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열망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도전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예산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자당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방산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55
  • 마약과의 전쟁(외언내언)

    해방 직후에는 마약상용자를 「아편쟁이」라고 불렀다.퀭한 눈에 피골이 상접한 아편쟁이는 그야말로 폐인의 몰골,가산을 다 탕진하고 결국 길에서 객사하는 말로를 걸었다.본인과 가문을 함께 파멸시키는 패가망신의 본보기다.나아가 사회를 병들게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마약이다.그래서 「망국병」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백색의 공포」라 해서 온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1840년 중국 광주에서 일어난 아편전쟁은 중국인에게 아편을 풀어 엄청난 국부를 챙겼던 영국인에 대한 중국민족주의의 저항이었다.아편전쟁은 역사책에만 있는게 아니라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엔이 마약퇴치를 위해 힘쓰고 있을뿐 아니라 마약왕국인 남미 콜롬비아는 수년전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마약조직 소탕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미국도 마약의 심각한 폐해를 우려,레이건 행정부때 마약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마약사범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최근에는 마약밀수 중계국에서 최종소비국으로 바뀌고 있다.통계로 봐도 93년 마약사범 적발이 3천명이었으나 94년엔 배가 넘는 6천7백여명.올해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연예인들의 고질적인 대마초·히로뽕 복용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요즘에는 농촌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대마초흡연의 42%가 청소년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순진하고 감수성 강한 농민과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고있는 것이다. 어제 올림픽공원에서는 서울신문사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공동 주최로 마약퇴치국민대회가 열렸다.마약퇴치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과 포스터 공모전도 열려 일반의 관심을 끌었다.「마약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참석자들의 열망이 뜨겁게 분출된 현장이었다.국민들이 외치는 마약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 영 기업들 한국진출 희망/시장자유화로 투자 매력

    【런던 AFP 연합】 영국 회사들은 한국을 주요 목표 시장으로 삼고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큰 1천3백70억 파운드(2천1백80억달러)규모의 한국시장에 진출할 것을 열망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30일 발표됐다. 영향력 있는 영국산업연합(CBI)의 이 보고는 한국이 금융·토지취득·지적재산보호·노동 분야 등에 걸친 2년간의 철저한 정부측 개혁노력으로 시장이 자유화되고 외부 투자가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경제체제가 이루어졌으며 수송과 서비스의 하부구조도 개선됐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는 한·영 양국이 작년에 22억파운드의 쌍방 거래실적을 올려 양국간의 무역수지가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하고 영국은 한국 제조업 투자가들에게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자대상이 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영국의 직접투자도 지난 89년의 5백20만파운드에서 94년에는 2천1백60만파운드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 이,팔인 토지몰수 유보/아랍권선 추가양보 노려 대이 공세강화

    【가자지구·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최근 이스라엘이 아랍권의 압력에 굴복,동예루살렘내 팔레스타인 토지몰수계획을 동결시킨 가운데 아랍국가들은 추가양보를 노린 대이스라엘 외교공세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므르 무사 이집트 외무장관은 23일 『이스라엘의 양보는 아랍권의 압력에 따른 결과』라고 평가하면서 『예루살렘과 평화정착과정에 있는 여타지역에 대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 국제적인 압력과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열망에 저항할 수 없을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토지몰수계획 동결에 고무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언젠가 이 지역이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 「니그로 예술」/손 끝에서 태어나는 생활공예품(아프리카 기행:9)

    ◎컵·의자·표주박·질그릇 등에 갖가지 문양/부족보호·번성 기원하는 주술적 혼 담겨/16세기 축조한 지저스요새는 박물관으로 변해 몸바사의 기구한 역사를 속속들이 증거하고 있는 명소는 포트 지저스라는 요새다.올드타운의 해안에 있는 이 요새는 1596년에 완성되었다.1824년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될 때까지 이 요새를 중심으로 벌어진 싸움은 거의 그칠 날이 없었다.1593년 포르투갈의 항해가였던 바스콘첼로스가 천연의 요새지를 우연히 발견한 이래 인공을 가해 건설한 것이 포트 지저스다.1875년 영국 함대가 몰려와 아랍인들을 몰아낼 때까지 280여년동안 격전장이 되었다.아랍·포르투갈·오만·영국을 비롯해서 마즈루·발루치와 같은 성주들까지 번갈아가며 요새를 빼앗고,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그때마다 요새주변은 풀 한포기 남지 않는 초토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요새의 해안을 지나는 해적선이나 상선들이 물과 양식을 구걸하다가 거절당하면 요새를 공격하고 해서 집중포화를 얻어맞았던 일도 여러번이었다.지저스요새는 강력한군사요충지로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마치 짓다만 건물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성벽의 두께는 2m가 훨씬 넘고 높이는 15m나 된다.이 성벽에 대고 먼저 대포를 쏜다는 것은 십자포화에 얻어 맞는 것을 자초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성벽 곳곳 총탄 흔적 1824년 이 요새에 영국 깃발을 꽂았던 해군의 리츠대위는 이 연안에서 더 이상은 노예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마즈루 성주에게 약속했다.그 약속의 대가로 마즈루는 영국인들의 주둔을 허용했었다.그러나 리츠대위에 의한 보호령 통치체제는 그 이듬해로 마감되고 말았다.그것은 그가 23세의 짧은 나이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1875년 회교부족국가의 왕이었던 술탄의 명령에 따라 이 요새를 지키고 있던 사령관이 술탄의 소환명령에 불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에 분노한 술탄은 영국 함대의 도움을 청한다.두시간에 걸친 영국 함대의 집중포화에 혼찌검이 난 사령관은 드디어 항복하게 된다.그후 1958년까지 이 요새는 감옥으로 개조되었다가 걸벤키언재단이 기증한 3만파운드를 들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고쳐 쓰고 있다.어떻든 지저스요새는 동아프리카 노예시장과 뗄래야 뗄수 없는 비정의 역사를 간직하였다.그래서 주변 열강들의 추악한 전쟁은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이다.군데군데 총탄자국이 뚜렷한 붉은 색깔의 성벽에는 그때의 참상과 흑인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는듯 하였다. 이곳 몸바사에는 케냐 관광조각상품의 60%의 수요를 감당하는 조각공장이 있다.아프리카인들에게 미술은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그 뿌리는 갖가지 장식적 문양을 새겨넣은 컵·표주박·의자·질그룻·빗·손칼·창 등의 공예품으로 손 끝에서 피어난다.또 잉태와 부족의 번성을 상징하는 주술적 인물상,적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의미를 가진 전사상,가죽제품같은 생활에 친숙한 물건들에도 일상적 예술성이 내포되어 있다.이런 조각작품들은 피상적인 묘사보다는 그속에 깃든 부족의 심성이나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 더 중요하다. 아프리카 조각과 함께 떠오르는 화가가 바로 피카소다.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있는사람은 없다.피카소는 시각적인 겉모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20세기 젊은 화가들의 열망을 풀어줄 예술의 열쇠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면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였다.아프리카 미술이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측면을 일컬어 「니그로의 예술은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피카소 미술에 영향 피카소는 말했다.『아프리카에서 온 가면들을 보는 순간,나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가면들은 다른 여느 조각들과 달랐다.그들은 마력을 지닌채 미지의 모든 것들과 대적한 채 서 있는 것같았다.나는 한동안 그것들을 주시하다가 깨달았다.나 또한 모든 곳과 대적하여 서 있다는것을.그리고 그 모든 것은 미지의 것이며 나는 그 미지의 것들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것을.여인들,어린이들,담배,놀이같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미지의 것이며 나의 적이었던 것이다』라고….아프리카 미술품에 표출된 모든 우주창조적 요소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 마치 환생이라도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났다.그래서 피카소의 이 말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제설명 일수도 있다.피카소는 일생동안 무수한 변화를 추구해 왔었지만 그 다양했던 변화과정 중에서도 아프리카 조각을 만났을 때처럼 그의 미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몸바사 중심부에 자리잡은 조각공장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였고 정돈된 것이라곤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시설도 원시적이었고 공장은 먼지투성이었다.그 속에서 한 사람이 나무토막 한개를 잡으면 완성품이 나올때까지 오직 칼과 끌,깎고 다듬고자 하는 나무토막,이외 한눈을 팔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한 사람 낙후된 시설을 헐뜯거나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그 공장에서 우리는 매우 싼값으로 몇가지 기념품들을 살수 있었다.관광 길목마다에는 관광조각품을 팔고 있는 점포가 즐비하고 점포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솜씨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하지만 어느 덧 그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미에 매혹되어 별 소용도 없을법한 목조기념품을 샀다. ○조각품 가게들 준비 하오에 호텔로 돌아왔을때 또다른 아프리카의 아픔과 서러움을 목격하였다.르완다에 주둔하고 있는 다국적 군인들이 몰려와서 호텔로비를 메우다시피 우글거렸다.그들은 르완다의 주둔지에서 군용기로 잠시 몸바사공항으로 날아와 이틀이나 사흘씩 피로를 풀고 다시 르완다로 돌아간다.그런가하면 호텔 야외에 있는 야자수 그늘에는 유럽에서 휴가온 사람들이 벤치 위에 누워 일광욕으로 하오를 즐기고 있다.바로 한빨짝 밖에서는 수십만의 르완다 난민들이 굶주린 배를 쓸어쥐고 시시각각으로 엄습하고 있는 죽음과 대치하고 있는데….두발짝 밖 몸바사의 고급호텔 야외로비에서는 이런 호사로움이 그들 유럽 관광객과 같은 입장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 미·소공동위 결렬 이후(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16)

    ◎미,한반도문제 유엔총회 상정/유엔 남북총선·한국임시위 설치 결의/소 「한국대표 불참」 이유 임시위 보이콧/남로당,북과 공조 유엔토의 반대 선동 미국은 제2차 미소공위가 정돈상태에 들어간 1947년 여름부터 회담자체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래서 팽창하는 공산주의 압력을 저지하기 위한 서구와의 협력문제,한국의 독립이 친미적 반공이념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등을 고려하게 되었다.특히 양극화 현상을 치닫는 동·서냉전의 구도속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유엔에 맡기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여기에는 당시 남한에 주둔한 2개사단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군사전략도 맞물려 있었다. 1947년 9월 17일 미국대표는 한국독립문제를 제2차 유엔총회의 의사일정에 포함시킬 것을 전격적으로 요청했다.이날 미 국무장관 G C 마셜은 총회의 연설에서 미국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넘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마셜의 연설요지는 미 소협상에 의한 한반도 문제해결은 전혀 전망이 없기 때문에 유엔에 상정한것이며 비록 미국이 의안을 제출했을 지라도 회원들의 공정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미 소의 무능으로 한국인이 열망하는 한국의 독립을 더이상 연기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덧붙였다(미국무성보·1947년). 소련 외상 그로미코는 한반도 문제의 총회 상정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이 문제는 전쟁과 연결된 사안으로 강대국들이 특별한 방법,다시 말하면 모스크바협정(3상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운영위원회는 미국의 의안을 12대 2로 가결한데 이어 총회도 이를 동의했다.총회의 제1위원회가 10월 28일 한반도문제 토의를 시작하기전 소련대표는 다른 안건을 내놓았다.그것은 한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기회를 주도록 1948년초까지 미·소의 군대를 한반도에서 철수하자는 내용이었다. 소련의 이같은 안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이무렵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의 조종을 받는 자신들의 대리기구인 정부형태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또 7월 제2차 미소공위에서 소련이 내놓았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정당 및 단체협의체 구성안과도 무관치 않은 것이다.소련은 제2차 미소공위에서 남한의 27개 정당을 우익계 및 중간계라는 이유로 배제시킨 극좌 우세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적이 있다(한국에서의 미군정 활동요약·1947년).소련의 이 제안은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어떻든 미국대표는 10월 17일 미국의 제안을 구체화한 결의안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미국의 안은 되도록 빠른시기에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하고 점령군이 철수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다시 말하면 점령국은 1948년 3월 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유엔위원단의 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 정부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유엔위원단은 국회 및 정부조직,점령군 철수에 관한 협정체결에도 협의할 수 있다는 위원단의 역할도 제시했다. ○소 별도 결의안 제출 소련은 역시 미국안에 맞서는 2개의 결의안을 별도로 유엔에 내놓았다.그 하나는 남북한에서 선출된대표들을 초청,한국문제 토의에 참가시키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주장한 한국정부 수립은 한국민에게 맡기자는 요지였다.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한국민의 대표로 하느냐는 벽에 부딪혔다.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국대표 참가는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자는 미국의 수정안에 밀려나고 말았다.총회의 제1위원회는 11월 14일 35대 6으로 미국의 수정안을 최종 채택했다. 소련이 내놓은 안건은 미국에 의해 모두 봉쇄된 셈이었다.그로미코는 「총회가 한국민 대표를 참석시키지 않고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한다면 소련은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이는 뒷날 소련과 소련이 전적으로 조정한 북한에 의해 실현되었다.유엔총회는 11월 14일 미국의 제안을 몇가지만 부분수정하고 최종적으로 채택했다.소련의 제안이 만약 수락되었을 경우 이미 기반을 닦은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남조선노동당을 주축으로 한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정부가 수립되었을지도 모른다.이는 미국이 우려한 부분이기도 하다. 유엔총회는 11월 14일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발의하였는데 대부분 미국이 주장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다.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치된 한국임시위원단은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중국,엘살바도르,인도,필리핀,시리아,우크라이나로 구성되었다.우크라이나는 대표파견을 거부,7개국이 참여했다.한국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감시의 임무가 부여되었다.선거는 늦어도 1948년 3월 31일까지 성년자 투표 및 비밀투표를 실시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 11월 14일 미국측 제안이 유엔총회에 최종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좌우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이승만은 미국이 남한에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자신에게 눈을 돌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남로당도 이른바 야산대라는 게릴라를 조직하고 경찰관서를 포함한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과격성을 띠었다.그리고 유엔에서 한국문제 토의를 끝까지 반대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강화했는데 이는 12월 중순부터 본격화되었다(극동사령부 정보철·1948년 2월). 남로당은 북로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세력과 공동전선을 펴는 지령을 받는다.서울신문이 입수한 한 자료에 따르면 남로당 요원의 북한파견은 아주 일찍부터 고정루트를 통해 이루어졌다(별도기사).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을 종합하면 1947년말 당시 남한에 있었던 중도좌파 인물 홍명희는 평양의 북로당위원장 김두봉과 수시 연락을 가진 것으로 되어있다.홍명희는 1948년 2월초까지 실제 비밀리에 평양에 몇차례 다녀왔다. 그리하여 19 48년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서울에 첫발을 밟은데 이어 1월 12일 첫 회의를 열었다.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한국에서 활동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로당 북한과 수시접촉 했었다/당수 허헌,북에 밀령 전달/요원 4명 배로 평양 밀파/원산서장에 “동행을” 사신 해방정국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킨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수시로 접촉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워싱턴에서 발굴됐다.1950년 미군이 평양에서 가져온 이른바 북한노획문서의 하나인 이 자료는 허헌이 함경남도 원산인민보안서장에게 보낸 소개장으로 4인의 공산당 요원을원산을 통해 평양에 밀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개장은 1946년 당시 남로당위원장 직책을 맡고있던 허헌이 그해 12월 친필로 작성한 것이다.그는 소개장에 허인(당시 31세)등 4명의 이름을 적고 허인이 자신의 조카임을 밝혔다.소개한 4명의 인물은 모두가 희생적으로 투쟁하는 간부들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들이 평양까지 무사히 가도록 동행등 모든 편의를 보아주도록 당부한 내용을 담았다.그리고 동선했다는 대목이 보여 이들은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원산에 상륙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양까지 가는 목적은 「모 용무」라고만 적어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그러나 중요한 임무를 띠고 밀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왜냐하면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서장의 동행을 요청했다는 점이 그것이다.특히 이무렵 남한의 공산당은 10월폭동과 같은 과격한 투쟁을 벌이다 지하로 숨어든 시기여서 다급한 밀령을 가지고 입북했을 가능성이 크다. 허헌은 1885년 함북 북청출신의 변호사로 일찍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1946년 11월 해방정국에서 개편한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 위원장을 맡았다가 월북,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비롯,김일성대학 총장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 등을 지냈다.1951년 8월 병사했는데 허정숙은 그의 딸이다. 이 자료를 검토한 북한문제연구소 김창순 소장은 『개성과 서해안,철원등을 통한 월북루트는 널리 알려졌지만 동해를 통한 해상루트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허헌 친필의 소개장 자체도 공산주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 기자) ▲김성호 ( 〃 〃 ) ▲김경운 (조사부 〃 )
  • 안익태(외언내언)

    일제때도 우리민족에겐 애국가가 있었다.그러나 그때의 애국가는 오늘의 애국가가 아니었다.가사는 지금 것과 같지만 곡은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으로 남의 것이었다.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24살의 청년 안익태가 커다란 첼로 하나만 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난 것은 1930년.당시 이곳에서 살던 교포 30여명이 이 청년음악도를 환영하는 모임을 갖고 슬프디 슬픈 남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합창했는데 이 때부터 이 청년은 장중하면서도 힘찬 우리의 애국가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의 애국가가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6년뒤인 1936년.그것이 대한민국의 애국가로 공식지정된 것은 정부가 수립되던해인 1948년.그러나 스페인의 한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던 안익태선생이 이 사실을 안 것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였다.한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라디오뉴스와 함께 울려퍼진 애국가가 바로 자신의 곡임을 알고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2백여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극동의 숨겨진 나라 코리아를 빛냈던 그는 1965년 9월16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생전에 고국에 돌아가기를 그렇게도 열망했던 안익태선생은 세상을 떠난지 12년만인 1977년 6월15일 이땅에 안장됐다.그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히던 날 시인 모윤숙은 이렇게 읊었다.「넋이여/들으소서/민족의 한목소리를/정든땅에 울려퍼지는 영원한 애국가를」 광복50돌과 안익태선생서거 30주기를 맞아 그의 애국열정과 음악세계를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펼쳐진다.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코리아환타지­4월의 대향연」과 14일 같은 곳에서 열리는 「안익태음악제」가 그것이다. 애국가에 담겨 있는 나라사랑의 뜻과 한 위대한 음악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오늘에 되새겨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 위장된 자원봉사 차단해야(사설)

    호별방문등을 통해 불법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시의회 의원 출마지망자가 선거법 위반사범으로 첫 구속됐다.우리 사회에서 아직 제도화 되지 않은 자원봉사제가 선거전에서 악용될 경우 선거 혼탁을 부채질하는 새로운 형태로 등장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사례다. 4대 지방선거를 3개월여 앞두고 선관위는 물론 검찰의 활동이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다.특히 이번 선거관리의 어려움이 예견되는 것은 15개 시·도지사,2백36곳의 시장·군수·구청장,5천1백70여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하루에 뽑는 선거 사상 첫 경험인 때문이다.후보자만도 2만5천여명에 달해 벌써부터 과열·타락과 불법적 선거운동 방식의 확산등이 우려되고 있다. 이미 각 정당도 선거체제에 돌입했고 후보윤곽이 드러나면서 선거전은 본격화 되어가고 있다.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드러나는 교묘한 방법의 사전선거 조짐은 정치와 선거풍토 개혁이라는 국민적 열망과 지방선거의 참뜻을 훼손하고 있어 경계심을 갖게 한다.출마 희망자들의 사조직을 통한 각종 홍보물 발행,불법 자원봉사자 모집등 이색 사전선거운동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선거의 법훼손에 가차없는 처벌을 다짐하고 있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주체가 자발적으로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을 경우 민주적 선거나 온전한 지방화 시대의 개막은 기대할 수 없다.특히 자원봉사를 빙자한 선거운동은 외국의 사례와는 다르게 유급 운동원을 늘리는등 역효과를 초래하고 호별방문등으로 선거를 더욱 혼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당국의 철저한 관리가 요청된다.잘못하면 법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선거비용은 더 들고 이를 적발해내기는 더 어렵게 된다.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유급운동원이 몇배씩 늘어 날때 선거의 혼탁과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부분이 잘 되도록 세밀히 살펴서 위장된 자원봉사는 초기부터 차단해야 한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최대한 줄이도록 정부와 선관위가 계도와 단속을 꾸준히 펴나가도록 권고 한다.
  • 교민 환영속 대EU 정상외교 시작/김대통령(김대통령 유럽순방여로)

    ◎벨기에 부총리 등 주요인사 공항 영접/이붕,김 대통령 이름새긴 돌도장 선물 김영삼 대통령은 12일 하오 코펜하겐의 사스 스칸디나비아 호텔에서 중국의 이붕총리와 한·중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끝으로 3일동안의 덴마크 방문일정을 마감했다. 김대통령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가 폐막된 이날 하오 코펜하겐을 떠나 유럽방문 마지막 나라인 벨기에의 브뤼셀에 안착,2박3일 동안의 벨기에및 유럽연합(EU)과의 정상외교 활동에 들어갔다. ▷브뤼셀 도착◁ ○…코펜하겐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 참가일정을 모두 마친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카스트룹 국제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마지막 순방국인 벨기에로 출발. 특별기는 1시간45분정도 비행끝에 이날 하오 4시40분(한국시간 13일 상오 0시40분)벨기에 멜스부르크공항에 도착. 김대통령은 2명의 트럼펫 나팔수의 환영곡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드바엔스트 벨기에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으며 트랩을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반름피부총리겸 예산장관의 인사를 받고 반갑게 악수. 이날 공항환영식에는 베르메렌주한벨기에대사와 스크레이 버스 왕실의전장,브라티니 EU집행위의전장과 드랑게 공항부대장 등이 영접인사로 나왔고 우리측에서는 주벨기에대사내외,주EC대사내외와 이종춘 한인회장 내외가 참석. 김 대통령은 이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바로 영빈관 숙소인 스타이벤베르그성으로 출발했으며 영빈관 정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교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박수를 받고 손을 흔들며 입장. ▷한·중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이붕 중국총리의 12일정상회담은 김대통령의 공식수행원들 숙소인 사스 스칸디나비아 호텔에서 이날 상오9시(한국시간 하오5시)부터 1시간동안 진행. 처음 회담장소는 김대통령이나 이총리의 숙소가 아닌 제3의 장소인 「로열 요트 클럽」으로 정해졌으나,중국측이 경호상의 이유등을 들어 우리측에 새 장소 선정을 요청,이 호텔 2층 아이슬랜드 룸으로 결정.이 방은 11일 김대통령이 스리랑카의 구마라퉁가 대통령과 회담한 곳. 김 대통령은 회담 초청자로 회담 시작 10분전에 이 방에 도착,유종하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최종 브리핑을받으며 대기. 이 총리는 호텔 현관에서 외무부 문동석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회담장에 도착,김 대통령과 반갑게 악수. 김 대통령과 이 총리는 지난해 3월 김대통령의 중국 방문및 지난해 10월 이 총리의 한국 방문에 이어 세번째로 대면. 김 대통령과 이 총리는 정해진 자리로 향하면서 먼저 이총리가 우리측 공로명 외무부장관 등 배석자들과 차례로 악수를 했고 이어 김대통령도 이 총리를 뒤따라 들어온 중국측 배석자들과 악수. 김 대통령과 이총리가 자리에 앉은 뒤 이총리는 김대통령에게 중국 특산 돌에 김대통령 이름을 새긴 도장 2개를 선물로 증정. 도장은 한글과 한자로 「김영삼」 「김영삼」이라고 음각한 것이었는데,이총리는 『글씨를 많이 쓰신다기에 준비했다』고 설명했고,김대통령도 『귀한 선물인데 앞으로 붓글씨를 쓸 때(낙관으로) 반드시 사용하겠다』고 화답. 이어 두 정상은 전날 있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관한 이야기와 이번 유엔회의를 계기로 각국 정상들이 개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등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 두 정상은 1시간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서로 만족스런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는데 김대통령은 문간에서 이총리와 악수를 했고 문의전장은 호텔 현관까지 따라 나와 이총리를 배웅. ◎각국 정상발언/지금도 인류 10억이상이 기아로 허덕/수하르토/「공통문제 논의」 회동만으로도 큰 의미/만델라/개도국을 밑빠진 독으로 간주 말아야/마하티르 ◇『우리가 회의하는 동안에도 지구상에서는 10억명 이상이 빈곤과 기아와 절망속에서 희망없는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갈 것이다』(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 ◇『세계지도자들은 20세기말인 바로 지금에서야 살상하는 방법보다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나라시마 라오 인도총리) ◇『사람이 지속적으로 빈곤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 때 무력충돌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 쉽다.국제분쟁은 무력 사용이나 협박에 의존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중국은 현재나 미래에도 헤게모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이붕 중국총리) ◇『우리가 세계를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지구시장이 되도록 방치할 것인지 자문하고 싶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사회적 진보는 자유가 지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경제원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회진보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헬무트 콜 독일총리) ◇『주요회의를 열고 또 열어서 고상한 범세계적 행동계획을 발표하지만 실행에 옮길 적절한 수단을 강구한 적은 없다.개발도상국은 더이상 밑빠진 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총리)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인 기대들이 좌절되면 충돌이 생겨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질서와 조화가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으며 풍요의 섬은 박탈의 바다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게 됐다』(파루크 아마드 칸 레가리 파키스탄대통령) ◇『지금 이 순간부터 어느 누구도 지구상에서 「나는 내 형제의 재산관리인인가요」라는 카인의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에두아르도 프레이 뤼즈 타글레 칠레대통령) ◇『부유한 나라들은 값싸게 물건을 사들이고 가난한 나라들은 비싼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어떤 제3세계의 문제들은 코펜하겐 선언문에 아예 들어 있지도 않다.미약한 내용의 코펜하겐 선언문에 모두가 서명할 것이고,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 ◇『아프리카를 잘도 이용해먹고 난 뒤 배가 부를대로 부를 때 선진국들은 아프리카를 향해 귀찮게 굴지 말라고 말한다』(오마르 봉고 가봉대통령) ◇『세계지도자들이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여 앉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성과가 없더라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모여 앉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25∼50% 해결하고 들어가는 셈이다』(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
  • 갈리 사무총장 유엔사회개발 정상회의 개막 연설(논단)

    ◎“빈곤 추방·고용 창출 새사회계약 맺자”/절대빈곤 13억… 15억은 의료혜택 못받아/투자늘려 실업해소… 사회통합의 지름길/가난의 희생자 70%가 여성… 불평등·차별 처결 나설때 유엔사회개발정상회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국제사회는 오늘날 세계에서 사회적 불평등,소외와 빈곤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창설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자문해야 한다.우리는 유엔헌장의 의무사항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왔으며,『모든 사람의 경제·사회적 진보』를 촉진시켜야 할 엄숙한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왔는가. 오늘날 세계경제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그 영향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개인간의 전통적인 유대를 갉아먹고 모든 국가와 지역을 주변화시켰다.빈부격차는 확대일로에 있다. ○빈부격차 확대 일로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는 집단적인 사회적 책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세계 각지의 국가와 남녀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범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사회계약이 요구된다.그것이 이번 세계정상회담의 초점이 돼야 한다. 유엔총회가 지난 92년 이 정상회담 개최를 주도적으로 요구했을 때 그 목적은 사회개발을 국제사회의 주요한 우선관심사로 추진하자는 것이었다.우리는 빈곤과의 싸움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사회적 소외및 분열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생산적 고용을 어떻게 창출해나갈 것인지,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어떻게 일깨울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코펜하겐 세계정상회담은 국제사회 자신과 그 미래,인간개인의 역할에 관해 국제사회가 시작한 심각한 반성과 논의의 과정중 일부분이다.국제사회는 리우환경정상회담·카이로인구회의 등을 통해 인간개인의 위치에 대해 심사숙고해왔다. 정의에 기초한 사회질서내에서만 인간개인이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사회개발은 말해준다.사회적 영역에서의 진보 없이는 진정한 경제발전이 불가능함도 일깨워준다. 기성모델이나 해답은 분명히 없다.그러나 내가 「우선적 목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우리가 정의를 내리는 일은 가능하다.그 목표는 기본적으로 세가지이며 여러분과 토의할 주제이기도 하다. ▲개인에게 사회보호를 제공하고 ▲사회통합을 지원하며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첫번째 목적은 사회에 소속된 개개인을 보호하는 일이다.사회개발촉진과 인권보호간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논의의 출발단계부터 유념해야 한다. 인권의 사회적 중요성은 48년의 보편적 인권선언에서 명백히 표현됐고,66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더욱 강조,재확인됐다. 현재 13억명이 절대빈곤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15억명이 가장 기본적인 의료보장혜택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기억돼야 한다.요즘 세계빈곤층의 70%이상이 여성이며,여성이 우선적으로 빈곤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과욕·무관심과 투쟁” 어느 곳에서나 사회적 불평등이 시정될 필요가 있는 반면 그러한 문제점이세계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강도와 규모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최종선언문 초안에 『대부분의 개발도상국,특히 아프리카와 후진국의 상황은 위험수위에 달했고 특별한 관심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고 적은 대목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제안하고 싶은 두번째 우선적 목표는 사회통합촉진이다.사회통합을 위한 첫단계는 과욕및 무관심과 싸우는 일이다.장소및 명분을 불문하고 모든 차별은 척결대상이다.인내심을 갖고 연대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사회내에서 제 위치를 찾는 방법을 배우도록 보장돼야 한다. ○가치의 보편성 확신 이와 같이 정상회담이 빈곤퇴치노력과 사회통합촉진및 생산적 고용확대간의 연계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요즘 고용은 사회통합에 필수적인 반면 실업은 사회적 불이익을 심화시키는 소외의 한 형태다.국가는 역동적인 사회정책을 펴야 할 주된 책임을 지닌다.사회개발은 전체범위,특히 입법부문에서 정치적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회개발은 개별국가의 책임만은 아니며 전체로서 유엔의 책임이다.어떤 유형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연대활동이 국제적 규모에서만 구체화될 수 있다.유엔체제는 사회진보를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다.유엔개발계획(UNDP)·국제노동기구(ILO) 같은 많은 기구가 이 분야를 주도해왔다.그러나 이 사회계획에서 우리는 비정부기구의 탁월한 동원능력과 사기업및 투자자에 의해 제안된 통합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모든 선의의 기관과 사람이 참여할 때 사회조화를 보장할 영구적인 통합을 성취할 수 있다. 사회조화확보는 세번째 목표다. 정치·사회문제간에는 분명히 상호작용이 있다.정치가 추구하는 목표중 하나가 사회적 열망을 현실화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정치환경이 조화로운 사회개발의 선결과제인 동시에,역동적인 사회환경이 정치안정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불평등과 특권이 횡행하고 만족할 만한 사회통합을 허용하지 않으며 다수의 소외를 방치하는 국가는 전례 없는 사회적 분출을 겪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개발촉진과 평화유지간에는 불가분의 연계성이 존재한다.민주주의는 평화와 개발간의 연결고리다.민주주의는 평화를 보장하며,민주주의 없는 영구적인 사회개발은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유엔의 최우선목표를 여러분께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을 위한 우리 행동의 밑바탕이 되는 가치의 보편성을 확신하기 때문이다.유엔사무총장으로서 차세대에 대한 집단적인 책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래서 여기서 채택될 중요한 권고안이 국가와 인간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도록 적절한 이행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유엔이 취하기를 바란다.우리가 여기서 재정의하고 재창출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사회행동에 세계은행 등도 전적으로 동참하길 기대한다. ○세계은행 동참 기대 우리가 논의할 사회개발계획은 국제사회가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생각과 ▲불평등과 ▲분열된 세계사회에 각각 반대한다는 의지를 전반적으로 밝히는 한 방법이다.사회문제를 보편적인 최우선관심사로 제기함에 있어서 우리 의도는 국제사회의 집단적 미래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이상적인 범세계적 유대관계를 새롭게 다짐하자는 것이다.
  • 하벨“한반도 군사분계선 반드시 붕괴”(김 대통령 유럽순방여로)

    ◎김 대통령,“양국 경협 급속 확대될것”/체코국민 자유화 열망,한국인 민주투쟁과 비슷/민주화 완성·한반도 통일 기원하며 석별의 건배 이틀동안의 체코공식방문일정을 모두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5일 하오(현지시간·한국시간 6일 상오) 유럽순방 세번째 나라인 독일의 수도 본에 도착,영빈관에서 현지교민들을 위해 리셉션을 베푸는 등 3박4일동안의 독일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체코를 떠나기에 앞서 프라하의 옛 시청을 방문한 데 이어 클라우스 총리와 회담을 갖고 오찬을 나누었으며 대통령궁에서 하벨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뒤 공식환송식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위하여” 건배 제의 ▷체코 총리 회담◁ ○…김 대통령은 전날 하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휴일인 이날 상오 클라우스 총리와 회담을 갖는 등 이틀동안의 짧은 방문일정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 총리별장인 크라마조바 빌라에서 열린 김 대통령과 클라우스 총리의 회담은 비록 30분동안 짧게 진행됐지만 두나라 사이의 현안에 대해밀도 있게 협의. 회담에서는 두나라의 경제·기술협력 기반 구축문제와 함께 북한의 최근 변화에 대해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었고 특히 클라우스 총리는 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출을 지지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김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클라우스 총리내외가 주최한 오찬에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참석,1시간30분동안 오찬을 들며 배석한 두나라의 경제·외무 관련각료들에게 회담결과를 설명. 클라우스 총리는 『김 대통령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고 김 대통령도 『한·체코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 김 대통령은 『두나라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경제인들의 활기찬 기업활동을 감안할 때 양국간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 ▷프라하 옛시청 방문◁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프라하의 옛 시청을 방문,방명록에 서명하고 청사 내부를 시찰. 마침 일요일을 맞아 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 5백여명의 환영을 받으며 이곳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정문까지영접나온 얀 코칼 시장에게 『안녕하십니까.매우 아름다운 도시입니다』라고 인사. 이어 4층 접견실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코칼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두 나라가 지금까지는 주로 경제적인 분야에서만 협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문화·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제의. 코칼 시장은 또 『프라하 시민들은 한국의 LG 삼성 현대 등의 이름과 상품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질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더 많은 기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들 기업의 진출도 희망한다』고 역설. 코칼 시장은 프라하시와 서울시 사이의 실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시장을 초청하고 싶다면서 이를 서울시장에게 꼭 전달해 달라고 요청. 김 대통령은 답사에서 『체코 민주화를 묵묵히 지켜보아온 유서깊은 옛 시청이 앞으로 체코 번영을 이끌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살찌워 나가는 터전이 되리라 믿는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또 코칼 시장이 제의한 서울시장 초청에 대해 『두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상호협력에도움이 될 것』이라며 초청의사를 반드시 전달하겠다고 약속. 김 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서명했고 코칼 시장은 김 대통령에게 우호와 신뢰의 상징인 「프라하시 열쇠」를 증정. 김 대통령은 이어 수행원들과 함께 옛 청사 내부를 살펴본 뒤 『프라하시와 시민 여러분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는 안부인사와 함께 청사방문을 마감. ○손 여사에 화환 증정 ▷체코 환송식◁ ○…김 대통령과 하벨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뒤 서재로 자리를 옮겨 10분 남짓 환담을 나누며 1박2일동안의 짧은 일정에 아쉬움을 표시.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대통령궁 제1궁정에서 열린 공식환송식에 참석,체코방문 공식일정을 종료. 두나라 국가가 연주된 뒤 김대통령은 하벨대통령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하고 악수로 작별인사를 나눴으며 하벨 대통령은 손명순여사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환송인사. ○양국일행 80명 참석 ▷체코 대통령 만찬◁ ○…하벨 대통령이 김대통령 일행을 위해 4일 저녁 대통령궁에 마련한 국빈환영만찬장에는 한국측에서 30여명,체코측에서 50여명등 모두 80여명이 참석. 두 정상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헤드테이블에 착석,민주주의의 완성과 한반도통일을 기원하며 각각 건배를 제의. 하벨 대통령은 『민주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민주체코를 방문했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를 부여한다』고 말하고 『체코가 한국기업인들의 중부유럽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은 체코와 아·태지역간의 협력을 도와 달라』고 주문. ◎김 대통령 오찬 건배사 나는 클라우스 총리께서 우리 내외와 일행을 이렇게 환대해 주시고 우의에 찬 말씀을 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 귀국의 민주화와 경제개혁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나는 「벨벳혁명」이래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고 중부유럽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고자 노력하고 계시는 각하와 체코 국민에게 심심한 경의와 성원을 보내는 바입니다. 한국과 체코 두 나라는 지난 90년 3월 수교한 이래 꾸준한 관계발전을이룩해 왔습니다. 특히 무역면에 있어 지난해 교역규모는 1억3천만달러를 기록하여 93년에 비해 약 70% 정도의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두 나라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경제인들의 활기찬 기업활동을 감안할 때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나는 격변하는 국제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다방면에 걸쳐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난해 10월 총리 각하의 한국 방문이 두 나라 사이에 긴밀한 협력시대를 여는 전기가 되었음은 물론 중부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가교를 건설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나의 이번 귀국 방문이 그런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클라우스 총리 내외분의 건강과 체코 공화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그리고 한국과 체코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건배할 것을 제의합니다.
  • 김 대통령/불 대혁명사상 문민한국서 만개(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OECD 총장엔 “국제적 기여 확대” 약속/오찬에 불 기업인 2백명… 대한투자 관심 김영삼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이틀째인 3일(이하 현지시간)현지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을 수여받고 파리시청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한·불 경영인들과 오찬을 나누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사무총장 일행을 접견했고 현지교민들과의 리셉션에 참석한 뒤 공식수행원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문민정부의 밑거름 ▷소르본 대학◁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취득.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 도착,푸수 총장과 투봉 문화장관 등의 영접을 받은뒤 학위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약 1시간동안 진행된 학위수여식에 참석. 파리대학학구 교육총감인 장드로 마살루여사는 학위수여 이유로 김대통령의 지적 자주성,국가에 대한 봉사,공명정대한 정신,대화와 교류에 대한 믿음등의 덕목을 열거. 푸수 총장은 학위수여연설에서『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권위주의적 사고에 대한 저항을 대표해 왔으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이끌고 정치현실에서 이를 실천해 왔다』고 소개. 푸수총장은 이어 『서울대를 졸업하고 두해 뒤에 한국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 국회의원,4번의 야당총재를 기록한 김대통령은 바로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였다』고 설명하고 『김대통령은 철학도들의 이상국가실현을 몸소 구현하고 있으며 우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최초의 국가원수』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학위수락연설을 통해 『지난 68년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울려퍼진 자유의 목소리가 우리에게도 큰 힘을 주었으며 나 자신도 오랜 투쟁끝에 마침내 정통성있는 민주정부를 세웠다』면서 프랑스의 자유정신이 문민정부출범에 하나의 밑거름이 됐음을 강조.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프랑스 상원 뒷 정원인 룩생부르그공원에서 조깅을 마치고 개선문 무명용사묘로 가 헌화한뒤 재향군인회 회장단 및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교환. ○환경·교통 협력 제시 ▷파리시청◁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파리시청에 도착,공식 환영행사에 참석. 자크 시락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제 서울과 부산간 TGV건설을 계기로 프랑스의 또다른 면모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에 있으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한민족이 열망하는 통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파리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었고 파리에서 싹튼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문민정부출범과 더불어 만개하고 있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특히 『한·프랑스 두나라사이의 우의와 협력증진에 발맞추어 양국 수도간에도 우호협력관계가 발전하고 있음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문화말고도 파리와 서울사이에는 상호협력할 분야가 많다』면서 그 예로 환경 및 교통문제를 제시. ○지원정책 질문 쇄도 ▷오찬◁ ○…김 대통령은 이날 낮 파리시내 파비용 가브리엘에서 열린 프랑스경영인연합회 주최 오찬에 참석,『한국정부는 프랑스기업의 한국진출을 비롯,한국기업과의 협력,그리고 제3국 공동진출을 원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강조. 김 대통령은 또 『프랑스기업이 에너지 통신 우주항공 환경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보다 적극적인 산업·기술협력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부연. 이날 오찬모임에는 장쿠르 갈리냐니 한·프랑스경영자협회장을 비롯한 2백여명의 프랑스측 기업인이 참석했으며 우리측에서는 최종현전경련회장과 김석원한·불경협위원장등 프랑스투자기업인 35명이 참석. 김 대통령이 오찬에 참석하는 동안 부인 손명순여사는 미테랑 대통령부인 다니엘여사와 오찬을 나눈 뒤 루블박물관을 관람. ○한국가입 지원 약속 ▷OECD총장 면담◁ ○…오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영빈관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날 하오5시 장 클로드 페이유 OECD사무총장의 방문을 받고 30분 남짓 면담. 김 대통령은 먼저 『한국이 이제 교역량으로 세계 12위에 이르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기여를 하기 위해 OECD에 가입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 회원국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 이에 페이유 총장은 이미 실무차원의 교섭을 통해 우리나라의 가입이 기정사실화된 듯 『한국의 OECD가입을 환영한다』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특파원 조찬◁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을 겸해 간담회를 갖고 한불문제와 통일관등에 대해 설명. 김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은 생각보다 상당히 건강하더라』고 전날 미테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소감을 밝히고 『미테랑 대통령은 실무자선에서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문서 반환문제에 대통령선거 이후에도 연속성을 갖고 틀림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소개. 『그들이 생존전략상 가상적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 김 대통령은 이어 유학생들의 독립된 기숙사를 파리에 세워 유럽문화의 거점으로 만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인 반응.
  • 한­EU「포괄협력의 지평」열다/김 대통령·미테랑 정상회담 성과

    ◎통상상대 넘어 정치·문화 동반자 격상/대유럽 다각접근 길 터 수출확대 기대 2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는 「주식회사 한국」의 유럽본부가 본격적으로 가동됐음을 뜻한다. 프랑스는 세계최대의 시장인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이다.이날 회담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두나라의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관계향상 조치는 물론 한국과 EU의 관계를 강화시키기 위한 의지의 상징으로 「한국과 유럽연합 의장국 사이의 공동성명」이 채택됐다.비교적 단순한 교역대상이던 유럽을 보다 폭넓은 포괄적인 협력대상으로 격상시킬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기업경영의 시각에서 본다면 소규모의 해외지점 체제가 생산·기술협력·금융·수출입을 총괄하는 대규모 지역본사 체제로 승격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두 대통령이 채택한 공동성명에 대해 정부당국자들은 『EU와의 관계발전을 위한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EU와의 관계강화는 수출증대와 투자확대,선진기술도입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우리정부는 이번 김 대통령의 순방을 준비하면서 그목표를 EU를 단순한 교역대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포괄적 동반자의 관계로 격상시키는데 두었었다.이 공동성명은 상호관계의 강화와 함께 통상·협력에 관한 기본협력협정및 정치적 대화를 심화하기 위한 교섭을 곧 개시하고 조속한 시일 안에 이를 완료한다고 선언하고 있다.이같은 공동성명의 내용은 이번 유럽순방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상당부분 달성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EU가 역외권 국가,특히 한국등에 대해 높은 반덤핑 규제조치 등으로 상품의 시장진입을 규제해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그런 반면 EU는 아시아와의 관계강화를 희망하는 측면도 있다.우리는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시장진입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고 EU는 의장국 대통령을 통해 아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한 셈이다.아시아권에서의 우리의 위상강화가 이러한 거래를 가능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두나라 대통령은 거의 모든 국제현안과 양국현안에 대해 언급하고 의견의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프랑스는 우리의 유엔 안보리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다.외교현안에 대해 유럽연합과 불어권 제3세계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프랑스의 지지를 확보한 것은 이들 현안의 추진에 있어 국제적 지지기반을 크게 강화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지리적 여건 등으로 잦은 정상회담이 어려운 점을 감안,고위간부급 정책협의회를 활성화하기로 한 점이나 학술·문화·예술등 다방면에 걸쳐 유대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것에 인식을 같이한 점 등이 이같은 외교단계 향상의 증거가 아닌가 보여진다. 김 대통령은 우리의 프랑스에 대한 무역적자가 8억달러(94년)에 이르는 점을 들어 비관세장벽의 완화를 요청했고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유념하여 가능한한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또 고속전철 사업에 따른 기술이전의 순조로운 이행과 상사주재원들의 귀국시 이미 납부한 사회보장세 환불검토를 요청해 각각 「긴밀한 협의」와 「구체적 방안 모색」에 합의했다. 김 대통령의 정면돌파식 외교스타일은 이번 엘리제궁 회담에서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요청」으로 다시 선보였다.미테랑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프랑스의 「국론」에 따라 실현되지 않고 있는 사항이다. 프랑스와 우리 실무진들은 이를 정상회담 테이블에 다시 올려봐야 소득이 있기 어렵다고 판단,의제에서 제외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의 교환전시를 위한 협정본문 교섭이 완료단계에 도달했음에도 교환대상 도서의 선정을 위한 실무협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미테랑의 독려를 요청하는 「기록」을 남겼다.미테랑측의 답변은 「최선의 노력」으로 끝났지만 계속 현안으로 남아있을 이문제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향후 협상에 중요한 동력원이 될 것이다. ◎한­EU의장국 공동성명 ▲김영삼 대통령의 공식방문을 계기로 유럽연합이사회 의장국(프랑스)은: ­특히 경제와 통상분야를 포함하여 이미 이루어진 관계발전에 유념하고, ­또 국제무대에서의 양 당사자 비중이 증대되고 있음을 유념하여 정치 경제 기술 문화분야에서 양자간의 상호관계를 강화하고 심화시키기 위한 결의를 표명한다. ▲양 당사자는 공동의 가치와 열망에 고취되어: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에 대한 공동의 집념과 국제연합헌장에 따라 평화를 보존하고 정의롭고 안정된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공약에 역점을 두며, ­보다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관련된 제반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하고, ­상호이해를 더욱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의견교환을 추진하며, ­상호이해를 발전시키고 협력을 증진하며 특히 군축과 비확산·대테러활동·마약거래와 자금세탁·기타 국제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등 제반 국제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러한 목표하에서 양 당사자는 지속적인 유대관계와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통상과 협력에 관한 기본협력협정과 또한 정치적 대화를 심화하기 위한 공동선언의 교섭을 곧 개시함에 만족을 표시하고 이 교섭을 최대한 조속히 완료한다는 결의를 다짐한다. ◎엘리제궁 만찬답사 요지 30여년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나로서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요람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합니다. 미테랑 대통령각하께서는 14년이라는 오랜 기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눈부신 업적을 쌓으셨습니다.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건설,루브르 박물관 확장,제2의 개선문 건립 등 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사업들을 이룩하신데 대해 한국 국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국제무대에서도 각하께서 유럽통합의 역사적 흐름을 주도,이제 국경없는 유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민과 한국 국민간의 우의와 협력은 지난 1백여년동안 여러 형태로 발전돼 왔습니다.최근 한·불 양국은 국제정치 무대와 양자간 실질협력에서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켰습니다.이제 최첨단의 프랑스 고속전철이 멀지않아 한국의 평야를 질주하게 되는 것처럼 두 나라 사이의 모든 협력도 빠르고 안전하게 진전될 것입니다. WTO 체제의 출범으로 세계 모든 나라는 개방화시대에 적극 참여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우리나라는 이러한 세계질서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개방과 국제사회에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 있습니다.한·불 두 나라는 각각 APEC와 EU의 중심국가로서 두 지역간의 상호의존성과 보완성을 살려 인류공영을 위한 유라시아 차원의 협력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설득해 왔습니다.우리는 북한의 경수로 건설사업 뿐 아니라 북한과의 무역과 경제협력에도 적극적 자세로 임할 것입니다.프랑스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줄 것을 믿으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동반자로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 지방화시대 리더(신 지도자론:13·끝)

    ◎재정자립 다질 「경영마인드」있어야/「협력하는 자치」해야 중앙­지방 공영/지역개발에 정경자원 최대한 동원을/분권 극대화… 국가에너지 결집시키는 지혜 긴요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시의 로버트 스튜어드 시장은 「세일즈 시장」으로 통한다.그는 13년전 취임한 이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세계로 뛰었다.아시아 독일 영국을 가릴 것 없이 상공회의소를 찾아가고 사업가를 만나 컬럼버스시에 투자하라고 설득했다. 그 결과 컬럼버스시는 모두 10억달러의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5천6백명의 시민이 일자리를 새로 얻은 것이다.민선시장의 힘이었다.지방자치제가 가져다 준 활력이었다. 그 지방자치제가 우리에게도 바짝 다가와 있다.사실 「지방자치」라는 단어는 1961년 군사쿠데타와 함께 입에 올리기조차 터부시되어 왔다.그러나 이제 그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절체절명의 명제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국민의 지방자치에 대한 열망은 단체장 선거를 불과 다섯달 남짓 남겨둔 지금 절정에 달해 있는 느낌이다.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과의 관계,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와의 관계로 구분된다.이들 관계의 적절한 설정이 지방자치의 성패를 결정한다. 지역주민들의 복지증진과 지역경제의 발전이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면,지방의 자율성 확보와 중앙정부와의 원활한 협력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향상은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나온다.지방화 시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가치들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이제까지 지도자들과 다른 자질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방화 시대의 중심적 행동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먼저 지역특성을 고려하여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주민들에게 제시하고 이들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여기에 지방관료를 장악하는 능력,지역내 주민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능력,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자원을 동원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또 지방화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을 중앙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중앙정부와 동반자의 위치를 다지는 정치적 협상력이 있어야 한다.이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경영개념의 도입을 통해 행정능률을 향상시키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업가적 능력이 요구된다. 미국 버지니아주 햄프턴시는 자치단체장의 「경영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햄프턴시는 지난 84년 경영전문가인 보브 오닐씨를 「시티 매니저」로 채용했다.햄프턴시는 그가 제시하는대로 인사 및 보수 양면에서 철저히 실적주의를 채택,경영혁신을 시도했다.그 결과 햄프턴시는 93년 3백5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는 건실한 자치단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지방화 시대를 희망적으로 보게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경상북도가 지역생산품의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상공인들과 세운 주식회사 경북통상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해 9월 설립된 경북통상은 불과 두달만에 1백30만달러 어치의 각종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출했다.올해 수출목표는 3천만달러이다.경북통상은 올해 5차례에 걸쳐 미국 일본등에 시장개척단을 보내고 서울과 대구등에 수출유망특산물 전시판매장도 세운다는 계획이다. 경북통상은 도지사 관사를 사무실로 쓴다.도지사는 대신 아파트를 구해 나갔다. 그러나 이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의 노력도 한계가 있으며,중앙정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중앙정부는 행정적 및 재정적 지원을 통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복지향상과 지역발전에 공헌할 수 있고,지방이 자율성을 확보하는데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정부의 지도자들이 지방화 시대에 중요한 지도자로 부각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따라서 지방화 시대를 맞은 중앙정부의 지도자에게도 새로운 자질이 요구된다.중앙정부 지도자들은 우선 지방분권적인 시각을 지녀야 하며,지방자치를 추진하고 정착시키는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지방분권작업을 방해하는 정치적 및 관료주의적 이기주의는 절름발이 지방자치를 초래할 수 있다.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집단은 이들 뿐이다. 이와 함께 중앙지도자들에게는 지방의 분산적 에너지를 하나로 통합하고 결집함으로써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일관성있는 정책수행을 위하여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고 유도하며,지역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오는 6월27일 선거와 함께 지방자치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이 실험의 성공여부는 어떠한 사람들이 지방화 시대의 지도자들로 선택될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이 실험의 결과는 또 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가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결정한다.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갈등공화국,파산공화국으로 전락하여 단기적인 국가경쟁력의 상실은 물론 장기적인 국민의식의 후퇴마저도 가져올 수 있다.대단히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미 군정 3년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7)

    ◎일 관리 47년 8월까지 행정 참여/초기 미군정요원 배치안해 정책 혼선/친일파 중용… 「부일배경찰」 85% 넘어/소 의식한 본국반대불구,「한국군」 창설추진은 성과 한국의 미군군정은 미 제6·7·40사단으로 구성된 제24군단의 38도선 이남 점령임무 수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일본 민간인의 본국귀환,법과 질서유지,미국의 정책 속에서 정부역할 수행이 당초의 주임무였다.미군정은 1945년 9월12일 주한미군 본부 내에 독립된 사령부 성격을 띠고 「주한미군정」(USAMGOK)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진주한 제24군단 병력 가운데는 군정을 수행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군정부대는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10월21일 인천에 내렸다.그것도 한국점령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주요지역 통치를 위해 훈련받은 요원들이었다.그 병력은 4개 전술보조부대와 캘리포니아 몬테리에서 민정훈련을 받은 20개 중대로 충원되었다.그들은 먼 항해 끝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사실을 인천상륙 1주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의 군정은 전술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점령지역을 통치하는 과정에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되었다.지방이 특히 심했다.서울에서는 인공 산하의 치안대 활동이 멈추었으나,일부 지방에서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들을 체포할 정도였다.이 가운데는 행방불명이 된 미군도 있다.전남의 경우 제40사단과 교체한 제6사단 20보병연대는 인민위원회를 반대하면서 치안대를 공공건물로부터 몰아내는 등의 강공책을 썼다. 미군정의 군정장관으로 육군소장 A V 아놀드가 임명되었다.지난날 총독이 행사한 권한을 손에 쥔 군정장관은 전술부대에 소속하지 않은 모든 군정요원을 지휘했다.군정장·차관 밑에 총독부 정무총감 위치와 비슷한 민정장관을 두었는데,그 자리는 B B 프레스코 대령이 맡았다.그리고 8개의 부와 9개의 국을 설치했다.이들 기구는 1946년 5월10일 확정한 새 편제에 따라 11개위 부,4개의 처,86개의 국으로 개편되기까지 존속했다. 「주한미군정청」(USAMGIK)이라는 공식명칭은 1946년 1월4일부터 사용되었다.처음의 「주한미군정」의 약어 「USAMGOK」의 끝자리 3자 GOK가 조롱하는 말 GOOK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한달이 모자라는 3년 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면 미군정의 정책은 어떤 것이었으며,한국에 남긴 군정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에 적은 표현을 빌리면 「점령당국(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마치 모래수렁 같았고 점령당국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술한 그는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성채를 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워싱턴뜻과 배치 미군정은 초기의 정책을 수정,선회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에따라 1945년 11월 무렵에 수립된 새로운 정책은 크게 네가지를 목표로 했다.그것은 앞으로 탄생할 한국정부를 고려하면서 보수진영과의 제휴,경찰력 강화,군대의 창설,좌익의 탄압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들 정책은 워싱턴 고위층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그러나 군정에 파견한 국무성 관리들이 이 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군출신 두각 한국군 창설과 경찰력 강화 등 미군정의 새로운 정책은 남한 통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미군정은 1945년 11월13일 국방경비대,육군부와 해군부를 통괄하는 군사국을 설치했다.J R 하지는 점령 초기부터 한국군 창설문제에 관심이 있었다.소련을 의식한 워싱턴 고위국으로부터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겼다.1946년 6월 국방경비대는 통위부로,군사국은 조선경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군조직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군정은 1945년 12월초에 60명의 장교를 선발,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켰다.이들은 당시 국방경비대 고문 이형근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었다.이가운데 40명은 일본군 출신이고 광복군 출신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 출신들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 국군 창건 이후에도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광복군 출신들은 저만큼 뒤쳐져 있었다. 경비대에게는 내부소요 진압임무가 돌아갔다.1946년 후반기가 저물면서는 파업,폭동과 더불어 몇몇 경찰서가 불타는 등 소요가 잇따랐고 좌익좌파 3당은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1947년 9월에는 좌익검거 선풍이 불었다.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남로당과 민애청등의 지하 좌익세력들이 10월15일부터 한라산에 입산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비대는 폭 넓은 소요를 진압하는 두가지 무기의 하나로 평가되었다.다른 무기는 국립경찰이었다.군정은 1945년 9월17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경무국을 인수받았다.경찰을 헌병사령관 L E 쉬크 준장의 통제 하에 두었는데 일본인 경찰관들에게까지 「USMG」라는 군정 완장을 지급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특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제서야 일본인 경찰관들의 자리를 한국인들로 메꾸었다. 헌병사령관 밑에 있던 경찰은 11월30일부터 국방군 사령관이 지휘했다.그리고 해방이 되던해 10월 워싱턴 3성조정위원회로부터 한국 경찰 내의 친일파와 미움을 사는 기구를제거하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하지만 경찰의 볼썽 사나운 관행은 계속되었다.군정청이 피의자에 대한 폭행 금지명령을 내리자 대신 소방관을 시켜 폭행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1946년 4월 소방서가 경찰과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동료였던 터라 그런 부탁쯤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해방된 이 땅의 경찰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일제에 강한 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다시 썼기 때문에 부일배 경찰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나 되었다.1945년 10월 당시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간부의 53%,하위직 25%가 일본경찰 출신임을 시인했다고 한다.A W 그린이 「경찰의 오만 무례는 끝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경찰의 일제 잔재청산은 요원했는지 모른다. 일본인 관리들도 상당 기간동안 군정에 참여했다.1945년 12월 군정청에 지방행정과가 생겼을 당시 일본인이 감독책임을 맡고 있었다.1947년 8월15일까지도 일본인들이 군정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미 대통령 특사인 육군 중장 A C 웨드마이어가 작성한 「한국의 정치·군사 상황보고서」가 그것이다.이 보고서는대일 전승기념일(V J­DAY)이후 북한지역 5백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일본인 관리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청산 장애로 웨드마이어 보고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한국에서는 과거 7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든 경제요소는 물론 기술계층까지를 지배했다.그래서 지금 부산역장을 지냈던 한국인이 철도청장이 되고,직업학교 출신이 큰 수력발전소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일반 관료직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승계되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사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한국 점령기간 내내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자손을 출산하기 보다는 일본인 임신에 산파 역할 만을 해왔다」고….이는 군정의 유산으로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요소로 작용했다. “영어 아는 보수적 인사 많이 썼다”/군정고문 2인의 전문·보고서 발굴/“「일서 완전 해방」 한국인 열망 외면”/미학자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포함한 보수인사들을 그토록 많이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이에대한 해명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찾아낸 W R 랭던의 「국무성장관에게 보내는 전문」(1945년 11월26일)에 잘 나타나 있다. 랭던은 당시 미 국무성이 한국에 파견한 하지장군의 정치고문.그가 작성한 전문 보고서는 「초기에 보수적 인사들을 많이 뽑아썼다」고 시인하면서 「생면부지의 대중 가운데 누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보고서는 「고위직을 보수인사에서 고른 까닭은 한국인들이 사치스러워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역시 NARA에서 입수한 미군정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1945년 10월10일)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랭던의 전문보다 앞선 이 보고서는 다만 당시의 한국적 상황을 「한국인들은 친일파를 일본인보다 더 증오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보수주의자들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했지만,이런 낙인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고 「많은보수주의자들의 존재는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대해 미 미들버리대 C L 호그 교수는 「한국분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남한의 초기 통치과정에서 일본인 관리들과 일제의 경찰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은 정복자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무감각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정부와 경찰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히 훈련된 요원들을 일본에만 보낸 워싱턴과 최고사령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새로운 정치를 향한 새출발/세계화 민자당/김영삼 총재 연설 전문

    ◎정치부패·타락공천·금권선거 영원히 추방/정치가 더이상 비난과 냉소의 대상돼선 안돼/세계화로 선진과 통일의 신한국 창조해 내야/1백년전의 「실패한 역사」 되풀이 말라 우리는 지금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광복 반세기라는 민족사의 고비에서,선진과 통일의 신한국을 창조하는 주역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여러분과 나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땅에 문민민주주의를 실현하고,변화와 개혁을 주도한 우리 당이 이제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이 역사적인 전당대회가 있기까지 전국의 당원 동지 여러분이 보여주신 열과 성에 뜨거운 치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나를 민주자유당의 총재로 다시 선출해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 당의 앞날에 애정어린 기대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오늘의 세계는 근원적인 변혁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화」,「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새로운문명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WTO체제 출범으로 무한경쟁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겨루어 오직 일류만이 살아남는 무서운 현실이 닥쳐온 것 입니다. 세계속에서 경쟁하고 세계와 더불어 협력하는 것은 이미 역사의 큰 흐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여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나라마다 개혁의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1백년전 우리 겨레가 실패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역사의 대세를 따라 우리도 뛰어야 합니다. 올해로 우리는 광복 50주년을 맞습니다. 이 뜻깊은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반세기로 전진해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가난의 유산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구어 냈습니다. 분단의 제약으로 파란 많은 헌정사가 이어졌지만 끝내 문민민주주의를 꽃피웠습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룸으로써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세웠습니다. 이제는 「세계화」로 민족의 기나긴 소망을 실현할 때 입니다. 선진과 통일의 신한국,「21세기 일류국가」를 창조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당당히 나아갈 때 입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세계화의 든든한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문민민주주의가 가져온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의 활력과 창의가 넘치고 있습니다. 날로 커가는 우리의 경제력 또한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1백년전과는 달리 우리는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 입니다. ▷새로운 정치◁ 지금 나라의 모든 부문이 세계화를 위한 개혁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 전체가 혁명적인 수술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동안 정당과 정치인에게 쏟아졌던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의 비난과 냉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정치인도 국제경쟁을 하는 시대입니다. 「정치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우리의 정치가 세계수준으로 뛰어오르고 세계화를 앞서 이끄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정치」가 펼쳐져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깨끗한 정치」입니다. 정치부패,타락공천,금권선거라는 말은 이제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지난 2년간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정당법,정치자금법,통합선거법 등 정치개혁에 필요한 입법조치들도 단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온 국민이 열망하는 도덕의 정치,청렴의 정치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어떠한 대가와 희생이 있더라도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로 치루어 선거혁명을 반드시 이룩할 것 입니다. 「새로운 정치」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입니다. 국민을 지역과 계층으로,세대와 이념으로 나누어 반목케 하는 것은 낡은 정치입니다. 특히 지역을 볼모로 삼아 국민을 분열케하는 정치는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도,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국민이 하나되게 하는 크고멋진 정치가 나올 때 입니다. 「새로운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국리민복에 헌신하는 정치입니다.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며 오직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을 대변해야 합니다. 정치의 본령은 권력의 추구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에 봉사함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쟁으로 민생을 소홀히 하고 국익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정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으로 겨루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미래지향의 정치입니다. 과거에 매달리어 분열하고 소모할 것이 아니라 화합속에 미래로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쟁력있는 정치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미리 내다보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앞장서 개척해 나가는 비전과 통찰력있는 정치가 펼쳐져야 할 때입니다. 이제 「새로운 정치」는 역사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야 할 사명은 우리 당에 있습니다. ▷당의 세계화◁ 우리당은 이제 「세계화」의 새로운 과업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당의 세계화」로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야 합니다. 세계 속에서 선진국들의 정당과 당당히 겨루며 새로운 시대를 주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당은 변화와 개혁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겉만이 아니라 속까지도 철저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당헌과 정강정책을 새로이 하고 기구와 진용을 개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세와 각오,인식과 발상… 그 모든 것에 일대 전환을 이룹시다. 이와 아울러 우리 당은 안정의 구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나라의 안정이 튼튼하게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세계화는 개혁과 안정의 두 바퀴로 전진하는 수레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과 안정을 함께 이끌 우리 당은 무엇보다 진정한 「국민정당」으로 뿌리내려야 합니다. 정당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진실로 국민의 동반자가 되어,국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품 속에서 커 나가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국민의 꿈과 희망은 물론 고통과 좌절까지도 함께하는 정당이 됩시다.둘째로,「민주정당」의 수범을 보여야 합니다.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당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공직후보와 주요 당직의 자유경선을 목표로 하여,경선제도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아울러 당 운영에 참여의 폭을 크게 넓혀 당에 활력이 넘치게 할 것입니다.나아가,당원 전체가 당을 이끄는 시대를 열어 우리당에 신바람이 일게 합시다. 셋째로,「정책정당」의 면모를 더욱 드높여야 합니다.우리 당은 국민에게 보다 나은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산층의 안정을 도모하고 중산층을 확충하는 정책개발에 진력할 것입니다.그리하여 우리 당이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키우는데 있어 세계에서 으뜸가는 정당이 되게 합시다. 넷째로,「차세대 정당」으로 변모해야 합니다.「세계화」는 원대한 비전과 탁월한 역량을 갖춘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우리 당은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미래지향적 정당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우리는 각계의 전문가들과 21세기의 주역들에게 문호를 확짝 개방할 것입니다.우리 당을 유능하고 참신한 차세대 지도자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요람으로 만듭시다. 다섯째로,「통일주도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분단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민족사의 뜻깊은 시점을 맞아 이제 남과 북은 반세기에 걸쳐 반목과 대결로 얼룩진 분단시대를 청산해야 합니다.화해와 협력으로 평화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우리 당은 이제 겨레의 소망인 민족통일을 주도하는 중추세력으로 그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을 앞장서서 대비해 나가는 선도세력이 되어야 합니다.우리 모두 분단 반세기가 되는 올해를 「통일시대의 원년」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희망의 정치◁ 우리는 집권당으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하는 용단을 내렸습니다.오늘 우리가 채택한 세계화선언은 그러한 우리 당의 개혁의지를 담은 것입니다.우리는 「희망의 정치」,「가능성의 정치」를 향해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우리 앞에는만만치 않은 도전도 있을 것입니다.역경이 우리의 의지를 시험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때,그 어떤 시련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입니다.우리가 굳건한 신념과 동지애로 뭉칠 때,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대를 함께 열었듯이 이 순간부터 세계화를 위해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나는 동지 여러분을 믿습니다.우리 당에 한없는 신뢰를 보냅니다.이제,우리의 전도는 양양합니다.우리에게는 국민의 사랑과 신뢰가 있습니다. 높은 도덕성과 강한 실천력이 있습니다.국민의 여망과 역사의 소망 앞에 충실한 우리가 「세로운 정치」를 실현할 것입니다.우리에게 남은 것은 전진이요,우리가 얻을 것은 오직 승리 뿐입니다.이미 출정을 알리는 우렁찬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민족사의 제단에 우리 모두 피와 땀과 눈물을 기꺼이 바칩시다. 총재인 나부터 역사와 국민이 부여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우리,온 국민과 함께 저 넓은 세계로,저 밝은 미래로 힘차게 달려 나갑시다.이 땅에 평화와 번영,선진과 통일의 신천지를 열어 놓읍시다. 「21세기 일류국가」신한국을 기어이 창조해 냅시다.그리하여 우리 당이 「민족사에 신기원을 연 위대한 정당」으로 길이 빛나게 합시다.
  • 미무역사상 최대 제재…「선전포고」위력/「태평양 교역전쟁」왜 터지나

    ◎미, “지재권 보호안해 연 8억달러 손실”/20일 유예기간… 협상재개 실마리 기대 5일 새벽 캔터 무역대표가 중국에 내린 무역보복 조치는 「전쟁선포」급의 무게를 지니고 있어 그의 하루전 최후통첩이 속빈 엄포가 아님을 유감없이 실증했다.시한종료 즉시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미 무역사상 최대폭의 제재를 강행한 것이다. 연 수출입 총교역액이 세계전체의 30%가 넘는 1조달러인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며 초고속으로 빈국에서 탈피중인 중국를 걸고넘어진 조목은 얼마전에서야 법적 가치를 인정받는 지적재산권이다.그래서 경제와 무역규모가 워낙 큰 탓에 미국이 숱한 나라와 무역마찰을 일으키고 있지만 중국과의 이번 분쟁은 해당국 두나라 뿐아니라 변모하는 세계경제의 모습을 시시하는 바 매우 크다.보호주의적 고율관세니 비관세 무역장벽이니 하던 종전의 무역마찰과 다른 양상인데 그만큼 한 웅큼의 경제이득도 놓치지 않겠다는 경제제일주의를 읽을 수 있다.미국이 지적재산권 「해적」 중국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손실액은물론 한 웅큼이 아니다. 93년 기준으로 중국인들이 응당의 저작권료·특허권료·상품권료를 미국인이나 기업에 물지 않고 물품을 무단복제·판매하는 통에 끼친 손해가 연 8억2천7백만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다.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3억2천만달러,레코드및 음악부문 3억5천만달러,서적 1억1천만달러,영화 5천만달러 등인데 미국은 18개월전 대략 이와 비슷한 수치를 제시하면서 중국을 지재권보호 협상테이블에 앉혔다.그러나 지난주 9일간의 북경 최종담판이 결렬되고 미국의 워싱턴협상 재개안을 중국이 끝까지 묵살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날 미국 무역제재의 요지는 93년도의 손실액이 1년뒤 10억달러이상으로 불어났다고 보고 그만큼의 중국수입품에다 1백% 보복관세를 매겨 전액 보상받고 말겠다는 「눈에는 눈,이에는 이」식 대응인 것이다.중국은 비록 형식적으론 12년전부터 지적재산권보호에 관한 법조문 성문화에 나섰으나 그 실제는 전연 지재권 무법천지에 다름없어 이번에 강하게 응징하지 않으면 지금의 10억달러가 곧 몇배로 불어나고야 말 것이라고 미국은 생각하고 있다. 그간 미국이 브라운 상무장관등 고위인사 방문등을 통해 몇차례나 강경하게 요구한 「지적권보호」 법조항의 국내엄격 실시를 중국이 따르겠다는 말만 늘어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결국 무역제재를 당하게 된 데에는 「돈을 쉽게 벌수 있다」는 간단한 이유가 제일 크지만 체제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된 점도 무시할 수 없다.지방행정단체로 하여금 소요경비의 상당부분을 자력조달케 하고 군대에 영리 자체사업을 허용해 대다수의 해적 무단복제업자들이 관공서·공무원과 극도로 밀착된 관계를 맺고 있어 법시행이 원초적으로 봉쇄된 상태다.거기에 시장경제체제 전환으로 인한 부패풍조 만연과 사법제도의 미비 등이 이같은 유착을 도왔다. 미국이 보복조치를 내린 뒤 1시간도 안돼 중국이 역보복령을 발해 사태가 아주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좀더 냉정히 따져보면 타협의 여지를 이곳저곳에서 찾을 수 있다.미국의 실제 조치까지 20여일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는데 이는 4개월전 미·일 포괄무역협상결렬과 상호보복엄포가 곧 협상재개로 통한 전례를 상기시킨다.또 지난해 5월 인권문제와 연계해 미국의 대 중국 최혜국대우갱신를 둘러싼 알력이 결국 유야무야로 끝난 점도 그렇다.특히 양국 교역이 5백억달러에 달하는 가운데 중국은 최대 무역거래국인 미국에 3백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보고있는 마당에 현재의 고자세를 유지할 성 싶지 않다.세계무역기구 가입에 관한 중국의 열망과 이의 성사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을 살필 때 미중 무역전쟁은 빠르게 잦아들 수있는 것이다. ◎93년 4백억달러 거래/중은 미의 3위교역국/미·중교역규모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거래액은 지난 93년 약4백억달러로 중국은 규모면에서 미국의 제3위 교역상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중 대중수출은 88억달러,수입은 3백15억달러로 쌍무무역분야에서는 대일무역에 이어 2번째로 큰역조를 보이고 있어 미국의 불만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용서 받지 못할 죄/박동은 한국유니세프 사무총장(굄돌)

    위조수표 제조사건과 컴퓨터를 이용해 남의 통장으로부터 돈을 빼낸 사건들을 보면서 이들이 착안한 범죄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이들에게 원인과 기회를 제공한 무섭게 발달한 과학기술의 위력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자동화,정보화,기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우리 생활은 컴퓨터와 팩스,삐삐와 핸드폰등으로 쉽게 정보를 얻고 편리하게 살고 있다. 나는 인간의 범죄방법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점점 지능화되고 극대화됨을 보면서 19세기 말 나타니엘 호돈이 정의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연상해 본다. 호돈은 그의 작품에서 죄에 대한 주제를 즐겨 다루고 있다.호돈에 의하면 죄는 인간이 그의 생활에서 쉽게 연루되고 빠져들 수 있는 경험과도 같은 것으로 모든 죄는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그러나 인간이 신과 동등하게 되고자 의도하거나 열망할 때 그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것이다.호돈은 그의 단편에서 자기 아내의 볼에 있는 반점을 수술로 제거하려다 오히려아내의 죽음을 자초한 한 의사의 실패를 창조주의 능력을 발휘하려고 한 교만한 죄로 보고,인간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과학자의 행동을 사랑이 결여된 차가운 지성의 죄로 정의하고 있다. 오늘날,우리의 과학기술은 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경지에 와 있으며,이대로 나가다가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 위대한 만큼의 반작용으로 우리 인류를 해치고 평화를 위협하는 길로 악용되거나 역이용될 것이 두렵다.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가능한 것일까.
  • “등사망 임박”/대중교역 국내기업 “비상”

    ◎보수파 반란 등 5가지 시나리오 설정/「정보」에 촉각… “혼란있더라도 개방지속”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이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자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투자대상국이자 교역 규모가 급신장하는 잠재적인 최대 시장이다.때문에 중국의 정세 변화는 우리 경제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재계는 요즘 현지로부터의 정보 수집에 여념이 없다. 국내 주요 그룹들은 등 이후의 중국 상황에 대한 각종 시나리오를 마련했다.등이 사망한 이후에도 중국의 정세는 다소 혼란이 있겠지만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치 이데올로기의 쇠퇴와 중국 국민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그리고 GATT 가입추진 등의 개방화 진전으로 종전 공산체제로의 복귀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기존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의사결정 권한이 지방정부로 분산됐기 때문에 강력한 중앙정부의 지도자 부재는 향후 지방정부간 경제발전 경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지방정부의 역할 증대도 예상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순탄한 권력이양을 전제한 것이다.인치에 의한 통치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의 특성을 감안,그룹들마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 중이다. 삼성그룹은 향후 중국의 상황과 관련 5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했다.첫째는 등의 구도대로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자들이 집단 지도체제를 구성,순조롭게 권력승계를 하는 것이다.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경우 중국의 대외경제 정책은 기존의 흐름을 대부분 유지하고 군부도 정치중립을 유지,경제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개혁파가 득세해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다.이붕 총리나 주용기 부총리 등이 군부 엘리트와 합세,권력을 장악하는 경우이다. 지금보다 더 급속한 경제 개방정책이 추진된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보수파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현재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양상곤 등의 보수파가 등의 사망을 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는 사례이다. 네번째는 공산당이 분열하는 상황이다.지금까지 1당 지배체제로 유지돼 온 공산당이 와해돼 다당제 체제로 바뀌는 것이다.정치 혼란으로 경제 상황도 예상치 못하는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론 지방 분권화가 과열돼 티베트·위그르 등의 자치족들이 독립을 선언하는 시나리오다. 중국의 실용주의자들이 2000년까지 권력을 장악할 경우 한·중 교역 및 대중 투자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향후 중국에 인플레이션이나 실업 등의 불안이 없을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1∼11월)총 수출 8백54억5천6백만달러 중 6.5%인 55억2천3백만달러를 중국에 수출하고,총 수입 9백17억3천7백만달러 중 5.4%인 49억6천만달러)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같은 기간 중 대 중국투자 허가건수는 6백30건,실제 투자가 이뤄진 건수는 3백68건(2억7천만달러)이며 수교이후 총투자액은 약 15억달러 상당이다. ◎“등 3월초 전인대까진 살것”/의료수단 총동원… 생명유지에 전력/남쪽 벽한지 설쇠기 연례행사 포기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북경의 외교가와 소식통들은 중국정부가 위독 상태인 등의 생명 연장을 위한 전력투구에 들어갔으며 조만간 닥칠지 모를 사망 준비에 돌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북경의 외교가에선 등이 최근 여러 차례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사실상 올 상반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북경의 소식통들도 등이 사실상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으며 현재도 각종 의료수단 없이는 생명 연장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한다. 북경시민들은 그가 예전과 달리 겨울을 북경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위독설과 연결시키고 있다.북경의 겨울은 춥고 건조한 기후와 나쁜 공기로 인해 노약자들의 건강에 적합지 못한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이 때문에 등은 겨울철이 되면 북경을 떠나 상해등 기후와 공기가 좋은 남쪽 지방에서 보내면서 춘절(설날)을 지내고 날씨가 풀어진 뒤 북경으로 돌아왔었다.그러나 올해는 그의 건강상태가 이미 상해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한 단계이며 임종을 북경에서 맞이하기 위해 측근들이 상해행 포기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마저 들리고 있다. 등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안감힘을 쓰는 이유중에는 지금이 사망 시기로는 최악이라는 이유도 들수 있다.최소한 2억명 가량이 이동하는 설날에다가 오는 3월 올 국정의 운영 방향과 대규모 인사개편을 결정지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회의를 앞두고 있어 사회불안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경외교가의 일반적 시각은 등이 당장 사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각종 생명연장수단을 총동원,상당기간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중국정부가 전인대 일정을 당초 예정보다 10일 정도 앞당겨 3월초로 결정한 것도 등의 건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저널지는 그가 지난 12월말 심하게 앓은 뒤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오는 3월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북경의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홍콩의 영자지 이스턴 익스프레스지도 이와 관련,20일 등이 12월말 뇌졸중을 일으킨 뒤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도했다.하지만 과거 등의 건강과 관련한수많은 오보들 때문에 이들 보도를 어느 정도 믿을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홍콩언론들의 등위독 보도와 관련,중국외교부도 지난 19일 기자설명회를 통해 『매우 건강하다』는 종전의 표현에서 『90세 나이에 비해 대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한발 물러선 표현을 쓰고 있으나 사망임박 사실은 전혀 시사하지 않고 있다. 한편 북경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상태와는 별도로 중국정부가 등사후의 문제 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있다.당기관지 인민일보가 이례적으로 지난 5일동안 1면에 당 중앙을 중심으로 한 전체 공산당 조직의 사상통일을 강조하고 강택민 당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중앙당의 지도아래 등사상및 개혁·개방 현대화사업을 강화해 나가자는 주제의 평론을 연거푸 실은 것도 등사후를 대비하기 위한 선전활동으로 분석되고 있다.
  • “「뿌리지키기」 열망 뜨겁습니다”/일본서 맞는 「한핏줄」의 감회

    ◎2·3세 「한국적」 유지 세계사 유례없어 광복이후 어언 반세기가 된다.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잊을수 없는 조국과 일본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마지널 맨(경계인)」으로서의 반세기라고나 할까. ○1세대 5%만 생존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사회는 그동안 크게 탈바꿈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국에서 출생한 제1세가 해마다 줄어들고(아마 5%정도)일본에서 출생한 세대가 주류를 이룸에 따라 동포사회가 「일본화」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해외동포는 총5백여만명으로 알고 있다.동포수의 순위는 중국·미국·일본·옛소련이 될 것이다.그중 재일동포는 68만명이며 광복전에 일본에온 제1세와 그 자손이 58만명이다.최근에 일본에 온 한국인을 「뉴 커머(NewComer」라 한다면 광복전에 일본에 온 한국인과 그 자손을 「올드 커머(OldComer)」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와 같이 올드 커머의 제1세가 거의 없어지고 제2·3·4…세가 「한국」또는 「조선」국적을 가지고 외국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해외동포가 사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한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지 30주년이기도 하다.그 당시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3·4세들은 점차 일본화될 것으로 예측했을 것이다.사실 한국대표가 그런 언질을 준 일도 있다. 최근의 인구통계를 보면 올드 커머의 인구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귀화자가 인구증가율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귀화해서 일본국적을 얻으면 적어도 법적·제도적 민족차별은 없어진다.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은 귀화해서 일본인과 동일한 권리를 취득할 것인가,아니면 불평등이 있더라도 민족적 입장을 고수해서 살 것인가,그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일본사회의 민족적 차별과 멸시속에서 자기의 희망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귀화할 경우 아쉬움은 남는다.하지만 후대들이 그런 설움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 또한 당연하다. ○「민족대학」 수강 열기 그러나 차별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고 민족적 아이덴터티(주체의식)을 되찾아서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도 끈질기다. 그러한 의지는 지난 1993년 1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오사카(대판)를 효시로 도쿄(동경) 요코하마(횡빈)·나고야(명고옥)교토(경도) 히로시마(광도) 후쿠오카(복강)에서 한국 민단주체로 개설된 「민족대학」강좌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족대학」강사는 재일한국인의 학자와 전문가가 중심이었다.매주 토요일에 열린 강좌는 한국역사·조국에 대한 기초지식·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사·재일한국인의 역사를 비롯,생활에 필요한 법적지위 및 세금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과목이었다. ○10대∼80대까지 참여 나는 오사카에서 제1회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이 50명 내지 1백명이 모이면 성공한 편이 아닌가 생각했다.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고 보니 당초의 모집예정인원 2백명을 훨씬 넘는 3백60여명이 참가하여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찼다. 다른 도시에서도 모집예정인원을 웃도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40·50대를 중심으로 10대후반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한 수강생들의 열기어린 눈초리에 나는정말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글 첫머리에 재일한국인을 「마지널 맨」이라 불렀지만 재일동포들은 일본 생활속에서 완벽한 한국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한국인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민족대학」강좌를 통해 배웠다. 나는 이 글에서 감히 「재일교포」란 용어를 피하고 「재일동포」라 했다.「교」자를 풀이하면 「붙어 살고」즉 남의 집에 붙어서 산다든가,타향 혹은 타국에 임시로 붙어서 산다는 뜻이 된다. 『재일동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올드커머는 일본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사는 한국인이다.따라서 「교포」란 용어는 그들의 생활실태에 어긋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이 자기 뿌리를 찾는다고 고향을 방문했을때 한국말을 못한다고 면박을 당해서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 점이다. ○한글 몰라도 애정을 그들은 일본에서 한국말은 몰라도 살수 있지만 일본말을 모르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일상생활에서 필요없는 말을 다만 민족적 자각에서 터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가령 한국말을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의 뿌리를 찾겠다는 그 심정을 찬양해준다면 얼마나 조국과 고향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오히려 모국어를 비롯해서 자기조국을 더 잘 알기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과장된 표현을 한다면 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이 대를 이어서 민족적인 입장을 고수해서 산다는 것은 세계사적인 실험이라 생각한다.그러기에 나는 앞으로도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싶다.
  • 러군,체첸수도 포위망 압축/목표물 미사일공격 강화

    ◎대책회의/“단호한 공세… 분리독립 궤멸” 결의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러시아지도자들은 20일 공식성명을 통해 체첸공화국 분리주의자들의 저항을 일소하기 위해 폭격과 미사일공격을 강화하고 「단호한 공세」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공식성명서를 인용,『러시아부대는 체첸공 주요목표물에 대한 미사일공격과 폭탄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단호한 공세를 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공식성명서는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주재한 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나온 것이다. 성명서는 『러시아병력은 더욱 단호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체첸공 병사의 희생은 늘어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체첸군 장갑차 15대와 포 10문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타스통신은 그로즈니에 있는 소식통을 인용,러시아부대는 페트로파블로로브스카야마을 근처의 체첸군 근거지를 포위하고 있으며 시경계에서 10㎞지점에 있는 다리에까지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인테르 팍스통신은 러시아 내무부성명을 인용,『러시아부대는 체첸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전투가 시작된 뒤 내무부소속 병사 4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체첸공화국에 파견된 러시아 공식 대표단은 2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대한 러시아 지상군의 공격을 중지토록 하라고 촉구했다. ◎러군 대규모 공격에 파괴된 체첸 표정/35만 그로즈니시민들 대부분 탈출/여성·노인들 「인간사슬」… 러침공 항의/러병사 술취해… 마약주사바늘 발견 ○…러시아군의 공습은 그로즈니의 주민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어 인접공화국이나 시골지역으로 대피토록 하려는게 가장 큰 목표라는 분석이 유력.이같은 분석은 러시아군당국이 표적으로 삼은 목표물들이 대부분 빗맞았지만 35만인구의 그로즈니 시민들 대다수가 벌써 수도를 빠져 나왔다는 사실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그로즈니 주민들은 군사시설은 물론 주택가와 가스관,송전시설,상수도시설,TV중계탑 등 목표를 가리지 않는 러시아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그로즈니에서는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사상자가 속출하고 주요시설들이 대거 파괴되고 있다며 러시아군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토로.병원관계자들은 대통령궁에서 1㎞ 떨어진 주택가에서 폭격으로 2명이 죽고 8명이 다쳤으며 또 그로즈니시 주택가 미누츠카지구에서 공습으로 2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전언. ○…그로즈니시 중심가에서는 두다예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수백명의 무장병력이 모래부대가 쌓여 있는 대통령궁 앞 「자유의 광장」에 모여 체첸공의 독립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그로즈니시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눈덮인 도로에서는 대부분이 여성과 노인인 수백명의 체첸주민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항의로 서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시위를 벌이기도 시위여성들은 대부분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흰색 머리띠를 매고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었다. ○…체첸공화국접경 잉구세티아공화국의 아우세프 대통령은 19일 러시아군의 체첸난민 총격사건 조사를 지시.아우세프 대통령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러시아 병사들은 술에 취해 있었으며 마약과 관련이 있는 주사바늘도 발견됐다』고 공개.그는 이와 관련,러시아의 니콜라이 예고로프 부총리에게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 ○…체첸공화국에 집결한 러시아군 병력 규모는 2만4천5백명으로 3백대의 장갑차,MI8 무장헬기및 수호이 25,27 전투기로 무장.반면 체첸공화국에서는 2천∼3천명의 정규군과 수천의 자원병이 이에 대항.러시아군 병력중 2만3천명은 3개 공정및 2개 경보병연대,4개 공군부대이고 나머지 1천5백명은 내무부소속 돌격및 폭동진압 특수병력.체첸군은 8백명의 돌격대를 포함,40대의 공격용 탱크와 60대의 무장수송차,두대의 MI8 헬기및 수대의 체코제 L39 훈련기로 무장. ◎러의 체첸공격과 옐친 앞날/소수민족 독립열망 잠재우기 난망/협상 유도용 평가불구 민간희생 커 부담/주변국 확산·내부반발 소지도 불안요인 러시아군을 체첸영토에 투입시킨지 1주일을 넘겼지만 옐친 대통령은 여전히 문제해결의 최종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19일의 대규모 무력공세도 두다예프를 무릎꿇게 만들기에는 부족한 위협용이었다.수도 그로즈니를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최종결심을 망설이는 것이다.그러기에는 넘어야할 문제와 장애가 너무 많다. 그래서 많은 관측통들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에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니콜라이 예고로프 민족문제담당 부총리를 체첸의 임시통치자로 임명한 것도 실질적 조치라기보다는 두다예프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위협용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전력만으로 보면 러시아군은 그로즈니까지 단숨에 점령하고 두다예프를 몰아낼 수 있다.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체첸은 물론 인근 코카서스지방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잠재우는 근본처방이 되지 못한다는데 옐친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무력점령을 감행하면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부담도 크다. 체첸영토 대부분이 산악지역이어서 이들이 산악으로 숨어들어가 게릴라식 전법으로 대항할 때 대처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지 불과 5년 밖에 안된 시점이라 러시아 국민들은 이런 장기전에 빠져드는데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무력해결을 감행하면 두다예프의 희망대로 체첸주변에 산재한 코카서스산악민족들의 동조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체첸을 비롯해 잉구세티야,다게스탄,카바르디노­발카리아,카자차예보­체르케시야,아디게야공화국 등 코카서스 산악민족들은 90년초부터 소위 「코카서스민족연맹」을 결성,유대를 다져왔다.이들을 모두 합하면 인구 5백만의 무시못할 집단이다.만약 체첸에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면 이들의 반러시아 유대는 그만큼 더 강화될 것이다.그루지아,아제르바이잔 등 인근 국가들로 불똥이 튈 여지도 배재할 수 없다. 옐친 대통령이 가장 부담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겪게될 정치적 부담이다.이번 군대투입을 계기로 옐친은 지난 89년 이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민주진영과 거의 결별했다.예고르 가이다르 전총리,샤흐라이 전부총리 등 개혁세력들은 일제히 군대투입을 반대하고 있다.옐친 측근에서 이번 작전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그라쵸프 국방장관,스테파신 방첩부장,빅토르 예린 내무장관 등 보안부서장관들과 코르자코프 경호실장 등 측근의 강경파 보좌관들이다.옐친으로서는 무력을 통한 해결을 시도할 경우 95년 총선과 96년 대통령선거에서 입을 정치적 손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