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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속되는「통독」기류… 그 진로와 파장/독일문제 전문가 3각 인터뷰

    ◎“「하나의 독일」 최대 고비는 4강 합의”/「이념」보다 「경제격차」가 더 큰 장애물/안보위협 없는한 「헬싱키체제」 유지/대결상황 극복… 「통합유럽」 형성에 큰 기대/양독 국민의 열망이 「통일 기운」 무르익게/한반도에 큰 영향 파급될듯…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최근 통독 움직임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앞질러 뜀박질하고 있다. 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움직임과 남북 대치상황에도 변화의 싹이 엿보이고 있다. 독일 문제 권위자인 정용길교수(동국대ㆍ정치학),이삼열교수(숭실대ㆍ정치철학)와의 삼각 인터뷰를 통해 통독 움직임의 배경과 문제점,통일독일의 모습,그리고 통독문제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등을 다각적으로 조망해 본다. ­통일문제가 왜 이토록 숨가쁘게 진행되는가. ▲정교수=최근 동독의 주요도시에서 통일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에 3월18일로 예정된 동독총선에서 현 모드로브 총리가 이끄는 독일사회주의당(공산당 후신)은 승리를 위한 포석으로 종전의 소극적 입장에서 적극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통일의꿈을 버리지 않던 서독이 범세계적인 화해분위기와 소련ㆍ동구의 개혁등에 적응하여 다시한번 그들의 강력한 통일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그동안 양독은 교류를 통한 공존ㆍ신뢰 기반을 구축해 통일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교수=독일 통일이 가시권내에 들어오게 된것은 동서독 정부도 미소 등 강대국도 아니요 오로지 동서독 국민들의 힘이었고 의지였다. 아무리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동독을 민주화 시키고 개방화 시켰더라도 소련이나 미국은 독일의 통일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을 헐고 몸으로 통일을 실천한 독일의 민중들이,특히 동독의 민중들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변화시켜 이제 통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동서독 국민 모두가 지금이 통일을 위한 최선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못하면 상당히 오랜동안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관점을 갖고 통일을 서둘게 된 것이다. ­독일이 통일되는데 있어 장애요인과 극복해야할 문제점은. ▲정교수=독일통일은 유럽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또 나토와 유럽공동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안에서,그리고 현 국경선의 존중이 포함된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헬싱키선언을 따른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독일내 상황을 보면 동독은 경제문제가 시급한데 시장경제에 너무 취약해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동독 이주자들로 인해 서독은 실업ㆍ주택ㆍ교육ㆍ이념의 문제로 갈등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통일논의가 시작되면 이밖에 많은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동서 일방밀착 우려 ▲이교수=내ㆍ외적 요인이 있다. 독일의 주변 강대국들은 통일독일이 너무 큰 세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동서유럽 어느 한쪽에 밀착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따라서 4강의 합의나 유럽안보협력회의의 결의를 거쳐서만 통일이 가능할텐데 양진영에서 동의를 어떻게 얻어내느냐가 최대의 난관이다. 내적인 장애요인으로는 이념문제보다는 경제문제일 것이다. 당분간 상품교역과 물가에 혼란이 생길 것이다. 또 서독경제가 여력이 있다해도 1천8백만 동독인에게 서독시민과같은 사회보장ㆍ복지혜택을 주기는 역부족이다. 화폐나 경제통합에서 단계적 조치가 불가피한데 이를 어떻게 양쪽 경제에 큰 타격과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추진하느냐가 최대의 어려움일 것이다. 집이 부동산으로 재산이 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통합은 과도적인 단계와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통일후 독일의 정치ㆍ경제체제는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정교수=통일독일의 정치체제는 국가연합단계를 넘어 연방제가,경제체제는 서독 또는 유럽공동시장이 추구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오는 3월 동독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크며 동독 공산당은 차츰 약화돼 오랜 시일이 지나면 서독 공산당처럼 될 수도 있다. 서독의 정치제도는 통일 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나 동독에서는 기반이 약한 기민당ㆍ자민당보다는 사민당이 통일후 세력확장의 가능성이 높다. ▲이교수=이 문제는 아직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양독 모두 연방제를 선호하기 때문에 복합국가나 복합체제의 양태를 띠게 될것 같다. 동독의 총선결과가 나오면 보다 뚜렷이 예측할 수 있을것 같다. ­독일통일이 유럽정세에 미칠 영향은. ▲정교수=당분간 헬싱키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동구의 다른나라들에 안보적 위협이 없는 상태로 독일이 통일된다면 동구국가들은 이념보다는 경제발전에 주력할 것이고 따라서 EC나 서방과의 관계가 밀접해질 것이다. ○중부유럽시대 도래 ▲이교수=독일의 통일방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럽의 질서나 동구권에 주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되든 2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첫째 유럽에서의 독일의 위치와 세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며 중부유럽이 유럽의 핵을 이루는 역사가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둘째,독일통일은 하나의 유럽을 만들어 가는데 크게 기여하게 돼 유럽의 분단과 대결 상황이 크게 극복될 것이다. ­한반도 분단상황과 관련,독일의 통일이 갖는 의미는. ▲정교수=독일은 1ㆍ2차대전의 전범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통일을 떳떳히 주장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꾸준히 인적ㆍ물적 교류를 해 결국 베를린 장벽을 헐어내고 사람들이 오고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독일 역사를 보면 그들은 항상 국가연합 또는 연방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오늘의 독일 상황은 거의 통일된 것이나 다름없다. 독일국민들은 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통일을 쟁취할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통일이 어려운것을 알기때문에 우선 실현 가능한 교류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고,또 통일은 쟁취할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하여 이제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은 맹목적 통일지상론이나 패배적 분단고정론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더욱이 한반도의 분단은 우리의 죄값이 아니기 때문에 분단극복을 위한 노력이 아쉽다. 우리가 독일로부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우선 남북한은 이제부터라도 동서독과 같이 상대방을 아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독은 인적ㆍ물적 교류는 물론 상대방측 TV까지 시청함으로써 공동문화권ㆍ생활권을 향유했다. 이것이 독일인들로 하여금 큰 충격없이 통일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됐다. 이에 비해 남북한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실체와 거리가 먼 것을 보게 되고 있다. 당장 통일이 다가와도 굉장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길 정도다. 또 하나는 정치지도자들의 역할 문제다. 동서독 관계에서는 서독의 브란트가,베를린 장벽 제거에는 크렌츠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생각할때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의 교류 및 통일의지가 아쉽다. ○남북 공존체제 절실 우리 민족은 강대국에 의해 국토가 점령되자 점령국을 추종하는 엘리트간에 분열이 있었고 결국 전쟁을 치렀다. 이제부터라도 분단으로 고통받는 남북한 국민을 위해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 ▲이교수=독일의 통일과 화해는 한반도 통일에 큰 영향을 주게될 것이며 많은 자극과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이 가능하다는 희망과 국민적인 의지를 심어주게 될 것이다. 다만 한반도에서는 아직 독일방식의 통일을 성급히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의 국민들이 동독의 국민들처럼 개방과 민주화를 실천할만큼여건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그 이전에 이뤄져야 할 남북한의 평화적 관계가 수립되지도 못했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서 다시 한번 평화가 통일의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남북한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공존과 평화체제 수립에 매진해야 한다. 북한에 앞서 우리측이 과감하게 먼저 평화적 제안들을 하는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 고교졸업식 “전교조 지지” 소동/일부 학생 수상 거부

    14일 서울시내 일부 고교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교원노조」관련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거나 상받기를 거부하는 등의 소란이 일어났다. 이날 상오11시30분쯤 강동구 둔촌동 동부고교(교장 강인제)졸업식장에서 학생회장 이모군(18)과 정모군(18)이 각각 총동창회장상과 어머니회장상을 거부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군 등은 『총동창회와 어머니회가 「교원노조」교사들을 학교에서 내쫓는데 앞장섰기 때문에 이들이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이들은 수상을 거부하고 연단을 내려오자 『전교조』라는 구호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등 소란을 일으켜 행사가 10분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또 상오10시부터 졸업식을 가진 양천구 목동 양정고교(교장 엄규백ㆍ57)에서는 「교원노조」소속 엄영재교사(33ㆍ국어) 등 해직교사 8명이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참교육 실천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5백여장의 유인물을 나눠줬으며 졸업식을 마친 1백여명의 학생들은 교내 양정동산에서 『참교육을 열망한다』는 등의 구호와 노래를부르기도 했다.
  • 동구변혁과 한반도의 앞날 진단/특별대담(벼랑에 선 공산주의)

    ◎“개혁열풍 90년대 중반 북한에 상륙한다”/한반도군축ㆍ내부여건 성숙이 가장 큰 변수/「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 연계발상 버려야/“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2분법적 시각 곤란… 「변화과정」주시해야 동구 공산정권의 잇따른 붕괴에 이어 최근 소련공산당은 중앙위를 소집,공산 일당독재를 포기하는 역사적 조치를 취했다. 소ㆍ동구변혁과 관련,그것이 극동 및 한반도 분단구조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그리고 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등을 소련 및 동구전문가인 하용출(서울대교수)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ㆍ본사논평위원)두학자의 대담으로 진단해 본다. ▲서병철교수=소련 및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변혁은 금세기 최대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선 극도로 침체된 경제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일보전에 이르렀으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개혁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낌으로써 그 변혁의 원동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서방진영을 좇으려는 집권층의 정책의욕과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열망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번 공산권 개혁은 그 누구도 되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오는 상반기까지 선거에 의한 다당제도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까지의 개혁열기를 구체적으로 정치체제화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하용출교수=공산권의 대변혁을 놓고 한편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탄생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자본주의로의 선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극단적인 양극론은 잘못된 시각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산권변혁의 흐름은 크게 3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의 정치권력독점과 관료화가 빚어낸 병폐를 청산하는 과거청산단계로서 소련 및 동구 공산국가들의 일당지배 포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음은 개혁을 위한 체제정비 단계이고 마지막은 개혁후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는 단계입니다. 소련은 현재 제1단계를 지나 개혁을 위한 체제정비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동구 공산국가들은 이제 과거청산단계에 놓여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특히 소련이 최근 폐막된 공산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당의 권력독점 조항의 폐지를 골자로 한 개혁안을 채택한 것은 지난 몇년간 소유권 개혁이나 국가기업의 자주권 확대등 개혁조치를 취했으나 이것들이 집행단계에서 무산되거나 보수적으로 수정됨으로써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 개혁이 불가피하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고르바초프가 처음 집권했을때 현재와 같은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개혁의 리듬을 타고 있는 공산권을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소련에서 개혁을 둘러싸고 갈등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듯하지만 이는 개혁을 위한 체제정비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소수민족문제등 개혁정책추진과정에서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이 새로 표출되면서 전통적인 일당지배체제가 안고있는 문제들이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웠을때 서방진영은 두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소련 또는 동유럽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유럽국가들은 처음부터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미ㆍ일은 소련이 과거 평화공세를 펴는 이면에 군비를 증강해 왔던 점을 상기,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요. 그러나 미ㆍ일도 개혁을 거부해 왔던 동독의 호네커가 축출되는 상황에 이르자 고르바초프의 진실을 믿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유럽국가들은 유럽공동체의 결의로 개방ㆍ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나라에 우선적으로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더 나아가 긴장완화를 통한 하나의 유럽을 결성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적극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교수=일부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4∼5년이나 지났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실패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시각은 공산권을 보는 우리의 태도가 지나치게 「국내정치화」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소련의 경우 73년,동유럽국가들은 40∼50년이상 공산당 일당지배체제가 계속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할때 체제개혁운동기간이 길게 4∼5년,짧게는 1년미만에 불과한데 묵은 때를 쉽사리 씻어낼 수 있겠습니까. ▲서교수=소련과 동구에서 불고 있는 개혁 열풍으로 북한지도부는 상당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은 1인당 GNP 1만2천달러인 동독을 경제대국으로 서방진영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경제의 성공모델로 동독을 꼽아 왔으니까요. 동독의 호네커정권이 소련과 동독주민들의 개혁요구를 무시하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북한의 지도부가 느꼈을 충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즉각적 개혁은 난망 루마니아도 정치적 지도이념이 북한의 주체사상과 흡사한 일면이 있습니다. 극도의 폐쇄체제를 고집해 왔다는 점에서도 북한과는 유사한 나라입니다. 특히 루마니아는 동구권내에 일고 있는 개혁요구에 대해 공산주의 타도 음모로 규정,북한ㆍ중국 등과 함께 개혁차단을 위한 공동전선을 형성해 왔다고 볼 수 있지요. 동독과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혁명은 북한의 김일성정권에게도 위기의식을 느끼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즉각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밖으로부터의 자유화 물결이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개혁의 준비를 해나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두렵지만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북한지도부가 처한 고민이라고 할까요. ▲하교수=소련과 동구권의 개혁추진은 크게 네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동서 신데탕트시대로의 세계질서 변화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아시아지역 질서의 변화와 사회주의권 내부의 변화를 들 수 있고 마지막으로 남북한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는 순으로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이가운데 아시아지역 질서의 변화와 사회주의권 내부의 변화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주의권 내부질서는 당대당의 유대를 통해 소련식 개발모델을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에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라고 합니다. 소ㆍ동구권의 개혁은 이러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의 퇴조와 함께 사회주의국가들 내부에 민족주의적 성향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동독과 루마니아에서 공산당 권력독점 체제가 붕괴되고 권력이 상대화함으로써 이들 국가와 같은 권력체제 형태를 갖고 있는 북한에게는 체제유지의 이론적 기반을 흔들리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권 공산주의 국가의 경우는 동양적 정치문화의 특징도 함께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즉 동양적 정치문화는 전통적으로 서양에 비해 정치개혁에 대한 인식이 취약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아시아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개혁속도가 동구보다는 더딜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합니다. 또 북한의 체제변화는 북한이 1차적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을 포함,극동지역 및 남북한간의 군축회담의 진전 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서교수=급변하는한반도 주변정세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도 새롭게 정립돼야 할 것 같습니다. 북방정책은 모든 공산주의 국가와 적극적인 관계수립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들이자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궁지에 몰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도 적절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여집니다. 동ㆍ서독 관게가 급속한 진전을 보이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과정을 고찰해 보는 것은 우리의 대북관계 진전의 방향에도 좋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베를린협정은 양독간의 무관세 협정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경제교류를 활성화해 72년 양독관계 기본조약을 체결하는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즉 서독은 자본과 기술을,동독은 저렴한 노동력을 각각 제공해 에티오피아ㆍ시리아ㆍ리비아 등의 제3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식의 3각협력이 동ㆍ서독간의 실질적인 관계증진에 크게 기여했던 것입니다. ○파격적 제의 필요 우리도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보다 진일보한 아이디어와 북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파격적인 제의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교수=저로서는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를 연계시키는 발상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보다는 사회주의권 내부에 일고 있는 변화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북방정책은 북한을 제외한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고유한 외교관계의 수립을 추진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이와는 별도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남북한관계에 대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북방정책을 대북관계에 이용하려는 목적을 강조할 경우 북방정책 자체가 뿌리 내리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서교수=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사회주의권 내부의 변화,남한의 국내 정치여건의 변화,남북한군축회담의 진전 정도,북한내부의 개혁세력의 입지 등일 것입니다. 당장 북한이 변화하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북한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고 매우 경직된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루마니아에 민중봉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북한에도 그같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희박한데 주변여건과 북한내부의 조건의 성숙이 맞아 들어간다면 90년대 중반에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봅니다. ○우리식 예단은 금물 ▲하교수=동구사태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구의 내부사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없이 편의대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동구의 변화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선은 동구가 변화해 가는 과정 자체를 주시하고 그것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동구를 둘러보고 우리보다 못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기 쉽지만 그들의 문화적 축적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권에서 마오이즘(모택동주의)을 제외하면 새로운 근대정치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제시돼 본 적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동구의 사람들은 자기변화를 위한 고통스런 과정을 겪고 있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통독에의 첫 관문”통화통합

    ◎“때놓치면 동독경제 회생 불능”판단 서독/인플레등 역효과 우려… 선원조 희망 동독 13일 시작된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긴급원조제공문제와 함께 양독통화통합문제가 주의제로 다뤄짐에 따라 통독문제는 이제까지의 논의단계를 뛰어넘어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본궤도에 오르게됐다. 콜 서독총리가 제안한 통화통합방안은 동독의 기존 화폐를 전면폐기하고 서독의 마르크화를 단일통화로 채택,통용시키자는 것이다. 이 제안대로라면 양측의 통화교환비율과 시점을 정한뒤 은행을 통해 기존의 동독통화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꿔주고 수거된 동독통화를 폐기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럴 경우 동독 중앙은행이 발권은행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대신 서독 중앙은행이 동서독을 모두 관장하는 통합 중앙은행 역할을 맡게돼 동독 경제통제권의 상당부분이 서독정부로 넘어가고 결국은 경제적 통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독정부가 이같이 통화통합을 서두르는 이유는 통독에 대한 열망 외에도 하루 평균 2천명꼴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이주해 옴에 따라 동독의숙련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고 혼란상태에 빠져있는 동독경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회혼란을 초래하고 회생불능의 늪으로 빠져들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해온 데 이어 올들어서만도 30여일 사이에 7만여명이 동독을 빠져 나왔다. 이 때문에 동독에서는 노동력 부족사태로 인해 문을 닫는 공장들이 속출하고 공업생산ㆍ의료서비스ㆍ소비재 공급에 차질을 빚는 등 가뜩이나 심각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서독 입장에서도 이들 난민 처리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또 동독이 경제적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격심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 있는 현상황에서 수십년간 체질화돼온 철저한 계획경제제도에 대한 개혁작업이 기대만큼 신속히 진행될지는 의문이고 통화에 태환성이 없기 때문에 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동독정부의 개혁추진 상황을 관망하기보다는 서둘러 동독을 자국경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개혁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서독정부의 입장이다. 통화통합이 이뤄지면 동독국민들은 외국에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자국통화가 아니라 서독국민들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을 직접 살 수 있는 마르크화를 임금으로 받게 돼 서독으로의 이주감소가 기대되고 태환성이 있는 서독마르크화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동독에 대한 서방세계의 투자가 활성화돼 동독경제를 회생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서독측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급진적인 통화통합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화통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동독정부는 당연히 식료품 주택등에 대한 정부보조금(89년 1백억달러ㆍ동독정부예산의 20%) 지급철폐등 제도개선,내구소비재에 대한 세금부과등 세제개혁,사유재산제 인정,자유로운 기업설립 및 외국합작투자허용 등 신속한 개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그럴경우 동독의 경쟁력없는 기업들이 속속 문을 닫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실업자 속출 및 물가앙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 서독의 평균실질임금이 동독의 10배에 달하는 부의 불균형도 문제다. 서독의입장에서도 통화 증발과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으로 인한 인플레,세금증수,적자예산편성등 후유증을 치르게 된다. 이같은 급진적인 통화통합의 부작용을 우려한 나머지 서독의 금융계는 양측통화의 교환비율만 정해 태환성이 없는 동독통화에 대해 서독마르크화와의 교환가치를 부여한 상태에서 양측통화를 병행사용하는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서독측의 통화통합제의에 대해 동독측은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통합시기를 뒤로 늦추는 대신 우선 경제원조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경제악화,자국인의 대거 서독이주 및 통일열망,통독에 대한 소련등 동구권국가들의 양해를 바탕으로 사실상 통독을 향한 첫 걸음인 통화통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시기문제에 있어서는 오는 3월18일 자유총선이 끝난 뒤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라야 동독의 장래를 좌우할지도 모를 대서독협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현상태에서는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독경제가 침체돼있는 현시점에서의 통화통합은 결국 동독의 발언권없이 일방적 흡수통합으로 직결된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을 종합해볼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화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자유총선이 실시되는 3월이후 멀지않은 시일내에 통화통합이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동독인들이 피폐화되고 있는 이 나라에 시장경제제도를 확립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통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통화통합은 통일을 향한 레이스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성장우선」ㆍ「개혁고집」 마찰/조부총리 「사임설 파문」의 저변

    ◎경제정책 변화조짐에 “실의”/공개념등 후퇴땐 물러날듯/「독대」땐 실명제등 강화 건의… 청와대 향배가 변수 신당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당ㆍ정간의 경제정책기조를 둘러싼 논쟁이 급기야 정부 경제팀총수인 조순부총리의 「사임설 파문」으로까지 증폭되고 있다. 당사자인 조부총리는 8일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사임설을 공식 부인하고 이날 아침 총리공관의 장관회의에 이어 낮에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인구ㆍ주택 총조사 본부현판식에까지 참석하는 등 일상업무를 예정대로 진행시켜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사임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조부총리의 심중 깊숙한 곳까지 알만한 그의 측근들은 이같은 겉모습과는 상반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조부총리는 고도성장과정에서 왜곡된 경제의 개혁(경제민주화)를 이룩해 보겠다는 열망을 갖고 입각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자신의 소신을 펼수 있는 「정치여건」이 마련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입장』이란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의 진퇴를 결정짓는 관건은 색깔면에서 「보수대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고 구조면에서는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바뀐 현재의 「정치여건」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그의 「사임설 파문」은 상황에 따라 현실로 재현될 가능성이 항상 내재돼 있는 상태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같은 배경때문에 이번 「사임설 파문」은 그 자신이 공식으로 부인했음에도 여전히 『멀지 않아 물러나게 될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조부총리는 8일 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인구ㆍ주택총조사본부」 현판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표제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재 사임의사가 없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그만 얘기하자』고 말해 사임의사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에 앞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종합토지세 관계장관회의에서 조부총리를 만났던 한 참석자는 그의 사임설에 대해 『전날(7일)총리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부총리가 완곡한 표현으로 사임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사표제출의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의는 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사의표명이 사실이라면 3ㆍ4월 개각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이것이 청와대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아는 그가 왜 민감한 시기에 사의표명을 하고 나선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묻는 질문에 대해 조부총리의 한 측근은 『그가 입각을 결심한 가장 큰 동기는 6공화국의 개혁의지를 믿었기 때문』이라면서 『개혁의지가 변색되면 사임하겠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조부총리는 지난 1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신당(여대정국)의 출범에 따른 정치안정화를 바탕으로 경제개혁을 더욱 가속화 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입각이후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가급적 발언을 삼가온 조부총리의 평소 언행에 비추어 볼때 이같은 발언은 극히 이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3공식 「성장드라이브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신당측 경제팀을 상대로 앞으로 전개될 정책논쟁에 있어 정면으로 맞부딪쳐 나갈 것임을 선언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나올 수 있다. 그가 최근들어 갑자기 신당쪽에 대해 거의 무모할 정도의 자신감을 과시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청와대측이 공식적으로는 정부와 신당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내심 조부총리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신당출범에 따른 정책기조의 전환이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부총리가 「명예로운 퇴진」의 명분을 찾기위한 운석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조부총리는 그간 몇차례의 기자간담회에서 신당쪽의 「성장위주정책전환」 주장을 「사견」으로 격하시키면서 『신당의 정강정책도 결국은 개혁에 역점을 두게 될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지난 1일의 청와대 「독대」에서는 조부총리의 개혁의지에 대해 노대통령도 상당부분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들은 전자의 분석을 뒷바침 해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쪽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것 같다. 조부총리와교분이 두터운 학계인사들은 『그의 입각은 현상유지 보다는 현상변화성향이 강하게 마련인 야대정국 상황이 그의 개혁의지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당통합으로 여대정국으로의 복원은 개혁론자로서의 그의 입지를 극도로 약화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조부총리의 사임의사 간접표명을 비롯한 일련의 언행들은 신당쪽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장드라이브정책」으로의 전환및 이에 따른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등 경제개혁정책의 상대적인 퇴조 움직임에 강력한 쐐기를 박기위한 몸부림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당은 만성적인 정치불안구조인 여소야대정국은 안정구조인 여대야소 정국으로 역전시키는 정치적 개가를 올린것이 수출ㆍ투자의 촉진등 경제 활성화로 연결돼 정치적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기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같은 구도를 갖고 있는 신당의 경제팀에게는 「안정」과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않는 조부총리의 존재가 장애물로 인식됐을 수도있다. 당ㆍ정간에 가열되고 있는 「정책논쟁」에 대해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경제라는 이름의 마차」를 앞뒤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두마리의 말』에 비유했다. 반대로 달리는 두마리의 말이 어떤 조정과정을 거쳐 어느 지점에서 힘의 균형점을 찾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낭만적 통일론」에 사법적 쐐기/임수경양 10년선고의 배경과 의미

    ◎“밀입북 모험주의는 질서 파괴행위” 판단/“법정 소란으로 정상참작 못받아” 분석도 서울형사지법이 5일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에게 징역 10년과 8년의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문익환목사,서경원의원 등의 잇단 밀입북사건에 대한 1심 사법처리가 모두 마무리 됐다. 그동안 계속된 법정소란과 변호인들의 집단사임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두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중형을 선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이번 사건을 「뜨거운 통일에의 열망」이라는 낭만적시각에서 보는 평가는 어떠한 명목으로는 정당화 될수없다』고 못박고 『피고인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역행하고 통일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모험주의적 밀입북은 진정한 통일에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통일논의에 대한 사법적견해를 밝혔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단에 따른 중형선고에 대해 일부에서는 다소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임피고인이 아직도 배우는 학생이며 문피고인또한 성직자라는 사회적 신분이 충분히 고려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이에 앞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서경원피고인과 문익환ㆍ유원호피고인에게 징역15년과 10년씩이 선고된 점을 감안할 때 형의 형평이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이다. 이에대해 법조계에서는 뉘우침이 없는 진술사제 및 법정에서의 거친 태도,묵비권을 행사하는 등의 재판거부행위 등이 피고인들의 신분이나 정상을 참작하기 곤란하게 만든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임피고인은 공판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갖가지 구실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회피해 왔다는 것이 공판에 관여했던 검찰과 법원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따라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줄곧 공소사실을 부인해온 특수잠입 및 탈출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더욱이 이번 재판은 첫 공판때부터 피고인 및 방청객들의 법정소란행위로 휴정과 감치명령이 거듭되는 등 잇단진통을 겪었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마침내는 결심공판을 앞두고 70여명의 변호인단이 변호인 사임계를 내는 불행한 사태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 결심공판에서는 피고인들이 퇴정한 가운데 검사와 국선변호인만으로 공판을 진행해야 했다. 이때문에 재판부가 방청객을 제한하는 등 비상수단을 쓴 것도 문제라 할 수 있으나 변호인단이 형식에만 치우친 나머지 정작 「변론」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자리를 비웠던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이 끝난뒤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혀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검찰은 『이번 선고형량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뒤 2∼3일안에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은 항소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 올라가 또다시 공방을 벌일것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두 피고인이 항소심에서도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엇갈린 진술을 거듭하고 재판부를 모독하는 행위를 재연할 경우 관대한 처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어떻든 임피고인에 대한 선고형량은 임양을 「평양축전」에 보낸 「전대협」의장 임종석피고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1

    ◎시장경제ㆍ다당제로의 전환 몸부림/「노멘크라투라」군림에 국민불만 폭발/레닌의 국가론에 반하는 개혁 불가피/동구 자유선거 실시땐 공산당 붕괴는 시간문제 동구와 소련의 격변이 거듭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은 여러갈래며 또한 심상치 않다. 공산주의 내부 모순을 극복해 가는 개혁의 소용돌이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위기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는 공산권의 변혁을 국내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박명호(국민경제제도연 연구위원),안정수(경희대교수),박영호씨(한신대교수)등 네분의 다양한 입장의 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 1,공산주의채택 이전으로의 복귀 공산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의 통치원칙과 경제운영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소련이 종주국가로서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2차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 약 반세기 걸친 현실 사회주의 기간이다. 독일 제3제국과 일본군국주의를 패망시킨승전연합국중 하나인 소련은 전리품으로 할당받은 동유럽 국가에서 해방군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산주의를 심는데 성공하였다. 전후 귀국한 런던망명정부 요인들과 기존브르좌 정당 및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한 첫번째 선거에서 소련에서 훈련된 공산당원들은 소수밖에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나 소련은 이들을 보안담당 내무 및 국방등 주요부서에 심어 놓고 비공산세력을 제거하여 결국에는 친소정권이 수립되어 공산화되도록 하는 수법이 활용되었다. ○팽배한 반소사상 이와 같은 과정은 독일점령군에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할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통하여 공산화할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유럽국에서 예외없이 거치게 되었는데 국민들이 원치않는 공산체제를 외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채택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동유럽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주화 추세는 본래의 희망이 충족되어 공산화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순리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다. 소련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에 있어 반소사상이 팽배해 있는 현상은공산주의를 강요한데 대한 적개심의 발로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라는 공산국에서 기대했던 「근로자의 열광된 노동」이 있어 본적도 없는 사실은 공산이념의 본질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선견지명때문에 난처한 입장에서 구제되었다고 보겠다. 그는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공산당은 동맹국의 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간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또한 198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나라사정에 맞는 노선을 채택할 수 있다고 연설하여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선언해두지 않았던들 소련은 동유럽동맹국들이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채택하여 고삐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여 무력을 동원하여 간섭할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긴장완화의 산파로서 서방진영에서 높이 평가받고 동유럽에서는 개혁을 허용한 유공자로서 「고르비선풍」을 일으킬 만큼 인기가 높고 소련에게는 체면을 살려준 선각자이다. 2,개혁의 복합적 원인 독일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의 변천은 역사적 법칙으로 어느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으며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 공산권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잘못된 예측의 결과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이념으로 무장되어 전쟁까지도 불사하도록 만들었던 장본인인 마르크스가 수모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침체ㆍ낙후만 초래 공산주의 정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당이 국가위에 군림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는 제한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될 수 없다. 따라서 통제와 감시가 주된 통치수단이 되고 국민들의 불만은 축적되어 기회만 있으면 터질 수 있는 상태에까지 발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중앙계획통제체제속에서 당지도부에서 국민경제행위를 엄격한 규격속에 묶어 운영한 결과 침체와 낙후만을 초래하였다. 국민에게 생활의 질을 높여주기 위하여 과감한 경제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와의 체제경쟁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시장경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어 이론상의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농민이며 이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공산주의 정당을 통하여 특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국민은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당간부 및 정치ㆍ경제 엘리트로 구성된 지배층에 대층되는 만년 서민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현실에 불만족하는 국민의 울분이 축적되어 과감한 개혁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었고 신흥귀족으로 형성된 「노멘크라투라」를 혐호하는 국민감정은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3,시장경제로의 변화 마르크스는 사회경제발전 이론속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변천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사회주의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선언하였는데 레닌과 스탈린이 이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중앙계획통제 경제체제를 확립하였다. 일사불란한 지휘체제속에 움직이는 이제도는 제한된 자원과 노동력을 단기간안에 동원할 때에는 그런대로 효험이 있었으나 경제구조가 다양화되고 국제협력이 확대되면서 필요로하는 활력을 주지 못하여 침체만을 유발하는 제도로 탈락하였다. ○개인 창의성 결여 중앙계획제도가 풍부한 천연자원과 잠재노동력을 가진 광활한 땅 소련에서 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힌 것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한지 1년만인 1986년 2월 개최된 27차 당대회에서 과감한 경제개혁을 강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계획된 수량생산에만 치중하고 시장ㆍ분배ㆍ서비스ㆍ판매에는 소홀하며 개인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결여된 이 제도가 통용된 사회주의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시장경제체제가 오늘날에는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는 특효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주의권 공동번영을 위하여 소련에 의하여 적극 권장된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은 처음 헝가리에서 1968년 니에르쉬 사회당수(당시 경제연구소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는데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최초로 작년 2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첫번째 결실을 맺게 했던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때 헝가리의 진취성은 모든 분야에서 돋보인다. 4,다당제의 채택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당독재 통치를 하면서 이론적 받침대로 삼아온 레닌의 국가론을 보면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을 계획하고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배계급인 노동자층의 전위기능을 가진 공산주의 정당의 교시에 따라서만 통치되도록 되어 비공식 정당의 정치참여가 사실상 금지된다. ○일당독재 쇠퇴 그러나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금년 상반기안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작년에 시작된 정치개혁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다당제 채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소련에서도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명시한 헌법6조를 개정하기 위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현재 개최중에 있다.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공산주의정당은 자연 소멸하거나 최소한의 의석만을 갖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폴란드에서 공산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작년 6월 하원의석의 35%만이 허용된 제한적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을 때 자유노조가 의석을 석권함으로써 국민들이 공산당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혐오한다는 사실이 나타난 바 있다. 이는 헝가리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동독ㆍ불가리아ㆍ체코에서도 공산당이 체질개선을 서두르도록 만들었다. 피를 흘린 혁명에 의하여 차우셰스쿠 정권이 타도된 루마니아에서도 총선거가 실시될 계획으로 있어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다당제가 채택된다. 5,이념에서 떠나 군사ㆍ경제적으로 결속 동유럽국가 사람들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싫어하고 「유럽」혹은 「중부유럽」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산주의 체제가 열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결속하는 응집력을 상실했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착해 볼만한 이념으로서의 매력도 잃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새로운 사태발전에 능숙히 대처하고 있듯이 공산권의 질적 변화를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동조하는 것으로 수용할 것이다. 소련은 폴란드의 마조비에츠키 비공산내각이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의 회원국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서약한 예를 다른 동맹국의 새정권에도 요구할 것이다. 작년7월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 군사자문위원회에서 소련은 통합의지를 강하게 부각시켰고 회원국의 탈퇴불가 원칙을 재확인한 바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코메콘회원국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별 개혁이 기구구조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1992년 완성될 유럽공동체 시장단일화에 적응키 위한 공동시장 건설이 적극 추진된다. ○집단결속력 상실 동유럽국가들이 다투어 추진하는 시장경제와 다당제채택은 국민들의 열망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한번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으며 만약 전체주의적 보수세력이 저항한다면 이는 역사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피를 흘리는 혁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병철 ■서울대독문과졸 서독쾰른대(정치학) 수학 ■서독 본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독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서독 라인차이퉁(일간신문)기자 ■저서=▲자주외교론 ▲통일을 위한 동서독관계의 조명 ▲변모하는 공산권
  • 합당규탄 시민대회/13개 재야 2천여명

    【부산=김세기기자】 부민련(회장 김정남) 등 부산시내 13개 재야단체소속 2천5백여명은 3일 하오3시40분쯤 부산대 운동장에서 「반민주야합저지를 위한 부산시민대회」를 가졌다. 이들 재야단체들은 『반민주보수대연합은 일당 독재의 장기집권을 위한 친미독재반 민주야합으로 민족민주운동을 탄압하려는 기만적 사기극』이라고 규정하고 『전 국민의 민주화열망과 애국부산시민을 배신한 중대한 배반행위』라고 규탄했다.
  • 고르바초프의 무덤에는… /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련내 인종분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과연 살아 부지할 수 있을 것인지,나아가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입방아들을 찧고있던 터였다.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의 실각설은 그 진위가 어떻든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의 실각은 그가 줄기차게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후퇴를 의미하고 그동안 우리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던 동구의 변화 물결에도 영향을 미칠게 뻔한 일인 때문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가 조성해 주었던 동서간 화해분위기나 평화 무드에도 얼마간 찬바람이 일게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세계의 스타다. 누구도 그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사람들까지 80년대의 인물로 그를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랴. 스타가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그의 신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요즘 세계의 소련문제전문가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제가끔 한마디씩 하고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애당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둥,고르바초프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동구권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라는 둥…고만고만한 얘기들에서부터 아주 상반된 전망까지 고르비의 운명이 다채롭게 조명되고 있다. 실패론의 선두는 역시 미국의 학술계간지 디덜러스(DEDULUS)겨울호에 실려 화제가 됐던 「Z」의 분석이다. 공산주의는 스스로 개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그런 측면에서 자유세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울 수 없으며 도와봤자 결국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는 논리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본 취지는 개혁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도해야 하는 체제의 논리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다. 기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도 공산당 지도하의 개혁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이아무리 개혁에의 열망에 불타고 있다해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과를 거둘 만큼 과감한 변혁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련공산당의 지배상실과 소연방의 해체,나아가 세계무대에서의 힘의 상실로 이어질 개혁의 길을 소련지도자들이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성공쪽을 본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돼 버렸다는 관점이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나 소련ㆍ동구의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이라는 견해다. 그 누가 저처럼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의 군부내 보수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 다시 중앙통제 체제를 강요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뿐 페레스트로이카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지도 편다. 그것은 일시적인 반동일뿐 반동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힘에 다시 밀리고 그렇게 되면 소련사회는 본질적으로 뒤바뀌는 사태로 급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논쟁들인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실각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권좌가 무너졌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절되리라고 보는 것은 명철한 시각이 아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가피했던 동구사회의 현상을 대변했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한계를 말하고 대안이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스탈리니즘,다시 말하면 좌익 전체주의에 대한 자성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는 본질적으로 해체기능을 할 뿐 그것 자체가 대안을 수반하거나 동구사회를 재통합하는 기능까지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의 시기인지 모른다. 해체의 시기에는 해체될 뿐 바로 재통합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해체의 속도,해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충분히 드러난 연후에야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붕괴되고 있는 동구가 재통합의 에너지를 얻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빚어내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음을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지난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쓴 「사회주의사상과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란 글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고 자문하고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을 알 수 없는 정치적 프로세스일 뿐』이라고 자답했다. 어떤 학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효과가 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체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금세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적인 좌익 전체주의를 무너뜨린 거대한 공적을 이미 남긴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저는 인간화,자유화다. 자유와 휴머니즘은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다. 고르바초프는 실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의 실각여부와 관계없이 페레스트로이카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그의 무덤에는 빨간 장미꽃 다발이 끊이지 않고 꽂히게 될 것이다.
  • 북한­대만 교역 연내 시작될 것/홍콩지

    【홍콩 연합】 대만 수출입협회가 오는 4월 50여명의 무역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려던 계획이 북한측의 공개적인 초청부인으로 무산케됐지만 금년내로 북한과 대만간에 공개적으로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1일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보도했다. 리뷰지는 대만이 한국은 물론 중국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경제관계를 갖기를 열망하고 있으며 대만정부도 공식적으로는 직접무역을 허용치 않고 있지만 은밀히 북한과의 경제적 접촉을 지원하고 있어 올해내로 대만과 북한간에 경제적 관계가 이루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 부시,유럽 미ㆍ소군 대폭감축 제의/쌍방 19만5천명씩만 남게

    ◎전화통고에 고르바초프도 검토 약속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31일 하오 9시(한국시각 1일 상오11시) 상ㆍ하양원 합동회의에서 대통령 취임후 처음 발표한 연두교서를 통해 미소양국이 중부유럽에 배치한 병력을 각각 19만5천명으로 감축하자고 제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두교서를 발표하기에 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소상호 병력감축제의를 사전통고했으며 고르바초프가 이제안의 검토를 약속했다고 미고위관리가 전했다. 유럽주둔 미군과 소련군에 대한 부시대통령의 감축제의는 양측 병력수준을 각각 27만5천명으로 낮추자는 지난해의 제의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데 미국은 유럽에 현재 30만5천 병력을,소련은 동구국가들에 60만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장벽의 개방과 동구 전역에서 일어난 공산독재자의 몰락등 89년의 역사적 사건들로 전후시대의 막은 내렸으며 바야흐로 유럽주둔 군사력을 보다 적정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군축협상에 박차를 가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그러나 『소련의 전략무기 현대화 작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미국은 공격용 전략무기의 현대화 작업과 전략방위계획(SDI)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연두교서에서 또 파나마의 실권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장군을 체포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파나마에 파병됐던 미군은 오는 2월말까지는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의회의 공화ㆍ민주당 의원들은 31일 유럽배치 미소병력을 대폭 감축하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제의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는데 상원군사위원회의 샘넌위원장은 이번 감축계획이 『매우 긍정적이며 유럽의 변화 및 미국의 재정압박 해소노력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예상밖 큰폭 군축… 냉전종식 가속/“동구변화 못따른다” 비난여론에 대응/군비절감,페레스트로이카 지원효과(해설) 중부유럽 주둔 미소 양국군의 상한선을 각기 19만5천명으로 대폭 감축하자는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새 제안은 소련과 동구의 변화에 대한 「예상밖의 적극 대응」으로 받아들여져 국제적으로 많은 놀라움을 안겼다. 불과 이틀전만 해도 미언론들은 실질적으로 줄었다고 하나 금액상으로는 늘어난 부시행정부의 91회계연도 국방예산에 대해 「냉전이후」를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평화 배당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꼬집었다. 소련으로부터의 위협감소 및 동구 공산정권의 잇따른 붕괴와 더불어 부시는 유럽의 군축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국내외에서 받아왔다. 특히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동구의 극적인 변화는 부시로하여금 감군제의의 확대를 결정케 한 동인이 됐음이 분명하다. 부시의 대폭 감군제의는 유럽의 긴장완화로부터 더큰 「평화 배당금」을 끌어 내려는 여론에 의해 촉진된 것이자 오는 5일의 소련공산당중앙위 총회전에 고르바초프에 대해 비판적인 모스크바의 보수파들에게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보상」을 보여줌으로써 고르바초프의 안정을 바라는 열망의 표시로 이해되고 있다. 이 제의는 또 몰타회담에서 확인한 「냉전종결」을 가속화 하는 동시에 군축협상에서 주도권의 확보를 노린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부시대통령의 유럽주둔군 대폭 감축제안을 특종한 CBS­TV는 31일 정규프로를 중단시킨 특별보도에서 『이 제의는 고르바초프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부시대통령의 한 측근은 『그런 정치적 동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소련내 아제르바이잔의 종족 분규와 리투아니아의 연방탈퇴위협 등과 관련하여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운명을 둘러싸고 회의와 억측이 난무하는 시점에 이 제안이 공표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31일밤 상ㆍ하양원 합동회의에서 대통령 취임후 처음 발표한 연두교서를 통해 유럽주둔군의 추가 감축제의를 공식 발표하면서 『우리는 과도기,큰 희망,그리고 큰 불확실성 속에 있다』고 전제하고 『소련이 민주주의와 경제적 기회를 위해 평화적으로 내부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미국은 소련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부시는 이에 앞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제안의 취지와 내용 등을 설명했다. 백악관 대변인 말린 피츠워터는 부시가 고르바초프와 나눈 전화통화에는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기 문제에 관해 완곡한 언급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으나,그것만으로도 고르바초프에게 부시의 지원 의도를 알리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지난 수일간 비밀협의를 통해 이번 제안내용을 사전통보받은 미국의 우방들도 이 제안을 크게 환영했다고 부시행정부 관리들은 밝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차석보좌관 로버트 게이츠와 국무부의 로렌스 이글버거 차관은 지난 28일 비밀리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등을 방문,그곳 정부 지도자들과 부시의 새 제안을 협의했다. 부시의 이번 제안은 이 상한선을 8만명씩 더 줄여 각기 19만5천명으로 하되 중부유럽이 아닌 영국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3만명은 제한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유럽주둔 미군의 총병력을 22만5천명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군축문제 협의를 위해 내주에 모스크바를 방문할때 부시의 새 제안을 놓고 소련측과 첫 협의를 가지며이어 이 제안은 빈 동서군축협상의 도마위에 올라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 생활고가 민족분규 불댕겼다/영지가 분석한 오늘의 소 사태

    ◎에너지ㆍ생필품 태부족… 곳곳서 “빵달라” 항의 시위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 소련의 운명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소련 전문가 켄틴필의 이름으로 소련의 최근 정세를 다음과 같이 분석 보도했다. 소련 제국의 남쪽 변경인 아제르바이잔사태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최악의 시기에 들이닥친 것이다. 지금 소련 국민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 때문에 혹독한 불만의 겨울을 맞고 있다. 우랄의 대공업도시인 스베르들로프스크시에서는 배급 쿠폰을 갖고도 식료품과 보드카를 살 수 없게 되자 성난 군중들이 항의 데모를 벌였으며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심장부인 체르니고프에서는 한 공산당 간부의 승용차에 소시지와 보드카가 실려 있는 것을 본 행인들이 거의 폭동에 가까운 사건을 빚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는 유전 기술자들이 타고갈 비행기의 연료가 떨어져 원유를 채굴하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게다가 앞으로 두달후면 지방의회선거가 있어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은 흡사 불난 호떡집 같다. 사실 고르바초프는 연방내의 각 공화국들이 명실상부한 자치권을 갖는 순수한 연방공화국권을 갖고 일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수십년동안 누적된 회의론을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5년전 고르바초프가 집권할 당시만해도 소련의 민족주의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암초였다. 브레즈네프나 흐루시초프와 같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그는 소련 연방의 중심부에서만 근무해왔기 때문에 변두리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최근의 아제르바이잔사태에 비상조치를 취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냉정한 논리로 보면 자주독립을 원하는 공화국들은 그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누가 그 작은 발트국가들을 필요로 하겠는가.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보다도 작은 나라다. 코카서스 산맥 너머의 민족들은 로마시대 이래 정복자들이 억누르기 어려운 골칫거리였으며 1백명 이상의 통역을 불러야 할 정도로 상통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탈출을 막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이 고르바초프의 머리를 스쳐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한번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입밖에 낸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때 공산당 중앙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어느 곳도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용납치 않겠다고 선언했듯이 그 반대의 얘기만 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연방의 결속 뒤에는 공산당의 결속을 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그가 일부 연방탈퇴를 용인하려 할 경우 가장 불안한 것은 군부일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처한 문제는 단지 연방내 일부 공화국들의 민족주의 물결이 그가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쳤다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추구해온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논리가 그러한 독립운동을 추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적 경제에서의 탈피와 독점적 통제체제의 폐기등 그가 추구해온 새 지표들은 사실상 각 공화국의 자주경제를 고무시켜 왔다. 발트해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양의 물자를 떼어놓은 다음 여분이 있으면 이를 팔지않고 물물교환방식으로 부족한 다른 물자를 확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작은 공화국들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과의 경제적 유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당이나 소련 국민들이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보수세력의 심각한 반동을 유발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가장 불만이 많은 일부 공화국의 이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 북한선 민중봉기 불가능하다

    ◎루마니아 사태뒤 이념무장 강화/외신보도ㆍ외국인 접촉 완전봉쇄/평양주재 외교관들 분석 북한 지도부는 지난해 동구권에서 대대적인 개혁운동이 일기 시작한 이래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루마니아식의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생각할수 없다고 평양주재 외교관들이 최근 밝혔다. 외교관들은 최근 평양을 방문한 서방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은 루마니아 사태 이후 외국 뉴스에 대한 보도제한을 한층 강화하면서 김일성 부자의 개인숭배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한 외교관은 루마니아의 공산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한후 북한은 한국으로부터의 방송 송신을 차단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실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평양당국은 북한전역을 「완전히 폐쇄」시키는 기술적인 수단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관들은 이어 북한의 관영언론들은 루마니아 민중봉기 사태의 극히 일부만 단편적으로 보도하면서 루마니아 사태는 북한과 아무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러나 『루마니아 인민들의 희망은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이달초 북한 공산당이 주민들의 이념교육 강화를 촉구하고 나선 이래 이전보다 정치집회가 더욱 잦아졌다고 말하고 지난 일요일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 적어도 5만 이상의 군중들이 모여 김 부자의 찬양구호를 외치고 붉은 깃발을 흔들어댔다고 밝혔다. 외교관들은 북한 주민들이 그들을 45년이상 통치하고 있는 김일성 정권에 대해 적어도 겉으로는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 한 동구국가의 외교관은 북한이 바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공포국가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땅에서 반체제 인사를 자임하고 나오는 미친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외교관들은 북한 관리들이 외국의 이같은 비판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김일성은 일제 식민지에서 조국을 해방시켰으며 통일의 힘을 가진 위대한 인물」로 강변한다고 전했는데 서방기자들의 평양 방문을 수행한 한 공식 안내원은 『영국에 여왕이 있고 일본에천황이 있듯이 북한에는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관들은 이어 북한주민들은 외부 사람들을 철저히 배격한다고 말하고 집단적이며 유교적 전통의 정신 바탕을 갖고있는 북한인들이 김일성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어버이이며 지도자」라는 관념을 갖는 것은 당분간 극히 자연스런 일로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김일성 정권의 북한통제는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어쩌면 북한이 현 체제를 무한정 지속시킬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또 북한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이 지난 45년간 스탈린주의가 아닌 독자노선을 걸어왔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공산체제는 동구권과 「완전히 다른것」임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한 외교관은 북한에 있는 자유는 「새장속을 날수 있는 자유」라고 말하고 『북한주민들은 위대한 지도자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냉소적으로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 여건 열악”/홍콩지/평양 다녀온 동남아인들 인터뷰/경제기초통계ㆍ합작 규정조차 없어/산업기술 수준 낮아 질향상에 애로 북한은 경제적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쓰고 있으나 투자에 참고가 될만한 기초 통계자료가 별로 없고 합작투자 규정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 등 투자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18일 홍콩의 성도일보는 홍콩∼평양 정기전세기 취항에 앞서 지난 13일 시험비행편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 실업가와의 인터뷰를 종합,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들 동남아 실업가들은 북한이 특히 홍콩을 통해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열망하고 있으나 경제개방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북한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북한이 도로ㆍ교통수단등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부족한데다 기초 경제 통계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이며 산업기술 수준도 낮아서 투자 유치가 힘겨울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싱가포르의 패시픽벤트레스 회사 원명성은 『북한에서는 겨우 노동집약적인 산업부문에서나 합작이 가능할 것』이며『그나마 금융제도가 미비해서 투자에서 얻어지는 과실 송금 등에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성도일보가 밝혔다. 다른 실업가들도 북한의 정밀기계 기술이 국제적인 합격선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태국의 한 기업인은 북한의 양잠기술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고 임금이 싼데다 근로자들이 정부 방침에 무조건 충성하는 이점이 있어서 양잠부문 합작투자는 고려해 볼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북한의 산업수준이 초기단계여서 합작생산의 품질보장 등에 애로가 많을 것이란 견해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 고르바초프 곧 동독방문

    【본 AFP 연합】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앞으로 2∼3주 안에 동베를린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서독의 디 벨트지가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서방소식통들의 말을 인용,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한스 모드로브 동독총리에게 「관대한 원조」제공을 열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 “북한체제 「변화의 움직임」태동”/카네기재단,「북한과의 대화」분석

    ◎“남한서 공산혁명 불가능… 남북한 공존 추구”/북한학자 4명,통일방안에 유화적 제스처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정치적 격변을 겪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 변화의 움직임은 평양에서 태동하고 있다고 미국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8일 전망했다. 카네기 재단은 작년 5월말 워싱턴에서 북한학자 4명과 미국정부ㆍ학계 등의 한반도문제 관계자 20여명이 비공개로 진행했던 「한반도 긴장완화 심포지엄」의 토론내용을 「북한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간,공개하면서 이같이 요약했다. 이 보고서는 동구와 중국의 최근 사태는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심포지엄에서 평양국제문제연구소의 김종수 부소장을 단장으로한 북한측 참가자들은 『이제 남한에서 공산혁명은 불가능하며 평양은 자본주의 남한과 공존할 준비가 돼있음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평양을 두차례 방문한 바 있는 카네기재단 수석연구원 샐랙 해리슨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북한의 공공연한 군축 양보태세,즉 주한미군철수를 조건으로한 국방비 삭감용의,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관계를 맺기 위한 자유화 조건,남한의 정치ㆍ경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는 『워싱턴과 서울을 향한 놀랄만한 유화적 자세가 나타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미ㆍ북한 전문가간의 이 토론이 군비제한 조치와 남북한 화해에 관한 가능한 타협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주한미군철수 조건의 타협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새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미측 참가자들은 1988년 북한이 제의한 3개년에 걸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이와 병행한 남북한 군사력의 동시 감축방안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이 보다 긍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또 북한제의에 대한 수정제의를 통해 미군철수와 남북한 상호감군이 진행될 경우 이의 개시와 더불어 38선으로부터 남북한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미측 주장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이 문제는 앞으로 미ㆍ북한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토의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일문제 토론에서 미측은 하나의 군대와 두개의 자치정부를 가진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타당성에 한결같이 의문을 나타냈으나 일부 인사는 주권을 가진 두개의 공화국이 초기엔 각기의 군대와 외교정책을 유지하다가 단계적으로 연방정부에 권한을 넘겨주는 김대중씨의 「공화국 연방제」에서 좋은 타협안이 찾아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측은 「고려연방제」가 현실적이라고 강조하며 김대중씨의 방안은 연방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검토될 수 있다고 동의했다. 서울과 평양의 접촉방식에 대해 북한측은 남한 민중의 통일열망을 반영하기 위해 정부ㆍ비정부 차원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측은 모든 교류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고 전체주의 사회인 평양이 정부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하려는 남한 야당인사들을 초청함으로써 2중 기준을 적용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틀간 계속됐던 이 토론에서 북한측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되풀이한 발언은 ▲군비제한 토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태도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의도를 의심케하고있다 ▲미국은 과연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인가 ▲펜터건은 소련의 극동전략에 대응하는데 주한미군을 필요한 요소로 보는가 ▲서울은 상호 감군에 응할 태세와 군사대결을 종식시킬 태세가 돼있는가,아니면 미국의 고무아래 군사적 우위를 계속 추구할 것인가 등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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