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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행정차원의 통일전략

    남북한 정상간에 파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짐으로써 민족통일에 대한 열망이더욱 부풀어가고 있다.간헐적인 민간교류 차원을 넘어 이번에는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함으로써 앞으로는 통일정책의 다변화가예상된다. 따라서 총론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각론적인 차원에서 좀더 현실적인 수준의 협력과제에 대한 추진과 내부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다.그리고 그동안 논의돼온 주제들이 주로 정치·경제문제 등에 집중됐으므로 앞으로는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문제나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통일과제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주제의 폭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행정 차원에서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당을 중심으로 한 당원교육이 사회 교육의 주종을 이루어 왔으므로 효율성이나 민주성을 존중하는 행정관리 교육이없었다. 다시 말하면 이념교육 등이 주로 강조돼 행정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실시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행정관리가 구조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게 돼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한간 공공부문의 협력과 이해가 성숙되려면 북한 관료에게 행정관리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관리기술을 전수해 주는 접근방법도 매우유익한 전략일 수 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행정학원’이라는 이름이 ‘당간부학원’의 이름과병행돼 사용되면서부터 정부와 대학에 행정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 10여년 전부터 각 성이나 대도시마다 당간부 학원을 행정학원과 병행해 운영하면서 공공부문의 행정관리 교육이 확대되기 시작했다.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중국관료들의 의식이나 행태가 과거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됐고,중국의 경제발전이나 개방속도도 가속화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북한도 중국처럼 현대적인 의미의 행정이란 개념에 대한 이해나 관리기술의 습득이 매우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이 필요하다.왜냐하면 북한 관료의 의식과 행태가 변화되면 통일로 가는 길도 그만큼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사업의 기조는 중앙정부와 거시적인 차원의사업,간헐적인 민간협력이 대부분이었다.따라서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간에 전략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민족통합을 도모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이는 통일 이후의 혼란과 갈등을 감소시키는 데도 필수불가결한 과제이기도 하다.중앙정부와 민간기업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와협력사업을 발굴해 추진할 때가 도래했다. 예를 들면 서울시와 평양시간 혹은 우리의 강원도와 북한의 강원도가 자매결연 형태로 교류와 협력을 시도해 보는 것 등 새로운 형태의 접근방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통일 이후의 효과적인 국토개발과 지방행정 관리를 위해서도 이러한 협력전략은 필요하다. 자치단체 협력과 지역주민들을 통한 민족적 일체감이 증진된다면 남북한 주민들간의 단절과 오해의 폭이 현실적으로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므로 행정관리 교육협력 및 지방 차원의 교류협력 과제들을 개발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한때다. 金判錫 연세대교수·행정학
  • 통일기금 1억 기탁 경남 하동 산림경영인 김용지씨

    경남 하동의 전문 산림경영인 김용지(金龍智·72·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333의1)씨가 통일기금 1억원을 기탁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김씨는 지난 1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북한방문을 지켜보다겨레의 염원인 남북통일에 정성을 보태기로 결심하고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남지회에 전달했다. 하동읍에서 태어난 김씨는 모진 가난으로 살길이 막막하자 10살 되던 해인지난 38년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하고 돌아온 재일동포.일본인들의 냉대와 멸시 속에서 막노동을 하고 생활했지만 정직과 성실을 생활신조로 삼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공했다. 지난 70년 귀국한 김씨는 다른 재일동포들과 달리 육림사업을 시작했다.6·25당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을때 징집적령이 됐지만 외국에 살면서 참전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이를 풀기위해 나무심기에 나섰던 것이다.만약 이때 국내에 살았더라면 전사했을지 모르는데 외국에서 일신을 편히 살았으므로 늦었지만 조국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김씨가 심은 나무는 모두 38만여그루로 편백나무와 느티나무,화백나무,낙엽송 등 경제수종이며 면적은 129㏊에 달한다.나무심기에 나선 이후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조림지를 살펴보고 있으며,특히 산불예방기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올해 식목일에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했다.김씨는 “온 국민이 열망하는 조국통일에 조그만 보탬이 됐으면 하는생각에서 성금을 냈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마음놓고 왕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동 이정규기자 jeong@
  • [마음은 북녘 고향에] (1)평양 경제리 출신

    ‘몸과 마음은 이미 고향에.’북녘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온 응어리는 한순간에 녹아내린다.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향민들은 대동강변에서 멱감던 시절부터 떠올리며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다.고향땅을 눈앞에 둔 실향민들의 벅찬 감회를시리즈로 싣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놀던 을밀대(乙密臺)야.지금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을게야.” 실향민 최선익(崔善翌·83·경기도 일산시 장항동)씨와 나용호(羅容浩·70)씨는 15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지난 세월 고향 방문에 대한 열망과 가슴이 찢어지는 실망이 수없이 오갔으나 이번처럼 마음이 설렌 적은 없었다.남북의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을 번쩍들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이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날 서울 마포구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만난 최씨와 나씨의고향은 평양시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경제리.마을어귀에는 대동강이 흐르고뒤편에는 모란봉이 우뚝 서 있다. 두 사람은 13살 차이로 월남하기 전에는 모르는 사이였다.하지만 월남한 뒤 이북도민회 평양시민회 사무실에서 만나 20여년을 형·아우로 지내며 의지하고 있다. 어릴적 대동강가에서 ‘동무’들과 멱을 감고 모래찜질을 하며 모란봉 입구에서 ‘헤이따이 고꼬’(병정놀이)를 하던 추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두 사람은 모란봉 입구로 향하는 신작로를 건너 평안남도 도청 옆에 있던 평의고등중학교를 다닌 선후배 사이다.나씨는 “일전에 TV에서 동문인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나왔는데 북한을 방문,학교를 찾았으나 학교는 흔적도 없고 교정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만 길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고 하더라”면서먼산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최씨는 “그래도 대동강과 모란봉은 옛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고 나씨를 달랬다. 최씨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지난 46년 29살의 나이로 단신 월남했다.나씨는김일성대학 영문과를 다니다 51년 1·4후퇴때 남쪽으로 넘어왔다.두사람 모두 ‘평양에서 살 수 없는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평양시민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씨는 북에 남았던 부모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른다.그러나 부모 형제보다는 시민회 일을 더 걱정한다.나씨는 “시민회에 등록된 실향민은 10만3,000여명”이라면서 “이번 광복절까지 미등록된 평양시민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해질 녘 대동강변에서 모란봉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전 마지막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역대 회담대표들의 조언

    ◆정원식(鄭元植·대한적십자사 총재·91,92년 고위급회담 대표) 남북한간의여러 현안과 난제를 풀어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의견 접근을 이뤄나가는 계기로 기억될 것이다. 난제와 현안 중에서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는 새로운 길이 회담을 통해 트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대한적십자사 차원에서도 많은준비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에 결정된 인도적 차원의 대북 비료지원에 대해 북측은 깊은 감사와 호의를 보내오고 있다. 뜨거운 기대와 열망이 성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국민적 역량과 의지를 모아야 한다. ◆이병웅(李炳雄·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위원·97,98년 베이징 적십자회담대표) 정상회담 개최는 북한도 변화를 받이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엇갈려 갈 수는 없다.남북간 교류협력만이전쟁위협과 냉전으로 인한 서로의 공멸을 전진할 수 있는 길임을 느끼고 있다. 94년 정상회담 합의때와 지금의 북한은 다르다.북측도 폐쇄와 자립만으로는국가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98년의 적십자사간 베이징회담이 98년 당국회담으로 이어졌듯이 정상회담이 각종 후속회담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정용석(鄭鎔碩·단국대교수·85년적십자회담대표) 정상회담 개최로 남북간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됐다. 정상간의 만남만으로도 남북관계의 분위기를 크게 호전시킬 수 있다. 첫 만남은 냉전체제 해체를 위한 탐색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회담 개최로남북한은 평화분위기를 조성하게 됐다.그러나 이제 시작이며 틀을 잡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동서독은 통일전 9차례나 정상들의 왕래가 있었다.앞으로도 갈길은 멀다.지나친 기대나 과대한 요구는 금물이다.차분한 마음으로 후속조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교류협력의 제도화 등은 꼭 이뤄나가야 한다. ◆이우정(李愚貞·91,92년 남북여성회담대표)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만으로도큰 의의를 갖는다. 91·92년 두 차례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주제로 한 서울·평양간의 토론회 대표를 맡으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가득 안고 시작한 만남은 포옹과 아쉬움,서로에 대한 깊어진 이해 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이 서로의 필요와 결단에 의해 주체적으로 개최를 합의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가 있다.94년 정상회담 합의는 우리의 필요가아닌 미국의 역할 등 주변상황에 의한 것이었다.
  • “언론개혁 추진 시민연대기구 필요”

    ‘언론개혁’운동이 시민단체들의 호응으로 힘을 받고 있다.언론개혁의 추진을 위해 별도의 시민연대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일부 시민단체들이 동의하고 있다.이제 언론개혁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총론’이 아니라 ‘각론’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이로써 작년에이어 올해도 한국언론계의 화두는 또다시 ‘언론개혁’이 될 전망이다. 지난 19일∼20일 한국언론재단이 경기도 양평 대명콘도에서 개최한 ‘언론개혁,쟁점과 전망’토론회에는 언론학자,언론운동단체 실무자,그리고 각 시민단체 실무책임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이날 토론회는 시민단체 실무책임자를 대상으로 언론개혁의 당위성과 향후 방향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회를통해 시민단체들의 언론개혁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이날 첫발제자로 나선 광주대 언론정보학부 임동욱 교수(전남광주민언련 의장)는 “언론개혁에 대한 당위성은 지난해 ‘중앙일보사태’와 ‘언론문건파동’, 그리고 금년 4·13총선 과정에서 전남일보가 보여준 행태를 통해이미 입증됐다”고 밝히고 “이제 시민단체는 언론개혁에 힘을 모아야할 때”라고 강조했다.임 교수는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 가운데 언론을 홍보수단으로 인식하는 ‘언론 활용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이는 당분간은 유리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언론에)이용당하고 말 것”이라며 ‘언론활용론’에 대한 경계론을 폈다. ‘언론활용론’에 대한 참가자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모두 부정적이었다.한 참가자는 “‘언론활용론’은 일부 언론을 타 본 단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시민단체 가운데 일부 정치 지향적인 단체가 문제”라고지적했다.또다른 한 참가자도 “지난 총선 당시 언론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보도하다가 나중에는 본질적인 사안보다는 인물·이벤트 위주의 흥미성 보도로 돌아섰다”고 평가하고는 “언론을이용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항상 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민언련의이유경 간사는 “전면 부정이 바람직 하다”며 일부 시민단체들의 단체이기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언론개혁을 추진할 새로운 시민연대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기존 언론개혁 관련 단체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지적과 함께 나왔다.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국민들의 열망이 큰 반면 기존 언론운동 단체들이 이를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하고“시민단체의 의견을 결집하여 가칭 ‘신문개혁 시민행동’결성을 곧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새로운 시민연대기구 결성과 관련,참가자들간에 문제제기가없진 않았으나 새 단체 결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식을 공유했다. 다만 “여러 단체들이 이름만 걸어놓을 경우 자칫 ‘발’이 없는 단체가 될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꾸려가야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노동단체,대학신문 등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은 행사 마지막날 특강을 통해 “언론개혁은 국민들의이익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먼저 인식한 단체들이 총대를 메고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시민사회 연대운동 차원에서 이미상당한논의가 진행된 만큼 이제 가속도를 낼 때”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원구성 협상 중단에 “정치권 자세 전환” 목청

    여야의 협상 중단으로 16대 국회의 법정일(6월 5일) 개원이 불투명해지자이를 비난하며 정상개원을 촉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가 총선정국을 빌미로 ‘장기휴업’에 들어간 상황에서 여야가 당리당략을 앞세워 16대 개원마저 늦춘다면 이는 정치권의 직무유기이자 국민적 정치개혁 열망에 대한 도전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16일 브리핑을 통해 “6월 5일 법에 따라국회가 개원돼야 한다”면서 “한나라당은 신임 총무를 빨리 선출,원구성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이어 “야당의 당내 사정으로 원구성이 안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민주당은 23일 신임 원내 총무가 선출되는 대로 야당측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민주당의 반대로 임시국회소집이 불발돼 송구스럽다”면서 “국회가 개원되면 국민들이 불신을 갖지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는 그동안 몇 차례 개원협상을 벌여왔으나 국회의장 및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 등을 놓고 조금도 절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민주당 박상천(朴相千)·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총무는 “총무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새 총무들에게 원구성협상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한나라당 총무 경선은 다음달 2일로 예정돼 있다.법정일인 5일까지 여야가 협상을 매듭짓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여야 지도부는 누구도 책임있는 자세로 개원협상을 채근하지 않고있다.민주당은 오는 19일부터 당 차원의 금강산행을 추진하고 있고,한나라당은 31일로 예정된 당내 총재·부총재경선에 몰입해 있다.지난달 영수회담에서 여야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다짐했지만 16대 국회는 여야의 대화단절 속에 개원 파행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16대 국회가 제때 열리지 못한다면 이는 국민적 정치개혁 열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라며 정상 개원을 위한 여야의 노력을촉구했다. 양세진(楊世鎭) 시민감시국 부장은“개원조차 제때 하지 못하는 국회라면 4년 내내 국민이 염원하는 정치개혁은 절대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여야가이런 행태를 계속한다면 4년 뒤 17대 총선에서는 보다 엄중하고 강력한 낙선운동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경호기자 jade@
  • 金대통령, 美ESI포럼 기조연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5일 미 워싱턴 '로날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미 경제전략연구소(ESI) 포럼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문제는 이제 단순히 남북한간의 이슈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라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글로벌화·디지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많이 제공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이홍구(李洪九)주미대사가 대독한,'21세기 글로벌화의 혜택과 대가'라는 주제의 연설을 통해 이같이 강조하고 “7,000만 한민족 모두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이 한층 증진되는 민족대화합의 시대가 열리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이제 지식·정보화의 혜택은 인류가 함께 나눠야 한다”면서 “국가간 정보화 격차 해소를 위해 선·후진국간에 '인터넷 인적자원 개발 네트웍'이 구축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김 대통령은 또 “한국에서의 글로벌화는 바로 개방과 구조개혁을 의미한다”면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현재의 경제회복에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며,개방과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더욱 창달해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연설은 인터넷을 이용한 영상메시지로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음성전송장치 고장으로 이 대사가 대독했다. 양승현기자
  • 초대대통령·제헌국회의장 의회지도자像 제막

    국회는 15일 본관 중앙홀에서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과 신익희(申翼熙) 제헌국회 의장 등 2인의 국회지도자상 제막식을 가졌다. 박준규(朴浚圭)의장은 식사에서 “새천년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가우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의사당에서 두 분의 동상을 모시게 돼 회한과 희망이 교차한다”며 “헌정사를 열어주신 두 분이 항상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고 의회민주주의를 찬연히 꽃피우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제막식에는 강영훈(姜英勳) 전 총리,채문식(蔡汶植) 헌정회장과 민주당 서영훈(徐英勳) 대표,한나라당 김수한(金守漢) 상임고문,자민련 이한동(李漢東) 총재 등 각당 지도부 및 헌정회원 400여명이 참석했다. 제막식에서 동상을 제작한 홍성도 홍익대 교수와 전준 서울대 교수에게 공로패,집행위원인 김성우(金聖佑) 한국일보 논설고문과 최만린(崔滿麟) 서울대 교수,오광수(吳光洙)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감사패가 각각 증정됐다. 주현진기자 jhj@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4)적십자회담

    84년 9월8일 아침.한달 전 서울·경기 일원의 대홍수로 엄청난 수재민이 발생,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북한 적십자회는 ‘방송 통지문’을통해 쌀 50만석 등 수해지원 의사를 통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해 다각적 검토에 착수했다.당시 정용석(鄭鎔碩·8∼10차 본회담 대표·단국대 교수) 한적 청소년자문위원은 “일각에선 북한의 대대적 체제선전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반대도 심했었다”며“그러나 경제적 자신감을 토대로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72년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성사를 위해 25차례의 예비회담에관여했던 이병웅(李柄雄)적십자남북교류위원장은 “결렬 직전까지 가는 숨가쁜 고비를 인내와 끈기로써 버텼다”고 회고했다. 남북대화의 물꼬는 이처럼 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터졌다.60년대 내내 대남강경책을 구사한 북한과 ‘선(先)건설 후(後)통일’을 견지한 박정희 정권사이에서 남북대화가 설 자리가 없었다.첫 신호탄은 70년 8월15일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던 ‘평화통일 구상’이었다.결실은 1년 후 71년 8월20일 판문점에서 첫 예비접촉을 통해 역사적 남북대화가 시작됐다. ■70년대/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72년 8월30일 평양 대동강 회관에서열렸다.남북은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실현 ▲이산가족의 서신왕래 ▲이산가족 재결합 ▲기타 인도적 해결문제 등의 5개항의 의제를 재확인했다.서울 2차회담에 이어 흥분이 가라앉은평양 3차 본회담(73년10월24일)부터는 남북간 견해차가 드러났다.북측은 “남한의 모든 법률적·사회적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며 정치적 색깔을 노골화했다.이후 거의 한달 간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 본회담(73년 7월11일)까지 지속됐지만 ‘반공활동 금지’를 공동성명에 넣자는 북측 요구로결렬,12년간의 동면에 들어갔다. ■80년대/ 84년 9월 남한 대홍수에 따른 북측의 수해물자 인도 제의에 따라돌파구가 마련됐다.북적은 남한 수재민에게 쌀 5만석 등을 제의했고 이를 계기로 8차 본회담이 5월27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열렸다.85년 9월,40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실현되는 쾌거를 이룩했다.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성사됐다. ■90년대/ 89년말에서 90년중반까지 제2차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공연 문제로 8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가졌다.하지만 북측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고집,아무 성과없이 중단됐다.92년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문제도 협의했지만 8차례 실무접촉이 무위로 끝났다. ■평가/ 적십자 회담은 출발부터 인도적·정치적 색채가 동시에 섞여있는 이중성격을 갖고 있었다.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 시작됐지만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권 유지에 활용하겠다는 남북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계산도 숨어있었다.정용석 교수는 “인도주의 정신은 남북간 긴장속에서 어렵게 남북대화를 지탱했지만 결국 정치적 결정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당시 주역들. 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대변했던 남북 적십자 회담은 남북모두숱한 ‘통일 일꾼’들을 배출했다. 남한 대표들의 경우 이후 통일부 장·차관과 외무부장관 등으로 정권을 지탱하는 주요 축으로 활약했고 북한 대표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71년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예비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는 이범석(李範錫)당시 한적부총재였다.그는 이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다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순직하기도 했다. 역시 대표로 활약했던 서영훈(徐英勳) 당시 한적 청소년부장은 그후 흥사단단장과 KBS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말부터 민주당 대표로 정치권에서 맹활약중이다. 홍일점 대표였던 정희경(鄭喜卿) 당시 한적 청소년지도위원도 15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지냈다.7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자문위원을 지낸 박준규(朴浚圭) 당시 서울대교수는 그후 정치인으로 변신,8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8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수석대표였던 이영덕(李榮德) 한적부총재는 통일부총리로서 대북 통일 정책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통일부총리 이후 총리직도수행했다. 당시 대표였던 송영대(宋榮大) 한적구호협의회 위원은 대북창구로서 눈부신활약을 하다가 통일부 차관을 역임했다. 자문위원이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교수는 문민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으로4강외교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이다. 북한의 경우 80년대 모습을 드러낸 박영수 대표는 대남 강경파를 대표했던인물이다.94년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70년대 자문위원으로 뛰었던 윤기복 당시 노동당 대외연락위부위원장은 81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재직 이후 대남 사업을 주관하는 막강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북측 수석대표 또는 대표들은 이후 큰 활동없이은퇴,통일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일만기자
  • 19회 미술대전 대상 ‘숨을 쉬고 있는 상자’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석원)가 주최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제1부 비구상계열:한국화,양화,판화,조각)에서 조각 ‘숨을 쉬고 있는 상자’를 출품한 이상길씨(李祥吉·36)가 대상을 차지했다. 우수상은 한국화 ‘고유감성-(대지)’를 내놓은 최창봉(崔昌鳳·36),서양화 ‘나반의 정원’을 출품한 장수창(張水昌·39),판화 ‘지적인 제안’을 출품한 김경아(金瓊兒·30),조각 ‘디이칠칠(de77)’을 낸 정동명(鄭東明·30)씨가 각각 받았다. 이번 미술대전에는 한국화 500점,양화 691점,조각 38점,판화 61점 등 모두1,290점이 응모해 특선과 입선을 포함,315점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수상작은 15일부터 2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개막에 앞서 15일오후 3시 시상식이 거행된다.서울전시에 이어 12월에는 포항과 광주에서 순회전을 연다.다음은 특선자 명단■한국화 ▲한경혜 노병렬 황현숙 김지영 전영숙 강영지 박영학 유정상 최라영박옥남 이길우 조희경 한윤기 이창훈 강규성 ■양화▲윤종석 박봉춘 박점영 박태홍 이재삼 김병구 유서형 우은정 이규학현종광 김태은 이혜경 황나영김동석 ■판화 ▲김필구 한 용 김진숙 이명숙 ■조각(야외) ▲이재길 우무길. *대상 수상 이상길씨 “제도화된 관습 속 상호소통 열망 상징”. “상자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구속하는 제도화된 관습을,숨을 쉬는 마개구실을 하는 코르크는 막힌 현실에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합니다” 10일 발표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조각가 이상길씨는 자신의 조각품을 단절된 현대사회에서의 소통가능성을 묻는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숨을 쉬고 있는 상자’는 작가가 지난 5년 동안 매달려온 작업 테마.작가는 스테인레스와 알루미늄,유리,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먼저 냉혹한기하학적 구도의 상자를 만든다.그 상자는 죽어 있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를 향한 움직임과 생명력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특히 버려진병의 코르크 마개는 ‘치즈의 눈’처럼 외부와 내부의 소통 가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인다. 작가는 앞으로 ‘숨을 쉬고 있는 상자’작업과 병행해꿈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할 작정이라고 말한다.“이상적인 의미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꿈을 통해 내적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울대 조소과와 일본 다마 미술대학원을 나온 그는 일본 유학시절 일본 이과전(二科展)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6월말에는 도쿄 이낙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김종면기자 jmkim@
  • 포커스 투데이/ 터키 새대통령 세제로

    아메트 네스데트 세제르(58) 새 터키 대통령은 터키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국민적인 열망을 채워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3차에 걸친 의회 투표 끝에 터키 역사상 4번째 민간인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된 세제르는 16일 7년 임기의 술레이만 데미렐 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공식적으로 터키를 이끌게 된다. 터키 중부 아프욘에서 태어난 세제르는 퇴임하는 데미렐 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앙카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면서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개혁주의자로 알려진 세제르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법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민주적 가치를 터키 사회의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제개혁과 부패한 정부의 개혁을 약속했다. 이같은 그의 약속은 터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서방 관리들로부터도 환영을 받고 있다.이는 유럽연합의 회원국 가입을 목표로 하는 터키의 노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터키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터키 군부는 새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삼가한 채 그가 비판해온 군부와 관련된 몇가지 법률이 어떻게 처리될지 예의주시하고 있어 앞으로 세제르의 개혁이 그리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nystory@
  • 여·야 떠나 정치개혁 “역시 386”

    4·13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정치신인 그룹에서 ‘386 주역론’이 급부상하면서 16대 국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386세대 당선자들은 최근 잇따른 모임을 갖고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여야를 떠나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장층이 정치의 전면에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여야의 대표적 386세대 모임인 ‘창조적 개혁연대’(민주당)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한나라당) 소속 당선자 20여명은 최근 연쇄접촉을 갖고 오는 17일 5·18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한 뒤 현지에서 정치개혁을위한 연대 결의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개혁연대의 장성민(張誠珉) 당선자는 5일 “정치개혁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수 없다는 데 미래연대와 공감대를 이뤘다”며 “향후 의정활동에서도 상당부분 미래연대측과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개혁연대와 미래연대는 이에 따라 16대 국회 개원에 맞춰 크로스보팅(자유투표) 도입을 강력추진할 방침이다. 개혁연대 관계자는 “당내 중진의원들 중에도 적지않은 인사들이 크로스보팅을 지지하고 있다”며 “가능하다면 국회의장 선출때 크로스보팅을 실시토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야 386 당선자들의 이같은 연대 움직임은 현 정치질서를 여야가 아닌 구정치와 신정치의 대립구도로 보는 386세대의 새로운 ‘정치관’이 반영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개혁연대의 한 당선자는 “386세대가 국회에 대거 등장한 것은 정치개혁 뿐만 아니라 세대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며 “전체 유권자의 60%가 20·30대에 이르는 상황을 맞아 386세대가 새천년 새정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유럽 각국은물론 60년대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40대가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한 나라는 대부분 발전한 반면 노쇄한 정치인이 이끄는 나라는 쇠퇴했다”며 “우리 정치도 2000년대에 걸맞은 인사들을 필요로 한다”고 ‘386주역론’을 거듭 주장했다. 진경호기자 jade@
  • 北-한반도 주변4강 관계개선 추이 점검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주요 국가간 관계정상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한반도 주변 4강과 유럽연합(EU),동남아 국가 등과 북한 사이의수교 및 관계개선 협상 추이를 살펴본다. ◆北·美 접촉. 남북정상 회담을 앞두고 북·미 관계가 미묘하게 움직인다.현정부 출범 이후 꽁꽁 얼어던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은 반면 지난해 9월 북·미 베를린 회담 이후 순항하던 북·미 관계는 다소 난관을 맞은 듯하다. 기대를 모았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된데다 북한의 오랜 열망인 테러지정국 해제 요구를 최근 미측이 외면한 것이다.향후 북·미 협상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겨냥한 ‘신경전’의 의미도 없지 않은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환영하면서도 북측의 의도를 면밀히탐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세워 미측의 ‘핵·미사일압력’을 우회하려는 전술 변화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웬디 셔먼 미국무부자문관의 한·중·일 3국 순방도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 수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는 24일 로마에서 ‘김계관-카트먼 라인’이 다시 가동된다.94년 제네바 합의 이행과 북한 고위인사의 미국 방문 등이 주요 의제다. 오일만기자 oilman@. ◆北·日 수교회담. 북한과 일본은 4월의 평양회담에 이어 이달 22일부터 나흘간 도쿄에서 10차본회담을 갖는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양측이 수교할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북한으로선 경제난을 풀 ‘돈’,일본에겐 안전을 위협하는 ‘뇌관’의 해소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회담에서 북한은 과거청산 문제를 먼저 해결,수교한 뒤 일본측 요구에대해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반면 일본은 과거청산과 일본인 납치의혹 등 현안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맞섰다.북한이 말하는 과거청산은 식민시대 뿐 아니라 한국전쟁 때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일본의 보상 및 배상이 핵심을 이룬다.일본은 보상이 아닌 ‘재산 청구권’의 형태라면 가능하다는 입장. 도쿄 회담에서는 일본측 요구가 보다 두드러질 전망이다.일본은 납치문제및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 강도높은 요구를할 것 같다.북한에 밀리는협상태도를 못마땅해 하는 여론을 의식해서다.북한도 지난달 24일 중앙통신을 통해 “과거청산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정치문제”라고 강조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北-中·러. 지난 92년 한·중수교로 소원했던 북한-중국과의 관계가 남북 정상회담을앞두고 밀월관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 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전격 방문하고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을 중국에 보내 전통적인 우호관계 발전 등을논의했다.중국도 5월 중 서열 2위인 리펑(李鵬)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과다이빙궈(戴秉國)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파견,국제사회에 ‘맹방’임을 과시할 예정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복원에도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지난 2월 평양에서‘북-러 우호선린 협력조약’을 공식 체결한 데 이어 4월21일 쿠바를 방문한 뒤 모스크바에 중간 기착한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백남순 외무상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에따른 한반도의 긴장 완화 해소방안과 푸틴 러시아대통령 당선자의 방북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이같은 외교활동은 중·러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고 본 때문이다. 김규환기자 khkim@. ◆北·기타국가. 북한은 유럽 및 아·태지역에도 전방위 외교공세를 펴고 있다.올해 초 이탈리아와 수교를 한 북한은 영국·벨기에 당국자들과 접촉을 갖는 등 유럽 국가들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고,머지않아 필리핀·호주와 관계정상화를 이룸으로써 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가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 97년에 이어 두번째로 북한과 영국은 오는 15∼20일 평양에서 정치부문의 대화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 카터 외무부 동북아·태평양담당 과장을 수석대표로 한 영국 외무대표단이 평양을 방문,김춘국(金春國)외무성 구주국장 등과 만나 두나라 관계개선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벨기에 외무 대표단은 14∼16일 평양을 방문,북한 당국과 같은 의제를 논의한다. 또 호주와의 수교가 5월 중 발표될 예정인데다 필피핀과의 수교도 7월 초쯤이뤄질 전망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7월 하순 열리는 ARF총회에서 이 기구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을 사실상 모두 충족하는 셈이다. 김규환기자
  • [16대 국회 초선 대해부](6)언론인 출신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온 만큼 국회에서도언론인 출신들이 정치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합니다” 언론인 출신 당선자들은 정치개혁의 선봉에 서겠다며 자신들을 주목해달라고 말한다.언론인 출신인 만큼 순발력과 끈기를 기본 덕목으로 갖추고 있다며 나름의 경쟁력도 소개한다. 민주당 김성호(金成鎬·서울 강서을)김태홍(金泰弘·광주 북을)박병석(朴炳錫·대전 서갑)박병윤(朴炳潤·경기 시흥)강성구(姜成求·경기 오산화성)전용학(田溶鶴·충남 천안갑)정범구(鄭範九·경기 고양일산)박용호(朴容琥·인천 서강화을),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경기 성남 분당갑)이원창(李元昌·비례대표)윤여준(尹汝雋·비례대표)조정무(曺正茂·경기 남양주)심재철(沈在哲·경기 안양동안),자민련 정진석(鄭鎭碩·충남 공주연기) 등 16대에 새로 등원한 언론인 출신은 14명.지난 15대에도 11명이 당선되는 등 국회 내에서 꾸준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추세다.법조 출신과 더불어 정치권 영입 대상 1순위로 꼽히기 때문이다. ‘김현철 YTN 인사개입’특종보도로 이름을 날린 한겨레기자 출신의 민주당 김성호 당선자는 “정계에 들어와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충실히 해내겠다”고 밝혔다.중앙일보 경제부 기자,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지낸 같은 당 박병석 당선자는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기자의 소신을 잃지않을 것”이라면서 “의정활동에서도 모든 판단 기준을 국민에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기자,대통령 공보수석,환경부장관 등을 지낸 한나라당 윤여준 당선자는 “기자라는 직업이 객관적인 관찰과 판단을 훈련해준 만큼 합리적인시각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장점을 살려 정치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같은 당 심재철 당선자는 “원외위원장 당시선거구민의 민원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요점 파악이 빠른 기자의 장점을 살려 지역구 사정을 낱낱이 파악했다”며 충분한 훈련과정을 거쳤음을 강조했다. 경쟁 후보가 지역구 활동 미흡으로 낙선됐다며 행자위를 지망,정치개혁은 물론 지역구 활동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를 보면 언론인 출신들이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언론인 시절의 날카로운 비판은 접어두고 쉽게 제도권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을 화두(話頭)로 내세운 언론인 출신 당선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목되는 이유다. 주현진기자 jh
  • 趙南起 中정협부주석, 대한매일 김삼웅주필과 단독 회견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조남기(趙南起)부주석은 26일 “북한은 평화를 원하며,대내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남북 정상회담도 이같은 맥락에서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주석은 대한매일 김삼웅(金三雄)주필과의 단독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하기보다는 조금씩 진전되는 과정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부주석은 “정상회담 성사로 향후 남북관계에 변화가 기대된다”면서 “남북이 오고가다 보면 믿음이 생기고 전쟁위험도 사라지며 협력도 활발해질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조 부주석은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이 당사자이며 자주적인 만남과 협의 속에서만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지난 98년 6월 정협대표단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남북한의 통일열망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중관계에 대해 조 부주석은 “두 나라 국방장관의 상호방문이 실현된것은 신뢰가 쌓였다는 반증”이라면서 “남북관계 발전이 한·중관계발전을가속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도운기자 dawn@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양측대표 대화록

    지난 22일에 이어 닷새만에 다시 만난 양영식(梁榮植)남측 수석대표와 김령성 북측 단장은 2차 준비접촉에 들어가기에 앞서 덕담을 나눴다. 김 단장은 특히 통일각을 설명하면서 ‘통일’과 관련된 화제를 유달리 많이 꺼내 앞으로의 남북회담이 통일문제에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양측 대표의 대화내용을 요약한다. ■김 단장 양 선생은 통일각에 처음이지요?■양 수석 예,처음입니다. ■김 단장 통일각은 지난 85년 세운 집으로 서너달 동안 와다닥 해제껴 지은 것입니다. 건평 700㎡로 회담장,기자회견장,연회장,회담관련 방으로 돼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많습니다. 평양과 개성에 통일거리가있고 개성에는 통일 국수집이 있습니다.국가적으로 통일위업을 달성한 사람에게 주는 ‘조국 통일상’도 있습니다.이 모든 것이 조국통일에 대한 인민들의 열망을 반영해 지은 것입니다. ■양 수석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을 거쳐 통일각으로 오는 길목이 새 천년한반도 평화의 길이 되도록 정상회담을 통해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 온 민족과 전 세계가 기대하는 만큼 결실을 거두기 위해 준비접촉에서 합의를 도출해 기대에 부응하도록 합시다. ■김 단장 맞습니다. ■양 수석 1차 접촉이 끝나고 이웃들이 김 단장의 인상이 좋고 말씨도 부드러워 생산적인 회담 전망이 밝다고 합니다. ■김 단장 과찬입니다.1차 접촉과 관련해 좋은 반향이 많았던 것은 고무적인일입니다. 양 단장 등 남측 대표들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61년만의 귀향’ 趙南起 중국政協 부주석에 듣는다

    조선족 출신인 조남기(趙南起)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부주석이 26일 국내 언론과는 최초로 대한매일김삼웅(金三雄)주필과 단독 대담을 가졌다.지난 24일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 초청으로 61년만에 고국을 찾은 조 부주석을 김 주필이 이날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22층 로열 스위트룸 접견실에서 만났다.조 부주석은 지난 99년 2월 7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김 주필을 만나 한반도문제 등 국제정세와 한·중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눈 바 있다.조 부주석은 다음 달 3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다. ■베이징에서 뵙고 서울서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서울에 오신 감회가 남다르실 줄 압니다.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13살이 되던 39년에 가족 전체가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옮겨 왔습니다.식민지 치하에서 성까지 바꿔야 하는 치욕을 안고 수탈속에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어요.할아버지가 3·1운동을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의대상이 된 것도 이주의 계기였습니다.지린(吉林)성에 정착해 살다가 1945년일제 패망 후 식구들이 “조국으로 가자”고 했지만 추수를 한 뒤 귀향하려다 38선이 막히면서 중국에 남게 됐어요.먼저 떠난 할아버지와 동생만 한국에 살게 됐지요.지게와 초가집 등 당시 고향 모습이 아련하네요.할아버지의등에 업혀 고향을 떠나던 기억도 어제인 듯 눈에 선합니다. ■지난 25일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셨지요. 김 대통령을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김대중 선생’의 자서전 ‘나의 인생,나의 길’의 중국어 번역본인 베이징 외문(外文)출판사가 펴낸 ‘我的人生我的路’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사형 선고와 수십년 동안의 핍박속에도 신념을 버리지 않은 지조와 의지,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경륜과 비전,경제적으로 사상 최고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고 외교적으로도 국가 위상은 부쩍 높아진 느낌입니다.암초와 폭풍 속에서 풍파를 이기고 배를 항구에 무사히 닿게할 수 있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근황을말씀해 주시지요. 지난 98년 3월부터 정협(政協) 부주석으로 활동하고 있어요.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정부의 자문 역할을 준비하느라 여전히 쉴 틈이 없군요.98년 6월정협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남북의 통일 열망은 같다는 인상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습니다. ■98년 평양 방문 당시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고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박성철(朴成哲)북한 부주석 등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통일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어요.방문 직후 중국 정부에 ‘대북 지원의확대 필요성’을 보고했고,중국의 휘발유 지원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평양방문 당시 긴장 완화와 통일을 위해선 ‘삼불(三不)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상대방을 흡수하지 않고,지키지 않고 있는약속들을 이행하는 ‘불이행 불용납’의 실천이 그것입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로 관계 변화가 기대됩니다.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밥도 한 숟갈 한 숟갈씩 먹을 수 있지요.한 공기의 밥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나요.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지요.남북이 오고가다 보면 믿음이생기고 전쟁 위험도 사라지고 협력도 활발해지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께서도어떤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하기보다는 조금씩 진전되는 과정에 의미를 더두시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옳다고 봅니다.중국 속담에 “뚱보는 한 입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남북관계 발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 개선에 조 부주석의 개인적인 역할을 기대하겠습니다.중국 정부의 노력도 동북아 평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문제는 남북한이 당사자이며 주역입니다.자주적인 만남과 협의 속에서만 남북관계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저 개인이나 중국은 이웃이자 조연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한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남북 화해와 관계 발전을 남은 삶의 사명으로 알고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주체사상의 북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중국은 사유재산을 헌법에 보장하는 등 사회주의형 자본주의를 추구하고있습니다.북한도 중국처럼 ‘변화된 사회주의’를 선택할까요. 북한은 최근 미국,일본 등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냐에 대해선 판단하기이릅니다. 그러나 북한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있다는 점은 확실한 듯합니다. 북한도 평화를 ‘수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도 같은 맥락에서 관찰한다면 시사하는점이 적잖을 것입니다. ■21세기 첫 해의 8월15일에 남북한과 중국,일본 4개국 최고지도자가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영상(映像)회담을 갖는다면 어떻겠습니까.조 부주석께서이같은 계획을 중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역사적인 의미가 깊군요.실현이 가능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무엇보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4개국 정상들이 어떤식으로든 현안을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한·중 교류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교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관계를 전망해 주시지요. 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두 나라간 본격적인 교류시대를열었습니다.김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주석과 함께 한·중관계를 21세기를준비하는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습니다.경제 교류에 치중되던 교류를 국방·문화·환경 등 전면적인 협력으로 끌어올린 계기였습니다. ■군사 교류도 주목을 받고 있지요. 지난해 두 나라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 실현은 그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입니다.불편했던 남북관계는 한 차원 높은 한·중관계의 발전에 짐이 돼 왔던 게 사실이에요.남북관계 발전도 한·중관계 발전을 가속화할 것입니다.한국의 대통령이 언제 중국의 군사기지를 방문하고 중국 군함을 시찰할 수 있을 것이냐를 묻는 이도 있어요.대세가 어디로 가느냐를 살펴보십시오. ■지난 3월 베이징 등 중국 일부 지역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인들의 금품을 노린 강력사건이 있었지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일탈 행동과 범죄는 있게 마련입니다.자칫 한·중관계는 물론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신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그러나 한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취업 사기’가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불법 행위이듯 이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언론 보도에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감정만 부채질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사안을 과장되게보도하는 점은 반성해야 합니다. ■중국 내 주요 문물의 한국 전시 행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북한도 중국 문물에 대해 전시를 원해요.가끔 남북한의 요구가 상충될 때도있지요. 헤이룽지앙(黑龍江)·랴오닝(遼寧)·지린성 등 동북지역에서 발견된문물에 대해서는 북한에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반면 상하이(上海) 및 충칭(重慶)임시정부와 관련된 문물에 대해선 한국 전시를 우선한다는 것이 중국입장입니다.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지도 90주년을 넘겼습니다.아직 유해도 찾지 못해 애석한 바 큽니다.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북한측에서도 도와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이 문제는 우선 남북한이먼저 논의해 합의한뒤에나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99년 10월1일 국가 수립 5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면서 세계 속에우뚝선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발전 계획을 소개해 주시지요. 지난 97년 말 열린 15차 공산당전당대회에서 중국은 오는 2010년까지 국민총생산량을 두 배 가량 늘릴 것을 결의했습니다.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발전의 길을 따라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중국인들은 지금 세계 속의 초강대국으로서 성장을 낙관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최고위직에 오른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고 있지요.성공 비결은 무엇인지요. 무엇보다 자신을 잊고 일에 전력투구해 왔습니다.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학력뿐이었지만 모두 5년 과정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정대학과 후근학원을 최우등의 성적으로 2년 만에 졸업한 것도 이같은 집념과 열성 덕택이었습니다.두번째는 ‘태산도 한 걸음씩 올라야 한다’는 정신을 잃지 않고유지했다고 자부합니다.지난 88년 중국군의 최고지위인 상장 지위에 올랐을때 300만 군인 가운데 45년 이후 출발한 사람은 나 혼자 였어요.중국군의 재정과 병차,공정을 총괄하는 후근부 부장,중앙군사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지요.또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도 성공을 도운 중요한 요인이지요. (주위에선 그가 자오즈양(趙紫陽)전 총리 때에는 농업담당 부총리직을 제의받았지만 평생 군인을 하고자 고사한 적도 있었다고 귀띔한다.지금도 중국군의 대부로서 널리 추앙받고 있는 양상쿤(楊尙昆)전 국가주석으로부터 각별한사랑을 받는 등 역대 지도자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왔다는 평이다.)■회고록 등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출판 의사는 없는지요. 군에서 퇴임한 뒤 원래 지난해나 올해쯤 내려고 마음 먹고 준비 중이었지요.그러다 정협 부주석이 되면서 재직 중엔 그와 같은 출판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의해 발표와 출판을 미루고 있습니다.한국어 번역판을 낸다면 대한매일에 맡기고 싶군요. ■가족관계를 말씀해 주시지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어요.큰아들인 건(健)은 한국의 청와대나 총리실격인 국무원 국장으로 근무 중이고,큰딸영(英)은 미국 워싱턴에서 컴퓨터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둘째딸 연(燕)도 미국에 남편 따라 가 삽니다.막내딸여(麗)는 중국에 있고 남편인 막내사위 리우쥔(劉軍)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받고 중국의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98∼99년 한양대 교환교수로와서 한국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정리 이석우기자 swlee@
  • [언론개혁을 말한다](5)”방송의 건설적 신문비판 필요”

    “언론개혁을 앞당기려면 신문에 대한 방송의 건설적인 비판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 7일 ‘신문의 날’을 맞아 특집프로그램 ‘기자정신을 찾아서’를 제작했던 MBC 교양제작국의 정길화(鄭吉和·41) PD는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다. 그는 지난 98년 PD수첩 2부작 ‘위기의 한국신문,개혁은 없는가’와 지난해12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언론통폐합편’에 이어 세번째로 이번 특집을만들었다.3년만에 3부작을 완성한 셈이다.정 PD가 한국언론,특히 한국신문의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 신문을 방송이 비판하지 않고서는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제대로 알릴 수 없습니다”언론개혁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KBS·MBC 등 공영방송이 나서 신문을 견제·감시하고,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그는 “그동안 언론계의 관행이었던 ‘침묵의카르텔’을 극복하고 매체간의 건전한 감시·비판이 이뤄져야 상호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PD는 신문개혁의 열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확산력을 가진 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현재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있는 신문개혁에 대한 논의들을 방송 프로그램에 반영할 수 있다면 정책적·제도적 논의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본다.그는 “특히 시민단체들이 언론모니터 등 활발한 언론감시활동을 펼칠 때 방송의 신문비판에 힘을 실어줄 수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본격적인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라고 밝힌 정 PD는 “언론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신문비평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미경기자
  • [사설] 정치권의 새 바람

    여야 386세대 당선자들이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일으키고 있다.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와 통일을 위해 직접 싸웠거나그같은 현장 투쟁에 동조하면서 각자 전문직으로 내실을 쌓아온 정치 신인들은 여태까지의 낡은 정치행태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일으켜 세우려는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여야 386세대 정치 신인들은 각각 모임을갖고 특정 계파에 편입되지 않고 민족적 사안에 대해서는 초당적인 대화와협력을 모색하자고 뜻을 모으는가 하면,민주적으로 결정되는 당론에는 따르지만 계파 보스의 눈치나 보는 줄서기는 하지 않기로 결의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젊은 정치 신인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지역주의 청산,계파정치 타파,당리 당략적 정쟁의 지양,여야간의 생산적 정책대결,교차투표와 표결실명제등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정치에 뜻을 세운 젊은 정치인들이라면 우리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역주의를 당연히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또한 계파정치의 타파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지금까지의 정치는 신진정치인으로 하여금 계파 보스 아래 줄서기를 강요해 왔다.이번에 당선된 신인들도 공천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특정 보스 밑에 줄을 섰을지 모르나유권자들이 당선시켜준 만큼 더이상 줄서기를 할 이유가 없다.15대 국회에서정치 신인들이 당총재나 계파 보스를 위해 돌격대로 설치다가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퇴출당한 사례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또한 정치에 입문하려는신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는 현행 선거법을 젊은 당선자들이 앞장서서 바로잡겠다는 움직임은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정치 신인들의 주장 가운데 주목을 끄는 대목은 여야간에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타협할 것은 타협하는 선진정치의 모델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다.사실 지금까지 국회안에서 벌어진 여야 대결은 당리당략을 앞세운 수준 낮은정쟁이었지 정책을 둘러싼 대결이 아니었다.생산적인 정책 대결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보좌진을 강화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은 큰 기대를 걸게 한다.의정활동이 정책입안 중심으로 발전하자면 표결실명제는 당연하며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교차투표를 허용해야 한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정치 신인들과 기성 정치인들간의 갈등 가능성이다. 기성 정치인들을 한묶음으로 몰아 배척해서는 안된다.새로운 바람이 저항을받지 않고 탄력을 얻기 위해서도 독선적인 태도는 극력 경계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를 다짐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선배가걸었던 길을 걷지 않아야 한다.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그들의 다짐을 지켜볼 것이다.
  • 94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뒤 김일성,철도연결 준비 지시

    지난 94년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후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은 남북간철도 연결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이같은 사실은 기자가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평양을 방문,북측 인사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또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이 발표되자 북한주민들 역시 이를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발표후 북측 안내자인 민족대단결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난 94년 최고위급회담 개최가 합의된 직후 김일성 주석이 ‘남북간 철도를이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발표되던 날 남한기자로는 유일하게 평양에서 취재를하고 있던 기자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평양시민들이 통일에의 열망과 기대로긴장감이 들 정도로 부풀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한편 이번 방북에서는 조선컴퓨터센터·평양프로그램센터 등을 방문,북한의컴퓨터산업·정보화현황 취재와 함께 임시정부 요인 조소앙 선생의 비서를지낸 김흥곤씨(75)로부터 6·25 당시 납북된 애국지사와 제헌의원 등 납북인사들의행적과 최후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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