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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김정일 중병설 급변사태 대비하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장은 어제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김 위원장이 현재 의식이 있고, 회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올해 66세인 김 위원장의 동정이 남북관계와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놀라운 일이다. 다만 회복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상태라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우리로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김 위원장은 그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 열병식에 불참했다.1991년 최고사령관 취임 이후 전군 열병식을 빠짐없이 참관해온 그다. 몇 주 전부터 그의 건강이상설이 나돌던 터다. 이런 판에 열병식에 불참했으니 억측이 구구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오전 “오래 전에 김 위원장의 중병설 관련 정보를 입수해 점검해왔다.”고 확인했다. 건강이상설을 뒷받침하는 정보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고, 중병설은 증폭됐다. 반면 미 백악관측은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보도를 봤지만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어제 일본 교도통신 기자에게 김 위원장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회복 가능하더라도 와병 중이라는 것만도 비상한 사태로, 정부에 여러 과제를 안겼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먼저, 한반도 안보의 제1 변수인 김 위원장의 신변과 관련해 한·미간 정보공조가 원할한 지 차제에 철저히 점검하기 바란다. 둘째, 북한에서의 급변사태 발생시 안보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나리오별 대책이 제대로 수립되어 있는지 거듭 확인해야 할 것이다.2004년 용천 폭발사고가 터지자 당시 고건 총리가 “친중 군부가 북한을 장악하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했다는데 지금 상황은 어떤지 따져보기 바란다.
  • “김정일 뇌졸중 가능성”

    “김정일 뇌졸중 가능성”

    북한 김정일(얼굴) 국방위원장이 9일 정권수립 60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뇨병, 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국방위원장이 뇌졸중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이 미국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정보당국자는 김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도 익명의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 최근 2주 안팎에 “김 위원장에게 건강상 이상, 특히 뇌졸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오후 평양시내 ‘김일성 광장’에서 정규군이 주축이 된 기존의 대규모 열병식이 아닌 노농적위대 열병식으로 행사를 축소 진행했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 조선중앙TV 등은 오후 9시부터 녹화 중계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이 열병 보고를 했다. 김 총참모장은 “미제와 그 추종 세력들이 반공화국 압살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위적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정원 대북라인 등 가용 채널을 총동원해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건강 문제를 포함해 행사 불참 배경 등을 다각도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 이상설과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쓰러졌다는 첩보가 있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권수립 50년(1998년)과 55년(2003년)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5년,10년째 되는 해)에 열리는 열병식에 참석, 행사를 지켜 봤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행사 불참 배경을 ▲심각한 건강 상태 ▲치료 후 회복기 ▲답보 상태인 북핵 및 남북 관계에 대한 불편한 심정 표출 등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 60주년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절의 방북 초청을 축소 조정하는 등 이례적으로 차분하게 행사를 준비해 왔다.‘꺾어지는 해’에는 열지 않던 중앙보고대회를 전날 개최한 것도 열병식 규모 축소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정부 “김정일 쓰러졌다” 첩보 확인중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박홍환기자|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정권 수립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노농적위대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자 당장 ‘건강이상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신변과 관련한 첩보는 이미 지난달부터 있었다. 몇몇 해외공관에 들어온 첩보는 “김 위원장이 쓰러졌다.”는 것. 공교롭게도 지난달 14일 이후 김 위원장의 공식 활동이 끊겼다. 정보 당국은 다각도로 첩보의 진위 여부 확인에 나섰지만 별다른 징후를 확인하지 못한 채 9·9절을 기다려 왔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도 잇따라 뇌졸중 가능성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보도했다.AP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이 최근 2주 이내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위원장의 9·9절 행사 불참을 계기로 정보 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중국 의사 5명의 방북 목적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치료를 위한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지만 조 부위원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중국 의사들이 김 위원장 치료를 위해 방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보 당국은 지난 5월에 제기됐던 ‘사망설’ 등 김 위원장 유고와 관련된 해프닝이 이미 네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섣부른 판단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종종 ‘은둔의 정치’를 즐겼다. 이번에도 건강 문제와 관계 없이 대외 행보를 중단한 채 핵문제 타개 등의 방안을 숙고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남북문제에 정통한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이 9·9절 행사에 꼭 등장할 의무는 없다. 행사 불참은 핵 검증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 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압박용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간 합의가 원만히 이행돼 지난달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됐다면 이번 9·9절 행사를 대규모로 치르면서 대내외적인 선전의 장으로 활용했겠지만 이런 구도가 무산된 불편한 심정을 행사 축소와 불참으로 표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전현준 선임연구위원도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면 어떤 조짐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이 없어 매우 궁금하다.”면서 “하지만 예전에도 중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전례가 있어 의외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은 그동안 계속 나돌았고 이번에 이같은 소문이 사실인지 여부는 좀더 지켜 봐야 한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은 그 자체로 북한의 체제급변 요소가 되고, 남북관계에도 메가톤급 핵폭풍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국은 건강이상설과 관련한 추가 징후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정보망을 총동원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北 오늘 9·9절] 김정일 위원장 중앙보고대회 불참

    북한이 중시하는 ‘꺾어지는 해’(5년,10년째 되는 해)이면서 정권수립 ‘환갑’을 맞는 올해 9·9절에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많다. 우선 최근 3주 이상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열병식 행사장인 ‘김일성 광장’에 등장할지 주목된다. 올 들어 ‘사망설’ ‘건강이상설’ 등이 잇따라 제기된 만큼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심각한 건강상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팎의 눈이 쏠려 있다. 김 위원장은 8일 열린 정권수립 60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불참했다. 특히 북한이 핵시설 복구 등 강수를 놓고 있는 입장에서 내부단속용으로 대규모 군중과 군인들을 상대로 핵자주노선 등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파견할 9·9절 특사의 면면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미·일 3국은 대화에 불응하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북한은 ‘꺾어지는 해’에는 열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9·9절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평양체육관에서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그만큼 이번 9·9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행사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해 우리나라를 21세기의 사회주의 경제강국으로, 인민들이 부러운 것이 없이 잘사는 사회주의 낙원으로 건설하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3기 체제 출범은 현재까지 최고인민회의가 열리지 않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설 신빙성 낮다”

    북한 매체에서 3주 이상 김정일(66) 북한 국방위원장의 동정이 보도되지 않자 어김없이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중국 의사 5명이 최근 방북한 뒤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는 정보와 맞물려 한때 설득력 있게 소문이 돌았다.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 외국 의사들이 김 주석 치료를 위해 방북했던 전례에 비춰 중국 의사들의 방북이 김 위원장 치료를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 하지만 7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건강이상설’은 과민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제1319 군부대를 시찰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예전에도 2주,3주 정도의 ‘활동 공백기’가 많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이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권 수립 60주년 준비와 북핵 문제 등으로 공개 활동을 줄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은 북한 정권 60주년 기념일(9·9절)인 9일 그가 ‘김일성 광장’ 연단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관람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50주년과 55주년 행사 때 모두 참석해 지켜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Seoul In] 백제문화제 도우미 모집

    송파구(구청장 김영순) 한성백제문화제 기간에 활동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문화제는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동안 지역 일대에서 백제마을 체험전, 역사문화 거리행렬, 근초고왕 열병식으로 진행된다. 자원봉사자들은 ▲행사장 관람객 안내 ▲프로그램 현장진행 도우미 ▲행사장 질서유지 및 안전확보 ▲축제를 전후한 홍보활동 등으로 나눠 모집한다. 인터넷(www.baekjefest.com) 또는 전화(410-3321)로 접수한다. 문화체육과 410-3410.
  • [길섶에서] 거리의 분꽃/최종찬 국제부차장

    세상이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요즘엔 산책도 할 만하다. 알맞은 기온과 살가운 바람 덕분에 피부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면 은행나무가 열병식을 하는 군인처럼 일렬로 서있는 도로가 나온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이놈들은 저마다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더러는 길바닥에 떨어져 행인들의 구둣발에 짓이겨져 구린 냄새를 풍긴다. 저 열매가 다 떨어지기 전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 이 거리를 황금색 바다로 만들 것이다. 은행나무의 사열을 받고 있는데 저 한쪽에서 분홍색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분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5개로 나눠진 꽃잎은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을 관처럼 쓰고 물기를 머금은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잠자는 아기 얼굴의 모습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다. 분꽃은 내일 아침이면 시들겠지만 분꽃이 내게 선사한 감동의 아오라는 당분간 내 삶의 한복판에서 활력의 화수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siinjc@seoul.co.kr
  • 천수이볜 ‘독립게임’ 동북아 흔드나

    천수이볜 ‘독립게임’ 동북아 흔드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의 ‘독립 게임’이 동북아 안정을 흔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천 총통은 최근 들어 유엔 독자가입을 본격 추진하고 탈(脫) 중국화에도 속도를 높였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이 딴죽을 걸기는 어렵기 때문에 기회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제1 우방국인 미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분위기다. 천 총통에 맞서 중국은 “타이완 독립 추진에 관용이란 없다.”고 선언했다.1일 중국 건군 80주년 기념일 맞아 차오강촨(曹剛川) 국방장관은 ‘제로 톨러런스’를 거듭 천명하며 “중국에서 벗어나려는 어떤 방식의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과거와 달리 군사적 시위를 자제한 채 ‘말’로만 대응하고 있지만, 이날부터 국방력을 과시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들이 잇따랐다. 첨단무기를 앞세운 퍼레이드와 모범용사 대회 등 전국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차세대 전략미사일 ‘둥펑(東風)-25’ 등 첨단무기를 공개하는 등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타이완도 건국기념일(雙十節)인 10월10일 16년 만에 처음으로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대규모 열병식을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완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시절인 1991년 건국기념일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치른 이후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이유로 행사를 막았다. 천 총통은 올해 건국기념일이 임기내 마지막 국경일이라는 점을 감안, 일종의 무력시위를 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에는 돌부리가 숱하다. 천 총통이 ‘타이완’ 국호의 유엔 가입안을 놓고 내년 초 국민투표를 추진하려고 하자 중국과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티모시 키팅 미 태평양군 사령관은 “지역내 어느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타이완 해협의 긴장만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방들이 잇달아 단교를 선언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갈수록 고립되는 처지다.2000년 천 총통 집권 이래 마케도니아, 라이베리아 등 7개국과 수교가 단절됐다. 코스타리카마저 외교관계를 끊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중화민국(타이완)을 회원국에서 축출하고, 중국을 받아들인 1971년 결의안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국가로, 타이완은 그 일부임을 인정했다.”며 김을 뺐다. 반면 중국이 천 총통의 도전에 아직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처럼 미국과 유엔까지 알아서(?) 도와주는 터인데 양안(兩岸)에 긴장도를 높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측근비리 의혹과 퇴진 압력의 위기를 벗어나 내년 대선을 맞으려는 천 총통이 중국을 자극해 정치적 주도권을 쥐려 한다.”고 보도했다. jj@seoul.co.kr
  • 北, 미사일 동원 대규모 열병식

    북한이 25일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고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이날 낮 뉴스로 보도했다.북한 방송은 이날 오전 10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북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3군 종대(부대)들과 조선인민경비대, 노농적위대 및 붉은청년근위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비롯한 각급 군사학교 부대들이 참석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열병식에는 1992년에 이어 15년 만에 48기의 미사일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중앙방송은 열병식을 보도하면서 “우리의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국방공업이 낳은 강력한 전쟁억제력인 최신 화력무기를 장비한 거대한 전투기재들이 멸적의 탄두를 번쩍이며 나간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5년 당 창건 기념 열병식 때나 5년 전인 2002년 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 때는 미사일 등 특별한 군사장비 동원 없이 열병식을 진행했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최근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군 사기를 위해 미사일 등을 충분히 등장시킬 수 있다.”면서 “2·13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상황에서 무기를 등장시키는 게 외부 시선에 좋지는 않겠지만 이번 행사는 ‘생일잔치’와도 같기 때문에 내부 만족을 더 중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핵무기 모형 등을 등장시켰다 하더라도 2·13합의 이행 의지와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정부측 시각이다.북한은 인민군 창건 60주년,65주년,70주년 기념일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일 때마다 중앙보고대회를 겸한 대규모 열병식을 가져왔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책꽂이]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 비채 펴냄)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한 이국적인 역사 미스터리. 유럽에서의 잇단 패배로 점차 세력이 축소돼 가는 오스만 제국. 술탄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근대적인 개혁칙령과 군대 열병식을 추진한다. 갑자기 장교들이 실종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할 사람은 당대 최고의 환관탐정 야심뿐. 그는 궁정의 하렘과 문서보관실, 하맘(목욕탕) 등을 누비며 진상을 파헤친다. 오귀스트 뒤팽, 셜록 홈즈, 에르큘 포와로, 필립 말로를 잇는 또 한명의 명탐정의 활약이 눈부시다.1만 2000원.●카프카 문학론(안진태 지음, 열린책들 펴냄) 독일 작가 카프카는 절친한 친구이자 비평가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으면 유고들을 모두 불태워 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브로트가 그 유언을 어기는 바람에 ‘성’ 같은 장편소설을 우리가 지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브로트는 오독의 실수를 범했고 자의적으로 첨삭을 하기도 했다. 카프카 문학의 핵심 개념인 ‘소외’의 문제를 면밀히 살핀 연구서.2만 5000원.
  • 儒林(745)-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

    儒林(745)-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2) 나는 지친 발길을 터덜거리며 북부에서 뻗어 내린 공로(公路)를 따라 걸었다. 이 공로는 원래 곡부성 안으로 통하는 주작대로였고, 옛날부터 신도(神道)라고 불렸듯 신성한 통로였다. 길 양편에는 수백년이 되었을 법한 고백(古柏)들이 열병식을 올리듯 늘어서 있었다. 신도 중간에는 여섯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석비방(石碑坊)이 세워져 있었다. 기둥 아래로는 용과 봉황, 기린, 사자들이 정교하게 여러 가지 형태로 조각되어 있는 오문비방(五門碑坊)이었는데, 그 중간에는 ‘만고장춘(萬古長春)’이란 네 글자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액자의 문자를 따 ‘장춘방(長春坊)’이라고도 부르는 그 석비를 본 순간 나는 지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어 들었다. 만고장춘(萬古長春). 편액에 걸린 내용대로 ‘세상에 유례가 없을 만큼 긴 꿈’. 만고에 영원히 이어갈 만한 길고 긴 꿈. 2500여년 전,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 공자가 이루어낸 동양철학의 골수 유교는 어쩌면 한바탕의 길고 긴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가 이뤄낸 한바탕의 꿈, 유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아니하고 동양정신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으며, 마침내 우리나라에 이르러 조광조를 비롯한 경세가들에게는 왕도정치의 근본이 되었고, 이퇴계를 비롯한 사상가들에게는 서양철학과 맞설 수 있는 유일무이의 동양적 가치관으로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편액을 본 순간 나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무게로 짓눌러 오는 피로감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그렇다. 공자의 무덤인 공림으로 가기 위해서 터덜거리며 걷고 있던 내가 지친 것은 어제부터 공묘와 공부를 들러 최종 목적지인 공림으로 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짧은 공간이동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3년간 나는 공자에 의해서 창시된 유교가 어떻게 맹자와 주자를 거쳐 형이상학적으로 발전되었는가, 그 2000년의 궤적을 추적하였으며, 마침내 그 유가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광조를 비롯한 정치가들에게는 통치이념으로, 또한 해동공자 이퇴계에 이르러서는 메타피직(metaphysics)화 되어 어떻게 논리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는가 하는 그 과정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이제 3년여에 걸친 그 추적은 마침내 공자의 무덤인 공림을 참배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공림은 내게 있어 공간이동의 종착점일 뿐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역주행하였던 2500년에 걸친 시간이동의 꼭짓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에 들러 공자를 참배하는 것은 내게 있어 한없는 세월(萬古)의 오랜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온 유가의 긴 꿈(長春)에서 벗어나 현실로의 눈을 뜨는 공양미 300석과 같은 순례행위인 것이다.
  • [길섶에서] 가을연가/염주영 논설실장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키가 60∼70m나 되는 키다리 나무들이 길을 따라 열병식을 하고 있다.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가린 나무숲 터널이 연인들을 유혹한다. 그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오라고.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가 거닐던 바로 그 길이다. TV화면에서 그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그 길을 걸어봐야지. 그러나 마음뿐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추석 연휴에 전남 담양에서 똑같은 길을 보았다. 광주에서 29번 국도를 따라 담양읍내로 들어서자 한눈에 보였다. 원래는 담양에서 순창 경계 부근까지 메타세쿼이아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도로확장공사로 군데군데 끊어져 지금은 그 일부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차에서 내렸다. 따사로운 가을햇살과 산들바람이 일렁이는 나무숲 터널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마음속으론 ‘가을연가’를 연상하며. 메타세쿼이아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염주영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北노동당 창당 60돌 행사…후계자 언급없어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각종 행사를 개최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띄우기’ 등 중대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이날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당 창건 6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개최했다.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열병식을 갖기는 2000년 55주년 행사 이후 5년만이다. 미사일 행진 등의 무력시위는 없었다. 앞서 전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기념 중앙보고대회 경축보고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선군(先軍)사상과 경제발전,6·15공동선언의 의미를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노동당 창건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열리기는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이날 대회에서는 북한의 정·관·군의 고위간부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앙코르는 ‘느낌’이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배어 있다. 보는 순간마다, 보는 장소마다, 보는 기분에 따라 각각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유적지의 웅대함에 놀라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의 신비로움과 인류의 위대함에 매료된다. 캄보디아인의 인자한 미소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13세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앙코르 왕조의 몰락과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는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만든다. 또 유적지 곳곳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앙코르 유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사전 지식없이 무작정 찾았다가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돌무더기’의 지루함만을 느낄 수도 있다. 신들이 사는 세계를 이땅에 재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왕조가 멸망된 뒤 수세기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혀있다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앙코르의 느낌속으로 들어가 보자. # 설렘 앙코르 유적과의 만남은 설렘으로 시작됐다. 캄보디아 시엠레압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신들의 땅을 직접 본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늦은 밤에 도착한 탓에 유적지 인근 호텔에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뒤척임 속에 새벽을 맞아야 했다. 호텔을 출발해 처음 찾은 곳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 시엠레압 주변 1000여개 유적지 가운데 앙코르와트와 함께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유적지 매표소에서 3일 동안 자유롭게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앙코르 패스(40달러)를 끊은 뒤 앙코르톰의 관문인 남문에 도착하자 장엄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교도로는 처음 왕위에 오른 자이야바르만 7세(1181∼1201)때 지은 정사각형 도성이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 복잡했다. 각 변이 3㎞로 돌벽과 해자(성곽 주변의 못)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힌두교의 창조신화인 유해교반(乳海攪拌)이 형상화돼 있다. 다리 난간에는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몸통을 부여잡고 있는 54개의 반인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입구인 남문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얼굴,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화려한 장식물이 먼저 발길을 사로잡았다. #웅대함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 남문을 통과하자 본격적인 신들의 안식처가 눈앞에 펼쳐졌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 사원은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새겨진 사면 돌탑이 있는 곳.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수백m에 이르는 회랑 벽화에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 달리 당시의 생활상과 위대한 왕의 전투장면이 관광객을 맞는다. 벽화에는 창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크메르인과 밥을 짓느라 분주한 여성의 모습, 투견과 투계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를 잘못해 무너져 내린 수많은 석축물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했다. 바이욘 사원 북쪽에 있는 바푸온 사원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13세기 이 곳을 방문한 원나라 사신이 쓴 ‘진랍풍토기’에 ‘아침에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도성을 비추던 곳’으로 묘사된 힌두 사원이다. 바로 위에는 3층 피라미드 형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피미야나카스(천상의 궁전) 사원이 버티고 서있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열병식을 거행했던 광장과 코끼리 테라스, 라이왕 테라스를 볼수있다. 앙코르 톰 동쪽에 있는 타프롬 사원(왕의 수도원)은 복원이 어려워 발견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1861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어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앙코르 유적은 거대한 나무뿌리로 뒤덮여 있었다.’는 말 그대로 스퐁(열대 무화과 일종)이라 불리는 나무가 사원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나무 뿌리가 돌틈 사이를 파고 들어가 사원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로서는 나무를 베어낼 수도 벽돌을 다시 세우기도 어려워 유네스코에서도 복원보다는 현상을 유지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곳은 영화 ‘툼레이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가 사원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알려져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 경외로움 그동안의 앙코르 유적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숨죽일 만큼 아름답다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해자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는 폭 12m, 길이 540m의 참배도로 주변에는 일찌감치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길은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갈림길. 죽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잠시 뒤 수미산(세계 중심에 있는 산)을 상징하는 중앙탑 등 5개의 탑 뒤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사원이 시시각각으로 붉게 물드는 장면은 마치 신들이 자신의 세계를 인간들에게 조금씩 내어주는 듯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돼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 최고로 꼽힌다. 이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사원과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다. 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2)때 3만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7t짜리 돌기둥 1800개, 높이가 67m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3개의 회랑 벽면과 기둥에 새겨진 정교한 벽화는 힌두교 2대 경전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 라마야나 이야기는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팔이 스무개인 악마 라바나에게 강탈당한 아내 시타 왕비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신화다. 3층으로 된 앙코르와트의 중앙탑에 오르는 길은 70도 경사도. 손과 발을 이용해 기다시피 해야 올라설 수 있다. 신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찌 인간이 두발로 걸어 갈 수 있겠는가. # 아쉬움 앙코르 유적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쿨렌산은 앙코르의 발원지. 앙코르의 건립자 자야바르만 2세(802∼850)가 최초로 도읍을 정했던 곳. 돌무더기 유적에 질린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 볼 만한 코스다. 정상에서 약 10m크기의 와불상과 함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또 툼레이더가 촬영된 멋진 폭포도 구경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반테아이스레이 사원도 볼 만하다. 이 사원은 왕들이 세운 다른 사원과 달리 고위 관료가 지은 사원. 붉은 색 사암으로 지어진 핑크빛의 사원은 규모가 작지만 다른 사원과 비교해 어느 한군데 빠지지 않는 화려한 조각품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곳은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작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사원내에 있는 데비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돼 실형을 받은 일화도 있다. 앙코르 관광의 마무리는 프놈바켕의 일몰. 앙코르와트와 바이욘의 중간지점에 있는 높이 60m의 작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고 가파르지만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길고도 짧은 앙코르 관광이 끝났지만 신들이 새겨놓은 장엄한 잔상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원들을 돌아보느라 밀려드는 피곤함보다는 다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특히 9∼15세기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서 번성하던 앙코르 왕조와 내전으로 피폐해진 현재의 캄보디아 모습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사원 곳곳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여행 내내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했다. 과연 역사란, 삶이란 무엇일까. 알고가면 편해요 앙코르와트 여행은 겨울철이 가장 좋다.11∼2월이 건기로 이 기간이 가장 시원해서 유적을 둘러보기 적합하다.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 기후지만 하루에 몇번 스콜이 지나가는 정도일 뿐 금방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반면 3∼4월은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혹서기이며,5∼10월은 고온다습한 우기다.시차는 2시간으로 한국이 오전 10시면 캄보디아에서는 오전 8시다. 화폐는 리엘(Riel)이지만 시엠레압 등 대도시에서는 달러가 유통돼 환전할 필요는 없다. 소규모 상점에서는 거스름돈이 부족하므로 1달러짜리 소액권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1달러는 약 4000리엘 정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기전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거나 현지 도착후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권과 여권용 사진 1장, 비용 20달러가 필요하다. 종교는 상좌부불교(소승 불교)이며, 인종은 크메르족이 80%를 차지한다. 유의 사항으로는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생사정이 좋지 않다. 반드시 생수를 사먹는 편이 좋다. 관광지에서는 돌 하나도 가져가면 밀반출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루종일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므로 모자는 필수다. 전화가 거의 없으며, 호텔에서도 1분당 6달러 정도로 비싸다.전압은 220V로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적지에 들어 가려면 앙코르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1일권 20달러,3일권 40달러,7일권 60달러이며,1일권 외에는 사진을 찍어 함께 코팅해 준다. ‘쏙 싸바이’(안녕하세요),‘쭙닙수’(반갑습니다),‘옥꾸운’(감사합니다) 등 기본적인 캄보디아어를 외워두면 편하다. 가는 길은 시엠레압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4시간 20분, 방콕에서 시엠레압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이르면 3월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주 2회 직항편을 준비하고 있다. 숙박은 공항과 앙코르 유적지에서 각각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르 메르디앙호텔’이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리조트형 5성급 호텔로 223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www.lemeridien.com, (02)794-4011. 여행 상품으로는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02)536-4200)에서 앙코르 문화유적지를 충분히 둘러보는 3∼5일 여행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공항서 급행료 주지마세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는 연간 10만여명의 우리나라 관광객이 찾는 곳.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엠레압 공항에서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입국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고 통과하는 특권을 누린다. 공항 직원에게 일종의 ‘급행료’(?)를 지불했기 때문. 실제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우리 일행에게 공항직원이 “10달러를 주면 빨리 통과시켜 주겠다.”는 요구를 했다. 거부하자 한명에 5∼10분가량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급행료를 만든 것은 한국인. 좁은 공항에서 다소 오래 걸리는 입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 뇌물을 건넨 것이 관행화됐다는 게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설명이다. 유적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지 한국인 관광안내원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유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이다. 얼마전 한국인 관광객이 유적지내 돌탑을 흔들며 심한 장난을 치다 부숴뜨려 벌금 800만원과 함께 한달간 실형을 산 뒤 영구 추방조치되기도 했다. 캄보디아인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앙코르 유적지를 모독하거나 훼손, 파손할 경우 엄하게 처벌한다. 또 현지인들이 우리보다 못 산다고 무시하거나 종교적으로 모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신들의 세계를 관광하기에 앞서 좀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시엠레압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英명물 왕실군악대 15일 서울광장 공연

    서울시는 영국 왕실 근위병 스코틀랜드 근위 연대(The Scots Guard)군악대와 우리나라 해군 군악대가 15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서울광장에서 합동연주회를 연다고 14일 밝혔다. 스코틀랜드 근위 연대 군악대는 지난 8∼13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세계 군악대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 했으며 모두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50여명의 우리나라 해군 군악대와 함께 서울광장 주변을 행진하면서 연주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근위 연대 군악대는 1642년 영국 국왕 찰스1세의 지시로 조직된 이래 국가적 의전행사 등에서 연주를 해오고 있는 세계적인 군악대. 열병식 때 착용하는 진홍색 제복과 곰털 모자가 유명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2) 경남 남해 어부림·미조리숲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2) 경남 남해 어부림·미조리숲

    ●바람·조류 막아주는 울타리형 바다숲 ‘어부림’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가면 ‘물건다방’‘물건슈퍼’‘물건면사무소’‘물건중학교’‘물건수산’ 등등 온통 ‘물건’만 보게 되니 슬몃 웃음이 나온다.물론 ‘물건(物件)’이 아니라 ‘물건(勿巾)’이다.물건까지 달려 내려간 것은 일명 어부림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제150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바람과 조류를 막아선 전형적인 울타리형 바다숲.길이 1500m,폭 30m 내외,7000여 평에 이르는 광대한 숲이 해변을 가로지른다.이팝나무 모감주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말채나무 후박나무가 윗자리를 차지하고,그 뒤를 따라 산달나무 까마귀밥 여름나무 생강나무 화살나무 등이 앞다퉈 자리를 잡고 있다.상목 2000여 그루,하목 8만여 그루,도합 1만여 그루가 도열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하여 늘 열병식을 준비한다.대개 해송 같은 단일 품종이기 마련인 바닷가에 이처럼 식물의 종다원성이 확보된 바다숲이 자리하고 있음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으모 크일나요.해꼬지를 하모 틀림이 벌 받거덩.썩어자빠진 고목도 절대로 손은 대지 마이소.”숲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마을 노인들이 외지인을 보자마자 경계의 낯빛으로 전해 준 준엄한 경고다.입구에도 ‘구역 내 텐트금지.숲속에서 취사를 금함.위반시 법적 조치’란 경고 입간판이 서있다.누백년을 걸쳐 지켜온 숲이므로 이렇게 막고 지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설에는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에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들이 심었단다.그렇다고 보면 대략 400년 역사에 근접하는데,고목의 나이테와 거의 맞아 떨어진다.나무 종류도 170종에 이른다.선조들은 이곳에 왜 이같이 웅장한 숲을 조성하였을까. ●‘숲 해치면 마을 망한다’ 믿음 견고 물건리의 본디 지명은 ‘물건개’.움푹 들어간 만을 따라 펼쳐진 평지에 촌락이 형성되어 지금은 무려 227가구,530여명이 사는 대촌이 됐다.문제는 바다로부터 질풍처럼 내닫는 해풍과 조류였다.숲을 조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숲이 한 눈에 드는 산등성이에 올라 굽어보니 타원형의 숲이 바다와 뭍의 경계선에 그림처럼 놓여졌다.바다로부터의 온갖 도전을 굳건하게 막아주는 ‘지킴이’로 손색이 없는 위용이다. 19세기 말쯤 일이다.생각없는 사람들이 이곳 나무를 일부 벌채한 뒤 큰 폭풍을 만나 마을이 아예 ‘절단’난 적이 있었다.그 후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이곳 주민들의 믿음은 더욱 강고해졌다.1987년의 태풍 ‘셀마’ 때도 바닷물이 들어차 큰 피해를 입었다.물건항을 조성하면서 방파제를 쌓은 이후 해변의 아름답던 몽돌들이 씻겨나가고 있으며,숲에도 직접적인 피해가 닥쳤다.짠물이 숲을 덮쳐 나무가 죽어갔다.그래서 10여년 전부터 곳곳에 느티나무 등 후계목을 심어 뒷 일에 대비하고 있다. 너무도 중요한 숲인지라 아예 ‘제사 잡숫는 숲’이 되었다.숲에서 ‘우두머리’ 나무 한 그루를 정해 ‘당산’이라 이름붙이고 해마다 음력 10월 15일이면 제를 올린다.한 달 전에 동회를 열어서 깨끗하고 부정없는 인물을 뽑아 제주로 삼는다.예전에는 남해읍내까지 40리 길을 걸어서 오가며 제숫거리를 사오곤 했다.당목과 제줏집에는 지금도 왼새끼 금줄을 쳐 금기도 행한다. ●물고기에 숲그늘은 ‘호화판 별장’ 1960년대까지만 해도 봄이면 숲 바로 앞까지 멸치떼가 몰려들었다.은백색의 멸치가 몽돌해변으로 몰려들면 후리그물을 둥그렇게 둘러치고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가 그물의 양 귀를 잡아당겨 끌어올렸다.숲가에서는 드럼통을 개조한 가마솥에다 멸치를 연신 삶아냈고,이를 햇살 좋은 들판에 널어말려 ‘메루치’를 만들었다. 고기떼는 숲그늘로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물고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숲을 그리워한다.동물만이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해변이나 섬의 숲그늘로 몸을 숨기고 ‘그늘의 미학’을 즐긴다.선사시대의 인간들이 바위 그늘에 거주처를 마련하였듯 물고기들도 본능적으로 바위 그늘이나 숲 그늘을 찾는다.물건숲은 이런 물고기들에게는 가히 ‘호화판 별장’에 버금하는 거주조건을 갖춘 곳이다. 숲이 좋았을 때는 지금의 주택지까지가 거대한 ‘나무의 바다’였다.그 후 숲이 줄어들면서 그 물좋던 멸치떼도 사라져 먼 너른 바다로 나가야만 그물에 멸치가 든다.세월이 갈수록 숲은 몸피를 줄여 이제는 옛날의 원형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긴 띠로만 남았다.그래도 이만한 바다숲 구경하기가 쉬운 일인가. 물건숲은 지정학적인 위치와도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이곳은 남해의 바깥바다인 동쪽에 위치하여 외풍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그래서 바람,특히 태풍에 취약했다.만약에 조상들이 물건숲을 조성하지 않았더라면,사람이 사는 이곳도 지금쯤 소멸되어 허허벌판이 되었음직하다.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한 살만한 곳(家居地)은 계거(溪居),강거(江居),해거(海居)의 순이었으니,만약 이 숲이 없었더라면 이곳 사람들은 열악한 해거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쳤어야 했을 것이다. 물건숲의 매력은 활엽수와 상록수의 조화에 있지 않을까.대개의 바다숲이 해송 일색인데 반하여 이 숲은 느티나무가 주종이다.느티나무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을나무의 상징으로,그 친연성은 정자나무나 당산나무에서 단연 돋보인다. ●느티나무·상록수 우거진 ‘미조리숲’ 장관 그렇다면 물건숲은 저 홀로 전통인가.그렇지는 않다.남해군에는 이곳 말고도 걸출한 바다숲이 더 있다.아름답기 비할 바 없는 ‘물미도로’를 통해 십여 분을 달려가면 미조리숲(천연기념물 제29호)에 이른다.수령 50∼60여년에 이르는 거대한 느티나무 군락과 상록수 230여 그루가 해변을 향해 숲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설촌(設村) 역사로 미루어 보건대 숲은 현존 나무들의 나이테를 뛰어넘어 일찍부터 조성되었다가 여러 단계의 변천을 거친 것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처참한 풍경과도 마주쳐야 했다.미조리 역시 태풍 셀마를 만난 데다가 작년에는 매미까지 덮쳤다.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진 나무,스러진 나무들이 70여 그루에 달했다.거센 해일이 해변을 강타하면서 숲을 넘어 마을을 들이쳤으며,이 바람에 두 집이 쓸려나가고 일곱 집이 반파되기도 했다. 숲이 조성된 토대는 제방처럼 높다.미조리숲의 관리인이었던 이대승(65)씨는 이 숲은 “선대들이 ‘바람의지’로 세운 ‘울타리’”라고 설명했다.“우리가 죽더라도 후손들이 이어갈 것이 분명하지요.”논밭이 부족한 생활 조건에서 바다에 의지하여 사노라면 어차피 바닷가를 피할 수 없었겠으나 당초 이곳의 생존 조건이 너무나 험난했으니,이들 바다숲은 자연조건에 맞선 인간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미조리는 반농반어의 특성이 말하듯 의외로 논밭이 많다.숲을 넘어가면 밭이 있어 남해 특산인 마늘을 키우며,그 밭을 넘어가면 논이 있다.만약에 숲이 없다면 바람에 실려오는 염해 때문에 농사인들 제대로 됐을까. 바다숲은 비보풍수(裨補風水)와 연관이 깊다.풍수설에 따라 지형적인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비보로서 마을의 지기(地氣)를 키우고 지키고자 했던 것.숲이 없었더라면 바닷쪽이 얼마나 허했을까.숲이 우거지면 마을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이 난다는 속설마저도 이곳에서는 예사롭지 않다.미조리에서도 바다숲은 신성목(神聖木)이다.해마다 10월 15일 밤에 동제를 지내기 위하여 아예 동제당을 숲속에 지어 놓았다.뒷산 참나무가 윗당인지라 먼저 제를 지내고,그 다음에 마을에서 송정해수욕장 넘어오는 무림이 고갯목에 장승을 세우고,마지막으로 바다숲에서 제를 지낸다. ●물고기도 숲을 그리워한다 “태풍 매미가 강타하고 난 다음에는 고기가 들지 않아요.”주민들의 시름이 깊다.봄에는 감성돔과 방어,볼락,여름에는 멸치,가을에는 장어와 게 등을 잡지만 씨알도 잘고 잡히는 양도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숲이 얼마나 어업에 중요한가는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산견된다.일본에서는 막부시대부터 바다숲의 중요성을 간파하였으며,메이지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인공림을 조성하였다.예컨대 야마구치현(山口縣) 같은 곳에서는 해변 곳곳에 흑송림을 조성하여 고기를 유인하였다.오늘날도 어민은 물론이고 부인회,청년회 등이 앞장서 사회운동 차원에서 숲을 조성한다.물건리와 미조리 숲모심처럼 식수제(植樹祭) 같은 제의도 집행하며 ‘어민의 숲’,‘바다의 숲’,‘물고기의 숲’ 따위의 명표를 붙인 숲을 사회운동 차원에서 키워 나간다. 바다숲은 해변에 바짝 붙어서 운신하는 연안어종의 서식에 결정적인 조건이 된다.숲이 무성한 바닷가에 고기가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바다숲은 풍조(風潮)를 막는 1차적 기능 이외에 물고기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시너지효과까지 부여한다. 우리는 어떠한가.물고기를 위해서 나무를 심자면 삼척동자가 다 웃고 말 것이다.바다만 그러한가.강변숲과 수초가 무성해야 민물고기도 잠자리를 마련한다.콘크리트로 반듯하게 호안을 둘러친 강에서 민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듯 해변도로 따위로 장벽을 쌓아올린 곳에 바다물고기가 쉴 터를 장만할 턱이 없다. 이미 수백년 전에 바다숲을 조성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와 체험이 지금의 우리에게서 완벽하게 단절되고 말았다.남해바다의 숲에서 못난 후손들을 일깨우는 죽비의 매운 맛을 느끼며 아쉬웁게 감고계금(鑑古戒今)의 배움을 청해 본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격렬비열도에 가면 왠지 ‘격렬’해질 것만 같다.신진도 외항에서 ‘충남202호’에 몸을 싣고 격렬비열도를 향해 2시간쯤 난바다로 나서자 조용하던 바다가 ‘격렬’하게 용틀임한다.멀고 험난한 바닷길이다.다도해에는 못 미치지만,태안반도 서쪽으로도 자그마한 섬들이 열병식을 치르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안흥항에서 신진대교를 건너면 연육교로 이제는 뭍이 된 신진도에 다다른다.신진도와 마도도 연륙되었다.신진도 외항에서 출발하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거쳐 동격렬비열도와 서격렬비열도로 나뉘어 선 군도(群島)에 닿는다.여기서 좀더 서진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정기 연락선이 없어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섬들.‘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한 유행가가 읊조려지는 그런 섬들이다.가의도를 제외하면 살림집도 없다.옹도에 등대지기 몇 사람이 살고 있을 뿐이다.궁시도도 원래는 민가와 초등학교 분교까지 설치된 제법 번다한 섬이었으나 권위주의 시절,대간첩작전에 필요하다며 주민들을 다른 섬으로 소개시켜 빈 섬이 되었다.조선시대 왜구침략 때문에 빚어진 공도(空島)정책을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대하는 감회가 새삼 씁쓸하다. ●권위주의 시절 空島정책으로 주민 소개 온통 바위로 이뤄진 이들 ‘불모의 섬들’이지만 국제 해양교류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하다.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바다는 ‘국제 하이웨이’였으며,섬들은 휴게소나 나들목 구실을 했다.예나 지금이나 바닷길이 문명교류의 고속도로였던 셈.태안 마애삼존불이나 서산 마애삼존불이 근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으로부터 바닷길을 통한 불교문화의 전래를 생각하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중국 산둥반도와 이곳 태안반도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그보다 짧은 해양 항로는 없다.국제 통신망인 해저광케이블도 안흥 위의 천리포쯤에서 시작하여 격려비열도 북단을 거쳐 산둥반도 밑으로 간다.남양만의 당항성도 중요했지만 안흥성에도 국제교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중국에서 뱃길을 열어 한참을 달려오자면 드디어 갈매기떼가 날기 시작한다.새가 날기 시작하면 어딘가 섬이 가까워졌다는 뜻.먼 수평선 위에 소금 몇 알을 뿌려놓은 듯 격렬비열도가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험한 뱃길에 지친 사람들에게 불현듯 나타나는 이 섬이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격렬비열도에서 직진하면 안흥항에 닿으며,그 사이에 흩어진 섬들이 ‘뭍으로 가는 길’의 길라잡이들이다.이걸 알고도 누가 무인도를 ‘쓸모없는 섬’이라고 폄하할 수 있으랴. 옹도에 배를 들이밀었다.선착장 공사가 한창인데,아직까지는 모선에서 보트를 내려야만 상륙할 수 있다.거센 파도가 일렁거려 보트쯤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함빡 물벼락을 뒤집어 쓰고서야 땅을 디딜 수 있었다.걱정이 태산 같아 말도 안 나오는데 경력이 20년이라는 항해사는 ‘이건 파도도 아니다.’라며 태연자약하다.집채만한 파도들이 줄지어 달려들며 보트를 삼킬 듯 물어뜯는다.필자 같은 문약한 책상물림은 가히 혼비백산이다.옷가지는 물론 카메라백과 기록노트가 온통 바닷물에 젖어 엉망이다.그러면서도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 반갑고 경이로웠다. 들여다보면 등대지기의 삶은 ‘낭만’과 한참 떨어져 있다.많은 문인들이 등대를 소재로 낭만의 꽃을 피우고 있지만 정작 등대는 거센 파도와 싸우는 처절한 싸움의 현장이기도 하다.옹도등대,정확한 명칭은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옹도항로표지관리소.1907년에 설치됐으니,근대 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을 이 등대가 100년이 가깝게 거친 바닷길에 불을 밝혀온 셈이다. 이곳 박선우 소장과 두 명의 직원은 보름 간격으로 섬과 육지를 오가며 교대로 근무한다.어찌 생각하면 ‘팔자 좋게’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그만한 고역이 없다.노도와 풍랑으로 기약없이 섬에 갇히기 예사다.생지옥이란 이를 두고 말함이렷다.그러한즉 등대의 낭만 운운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옹도등대지기는 세 가지 신호를 보낸다.통상적으로 불을 밝히는 광파표지,안개가 낄 때의 음파경고인 무(霧)신호,그리고 레이더를 발사하는 전파표시가 그것.바다가 해무에 젖어들면 10m 거리도 보이지 않는다.근대 이전의 국제 선박들이 어떻게 암초 많은 이곳을 통과했을지 되짚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불이나 밝힐 뿐’이라는 식의 등대에 관한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다.인공위성의 전파정보를 받아 하늘과 바다를 하나로 잇는 이른바 DGPS 시스템을 활용하는 전천후 첨단 시스템을 활용한다.옹도등대는 대전 위성항법중앙사무소와 연계하며,여기에다 서산기상대의 위탁기상까지 떠맡고 있으니,뉴스에서 듣는 ‘서해안에는 풍랑이 몇 미터고,안개는 어떻고‘하는 정보도 알고 보면 옹도등대지기 같은 바다지킴이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등대의 임무를 강조했지만,그래도 등대의 멋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흰 배롱나무의 꽃무리가 은은한 향기를 뿜는 바다 저편으로 외항선 한 척이 지나간다.인천항이나 대산항,평택항으로 가는 배이리라.또 있다.그 등대에 다다르는 오르막 가파른 길을 빼곡하게 뒤덮은 동백나무 군락은 이곳이 남방계 식물의 영향권임을 말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육지에서는 얼어 죽고 마는 동백나무가 경기도의 울도에서 군락을 이룬 것을 본 적이 있다.북녘 자료를 보니,평안도 철산앞바다 대화도에도 군락이 무성하단다.구로시오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성 기후가 형성돼 한반도의 바다는 육지와 전혀 다른 식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족도에는 가마우지떼가 모여 산다.자그마한 난도는 온통 괭이갈매기 천지다.섬 곳곳이 하얀 갈매기똥으로 덮여 있다.난도 정상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우거져서 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동백꽃의 자태로 섬 생활의 고독함을 물들이고 있다. ●새들이 만든 유채꽃밭 봄바다의 압권 역시나 격렬비열도와 궁시도의 압권은 봄의 유채꽃.제주도의 유채꽃이 푸른 바다와 겹쳐 환상적 풍경을 자아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면,이곳 유채꽃은 은자처럼 숨어 있어 간혹 발걸음을 하는 어부나 낚시꾼들만이 즐길 뿐이다.자연적으로 피었을 리는 만무하고,그렇다고 누가 철없이 절해절벽에 유채씨를 뿌렸을 리도 없으니,모르긴 하되 아마 새들의 작품이리라.배설된 유채꽃 씨앗에서 움튼 새싹이 해마다 번창하며 해중화(海中花)의 향연을 마련하였으리라.건너편 꽃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꽃박람회에 덧붙여 격렬비열도의 유채꽃밭은 그 자체로 가히 봄바다의 압권이다. 그러나 바다는 이런 따위의 아름다움이나 낭만과 무관하게 역시나 외롭고 험난하다.잠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인근에서 가장 해류를 거세게 받는 곳이 안면 외해(外海) 안흥량이다.일명 관장목이라고도 부르는데,강화도 손돌목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물살이 드센 곳으로 손꼽힌다. 예전,격렬비열도를 거쳐서 안흥으로 들어오던 중국 배들이 이곳에서 숱하게 수장됐다.지금도 안흥의 어부들 그물에는 심심찮게 청자 따위가 걸려 올라오곤 한다.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된 배들의 흔적이리라.이런 탓일까.가의도에 가면 아예 ‘중국에서 가의라는 사람이 귀양와 그 때부터 가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실제로 태안군 남면의 가씨들이 얼마 전까지 가의도에 들어와 시향(時享)을 지냈다고 하니,가의도가 가씨의 본향인 셈이다.가의도의 오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중국인들이 베어낸 둥치에서 새롭게 자라난 새끼라는 전설 등은 중국과 안흥의 연계설을 증언하고 있다.안흥이나 가의도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중국 다롄까지 가서 밀무역에 종사했다고 전한다.바다를 길삼아 교류하고 교역한 역사가 상상보다 활발했다는 증거다. ●명나라 사신 왕래때 표지로 삼던 후망봉 신진도 외항으로 들어서자면 왼쪽에 마도 후망봉이 홀로 솟아 있는데,고려시대에 명나라 사신이 왕래할 때 표지로 삼던 곳이다.산 뒤에는 능허대(凌虛臺)가 있어 바다를 관해(觀海)하기에 그만이다.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인 국방과학연구소 내에 안파사(安波寺) 절터가 있으니,풀자면 ‘파도를 잠재우는 절’이라는 뜻이다.예전 뱃사람들은 먼 항해에 앞서 이곳에서 공양을 올린 뒤 뱃길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성계가 안흥성을 자주 드나드는 명나라 사신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다는 설도 있다.설마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으랴만 높이 3∼4m,길이 1㎞가 넘는 석성을 쌓느라 10여년씩 부역에 시달렸을 민중의 고초가 손에 잡힌다.동서남북으로 돌문을 달고,그 안에 300채쯤 되는 ‘호화주택’을 지었던 안흥성은 명나라에 널리 알려져 ‘조선에 가거든 안흥성을 보고 오라.’는 말까지 생겼다.한때 영화로웠던 안흥성의 국제적 명성을 가늠해 봄직하다. 20여년 전,나룻배를 타고 신진도로 건너갔던 기억이 새롭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다,마도는 물안개에 젖어 잠들어 있었다.그런 섬에 다리가 놓이고 1종 항구가 조성돼 지금은 횟집이 즐비하다.태안반도 해양관광 1번지로 손색이 없다. 차를 몰아 안흥성에 올랐다.수백 채의 집들은 동학혁명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성벽만 남아 있다.안흥성문 코앞까지 배가 들어와 곧바로 사신과 무역상들이 성내로 들어왔다고 하는데,지금은 물길과 멀어져 있다.새우 양식장으로 쓰던 앞바다는 조만간 골프장으로 바뀐단다.국제교류가 활발하던 바다에 골프공이 난비하는 풍경을 생각하니 왠지 낯설고 거북하다. 여승들이 주석하는 안흥성 태국사에서 바라보는 안흥량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격렬비열도의 그 모진 파도가 어디 갔을까 싶게 숨죽인 바다가 졸고 있다.빗방울 긋는 소리,물안개에 에워싸인 섬이 열 가지,백 가지로 변신하는 바다의 얼굴을 웅변해 준다.바다는 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곳이다.어찌 인간의 힘으로 바다가 가진 천의 얼굴을 이해할 수 있으랴. 관해의 으뜸 절창이 연출되는 안흥성에 오르니 그 옛날 국제 선단이 바닷길을 내달려 안흥성에 닻을 내리는 환상에 빠져들고 만다.무심결에 지나치는 무인도들조차도 이같이 역사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섬이야말로 예전부터 국제 고속도로의 네트워크 아니겠는가.
  • 이헌재 부총리 “수도권 기업도시 허용 검토”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업도시 건설 제의와 관련,기업의 자족도시 건설여건이 충족되는 곳이라면 수도권에도 이를 허용해 주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기로 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22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가진 간부회의에서 “수도권이라도 베드타운 기능에 머물러 있는 곳 등은 그대로 내버려두기보다는 기업도시로서 기능이 필요하다면 이를 탄력적으로 허용해 줄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재경부는 당초 “기업도시를 수도권 내에 건설하는 것은 수도권 집중 문제뿐 아니라 개발효과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재계 요구는 있지만 수도권 내 기업도시는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었다. 이 부총리는 아울러 “6월까지 마련할 계획인 토지규제개혁 로드맵을 제외한 재경부 소관 관련법령들을 다음달 중 정비한 뒤 5월 입법예고를 거쳐 6월에는 국회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부총리는 부처별로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개최하는 공무원체육대회와 관련,“직원들이 재충전 기회를 갖도록 다른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전체 직원을 운동장에 모아 놓는 행사는 ‘열병식 군사문화’라고 비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하사 전용일 퇴역을 명 받았습니다”국군포로 전용일씨 50년만의 제대

    “필승.하사 전용일은 2004년 1월19일부로 퇴역을 명(命) 받았습니다.이에 신고합니다.” 6·25 당시 북한군 포로가 됐다가 50년만에 북에서 탈출,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전용일(73)씨가 19일 퇴역식을 갖고 ‘민간인’으로 돌아갔다.전씨는 이날 퇴역식을 마친 뒤 경북 영천으로 내려가 친척들과 첫날 밤을 보내는 등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퇴역식이 열린 곳은 그가 포로가 되기 직전 근무하던 경기도 포천시 6사단.하사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사단 사령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환영하는 군악대의 우렁찬 연주소리에 매우 놀란 듯 처음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하지만 부대원들의 뜨거운 박수와 사단장인 허평환(육사 30기) 육군 소장의 반가운 포옹을 받은 뒤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전씨로부터 귀환신고를 받은 허 사단장은 “할아버지로 알았는데 군복을 입혀놓으니 늠름한 현역 군인 같다.”며 치켜세웠다.전씨는 “50년만에 찾아온 나를 전 부대원들이 이렇게 환대해줘 너무 고맙다.”면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이 모두 돌아와야 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귀환신고에 이어 연병장에서 부대원들이 도열한 가운데 열병식도 가졌다.그와 함께 지프에 올라탄 제병지휘관은 전씨가 포로가 되기 직전 소속부대인 19연대 3대대의 현직 대대장.행사 내내 간호 부사관의 부축을 받으며 굳은 표정으로 있던 전씨는 열병식에서 거수경례로 응답하다 차츰 분위기에 익숙한 듯 손을 흔들며 환호에 답례하는 여유를 보였다 열병식이 끝난 뒤 그는 이날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으로부터 지난 94년 귀환한 조창호 예비역 중위에 이어 두번째로 향군 회원증도 받았다. 앞서 전씨는 지난해 12월24일 입국한 뒤 관계기관의 합동조사를 거쳐 호적 부활,주민등록증 발급 등 정착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마쳤다. 지난 51년 12월 입대해 6사단 19연대 3대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가하던 중 53년 7월 강원도 금성지구 교암산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다 포로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이후 그는 북한 강동 포로수용소 등을 끌려다니며 중노동에 시달렸으며,56년 6월 풀려난 뒤 함경남·북도 지역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해 6월2일 중국으로 탈출했다. 포천 조승진기자 redtrain@
  • 9·9절행사 안팎/北 새 미사일 공개 안해

    북한 정권 수립 55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군·당·정 고위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9일 오전 1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당초 일부에서 예상했던 신형 미사일과 전차·로켓 등 군사장비를 동원한 무력시위는 없었으며,핵 보유 선언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 발표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오후 3시부터 열병식과 군중시위 장면을 녹화 방영했으며,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같은 시각부터 이 행사를 일제히 녹음방송했다. 행사는 김 위원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대동하고 주석단에 입장하면서 시작됐다.이어 개인화기인 ‘자동보총’으로 무장한 육·해·공군 및 여군 2만여명의 열병과 분열에 이어 붉은 꽃을 든 수십만명의 군중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은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이 우리의 선의와 아량에도 불구하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자위를 위한 정당방위 수단으로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국내외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관측과 달리 군사장비를 동원한 무력시위를 하지 않은 것은 미국 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고 6자 회담으로 조성된 대화의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뜻으로 해석된다.특히 행사를 며칠 앞두고 미사일 발사대와 본체 운반과정을 미국의 인공위성을 통해 일부러 노출시켜 긴장을 고조시킨 뒤 막상 행사 당일에는 공개하지 않는 심리전을 쓴 것으로 당국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당초 북한이 이날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으나,이같은 예상이 사실로 확인되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또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11월로 예상되는 제2차 6자회담에도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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