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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그룹임원 2백49명 인사

    ◎건설회장 정훈목씨/전자회장 정몽헌씨 현대그룹은 3일 정몽헌현대전자사장과 정훈목현대건설사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김정국현대건설부사장을 현대중전기 및 현대전동기산업 대표이사 사장(겸직)으로 각각 승진 발령하는등 모두 2백49명의 임원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또 현대중전기와 현대전동기산업의 사장을 겸직하던 김주용사장은 현대전자 대표이사사장으로,도영회현대종합목재부사장은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전보 발령됐다.현대건설 이명박회장과 이래흔사장은 퇴임했다. ◇대표이사 회장 ▲현대전자산업 정몽헌 ▲현대건설 정훈목 ◇대표이사 사장 ▲현대건설 김정국 ▲현대중전기및 현대전동기 유재목 ◇부사장 ▲현대건설 박찬규 ▲현대중공업 권수식 ▲현대자동차 임채원▲현대정공 박정인 고도웅 ▲현대자동차써비스 윤명중 ▲대한알루미늄공업 어충조 ▲고려산업개발 연제원 ◇전무 ▲현대건설 심옥진 오용남 정중배 전계종 곽륭태 원상준 ▲현대중공업 이연재 이영기 신익현 ▲현대자동차 홍두표 권순묵 이수일 한상준 정달옥 서창명 ▲현대전자산업 윤장진 ▲현대정공 서태원 송병렬 김평기 최남식 김진홍 임승근 ▲현대자동차써비스 이기진 김정길 ▲인천제철 이강성 채경석 ▲금강개발산업 최화진 ▲고려산업개발 최도현 ▲현대중장비산업 김성훈 최홍준 ▲현대엔지니어링 박희동 ▲현대중기산업 이복성 ◇상무 ▲현대건설 정상구 박동서 이지송 장효성 김형준 정승일 오진영 ▲현대중공업 최용화 황무수 이세혁 양만영 임승의 김대두 ▲현대자동차 원정남 김종일 김원일 태영식 윤국진 신준호 이헌영 이명군 신도철 김판곤 ▲현대종합상사 최동호 ▲현대전자산업 이상근 김태신 이현희 주숭일 ▲현대상선 김충식 ▲현대자동차써비스 이동용 김도영 이상일 배기훈 이영익 김태원 김종대 이상오 김용원 ▲인천제철 조문현 ▲현대산업개발 김정중 ▲금강개발산업 장락종 ▲현대강관 조경래 이성철 ▲현대중전기 하재규 ▲현대미포조선소 김용우 ▲현대엘리베이터 최용묵 송병훈 ▲현대중장비산업 김종기 ▲현대철탑산업 김무홍 ▲현대엔지니어링 조서일 ▲현대해상화재보험 이완규 ▲현대자원개발원종 영▲현대알렌브래들리 유현규 ▲현대중공업 수석연구원(상무급) 박동환 ◇이사 ▲현대건설 김성기 차재근 손성태 안성환 노무섭 최동수 김연호 백용준 이창신 이정치 유준만 김광찬 이용구 주철응 이병규 ▲고려산업개발 한대익 ▲현대중공업 김경현 김욱근 이춘식 강언선 이무남 최충영 ▲현대자동차 박황호 박동준 윤병휘 조린수 김상권 이순영 전명헌 김호경 박종서 이보우 ▲현대전자산업 김영철 김대준 이백영 고태호 정광석 ▲현대정공 박민식 이종수 김상도 한규환 ▲현대자동차써비스 이수환 강연희 이주은 김봉수 이현옥 ▲인천제철 고성소 김태연 ▲현대산업개발 장세덕 임무언 한병삼 ▲금강개발산업 김기현 ▲현대강관 남궁성 김기병 유의렬 ▲현대종합목재산업 이영상 임순혁 ▲현대중전기 강길건 ▲현대미포조선소 이규식금춘곤 권령도 ▲현대석유화학 김재옥 강헌식 이건우 김충엽 ▲현대엔지니어링 오서균 이완태 ▲현대증권 함재완 ▲현대전자 대표이사 사장 김주용 ▲현대자동차 부사장 도영회 ▲현대해상화재보험 이사 김정호 ▲현대건설 해외토목사업본부장겸 국내토목사업본부장 부사장 김광명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현대종합목재산업회장 현대자원개발사장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 이래흔 전무 조용준 ▲현대건설 고문 이성출 이호윤 이규재
  • 서울대 전체수석 차지한 이학호군

    ◎전화국 맞벌이부부 아들 “면학만세”/“114안내원 19년 어머니에 감사”/“상대성이론 감명… 물리학 선택/TV과외로 국·영·수 기초닦아”/25평 전세집엔 할머니등 6식구 단란 서울대 신입생전형에서 전체수석합격의 영광은 맞벌이 전화국직원의 맏아들 이학호군(18·양정고 3년)이 차지했다. 『뜻하지 않은 결과라 좀 얼떨떨하지만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군은 수석합격의 소식을 듣는 순간 쑥스러운듯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 이용귀씨(45·서울구로전화국 시흥분국 전자실장)와 어머니 성모단씨(41·서울번호 안내국직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난10일 20년 근속상을 받은 아버지 이씨에게는 학호의 수석합격 소식이 「생애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군은 과외나 학원보다는 학교수업에 충실한 지능지수 1백56의 「공부벌레」. 고교1년때부터 국어·영어 등 9개 시험과목별로 참고노트를 만들어 새롭고 어려운 문제등을 적어가며 시험준비를 했다. 이 노트는 이군에게 유일한 「참고서」이며 「개인교사」였다. 날마다 상오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버지가 모는 프라이드 승용차로 학교에 가 수업과 자습을 마치고 하오8시30분쯤 집에 와 다음날 상오2시까지 공부하고야 잠자리에 드는 하루4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꽤나 힘든 규칙생활을 했다. 공부에 유일하게 도움을 받았다면 TV과외로 특히 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를 닦는데 힘이 됐다. 『공부를 하다 지루하거나 틈이 나면 「삼국지」등의 소설을 읽거나 브람스의 교향곡을 들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 이군의 긴장해소책이었다. 물리학과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87년 신도림 중2학년때 선생님의 물리공식 증명과정을 보며 과학의 깊이에 호기심이 생겨서였다고 했다. 그뒤 쉽게풀어 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물리학기초」「과학의 역사」등 과학도서들을 도서관 등에서 빌려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다. 아인슈타인등 물리학자가운데에서도 특히 불구의 몸으로 물리학의 대가가된 스티븐 호킹박사를 존경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지원학과를 정할때는 가까운 친구들이 『왜 배고픈 학문을하려고 고집하느냐』라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물리학을 한층 높이고자하려는 그의 포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대학원과 유학등을 통해 깊이있게 물리학을 공부할 계획』이라면서 『특히 원자세계를 다룬 「쿼크이론」을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몸무게가 80㎏이 넘어 친구들로부터 「공포의 삼겹살」등으로 불리는 이군은 성격이 쾌활하고 낙천적이어서 친구들도 많다. 『입학하기전까지 테니스와 합기도를 배우면서 체중조절을 해 날씬한 몸매를 가꿀 계획』이라고 가족들을 웃길정도였다. 이군의 아버지는 『부모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느라 뒷바라지도 변변히 못했는데 이렇게 기쁜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대견해했다. 이씨는 『학호덕분에 상오9시의 출근시간이 상오7시30분으로 당겨져 직장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 됐다』고 그동안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어머니 성씨는 지난 72년 남편 이씨가 근무하던 서울 영등포전화국에 들어가 19년째 시민들의 전화번호안내를 해오고 있다.신도림동의 25평짜리 2층전세집에는 이군의 할머니 이양순씨(65),동생 광호군(17·구로고2년)과 연희양(13·신도림여중1년)등 6식구가 함께 살고있다.
  • 2천만원 입금하라/화백 집에 협박편지

    동양화가 민모화백(59·서울 서대문구 연희1동) 집에 현금 2천만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집안문제를 폭로하겠다는 협박편지가 3차례 우송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지난 1일과 3일 등 3차례에 걸쳐 민화백집에 등기편지를 보내 『2천만원을 중소기업은행에 입금하지 않으면 잡지사 등에 제보해 민화백과 가족들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 “총선 정국의 변수” 신당은 태어날까

    ◎재야의 부산한 움직임을 살펴보면… /40∼50석 확보목표… 내부 이견으로 주춤/5공신당/노정추/양당체제 종식 내걸고 2월 창당 총력/정개협/도덕정치 주장… 여론점검속 조직 강화/정당화 실패… 김동길씨 강남 출마 고려/태평양위 14대총선을 앞두고 재야정치세력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그 모습과 행보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총선을 향해 뛰는 이들 그룹중에는 이미 모습을 드러낸 김동길전연세대교수의 「태평양시대위원회」와 박찬종의원의 「정치개혁협의회」이외에도 5공인사인 장세동·권정달씨 등이 주축이 된 구여권 집단,노동단체연합·민중연합 등 재야노동단체가 중심이 된 새로운 노동결사단체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도 정치참여의사를 공표하고 있으며 「14대총선 원내진입」을 꿈꾸는 진보정당 민중당도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어 이들 정치결사체들이 앞으로 이전투구하면서 총선 정국구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개협◁ 양김 구도청산과 도덕정치를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새정치를 주창하며 지난달 창립된 박찬종의원의 「정치개혁협의회」는 최근 총선을 대비한 조직정비작업에 나서 정치결사체로서의 위상을 강화했다. 박의원을 비롯,민영기전JC위원장,임창진서강대교수,박천식변호사,정희원민자당국제위원 등이참여하고 있는 정개협은 사무차장에 송희식변호사(38),대변인에 이신범씨(41),부대변인에 김동주씨(38)를 각각 선임하고 본격적인 국민개혁운동에 착수했다. 정개협은 총선전략차원에서 국민개혁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금권선거방지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으며 인물난 타개를 위해 양순직전의원 등과의 접촉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정개협측은 정당발족여부는 여론의 반응을 참작,때가 무르익었을때 추진한다는 방침아래 우선은 국민운동차원의 개혁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평양시대위원회◁ 출범초 내부갈등으로 노선상 혼란을 빚었던 「태평양시대위원회」는 얼마전 양준용씨를 기획실장으로 임명,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두는 국민운동본부의 창설책임을 맡겼다. 「태평양시대위원회」는 서울 강남갑 지역구인역삼동에 사무실을 내고 내년초까지 전국 2백여 지역에 산하지부를 결성할 계획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 김교수가 강남갑에서 출마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시대위원회」는 당초 이달 20일쯤 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이었으나 인물난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태평양시대위원회」는 그동안 이수성서울대교수·황산성변호사·현승일국민대교수 등과 접촉을 시도하며 참여를 권유했으나 당사자들이 시간적 여유를 두고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김교수는 최근 당초의 대권도전 의사에서 한발 물러나 킹메이커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입장을 전환,세력확보가 여의치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얼마전까지만해도 「태평양시대위원회」에 몸담고 있던 일부세력들은 전직 6선의원인 박한상변호사를 주축으로 서울S호텔에 베이스캠프를 설치,전직 야권지구당위원장을 중심으로 정당작업에 착수했으나 세력규합에 실패,포기하고 말았다.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 14대총선에서 노동자후보의 당선을 목표로 지난 15일 발족한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원회」는 현재 각 지역추진위원회 결성에 돌입했으며 내년1월12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갖고 2월 초순쯤 「한국노동당」(가칭)을 창당할 계획이다. 「노정추」(약칭)는 서울·인천·울산등 공단지역에서 오랫동안 비공개적으로 활동해왔던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결성한 정치결사체로 주대환씨(37)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전국 20여개 지역에서 노동자대표 2백41명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노정추」는 노동자정당에 대한 공청회와 설명회등을 통해 1만여명의 발기인을 모집,이들로부터 2만원씩의 모금을 받아 창당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다. 「노정추」는 오는 14대총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자본가와 정당들간의 독점적 경쟁시대를 종식시키고 권력교체기에 「노동자정당」을 비롯한 민중진영이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보수 양당체제의 종식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정추」의 주요 멤버로는 민영창·전성·권우철·이용선·최봉근등과 같은 노동계의 핵심인물 이외에도 배일도전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한경남전국노동단체연합 공동의장등이 포함돼 있다. 민중당은 현재 14대총선 전략으로 이들과의 연합공천문제를 계획하고 있어 이들의 정당화여부는 재야및 혁신세력의 또다른 핵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중당◁ 14대총선 원내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민중당은 이번 총선에 80여명의 후보를 대거 투입,5석의 의석을 확보한다는 방침아래 우선 정치자금의 만성적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30억원 모금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민중당은 현재 민주대연합론에 입각,민주당측에 연합공권을 제의해 놓은 상태이나 민주당측 사정으로 그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노동자정당이 창당될 경우 이들과의 연합공천을 통해 인물난을 타개하겠다는 복안이다. ▷5공신당◁ 가장 먼저 신당론을 폈던 5공인사들은 「1월중 신당결성」을 주장하는 장세동 전안기부장의 적극론과 「무소속약진후 신당추진」을 주장하는 권정달 전민정당사무총장의 유보론,또 권익현 전민정당대표위원과 허문도전통일원장관등의 독자행보론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5공인사들 가운데 적극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년 1월쯤 「중도보수」성향을 표방하는 신당을 창당한다는 계획아래 그동안 5공핵심의 현역 및 전직의원과 구여권 각료출신인사들은 물론,법조계·언론계·학계·재계 및 예비역장성들과 빈번한 접촉을 벌여왔고 야권의 고흥문 이만섭씨 등에게도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동길 전교수의 「태평양시대위원회」와도 접촉을 시도했으나 최근 김교수측이 여론의 비난을 의식,5공인사와의 접촉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5공그룹은 현재 연희동인사들이 주축이 돼 오는 총선에서 40∼50석의 의석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으나 권전사무총장이 이끄는 「무소속연합그룹」등이 주춤거리고 있어 성사여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 「5공」·태평양위 정치세력설 안팎

    ◎「물갈이대세」 거역하는 「신당깃발」/“권력향수 못버린 작태” 비난속/비밀정치자금 유입 의혹 증폭 박찬종의원의 「정치개혁협의회」,김동길전연세대교수의 「태평양시대위원회」등 야권일각에서 14대총선을 앞두고 신당추진 움직임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구여권세력도 장세동전안기부장과 권정달전민정당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신당창당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가의 관심을 끌고있다. 야권과 구여권에서 현재 진행중인 이같은 신당창당의 물밑움직임은 특히 구여권세력이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며 김전교수의 「태평양시대위원회」와 연합가능성을 흘리면서 여론을 탐색하고있어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명분이 약하고 정치판의 물갈이를 바라는 국민감정과 정면으로 배치돼 쉽사리 성사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구여권세력들은 자신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세력화를 통한 「복권」을 꾀하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권력에의 향수」를 떨치지 못한 한물간 사람들의 희망사항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신당모색움직임은 모처럼 이룬 야권통합국면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비난까지 받고있어 운신의 폭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 특히 「태평양시대위원회」에 관해서는 정치자금문제와 관련,5공핵심부의 흑막있는 돈이 유입되고 있다는 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등 추문까지 번져 「신당」이미지를 이미 잃고 있다. 「태평양시대위원회」측은 자신들이 5공세력들과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모든 인사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화해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5공인사를 받아들여 「5공신당」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태평양시대위원회」는 현재 박찬종·김광일의원등 야권인사가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있어 부득이 5공인사와 손잡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있다. 이때문에 「태평양시대위원회」측은 5공인사들이 개혁을 위해 동참할 경우 이들을 받아들여 정치세력화할 수는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와관련,이 위원회의 실무역할을 맡고있는 김충립씨는 『항간에 떠도는 구여권세력과의 연대설은 「민정동우회」측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우리는 우선 야권인사의 영입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위원회 결성이후 비난의 여론이 일자 발뺌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며 당초 계획대로 신당이 창설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전교수의 「태평양시대위원회」가 모든 인사에 대해 문호를 개방,5공인사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데 반발하고 있는 「정치개혁협의회」의 박찬종의원은 『아직까지는 김교수의 5공신당설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면서 『김교수가 정치권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한 정치적 입지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포용하는 것과 정치를 같이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창조적 신당론」을 제기한 장세동전안기부장과 「무소속전국연합」을 추진중인 권정달전민정당사무총장 등이 김전교수와 함께 추진하려는 「중도보수신당」은 정치권의 세포분열에 의한 「선거인플레」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게 기존 정치권의 시각이다. 민주당은 무엇보다도 새 정치를 주장하며 도덕정치를 표방한 「태평양시대위원회」가 정치자금과 관련,『현대에서 자금을 대준다』『연희동에서 준다』는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한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들의 접목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 5·6대 의원 김상흠씨

    제5·6대 국회의원(전북 고창)을 지낸 김상흠씨(72)가 2일 새벽1시55분 서울 고려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인촌 김성수선생의 4남인 김씨는 지난 42년 연희전문 재학때 항일독립운동으로 함흥형무소에서 3년동안 옥고를 치렀고 광복후 동아일보 편집부장,민주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군엽여사와 병창씨등 2남3녀.발인 4일 상오8시,장지 대전 국립묘지.연락처 920­5045,5829.
  • “왜,일본어 쓰느냐”행인폭행/대일 악감정품은 60대 입건(조약돌)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6일 이용구씨(60·무직·서대문구 연희3동 353의 119)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했다. 이씨는 이날 하오 6시45분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연세대 앞길에서 205번 시내버스를 타고가다 권오신씨(62·무직·종로구 사직동 172의 2)가 옆의 손님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왜 한국땅에서 일본말을 쓰느냐』며 주먹으로 권씨의 가슴과 얼굴을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경찰에서 『일제시대때 아버지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숨진 뒤부터 일본에 대한 감정이 있었는데 권씨가 일본말을 해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또 청와대 사칭 사기/택지 변경 미끼,44억 갈취

    서울지검 수사3과는 16일 한준규씨(58·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사기)혐의로 구속하고 국무총리 의전비서관실 경호원이었던 이용권씨(42)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한씨등은 지난해 8월 청와대1급비서관등을 사칭하고 국방부 군수본부주택조합과 삼성전자주택조합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임야 1만2천여평과 관악구 신림동 산1037 일대의 임야 1만6백50평을 주택부지로 지목변경시켜 싼 값에 사게 해주겠다고 속여 모두 44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5공 신당론의 겉과 속(사설)

    5공세력의 핵심인 장세동전안기부장이 최근 밝힌 「창조적 신당론」은 정치에 관심이 있는 많은 국민들을 당혹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5공이 저지른 갖가지 비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참회를 거듭해야할 시점에 오히려 당당하고 기세좋게 신당론을 제기한 것은 역사의식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선 5공은 그 비리의 청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속에서 전직대통령의 장기간에 걸친 산사생활,일부측근 및 친인척의 구속 등이 잇따랐고 자의적인 몇가지 커다란 실수에 대해 국회청문회까지 열려 매도된 정권이었다.이제 비록 전직대통령의 연희동귀환과 구속된 주변사람들이 석방되었다고 해서 국민이 이른바 5공비리를 심정적으로 모두 용서했거나 없었던 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주」·공직자대량해직·언론통폐합·친인척비리 등 여러가지 권력남용과 비리 등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무수히 한을 품고 살아가는 이 시점에서 5공핵심들이 해야할 일은 더 오래,더 많이 자제하고 근신하는 일인 데도 집권당시 사고방식이 그대로 보이는 듯한 신당론의 돌출은 뜻있는 이들을 아연케 한다. 장씨는 논리전개의 과정에서 5·6공 동근론을 제기했다.같은 뿌리인 데도 6공이 5공세력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희생시켰다는 배신감과 분노가 내비치는 말이다.그러나 폭력과 권위주의에 기초했던 5공과 국민의 민주적 동의절차에 따라 탄생한 6공은 그 정치적 의미가 전혀 다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씨가 5공세력의 자업자득이라는 인식보다는 6공정권의 정략이나 배신에 의해 전직대통령의 명예가 실추되고 측근들이 철퇴를 맞았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역사를 제대로 보지못한 데서 나온것으로 보아 유감스럽다. 그러면서도 2000년대를 내다보는 창조적 신당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다.실추된 명예를 다소라도 회복하고 개인적으로 정치적 재기를 꾀하려는 의도를 속에 깐 창조적 신당론은 국민들로부터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를 외면하고 「통치」에 급급했던 5공세력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비록 민주화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일부 국민들이 6공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는 6공이 주도하는 현실개선을 요구하는 것이지 6공에 대해 불만족하면서 반사적으로 5공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개개인이 정치를 해야한다거나 말아야 한다는 절대적 주장을 할 수는 없다.5공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얼마든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또 5공이 잘한 것도 적지않다.다만 정치재개를 하기전에 지나치게 잘못했던 것은 크게 반성하면서 국민에게 속죄의 모습을 보여줘야 마땅하다는 것이다.2000년대의 선진정치를 얘기하고 여기에 참여하려면 더더욱 그렇다.
  • 아파트/연말까지 20만가구 분양/이달부터 수도권포함 전국서

    ◎5개 신도시서만 36,344가구/하반기 집값 계속 내릴듯 이달부터 올연말까지 분당·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를 포함,전국에서 모두 20만가구 가량의 아파트가 새로 분양된다. 5일 건설부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부터 올연말까지 공급될 아파트는 서울지역 민영 및 시영아파트 3만5천6백가구,5개 신도시 3만6천3백44가구,인천·경기지역 3만2천가구,지방대도시 2만5천가구,지방중소도시 3만2천8백가구,주공아파트3만6천가구 등 모두 19만7천7백여가구에 달하고 있다. 서울지역 민영아파트는 수서지구 2천가구,중계지구 2천5백가구,가양지구 2천2백가구,구의동 현대아파트 2천1백60가구,연희동 한양아파트 8백40가구 등 모두 1만여가구에 달하고 있다. 또 대현동·둔촌동·금호동 등 재개발지구에서도 1만여가구의 아파트가 연내에 공급될 예정인데 이 가운데 일반분양분은 5천여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지역에서는 이밖에 대치·수서·가양지구의 근로자주택 4천5백가구,대치·수서·가양·중계지구의 소형분양주택과 임대주택 9천2백가구,성산동·면목동의 영구임대주택 6천9백가구 등 모두 2만6백가구의 시영아파트가 공급된다. 분당·일산·평촌 등 5개 신도시에는 당초 6만5천9백가구의 아파트가 하반기에 공급될 예정이었으나 부실시공파문이 확산되면서 2만9천5백여가구가 내년으로 연기됨에 따라 연말까지 3만6천3백44가구가 분양된다. 이가운데 1만2천4백24가구는 분당을 제외한 일산·평촌·중동·산본 등 4개 신도시에서 이달 중순에 분양신청을 받으며 1만7천6백40가구는 오는 9월에,나머지 6천2백80가구는 오는 10월에 각각 공급된다. 연내에 공급될 주공의 영구임대·장기임대·근로복지·사원임대아파트는 부산 금곡,수원 우만지구 등 모두 33개 지구에서 3만6천여가구에 달하며 월별공급계획은 ▲8월1천2백51가구 ▲9월 1만5천3백33가구 ▲10월 1만2천8백48가구 ▲11월 6천7백6가구 등이다. 올 하반기에 아파트공급물량이 이처럼 홍수를 이룰 전망이어서 대규모 미분양사태와 함께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중소업체의 도산도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물량공급에 따라 올 하반기 주택가격은계속 안정 또는 내림세를 보일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비 피해 확산… 8명 사망·실종/일부 국도·경인전철 한때 불통

    ◎장마전선 오늘은 약화 20일 하오 전국에 걸쳐 내린 집중호우로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는 인명피해와 함께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또 이번 비로 전철이 한때 불통되거나 도로가 끊겨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날 자정 현재 강우량을 보면 충북 제천지방이 1백39㎜로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원주 1백38㎜,양평 1백23.8㎜,서울 1백12.9㎜,강화 1백㎜,홍천 95㎜,충주 78.6㎜를 각각 기록했다. 기상청은 그러나 이날 하오 5시를 기해 충청북도와 경북북부 및 강원 영서남부에 내렸던 호우주의보를 해제하고 21일엔 장마전선이 다소 약화돼 전국이 가끔 흐리거나 소나기가 오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예보했다. 20일 낮 12시15분쯤 인천시 남구 주안4동 인천고교앞 극동주차장 담벽이 강풍으로 무너지면서 길가던 이 학교 1년 금정식군(17)이 깔려 숨지고,김영실씨(25·여·유치원보모)등 2명이 크게 다쳤다. 또 이날 낮 12시40분쯤 수도권 전철1호선 백운역과 부평역사이에서 강한 비바람으로 선로변에 있던 가로수 10여그루가 선로위로 넘어져 구로역과 인천역 사이 전철1호선 상하행선이 3시간가량 끊겼다. 이어 이날 하오 2시15분쯤에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115 홍제천변에서 놀던 이종오군(9·연희국교2년)이 신발에 묻은 흙을 씻어내다가 발을 헛디뎌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 전경환씨,연희동 직행/어제 풀려나/한때 보도진과 몸싸움

    ◎이철희씨도 가석방 「5공비리사건」에 연류된 마지막 구속자였던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본부장(49)와 최대규모 어음사기사건의 이철희씨(68)가 25일 상오 10시 서울 영등포교도소와 안양교도소에서 각각 가석방됐다. 전씨가 구속 3년2개월 만에 석방됨으로써 「5공비리」 관련 구속자 47명이 모두 풀려났고 이씨는 9년1개월 복역한 뒤 풀려나 장영자씨만 남게 됐다. 전씨는 이날 상오 10시쯤 영등포교도소를 나와 곧바로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으로 갔다. 이날 전 현직 새마을운동본부관계자와 이양우 변호사 등 약 2백여 명의 관계자들이 전씨를 마중나와 전씨 주위를 둘러싸 보도진들과 함께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 「광역」 투표날 3부요인 정당대표의 표정

    ◎“6·29선언 마지막 항목 실천에 큰 보람”/노 대통령,“30년 만의 지자제 부활 감회 깊어” ○김옥숙 여사와 한 표 ○…노태우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20일 상오 8시5분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소재 국립선희학교 강당에 설치된 종로구 제1선거구 청운동 제1투표구 투표소에서 한 표의 권리를 행사. 투표를 끝내고 난 노 대통령은 30여 년 만에 지자제를 부활시킨 대통령으로서 첫 투표를 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감회가 깊다고 말하고 『이로써 본격적인 지방화시대가 개막됐으며 이것이 나의 6·29선언 마지막 항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국민과 더불어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투표소감을 피력. 노 대통령은 시도의회선거운동 과정의 일부 과열 등 부작용에 대해 『일부에서 타락양상을 보인 것을 알고 있지만 국민과 정부,그리고 사회 각계의 노력으로 과거의 선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공명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확실한 실천방법이며 다음 선거는 이번 선거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치러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 ○“선거법 개정 필요” ○…박준규 국회의장은 20일 상오 8시쯤 대구시 동구 안심1동 모란2차 아파트내 조은유치원에 마련된 안심1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 조동원 여사와 함께 투표. 박 의장은 『이번 광역의회선거는 지난 3월 기초의회선거 때보다 음성적인 탈법행위가 많았다는 느낌을 받아 앞으로 광역의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 나갈지 우려된다』고 밝히고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각종 탈법행위와 적은 기탁금으로 인한 후보자의 난립 등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어려움이 있어 선거법의 전반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 박 의장은 『특히 이번 광역의회선거가 정당의 개입허용으로 차기 대권구도와 결부되다보니 타락·불법행위가 많아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고 『앞으로 총선과 대통령선거 때는 정당간·후보자간의 선거협약을 맺어서라도 불법타락선거를 막아야 되겠다』며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지방의원선거법 개정문제가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 ○참관인들과 악수 ○…김덕주 대법원장은 이날 상오 8시쯤 부인 임현중 여사와 함께 서울 용산구 한남2동 사무소에 마련된 용산 제1선거구 한남2동 투표소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다. 김 대법원장은 투표를 마친 뒤 참관인 4명과 악수를 나누고 소감을 묻는 보도진의 질문에는 답변 대신 웃음만 지은 채 3분 만에 부인과 함께 승용차로 귀가했다. ○전 거주지서 투표 ○…정원식 국무총리서리는 이날 상오 8시50분쯤 총리취임 전 살던 화곡동사저 근처인 서울 강서구 화곡1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 임학영 여사와 함께 한 표를 행사. 이에 대해 총리실은 정 총리서리의 현주소는 삼청동 총리공관이지만 선거공고일(6월1일) 이후인 지난 15일 주민등록을 옮겼기 때문에 전 거주지인 화곡동으로 투표통지표가 발부됐다고 설명. 이날 투표소에는 사저 이웃에 사는 주민 50여 명이 아침일찍 나와 정 총리서리를 환영. ○“국민들 안정 희구”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자택에서 3백여 m 떨어진 상도1동 제1투표소로 걸어가 투표. 김 대표는 『그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보니 많은국민들이 안정을 절대적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지원유세과정의 소회를 피력. 김종필 최고위원도 이날 상오 신당4동 제1투표소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아들 진군과 투표를 마쳤고 박태준 최고위원은 부인 장옥자 여사와 함께 북아현3동 추계국민학교에서 투표권을 행사. 김 최고위원은 『이제 선거가 일상화돼 가고 있고 국민들의 선택자세가 진화돼가고 있기 때문에 선동이나 바람을 일으켜 선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부연. 또 박태준 최고위원도 『이번 선거는 그 결과에 관계없이 진정한 민주와 번영을 이룩하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국민과 정치인 모두 반추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 ○“서울 과반수 자신” ○…김대중 신민당 총재는 이날 상오 8시30분쯤 서울 동교동 동교유아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투표. 김 총재는 투표를 끝낸 뒤 『이번 선거는 누가 전국적으로 의석을 더 차지하느냐를 떠나 신민당이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기권율이 높지 않고 유권자들이 금권선거에 좌우되지 않는 한 서울에서는 무난히 과반수의석을 차지하고 여타지역에서도 상당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 이기택 민주당 총재도 이날 부인 이경의 여사와 함께 서대문1선거구의 북아현동3투표소인 추계국민학교에서 투표를 한 뒤 『오늘의 투표는 우리나라 민주발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유권자들은 결국 구시대정치를 청소하고 새 정치를 선택할 것』이라고 피력. ○정치이야기는 피해 ○…지난해 12월 백담사에서 내려온 뒤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자택에서 지내온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날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서대문 제2선거구 제2투표소인 「연희체육관」에 나와 나란히 투표. 민정기 비서관 등 수행원 13명과 함께 이날 상오 6시50분쯤 집을 나서 투표소에 도착한 전 전 대통령 내외는 투표장에 나와 있던 손장호 서대문구청장과 투표관계자·주민 등 70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 전 전 대통령은 투표를 하기 위해 줄서 있던 주민들이 먼저 투표하라며 권유하자 정중히 사양한 채 차례를 기다리다 상오 7시10분쯤 50번째로 투표. 비교적 건강한 모습에 연회색 양복을 차려입은 전 전 대통령은 이날 투표에 앞서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30년 만에 부활되는 지방자치제인 만큼 누가 당선되든 열과 성을 다해 지역발전에 힘써주길 바란다』면서 『이번 선거는 비교적 공명하게 치러지는 것 같으나 후보들에 대한 사전정보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 전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만날 용의는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담담한 표정으로 『당분간 정치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지자제 발전 기원 ○…이날 하오 5시쯤 서울 마포구 제5선거구 투표소가 마련된 서교동 성광침례교회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 내외가 수행원 5명과 함께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도착,투표권을 행사. 진한 하늘색 차림에 비교적 밝은 표정을 지으며 투표장에 들어선 최 전 대통령은 서교동장 등 2∼3명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투표.
  • 전대협 배후세력 검거령/검경

    ◎「정책위」 33명이 폭력시위 조종/“북한지령따라 체제전복 기도” 검찰과 경찰은 6일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집단폭행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각종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재야·학생운동단체들의 배후에 체제전복 등을 노리는 이적·불순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핵심조직원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경은 특히 「전대협」의 행동방향을 좌우하고 있는 「전대협정책위원회」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학원가의 폭력시위 등을 선동하고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고하는 지하이적단체라고 판단,관련자 전원을 검거할 방침이다. 검·경은 이 단체의 핵심조직이 「전대협」기구와 같이 9개 지역 24개 지구에 33명의 정책위원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책위원회」는 이들 33명으로 구성된 「전체회의」와 「전체회의」의 의견을 모아 최종정책을 결정짓는 「중앙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위원」은 10명 미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앙위」에서 결정된 사항은 곧바로 「전대협」 상임위에 상정돼 「전대협」 전체의 정책으로 최종 확정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 「중앙위」의 결정사항은 사실상 그대로 「전대협」의 정책이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경은 『이 조직이 지난 89년 3월 「전대협」의 이른바 「3기 출범 때 「전대협」의 산하보좌기구로 출범한 뒤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 등을 녹취해 그대로 유인물로 만들어 배포하는 것과 함께 실제 투쟁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검·경은 특히 이 단체가 89년 7월 임수경양의 「평양축전」 참가를 주도하는 등 주로 지하활동을 펴오다 최근에는 직접 「정책위」 명의로 김일성의 신년사 등 각종 불온유인물을 제작하는 등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점을 중시,직접 또는 어떤 중간매개인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각종 폭력·불법시위 등을 주도한 뒤 이를 그대로 사진과 함께 북한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는 확증을 잡고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경은 지난해 11월 적발된 「자민통」조직 관련자인 이연희군(25·중앙대 철학과 86학번)을 구속·수사하는 과정에서 이군이 「전대협정책위」의 부위원장인 사실을 밝혀내고 이 단체에 대해 집중 수사를 한 끝에 이 단체가 「전대협」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적단체라고 규정,공개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 검·경은 이군에 대한 수사를 통해 지난해 「전대협」의 「제4기 출범」 때 정책위원이었던 송갑석군(구속)을 「전대협」 의장으로 선출되게 하는 등 「정책위」가 산하조직이면서 사실상 「전대협」을 움직여온 배후핵심 조직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정책위」에 대한 수사 중간결과를 오는 12일 발표하기로 했다.
  • 폭력시위 뒤의 「검은 얼굴」 확인/전대협 「정책위」수사착수의 배경

    ◎좌익 자민통 계열서 조직 실질적 장악/북한 지령받고 선동… 결과는 사진보고 검찰과 경찰이 「전대협정책위원회」에 대해 전면수사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는 이 조직이 김일성의 대남 혁명강령에 따라 우리 체제를 전복하여 이른바 「민중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민통」과 직접 연계된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은 그 동안의 수사결과 「전대협」의 「정책위」는 「자민통」의 조종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의 지령에 따라 체제전복을 꾀하는 각종 폭력시위와 집회를 주도한 뒤 그 결과를 시위현장 등의 사진과 함께 북한당국에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경은 이에 따라 「정책위」가 명백한 이적행위를 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한국외국어대학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집단폭행사건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공개적이며 전면적인 수사에 나설 때가 됐다고 보고 있다. 검·경이 「정책위」를 이적단체로 파악하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적발된 「자민통」 관련자인 이연희군(25·중앙대 철학과 86학번)을 구속·수사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검·경은 이군을 통해 「정책위」가 「자민통」의 「전대협」 장악계획에 따라 결성됐고 사실상 「전대협」을 좌지우지하며 그 동안의 각종 학내외 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이군 자신이 「자민통」 조직원이면서 「정책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당시 「전대협」 위원장이던 정은철군(수배중)과 산하의 「평양축전참가 준비위원회」 위원장이던 전문환군(23·전 서강대 총학생회장)과 「평축준비위」 정책실장 박종률군(연세대·수배중) 등이 모두 「자민통」 핵심구성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군은 또 수사과정에서 「전대협」 3기 의장이던 임종석군(전 한양대 총학생회장·구속)이 스스로 「자민통」 핵심요원이면서 「자민통」 조직의 계획과 지원에 따라 「전대협」 의장에 당선된 뒤 강령과 규약을 고쳐 「정책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책위」는 서울 등 전국 9개 지역과 지역 산하 24개 지구에 1명씩의 정책위원을 두게 됐다. 이들 33명의 정책위원은 「전체회의」를 구성하고 상급조직으로 「중앙위원회」를 설치했다. 「중앙위원」은 서울에 상주하는 정책위원들로 구성돼 사실상 「전대협」의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최고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대협」은 「정책위중앙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자신들의 최고 의결기구인 「상임위원회」에 상정해 의결하는 절차를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중앙위」의 결정사항이면 모두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같은 정책결정을 통해 「전대협」은 그 동안 △한미 합동팀스피리트훈련의 반대 ▲조선대학생 이철규군 사인에 대한 의혹제기 ▲임수경양의 「평양축전」 파견 ▲공안통치분쇄운동 전개 등 끊임없는 반체제활동을 전개해왔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이 같은 반체제활동 목표들은 그때마다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방송인 「구국의 소리」에서 방송된 내용이라는 데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구국의 소리」는 바로 김일성의 「자주·민주·통일」이란 대남 혁명 3대 강령에 따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란 이름 아래 북한당국이 운영하고 있는 심리전 방송이다. 따라서 「자민통」은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내려지는 북한당국의 지령에 따라 그때마다 방송내용을 유인물로 만들어 배포하며 그 내용을 그대로 「전대협정책위」를 통해 「전대협」의 행동지침으로 시달했으며 그 결과가 그 동안에 잇따랐던 각종 폭력시위로 나타났다는 것이 당국의 견해이다. 검·경은 「정책위」가 「전대협」 4기 의장인 송갑석군 당선에도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관계자는 『「자민통」이 이처럼 「전대협」을 철저히 장악하려 한 것은 우리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전·선동활동만으로는 어려우며 실제 폭력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전위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검·경은 특히 「정책위」가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자민통」이 받은 북한의 지령을 「전대협」의 투쟁지침으로 하달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경은 이 같은 연계체계로 미루어 최근에 발생한 명지대학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의 각종 집회와 시위도 이들이 주도했을 것으로 보고 「정책위」 핵심인 33명의 위원을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검·경은 또 수배된 「전대협」 5기 의장인 김종식군도 「자민통」 조직원이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으로 보고 김군 등의 검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 「강군 추모집회」 이후의 정가기류

    ◎“장외공세”·“정면대응”… 치닫는 대결정국/시국수습책 곧 제시,분위기 반전 모색/민자/재야와 제한연대… 내각퇴진 계속 요구/신민 신민·민주당 등 제도권 야당이 강경대군 장례일인 14일 정부규탄 및 강군 추모집회에 참여,대여 총공세를 시작함으로써 정국긴장이 가열되고 있다. 민자당은 「5·18」을 고비로 긴장국면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후의 민심수습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야권은 장외집회를 계속 개최할 계획이어서 정치복원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민자당은 강군 장례식을 계기로 재야운동권과 야당의 연대투쟁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으나 난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청와대측의 의지가 워낙 강력하자 일단 「5·18」 기념행사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자세. 민자당이 이같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재야·운동권의 잇단 시위양태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여론이 반시위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으며 그때쯤 적절한 시국대책을 발표,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 민자당은 특히 신민당 등 야당측이 재야·운동권집회에 참석,과격시위를 부추기는 것은 그 어느 쪽에도 이롭지 않다는 논리를 전개. 14일 실무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박희태 대변인은 『엄숙하고 경건하게 치러져야 할 장례식이 정치색으로 물든 데 대해 유감이다』면서 『장례식을 빌미로 사회불안이나 혼란을 조성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야권에 경고. 한 당직자는 『야당이 과격시위에 동참할 경우 정치는 더욱 실종위기에 처할 것이며 공권력과 시위대간의 대결상만 부각될 것』이라면서 야당측이 「5·18」집회 참여를 자제해줄 것을 기대. 민자당내의 현재 기류는 「노태우 대통령을 도와 여권이 일치단결,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것과 「여권이 빨리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중적인 것으로 관측. 김영삼 대표의 민주계와 이종찬 의원 등 민정계 상당수가 난국타개를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하며 그 상징적 조치가 내각개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거론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를 강력 주장할경우 자칫 대권 내부 분열로 비춰 국민의 대정부 불신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 또 최근의 시위양상이 「민주화 시위라기보다는 체제전복 기도에 가깝다」는 정부측 시각에 동조하는 민자당내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수습조치를 취하더라도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데 대한 공감대도 넓게 형성된 상태. 이와 관련,김윤환 사무총장이 『지금은 대권을 염두에 둔 야당공세에 당내가 한 목소리로 대응·반격해야 한다』면서 『그후 민심수습안이 강구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민자당측의 사태해결 수순을 시사. 즉 「5·18」까지는 당의 독자적 목소리를 자제,정부측이 과격시위를 적절히 제어토록 도와줌으로써 공권력의 위신을 살려준 뒤 이후의 수습방안 마련에는 당이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 민자당은 이와 함께 물가문제 등 국민들의 불안해소를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해 시국불안의 근본소지를 줄여나갈 계획. ○…신민당은 이날 김대중 총재를 비롯,대다수 소속의원과 당직자들이 명지대에서 열린 강군 장례식에 참석한 데 이어 연희동 입구까지의 가두행렬에도 가담. 상오 9시쯤 영결식장에 도착한 김 총재는 조금 늦게 온 이기택 민주당 총재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었을 뿐 별다른 말도 없이 시종 굳은 표정. 김 총재는 조사를 통해 『노 정권이 내각제를 하기 위해 3당통합을 했으나 여의치 않자 공안내각을 출범시켜 장기집권음모를 꾀하고 있다』면서 『노 총리 내각 총사퇴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으나 그 이상의 강경발언은 자제. 김 총재는 당초 『정치인들이 학생의 숭고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면서 조사낭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 민주당 총재가 조사를 하겠다고 고집하고 장례식을 주최한 범국민대책위측이 『김 총재가 하지 않겠다면 야3당 대표의 조사낭독을 취소시키겠다』고 하자 입장을 번복.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학생들이 『살인만행 공동주범 신민당과 김 총재는 자폭하라』 『민자당과 밀실야합한 신민당은 자폭하라』는 등의 과격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으나 김 총재와 신민당 관계자들은 예상했다는 것처럼 무반응.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총재 일행은 운구행렬의 중간쯤에 끼어 1㎞쯤을 행진하다 연희동 근처 홍남교 입구에서 경찰이 제지하자 선두로 나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기도 했는데 김 총재는 곧 동교동 자택으로 귀가. 김 총재는 이날 자택에 돌아온 뒤 기자들에게 신민당의 향후 시국대처방안에 대해 『자주적으로 하겠다』면서 「선별적인 제한투쟁」의 기존입장을 재차 확인. 김 총재는 이날 광주에서 열린 별도의 강군 추모행사에 추모사를 보낸 것처럼 「5·18」 행사에도 직접 참석지 않고 추모사만 보내겠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신민당의 투쟁강도를 상징적으로 시사. ○…민주당은 이날 「거당적 장례참여」 방침에 따라 이기택 총재 등 총재단과 전 지구당위원장 등 2백여 명이 영결식에 참석한 후 운구행렬과 함께 가두행진. 이 총재는 이날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아직도 얼마나 많은 고귀한 삶이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애도를 표시. 이 총재는 이날 영결식장에 도착해 먼저 단상에 앉아 있던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와 악수를 나누고 순서에 따라 조사를 했는데 김 신민총재가 입장할 때와 조사를 할 때 참석학생들이 『보수야당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친 반면 이 총재에게는 조사 후 박수까지 보내 민주당 당직자들은 『민자당의 선명노선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다소 고무된 모습. 이 총재와 당직자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운구행렬을 따라 신촌로터리 쪽으로 행진했으나 연희동 4거리에서 경찰의 저지로 행렬이 지체되자 학생·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시위. 한편 민중당도 이날 이재오 사무총장 등 전 당직자들이 영결식과 운구행렬 시위에 참가.
  • 한밤까지 곳곳서 산발 공방/어제 강군 영결식

    ◎신촌·이대 앞서 화염병·최루탄 대결/운구행렬 반나절 노상대치/경찰 4만5천명,도심진입 차단/대책회의,장례 연기… 1천명 연대서 철야농성 명지대생 강경대군 장례식날인 14일 「대책회의」측의 서울시청앞 「노제」 강행과 경찰의 봉쇄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명지대에서의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추모집회를 마친 강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연세대로 가 농성에 들어갔으며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의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가두시위에 나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시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과 추모제가 열린 신촌·연희동 주변 상가는 아침부터 미리 철시했으며 이 일대는 물론 도심 곳곳에서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결식◁ 강군의 유족과 「대책회의」 관계자 조문객 등 80여 명은 이날 상오 9시 명지대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가졌으며 하오 9시45분쯤 대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조사에서 『오늘은 강군을 땅에 묻는 날이 아니라 71년 6월7일 시작됐던 생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출발하는 날이니 강 열사의 장도를 비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강군의 어머니 이덕순씨(43)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명지대 총학생 부회장 김홍석군은 조사를 읽다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께요』라는 대목에 이르자 오열하기도 했다. 또 이날 참석한 김대중 총재는 조사를 읽다가 학생들로부터 『보수야당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았으며 낮 12시15분쯤 연희동 교차로 근처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많이 마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30분쯤에는 이상연 내무부 장관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강군의 명복을 비는 조화를 보내왔으나 모두 접수를 거절당했다. 영결식에서는 「서울노동자 문화예술단체」 회원등 5백여 명이 부활굿·조가합창·풍물놀이 등 문화행사가 펼쳐졌고 『경대는 살아 돌아온다』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깃발 등 3백여 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학생 2천여 명이 영구차와 운구행렬을 경호했다. ▷합동추모제◁ 당초 낮 12시30분에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예정이던 합동추모제는 영결식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 운구행렬이 명지대를 나와 신촌로터리 쪽으로 가던 길에 남가좌동 홍남교 네거리에서 경찰과 2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돌과 최루탄으로 공방전을 벌이느라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시50분쯤에야 치러졌다. 신촌로터리 주변에는 이날 상오부터 시위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하오에는 모두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제공방◁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은 하오 6시35분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청앞 쪽으로 가다가 이화여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중이던 경찰이 최루탄으로 저지하자 이에 맞서 화염병·돌멩이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선봉대」 3천여 명이 이대입구 부근에서 경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유가족과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신촌쪽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3시간여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하오 9시30분쯤 대책회의측은 장례를 연기,연세대에 들어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강군의 사체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시 안치하려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학생회관 1층 로비에 옮겨놓고 밤을 보냈다. 하오 8시쯤 시위대는 이대입구에서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페퍼포그차량 3대에 화염병을 던져 모두 불태우기도 했다. 「전대협」 2천여 명은 하오 8시30분쯤 종로2가와 3가로 진출해 경찰에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으며 하오 6시에서 9시 사이 종로 퇴계로 명동성당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1만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도심으로 빠져나온 시위대 중 4천5백여 명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경비◁ 경찰은 신촌에서의 합동추모제까지는 허용하되 시청앞 노제는 불허한다는 방침 아래 신촌에서 이화여대 앞까지 50개 중대,공덕동로터리 일대에 40개 중대 1만여 명으로 저지선을 치고 대로변 골목 입구마다 철제바리케이드나 경찰버스 등으로 도로를 봉쇄,도심 진입을 막았다.
  • “자기실현이 요즘 학생의 첫째 욕구”

    ◎“교수직 50년” 연대 원일한 박사/“40년대엔 사회적 책임의식 강했죠”/설립자의 손자… 개교 1백6돌 감회 깊어 지난 11일 창립 1백6주년을 맞은 사학의 명문 연세대의 학교법인 이사인 원일한 박사(74)에게는 올해가 참으로 뜻깊은 해이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원 박사는 1885년 4월5일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 연희전문을 설립한 언더우드(원두우) 박사의 손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이 학교에 봉직하고 있으며 맏아들 한광씨(48)도 영문과 교수로 있다. 따라서 원 박사 집안 4대의 역사는 연세대학교의 작은 역사이기도 하다. 원 박사의 할아버지 언더우드 박사는 1915년 4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창천리이던 현재의 학교부지 일대의 땅 19만 평을 사들여 연희전문학교를 설립,초대 교장으로 학교의 터전을 닦았다. 그는 언더우드의 발음을 따 원두우라는 우리 이름을 썼다. 연세대 본관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따 「언더우드관」으로 불린다. 원 박사의 아버지 원한경 박사도 이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34년 9월부터 41년까지는 제3대 교장으로 일했다. 원일한 박사는 1917년 10월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외국인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해밀턴대학에서 교육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원 박사는 40년 서울로 돌아와 연희전문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의 학생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자부심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했으나 요즘 학생들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가장 큰 것 같다』는 것이 원 박사의 평이다. 그는 42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으로 돌아가 해군대위로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45년 전쟁의 승리는 제2의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또 하나의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해방후 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이 이 학교에 머물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때 대학생들은 해방의 흥분과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꼈으며가르치는 교수들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원 박사는 41년 결혼,아들 셋을 두었다. 43년 맏아들이 태어나자 당시 연희전문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한국의 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로 한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뒤에 아버지의 「한」자를 물려받기 위해 한광으로 고쳤다. 그는 한자도 한국의 상징인 한강과 통하기 때문에 한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 원한광 교수는 영문과에서 영미소설을 강의하고 있다. 둘째 윌리엄과 셋째 피터의 한국이름은 이 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용제 백낙준 박사가 영어이름의 원뜻을 살려 한웅과 한석으로 지었다. 흥분의 시대가 지나고 50년 6·25사변이 일어나자 원 박사는 다시 해군으로 복귀,현역장교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53년 휴전회담이 이루어지자 원 박사는 유엔군측 수석대표 통역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연희전문학교는 연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꿔 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연세대학교로 발전했다. 원 박사는 이때부터 83년까지 전공인 교육학을강의했다. 75년 부인과 사별한 원 박사는 호주 출신의 선교사로 한국에 온 이화여대 종교음악과 원성희 교수(58)와 77년 재혼했다. 파란눈에 다부진 몸집을 가진 원 박사에게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고 묻자 『책상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또르륵」 굴러 간다』고 말하며 웃었다.
  • 대학가 규탄사위 확산/강군 치사 항의/7천명 연대서 집회,투석전

    ◎재야도 내일 「전국범국민대회」 열기로 ▷대학가◁ 명지대학생 7백여 명은 27일 낮 12시쯤 학생회관 앞 민주계단에서 강경대군 사망사건과 관련,「범명지인규탄대회」를 갖고 1㎞쯤 떨어진 성가병원 앞까지 침묵시위를 벌이려다 교문 밖 70m쯤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이날 교문 밖으로 나와 차도를 행진하다 경찰이 저지하자 『인도를 따라 행진하겠으니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이 『어떠한 행진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맞서 40여 분 동안 몸싸움을 벌이다 학교로 되돌아갔다. 「전대협」 소속 대학생 7천여 명은 27일 하오 3시쯤 연세대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 모여 강경대군 상해치사와 관련,집회를 가진 뒤 하오 5시30분쯤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재야인사와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누나 선미양(22·명지대 중문과 3년) 등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집회에서 『관련자들의 즉각 구속,백골단·전경해체 등』을 요구하고 강군의 추모기간인 오는 5월4일까지 재야단체 등과 연대해 대규모 규탄집회를 가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 6시20분쯤엔 연희동 쪽 1백m 지점까지 진출한 학생들이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30여 분 동안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3차례에 걸쳐 교문 밖까지 나갔다가 3시간쯤 뒤 민주광장으로 다시 돌아가 각 대학별로 해산했다. 이들 가운데 1천여 명은 연세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전대협」은 이날 하오 11시30분 학생회관 3층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회의를 갖고 28일 하오 5시에 도서관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진 뒤 「노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전민련」 「전노협」 등 각 재야단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장례일정 및 절차 등을 논의했으나 내각총사퇴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영안실 주변에는 이날도 학생 40여 명이 입구에 화염병 1백여 개와 각목 20여 개를 준비해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한편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회원 20여 명은 이날 하오 10시부터 연세대대강당에서 학생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펼치면서 숨진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 6·25때 송신소 지키다 납북/아들이 국가에 9조 손배소(조약돌)

    ○…6·25 당시 한국방송공사(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송신과장이었던 김도현씨(당시 38세)의 맏아들 김 모씨(49·전북 장흥군 장흥읍)가 『부친이 서울을 사수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방송국에 남아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돼 아직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며 국가를 상대로 9조99억원의 손해배상 및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서울고법에 냈다. 김씨는 소장에게 『50년 당시 중앙방송국 송신과장으로 재직하던 부친이 전쟁이 나자 서울을 사수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을 부산으로 모두 피신시킨 뒤 혼자 남아 연희송신소를 사수하다 북한 인민군에 의해 간첩 혐의 등을 받고 납북됐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이날 우편으로 접수한 소장은 소가가 거의 10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금액인 데다 김씨가 소장에 첨부해야 할 인지대금이 4백50여 억 원이나 돼 정상적인 소송절차는 밟지 못할 것으로 법원관계자들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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