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열사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 에듀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 중독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 앨런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825
  • 30대 그룹 일자리 화답… 1년간 1만 4000명 늘었다

    30대 그룹 일자리 화답… 1년간 1만 4000명 늘었다

    CJ, 4462명 늘려 최다… 삼성·SK·LG순 정규직도 1만8714명 증가… 고용질 개선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확대되면서 국내 30대 그룹의 고용 인원이 1년 전보다 1만 4000명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 대기업들이 화답했다는 분석이다. 16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소속 계열사 고용 인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와 비교가 가능한 30대 그룹 262개 계열사의 올해 6월 말 기준 고용 인원은 96만 479명으로 1년 전의 94만 6467명보다 1만 4012명(1.5%)이 늘었다. 특히 30대 그룹이 지난 1년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정규직 채용을 늘리면서 직원 가운데 정규직은 90만 4832명으로 1년 전인 88만 6118명보다 1만 8714명(2.1%)이나 증가했다. 고용이 가장 많이 늘어난 그룹은 CJ로 지난 1년간 2만 247명에서 2만 4709명으로 4462명(22%)이나 증가했다.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가 간접 고용했던 급식 점포의 서빙·배식 보조 직원을 직접 고용한 영향이 컸다. 삼성과 SK도 각각 3946명(2.1%), 2530명(4.6%)을 늘리며 고용을 확대했다. 이어 LG(2365명·1.9%)와 현대백화점(1633명·16.3%), 한화(1564명·5.6%), 롯데(1379명·2.3%) 등도 1000명 이상 일자리가 늘었다. 정규직 숫자를 가장 많이 늘린 그룹도 CJ로 정규직이 4365명(22.1%) 증가했다. 이어 삼성이 4024명(2.2%) 늘리는 등 CJ와 삼성이 정규직 확대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6월 말 현재 5만 5647명으로 1년 전보다 4702명(7.8%) 줄었다. GS의 비정규직 직원이 1년 만에 3863명에서 2451명으로 36.6%나 줄었고, 롯데(1110명·18.6%)와 KT(719명·19.9%)도 비교적 큰 폭으로 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고용 인원이 감소한 대기업은 현대중공업그룹(1280명·4.1%), GS(1156명·4.8%), 대림(594명·6.1%), 두산(420명·2.6%), 대우조선해양(382명·3.7%) 등이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6) 급성장을 이끈 CJ그룹의 주역 CEO들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6) 급성장을 이끈 CJ그룹의 주역 CEO들

    이재현 회장, 공격경영위해 50대 CEO 전진배치김홍기 CJ대표, 이 회장 10년 비서실장 지낸 측근신현재-허민회 대표, 그룹출신 핵심 CEO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5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 공격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2020년까지 물류, 바이오, 문화콘텐츠 등에 인수·합병(M&A)을 포함해 3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요 계열사 CEO 대부분을 1960년대생, 50대로 채웠다. 김홍기(53) ㈜CJ 대표는 지난해 11월 총괄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을 총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서울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대학원을 졸업한 김 대표는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2000년 CJ제일제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전략팀, 비서팀, 인사총괄을 거쳤다. 2005~2014년까지 10년 가까이 이 회장 비서팀장으로 근무한 측근이다. 박근태(64) CJ대한통운 사장은 재계에서 ‘중국통’으로 꼽힌다. 능통한 중국어에 주중한국상회와 길림성장 경제고문 등을 맡았다. 중앙고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30여 년간 지내면서 중국에 제 2의 CJ를 건설한다는 그룹의 전략에 맞춰 현지 사업 확대를 일궈왔다. 2015년부터는 CJ대한통운 사장으로 취임해 중국 최대 냉동냉장 기업이자 종합물류기업인 CJ로킨 (Rokin)을 인수하고, 중국 굴지의 가전업체와 합작물류법인 ‘CJ 스피덱스’를 출범시켰다. 신현재(57) CJ제일제당 대표이사는 CJ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친 재무통이자 경영전략가로 인정받고 있다. 부산 중앙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입사해 경리, 자금, 관리 분야에서 탄탄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7년 ㈜CJ 사업총괄을 역임한 뒤 2010년부터는 CJ오쇼핑 경영지원실장과 글로벌본부장을 지냈다. 2012년 CJ대한통운 대표이사와 글로벌부문장을 겸임했고, 2014년 ㈜CJ 경영총괄로 재직했다. 강신호(57)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는 그룹의 과제인 한국 식문화(K-푸드) 세계화에 앞장서는 식품 전문가다. 포항고-고려대 경영학과-KAIST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88년 CJ제일제당에 입사했다. 2013년부터 CJ프레시웨이 대표를 지내면서 식자재 대표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변동식(58) CJ헬로 대표는 기술, 전략, 마케팅 경험을 두루 갖춘 융복합형 방송통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운봉고-인하대 전자공학과-서강대 경영학(석사)-서울산업대 방송통신정책학(박사)을 마친 학구형이다. IT·전자·통신 분야의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허민회(56) CJ ENM 대표는 CJ그룹에서 핵심회사의 경영을 두루 맡아온 전문경영인이다. 마산고와 부산대 회계학과, 연세대 MBA를 졸업했다. CJ투자증권 경영팀장과 경영지원본부장을 역임했다. CJ그룹 사업총괄 부사장과 CJ푸드빌 대표를 거쳐 다시 CJ그룹에서 경영총괄을 맡는 등 재무전문가로 통한다. 이후 2014년 CJ올리브네트웍스 총괄 대표, CJ제일제당 경영지원총괄을 거쳐 2016년부터 CJ오쇼핑 대표를 맡았다. 이후 지난 7월 CJ 오쇼핑과 CJ E&M 합병법인인 CJ ENM이 출범하면서 대표를 맡는 등 CJ 그룹과 계열사 경영을 전방위적으로 맡아왔다. 허민호(54) CJ ENM 오쇼핑부문 대표는 충암고와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10년간 CJ올리브영의 대표를 맡아 헬스&뷰티 스토어라는 신개념 유통 플랫폼을 한국에 안착시킨 유통전문가다. 서정(58) CJ CGV대표는 영등포고와 한국외대 스웨덴어학과를 나와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이후 CJ오쇼핑으로 옮긴 뒤 마케팅, 영업, 글로벌, 인터넷몰 사업 등을 거쳤다. CJ CGV는 2014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2017년에는 처음으로 글로벌 관객 수가 국내 관객 수를 넘어섰다. 구창근(45) CJ올리브네트웍스 올리브영부문 대표는 그룹 내 가장 젊은 CEO다. 창원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CJ주식회사 기획팀장, 전략1실장 등을 거치며 그룹내 주요 사업들을 주도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푸드빌 대표이사를 맡아 외식서비스 사업의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CJ올리브영부문 대표를 맡았다. 문종석(57) CJ프레시웨이 대표는 ‘식자재 유통업계의 마당발’로 불리는 현장형 CEO다. 부산대 사대부고-부경대 무역학과-핀란드 Aalto대 경영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동원그룹에 입사해 동원홈푸드 대표를 지냈다. 2013년 CJ프레시웨이로 적을 옮기며 단체급식 본부장과 유통사업총괄을 거쳤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삼성그룹에서 분리 뒤 22년만에 CJ 20배 괄목성장선진적 기업문화로 취준생 ‘입사하고 싶은 기업1위’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58) 회장은 설탕과 밀가루 제조기업에 불과한 제일제당을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다각화에 나서 오늘날 CJ그룹으로 일군 ‘제2의 창업자’로 평가받는다. 분리 당시 1조 73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 약 35조원을 기록하는 등 22년만에 CJ그룹을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키웠다. 이 회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이 회장은 김만조 전 연세대 교수의 딸 김희재(58)씨와 결혼한 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할머니 박두을씨가 20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복남(85) 고문을 모시고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 ‘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장손인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1985년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기획관리부장,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 제일제당 부사장, 부회장을 거쳐 2002년 마침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남들이 제조업과 수출에만 매달려 있던 20여년 전에 이미 문화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에 나섰다. 단기 적자에 연연하지 않고 큰 그림의 사업방향을 제시하며 그룹의 도약을 이끌었다. 1995년 미국 신생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약 3000억원) 투자를 결정하고,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영화사업에서 철수할 때 문화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부쳤다. 이 회장이 CJ그룹을 키운 데에는 시련도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만성신부전증과 삼성가의 유전병으로 알려진 CMT(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는 등 몸이 편치 않다. 2013년에는 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그룹이 총수 부재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2017년 5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그레이트 CJ’와 ‘월드베스트 CJ’를 경영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레이트 CJ는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고, 월드베스트 CJ는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해 그룹 지배구조를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으로 단순화했다. 인수합병과 매각 등을 통해 주요 계열사들을 정비하고 있다.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이후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브라질 셀렉타, 러시아 라비올리, 베트남 민닷푸드 등을 인수했다. CJCGV는 러시아에 진출한 데 이어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4D플렉스 상영관을 열었다. CJ대한통운도 2017년 아랍에미레이트 이브라콤, 인도 다슬로지스틱스를 사들인 데 이어 베트남 제마뎁과 지분 인수 계약을 맺었다. 올 들어 대대적인 내부 사업 재편에도 나서 지난 7월 CJ 오쇼핑과 CJ E&M의 합병 법인 ‘CJ ENM’을 출범시켜 국내 최초의 융복합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기업문화도 선진적으로 바꿨다. 2000년부터 말단직원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직급에 관계없이 이름 석자에 ‘님’자만 붙여 부르는 호칭파괴와 복장자율화, 플렉서블 출퇴근제 등을 단행했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달 동안 ‘자녀입학 돌봄휴가’를 낼 수 있다.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도 신설해 일시적으로 긴급하게 자녀를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기면 하루에 2시간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남성의 출산휴가(배우자 출산)를 2주 유급으로 늘리는 등 임신과 출산 지원 역시 법정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이뤄진다. 이런 기업문화로 잡코리아에 따르면 CJ그룹은 2018년 취업준비생들이 상반기에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혔다. 2016년부터 3년 내리 취업준비생들이 꼽은 ‘직원 복지문화’가 제일 좋은 기업이기도 하다.이 회장은 부인 김희재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이경후(33) 상무는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2011년 7월 CJ주식회사 사업팀 대리로 입사했다. 지난해 11월 CJ 미국지역본부 상무로 승진한 뒤 지난 7월부터 CJ ENM의 브랜드전략담당으로 근무중이다. 남편 정종환(39) 상무는 CJ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미국 사업을 관할하고 있다. 아들 이선호(28)씨는 미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을 전공한뒤 2013년 CJ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에서 대리점 영업, 마케팅 등 현장경험을 쌓은 뒤 제일제당 BIO사업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79) 회장은 1995년 제일제당 회장에 취임한 이후 20년 넘게 이재현 회장과 함께 CJ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경기도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가 부친이다. 이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고문이 친누이다. 손 회장은 경기고 2학년 재학 중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수재다. 안국화재 사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치며 삼성그룹에서의 분리독립 등 위기때마다 이 회장을 도왔다. 손 회장은 대한상의회장을 거쳐 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등 경제계를 대표하는 원로 경영인이다.이 회장의 누이인 이미경(60) CJ그룹 부회장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푸단(復旦)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CJ 그룹이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동생인 이재현 회장을 도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왔다. 지난해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신규회원으로 위촉됐다. 진보적인 영화를 제작·지원한다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영일선 퇴진을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둘째 남동생은 이재환(56) CJ파워캐스트 대표다. 이 대표는 최근 요트를 개인 용도로 구입해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있는 중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

    김구 선생, 이봉창 열사 등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 효창공원이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한다. 16일 국가보훈처는 내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보훈처는 연내 효창공원 성역화를 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에 관련 연구용역 의뢰 등 독립공원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보훈혁신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효창공원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덟분의 독립유공자가 안장되어 있으나, 독립유공자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 아닌 한낱 공원으로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조성하라”고 권고했다. 보훈처는 “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성역화하기로 했다”면서 “효창공원내 독립유공자 묘역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성역화하는 것을 골자로 사업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번지 일대의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과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소를 비롯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 등 임정요인 묘역도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2018 모던보이들은 행복할까

    [흥미진진 견문기] 2018 모던보이들은 행복할까

    1930년 경성, 소설 속의 구보가 걸었던 암울한 식민지 수도였으나 화려한 도시문화가 시작되던 역동적인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광통교를 지나 구보의 집터였던 다옥정 7번지 근처인 한국관광공사로 이동했다. 엘리트지만 백수였고, 작가이자 모던 보이였던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최서향 해설사를 통해 만났다.모던 보이를 상징하는 ‘오갑빠머리’와 잘 빠진 양복을 입은 박태원의 사진을 보며 한껏 멋 부리고 이 거리를 누볐을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을 상상해 보았다. 종로네거리 화신상회(종로타워)와 유리 빌딩 사이 오랜 벽돌 건물인 광통관(우리은행 종로지점)을 지나 나석주 열사 동상이 있는 황금정(하나은행 본점)으로 이동했다. 경제 수탈의 중심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결한 나석주 열사의 굳게 다문 입과 힘 있게 움켜쥔 두 손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전차가 다녔으리라고 짐작도 되지 않는 도로, 높은 건물들 사이로 긴 걸음이 계속됐다. 구보가 전차에서 내렸다는 조선은행(한국은행)을 지나 단골 카페 낙랑파라(더플라자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구보가 일정 중 3번이나 들렀다는 이곳에서, 그는 지인들을 만나 소통하고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당시의 일상이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아 신기했다. 화려했다던 소공로 골목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던 양복점들이 이전하고 텅 비어 있었다. 구보가 느꼈을 피로를 같이 느끼며 어둑해진 거리를 따라 ‘서울로7017’로 향했다. 각기 다른 빌딩에서 내뿜는 빛으로 완성된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수많은 자동차가 비추는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빛의 한가운데 서자 1930년에서 2018년으로 빠르게 이동한 듯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행복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경성을 배회한 구보가 오늘의 우리를 행복한 사람들로 생각할까 궁금해진다. 이지현 책마루독서교육연구회 연구원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제 암흑기·근대 새벽의 경성…구보씨의 고독한 하루를 걷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제 암흑기·근대 새벽의 경성…구보씨의 고독한 하루를 걷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4회 서울의 문학1(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편이 지난 14일 진행됐다. 여름 야행 세 번째 행사가 치러진 이날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이 느껴졌으나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예약하지 않고 현장으로 직접 오거나 현장에서 일행을 따라나선 이들도 있어 준비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과 쿨 스카프가 동났다.이날 투어는 집결 장소인 청계광장의 소음을 피해 한국관광공사 2층 관광안내센터 ‘K-STAR 존’으로 이동,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쾌적하게 시작했다. 서울 중구 다동 10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는 구보의 옛 집터(다옥정 7번지)이다. 청계천을 따라 광교까지 나간 뒤 화신백화점(종로타워)을 보고, 나석주 열사의 동상이 서 있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하나은행 본점)~조선은행(한국은행 화폐박물관)~소공로 낙랑파라(더플라자호텔)~숭례문~경성역(서울로7017) 구간을 걸었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구보의 동선을 안내하면서 소설 속의 적절한 장면을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문학 향기를 음미하면서 몰입했다. 1930년대 경성과 박태원이라는 소설가, 주인공 구보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구보가 배회했던 1930년대의 서울, 식민지의 수도 경성은 어떤 도시였을까. 일제강점기의 암흑과 근대의 새벽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식민 잔재라는 이름으로 혹은 근대유산이란 이름으로 서울 도시 공간 곳곳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도시는 자연환경의 개조이고, 근대성의 임상실험이다. 이 시기 식민지 도시문화와 도시계획이 만들어 낸 지층이 우리가 사는 21세기 서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식민통치기 경성의 외관과 도시민의 내면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주입하는 일본식 전통과 일본이 도입한 서구 문물이 혼재돼 있었다. 중국식 전통이나 중국을 경유한 서구 문물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서구 문물에 눈을 뜨고, 귀가 열린 게 바로 1930년대 경성의 본질이다. 한국적 근대의 비밀은 한국인이 서구에서 직접 가져오거나, 서구에서 전해진 게 아니라 일본을 거쳐서 받았다는 데 있다. 소설 속 식민지 지식인 구보가 걸었던 소공로와 남대문로의 이국적 풍경과 우울한 독백 또한 여기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구보가 소설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경성은 사실상 새로운 도시였다. 현대 서울의 기원은 조선의 수도 한성이 아니라 경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부터 30년 동안 경성시구개수 계획과 경성시가지 계획에 따라 경성의 간선도로망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전통적 도심 공간의 구조를 재편했다. 청계천 이북 종로 중심 도시구조를 청계천 이남 경성부청(시청) 중심의 격자형 도시로 뜯어고쳤다.광화문 네거리 정동 쪽을 막고 있던 황토마루(황토현) 고개를 밀고 광화문~남대문에 이르는 남북 간 축선도로 태평로(세종대로)를 뚫었다. 종묘관통선(율곡로)을 만들고, 식민통치 기구와 일본인 거주지가 밀집한 본정통(충무로)과 황금정통(을지로) 중심의 방사상 도로망을 구축했다. 본정통과 남대문의 교차점인 조선은행(한국은행) 앞에 광장을 조성하고, 경성부청과 조선은행 앞 광장을 잇는 장곡천정통(소공로)을 뚫어 연결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하나은행 본점) 등 일제의 경제 수탈기구와 금융기관, 백화점이 명치정(명동)·본정통(충무로)과 이어졌다. 소설의 주인공 구보는 월북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분신이다. 박태원은 이념을 배제하고 도회적인 풍물과 도시성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도시를 무대화하면서 전통의 몰락, 가족의 생성과 해체, 물질주의와 환락의 변주, 반복되는 일상을 묘사했다. 도시를 배경으로 개인의 일상을 그려 내면서 내면의식의 추이를 서술하는 모더니즘소설의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도시 문학의 전형이다. 소설 속 구보는 집을 나서 경성 최고의 백화점을 둘러보고, 전차를 타고, 당대 대표적 건축물인 조선은행을 지나 경성역을 오간다. 낙랑파라로 대표되는 경성의 다방과 술집에서 오가는 대화와 친구와의 만남은 욕망과 소비문화의 분출을 나타낸다. 박태원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설이 구구했으나 2016년 구보의 장남 박일영이 펴낸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문학과 지성사)이 믿을 만하다. 조부 때부터 약방을 운영했고 부친이 약종상으로 공애당약방을 운영했으며 숙부가 양의로서 공애의원을 개업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개화한 중인가문 출신이라고 알려졌으나 밀양 박씨 양반 가문임을 족보를 통해 밝혔다. 구보의 첫 부인 김정애는 한약국집 무남독녀로 숙명여학교(숙명여고)를 수석졸업하고 경성사범학교(서울사대) 연수과를 수료한 뒤 진천에서 보통학교 교사를 지낸 신여성이었다.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영화 ‘괴물’, ‘설국열차’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외손자이다.구보는 7살 때부터 소설책에 관심을 보여, 9살까지 춘향전과 심청전 등 집에서 구할 수 있었던 시중의 이야기책 50~60권을 독파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 재학 중이던 17살 때 본명으로 시 ‘할미꽃’을 발표했고, 18살 때 춘원 이광수에게 사사했으며 스승의 글을 평한 ‘묵상록을 읽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걸 천재에게 정규교육은 불필요하다”면서 휴학, 집에 틀어박혔던 시절도 공개됐다.이상한 머리 모양과 친구 이상과의 우정, 월북 후 ‘갑오농민전쟁’ 출간 스토리가 대표적 이야깃거리다. 23세에 도쿄 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구보는 빨간 넥타이에 지팡이를 짚고, 바가지 머리 모양으로 다니면서 장안의 화제 인물이 됐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오갑빠머리’에 대해 구보는 ‘나는 내 머리를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다.… 내 머리터럭은 그저 제멋대로 위로 뻗쳤다. 나는 수없이 빗과 기름을 가지고 이것들을 다스리러 들었다.… 이마 위에 간즈런히 추려가지고 한일자로 짜르는 방법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상과 구보에 대해 ‘자신만큼 아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장담한 언론인이자 작가 조용만은 저서 ‘구인회 만들 무렵’에서 ‘이상과 구보는 짝패였다. 이상의 더벅머리와 수염에 대해서 구보의 ‘오갑빠머리’가 한 쌍이었고, 언변에 있어 두 사람이 주고받는 결말을 들으면 포복절도할 만담가의 흥행을 보는 것 같았고…둘이 다 한가한 몸이므로 밤낮 붙어 다니며 노닥거렸다’고 기록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여름야행 4=성수동(서울숲 밤마실) ●일시:8월 18(토) 오후 6~8시 ●집결장소: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 3번 출구 역 구내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기록적 폭염에…우리 아이 학교도 개학 늦추나

    서울교육청, 초·중·고 개학 연기 등 권고 서울 일부·경남 12곳 최대 1주일 연기 단축 수업·냉방 등 대책 마련도 분주 한반도를 덮친 최악의 무더위의 기세가 꺾일 기미를 안 보이자 개학철을 맞은 전국 학교에도 비상이 걸렸다. 무더위 속에 등·하교하거나 수업을 받다가 자칫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걸릴 수 있고, 급식 때 식중독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0~19세 온열질환자는 135명(지난 14일 기준)이나 됐다. 서울과 경남도 등의 일부 학교는 개학 연기를 결정했고, 나머지 학교들도 단축 수업이나 냉방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15일 서울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육청이 전날 시내 전체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1365개교에 “학교장이 학교 구성원 의견과 폭염 상황 등을 검토해 개학 연기 등 학사일정을 조정하라”고 안내했고, 충암중 등 일부 학교가 개학을 나흘 안팎 늦추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충암중 관계자는 “방학 동안 학교 소방시설 공사를 했는데 무더위 탓에 공사 일정이 지연된 데다 기온이 도통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교사·학부모·지역 인사 등으로 꾸려진) 학교운영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개학을 나흘 늦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전체 초·중·고교의 약 11%인 155곳만 14일까지 개학했으며 중·고교는 애초 다음주 개학일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더위를 피해 개학을 늦추는 학교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창원·김해·진주·거제 등 경남 지역의 초·중·고교 12곳도 개학을 최소 하루에서 일주일까지 늦췄다. 하지만 기록적 폭염 앞에 개학 연기는 미봉책이다. 초·중·고교는 연간 법정 수업일수(190일 이상)를 맞춰야 해 여름방학이 길어진 만큼 겨울방학이 줄어드는 등 남은 학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낮기온이 떨어질 때까지 학교에서 학생 안전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앞서 교육부는 폭염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각 시·도 교육청과 학교에 내려보냈다. 폭염주의보(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 예상)가 발령되면 ▲단축수업 검토 ▲체육활동 등 야외활동 자제 ▲학교 급식 식중독 주의 등의 조치를 하고, 폭염경보(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 예상)가 떨어지면 ▲등·하교 시간 조정 및 휴업 검토 ▲체육활동 등 야외활동 금지 등을 하라는 내용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대한항공 위기 부른 조현민, 진에어 등서 4개월간 17억원

    대한항공 위기 부른 조현민, 진에어 등서 4개월간 17억원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조현민(35) 전 대한항공 전무 겸 진에어 부사장이 올해 1~4월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퇴직금을 포함해 총 17억원이 넘는 보수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 총 8억 6884만원, 진에어는 8억 7400만원이다. 이중 급여가 각각 1억 6918만원과 1억 7300만원, 상여금이 총 5339만원 등이다. 전체 수령액의 4분의3이 퇴직금으로, 대한항공에서 6억 6121만원, 진에어에서 6억 3100만원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퇴직금과 관련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에 따라 퇴임 당시 월평균 보수, 직위별 지급률 및 근무 기간 7.5년을 고려해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진에어도 근무기간을 6.5년으로 잡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상속세 미납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9)은 그룹 계열사 4곳으로부터 올해 상반기 약 58억원 급여를 받았다. 대한항공 반기보고서를 보면 조 회장의 상반기 보수는 20억 7660만원이다. 이밖에 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한진칼(16억 2540만원) ▲한진(6억 7425만원)과 미등기 상근 회장으로 재직 중인 ▲한국공항(14억 5095만원)에서도 급여를 받았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70년 전 中서류 찾아와라”… 머나먼 독립유공자 서훈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70년 전 中서류 찾아와라”… 머나먼 독립유공자 서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모든 재산을 내놓았던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독립유공자 예우법을 제정해 후손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애국지사들을 유공에 따라 건국훈장 1~5급,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등으로 나눠 유족들에게 매달 58만~244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후손들이 조상의 독립운동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국가보훈처는 1895년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한 사실이 있어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에 한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나눠 독립유공자를 지정한다. 서훈 사실이 없을 때는 후손이 공적서와 평생이력서를 구비해 보훈처에 제출하면 국가보훈처는 제출 서류를 바탕으로 공적심사위원회 심의를 통해 포상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보훈처는 심사 과정에 필요한 일제 치하 재판 기록 등 일반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후손들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증명 자료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심사 과정에서 독립운동 여부를 인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보훈처의 현행 독립유공자 지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 탓에 독립운동가들이 독립투쟁 역사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는 6개월 이상 독립운동을 하거나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른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선정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서훈 논란이 매년 끊이지 않는다. 최근 여성 독립운동가 안맥결(1901~1976) 여사에 대한 서훈 불인정이 논란이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이자 서울 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안 여사는 3·1 운동에 참여하고 임시정부 선전원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치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됐다. 1937년 6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종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으며 고문을 당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1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20일 만삭이라는 이유로 가석방됐다. 문제는 안 여사가 최소 ‘옥고 3개월 이상’이라는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포상에서 탈락했다는 점이다. 안 여사의 포상을 추진한 흥사단과 유족들의 반발이 거세자 보훈처는 지난 4월 옥고 기준 3개월 조항 폐지 등 포상 기준을 완화해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기준을 서둘러 바꿨다. 조선혁명군 부사령 박대호의 손자 박홍민씨도 할아버지의 포상 근거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는 “1992년부터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위해 보훈처가 요구한 할아버지 재판 서류와 석방 서류를 찾으려고 5년간 헤맸지만 중국에서 서류를 찾지 못했다”면서 “여러 독립운동 자료에 할아버지의 독립 유공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도 보훈처는 70년이 넘은 중국의 법원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을 탈출해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임도현 선생의 조카 임정범(63)씨도 마찬가지다. 큰아버지가 1931년 12월 동료 6명과 함께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서는 일제의 공출과 징병에 대한 거부 운동을 벌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43세에 생을 마쳤다. 임씨는 2004년부터 큰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8차례나 했지만 매번 탈락했다. 임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은 모두 기록 문건뿐이라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치고도 수감 기록 등 증빙 자료가 부족하거나 소속 단체의 성격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20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2017년 말 기준 독립유공자는 1만 4830명에 불과하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지정 절차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자 발굴 및 포상 확대 계획안’을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정운현 상지대 초빙교수는 “해방 이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 1994년에서야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그동안 독립유공자 서훈에 필요한 사료와 자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면서 “독립투쟁 역사에 비해 독립유공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상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대우에도 소홀함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과 전 재산을 팔아 독립군을 양성한 이회영 선생은 독립유공자 3등급이다. 3·1 운동의 상장인 유관순 열사도 3등급이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를 역임한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임병직은 1등급이다. 등급 기준에 원칙이 없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이 각각 발의한 상훈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서훈을 재조정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현행 상훈법은 서훈의 추천, 확정, 취소에 대한 규정만 명시돼 있고 사후에 서훈을 재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염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jrlee@seoul.co.kr
  • ‘샐러리맨’ 권오현 52억… 총수는 한진家 조양호 58억 ‘보수킹’

    재판 중 이재용 부회장 ‘무보수 경영’ 허창수 회장 53억·정몽구 회장 50억 스톡옵션 포함 땐 박신정 부사장 231억 올해 상반기 재계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전문경영인은 약 52억원을 수령한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너가를 포함하면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이 4개 계열사에서 58억원을 챙겨 ‘보수킹’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14일 각 사 반기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권 회장은 지난 3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올해 상반기 보수 총액으로 51억 7100만원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139억 8000만원)와 비교하면 63.0% 감소한 것이다. 이어 윤부근 부회장이 26억 6100만원, 신종균 부회장이 26억 3800만원, 이상훈 이사회 의장이 22억 2800만원을 각각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경영자들은 보통 성과인센티브(OPI)가 합산되는 하반기에 더 높게 책정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 사실상 경영에 복귀했으나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인 점 등을 감안해 급여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수를 포함한 오너가 중에서는 조 회장이 대한항공 등 4개 계열사에서 58억 272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조 회장은 지난해 1년 동안 연봉으로 66억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상반기 만에 85% 이상을 받은 셈이다. ‘물벼락 갑질 사건’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올 상반기 대한항공과 진에어로부터 총 17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이 중 13억원이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됐다. 지난 5월 숙환으로 별세한 구본무 전 ㈜LG 회장은 급여 13억 6800만원, 상여 40억 6000만원을 합해 54억 2800만원을 받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는 GS와 GS건설 등에서 52억 7400만원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현대차로부터 28억 3600만원, 현대모비스로부터 21억 2700만원 등 모두 49억 63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현대차로부터 8억 3900만원을 수령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와 SK하이닉스에서 20억원씩 모두 40억원을 보수로 수령했다. 한편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 이익까지 포함하면 박신정 더블유게임즈 부사장이 230억 9000만원으로 지배주주(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 출신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73주년 광복절] 손바닥만한 엽서에 빼곡히 담긴 독립 염원 “안중근 의사 이을 민족 지도자는 누구인가”

    [73주년 광복절] 손바닥만한 엽서에 빼곡히 담긴 독립 염원 “안중근 의사 이을 민족 지도자는 누구인가”

    ‘다음, 이 자리는 누가 들어설까.’1913년 3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의 도산 안창호(1878~1938)가 받은 엽서 한 장이 일제에 저항하던 한국인들의 애국심을 되살리고 있다. 흥사단 창단 회원이었던 양주은(1879 ~1981) 선생이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엽서로, 뒷면에 이준 열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민영환 열사, 장인환 의사, 안중근 의사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신문 기사가 붙어 있다. 가로 13.8㎝ 세로 8.8㎝ 크기의 작은 엽서에는 태극기가 게양된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독립문 사진, 미국 네브라스카 헤이스팅스의 대한민국 소년병학교 교관 등의 사진과 신한민보 1910년 4월 1일 기사로, 오늘날 애국가를 ‘국민가’로 소개한 기사까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어 1907년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에 항거한 ‘박성환’ 의사와 항일 의병운동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은 사진이 없어 글로 적었다. 양주은 선생은 이들 의사들을 열거한 맨 끝자리를 비워둔 채 ‘다음, 이 자리는 누가 들어설까’라고 물음으로 끝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엽서의 존재는 현재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한종수 박사를 통해 13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양주은 선생은 1903년 말부터 3년간 미국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다 1906년 4월 5일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활동했고, 1913년 안창호의 흥사단 창단 때 ‘단우번호 6번’으로 조국 독립에 헌신했다. 한 박사는 “양주은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번 ‘돈’을 독립 자금과 한인 정착 등을 위해 모두 기부했고,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 저격 현장의 증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미주 한인들은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했다”며 “당시 대한인국민회 사무실이 미주 한인들이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양주은 선생이 의도적으로 후대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손수 만든 엽서를 도산 선생에게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인형탈 알바생, 열사병으로 쓰러져..해당 놀이공원 측 입장 보니

    인형탈 알바생, 열사병으로 쓰러져..해당 놀이공원 측 입장 보니

    놀이공원 측이 인형탈 알바생이 열사병으로 쓰러졌는데도 119 구급대를 부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MBC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놀이공원 인형탈 알바생 황모 씨는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인형탈 공연을 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당시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경련 증상까지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은 119에 연락하려고 하자, 당시 현장 감독이 ‘누워 있으면 괜찮다’며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사고 발생 한 시간 뒤, 의식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이자 놀이공원 측은 그제서야 119 구급대를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인형탈 알바생은 폭염 속에서 털장갑과 털신발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해당 놀이공원은 실내온도를 26도로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유리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인형탈 알바생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달랐던 것. 이와 함께 인형탈 알바생들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도 이어졌다. 이에 해당 놀이공원 측은 “의무실에 상주하는 간호사가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처음 쓰러졌을 때 다른 업무를 권했으나 직원 본인이 희망해 공연에 참여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휴식 시간이 없었다는 직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제공했다”고 반박했다. 사진=MBC 뉴스 방송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공정위, ‘계열사 신고 누락’ 조양호 회장 고발

    공정위, ‘계열사 신고 누락’ 조양호 회장 고발

    한진 “행정 착오… 재심의 신청할 것”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처남 소유인 납품업체를 계열사에서 제외하는 등 거짓 신고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조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대한항공에 납품하는 친족회사는 공정거래법상 한진 계열사에 속하는데도 이를 숨긴 채 내부거래를 한 혐의다. 공정위는 적발된 4개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빠져 있던 기간에 벌어진 사익 편취나 부당지원 행위도 조사할 방침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진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서 처남 가족이 주식을 소유한 태일통상, 태일캐터링, 청원냉장, 세계혼재항공화물 등 4개 계열사와 62명의 친족을 누락했다. 이 가운데 태일통상과 태일캐터링은 대한항공 납품업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공정거래법은 총수가 친족(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과 합해 30% 이상 최다출자한 회사는 계열사로 규정한다. 조 회장이 기소된다면 법원 판단에 따라 최대 징역 2년 혹은 벌금 1억 5000만원을 선고받을 수 있다. 조 회장은 이미 500억원대 상속세 미납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진 관계자는 “일부 친인척 현황과 관련 회사를 누락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실무 담당자가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일부 내용이 누락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료를 제출했다. 숨길 이유도 없고 전혀 고의도 아닌 행정 착오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정위에 재심의를 신청하고 과도한 처분임을 적극 소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서울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폐허로 변한 ‘광복 선봉’ 의용대 옛터… 함께 싸운 팔로군은 혁명성지로 보존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폐허로 변한 ‘광복 선봉’ 의용대 옛터… 함께 싸운 팔로군은 혁명성지로 보존

    “강제병(으로) 끌려 나온 동포들은 팔로군(八路軍)이 있는 곳마다 조선의용군이 있으니 총을 하늘로 향하여 쏘시오!” “왜놈의 상관 놈들을 쏴 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으시요!” “조선말을 자유대로 쓰도록 요구하자!”지금 봐도 가슴이 뛰는 한글 격문들이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릴 정도로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남북 600㎞ 길이의 타이항산맥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신문은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1~12일 중국 허베이성과 산시성 일대 조선의용대의 역사적 발자취를 좇았다. 좌우로 이념이 갈리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첫 정규군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피 흘렸던 조선의용대의 역사는 잊혀지거나 버려졌다. 함께 싸웠던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은 승리의 역사로 생생하게 보존돼 있지만 조선의용대의 주둔지는 잡풀만 무성해 저절로 통한의 눈물을 자아낸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약산 김원봉이 중국의 한커우에서 200여명 규모로 창설한 항일 첫 부대였다. 영화 ‘암살’(조승우 연기)과 ‘밀정’(이병헌 연기)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김원봉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고 국민당과 함께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이후 조선의용대와 함께 광복군에 편입했지만 1948년 월북하면서 그의 이름과 함께 조선의용대의 전공도 잊혔다. 산시성 진중(晉中)시 쭤취안(左權)현 상우(上武)촌의 흥복사 일대는 조선의용대가 최초로 주둔한 곳이다. 중국 공산당의 화장실 혁명이 아직 시작되지 않아 재래식 화장실만 있는 궁벽한 마을 입구에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주둔지란 표지판이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마을 아이들은 베이징에서 온 역사 탐방단이 들어서자 ‘오빠는 강남 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환영했다.조선의용대는 군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 3개 언어에 능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선전 작업에도 대거 투입됐다. 그런데도 농민이 주력 대원이었던 공산당 팔로군과 달리 전투에도 능해 그들의 맹렬한 기세를 기억하는 현지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타이항산에서 벌인 전투는 일본군을 마을 밖으로 유인하느라 인명피해가 컸지만 조선의용대의 명성을 높인 1941년 12월 후자좡(胡家莊) 전투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과 펑더화이(彭德懷)의 퇴로를 열어 주면서 진광화, 윤세주 열사가 희생된 십자령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1942년 5월 일본군이 3만 5000명의 대부대를 동원해 팔로군을 싹쓸이하는 ‘참빗작전’을 벌이면서 팔로군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조선의용대가 십자령에서 처절하게 희생된 끝에 팔로군 지도부는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상우촌 마을 주민들은 무명 열사 묘가 있는 곳을 안내하며 잡풀이 무성하니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당부했다. 인적이 끊겨 희미한 자취만 남은 길을 따라 가슴팍까지 오는 풀숲을 헤치고 산을 오르자 한국이 있는 동녘을 바라보며 잠든 ‘의용군 열사지묘’가 나타났다.팔로군의 명장이었던 쭤취안 장군의 이름을 딴 쭤취안현 윈터우디(云頭底)촌에는 조선의용대가 70여년 전에 남긴 한글 격문이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이 보존해 온 한글 격문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망루에 쓰여 멀리서도 확연히 보였다. 허베이성 한단(邯鄲)시 서(涉)현 스먼(石門)촌에 있는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은 팔로군이었던 시아버지를 둔 중국인이 관리한다. 방문객이 오면 전화를 받고 열쇠로 문을 열어 주는 리슈잉(李秀英·53)은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19차 공산당 대회를 기점으로 중국에서도 공산당 유적을 돌아보는 ‘홍색 관광’ 열기가 크게 일고 있다. 매일 한 팀 이상 찾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중앙(CC)TV도 최근 이곳을 찾아 취재했다.타이항산맥 우즈(五指)산 자락의 조선의용대 주둔지에는 ‘잘생기고 멋진 조선 오빠’를 기억하는 왕차오즈(王巧枝·90)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 왕 할머니는 아직도 큰방을 조선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 주고 작은방에서 묵었던 기억을 간직한다. 왕 할머니는 “조선의용대가 타이항산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키우는 등 주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었다”며 “처음에는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서 물을 제대로 못 길어서 동네 사람들이 물 긷는 법도 알려 줬다”고 회상했다. 16살 때 ‘조선인 오빠’라고 기억하는 조선의용대원들과 한집에서 살았던 왕 할머니는 지금도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집 마당에는 일본군을 피해 조선의용대들이 몸을 숨겼을 법한 토굴도 있다. 왕 할머니의 중국어는 현지 사투리가 심해서 중국인의 통역이 따로 필요할 지경이었지만 한번 잡은 손을 오랫동안 놓지 않으며 말을 이어 갔다. 멀리 베이징에서 왔으니 하룻밤 묵어가라는 인정만은 조선의용대에게 보여 준 것과 같으리라 짐작됐다. 조선의용대를 기억하는 중국인들이 너무 연로해 상세한 역사적 구술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조선의용대들이 현지 주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농사일도 함께 하는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의용대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앞에서 중국인과 한마음으로 힘을 합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타이항산은 조선의용대를 품은 역사 그 자체였다. 잡풀이 무성하지만 일부 주둔지에는 한글로 ‘조선의용군 옛터’라고 쓴 표지판도 설치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 한국 방문객들이 조선의용대를 추모하는 데 손색이 없다. 상룽성(尙榮生) 조선의용군기념관장은 “조선 독립운동에서 조선의용대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아는 중국인들도, 한국인들도 많지 않아 섭섭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의용대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얽힌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geo@seoul.co.kr
  •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빛난 전투’ 조선의용대 주둔터 잡초만 무성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빛난 전투’ 조선의용대 주둔터 잡초만 무성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중국 내 연구자들과 동포들 사이에서 독립운동의 자취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11~12일 베이징에서 출발한 역사탐방단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첫 정규군으로 기록된 조선의용대가 주둔하며 일제와 전투를 벌였던 허베이성과 산시성에 걸쳐 있는 타이항산맥을 찾았다.조선의용대를 기억하는 현지 중국인들은 그들은 중국군과 대등하게 소통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맹렬히 맞서 싸웠다고 그들의 빛나는 활약을 탐방단에 전했다. 경남 밀양 출신 약산 김원봉이 1938년 창설한 조선의용대는 독자적 전투 끝에 광복군에 편입했지만 이들 중 일부가 북한으로 가면서 의문부호로 남았다. 산시성 진중(晉中)시 쭤취안(左權)현 상우(上武)촌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조상의 묘를 찾는 청명절이면 이름 모를 조선인 의용대원을 위한 제를 올린다. 이곳에는 타이항산 십자령 전투 중에 사망한 조선의용대의 진광화, 윤세주가 처음 묻힌 곳과 함께 조선의용대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쭤취안현 윈터우디(云頭底)촌에는 일본어, 중국어 등 3개 언어에 능통해 선전전에 투입됐던 조선의용대의 한글 격문이 남아 있다. 한글을 모르는 주민들이 그림을 그리듯 페인트칠을 하며 보존해 온 70여년 묵은 기록이다. 한국 정부가 2004년 세운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은 공산당의 유적지를 찾는 ‘홍색 관광’ 열기로 하루에 한 팀 이상 방문객이 찾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의용대 주둔터는 잡풀이 무성한 폐허로 방치되어 함께 피 흘렸던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기념관과 쓸쓸하게 대비된다. 상룽성(尙榮生) 조선의용군기념관장은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차단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있어야만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타이항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할아버지 ‘깜박’ 실수로 8시간 동안 차에 방치된 손녀 사망

    할아버지 ‘깜박’ 실수로 8시간 동안 차에 방치된 손녀 사망

    생후 10개월 된 여자 아이가 할아버지 승용차에 8시간가량 방치돼 있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12일 스페인 마요르카섬 마나코르 경찰에 따르면, 신원미상의 할아버지(56)는 지난 10일 오전 7시쯤 커피를 마시러 가기위해 손녀를 차에 태워 집을 나섰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이 손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볼일을 본 후 오후 3시쯤 돌아왔고, 그제야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알아차렸다. 할아버지가 차를 주차해놓고 떠났을 당시 손녀는 뒷좌석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가던 의사의 신고로 응급구조대가 현장에 출동했으나 어린 손녀의 생명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달은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불안 발작 증세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손녀를 차에 태웠다는 것을 깜박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더위에 약한 어린 손녀가 무더운 날 차 안에 장시간 방치돼 열사병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일 기온이 30도 이상이어서 차 안 온도는 이보다 더 했을 것”이라며 "숨진 여아의 죽음을 둘러싼 조사가 진행 중이며 조만간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할아버지의 한 지인은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다. 손녀를 대단히 좋아했던 그가 끔찍한 비극으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구글이미지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새만금사업, 속도가 생명… ‘잼버리’ 성공 위해 특별법 제정 시급”

    “새만금사업, 속도가 생명… ‘잼버리’ 성공 위해 특별법 제정 시급”

    송하진 전북지사는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붙이려면 정부 여러 부처에 얽힌 행정 절차 간소화, 민간투자 여건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를 함께 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 지사는 지난 10일 도청 집무실에서 가진 대담에서 세계잼버리 관련 공항, 항만, 철도, 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또 국내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려면 탄소 부품 사용 비율을 높여야 하지만 대기업들이 계열사 강판 사용에만 치중해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어 “독일 등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미 강도는 높으면서도 가벼운 탄소 부품을 적용해 앞서는데 국내 업체는 무관심해 자동차 산업의 앞날이 우려된다”며 “매출 급감으로 철수한 GM 군산공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전북 대도약을 이루기 위한 준비는. -민선 7기는 뜻깊게도 전라도 정도 천년의 해에 시작하게 됐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기원한다. 이제 전북 몫 찾기와 전북 자존의 시대를 넘어 대도약할 시기다. 오랜 낙후 지역 이미지를 벗고 도민들이 체감할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겠다. 지역경제 규모를 키우고 지역문화·도민복지 수준을 높이겠다. 스마트 농생명밸리를 중심으로 한 농생명식품산업, 전기상용자율차 등 4차 산업혁명시대 특화 혁신산업, 연기금 금융 중심지, 새만금 동북아경제 허브 등으로 성장과 행복을 아우르는 삶의 터전을 일구겠다. →1991년 11월 28일 착공한 새만금 사업이 아직 진행형이다. 정부 정책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속도가 생명이다. 1990년 착공한 상하이 푸둥신구는 중국 경제의 급성장을 이끄는 핵심지구로 성장했다. 새만금은 지역을 떠난 국가 정책사업이다. 필요한 예산을 제때 편성해 주고 민자로 계획된 사업을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공사기간을 줄여야 한다. 정부 여러 부처가 관련된 만큼 추진절차 간소화, 민간투자 여건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를 곁들여야 한다. 새만금산업단지의 국가산단 전환, 국내 기업 임대료 감면, 추진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 →새만금 국제공항은 전북의 숙원 사업이다. 추진 상황은. -2016년 5월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반영됐다. 올 3월 국토교통부 항공 수요 조사를 마치고 7월엔 타당성 검토 용역에 들어갔다. 내년 6월 완료한다. 그러나 공항건설 소요 기간이 통상 10년이나 된다. 수요조사 1년, 사전 타당성 검토 1년, 예비타당성 조사 1년, 기본계획 수립 1년, 기본 및 실시설계 2년, 공항 건설과 시범운항 4년이다. 이런 절차를 모두 밟을 경우 2023년 세계잼버리 이전 완공할 수 없다. 그래서 모두 3년인 사전타당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 등을 1년 6개월로 줄이도록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설계와 시범운항 기간도 각각 반으로 줄일 수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인허가만 내주면 지방비로 공사를 하겠다고 했겠는가.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 개최 전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행정절차 단축에 최선을 다하겠다.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 준비 상황과 과제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행사 개최의 법적 근거와 잼버리 조직위, 범정부 지원위 구성을 포함한 추진체계 구축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심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야영장 부지, 스카우트센터 건립, 공항, 항만, 도로, 철도 등 기반시설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돼 2022년 말까지 부지 매립이 완료될 전망이다. 참여 확산도 중요하다. 곧 붐 조성을 위한 홍보활동을 추진하겠다. 사후 활용 방안도 감안해 세계 청소년 체험 공간인 스카우트센터를 건립할 생각이다. →삼락농정을 민선 7기 핵심 과제로 선정한 배경과 추진 계획은. -전북이 가장 잘하고, 잘할 수 있는 일 중 잠재력을 뽐낼 분야가 농업이다. 전북은 농생명산업 육성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최근엔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밸리로 선정돼 농생명산업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농생명산업 육성을 통해 농업, 농민, 농촌이 모두 즐거운 삼락농정을 구현하겠다. 새만금에 지능형 농기계 실증센터, 국가식품클러스터에는 원료비축공급센터를 만들고 민간육종연구단지도 확장하겠다. 공익형 직불제를 새롭게 도입하고 최저가격보장제도는 품목을 확대하겠다.→전주시장 시절부터 불모지인 국내 탄소산업 기반을 구축해 ‘탄소 전도사’로 불린다. 앞으로의 계획은. -국가에서 추진해야 할 탄소산업 기반 구축을 지자체로서 먼저 했다. 전국 유일의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을 개설하고 효성과 함께 세계 세 번째로 T700급 고강도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탄소특화 국가산단 조성 등 기본 인프라를 구축한 데 이어 2016년에는 탄소소재법 제정을 선도했다. 앞으로 탄소융복합소재의 응용 분야를 국방, 의료, 우주·항공 등으로 다변화하고 탄소제품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겠다. 현재 123개인 탄소기업을 2025년까지 240개로 늘리고 탄소산업 육성을 컨트롤하는 탄소산업진흥원을 설립하겠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야문화 복원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북의 계획은.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가야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금껏 군산대 곽장근 교수 혼자서 유적 발굴에 헌신해 예상 외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남원시 등 도내 동부권에서 고분, 봉수 등 가야유적이 다수 발굴됐다. 가야고분 세계유산 등재와 유적 발굴, 보존을 위해 꾸준히 힘쓸 참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또 만납시다”…남북노동자축구 北대표단 귀환

    “또 만납시다”…남북노동자축구 北대표단 귀환

    3년 만에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참석차 서울을 찾은 북측 대표단이 12일 2박3일 일정을 마무리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 노동단체 조선직업총동맹(직총) 주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대표단 64명은 이날 오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출경 절차를 밟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환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 양대 노총 관계자들이 이들을 배웅했다. 이날 숙소인 워커힐호텔 앞에서는 양대 노총 조합원과 ‘통일축구 서울시민 서포터즈’ 등 약 100명이 모인 가운데 환송 행사가 열렸다. 북측 가요 ‘다시 만납시다’가 울리고 작은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양대 노총 조합원 등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에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열악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헌신한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묘소를 찾았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과 문익환 목사의 아들 배우 문성근 씨도 자리에 함께했다. 10일부터 진행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선 양대 노총과 남북 노동자단체 대표자회의, 산별·지역별 모임 등을 하며 노동 분야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11일에는 대회 하이라이트인 남북 노동자 축구경기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됐다. 남북 3개 노동단체는 대회 마지막 날에는 올해 10·4 선언 11주년을 계기로 ‘제2차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 노동자회’를 개최하고 해마다 대표자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공동합의문도 발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

    3년 만에 개최된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경기가 11일 오후 4시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한국노총 대표팀과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직총) 건설노동자팀, 민주노총 대표팀과 직총 경공업팀의 2개 경기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다. 양대 노총 조합원과 서울시민 등 3만여 명이 모일 것으로 주최 측은 보고 있다.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는 1999년 평양 대회, 2007년 경남 창원 대회, 2015년 평양 대회에 이어 네 번째다.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민간 행사인 이번 대회는 의미가 남다르다. 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에는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남북 노동단체 대표자회의를 하고 교류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어 남북 노동단체 산별·지역별 모임을 하고 용산역에 있는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찾아 헌화도 한다. 주영길 직총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4명은 전날 오전 서해 육로를 통해 방남했다. 이들은 남북 노동 3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한 다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하고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이들은 대회 마지막 날인 12일 오전에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문익환 목사 묘소에 참배하고 서해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귀환할 예정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과천시 폭염대책 안부전화 한통, 열사병 노인 살렸다

    입추가 지나고 막바지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경기 과천시가 주거 취약계층의 폭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홀로 사는 노인을 대상으로 매일 안부전화를 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또 냉풍기와 부채 등 냉방용품을 취약계층에 전달해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시는 안부전화로 더위에 쓰러진 노인을 구조하기도 했다. 지난 8일 과천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안부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자 담당자가 집을 방문 열사병으로 쓰러져 있던 노인을 발견해 응급실로 옮겼다. 시 관계자는 “현재 노인은 입원치료 중이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동 사회복지담당자와 노인돌봄센터도 홀로 사는 노인 안부를 확인하는 전화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는 경기도모금회 등에서 지원받은 생수 5700 병과 냉풍기 20대를 대규모 거주용 비닐하우스 밀집 지역인 벌꿀마을과 몸이 불편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전달했다. 냉풍기 지원 가구 파악을 위해 시는 노인 176명에 대해 일일이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부채와 아이스머플러 등의 냉방용품을 지원했다. 한편 시는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재건축 공사장 근로자를 폭염 피해 중점관리대상으로 정해 지원하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방문건강관리사, 생활관리사가 매일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재건축 공사장 근로자에 대해서는 휴식시간제 운영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현장작업을 중지하고, 식염포도당을 지급하는 등 근로자를 위한 다양한 안전대책을 시행 중이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다양한 맞춤형 시책을 추진하는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