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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둥근 공… 흐르는 핏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한반도의 남북한은 지금 불꽃튀는 설전이나 탁상공론으로서 접촉하기보다 살이 부딪히고 핏줄이 통하는 물리적 접촉으로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듯하다. 평양에서 열렸고 곧 이어 서울에서 열릴 통일축구경기로서 그러하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분단 이후 최대의 남북접촉이라면 서울ㆍ평양간 통일축구는 민족분단 이후 최초 최대의 물리적 육체적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축구는 차고 배구는 때린다. 농구는 넣고 탁구는 치고 정구는 서비스한다. 모든 구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와 더불어 말없이 대화하고 공하나에 마음을 실어 상호 교류한다. 그런데 지금 평양과 서울,서울과 평양간에는 불과 5백그램짜리 축구공 하나가 동포간에 끊어졌던 혈맥을 잇고 체온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모나지 않아 정지하지 않으며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구기게임이 갖는 묘미와 그 냉엄한 승부성을 얘기할 때 곧잘 그렇게들 표현한다. 구기중에도 특히 축구는 그 특유의 직절성과 의외성으로 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음은 직절성이고그것의 둥글ㅁ은 의외성이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한다. 축구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국기처럼 여겨져 왔다. 남북 젊은이 대표들의 통일축구 교환경기를 보면서 남북문제 접근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와 같은 축구교환경기는 잘만 하면 양쪽의 동포들을 텔레비전 앞에 집단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측이 서방이념이나 사회풍조(문화ㆍ유행)가 들어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텔레비전 방송이다. 당시 동독지역의 85%가 서독 텔레비전 방송 가청지역으로서 수백만 동독인들이 서독 제1TV의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남북한 축구,아니 모든 경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의 입씨름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젊은이들의 「육체적 접촉」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로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해외경기에서 맞닥뜨리면 민망스러울 정도로 표출됐던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이 싱가포르에선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때도 그랬다. 과거 남북한 스포츠선수들이 해외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시선과 대결의식,그리고 그보다 더한 불신감과 적개심은 사실 분단 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천리마」라는 게 있다. 지난 85년 7월호에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와 싸워 2대1로 이겨 우승한 주성철이라는 소년선수의 얘기가 실렸다. 그런데 이 선수의 코치는 1회전과 3회전에서 이겼다면 2회전에서도 이겨 3대0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며 2대1의 스코어가 당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수도 이를 수긍했다. 그들의 대남 불신감 내지 경쟁심의 깊이를 알려주는 얘기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때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에게 우승소감을 물었다. 그 선수는 서슴없이 『수령님의 명을 받들어 남조선과 미제들의 숨통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남북한간 불신과 경쟁심은 이러했다. 그무렵 어느 사회통계에는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가 북한(44%),일본(31%),소련(14%),미국(8%),중국(3%)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팀과 외국팀이 시합할 때 북한이 승리했으면 하는 희망은 51%였다. 통일은 쉽지 않다. 열망과 기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과 폭력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적방법 이외 달리 없는 것이다. 지난 3일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앞 광장에서 역사적인 통독이 선언되던 날 세계는 경이와 찬탄의 눈초리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통독제전의 맨 앞줄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동방정책(OST POLITIK)으로 통독의 기틀을 마련했던 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였다. 브란트에게는 처음부터 패전 독일의 분단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분단된 독일의 부자연스러운 긴장상태는 인류평화를 위해 완화돼야 한다. 독일에 대항하여,또 독일을 제외하고 유럽은 건설될 수 없다』는게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다. 그는 또 진보적 민족주의 신념의 평화주의자였다. 베를린 봉쇄 등 지역분쟁으로 삼엄한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53년 서베를린 시의회의장으로서 브란트는 연방의회에 출석하여 이렇게 연설했다. 『평화적 통일의 쟁취가 어떤 다른 외교적 업무나 계획에 우선해야 한다. 천팔백만 동독인들은 우리의 간섭이나 무관심에 상관없이 어떤 위험에서도 구출돼야 한다. 독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문제에 협상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독일 통일을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보다 선명한 목표설정을 통한 통일을 요구한다』 분단국 어느 한쪽의 정치지도자로서 이 이상의 통일절규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브란트는 지금 행복한 노경에서 그 평화적 통일독일의 실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솟구쳤고 서울에서 율동할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는 7천만 동포들의 눈을 의식하며 우리는 지금 거세게 변하는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가 움직여야 할 차례인 것이다. 둥근 공이 흐르듯 민족도 둥글게 모이고 핏줄도 다시 이어져 흘러야 한다.
  • “소는 실익 앞세워「동맹국」도 배신”/북한로동신문,한ㆍ소수교 비난

    ◎“「두개 조선」 고착화… 통일역행 처사/미와 손잡고 사회주의 와해 시도” 북한은 5일자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소국교수립은 소련의 배신행위이며 한반도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책동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다음은 로동신문논평 내용이다. 역사의 전진 협정에는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 과정이 항상 동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영광과 영예로 빛나는 때도 있고 또한 추문과 오점으로 얼룩진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소련이 자기입장을 1백80도 전환하여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한것은 이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데 의하면 지난 9월30일 미국 뉴욕에서는 소련과 남조선사이에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유포되어온 여론이 현실적으로 나타났을 따름이고 별로 신기할 것은 없다. 냉정하게 관찰하면 도리어 물이 재골수로 흐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 외교관계 설정은 소련이 개편바람의 자국과 혼란에 빠져 쇠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에 산생된 현상이란 것이다.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있은 조소외교부장 회담때 소련측은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키로 결정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금의 소련은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로 되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후 소련측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소련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자주국가인 소련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말들을 종합하여 보면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그 어떤 다른 성격의 국가로 변질된 것 만큼 그에 상응하게 새로운 벗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나라 다른민족 심지어는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소련이 이 엄연한 공약들을 다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기로 하였으니 이것이 배신이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련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데 책임이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조선을 맨 선참으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인정의 구실을 붙이건 말건 결국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들의 공약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된다. 하기야 오늘 소련에서는 10월혁명 후 소련인민이 걸어온 간고분투의 영광스러운 역사자체를 하나의 암흑시대로 규정하면서 투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전날에 우리와 한 언약들을 집어던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두개조선으로 분열을 고착시키고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며 소위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뒤집어 엎으려는 미국의 기본 전략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이것은 조선을 둘러싼 미국 소련 남조선의 3각 결탁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게 되며 평화적 이행 조약에 따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와해하기 위한 포위망 형성의 일환으로 되게 될 것이다. 오늘 분열된 나라들이 통일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다. 조선에서도 통일에 대한 북남 전체인민들의 열망은 어느때 보다도 높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소련이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여 남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조선의 두개 국가가 존재한다면서 통일을 방해하고 분열을 고취하는데로 방향전환한 것은 오직 미국과의 보조 일치를 위해서라고 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소련측이 평양에 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도 한가지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한데 의하면 지금 소련 경제가 다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듣고 보면 물에 빠진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세상에는 실지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허무감마저 없지 않다. 보도에 의하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하였다는 소식과 때를 같이 하여 남조선이 소련에 경제협력자금으로 23억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대국으로서의 존엄과 체면,동맹국의 이익과 신의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계를 시장경제체계로 넘긴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법에 기초지식을 습득하는데 애쓰고 있는 소련의 학자들로서는 외교관계설정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먹은 것이 아주 수지가 맞는 자본주의적 상거래 행위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흡족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남조선의 형편에서는 그 막대한 돈을 낼 원천도 없거니와 아마도 그것은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한 미제의 특별기금에서 나올 것이 뻔하다. 우리는 아무리 우여곡절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부닥치는 암초를 외도리면서 자기가 갈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역사는 배신과 변절,부정과 전횡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
  • 서울ㆍ모스크바 수교의 배경/셰바르드나제 외무,소지에 기고

    ◎“남ㆍ북한 유엔가입 긴장완화에 도움/“정치ㆍ경제의 한국 영향력 현실적 인정/한반도 대결구도 해소,통일기여 희망”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2일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아지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소련과 한국간의 외교관계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소련 노보스티통신이 보도한 이 기고문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긍정적 변화의 물결은 다소의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갈수록 그 폭이 역동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련은 새로운 정치적 사고의 원칙에 기반을 둔 국제적 활동을 통해 이 지역 국가들의 평화정착 노력에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도 계속 그 활동을 확대해 가고 있는 평화ㆍ안보ㆍ협력에 관한 블라디보스토크ㆍ크라스노야르스크 계획에 따라 이를 추진하고 있다. 이 건설적 계획의 엄청난 잠재력이 모두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이 지역의 총체적 평화진전에 있어 중요한 인자이자 자극이 되고 있으며 이미 고위급회담을 포함한 이 지역 국가들 간의 정치적 대화는 눈에 띄게 발전ㆍ재도약하고 있다. 아태지역의 긍정적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얘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씻어버릴 수 없는 형편이다. 페르시아만사태에서 보았듯이 이 지역에도 여전히 사태악화 내지 대결로의 급반전 위험이 상시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만사태는 또 한편으로 화해시대의 국제관계이 있어 각 국가들이 공동의 위험에 대해 서로의 힘을 합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을 증명하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아태국가들에게도 중요한 귀감이 되고 있다. 소련이 지난 2차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회의에서 오는 93년 가을 아시아지역 외무장관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하게 된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국 문제의 해결은 이 지역의 진정한 평화와 우호관계 증진에 필수적 요건이며 따라서 다른 나라들처럼 한반도의 엄청난 긴장을 우려하고 있는 소련도 대아시아 정책에 있어 한반도 문제를 최대 과제로 간주하고 있다. 한반도는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1백50만명의 남북한 군병력과 핵무기로 무장한 4만여명의 주한미군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대치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53년 종전 이후에도 평화협정이 아직 체결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반도의 군사ㆍ정치적 대결을 완화 또는 해소하고 건설적 대화를 통한 평화적 통일이라는 한국민들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것이며 소련외교의 최대목표도 남북대화와 평화진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소련과 북한간 우호관계의 발전은 그동안 이같은 과정을 진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으며 한소 관계정상화로 그 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이 한국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세계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발전이라는 소련의 논리,즉 수정ㆍ보완된 대외정책의 기본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이 문제를 거시적 안목에서 전 세계,특히 아태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와 관련,취급하고 있다. 평화와 안정의 강화 및 국제협력확대에 목표를 둔 소련의 아태지역 정책은 이미 실재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신중한 고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이 한국과의 전면적 외교관계 수립을 결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즉,한반도에는 남북한이라는 두개의 독립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이며 소련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힘 있는 존재로 부상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인 것이다. 알려진대로 소련은 약 2년 전 소련 극동지역 경제계의 특별한 관심 속에 한국과 민간차원의 경제ㆍ무역협력을 시작했으며 이러한 접촉이 정부간 교류의 교두보가 되고 이를 통한 외교관계의 수립이 경제ㆍ과학ㆍ기술 등 제반 분야에서의 한소 협력 확대에 기여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소련은 또 인민대회 대의원들은 물론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소련 국내의 여론을 수렴,소련과 한국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법의 기준에 따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으며 따라서 한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찬성하는 여론이 소련 내에서 충분히 형성됐다는 것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한소 외교정상화는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 결과를 양산할 것이라는 것이 소련의 확고한 신념이며 나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는 남북한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관계정상화를 향한 큰 진전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남북한 대화의 발전을 환영함은 물론 충분한 타협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결실을 맺게 되기를 희망한다. 소련은 다른 핵보유국들과 함께 한반도 비핵지대화 보장을 위해 활동할 용의가 있다. 소련은 북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도 조만간 서명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 남북한의 유엔가입 문제도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의 동시 개별가입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이것이 분단 고착화라고 지적하며 「1지역 2대표」 안을 내세우며 남북한이 1국가로 가입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나는 유엔가입의 보편적 원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소련의 기본 입장임을 재천명하며 한국측의 유엔가입 열망을 이러한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특수한 경우 남북한이 한반도 상황의 정상화와 궁극적인 통일을 위해 대화를 계속 진행할 경우 최상의 해결책은 양측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벤트기사와 트라비기사/이기백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지난 29일 저녁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한 즉시 역앞에서 벤츠택시를 타고 동베를린지역으로 향했다. 사회주의 체제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그 색깔을 또렷이 기억해 두고 싶은 충동때문이었다. 그러나 장벽이 두껍게 서있던 포츠담광장 한쪽에는 그 잔해가 일부 남아있을 뿐 나름대로 판문점을 넘는 감회를 기대했던 것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5분여 불도저가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건너편 모퉁이까지 갔다오니 30대 벤츠택시기사가 『벤츠회사가 최근 건물을 지으려고 장벽이 서있던 지역일부를 사들여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조국은 하나」라는 높은 목청과 통일열기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통일의 현장이 너무나 싱겁게 느껴져 은근히 화가 나기까지 했다. 무언지 모를 착잡함을 누르며 그들의 표현대로 「재결합」(Die Wiedervereinigung)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벤츠기사에게 물었더니 『지 마흐트미히니히츠』(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동베를린 지역을 몇군데 돌아보았으나 지난해 11월장벽이 제거되던 때 충천했던 환호의 함성은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독제 트라비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40대중반의 동베를린 택시기사에게 요즘 생활이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고전을 금치 못하다가 두달전 동서 양쪽 택시조합에서 자기 지역에서 손님을 태우고 상대지역까지 갈 수는 있으나 상대지역에서는 손님을 태울 수 없도록 약정을 한 이후 종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손님들이 벤츠택시만 선호하는 바람에 서쪽 기사들은 한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상대적으로 동쪽 기사들은 수입이 줄어 고전을 금치 못했으나 상대방 기득권을 존중하는 약정으로 통일 후유증을 현명하게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동독기사는 「재결합」이후의 상황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들에게 통일은 열망이 아니라 이제 현실이었다.
  • 새 독일의 탄생(사설)

    1990년 10월3일. 동과 서로 갈라졌던 두 독일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새롭게 통일된 독일이 탄생한다. 전후 45년,분단 41년 만이다. 한 민족은 한 나라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역사의 증언이 독일에서 실현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같은 분단운명의 민족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통일을 진심으로 경하하며 우리의 통일노력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독일통일은 분단상태에서도 동서독이 지난 40여년간 교류와 접촉을 꾸준히 계속해온 데서 얻어진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동서독이 분단현실을 인정하고 상호교류에 의한 기반을 단계적으로 조성한 뒤에 거둔 자랑스런 열매다. 양국은 69년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72년 기본조약,73년 유엔 가입,74년 양측 대표부 교환설치 등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것은 두 나라 국민의 잠재된 통일열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서독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경제력을 배경으로 서방은 물론 소련에 대해서도 신뢰를 주면서 통일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통독은 특히 유럽에 새로운 정치 경제질서를 뜻하고 있다. 냉전상태는 종식되고 새평화시대의 선언을 의미한다. 때문에 새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좀더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앞날이 순탄하리라고만 믿는 것은 아니다. 속도빠른 통일열차에 도취했던 독일국민들은 이제 사회적 심리적 통일이라는 한층 심각한 과제에 부닥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통제체제하에서 동독인들이 겪은 정서적 상처가 서독의 경제시혜만으로 치유될까 하는 문제다. 40%에 이른 동독의 생산성 감소와 내년이면 1백50만명으로 추산되는 동독실업도 또다른 숙제로 남는다. 동독이 서독과 같은 수준에 이르려면 5∼10년이 걸려야 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러한 데 기인하고 있다. 주변국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통일독일의 경제적 팽창주의와 게르만 패권주의도 새 독일이 풀어야 하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민족」답게 그들은 통일을 하는 것이다.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후 냉전체제로 인한 분단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독일의 통일을 가능케 한여러 요인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독일분단이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죄값이라면 한반도 분단은 「무고한 희생」으로서 독일보다 일찍 해결됐어야 한다는 독일에서의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통독과 관련되는 이 평가를 귀담아 들으면서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여러가지 사태발전을 우리는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과 소련의 예상보다 빠른 수교발표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간의 관게개선 노력,일본과 북한,미국과 북한간의 접촉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주변정세 속에서 남북한 당사자들이 벌이고 있는 통일노력도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경아시안게임에서 합의발표된 남북한 스포츠교류는 분단감정을 무너뜨리는 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는 16일에는 평양에서 제2차 남북총리회담도 열린다. 동서독이 취해왔던 커뮤니케이션의 확대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인 것이다.
  • 새 「역사의 장」여는 통독의 현장에서/이기백특파원

    ◎“이제 독일은 하나”… 거리마다 샴페인 축제/“우리는 자랑스런 독일인”… 얼싸안고 환호/통일 알리는 종소리에 목메어 국가합창/동ㆍ서베를린 잇는 마라톤엔 2만5천명 참가 그것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감격적인 축제였다. 성당과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려 퍼지면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저마다 「아인하이트 아인하이트」(통일)를 외쳐대며 민족재결합의 기쁨을 만끽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자유ㆍ평화ㆍ정의를 강조하는 국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으며 통일을 축복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독일은 하나,통일축제가 시작되는 2일 자정부터 4일까지 베를린 시내에서는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금세기들어 3번째 세워지는 새 독일의 탄생을 축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통일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가 2일 0시 일제히 울려퍼지자 축제행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운텐 덴린덴거리와 6월17일 거리에 나와 있던 시민들은 주먹을 공중으로 치켜올리며 환호했으며 각 가정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려 이 순간을 축복했다. 운텐 덴 린덴 거리에 부인ㆍ여동생과 함께 나온 지그마 캡슐씨(35)는 『통일이 이같이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감격스럽고 독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동베를린에 산다는 에버린 쾨러양(22)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섬광처럼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0월3일이 「통일의 날」로 국경일이 됨에 따라 독일국민들은 매년 이날 휴무하게 되며 지금까지 동서독이 별도로 통일을 기원하던 기념일은 폐지된다. 동독은 지금까지 건국일인 10월7일을,서독측은 동독에서 공산정권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제히 궐기했던 6월17일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했었다. ○인산인해 교통마비 ○…베를린은 역사적인 백림마라톤대회가 때마침 통일축제 직전인 30일 열려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60여개국에서 2만5천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베를린 샤로텐부르크문을 출발,6월17일 거리를 지나 동베를린지역인 칼 막스거리를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과 통일전 체크 포인트였던 찰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등 반세기만에 전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해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국의 취재기자ㆍ외국관광객으로 숙박난ㆍ교통난을 가중시켰으며 도심은 거리를 나다니기조차 힘들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텔과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자 베를린시당국은 TV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박을 강조하는 계몽을 펼치고 있으며 축제기간중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한편 역주변과 광장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해 텐트족의 천국을 이루기도. ○…통일축제의 절정은 몸퍼 서베를린 시장이 2일 상오 9시 시의회에서의 통합을 선언하는 행사. 몸퍼시장은 이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인은 영원히 하나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 이어 몸퍼시장은 연합군 사령관들에게 베를린의 자유수호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고 연합군 사령관의 고별사에 이어 곰을 상징하는 베를린기가 시장에게 되돌려 진다. 이에 앞서 독일분단 이후 베를린 시정을 담당했던 연합군 사령관 레이먼드 하드도크(미국),로버트 콜베트(영국),프랑세스 샹(프랑스)장군 등은 1일밤 마지막으로 브라보검문소에서 간단한 철수기념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 ○일부선 통일반대 시위 ○…통일축제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덴 부르크문 광장에서는 「우리는 통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3백여명의 전동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통일이 된 뒤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려온 정부 복지시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이익」과 불확실한 통일후의 생활을 우려해 연일 이곳에서 통일반대시위를 벌여왔는데 이날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강행. 그러나 통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의 환호에 이들의 주장은 더욱 초라하게 보였으며 1일로 독일 경찰에 편입된 전동독경찰관들이 이들의 데모를 보호. ○「통일의 횃불」기념촬영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난 40여년동안 독일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던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서독 초대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취임하면서 독일국민의 통일염원을 북돋우기 위해 광장 한가운데 마련됐던 통일횃불은 냉전시대의 파란만장했던 베를린의 과거를 지켜보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온 명소. 「Freiheit(자유)ㆍRechts(정의)ㆍFrieden(평화)」라고 새겨진 대리석 받침대 위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희망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베를린시민들은 연일 이곳에 몰려들어 헌화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1일 가족과 함께 통일횃불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헬무트 센켄씨(52)는 『호이스의 염원은 드디어 성취돼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횃불이 소멸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통일의 횃불은 독일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동독군복등 기념판매 ○…독일의 신문들과 방송들은 대부분 차분한 자세로 베를린의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거를 재음미하며 통일행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소개. TV는특히 통일이후의 국내ㆍ세계정세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방영하는 가운데 ARDㆍZDF 등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고 있는 TV는 60년대초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이히빈 베를리너(나는 베를린시민)』이라고 연설하며 소련과 동독의 봉쇄로 고난을 겪고 있던 베를린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던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여줘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또 통일축제기간동안 재빠른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려 2차대전때 파괴된 상흔을 간직한채 도심 한가운데 을씨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카이저 빌헬름교회 주변 광장에는 상인들이 전 동독군인의 모자와 제복,계급장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한 회사는 베를린 봉쇄때 시민들의 생필품을 공수했던 C46수송기를 임대해 축제기간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템펠로프 공항까지 기념비행을 광고하면서 손님들을 끌기도. ○교민무용단 공연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 교민여자 무용단인 「아리랑무용단」이 참가,2일 하오 11시부터 동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앞 베벨프라츠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눈길. 무용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를린시 당국에서 축제참가 초청장을 보내와 2차대전으로 인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 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복으로 차려입고 30여분동안 우리나라 전통춤을 공연할 예정인데 통일의 현장에서 「통일기원춤판」이 한바탕 벌어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 ○…통일축제는 승전 4대국 수뇌들이 참석하지 않게됨으로써 당초 계획과는 달리 순수한 독일인 자체의 축하행사로 진행될 전망. 통일축제의 공식행사는 2일 하오 5시 동서베를린시 의회가 개최됨으로써 시작되며 4일 상오 9시 베를린에 있는 라이흐스탁(국회)에서 동서독 합동의회가 열림으로써 끝을 맺으나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는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축제의 절정은 3일의 동서베를린 경계선에서 펼쳐질 시민잔치와 국회건물의 통일독일기 게양식. 국회에 통일독일기가 게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베를린의 모든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차량들에도 독일기가 게양되거나 꽂혀진다.
  • “희망과 경계의 통일”… 엇갈린 시각(새 독일 탄생:1)

    ◎「경제ㆍ군사대국」의 강풍이 분다/세계질서 재편의 축으로 부상/6번째 유엔상임국 확실… 영향력 신장/“제국출현” 우려속 “유럽통합 가속” 기대 10월3일 0시. 동서독이 공식 하나로 통일되는 이 시각,독일 전역에는 일제히 폭죽이 터질 것이다. 거리를 메울 시민들은 전통적인 뿔피리를 불어대며 밤이 새도록 게르만민족의 하나됨을 경축할 계획이다. 특히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문 주변과 운텐 덴 린덴가를 중심으로 2일부터 4일까지 밤낮으로 이어질 통일축제가 벌어져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씻어버린다. 독일은 지난 7월1일 경제ㆍ사회통합에 이어 동서독이 8월31일 체결한 「통일조약」에 따라 3일 0시에 독일민주공화국(GDRㆍ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FRGㆍ서독) 헌법 제23조에 의해 정치적으로 FRG에 흡수통합 됨으로써 내부적인 통일과정을 모두 마무리 짓게 된다. 이로써 지난 45년동안 사회주의를 추구해온 동독이라는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같은 기간동안 시장경제로 힘을 키워온 서독을 모태로 한 통일독일인 「독일연방공화국」이 유럽중심부의 새로운 국가로 등장,유럽의 새 질서를 추구하여 세계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이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분산되었던 독일의 국력은 통일을 계기로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2개국으로 구성된 EC내에서 서독은 지난해 총 수출의 30%,자동차 생산의 35%,철강생산량의 26%,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대략 25%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다 동독 편입으로 성장잠재력이 가세될 경우 통일독일의 EC내경제점유율은 33∼35%까지 올라가게돼 「경제패권주의」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독일경제력의 팽창은 EC국가들 뿐만 아니라 동구의 각국에도 기대감과 더불어 우려감을 동시에 갖게 하고 있다. EC국가들은 92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럽단일시장화에 구동독이 합류함으로써 2차대전 후 지속되어온 동서의 냉전상태가 종식되었고 유럽내에서 동구라는 블록이 와해되었으므로 대유럽통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더욱 조속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경제초강국 독일로부터 그들의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80년대 중반이래 동구의 민주화물결 이후 이들 국가들은 사회ㆍ정치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져 독일의 경제적 지원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독국민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계기로 독일통일이 가속력을 붙게 한 것도 미ㆍ영ㆍ불ㆍ소 등 승전 4개국중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소련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를 승인한 것이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소련은 그동안 콜 서독총리와의 독일통일협상 과정에서 38만여명에 이르는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 명목으로 1백20억마르크(76억달러)를 받아내기로 한데 이어 지난주 30억마르크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하는등 경제적인 실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다. 소련은 최대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당초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반대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으로 물러섰으며 결국은 나토가입만을 허용하기에 이르는등 협상과정에서 모든 것을 내주면서 최대한의 실리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 내부적 원동력은 서독의 민주주의의 실현과 경제적 성공,그리고 국민들의 잠재적인 통일열망 등을 기반으로 해 80년대 초반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에서 싹튼 동구권의 민주화운동이 동구제국에서 연속적으로 일당독재체제를 붕괴시키면서 결국 동독공산당의 몰락에 다다른 것이 큰 계기였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볼때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측면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대한 관료조직과 더불어 비현실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에 의해 너무나 허약하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회주의국가중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알려졌던 동독의 경우 그동안 생산관리나 품질향상 등 경제의 기초개념보다는 완전고용과 균등배분에만 주력,실업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나 결국 그것이 모양새만 그럴싸한 허수아비임이 드러났다. 한편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저지른 독일의 재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의구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이같은 주변국의 우려와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통일독일이 나토와 EC의 틀안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진정한 EC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다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는 3일의 통일에 이어 14일 동독지역에서의 주의회 선거를 실시해 사회주의 국가시절 폐지됐던 5개주 주의회를 다시 만들어 연방정부에 가입하는 한편 오는 12월2일 총선거를 실시해 연방의회(Bundestag)를 구성하는 등 정치일정을 차분히 추진해 나가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까지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지역 재건에 국력을 총집중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유력시 되는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전승 4개국 수뇌들과 주변국 수뇌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통일독일이 평화와 자유의 나라가 될 것이며 제4제국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약속을 지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은 EC와 나토,그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 국제협렵체제의 테두리 안에서활동할 것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가입돼 국제적인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련은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위기를 조정하는데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통일독일의 국제적인 부상과 책임분담은 이제 마지막 냉전의 산물로 남아 있는 한반도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방향은 긍정적인 쪽일 것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평가이다.
  • 유럽은 통독을 필요로 하는가/유럽전문가 토론회

    ◎“통일독일은 유럽평화의 안전판이다”/동구 민족분쟁 해소의 본보기 제공/경제대국으로 「세계의 짐」분담 마땅 동서독의 통일을 앞두고 독일통일과 관련된 유럽전문가들의 대토론회가 유럽주요 언론사들의 공동주관으로 25일 파리에서 열렸다. 「유럽은 독일을 필요로 하는가」「독일 초강국」「외부위협」 등을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에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행한 것을 비롯,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A 야코블레프 소련 대통령보좌관,독일의 대표적 작가 귄터 그라스 등 유럽의 정치ㆍ언론ㆍ문인들이 참석했다. 파리 라 데팡스 소재 커뮤니케이션 센터(CNIT)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독일통일의 긍정적 측면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은 과거에 대한 교훈,도덕적 사명감,그리고 경제대국으로서 세계문제에 대한 책임분담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기조연설=독일의 완전한 통일은 1년안에 이뤄질 것이며 통일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열망」이자 현실화 될 수 밖에 없는 합당성을 지니고 있다. 독일의 통일이 평화적이며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프랑스는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통일이 신속히 이뤄진다면 이는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조기통일의 실현을 위해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미리 유념했기 때문이다. 통일에는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오데르­나이세강의 국경문제,독일주둔 4개국군의 철수방식,생화학 핵무기에 대한 독일의 포기,동독령의 나토 및 EC에 대한 편입 등이며 이들 문제는 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 4+2회담에 폴란드가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통일독일이 보다 강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나는 독일의 통일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경제적 팽창주의와 궁극적인 게르만 패권주의의 위험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사실이다. 독일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특히 유럽국들을 상대로 무역흑자의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 GNP의 4∼5%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정적자를 초래하는등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다. 독일의 경제 팽창주의는 다른 유럽국들도 보조를 맞출지 모르지만 계속될 것이며 유럽이 독일통일을 실기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독일은 대유럽의 안정요인이다. 또 독일은 더 이상 영토상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동구민족주의자들간의 분쟁을 해소하는 데 하나의 본보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발렌틴 팔리네(소련 공산당중앙위 서기)=독일통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며 유럽과 독일에 대한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 독일통일은 또 「선린」의 차원에서 우방 및 소련과의 관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일을 신뢰하고 있으며 이제 냉전은 사라졌다. 오늘날 소련은 종전의 입장을 수정,동구로부터 군사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유럽 일가내에서의 모든 군사적 고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소련의 이른바 신사고는 바로 이같은 상황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예전과 다르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하나의 경제대국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며 결과적으로 EC는 통합에 진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M 클로소프스키(폴란드 상원의원)=독일의 유럽에의 통합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보장이다. 독일통일은 매우 중요하며 콜 서독 총리의 제의는 긍정적인 것들이다. 폴란드는 과거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했던 소련과 마찬가지로 통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의 보장을 위해 독일의 나토 잔류를 지지한다. 또 폴란드는 EC가 독일과 소련사이에 위치한 1억5천만 인구의 중구에도 동일한 정책을 시행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들 중구의 EC통합은 전유럽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보장이 될 것이다. ▲L 스파트(서독 바덴뷔스템베르크주 총리)=통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유럽의 장래적 측면에서 기업들에 대한 경기규칙과 재정기준들을 조화시키는게 필요하다. 이러한 규칙들을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럽의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환경ㆍ운송ㆍ연구ㆍ정보분야 문제들은 바로 유럽 자신에 의해 해결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유럽은 역동적(Dynamic)이 될 것이다. 유럽은 또 페만 사태와 같은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의 태도를 찾아야 할 것이며 이같은 공동보조는 막강한 것이 될 것이다.
  • 불가리아 사회당의장/개혁부진 인책 사임

    【소피아(불가리아) AP 연합 특약】 불가리아 집권 사회당(전 공산당)의 알렉산데르 릴로프의장이 24일 사임했다. 릴로프의장은 지난 2월 불가리아가 공산당 일당지배원칙을 포기한뒤 당의장에 취임했으나 그동안 과감한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과 사회당 당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 「주체사상의 꿈」 깨지 못했다(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2)

    ◎“폐쇄의 화석” 비난 모면하려 표피적 개방 추구 지난 5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선거와 그에 따른 권력구조의 개편을 끝내고 일련의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만물지중 오직 홀로 고정불변을 유지하는 존재는 없다고 한 유물론은 누구보다도 혁명적 변화의 인위적 추구에 일생을 바쳐온 김일성이 더 확신하는 진리일 것이다. 스스로의 「주체사상」이란 이념적 환상을 버리지 않은 채 개방압력에 대역함이 없이 가능한 변화를 보이려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 김일성은 맹목적 옹고집이 아니라 봄이 오면 봄옷을 챙길 줄도 아는 위인이며 어쩌면 그 솜씨가 비범하다는 평가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과욕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지난번 서울에서의 남북한 총리회담만 하더라도 북한은 총한방 쏘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내기를 원했다. 마치 적진에 뛰어들어 한바탕 혁명투쟁이라도 벌이자는 태세로 무례하게도 거친 주장을 마구 펴놓고 상대방의 신문방송으로 하여금 이것을 전파케 하는 이익이라도 얻으려는 듯이 작태하고 있었다. 물론 반세기의 오랜 분단사에서 총리회담은 처음있는 일이니 만큼 누군들 그 의의를 평가하는데 인색했겠는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단적으로 옥중의 「동지」들을 만나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버티지 않았는가. 이것은 스스로의 본질과 원리를 조금도 버리지 않은 데서 나오는 행동이다. 소위 주체사상의 제1의 특징으로 꼽는 일관성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북한은 지금 가능한 변화의 자세를 취하면서 그것으로 본질의 불변성을 지키려고 한다. 필요하다면 왕당파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전통적 수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그 악수를 악마와의 향연이라고 속으로는 다짐하면서도 적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공산당이다. 내달 16일부터 19일까지 평양에서 두번째 총리회담이 열리기로 일정까지 잡혀있다. 이 대좌가 악마와의 정치적 향연이 아니라 민족적 융합을 위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은 주체사상의 낡은 환상부터 그들의 생활에서 떼내버려야 한다. 북한은 평양총리회담을 통해 자기네는 결코 폐쇄의 화석이 아니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또는 서울보다는 평양이 더 평화의 세력이라는 점수를 따기 위해 어떤 대담한 민족적 용의라도 가지고 있는 듯이 행동할는지 모른다. 예컨대 미소는 다같이 한반도 분열의 책임이 있으니 이를 함께 배격하고 남북 융합으로 통일하자는 배미배소의 선언과 민족통일전선을 촉구할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곧 범민족의 통일전선을 유도함으로써 「역시 김일성이다」는 민족적 성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주체사상의 일관성을 가지고 변화창출이 묘를 얻자는 것인지 모른다. 북한은 이미 김영남비망록을 통해 대소도전을 시작했다. 비망록 내용에는 『한소 수교는 전체 조선인민들,특히는 남조선 인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 것으로 된다.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그것은 통일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으로 된다』고 했다. 이것은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다」를 의식하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주장의 논리는 남한인민들의 통일열망을 위해 북한은 배소투쟁을 불사하겠으니 모든 민족적 세력은 배미투쟁으로 협동하여 새로운 범민족 통일전선을 결성하자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변했는가. 굳이 변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주체사상의 일관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라고 할 것이다. 북한은 60년대 초 모택동의 반 흐루시초프체제 투쟁에 가담하여 『소련은 일부 직장을 복구건설해준 대가로 국제시장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설비와 강판을 비롯한 자재를 우리에게 주고 그 대신 우리에게서 수천t의 금덩어리와 다량의 고귀한 금속과 원료를 국제시장가격보다 훨씬 헐값으로 가져갔다』고 신랄히 대들었다(64년 9월7 「로동신문」). 시기적으로 보아 이 도전은 61년 9월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를 등장시키고 김일성에 의한 민족통일을 노골적으로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과 때를 같이하는 모험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나 김일성 일인체제 확립을 위해 소련파를 제거하고 반소노선을 택했던 60년대초의 사정과 오늘날 일련의 외압에 의한 김일성 체제의 붕괴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배소노선도 불사한다는 사정은 어쩐지 유사성이 있을 것도 같다. 만일 북한이 「범민족」의 배소노선으로 「역시 김일성이다」는 식의 들뜬 민족적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기세를 밀고 나아가겠다는 것이 범민족적 통일전선에 의한 통일투쟁이다. 북한의 최대 약점은 이름은 비록 인민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전제적 군주국가라는 데 있다. 북한을 개방하라는 객관적 요청의 압력은 김일성을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일성 스스로도 폐쇄의 한계를 느끼고 인민에게 가능한 양보를 보이면서 통치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사회문화 전반을 세심히 주목하는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조국을 배반하지 말라」는 투의 경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체제수호의 정치사상교양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광경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전개될 일련의 객관적 정세가 자기네에게 불리할 것을 내다보고 취하는 대책이다. 71년 11월 자유중국이 유엔회원국에서 추방되고 그 자리를 중공이 차지하게 될 것을 내다본 장개석총통은 「처변불경,장경자강」을 국민앞에 호소했다. 어떤 경우에도 놀라지 말고 남의 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든든해지라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점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남북 스포츠교류와 대화를 거듭하면서 민족융합의 길이 트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 아니라 북한이 대일ㆍ대미 접근으로 고립을 풀고 정상적인 국제생활에 나서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폐쇄와 고립으로 몰아넣는 「주체사상」의 이념적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 “한­소 수교는 한반도통일 역행”/대소 항의 「김영남비망록」 내용

    ◎“북한­소 동맹조약 유명무실화” 경고/“소련제 무기 수입 중단” 거센 반발도 북한은 지난 2일 김영남­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회담때 한­소 수교가 「두개 한국」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통일역행 행위이며 지난 61년 7월 체결된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 19일 자가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 신문은 김영남­셰바르드나제간 회담에서 한­소 수교문제와 관련해 논의된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 자리에서 김영남은 한­소 수교가 ▲한반도 분단현실을 인정하며 ▲소련이 북한과 첫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이고 한반도 분열에 책임있는 나라로서 한반도에 「두개 한국」이 존재함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한국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소련과 한­미간의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며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화 할 뿐 아니라 ▲한국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했다. 김영남은 특히 한­소 수교시 소­북한간 동맹조약에 의거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온 무기를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소련으로부터의 무기수입 중단을 경고한 것으로 이 신문은 덧붙였다. 북한은 김영남의 이같은 항의내용을 비망록으로 작성,회담이 끝난 후에 소련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조선지는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아 최근호(12일자)가 한소 수교는 『한소 양국 뿐 아니라 북한에도 이로운 일이며 소련은 자주국가 이므로 북한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 언급,이는 『소련이 두개 조선 조작책동에 말려드는 것』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다른 지역 동맹국의 이익마저 침입하면서 일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김영남이 셰바르드나제에게 전달한 6개 항목의 비망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조선의 분열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상태와 북남사이의 불신과 오해의 근원은분열상태 그 자체에 있다. 따라서 조선의 분열을 조장시키는 것은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되는 평화와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결과 긴장격화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분열시킨데 책임있는 나라이다. 또한 소련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을때 맨 처음으로 우리 공화국을 조선 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그러한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분열주의,명실공히 통일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된다. 셋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주는 것으로 된다. 북방정책의 본질은 남조선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대로 「교차승인」을 실현하여 조선을 영원히 두개 조선으론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소련이 이것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데로까지 나가는 것은 공공연히 통일에 역행하는 것으로 된다. 넷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 뒤집어 엎으려는 미국과 남조선의 공동음모에 가담하여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남조선 당국자들은 소련이 저들의 편에 가담한 것을 코에 걸고 더욱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우리를 독일식으로 흡수ㆍ통합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위한 북남대화를 파탄에로 이끌고 남북대결을 가일층 격화시킬 것이다. 다섯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조­소 동맹조약은 스스로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맹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반도에서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게 되고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첨예화시키게 한다. 더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반적인 정세를 첨예화시키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 전체 조선인민들,특히는 남조선 인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 것으로 된다.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그것은 통일에 대한 조성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으로 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행한다면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의 견지에서 보다 조­소 두나라 인민의 이익의 견지에서 보나 그 누구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 “소,북한ㆍ쿠바와 관계 청산해야”/솔제니친,프라우다지에 기고

    ◎새러시아 건설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공산당은 착복한 재산 국가에 반환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71)은 18일 자본주의의 착취와 같은 서방 문화의 쓰레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민 민주주의와 러시아 정신을 부활시키고 슬라브족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소련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솔제니친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어떻게 러시아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4페이지에 걸친 기고문에서 물질주의 보다는 유심론에 대한 오랫동안의 선호,통합된 슬라브 국가에 대한 열망,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민주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을 피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구조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잔재 아래 남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ㆍ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만으로 구성된 단일국가,즉 러시아 연방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거대한 왕국(소련)을 유지하는 것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제니친이 조국 소련에 대한 희망을 밝힌 이 기고문은 지난달 그가 복권된데 이어 소련 사회에서 그의 공식적인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을 4가지 꼽았다. 첫째 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 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특히 쿠바 및 북한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셋째 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넷째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 공산당이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아키노,미군 단계철수 촉구/미도 비 주둔군 연차감축 제시할 듯

    ◎미­비,「기지협상」 재개 【마닐라 로이터 AFP 연합】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17일 필리핀주둔 미군들의 「단계적 철수」를 촉구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필리핀 미군기지 장래문제에 대한 미­필리핀간의 회담이 열리기 하루전인 이날 전국에 방영된 TV연설을 통해 구체적 철군일정은 제시하지 않은채 『필리핀 정부는 이제 미국과 필리핀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 문제와 관련,협상을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이어 『필리핀 정부는 우리의 책임과 열망,우리의 복지와 존엄성,그리고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와 동맹국으로서의 우호가 존중될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앞으로 미국과 협상을 벌일 각오』라고 덧붙였다. 아키노 대통령의 이같은 연설내용은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해외미군기지중 가장 규모가 큰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비크만 해군기지 그리고 4개소의 소규모 미군 군사시설에 대한 임차계약이 오는 1991년 9월16일로 만료된다는 필리핀의 입장을 확고하게 표명한 것이다. 미정부 관리들은 앞으로 5∼10년간에 걸쳐 필리핀의 미군기지를 단계적으로 감축해 나가는데 동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수백명의 필리핀 근로자들과 학생들은 이날 마닐라에서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격렬한 반미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경찰과 민간인 등 최소한 11명이 부상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 노대통령ㆍ연 총리 청와대 대화내용

    ◎“서로 만나고 또 만나 통일의 길 열자”/양측 이익되게 물자교역을 노대통령/주석께서 안부말씀 전하셨다/「7ㆍ4성명」 따른 통일 추진 희망/연총리 ◇노태우대통령=온국민과 함께 북대표들을 환영하고 청와대로 온 것을 반갑게 생각하며 환영합니다. 이번 역사적 회담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는 그동안 여러분들이 본 우리 언론의 보도나 사설을 봐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회담을 통해 45년동안의 분단을 종식시키고 영광된 통일을 여는 출발점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남북이 서로 오가고 자주 만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고 안될 일이 없습니다. ◇연형묵총리=대통령께서 귀중한 시간을 내어 따뜻하게 저희 대표단을 맞아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경애하는 주석께서 노대통령을 만나면 안부를 전하라는 말씀을 위임받았습니다. 이번 회담이 열린 것은 북과 남의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도 경애하는 주석님의 결의에 따른 것입니다. 주석께서는 건강이 좋아 공장과 농장등을 자주 둘러보며 인민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김주석은 지난 7ㆍ4공동성명에서 표명된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합의 통일 3원칙에 따라 통일을 추진하길 바라고 있고 북과 남이 제도가 다르지만 서로 다른 제도를 지키면서 통일할 수 있는 길로서 연방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주석은 북한은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이 이뤄져선 안되며 평화통일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로 올 때도 분단 45년 만에 열리는 고위급회담인 만큼 회담을 아끼고 이번 회담을 통해 통일의 전제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막상 남에 와서 대표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북남이 자주 만나면 여러가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대통령=이번 회담을 보니 남과 북이 많은 문제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남북민족의 염원을 담고 합의된 것을 하나하나씩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년동안 대화를 통해 그동안 선전에 치우친 것 같은 부분은 지양돼야겠지만 7ㆍ4공동성명의 3원칙을 존중하고 모든 문제를 만나서 얘기하고 또얘기해서 합의점을 찾고 실천해나감으로써 역사적 소명인 통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민족의 열망과 의지를 뭉쳐나가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대전때 패전국인 일본도 커다란 경제발전을 이뤘고 동서독의 통일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냉전구조의 주축이었던 미소도 화해를 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인 우리가 대결할 이유가 더이상 없고 이념과 사상,정책이 달라도 우리는 반드시 민족화합을 이루고 통일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도 이 세계가 화합을 이룩해나가자는 뜻도 담고 있었지만 남과 북이 화합의 한마당에 모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7ㆍ7선언과 유엔 연설등을 통해 나는 세계에 대해 남측만을 도와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남북이 나란히 서로 돕고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으며 이를 온세계가 공감한 것입니다. 나의 북방정책도 결코 북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북을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세계와 관계개선을 이루고 북쪽이 서방세계와 관계개선을 이루면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통일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지난 6월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남북한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함께 기여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총리=대통령의 말씀을 김일성주석께 잘 보고하겠습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고자 염원하고 있는데 불신과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회담과정에서도 얘기했지만 유엔가입문제,구속된 방북자의 석방,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을 남북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도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회담이 보다 순조롭게 진전되고 속도도 빠라질 것입니다. 7ㆍ7선언에 대해서도 잘 분석해본 바 있습니다만 대통령의 임기중 통일문제가 마지막 정점에 이를 것으로 우리는 생각 합니다. ◇노대통령=남북간의 불신해소와 신뢰를 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부간에도자주 만나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지만 이웃도 자주 만나면 신뢰가 굳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고 또 만나고 이야기하면 믿음이 조성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다시한번 확신합니다. 북한에 대한 나의 3가지 확고한 입장을 얘기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북측의 발전을 돕고 협조하는 입장에 설 것이며 북측도 우리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해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북이 돕고 북이 어려우면 우리가 돕는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둘째로는 남북간에 이해와 신뢰를 심은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는데,여러분들이 여기와서 보니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여러분들을 본 우리 국민들도 여러분에 대한 신뢰를 심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내가 7ㆍ20대교류를 선언했는데,김주석이 지난 신년사에서 남북개방을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셋째로는 남북이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가능한 한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남북 경제협력문제에 있어서도 남북이 서로 필요한 물자를 교역하게 되면 서로 이익이 될 것입니다.(북측 김정우 대외사업부부부장을 향해) 김부부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부부장=앞으로 조건이 잘 맞아 그런 관계로 발전되길 바랍니다 ◇연총리=북에는 현재 크게 아쉬운 것은 없지만 사람힘(인력)이 달려 지하자원 개발을 다 못하는등 어려움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3가지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잘 고려해주시길 거듭 바랍니다. ◇노대통령=아무튼 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선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구속자문제등에 대해 지적했습니다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에서 온 여러분보다 대통령인 본인이 훨씬 더 사랑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냉전체제로 분단된 유일한 나라로 우리나라가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을 이루는 일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만큼 여러분들의 평화통일의 능력을 세계로 향해 실증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연총리=만나주시고 여러가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외언내언

    임춘심 할머니는 사람을 잘못 짚은 것인가. 임할머니는 이번 총리회담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 자격으로 온 림춘길씨를 『암죽 끓여 먹이며 업어키우다시피한 내 막내동생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런데 당자는 『아니다』고 했다. ◆43년동안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해 왔을 임할머니,그랬기에 이름은 말할 것 없고 나이와 얼굴 모습까지 비슷한 북의 손님을 자기 동생으로 「지레짐작」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자가 아니라 하니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밖에. 이 일을 두고 림춘길 총리책임보좌관은 『회담 분위기를 해치려는 저의가 있는 것 같다』면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수한 핏줄찾기 호소를 가지고 불쾌감을 나타낸다거나 회담 분위기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비약같기만 하다. 아니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총리회담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상회담이 추구하는 통일이라는 과제가 무엇인가. 실향의 설움을 씻고 한 핏줄의 정의로써 오순도순 살아가자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림보좌관은 오히려 임할머니를 한번 만나서 「동생아님」을확인시키는 것도 방법이 아닐는지. 또 그 자리에서 북에 가면 「진짜 동생」을 찾아주겠노라고 약속할 법도 하고. ◆『북에 계신 부모형제를 찾습니다』 북측 대표단이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한 부인이 피켓처럼 쳐들고 있던 종이글씨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써 넣은. 하는 심경이 서린 눈물어린 글씨. 그것이 실향민의 마음이다. 림보좌관도 그런 마음 중의 하나인 임할머니의 「지레짐작」이었다고 이해했으면 한다. ◆「동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이 무너진 임할머니의 가슴에는 슬픔과 한의 켜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리라.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역3각형 얼굴』의 그 동생. 이런 슬픔과 한들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번 회담은 기필코 초석을 깔아야 한다. 그 열망들을 회담 대표들은 깊이 의식해야 한다.
  • 강영훈 총리 만찬사 요지

    연형묵 총리를 비롯한 북쪽에서 오신 대표단 여러분,우선 따뜻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잡초를 갈라 길을 내듯,길없는 길을 오시느라 애쓰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오늘 이렇게 남북의 총리와 고위 당국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밝게 예측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면부지의 남남도 만남이 거듭되면 소통이 되거늘,아무리 우리가 40여년간의 분단의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남북은 언어가 같고,문자가 같고,같은 정서를 나눠지닌 한 조상의 후손입니다. 만나고 또 만나노라면 잡초 우거지고 비바람에 끊겼던 통로라도 반드시 복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분단의 상처로 신음하는 이땅의 아픔을 가장 많이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분단의 사슬을 끊고 통일을 실현시킬 사명이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험해 온 이 뼈저린 분단의 고통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야 됩니다. 통일성업의 빛나는 기회가 우리 시대에 열려져 있고 그 사명이 우리에게 지워진 것이라면 단 한걸음씩이라도 더 접근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마지막 10년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새로운 21세기가 민족웅비의 빛나는 세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도,20세기의 멍에인 분단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늘 세계사의 흐름은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를 구축하면서 갈라진 민족이 하나되어 번영토록 고무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인이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어 서로 왕래하고 협력하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시대사의 흐름으로 보나 민족의 여망으로 보나 한반도의 평화통일과업은 민족사의 당위이고 시급한 목표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남과 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정치ㆍ군사적인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는 문제에 관해 협의할 수 있게 된 것은 평화통일의 큰 길을 여는 획기적인 진전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거듭 만남으로 신뢰를 쌓게되면 골깊은 불신의 벽을녹일 수 있는 온기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합의하여 그것을 과감히 실천해 나아가면 우리 모두가 함께 승리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통일을 열망하는 민족의 뜨거운 눈길이 쏠려있고,위대한 민족으로 거듭나는 한민족의 성숙성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이제 놓을 대화의 가교는 그 모든 관심과 시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청랑한 가을밤에,실로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이 소중한 만남의 기회가 따뜻한 화기로 충만하도록 정겨운 이야기를 나눠 주시기 바라며 이 친화로움이 회담기간내내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 만나고 얘기하고 또 만나자(사설)

    서울의 남북한 총리회담은 실로 5년 만의 공식적인 만남이다. 동포끼리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통일의 길 또한 요원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걱정은 아직 이르다. 이렇게 만나고 얘기하고 또 만나면 서로 이해가 깊어지고 신뢰도 커지며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제 우선 휴전선을 헐고 양쪽이 자유롭게 왕래해보자는 단계에 이를지 모른다. 서울의 남북한 총리회담은 거기에 이르는 길목으로서도 또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먼저 판문점을 넘어 서울을 찾아온 연형묵 북한총리를 비롯한 대표단 모두와 수행원,언론인들을 한핏줄 동포로서 환영하고자 한다. 잘들왔다고 인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8월15일 45주년 광복절은 남북한이 모두 쓰디쓴 회오와 유감속에 지나갔다. 북한이 주관하고자 했던 범민족대회는 쓸데 없는 고집과 주장으로 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광복절을 전후한 민족대교류도 성공하지 못했다. 남북한 동포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화해하고 회포를 풀자던 민족적 의지와 노력은 아직 깊게 드리운 제도와 이념의 너울속에 묻히고 말았다. 오히려 양쪽의 오해와 불신의 골만 더욱 깊어지게 됐는지 모른다. 서울 총리회담에서 양쪽 대표들은 참으로 겸허하고 솔직하게 대화해야 한다.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을 억제하고 방북신청서를 접수시켰던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한과 실망을 달래야 한다. 그들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주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양쪽 대표들은 몇시간이고 머리를 맞대고 필요하다면 문을 닫아건 채 밤을 세워 비밀회담을 가져도 좋다. 양쪽 동포들이 간직한 환 고향의 소망과 민족통일의 열망에 조금이라도 부응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책무이다. 그들은 역사앞에 엄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양쪽의 정치와 사회,제도와 이념의 전개,통일방법론의 차이 등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민족과 통일 그 자체만 얘기하고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민족적 인식」을 같이하고 건배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겸허하게 자신을 절제하여 이해하고 양보하며 상대를 믿고자 애써야 한다. 총리회담장은 절대로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서울회담에서 못다한 말들과 합치되지 않은 주장은 10월 상달 평양에서 만나 다시 하면 된다. 평양에서 못다한 일들은 다시 서울에서 해도 괜찮다.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오가는 남북의 길로 비용걱정은 말고 신변걱정도 거둬야 한다. 양쪽의 대표들이 반드시 호화로운 호텔에 묵을 필요도 없다. 어느 날엔가는 서울과 평양의 뒷골목 어느 동포집에서 민박을 해도 나쁠 게 없다. 단 한번만이라도 서로 고집을 거두고 마음을 열어 보이면 일은 풀리게 마련이다. 만남 그 자체가 한없이 좋은 것이고 얘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나누면 된다. 정치ㆍ군사ㆍ경제협력문제 무엇이라도 좋다. 그 분야 모두에 걸쳐 책임있는 당국끼리 직통전화를 놓는 일 단 한가지만 합의하더라도 총리회담은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필코 이 기회에 한민족의 자치능력과 복원력을 되찾아야 한다. 총리회담은 그 시험대이다.
  • 통독과 서울회담(사설)

    서독과 동독이 진척시키고 있는 통일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브레이크가 터진 듯한 빠른 행보와 굳은 의지에 우리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양독은 지난 7월 경제통일을 이룬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정치ㆍ법률제도 등 전반적인 사회체제를 단일화하는 두번째 통일조약을 체결했다. 남은 일은 오는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과 10월 1,2일의 전구안보협력회의에서 이 합의를 보고 승인받는 절차뿐이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독일의 통일을 승인하는 요식행위가 될 것이다. 두 독일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다음날인 10월3일을 「통일독일 선포의 날」로 이미 정하고 전국에서 대대적인 국민축제를 벌일 준비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행사계획은 동서독 실무진이 협의중이나 학교 기업체 등이 참여하는 우정의 만남등 기념행사가 주요도시에서 거리축제와 함께 열릴 예정이다. 한달뒤 우리는 통일된 새 독일을 보게 될 것이다. 부러운 일이다. 독일의 통일이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지게 된 것은 동독측의 경제적인 위험수위에 정치적인 통일열망이 상승작용을 한 때문이다. 통화단일화로 「경제체제의 벽」은 베를린장벽처럼 허물어졌으나 경쟁력이 약화된 동독기업의 조업부진으로 실업률이 급상승하자 정치적으로 빨리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독일국민들의 숙원을 이루었다는 대내적 의미도 크겠지만 그것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는 데서 커다란 관심사가 되어온 게 사실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앞으로 독일의 경제방향이 특히 유럽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시련을 극복하려는 동구 여러 나라와 소련에 미칠 「동독경제의 시장화」를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독일 통일 통일후의 유럽질서를 구축하는 외교노력이 될 것이다. 독일통일의 움직임이 자체의 의지에 의해 추진되어오면서도 동서의 긴밀한 협조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통일된 독일의 병력감축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화해무드와 군축노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통독으로 가는길에서 앞으로도 제거해야 할 장애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양독 시민들의 심리적 괴리감과 동서독 주간의 갈등해소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드 메지에르 동독총리가 『우리는 앞으로도 산을 움직일 것』이라고 한 말에서 읽듯이 그것들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두 독일은 이번의 통일조약조인으로 통일을 향한 마지막 선,물러설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특히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그들이 「통일고개」를 넘었다고 우리는 이제 통일의 문을 두드리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주초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한 총리회담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사실에 있는 것이다. 동서독이 걸어온 통일행로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남북한 고위회담이 한두차례의 만남에서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쉽게 끌어내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울회담으로 시작되는 남북한간의 만남들이 끝내는 통일로 가는 길을 닦아줄 것으로 믿고 있다. 분단 41년에 걸친 독일 사람들의 통일노력도 만남에서 비롯된 사실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10월3일 조기통독”으로 쾌속 항진/동독의회의 “통독결의”의미

    ◎“동독경제 살리자”… 불화씻고 통합 확정/국제 공인ㆍ12월 전독총선으로 “대단원” 동서독의 완전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동독의회는 23일 새벽 2시(현지시간) 통독결의안을 가결,오는 10월3일을 40여년간에 걸친 동서독간 민족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선택했다. 지난해 10월 호네커 공산독재를 몰아내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지 1년,그리고 지난 7월1일의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시행된지 3개월여만에 정치통합을 이룸으로써 동서독은 마침내 통일을 완수케 되는 것이다. 동독의회가 채택한 통독결의안은 서독연방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독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즉 연방헌법 제23조가 규정하고 있는 「독일영토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의 「연방가맹」 결정행위이며 동독측의 결정만으로 충분하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3일부터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합됨으로써 정치ㆍ외교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자연히 상실,완전 소멸하게 된다.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켜온 통독작업은 그동안 하루 앞을 가늠해보기어려울 정도로 쾌속으로 진행돼왔다. 동구의 개혁ㆍ개방열기에 곁들여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탈주는 40년 공산독재의 아성을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았으며 때맞추어 불꽃을 댕긴 공산정권 반대시위는 10월에 이르러 전국으로 번져 드디어는 호네커를 몰아내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동서독 국민들의 통일열망은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으며 이어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는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서독 기민당과 함께 조속한 통일달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로타르 드 메지에르의 기민당에 표를 몰아 주었다. 이때부터 통일논의는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몇차례의 양독정상회담을 통해 지난달 1일에는 화폐통합을 주축으로 한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채 두달도 안돼 완전통일을 의미하는 정치통합이 결정된 것이다. 이번 정치통합결정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길지는 않지만 몇주째 동서독내의 정당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우선 양독정당들은 통일선언을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전독총선을 앞서 치를 것이냐로 신경전을 벌여왔다. 양쪽의 집권당인 기민당은 선거를 먼저 치르고 그뒤 통합을 선언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사민당을 중심으로한 야당세력은 정치통합뒤 총선을 치르자는 「선통일」 주장을 내세우며 동독연정에서의 탈퇴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절차문제를 놓고 이같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것은 총선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서 기민당측이 양보,「선통일」방안이 채택되자 이번에는 정치통합일자를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당초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 직전에 정치통합을 선언,현서독의 선거법체제아래서 총선을 치르자고 주장하던 사민당측은 이를 번복,오는 9월15일에 정치통합을 선언하자고 조기통일론을 내세웠다. 사민당은 괴멸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동독의 경제를 가능한한 빨리 서독에 편입시켜 상황을 호전시켜야 한다며 9월12일의 모스크바 「2+4회담」 개최직후에 정치통합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동독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14일이 적당하다고 맞섰고 서독의 콜총리는 동독 공산정권수립기념일인 10월7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10월6일 통일을 선언하자고 동독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같이 각 정당들 간에 각양각색이던 정치통합일정이 10월3일로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독총선일까지의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각 정당 나름대로의 정치적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통독작업을 담당해온 기민당으로서 정치통합일정을 앞당기자는 야당의 주장을 끝내 반대할 경우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유권자들로부터 통일추진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를 간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당초 조기통독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민당 역시 조기 정치통합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민당 못지 않은 통일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전문가들은 동독의 국민경제가 정치게임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당분간 경제사정이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린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드 메지에르 총리는 사민당출신인 발터 롬베르그 재무장관과 사민당추천인 무소속의 피터 몰락 농림부장관 자유당의 크루트빈슈히 법무장관 등 4명을 「실책」을 이유로 사직시켰다. 사민당은 이를 기다렸다는듯 메지에르 총리를 가리켜 『콜의 꼭두각시』라고 몰아붙이며 기민당과의 대연정에서 탈퇴,지난 4월12일 이래 1백30일간 유지해온 동거상태를 마감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앞으로 선거전에서 경제ㆍ사회 혼란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위한 발판 마련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통합 일정이 결정되긴 했지만 선거전을 겨냥한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통합을 전후해서 안팎으로 몇가지 거쳐야할 순서가 남았으나 이는 부수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이 남아 있다. 동서독과 2차대전 전승국인 미ㆍ영ㆍ불ㆍ소 등 4개국 외무장관이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나는 이 회담은아마도 이번에 마지막이 될 것이며 동서독의 점령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동서독의 통일을 보장하는 최종 인증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 1일과 2일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외무장관회담에서 통독의 국제적인 공인절차를 거쳐 11월19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CSCE정상회담에서 동서독의 통일을 재확인하는 성명서가 채택되어 외교적으로 통독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동독 지방의회선거를 거쳐야 한다. 오는 10월14일로 에정되어 있는 지방의회선거는 분단되면서 없어졌던 동독지역내의 5개 주의회의 부활을 위한 절차이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2월2일의 전독총선. 동서독 양쪽 의회가 해산되고 명실상부한 하나의 의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독총선은 통독작업의 가장 핵심적이며 최종적인 절차로 꼽혀왔었다. 그러나 「선통일 후총선」방안이 채택됨으로써 전독총선은 정치통합의 마침표 찍기 작업 정도의 의미만 갖게된 셈이다.
  • 화ㆍ전 신경전… 새 양상의 중동사태

    ◎“48시간내 교전”… 이스라엘군부 긴급 회동/일,다국적군에 기술ㆍ의료진 금명 파견/이라크군,자기편끼리 교전벌여 2백여명 부상/이라크,쿠웨이트내 약탈자 20명 처형 ○…중동위기가 수일내 전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군사전문가들의 전망이 나도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고위 군참모들이 22일 비밀리에 회동했다. 한 보안 소식통은 『앞으로 24∼48시간내 충돌이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보안 관계자는 중동전이 일어날 경우 이스라엘에도 그 불꽃이 튈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의 한 고위관리도 22일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군사 분석가들은 이스라엘도 이 싸움에 휘말려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미국과 이라크는 충돌을 향해 나가고 있다』면서 『미국인들은 페르시아만 지역에 병력을 계속 집결시키고 있는데 이를 사용할 의도가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이라크는 협상을 위한 합리적인 어떤 제안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리에 시체매달아 ○…이라크당국은 쿠웨이트에서 금품약탈행위를 한 20명을 지난주에 처형,쿠웨이트 곳곳의 거리에 시체를 매달아 놓았다고 한 목격자 22일 증언. 요르단선원인 이 목격자는 『쿠웨이트시에 9명,아마디시에 6명,자라시에 5명 등 20명의 시체를 눈으로 봤으며 귀금속과 현금 등을 훔친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쿠웨이트인 등이 TV화면에 나왔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의료 및 기술요원들을 파견하는 획기적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여 이라크에 대한 세계 각국의 무력 제재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 소식통들은 22일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꿔 조만간 다국적군에 대한 지원인력 파견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나 이는 2차대전 이후 제정된 평화헌법에 따라 전투요원이 아닌 의료ㆍ기술요원 등의 비전투요원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다. ○요르단에 원유 공급 ○…사우디아라비아는 요르단의 원유소요량중 절반에 해당하는 1일 3만3천배럴을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아랍의 한 외교관이 22일 전했다. 이 외교관은『요르단정부의 요청에 따라 사우디는 오는 9월1일부터 1일 3만3천배럴의 원유를 요르단에 공급할 것』이라고 말하고 요르단은 2주전 사우디에 이같은 요청을 했으며 사우디는 21일 이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터키는 다국적군에의 합류가 터키의 이익에 부합될 경우 페만에 주둔중인 다국적군에 동참할 것이라고 사파 기라이 터키 국방장관이 22일 반관영 아나톨리아 통신과의 회견에서 말했다. 파키스탄 임시정부도 페만에 대기중인 다국적 해군에 합류할 선박의 파견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나 다국적군으로부터의 공식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파키스탄 정부 소식통들이 이날 밝혔다. ○“지금이 공격 적기” ○…미국이 사우디아리바아에 병력과 무기를 계속 투입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이라크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적기라고 국방분석가들이 22일 밝혔다. 중동의 한 미국 국방분석가는 『현재 미국내 여론은 인질들의 생명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총격전을 벌이자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앞으로 6주일 또는 6개월 후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전세계의 공통인식이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중동정치 상황으로 인해 미국의 입장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대 이라크 공격시기 선택문제가 극히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쿠웨이트인들은 이라크 점령군들에 대해 치고 빠지는 저항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전 쿠웨이트 주재 이라크 대사관도 로켓 공격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고 위싱턴 포스트가 22일 보도. 신문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밤중에 들리는 총격소리와 불타는 차량들의 잔해는 쿠웨이트 저항세력이 이라크 소부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징후로 보인다고 추정. 또 이라크군은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기도 저하되어 있는 상태라고 포스트는 말하고 남부지역에 배치된 이라크군 상호간 충돌사태까지도 벌어져 1백50명내지 2백명 가량의 이라크군이 아담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원유수출 잠정 취소 ○…사우디아라비아는 22일 페르시아만에 파견된 미국의 군장비에 가솔린ㆍ등유 등 사우디의 정유제품 공급물량의 상당부분이 소모되기 시작함에 따라 대부분의 정유제품 수출을 취소했다. 사우디는 극동 등 세계 각국의 고객들에게 「현재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이들 제품의 9월중 계약 공급물량을 선적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는데 석유업계 소식통들은 나프타와 중유는 이번 발표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하루 약 30만 배럴의 정유제품을 극동 등지에 공급키로 계약을 맺고 있다. ○예멘,이라크선 차단 ○…압달라 알 아시탈 유엔주재 예멘대사는 21일 이라크 유조선 한척이 미국 등 다국적군의 해상봉쇄망을 뚫고 남예멘의 아덴항에 도착,화물을 하역했다는 앞선 보도를 부인했다. 아시탈 대사는 영국 BBC방송과의 위성중계 인터뷰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이라크 선박 한척이 아덴항에 입항해 있으나 화물을 하역하지는 않았다』고 밝힌 뒤 『유엔의 제재조치는 이라크선박의 입항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요점은 화물이 하역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척의 이라크 유조선이 지난주 아덴항에 정박한데 이어 미국의 경고 사격을 받았던 1척이 또다시 입항했다. ○인질 석방문제 논의 ○…유엔 특사들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억류중인 수천명의 외국인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22일 바그다드에서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쿠웨이트 공관 폐쇄 ○…인도 정부는 쿠웨이트 주재 공관을 폐쇄하라는 이라크의 요구에 따라 쿠웨이트 주재 자국 대사관을 이라크로 옮길 것이라고 인더 쿠마르 구즈랄 인도 외무장관이 밝혔다고 걸프 뉴스지가 2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구즈랄 장관이 동지와의 인터뷰에서 『쿠웨이트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공관원은 3일 이내에 바스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에 앞서 미정부는 쿠웨이트 주재 공관을 계속 열어둘 것이지만 공관원 수는 절반 가량으로 대폭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외무부는 22일 쿠웨이트 주재 공관운영을 보류할 계획이라고 발표. 스위스는 그러나 이것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인정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유가인상에 반대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 사태 악화로 인한 유가인상에 결코 반대하며 유가는 배럴당 17달러선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사우디의 한 고위 외교관이 22일 말했다. 모하메드 사이드 코자 태국주재 사우디 대사는 이날 방콕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많은 사람들은 사우디가 저유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나 사우디는 세계경제의 안정을 위해 저유가정책을 견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마 카톨릭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2일 페르시아만 사태를 처음으로 공식 언급,「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고 평화를 기원.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페르시아만 위기사태가 야기된 이후 이라크의 침공은 물론 미국의 사우디 파병등 서방측의 대응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날 불교도가 일부 포함된 일본인 성지순례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오늘날 세계평화의 열망을 위협하는 전쟁의 위협에 대해서도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며 세계 평화의 위협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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