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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마음 붙일 곳 없는 요즘 정치/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마음 붙일 곳 없는 요즘 정치/유창선 정치평론가

    정치권에서 느닷없는 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한미일 연합훈련이 있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친일국방’이라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극단적 친일 행위로 극단적 친일국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무능하고 무지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다 망했다”고 반박했다. ‘독도 인근’이라는 사실과 다른 표현을 써 가며 자위대를 끌어들인다며 ‘친일’ 프레임을 들이대는 야당 대표의 선동정치에 수긍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연합훈련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 될 일을 마치 당할 일을 당했다는 식으로 일제침략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편 여당 대표의 모습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문재인은 총살감”이라고 했던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국정감사장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여긴다면 김일성주의자”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김 위원장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진영과 무관하게 많은 노동운동가와 네트워크가 있고 노동 현장을 잘 안다고 판단해 인선했다”고 감쌌다. 하지만 진영와 무관하게 김 위원장의 말에 귀 기울일 노동운동가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필이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야 할 자리에 태극기 들고 단상에 올라 ‘박근혜 탄핵 반대’를 외치던 극우 성향의 정치인을 기용했으니 정부가 말하는 ‘노동개혁’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와중에 ‘사퇴요정’이라는 웃음거리가 됐던 이은재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전문건설공제조합 새 이사장 후보에 낙점된 일은 차라리 한 편의 코미디와도 같다. 국회의원 시절 자질 논란에 휩싸였고 관련 전문성도 전혀 없는 최악의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던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아닌 협회나 단체에서 결정한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런 인사가 민간의 자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아직 5개월밖에 안 지났으니’ 하면서 지켜보다가도 이런 광경들을 계속 보노라면 이런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는 회의가 든다. 그런데 그럴 즈음이면 이번에는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민심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차단선을 긋는다. 김용민 의원은 “임계치가 넘어 버리면 사퇴를 바라거나 헌법상 정해진 탄핵 절차로 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윤 대통령 탄핵을 예고한다. 그런 목소리가 나와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민주당의 현실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이런 극한 정치를 통제해야 할 이재명 대표는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와중에서도 2억 3000여만원 상당의 방위산업체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니 한반도 긴장이 고조돼 방산주가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고도 태연히 국회 국방위원이 된 사실은 놀랍다. 요즘 우리 정치의 특징은 별것 아닌 일을 갖고 목숨 걸듯이 싸운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사소한 허물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정작 자기 쪽의 큰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모른다. 그러니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주식에 물려 버린 개미들의 고통은 깊어 가고, 치솟는 식탁 물가에 집집마다 한숨을 내뱉으며, 남북 간의 대치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여야는 오로지 사활을 건 극한 대결의 정치에 매달려 있다. 누구를 위한 무한 대결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 [열린세상] 인공지능 발전과 데이터 프라이버시/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열린세상] 인공지능 발전과 데이터 프라이버시/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인공지능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우리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가져오고 있다. 2021년 매킨지 컨설팅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회사의 56%가 인공지능을 활용 중이라고 응답했을 만큼 전 세계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매년 미국에서만 3000억 달러의 매출 기회 상실이 고객들의 검색 오류 때문이라는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고객 맞춤형 추천 시스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국내 대형 인터넷 서점들은 고객의 도서 구매 이력이나 도서 리뷰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도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어떤 고객이 특정 작가의 추리소설을 구매한 이력이 있다면, 같은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을 때 그 고객에게 안내 메시지나 메일을 보내서 고객 만족도와 구매 확률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적용 범위를 점차 넓혀 가면서, 최근에는 오염물 배출 방지 및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을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 폐기물 업체는 소각 시설의 센서 데이터를 수집해 학습시킨 알고리즘을 통해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을 크게 감축시켰다. 에너지 기업들은 사옥의 냉난방 조절이나 에너지 통합 관리 시스템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관리를 체계화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에 기반한 예측 분석 시스템을 통해 발전 피크 시간을 결정하고 청정에너지인 태양열 및 풍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에너지원의 다양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좋은 점만 있는 것일까. 최근 인공지능의 어두운 면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특히 개인의 프라이버시 이슈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선호하는 상품, 책의 종류, 여가 활동, 여행 정보, 대출 정보 등 개인 정보들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기업 마케팅에 활용하는 능력은 회사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 요건이 됐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거대 기업들이 앞다퉈 제공하는 음성비서 서비스 또한 번번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고객들이 음성비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음성데이터들이 유출된 것이다. 음성비서는 단순히 음성데이터 외에도 개인 연락처나 금융 정보처럼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모두 관련 이슈로 홍역을 치렀으며, 다시 한번 인공지능 기술의 위험성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개인 정보 유출에 대비한 정책이 필요하다. 백악관에서는 이달 초에 인공지능 권리장전(AI Bill of Rights)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청사진은 인공지능 기반 도구들의 설계, 사용, 배포에 관해 미국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아 주는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5개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주요 응용 분야인 메타버스에 대해 윤리 규범을 제정하고자 하는 등 국내 관계 부처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도한 법 규제로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제약을 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제적 울타리는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인공지능의 사회적 이슈 관련 핵심 법규인 데이터 3법의 보완이 필요하고 이미 발의된 인공지능 법률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요구된다. 기업 또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윤리의식을 주체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열린세상] 우리 정치 현실이 빚어낸 교육의 현주소?/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열린세상] 우리 정치 현실이 빚어낸 교육의 현주소?/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연구원장

    교육은 국가 근간과 미래 향방의 가늠자다.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와 그에 따른 총체적 사회상은 어떤가. 정권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풍토에서는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교육정책이 설 자리가 없다. 미래를 열어 가는 바람직한 주인공들을 다듬고 키워 가는 과정이 교육일진대, 우리 교육정책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근본적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원대한 국가교육의 비전과 전략, 정책 우선순위와 사회시스템, 사회 위계의 리더십 등 소통의 부재와 이념적 편향으로 자유국가의 정통성마저도 정치공학과 연계되어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교육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교사는 미래를 어루만지며 자수(自修)의 정신으로 미래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성과 품성, 인격의 융합체인 매너가 갖춰지며 비로소 인간다움이 형성된다. 그러나 최근 교육현장은 무위도식의 장(場)과 같다. 목공용 양날톱을 휘두르며 담임 교사의 생명을 위협한 사건, 수업 시간에 상의를 벗거나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들이댄 사건, 교탁 아래 카메라를 설치해 여교사를 촬영한 사건 등 교육의 현장에서 연간 2000여건의 사건이 신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을 앞세워 체벌이 금지된 학교 현장에서 이런 지나친 행동을 통제할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잘못을 혼내는 어른이 없고, 그른 것을 바로잡아 줄 스승도 없다. 가시적 미디어에서 비웃고 싸우고 해치고도 책임성을 묻지 않는 장면 등에서 아이들은 본 대로 배운 대로 똑같이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식의 귀함을 앞세워 방종적 자만을 자유인 양 가르친 결과가 우리 사회교육 현장이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한다. ‘자유롭고 독창적 사고를 통해 개성 있는 사람’을 키우겠다는 교육관은 바람직하다. 주입식 교육으로 성적을 위한 지식만 강조하고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면서 내면의 선한 마음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교조 교육관의 뿌리가 아니었나! 하지만 현실은 편향적 정치 야합으로 이러한 교육관은 사라지고 이념투쟁 판의 선봉장으로 전락한 현장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사생아적으로 파생된 귀족노조, 언론계의 진보란 명분으로 좌편향적 한건주의 껍데기 논리 또한 같은 맥락이다. 숭고한 교육의 본정신이 확증 편향되어 진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철 지난 이념화의 집단 이익단체로 우리 사회 혼란의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대학의 정치 종속화로 믿었던 지식인 교수사회마저 초현실적 한국 정치로의 편승은 더욱 가관이다. 우리 교육의 망국적 현상이 빚어낸 결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교육현장에서 자란 운동권세대들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 스며들어 현실의 주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편향된 사고로 국가 미래는커녕 과거가 현재를 발목 잡아 진보란 명분으로 자유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드러난 전 정권에서 저질러진 허위, 진실 감추기, 거짓, 음모론, 대중의 미망과 광기 등으로 탈진실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팩트체크라는 새로운 교육적 윤리도 부상했다. 여당은 당권을 둘러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야당은 ‘개딸들의 놀이터’로 죽창가를 부르며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방탄민주당을 완성해서 부끄럼도 모르는, 이러한 정치 만능화적 그들만의 토굴로 끌어들이고 있는 정황에서는 교육 백년대계는 없다. 이렇게 이념화된 정치와 정파를 탈피해 교육을 분리하고 총체적이며 거국적 차원에서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축하여 탈이념화 교육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자유를 근간으로 건전한 상식과 팩트, 전통과 정체성을 영유하며 인간다운 매너를 갖출 수 있는 인성 위주의 교육관을 확립할 시점이다.
  • [열린세상] 북한의 핵무기 사용 법제화/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핵무기 사용 법제화/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북한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법을 제정하며 김정은의 지시라면 즉각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 공격 위협을 세계 만방에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지금까지도 북한의 핵위협이 지속돼 왔지만, 법제화함으로써 핵무기 발사의 단추를 김정은이 마음먹은 대로 누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도 해외 출장 시 핵가방을 갖고 다니면서 만약의 경우에 핵무기 사용의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북한과 다르게 선출 과정에서 충분히 정신 상태의 검증을 받아 대통령이 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결단을 내릴 수 없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검증을 거치지 않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족 세습제로 지도자가 됐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김정은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인데,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북핵에 대한 억제 능력을 더욱더 확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의 핵위협은 상존해 왔으나 핵무기가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는 법제화 상황을 보면서 핵무기 피해 당사자인 한국으로서는 스스로의 방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정치에는 핵무기 위협에 대한 기본 이론이 있다. 핵무기 위협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핵위협의 상대국이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상호확증파괴, 즉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으로 핵무기로 위협당하면 서로가 완전히 파멸될 때까지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핵무기 전략이다. 그런데 고전에 가까운 국제정치 이론과 다르게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해도 한국은 핵무기가 없어 핵무기의 위협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반년이 넘어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핵무기 사용 언급을 여러 차례 하고 있다. 2022년 10월 현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내의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는 미국의 B61 시리즈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미군의 관리하에 있지만 유사시에는 자국의 전투기에 장착해 상대방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핵공유(Nuclear Sharing)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나토 가맹국이 아니었던 핀란드는 나토 가맹국이 된 이후 미국의 F35 블록4 전투기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 한다. 핀란드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GPS 유도폭탄으로 전투기에서 지상 물체를 공격하는 훈련을 해 오고 있기 때문에 전투기에 핵무기를 탑재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공격하고 핀란드로 귀환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토 가맹국에 배치돼 있는 전술핵 B61 시리즈는 명중 정도가 점점 높아져 공중에서 지상으로 핵폭탄을 떨어뜨릴 때 오차범위가 30m 이내로 좁혀져 있는 상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성취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북핵 법제화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을 잘 아는 일본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기는커녕 핵위협을 더욱더 공고히 하는데도 시간을 낭비하는 외교적 대응을 하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이라면 진작에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든지 아니면 자체 개발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토 국가들처럼 실제적인 핵공유 정책으로 한 차원 높은 북핵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과의 핵공유 전략 논의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논의를 진행해야 역사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 [열린세상] 일론 머스크의 미완성 보고/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일론 머스크의 미완성 보고/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우리는 누구나 ‘보고’를 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혹은 그 중간에 어느 조직이나 보고를 하기 마련이다. 말단 사원은 물론 사장이나 대통령도 보고를 한다. 주주나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를 할 때면 누구나 완벽함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다. 지금 내 보고 내용에 틀린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오탈자가 있지는 않은지, 나중에 이 보고 내용이 적자나 실패로 이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역시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잘 준비된 보고라 할지라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패의 위험을 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위험을 고려한 의사결정만이 그나마 ‘완성’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설령 미완성이라고 해서 보고를 미루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시작이 없는 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최고경영자(CEO)들은 대중 앞에서 보고를 참 많이 한다. 시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인텔과 삼성도 주기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CEO는 주주에게 성과를 보고한다. 지난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AI) 데이 행사를 열고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소개했다. 지난해 이맘때 장난식으로 공개한 로봇의 프로토타입 개발 현황을 진지하게 보여 준 것이다. 눈에 비친 테슬라의 로봇은 BTS 음악에 흥겹게 춤을 추던 현대차그룹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해 보였다. 아직 관절을 조금 움직이고 아장아장 걷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은 오롯이 기계공학의 관점에서 본 시각이다. AI의 관점으로 보자면 테슬라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로봇에 테슬라 시스템 온 칩(SoC)을 장착해 사람의 뇌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옵티머스는 이를 통해 스스로 현실을 이미지 렌더링하며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하는 로봇이 되려고 한다. 무게마저 인간과 비슷한 73㎏이다. 머스크의 로봇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과거 테슬라가 보여 준 자율주행의 역사 덕이다. 테슬라는 과거 자율주행 개발업체들이 필수적으로 장착하던 라이다를 배제하고 카메라를 중심으로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을 이끌어 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딥러닝에 있었다. 인간의 눈과 같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인식하고, 딥러닝 기술을 통해 그 인식한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물론 이 기술이 아직 완벽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운전 중 인간의 부주의함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것이 통계로 보여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미국 전체 자동차의 10만㎞ 주행 시 사고 발생 확률은 약 12%인 데 반해 테슬라 오토파일럿은 단 1%대에 불과했다. 테슬라의 주가는 AI 데이 이후 20% 넘게 폭락했다. 물론 실적의 영향도 있지만 로봇 개발에 대한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머스크가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대중 및 주주와 투명한 소통을 하려고 했으며, 행사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날만 보면 미완성의 보고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미완성’ 보고의 연속이 휴머노이드 로봇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성형이 될 수는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완성된 보고의 강박에서 벗어나 완성돼 가는 과정의 연속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미완성의 미학’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각자 제한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한 다음,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조직을 생각해 본다.
  • [열린세상]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들이다/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들이다/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이 1898년 타이티섬에서 그린 작품에 붙인 제목이다. 그중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들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볼 때 그렇다.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뤄져 있다. 그다음으로 많은 단백질과 지방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황으로 구성된 화합물이다. 그 외에 철과 마그네슘, 나트륨, 칼슘, 칼륨, 인 등이 조금씩 들어 있다. 이들 원소의 기원은 우주에 있다. 수소는 138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으로부터 38만년 후쯤 생겼다. 이때 소량의 헬륨과 극미량의 리튬도 생겨났다. 이 수소 구름이 뭉쳐져 별이 되고 별의 중심에서 차례로 다른 원소를 만들어 내는 핵융합이 시작됐다. 그 결과 헬륨을 거쳐 산소와 탄소, 네온, 규소, 철 등이 생겼다. 이보다 무거운 금, 납, 우라늄은 매우 무거운 별이 마지막에 초신성을 이루며 폭발할 때 만들어졌다. 태양계는 약 45억 6000만년 전 이런 초신성의 잔해가 모인 성운(별구름)에서 태어났다. 주로 수소로 구성된 이 성운의 지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 즉 1광년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별구름 주위에서 또 초신성이 폭발해 그 충격파가 흩어져 있던 별구름을 흔들어 뭉쳐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과 그 주변을 도는 아주 작은 행성들이 생성됐다. 지구는 그중 안쪽에서 세 번째 궤도 주변에 있던 미행성들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도 그때 지구에 자리잡게 됐다. 우리 은하, 즉 은하수에 있는 별들에서 오는 빛을 조사한 결과 인체의 구성 성분과 별 내부의 성분은 97%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천체망원경으로 15만개의 별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인류가 떨치지 못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혼자인가? 인류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우주선과 망원경을 계속 만들고 쏘아 올리는 것은 우주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알기 위한 탐구심 때문이다. 미국, 유럽, 캐나다가 100억 달러를 들여 지난 연말 발사한 최첨단 적외선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의 주된 사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웹은 기존의 허블망원경보다 6배 크며 관측 능력은 100배 강력하다. 135억년이 넘는 과거의 빛, 다시 말해 빅뱅 후 1억~2억 5000만년 후의 빛까지 볼 수 있다. 초기 우주의 어둠 속에서 최초로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아주 멀리 있는 물체는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매우 희미하거나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에게 도달하는 빛은 지금도 팽창 중인 우주 공간을 통과하는 동안 파장이 길어져 적외선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웹이 근적외선, 중적외선 관측용으로 설계된 이유다. 글 머리의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누구인가?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종이다. 생물 역사상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을 ‘인류세(世)’라는 지질시대로 명명할 정도로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는 종이다.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지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주의 은하는 2000억개가 넘으며 그중 하나인 우리 은하에 있는 별은 4000억개가 넘는다. 우리는 은하 중심에서 3분의1 거리에 있는 노란색 난쟁이별의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다. 이 행성은 “태양 빛을 받으며 떠 있는 먼지의 티끌”, 즉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에 불과하다.
  • [열린세상] 알고리즘의 덫에서 벗어나려면/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알고리즘의 덫에서 벗어나려면/김세연 전 국회의원

    우리 정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분열 심화, 정치 양극화 등 판에 박힌 소리를 하는 건 이제 무의미한 것 같다. 이념적 편향성과 적대성은 끝없이 고조되고 있고, 진실은 미궁 속으로 숨어 버렸다. ‘2찍’이건, ‘1찍’이건 지금의 정국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가상공간에서지만 함께 있는 사람들과 연대감과 동지의식을 공유한다. 얼굴 내놓고, 이름 걸고 하기 어려운 자극적 표현, 때로는 욕설까지 대행해 주니 그럴 때마다 통쾌함을 맛본다. 이런 유튜브 채널을 보는 시간만큼은 현실의 불만족이 해소되고 불만이나 불안이 줄어들며 행복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휴식과 힐링의 시간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드는 최면과 중독의 덫에 집단 포획되고 있다. 때로 감정을 자극하는 슈퍼챗 선동질에 넘어가 돈까지 빨리기라도 하면 정신적 노예를 넘어 경제적 노예가 돼 버린다. 욕설 대리 유튜브 채널의 애청자가 되고 나면 스스로의 표현도 거칠어져 감각이 둔화되며 어느덧 똑같은 욕쟁이가 돼 버린다.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결과적으로 빅테크 상업주의의 노예가 된 건 아닐까. 이들은 우리의 24시간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젠 신체의 일부가 돼 버린 스마트폰 이용 시간 중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영화와 드라마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다양한 콘텐츠로, 게임은 게임대로 온라인 여가 시간을 빨아들이고 있다. 빅테크들의 쟁탈전으로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 흡입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한번 자신을 바라보자. 이들은 내 마음속 결핍과 욕구를 더 세게 자극할수록 더 많은 나의 시간을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구독한 채널들이 몇 시간씩 끊임없이 나를 흥분시키고 있다면 혹시 내가 누군가의 노예가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자. 그럼 어떻게 편향적 알고리즘의 덫에서 빠져나와 정치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시민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쁜 생활습관으로 병이 난 경우 빠르고 손쉬운 치료법은 약을 먹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식습관 개선과 규칙적인 운동처럼 지루하게 느껴지는 과제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 나쁜 정보 섭취 습관으로 생겨난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질환을 치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관점의 이해와 수용, 공동체 동료를 위한 내 이익의 양보와 같은 개방적이고 대승적이며 유연한 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마치 병자의 몸이 점점 굳어 가듯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도 상실돼 갈 것이다. 작지만 구체적인 생활 속 실천 과제엔 무엇이 있을까. 처음 시도하려면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반복하다 보면 효용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령, 성별, 종교, 직업, 특히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 보자. 처음엔 구토가 날 수도 있겠지만 나와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애청하는 매체를 구독해 보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고, 듣기 싫은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혐오하는 대상과 직면하면 나의 인식의 한계가 확장되면서 좀더 균형 잡힌 존재가 될 것이다. 누구도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골방에 갇혀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도, 체험, 깨달음의 반복 실천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 [열린세상] 도시에서 길을 건너기/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열린세상] 도시에서 길을 건너기/김세정 바르샤바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도시마다 도로를 건너는 방식이 다르다. 익숙한 도시에서는 이 지점에 관해 그리 생각을 하지 않기 쉽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도로를 건널 때는 잠시 주저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이 도시에서는 사람이 먼저로 여겨지는지 차가 먼저인지부터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런던은 아직은 그나마 사람이 먼저인 도시다. 횡단보도가 아니거나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이어도 사람이 길을 건너고 있으면 일단 차들이 멈춘다. 항의 표시거나 조심하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예전보다는 많아졌는데, 사회가 좀 각박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차들이 매우 강력하게 제 권리를 주장하며 보행자들을 꾸짖지는 않는다. 반면 서울은 여전히 차가 먼저로 여겨지는 듯하다. 횡단보도의 경우에도 신호등이 없다면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차들을 종종 본다. 심지어는 사람이 건너고 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간다. 특히 도로의 폭이 좁은 이면도로에서 런던에서처럼 당연히 차가 보행자를 주의하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무심코 길을 건너다가는 요란한 경적 소리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적으면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지만, 아직도 서울의 도로에서 주인임을 주장하는 쪽은 자동차다. 횡단보도에서 일단 서서 차가 멈추는지 아닌지를 살피는 쪽은 사람이고. 서울에서는 보행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근처에서 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도로의 폭이 넓고 보행신호가 바뀌는 간격은 긴데, 정작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짧기 때문인 듯하다. 과격한 서울의 날씨도 한몫 거든다. 여름이면 매우 덥고 겨울이면 매우 춥고 비도 세차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횡단보도 신호를 놓치면 다음 신호까지 한참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게 꽤 고역이다. 만일 좀 느긋이 건너다가 도로 중간에서 신호라도 바뀐다면 역시 빵빵거리며 호통치는 차들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도로를 다 건너기 전에는 마음이 바쁘다. 일단 다 건너면 여유를 부릴 자격이 주어질지 몰라도 말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런던으로 왔던 초기에는 횡단보도를 보면 마음이 바빴다. 그런데 보아하니 보행자 신호가 밭게 바뀌는 것이었다. 굳이 뛸 것 없이 잠시만 기다리면 다시 초록불로 바뀐다. 남들은 안 뛰니 혼자 뛰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도로 폭 또한 서울보다 한결 좁다. 보행자 신호가 길지 않아도 서둘러 건널 필요가 없다. 직장을 바르샤바로 옮기고 난 다음 도로 앞에서 다시 고민을 하게 됐다. 바르샤바는 도로의 폭이 런던보다 훨씬 넓다. 일부 지역은 서울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빠르게 새로 개발되고 있는 도시다. 이미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 신호는 충분히 긴지, 건너다가 중간에 신호가 바뀌게 되면 차들의 반응은 어떨지 등을 알 수 없어, 늦게라도 건너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면도로에서도 다가오는 저 차가 먼저인가 내가 먼저인가 멈칫거리는 거다. 몇 번 방문하고 나니, 바르샤바에서는 사람이 우선인 듯싶다. 차들은 보행자 신호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도로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 주고, 이면도로든 횡단보도든 멈춰 준다. 이를 약간 뜻밖이라고 여긴 것은 바르샤바보다 서울이 더 ‘잘사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잘산다고 해서 거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것이 아님을 아는데도 말이다. 유럽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이 서울의 도로를 건널 때 이곳은 사람이 사람에 대해 친절한 도시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은 교통신호 설계자도, 보행자도, 운전자도 ‘사람’들 아니던가.
  • [열린세상] 구두와 가난/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구두와 가난/박산호 번역가

    “이런 싸구려 구두는 본드로 굽을 붙여서 아차 하면 부러져. 그러다가 아킬레스건 나가는 거지.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플 거야. 걸으면서도 불안해. 도무지 신발을 믿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주는 돈으로 괜찮은 구두를 사. 안 그러면 평생 발을 질질 끌면서 사게 돼.” 작가란 일상의 작은 사물을 통해 거대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서경 작가가 쓴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나온 구두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가난한 집의 장녀 인주는 이 말처럼 싸구려 구두를 신고 직장 동료가 모처럼 한턱 쏜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만 구두굽이 똑 부러져 버린다. 그 장면을 보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한참 모양을 내기 시작했던 20대부터 신발은 항상 좋은 걸 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볍고 발이 편해야 어디든 마음 놓고 갈 수 있으니 신발만큼은 값을 따져선 안 된다고. 엄마가 없는 살림에도 가격표를 보지 않고 사줬던 건 책과 신발 두 가지였다. 엄마는 말했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걸 알 수 있다고. 그때는 몰랐다. 젊었을 때 내가 데려온 남자친구들의 신발을 엄마가 유심히 살펴봤다는 걸.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걸 알고 먹먹해졌다. 그래도 없는 돈은 어쩔 수 없어 젊은 날의 나는 모양만 그럴싸하지 통나무처럼 무겁고, 신다 보면 어느새 굽이 부러지거나 앞부리가 입을 쩍쩍 벌리는 구두나 샌들을 신고 힘겹게 거리를 쏘다녔다. 그래서 가난을 상징하는 구두에 대한 정서경 작가의 핍진한 대사에 새삼 몸서리가 쳐졌다. 가난은 아무리 감추고 또 감춰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부자도 그렇지만 가난 또한 소리쳐 웅변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난은 퍼석퍼석하고 메마른 피부, 어딘가 빈티 나는 블라우스, 무겁고 불편한 구두, 무엇보다 항상 주눅 들어 굽은 어깨에서 나타난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이렇게 금방 굽이 부러지는 싸구려 구두와 국내에 단 세 켤레밖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명품 구두로 빈부 격차를 극명하게 대조시켰다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구두로 또 다른 가난을 묘사한 이야기도 있다. 작가 윤흥길이 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소설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권씨란 인물은 그 옛날(소설은 1977년 출간)에 무려 대학을 나오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재개발 바람에 휘말려 사력을 다해 지은 집 한 칸을 날리고 임신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셋방살이를 한다. 툭하면 밥을 굶는 처지에도 시간 날 때마다 유일한 자부심의 상징인 구두 아홉 켤레를 정성스럽게 닦아 광을 내며 구두 한 켤레로 버티는 집주인을 슬쩍 비웃는 권씨. 그러나 가난은 고작 구두 아홉 켤레로 막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어느 날 그는 여덟 켤레의 구두만 남겨 놓은 채 사라지고 만다. 과거에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가난이 품어야 할 아픈 상처로 묘사됐다면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의 가난은 용서 못할 범죄처럼, 일단 태어나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천형처럼, 절대 전염되면 안 될 몹쓸 전염병처럼 묘사된다. 이제 빈자와 부자는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란 말 한마디로 요란하게 격리된 것이다. 이 가난을 탈출하려면 그야말로 하늘에서 몇십억, 아니 몇백억 정도는 들어 있는 돈 가방이 뚝 떨어져야 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그러니 도처에서 무기력이란 유령이 쉴 새 없이 출몰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 [열린세상] 증오의 정치, 승자는 없다/김종면 언론인

    [열린세상] 증오의 정치, 승자는 없다/김종면 언론인

    작가 박경리는 1950년대 6·25 전후(戰後)를 ‘불신시대’로 규정했다.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작가는 엉터리 의사의 수술로 아들을 잃은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당대 사회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건달꾼이 의사 행세를 하는 병원, 불심의 깊이를 시줏돈으로 재단하는 절, 도적맞지 않기 위해 신발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 교회 등 도덕의 탈을 쓴 것들이 모두 비판대에 오른다. 주인공은 마침내 절에 맡긴 아들의 위패가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불태운다.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진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불살라 버림으로써 불신의 시대에 항거한 것이다. 60여년 전 불신시대는 문자 그대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차라리 소박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불신을 넘어 인간성마저 말살하는 혐오, 아니 증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 공포, 냉소, 분노, 광기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사회에 가득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이용한 증오정치에만 골몰한다. 이념과 지역, 세대, 성별, 계층에 따라 국민을 편 갈라 지지층을 끌어모으려고 한다. 증오의 정치는 승리의 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9년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를 노숙자들이 점령해 파괴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노숙자 위기’ 해결을 공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노숙자 이슈화는 극단적인 반이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비판과 함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트럼프는 결국 재선에 실패했고 그의 증오정치는 막을 내렸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증오정치는 어떤 모습인가. 일각에서는 청년정치를 선도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트럼피즘의 혐의를 두기도 한다. 젠더 갈라치기, ‘이대남’(20대 남성) 분노 유발 등의 정치 행태가 백인 하층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로 돌려 집권한 트럼프의 포퓰리즘과 닮았다는 것이다. 2030 젊은층이 ‘한국판 레드넥(redneck)’이라도 되는 것인가. 한국의 2030세대는 미국의 일부 백인 노동자들처럼 배움이 적지도 편협하지도 반동적이지도 않다. 이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세대포위론’을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지적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곧 증오정치의 악인은 아니다. 보수·진보의 이념이 ‘실용’ 앞에 빛을 잃어 가고 있다. 지역감정의 벽에는 균열이 생겼다. 청년실업이 부추긴 남녀혐오 현상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럼에도 증오정치의 폐해는 심각하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혐오 정서에 기대어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으로 증오정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더욱 차별과 배제가 아닌 포용과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반대다. 집권 여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초유의 ‘죽고 죽이는’ 권력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증오정치인가. 절체절명의 공천줄을 잡기 위한 것인가. 명분 없는 권력다툼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증오의 뿌리를 그대로 놔둔 채 겉으로만 분란을 수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당내 ‘증오신드롬’을 치유하지 않는 한 정치의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야당과의 협치는 고사하고 집권당 내부가 이렇게 편편치 않아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불신시대’의 주인공이 위패를 불살랐듯 윤 대통령은 불모의 증오정치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감정이 능력이 되고 돈이 되는 감정자본주의 시대다. 감정의 사회적 맥락이 중시되는 감정민주주의 시대다. 증오정치의 끝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의 윤리로 상대를 감싸 안아야 한다. 그것이 이기는 정치다.
  • [열린세상] 해양분쟁 시대, 법률전에 대비하고 있는가/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해양분쟁 시대, 법률전에 대비하고 있는가/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의 충돌을 예측하는 국제정치의 지배적 담론이다. 신흥강국(중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미국)의 견제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물론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와 21세기의 국제질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대양 진출은 미국 동맹세력(동아시아)의 균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작금의 위기를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강대국 간 국제질서를 둘러싼 힘의 대립은 여전히 조정 중이라는 의미다. 해양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탄생(1982년 채택)으로 예견된 일이다. 주변국과 해양범위 주장이 중첩되는 해역은 경계선을 그어야 하나 쉽지 않다. 협상을 통해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변국의 관공선 활동과 불법어업, 해양조사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이유다. 중국과 일본의 진출은 거침이 없다. 관공선의 대형화와 무장화, 순찰 범위의 확대 등 이어도와 독도 주변 진입은 상시화됐다. 사통팔달의 지정학적 한반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향후 5년 이내에 산발적으로 혹은 동시에 벌어질 수 있다. 해양분쟁의 시대다. 해양 문제는 일방의 제소로 쉽게 국제소송으로 전환된다. 2016년 남중국해 판례가 대표적이다. 필리핀의 일방적 제소로 시작됐고, 중국은 불참하겠다고 했지만 중재재판은 진행됐다. 결과는 필리핀의 완승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제소할 경우 5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중재재판소가 맡게 된다. 절차 회부는 강제적이고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국제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6년 해양경계획정 관련 분쟁, 군사활동에 관한 분쟁, 법집행 활동 등은 국제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배제하는 서면선언을 했다(제298조). 최근 국제재판소는 제소되는 해양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다. 불법어업 단속 과정에서 해경의 무기 사용, 경계미획정수역에서 진행되는 일방적인 행위와 시설물 설치, 해양활동과 오염 등 언제든지 우리가 피소 혹은 제소국일 수 있다. 이제는 국제소송과 법률전에 본격적으로 대비할 때다. 중국과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꾸준히 재판관을 배출하고 있다. 영토 분쟁과 해양 분쟁 모두 정통하다. 국제재판도 충분히 경험했다. 우리가 극복할 해양 문제는 주변 분쟁에 제한되지 않는다. 자유로웠던 공해는 2018년부터 시작된 정부 간 회의를 통해 제약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해양생물유전자원 접근에 관한 새로운 규범(BBNJ 협약)이 1~2년 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확보한 심해저 광구의 수익배분 개발규칙도 2023년까지 채택될 예정이다. 유엔환경총회(UNEA)는 올 초에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할 국제협약안을 채택하는 데 합의했다. 21세기형 해양질서를 둘러싼 법률전쟁이다. 국내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해양 분쟁과 국제해양협약을 다룰 전문인력은 로스쿨 도입(2009년) 이후 사실상 소멸상태다. 해양법 현안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는 학계와 연구기관을 통틀어 약 15명에 불과하다. 중국, 일본과 비교할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국가 간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보니, 법률시장에서 수요도 없다. 학문의 자생적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연구기관에서 해양법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기껏해야 몇 년에 한 명꼴이다. 인재 공급과 진출 시장이 모두 붕괴된 것이다. 해양 분쟁에 대한 어설픈 준비는 뼈아픈 국익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1세기의 해양 분쟁은 국가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는 해양백년의 대계를 다시 한번 수립할 때다.
  • [열린세상] 어느 하루/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어느 하루/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1. 지역에서 있었던 성평등 교육 소식을 들었다. 강사는 강의 끝에 장애인의 성적 욕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강사는 필요한 경우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사가 ‘어머니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무슨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을 남성으로 전제하고, 듣는 사람 또한 여성 장애인은 떠올리지도 못한 것 같다. 바꿔서 생각해 보자. 딸의 성욕 해결을 위해 아버지가 나선다? 어떤 방식으로? 왜 이 사회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남성의 성욕을 해소시켜 주지 못해서 안달일까? 왜 그들의 성욕은 무조건 해결돼야 하고, 부모나 다른 직업여성이라도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강의는 이미 한참 전의 일이었다. 2. 소설을 읽었다. 어머니가 두 다리를 잃은 큰아들을 업고 주기적으로 사창가를 가는 대목이 나온다. 둘째 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어머니의 수고를 자신이 대신한다. 그는 형을 여관에 내려놓고 여자를 찾아 나선다. 소설에서 그 대목이 갈등 해결에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약 장애인 딸의 성욕 해소를 위해 아버지가 자기 몸의 어느 부분을 사용하거나 딸을 업고 남자를 찾아 넣어 주는 장면이라면? 그것을 부성이라거나 지극한 사랑으로 치장할 수 있을까? 아니, 장애인 여성의 성욕에 대해 어느 한순간이라도 고민해 본 적은 있을까? 소설에서 동생이 짐승의 우리에 산 먹이를 던져 넣듯 여자를 물색해 집어넣는 장면에는 ‘창녀’에 대한 무시와 폭력적 시선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그는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사랑(에 빠졌다고 상상)하고 상대 여자를 몰래 찾아가고 집안을 훔쳐보고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스토킹과 바로 연결되지만, 사랑에 몰두한 순수한 남자의 열정으로 치장된다. 소설에서 이 대목은 동생의 성격을 말해 주는 대목일 뿐이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놓고 그녀를 ‘창녀’와 구분 지으며, 순수한 그녀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역사 이래 변한 적 없는 진부한 플롯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서사로 해석된다. 3. 새벽 산책을 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길을 택했다. 평소와 달리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지나치려는데 말을 건다. 어느 동네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럴 땐 너무 친절해도, 너무 무례해도 안 된다. 대충 대답하고 지나갔다. 전환점을 지나서 되돌아오는데 내가 쉼터로 삼는 평평한 자리에 앉아 있던 그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또 말을 건다. “안 무서워요?” “여자가 용감하네. 새벽 시간에 혼자 산책을 다 하고….”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더 무섭다. 단지 그 남자에게 내가 무서워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 남자는 자신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거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서워한다는 걸 알면 자기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 4. 또 한 명의 여성이 거의 3년 동안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명꼴로 아는 남자로부터 살해를 당하거나 살인 미수가 벌어지고, 하루에 평균 13건씩 강간 사건이, 하루 평균 40건 이상씩 강제추행 사건이 벌어지지만, 법원은 스토킹을 여전히 가벼운 범죄로 여기는 게 틀림없다.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동정하며 이해해 주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성실한 청년이었대. 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대.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인생 망치게 생겼네.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랬겠어. 여자가 좀 받아 주지. 인터넷신문 댓글은 피해자를 탓하는 글로 넘쳐난다. 그간의 사건들로 배운 게 없다. 이들은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다.
  • [열린세상] 고발 대신 고소하세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고발 대신 고소하세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0일부터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없어졌다. 민주당이 지난봄 서둘러 통과시킨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법안이 시행되면서다. 이젠 고발인만 있는 사건의 경우 경찰이 죄가 없다고 보아 수사를 종결하는 불송치 결정을 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사건을 다시 되살릴 방법도 없다. 피해자가 직접 나설 수 없거나 공익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는 고발제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왔고, 이를 통해 사회가 정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이 법으로 인해 고발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상황이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없앤 이 법은 만들어진 과정부터 기이했다. 민주당이 4월 27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립표결 방식으로 단독 의결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인 같은 날 오후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의로 본회의에 제출된 수정안에 별안간 포함됐다.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로 고발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컸지만,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그 뒤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 부분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법이 시행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민주당 아닌 다른 정당에서도 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복원하는 입법을 딱히 추진하지 않고 있다. 권력 비리에 대한 제보 상당수가 고발로 연결돼 왔기에 제도를 주무르는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고발인 이의신청권 복원이 썩 달가울 리 없으리라. 혹시 헌법재판소에서 이 법률을 위헌이라고 결정한다 해도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는 국회가 이를 되돌리는 법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여전히 고발인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할 수 없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이 수사 그만하겠다는 불송치 결정을 했을 때, 꼭 이를 다투고 싶다면 고발 대신 고소를 하자. 고발인과 달리 고소인은 무고죄로 처벌될 수 있긴 하지만,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대해 항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고소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범죄로 인한 피해자만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아닌데도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뿐이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사망한 피해자의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만 고소를 할 수 있다. 고소권이 없는 사람이 설령 ‘고소장’이라고 써서 낸다 해도 그 사건은 고소 사건이 아닌 ‘고발 사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역시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해자나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아닌, 다시 말해 고소권이 없는 어떤 사람이 학대당하는 장애인을 보았고 그 장애인은 장애가 너무 심해서 스스로 고소가 불가능할 때, 온라인상에서 아동 성착취물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피해 아동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누군가 몰래 환경을 오염시킨 일이나 회삿돈을 횡령한 일,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거나 투약해 온 일, 동물을 학대하고 죽인 일을 우연히 알게 됐을 때,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모인 거금을 착복하거나 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해 서민에게 억울한 피해를 입힌 것을 알게 됐을 때 정말 ‘고발’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렇다. 다른 방법은 없다. 용기를 내서 고발했다고 하더라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려 들지 마라. 국회가 일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의원들은 누구인가. 국회는 응답하라.
  • [열린세상] 아동 성범죄자에게 주어져야 할 것, 중형·치료·관찰/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동 성범죄자에게 주어져야 할 것, 중형·치료·관찰/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동 성폭행범 김근식은 2000년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출소한 지 16일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는데, 약 4개월 동안 아홉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 중에도 두 번이나 동료 재소자를 폭행해 형량이 늘어났다. 전과 19범인 그가 만기 복역 후 오는 10월 출소할 예정이라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 주거 예정지 주변의 치안 활동을 강화하고 전자감독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기존의 전자발찌 효용성 논란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의 원인은 여러 요소들이 관련돼 있다. 단순히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경우부터 김근식의 예에서 보듯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까지 그 양상도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각각의 양상에 따라 적합한 재범 방지 대책이 필요한데, 이 중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는 사실 성격장애나 정신병적인 요소들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한 사례가 많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반복적 성폭력은 더욱더 그러하다. 실제로 성범죄자,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자는 충동적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회적, 도덕적 기준에 대한 인식이 없다. 또한 공감능력이 부족해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결여돼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교정이 어렵다고 한다. 최근 뇌영상 메타연구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경우 좌측 전두ㆍ측두엽 부위, 우측 편도체가 정상인에 비해 작다고 보고돼 있어 성범죄가 단순히 심리적인 원인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뇌기능이나 구조의 이상으로 인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미성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의 경우 단순히 처벌이나 심리적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60% 이상에서 재발한다고 보고돼 있고, 반복적인 성범죄자의 경우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실제 화학적 거세가 적용되기도 한다. 한 달 혹은 3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통해 남성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려 성욕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보고에 따르면 이는 재범률을 확실히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부터 화학적 거세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 역시 약물의 부작용이나 비용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뿐 아니라, 주사를 중단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시행할 수 있어 윤리적 측면에서도 논란거리이다. 궁극적인 치료방법으로 수술로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를 하는 나라도 있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에서는 물리적 거세를 허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아동 성폭행범은 최소 징역 25년과 평생 전자발찌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성범죄자 개인의 죄질에 따라 적절한 처벌을 내림과 동시에 치료적인 노력도 함께 동반돼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의 경우에는 단순한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로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성욕을 감소시켜 재발을 방지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낮고, 형을 마친 성범죄자를 방치하는 경향이 있어 성범죄 전력이 있는 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다수의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성범죄자,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는 치료와 동시에 양형 기준도 획기적으로 올리고 출소 이후에도 밀착 모니터링하는 적극적인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 [열린세상] 대한민국 對美 로비, 판 다시 짜야 한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대한민국 對美 로비, 판 다시 짜야 한다/송경진 전 세계경제연구원장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발효로 국내 전기차 기업에 직접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일 정부 관료와 업계 인사들이 워싱턴으로 달려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 규정에도 위배되는 IRA로 야기되는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이다. 유엔총회 기간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최대 현안으로 올려질 이슈 역시 IRA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의 미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중간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자국우선주위와 일방주의 색채가 더욱 농후해지는 미국이 즉각적, 전향적인 사후조치를 고려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양자 및 다자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지난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1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는 IPEF의 주요 축인 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를 논의했다. IRA,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를 IPEF에도 상정해 논의해야 한다. 미국중심주의 여파가 한국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더욱 정당성을 갖는다. 대미외교가 실패할 때마다 사후약방문 격으로 잠깐 거론되다 마는 이슈가 대미 로비다. 이번에도 IRA 입법 이전 우리 정부의 부실한 사전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이제 한국의 대미 로비 규모는 상당하다. 문제는 규모만큼 효과가 동반상승하지 않는 점이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일본의 대미 로비력이 우리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우선순위는 대미 로비를 재정비하고 비용 효율성을 높여 국익 창출에 도움이 되게 판을 다시 짜는 것이다. 세 가지 사항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첫째, 정보 수집, 동향 파악 및 시사점 도출 역량 강화다. 행정부, 의회 중심의 외교와 로비에서 벗어나 다양한 여론 주도층을 포괄하고 자주 만나야 한다. 우리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외교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정책 수립에 영향력이 큰 미국의 싱크탱크 및 학계 그리고 언론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최근 미국인 지인에게 한국이 관계 수립 및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미국 주요 싱크탱크에 대해 묻자 즉각적 반응이 “한국이 갑자기 왜?”였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뭉근한 ‘곰탕전략’ 대신 이슈 발생 때 일회성 도움을 요청하고 사라지는, 신뢰 구축에 무효한 냄비전략을 썼다는 방증이다. 국내에서는 민관 모두 언론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외신에 대한 정보 제공, 관리는 전략도 없고 차별적이며 형편없다. 미국 현지에서 언론과의 접촉은 더욱 부실하다. 접촉면을 확대, 지속해 한국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 실력 있고 정보 접근성이 뛰어난 로비회사를 활용해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 로비의 나라답게 외국 정상의 미 의회 연설도 사실상 로비회사를 통해 이뤄진다. 각국 대미 로비 현황을 공개하는 오픈 시크리츠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로비 규모는 지난해의 절반에 못 미친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효과성이다. 이번 IRA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로비의 효과성이 당장 우리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셋째, 일류 로비회사를 우리의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자체 역량 강화다. 주기적 목표 공유, 결과물 도출, 평가 과정을 통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소통해 고객서비스를 극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명확한 목표와 계획을 가진 사장이 종업원과 시너지를 발휘해야 소규모 가게도 ‘대박 가게’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역량 강화가 우선적이고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필요 인력도 증원해야 한다. 인력 감축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미 로비는 장기전이다. 길게 멀리 보는 새 판을 짜야 한다.
  • [열린세상]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천시/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천시/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경치 좋은 대관령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 그것도 갑작스런 안개가 온 산을 뒤덮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앞에 달리고 있는 차는 물론이고 바로 눈앞의 차선마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온통 급커브만 있는 산길을 따라 운전을 할 때는 정말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이런 형국에 놓여 있다.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터에 갑작스런 변화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적 변곡점’이라는 급커브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변곡점’이란 인텔 회장이었던 앤드루 그루브가 처음 쓴 말로, 기업의 생존과 성장 과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의미한다. 세계 최초로 카메라 필름을 개발한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이라는 변화 앞에서 주저주저하다 파산한 사건은 ‘전략적 변곡점’의 위험성을 알려 주는 대표적 사례다. 보다 최근에는 일찍부터 PDP TV에 올인했던 파나소닉이 시장의 대세가 LCD로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PDP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TV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버린 사례가 있다. 이 경우도 ‘전략적 변곡점’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존 기업들에 큰 위협이 되는 ‘전략적 변곡점’을 발판 삼아 세상에 출현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1997년 비디오 대여 업계의 관행이던 비싼 연체료에 불만을 품고 넷플릭스를 창업하게 됐다. 그는 당시 막 부상하던 DVD 기술을 활용해 고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연체료’라는 개념을 아예 없애 버린 혁신적 사업모델을 탄생시켰다. 헤이스팅스는 당시 비디오 대여업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연체료에 대한 불만’과 ‘DVD 기술’이라는 약한 변곡점을 결합해 넷플릭스라고 하는 강력한 변곡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기존의 강자였던 블록버스터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느라 전략적 변곡점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리타 맥그레스 교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한 시장에서 오래 팔리다 보면 고객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요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변곡점이 발생해 부정적인 요소들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리면 고객들은 대부분 해당 제품 기업을 떠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은 과거의 성공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변곡점에 맞추어 변신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변곡점이 기존 기업들에는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위협’이 되는 반면 새로운 창업자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 즉 천시(天時)가 되는 이유다. 이러한 전략적 변곡점이 단지 ‘혁신 기술의 출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이 기업에는 전략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파급효과가 엄청난 변곡점이다. 생활환경이나 근무환경과 같은 물리적 요소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생각, 감정과 같은 심리적 요소들도 코로나로 인해 변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 또한 한결 높아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 걷힐지 모르는 코로나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창업가들은 더욱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천시(天時)’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심심한 사과가 던지는 자극적인 질문/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심심한 사과가 던지는 자극적인 질문/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달 끝자락을 ‘심심한 사과’가 뜨겁게 달궜다. 웹툰 작가 사인회를 준비하던 서울의 한 카페가 행사 예약 시스템 오류를 사과하며 트위터에 올린 ‘심심한 사과 말씀’ 말이다. 카페 측의 사과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에 대해 ‘심심하다’를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생각해 ‘하나도 안 심심하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트윗에 리트윗이 이어지며 트위터 트렌드 실시간 상위권에 오른 덕에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게 된 것이다. 논란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 한 기자가 전화를 했다. 지금 인터넷에서 ‘심심한 사과’ 논란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기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논란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라디오 방송에서 관련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방송 인터뷰는 최소한 하루나 이틀 정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덕분에 ‘심심한 사과’ 논란을 아주 꼼꼼히 따라가 보았다. 관련 기사를 추적해 읽으면서 유사한 담론이 지난 십여 년간 도돌이표가 찍힌 악보처럼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란의 대상이 된 단어와 진앙지만 다를 뿐이었다. 기사의 틀은 이미 짜여 있었다. 논란의 내용이 소개된 다음 이런 기초적인 단어도 모르다니 요즘 애들의 어휘력이 문제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담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 교육을 강화할 것과 책을 많이 읽힐 것을 제안하며 기사는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위기감을 자극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수치가 바로 ‘실질문맹률 75%’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문제는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즉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우리 국민의 75%라는 것이다. 75%라니 너무 충격적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나온 수치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자료를 찾아 그 수치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21년 전인 2001년 조사 결과라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75%는 문해력 전체를 대표할 수 없는 수치였다. 문해력의 세 하위 영역 중 한 하위 영역의 결과와만 관련된 수치였기 때문이다. 일부 결과를 전체 결과인 양 오도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심각한 수치로 받아들여 왔던 실질문맹률 75%는 해당 조사에서 문해력을 구성하는 세 가지 영역, 즉 산문 문해력, 문서 문해력, 수량 문해력 중 한 영역인 문서 문해력과만 관련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서 문해력이란 다양한 형태의 문서(구직원서, 급여 양식, 대중교통 시간표, 지도, 표, 그래프)에 포함된 정보를 찾고 사용할 수 있는 문해력을 말한다. 글(텍스트)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문해력을 해당 조사는 ‘산문 문해력’이라고 칭했다. 이 조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인 문해력 조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수행됐고 애초부터 OECD 국가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었다. 우리의 산문 문해력은 OECD 중간 수준, 수량 문해력은 중상 수준이었다. 유일하게 하위의 점수를 보여 문제가 된 것은 문서 문해력뿐이었다. 그런데 한국교육개발원은 2004년 12월에 펴낸 ‘2004 한국의 교육ㆍ인적자원지표’에 문해력 관련 항목을 넣으면서 문서 문해력의 국제 비교 결과만을 담았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전 국민의 75%가 일상문서 해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기사가 작성됐고 ‘실질문맹률 75%’라는 근거가 희박한 표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실질문맹률 75%’는 위기감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침소봉대의 전형이다. ‘실질문맹률 75%’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누구의 문해력이 문제인가를 묻게 된다. 심심한 사과가 자극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 [열린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이렇게 풀어야/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열린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이렇게 풀어야/조재정 법무법인 민 상임고문

    우리 노동시장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다. 이는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이 시장들 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과정에서 거의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원청과 하청업체 직원들의 임금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법과 원칙 속에서 자율적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선진적 노사 관계를 추구하고,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 역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최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해법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의 81%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근로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다. 올 3월 말 현재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82.1%가 원청 소속 근로자이며, 17.9%는 파견·용역, 하도급 등과 같은 사내 하청 소속 근로자로 파악되고 있다. 2020년 말 현재 노조 조직률은 14.2%인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조직률은 49.2%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고용구조하에서 대기업 정규직 대비 임금 수준은 대기업 비정규직이 64.5%, 중소기업 정규직이 57%, 중소기업 비정규직이 42.7%에 불과하다. 여기에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등으로의 이동 사다리도 사실상 끊겨 있다. 이러한 문제는 1987년 민주화운동,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대기업들은 인건비와 노무관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핵심 공정만 남기고 대부분의 공정을 도급화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크게 늘렸다. 따라서 기업규모 간, 고용형태 간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상품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과 여기에 납품하는 하청 중소기업 간에 발생하는 불공정거래행위도 한몫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근로자 간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현상을 가져와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청년 실업을 악화시킨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를 시급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워져 사회통합에도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우선 원·하청 하도급 구조의 현실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적정한 이윤분배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하청 간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바로잡는 동시에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통해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하도급 단가를 결정할 때 하청 근로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비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과 동반성장지수 평가 반영 등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감안,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비정규직 및 하청 노동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 내에서 발생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제도적 보완과 함께 임금체계의 합리적인 개편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마리 앙투아네트와 김건희/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마리 앙투아네트와 김건희/유창선 정치평론가

    김건희 여사가 해외 순방 때 착용했던 장신구 논란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고가의 장신구가 재산 신고에서 누락됐다며 의문을 제기했고, 대통령실은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시 민주당은 계약서는 썼는지를 물으며 국정감사에서 파헤치겠다고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로 봉인한 채 임기를 마쳤다. 그런데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의 장신구를 따지며 정치적 이슈로 키운다. 또 하나의 ‘내로남불’로 비쳐진다. 그 대상이 김건희든 김정숙이든 대통령 부인의 장신구와 옷까지도 이 잡듯이 뒤지려는 정치가 무섭게 느껴진다. 민주당이 들고나온 ‘김건희 특검법’도 그렇다.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한 ‘김건희 특검법’이 이미 발의됐다. 그 핵심 내용은 ‘주가 조작’과 ‘허위 경력’ 의혹이다. ‘주가 조작’ 의혹을 오랜 기간 수사했던 것은 윤석열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 시절의 수사기관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통제 아래 있던 수사기관들이 야당 대선 후보쪽 의혹을 일부러 덮어 주진 않았을 것이다. 장기간의 수사로도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눈치 보며 결론을 미뤘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더욱이 ‘허위 경력’ 의혹은 공소시효 자체가 만료된 사안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요구한 ‘김건희 국정조사’에는 관저 공사업체 선정 과정, ‘사적 채용’과 관련된 의혹이 핵심으로 돼 있다. 자신이 입주할 관저의 공사를 함께 일한 경험이 있어 믿을 만한 업체에 맡긴 일이 과연 국정조사까지 할 정도의 엄청난 것인지 모르겠다. 역대 청와대에서도 대선을 치르며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이 기용됐음을 생각하면 ‘사적 채용’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도 파리 잡겠다며 망치를 드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비리가 있다면 엄단해야 하지만, 사안마다 침소봉대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김건희 여사의 여러 불찰들을 모르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의 일이라고 해도 경력을 부풀린 과거는 무겁게 성찰할 일이다. 자신의 팬클럽이 계속 시빗거리가 되는 상황에서는 해체를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문 표절’ 의혹에도 근거가 있다면 학위 논문의 자진 반납을 요청하는 것이 말끔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성찰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히 몸을 낮추는 것은 김 여사의 몫이다. 그렇다고 마녀사냥식 정치 공세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18세기 프랑스의 혁명세력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민중들의 증오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소문들을 퍼뜨렸다. 그래서 왕비를 타락한 ‘악녀’로 만들었다. 앙투아네트가 기요틴에서 처형당한 혐의 가운데는 여덟 살 아들과 상간을 했다는 터무니없는 내용까지 들어갔다.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민주당이 ‘김건희 때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이유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킬 가장 약한 고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마녀’의 허상을 좇아 매일같이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본령이 아닌 것을 본령처럼 만드는 정치는 그 저의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 [열린세상] 체계적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필요하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열린세상] 체계적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필요하다/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015년 파리기후협정과 2019년 유엔 기후정상회의 이후 121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 목표 기후동맹’에 가입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했다. 한국 또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전기차 보급률은 2013년 전기차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및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기차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올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보급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통해 분석한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한국의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대수는 2.63대로 조사 대상 30개국 중에서 가장 좋은 수치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 충전기를 제외하고 공용 충전기만을 집계한 수치이다. 공동 주택의 주거 비중이 높은 국내 환경상 개인 충전기에 비해 공용 충전기의 보급이 수월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개인 충전기를 구비하기 용이한 다른 국가들보다 좋은 수치를 기록할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국내 전기차 사용자들은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해당 수치는 완속 및 급속 충전기를 모두 포함한 수치이며, 급속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대수는 15.3대로 급속 충전기는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 사용자들이 주거지 혹은 직장에서 완속 충전기를 이용하고 있지만, 한국의 공동 주택 구조상 완속 충전기를 무한정 보급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공용 급속 충전기의 설치는 필수적이다. 전기차 보급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공용 급속 충전기의 부족은 전기차 산업의 성공적인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평균 115%씩 전기 및 수소차 관련 민원이 증가했으며, 전기차 관련 민원 중 충전시설 관리에 대한 것이 91%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체계적인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먼저 충전소 이용 패턴을 파악하고 수요 변화를 예측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분기별 충전소 설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수요 변화로부터 초래되는 기존 충전소의 이용률 변화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시나리오별 충전소 설치 계획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한 뒤 최적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충전기의 실시간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고장, 사용 여부 등과 같은 정보들을 좀더 정확히 분석한다면 충전 인프라 관리에 대한 사용자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부족 및 관리 미흡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큰 부분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충전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전기차 수요를 증가시키는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기업들 또한 충전 인프라 구축이 전반적인 전기차 산업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테슬라는 사업 초기부터 전기차 공급과 충전 인프라 공급을 병렬적으로 전개했으며, 폭스바겐 또한 적극적으로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몇몇 기업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은 투자 자본 회수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통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장려해 한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세계적인 선도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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