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열망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마네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안정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강동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대피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55
  • ‘빠른 삶’ 접고 ‘느린 삶’ 으로...“경쟁 염증” 잘나가던 CEO등 귀농 자연품으로

    “처음엔 ‘나노(nano·10억분의 1)초를 다투는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무슨 부질없는 행동인가.’라는 자괴감도 느꼈지만,이젠 ‘느리게 사는 삶’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3년차 농사꾼 안병덕(49)씨는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20년 남짓 쌍용그룹의 건설·정보통신 계열사에서 일했다.그는 3년전 정보통신 벤처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끝으로 서울생활을 접었다. ●49살 퇴물이 농촌선 청년 경기 고양시 벽제3동 산 1번지가 안씨의 일터다.매일 아침 일산의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출근’해 보리와 콩,상추,고구마 등을 키운다.비 오는 날에는 고구마를 다듬고 콩을 깐다. “콩을 까다보면 지나온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다가 마침내 내가 콩을 까는지 콩이 나를 까는지 모를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농사가 생각보다 쉽진 않았지만,40줄이면 ‘퇴물’ 취급 당하는 IT업계의 생리에 익숙해 있던 안씨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첫해 안씨의 ‘소출’은 200만원.직장 다닐 때 연봉의수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땅 속 깊이 박힌 풀뿌리를 중간에 끊지 않고 뽑아내려면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포착해 비틀듯 돌려빼야 합니다.” 그는 농사를 “언어가 필요없는 자연과의 대화”라고 예찬한다.안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졸업하는 대로 환경운동을 하는 아내와 함께 농촌에 완전히 뿌리를 내릴 작정이다. ●내가 콩을 까는지 콩이 나를 까는지 21세기 신판 러다이트(Luddite)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기에 실직위기에 처한 수공업자들이 전통적 삶의 양식을 무너뜨리는 기계 파괴운동을 벌였다면,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컴퓨터 문명과 급속한 사회발전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생활실천운동이 번져가고 있다. ‘느림’과 ‘자연’이란 화두가 대도시 전문직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경쟁과 효율성,속도가 지배하는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귀농(歸農)’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농촌생활이 관심사로 떠오른 5∼6년전에는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이농 1.5세대의 ‘생계형’ 귀농이 주류였다.반면 최근엔 농촌이란 공간에서 ‘대안적 삶’을 개척하려는 ‘대안형’이 새로운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행에서만 23년을 일한 정통 ‘은행맨’ 함찬호(50)씨는 지난해 4월 부국장급 간부직을 내던지고 강원도 화천에 둥지를 틀었다.그는 “극심한 경쟁에서 비롯된 긴장과 피로감에 염증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연고도 없는 화천을 택한 것은 물이 맑고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일거리가 없는 지난 겨울 그는 독서와 사색으로 30년만에 ‘느림 속의 자유’를 만끽했다. ●극심한 경쟁 피로감에 염증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2년전 경북 상주에 정착한 이찬배(44)씨는 밭갈이에 고추종자 키우는 일로 분주하다.산 자락에 있는 밭 1800평에 올해는 고추와 과일을 키울 작정이다.중학생인 두 딸과 함께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 농촌생활과 유기농법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그는 “4인 가족이 생활하는 최소단위의 농사모델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는 “99년을 정점으로 줄어들던 귀농인구가 1,2년 전부터 고학력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귀농은 단순히 거주지와 직업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세영 박지연기자 sylee@
  • 김각영총장 전격 사퇴,대통령·평검사 대화후 발표

    김각영 검찰총장이 9일 최근의 검찰 인사파동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지난해 11월11일 ‘피의자 사망’ 사건의 여파로 물러난 이명재 전 총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지 4개월여 만이다. 김 총장의 사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금명간 후임 총장을 선임할 예정이다.후임 총장은 사시 13회 또는 14회에서 임명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부인사의 기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총장은 이날 오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간 대화가 끝난 뒤 “인사권을 통해 검찰권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확인됐다.”면서 “검찰권 행사의 최고 책임자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부적절한 사람으로 지목된 이상 검찰총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최근 검사들의 성명 사태를 야기한 근본 원인은 모든 검찰인의 열망인 공정한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법에 의한 신분보장이 이뤄지고 능력·자질·품성·공과에 관하여 객관적 검증작업을 거친 투명한 인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이날 검찰인사 파동과 관련,“검찰 인사권은 대통령과 장관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권한”이라며 “대통령과 장관이 여러 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에 입각,인사권자로서 당초 계획된 인사를 법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오후 정부 중앙청사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전국 평검사 40명과 공개토론을 가진 자리에서 “현 검찰총장을 포함한 상층부를 믿지 못해 인사를 맡길 수 없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인적 청산의 특별한 표적은 없다.”면서도 “문제 있던 지도부를 빨리 교체하고 제도를 바꿔 나가는 게 개혁의 지름길”이라고 말해,수뇌부 퇴진을 비롯한 검찰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기정사실화했다.그는 “과거가 없는 사람을 지휘부로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제도로서 검찰인사위원회를 구성하고,검찰 인사의 정치적 중립이나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하겠다.”면서 “특히 검찰총장 인사 때는 평검사의 의견을 듣겠으며 검찰 지휘부 인사위와 부장검사·평검사 인사위를 따로 구성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총장 사의표명후 “현재 공석인 법무연수원장과 서울·부산·대전고검 등 고검장급 4명에 대한 인사는 후임 검찰총장의 임명과는 관계없이 10일 단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검장급 인사가 단행될 경우,승진에서 탈락한 검찰 고위간부들의 잇따른 동반 퇴진이 예상돼 대폭적인 교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곽태헌 강충식기자 tiger@
  • 요즘 어떻게/ 광주항쟁 산 증인 송기숙 前 전남대 교수

    “광주는 그가 있어 광주였다.”(시인 고은),“교육 민주화의 맨 앞줄에 선 사람”(평론가 백낙청),“한 대학에서 함께 숨쉰다는 것 자체가 설렘”(전남대 독문과교수 김용대). 3년 전,36년 동안 가르치던 일을 접고 물러난 송기숙(68·전 전남대교수·국문학)에 대한 평가다.대학가에서는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이 시대의 스승이자 사회운동가,소설가 등 삼위일체로 지난한 삶을 버텨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지인들은 어쭙잖은 옛날의 명성을 팔아 돈과 권력에 자신을 내맡긴 배반의 역사를 경험했던 현실에서,들고 날 때를 정확히 알고 스스로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자리를 내줬다. 임 2년 전인 98년부터 광주에서 가까운 전남 화순에 거처를 마련하고 부인 김영애(65)씨와 못다한 오붓함을 즐기고 있다.알맹이 없는 형식에 넌더리를 내는 그이기에 정년 퇴임식도,명예교수직도 마다했다.글을 쓰면서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두번 맥주집에서 만나 소회를 푼다.황석영의 ‘황구라’처럼 그의 별명도 ‘송구라’다.양의 동서를 넘나드는 천변만화로 좌중을 압도하는입담이 걸쭉하다. ●나무꾼은 불이 나면 불부터 꺼야 현대사에서 70년대는 유신독재,80년대는 군부독재로 점철됐다.교정과 거리는 최루가스로 뿌옇고 교단은 무너지고 감옥은 학생들로 넘쳐났다.그는 이 때 두번에 걸쳐 2년 동안 투옥된다.유신독재가 독이 올라 있을 즈음인 78년 6월27일.“교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자체에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겠다.”며 떨쳐 일어선 그는 ‘교육지표’ 사건 주동자로 붙잡힌다. 백낙청에게 부탁해 기초한 선언문을 연세대 해직교수인 성내운에게 전달하고 동료교수 50여명의 서명을 받아 해외 언론과 대학가에 배포한 죄목이다.선언문 내용은 국가주의적 교육사상을 더 이상 강요하지 말라는 것.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의 지지 성명과 전국 대학가 시위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훗날 이 사건은 교육현실의 모순과 교육사상의 흐름을 되짚는 이정표로 자리매김된다.스스로도 “참 대단한 사건이었다.광주민중항쟁의 전사(前史)”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이 때 해직되면서 6년만인 84년에야 교단에 돌아온다.두번째 체포는 80년 광주민중항쟁 때 학생수습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한 죄목이다.이 대목에서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절반 가량 태운 뒤 말문을 열었다.“분을 삭이지 못할 때였지.일주일 내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어.오죽이나 술을 마셨으면 고은 선생이 ‘소주 1000병’이란 별명을 나에게 붙였겠어?” 그는 지독한 애주론자다.말술을 먹고도 건강한 비결을 선친의 덕으로 돌렸다.어쩌면 술만이 지쳐 있던 그의 심신을 지탱해줬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이야기 내내 곧추세운 노익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그의 젊은 날 혈기가 묻어나온다.“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기를 펴고 살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승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는 5·18 민중항쟁 이후 관련 연구소를 만들어 자료를 정리하고 책으로 엮어냈다.영·호남 지방사회연구회 연합회(현 지역사회학회)도 교수 200여명으로 구성해 지역의 벽을 깨뜨리고자 했다.또 94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맡아 문단에서 할 일을 밀어붙였다.오늘의 교육풍토를 묻자,대번에 위기상황으로 진단했다.대학에서는 교양과목 대신 영어회화가 차지하고 있고 기능인만을 길러내면서 보편적 가치가 홀대받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초등학교는 민주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기본자질을 가르치는 데 뒷전이라고도 했다.교수란 모름지기 사람답게 살면서 시대에 맞는 가치를 찾아 의로운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우울한 터널에서 빛을 보듯 그는 20∼30세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다.그는 컴퓨터 도사다.하루에 2시간 가량 인터넷 바다로 들어가 축약된 언어,막힘 없는 쌍방식 토론에 미소짓는다.심지어 이들이 내뱉는 거친 언어도 카타르시스 순기능으로 이해했다.“컴퓨터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로 올라서면 지역감정이 눈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들의 격의없는 토론과 건강함을 이유로 들었다.투쟁의 역사가 적잖은 한총련이 일본의 적군파(赤軍派)류로 전락하지 않고 균형감각을 찾아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젊은이들에게는 개인적 관심보다 사회적 관심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은 역사적 시각이 바탕이다 기숙은스스로도 교수냐,작가냐의 물음에는 즉답을 망설인다.평론가 임환모씨가 “그의 작품은 현실과 인간적 진실 사이의 대립을 바탕에 깔고 전일적 인간에의 열망을 강하게 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시피 때로는 글로써 저항했고,때로는 교육변혁 현장의 맨 앞줄에 섰다. 그는 64년 평론가로 출발했으나 66년 이후 소설가로 각인된다.작품마다 민중의 저력을 담았다.‘자랏골 비가',‘암태도',‘녹두장군'(12권),‘5월의 미소' 등 분단의 애환을 담은 단편작은 가짓수에서 단연 으뜸이다.현장을 중시하는 그가 녹두장군을 쓸 때 일화를 들려줬다.백산전투에 참가한 농민군이 1만명이었으나 전주봉기에서는 그 절반으로 줄었다. 역사학자 누구도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백산전투는 음력 4월 말로 보리가 필 때다.민중의 배고픔이 극에 달할 때였다.전주전투는 보리죽이라도 먹을 수 있을 때였다.”라고 결론을 내려 지금도 학회에서 정설로 통한다.‘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도 민중의 한이 스며 있다.풀죽으로 연명하다 보면 변이 굵어져 실제로 똥구멍이찢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역사적 인과관계를 두고 글을 쓴다.그는 얼마전 틈틈이 써오던 단편집 2권의 퇴고를 마쳤다.앞으로 2년을 잡고 국내 설화(說話)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설적 재미로 덧칠하는 일에 매달리고자 한다.설화에는 민족정신과 의식이 녹아 있고 민족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화순 남기창기자 kcnam@
  • ‘참여정부와 시민운동’ 좌담 “정부 견제하며 개혁엔 적극 협력을”

    1989년 경실련 출범을 계기로 본격화된 한국의 시민운동이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그동안 시민운동은 정치·경제·문화·환경·복지 등 사회 전분야에서 국가와 시장의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함으로써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이끌어왔다.동시에 ‘비판적 공중(公衆)’의 형성을 촉진,시민사회의 활성화에도 기여했다.그러나 한편으로 국민의 정부 때는 의약분업,낙선운동,언론개혁 등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은 정권과 유착됐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 ‘홍위병’이라는 악의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대한매일은 참여정부의 출범을 맞아 시민운동의 공과를 짚어보고 새시대에 걸맞은 시민운동의 좌표를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좌담에는 진보적 시민운동 진영의 논객으로 활동해온 상지대 정대화 교수,‘건강한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박효종 교수,지난 99년 출범 이래 예산감시와 개인정보보호운동을 펴고 있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국민의 정부 하에서의 시민운동 하처장 = 시민운동은 국민의 정부 5년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그 정점에 총선시민연대가 있었다.1000여개의 단체가 모였다는 것만도 기적같은 일이었다.총선연대 이후에는 언론개혁·의약분업 등의 부문별 이슈와 관련된 시민운동이 활발했다.지금 시민운동은 차이를 드러내면서 분화하는 시기다. 박교수 = 국민의 정부를 거치며 질적·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정부에 대한 통제와 감시 기능이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지난 5년간 시민단체들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워낙 높다보니 김대중 정부와 의제를 공유하는 측면이 많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혁의 당위성에는 동의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방향과 방법론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도 쓴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교수 = 물론 견제와 비판이 중요하다.하지만 국가·정부와의 선택적 협력이 필요한 시기도 있다.만약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과거의 재야운동처럼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워야 한다.그러나 정부가 변화와 개혁을 추구한다면 시민운동이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론 딜레마는 있다.정부가 개혁을 하고는 싶은데 능력이 부족해 못하는 경우다.이런 상황에서는 시민운동이 정부와 한몸이 될 필요도 있다.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홍위병’이란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선택적 협력이 끝나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비판과 감시 임무를 수행했다. 하처장 = 언론개혁·의약분업 문제가 비판세력의 표적이 됐다.시민운동 진영 스스로 오해를 받을 만한 구석은 없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슈를 제기했던 본래의 의도와 가치관이 잘못됐던 것은 아니다.이 두 가지 사안의 경우 시민운동이 정부의 의견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시민운동의 의견을 수용했던 측면이 크다. 사실 시민운동이 내건 이슈와 정책적 공통분모가 가장 많은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하지만 아무도 시민운동과 민노당의 관계를 문제삼지 않는다.문제를 제기한 측이 이미 정치적 선입견을 갖고 시민운동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박교수 = 시민단체가 권력화됐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다만 ‘유착설’에 대해 무작정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반대한다.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거에 비해 책임과 부담도 늘어났다.시민단체의 의견이 정부에 의해 정책화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시민운동이 비판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교수 = 시민단체가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을 두고 ‘권력화’라고 비난해서는 곤란하다.기득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개혁 프로젝트를 방어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영향력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정부와의 유착은 물론 비판받아야 한다.그러나 개혁을 추진하면서 불가피하게 가까워졌던 것을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 된다. 치적 중립성을 잃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 자체도 잘못된 논리다.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모든 운동은 정치화되기 마련이다.시민운동도 예외는 아니다.정치적 중립이란 것을 어느 정당도 편들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다.이는 결국 시민운동더러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시민운동의전망 박교수 = 노무현 정부 역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다.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폭넓게 형성돼 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개혁인가 하는 점이다.우리사회에 개혁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면 시민단체의 역할은 자명해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현대사회는 경쟁적 다원주의 사회다.요컨대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이 상호경쟁하면서 통합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경우 방향과 목표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문제는 경제개혁이다.경제개혁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견해는 개인과 집단별로 큰 편차를 보이기 때문이다.중립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개혁의 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정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처장 = 시민운동 전체에 정치적으로 통일된 입장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문제다.개별 시민단체만 하더라도 내부에 이념적으로 완결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노무현 시대에는 경제·사회·남북문제를 둘러싸고 이같은 내적인 차이와 불일치가 더욱 커질 것이다.개별 운동단체들로선 정부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념과 개혁의제들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교수 = 문민정부와 국민정부의 시민운동에 대한 입장은 ‘시민운동 활용론’에 가까웠다.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명칭에 걸맞게 시민사회에 더욱 근접하려고 시도할 것이다.시민단체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가치지향에 공감하고 동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의미다.정부가 시민운동의 가치를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시민운동이 스스로 거리를 두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일부에서 정부와 시민운동의 ‘개혁연합’의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그다지 현실성이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지난 정부에서 시민운동을 정책적 하위파트너로 삼기 위해 ‘제2건국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박교수 = 아무리 개혁열망이 강한 정부라도 권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일반적 속성을 띠기 마련이다.이런 점에서 소수정권이 시민운동에 접근하는 것이 오로지 개혁이라는 순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중 정부는 의회기반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대의제를 우회해 시민사회에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취했다.이것은 단순한 ‘연대’의 차원을 넘어선 ‘이용’,‘활용’의 수준이었다.‘유착설’이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정부가 개혁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단체를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에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교수 = 시민운동이 지지하는 것은 개혁이지 특정 정부가 아니다.물론 소수파 정부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대의제의 틀을 우회하는 정치전략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만약 권력강화라는 목적을 위해 대의제라는 절차를 회피하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그러나 대의제 역시 절대선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대의제는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가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지방분권·지방자치의 확대를 통해 직접참여의 길이 열린 만큼 대의제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오히려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를 병용하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박교수 = 참여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대의제는 집단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통제해야 할 비합리적 격정같은 것들을 순화시킬 뿐 아니라 의사결정 당사자의 책임성도 강화한다. 하처장 = 시민운동이 대의정치의 틀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대의제 역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대의제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이런 문제들은 시민의 자율적 참여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민주주의를 민주화한다.’는 차원에서도 시민의 직접참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시민운동,무엇을 할 것인가 정교수 = 사안에 따른 협력과 비판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세계화·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네트워크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운동의 개념과 외연을 명확히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벌·정치개혁에 반대하는 운동은 시민운동이 아니다.모든 운동이 다 시민운동은 아니라는 것이다.개혁에 저항하는 반역사적 움직임에 시민운동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들의 활동을 시민사회의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용인하는 것은 시민운동을 모욕하는 것이다. 하처장 = 각각의 시민단체가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사회가 분화하고 복잡해지면서 과거 부분적·지엽적 이슈로 간주됐던 사안이 주요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여성·환경·인권·평화운동 등이 중요한 예다.각 단체가 전문적 운동영역을 확보하고 꾸준히 새로운 이슈를 생산한다면 시민사회도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고 정부와의 유착이란 비난도 꼬리를 감출 것이다. 박교수 = 시민운동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이념과 가치관은 점차 약화되고 경쟁적 다원주의가 시민사회 전반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 사이의 이념·가치관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시민사회 내부의 ‘차이’와 ‘이질성’을 인정·포용하는 새로운 시민적 감수성이 절실하다. 장택동 이세영기자 sylee@
  • [기고] 참여정부시대의 3·1정신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할 수 없는 것이요.(중략)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하고자 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4000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든지 남의 노예가 될 것은 아니다.”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생이 법정에서 한 말씀의 일부이다.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5000년 민족사를 이어 온 힘은 바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한용운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존의식이야말로 수많은 국난을 이겨내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정신적 에너지였으며,국가발전의 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여든 네번째 3·1절을 맞는다. 우리는 지난해 월드컵대회 때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앞,그리고 지방 곳곳의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됨을 느꼈다. 1919년 3월에도 이 땅은 민족자존을 위한 함성으로 뜨겁게 달구어졌었다.만세운동의 함성에는 지역·계층·종교·세대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오직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열망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민족에 대한 애착이요,자긍심이다. 돌이켜 보면 3·1운동은 선열들께서 민족자결주의의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여 이를 활용한 거사였다.이 때 표방된 민족통합과 국제평화,민주이념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이다. 3·1정신은 첫째,민족 모두가 하나되어 조국독립을 외쳤던 대동단결의 정신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3·1운동에서 드러난 민족통합의 정신이야말로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 가치가 아닌가 싶다. 둘째,세계평화와 인도주의 정신을 들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서는 “우리의 꿈은 결코 구원과 일시적인 감정으로써 타를 질축 배척함이 아니라 동양평화,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에 이바지한 데 있다.”라고 천명하였다.이러한 정의·인도·평화의 정신은 대립과 긴장,분열을 극복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주고 있다. 셋째,3·1운동의 결과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민주공화국의 기치를 내걸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민족사에 새겨놓음으로써 민주인권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적 갈등과 이기주의,가치관 혼란현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또한 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북한 핵문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당면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주춧돌을 놓아 나갔으면 한다. 특히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대통합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국가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낼 수 있는 국민통합의 바탕 위에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지식문화강국 실현 등의 국정과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맞는 3·1절에 즈음하여 선열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살려 민족자존을 지키고 나라의 부강도 기대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김 종 성
  • 노무현대통령 취임/취임사에 담긴 국정5년...평화·공생 토대 동북아중심 도약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취임사를 통해 5년의 임기 동안 역점을 둘 ‘참여정부’의 방향을 제시했다.‘참여정부’의 청사진격인 취임사에는 동북아시대를 맞아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겠다는 내용을 포함해 북핵,한·미관계,정치·경제·사회분야 개혁 등 5년간 지향해야 할 과제들이 모두 담겨 있다. ●동북아시대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동북아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세계화 시대에 한반도라는 틀에만 갇혀 있을 수 없는 만큼 우리의 미래를 위해 동북아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게 논지다.실제로 동북아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의 20%나 되고,한국·중국·일본의 인구만 해도 유럽연합(EU)의 4배가 넘는 경제적·지리적 이점을 살리면 21세기 동북아시대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다리”라면서 “이런 지정학적 위치가 과거에는 고통을 주었지만 오늘날에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설파했다.지리적인 요인으로 과거에는 침략의 아픔도 있었지만,앞으로는 미래지향적으로 또 적극적인 자세로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나가자는 뜻이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구입해 평양·신의주·중국·몽골·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도 동북아시대를 열망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읽혀진다.이렇게 되려면 평화와 공생의 질서가 동북아에 구축돼야 하고,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공조와 협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북핵,한·미관계 동북아시대의 꿈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해 남북간 실질적 협력 관계로 이끌겠다는 ‘평화번영정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미관계는 한반도 평화와 직결돼 있다.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무엇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혹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북한을 직접 겨냥했다.노 대통령은 ‘선(先) 북핵포기,후(後) 대북지원’ 의사도 명확히 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경고와 함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도 거듭 강조하면서 전쟁반대 입장도 천명했다.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미국·일본·중국·러시아·EU 등 관련 국가와 긴밀한 협력을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노 대통령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한·미 관계다.노 대통령이 양국 관계를 ‘호혜평등의 관계’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기존의 전통적 한·미 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예고했다는 해석도 있어 주목된다. ●경제·사회개혁 노 대통령이 특히 공정 경쟁과 투명성 확립을 강조한 데서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대통령선거 공약사항이기도 한 지방분권에도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그는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고,중앙은 이를 도와야 한다.”면서 “비상한 결의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교육개혁,계층간 격차 해소,국민통합,각종 차별시정도 강조했다.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에 무게를 두겠다는 그동안의 철학과도 물론 맥을 같이한다. 곽태헌기자 tiger@
  • 시라크 ‘이라크戰 반대’ 분석“美 일방적 패권주의 견제 EU내 영향력 확대 꿈꿔”

    “다원적 사회가 창조될 수 있도록 프랑스가 촉매역할을 하겠다.세계무역기구(WTO),선진서방7개국(G7),국제통화기금 등에서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옹호자가 되겠다.”(2월21일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담) “2차 이라크 안보리 결의는 필요 없다.프랑스는 2차 결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2월 17일 브뤼셀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담) “EU 가입 후보국인 이 국가들(동유럽 국가들,특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지지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 이라크 위기속에 자크 시라크(70) 프랑스 대통령이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미국에 맞서는 세계적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 ‘노(No)’라고 당당히 말하며 반이라크전 국제연대를 이끌고 있는 시라크 대통령의 언행은 그동안 힘의 우위로 일방주의를 펴온 미국에 반감을 가진 나라들을 대리만족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시라크 대통령의 이런 행보 뒤에 프랑스의 옛 영광을 되찾고 미국을 견제하는 세계 지도자로 역사에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그의 정치적 야망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반미 다극화 질서의 주역으로 시라크 대통령의 반이라크전 주장은 전세계적인 반이라크전 시위와 80%를 넘는 반전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급속하게 힘을 얻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이유로 미국의 힘을 앞세운 일방주의에 대한 반대와 함께 국내적으로,프랑스 국민들의 압도적인 반전 여론,500만명에 이르는 국내 이슬람 인구에 미칠 악영향 등이 꼽힌다. 정치 분석가들은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프랑스를 탈냉전시대에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요 국가로 만든 세계적 지도자로 역사에 남고자 하는 개인적인 꿈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5년간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좌우동거 정부라는 불안정한 정치체제속에서 제 역할을 못한 것은 물론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은 열망이 매우 높다.시라크 대통령은 미국에 맞서 이라크 전쟁 저지 여론을 주도하면서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반이라크전 국제연대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미국을 견제하고 유럽의 지도국으로서 프랑스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내세워 독일을 제치고 반미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반미 다극화 주역에 못지않게 시라크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유럽내 지도국으로서의 위상 확보이다. 프랑스는 1990년대 이후 독일 통일과 유럽연합(EU)의 확대라는 변화속에서 유럽내 위상과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프랑스의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연구소는 “시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위기를 계기로 팽창일로에 있는 EU 내에서의 프랑스·독일 공동 지도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 맹주 노리나’경계심도 유럽내 지도국 위치를 노리는 시라크의 이러한 의도에 대한 경계심도 적지 않다.스페인과 이탈리아,포르투갈,덴마크가 영국에 가세해 프랑스를 견제하고 나섰다.또한 옛 공산권 13개국이 미국의 이라크공격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이 가운데 8개국은 2004년에 EU에 가입할 예정이다.시라크 대통령은 이들 8개국에 대해 “EU가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불편한 심사를 토로했으나 이것이 갈등을 더 증폭시켰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영국과의 관계 회복과 높아진 국제위상 유지 등 이라크 위기 이후에 전개될 상황에 대비한 장기비전을 갖고 있는지 우려한다. 김균미기자 kmkim@
  • 타임지 평양르포 “北 전시체제 돌입 징후없다”

    최근 북한이 전시체제에 돌입했음을 시사하는 징후는 없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 최신호(17일자)가 인터넷판에서 11일 보도했다. 타임은 지난주 평양을 방문했던 특파원이 작성한 ‘전쟁을 향한 열망?’이라는 제하의 평양발 기사에서 이같이 전했다. 타임은 지난주 평양을 방문했을 때 관영 언론들이 반미 구호의 수위를 높이고,민방위 훈련기간에 공습 사이렌이 울리긴 했지만 평양이나 비무장지대에서 다른 특별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타임은 이어 최근 북핵 위기의 외교적 해법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이 진정 방아쇠를 당길 만큼 미쳤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수년간 비무장지대 건너편의 북한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아직 아니다.”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은 다만 현상태에서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열중해 있는 가운데 미국과 북한이 서로 과거에 관한 얘기만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며,이로 인해 서로의 발언을 위험스럽게 오해하는 실수나 사고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지적했다. 타임은 따라서 긴장이 점차 고조될 경우 북한의 다음 조치는 지난 98년에 했던 것과 같은 미사일 시험발사가 될 수도 있으며,보다 더 위험한 다른 도발들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워싱턴 소재 맨스필드 태평양문제센터(MCPA)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고든 플레이크는 이라크전 발발 이전이나 직후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거나 핵 보유를 천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북한이 오판할 위험성이 매일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
  • [공직자 에세이] 지방자치 발전 막는 구시대 법령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우여곡절 끝에 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95년 자치단체장이 주민에 의해 직접 선출됨으로써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에 의해 실현된 지방자치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그 주민의 노력과 의지 못지않게 그에 합당한 법률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현행 법령제도가 지방자치 발전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규범을 제정하는 주체인 국회,정부 등 입법 주체가 공정하고도 시대요청에 적합한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법을 할 경우 지켜야 할 일정한 원칙들이 있다고 본다. 지방자치시대에 입법자들은 우선 당해 법령이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지방자치법상의 지방분권을 위한 사무 배분원칙이 관철 되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 입법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입법자들은 지방자치권을 보장하려는 의지 없이 단순히 피상적으로 상위법 우선원칙에 입각한 입법정책적 고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본질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로 규정하는 것이 적합한 사무를 국가사무화함으로써 과다한 기관위임사무를 양산해 자치단체를 중앙정부의 감독 및 통제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이에따라 자치단체의 창의성·자율성·특수성을 위축시키고 있다. 또한 행정업무를 수행할 책임과 의무는 자치단체에 부여하면서 권한은 국가 등 위임기관이 갖고 있어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더욱이 기관위임사무에 대하여는 필요한 경비의 전부를 국가가 부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에 사무처리 의무만을 부여하고 소요경비를 제대로 부담하지 않아 자치단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지방자치시대에 이처럼 지방자치권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인 자치사무를 인정하려는 데 인색한 것은 법령의 입법과정에서 입법자들이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지방자치권에 대한 이해부족 등 자치마인드가 형성되어 있지 않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최근에 있었던 부단체장의 국가직화 등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 시도에서 입법자들의 무감각하고 안이한 지방자치제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엿볼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과제인 풀뿌리 지방자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행 지방자치제도 관련법령의 입법개선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지방자치시대에 걸맞은 입법원칙과 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원칙에는 지방자치권 보장이라는 합헌성이 전제된 바탕 위에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보장과 국가적 통일성 유지라는 양측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설정되어져야 한다. 또한 전문가,자치단체와 주민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지방자치의 본질이 존중될 수 있도록 민주적인 입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방자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입법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더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 컬럼비아호 공중폭발

    ◆사고 원인 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폭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륙 당시 왼쪽 날개에 받았던 충격이 사고 원인으로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국장인 론 디트모어는 1일 “지난 16일 발사 당시 우주선의 연료탱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왼쪽 날개를 쳤다.”면서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좀더 진행된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그 충격으로 컬럼비아호가 귀환 도중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에는 파편과의 충돌이 왼쪽 날개에 있는 온도감지기를 손상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이제는 관련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NASA측의 설명에 따르면 1일 컬럼비아호가 대기권에 재진입하면서 왼쪽 날개에 있는 온도감지기가 손상됐고 이로 인해 타이어 압력이 떨어지는 등 과열된 열이 선체 내부로 흡수돼 구조상의 과열징후가 감지됐다는 것이다.이런 내용은 실제 컬럼비아호의 최후교신에서도 포착됐다.휴스턴의 NASA팀은 최후교신에서 타이어 압력 메시지를 컬럼비아호에보냈으나 이에 대한 대답이 회신되던 중 폭발이 일어났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륙 당시 왼쪽 날개에 받은 충격으로 손상된 온도센서 등이 대기권 재진입 때 엄청난 온도를 견디지 못해 폭발사고로 연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당시 양날개 온도는 약 1649℃에 달했다.그밖에 컬럼비아호의 노후화도 사고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컬럼비아호가 지난 81년 첫 비행을 했다는 점에서 20년이 지난 우주선의 노후화에 따른 금속피로나 우주선 외피 일부분의 이탈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CNN 인터넷판도 2일 여러차례 기술적 결함을 드러냈던 컬럼비아호를 지난 2001년에 퇴역시키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예정돼 있던 연구 임무 때문에 계속 가동했다고 전했다. 컬럼비아호는 1999년 9월 이후 17개월간 9000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보수를 받았으나 수천파운드의 연료가 새어나와 궤도에서 균형을 잃은 적도 있고 엔진작동을 통제하는 컴퓨터 이상으로 비상 백업시스템이 작동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 당국은 사고 당시 컬럼비아호가지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인 40마일 상공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폭발 사고에 테러조직이 연계됐다는 정보와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션 오키페 NASA 국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지상의 어떤 물체나 사람에 의해 폭발이 일어났다는 징후는 없다.”면서 테러 가능성을 일축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을 약속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kdaily.com ◆이모저모 1일 오전 9시10분쯤(현지시간) 발생한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은 캘리포니아·텍사스·알칸소에서 루이지애나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평온한 아침을 일순간 깨뜨렸다.현지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폭발 순간 ‘쾅’하는 강력한 폭발음과 집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날 사고는 17년 전 챌린저호의 참사를 기억하고 있는 미국인들과 42년 역사의 미 항공우주국(NASA)에 다시 한번 큰 상처와 충격을 주었다.세계 각국은 일제히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참사로 우주탐사의 노력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우주선 잔해 판매 조사 이런 가운데 2일 인터넷 경매 사이트e베이에 컬럼비아호 잔해를 판매한다는 내용이 올라 텍사스 검찰이 조사에 들어갔다.마이크 셸비 담당 검사는 이베이에서 컬럼비아호 잔해를 판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보고에 따라 사실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셸비 검사는 “이런 종류의 일에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며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부 재산 절도죄와 수사 방해죄로 고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컬럼비아호,사용 중단됐어야 컬럼비아호는 오래 전에 사용되지 않았어야 했다고 미 우주왕복선에 탑승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 우주비행사 패트릭 보드리가 말했다.보드리는 이날 한 프랑스 방송에 “컬럼비아호는 미국인이 개발한 뛰어난 기계이지만 너무도 위험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애도 물결 속 이라크 악담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은 사고 직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띄워 깊은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탐사 분야에서 협력해온 점을 들어 이번 참사가 러시아인들에게 더욱 충격적이라고 말했다고 크렘린궁이 전했다. 러시아 우주국은 컬럼비아호 폭발의 진상 규명을 위해 NASA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우주탐사가 국경없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컬럼비아호 참사로 입은 손실은 인류 전체의 손실”이라고 슬퍼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미사에서 기도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슬픔으로 인해 향후 우주 탐사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이라크의 한 관리는 이번 참사가 “알라의 복수”라고 주장했다.그는 컬럼비아호에 탑승한 이스라엘 최초의 우주비행사 일란 라몬 대령이 1981년 이라크 원자력 발전소 폭격에 참가했던 인물이었다면서 이같이 악담을 퍼부었다. 박상숙기자·외신 alex@kdaily.com ◆폭발 순간 ●목격자들이 전하는 폭발순간 텍사스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차가 우리 집을 들이받았거나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패트리샤 헤르난데스는 “하늘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면서 다음 순간 “하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우주선 잔해가 떨어지는 순간을 묘사했다. 텍사스 동부에서는 아버지와 낚시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더그 루비도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을 듣고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고 말했다.그는 “뭔가 밝고 빛나는 한 물체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비행기에 반사된 햇빛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물체는 곧이어 6개로 산산조각났다.”고 폭발 순간을 전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컬럼비아호의 귀환을 지켜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 밖에 나와 있던 앤서니 비슬리 칼텍 연구원은 “우주왕복선이 오웬스 밸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궤적을 그릴 때 꼬리 부분이 밝아졌다.”면서 “밸리를 통과했을 때 우주선 뒤쪽에서 몇 개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고 폭발 직전을 그렸다. ●파편 수백㎢로 퍼져 떨어져 폭발 직후 컬럼비아호의 파편은 텍사스·루이지애나주 등 곳곳에서 수백㎢로 퍼져 떨어졌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전했다.공중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떨어진 금속 파편은 건물 지붕 위를 강타하기도 하고,저수지와 풀밭에 떨어지기도 했다.특히 파편은 댈러스의 근로자 거주 지역과 루이지애나의 소나무 숲 등 산간·도시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렸으며,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120여㎞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파편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텍사스·루이지애나 경찰서 등에는 주민들의 신고·문의 전화가 쇄도,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박상숙기자·외신 ◆컬럼비아호 제원.임무 |워싱턴·뉴욕 연합|컬럼비아호는 미국 최초의 우주왕복선으로 미 건국 초기 탐험선으로 활약했던 범선 컬럼비아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1981년 사상 처음으로 우주궤도를 비행하고 귀환했으며 마지막이 된 지난 1월16일 비행은 28번째 우주왕복이었다. 출고시 선체 무게만 7만 1800㎏이었으며 메인 엔진이 장착된 후에는 8만 741㎏에 달했다.전체 56.1m 길이의 컬럼비아호는 승무원이 타는 오비터,외부연료탱크,그리고 고체연료 로켓부스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오비터는 전체길이 37.2m,폭 23.8m로 제트 여객기 DC-9과 거의 같은 크기이며 승무원은 7명까지 탈 수 있다.오비터의 표면에는 열에 견디는 힘이 매우 강한 내열용 타일이 붙어 있다. 챌린저,디스커버리,애틀랜티스,인데버 등의 우주왕복선이 컬럼비아호 이후 등장했지만 챌린저가 1986년 발사 직후 공중폭발하자 컬럼비아호는 1988년 우주왕복 임무에 재투입됐다. 컬럼비아호에는 릭 허즈번드(45)선장을 비롯, 조종사 윌리엄 매쿨(41)과 이스라엘 출신의 일란 라몬(48),우주실험실장 마이클 앤더슨(43),해군 군의관 데이비드 브라운(46)과 로렐 클라크(41),엔지니어 칼파나 촐라(42) 등 총 7명이 탑승했으며 이들에게는 90가지 이상의 순수 과학실험이 임무로 주어졌다. 이들 우주인 7명은 우주 비행 16일 동안 2개 팀으로 나뉘어 생물학,의학,자연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실시했다.실험 대상은 암 세포,균,설치류 동물,거미,벌,누에 등이었으며 우주인 자신들도 실험대상이 됐다.특히 우주인들은 궤도에서 심리적인 변화를 측정하는 감지기를 부착하고 있었다.과학자들은 면역기능을 억누르고 근육을 약화시켜 무중력 효과에 대처하는 방법과 암의 고통,암세포의 전이와 관련된 연구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컬럼비아호 우주비행을 통한 각종 연구 성과들은 사라지게 됐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마당] 어느 노동자의 죽음

    눈을 떠보니 알몸이었다.병원 창문 너머로 여름에 지칠대로 지친 미루나무 잎이 달랑거렸다.80년대가 저물어 가는 초가을,충청도 아주 작은 도시의 병원 침대에서 사내는 깨어났다.멀리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타는 갈증이 숨쉴 때마다 쇳소리를 냈다.간호사들은 절대 안정을 외치며 물을 주지 않았다.무심한 햇볕은 커튼 주름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노을은 아주 천천히 이 도시의 저녁을 물들이면서 잦아들리라. 또 이렇게 살아났구나,사내는 한숨을 쉬고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사내는 그 전에도 몇 번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손을 움직일 때마다 생살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은 있었지만,미세하게 떨리면서 손가락이 까딱거리는 게 분명히 보였다.흐음,퇴원하면 굶지는 않겠군,잘 하면 글도 쓸 수 있겠는 걸,눈물처럼 떨어지는 포도당 주사액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하마터면 감격에 겨워 고함이라도 칠 뻔했다.어제 밤까지만 해도 사내는 역 앞 제법 규모가 큰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었다.말이지배인이지 청소부였다.술상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내는 수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시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난 뒤,무작정 도시로 나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사람으로 태어나 차마 할 수 없는 일까지 두루두루 겪으면서 살아왔다.온몸으로,밑바닥을 쓸고 닦으면서 살아온 것이다.그래도 그는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적어도 그 때까지는,시골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밑바닥을 전전하는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무엇보다도 야학에서 처음 알게 된 문학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사내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아수라 진흙탕에 빠져 있는 사람도 희망이 있다면 세상은 한번 살만한 것 아닌가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러나 세상은 녹녹지 않았다.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서 야간 검정고시를 거쳐 군대에 갔다오는 동안,사내의 사정은 극도로 나빠졌다.번듯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망은 더욱더 깊어졌기 때문이다.시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일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없었으며 동전 한 닢 없어도 세상에 둘도 없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그 사이에 늙은 부모는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형제들은 등을 돌렸으며 가까이 있던 친구들은 인연을 끊어버렸다. 70년대는 식당에서, 80년대는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죽어라 일을 하면서도 시인의 꿈을 키운 사내는 점점 난쟁이가 되어갔다.폐인이 되어갔다.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90년대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지만 짐승의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으로 우왕좌왕할 때 한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그에게는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가 있었다.쉰이 넘을 때까지 가족과 동료,올바른 세상을 위해 온몸을 다해 일한 진짜 노동자였다.왜 그는 목숨을 끊을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희망이 없을 때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맨 먼저,그를 거기까지 몰고 간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두 번째는 속절없이 자본주의에 투항해,아무 고민 없이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우리들이 책임져야 한다.우리 모두가 그의 죽음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고 그의 삶을 증거하고 기록할 때만,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유 용 주
  • [씨줄날줄] 早出 短命

    세대교체와 파격인사가 온통 세간의 화두다.설왕설래를 모아 극단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우리는 57세 대통령에 40대 장관,30대 청와대 비서관을 갖게 될 모양이다.파워엘리트의 중심이동으로 386세대,40대 초반이 주류세력이 되는 바람에 60대이상은 물론이거니와 40대 중반 이후 50대까지 ‘낀세대’들의 푸념이 말이 아니다.이건 숫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 점프’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상 ‘낀세대’들은 국민의 기본권까지 반납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국가발전을 추동해 왔다.이제 권한을 갖고 경륜을 펼쳐볼 시기에 추월선을 달려오는 복병을 만나게 된 것이다.이런 현상은 한참 요동치고 있는 정계나 관계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부장 보직을 앞두고 있는 한 후배는 “회사에서 내 앞으로 5년 정도의 입사 기수가 뭉텅이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인사적체에 밀려 순번만 기다리더니 부장 한 번도 못해보고 한두명씩 사라져 어느날 문득 보니 한 세대가 비더라는 것이다. 이런 ‘세대교체’,혹은 ‘세대 점프’는 인터넷 세대를중심으로 한 정치 개혁의 열망과 정보기술 발달 등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가용 인력의 사장 등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도 높다.유권자의 12.9%에 이르렀던 50대 인구를 비롯해 40대 중·후반 등 이른바 ‘낀세대’ 들은 종래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똑똑한 중년’을 자처한다.교육도 받았고 6월항쟁 등 사회와 경제참여 경험도 많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것은 스스로의 생각일 뿐 사회 흐름은 이들을 우회해 갈 기세다.더구나 기대수명의 증가로 은퇴 후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인구학적 상황하에서 조기 소외의 문제는 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캐나다의 한 대학교수가 “젊은 나이에 일찍 출세하면 일찍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조기성취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사회심리학적 연구결과이긴 하지만 역시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경력추구가 평화로운 인생을 만든다는 뜻으로 읽힌다.인생뿐만 아니라 사회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변화가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임혁백 政改실장 언급 안팎/‘국민뜻’ 반영 정치 새틀짜기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은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 같다. 임혁백 인수위 정치개혁연구실장이 15일 천명한 정치개혁 4대 추진방향에는 우리 정치의 묵은 관행과 제도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건물공사로 치면,‘내부수리’ 수준이 아니라 ‘기반공사’부터 다시 하자는 셈이다. 특히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며 정치개혁을 야당 및 시민단체와 협의 아래 추진하겠다는 언급이 주목된다.다수당인 야당이 반발할 경우 정치개혁 작업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말이다.아직 연구 초기단계여서 ‘협의제’가 어떤 형식이 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최소한 ‘공식적·공개적인 틀’ 안에서 야당의 목소리를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임 실장은 대화 도중 수차례 “노 당선자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고,인수위는 정책을 제시할 뿐”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문답 내용. ●인수위에서 마련중인 정치개혁 방안은 어떤 방향인가. 노 당선자가천명한 대로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것을 기조로 한다.국민들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추진방안은. 크게 4가지 방향이 될 것이다.우선 지역통합을 통한 국민통합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1인 보스의 폐쇄적 정당구조도 개혁할 과제다.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해 정치 신인들이 대거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또 인터넷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아날로그 정치를 디지털 정치로 전환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것이다. ●지역통합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검토하나. 연구과제다. ●야당에서는 중·대선거구제에 반대하는데. 우리는 결코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야당,시민단체 등과 협의제 형식으로 (개혁을) 할 것이다. ●협의기구 같은 것을 만드는가. 그것까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다만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함께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해가면서 하겠다는 뜻이다. ●내각제 개헌 등 권력구조 문제도 연구대상인가. 그것은 노 당선자가 이미 천명한 프로그램이있으므로,인수위의 검토 대상은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는 개혁 구호가 말로만 그쳐 국민들이 선뜻 믿으려는 것 같지 않다. 이번엔 다르다.많이 바뀔 것이다. ●인터넷 정치 활성화 방안은. 지금은 연구 초기단계로,국민 여론을 다양하게 수렴하고 있다.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김상연기자 carlos@
  • 美 매케인 상원의원 주장 파문“美 단독으로 北공격하라”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 공화당의 존 매케인(애리조나주) 상원의원(사진)이 시사 주간지 기고문을 통해 부시행정부에 북한에 대해 단독 군사행동을 할 것을 적극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2000년 미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매케인 의원은 시사주간 ‘위클리 스탠더드’ 최신호(1월2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해 다른 불량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이 핵 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논리적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한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열망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만 북한에 독재정권이 유지되는 한 이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 고립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 제재조치를 즉각 취해야 하며 북한에 드나드는 화물 출입을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해외에 빼돌린 40억달러를 동결시키려는 국제적인 노력도 장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북한의 핵보유 야망을 묵인한다면 일본의 핵보유 등 이 지역의 핵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매케인 의원은 “우리는 북한의 이웃 국가들이 동참하기를 바라지만 해야 한다면 그들의 협력 없이도 (군사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너무 ‘당근’ 위주로만 추진돼와 북한에 나쁜 기대를 갖게 했다고 강하게 비난하고, 부시 대통령도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클린턴의 정책을 닮아가고 있다고 질책했다. mip@
  • 각국 언론 북핵 분석 봇물“北-中방위조약 맺고있어 美 군사행동 돌입 힘들것”

    “美정부 강온파 대립 고조” “北, 核보유 印등과 비교” 각국언론 北核분석 봇물 북핵 위기가 날로 강도를 더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미·영 언론들의 분석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는 11일 군축전문가 및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NPT 탈퇴 선언은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제조키로 결정했다는 전망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미국과의 대결을 심화시키는 단순 위협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WP,“북한 핵무기 보유 결심 굳혔을지도” 신문은 “그들(북한)이 공공연한 ‘핵보유국’이 되고자 하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고 있을지 모른다.”면서 “(북한은)세계가 위협하지도 않는데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인데 대해 ‘왜 우리만 안 되느냐.’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이정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전했다. 포스트는 그러나 이 교수와 다른 분석가들은 핵무기 제조와 대미 협상이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면서 북한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고 聆뼉?모른다고 전했다.즉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 재가동쪽으로 가지만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것을 얻는 협상을 할 용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보복조치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며 “북한이 ‘플루토늄 슈퍼마켓’이 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의 NPT 탈퇴가 핵무기 확산을 규제하려는 노력의 핵심인 이 조약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NYT,“북한 고립 심화될 것” 뉴욕타임스(NYT) 사설은 북한의 NPT 탈퇴 결정이 기존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무모한 협상전략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타임스는 NPT 탈퇴 결정이 “미국으로부터 불가침조약을 이끌어내거나 더욱 위험하게는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어떤 경우든 외교적 해결의 모색을 어렵게 하고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또 별도 기사에서 북한의 급작스러운 NPT 탈퇴 결정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세계 외교정책 의제에서 후순위로 돌리길 바랐던 문제를 북한 스스로 최우선순위에 올려놨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이어 외교적 대화 확대와 강경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등 부시 행정부 내 불화가 대북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고위 행정부 관리는 이와 관련,“대북 문제 회의 때 12가지 아이디어가 나오나 합의는 없다.”고 말했으며 부시 대통령에 가까운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의 북핵 접근 방식을 “일관성이 없고 따로따로 노는 것 같다.”고 평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한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정부 핵심그룹(서클) 안의 갈등 고조가 북한에 대한 정책 결정을 거의 마비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LA타임스,“북한 치밀한 계산 아래 움직여”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북한의 야단법석과 명백한 비합리 뒤에는 잘 다듬은 협상 전략이 있다며 안보와 원조,체면을 얻기 위한 북한의 첫번째 사업 명령은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그들(북한)은 어떤 종류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큰 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한 미군 고위관계자의 말을인용,보도했다. 타임스는 이런 전략을 이라크에 집중하고 북한 정권이 행동(핵계획 중단)할 때까지 평양을 무시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핵위협을 비등점까지 끌어올려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개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BBC방송,“군사해결 가능 희박” 영국 BBC 방송은 ‘위기 재연’이라는 제하의 분석기사에서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국제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으나 “미구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대안은 없다.”고 셰필드 대학(영국)의 아시아 문제 전문가 짐 폴리의 말을 인용,전했다. 폴리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면서 그 이유로 ▲북한의 엄청난 재래식 무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고 ▲대북 공격은 남한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며 ▲중국이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연합
  • [시론]오직 평화적 해결뿐

    북한 핵 문제는 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으로 북·미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그간 북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로만 치부해오던 우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과거 북핵은 허구 속의 무기였으나 이제는 현실 속의 무기이기 때문이다.북한이 실제로 만들고 있고,미국은 이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것은 한반도에 살고있는 우리의 생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문제이고 우리 민족의 존망까지도 걸린 문제다.다행히도 정부,새 대통령 당선자,야당은 각기 그 해법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이런 측면에서 이번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번 북핵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 국민적 합의를 100% 존중하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만약 이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는 민족의 생존을 담보로 하여 개인적 야망을 달성하려는 사람이며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민족 반역자로기록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남한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북한 지도자들에게도 정확히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만약 북한의 지도자들이 이번 핵 위기를 전쟁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가려 한다면 그 역시 우리 국민들은 민족 반역자로 취급할 것이며 통일 문제와 같은 민족의 장래 문제를 협의할 대상이 못된다고 생각할 것이다.북한 주민만이 북한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북한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남한 주민들이 어떻게 그들을 평가하는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통일한국의 장래를 함께 얘기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남한 주민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어떠한지를 남한 주민들은 계속 주목하고 있다.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통일 운동가들은 북한 지도자들이 우리 국민의 뜻을 오해할 수도 있는 언행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한국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번 북핵 위기를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외국 지도자가 있을 수 있다.그러한 사람은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반한적(反韓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또 다른 외국 지도자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이 침체된 그 나라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그는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자기나라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원초적 ‘반한 인사’라고 생각되어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만약 이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단 발발하면 한국 국민들도 별수 없이 대북 전쟁에 참가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안이한 결론이다.전쟁 반대에 국민적 합의가 있는 마당에 ‘반한 인사’에 의해 시작된 그 전쟁에 한국 젊은이들이 목숨걸고 같은 편에서 싸울 것이라는 예단은 틀릴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국내 상황임을 알기 바란다. 무력 사용의 자제를 얘기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외국 지도자도 우리에게는 ‘반한적 인사’로 보인다.남북한간의 긴장이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남북한을 밀고 당기는 이웃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경계한다. 한국이 수세 국면이면 한국을 지원하고 북한이 수세 국면이면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남북한이 항상 비슷한 세력으로 존재하면서 끝없이 대결하도록 유도하는 이웃 나라를 우리는 환영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은 쉽게 단합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일단 단합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는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주변국 지도자들은 이러한 한민족의 저력을 인식하고 이번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한국 민족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항상 처음같은 마음으로

    새해가 밝았다.새로움의 시작은 항상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다.시작하는 순간의 기대와 설렘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중에 맞이하게 될 결과는 상당히 달라진다.모든 사람이 ‘처음 같은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간다면 세상은 한층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학기 초의 마음을 학기 말까지’ 간직하도록 요청하곤 한다.신입생들에게는 ‘입학할 때의 마음을 졸업할 때까지’ 잃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처음에는 누구나 남다른 각오를 가지고 출발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심을 유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그 결과는 곧 드러난다.당연히 초심을 유지하는 쪽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 나 자신도 처음 교단에 섰을 때의 설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10년 가까이 대학에서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교수’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오면서,한때는 학생들이 오히려 권위주의적인 교수의 말을 더 잘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학생들 쪽에서수평적 관계에 대한 기대와 자율성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그러나 지금은 확신하게 되었다.이제 학생들도 예전처럼 권위주의에 젖어 카리스마에 복종을 요구하는 교수보다는 수평적 관계에서 학생과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교수를 더 따른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위치에 오래 있게 될수록 타성에 젖는다.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그렇지만 최소한 처음 입문할 때의 신선한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모두가 갖는다면,화합과 공존의 수평사회는 더욱 빨리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처음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예는 아주 많다.이혼율이 급증하는 현 세태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설렘을 계속 간직하고 있을까? 크고 작은 갈등 속에 있는 모든 부부들에게 ‘처음 만났던 순간’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라고 권하고 싶다.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던 그 순간의 기억을 삶의 곳곳에서 떠올리며,언제까지나 그 신선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면 삶이 훨씬 더 밝고 활기차게 될 것이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마찬가지다.그가 지금까지 보여 왔던 소신과 원칙을,국민에 대한 탈권위주의적·수평적인 자세와 열린 마음을 임기 끝까지 보여 주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진취적인 변화 속에서 화합과 공존의 새 시대를 열망하는 온 국민의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고 실현시켜 주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해 대다수 국민의 ‘변화를 갈망하는’ 열망은 대통령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의외의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오는 대세를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 것을 탓해야 한다. ‘초심’을 유지하는 정치인이 극히 드문 현실 속에서,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리며 어느 쪽에 줄을 서는 것이 개인의 영달에 더 이득이 될지를 미리 가늠하여 철새처럼 떠났던 정치인들에게 작년 한 해는 정말 큰 교훈을 준 해였다.잔머리 굴리지 않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 온 정치인,옳다고 생각하면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처음 마음을 유지할줄 아는 정치인의 가치가 돋보인 한 해였다. 권한을 더 많이 가질수록 깨끗하고 순수했던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기득권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며 수직상승만을 꿈꾸는 사람,옆과 아래를 볼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해바라기처럼 위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에게는 ‘대세’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기대하기 어렵다.이제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으로 새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나 은 영
  • [사설]국정과제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어제 노무현 차기 정부가 추진할 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을 포함해 처음에는 8대 과제로 정했으나 노 당선자의 지시로 ‘부패 없는 사회,봉사하는 행정’과 ‘정치개혁 실현’ 등 2개 과제가 추가됐다고 한다.지난 대선때 표출된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을 감안할 때,매우 적절한 지시였다고 평가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이번 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국정의 주요 어젠다를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노 당선자에 대한 정부 부처의 합동보고와 지방자치단체 현장 방문을 거쳐 다음달 말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고 하지만,이미 큰 방향은 잡혔다고 봐야 할 것이다.10대 국정 주제를 손질하기보다는 각 주제에 속해 있는 30개 주요 실천과제를 조정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과제에는 인수위가 중요도를 간과한 부분이 없지 않다.무엇보다 한반도 평화구축 분야에 한·미 관계와 주한미군의 역할 등에 대한 명시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또 평화체제 구축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지,동북아 평화협력체는 6자회담의 추진과 정례화를 지칭하는 것인지 내용이 모호하다.아울러 중앙과 지방정부간 균형발전을 위한 협력 방안과 국민통합을 위한 세대간 갈등해소 항목도 찾아볼 수 없다.특히 지역구도 청산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못지않게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도 긴요한데,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과제별로 시급성과 예산을 고려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이라고 본다.예컨대 북핵 문제와 정치개혁은 가장 화급을 요하는 사안이다.또 전국민 건강보장제도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판이다.모든 과제를 임기중에 실현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으나,경험칙상 구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실천과제를 시간대별로 캘린더를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또 내년 예산에 바탕을 둔 소요 재원의 분배 및 투자 우선 순위도 정부 출범 전에 미리 정해야 할 사안이다.
  • [씨줄날줄]첫 한국인 교황대사

    한국인 최초의 교황대사로 임명된 장인남 대주교의 착좌식이 6일 상오 9시(현지 시간)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된다.주 방글라데시 교황대사 임명과 함께 대주교로 승품된 장 대주교는 청주 출신으로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졸업과 동시 사제품에 올라 3년 뒤 로마로 유학,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2년 세계 각국의 우수한 젊은 성직자 가운데서 뽑히는 교황청외교관학교에 입학한 첫 한국인이기도 하다.1985년 주엘살바도르 교황청대사관 2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에티오피아,시리아,프랑스,그리스,벨기에에서 서기관·참사관으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번 발탁은 교황으로부터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것이어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아울러 한국천주교회는 물론 한국인 전체의 경사라 할 만하다.교황대사는 국가간의 업무만을 담당하는 일반 외교관과 달리 분쟁지역의 중재 등 세계평화를 위한 교황의 의지를 세계 각국에 전파하는 평화의 사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학식과 덕망·신앙심,체력을 겸비해야 하는 그 과정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두 차례 방한해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렸고(1984년) 세계성체대회(1989년)를 주관했다.그 자신 공산국가 폴란드 출신으로 여건이 조성되면 북한을 방문,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나치와 공산주의에 항거한 경험으로 구소련 등 동구권 붕괴에 크게 기여한 교황의 평화에 대한 열망은 이번 신년 담화에도 잘 담겨있다.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반대하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기도하는 교황이다. 교황은 세계 10억 신자의 영적생활을 이끄는 지도자지만 영토주권국가로는 0.44㎢의 면적에 950명의 인구를 지닌 소국 바티칸 시티의 국가원수에 불과하다.그러나 ‘전쟁에의 능력은 무에 가깝지만 평화에 대한 능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한 비오 12세 교황의 외교지침을 실천하는 이 시대 평화의 마지막 보루다.그의 사절로 첫발을 내딛는 장 대주교의 앞 길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기를…. 최홍운 hwc77017@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