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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은 “‘나다운 것’ 고민…화려함보다는 ‘진짜’ 담으려 노력”

    예은 “‘나다운 것’ 고민…화려함보다는 ‘진짜’ 담으려 노력”

    2000년대 후반 ‘텔미’와 ‘노바디’ 등으로 걸그룹 열풍을 일으킨 원더걸스의 멤버 예은(25)이 솔로 가수로 새 출발한다. 하지만 그룹의 인기를 잇기 위해 전략적으로 솔로 앨범을 내는 유행과는 다르다. 그가 들고 나온 타이틀곡은 원더걸스의 신나는 후크송의 대척점에 있는 묵직한 모던 록. 콘셉트 역시 원더걸스의 복고풍이나 다른 걸그룹의 섹시 콘셉트와도 거리가 멀다. 이름부터 예명 ‘핫펠트’(HA:TFELT)를 내세운 데서 볼 수 있듯 원더걸스의 후광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번 솔로 앨범 ‘미?(Me)’는 누군가가 기획해 준 게 아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됐다. 원더걸스 시절부터 조금씩 작곡을 해 온 그는 앨범에 담긴 7곡 전곡의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또박또박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룹 활동할 땐 노래와 춤 모두 제일 잘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다운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이번 앨범은 저의 것을 찾아가려는 노력입니다.” ●앨범 7곡 전곡 작사·작곡·편곡에 참여 ‘나다운 것’을 담아내려 한 그의 음악은 대체로 어둡고 묵직하다. 타이틀곡 ‘에인트 노바디’는 록 발라드에 덥스텝을 결합해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노래한다. 대체로 모던 록을 기반으로 하면서 트랩,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는데 대중성보다 ‘마니악함’에 좀 더 가깝다. 가사 역시 연인과의 거짓된 관계,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등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가사와 멜로디, 코드 진행까지 제 감정을 100% 구현하는 걸 목표로 했어요. 화려함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진짜’만 담으려 했죠.” 소속사(JYP엔터테인먼트)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하다. 그는 “제3차 세계대전”, “유혈사태”와 같은 말들로 앨범 제작 과정을 돌이켰다. “박진영 프로듀서는 ‘너무 짙다. 조금만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곡을 써봐라’고 하셨어요. 회사에서도 원더걸스의 음악과는 너무 다르고 어렵다는 데에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는 앨범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곡의 의도를 입이 아프토록 설명했고 회사 관계자들과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이해해 준 회사에 “평생 갚아야 할 은혜”라며 감사해했다. ●그룹 때와는 다른 색깔… 이해해 준 회사에 감사 원더걸스의 씩씩한 ‘박여사’가 어른스러운 ‘핫펠트’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그를 스쳐갔다. 미국 진출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멤버 소희는 탈퇴, 선예는 결혼했다. 드라마와 뮤지컬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견디기 힘들었을 법하지만 그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대중적 인기, 1위 같은 것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때 행복하겠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자연스레 원더걸스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멤버 선예가 결혼을 발표했을 때 가장 먼저 나서서 팬들을 다독였던 그는 그룹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저희 모두 각자 원하는 걸 해야 할 시기는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모두 여전하고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겁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잠든 북한인권법 이젠 다시 깨워라/윤지원 평택대 교양학부 교수

    [열린세상] 잠든 북한인권법 이젠 다시 깨워라/윤지원 평택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랫말은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소망을 담은 것으로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이 즐겨 부르던 동요다. 또 오늘날까지 남북한 통일을 염원하는 가장 대표적인 민족적 애창곡으로 작사자는 고 안석주씨이고 작곡자는 그의 아들 안병원씨다. 이들 부자(父子)가 1947년 3월 이 노래를 발표할 당시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과서에 노래가 실릴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었다. 오는 15일 광복절(제69주년)을 앞두고 있고, 이 통일노래가 불린 지도 어느덧 66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국이다. 그래서 올해 초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은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내포한다. 역대 정부와 달리 강력한 통일 의지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북한과 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후속책은 남북한 신뢰를 바탕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교류 확대에 목표를 둔 드레스덴 선언으로 표출됐다. 이어 지난달 내부적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 대통령 소속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도 발족됐다. 통준위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통일대박을 앞당기기 위해 활발한 역할과 활동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북한 문제와 관련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중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일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지난 3월 유엔의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조사위는 남한에 거주하는 2만 6000여명 등의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북한인권 실태 조사를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마이컬 커비 전 조사위 위원장은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反)인도 범죄’가 자행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조사위 보고서의 결론 및 권고 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한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런 일련의 조치가 시사해 주는 점은 무엇일까. 첫째, 비록 이 보고서가 강한 구속력은 없지만 북한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공신력 강화와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했다. 둘째, 객관적 증거와 자료에 근거한 국제기구의 공식 보고서로서 성과 이행 측면에서 북한당국에 인권 개선을 제시했다. 셋째,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원칙을 적용했다. 즉 “국가는 자국민을 대량 살육,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 범죄 및 인종청소 등 4대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R2P원칙에 입각해 북한 주민들을 인도에 반한 범죄로부터 보호책임을 피력했다. 이를 토대로 유엔 안보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유엔 임시 재판소를 만들어 북한을 회부하고 김정은을 비롯한 최고책임자에 대한 제재를 권고했다. 향후 조사위 후속조치로 유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field-based structure)가 서울에 설치된다. 현장사무소는 5명 내외의 실무인력이 탈북자 조사와 국제규범에 따른 기록의 작성과 보관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큰 틀에서 현장사무소는 북한 인권실상에 대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좀 더 유도하고,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국제사회가 열악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장사무소 설치와 관련,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수년간 북한인권법은 국회에 계류 중인데, 사실상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차원에서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공동대응’과 현장사무소의 가교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다양한 경제 교류, 협력 증진도 중요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북한 주민들의 통일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지원하고, 우리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 [시론] 한국인의 통일 열망과 단계적 통일론/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

    [시론] 한국인의 통일 열망과 단계적 통일론/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

    남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통일’만큼 인기 높은 용어가 없어 보인다. 대북 정책은 실제 내용과 무관하게 ‘통일정책’이라고 주장하고 대북정책을 관리하는 기관은 남북관계부나 북한문제부보다 ‘통일부’라고 부른다. 북한도 비슷하다. 북한에서는 이남으로 파견된 공작원들까지 ‘통일일꾼’으로 알려졌다.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이 같은 관심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통일’이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 1980년대까지, 즉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통일은 ‘멸공통일’을 의미했지만, 일부 좌익 인사들은 공산주의 지상천국을 가져올 적화통일을 꿈꾸었다. 1990년대 말 흡수통일에 대한 담론이 많이 사라지게 되면서 남북 회담과 협력 그리고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질 단계적 통일론이 주류가 되었다. 남한의 단계적 통일론은 남과 북 양측 정부가 회담을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를 점차 활성화시키고 남북의 문화, 경제, 정치의 고립과 대립을 극복함으로써 통일 국가의 기반을 쌓는 것이 통일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비참한 북한 경제 실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독일식 흡수통일이 가져올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우려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비교적 값싼 방법으로 보이는 단계적 통일에 대한 희망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희망은 별 근거가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단계적 통일에 대한 시도는 북한 정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단계적 통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김정은 정권은 제일 먼저 남한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산가족 상봉, 우편물 교환 등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남북 기술 협력, 남한 자본의 투자 유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은 북한 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북한내에서 불가피하게 남한의 경제 수준과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잘산다는 사실은 15년여 전부터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어느 정도로 클지는 자세히 모르고 있다. 남북한 일인당 소득 격차가 적어도 15배에 달하기 때문에 북한 민중들에게 남한의 일상생활은 낙원처럼 보일 것이다. 독일 통일 이전 동독 붕괴에 결정적 요인이 됐던 동서독 일인당 소득 격차는 2~3배뿐이었다.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되면 남한의 번영을 훔쳐보게 된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경제생활이 남한보다 얼마나 빈곤함을 알게 된다. 그들은 북한 경제 몰락에 대한 책임을 김정은을 비롯한 세습 엘리트에게 돌리고 1980년대 말 동독 주민들처럼 남한과 단일 국가를 만들면 남한 주민과 똑같은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단계적인 통일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는 남북 교류의 활성화는 북한내에서 정권 정당성의 위기와 정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정통성 위기에 직면한 북한 정권은 단속과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소식은 남한 주민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단계적 통일의 상대인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감이 커질 것이다. 북한에는 지금도 10만명의 정치범이 있다. 하지만 그 불쌍한 사람들의 이름도, 모습도 알 수 없으니 이 통계는 추상적 지식일 뿐이다. 1989년 중국의 톈안먼 사태나 1980년 남한 광주 민주화 운동처럼 평양 거리에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통일이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북한 청년들이 경찰이나 군인에 의해서 피살된 모습이 남한 텔레비전에 방영된다면 북한 정권을 그대로 통일의 상대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가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단계적 통일의 필요 선제 조건인 남북 교류의 자유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는 북한 정권은 단계적 통일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 단계적 통일은 바람직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는 한반도 현대사 비극의 또 하나의 측면이다.
  • 민원 있는 현장 발로 뛰는 시장 ‘소통과 협치’로 지역현안 술술~

    민원 있는 현장 발로 뛰는 시장 ‘소통과 협치’로 지역현안 술술~

    ‘소통과 협치.’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 직후 밝힌 시정 추진 방침이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권 시장은 현장을 다니며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장소통 시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 시장실은 현안이 있는 곳에 시장이 직접 나가 관계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권 시장은 이와 별도로 시정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구·군을 다니며 달마다 1∼2일씩 여는 ‘구·군 순회 현장 시장실’도 운영할 방침이다. 첫 현장 시장실은 지난 15일 북구 칠성시장에서 열렸다. 이곳은 대형 식자재 마트 입점 문제로 마트와 시장 상인들이 수개월째 갈등 중이었다. 권 시장은 마트 입점 예정 건물에 시장 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업종을 입점시키고 2층은 식당으로 활용한다는 중재를 성사시켰다. 칠성시장 재개발 방안도 찬성 측과 반대 측을 중재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두 번째 현장 시장실은 22일 달서구 대구생활체육회 사무실에 차렸다. 8개 구·군 생활체육회장과 종목별 연합회장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음날인 23일에는 북구 복현동 대구시의사회에서 세 번째 현장 시장실을 개최했다. 대구시의사회·치과의사회·한의사회·약사회·간호사회 등 지역 5개 의료단체, 메디시티대구협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와 의료관광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24일에는 달서구 이곡동 성서행정타운 내 차량등록사업소 서부분소 주차장에 천막을 쳤다. 성서행정타운 부지 활용 방안에 관한 공무원·시민 의견을 듣고 차량등록 관련 민원 해결 방안도 논의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서구 내당동 대구시민센터에서 지역 23개 시민사회단체 실무 대표를 만나 민선 6기 대구시 시정방향과 주요 현안을 설명하고, 시정 추진에 관한 협조를 요청했다. 29일에는 대봉2동 주민센터에서 현장 시장실을 열었다. 남산대봉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현장을 살펴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권 시장은 “변화와 혁신에 대한 250만 대구 시민의 열망을 시정에 반영하고 ‘시민행복, 창조 대구’를 건설하기 위해 민생 현장에서의 시장실 운영과 시민사회단체 방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이정현 아내 김민경씨 이정현 당선에 미소…이정현 부인 암투병 중 선거운동 함께 해

    이정현 아내 김민경씨 이정현 당선에 미소…이정현 부인 암투병 중 선거운동 함께 해

    ‘이정현 아내 김민경’ ‘이정현 부인’ ‘순천·곡성 이정현’ 이정현 아내 김민경씨가 암투병 중에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운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7·30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 선거에서 당선된 이정현 부인 김민경씨는 지난 2011년 말 유방암 판정을 받고 3차례 수술을 받아 몸이 힘든 상태에서도 ‘새누리당 불모지’인 전남지역에서 당의 지원 없이 홀로 선거활동에 매진하는 남편의 선거 유세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이정현 당선자는 31일 밤 당선이 확실시되자 부인 김민경씨의 손을 꼭 잡고 승리를 축하하며 지지자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이정현 당선자는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6만 815표, 49.43%를 획득하면서 4만 9611표, 40,32%를 얻은 ‘텃밭’ 후보인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9%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광주·전남에서 영남권 보수 정당이 당선된 것은 26년 만에 처음이다. 이정현 당선자는 “이번에 저에게 표를 주신 분들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일단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며 “유권자들을 하늘처럼 받들고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 호남 정서 대변, 인재 양성을 위한 머슴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번에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시민혁명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이룬,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위대한 혁명”이라며 “이번 정치 드라마에 출연한 순천시민과 곡성군민 모두가 주인공이다”고 덧붙였다. 이정현 당선자는 “광양만 등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추고도 낙후된 호남과 전남 동부권에 정부와 외국기업을 설득시키고 관련 예산을 제대로 투입하도록 할 것”이라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끌어오겠으며, 주민의 열망과 낙후된 현실을 생각하면 예산폭탄으로도 부족하고 원자폭탄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현 당선 소식에 네티즌들은 “이정현 당선,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심판”, “이정현 당선, 부인이 기뻐하겠네”, “이정현 당선, 좋은 정치인 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도, 사회적 시장경제 메카로”

    “경기도, 사회적 시장경제 메카로”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24일 “경기도를 사회적 일자리와 사회적 기업 등 공동체 활성화의 모델로 삼아 대한민국 사회적 시장경제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남 지사는 24일 수원시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문제는 우파나 진보·좌파와의 문제가 아니며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장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이자 철학”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고민하고 추구해 온 철학과 가치를 경기도에서 실현시켜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며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스탠더드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야권과의 연정 추진과 관련, “여야가 힘을 합쳐 흔들림 없는 방향을 설정하면 기업이나 경제주체가 안정감을 갖고 가게 된다”며 “연정의 방향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합의된 것을 순차적으로 현실화하면서 4년 후는 물론 8년 후 도지사가 바뀌더라도 힘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 “과거 통독 과정에 비춰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열망하도록 만드는 것도 통일을 위한 준비”라며 “경기도는 인도·경제적 교류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 시장경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광역단체장 인터뷰] “연정은 이념 떠나 도민 행복 위한 것… 저 먼저 기득권 버리겠다”

    [광역단체장 인터뷰] “연정은 이념 떠나 도민 행복 위한 것… 저 먼저 기득권 버리겠다”

    “연정을 놓고 새누리당과 부딪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아요. 그런데 오히려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연정 인사를 받아들일지 내부 토론이 있는 것 같아요.”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남 지사는 대한민국 최초로 시도하는 ‘지방자치 연정’과 사회적경제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남 지사는 당선 직후부터 연정을 내걸고 사회통합부지사(정무부지사) 자리도 야당 몫으로 남겨 놓았다. 현재 협상단을 구성해 공약과 관련한 정책 협의를 벌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고 덧붙였다.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라는 비난에도 맞받아쳤다. 그는 “국회에 있을 때 ‘왜 정부는 마음대로 정해서 국회에 던지기만 하나’라는 얘기를 매일 꺼냈다”며 “그렇게 하면 여당도, 야당도 반대부터 한다. 집어던지면 빠를지 몰라도 상정 단계부터 여야 싸움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미리 국회에서 여야 의견 수렴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 내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 정책 추진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또 “경기도에서 연정을 하면 여야가 각자의 정책 중 합의된 것을 모아 순차적으로 다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누가 봐도 당과 상관없이 합의된 것이어서 아주 힘차게 밀고 나갈 수 있고, 도지사가 바뀌어도 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은 연정을 통한 정치안정과 사회통합 덕분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정치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했는데. -지금까지는 정치인으로서 행정부를 비판해 왔으나 이제 비판받는 자리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정치인과 행정가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정치인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경기도에서 현실로 만들 것이다.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국회의원 때 고민한 문제들을 현실과 접목해 하나씩 바꿔 나가겠다. →혁신 도지사를 내세웠다. 앞으로 도정의 방향은. -도정 목표인 일자리가 넘치는 안전하고 따뜻한 경기도의 종착점은 ‘도민 행복’이다. ‘일자리 넘치는 강한 경기도’와 ‘따뜻한 공동체 경기도’는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복지를 함께 추구해야 함께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소통과 혁신으로 화합의 도정을 만들고, 항상 현장을 찾아 직접 도민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 →현장에서 본 경기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으로 현안도 복합적이다. 경기도의 필수조건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고 충분조건은 따뜻한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동시에 이뤄야만 도민이 행복해진다. 대표 공약인 따복마을(따뜻하고 복된 마을공동체) 조성 사업을 통해 교육, 복지, 노인, 저출산, 일자리 등 경기도가 안은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 나갈 것이다.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따복마을과 같은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사회적 시장경제가 경기도에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5선으로서 정치력은 뛰어나지만 행정적인 측면에서 약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케네디, 오바마가 좋은 지도자로 평가받는 것은 포용력과 창의성, 비전을 가져서다. 뛰어난 행정력 때문이 아니다. 저 또한 혁신의 리더십으로 여야를 아우르며 좋은 관료와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이다. 제가 강조하는 ‘파트너십 리더십’의 핵심은 상하관계를 떠난, 수평적인 상호 간 협치에 있다. 열정을 가지고 파트너들과 함께 논의하고 권한을 대폭 주겠다. →연정과 같은 이미지 정치 때문에 도정이 야권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0.87% 포인트 차이(50.43% 대 49.56%)로 이겼는데 반올림하면 50대50이다. 제가 일방적인 승자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승자독식 구도에서는 정치 갈등이 계속되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도 심해진다. 승자독식 상황을 윈윈게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먼저 나서서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도민 행복이라는 최상의 가치를 위해 이념·정파를 떠나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미국 방문에 나선 배경은. -경기도는 접경 지역이 가장 넓은 곳이다. 통일의 전진기지에서 통일의 역량을 넓히기 위한 외교는 도지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지금까지 외자유치만 했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통일 역량 외교가 중요하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는 에드로이스 연방 하원외교위원장과 버지니아 주지사를 만나지만 3개사와 120만 달러 규모의 첨단기업 투자유치 협약도 맺는다. →중국·일본 등 차세대 지도자들과 교류를 지속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미·중·일·러 네 나라의 지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신뢰와 채널을 마련하는 것은 통일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김부겸 전 의원, 자민당 하야시, 민주당 후루가와 의원과 모임을 만들어 10여년간 교류했다. 위안부 문제나 역사 문제 등 민감한 사안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였다. 중국에서는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와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고 있다. →경기도 차원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게 있다면. -통일의 관건은 주변국들의 동의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다.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의 통일 역량 때문에 이뤄졌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열망하도록 만드는 게 또 다른 통일 준비라고 본다. 경기도는 인도적 지원과 경제교류 등을 통해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남한의 지자체들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하고 시장경제를 조금씩 알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권 주자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인데. -도지사가 된 지 한 달도 안 됐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도민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도민을 행복하게 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정리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한국농구 향한 115명의 간절함

    공교롭게도 취재석 바로 뒤가 한 명도 뽑히지 않은 등번호 1~10번 선수들의 자리였다. 지난 24일 2014 프로농구 외국인 드래프트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데저트 오아시스고교 영화관. 기자 뒷자리의 참가자는 다리가 긴 탓인지 기자의 발꿈치를 계속 건드렸다. 여섯 구단 감독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다음 시즌에 호흡을 맞출 11명을 호명했지만 끝내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아는 친구가 뽑히면 큰 박수를 보내곤 하던 그가 안타까움에 내뱉은 짧은 탄식은 갈수록 절박해졌다. 사흘 내내 펼쳐진 네 차례 연습 경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던 그다. 사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100여명 모두 안타까운 사연 하나쯤 품고 있을 것이다. 지난 22일부터 열린 트라이아웃에 참가 의사를 밝힌 이는 500명이 넘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에 참가한 인원은 115명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이 도시, 그리고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곳에 우두커니 자리한 이 학교 자체가 신기루 같은데 한국이라는 낯선 코트에서 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100달러의 참가비를 내고 광활한 대륙의 어느 곳에서 이곳까지 날아와 트라이아웃에 참여한 이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키 2m를 넘나드는, 영화 ‘300’에 등장할 법한 거구들이 붕대를 감은 채 또는 다리에 얼음을 댄 채 절뚝거리다가도 코트에 들어서면 없는 힘까지 짜냈다. 그런 모습을 사흘 동안 지켜봤으니 뒷자리 젊은 친구의 깊은 탄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농구연맹(KBL) 관계자를 붙잡고 자신의 제자들이 러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뛰고 있다고 자랑하는 미국 고교나 대학 코치를 보면 이들의 취업난은 꽤 심각해 보였다. 한편으론 국내 리그의 성장이 없었더라면 이 사막 한가운데에 이처럼 뜨거운 젊은이들의 열정을 불러모을 수 있었을까 하는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처음 시행된 뒤 계속 보완해 온 외국인 드래프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빅맨’에 의존하는 잘못된 풍토를 만들어 왔다는 얘기도 있고 그나마 자유계약 때보다 에이전트의 농간이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김영기 KBL 총재는 최근 드래프트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공언했다. 정확한 진단과 현명하고 포괄적인 숙의를 통해 국내 리그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제도의 참된 취지를 제대로 살렸으면 좋겠다. 임병선 체육부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중년 얼굴지방이식, 스트로마 얼굴지방이식으로 ‘볼륨 디자인하다’

    중년 얼굴지방이식, 스트로마 얼굴지방이식으로 ‘볼륨 디자인하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안’ 키워드에 열광한다. 변하지 않는 외모를 간직하고 싶거나 젊은 시절의 외모로 돌아가고 싶은 중년층들의 열망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미 노화가 진행된 중년들은 자기관리만으로 젊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동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술이나 수술이다. 다양한 동안수술 중 효과가 빠르면서도 수술 부담이 적은 지방이식은 대표적인 안티-에이징성형으로 꼽힌다. 자가 지방이식술은 얼굴의 볼륨감이 줄어들거나 국소부위의 탄력을 잃게 되는 경우, 지방이 많은 부위에서 자신의 지방을 채취해 원하는 얼굴 부위에 채우는 수술이다. 동안페이스의 특징은 이마, 볼살, 눈밑애교 등 얼굴 부위별 볼륨감이 기본인데 동안성형에 매우 적합한 수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형물의 삽입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수술이다. 얼굴에 지방을 이식하게 되면 입체적이고 세련된 인상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피부에 탄력이 붙어 동안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중년층 사이 인기가 많다. 주름보다는 얼굴의 굴곡이 나이를 판단하게 하는데 더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마, 볼살 등의 큰 볼륨은 있어야 하지만, 눈밑-눈물고랑, 인디언주름, 팔자주름 등은 없어야 할 굴곡이다. 이러한 부분 굴곡은 얼굴의 라인을 흩트리고 그 굴곡의 주변으로 그늘이 져 더욱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아이미성형외과 페이스리모델링연구소’ 성형외과전문의 김성민 원장은 “중년의 얼굴지방이식 페이스리모델링 시 안면 미학적인 디자인이 빠진 채 볼륨만 채워주는 지방이식에만 의미를 두면 아름답고 생기있는 젊은 얼굴이라기 보다는 그냥 살찐 아줌마 또는 살찐 중년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노화된 얼굴 피부는 피부탄력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지방이 잘못 주입될 경우 무게감으로 얼굴이 더 처져 보이게 되어 얼굴이 어색해질 수 있다. 이때는 중년 페이스리모델링 일수록 지방을 최소량으로 안면부 조직의 여러층으로 주입하여 눈밑, 팔자, 입술주변 등의 피부 처짐이나 굴곡을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년들의 피부 및 안면구조 변화의 특성을 잘 반영한 ‘스트로마 얼굴지방이식’은 신체의 불필요한 지방을 채취하여 지방조직을 정제하여 최하층에 형성 된 지방줄기세포가 다량 함유 된 고밀도 스트로마 조직만을 선택적으로 이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생착율이 획기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피부탄력 등의 재생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일반적인 지방이식과 달리 중년층들에게 적합한 지방이식수술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원장은 “나름의 삶을 영위해 온 중년층들에게는 젊음을 유지하는데 있어 수술의 효과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러운 수술결과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수술을 경험이 많은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여 본인의 나이와 피부의 상태 등 자신에게 맞는 수술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도움말: 아이미성형외과 페이스리모델링연구소 성형외과전문의 김성민 원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印尼의 오바마’ 조코위 대통령 당선

    ‘印尼의 오바마’ 조코위 대통령 당선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22일 친서민 개혁 정책을 표방하는 조코 위도도(53·조코위) 투쟁민주당(PDIP)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2004년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한 후 사상 처음으로 민주선거에 따른 정권 교체를 이루게 됐다. AP 통신은 지난 9일 실시된 대선의 개표 결과 조코위 후보가 53%의 득표율로 대인도네시아운동당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47%)를 제쳤다고 22일 전했다. 프라보워 후보는 선거 결과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면서 ‘선거 불복’을 선언했다. 프라보워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세 번째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조코위 후보는 초대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연임에 성공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직선 대통령에 선출됐다. 빈민으로 태어나 기업가로 자수성가한 그는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로 당선된 뒤 대선에 출마했다. 부정부패와 군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 정치와 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국민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의 개발 과정, 한국의 발전상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며 특히 삼계탕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적 이미지로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 불리며 새 정치의 희망으로 부상한 그는 유권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는 선거운동으로도 새바람을 일으켰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1914년 7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길어야 반년이라던 전쟁이 ‘4년간 36개국 6500만 군인이 참전해 850만명이 죽은’ 총력전이자 참호전으로 변했다. 1차 세계대전이 ‘대(Great) 전쟁’,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가장 큰 변화는 홀대받던 하층노동자와 여성들이 전방 전쟁터와 후방 군수공장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제 몫이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제 몫을 챙기지 못한 이들 사이에 불만이 일었고 이는 오늘날 다양한 국제분쟁의 뿌리가 됐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이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리며 내놓은 보도를 통해 1차 대전이 남긴 유산을 짚어봤다. 키워드는 4대 제국의 몰락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1. 중동 분쟁의 뿌리 - 오스만 제국의 몰락 독립을 미끼로 분할통치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수법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한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맺었다. 오스만제국 내 소수민족의 독립 열망을 부추겨서 제국을 붕괴시킨 뒤 분할통치하자는 것이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이 임무를 수행하는 영국 첩보원 얘기다. 아랍세계의 크고 작은 종족분쟁이 여기서 출발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도 마찬가지다. 1917년 아서 밸푸어 영국 외무장관은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에다 유대인 국가를 허용한다는 발언을 언론에 흘렸다. 아직 참전하지 않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계 유대인에게 당근을 던져 주자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희망사항’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밸푸어의 발언 이후 현실이 됐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배후를 교란하는 대가로 독립을 약속받은 팔레스타인은 충격에 빠졌다. 양측 대립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뒤늦게 “가장 큰 외교적 실수”라고 한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건국을 고집했고 1949년 이를 인정받았다. 오랜 분쟁의 시작이었다. 2. 차르가 되고픈 푸틴 - 러시아 제국의 몰락 서구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흔히 차르라 부른다. 음험한 권력자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푸틴의 정책 자체가 러시아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러시아제국 시절과 지금의 국경선을 비교해 볼 때 가장 극명한 차이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완충지대다. 북유럽에서 중부유럽에 걸쳐 핀란드, 발틱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부유럽은 예부터 곡창지대여서 늘 주변국들이 탐내는 대상이었다. 산업화로 발전해 나가던 서유럽국가들의 텃밭이자 유럽 진출을 도모하려는 러시아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미국과 러시아 간 다툼도 여기에서 기원한다. 18세기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는 독일·오스트리아 쪽에,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쪽에 속했다. 1차 대전 때 독립을 시도했으나 곧 소련에 합병됐다. 공산권이 붕괴하자 바로 독립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차 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이후 지금까지 서구의 모든 중부유럽 정책이 러시아를 겨냥하는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1차 대전 당시의 지정학은 지금도 여전한 셈이다. 3. EU 출범의 씨앗으로 - 대영제국의 몰락 20세기 초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영국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럼에도 식민지, 해군력,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영국은 최강제국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1차 대전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전쟁 때문에 돈이 부족해진 영국은 1917년 4월 미국의 지원 없이는 3주도 버틸 수 없다며 미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야 했다. 1차 대전 기간 미국이 연합군에 빌려 준 돈만 해도 모두 71억 달러였다. 1차 대전은 유럽연합(EU)의 씨앗을 뿌려 놓기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담 중 프랑스 장교 장 모네는 ‘경제적 통합을 통한 전쟁의 종식’이란 아이디어를 내놨다.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연합군은 이를 무시했다. 기회는 몇 차례 더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오스트리아의 백작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 칼레르기도 ‘변덕스러운 정치 대신 지속적인 경제교류가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은 열렬히 지지했으나 일반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통합을 통한 영구평화의 달성’이란 꿈을 1, 2차 대전에 책임 있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4. 귀족 세계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몰락 1차 대전이 드러낸 구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단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다. 근대민족국가 설립이라는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정점으로 결성된 귀족 연합체다. 민족의 이익보다 신분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이 강한 지배체제였다. 근대화 바람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1914년 산업화에 착수하면서 민족 갈등이 불거져 나왔고 이는 곧 1차 대전의 촉발 원인으로 꼽히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저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전후 제국은 철저히 해체됐다. 땅은 빼앗겼고 나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로 삼등분됐다. 반면 민족보다 신분을 앞세웠기에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유대인 탄압이 덜했고 이 때문에 20세기 초 경제학, 심리학, 철학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선보인 유대계 지식인들이 수없이 배출됐다. 나중에 이들이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은 세계패권뿐 아니라 학문의 패권도 거머쥐게 됐다.
  • 진보교육감 ‘전교조 감싸기’ 나서나

    진보교육감 ‘전교조 감싸기’ 나서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노조 전임자 70명 중 39명을 일선 학교 현장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교육부가 21일까지 학교로 복귀하지 않은 전임자는 직권 면직하도록 시·도교육감들에게 요구한 만큼 미복귀 전임자들에 대한 징계를 놓고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들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교조는 17일 서울 서대문구 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 전임자 39명이 18일 학교로 복귀해 21일부터 근무하게 된다고 밝혔다. 애초 교육부가 복귀를 지시한 노조 전임자는 72명이었지만, 충북·제주 지역 전임자 2명이 해당 교육청에 파견돼 공식 전임자는 70명이다. 전임자 전원 미복귀 원칙을 내세웠던 전교조가 절반이 넘는 전임자를 복귀시키기로 결정한 배경과 관련, 김정훈 위원장은 “전교조가 민주진보 교육감 시대를 막는 걸림돌로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또 “미복귀 결정을 내린 31명은 전교조의 기본을 유지하기 위한 골격이자 뼈대”라며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새로운 교육을 향한 전교조의 열망은 똑같다”고 강조했다. 앞서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 복귀 시한을 지난 3일로 제시했다. 하지만 진보 교육감들이 18∼19일자로 복직 시한을 통보하면서 교육부도 오는 21일로 시한을 2주 연기했었다. 교육부는 21일까지 복귀하지 않은 전임자에 대해서는 일주일 내 인사위원회를 열어 직권 면직하도록 시·도교육감들에게 요구한 바 있어 미복귀 전임자들에 대한 시·도교육감들의 조치가 주목된다. 일단 진보 교육감들이 ‘전교조 감싸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교육감들은 오는 23일 서울시교육청 주관으로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부 지시 거부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면 교육부와의 직접적인 충돌이 예상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교조 문제는 21일 이후 시·도교육감들의 조치를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슈&논쟁] 교육감 직선제 폐지

    [이슈&논쟁] 교육감 직선제 폐지

    전국 시도 교육감이 이달 초 일제히 취임, 민선 2기 시대를 열어젖혔다. 두 번의 교육감 선거 공약과 투표 결과를 두고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존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1기 교육감들은 혁신학교, 학생 인권조례 등을 추진하면서 교육부와 엇박자를 냈다. 중앙정부와 맞붙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민선 교육감은 ‘교육 소통령’으로 불렸다.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한국교총이 이에 가세했다. 직선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앙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정책 경쟁 등을 들며 폐지론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측 전문가의 주장을 들어 봤다. 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贊] “교육의 정치 도구화… 중립성도 훼손 헌법소원 통해 직선제 존폐 결정해야” 안양옥 한국교총회장·서울교대 교수 2010년 1기, 2014년 2기 민선교육감 선거가 치러지면서 당초 ‘교육선거’의 기대와는 달리 보수 대 진보 진영이라는 정치 구도의 ‘정치선거’로 변질되고 있는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며, 우리는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교육감 직선제의 위헌성 요인을 제시하자면 첫째, 교육감을 직선방식으로 선출하는 입법 과정의 제도 설계부터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방교육자치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수단으로 채택할 것인가는 입법자의 재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육감 후보자로 나서는 인적 요소인 당사자에 대해서는 정당 가입 배제 및 교육 경력 요구 등을 반영,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어느 정도 고려한 측면이 인정되지만 헌법 제117조에 근거한 지방자치의 주민대표성을 강조한 주민직선방식의 교육감 직선제도가 헌법 제31조의 정치적 중립성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다. 즉 헌법 제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거, 정당선거를 배제해야 하는 교육감선거에서 오히려 정당정치를 기준으로 하는 공직선거법을 준용토록 한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어느 국가와는 달리 유일하게 헌법상에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지역교육 수장을 고도의 정치 행위인 선거방식으로 선출토록 한 것은 동일한 비정치기관장인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등에 대해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 직선이 아닌 임명제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도 입법자의 재량을 넘어선 남용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자치의 기본원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자치의 두 축인 집행기구인 교육감과 심의·의결기구인 교육위원회에 있어, 자치의 원리상 심의 의결기관인 교육위원회의 구성은 주민대표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주민통제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지만, 상대적으로 집행기관인 교육감은 전문적 관리의 원칙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은 채, ‘교육민주화’라는 가치에만 경도돼 전문성을 일차적인 존립 근거로 하는 교육감제도의 대표성을 과도하게 강화시켰다. 현 교육감 직선제도는 분명 잘못 설계된 제도다. 셋째,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교육·선거운동 전문가가 교육감이 되는 구조를 양산하는 비교육적 결함이 있다. 유·초·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에 유·초·중등 교원의 교육감 피선거권을 제한해 놓고, 주민의 직접선출방식으로 교육감을 뽑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유·초·중등 교원이 교육감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교직을 사퇴해야 한다. 이는 현장 전문가인 교원들이 교육감으로 진출할 기회를 사실상 제한하는 것으로서, 교원의 피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교육감 선거는 정당의 조직과 자금을 지원받는 정치선거와 달리 교육자가 나 홀로 광역 단위의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고, 헌법 제31조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따라 교원으로 하여금 선거활동을 금하고 있어 교육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의 전문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으로 교육감이 교육운동가 및 선거운동을 조직화하고 있는 사회시민세력과 정치조직 등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에서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선거’의 무늬만 있을 뿐이다. 교육 없는 교육감선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가치를 훼손하는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가 답이다. 교육을 정치 도구화하려는 정치권의 기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국회 차원의 법률 개정은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이 교육 본질에 입각한 교육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통해 이를 면밀히 따지고 제도의 존폐를 결정해야 한다. [反] “혁신학교·무상급식 등 정책 의제로 보수 세력 선거에 지자 생떼 쓰는 격”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육대학원 교수 교육감 주민직선제 흔들기가 거세다. 집권 여당과 정부 그리고 한국교총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제2기 민선 교육감 선거 직후 벌어진 일이다. 민망한 점은 보수 세력의 패배가 주민직선제 폐지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에서 진 사람들이 판 자체를 뒤엎자고 생떼를 쓰고 있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6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을 배출한 제1기 선거에 비하면 말 그대로 압승이다. 진보 후보들의 단일화 효과가 컸다. 반면 보수 후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울러 강원, 전북, 광주, 전남 등에서는 10% 안팎의 득표율을 높여 재선됐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는 승리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변수는 다른 데 있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의 열망이 분출된 것이다. 맹목적인 점수와 서열 경쟁, 그리고 승자 독식! 이게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해 온 현실이다.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명령은 그 상징적인 표현일 따름이다. 이 말에 우리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절절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게 참 이상한 일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는 그런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는 물론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엉뚱하게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탓할 게 아니란 말이다. 간선제 시절 후보 담합, 금권 선거 등의 난맥상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 간의 정책 경쟁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과 교원의 인권 신장, 고교평준화 확대 등은 진보 교육감이 국가 수준의 정책 의제를 이끌 능력이 있다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례다. 이에 보수적인 정부는 전전긍긍하면서 고소를 일삼았다. 교육부가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패배를 거듭해 온 것이다. 주민직선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교육감은 보수 세력의 아성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강요된 임명제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교사, 학부모 등에 의한 간선제 시절조차 교육감은 보수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게임의 룰 자체가 그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보 세력은 오랫동안 교육감 권력에 대해 아주 무책임했다. 주민직선제 도입 이후에야 비로소 책임 있는 당사자로 나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수 세력의 행보가 이해된다.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분열이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조정해 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판을 깨자는 것이다. 집권 여당과 정부는 명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기반 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총이 그 역할 대행자로 나선 까닭이다. 그러나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과 정부의 행태를 무책임하고 경망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갖은 이유를 대 주민직선제를 도입한 그들이다. 선거 패배에 따른 정략적 주장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교총의 모습은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주민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스스로를 전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절대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공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먼저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선거 결과 등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꿔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집권 여당은 입법기관으로서 더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정략적 판단에 기초한 주장이라도 예컨대 국회 차원의 ‘지방교육자치선거 평가위원회’(가칭)를 설치·운영할 정도의 성의는 보여 줘야 한다는 얘기다.
  • [이슈&논쟁] 교육감 직선제 폐지

    [이슈&논쟁] 교육감 직선제 폐지

    전국 시도 교육감이 이달 초 일제히 취임, 민선 2기 시대를 열어젖혔다. 두 번의 교육감 선거 공약과 투표 결과를 두고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존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1기 교육감들은 혁신학교, 학생 인권조례 등을 추진하면서 교육부와 엇박자를 냈다. 중앙정부와 맞붙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민선 교육감은 ‘교육 소통령’으로 불렸다.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한국교총이 이에 가세했다. 직선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앙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정책 경쟁 등을 들며 폐지론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측 전문가의 주장을 들어 봤다. [贊] 안양옥 한국교총회장·서울교대 교수 “교육의 정치 도구화… 중립성도 훼손 헌법소원 통해 직선제 존폐 결정해야” 2010년 1기, 2014년 2기 민선교육감 선거가 치러지면서 당초 ‘교육선거’의 기대와는 달리 보수 대 진보 진영이라는 정치 구도의 ‘정치선거’로 변질되고 있는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며, 우리는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교육감 직선제의 위헌성 요인을 제시하자면 첫째, 교육감을 직선방식으로 선출하는 입법 과정의 제도 설계부터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방교육자치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수단으로 채택할 것인가는 입법자의 재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육감 후보자로 나서는 인적 요소인 당사자에 대해서는 정당 가입 배제 및 교육 경력 요구 등을 반영,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어느 정도 고려한 측면이 인정되지만 헌법 제117조에 근거한 지방자치의 주민대표성을 강조한 주민직선방식의 교육감 직선제도가 헌법 제31조의 정치적 중립성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다. 즉 헌법 제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거, 정당선거를 배제해야 하는 교육감선거에서 오히려 정당정치를 기준으로 하는 공직선거법을 준용토록 한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어느 국가와는 달리 유일하게 헌법상에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지역교육 수장을 고도의 정치 행위인 선거방식으로 선출토록 한 것은 동일한 비정치기관장인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등에 대해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 직선이 아닌 임명제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도 입법자의 재량을 넘어선 남용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자치의 기본원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자치의 두 축인 집행기구인 교육감과 심의·의결기구인 교육위원회에 있어, 자치의 원리상 심의 의결기관인 교육위원회의 구성은 주민대표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주민통제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지만, 상대적으로 집행기관인 교육감은 전문적 관리의 원칙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은 채, ‘교육민주화’라는 가치에만 경도돼 전문성을 일차적인 존립 근거로 하는 교육감제도의 대표성을 과도하게 강화시켰다. 현 교육감 직선제도는 분명 잘못 설계된 제도다. 셋째,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교육·선거운동 전문가가 교육감이 되는 구조를 양산하는 비교육적 결함이 있다. 유·초·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에 유·초·중등 교원의 교육감 피선거권을 제한해 놓고, 주민의 직접선출방식으로 교육감을 뽑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유·초·중등 교원이 교육감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교직을 사퇴해야 한다. 이는 현장 전문가인 교원들이 교육감으로 진출할 기회를 사실상 제한하는 것으로서, 교원의 피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교육감 선거는 정당의 조직과 자금을 지원받는 정치선거와 달리 교육자가 나 홀로 광역 단위의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고, 헌법 제31조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따라 교원으로 하여금 선거활동을 금하고 있어 교육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의 전문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으로 교육감이 교육운동가 및 선거운동을 조직화하고 있는 사회시민세력과 정치조직 등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에서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선거’의 무늬만 있을 뿐이다. 교육 없는 교육감선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가치를 훼손하는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가 답이다. 교육을 정치 도구화하려는 정치권의 기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국회 차원의 법률 개정은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이 교육 본질에 입각한 교육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통해 이를 면밀히 따지고 제도의 존폐를 결정해야 한다. [反]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육대학원 교수 “혁신학교·무상급식 등 정책 의제로 보수 세력 선거에 지자 생떼 쓰는 격” 교육감 주민직선제 흔들기가 거세다. 집권 여당과 정부 그리고 한국교총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제2기 민선 교육감 선거 직후 벌어진 일이다. 민망한 점은 보수 세력의 패배가 주민직선제 폐지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에서 진 사람들이 판 자체를 뒤엎자고 생떼를 쓰고 있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6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을 배출한 제1기 선거에 비하면 말 그대로 압승이다. 진보 후보들의 단일화 효과가 컸다. 반면 보수 후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울러 강원, 전북, 광주, 전남 등에서는 10% 안팎의 득표율을 높여 재선됐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는 승리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변수는 다른 데 있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의 열망이 분출된 것이다. 맹목적인 점수와 서열 경쟁, 그리고 승자 독식! 이게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해 온 현실이다.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명령은 그 상징적인 표현일 따름이다. 이 말에 우리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절절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게 참 이상한 일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는 그런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는 물론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엉뚱하게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탓할 게 아니란 말이다. 간선제 시절 후보 담합, 금권 선거 등의 난맥상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 간의 정책 경쟁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과 교원의 인권 신장, 고교평준화 확대 등은 진보 교육감이 국가 수준의 정책 의제를 이끌 능력이 있다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례다. 이에 보수적인 정부는 전전긍긍하면서 고소를 일삼았다. 교육부가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패배를 거듭해 온 것이다. 주민직선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교육감은 보수 세력의 아성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강요된 임명제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교사, 학부모 등에 의한 간선제 시절조차 교육감은 보수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게임의 룰 자체가 그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보 세력은 오랫동안 교육감 권력에 대해 아주 무책임했다. 주민직선제 도입 이후에야 비로소 책임 있는 당사자로 나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수 세력의 행보가 이해된다.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분열이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조정해 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판을 깨자는 것이다. 집권 여당과 정부는 명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기반 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총이 그 역할 대행자로 나선 까닭이다. 그러나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과 정부의 행태를 무책임하고 경망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갖은 이유를 대 주민직선제를 도입한 그들이다. 선거 패배에 따른 정략적 주장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교총의 모습은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주민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스스로를 전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절대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공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먼저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선거 결과 등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꿔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집권 여당은 입법기관으로서 더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정략적 판단에 기초한 주장이라도 예컨대 국회 차원의 ‘지방교육자치선거 평가위원회’(가칭)를 설치·운영할 정도의 성의는 보여 줘야 한다는 얘기다.
  • [커버스토리] 월요일 새벽, 축구의 정의가 내려진다

    [커버스토리] 월요일 새벽, 축구의 정의가 내려진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딱 두 경기를 남겨 놓았다. 모두의 관심은 14일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결승전으로 향하고 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다시 결승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이게 됐다. 2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독일, 24년 전의 아픔을 설욕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대결은 브라질월드컵 최고의 경기가 될 전망이다. # 골대 앞에 자비심이란 없다… ‘원팀’ 전차군단 객관적 전력에서는 독일이 우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의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탄탄한 수비 조직력과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력을 과시했다. 독일을 만난 상대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준결승에서 개최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브라질을 맞아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무려 7골을 몰아쳐 산산조각 내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같은 독일의 절정의 경기력 원천은 ‘원팀’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스타플레이어들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던 독일 축구는 1998 프랑스월드컵 8강전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한 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전국적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자국 분데스리가를 활성화시켰다. 현재 독일 대표팀의 뼈대는 분데스리가와 유럽을 통틀어 최강의 클럽으로 군림한 바이에른 뮌헨이다. 최전방의 토마스 뮐러와 마리오 괴체를 시작으로 중원의 사령관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주장인 필리프 람과 최후방에서 벽처럼 버티고 있는 제롬 보아텡, 그리고 매 경기 무자비한 선방쇼를 펼치는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멤버들이 대표팀의 공격-미드필드-수비-골키퍼로 이어지는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 메주트 외칠(아스널), 사미 케디라(레알 마드리드) 등의 스타플레이어들도 유소년 프로그램을 거쳐 성장했던 선수들이다. 경기 내내 이들의 호흡이 무서울 정도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은 약간 다르지만 2014년의 독일대표팀은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를 뼈대로 레알 마드리드를 가미했던 2010 남아공대회 우승팀 스페인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FIFA 랭킹 5위의 아르헨티나는 토너먼트를 가까스로 통과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 적합한 평가다. 조별리그를 무난히 통과했지만 16강전 스위스와 8강전 벨기에에 모두 1-0 신승을 거뒀다. 네덜란드와 치른 준결승에서는 연장 무승부 끝에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AS모나코)의 신들린 선방 덕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 팀보다 위대한 선수도 있다… ‘메시아’ 메시 이처럼 객관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있기 때문이다. 메시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축구의 격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선수다. 그는 상대의 순간적 방심을 여지없이 패배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메시는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자책골을 유도한 뒤 특유의 드리블 돌파에 이은 왼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고, 이란을 상대로는 90분 혈투를 마감하는 왼발 슈팅으로 승부를 매조졌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프리킥을 포함해 2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상대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조 1위를 확정했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메시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보여왔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메시의 진화와 발전을 볼 수 있는 경기는 16강 스위스전이었다. 메시는 연장 후반 막판 스위스의 장신 수비진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오른쪽 측면에서 침투하던 노마크 상태의 앙헬 디마리아(레알 마드리드)에게 기막힌 어시스트를 했다. 평소 같으면 자신이 결정지었을 장면이었다. 메시가 자신이 만들어 낸 애매한 골 찬스를 동료에게 양보해 확실한 골을 이끌어 낸 것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8강 벨기에전과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것 자체로 위협적인 자신에 대한 상대의 인식을 역이용해 수비수들을 끌고 다녔다. 공간 침투만 노렸던 기존의 모습과 달리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수비에 가담해 상대의 공격 작업을 느리고 무디게 만들었다. 이 같은 메시의 변화는 생애 첫 월드컵 우승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 수차례의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 무려 네 번의 FIFA발롱도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승과 수상 경력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월드컵의 갈증을 풀 기회가 바로 이번 대회인 것이다.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들어 올렸던 1990 이탈리아대회 당시 잉글랜드의 공격수였던 게리 리네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공을 쫓아 90분 내내 뛰어다니지만,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훗날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세워질 ‘메시 박물관’에 월드컵 수집만 남겨둔 메시의 불타는 열망이 이번 대회에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리네커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설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 사령탑 전쟁… 냉정한 승부사 vs 구조조정 전문가 세계적 명장으로 거듭난 독일 요아힘 뢰브 감독은 지난 8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며 최강의 조직력을 만들어냈다. 오로지 팀의 조직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데 모든 전술을 집중시키는 유형의 감독이다. 선수들을 뛰게 만드는 동기 부여 역시 탁월하다. 또한 상대 전력이나 돌발 변수 등에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승부사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이런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뢰브 감독은 5-0으로 앞서 있던 후반13분 미로슬라프 클로제(라치오)를 빼고 윙포워드 안드레 쉬를레(첼시)를 투입, 공격력을 강화했다. 이 선택이 7-1이라는 역사적 스코어를 창조했다. 이에 맞서는 아르헨티나의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2011년 여름 사령탑에 오른 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표팀을 깔끔하게 정리한 ‘구조조정 전문가’다. 카를로스 테베즈(유벤투스), 하비에르 파스토레(파리생제르맹) 등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계륵 스타’들을 모조리 대표팀에서 몰아냈다. 또 논란의 중심이었던 대표팀에서의 메시 활용법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는 메시에게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해 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위치상으로 메시를 아주 절묘하게 배치해 스트라이커, 윙어, 플레이메이커 중에서 자기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시에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 조직력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재구성, 팀을 완전체에 가깝게 만들어 아르헨티나를 24년 만에 결승까지 올려놨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정재근 감독 사임, 심판 폭행-욕설 장면 보니 위협적 “이기고 싶은 열망에..”

    정재근 감독 사임, 심판 폭행-욕설 장면 보니 위협적 “이기고 싶은 열망에..”

    ‘정재근 감독 사임’ 정재근 감독이 사임을 표했다. 심판 폭행 논란에 휩싸인 정재근 연세대 농구팀 감독이 사임한다. 정재근 감독은 지난 10일 열린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상대팀에게 파울을 주지 않는다며 항의하다 심판에게 욕설을 하고 얼굴을 들이받는 등의 폭행을 저질렀다. 논란이 커지자 정재근 감독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을 지고 농구 감독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재근 감독은 “이기고 싶은 열망이 강하고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우발적인 행동이 나왔다. 황인태 심판에게 어제 통화로 사과드렸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정재근 감독 사임 당연하다”, “정재근 감독 사임,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독을 하겠나”, “정재근 감독 사임,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중계화면 캡처(정재근 감독 사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기회의 땅 아프리카 혼돈의 땅 돼버린 이유

    기회의 땅 아프리카 혼돈의 땅 돼버린 이유

    아프리카의 운명/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김광수 감수/휴머니스트/1024쪽/5만 4000원 로마시대 작가이자 행정가였던 플리니우스(61~112년)는 “아프리카에서는 늘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따라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21세기에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자원 잠재력과 소비시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경제 열강이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아프리카를 휩쓴 역사는 결코 영화 속 풍경 같지도, 희망이 엿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치욕적이고 잔혹하며 침울하다.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틴 메러디스는 2006년에 낸 책 ‘아프리카의 운명’(The Fate of Africa, 2006)에서 독립을 향해 나아가던 1950년대부터 반세기 과정을 아우르면서 아프리카의 흥망성쇠를 풍성하게 조감한다. 저자가 1964년부터 15년간 격동기를 체험하고 연구원, 아프리카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경험을 폭넓고 깊이 있게 담았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아프리카 각국이 독립 정부를 갖기 이전의 역사는 서문을 통해 충실하게 설명한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들이 벌인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역사, 문화, 종교에 관계없이 수백개 종족이 엮이면서 1만여개 정치 단위체가 40개 유럽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재편됐다. “나이지리아의 통일은 영국의 발명품”이라는 말은 아프리카 국경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설명한다. 세계가 냉전 체제로 들어간 1940년대 후반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에 독립의 여지가 생겼다. 서구 열강은 아프리카 저항세력이 정치·경제적 불만을 품고 공산주의로 편입될 것을 우려하면서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1957년 3월, 영국은 ‘모범식민지’였던 골드코스트를 중심으로 독립 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가나의 독립운동을 이끈 은크루마의 회의인민당이 1956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영국 정부는 독립 정부의 출범을 확정했다. 이 즈음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이집트 수에즈 운하 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외세 영향력을 청산했고 연이어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등 영국 보호령들과 프랑스령 알제리, 벨기에령 콩고 등이 차례차례 독립 정부를 세웠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와중에 이루어진 독립은 성장 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1960년대까지 아프리카 경제는 5~6%씩 성장했고, 세계은행 경제학자 앤드루 카마크도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경제적 미래가 매우 밝다”(아프리카 발전 경제학, 1967)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권력은 쉽게 부패했고,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적은 아프리카 국민들은 견제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식민 행정관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한 신흥 엘리트들이 온갖 혜택을 떠안았다. “나이지리아가 독립한 첫해는 권력이 이익으로 변하는 광란의 시기”라는 저자의 표현은 나이지리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잠비아의 기록(1974년)에 따르면 새 권력을 위한 주택 1710채와 하인 숙소 1307채를 건설하는 데 도시 주택예산 77.2%가 소요됐고, 4.7%는 오두막집 9905채 건설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우간다를 중심으로 에이즈의 재앙이 퍼졌고, 장수하는 권력은 폭군이나 독재자가 되면서 아프리카는 암울한 상황이 반복됐다. 1994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정권이 넬슨 만델라에 의해 민주적으로 전복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르완다에서는 종족 갈등으로 10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기대와 열망이 스러진 배경과 미래가 비관적인 이유를 역사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풀어내면서, 아프리카의 경제발전 잠재력은 지배 엘리트의 약탈적인 정치와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을 조장하는 이들의 행동 탓에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감수를 한 김광수 교수는 “저자가 아프리카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점은 성급한 판단”이라며 아쉬운 점으로 꼽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 문제, 보건 및 생태학적 위기 등이 발생한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덧붙였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아프리카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저자의 경험이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데 책은 의미를 갖는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英, 의회 광장에 간디像 설치… 과거사 반성? 무기계약 꼼수?

    英, 의회 광장에 간디像 설치… 과거사 반성? 무기계약 꼼수?

    영국 정부가 런던 의회 광장에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의 조각상을 세운다. ‘민주주의의 아버지’, ‘평화의 상징’이라며 각종 찬사를 바쳤지만, 무기 계약을 위한 비즈니스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인도를 방문 중인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과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델리의 간디 기념관에서 조각상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헤이그 장관은 “간디의 평화 사상과 차별에 대한 저항, 인도를 전진시키려는 열망과 비폭력주의는 오늘날에도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오즈번 장관도 “간디는 인도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위인”이라며 “조각상이 영국과 인도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기념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로 돌아온 지 100주년이 되는 내년 봄까지 조각상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디의 조각상을 의회 광장에 세우는 것은 과거사를 기억하는 영국 나름의 방식이자 일종의 사과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영국이 인도에 2억 5000만 파운드(약 4333억원) 규모의 미사일 판매 계약을 성사시킨 다음날 이런 계획을 발표한 것을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인도에 무기 세일즈를 하러 간 자리에서 간디 조각상 계획을 발표한 것은 아이러니”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도 “인도 정부는 전투기 126대를 구매할 계획이 있고, 영국 정부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상황”이라면서 “인도와 프랑스의 계약이 연기되면서 영국은 유로파이터가 선택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디 증손자 투샤르 간디는 인디펜던트에 “윤리나 도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렸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승리의 여신’ 獨메르켈 총리 결승전 응원차 또 브라질행

    ‘승리의 여신’ 獨메르켈 총리 결승전 응원차 또 브라질행

    일명 ‘승리의 여신’ 으로 불리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또다시 브라질을 찾는다. 독일언론은 9일(이하 현지시간) 메르켈 총리가 오는 14일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과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을 직접 보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열혈 축구팬으로도 잘 알려진 메르켈 총리는 특히 독일 현지에서는 ‘승리의 여신’으로 불린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자신이 직접 관전한 경기에서 독일 대표팀이 무려 10승 1패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같은 공식은 그대로 이어졌다. G조 예선 첫 경기를 경기장에서 지켜본 메르켈 총리 덕분인지 독일이 강호 포르투갈을 4대 0으로 대파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와 함께 브라질로 간다는 사실. 대내 외 산적한 각종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는 한 나라의 국가원수로서 이같은 잦은 외유에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질 만도 하지만 분위기는 우호적인 편이다. 독일 ZDF TV에 따르면 브라질을 7대 1로 꺾은 지난 월드컵 4강전 시청자수가 공공장소에서 시청한 국민을 제외하고도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3257만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표팀 선전 덕에 월드컵 열풍에 휩싸인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 총리를 앞세워 대표팀이 4번째 우승컵을 가져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브라질 마피아, 미네이랑의 비극 재현? ‘과거 2명 자살+심장마비 2명 사망’

    브라질 마피아, 미네이랑의 비극 재현? ‘과거 2명 자살+심장마비 2명 사망’

    64년 전 ‘마라카낭의 비극’이 재현 됐다. 9일(한국시간)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브라질이 독일에 1-7로 참패한 이 경기는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4 브라질 월드컵축구 4강전에서 전반이 채 끝나기도 전에 5-0. 다름 아닌 브라질 축구의 비극이다. 브라질은 9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축구 독일과의 4강전 1-7로 참패했다. 독일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가 전반 11분 선제골을 넣을 때만 해도 ’참사’를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독일은 23분부터 6분간 4번의 슈팅을 해 4골을 추가했다. 독일은 후반전에도 가차 없이 2골을 더 넣었다. 브라질은 오스카르가 경기 종료 직전 1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을 향한 열망이 높았던 브라질 축구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날 전반전 중계 카메라에 오열하는 모습이 잡힌 브라질 관객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64년 전 ’마라카낭의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브라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브라질은 객관적으로 압도적인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많은 참가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회를 앞두고 기권했다. 특히 당시에도 남미 축구의 양강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 유치에 나섰으나 브라질에 밀린 것에 앙심을 품고 참가 자체를 포기했다. 브라질은 승승장구했다. 예선 리그에서 멕시코(4-0)와 유고슬라비아(2-0)를 완파하며 2승 1무로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했다. 결선 리그에서는 스웨덴과 스페인을 무려 7-1, 6-1이라는 점수로 무릎 꿇렸다. 이쯤 되자 줄리메컵은 벌써부터 브라질의 차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3차전에서 브라질은 거짓말 같은 패배를 당했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 확정이었으나 경기 종료 10분 전 역전 결승골을 얻어맞고 1-2로 졌다. 당시 마라카낭 경기장에는 무려 17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차 있었다. 이중 4명의 관중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2명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2명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라질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고 폭동이 이어졌다.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결승전 장소가 마라카낭 경기장으로 정해지자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마라카낭의 비극’은 브라질 축구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한쪽에서는 오히려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번에 이곳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려 64년 전에 만들어진 ’트라우마’를 지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도 브라질은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라카낭 경기장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준결승에서 6점차로 거꾸러졌다. 비극이나 참사를 넘어 ’대재앙’이라고 할 만하다. 미네이랑의 비극 재현에 네티즌은 “미네이랑의 비극..브라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미네이랑의 비극..충격이다”, “미네이랑의 비극..안타깝다”, “미네이랑의 비극..선수들 무사해야 할 텐데”, “미네이랑의 비극..축제로 즐기자”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 캡처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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