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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3개 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후보자를 지명했다. 그중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2명이다. 모두 임명되면 현 정부의 국무회의 구성원 20명 중 여당 의원이 국무총리와 부총리 둘을 포함해 6명이 된다. 인사청문회 부담을 감안했겠지만 내각제형 정부 형태의 시도로 볼 만하다. 국가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시원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다. 그러기에 특정 정책 사안을 놓고 국가의 통치 권력을 분담 행사하는 국회와 정부, 법원 등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시차적으로 국회의 입법이 선행되고 정부가 정책을 집행한 후 법원의 판결이 있을 경우 최종 확정되지만, 입법과 정책은 대체로 같은 방향이다. 그런데 국가의 각 기관은 가치관과 성향 등이 천차만별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매사 만장일치 결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일 의사를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해 우리 헌법은 각 통치 기관의 의사형성 방법을 직접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 대해서는 헌법 제49조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법률로 특별히 달리 정하려면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수반’이라 함으로써 대통령의 결심이 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여기에서 정부의 공무원들은 상관의 합법적인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파생된다. 법원에 대해서는 헌법 제101조에서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명시함으로써 대법원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각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지만 개별 사안에 관해서는 상급 법원 판결에 기속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113조에 따라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하므로 역시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이처럼 각 기관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밟더라도 외부로는 하나만 표시돼야 한 인격체인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모든 국가 기관에 공식 의견을 발표하는 대변인을 두는 논거이기도 하다. 소송이 제기돼야 시비를 가리는 소극적 입장의 법원과 달리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선출된 권력이므로 공약 사항을 정책으로 실행해야 하는 적극적 입장에 있다. 정당의 이념에 따라 지향성 차이는 있지만 국회와 정부는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을 독점했던 왕으로부터 입법권과 행정권을 차례로 찾아온 입헌군주제 국가 대부분이 의원내각제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제헌 헌법 초안에는 내각제였으나 막바지에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 중요 국책을 국무원에서 ‘의결’토록 하고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막지 않은 것은 두 제도의 절충물이다. 여당 의원이 국회 과반수이면 국회와 정부의 의사를 하나로 만들기 쉽다. 그러나 대립형인 우리나라 대통령제하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늘 협조적이지는 않다. 더러 긴장 관계가 조성되는 이유는 5년 단임의 대통령과 4년의 연임 제한이 없는 국회의원 임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 의원이더라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부 비판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즘 어딜 가나 대로변 목 좋은 곳에는 정당의 현수막이 경쟁하듯 걸려 있다. 이미 정부의 부처 이름이 거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 국정의 추동력이 정부로부터 정당 또는 국회로 사실상 넘어간 정치과잉 시대의 정부3.0 모습이다. 정부의 존재감이 급격히 줄어드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차라리 국무위원 모두를 여당 의원으로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국가 의사의 단일화 및 책임행정 구현 측면에서는 장점이 많을 것 같다. 또한 대통령 재임 중 정부와 여당은 실질적 운명공동체가 돼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현행 헌법하에서도 가능하므로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정당도 내각제형 정부의 예비내각을 염두에 두고 분야별 전문가를 적극 찾아 공천할 것이다. 다만 ‘공직선거법’상 총선 전에 국무위원을 사임해야 하는 문제는 있으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운영의 묘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 [열린세상] 이제 깃발을 내려야 한다/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이제 깃발을 내려야 한다/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증세 없는 복지’라는 깃발이 휘날린 지 3년째다. 정부는 처음에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와 감면을 축소하고 다른 쓰임새를 줄이면 증세 없이도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이 말은 하지 않는다. 경제 활성화 노력 없이 증세를 논의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증세를 해야 한다는 쪽과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편으로 다시 나뉜다. 어떤 말을 따를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증세 없는’이라는 깃발이 나부낀 후에도 여러 세금이 늘어났다. 소득세 공제 방식 변경으로 인한 소득세액 증가, 담배세액 증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등 굵직한 것만 해도 상당수다. 이들은 증세가 아닌가?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무슨 뜻인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제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세무조사를 더 강하게, 더 많이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도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올리는 등 제도를 바꿔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것만을 증세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이상하기는 하지만 더 좁혀서 일반 대중이 내는 세금 말고 법인이나 재산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것만을 증세라고 할 수도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증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면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행정력을 동원해 세금을 더 걷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 듯하다. 담뱃값이 오르고 소득세 부담도 늘어나는데 ‘증세 없는’ 깃발이 아직도 날리는 것을 보면 제도 변경에 의해 세금을 보다 많이 걷는 것 모두가 정부의 증세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세 번째와 비슷한 의미로 증세라는 말을 쓴다. 다만 법인세 비과세 및 감면 축소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증세에 포함시키지 않고, 재산세는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니 정부가 말하는 증세에는 법인세율 인상 외에는 남지 않게 된다. 이제 정부가 말하는 증세의 뜻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법인세율 인상 없는 복지’다. 이론상으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정부에 법인세는 매력적이다. 법인은 투표를 할 수 없고 정치적인 주장도 할 수 없으며, 법인의 대주주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상 최대의 세수 결손에도 법인세율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법인세율만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법인세율을 올리려 하지 않는 것은 법인과 대주주를 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라고 계산했거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위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법인세율을 인상하지 않으려 한다고 믿는다. 소득세액 증가와 법인세액 감소, 담뱃값 인상을 통해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가 세금에 대해 각성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법인과 대주주를 위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옳다는 신념 때문이라면 법인세율 인상은 없다는 말을 증세는 없다는 말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좁게 보아도 제도 변경에 의해 세금을 더 많이 거두면 증세다. ‘증세 없는’이라는 포장은 정부가 거짓되다는 오해와 불신만 부른다. 이제 정책이 나오면 꼼수 증세를 숨기기 위한 가장행위가 아닌지 의심부터 한다. 법인은 법인대로 온갖 다른 명목으로 세금을 거둔다고 불만이다. 세금에 대한 다툼이 사상 최고점을 찍고 있다. 일선 세무관서도 행정 비효율에 시달린다. 어떤 세금이든지 세율 인상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건강보험과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할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상당 부분은 ‘증세 없는’이라는 깃발이 부른 불신에서 비롯됐다. 이제 법인세율 문제를 드러내 의견을 모으고 신뢰를 다시 쌓지 않고서는 다른 과제에 다가가기도 어렵게 됐다. 빨리 법인세율 인상 여부에 대한 의견을 모아 걸림돌을 제거하고, 다른 과제로 나가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다. 좋은 시절이 오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해야 할 다른 일도 해야 한다. 이제는 혼란과 불신을 가져오는 깃발을 내리고 법인세율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 [열린세상] 감동 서비스? 관건은 시스템이다/이형래 경희대 의대 교수

    [열린세상] 감동 서비스? 관건은 시스템이다/이형래 경희대 의대 교수

    병원이나 의원은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의료기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노동집약적 공간이다. 생로병사가 공존하는 공간, 노동 강도는 높고 개인이 지는 책임, 업무 자체의 리스크도 크다. 업무의 단계마다 확인과 검증이 필수다. 진료 프로세스는 해마다 자체 검증과 인증평가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진화된다. 한 명의 사소해 보이는 실수가 한 명 혹은 다수의 환자에게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엄격한 업무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환자 및 보호자들 모두 이점에 대해서는 많은 존중과 배려를 해 준다. 진료를 보다가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고령 환자가 있으면 다른 환자들이 모두 배려를 해 준다. 본인의 진료가 늦어지거나 뒤로 밀려도 양해를 해 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배려와 양해가 힘이 돼 의료진은 더욱 힘을 내어 환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모두 진료 프로세스 안에서 안전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공정하게 진행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가 진료 대기 시간에 불만 의사를 나타냈다.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늦었지만 본인의 진료 순서가 앞이니 빨리 진료를 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응급환자가 있어 진료가 다소 지연되고 있어 당장 진료를 하는 게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응급환자 발생으로, 응급 시술을 마치고 온 나는 환자에게 정중히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 다음날 고객만족 부서에 불만 사항이 접수됐다. 내용인즉 예약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간호사와 의사가 본인을 억지로 자리에 앉게 했고, 진료를 위해 반나절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간호사는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내 설명 태도에 문제가 있었나?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 그러나 약간은 억울했다. 담당 간호사에게 확인을 하니 그 환자는 필자가 자리를 비운 뒤부터 진료실 앞 복도에서 고성으로 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자 작은 소요가 발생해 보안 직원들까지 호출됐다고 한다. “그 환자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하면서 ‘여기 병원장 오라’고 너무 크게 고함을 쳐서 고객만족 담당자와 보안 직원을 호출했어요. 직원들이 오니까 태도가 돌변하면서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불만 사항을 얘기하고는 갔어요.” 갑(甲)질 사건으로 도배가 됐던 기사들이 뇌리를 스쳐 갔다. 백화점, 항공사, 마트, 식당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삼켰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이 겪는 업무의 일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삼켰다고 생각했던 씁쓸함이 목에서 걸렸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백화점의 매장 한쪽에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 여러분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진상 고객들을 겪었기에 백화점이 직원 보호 처방전을 이렇게 공개해 놓았을까. 엄청난 고민이 피부에 와 닿았다. 고객 만족과 감동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병원과 의원도 마찬가지다. 친절은 필수이고 고객이 미안해할 때까지 서비스의 깊이는 끝이 없어 보인다. 생명의 위급함을 다루는 병원과 의원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갑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연 환자의 권리와 의료의 긴급성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없을까. 영특한 동료 교수가 현답(賢答)을 해 주었다. “목소리가 몇 데시빌(㏈) 이상 되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하면 돼요.” “그게 될까?” “은행도 번호표로 바뀔 때 사람들이 그랬대요. 바쁜데 누가 그걸 뽑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냐고.” 환자도 만족하고, 적절한 진료도 이루어지고, 직원도 만족하는 서비스에 대해 고민하는 병원과 의원이 점점 늘어난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요구와 자기 권리 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른 기업들의 사례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올해는 사람을 탓하기보다는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본인의 권리와 편의성보다 의료의 긴급성을 요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시스템에 적용되는 사회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하는 청양의 해가 됐으면 한다.
  • [열린세상] 창조 계급/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창조 계급/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예전에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로 직업의 종류를 구분했다. 앞으로는 아마도 ‘창조계급’이냐, 아니냐로 직업의 종류가 구분될 것이다. 결국은 창조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있던 것을 재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건 결국 창조력이 관건이 될 거라고 본다. 봉준호 영화감독이 CF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또 고친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요지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감독이다.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감독의 영화는 스토리가 탄탄하다.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것은 탄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국제시장’,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이들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쓸 줄 안다. 그래서 2시간짜리 영화에서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집중해서 2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윤제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나리오를 안 쓰는 순간 초심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즉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한다.” 관객을 2시간 동안 눈물 속에 빠뜨린 감동적인 영화 ‘하모니’도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는 기사 한 줄에서 시작됐다. ‘교도소에서 여죄수가 낳은 아이는 18개월까지만 키울 수 있고 입양 보낸다’는 한 줄의 문장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대단한 상상력이고,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재미있다. ‘왕의 남자’, ‘소원’의 이준익 감독은 인터뷰에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흔 살까진 철들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철을 빼야 해.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소위 ‘꼰대’가 되는 거야.” 철들지 않은 감독이 쓴 시나리오라 재미있다. ‘꼰대’가 쓴 시나리오, 상상만 해도 지루하다. 케이블 드라마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 ‘미생’, ‘나인’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지상파 드라마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작품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하면 늘 보여 주던 구태의연한 러브라인, 출생의 비밀 등이 없이도 인기 폭발 작품이 나온다. 이런 드라마들은 미국 드라마에 대한 콤플렉스를 싹 없애 주었다. 작가가 대본을 통해 설계도를 그리면 감독은 그걸 토대로 집을 짓는다. 좋은 대본에 나쁜 배우나 감독은 없다. 나쁜 대본에 좋은 배우나 감독은 나올 수가 없다. 작가의 가장 큰 덕목은 상상력이다. 더이상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새로운 것이 없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그걸 공감 가게 그려 내는 것이 작가다. 작가가 그려 내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는 사람은 안다. 익숙한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 그 새로움을 새롭게 그려내는 것, 이것이 작가의 일이다. 시나리오나 대본은 철저히 관객을 위한 상품이다. 관객이 보고 즐거워하고, 2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스토리여야 한다. 철저히 상품이어야 한다. 상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일기장에 쓰거나 혼자 블로그를 하면 된다. 작가가 만들어 내는 스토리라는 건 그 작가 경험의 최대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직접 경험한 범위가 넓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소설을 쓴답시고 세상 경험도 하지 않은 20대가 산속의 절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치열하고 다양하게 경험을 많이 쌓아야 쓸거리가 더 많아지게 된다. 경험이 없으면 취재를 치열하게 해야 한다. 메디컬 드라마를 쓰기 위해서 최완규 작가는 병원에서 2년 정도 살다시피 했단다. 창의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매우 중요했는데, 요즘 갑자기 더 창의성에 대해 모두들 관심을 갖는 이유는 창의성의 효과가 이전 사회보다 한층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 산업이 규모로나 질적으로나 놀랄 만큼 성장하면서 창의력의 가치가 예전보다 비교가 안 되게 높아졌다. ‘창조계급’이냐, 아니냐는 이제 경제의 규모를 결정하는 요소가 돼 버렸다. 창의력은 틀을 벗어나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생각, 뒤집어서 생각하기, 전혀 관계없는 영역을 연결하기 등 유연한 생각에서 나온다. 창의력은 경계 넘기에서 시작한다.
  • [열린세상] 양심이 오염되면 미래가 없다/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열린세상] 양심이 오염되면 미래가 없다/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국회 청문회를 두고 말이 많다. 모든 사람이 사물과 일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기란 어렵다. 하물며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과거 관행을 따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남과의 거래도 개인의 좋고 싫음에 따르면 되니 간단한 일에 속한다. 그러나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가고 함께 실천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같은 사물과 현상을 놓고도 생각이 엇갈리는데,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 가치관을 함께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란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란 스스로 정의한 목표에 동조하는 지지기반(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이지 주어진 틀에 안주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정치가 과열되면 무조건 바꾸고 보자는 식의 정책이 만연하게 된다. 지지기반을 확대하려는 정치가에겐 집단 공동이 바라는 미래를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효율적인 실천 수단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정치가를 사회 지도자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보통 사람 이상의 포용력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정치가는 종종 사회를 상대로 자기 방식의 실험을 통해 권력을 확대 재생산하려 하는데, 실패한 실험의 대가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성공하면 정치의 공이고, 실패하면 사회 탓이다. 밑져야 본전인 것이 정치다. 사람은 자라면서 인지능력과 판단력이 향상된다. 그 과정에서 잘한 일과 잘못해 후회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야 잘잘못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남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이란 거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모두 사회라는 한정된 테두리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집에서 벗어나 사회 통념에 합류한다. 사회 통념이 개인의 판단보다 우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에서 미래란 사회 통념의 범위에서 도출되지 일탈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지도자는 사회 통념을 존중해야 한다. 인식 수준이 낮고 판단력이 정확하지 않은 시기에 저지른 잘못이나 현재 반성하고 있는 과오라면 용서받을 수 있다. 즉 용서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가능하다. 절대 다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회 통념을 벗어나 특수한 가공의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근거로 지난 잘못을 왜곡해 남의 비판을 벗어나려 한다면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집단 공동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가짐, 즉 양심(良心)은 그래서 정치가 등 사회 지도자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다. 양심은 좋은 일을 가려내고, 나쁜 일을 경계하기 위해 필요한 판단의 준거다. 따라서 양심이 오염되면 자신의 지난 과오를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잃게 되고, 공동사회의 공통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 양심이 오염되면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래서 양심의 오염은 환경오염보다 미래 사회에 더 위협적이다. 누구나 지난날 한두 번쯤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잘못한 일이 없다면 더욱 좋겠지만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을 양심과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변화관리 능력이다. 양심이 오염된 사람에게 미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미래의 변화를 관리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지도자 역할을 맡길 수도 없다. 따라서 과거의 잘못 자체에만 집착하는 국회 청문회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사회 통념을 벗어나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자신의 과오를 왜곡하는 태도 역시 용서받을 수 없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오염되지 않은 바른 양심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이 검증돼야 한다. 또한 국회 청문회는 사회 통념을 확인하고 전파하는 과정으로 운영돼야지 비굴한 일탈행위를 옹호하는 패싸움으로 전락해서도 아니 된다.
  • [열린세상] 시장 맞춤형 부동산 정책/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

    [열린세상] 시장 맞춤형 부동산 정책/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와 가계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에도 시장이 침체돼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중 지난달 발표한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 대책은 저금리 추세와 고령화 현상으로 달라진 주택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대책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임대주택, 특히 월세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젠 집을 사서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데다 집을 소유보다는 주거의 개념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총량적으로도 주택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고, 인구 구조의 변화 등으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영향도 크다. 또한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임대하는 입장에서는 전세보다는 소득 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55.0%로 전세시장을 앞질렀으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전환될 경우 임대주택 공급이 원활치 못한 상황에서 중산·서민층의 주거비가 가중되고, 주거 환경까지 불안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의 주택임대사업자 육성 대책은 이러한 시장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임대주택 대상을 중산층으로, 공급자를 민간 기업으로 넓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무 임대 기간과 임대료 상승률을 빼고는 초기임대료, 임차인 자격, 분양전환 등의 규제를 모두 풀었다. 취득세·법인세 감면, 공공택지 공급, 국민주택기금 융자 등의 지원책도 내놓았다. 중산층이 찾는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월세 전환으로 인한 임대료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정책 목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체질을 바꿈으로써 관련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있다. 이번 대책이 주택공급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책이지만 시장에서 정부의 의도대로 작동하고, 조기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실정에 맞는 몇 가지 보완책이 필요하다. 우선 기업형 임대주택의 입지가 수요자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택지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현실적으로 도심 지역에 대규모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게 불가능한 데서 나온 고육지책일 것이다. 따라서 공공용지나 그린벨트 해제 등 과감한 택지공급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도심이나 인접 지역의 토지를 활용하기 위해 ‘토지임대부 임대주택’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보유한 토지를 건설회사에 임대주택 건설용으로 제공하면 토지에 대한 임대료(지대)와 함께 재산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방안이 활성화될 경우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임대주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지원 대상 임대주택 규모가 도심 지역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므로 이를 완화해야 한다. 즉 지원 기준인 300가구 이상의 건설 임대, 100가구 이상의 매입임대 조건을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대신 지원 조건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대주택 단지별 특성화도 필요하다. 도심에서 다소 멀더라도 양질의 어린이집, 우수한 중·고등학교, 다양한 편의시설 등 주거 서비스를 차별화·고급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베이비부머 등 고령층의 부동산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됐지만 금리가 낮은 데다 이들의 재산이 부동산 위주로 짜여 있어 적당한 노후 소득을 창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는 국가의 복지 비용을 상승시킨다. 따라서 은퇴 자산가나 부동산 소유자들이 임대사업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고령 가구의 자산 유동화를 지원한다면 임대시장과 복지 양쪽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열린세상] 규제완화, ‘쇼생크 탈출’에서 배우기/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규제완화, ‘쇼생크 탈출’에서 배우기/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엘리스 레드는 아내 살해 누명을 쓰고 투옥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의 감방 동료였다. 40년 만에 가석방된 그는 시골 마을 식료품점 점원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어느 날 근무 중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주인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고는 어렵게 묻는다 ‘잠시 화장실에 가도 되는지요?’ 주인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자유를 찾았지만 규제받던 감옥에서의 행동 방식은 무의식을 지배한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연상된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신상품 개발은 물론 수수료를 정할 때도 일일이 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영업의 종류를 열거해 놓고 그것만 하도록 하는 소위 ‘열거주의’(포지티브)가 현행 금융규제 체계의 골간이다. 금융은 남의 돈으로 하는 업종이다. 고객이 맡긴 돈(예금)을 떼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예금주는 물론 금융회사와 전혀 무관한 국민들도 위기수습 비용 부담에 동참한다. 그래서 시장에 상품이 나오기 전 잠재위험 여부를 감독 당국이 꼼꼼히 따져야 한다. ‘열거주의’ 명분이다. 문제는 열거주의 행동 양식에 너무 오랜 기간 순치된 국내 금융산업이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가능한 ‘창조금융’을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었던지 ‘규제 단두대’ 단어를 써 가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융규제 완화를 독려하고 있다. 국내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108명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감독 당국 수장 등도 이달 초부터 ‘대한민국 금융이 나가야 할 길’을 고민 중이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업무가 허용되는 ‘포괄주의’(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업계와 정부가 합심해 위기감과 절박함으로 추진하는 이번 규제완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드러내 놓고 말 못하는 냉소적인 시각을 잠재워야 한다. 첫째, 금융규제·감독 시스템을 혁신하는 시도가 그동안 왜 없었겠나.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2003년 12월)에 따르면 금융법 체계는 이미 2007년 말 포괄주의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국정과제’에서도 포괄주의 규제로의 전환은 우선순위가 높은 개혁 과제였다. 12년간 추진된 결과물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번에는 다르다, 꼭 한다”는 의지가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둘째, 국제 투자자들의 냉소적 시각도 눈여겨봐야 한다. ‘난다 긴다’ 하는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연이은 ‘탈(脫)한국’ 행렬이 뉴스를 탄다. HSBC 소매금융부문,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스탠다드차타드 주식부문 등이 입지를 다지지 못한 채 떠났다. ‘외국 금융기관 유치 전담관’까지 두고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을 지원해 온 결과치고는 실망스럽다. 국제금융시장 일등 은행이라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영업을 접을 수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의 강자들을 좌절시킨 ‘말 못할 벽’이 혹시 한국에만 있는 ‘규제 울타리’였는지 솔직한 속내를 들어야 한다. 듣기에 불편해도 진실이라면 바로잡아야 하니까. 셋째, ‘보신주의’는 금융 당국에도 해당됨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창의적인 상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포괄주의 체제는 열거주의보다 시스템적 리스크가 더 증가하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규제 당국이 한 수 높은 세련된 실력을 갖추어야 포괄주의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외국 금융회사들이 못 견디고 떠난 ‘규제 생태계’에서 당당히(?) 버틴 토종 은행들의 총자산이익률(ROA·순이익/총자산)은 전 세계에서 바닥 수준(0.32%·2014년)이다. 우리 금융산업이 ‘화장실에 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엘리스 레드 신세가 안 되려면 발상의 혁명적인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열거주의’ 철옹성인 은행법 등 금융 관련 법령부터 ‘포괄주의’ 체제로 개편하자. 하위법규, 규정을 ‘포괄주의’로 개편해 본들 어머니 격인 은행법이 그대로라면 뭔가 어색하다. 돌부리와 구덩이를 깨끗이 정비한 새 운동장에서 금융회사들이 펄펄 뛰게 하자. ‘창조금융 토양’으로 바꾸자. 언제까지 ‘숨은 규제’를 보물찾기하듯 ‘발굴’만 하고 있겠는가.
  • [열린세상] 공무원연금 폭탄 돌리기/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공무원연금 폭탄 돌리기/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어설픈 추진으로 민심의 된서리를 맞은 연말정산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해 온 몇몇 개혁 과제들이 주춤거리고 그 실행 동력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일례로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계획이 발표 하루 전 백지화됐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올해 안에 다시 개선안을 내겠다고 발표했지만 1년 6개월간 준비한 개편안을 구체적 설명조차 하지 못한 채 백지화한 것은 의구심을 피할 수 없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선언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비롯한 노동시장 개혁 역시 구체적 추진 계획이 불투명하다. 민감한 사안은 지레 기피하려는 정부의 총체적 복지부동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해 온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다음 정권으로 미루어질까 걱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을 방치하면 엄청난 빚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개혁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 고위 인사가 현재 20년 근무해야 받는 공무원연금을 10년만 근무하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을 국민대타협기구 회의석상에서 불쑥 꺼내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정부가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뼈를 깎는 개혁보다는 모양내기 연금개혁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이유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도입 당시부터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출발한 데다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국가가 더이상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금 재정적자는 최근 10년(2005~2014년)간 15조원 규모로 발생했고, 향후 10년(2014~2023년)간 무려 55조원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만 보더라도 정부가 보전한 연금부족분이 2조 5000억원에 달한다. 이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에 마련됐던 공무원연금 구조는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단순히 정부 재정의 부담을 완화한다는 목적뿐만 아니라 미래 한국 사회의 주인인 청년 세대에게 깡통 연금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데도 중요성이 있다. 최근 정부가 수세적 행보로 전환하면서 이를 계기로 연금개혁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공무원연금개혁안이 가시화되면 투표를 거쳐 총파업을 단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더불어 대타협기구 내에서 정부안에 대해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최근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선출된 후 정부와의 전면전을 불사하고 있어 공무원연금 개혁의 미래가 더욱 걱정스럽다. 개혁이 실패하는 것은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기득권 집단의 저항과 관련 집단의 지지 철회 앞에서 정부와 정치인들은 단기적 이익 추구의 손쉬운 유혹에 빠질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역대 정권은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정치적 손익계산 때문에 자주 말을 바꾸고 개혁을 미루어 왔다. 2007년 노무현 정부를 예로 들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야심차게 공무원연금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했지만 구체적인 개혁안은 마련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에도 연금의 개혁이 인지됐지만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됐다. 연금 개혁의 장기적인 국가 이익은 뒤로한 채 다음 정권, 다음 세대에게로 연금 폭탄 돌리기를 계속해 온 것이다. 이미 저출산, 노령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정치권은 구조개혁을 미루다 국가재정을 파탄 낸 그리스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 여론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들은 국민연금보다 2배 가까이 더 받으면서도 부족액을 국민들이 부담하는 공무원연금제도가 기형적이라고 본다. 정부는 국민 여론을 압박 수단으로 삼아 정부와 여당의 재정절감 목표치를 달성하는 고강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연금 수혜자들이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타협안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 [열린세상] 기업 스스로 윤리적 책임 강화해야 한다/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기업 스스로 윤리적 책임 강화해야 한다/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기업의 ‘갑질’ 행태 뉴스가 자주 거론되더니 급기야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다. 경제주체 간의 계약에서 편의상 사용되는 갑과 을이라는 구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도, 왜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갑질’이라는 비아냥이 꾸준히 나오는 것일까. 이는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많이 변했는데 우리 대기업들은 이에 대한 절박함을 잘 모르기 때문인 거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역할이란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내서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으며,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이익극대화 외에 경영투명성 및 윤리경영 등의 이행 여부가 중요한 관건으로 자리 잡게 됐다. 즉 주주, 노동자, 소비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전통적 존재 목적인 경제적 책임 이외에 노동·환경·소비자·지역사회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기를 요구하게 됐다. 미국 조지아대 캐럴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 등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경제적 책임이란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으로서 생산 활동을 통해 고용과 유효 수요를 창출하고 투자자에게는 보상이 가능한 이윤을 창출하는 등의 사회적 기여를 의미한다. 법적 책임이란 기업 경영이 공정한 규칙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법의 테두리에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기업이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 할 수 있다. 윤리적 책임은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기대, 기준 및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선적 책임은 자발적인 책임의 수행, 그리고 경영활동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문화활동, 기부, 자원봉사 등을 의미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국 경제의 발전사에 비추어 설명해 보면 19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 우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로 경제적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즉 성장우선 시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제품의 생산·판매를 통해 국가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함께 노동·환경 문제 등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됐고 이로 인해 기업의 법적 책임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기업에 윤리적 책임과 자선적 책임을 추가로 요구하게 됐다. 특히 시민단체의 활동과 정보화의 발전은 기업에 윤리경영을 강하게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슈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기업 가치의 제고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와 연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유사한 기업시민정신이 인정되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부문의 자발성에 기초해 발전돼 왔다.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을 권리와 도덕적 의무를 동시에 지니는 사회적 제도라고 인식하고 시장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등 자본의 구조적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를 제도화하고 있다. 또한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범화하려 하고 있으며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발적 표준으로 ISO 26000을 제정했다. 앞으로 우리 대기업들에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분야는 윤리적 책임 부문이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윤리적 책임을 규범화하자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지만, 대기업 스스로 땅콩 회항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는 정부가 윤리경영 정립을 위해 법률 제정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규제 범위가 늘어나게 될 것이므로 정부에 기업 활동에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상식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 [열린세상] 복지, 솔직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복지, 솔직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얼마 전 집안에 큰일이 있어 고향에 내려간 일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자란 마을은 아니고 부친께서 태어나서 자란 마을인데, 아직도 많은 친척분들이 거주하고 계신 곳이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많은 친척분들이 만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많은 어르신들께서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계셨다. 월 20만원 정도를 받으신다고 하는데, 손주들 먹을거리를 사 주시기도 하고 외식도 하시면서 나름 유용하게 쓰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시골 마을에서 혼자 거주하기 불편한 분들이 크게 의지가 되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내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 가는 세금이 대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 마을의 어르신들이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누리고 계시는 것을 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 좋다고 할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2월 월급에서 연말정산의 조그마한 폭탄을 맞게 돼 기분이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마음이 다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고향에서 친척 어르신들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드려야 했을 것인데 요즘에는 몇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보니 도움은커녕 한번 인사드리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직접 뵙기 힘든 친척 어르신들을 내가 낸 세금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복지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는 젊은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고 대부분 칠순이 넘고 팔순이 지난 노인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나 자신도 해가 바뀌어 깊숙한 사십대 후반인데 나보다 어린 친척은 네 명 정도뿐이었다. 그나마 네댓 명의 젊은 친척들도 대부분 사십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두 명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은 세 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칠순이 넘은 분들은 언뜻 보기에도 스무 명이 넘었다. 아버님 윗세대에는 환갑을 넘기신 친척 어르신이 거의 없었다는데 이제는 팔십 세는 기본인 세상이 됐으니 의학의 진보가 경이로울 뿐이다. 환갑을 넘긴 친척 형님도 계셨는데 감히 나이를 들먹이지 못하고 잡일을 맡아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복지와 증세의 논란이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는 정말 구체적인 형태로 이미 찾아와 있었던 것이다. 팔십이 넘은 노모를 육십이 넘은 자녀가 돌보는데 별다른 수입도 없고 더 젊은 사람도 없는 현재 한국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며 삼십년 후의 대한민국 사회를 미리 보는 느낌이었다. 삼십년 후에는 시골 마을뿐 아니라 큰 도시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칠십 노인이 구십 노인을 공양하는 풍경이 전국에서 연출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미래에는 이런 노인들을 봉양하기 위해 세금을 낼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삼십년 후의 일이 아닌 현실의 일인데, 현재 대한민국 고등학교 한 학년의 학생 수가 60만명이 넘는 것에 비해 초등학교 한 학년의 학생 수는 4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불과 6년 만에 학생 수가 삼분의 일이 감소할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친척 어르신들이 정부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시는 것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당연히 아직 부족하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 연말정산 결과를 보고 친척 어르신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현실을 보면 지금 이상의 복지는 절대로 무리이고 현재 수준의 복지라도 삼십년 후에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무리 각박한 사회라도 형편이 어려운 친척 어르신들을 돕는 마음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한편 아무리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친척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 역시 어르신들의 마음일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수렴해 어느 수준과 방법의 복지를 선택하고 어느 수준의 증세를 감수할 것인지 솔직하게 논의할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백팩 유감/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열린세상] 백팩 유감/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가방은 필요한 물건을 넣고 다니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문화에 천착한 이어령은 책보, 수건, 머리띠, 때로는 포대기, 걸레 등으로 쓰일 수 있는 우리의 보자기에 견주어 서양 가방의 원형은 다양성이 떨어지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상자’였다고 한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궤짝이 가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소요에서 출발한 가방이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수단이라는 본래적 기능에 더해 개인의 취향을 나타내는 패션 소품이 되고, 지위나 처지를 나타내는 ‘신분재’역할까지 하고 있는 형편이다. 용도야 어찌 되었건 가방은 이제 현대인 모두가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생활 필수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방 중에서도 요즘 ‘백팩’이 유행하고 있다. 거리는 물론이고 버스나 지하철, 회의장 등에서 백팩을 메고 있는 사람을 더러 본다. 시장이나 회사,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학생, 정장 스타일의 직장인, 대학교수, 주부를 포함해 남녀가 따로 없다. 백팩을 메는 이유는 추운 겨울 탓도 있으며,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유행에 유난히 민감한 우리네 패션 의식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패션으로 치면 영 아니다. 언젠가 유럽의 선진 패션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 들렀을 때, 그네들이 우리를 일러 ‘따라하기 대국’이라 했던 부끄러운 기억을 상기시킬 필요도 없이 또 하나의 패션 획일화를 가져올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 연예인이나 비중 있는 인물을 앞세운 방송매체도 백팩의 유행에 가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요즘 백팩의 유행은 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함과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백팩을 멤으로써 양손이 자유로워지고, 그 손으로 휴대전화나 아이패드, 노트북 등 정보기기를 휠씬 편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백팩이 유행하는 것은 정보화 사회의 가속화와 관련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손이 자유로워진 백팩을 멘 사람들이 정보기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지하철이나 버스, 그리고 도로 등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백팩의 유행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백팩을 멘 사람이 많아지면서 불편과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심지어 거리 등 대중 공간에서 백팩을 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말싸움을 하는 광경도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느라 자신이 관리하지 않은 백팩이 주변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얼굴이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백팩을 멘 사람이 있으면 통행이 불편하며 양쪽에 그런 사람이 서 있는 경우는 지나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가 되기까지 한다. 이전의 가방에 비해 요즘 백팩은 더 두꺼워지고 각이 져 있어 그런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현상은 정보화가 진전된 우리 사회에서 시민의식 실종을 배가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정보화는 국경을 초월해 개인, 기업 등 경제주체의 연결성을 강화시키고, 정보기술(IT)에 바탕한 정보경제 시대를 견인한 순기능도 있지만, 독일의 작가 올리버 에게스의 지적처럼 정보화가 현대인의 ‘결정 장애’ 신드롬을 가져오고, 휴대전화를 통한 사생활 떠들기 등 대중 공간에서 시민의식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대중 공간에서 백팩을 멘 사람들의 배려 없는 행동이 정보화 진전에 따른 ‘신종’ 시민의식의 실종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대중 공간에서 백팩을 자기 앞에 두도록 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손에 들거나 본인 옆으로 메는 가방을 든 사람이 75%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급기야 우리도 시민 스스로 백팩 에티켓을 제안하거나 그것을 공론화시키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백팩 에티켓을 공지하고 있을 지경에 이르고 있다. 대중 공간으로 백팩을 내미는 것은 명백한 민폐다. 내가 편하다고 해서 시민의식을 내팽개치는 것이 밥 때문에 법을 슬그머니 팽개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볼 때 백팩 에티켓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할 또 하나의 대상이 된다.
  • [열린세상]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장면 1. A사는 2007년까지만 해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던 휴대전화 제조사다. 이 기업은 한때 핀란드 수출의 20%를 책임질 만큼 국민기업으로 사랑받았지만, 경쟁사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을 내놓는 동안 기존 주력 분야인 일반 피처폰에 집중하며 체질 전환에 우물쭈물했다. A사의 휴대전화 브랜드는 지난해 시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장면 2. 1895년에 설립된 B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9만여명이 넘는 직원 수를 자랑하며 캐나다를 대표하는 최대 통신장비 업체의 명성을 떨쳤다. B사는 매년 50개 이상의 첨단기술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무서운 속도로 핵심 통신 기술들을 흡수했지만, 사업화에 성공한 것은 이 중 10%가량에 불과했다. 여기에 회계부정,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악재가 겹친 B사는 결국 2009년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시장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장면 3. 1880년 설립된 C사는 세계 최초의 롤필름(1884년)과 휴대형 카메라(1884년)를 만들어 낸 필름·촬영 기술의 선두 주자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1970년대에 가장 먼저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놓고도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기존 필름 사업의 이익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2012년 파산했던 C사는 뼈를 깎는 자구 노력 끝에 최근 겨우 회생했지만 더이상 예전의 명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와 기술 트렌드에 민감한 독자들이라면 이니셜로 표시한 위의 기업들이 어디인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A사는 노키아, B사는 노텔 네트웍스, C사는 코닥이다.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어느덧 경쟁사와 후발 주자들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쓸쓸하게 물러앉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이 기업들이 핵심 역량과 자원을 그저 자사가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면서 첨단기술이라는 단맛만을 좇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실패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특히 노텔의 경우 현재도 유용하게 쓰일 만한 알짜 특허 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좋은 기술들을 제대로 활용하진 못했다. 장롱 속 면허증만으로는 도로주행을 할 수 없듯 자기 만족에 급급한 기술은 기업을 쇠락의 길로 내모는 셈이다.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을 기획하고 기업 지원, 성과 관리 업무까지 담당하는 기관에 있는 사람으로서 R&D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시장과 함께 가는 R&D’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술개발 과제를 지원할 때도 연구자들이 R&D를 시작하기 전에 연구실 밖의 변수에 대해서도 고려하도록 유도한다. 시장에서 팔릴 만한지, 몇 년 후에도 쓰일 기술인지, 이용자 친화적인지 등을 검토하라는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사업화 유망 아이템을 발굴해 먼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면, 이에 필요한 기술개발과 자금을 지원해 주는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이른바 ‘선 사업화 기획, 후 필요기술 확보’ 방식이다. 중소·중견 기업이 자사의 연구 인력을 전문생산기술연구소에 파견해 사업화 역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전문연-중소기업 공동연구실 지원 사업’도 있다. 단순히 기술 개발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비R&D적인 측면까지 종합적으로 연계해 보다 시장친화적 지원, 입체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연구개발 과정에서 기술만 보고 시장 변화를 외면하면 혁신을 향한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다. 혁신에는 그 내용 못지않게 방향도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과 연구자들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대답은 자명하다. 기업의 기술개발에서는 시장·사람·제품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국가 R&D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 방향도 기술사업화 기능 강화를 위한 예산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술에 날개를 달아 주려는 정부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기업의 필사적인 노력이 창조경제를 움트게 하는 훌륭한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열린세상] 저출산 원인이 만혼?/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저출산 원인이 만혼?/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사회 저출산의 징후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시작된 듯하다. 1983년만 해도 2.06을 유지하던 출산율이 1988년엔 1.55로 떨어졌다. 출산에 관한 한 빨간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 시점이었건만 당시 정부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의 명품 표어 뒤를 이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란 표어를 내걸었다. ‘땅덩어리는 좁고 부존자원도 부족한데 인구가 너무 많다’는 고정관념에 오래도록 젖어 온 관습적 사고의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정부의 표어 앞에서 1980년대 후반 대학생이었던 386세대 여성들은 “가족계획은 이웃집과 상의해서 두 집 건너 하나씩”이란 조크로 응대했다. 최근 10년 동안 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1.18~1.19 수준에서 요지부동하고 있다. 답답한 나머지 일부에선 ‘통행금지 폐지 이후 출산율이 급락(急落)했으니 통행금지를 부활하자’는 기발한 의견을 내걸기도 했고, 정말 진지하게 ‘독신세 부과를 추진해 보자’는 절박한 제안도 등장했다. 정부가 새삼 저출산의 원인을 만혼(晩婚)이라 규정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저출산 반등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대하자니 ‘인구절벽’ 앞에 서 있는 정부의 대응치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부에서도 정책 제안에 앞서 선진국 경험 및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보았으리라 믿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저출산을 타개해 온 방식으론 유럽형 모델과 미국형 모델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유럽은 ‘결혼과 출산의 분리 정책’을 택하고 있고, 미국은 ‘이민 정책’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3쌍 중 1쌍이 동거 커플인 프랑스에선 동거 커플의 자녀에게도 합법적 부부의 자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주면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스웨덴에선 아예 혼외 자녀를 의미하는 ‘일리지터머시’(illegitimacy) 개념 자체를 폐기함으로써 여성 혼자 자녀를 출산하건, 동성 부부가 입양한 자녀이건 국가가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이후 역시 출산율 증가를 경험한 바 있다. 이들 획기적 정책에 힘입어 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1.6~1.8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하지만 출산과 결혼을 분리하는 유럽식 모델은 한국인의 가족 정서나 가족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저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책의 성공 가능성 또한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민 정책을 고수해 온 미국의 경우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출신 이민 가족의 고출산에 힘입어 2.2~2.4 수준의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해 가고 있다. 물론 미국도 내심 고민이 있다. 백인 출산율이 매우 낮아 2040년이 되면 백인 비율이 49%가 되고 유색인종 비율이 51%가 돼 머지않아 백인 국가 범주에서 벗어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만혼이 초저출산에 일정 부분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혼을 조금 앞당긴다 해서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나이브한 진단이다.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 자체를 원치 않는 ‘적령기 세대’의 증가 현상은 저속 성장으로 인한 계층 구조의 공고화나 장기적 경기 불황 등의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개인화 및 ‘결혼의 사치품화 현상’ 등의 규범적 요소와 맞물려 있기에 만혼 내지 비혼(非婚)의 해결을 위해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그리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국가 후원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로맨스 싱가포르’를 기치로 국가가 맞선도 주관하고 신혼 부부에겐 주택을 우선 배정하는 등 인센티브를 적극 동원했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대표적 초저출산 국가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미국식 모델이 거의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지금의 제한적 결혼이주 정책을 뛰어넘어 미국식 이민정책을 추진할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문제는 과연 무엇인지 다각도로 분석해 보고 이의 해결 및 완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산 해법의 골든타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정공법이 되리란 생각이다.
  • [열린세상] 동북아 평화의 꿈나무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동북아 평화의 꿈나무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꿈을 실현하려면 젊은이들에게 그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 동북아 평화의 꿈은 관련 국가들의 이익이 상충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꿈을 꾸고 실현하려면 당사자들인 지금의 젊은이들의 생각과 철학들이 모아져야 한다. 동북아 평화의 꿈이라는 거대 담론을 단기간 내에 성취하려는 목표는 지금으로서는 그야말로 꿈 같은 이야기다. 통일보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라는 변수들 중 그 하나도 수월치 않고 마치 얽힌 실타래와 같은데 동북아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대학에서 가르치다 보면 취직 시험에 찌들어 코앞만 보고 가는 젊은이들이 늘 안쓰러울 때가 많은데 나라의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 꿈과 이상을 가져 달라는 주문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통일에 대한 생각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의구심과 좌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대학 강단이라는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데 동북아의 평화를 여러분들이 창출해야 한다는 말에는 귀가 쫑긋하다.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통일에 대한 생각도 머리가 깨지는 지경인데 동북아의 평화까지 생각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한국의 기개 어린 젊은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취된 지금 통일에 대한 생각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로 분명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배운 것은 흡수 통일이었고 그래서 햇볕정책이 탄력을 받은 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북한 핵무기 개발의 지속, 천안함 폭침 그리고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통일 생각은 지리멸렬한 국론 분열 상태에 있다. 눈에 띄는 진전이 없는 통일 생각에 내몰리다시피 하는 젊은이들이 통일이라는 숲 속에 갇혀 있다 보니 전체를 조망하는 생각이 없어 통일에 대한 풍부한 생각이 제한되는 것이다. 통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동북아 평화를 한국이 창출하자는 말은 더욱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될 것이다. 통일이라는 과제는 주변 국가들과의 이해 폭이 넓어지고 그들과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속도도 빨라지고 안정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통일과 한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 창출이라는 목표를 연결시키는 작업에 소홀한 면이 있다. 주변국들과 친밀한 관계를 넘어 통일 이후에도 한국이 주변국들과 어떠한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한 논의와 조정 그리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는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미래 한국의 안보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생각할 수 있는 공부를 시켜 주어야 한다. 기성 세대들은 늘 젊은이들을 어리게만 생각하고 신뢰하기 힘든 불안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큰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창조적 능력이 우월하고 건전한 국가관과 책임 의식이 강하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치기 어린 측면도 없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은 그들의 생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고 나라 걱정과 애국심도 투철하다. 든든한 나라의 기둥들이니 그들에게 기성 세대는 미래 한국의 좌표를 던져 줄 필요가 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이 이루어 낸 것들을 세계는 모두 기적이라고들 한다. 천연자원도 부족한 한국이 어떻게 기적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사람이었다. 교육열 높은 한국에서 인재를 키워 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치열한 경쟁의 교육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계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한국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친다”는 것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꿈을 이루는 주역으로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세계적 생각을 할 수 있는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 주어야 한다. 한반도 내에 구속되는 생각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글로벌 마인드, 적어도 동북아의 평화를 생각하는 큰 시작을 갖게 길을 깔아 주어야 한다.
  • [열린세상]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까/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열린세상]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까/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명품의 패션 브랜드 회사가 백발의 모델을 기용한 사진을 본다. 프랑스 브랜드인 ‘셀린느’는 81세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오를 내세웠고, ‘생로랑’의 시즌 모델로는 72세 싱어 송 라이터 조니 미첼이 섰다. 이들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들을 내보이며 젊은 모델 일색이었던 패션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니 노후의 기준도 변하고 있다. 전에는 40만 돼도 중노인이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60청춘이란 말이 유행하더니, 지금은 80대를 88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노후에 대한 걱정도 길어지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지 살펴보니 대략 다섯 가지 유형이 나타났다. 연령적으로 60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째,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에너지 지수가 높거나 현실의 금전적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이들은 노인이나 시니어라는 호칭을 거부한다. 베이비부머를 포함한 60대 연령층은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력도 있고 사회 활동도 활발하다. 베이비부머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데, 은퇴 후 직접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사업에 재도전하며 제2의 삶을 도모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차 베이비부머 세대주의 가계 연소득은 이전 세대 세대주 가계의 2.9배에 달한다. 둘째, 귀촌을 결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다운사이징하면서 자연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이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과거 투기 억제 차원에서 묶어 둔 1가구 2주택의 매도 시 부담, 농지 구입 규제 등을 과감히 풀어 주고, 오히려 지원해야 할 때가 됐다. 도농(都農) 교류, 도시과밀 해결, 주택경기 활성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지인들끼리 마을을 만들어 귀촌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셋째, 소수 은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갔던 미국뿐 아니라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목적지가 다양화돼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지인 중 아프리카로 은퇴 이민을 떠났던 사람은 귀국을 하고 말았다. 계획했던 것보다 적응이 안 되니 자연스레 비용이 커지고 실패율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넷째, 실버타운 같은 노인주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노인주택의 경우 양극화가 심해 도시에서 높은 가격으로 운영되는 노인주택은 입주민 정착률도 높고 만족도가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외면당하기 일쑤다. 도심의 경우 경제적 선택의 폭과 서비스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시골의 경우는 아파트형보다 소규모 단독주택 중심의 코하우징과 셰어하우스 같은 공유주택의 형태를 권할 만하다. 사회문화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성공의 요체인데, 노인주택의 운영과 서비스, 프로그램에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대안이다. 다섯째, 살던 장소에서 노후를 맞는 사람들이다. 주변 관계에서 연속성을 갖는 장점을 주목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을 비용이 엄두 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93.2%가 ‘노후에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70%가 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등 부모 봉양에 책임을 느끼는 반면 자식에게는 기대할 수 없거나 기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나 지역 환경이 안정되고 지속된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기존의 지출 구조를 감축하지 않으면 수십여년에 달하는 노년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점이다. 은행이 도입한 주택 모기지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도다. 현실에 부합하도록 노인주택 개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자식뿐 아니라 주변의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한 돌봄과 어울림에 지원을 펼쳐야 한다.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풍조인 ‘어모털리티’(amortality)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60대는 장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아마 2026년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 60대는 중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대책 없이 노년을 맞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길고, 생활비도 부담스럽다.
  • [열린세상] 중국, 세계 농업을 사들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 세계 농업을 사들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재작년 9월. 중국 육가공 기업 솽후이그룹은 세계 최대 양돈 기업인 미국 스미스필드를 약 5조원에 사들였다. 중국 기업이 인수한 미국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정부 비축 대상일 만큼 중요한 관리 품목이다. 그러나 낙후한 생산·안전성 기술, 악화되는 사료곡물 경작 기반, 심화되는 환경·물 문제 등으로 중국 양돈 산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의회 청문회까지 거친 이 기업 인수 거래를 두고 미국 일부에서 나온 비판은 중국이 자기 난관을 미국 국민 희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세금으로 연구비를 조성해 개발한 공공 양돈 기술과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불하고 경작한 사료곡물로 돼지고기를 생산한 뒤 중국에 공급하고 발생하는 환경·물 문제는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이다. 지나친 비판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중국 정부의 해외농업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민간 부문에도 정부 개입이 광범위한 중국 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거기에서 중국의 국가전략을 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재정부는 예산보고를 통해 농식품 기업의 세계 진출을 장려하고 해외 자원의 적극적 활용을 지원한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기업의 해외 농식품 기업 인수에 저리 융자를 제공한다는 것도 포함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 민간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가 국가 전략의 일환이고 이에 미국이 이용된다는 미국 일부의 불만은 근거 없어 보이지 않는다. 중국 국가 차원의 해외농업 전략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국영기업의 세계 농업 사들이기다.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국영기업의 이러한 활동은 국가 차원의 해외 농업 전략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량그룹(COFCO). 중국 최대 국영 농식품 기업이다. 한국의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기능은 유사한데 사업 영역과 규모는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401위에 포함될 정도로 세계적이다. 2012년 COFCO는 약 11조원의 준비금을 활용한 적극적 해외 진출 방침을 발표했다. 2000년대 초부터 자원·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펼쳐 온 중국 정부의 주출거(走出去·기업 해외진출) 전략에 농식품 기업도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COFCO는 지난해 10월 두 개의 대규모 국제 곡물기업을 사들였다. 약 3조 3000억원으로 ‘니데라’와 ‘노블’을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총매출 34조원에서 70조원 수준이 돼 종전 세계 4대 곡물기업 벙기를 능가하는 거대 국제 곡물기업으로 단번에 변신했다. 식량 안보를 위해 세계 농업을 사들이는 국가 전략이 보인다. 50년 전 일본은 농협이 앞장서 국제곡물시장에 진출, 가치 사슬 단계별로 차곡차곡 기반을 구축해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고도성장 결과물인 풍부한 외환으로 이미 잘 갖추어진 기업을 일거에 사들임으로써 50년 후발 주자의 간격을 단숨에 메우고 있다. 한국은 2011년 AT와 민간기업이 컨소시엄으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국제적 곡물회사를 목표로 출발했으나 후퇴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중·일, 동북아의 식량 취약 세 나라 가운데 한국만 답보 상태다. 일본의 시간, 중국의 돈, 어느 전략도 쓸 수 없는 처지다. 관심 가는 소식이 하나 있다. 국내 한라그룹 미국 법인 ‘우리만’이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에서 곡물을 수집해 한국·중국을 포함, 동남아와 유럽 등지 10여국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모든 설비는 외주로 활용하고 소수 인력만으로 연간 22만t을 달성했다고 한다. 물론 독립된 곡물 회사로 서기까지는 아직 멀다. 또 민간기업의 이윤 목적이 국가의 공익 목적과 일치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 소식에 관심 가는 이유는 자체 설비 없이 사람만으로 버텨 왔다는 것 때문이다. 이것은 곡물 사업의 핵심이 설비 활용인데 외주 경험을 통해 복잡한 설비시장 구조를 파악하며 전체 곡물시장 생태를 바닥부터 익히는 사람이 키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사업의 근본이 되는 인력이 충분히 키워지고 자체 설비가 꼭 필요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적절한 공공·민간 제휴를 통해 상생 사업 모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한다. 이때는 종전과 달리 민간이 앞서고 공공이 뒤따르는 모형이 될 것이다. 세계 농업을 사들이는 중국 전략을 보며 답보하는 국가 곡물사업에 긍정적 자극이 되는 소식이었으면 한다.
  • [열린세상] 밤나무 숲에서 닭을 키우면/윤영균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밤나무 숲에서 닭을 키우면/윤영균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치킨과 맥주를 줄여서 부르는 ‘치맥’. 언제부턴가 너무 친숙해진 국민 간식이 됐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치맥의 인기는 최고라 할 만하다. 닭은 가격에 부담이 없고 남녀노소 모두 좋아해 간단한 식사, 한밤의 출출함을 달래 주는 야식,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친구들과의 수다 모임 등 다양한 자리에서 함께할 수 있다. 계절에 대한 제한도 없어 사계절 내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부위별, 양념별, 브랜드별로 종류가 다양해서 기호에 맞게 골라서 먹으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하지만 닭고기의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정작 양계 농가는 울상을 짓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산 닭고기가 유입되면서 국내산 닭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산 닭의 가격이 국내산의 3분의2 수준 정도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겨울만 되면 조류독감(AI)이 극성을 부려 양계 농가에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맛있는 토종닭을 먹기 위해, 양계 농가의 수입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우리나라의 산림과 축산을 대표하는 국가 연구기관이 힘을 합쳤다. 산림과학원과 축산과학원이 협업해 ‘친환경 생태 축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연구는 밤나무 숲에서 닭을 키우는 방식이다. 밤나무 재배지를 활용해 고품질의 밤과 양질의 육계를 생산하는 것이다. 밤나무 재배지를 일정한 면적으로 배분한 후 이동이 용이한 계사를 이용해 5~10일 단위로 이동하면서 닭을 방사한다. 일정 기간 단위로 이동하기 때문에 토양 보존은 물론 분뇨를 이용한 토양 개량에도 효과적이다. 봄에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고려엉겅퀴(곤드레), 참취, 곰취, 섬쑥부쟁이 등을 밤나무 아래에 심어 산채를 생산하면 된다. 여름에는 방사해 키운 육계용 닭을 출하하고 가을에는 고품질의 밤을 수확한다. 이러한 복합경영 모델은 노동력을 골고루 분산시키면서 자가 인력으로도 경영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또 소득원이 편중되지 않아 가격 폭락과 천재지변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토종닭 체험, 밤 줍기 등은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도 연계시킬 수 있다. 실제 약 3개월 동안 닭을 밤나무 재배지에 방사한 결과 연간 ㏊당 1000마리의 닭이 생산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생산된 닭고기는 육질이 쫄깃하고 풍미가 뛰어나며 지방 함량이 관행 사육에 비해 65% 감소했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각각 8.3%, 3% 증가했다. 특히 닭을 방사한 곳의 밤나무는 닭 분뇨가 거름이 돼 밤알이 굵어지고 밤 수확량이 증가했다. 또 닭이 밤 과육을 갉아 먹는 밤바구미를 잡아먹어 밤나무의 병충해가 줄어드는 효과를 얻었다. 말 그대로 1석3조인 셈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양계 농가, 밤 재배 농가 모두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양질의 닭과 밤을 구입할 수 있게 된 소비자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특히 밤은 연간 1400억원 내외의 소득을 올리는 농·산촌의 주요 소득 작목이지만 FTA로 인한 시장 개방, 기상 이변에 의한 불안정한 생산성, 밤나무의 노령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해결해야 할 일도 있다. 닭을 방사할 때 족제비, 고양이, 들개 등 천적 동물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백신 접종, 태양충전식 전기 그물망 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질병과 천적 동물로 인한 육계 손실을 10%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AI 발생이 반복되면서 친환경 축산과 함께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때문에 방역 관리가 잘 된 산지에서의 양계 기술 개발은 환경 보전과 친환경 축산물 생산이 양립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FTA 확대로 어려움을 겪는 농·산촌의 소득 증대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을미년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입춘도 지나 오는 19일이면 설과 함께 우수(雨水)다.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속담처럼 추위가 누구러지고 봄기운이 돌고 초목(草木)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농촌에서는 봄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번 봄부터는 산에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산지 양계를 권하고 싶다. 이것이 정부3.0에서 강조하는 협업과 창조 농업의 모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열린세상] 우리 동네 배병장의 ‘복지’와 ‘증세’/이옥순 인도연구원장

    [열린세상] 우리 동네 배병장의 ‘복지’와 ‘증세’/이옥순 인도연구원장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배병장’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살았다. 당시 초등학생인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병장으로 제대한 성이 배씨인 그를 그저 배병장이라고만 호칭했다. 히죽거리며 잘 웃었고, 어린 내 눈에도 몸이 굼떠 보이던 그는 적지 않은 나이였으나 개울가의 초가에서 혼자 살았다. 가끔, 2~3년에 한 번씩, 시골에서 보기 드문 분칠한 여인이 그의 집에서 살다가는 사라졌다. 그 이유를, 배병장과 살림을 차렸던 여자들이 한두 달 만에 짐을 쌌던 이유를 훗날 어른이 된 뒤에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됐다. 고아로 자라 군대를 다녀온 배병장은 어떤 연줄로 연고 없는 우리 마을에 둥지를 틀었고, 품팔이로 생계를 이었다. 결혼할 나이를 훌쩍 넘겼으나 노총각 신세인 그를 안타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이 읍내의 다방이나 술집에서 일하던 여인을 함께 살도록 여러 번 주선해 줬다. 그러나 그들의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길어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새사람이 들어와서 두 배 더 드는 생활비를 그가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배병장은 빠르게 줄어드는 쌀독의 쌀을 들여다보며 매일 “왜 이렇게 많이 없어지는 거야”라고 불평했다. 우리 눈에 띄었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은 어느 날 문득 사라졌다. 어린 나이의 우리들은 그것이 괜히 아쉬웠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배병장을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살아가노라면 자신에게 속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품어 주는 것,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치르는 문제를 고민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배병장이 자신을 찾아온 예쁜 여인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일했으면, 혹은 그와 살게 된 여인들이 농촌에서 그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40대에 병들어 홀로 죽은 배병장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명쾌한 답변을 내놓긴 어렵다. 거기에는 익숙한 걸 버리는 것,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편하고 쉬운 길을 포기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사적 판단이 얽혀 있어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복지와 증세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더 좋고 더 많은 걸 가지려면 비용이 들게 마련이고, 따라서 어떻게 하든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 덜 내고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세상, 밥을 먹여 주지 않고 예쁜 여인과 살고 싶어 했던 배병장의 세상은 없다. 세상에는 세금을 기꺼이 더 내려는 사람도 없다. 반면에 세금을 덜 내려고 갖은 애를 썼던 사람들은 내가 공부하는 인도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보인다. 중세의 인도에서 이슬람이 정권을 잡자 힌두들은 갠지스강이나 사원을 찾을 때에 세금을 냈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고 인두세도 바쳐야 했다. 술탄이 인두세를 부과하자 브라만들은 식음을 전폐하며 면세를 호소했다. 거절당한 그들은 세금은 내되 가장 낮은 등급을 매겨 달라고 읍소하는 전략으로 바꿨고, 결국 농민보다 적은 세금을 냈다. 2001년에 나온 인도영화 ‘세금’(라간)은 영국이 통치한 근대에도 세금이 민초들에게 절실한 문제였다는 걸 보여 준다. 영화의 줄거리에 따르면 1893년 영국인 관리들은 가뭄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에게 크리켓 경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이 이기면 세금을 깎아 줄 것이고, 만약 진다면 세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오합지졸의 농민들은 죽기 살기로 지배자의 크리켓을 배워서 승리를 거두고 세금을 감면받았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내지 않던 세금이 부과될 때 생겨났다. 1739년 인도를 유린한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는 “무굴제국이 348년간 축적한 부를 단 3일 만에” 차지했다. 그 목록엔 타지마할 건축비의 두 배가 든 ‘공작왕좌’와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도 들어 있었다. 천문학적 재물을 약탈해 귀국한 그는 페르시아 전역에 3년간 세금을 면제했다. 그러나 3년 뒤에 세금을 다시 거두자 불만이 터져 나왔고, 황제는 몰락했다. 민심은 그렇다. 성장이 능사라고 본다면 인간의 존재는 가벼워진다. 허나 성장을 무시하고 배를 주리는 인간도 무겁지는 않다. 내 기억 속의 배병장은 ‘복지’를 누리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일러 준다. 문제는 그 적절성인데, 사실은 그것이 어렵다. 아마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깨진 창문/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깨진 창문/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건물의 깨진 유리 창문을 보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다. 동시에 깨진 창문은 곧 수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깨진 창문이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에는 이 건물은 관리가 안 되는 건물로 인식되고, 결국엔 나머지 창문들까지 깨진다. 뿐만 아니라 건물엔 낙서가 그려지고, 쓰레기가 버려지고 결국엔 부랑자들이나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된다. 그 근처에 살던 주민들은 황폐해지고 위험해진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고, 결국 그 마을은 마약사범 등 범죄의 소굴이 돼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를 가져온다. 이는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공동으로 발표한 ‘깨진 창문’이라는 글에서 주장돼 범죄심리학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깨진 창문 이론’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나중에는 지역 또는 사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뉴욕·시카고·보스턴시는 이 이론을 치안 대책으로 활용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뉴욕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권고가 나돌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켈링 교수는 뉴욕시의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낙서를 철저하게 지우는 것을 제안했으며, 1994년 뉴욕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 경찰에 도입했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하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국가 혁신을 주제로 행정자치부와 법무부 등 8개 정부부처 합동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법질서 확립을 위해 ‘깨진 창문 이론’을 언급했다. 그런데 기초적 생활 질서가 확립돼 비교적 안정화된 우리나라에서 ‘깨진 창문 이론’은 공권력의 불공정 내지 부정부패의 적용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권력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이지만, 이 신뢰는 유리창과 같아서 깨지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불공정과 부정부패는 공권력의 무질서와 정부에 대한 불신을 보여 주는 깨진 유리창이라고 볼 수 있다. 불공정과 부정부패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사회악을 낳는 암적 존재인 것이다. 역대 정부가 국가경쟁력과 바로 연결되는 대한민국의 청렴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특별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도 공권력 행사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제투명성기구는 우리나라의 국가청렴도(부패인식지수)를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에서 27위에 해당하며 일본, 홍콩, 대만보다도 뒤진 점수다. 지난 1일 발표된 2014~15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 항목별 순위를 보더라도 종합순위는 조사 대상 144개국 중 26위이지만 정책결정 투명성 133위, 정치인 신뢰 97위, 사법부 독립성 82위, 공무원 편파성 82위, 법효율성(규제완화) 113위 등 낮은 순위를 보여 주는 것도 위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류만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면 공권력 행사와 관련해 진정한 협력을 위한 국민의 신뢰를 단절시키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의 행위가 절차적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이를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정부의 행위가 불공정과 부패로 신뢰할 수 없다면 국정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속칭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주고받았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온갖 불공정, 부정부패의 고리를 단절하고 청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그려진 부패의 낙서를 지워야 한다. 얼룩진 낙서를 청소하는 일에 공적 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적 기관의 구성원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부정부패는 심리적 요소를 담고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일거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청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열린세상] ‘사드 배치’, 의미 있는 ‘안보 공론’ 모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남북한문제연구소장

    [열린세상] ‘사드 배치’, 의미 있는 ‘안보 공론’ 모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남북한문제연구소장

    2013년 북한의 2·12 3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심대한 전환점에 직면했다.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 실전 배치에 이어 3차 핵실험으로 소량화 및 탄두화된 핵무기를 갖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는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꼴”이 돼 버린, 즉 남북한 간의 군사적 균형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어떠한가. 잘 알려진 대로 한국군은 항공기 방어용 저고도 미사일인 PAC2를 실전 배치했지만, 북한의 중고도 스커드미사일과 고고도 노동미사일에 대한 요격 능력은 전무하다. 지난해 중고도 요격용인 PAC3의 구매를 결정했지만 실전 배치는 2017년 이후이며 실질적으로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해 대응이 미흡하고 속수무책인 셈이다. 즉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충분한 억지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만약 북한이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탄두화된 핵폭탄 공격을 감행한다면 수십만이 희생되는 대참사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에 대한 검토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에 대해 한·미 양국 간에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음에도 일부 학자와 언론 등 일각에서는 진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라 곡해(曲解)와 선동으로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를 정치화시키고 있다. 우선 이들은 사드 배치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참여로 규정하고 반대함으로써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 구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런 논리는 사드를 구실로 한·미 동맹을 근거 없이 배척하고, 민족을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과거 ‘햇볕정책’의 재판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사드는 북한의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체계로 탐지반경(통상 1000㎞ 이내)과 요격고도(150㎞), 사거리(200㎞)를 감안해 본다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MD와 관련이 없다. 둘째, 일부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주관적으로 예단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해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군사 전문가와 언론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천명한 적은 없다. 어떤 중국 학자는 “사드 자체는 중국의 억지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결정되지도 않은 중국의 입장을 미리 대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숭중’(崇中)의 사대주의, 아니면 친북의 패배주의가 아닐까. 셋째, 좀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천문학적 비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사드 1포대는 약 8억 달러(8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하기에는 국방비 측면에서 큰 액수라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사드 배치와 운용에 약 2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하면 이를 반대할 필요가 없다. 한·미 양국의 ‘방위비분담금’ 규정은 총액제로 사드 배치 자체 비용을 우리가 전액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0여년이 넘는 한·미 동맹에서 미국이 새로운 무기 체계를 한국에 배치했을 때, 그 비용을 전적으로 우리가 떠안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사드를 통한 ‘충분 억지력’의 확보 효과가 한·미 방위비분담금의 부분 증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현재 탄두화된 북한의 핵무기 위협으로 우리의 전쟁 억지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됨으로써 한·미 간 대북 도발과 전쟁 억지력을 구축하는 것이 이슈가 됐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 변화에 따라 지난해 한·미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시기’가 아닌 ‘조건’에 따라 재연기하고, 한미연합사의 용산 기지와 동두천의 1개 미군 여단을 잔류시키기로 했다. 또한 미 2사단 예하 국군기갑여단을 창설해 한·미 연합사단을 만들고 평시에 독립적으로 운영하다가 ‘전시’에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대북 핵억지 능력과 관련한 사드 배치는 국내 정치적 이념의 선택이나 중국과 미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줄타기의 대상이 아니다. 엄정한 군사전략적인 현실적 판단과 미래 대비라는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국민적 공론(公論) 과정을 거쳐 배치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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