교의 효시인 서원 교육에는 인류의 미래지향적 가치인 소통, 화합, 나눔, 배려, 자연, 평화를 추구하는 융합적인 조화의 기능이 있다. 서원에 들어서면 수려한 자연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수백년을 역사의 증인으로 지켜온 나무들이 울창하고 맑은 계곡이 흐르고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화는 백 마디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배움과 깨달음의 시작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 즉 자연과 인간의 이치의 결합은 스스로 사람다움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자연을 통해 배우는 언어이다. 즉,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 있는 오행(五行)의 목(木), 금(金), 화(火), 수(水), 토(土)의 원리에서 인간심성의 기본인 오성(五性)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상호 합일되는 과정을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다. 즉, 나무(木)를 통해서 사람은 인(仁)을 배우고, 쇠(金)를 통해서 의로움(義)과 정의 그리고 의리를 배우고, 불(火)을 통해서 예(禮)의 질서를 배운다. 물(水)을 통해서는 배움, 즉 깨달음(智)을 알게 되는데 물이 낮은 곳으로, 또 넓은 곳으로 바다를 향해 부단히 흐르듯이 겸손과 포용의 자세를 배우게 되고, 흙(土)은 만물이 딛고 생성하는 토양이 되듯이 인간관계에서 기본은 무엇보다도 믿음(信)이라는 데서 참다운 인성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서원에서 선비들이 닮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자연의 법칙이었고 또한 존경하는 선현이었다. 조선의 선비는 스승의 가르침과 서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을 뿐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스스로 사색하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늘 푸른 소나무를 통해서는 변치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대나무를 통해서는 굽히지 않는 절개를, 할아버지 대(代)에 심으면 손자 대에 가서야 열매가 열린다는 은행나무를 통해서는 인내와 끈기의 향학열을, 연꽃을 통해서는 진흙탕에서도 때 묻지 않고 세속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맑고 고고함을 터득했다. 이외에도 매화·작약·배롱나무 등 철따라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각종 꽃들의 모습은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통해 현실에서는 설 자리, 누울 자리를 가릴 줄 아는 분별력·도덕률이 생겨나는 것이다. 퇴계 선생은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 지혜를 적용하여 도산서당을 설계할 때 왼쪽의 담장을 완전히 막지 않고 끊어 쌓음으로써 공부하는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여 호연지기의 심성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서원마다 공부할 때, 현판 하나하나에 새겨진 문구가 예사롭지 않다. 문을 드나들 때나 누정에서나 강학당·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사당에서 제례할 때마다 유교가 주는 인간이 깨우쳐야 할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각 지역의 서원끼리도 끊임없이 소통하였다. 서원을 찾은 손님의 명단인 심원록을 보면 유명 유학자들의 이름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기숙 생활을 하면서 상하질서·상부상조하는 협력 체제를 갖추게 하고 바로 오늘날 중요하게 여기는 팀워크가 이루어지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하는 지혜는 오늘날도 우리가 자긍심을 가지고 이어받아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은 인류가 남긴 공동의 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브랜드 위원장·전 이대 총장
  • [‘소통의 장’ 광장의 10년 명암] “거리응원·촛불시위는 한국의 에너지”

    도쿄신문 사사가세 유지(47) 서울특파원은 2002년부터 3년간 서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뒤 지난해 11월 다시 서울에 왔다. 2002년 광장이 열리던 순간을 목격한 그는 “당시 한국의 거리응원과 촛불집회가 보여준 에너지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술집에 가면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큰소리로 떠들고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사사가세 특파원은 한국에서 그런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여유가 생긴 반면 그만큼 활기와 열정은 줄어든 느낌”이라면서 “한국도 고령화가 진행되는 만큼 세대간의 이해와 양보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통의 문제가 현 정권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사사가세 특파원은 “많은 일본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강한 리더십의 성공한 지도자로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것을 보면 강한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업무 추진 방식이 국민들의 불만을 낳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2002년 월드컵을 목격하고 다이내믹한 한국에 푹 빠졌다는 이코노미스트의 대니얼 튜더(31) 특파원은 사사가세 특파원과 달리 한국 사회의 소통이 적극적이고 활발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2002년부터 한국과 영국을 오가다 2010년부터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는 튜더는 “몇 해 전 택시에서 기사가 대통령 지지율과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면서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집회는 영국에 비해 평화적”이라면서 “집회를 통해 끊임없이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영국인들이 사회문제에 냉소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튜더 특파원은 정치권과 언론이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주장과 의견만 전할 것이 아니라 자세를 낮춰 국민과의 소통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도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있다.”면서 “서구인의 오만한 시각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사랑하는 한 외국인의 의견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김동현·배경헌기자 moses@seoul.co.kr
  • [올림픽과 나] 금메달 많이 딴다고 스포츠 선진국인가

    [올림픽과 나] 금메달 많이 딴다고 스포츠 선진국인가

    런던올림픽 개막 열흘을 앞둔 17일부터 올림픽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과 시각을 담은 칼럼 ‘올림픽과 나’를 연재합니다. 정윤수·이병효 스포츠칼럼니스트와 런던 거주 30년째인 권석하 컨설턴트, 김학선 팝칼럼니스트가 돌아가며 집필합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를 획득,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다. 중국과 미국이 저만큼 앞서간 것을 제외하면 영국, 독일,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나란히 10위 안에 들었으니 가히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네덜란드나 캐나다의 순위를 아시는지? 10위권이었다. 그 밖에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는 중위권이었고 아일랜드는 62위였다. 우리는 스포츠 선진국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7위권에 안착했으니 틀림없이 우리도 스포츠 선진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10위권의 네덜란드는 물론 60위권의 스웨덴을 스포츠 후진국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난 결코 그런 말을 쓸 자신이 없다. 이 두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이 스포츠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그 가운데 직업 선수를 꿈꾸는 학생도 교실에서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한두 개밖에 따지 못해 34위(스위스)나 62위(오스트리아)에 머물렀다고 해서 스포츠 후진국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을까. ●10위 네덜란드, 7위인 우리보다 후진국? 지난 2007년 유럽연합(EU)은 ‘EU 스포츠백서’를 발간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있는 유럽을 포괄하는, 다시 말해 EU에 포함된 나라라면 지켜야 할 스포츠 정책과 원칙을 제시한 백서인데 주요 골자는 스포츠의 공공성, 교육성, 환경성, 직업성, 소수자 보호 등이다. 그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가 특별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뛰어난 성취를 드러낸 유능한 선수에게만 주어지는 ‘가시 면류관’이 되어선 안 되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의 권리라는 점을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칙이 항상 따라다닌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 해도 그 사회의 평균적인 교육과 문화와 직업 선택의 기회를 평등하게 누려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정상적인 교육’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장차 선수가 될 가능성이 없거나 그럴 마음이 없는 학생이더라도 스포츠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유·무형의 가치와 정서를 절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그야말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가혹한 메달 지상주의로 일관한 적이 있다. 저산업화 시절의 강력한 ‘국가주의 스포츠정책’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였다. ‘국위선양 대한건아’가 통치이념처럼 작동했다. 그래서 은메달을 딴 선수가 비탄의 눈물을 쏟는 일까지 있었다. 이제는 많이 변했다. 우선 선수들 자신이 변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 보여 준 배드민턴의 이용대나 수영의 박태환 선수는 강박증 같은 것이 조금은 옅어졌음을 보여 줬다. 개회를 열흘 앞둔 이즈음, 방송사들도 많이 변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주요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짤막한 예고 영상들은 그 옛날 ‘대한건아’를 되풀이하는 대신 선수 개인의 땀방울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번 대회는 과거의 국가주의 강박에서 벗어나 선수 개인의 열정에 환호하고 그들의 성취나 아쉬움이 우리의 고된 일상에 던질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는 첫 올림픽이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학생선수 극소수… 공부보다 운동 치중 극소수만 운동을 하고 나머지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쳐가는 나라, 그 극소수는 훈련장이나 경기장을 맴돌고 교실에는 단 한번도 들어가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가 10위권에 들어가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문대성의 ‘복사 학위 파문’이나 김연아의 ‘대학 수업 정상 이수’ 논란은 다 이런 ‘이상한 나라’에서 빚어진 일이다. 물론 우리 선수 모두 빛나는 성취를 이뤄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의 ‘근대적 삶’ 전체를 복기해 봐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 [영화프리뷰] ‘새먼 피싱 인 더 예멘’

    [영화프리뷰] ‘새먼 피싱 인 더 예멘’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영(反英) 감정’이 치솟는다. ‘물타기’를 위해 중동과 영국의 우호관계를 포장할 뉴스거리를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총리실 홍보책임자에게 흥미로운 얘기가 들려온다. 낚시광인 예멘의 실세 무하마드 왕자가 5000만 파어드를 들여 영국 연어 1만 마리를 모국 하천에 방류시키기를 원한다는 것. ●억지 웃음 NO… 영국판 로맨틱 코미디 왕자의 영국 자산을 관리하는 컨설턴트 해리엇을 통해 자문을 요청받은 농수산부의 연어전문가 프레드 박사는 “사막의 플판이피싱은 화성 유인탐사만큼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며 단칼에 자른다. 하지만 뉴스거리를 발견한 총리실 홍보책임자는 프레드에게 프로젝트를 돕도록 명령한다. 프레드는 처음엔 왕자의 취미생활을 위한 돌발행동 정도로 오해한다. 그러나 척박한 예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댐을 짓고, 덕분에 생태계가 살아났음을 알리는 상징으로 왕자가 연어 낚시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해리엇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어의 DNA에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다. 자연산이든 양식장에서 나고 자란 연어든 마찬가지다. ‘개 같은 내인생’(1985), ‘길버트 그레이프’(1993) 등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 노 감독 라세 할스트롬은 ‘새먼 피싱 인 더 예멘’에서 연어뿐 아니라 사람 또한 때론 정해진 흐름을 거슬러 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한마디 상의 없이 출세를 위해 6개월짜리 파견직을 덜컥 자원한 아내이든, 프로젝트의 타당성에 관계없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길 요구하는 총리실 고위 관계자이든 프레드가 고분고분 따르라고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프레드는 깨닫는다. 종교이든, 신념이든, 믿음이든,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때로는 모든 것을 내던질 필요가 있다는 걸. ●이완 맥그리거 등 英 배우들에 눈이 호강 그렇다고 ‘새먼 피싱 인 더 예멘’이 고리타분하고 엄숙한 영화는 아니다. 제법 긴 112분의 러닝타임이지만, 억지웃음이 아닌 드라마와 캐릭터에서 뽑아내는 영국 코미디 특유의 쏠쏠한 재미가 잘 담겨 있다. 냉소적인 프레드 역의 이완 맥그리거와 모든 일에 열정적인 해리엇 역의 에밀리 블런트, 총리실 홍보책임자로 나오는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등 연기 잘하는 영국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도 제법이다. 다만, 둘 다 짝이 있는 탓인지 해리엇과 프레드가 서로 감정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급반전이라고는 하지만 예측 가능했던 결말은 옥에 티. 또한, 낚시란 소재 때문에 ‘흐르는 강물처럼’(1992)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플라이피싱은 단순한 낚시 행위를 넘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면, ‘새먼 피싱 인 더 예멘’의 낚시는 코미디의 소재일 뿐이다. 외국에서는 지난 3월 개봉했다. 2961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뒀다. 영화 평점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작품의 신선도를 68%로 평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신체 자극과 내적 표현의 조화…열정적 무용수들이 이룬 쾌거”

    “신체 자극과 내적 표현의 조화…열정적 무용수들이 이룬 쾌거”

    “넘치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남성무용수들 몸에서 뿜어 나온다. 음악이나 움직임 구성에서 동서양의 특징이 잘 어우러져 있어 매혹적이다.”(장광렬 춤평론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최근 유럽에서 공연하는 많은 작품들과 차별성이 존재한다.”(엔리케 가사 발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발레단 예술감독) ●“국내 첫 레퍼토리 계약 얼떨떨” 현대무용단 LDP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신창호(35)가 2002년 첫선을 보인 ‘노 코멘트’(No Comment)는 이런 이유로, 인스부르크 발레단에 ‘팔렸다.’ 공연계 용어로는 ‘공식 레퍼토리 수출’이다. 올해 말부터 1년 동안 15번 공연에 안무료 4000유로(약 560만원), 추가 공연에 안무 로열티가 붙는다. 돈과 혜택을 떠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의 작품을 해외 무용단이 산 것이 처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무용계에서는 대단한 성과로 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덤덤하다. “얼떨떨한 거죠. 발가 예술감독이 계약서를 보내왔어요. 무용수를 초청해 올리는 공연 정도로 생각했는데, 얘기가 좀 이상해요. 알고 보니 레퍼토리 계약이었던 거죠.” 지난 12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그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투로 공연 이야기를 풀어냈다. 2000년대 초 영국, 스위스 등 유럽에서 활동하던 그는 “독일 유로뉴스에서 어떤 코멘트도 없이 영상만 보여 주는 코너를 봤다. 전쟁 통에 무너진 집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치고 울부짖는 이라크인을 조명했는데, 몸의 움직임과 소리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전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가슴을 치고, 온몸으로 바닥을 때리거나 야구선수가 슬라이딩을 하듯 미끄러지는 동작들을 모아 작품을 완성했다. 2002년 초연한 이후 꾸준히 국내 공연을 했다. 2010년에는 ‘코리아 무브스’에 선정돼 영국 런던 더 플레이스 무대에 올랐고, 지난해 제이콥스 필로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유럽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10년간 수정·보완하며 수작 만들어 “유럽 무용작은 관념적인 표현이 많은 반면, 미국식은 신체적 기술에 치중하고 있다. ‘노 코멘트’는 신체 자극과 내적 표현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간 듯하다.” 큰 호응의 원인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무용수들은 다소 괴롭다. “가슴을 치다가 멍이 들고 바닥에 미끄러질 때 요령을 몰라 피부가 찢어지기도 했다.”는 그는 “열정적으로 해주는 무용수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겸연쩍게 웃었다. 자신도 무용수로서 함께 뒹굴고 미끄러지기에 얼마나 고된지 안다. 인스부르크 발레단이 공연하는 작품은 원전에 살짝 변화를 준 ‘노 코멘트 Ⅱ’이다. 원전은 무용수가 남성 10명으로만 구성됐으나 버전2에선 남녀 각 9명으로 바뀌었다. 여성 무용수가 참가하면서 움직임과 음악이 더 세밀해졌다. 여성 무용수에게 신체 타격이 무리가 아닐까 물었더니 “정말 잘 소화하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안무한 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웃는다. 무용수들이 객석에 뛰어들어 진동을 만드는 장면은 새 버전에서도 볼 수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원작자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연말 오스트리아 티롤 국립극장 공연에 앞서, 17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18분짜리 버전으로 먼저 선보인다. 어떤 안무가를 보유하고 있는가가 무용계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말이 있다. 한국은 안무가가 성장하기에 척박하다고도 한다. “사실 젊은 안무가들이 지원받을 경로는 많습니다. 문제는 계속 새로운 결과물만 요구하는 거예요. 멋진 작품이 한순간에 척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꾸준히 수정하고 보완해서 수작이 만들어지는 거죠.” ‘노 코멘트’가 10년 만에 맺은 결실은 단지 ‘최초’가 아닌, 오랜 기다림과 담금질에서 비롯됐다는 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문재인, 리더십 없다는 소리에 발끈하더니…

    문재인, 리더십 없다는 소리에 발끈하더니…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리더십이 없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그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14일 전북 전주의 섬유 제조업체에서 열린 한국노총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치를 오래 한 분 같으면 능력을 인정하겠나.”라며 속에 품은 얘기들을 직설적으로 털어놨다. 이날 문 고문은 전북지역 경청투어의 이틀째 일정을 진행했다. 문 고문은 “민주당 다선(多選) 분들을 (대선) 후보로 삼으면 되는데 뭐 때문에 그분들 지지도가 2%, 3% 밖에 안되겠느냐.”면서 “정치를 오래 했다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관점과 열정이 필요하다.”면서 “기존의 정치·관료 경력이 필요하다는 기준을 국민이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경력 없는 안철수 원장을 왜 지지하겠나. 시민운동 하던 박원순 변호사는 시장 되니 얼마나 잘하나.”라면서 “당내에서 내가 가장 많이 지지받는 이유는 정치에 발을 가장 덜 담갔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날 전북작가회의가 주최한 토크콘서트에서는 “제가 점점 대세가 돼가는 것 같죠?”라면서 “범 야권 전체를 넘어서 대선 승리도 절반은 대세가 된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문 고문은 앞서 이날 오전 전주 남부시장에서는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진땀을 빼며 “아저씨는 정치인이지.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정한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져야”

    “진정한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져야”

    “진정한 평화는 정부 대 정부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져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이집트에 반(反)이스라엘 성향의 이슬람주의자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앞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관계에 대한 전망을 묻자 아키바 엘다(67)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집트의 새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두 나라가 평화적인 관계를 이루는 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주요 일간 하레츠의 선임 편집인인 엘다는 ‘한국·이스라엘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지난 6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2006년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 중 한 명이며, CNN·뉴욕타임스 등 여러 외신에 이스라엘 정치 및 중동 평화 협상과 관련한 기고를 내고 있다. 그는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 이른바 ‘아랍의 봄’이 이스라엘 사회에 시사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들이 참여한 민주화 혁명이 이스라엘과 지난 수십년간 갈등을 겪어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극해 폭력적인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사회가 변화하기보다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원한다.”면서도 “이와 같은 변화와 맞닥뜨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국제 사회가 강력한 제재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엘다는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효한 이란산 석유 금수 조치를 예로 들며 “EU가 취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런 방법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좀 더 평화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엘다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공통점이 많다며 이 점이 두 나라가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인 엄마와 유대인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교육에 상당한 열정을 쏟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이들을 어떤 상자나 틀에 넣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교육 방식이며, 이는 이스라엘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동적인 힘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엘다는 12일 이스라엘로 돌아가 하레츠 신문에 한국을 소개할 예정이다. 글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00년 위업’ 은하충돌 시기 밝힌 NASA 손상모 박사

    ‘100년 위업’ 은하충돌 시기 밝힌 NASA 손상모 박사

    “지구서 달에 있는 사람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 재는 격” “우리 은하는 40억년 뒤 안드로메다은하와 첫 충돌하고 65억년 뒤면 하나로 합쳐져 더 큰 은하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하는 거의 빈 공간이고 별간 거리도 멀어 태양과 다른 별이 실제로 충돌할 확률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때까지 지구 상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보는 밤하늘은 지금과는 현격히 다를 것입니다. 먼저 은하가 다가오는 동안 안드로메다는 점점 커질 것이고 충돌 전엔 하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40억년 뒤엔 두 은하 모두 충돌로 모양이 훼손돼 지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65억년 뒤엔 하늘에 은하수 대신 타원은하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출신의 과학자 손상모(36)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래 상황에 대해 위와 같이 예측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기관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에서 롤랜드 반더마렐 박사 연구팀에 참여한 손 박사는 “이상의 미래 예측은 허블의 관측 결과가 없었다면 근거가 없는 억측으로 치부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드로메다의 정확한 궤적을 알기 때문에 신빙성을 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가 미래에 겪게 될 일에 대한 놀라운 내용(두·세 번째 논문 1 저자는 반더마렐 박사며 손 박사는 공동저자다.)은 손 박사가 충돌 시기를 계산한 첫 번째 논문 결과와 함께 천문학 분야 최고 권위인 ‘천체물리학저널’ 7월 1일 호에 실렸다. 특히 이 같은 예측을 위해서는 정확한 측정 결과를 요하는 데 그 중요성 때문에 손 박사의 논문은 지난 5월 3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NASA 기자회견에서 핵심 내용으로 다뤄졌다. 우리은하를 향해 안드로메다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지는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손 박사는 “야구공에 비유하면 타자가 공이 다가오는 것은 아는데 직구로 오는지 큰 커브를 그리면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로 공이 직구, 그것도 정확히 어떤 코스로 날아오고 있는지 확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드로메다가 우리은하로 다가오는 건 오래전부터 도플러 효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손 박사는 “도플러 효과의 원리는 경찰들이 과속차량을 단속할 때 쓰거나 야구에서 공의 속도를 측정할 때 쓰는 스피드건과 같다. 그러나 좌우로의 움직임(천문학에서는 이를 고유운동이라고 한다.)은 워낙 미세한 정도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손 박사에 따르면 어떤 천체가 좌우로 움직이는 운동을 잴 때 사용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망원경을 통해 영상을 찍고, 몇 년 뒤 다시 똑같은 영역의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 안에 관심 있는 천체가 얼마만큼 움직였는지 거리를 재면 천체의 이동 속도가 나온다. 손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도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면서 “다만 이전 연구와 다른 점은 안드로메다 정도 되는 거리의 천체에 대해 이런 측정을 아무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설명했다. 다음은 손상모 박사와의 이메일 인터뷰. →안드로메다은하가 다가오는 속도는 어떻게 측정했는지 허블로 관측한 영상은 5~7년이라는 시간차이를 두고 촬영했다. 이 기간에 안드로메다가 움직인 거리는 허블에 달린 초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에서 고작 약 1/100 픽셀(화소 단위)이다. 이런 움직임은 기존의 많이 쓰는 기술로는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본인이 주도적으로 약 1년 반가량을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기술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보냈고 마침내 만족할 만한 정밀도로 측정이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측정한 속도를 비유하면 ‘지구에서 달에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를 재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번 연구가 주목을 받았다. 감회가 어떤지 과학자는 주로 논문을 통해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세상에 알리고 업적을 평가받는다. 논문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의 또는 타의 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이를 주요 언론들이 조명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NASA에서는 기자회견을 할 정도의 기회가 그리 많은 과학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해 매우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 운도 따랐다고 생각한다. 허블을 이용한 수많은 연구 논문 중에서 NASA가 유독 이번 우리 연구팀의 결과에 주목하고 기자회견까지 한 이유는 허블이 아니면 측정할 수 없는 결과, 결과의 신빙성, 그리고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내용 (은하끼리의 충돌이라는 점) 때문으로 판단된다. NASA에선 여러 형태로 보도자료를 내는데, 이번 연구는 Science Update(사이언스 업데이트) 형식으로 보도됐다. Science Update는 NASA에서 행하는 대외 보도 중 최상위 것으로 1년에 10여 개를 내고 그중 천문학 논문에 대한 것은 1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이런 중요성을 입증하듯 미국 내의 대부분 주요 매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다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보도 덕분에 캐나다의 라디오 방송과 브라질의 과학 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등 색다른 경험도 하게 됐다. →STScI에 들어간 계기는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STScI의 롤랜드 반더마렐 박사가 허블을 이용해 안드로메다의 고유운동을 측정하는 연구를 한다는 정보를 듣고 해당 연구원을 뽑는 자리에 지원했다. 천문학자들에게도 안드로메다의 고유운동은 정밀한 관측과 복잡한 분석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지만 까다로운 일로 알려졌다. 또 결과 자체가 어떻게 나올지 불분명하기에 빠른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 과학계 풍토에서 이런 일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걸 꺼리는 천문학자도 많다. 이런 불안한 요소를 알고 있음에도 난 관측천문학자로서 어려운 일을 하는 데 대한 도전 의식 같은 것이 발동해 STScI로 진로를 정했다. 이곳에 와서 좋은 결과도 발표하고 새로 배우고 개발한 기술도 많아서 지금으로서는 전혀 후회 없다. 국외 진출한 한국학자들은 얼마나 되고 이들 간에 교류는 있는지 다른 분야도 그렇다시피 갈수록 한국 과학자들의 잠재성이 인정돼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으로 해외 진출한 천문학자가 늘어가는 추세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수로 해외 진출한 한국인 천문학자는 그리 많지 않기에 서로 잘 아는 편이다. 특히 1년에 두 번 열리는 큰 학회인 미국천문학회 회의 때는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한국인 천문학자끼리 모여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연구 분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외에도 해외 진출한 한국인 천문학자로 이뤄진 그룹이 페이스북에 있고, 주소록/연락처 데이터베이스가 매년 업데이트된다. →천문학자를 꿈꾸게 됐던 이유는 무엇인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천문학자라고 답하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바로 ‘나도 한때 우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공부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누구나 우주에 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난 정확히 5살 때부터 천문학자를 꿈꿨다. 당시 주재원으로 파견되신 부친을 따라 미국 뉴저지에 3년간 살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우주 관련 서적을 많이 접하게 된 것이 꿈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확신한다. →향후 연구 계획은 무엇이고 진로는 어떠한지 이번 연구로 연구팀의 업적이 인정돼 허블을 이용한 연구 프로젝트가 몇 가지 채택됐다. (허블을 이용하려면 논문에 가까운 지원서를 작성해 8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채택돼야 한다.) 현재 연구 중인 내용은 가까운 은하들의 고유운동을 통해 은하 형성과 진화 역사를 규명하는 일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기술은 안드로메다 연구에서 사용했던 기술과 거의 같다. STScI에서는 계약이 4~5년으로 정해져 있고 앞으로는 좋은 연구원이나 대학교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지원할 예정이다. 직업적인 꿈 외에도 천문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꿈들이 있다. 우주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신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중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천문학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특히 이를 위해 언젠가 강연도 하고 책을 쓰고 싶기도 하다. →천문학자가 꿈인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지금은 한국에도 좋은 (천문학 관련) 책이 넘쳐나고 있다. 그만큼 훌륭한 천문학자도 많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전의 ‘춥고 배고픈 학문’이라는 선입견보다는 차세대를 주도할 학문이라는 긍정적 면이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인 듯하다. 천문학자가 되는 길은 과학과 적성이 맞는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어떤 유혹이나 역경에도 그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천문학을 할 정도의 열정이 있는 사람 중에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다른 분야로 간 경우를 자주 봤다. 막연한 동경과 신비로움 때문에 꿈이 생겼다면 책이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 그 꿈을 구체화해가는 것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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