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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회창 대선출마 선언] 李 “昌출마는 역사를 되돌리는 것”

    [이회창 대선출마 선언] 李 “昌출마는 역사를 되돌리는 것”

    한나라당은 7일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소식에 일제히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제2의 이인제’,‘악덕 장의사’ ‘대쪽이 아닌 갈대’,‘정상배’,‘기회주의자’,‘대권병에 걸린 사람’ 등의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며 보수 진영의 결집을 유도했다. 이명박 대선후보는 이날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선언은 어떤 이유로도 역사의 순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이 후보는 이 전 총재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었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울산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성공 대장정 울산대회’ 참석에 앞서 이 전 총재의 출마 선언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역사를 한참 되돌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의원들은 일제히 이 전 총재의 탈당과 출마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서 ‘이회창 출마 규탄대회’를 방불케 했다. 전여옥 의원은 “이 후보가 42.195㎞의 마라톤에서 40㎞를 넘어 결승점이 눈앞에 있는데 갑자기 단거리 선수가 뛰어들었다.”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나왔다고 하지만 그분은 열린우리당이 그토록 원하는 판 흔들기와 보수우파 분열을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의원은 “자기가 (출마)하겠다는 것은 장가를 두번이나 가고 상처했는데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자기가 대신 장가가겠다는 격”이라면서 “정말 그렇게 국민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의 출마선언 기자회견 직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도 ‘이 전 총재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한나라당의 이 전 총재에 대한 대응방안이 정면돌파로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재섭 대표는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정치도의도 원칙도 아니며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말이 안 된다. 결국은 당에 침을 뱉는 것”이라면서 “이 사회에 동지가 어디 있고 위아래, 선후배, 스승·제자가 어디 있느냐. 앞으로 내가 스승인 이 전 총재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싸워야 하는데 이런 비참한 세상을 만든 게 바로 이 전 총재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 전 총재가 생각하는 것과 이 후보 및 한나라당의 대북관에 다른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것을 문제 삼았다. 모든 게 계획된 수순으로 진행된 것”이라면서 “지금부터 당이 최선을 다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대운하’를 파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독려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교체해 달라는 국민적 열망을 깨뜨리는 데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것은 역사의 순리가 아니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2번이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린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이 전 총재 비판에 가세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명박측 ‘반격모드’

    이명박측 ‘반격모드’

    한나라당 안팎이 ‘창풍(昌風)’에 휩싸인 6일 이명박 대선 후보는 “한나라당과 함께 정권교체할 수 있도록 (이회창 전 총재에게) 끝까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 기자들과 만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만나뵙고 출마의 변을 듣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몸을 낮추는 자세를 견지했다. 이 후보와 달리 이 후보 진영은 그러나 이 전 총재 출마가 기정사실화하자 그간의 읍소전략을 접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회창 전 총재가 끝내 출마 한다면 정권교체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은 이 전 총재 출마 반대를 결의했다. 한나라당은 또 7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전 총재 출마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기로 했다. 보수층 분열로 또 정권을 잡지 못하면 역사에 죄가 된다는 이른바 ‘역사적 죄인론’으로 이 전 총재를 압박하기로 했다.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이 전 총재 압박용 카드로 쓰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대선 당시 수첩이 존재한다.”고 했던 이방호 사무총장은 이날 “이 전 총재 출마 시점에 입장을 정하겠다.”며 대선자금을 활용한 공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박근혜 전 대표측이 퇴진을 요구한 이재오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은 입지가 확연하게 줄어든 모습이다. 이 최고위원은 오전 국회 본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 압박이 조직적으로 이어지면서, 반사적으로 이 후보측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한 인사는 “불난 집에서 튀밥 얻어 먹겠다는 심보”라고 비난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최고위원이 빠진 뒤 대선 캠페인이 차질을 빚지 않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이 최고위원 퇴진론은 총선에만 관심을 둔 이기적 주장”이라고 했다. 이런 강경기류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측의 희생을 통해 박측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특히 이 최고위원이 물러나야 당심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영남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한나라 “대세 변함없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측은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구체적인 전략을 짜고 있다. 일단은 “대세는 변함없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변수를 만났다는 당혹감도 느껴진다. 임태희 비서실장이 칩거 중인 이 전 총재를 만나려고 몇 차례씩 연락을 취하는 모양새가 그렇다. ●이명박 “그렇게 가볍게 결정할 분 아니다” 이명박 후보는 4일 “제가 아는 이 전 총재는 그렇게 쉽고 가볍게 어떤 일을 결정할 분은 아니다.”고 말했다. 홍익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포스트 386세대’(20∼35세) 회원과 만난 자리에서다.‘정중하게’ 출마를 만류하는 뉘앙스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공천을 받아서 두 번이나 당원 전체 힘을 모아서 (선거 운동을)했는데 본인이 신중하게 할 것이다. 저도 기다리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함영준 언론특보가 이 후보의 생각을 재구성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선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이 후보는 “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은 지금 제 주변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원칙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한 뒤 “저는 이럴 때 더욱 힘이 난다. 에둘러 가거나 뒷걸음질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에서는 이 전 총재의 출마를 전제로 자체 여론조사와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종합분석한 결과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이 전 총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출마하는 즉시 반대 여론에 직면해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두 번의 대선 실패를 ‘잃어버린 10년의 공포’로 인식하는 보수층이 이 전 총재를 곱게 보지 않을 것이란 현실적 판단도 녹아 있다.‘될 사람을 밀자’는 캠페인은 이런 맥락에서 거론된다. ●이명박 지지율 일부 ‘조정´ 오히려 긍정적 이 전 총재의 출마설로 이 후보의 지지율이 일부 ‘조정’된 상황에 대해서는 이 후보측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은 “이명박-정동영-이회창 3자가 40:20:20으로 지지율을 나눠 갖게 되면 1등인 우리 후보에겐 더 편안한 구도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후보가 지난 7∼8월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치면서도 최악의 지지율이 35.7%에 그쳤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럼에도 이 전 총재가 ‘불안한 후보 불가론’을 부각시키며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BBK주가조작 의혹의 김경준씨 송환도 임박한 시점이다. 이 후보측은 ‘창=정권교체 열망을 갉아먹는 최대 방해물’임을 적극 부각시킬 계획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요동치는 대선정국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요동치는 대선정국

    이회창씨는 당시 ‘3김(金)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역설했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의장으로 정계에 입문했을 때였다. 그는 두 차례의 대선에서 소신과 대쪽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새 정치를 열망하는 유권자를 파고들었지만, 아들 병역과 대선자금 문제로 냉엄한 심판을 받았다. 그가 다시 대선판에 등장하고 있다. 보수대연합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한다. 명분이야 어떻든 그의 표정에는 명예회복을 위한 집착이 서려 있고, 그의 등 뒤에는 잊혀지고 소외된 정치인들의 미련이 어른거린다. 이번 대선은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 새로운 시대가치를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다.‘레드 콤플렉스’의 추억이나 ‘정치인 이회창’의 한풀이를 대선에 투영시킨다면 역사와 시대의 ‘역류’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공학적 발상이나 특정 진영의 유불리로 운신을 저울질할 때가 아니다. 승패는 작위(作爲)가 아니라 순리의 몫이다. 어느 진영이든 대선의 결과보다 미래 담론의 재정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주문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주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부상으로 ‘정치는 파괴력’이라는 정가(政街)의 등식이 실감나는 한주였다. 이 전 총재가 이번 주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기존의 대선 후보들은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이 전 총재 쪽으로 돌아서는 전통 보수층의 발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 후보가 지난 2일 경남 진해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통일이 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집토끼’를 단속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개혁 성향의 유권자를 안고 가야 하는 이 후보로서는 진퇴양난의 부담을 피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활용해야 하는 이 후보에게는 이 전 총재 못지않은 박 전 대표의 이념적 완고성까지 용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한반도 경제와 NLL 담론이 결과적으로 이 전 총재에게 정계복귀의 명분을, 이 후보에게 지지층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후보의 정치력 부족과 도덕적 결함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후보 개인 간 싸움이 ‘진영의 대결’로 바뀌는 변곡점이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 전 총재의 등장이 범여권에 호재일 수만은 없다.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이 전 총재에게 뒤지는 충격을 맛봐야 했다. 군소 후보는 물론 정 후보까지 대선 무대의 조연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한 것이다. 범여권 후보들이 어떤 돌파구를 찾아나갈지 주목되는 이유다. 해법은 후보단일화 논의로 모여지는 양상이다. 지난주 이들이 연대, 연정, 세력간 통합 등 단일화의 방식을 거론하기 시작한 점은 진전된 추이로 여겨진다. 지지율 중심의 단순한 후보 단일화로는 현 국면을 타개할 수 없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이 전 총재의 급부상에 따른 긴장과 절박감이 범여권의 단일화 논의를 촉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시일의 촉박함이다. 이번 주나 다음주 초에는 어떤 형태로든 단일화를 위한 가시적인 논의가 점화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범여권에서 1위를 달리는 정 후보가 진영을 구축하기 위한 제안과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ckpark@seoul.co.kr
  • 이애주 몸짓에 빠진다

    이애주 몸짓에 빠진다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지난 80년대 중후반 이른바 ‘시국춤’‘한풀이춤’으로 민초들의 열망과 한을 대변했던 ‘민중춤꾼’ 이애주가 오랜 침묵을 깨고 전통춤 무대에 선다. 9일 오후 7시30분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경기 몸짓의 원류를 찾아서-달의 노래’(이애주 예술감독, 김석만 구성, 남동훈 연출).‘몸과 맘, 숨이 하나되는 수행의 몸짓’이란 부제 그대로 오랜만에 ‘이애주표’ 춤판을 대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무엇보다 시국춤꾼에서 한국정신과학학회 회장으로 변신했다가 고향으로의 ‘회향’ 뜻을 담아 전통춤을 보여 주는 자리란 점이 뜻깊다. 지난 날 “춤은 그저 보고 즐기는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응축된 정신의 의례이자 삶의 참의식”으로 춤을 보았던 이애주에게 요즘 춤 세계는 어떤 것일까.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던 이 전통춤꾼이 단단히 벼르는 이번 무대의 레퍼토리는 무엇일까. 주최측은 무엇보다 경기몸짓을 바탕으로 한 가락과 춤의 잔치로 이 무대를 본다.‘경기춤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대로 이애주와 그의 무리들은 경기춤의 원류를 요즘 현대인들이 부대끼는 삶의 몸짓으로 약간 틀어낸다. 경건한 몸짓의 ‘예(禮)의 춤’으로 무대를 열어 춤의 규범과 정학한 장단을 중시하는 ‘본살풀이’, 예로써 하늘과 인간들을 경배하는 ‘태평무’, 쌍북채를 써 북을 장구처럼 허리에 고정시킨 채 추는 ‘북춤’이 차례로 풀어진다. 기 수련과 참선을 연상시키는 영가무도, 한국 만년의 역사를 꿰뚫는 삶의 몸짓이라는 이애주 주특기 ‘승무’ 한바탕이 풀어진 뒤 관객과 춤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바라춤’으로 마무리한다. 이금주, 주연희, 안지현, 김경은, 김수정, 육영임, 김영희가 무대의 분위기를 돋울 예정이다.(02)880-7801.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호남선 탄 이인제 “서부벨트 구축 지지를”

    호남선 탄 이인제 “서부벨트 구축 지지를”

    민주당 이인제(얼굴) 대선 후보가 충청과 호남을 아우르는 ‘서부벨트’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충청지역 버스투어에 이어 1일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전남 고흥을 방문해 ‘고흥군민의 날’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광주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혁세력의 본산인 민주당은 지지 기반이 호남으로 고립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호남으로부터 충청, 경기, 인천, 서부벨트를 따뜻한 지역 지지 기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서부벨트’ 전략을 강조했다. 이어 단일화를 의식,“정동영 후보가 ‘호남후보 필패론’을 정면 돌파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개혁세력을 키워준 어머니 같은 호남 국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마지막 배신을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출마설과 관련해 그는 “부패세력은 기회 앞에서 반드시 분열하게 돼 있다.”고 ‘한나라당 필패론’을 전제한 뒤 “이 전 총재의 출마 배경에는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에 근거한다.”며 이 후보를 공격했다. 그는 3∼4일에는 전남 해남과 보성 등을 순회하면서 호남 민심 잡기를 이어나간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경북대·상주대 통합 사실상 확정

    대구·경북지역 국립대인 경북대와 상주대의 통합이 사실상 확정됐다. 25일 경북대와 상주대에 따르면 24일 실시된 경북대와 상주대 통합을 위한 양 대학 교수, 교직원, 학생들의 찬반 투표 잠정 집계 결과 경북대 교수는 79.16%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또 직원은 72.6%, 조교는 83.3%, 학생은 55.06%가 찬성했다. 상주대의 경우 교수는 75.55%, 직원은 55.7%의 찬성률을 보였고 조교는 32.14%, 학생은 78.47%의 찬성률을 나타냈다. 이같은 투표결과에 따라 양 대학의 통합 추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대학은 투표결과를 담은 통합사업지원신청서를 작성,11월 2일까지 교육부에 제출한다. 교육부의 승인을 받으면 2008년 3월 통합 경북대로 출범하게 된다. 통합 대학 캠퍼스 면적은 132만 1862㎡(경북대 78만 2334㎡, 상주대 53만 9528㎡)로 확장된다. 교수는 1096명(경북대 968명, 상주대 128명), 직원은 663명(경북대 579명, 상주대 84명), 학생은 3만 7997명(경북대 3만 3422명, 상주대 4575명)으로 늘어난다. 통합 당시 양 대학 재적 학생은 통합 후 경북대 소속이 되며 통합대학 교직원의 소속은 단일화되고 신분이 보장된다. 노동일 경북대 총장은 “투표결과는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통합을 계기로 이겨내고자 하는 경북대와 상주대 구성원들의 걍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양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통합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추태귀 상주대 총장은 “대학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구성원 모두의 열망이 표현된 결과며 향후 최선을 다해 가장 바람직한 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데스크시각] 미얀마가 버마로 불리는 날/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지난달 19일 승려들이 이끄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시작된 미얀마 사태가 한 달을 넘겼다. 전세계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민주화시위는 군사정부의 무자비한 강제 진압으로 일단 수그러들었다. 지난 1988년 8월8일의 민주화시위가 3000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끝난 것과 닮은꼴이다. 총칼과 탱크 앞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속절없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무력의 힘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1962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해 45년간 누리고 있는 군부의 영화는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움직임들이 이런 희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먼저, 군부 내의 불협화음을 들 수 있다. 군 장성 일부가 이번 시위 진압에 불만을 품고 항명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군부 서열2위인 마웅 아예 장군이 아웅산 수치여사와 몰래 면담을 하려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철옹성 같았던 군부의 결집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금이 커지다 보면 군정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다음은 국제사회의 압박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정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제재 수위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탄 슈웨 장군 등 미얀마 군부 지도자 14명의 미국내 금융자산을 이미 동결한 미국은 지난 19일 군부 지도자 11명에 대한 추가적인 미국내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미얀마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제재조치를 다시 발표했다. 십시일반으로 각국의 제재조치가 뭉치면 미얀마 군정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동안 미얀마 군정을 은밀히 지원해온 중국과 인도도 세계의 눈초리를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 다음으로 민심이 군부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시위 때 군정은 승려들에게 총을 쏘고 게다가 불교사원에 난입해 1000여명의 승려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정신적 지주인 승려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끌려가는 모습을 본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군정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이 분노가 끓어 넘치면 화산 폭발하듯 폭발할 것이다. 그 중심부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수치여사가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녀는 비록 군정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미얀마의 민심은 ‘지진해일’처럼 요동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의 바람이다. 세계인들은 미얀마 군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것을 주장하지 않지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미얀마 군정을 압박하고 있다. 군정이 1989년 입법기관의 승인 없이 바꾼 국명인 미얀마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 현 군정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해서 대부분의 국제 언론들도 버마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 일부 신문도 미얀마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서울신문도 기사를 쓸 때 미얀마라는 이름 대신 버마를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당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 12명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 고교생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얀마의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앞의 촛불문화제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면 미얀마 대신 버마라고 불러주세요.”라는 버마민족민주동맹 소속 조모아의 절규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한걸음에 달려오길 기대한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siinjc@seoul.co.kr
  • 토크쇼 하듯 ‘파격’

    토크쇼 하듯 ‘파격’

    “우리 박찬모 위원장님은 오늘 미국 출장 가셔서 못 오셨습니다. 그래도 박수 한번만 쳐주세요.” 제1 야당의 대선 후보가 한 말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는 10일 경기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과거 대선 후보들과는 달리 권위를 벗어던지는 파격을 선보였다. 강재섭 대표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노타이 차림의 이 후보는 중앙 연설대 옆에 마이크를 잡고 비스듬히 서서 정치권 밖에서 영입한 공동선대위원장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대선 후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어느 행사의 사회자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신임 각료들을 직접 소개하는 파격을 구사하긴 했지만, 중앙 연설대는 그래도 노 대통령의 차지였다. 반면 이날 이 후보의 소개를 받은 인사들은 차례로 연설대에 서서 소감을 말했고, 중앙을 내준 이 후보는 옆에서 촌평을 달았다. 요란한 정치행사라기보다는 무슨 토크쇼 분위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고 보니 행사 명칭도 ‘발대식’이 아닌 ‘국민성공시대 출범식’이었다. 이 후보는 영입 인사들에게 ‘님’자를 붙이는가 하면, 박수를 유도하고 중간중간 유머를 가미하는 등 좌중을 주도했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출신 한선교 의원은 “이 후보가 다 잘하시는데 사회까지 잘 보신다. 큰일 났다.”고 엄살을 부렸다. 무대에 오른 영입 인사들도 과거 선대위원장들처럼 “합시다.”라고 하는 대신 “열심히 하겠다.”라고 소감을 피력하는 등 아마추어 냄새를 풍겼다. 이 후보는 인사말을 통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 정권, 실패를 반성하지 않는 무책임 정권,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무치 정권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며 “이제 ‘3무(無)정권’을 몰아내고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행사장엔 예상보다 많은 2000여명이 운집, 정권교체를 향한 열망을 보여줬다.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위촉된 박근혜 전 대표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으나, 김무성·이규택·엄호성·유기준·최경환·김재원·심재엽·한선교 의원 등 친박(親朴)계 의원들이 다수 참석해 화합의 기류를 보였다. 행사에서 상영된 영상물에도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워 대한민국 7·4·7을 이뤄내겠다.”라는 언급이 나오는 등 박 전 대표의 ‘줄·푸·세’ 공약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이 후보는 전직 신문·방송기자만 30명이 넘게 포함된 초대형급 언론·방송특보단을 발족했다. 김상연 한상우기자 carlos@seoul.co.kr
  •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복선 전철 추진 강릉 사회단체 협의회 창립

    강원 강릉지역 사회단체들이 2018 겨울올림픽 유치와 강릉∼원주간 복선전철 추진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 지역 현안 해결과 시민들의 의지 결집에 나서기로 했다. 강릉지역 직능·언론·종교 등 사회단체 대표 60∼70명은 9일 오전 강릉시청 대회의실에서 ‘2018겨울올림픽 유치 및 강릉∼원주간 복선전철 추진협의회’ 창립총회를 갖고 향후 활동방향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협의회 구성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시민들의 의지를 결집하고 그 열망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등 대정부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추진됐다. 협의회는 앞으로 2018겨울올림픽 유치 재도전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강릉∼원주간 복선전철 건설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등 지역 현안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갈 계획이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결의문을 채택,2018겨울올림픽 유치가 국가적 사업으로 채택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강릉∼원주간 복선전철 건설 등 강릉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매진해나갈 것을 결의할 예정이다. 강릉지역 주요 사회단체 대표들은 지난 2일 지역단체협의회 구성을 위한 발기인 간담회를 개최, 주요현안 추진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남북 정상선언 美·中·日 전문가 시각] “경협계획 실행은 시간 걸릴 듯”

    [남북 정상선언 美·中·日 전문가 시각] “경협계획 실행은 시간 걸릴 듯”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은 2000년의 첫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6·15 정상회담은 경제·사회 협력 등에 대한 여러가지 교류의 방향을 잡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미 잡힌 방향 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협력을 강화하는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합의문은 통일에 대한 ‘열망’은 잠시 젖혀둔 채 실용적으로 두 체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군사회담을 정례화하고 긴장완화를 제도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은 첫번째 정상회담에서는 다뤄지지 못했다. 서해에 평화수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그같은 회담을 현실화하기 위한 합의로 보인다. 북방한계선(NLL)은 정전체제의 변화와 함께 소멸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2·13합의’ 이행을 강조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이 6자회담과 보조를 맞춘다는 최소한의 장치였던 것 같다.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한쪽이 너무 앞서간다는 의구심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다.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은 매우 흥미를 끌지만 앞으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중국을 제외하는 3자 회담은 어떻게 다뤄지느냐에 따라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합의문에 북한이 미군의 철수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합의문에 담긴 남북간 경제협력은 매우 야심차 보인다. 실행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는 북한이 남한 및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두산 관광은 인기를 끌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 관광에서 나오는 수익은 북한의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북한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도록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곧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에 합의 이행은 늦어질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재협상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합의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스캇 스나이더 亞재단 연구원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美·中·日 반응

    |워싱턴 이도운·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상세하고 신속하게 보도했다. 중국언론에 뉴스를 독점 공급하는 국영 신화사의 톱 뉴스는 남북 정상회담이 차지했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사실 관계와 현장 스케치 등을 실시간 속보로 전달했다.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5일 아침 서울로 돌아갈 것을 요청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과 거부 소식 등도 빠르게 전해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반면 미국 언론들은 비중이나 신속성에서 중국과 일본 언론들보다 뒤처졌다. 美정부와 언론은 평양에서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의 추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평가를 내놓았다. 미 정부의 한반도정책 실무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분단의 비극과 남북 대화의 열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6자회담과 남북대화는 병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한국 정부와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날 8면 한 면을 거의 할애해 심층 보도했다. 또 노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 행렬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향하는 사진을 ‘기념비적인 월경(越境)’이라는 제목아래 실었다.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경제 재건지원책이 나올 것이며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했다. 日북핵과 함께 납치문제를 현안으로 갖고 있는 탓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신문들은 1∼2개면을 할애, 회담의 세세한 부분까지 보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와도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납치문제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데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정상회담을 할 만큼 북·일 관계가 해빙기였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의 언질을 받기를 바란다.”면서 납치문제의 해결도 설득해주길 주문하는 등 일본 주장을 분명히 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은 3일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제재를 해제할 만큼 북한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납치문제 수위에 따라 대북 정책도 조정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中전역을 커버하는 중앙방송(CCTV) 뉴스채널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재한 환영식 등 주요 장면을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했다.CCTV 시사프로도 회담 내용을 폭넓게 다뤘다. 다만 특별한 해설이나 분석은 내놓지 않았다. 신화사도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대장금 DVD를 김 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스케치성 기사도 소개했다. 시나(新浪), 서우후(搜弧)등 포털 사이트는 정상회담과 관련, 일정·주제·의제·회담별로 기사를 다양하게 분류해 소개했다. 이에 비해 홍콩 언론들은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허풍쟁이의 블록버스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에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적’ 분위기가 가미된 이후 김 위원장의 직접 영접으로 ‘블록버스터’로 바뀌었다고 전하면서 노련한 북한 의도를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jj@seoul.co.kr
  • 미얀마 ‘민주화 불씨’ 또 꺼지나

    ‘양곤의 봄’은 또 무산되나. 19년만에 찾아온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다시 꺾일 위기에 놓였다. 군경이 강경진압의 강도를 높이면서 시위대가 눈에 띄게 세력을 잃고 있어서다. 이런 와중에 이번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200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병력 대폭 늘리고 시민들 외출 차단 30일 AP와 AFP 등 외신에 따르면 군사정부는 주말부터 진압병력을 대폭 늘리는 등 시위대에 대한 적극적인 ‘목조이기’에 나섰다. 일요일 밤사이 시위의 진앙지인 옛 수도 양곤에 배치한 군경 병력만 2만명으로 늘어났다. AP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의 한 외교관은 “군경이 힘을 과시하면서 거의 모든 시위대가 양곤의 거리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가 거리로 다시 나와 군정을 전복시킬 만큼의 군중을 동원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제로’”라고 상황을 전했다. 군경은 양곤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 주변에도 수백명의 군병력을 미리 배치, 사태 확산을 막고 있다. 제2도시인 만달레이도 무장한 병력이 주요 길목마다 깔려있다.29일엔 양곤 시내의 불과 수백여명이 모인 소규모 집회에 대해서도 최루탄을 발사하며 조기 진압을 벌였다. 이로 인해 이번 시위와 관련돼 붙잡힌 사람들이 이미 1000명을 넘었다. 시내의 주요 유치장은 자리가 없어 이들은 현재 대학 등 교육기관의 건물에까지 수용돼 있다. 양곤과 만달레이의 불교사원 대부분도 군경이 이미 점거한 뒤 문을 걸어잠갔다. 사원 주변에는 철조망을 둘러쳐서 승려들이 거리로 나가는 길을 원천봉쇄했다. 양곤 시내의 쇼핑몰, 식료품점 등 거의 모든 상가도 문을 닫았고, 공원도 폐쇄됐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군경의 무차별적인 진압에 겁을 먹고 돌아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장소에 근접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위대로 몰려 군경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이들은 아예 외출을 하지 말거나 심지어 창밖을 내다보지도 말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0여명 사망설… 시위대 결집 어려울듯 지난 27일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젊은 여성은 AP와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가 이길 희망은 없어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는 “승려들이 우리에게 지금껏 용기를 줬지만 이제 그들도 철조망에 둘러싸인 사원에 감금돼 있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한 반정부 소식통은 “군경이 우리를 추격해도 흩어졌다가 다시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시위를 계속할 의지를 밝혔다고 AFP는 보도했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 있는 반(反) 군사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 운동’은 지난 사흘간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 참가자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이날 보도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지옥이다/군부독재정권은 사탕을 개에게 던졌다/개가 빨아먹어 녹아 없어지는 사탕처럼, 군인이 빨아먹어 버마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여기가 지옥이다/단결은 어디 있고, 평화는 어디 있나/두려워 숨어 있나/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그래야 싸울 수 있다(‘따야 민 카익’의 시 ‘어디에 있나?’ 중에서).” 그의 시어는 거칠다. 에둘러 가지 않는 직설이다. 꾸밈도 은유도 없는 날것이다. 시인 고 김남주와 젊은 시절 김지하의 언어를 닮았다. 그에게 현 군부독재 버마(군사정권이 개칭한 국호 ‘미얀마’ 대신 옛 명칭 ‘버마’를 고수하는 민주인사들의 뜻을 존중해 ‘버마’로 표기)는 김남주와 김지하가 목숨 걸고 싸웠던 과거 한국의 판박이다. ●필명‘따야 민 카익’뜻은‘군정을 무너뜨리다’ 필명 ‘따야 민 카익’, 본명 쩌모르윈(37).27일 밤 서울 구로동 한 호프집에서 만난 그는 “내 조국 버마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침통해했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한 버마 국내의 참극에 마음이 상할 만큼 상해 있었다.“군사독재국가여도, 그 때문에 내가 나라 밖으로 떠돌고 있어도, 난 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이젠 왜 버마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고통스러워했다.“스님에겐 아들이라도 손을 모으고 예를 갖추는 게 버마 사람들인데, 군인들은 스님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있다.”며 버마로부터의 전언을 아프게 토해냈다. 쩌모르윈은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5명의 버마 시인 중 한 명이다. 모두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국으로 몸을 피한 경우다. 윈 포 마웅과 나잉윙 아웅은 버마에서 시집을 내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얀나이툰은 한국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에 시(‘아내를 위한 시’)를 발표했다. 쩌모르윈은 자신의 시를 버마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소식지에 실어 ‘동지들’의 마음을 위무했고, 지난해 11월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 모임(공동대표 유종순)’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대표 임동확)’이 마련한 ‘버마 혁명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했다. 지난달 27일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자들의 무사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버마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쩌모르윈의 시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무기’와도 같다. 필명 ‘따야 민 카익’마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겠다(‘따야=별’,‘민 카익=왕을 무너뜨리다’)는 다짐으로 지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 집회를 조직했고, 먹고 살기에도 벅찬 박봉의 상당 부분을 떼어 버마 내 민주화운동 지원자금으로 보내 왔다. 최근엔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CD로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태국의 미얀마난민촌에 보내고 있다.“시 쓰고, 노래하고, 노동해서 돈 벌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쩌모르윈은 설명했다.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에 정점에 이른, 버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중 총봉기) 당시 쩌모르윈은 17살이었다. 총을 쏘며 뒤쫓는 군인들이 무서워 그는 수 년 간 국경지대로 도망다녔다.NLD 멤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사와 간호사 일을 잃었고, 모든 생계활동이 봉쇄됐다. 쩌모르윈은 4500달러를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97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한국행을 택한 이유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또 극복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실제는 달랐다.2000년 난민 인정 신청을 접수한 그에게 한국 정부는 출국통보를 내렸다. 그와 동료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쩌모르윈은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서 난민 신청한 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난민 인정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정부만큼은 우릴 이해해줄 줄 알았다.”며 섭섭함을 나타냈다. 그는 태권도 도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먼저 일하던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폭행위협이 무서워 뛰쳐나온 이후 8개월 만에 얻은 일자리다. 쩌모르윈은 “한국은 버마만큼이나 공포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버마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한국에선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는 단속과 검거의 대상일 뿐이다. “버마가 민주화되지 못하면 숨 쉬고 살 수 없듯, 한국에 머물지 못하면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인권 앞에선 버마인도, 아프리카인도, 한국인도 없습니다.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쩌모르윈과 만나는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그때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버마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설명했다. 뉴스도 인터넷도 접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버마 정황을 세세히 전하고 있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DJ “통일 열망 가진 후보 지원해야”

    DJ “통일 열망 가진 후보 지원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김대중 전 대통령은 20일(미국시간) 범 여권의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과 관련,“남북 통일에 의욕을 갖고 열망을 가진 후보가 당선되도록 이번 대선에서 가능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을 방문중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SAIS)에서 가진 토론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변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요동을 치는 상황에서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 가운데 특정한 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주목된다. 김 전 대통령을 수행중인 최경환 비서관은 그동안 김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후보의 조건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 ▲21세기 정보 마인드 ▲통일에 대한 의지 등 세가지를 제시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이 이날 별도로 통일만 강조한 데는 나름대로의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을 수행중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특정한 후보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세 후보 모두 남북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책도 비슷하다.”면서 “심지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까지도 큰 틀에서의 대북정책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이 신당 경선 과정에서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동교동측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한나라당에서 탈당시켰다거나 여권으로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냈다는 얘기가 있으나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면서 “누가 그런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dawn@seoul.co.kr
  • DJ “부시 임기중 北·美수교 이뤄질 것”

    DJ “부시 임기중 北·美수교 이뤄질 것”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김대중 전 대통령은 18일(미국시간) “한반도에 평화의 서광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가진 연설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퇴임 전까지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북·미 수교가 이루어질 것이고, 관계국간의 평화협정도 체결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나는 이미 선택했다.’며 임기 내 북핵 문제 해결 의지와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 “성과없는 정책을 과감히 청산하고 북핵 문제 해결의 바른 길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은 “6자회담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열망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미군이 통일 이후까지도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달 2일부터 시작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정상회담과 관련,“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엇보다도 6자회담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데 두 정상이 합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남북 정상이 경제협력의 확대 및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한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내에서 우려하는 한국의 ‘반미감정’과 관련,“절대 다수의 한국 국민은 미국이 중요한 우방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서 “미국은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대륙의 위상이 크게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간에 위치한 한국과 굳건한 동맹을 유지하고 동시에 북한과 관계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는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 만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오는 22일까지 워싱턴에 머물며 상원 주요인사,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한반도 전문가들을 면담한 뒤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dawn@seoul.co.kr
  • [기고] 제주에서 시작되는 혁신도시 바람/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장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혁신도시인 제주혁신도시의 기공식이 열렸다. 지난 4년여 기간에 걸쳐 정부와 관련기관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혁신도시사업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지난 7월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에 이어 또 하나의 국토균형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국토균형발전은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이다. 혁신도시 건설은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방의 혁신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추진되어 왔다. 혁신도시는 이번에 착공하는 제주를 필두로 2012년까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0개 지역에 건설할 계획이다. 이처럼 전국에 건설되는 혁신도시 가운데 제주혁신도시가 가장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발전에 대한 제주도민의 열망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주혁신도시는 개발 초기부터 정부와 지자체,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가 주민들과의 꾸준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상호의 이해관계를 원만히 조정하여 왔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택지보상실적이 50%를 넘어선 데서 잘 알 수 있다. 물론 제주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부 지주들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사업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원활히 추진될 수 있었다. 대선과 참여정부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시점에서 혁신도시의 기공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제주혁신도시 기공식은 사업 추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지역의 혁신도시 건설에도 탄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기공식에서 보았듯 혁신도시사업에 대한 해당 지자체 및 주민들의 기대와 열망을 감안할 때 설령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혁신도시 건설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혁신도시건설은 무엇보다도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지속해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과 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사업과 혁신도시 건설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 왔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두바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많은 중동 국가들도 국가의 미래를 견인할 장소로서의 혁신도시 건설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혁신도시사업은 수도권의 질적 발전과 자립형 지방화 실현을 위해서 추진하는 한국 실정에 기초한 국가 발전과제이다. 지방과 수도권이 상생함으로써 지방의 발전과 함께 수도권의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서 혁신도시 건설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혁신도시 건설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제주혁신도시는 최초로 기공식을 가진 곳인 만큼 한국형 혁신도시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제주혁신도시는 9개 이전기관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적의 업무 및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또한 청정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에 걸맞도록 친환경적인 도시로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주택 등 정주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경쟁력 있는 꿈의 미래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시작되는 혁신의 바람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전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열리기를 제주혁신도시에 기대해 본다. 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장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 사례1 미용원장 최미씨 시드니 김선영 미용실 원장인 최미(46)씨는 호주의 미용 한류를 이끌고 있는 교민 1.5세대다. 기능올림픽 수상자로 한국 유행의 메카인 명동 김선영 미용실의 베테랑 미용사였던 그녀는 팍팍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꿈꾸다 1989년 호주로 기술이민을 왔다. 그녀는 정착 초기에 ‘정신적 시차’로 많이 힘들었다. 미용실로 출근할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할 허드렛일까지 혼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살기에 뻑뻑한 호주 교민들과 미용코드도 안 맞아 결국 한달 만에 미용실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해 그녀는 다시 가위를 들었다. 같은 해 스승인 서울 명동의 김선영 원장을 찾아가 미용실 브랜드를 쓰게 해달라고 간청해 끝내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와 미용실을 열고 선진 헤어비법을 발휘하면서 손님을 끌기 시작해 ‘성공 열매’를 얻게 됐다. 지금은 목 좋은 네 곳에 미용실을 두고 있으며 직원도 50여명에 달한다. 자신의 숙원인 미용학교도 만들어 후배 미용사를 양성하고 있다. 최 원장은 “손님은 하루평균 400명에 달한다.”며 “손님의 30%는 교민들이고 70%는 아시아계와 백인들”이라고 설명했다. # 사례2 로펌 변호사 김성호씨 시드니 도심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성호(43)씨는 잘나가는 교민 1.5세대다. 그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78년 중학교 2학년때 가족 모두가 멜번으로 이민 오면서 호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됐다. 당시 멜번의 한국인은 350명에 불과했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거주지역과 학교에서도 한국인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이용했다. 남들보다 몇 가마의 땀을 더 흘린 결과 호주사회에 빨리 적응하게 됐다.84년 시드니로 가족과 함께 이사한 김씨는 92년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호주국립과학 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첨단 연구주제와 관련된 특허와 투자 전문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2000년 시드니 테크놀로지대 법대에 들어가 다시 학구열을 불사른 끝에 마침내 꿈을 이뤘다. 김 변호사는 “한국인 고객을 상대로 민사와 무역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며 “유학생들과 위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의 법적 문제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역사가 40년에 불과한 호주 교민사회가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라는 유칼립투스처럼 호주대륙에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호주 방문자를 제외한 호주 교민의 수는 2006년 현재 5만 2763명이다. 유학생과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는다. 호주 교민들은 6개주 가운데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에 가장 많이 산다. 전체 교민의 62%가 몰려 있다. 빅토리아는 11.9%로 그 다음이며 남부 호주(4.1%), 노던주(4.1%), 타스마니아(1.7%) 순이다. 시드니엔 코리아타운이 5곳 형성돼 있다. 라이드, 캔터베리, 버우드, 광역시드니, 스트라스필드가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스트라스필드다. 중심가 상권 70% 이상을 교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민 역사 40년 이민자는 5만명 이들이 일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인다.‘한국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작년엔 이스트우드 공원에서 열렸다.9월30일 알맞게 달궈진 남반구의 봄햇살이 나들이를 손짓하는 토요일, 푸른색 잔디가 눈시린 이곳에 9000여명의 ‘검은 머리’들이 모였다. 올해도 9월 마지막주에 이스트우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앞서 9월22일부터 이틀 동안 시드니 도심 달링하버와 팜그로브 야외광장에서 한가위 축제가 열린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행사로 이틀간 5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달링하버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매일 몰리는 곳이므로 한국 알리기에 안성맞춤인 자리다. 호주 정·관계 인사, 외교사절 등 많은 귀빈들을 초청한다. 행사 첫날엔 꼬마 신랑신부의 전통결혼 가마행렬이 달링하버를 순회하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광장 중심무대선 축제 개막식과 난타 공연단의 특별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어 한국 전통무용,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강강술래, 아시아 민족 찬조공연이 진행된다. 특히 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할 강강술래춤은 교민들과 호주인들이 함께 손잡고 친교를 기원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야외 광장 여기저기서 전통 도자기 제작시연, 연꽃 만들기 등 문화체험 행사도 진행되며 호주인들과 함께 제기차기, 윷놀이, 팔씨름 등 한국 전통민속놀이도 즐기게 된다. 교민사회가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은 교민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시드니의 신흥주거지 콩코드웨스트에 사는 이은석(43)씨는 “신이 내린 직장이란 공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2004년에 이민 왔다.”면서 “처음 1년간은 사업 아이템을 찾아 고생도 했지만 한국인의 근면함을 무기로 언어와 인종 장벽을 뚫고 지금은 홍보회사와 용역회사를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핑에 사는 김인구(49)씨도 “아이들 교육과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메이저 신문사를 그만두고 사업이민으로 왔다.”며 “교포신문의 간부로 부지런히 일해 현재 이 신문의 경영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교민 사회 성장비결은 성실 특히 그동안 깊은 반목과 갈등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한인회도 세대교체의 열망을 실현해 젊은 회장을 뽑고 교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교민사회가 앞으로 정치권까지 발을 넓힌다면 교민사회의 위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현재 지방의회에 교포 두 명이 입성해 있다. 캔터베리 시의원인 남기성(58)씨와 스트라스필드 시의원인 권기범(45)씨가 이들이다. 똑똑하고 패기 있는 젊은 교포들이 가능한 한 많이 정치권에 진출해 교민들의 권익을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교민사회의 앞날은 ‘쾌청의 기상도’를 보일 것이다. siinjc@seoul.co.kr
  • 이천수 “이젠 울지 않겠다”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26)가 극적인 반전으로 네덜란드 프로축구 에레디비지에(1부리그) 페예노르트로 이적을 결정했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는 31일 “페예노르트와 이천수의 완전 이적에 합의했다.”면서 “계약 기간 4년에 이적료는 200만유로(26억원)”라고 밝혔다. 당초 울산과 이천수 측이 페예노르트의 영입 제안을 거푸 거절해 유럽 재진출이 무산되는 분위기였다. 임대 뒤 이적이라는 조건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8일과 29일 두 차례나 영입 제안서를 보낸 페예노르트는 31일 새벽 임대 기간이 없는 ‘완전 이적’ 카드를 재차 내밀었다. 구단과 김정남 감독, 이천수 측이 곧바로 검토에 들어갔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이천수는 에인트호벤에서 활약했던 허정무 전남 감독, 노정윤(NAC 브라다), 박지성·이영표(이상 에인트호벤), 송종국(페예노르트), 김남일(엑셀시오르)에 이어 7번째로 네덜란드 무대를 밟는 한국 선수가 됐다. 울산은 “임대 뒤 이적이 아닌 완전 이적으로 유럽 무대 적응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확보했다.”면서 “유럽 무대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는 이천수의 열망이 여전하고, 또 이를 적극 지원한다는 구단 방침 역시 확고해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천수는 “바라던 것이 이뤄졌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그동안 너무 빅리그만 고집했던 것 같다. 크지는 않지만 네덜란드도 좋은 리그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페예노르트는 항구도시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한 구단이다. 네덜란드 리그에서 아약스,PSV에인트호벤과 함께 ‘빅3’로 꼽힌다. 정규리그 우승은 통산 14회.98∼99시즌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명문 구단으로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7위에 그쳤다. 이천수는 31일 네덜란드로 떠나려고 했으나 여권 문제와 항공편 일정이 꼬이며 팩스를 통해 계약을 마무리 짓고 페예노르트의 점검 사항을 전달받아 메디컬테스트를 국내에서 치렀다. 이천수는 2003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이천수가 네덜란드 리그를 발판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일궈낸 박지성·이영표의 성공 사례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오늘’… 계간 ‘황해문화’ 특집

    외환위기 후 10년째다. 지난 시간, 한국 사회는 신산했다. 신산한 사회가 생산한 극과 극의 이미지는 언어마저 양극화했다. 한편에선 ‘홈리스’가 거리에 넘쳐나고,‘신용불량자’가 울부짖으며,‘청년실업자들’이 끝없이 좌절한다. 다른 한편에선 ‘럭셔리’가 시장표를 몰아내고,‘웰빙’이 문화적 대세이며, 명품시장은 불황 없는 성장일로다. 계간 ‘황해문화’ 가을호가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오늘’이란 특집기획을 마련했다.‘황해문화’의 분석을 빌려 ‘1997년 그때’와 ‘2007년 오늘’ 사이, 한 가상의 50대 초반 남성 가장이 살아온 풍경을 스케치해 본다. #풍경1,‘A공화국’과 명품열풍 홍길동씨는 누구나 선망하는 A그룹 계열 회사에 근무하다 명예퇴직했다. 외환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A그룹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2005년 투자액이 총 14조 1000억원으로 8대 재벌의 투자총액 33조 4000억원의 42.4%를 차지했다(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A그룹은 인재 블랙홀로도 유명하다.“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출신 7명, 국무총리와 장관 출신 9명이 A그룹의 인적 네트워크에 속해 있던 적도 있다.‘A그룹 인력으로 국무회의도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나,A그룹의 지배력이 경제영역을 넘어 정치·사회·문화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김상조).” 작년엔 큰딸을 미국으로 유학보냈다. 명문대 졸업장이란 명품 획득에 실패한 딸은 구두, 가방, 옷 등 패션 명품을 닥치는 대로 샀다.‘짝퉁이라도 명품을 들고 다녀야 안 꿀린다.’며 돈이 없을 때도 브랜드만은 포기하지 않았다.“젊은 세대가 명품에 더 집착하는 것은 이들이 교육에 대한 희망을 더 빨리 버리게 된 것과 연결돼 있고, 명품 열풍은 실제로 상류층이 아니면서도 상류층의 표지를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어떤 학자의 분석도 홍길동씨를 서글프게 했다. #풍경2, 우울한 청춘과 ‘기러기 아빠’ 홍길동씨는 딸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홍길동씨는 “지금 실업자인 사람과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고 믿었다. 자칫하면 딸도 “가짜 아디다스 추리닝을 입고 옆구리에 비빔면을 낀” 채 쏘다니거나,“뿌린 이력서가 거의 이백장에 가깝지만 여전히 도시 변두리에서 ‘찌라시’를 붙이고 다니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김애란 ‘성탄특선’)”이 될 거란 생각에 홍길동씨는 두려웠다. 홍길동씨는 반강제로 딸을 유학보내고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됐다.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배울 수 있는 곳이란 판단에 싱가포르를 택했다. 외로웠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올 10월이면 로드리고 데 라토(58)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자녀 교육 때문에 임기 1년 6개월을 앞당겨 조기 사퇴한다지 않는가. 홍길동씨는 “‘기러기 아빠’는 생계책임자 ‘아빠’가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세계적 수준의 자녀 키우기를 할 수 있는,‘능력있는 아빠 노릇’의 기표이자 월드클래스를 향한 한국사회 욕망의 기호(조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라 생각했다.2006년 통계청 조사결과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배우자나 미혼자녀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가구주 가족’이 국내외를 합하면 전체 가구의 21.2%나 됐고,98년부터 2004년까지 초등학생 해외유학도 30배 증가했다(조은). #풍경3, 급증하는 자살률과 비정규직 홍길동씨는 모처럼 KTX를 탔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중이었다.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는 요즘 부쩍 쓸쓸해하신다. 외환위기 후 10년 동안 자살률이 2배 이상 급증했다는 말이 들린다.1993년과 2005년 사이 60대 이상 자살률은 3배,85세 이상 자살률은 5.3배 뛰었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지지망이 취약하고 소득분배가 불평등한 계층일수록 자살률 증가가 두드러졌다(신동준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우리 어머니도? 설마’, 홍길동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밀양역을 출발하던 KTX가 급정거했다. 열차 문에 승객 발이 끼인 걸 모르고 운행해 승객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7월8일)한 것이다.‘정규직화를 요구하며 500일 가까이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들을 철도공사가 하루빨리 복귀시키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홍길동씨는 걱정했다. 철도공사는 안전업무가 승무원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승무원들의 업무에 안전 업무가 포함되면 철도공사는 ‘도급’(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들이 도급직이라 주장) 형태의 계약이 불가능해져 결국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부산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렸다. 홍길동씨는 수첩을 덮었다. 수첩엔 날짜 몇 개가 적혀 있었다.2003년 3월26일,7월2일,10월25일,2004년 4월12일,11월25일,2005년 3월1일,10월17일,2006년 11월20일, 2007년 8월13일….‘기러기 아빠’가 자살했다고 보도된 날들이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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