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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랑구 직원들, 저소득층 자녀 멘토로

    중랑구 직원들, 저소득층 자녀 멘토로

    “처음부터 100점짜리 멘토가 되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 해요. 하루이틀 만나 상담하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멀리 보려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지칠 것 같아요.” 7일 중랑구보건소 박은정(31·의약과) 간호서기가 저소득층 자녀와 1대1 멘토에 나서는 소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다른 자치구에 비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이 많은 중랑구가 생활에 여유가 없고 넉넉하지 않은 저소득층 자녀들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로 ‘나눔과 배움 멘토링 봉사단’을 본격 출범시켰다. 교육특구를 지향하는 장기적인 청사진과도 맞닿아 있다. 구는 지난해 125억원의 교육경비 보조금을 각급 학교에 지원,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 꾸준히 힘써 왔으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정이 많은 게 현실이었다. 멘토링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은 주로 한부모 가정이나 차상위계층, 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이들의 멘토를 자청한 구청 직원은 모두 17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자원봉사센터 교육장에서 학습전문 상담사로부터 기본 수양교육과 자원봉사 사전교육을 이수했다. 이날 교육에서는 결연 학생과 멘토의 성격 검사를 실시해 서로 맞는 사람끼리 결연을 맺도록 배려했다. 9일 멘토와 멘티 간의 첫 만남을 갖는다. 신흥초교 5학년인 한 학생과 결연을 맺은 박 간호서기는 “ 일명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라는 프로젝트에 걸맞게 앞으로의 꿈 등 인생 상담을 해 주고 싶다.”며 “아이 엄마가 동생도 함께 상담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멘토링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우선 학습전문 상담사가 매주 화요일 학생들을 만나 개인의 성향과 문제를 파악하고 학생의 정보와 과제를 인터넷 카페 ‘학습상담지기’에 올린다. 멘토는 이 정보를 갖고 목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1시간 30여분 동안 구청에서 학생과 만난다. 예를 들어 A학생은 평소 학교 숙제를 잘 빼먹는 습관이 있어서 꼭 챙겨 달라는 과제를 올려주면 멘토가 그 과제를 우선 봐주는 식이다. 멘토가 결과를 보고서로 카페에 올리면 다시 학습상담사가 리플을 달아 주는 등 피드백을 한다. 멘토와 멘티 간 정기적인 만남은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서로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교환해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고 만날 수 있다. 멘토링 주요 내용은 학습동기 부여, 방과후 교육과정 보충학습 지도, 멘토의 개인적 경험·지식·기술제공 등이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한 가치관과 인생관을 심어 주는 일이 가장 눈길을 끈다. 문병권 구청장은 “자치구 직원이 직접 저소득층 자녀와 1대1 멘토링 사업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일회성 행사가 아닌, 아이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서는 봉사인 만큼 좋은 열매를 맺기 바란다.”고 기대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씨줄날줄] 상종(相從)/주병철 논설위원

    상종(相從)은 사전적 의미로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냄을 뜻한다. 듣기에 좋은 말이다. 요즘에는 ‘끼리끼리‘ ‘초록은 동색’이라는 다소 비꼬는 뜻으로 변질됐다. 사람의 인격이 고양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즉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상종의 매력이다. 귤나무도 조건과 환경이 다른 곳에서는 엉뚱하게도 탱자 열매를 맺는 잡목이 될 수 있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도 넓게 보면 상종의 어원과 맞닿아 있다는 학설도 있다. 상종이란 의미가 잘 와 닿는 사자성어 가운데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있다. 주역의 계사(繫辭) 상편에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라는 구절이 있다. “삼라만상은 그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 산다. 거기서 길흉이 생긴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순우곤과 관련한 고사도 이와 비슷하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순우곤에게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지시했다. 며칠 뒤 순우곤이 일곱 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나자 선왕이 이렇게 말했다. “귀한 인재를 한번에 일곱 명씩이나 데려 오다니, 너무 많지 않은가?”라고. 그러자 순우곤은 “같은 종의 새가 무리지어 살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인재를 모으는 것은 강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상종엔 상극이란 뜻도 있다. 갈등의 골이 깊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기원전 970년 무렵부터 기원전 926년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린 솔로몬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가 수도인 북쪽의 이스라엘왕국과 예루살렘이 수도인 남쪽의 유다왕국으로 분열됐다. 이스라엘왕 여로 보임이 유다왕국의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유다왕국이 고레스의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는 데 이스라엘왕국이 훼방을 놓으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하고 상종도 못하는 존재가 됐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그제 이명박 정부가 반북 대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더 이상 남측과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남한의 대북정책 변화를 노린 압박시위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하지만 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북측의 만행을 감안하면 ‘상종’ 선언은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만으로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1억원대 ‘천종산삼’ 심봤다

    1억원대 ‘천종산삼’ 심봤다

    경기 가평에서 100살 이상 된 ‘천종산삼’이 발견됐다. 화악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부 이원규씨는 지난 22일 마을 뒷산에 올랐다가 산삼을 발견했다. 천종산삼이란 산삼 중에서도 최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감정가로만 무려 1억원을 호가한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천종산삼은 두 뿌리로, 큰 것은 딸(열매)에서 미(뿌리)까지 길이가 1m가 넘고 무게는 75g(2냥)이나 돼 크기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 또 작은 것은 뿌리가 두 개인 ‘쌍대 노두’로 양쪽 노두 모두 길이가 무려 10cm가 넘는, 보기 드문 형태의 천종산삼이다. 발견 당시 감정을 했던 한국 산삼감정원 이민홍 원장은 “이런 종류의 천종산삼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 채취된 산삼 중 최고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수십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희귀종이다.”라고 평가했다. 산삼을 캔 이씨는 “희귀 산삼인 만큼 일반인에게도 모습을 공개하고, 공개 경매를 통해 판매한 뒤 수익금은 현재 모시고 사는 부모님을 봉양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세상살이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는 만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세월 따라 빠르게 변하는 사람살이가 있는가 하면, 예나 제나 제 모습을 잃지 않는 자연이 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사람이 있다. 대개 10년쯤이면 사람이 살던 집의 풍경이 바뀌거나 그 안에 살던 사람이 달라진다. 그러나 수백 년을 꼼짝 않고 살아온 나무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 무상한 변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은 제 살림을 꾸려간다. 혹시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도와주는 나무라면 그의 깊은 나뭇결에 동화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살가운 감동이 담기기도 한다. “이 나무 앞에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시집 가서 잠깐 동안 재 너머 마을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오십 년 넘게 저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거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나무는 많이 컸겠지만, 내가 보기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의 아름다운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한적한 식당 ‘들림집’의 주인 최정자(54)씨는 밤나무 쪽으로 창문이 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밤나무집’으로 더 잘 알려졌던 이 집은 마방(馬房)이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운교역창(雲橋驛倉)이 있었다. 당시 최씨의 집은 말을 이끌고 지나던 상인이나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 가는 주막이자 말들이 쉬는 곳이었다. 집의 뒷동산에 우뚝 서 있는 밤나무는 생김새만으로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크고 우아한 자태로 자란 나무여서, 한눈에도 오래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재로 여겨지는 나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밤나무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식당 집 뒷동산 밤나무’로만 이야기했다. 십년 전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나무 곁에는 최씨 내외가 버섯을 키우기 위해 쌓아둔 원목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나무 뿌리 부분은 비좁은 돌 축대로 갑갑하게 막혀 있었다. 나름대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오히려 나무의 생육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 밤나무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2008년 겨울이다. 우리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라는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최근 나무 뿌리를 답답하게 하던 돌축대를 허물고, 땅을 고른 뒤,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천연기념물로서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최씨는 가문의 자랑인 나무를 나라에서 잘 지켜 주게 돼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영명자’라고 알려진 나무 운교리 밤나무의 키는 14m가 넘고, 뿌리 부분에서 잰 밑동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키나 줄기보다 굉장한 것은 사방으로 넓게 펼친 가지들이다. 동서로는 25m를 훌쩍 넘었고, 동산의 경사면을 타고 있는 남북 방향으로는 20m를 넘었다. 이 정도면 나라 안의 밤나무 가운데 운교리 밤나무의 규모와 견줄 나무가 없다. 밤나무는 감나무만큼 우리네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나무 자체를 보기 위해 키우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와는 다르다. 대개의 경우 밤나무는 오로지 열매를 얻기 위해 키운다. “그네를 세 개씩이나 맸어요. 어린 아이들 타기 좋게 낮은 가지에 하나를 매고, 다른 두 개는 좀 커서 어른들이 뛸 수 있는 그네를 맸지요. 사철 내내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밤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지에 그네를 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밤송이의 가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기 어려워서다.최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같은 크기와 나이의 밤나무가 네 그루나 더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큰 나무였는데, 밤 송이가 바닥에 깔리면 옆의 밭에서 일하기가 어려워 다른 나무들은 모두 베어내고 그 중 가장 잘 생긴 지금의 나무 한 그루만 남겨 놓았다고 한다. “밤송이가 무성하게 달리는 가을에도 사람들이 모였지요. 밤이 많이 열려서 식구들이 필요한 만큼 먹어도 넉넉하게 남아서, 집안 어른들은 아무나 주워 가도록 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에 평창을 밤의 특산지로 기록했을 만큼 인근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질 좋은 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다. 밤골, 밤고개라는 땅이름이 남아 있는 것도 이를 증거한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운교리 밤나무는 맛 좋은 밤을 맺는 나무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영명자’(榮鳴玆)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이 나무를 부른 것은 조선시대 때 마방이 있던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이름 난 밤나무인 만큼 찾아오는 손님은 사람뿐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부지런한 건 청설모다. 밤이 맺힐 즈음이면, 이른 아침부터 나무를 찾아와 찍찍거리는 청설모 소리에 잠이 깰 지경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변치 말아야 할 자연 문화재 사람들의 뜻에 맞춰 열매를 많이 맺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밤나무는 생장 에너지를 일찍 소진해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대개의 다른 유실수와 마찬가지 이치다. 하지만 운교리 밤나무는 3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밤나무다. “우리 나무가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돌보기에는 너무 크고 좋은 나무잖아요. 또 내 집이 앞을 가려서 나무 풍경을 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하고, 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평생 살아온 집이지만 내놓을 수 있어요. 나는 이 마을을 못 떠나요.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밤나무가 바라다보이는 이 근처로 옮겨 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살 겁니다.” 최정자씨의 이야기에는 태어나서 50년 동안 스스로의 삶을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변함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겼다. 오래도록 변하지 말아야 할 나무를 위해 필경 또 다른 변화를 거치게 마련인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앞에 살아온 ‘아낌없이 주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지혜다. 글 사진 평창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 영동고속국도의 새말나들목으로 나가서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6㎞를 조금 더 가면 안흥 면사무소와 찐빵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 가면 안흥초등학교 앞의 삼거리에 닿는다. 평창 방면으로 가는 오른쪽의 산길을 타고 16㎞쯤 가야 평창 운교리에 이른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한적한 산길 도로 왼편으로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나온다. 나무는 식당 뒷동산에 있다.
  • 제주 커피 테마파크 개장

    제주월드컵경기장에 커피 박물관과 체험장 등을 갖춘 커피 테마파크가 문을 연다. 제주워터월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부대시설 1600여㎡에 커피 박물관과 체험장, 스파 등을 갖춘 커피 테마파크를 시설, 어린이날인 5일 개장한다고 4일 밝혔다. 박물관은 1000㎡ 규모로, 18세기부터 전해지는 희귀한 커피 유물 300여점을 전시하며, 관람객이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 커피를 만들어 맛을 보는 체험장도 있다. 이 테마파크는 또 국내에서 드물게 열매가 가득 달린 10년생 커피나무 1000여 그루를 관람할 수 있는 커피 농장과 커피를 풀어놓은 욕조에서 피로를 푸는 스파 시설도 있다. 개관 기념으로 5일부터 15일까지 커피박물관과 커피농장을 무료로 개방한다. 김종운 대표는 “커피테마파크는 커피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모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앞으로 커피 축제 등을 열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무상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무상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무상복지는 한정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재정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태공(太空) 송월주(76) 스님이 3일 주지로 있는 서울 구의동 영화사에서 ‘나의 불성을 깨우고 남의 불성을 돌봅시다’라는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어를 전한 뒤 최근 정치권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사회 현안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스님은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종교지도자로서 사회 발전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야 할 책임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복지에 대해 스님은 “위정자들의 정치적 주장과 선전이 때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흐리게 한다.”면서 “노력 없이 얻는 열매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이 바로 무상복지라는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수조원이 예상되는 무상의 구호와 정책이 중생을 구하고 살리는 길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날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에 서명하기도 했다. 스님은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佛子行道已 世得作佛·불자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부처를 이룰 수 있다)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표를 얻는 행위는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며 주민투표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비생산적인 갈등과 분쟁을 보면서 답답해 나서게 됐다.”며 “다만 나의 발언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 소신”이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장미의 진화’ 피어나는 파주 화훼농장 가 보니

    ‘장미의 진화’ 피어나는 파주 화훼농장 가 보니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3000여평짜리 화훼농장. 어두컴컴한 작업실 사이로 야광 장미가 한아름 빛을 뽐낸다. 인부들이 들고 나온 남색 장미는 햇살에 하늘색으로 바뀐다. 또 다른 흰 장미는 밝은 곳에서 붉은색으로 변한다. 골드 장미는 금박을 붙인 듯하고, 레인보 장미는 7가지 색이 꽃 한 송이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꽃의 진화’다.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꽃의 60%는 일본으로 수출되고 40%는 국내에 유통된다. 흰 장미에 특허를 낸 특수 염료를 뿌려 꽃도 훼손되지 않고 인체에도 무해한 새로운 장미를 만들어 낸다. 흰 장미 가격이 한단에 3000원인 데 반해 염료를 입힌 장미는 2만원가량이다. 이 농장의 계형일 사장은 지난해 88만 달러(약 9억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술제휴를 통해 러시아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국내 마트에 진출하는 것. 계 사장은 “지금껏 수출에 집중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꽃의 유통단계가 많아 가격이 높아지는 것 뿐 아니라 꽃이 많은 사람의 손을 타면서 금세 시들기 때문”이라면서 “농협이나 마트에서 누구나 한 송이씩 살 수 있도록 농장에서 직접 소매점으로 유통하는 시스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2009년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화훼소비액은 1만 7000원. 4년 전인 2005년 2만 1000원보다도 줄어들었다. 국민 1인당 화훼소비액이 11만원인 네덜란드, 15만원인 스위스, 16만원인 노르웨이와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최근 꽃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는 게 계 사장의 판단이다. 농부의 욕심에서야 기름값 등 원료비는 10배가 넘었어도 꽃가격은 그대로인 것이 불만이지만 유통구조를 바꿔 이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1000~2000원짜리 꽃이 있다면 한두 송이 사다가 식탁에 꽂아 놓을 만큼의 소비자 수요는 분명 늘고 있다.”면서 “외국처럼 일상에 꽃이 스며들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쉽게 꽃에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꽃이 너무 쉽게 시들어 구입을 꺼리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꽃은 피는 미학과 지는 미학을 동시에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3년 동안 피는 보존화를 개발했지만 오히려 지겹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3개월짜리 보존화를 생산키로 한 점이 그 증거라고 했다. 꽃은 최근 여러 면에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고 있다. 유기농 꽃은 플라워 케이크나 화전 등 식용 꽃으로 재탄생한다. 전통 음식 중에도 노란장미화전, 꽃가루와 꿀을 버무려 만든 다식, 국화차 등 많은 음식에 꽃이 쓰였다. 특히 꽃의 다양한 색상을 내는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콜라겐 형성을 촉진하며 베타카로틴은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 들장미 열매인 로즈힙에는 오렌지의 40배에 달하는 비타민C가 함유돼 있어 실제 세계 2차 대전 이후 어린이들의 비타민C 공급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플라워 데코는 실내 디자인뿐 아니라 지역디자인까지 책임진다. 정선의 백두대간 생태수목원은 주변 암반과 들꽃이 어우러져 최고 수준의 공간디자인으로 평가된다. 식물의 공기정화효과도 빠뜨릴 수 없다. 자연적으로 온·습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에너지 소비 없는 공기청정기인 셈이다. 특히 ‘액자형·부착형 화분’ 등은 공간 효율까지 고려할 수 있게 한다. 원예치료는 농촌진흥청의 주관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나리꽃 향기가 초등학생의 시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꽃은 아름다움과 생명력, 향기를 통해 시각·촉각·후각적으로 정신과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이런 효과를 과학적으로 활용해 원예치료와 아로마테라피 등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달라이라마가 뿌린 민주 씨앗, 
티베트인 참여로 열매 맺을 것”

    “달라이라마가 뿌린 민주 씨앗, 티베트인 참여로 열매 맺을 것”

    27일 티베트에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있는 로브상 상계(43)로, 지난달 20일 치러진 티베트 망명정부 총선에서 새 총리로 선출된 인물이다. 잠정 집계결과 최다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당선 사실은 망명정부가 27일(현지시간) 공식발표할 예정이며 오는 8월 15일부터 활동에 나선다. 지난 50여년간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이끈 정신적 지주 달라이라마가 은퇴를 선언한 상태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어나갈 정치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망명 티베트인은 모두 8만 3000여명. 13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 내 티베트인 600만명은 과연 그를 포스트 달라이라마의 지도자로 인정할 것인지, 중국 정부는 새로운 티베트 망명정부라는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26일 로브상 상계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포스트 달라이라마의 티베트를 짚어본다. ●풀뿌리 캠페인으로 유권자와 직접소통 →당신은 왜 티베트 망명정부의 칼론 트리파(총리) 선거에 출마했나. -티베트의 자유를 되찾고 티베트인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총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왜 사람들이 당신을 총리로 뽑아 줬다고 보나. -사람들은 나를 ‘변화’를 대변하는 가장 적합한 후보자로 판단한 듯하다. 나는 선거 과정에서 세 가지 원칙을 공유했다. 단합과 혁신, 그리고 자립정신이다. 이 원칙이 유권자의 마음을 울린 것 같다. 또 한국과 미국, 인도의 선거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벤치마킹했다. 이를 바탕으로 풀뿌리 캠페인을 벌였고 유권자들을 한명 한명 만나 직접 소통했다. 티베트의 정치 지도자들은 전통적으로 지지를 얻으려고 유권자와 직접 만나 얘기하지는 않는다. 사실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인도의 여러 지역은 물론 많은 국가에 퍼져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건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다. →달라이라마 퇴임 이후 티베트 독립 문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달라이라마가 “(정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정치적 권력을 선출된 지도자에게 넘기겠다.”고 결정한 것은 멀리 내다본 결정이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는 아랍권 여러 나라들의 현실과 매우 다르다. 달라이라마는 위에서부터 민주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는 우리 지도자이고 또 늘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물론 달라이라마의 은퇴 결정 이후 많은 티베트인들이 불안해한다. 그가 오랫동안 티베트를 잘 이끌어 왔기 때문에 (그가 은퇴를 선언한) 지금은 매우 어려운 시기다. 그 누구도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와 나누는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여전히 조언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그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없는 티베트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음 달 특별회의에서 좀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다. 각국에 퍼져 있는 티베트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모여 달라이라마의 은퇴 결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또 (달라이라마가 없는 티베트 망명정부 운영 계획 등을 담은) 티베트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된다. ●등록유권자 60% 선거 참여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자유 선거가 치러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유 선거는 민주주의를 현실화하고 강화시킨다. 사실 티베트 사회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데 이 같은 선거는 우리 사회의 문을 활짝 열게 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들이 세계 곳곳을 돌며 대중들로부터 자유롭게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우리는 입장을 내놓았다. 티베트인들은 이 과정을 거쳐 자신의 지도자들을 민주적으로 직접 뽑을 수 있었다. 등록 유권자의 60%가 참여할 정도로 총선은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민주주의 체계를 책임 있게 끌어안고 갈 수 있을지다. 이는 티베트인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반면 중국에 사는 티베트인들이 양심의 자유나 발언의 자유, 인권 등 민주적 가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슬프다. 민주주의 뿌리를 공고히 내리도록 하려는 우리의 계획은 중국의 티베트인들이 민주주의의 혜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중도’와 ‘비폭력’ 노선을 고수해 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장투쟁을 벌이는 것이 독립을 얻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티베트를 독립국가로 볼지와 유엔 결의안에 따라 자결권이 있는 국가로 볼지는 여전히 국제법상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중도노선과 (중국 내에서) 티베트의 ‘진짜 자치권’ 전략은 티베트 망명 의회에 의해 통과된 공식 정책이다. 여기에는 달라이라마의 입장이 담겼다. 총리가 누가 되든 이 정책을 따라야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중국과 소통할 수 있고 티베트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철저하게 토론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中정부 가혹정책에 저항 계속 →중동에 ‘재스민혁명’이 진행 중이다. ‘아랍의 봄’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배울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랍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표한다. 아랍권 시위 과정을 지켜보며 2008년 티베트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봉기가 떠올랐다. 1959년 대규모 봉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 티베트 승려 등은 중국 정부의 지배와 가혹한 정책에 대해 티베트 내에서 계속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혁명하라.”며 복돋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 정부의 잔혹한 탄압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중국 내 티베트인들이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해 나가는 것을 지지한다. →한국은 달라이라마의 입국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티베트 이슈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변화하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우선 한국이 달라이라마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달라이라마는 평화와 연민의 메신저로 유명하고 한국인들 역시 그런 그를 초청할 수 있도록 허락돼야 한다. 그가 방한한다면 이는 한국이 자주적 민주 국가라는 증표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는 발전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존경은 돈으로 사거나 사람들에게 강요해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존경은 얻는 것이다. 중국이 자국 시민과 티베트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한다면 국제 사회의 진심 어린 존경을 얻을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말했듯 중국이 슈퍼 파워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권위’가 필요하다. 티베트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국에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지위와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티베트인과 중국 출신 학자들이 모이는 주요 학회를 일곱 차례 열었다. 달라이라마와 중국 학자가 함께 참여했던 2003년과 2009년 학회도 있었다. 이 같은 학술 교류가 티베트 문제의 즉각적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티베트인과 중국인이 서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신뢰를 쌓았으면 한다. 간디와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등이 했던 일이다. 티베트도 위대한 지도자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야 한다. ●젊은 나이 총리직 수행에 지장없어 →당신이 너무 어리다거나 행정경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한 비판에도 유권자들은 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는 그들이 내가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미국과 영국, 러시아,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40대 최고 지도자가 나왔고 이 때문에 나도 업무를 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선거는 티베트 정치 리더십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티베트 원로들은 이번 권력이양을 지지함으로써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가 50년간 희생하고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점만 마음속에 새긴다면 충분히 ‘조국 자유 운동’과 사회를 진보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보여 줬다. →한국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은 잠재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다. 한국과 티베트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특히 (불교 국가인) 티베트처럼 한국에도 많은 불교 신자들이 있고 많은 한국인들이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찾아와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종교 교사들이 여는 불교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한국인들이 티베트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티베트은 현재 종교·문화적 박해를 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중국 내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상황을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을 허용하고 또 다른 티베트 종교지도자나 학자들을 초청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이 티베트인들이 투쟁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길 바란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정진석 추기경 부활절 메시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17일 ‘2011년 부활 메시지’를 통해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오는 24일 부활절에 맞춰 이날 발표한 메시지에서 “부활을 맞이하며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죄와 죽음의 세력을 극복한 부활의 기쁨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우리 시대가 현재 맞닥뜨린 불행의 원인은 삶의 모든 것을 경제 중심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시련이 크다 해도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 추기경은 “오늘의 세상에서 해야 할 교회의 역할은 막중하고 분명하다.”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조그만 싹에서 열매를 보다/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열린세상] 조그만 싹에서 열매를 보다/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왔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무안이 아니라 면박을 받는다면 황당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개인도 아닌 국가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가 그렇다.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고통을 겪는 일본을 위로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지갑을 열고 저금통을 깼으며, 기업은 거액을 쾌척했다. 바로 이때 일본 정부는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미증유의 재난에 처한 이웃이기에 역사의 고통도 잊고 성심껏 위로를 건넸더니 뒤통수를 친 격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인들의 온정에 그런 대답을 내놨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시점이 우연히 겹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정된 사안이라 해도 일본 정부의 몰염치와 무신경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고, 그 즈음부터 한국인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잇단 지진과 원전사고 확대 소식이 날아들고 있지만 사태를 냉정하게 보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문제는 일본이 싫다고 떼어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방사능비가 내렸을 때 너도나도 우산을 받쳐들고 종종걸음을 쳤던 엊그제를 떠올리면 한·일 관계는 숙명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역사적으로 이웃 나라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그랬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싱가포르·말레이시아가 번번이 갈등을 빚곤 했다. 침략과 방어로 점철된 한·일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비슷해 보여도 매번 닥치는 상황은 새로울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해법을 찾게 된다. 오늘이 어제의 재판이라면 새삼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일본의 대재앙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일본이 하루빨리 재기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많은 일본인들 역시 한국인의 진심에 고마워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재지변이 한·일 관계를 새롭게 세울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이런 때 공식 입장밖에 견지할 수 없는 정부 관계보다 민간 사이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일 국민 사이에 생긴 공통 감각을 승화시켜 상생과 공존의 제도화로 연결해야 한다. 사회·문화적인 교류를 강화하는 것과는 별도로 경제적 차원에서 협력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무형의 공감대를 실체를 가진 현실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부상도 양국 간 협력 필요성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동북아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일 간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약화된 상황에서 한·중, 일·중 관계가 심화되면서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미국·유럽 사이에서 고달픈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신세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세안 등 지역 공동체가 활발하게 가동되거나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한·일 관계가 발전해 동북아, 동아시아 공동체로 가려면 단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의 협력적 리더십이 긴요하다. 이번 대지진 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넸던 것처럼 한·일 관계의 새로운 국면도 우리가 열어야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20년으로 길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양국 관계를 견인할 추진력이 많이 약해졌다. 따라서 우리가,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이 나서서 민간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두 나라는 고령화, 양극화, 고용불안, 대외 의존성 등 고민거리도 비슷해 머리를 맞댈 여지가 많고 신흥시장 진출과 환경·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 일본 대지진은 두 나라에 뜻하지 않은 재앙과 불안을 불러왔지만, 이를 계기로 여리지만 소중한 신뢰의 싹이 피기 시작했다. 두 나라 기업이 신뢰의 땅을 다지고 교류·협력의 물꼬를 주도할 때 그 싹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가지를 뻗어 장차 공동 번영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7) 공주 마곡사 ‘김구 향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7) 공주 마곡사 ‘김구 향나무’

    나무를 심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대개는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나무의 물리적·정신적 혜택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도 최소한 한 세대는 넘겨야 사람의 소용에 닿을 만큼 자라게 마련이다. 열매나 목재를 쓰기 위한 실용적 이유가 아니라, 오래도록 기념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사람의 뜻을 널리 전해 달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옛날에만 그랬던 건 아니다. 여전히 삶의 중요한 고비 때 사람들은 나무를 심는다. 이른바 기념식수다. ●광복 직후 마곡사에 찾아와 손수 심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도 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나무를 심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이역 타향을 떠돌던 그는 일제가 물러간 뒤 고국에 돌아와 충남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마곡사는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수감됐던 인천 감옥에서 탈옥해 숨어들었던 곳이다. 선생은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승려 생활을 했다. 광복 직후 마곡사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선생은 ‘백범일지’에 “48년 전에 중이 되어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출입하던 길로 좌우를 살펴보며 천천히 들어가니, 의구한 산천은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라고 썼다. 하룻밤을 마곡사에서 묵은 선생은 이튿날 아침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기념으로 무궁화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마곡사를 떠났다.”(‘백범일지’ 하권에서) 1946년의 일이다. 2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선생은 고향인 황해도 해주 땅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했다. 사형수로, 장기수로 두 차례 수감되었던 인천에 이어 찾아온 곳이 바로 마곡사였다. 그만큼 마곡사는 선생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선생은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워 온 그가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한 그것은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평화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가 심은 한 그루의 무궁화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수명을 다하고 스러진 게다. 그러나 향나무 한 그루는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의 양지바른 자리에서 도담도담 자라고 있다. 향나무를 처음 심은 1946년에는 이미 서너 해를 넘긴 묘목이었을 테니, 이 향나무의 나이는 올해로 65세를 조금 넘긴 셈이다. ●백범 명상길에서 체험 프로그램까지 개발 사람의 뜻을 향기에 실어 하늘 멀리까지 전한다는 향나무에 선생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민족 번영의 뜻을 담았다. 1000년을 사는 향나무라는 걸 감안하면, 아직 어린 향나무이지만 바라보는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과의 관계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한 이즈음이어서 더 그렇다. 나이에 맞춤하게 나무는 경내의 여느 큰 나무에 비해 싱싱하다. 겨우 사람 키를 조금 넘은 2.5m 정도밖에 안 되는 아담한 크기이지만, 김구 선생의 손길을 닮아서인지 줄기는 옹골찬 기세로 뻗어 올랐다. 1m가 조금 넘는 곳까지 곧게 솟아오른 뒤, 나무는 사방으로 널찍이 가지를 펼치며 늘 푸른 잎을 돋아냈다. 70년이 채 안 되는 세월이지만, 이 어린 나무에게도 아픔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자리도 옮겼다. 선생이 처음 나무를 심은 자리는 마곡사 천왕문을 지나 큰법당으로 들어서기 위해 극락교를 건너 마주치는 범종각 맞은편이었다. “물이 많은 자리여서인지, 나무의 상태가 그리 안 좋았어요. 해마다 영양 주사를 놓으면서 보호해야 했지요. 그러다가 4년 전에 이 향나무를 더 잘 살리기 위해 좋은 자리를 골라 옮겼어요. 마침 김구 선생께서 우리 절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의 승려로 계실 때 머무르시던 요사채 옆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남태규(43) 종무실장의 이야기다. 나무에만 정성을 들인 건 아니지 싶다. 2009년 가을부터 주석하는 주지 원혜 스님은 특히 승려로서 혹은 민족 지도자로서의 김구 선생이 남긴 자취를 살려 내고 민족혼을 고양하기 위해 적잖은 기획 행사를 진행했다. “우리 절에서 승려이셨던 김구 선생의 정신과 혼을 되살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죠. 이태 전 가을부터 원혜 스님께서 백범 기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셨어요.” 마곡사 주변의 산책로에 ‘백범 명상길’이라고 이름 붙여 ‘충청의 올레길’로 널리 알리는 한편 백범 선생이 삭발례를 치르던 냇가 바위 주변에 알림판과 전망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몇 가지 백범 관련 체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살아남아 ‘춘마곡 추갑사’라 했다. 공주시 동남쪽의 계룡산 갑사가 가을에 아름다운 절이라면, 북서쪽의 마곡사는 봄볕 따스할 때에 더 좋다는 표현이다. 아직 마곡사의 봄은 무르익지 않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마곡사 경내에는 하얀 목련이 줄지어 꽃을 피워 올릴 것이고, 법당 주위로는 벚나무·박태기나무·철쭉 등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솟아오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곡사를 품어 안은 태화산 부근의 신록은 더 싱그러워질 것이다. 우리 강산에 찾아오는 봄의 아름다움을 더 오래 더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일 뿐 아니라 60여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은 뜻이기도 하다. 백범, 그는 갔지만 그가 심은 향나무 한 그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어린 나무 앞에 이리 오래 서서 눈을 맞추는 건 그래서 1000년 향나무를 바라보는 어떤 일보다 뜻깊을 수밖에 없다. 마침 지난 13일은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었다. 나무 앞에 서서 가만히 어제의 각오를 되새겨 본다. 글 사진 공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당진~상주 고속도로 마곡사 나들목을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마곡사 나들목에서 1㎞를 채 못 간 곳에 사곡교차로가 있다. 우회전해 300m 가서 좌회전한다. 유구천을 건너 7㎞ 가면 마곡사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한 오솔길을 걸어가면 마곡사다. 나무는 조사전 앞에 있다.
  • 도전! 도시농부

    도전! 도시농부

    진짜 농부가 되고 싶은 ‘도시 농부’의 문제는 농사를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시골에서 자라면서 곁눈질로 보고 배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농사에 무식하면서 유기농산물을 키우겠다는 열정은 하늘만큼 높다. 그래서 실수도 잦다. 때맞춰 씨 뿌리기나 모종을 못 하기도 하고, 땅에 거름을 주면 좋은 줄만 알고 비싼 퇴비를 사다가 마구 뿌려 땅을 과영양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4월 둘째·셋째 주가 농부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이 시기에 제대로 못 하면 6월 수확기에 아주 속상할 수 있다. 도시 농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손형기 도시농업팀 주무관에게 들어봤다. 이미 씨 뿌릴 시기를 놓쳤다. 대부분 모종을 사다가 심어야 한다. 4월 둘째·셋째 주에는 상추, 청경채, 쑥갓, 겨자채 등 쌈야채라고 하는 것들을 모종으로 사면 된다. 감자도 씨감자로 하기에는 조금 늦어서 모종을 심는 게 좋다. 감자 1포기당 감자가 6개 안팎으로 달리는데,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씨감자를 지금 심으면 감자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 작을 수 있다. 열무씨도 이때 뿌리면 된다. 열무엔 벌레가 많이 끼는데, 열무가 있으면 다른 채소에 피해가 덜하기 때문에 ‘미끼’로 사용해도 된다. 5월 첫째 주에는 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등 열매가 달리는 모종을 심으면 된다. 이때 거름을 듬뿍 줘야 열매가 잘 달리고 맛도 좋다. 옥수수는 열매채소보다 한주 빠르게 4월 말에 심으라. 고추나 가지 등은 검은 비닐로 바닥 덮기를 해주고, 자라면서 비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목을 대주면 좋다. 7월 초까지 파란 고추로 잘 자라지만 장마가 오면 역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 국거리로 아욱, 시금치, 근대 등이 있는데, 아욱이 가장 재배하기 쉽다. 근대는 오래 키워야 하고, 시금치는 더운 봄보다 쌀쌀한 가을에 더 잘 자라기 때문이다. 6월에 상추쌈 대신 들깻잎 쌈을 즐기려면 5월 말쯤 들깨씨를 뿌리면 된다. 봄이면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리는데, 1㎡에 1㎏의 퇴비가 적당하다. 다만, 채소 등을 심어 놓고서 20~30일 간격으로 웃거름을 주면 좋다. 이름처럼 밭 위에 퇴비를 올려놓으면 비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호미로 살짝 땅을 파고 옆에 묻어 주는 게 효과적이다. 또 최소 2~3주에 한번쯤 호미로 식물 주변을 살살 긁어 주듯 김을 매 줘야 한다. 좋은 흙은 물과 공기와 흙의 비율이 1:1:8이다. 진딧물이나 병충해에는 난황유를 만들어 뿌리면 좋다. 계란 노른자 1개에 물 20㎖, 식용유 60㎖를 믹서기로 잘 섞어서 사용하는데, 예방을 위해 10~14일에 한번, 치료할 땐 5~7일에 한번씩 분무하라.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대공원 침팬지 신나겠네

    대공원 침팬지 신나겠네

    서울대공원 침팬지들이 신났다. 놀이시설인 정글타워가 말끔하게 새 단장을 마쳐서다. 정글타워는 높은 나무에서 생활하는 침팬지의 야생 환경을 그대로 살린 인공 구조물이다. 야생에서 무리지어 정글의 나무 열매나 나뭇잎을 먹고사는 침팬지는 먹이를 위해 주로 20~30m의 높이에서 생활한다. 특히 대공원이 이번에 내놓은 정글타워는 세계 최고층이다. 기존 대공원의 정글타워는 6m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12m와 18m, 24m 3가지로 구성됐다. 24m는 침팬지가 가장 좋아하는 높이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가장 높은 정글타워는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의 15m였다. 정글타워의 효과는 크다. 야생의 습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서 침팬지의 활동성이 높아져 건강에 도움된다. 자연히 컨디션도 좋아진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침팬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침팬지에겐 건강을, 방문객에겐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세영 대공원 운영과장은 6일 “정글타워에 연결다리와 밧줄도 설치해 볼거리가 더욱 많아졌다.”면서 “방문객에게 차별화된 관람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공원은 7일부터 정글타워에 침팬지를 방사시켜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대공원에는 1995년생인 ‘용용’과 두 부인인 ‘갑순’(1997년생)과 ‘쥬디’(1998년생), 그리고 각각 갑순과 쥬디의 아들인 ‘광복’(2009년생)과 ‘까뮈’(2010년생)등 5마리의 침팬지가 오붓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길섶에서] 생강나무/이춘규 논설위원

    중앙선 전철이 연장되면서 서울시민들에게 한결 가까워진 경기도 양평 양수리. 양수역에 내려 느긋하게 봄기운에 취해 본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앞다퉈 봄을 알린다. 앙증맞은 꽃들. 작은 꽃바다. 향기 질펀하다. 큰 풀에 묻혀 버리기 전 꽃을 피워 대를 잇겠다는 생존본능이 엿보인다. 종주에 7시간 안팎 걸리는 능선에 올라선다.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지천이다. 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수십번 종주했지만 처음 본다. 숲이 우거지면 감춰지는 탓에 그동안 몰랐던 것 같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키가 3m 남짓하다. 알싸한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연한 잎은 먹는다. 산수유 꽃과 구분이 쉽지 않다. 생강나무꽃 군락은 양수역에서 벚고개, 청계산을 지나 국수역까지 50리 가까운 능선을 따라 터널을 이룬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는 생강나무의 가쁜 숨이 느껴지는 듯하다. 생강나무의 옹골찬 생명력을 생각하며 해질녘에야 꽃터널을 빠져 나왔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나는 내가 좋아요(윤여림 글, 배현주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아이 스스로 자신감을 쑥쑥 키우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그림책. 서너 살 유아들이 자율성을 키울 수 있으며, 끝 부분에는 나무에 자신감 열매를 붙이는 스티커도 있다. 9000원. ●뒷집 준범이(이혜란 글·그림, 보림 펴냄) 미장원, 슈퍼, 중국집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동네에 이사 온 준범이는 온종일 창밖만 내다본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살려 만든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살아 있는 그림체가 정겹다. 1만원. ●누가 보름달을 먹었지?(재클린 미튼 지음, 에리카 팔 지음, 김영주 옮김, 학고재 펴냄) 초승달, 그믐달, 보름달을 비롯한 달의 모양 변화와 개기월식, 달무리 등 달에 관한 정보를 동물의 생태적 속성과 함께 풀어낸 재미있는 그림책. 9500원. ●라 보엠(김선희 글, 조신애 그림, 보물상자 펴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관심을 둘 수 있도록 돕는다. 오페라의 본래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9500원.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오래된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게 곧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언술이리라. 대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우리의 살림살이에는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 해도 옛사람들의 자취는 남아있고, 그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인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자 애쓰기 마련이다. 옛사람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도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짚어 보는 역사적 상징임에 틀림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발적으로 의병을 모아 이순신 장군을 찾아간 우리 조상이 있었어요. 오득린이라는 장군이죠. 지략이 뛰어나서, 이순신 장군이 매우 아끼며 참모로 기용한 명장이에요. 그 할아버지가 왜군의 총탄을 맞고 할 수 없이 물러나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일으켰어요.” ●마을을 일으킨 오득린 장군이 심어 나주 오씨 집성촌인 전남 나주 공산면 상방리 상구마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오영선(54)씨의 이야기다. 오득린(吳得隣, 1564~1637)은 충무공의 참모로 활약하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한 뒤에도 끝까지 전투를 이끈 명장이다. 조근조근 들려주는 오씨의 이야기에는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한가득 담겼다. “마을 서쪽으로는 숲이 울창한데, 반대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서 조금 휑하게 보여요. 풍수를 보는 사람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좌청룡이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을 일구며 오득린 할아버지는 마을의 동쪽 입구에 마을 숲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나무를 심으셨어요.” 원래 마을 동쪽 입구는 조릿대와 같은 낮은키 나무들이 덤불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쪽의 울창한 숲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장군은 이곳에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크고 오래 자라는 나무를 골라서 심었다. 장군은 마을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숲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오씨는 덧붙였다. 그때 심은 나무 가운데 10여 그루가 아직 살아 있다. “마을 입구의 나무에서는 해마다 정월 그믐에 당산제를 지내요. 당산제 때는 당산나무 앞인 마을회관 마당에 100명 정도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먹곤 합니다. 먹고 남은 음식은 저 나무 앞에 땅을 파고 잘 묻지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잖아요. 나무에도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천연기념물 지정된 유일한 호랑가시나무 오영선씨가 가리킨 나무는 최근 천연기념물 제516호로 지정된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다. 잎 가장자리에 난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다. 딱딱한 잎과 억센 가시가 특징인 상록성 나무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도 부른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로, 전북의 변산반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군락지도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가까운 곳에서 자란 나무인데, 홀로 서 있는 독립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상방리 호랑가시나무가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유일한 나무다. 키가 5.5m나 되는 이 나무는 호랑가시나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다. 어른 허리 높이쯤에서 줄기가 둘로 나눠지면서 동그랗게 자란 나무는 사나운 이름과 달리 부드럽고 착한 생김새를 갖췄다. 나무 바로 앞에는 오득린 장군의 기념비를 세워 나무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새겨볼 수 있게 했다. “겨울이 되면 빨갛게 맺히는 열매가 예뻐요. 꽃은 언제 피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데, 열매는 정말 좋아요. 열매를 맺으면 새들이 달려들어서 금세 먹어치우지요. 먹을 게 없는 겨울이라 그런지, 새들이 저 열매를 특히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연한 황록색의 호랑가시나무 꽃은 모내기로 농부들이 가장 바쁜 5월쯤 피어난다. 또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7㎜ 밖에 안 되는 크기로 작게 피어나기 때문에 한창 모내기로 분주한 농부들의 눈에는 잘 뜨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사일이 줄어들어 한가해지는 겨울에는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에 맺히는 빨간 열매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굳이 농부가 아니라 해도 호랑가시나무는 열매가 인상적인 나무로, 흔히 성탄절 장식이나 카드의 그림으로 많이 쓰인다. 호랑가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만 열매가 맺힌다.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는 농한기에 농부들의 눈길을 빼앗는 암나무다. “열매 맺는 나무가 따로 있군요. 아, 그래서 마을회관 뒤에 있는 몇 그루의 호랑가시나무에서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 거였군요.” 오영선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택시 운전을 하는 이 마을의 오생교(58)씨가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오다가 다가왔다. 영선씨와 사촌 간이라는 생교씨는 식사를 뒤로 미룬 채, 나무 이야기를 보태려고 영선씨 곁으로 바투 다가섰다. ●상여도 못 나가게 하며 지켜와 “지금도 적은 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엔 나무가 많았어요. 어르신들이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말도 못 해요. 가지를 꺾으면 몸에 큰 병이 든다고 했죠. 또 초상집에서 나가는 상여도 그랬고,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도 이 나무들 사이로는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니까요.” 400여년 전에 마을을 일으킨 선조가 심은 호랑가시나무 앞에서 이루어진 봄날 한낮의 나무 이야기는 그러고도 계속 이어졌다. 나무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나무의 생육 정보보다는 나무를 대하는 옛사람들의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다르지 않았다. 나무를 통해 이어간 사람살이의 작은 역사, E H 카의 이야기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글 사진 나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앰네스티 2010년 전세계 사형제 운영 현황 발표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최소 527건의 사형이 집행(2009년 714건)됐고 사형제를 두고 있는 58개국 가운데 실제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23개국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990년대 평균 40여개국이었던 사형집행국 수도 2000년대 들어 평균 30여개국, 최근 5년 동안은 평균 23개국으로 줄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사형집행을 한 나라로 분석돼 대조를 이뤘다. ●한국 14년째 사형집행 ‘0’ 국제앰네스티는 28일 서울 정동 사랑의 열매회관에서 ‘2010 사형선고와 사형집행: 연례사형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39개국으로 전 세계 국가 중 3분의2가 넘고,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58개국 중에서도 실제로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23개국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4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우리나라에는 확정 판결을 받은 사형수가 61명에 이르고, 현재 2명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北 최소 60명… 세번째로 많아 또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사형집행 건수를 기록한 북한은 지난해 최소 60명을 사형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북한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공개처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형집행 건수 1위에 오른 중국은 수천명이 사형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정부가 사형에 관한 모든 사항을 국가 기밀로 취급하고 있어 공개되지 않았다. 김희진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은 “중국에서 사형집행된 사람의 수는 나머지 국가들의 모든 사형집행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밝혔다. 앰네스티의 이번 보고서에는 2010년 사형을 집행한 국가의 수는 23개국으로 2009년 19개국에 비해 4개국 늘어났고, 몇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6개 국가가 2010년 다시 사형집행을 재개하는 ‘특징’도 담겨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멸종위기 ‘탐라란’ 제주에 자생지 복원

    멸종위기 ‘탐라란’ 제주에 자생지 복원

    제주도는 국립수목원과 함께 멸종위기에 처한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탐라란’ 자생지에 대한 복원사업을 벌인다고 28일 밝혔다. 탐라란은 전세계에서 제주도와 일본 남부, 오키나와, 타이완 등에만 분포하는 난으로 상록활엽수 줄기에 붙어 자라는 동아시아 특산식물이다. 주로 습한 지역에서 자생하며 1년에 0.2~0.3㎝밖에 자라지 않는다. 국내 탐라란 자생지는 1994년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됐으나, 희소가치와 관상가치가 높아 무분별하게 채취되면서 현재 제주도 자생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국립수목원은 ‘희귀·특산식물 보전 및 복원 인프라 구축’ 연구과제의 일환으로 지난 2007년 2월 탐라란 열매를 입수해 2008년부터 파종을 시작했다. 이후 4년에 걸쳐 개체를 증식, 제주 한라수목원, 바보난농원과 함께 제주지역 자생지에 300여 개체를 복원할 예정이다. 도 관계자는 “탐라란은 요즘 일본과 타이완에서도 찾기 어렵다.”며 “지속적으로 탐라란을 자생지에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씨줄날줄] 매화마을/이춘규 논설위원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이다.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그래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꽃이다. 인내심과 강인한 생명력도 자랑한다.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고귀함, 건강도 상징해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상징 꽃과 나무로 매화를 지정하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는 음력 5월은 매천(梅天)이라고도 부른다. 매실이 익을 무렵의 비 오는 하늘이라는 뜻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장맛비를 매우(梅雨)라고도 한다. 설중매(雪中梅)는 겨울이 끝나지 않은, 때이른 봄눈을 맞으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다. 봄을 시샘하는 차가운 눈발을 견뎌내며 홀로 피는 꽃이어서 특히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시나 소설 등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다. 1908년 구연학이 번안하여 출간한 설중매라는 신소설이 있었다. 1886년 일본의 스에히로 뎃초가 발표한 정치소설을 당시의 조선정치 현실에 빗대어서 출판한 작품이다. 1976년에는 설중매라는 영화가, 1984년에는 드라마가 각각 제작됐다. 매화는 사람들에게 사계절 기쁨을 안긴다. 설중매는 생명체의 위대함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춘삼월 매화꽃은 그 꽃내음에 취해 혼몽하게 한다. 6월에는 농부들이 매화 열매 매실을 수확한다. 특히 최근 들어 참살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건강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매실즙·장아찌 등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애주가들이 숙취 해소를 위해 많이 찾아 인기는 점점 오르고 있다. 공해물질 해독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매화 재배면적도 늘고 있다. 막바지 꽃샘추위 속에 전국 최대의 매화재배단지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이 매화꽃바다를 이루었다. 26일 섬진강변 매화마을로 가는 길은 하루종일 전국에서 몰려든 자동차들로 수㎞나 메워져 있었다. 매화마을에는 50여년 전부터 밤나무 대신 100만㎡가 넘는 밭에 매화나무 수십만 그루가 심어졌다. 부근 산마을들도 온통 매화천지다. 1997년부터 매년 3월이면 매화축제가 열린다. 100만명의 인파가 한적한 남도 마을로 몰려든다. 섬진마을로도 불리는 매화마을은 드넓은 섬진강 은빛 백사장과 어울려 운취를 더한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는 한가로움을 선사한다. 매화꽃밭 사잇길에서는 도시인들이 매화향기에 취해 시간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섬진강 물길이 빚어놓은 백사장은 시간이 1960년대쯤에 멈추어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백사장에서 쪼그려 앉아 손 한번 씻고, 모래성을 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자네는 왜 시를 쓰지 않나?” 노(老) 시인은 대뜸 묻는다. 그저 농담인가 싶어 머뭇거리니 다시 묻고 재촉한다. “자네도 시를 쓰시게. 제대로 된 시 두편만 남기면 그 어떤 훌륭한 정치인, 그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 더 오랫동안 역사가 기억할 거야.” 진지했다. 65년 시력(詩歷)의 시인답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식과 지혜를 내보였고, 92세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얘기 중간중간 유쾌한 농담을 잊지 않던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정색한 채 손주뻘 되는 기자에게 시 쓰기를 권했다. 머리를 배반한 입이 절로 움직였다. “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4일 시조시인 정완영을 만났다. 최근 열일곱 번째 시집 ‘詩菴(시암)의 봄’(황금알 펴냄)을 내놓은 그다. 공식 집계는 없건만 창작 시집을 내놓은 최고령 시인임에 분명하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그의 집과 백수문학관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제 강점 기 고문이 시로 터져나와 그의 호는 백수(白水)다. 정갈히 맑은 물이라는 뜻과 함께 고향 김천의 천(泉)을 쪼갠 글자(破字)다. 2008년 정부와 경북도 등이 예산을 들여 백수문학관을 개관했다. 시조시인으로 개인의 문학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난 시 지상주의자이면서 시 전도사야. 남녀, 학력, 노소 가리지 않고 늘 시를 권하지. 시를 쓰는 것이 즐거우니까 권하는 거지. 시를 안 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시에는 별 재주 없는 이가 많을 텐데 무작정 시를 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짐짓 놔보는 어깃장에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면 많이 거두는 이도 있고, 조금밖에 못 거두는 이도 있지. 그러나 아무것도 못 거둔 이는 없는 법이야.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한 만큼은 반드시 거두게 돼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정완영은 일제 강점기 ‘불령선인’(일본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찍혀 경찰에게 고문당해 오른쪽 중지를 쓸 수 없게 됐다. 고통은 시가 되어 터져나왔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만들며 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민족적 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장르로서 시조만을 고집해 온 민족사적 배경이자 개인사적 이유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조 ‘조국’에서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와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게끔 살아온 것이다. 정완영은 청마 유치환의 강권으로 공식 등단의 필요성을 느꼈고 곧바로 1960년 서울신문, 국제신보, 1962년 조선일보, 1967년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를 휩쓸다시피하며 중앙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몸으로 꿰뚫고 살아온 시 세계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인이 가난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시인의 가난함은 훈장이라고 머리로 외면서도 몸은 한사코 명예와 돈을 좇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느 시인들의 비루한 현실이니 말이다. “시는 벌판에서 와. 외롭고 쓸쓸할 때, 그때 시가 나와. 안일하거나 가득 차면 시가 안 나오거든. 시가 떠오를 때는 일부러 밥도 두세 끼니씩 거르기도 해.” 하지만 어쩌랴. 짜여진 형식의 틀과 고루한 인식에 갇혀 있는, 낡은 장르로 치부되는 것이 문단에서 시조가 겪고 있는 대접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에는 종장 세 글자를 제외하면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들어 있다. 시의 정서와 시어 역시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시조를 모르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시조 변형 자유로워… 낡은 장르 치부는 편견” 그의 신작 시집 ‘시암의 봄’을 펼쳐 읽어 보면 시조에 대한 편견이 단박에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감꽃’ 중), ‘동구 밖 개 짖는 소리로 먼 마을에 눈 내렸다’(‘먼 마을에 내리던 눈’ 중),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것인가’(‘적막한 봄’ 중) 등과 같은 시편들은 젊은 시인의 모던함과 무람 없이 견줘도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길 만하다. 특히 ‘함부로 꽃 피지 않고, 함부로 열매 안하는 석류나무’를 보여준 ‘우리 집 석류나무는’는 품격 있는 시어 조련과 범우주적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정수를 확인시켜 준다. 지금도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시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는 진짜배기 시인 정완영. 그러고 보니 김천은 소설 쓰는 김연수(41), 시 쓰는 문태준(41)의 고향이다. 그냥 불쑥 튀어나온 문재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 사진 김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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