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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어떻게 사나 보자” 5·18 단체 사저 진입 시도

    “전두환 어떻게 사나 보자” 5·18 단체 사저 진입 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 환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뒤 전 전 대통령의 사저에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광주진보연대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5·18 역사 왜곡저지 대책위원회 소속 등 시민 150여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환수하라”고 촉구했다. 문경식 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어떻게 이 땅에 노동자와 농민,서민이 바로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나는 농민이다. 바쁜 시기임에도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문 상임대표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끝까지 추궁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면서 “전두환은 이 땅, 이 나라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는 사람이 어떻게 해외 골프여행을 다니겠나.”면서 “추징금 2000만원이 넘으면 아예 출국도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해외 골프여행을 외교관 여권으로 다녀올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전 전 대통령의)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일에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 후 “전두환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며 전 전 대통령 사저에 진입을 시도했지만 미리 출동한 경찰 30개 중대 180여명에게 가로막혔다. 이들은 “경찰은 살인마를 보호하지 마라”, “얼굴 한 번 보자”고 외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항의를 대신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의 얼굴과 함께 ‘5·18 학살 주범 전두환의 부패재산을 환수하라’는 문구가 적힌 패널에 불을 붙이고 발로 밟기도 했다. 김은규 광주진보연대 사무처장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이 곳까지 온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는 등 5·18 정신이 바로서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책위는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5·18 역사 왜곡 규탄 집회’를 열고 “종편 방송의 도를 넘는 5·18 민주화운동 왜곡·폄훼는 국기문란 행위”라면서 “시청 거부를 비롯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 세종로 채널A와 TV조선 건물에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 영등포구 국가보훈처로 자리를 옮겨 보훈처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것에 항의하며 박승춘 처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보훈처가 왜 소모적인 논란을 부추기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최근 일련의 역사왜곡과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는 등 보훈처는 자신의 직무를 망각한 채 방조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면서 박 처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태우 운전기사 계좌에 30억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새롭게 확인됐다. 10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 측 운전기사인 정모씨는 농협, 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 9개 계좌에 모두 30억 3500만원을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비자금은 국세청이 지난해 초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 회사인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오로라씨에스(옛 미락냉동)를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국세청이 당시 회사에 보낸 차명계좌 추정 자료를 보면 회사 직원 명의로 된 차명의심계좌는 모두 15개(7명), 금액은 38억 8500만원이었으며 이 중 정씨의 것이 전체 금액의 78%에 달했다. 정씨는 지난 1998년부터 2011년 7월까지 오로라씨에스 소속 직원이었으나 실제로 일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노 전 대통령 집에서 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정씨는 당시 연봉이 390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의 차명통장에 있던 거액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묻어 둔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전두환 前대통령 재산 환수하라”

    “전두환 前대통령 재산 환수하라”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광주 지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5·18 역사왜곡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 회원들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재산 환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5·18단체, 전두환 前대통령 항의 방문한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을 항의 방문한다. ‘5·18 역사 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은 10일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부패재산 추징 촉구대회’를 열 방침이라고 9일 밝혔다. 이번 항의 방문에는 5·18 당시 피해자와 유족 관련단체, 광주와 전남 진보연대, 광주 시민단체협의회, 여성단체연합 회원 등 12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광화문에서 5·18 역사 왜곡에 앞장선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대한 규탄대회를 가진 뒤 연희동의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부패재산 추징 촉구대회를 열 방침이다. 이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를 거부한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의도에서 열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금융소비자 교육 강화… 악성 민원 녹취 검토”

    “금융소비자 교육 강화… 악성 민원 녹취 검토”

    “금융 민원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뜻으로 민원을 넣고 보상을 받으려는 악성 소비자 문제의 해결도 시급합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따로 녹취를 해놓는다든지 하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 생각입니다.” 오순명(58)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이 3일로 취임 1개월을 맞는다. 지난달 오 처장은 12년 만에 금융업계 출신 여성 금감원 부원장보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특히 현 정부가 금융 소비자 보호를 핵심 정책과제로 설정한 터라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오 처장은 지난 한 달간 주말도 없이 출근했다. 금감원에 들어오는 수많은 소비자 민원과 불만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달 23일 새벽에는 서울지하철 남구로역 근처 인력시장에서 금융 상담을 직접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스스로 “업계 출신인 나를 이 자리에 앉힌 건 현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오 처장은 1978년 상업은행에 들어와 우리은행 압구정동 지점장, 연희동 지점장, 인천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1년부터 우리모기지 대표이사를 지낸 현장 전문가 출신이다. “은행 지점장으로 있을 때 직원들이 고객이 다니는 출입구가 아니라 뒷문으로 드나드는 걸 보고 그래선 안 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어요. 고객이 다니는 입구로 들어오면서 부족한 점은 없는지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거였죠.” 오 처장은 그때의 경험을 살려 직원들에게 “현장에 가서, 현장에서 답을 찾으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오 처장은 금융 소비자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원의 상당 부분은 금융에 대한 소비자의 지식이 모자라서 발생한다고 보고 때문이다. “본인의 재무상태에 맞춰 어떻게 금융상품을 이용하면 좋을지 등 진단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내부 여성인력 양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자신이 금감원 내 유일한 여성 임원인 데다 금융소비자보호처에 상대적으로 여성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금감원 기능 중에 건전성 감독 분야는 자리가 잡혔지만 소비자 보호와 같은 복합적인 기능은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금융의 피가 잘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더위 식혀 주는 단비

    더위 식혀 주는 단비

    초여름 더위를 식혀 주는 단비가 내린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세대 앞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든 대학생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노태우 10년간 투병 중…전두환·이명박은 ‘건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중환자실 입원을 계기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건강은 어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건강이 가장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진 전직 대통령은 노태우(81) 전 대통령이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10년 넘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투병을 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때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생사의 경계를 오가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82) 전 대통령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대통령 재임 당시 함께 일했던 정치인과 각료들을 만나고 가끔씩 해외 방문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는 부인 이순자(74)씨와 함께 대구공고에서 열린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참석해 골프 라운딩을 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2009년 5월과 8월 서거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 시대’를 구축하며 수십년간 한국 정치사를 주름잡았던 김종필(87) 전 국무총리도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오랫동안 자택에서 칩거하다시피 하고 있다. 올 2월에 퇴임한 이명박(72) 전 대통령은 매주 1∼2차례 테니스를 즐기면서 건강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성 비자금 조성(2007년) 등 묻혀 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며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그였지만 이름 앞에 ‘명사’(名士)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겸허함을 지켜야 할 사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흔한 회고록 한 권 내지 않은 이유다. 함 신부는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인권의학연구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함 신부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만났다. 함 신부는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6월 서울의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지만 집 근처에 천주학당(현 성심여고)이 있어 가톨릭과 서양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여덟 살 되던 1950년 6·25가 터졌다. 소년 함세웅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신앙에 눈을 떴다. “어느날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이 나는 거예요. 한낮인데 하늘이 시커매. 나중에 들었는데 B29 폭격기들이 한강 임시다리를 폭파하는 소리였대요. 너무 놀라 친구들과 어디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거기가 성모병원이었어요.”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수녀들이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전쟁, 그 속에서 생사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첫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됐다. “평범한 신자였던 제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신자)로 활동했는데 그해 11월 2일 위령의 날 신부님과 함께 서울 잠원동, 논현동 일대의 공동묘지를 찾게 됐지요. 너른 터에 빼곡히 들어선 묘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 누구나 다 이렇게 묘소에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25와 공동묘지의 체험이 겹쳐 결국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셈이지요.” ‘천국에 온 것 같았다’는 회고처럼 신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4·19 혁명이 전국을 휩쓴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됐어요. 이야, 이제부터 폼나게 군대생활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배치된 곳이 부산과 광주(경기)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였어요. 그곳에서 군생활을 꼬박 2년간 했지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체험한 첫번째 모순의 사회였어요. 불합리한 일상을 겪으면서도 낙오하지 않으려면 숨죽인 채 순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겪으며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군에서 모순의 사회를 배우고 길들여졌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지요.” 신학 교수의 꿈을 품은 함 신부는 1965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는 4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독재와 탄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햇수로 9년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라 밖에 있다 보니 3선 개헌, 유신체제 선포, 학생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 등 뉴스를 외려 국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마음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1973년 귀국해 마주친 조국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마포대교 등에는 헌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서울역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한 반공 궐기대회가 수시로 열렸다. 그야말로 병영사회였다. 서울 연희동 성당에서 보좌사제로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사건이 1973년과 1974년 잇달아 터졌다. 김대중(1924~2009) 납치사건과 지학순(1921~1993) 주교의 구속이었다. 특히 1974년 7월 지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으로 15년형을 받자 성난 사제들이 성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함 신부는 이 과정에서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당시 사제단에 참여했던 문정현(73) 신부는 함 신부에 대해 “타고난 조율가이자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문 신부는 “대표가 없는데도 사제단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박학하고 판단이 빠른 함 신부 덕이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지 주교의 구속에 대해 “돌이켜보니 은총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제들이 사회 참여를 시작하면서 유신체제의 모순에 대해 눈 떴다는 얘기다. 유신독재 타파를 외치며 정권에 맞서던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첫 투옥은 시련이자 기회였다. 서대문 구치소 등에서 1년여 옥고를 치른 그는 “제2의 신학교 생활 같았다”고 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 본성을 엿본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밤늦게 구치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제 방이라며 안내했어요. 근데 완전히 쓰레기통이야. 그래도 내가 살 방이니 의지를 갖고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근데 다 치워놓으니까 교도관이 ‘방 배치를 다시 해야 하니 나오라’는 거예요. 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싫다. 살 준비 다했으니 내 방이다’라고 하니까 교도관이 ‘교도소에 내방 네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해요. 근데 옮겨 보니 새 방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청소 좀 했다고 교도소 방 옮기기 싫어한 제 모습이 참…. 덧없는 소유욕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어요.” 함 신부는 교도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박 1년간 재판을 받으며 기도와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함 신부가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유신독재의 종말을 목격한 곳도 교도소였다. 1979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민 오원춘이 정보기관에 납치·감금당한 일에 대해 강론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등포 교도소로 끌려갔다. 두번째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박정희 피살 소식을 접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 노예 해방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독재의 핵심을 제거한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해요. 그는 1979년 부마항쟁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수습할 정책을 써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과 나눈 대화에서 ‘그까짓것 100만~200만명쯤 죽여도 문제 없어. 3·15 부정선거 때 경무대 경호책임자인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린 죄로 처형당했는데 내가 발포 명령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할 거야’라고 했다지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10·26 의거를 결행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죠.” 그는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민초들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 받을 때 피로를 못이겨 눈 감고 있었더니 혼자서 저를 감시하고 있던 중정 요원이 ‘신부님, 정신 차리세요. 소신껏 답변하셔야 해요’라며 응원하더군요. 힘이 불끈 솟았지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옥중에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쪽지를 전달한 사람도 이름 없는 양심적인 교도관이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감옥에서 천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 사도들을 내보내 줬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한 거죠.” 1970년대 함 신부와 함께 군부독재 권력과 싸웠던 이들 중 지금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김지하 시인이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시기별로 구별해서 봐야 해요. 인간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예컨대 김지하 시인도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청년 김지하와 1990년대 이후 현실과 야합한 장년 김지하로 나눠 볼 수 있겠죠. 윤리신학적으로 봐도 사실 선과 악, 천사성과 악마성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거든요. 어느 쪽이 마음속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죠. 일제시대 때 최남선, 이광수 같은 분도 일면으로는 얼마나 훌륭했나요. 변절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그들의 한계죠.” 함 신부는 잘못된 사회·정치 제도를 바로잡는 데 교회(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왜 하필 교회일까. 그는 “불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이 양심껏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적 인간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오래 전의 일화 하나를 끄집어냈다. “1970년대 어느 부활절 때였어요.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한 40대 신도가 성당에 왔어요. 술에 취했는데 고해성사를 보겠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어차피 오늘 반성해도 내일 저는 똑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저와 술 한잔 하시고 용서해주세요’하는 거예요. 또 ‘신부님은 세상을 모릅니다. 부정과 타협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요. 집에 노모까지 5명이 사는데 회사 월급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뇌물받아 아래, 위와 나눠 가져야 해요’라고 하더군요. 양심적으로 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당장 식구들이 굶어 죽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함 신부는 당시 30대의 젊은 사제였다. 그 신자에게 ‘그래도 천주교 신자로서 양심껏 사세요’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그 사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양심껏 살도록 도우려면 결국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교(政敎) 분리는 사실 폭압자들의 논리예요.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면 ‘예배당, 불당에 가서 기도나 하세요’하는 식이죠.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을 껴안아야 해요.” (하편에서 계속)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김영삼·전두환·이희호 나란히 앉아 축하

    김영삼·전두환·이희호 나란히 앉아 축하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전직 대통령들과 부인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국가 지도자 교체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봤다.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는 취임식 단상 오른쪽,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은 단상 왼쪽에 나란히 앉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도 참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감기 몸살로 참석하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건강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통령들은 국민 대표와 함께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취임을 축하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은 중절모에 검은 코트 차림으로 두 손을 깍듯이 모으고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색 목도리를 두른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뒤 “앞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덕담을 건넸고 박 대통령은 “날씨가 추운데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를 낭독하는 동안 김 전 대통령은 두 눈을 감은 채 경청했고 전 전 대통령은 배포된 취임사를 꼼꼼히 읽어 보는 모습을 보였다. 짙은 보라색 코트 차림의 이 여사는 박 대통령과 인사할 때 두 손을 맞잡으며 각별한 반가움을 드러냈다. 91세로 고령인 이 여사는 취임식 당일 날씨에 따라 참석 여부가 갈릴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날 발걸음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독서와 서예, 지인과의 만남으로 소일하는 등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달 15일 85세 생일을 맞은 김 전 대통령 역시 상도동 자택 근처 산책 등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이날 불참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 생활을 하고 있다. 2011년 4월 한방용 침이 기관지를 관통한 게 발견돼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두달 남짓한 기간에 잇따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지만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09년 5월 투신해 영욕의 삶을 마쳤다.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역사를 쓴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폐렴으로 치료를 받다 서거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한혜진 “CF 끊겨도 겁나지 않아요… 젊은 세대도 그날을 알아야죠”

    한혜진 “CF 끊겨도 겁나지 않아요… 젊은 세대도 그날을 알아야죠”

    친구들은 일찌감치 TV 드라마 주역으로 데뷔했다. 은광여고 동기 송혜교, 서울예대 동기 손예진이 그랬다. 여고시절 ‘얼짱’으로 소문났던 그는 더뎠다. 10여편의 드라마·영화에서 단역과 조역을 거쳐 2005년 ‘굳세어라 금순아’, 이듬해 ‘주몽’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 잘 나오는 작품을 하려고 1년 반을 고른 ‘떼루아’(2008)는 시련을 안겼다. 역대 SBS드라마 최저 시청률 톱5에 꼽힐 정도. “너무 부끄러웠다. 드라마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잘못된 선택 기준이 부끄러웠다. 인기가 아니라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목표를 바꾸니 시청률, 인기, 다른 배우와의 비교가 다 보잘 것 없었다.”(지난 10월 원더우먼페스티벌 강연 중) 그래서 택한 작품이 범죄스릴러 ‘용서는 없다’였다. 심지어 강력반 여형사 역할. 드라마로 데뷔한 20대 여배우들이 멜로나 로맨틱코미디로 충무로 연착륙을 노린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1980년 광주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뭉쳐 연희동 ‘그사람’을 단죄하는 영화 ‘26년’(작은 사진)에 한혜진(31)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또 놀랐다. 물론, 그는 ‘예쁜 척하는’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선 과부였고, ‘가시나무새’에선 고아에 미혼모였다. ‘제중원’에선 백정 출신과 사랑에 빠졌고, ‘주몽’의 소서노 역시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 캐릭터였다. “아픔이 있는 캐릭터에 묘하게 끌린다.”고 했다. 그래도 ‘26년’은 달랐다. 자칫 의식 있는(?) 배우로 낙인 찍히면 잃을 게 더 많다. 토크쇼 ‘힐링캠프’ 공동진행자로, 광고 모델로 잘나가고 있는 그가 민감한 소재 탓에 제작이 불투명한 영화에 왜 출연을 결심했을까. “2008년 (김)아중이랑 류승범 선배가 캐스팅됐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무산됐더라고요. 올 초에도 투자가 잘 안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다 진구씨가 캐스팅됐고, 여배우는 미정이란 기사를 봤죠. 나한테 왜 연락이 안 올까란 생각을 하다가 깜빡 잠들었어요. 낮잠에서 깨니 전화가 왔어요. ‘26년’ 시나리오가 들어왔다고. 소름이 쫙 끼치던걸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슴이 뜨거웠어요. 평생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죠. 조급했어요. 못 하게 될까 봐.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건네주긴 했지만 정치적인 것에 연루되고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된다고 만류했어요. ‘CF 안 해도 되냐’고도 했죠. 그래서 안 해도 된다고 했어요.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안 무섭다고. 하하하.” 그는 1980년 광주를 겪지 못한 세대다. 캐스팅이 확정되고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월애’ 등 다큐멘터리와 ‘PD수첩’ 등 시사다큐를 찾아서 봤다. “솔직히 무지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자료를 찾아봤다. 너무 끔찍했다. 관련자료를 보는 내내 분노가 끓어올랐다.”고 했다. 한혜진이 맡은 심미진은 1980년 5월 계엄군 총에 어머니를 잃었다. 술독에 빠져 살던 아버지마저 연희동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경력을 살려 ‘그 사람’을 제거하는 거사에서 저격을 맡는다. 그는 “미진은 잃을 게 없어서 무서울 것도 없는 아이다. 얘가 왜 사격선수가 됐을까 생각해 봤다. 모든 여건이 미진이를 침묵하게 했다. 그래서 미진이가 한발, 한발 총을 쏘면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4㎏이 넘는 개량 M16 소총을 분신처럼 다뤄야 하는 터라 크랭크인 전부터 사격훈련을 받았다. 조준과 격발 자세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는 “총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 5분을 버티고, 또 10분을 버티는 훈련을 했다. 덕분에 승모근이랑 팔 근육은 지금도 남아 있다.”며 웃었다. 장면 대부분을 스턴트맨 도움 없이 직접 소화했다. 도로 한복판에서 ‘그 사람’이 탄 차량을 저격하려다가 총이 과열돼 폭발하는 장면을 찍을 땐 아찔했다. “스턴트맨이 할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직접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용증명 보낼 거예요’라고 흘겨보고는 제가 찍었죠. 나중에 액션배우 할까요. 하하하.” ‘26년’은 그에게 평생 남을 작품임에 틀림없다. “80년 광주만 아니었다면 건강하고 밝게 자랐을 미진에게는 슬픔과 함께 당차고 밝은 기운이 공존해야 했다. 혜진씨에게 그 느낌이 있었다.”는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 말처럼, 한혜진은 더도 덜도 말고 미진이었다. 그는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랐을까. “잊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시는 이런 일 있으면 안 되잖아요. 여태껏 살기 바빠서 관심 밖이었던 게 내내 죄송했어요. ‘살아도 살 수 없는 삶인 걸 아시잖아요’란 주안(배수빈)의 대사처럼 아직도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세요. 세월이 흘러 잊히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젊은 세대들도 그날을 알아야죠.” 한혜진은 지난달 2일 부친상을 당했다. 몸도 마음도 온전치 못할 텐데 ‘힐링캠프’ 녹화와 ‘26년’의 지방 인사, 인터뷰까지 강행군이다. “차라리 다행이에요. 짬이 나면 슬픔이 주체가 안 되는걸요. 아빠한테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죠. 막내딸이 하는 일이면 뭐든 기뻐하셨던 분이에요. 배우가 될 때도 그랬고, ‘26년’을 선택하고서도 가장 많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담양에서 자랐고, 전남대를 나오셨어요. 보셨다면 자랑스러워하셨을 텐데….” 어느덧 데뷔 11년차다. 나이란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한혜진은 “여배우는 역시 서른부터”라며 웃었다. “20대에는 ‘주몽’처럼 대박이 나도 기쁜 줄을 몰랐다. ‘더 높이, 더 높이’ 위치에 대한 욕심만 냈다. 서른을 넘어서면서 여유도 생기고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예능이든 드라마나 영화, 강연이든 경험을 쌓고 싶다. 물론, 인기 욕심은 버렸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지금&여기] ‘26년’과 연희동 ‘그 사람’/임일영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26년’과 연희동 ‘그 사람’/임일영 문화부 기자

    강풀의 웹툰을 영화로 만든 조근현 감독의 ‘26년’이 화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엄마, 아빠, 누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26년 세월이 흐르고서 연희동 ‘그 사람’의 단죄를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개봉 전 시사를 통해 2만 5000여 관객이 ‘26년’을 미리 만나면서 트위터·페이스북 등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개봉 첫날인 29일 화제작 ‘늑대소년’을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11만 3923명)를 자치했다. 청어람 최용배 대표가 처음 영화화를 시도한 건 2008년. ‘29년’이란 제목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캐스팅까지 끝냈다. 제작비의 70%를 확보했다. 하지만, 투자 의사를 밝혔던 벤처캐피털이 촬영 직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을 뺐다. 외압이 있었다는 게 최 대표의 심증이다. 4년 만에 영화가 빛을 본 건 제작진의 뚝심은 물론, 쌈짓돈을 제작비에 보탠 1만 5000여명의 시민 덕이다. 11분에 이르는 영화 엔딩크레디트에는 ‘제작두레’로 이름 붙여진 소액후원자들의 이름이 담겨 있다. 순 제작비의 약 15%(7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26년’은 불가능했다. 개봉 전까지 관계자들은 내심 걱정했다. 원작에 비해 ‘그 사람’에 대한 폭력 수위가 높아서 명예훼손·모욕·인격권 침해 등으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법률자문을 구했더니 인격권 침해가 가능한데,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고 소송에서 지더라도 손해배상액은 1억원 남짓이라더라. 그런데 그분이 직접 나설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아직 연희동은 조용하다. 내년 10월이면 1672억원의 미납 추징금 시효가 끝나는 마당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미래 권력의 향배가 불투명한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개봉한 전략도 효과적이었다. 최 대표는 “그분은 몰라도 젊은 자손들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1980년 광주가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공유했으면 한다는 의미다. 어차피 광주 유가족도 복수를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상처가 쉽게 아물 리 없지만, 진심 어린 사과가 용서의 첫 단추는 될 수 있다. argu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펴낸 이영승씨

    [저자와 차 한 잔]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펴낸 이영승씨

    ‘개화의 짜장면이 조자룡이 휘두르는 군더더기 없이 모범적인 청홍검의 칼날이라면 신승관의 짜장면은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는 관운장의 청룡도와 같달까.’ 짜장면 맛이 이렇게 비유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점심에 두 곳을 다녀왔다. 개화는 서울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쪽에, 신승관은 북창동 깊은 골목에 있다. 직선 거리로 400m쯤 떨어진 두 집의 짜장 맛이란, 당대를 호령한 두 호걸의 범상치 않은 기상을 빼닮았다. 신승관이 조금 깔끔했고 개화가 여러 맛이 반짝이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신문과 방송을 타거나 대형 문고의 베스트셀러 추천 없이도 일주일 만에 재판에 들어간 ‘주식(酒食)9단 서울맛집 유랑’(출판사 올)을 쓴 이영승(38)씨를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만났다. 책에 쓴 대로 약간 무서움이 느껴지는 첫 인상. 지면에 실릴 사진부터 급하게 찍은 뒤 한 식당으로 옮겨 보리굴비로 점심을 들었다. 한창 때 친구와 10시간 동안 소주 스무 병을 비웠다고 책에서 털어 놓았던 술꾼과 2시간 동안 꾸덕한 굴비를 뜯어 안주삼아 술잔을 털었다.   -(기자보다 열한 살 아래라 별로 그렇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실례지만 정말 나이들어 보이네요. 좋아하는 음식으로나 그걸 표현하는 문체로 보나 마흔쯤은 됐을 것이라 짐작했는데요. 네. (남들이) 애늙은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사신 분이 어떻게 꾸덕하다는 표현도 알고 그래요. 2006년 무렵 식도락동호회 다인포유와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처음엔 낯도 가리고 해서 피하기도 했는데 술은 워낙 좋아했으니까 술자리 있다고 하면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하나둘 블로그를 시작하길래 구경하곤 했죠. 마침(? 6년동안 사랑했던 여인도 떠나고 해서) 나도 한번 해보자 시작하게 된 거죠. 연배가 한참 위인 사부들이나 형님, 누님들과 어울려 음식먹는 법을 배우게 됐지요. 그때야 술먹는 재미가 거진 다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어지고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해서 ‘사진 참 못 찍네’ 이렇게 구박맞기도 하면서 열심히 블로그 질 했어요. 이게 뭐가 맛있어요, 제가 그러면 그분들은 씩 웃으면서 너도 나중에 알게 돼, 이러시더라고요. 정말 그대로 됐고요. 그런 분들과 어울리면서 그런 말과 표현도 배우고, -주식9단이란 블로그 명(名)은 어떻게. 당시 모임의 한 누님이 제 이력을 보고 술 주에 음식 식, 주식 9단이라 하지 그러냐고 하세요. 음 괜찮네, 하고 쓰게 됐죠. -책 제목을 검색해보니 신문 등에선 전혀 소개되지 않았는데도 인터넷에선 상당히 많이 소개됐더군요. 상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맛이라고. 그런 건 아니고. 정반대로 누가 뭐라고 하든 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솔직하게 글로 풀어내려 하는 것뿐이지요. 이제 블로그는 그만 둘 생각인데 그동안 제가 7년 동안 발품팔아 돌아다니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했다는 생각에 고맙고 그렇더라고요. -블로그는 왜 정리하는데요. 처음엔 많은 이들이 몰려와 글 읽고 댓글 달고 그러면 신나서 또 카메라 챙겨 떠나곤 했지요. 뭣도 모르고 그랬어요. 한없이 교만해지고. 입맛도 간사해지고. 다른 블로거들이 공짜로 밥 먹거나 터무니없는 대가를 원하는 경우도 봤어요. 저도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게 싫어 손사래를 치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 오천명씩 들어와 제 글 읽고 그러니 제가 뭐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도 싫고. 제가 자꾸 그런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이제 그만 두려고 하지요. -책은 잘 나가나요. 전 관심없어요. 2년 전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을 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내 주제에, 하는 생각에 몇 차례 고사하다 지난해 초 시작해 올해 초 책을 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쳤어요. 그런데 출판사 쪽에서 다른 책 일정도 있고 맛집 얘기를 다뤘으니 봄과 여름보다는 가을에 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이번에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관심없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제가 7년 가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고 그 성과를 한 데 모아 정리했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출판사가 제 책 때문에 돈 많이 벌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얼마 전 재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어요.   증권사 펀드매니저, 투자자문사 대표를 거친 그는 지금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일을 하고 있다. 승부근성이 있어 보였다. 주위에선 한번 빠져든 일에는 무섭게 빠져드는 그의 성격대로 책이 나왔다는 평을 한다고 했다. 서른다섯 가지 음식의 역사나 식재료의 유래로 글머리를 열고 서울의 맛집 다섯 곳을 꼽은 뒤 음식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냈다. 어릴 적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가 중학교 2학년 가을, 청계천 들러 ‘빽판’ 사들고 간절히 구하던 Keith Jarret의 앨범이 폐점하는 음악카페 가면 있을 것이라는 말 듣고 난생 처음 찾아간 명동에서 난생 처음 명동칼국수를 먹고 행복했던 추억 등이 동시대를 산 이들에게 즐거운 삽화로 다가온다. 술친구와 해장술 푼 사연, ‘빠돌이’로 한창 놀 때 순대해장국 먹은 사연 등 쿡쿡 거리고 읽을 객담도 빠뜨릴 수 없다. 혼자 지내는 이들을 위한 레시피를 곁들인 것도 눈에 띈다.   -어느 정도로 열심이었나요. 블로그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울 안의 화상(華商)이 하는 중국집 서른다섯 곳을 모두 돌아보겠다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석달을 중국 음식만 먹으니 입에서 느끼한 맛이 떠나질 않았던 적도 있지요. 동호회에서나 누군가 어디가 맛있더라, 하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달은 신용카드 청구서가 천만원을 넘은 적도 있었고요. -출간 시기가 늦춰지면서 가격이 올랐다든지, 재개발로 문을 닫거나 이전했다든지 해서 다시 점검했을 것 같은데요. 음식별로 다섯 집씩 골랐으니 모두 175곳이 소개됐는데 맨 앞의 TOP PICK은 한 번씩 다 돌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집들의 절반 정도도 다시 확인했어요. 값뿐만아니라 내가 표현한 내용이 진짜로 맞나 의심스러워 다시 찾기도 했고요. 사진을 다시 찍은 곳도 여러 곳인데 음식 사진이란 게 차라리 옛것이 좋은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그렇게 다섯 곳씩 고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어느 메뉴를 가장 고민했나요. 짜장이었습니다. 이품(서대문구 연희동)이냐 개화냐를 놓고 한참 고민했어요.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메뉴이고 모두들 ‘거기에서 거기 아냐’ 생각하기 쉬워서요. 골라놓고 보니까 동전던지기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멏 갈피만 들춰보면 그의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참 꼼꼼한 성품을 알 수 있다. 6000원 남짓으로 포만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김치찌개집부터 정말 소중한 이에게 대접하고 싶은 값비싼 코스 요리까지 망라했다. 기자도 가끔 찾는 하동관 주인의 면면이 바뀐 사연,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주인 가계도 등등 “아는 척 좀 할 수 있게” 두루 꾸며 놓았다.   -결국 책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뭘까요. 사람이 음식 맛의 절반을 넘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전라도 구례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더니 갓김치 등 여염집에서 먹는 반찬을 내주시더라고요. 죄송하기도 하고 해서 탕수육을 시켜 소줏잔을 부딪히고 있자니까 이번엔 홍어회를 내오시더라고요. 중국집에서 홍어회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푸하하. 그런데 몇 년 뒤 그 집을 찾았더니 없어졌더라고요. 요 뒤 배춧국을 잘 끓이던 ‘내강’도 주인 부부가 나이 들어 도저히 못하겠다고 두손 들어 버렸어요. 저도 책에 담지 못했는데 얼마 전 들렀더니 주인도 바뀌고 메뉴도 여러 가지로 늘었는데 너저분하기만 하더라고요. -그런 집 중에 인사동 ‘할머니 칼국수’와 ‘유진식당’도 있어요. 책에 써놓은 것을 보니 반갑더라고요. 유진식당 어르신은 저희들 가면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했어요. 가끔 큰아들이 말 안 듣는다고 푸념도 늘어놓으셨지요. -그래도 요즘은 마음잡고 가게를 보는 것 같던데요. 그런데 얼마나 드나들면 그렇게 주인과 대화가 통하게 돼요. 아, 저희가 워낙 시끄러워서요. 그냥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보면 그런 얘기도 주고받게 돼요. 그건 그렇고 하여간 그런 식당들이 개발 논리에 떠밀려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죠. 인사동 칼국수집만 해도 체인점을 낸다 하면서 예전같지 않은 것 같고요. -에필로그로 왕십리 해장국집 ‘대중옥’에서 느낀 소회를 풀어냈어요. 그런데 왜 날짜가 그렇게 한참 전인 거지요. 2010년 12월 31일이라고 돼 있죠.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느낌이 좋아 그대로 책에 옮겼어요. 대중옥은 강남으로 옮겼는데 그 집도 한 번 가봤어요. 아무래도 그 때 맛이 살아나지 않더라고요. 깔끔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맛집을 좋아하는 세상의 흐름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쩌다 한번, 이런저런 이유로 고급스럽게 접대할 일이 있을 때 찾아갈 만한 집을 소개하긴 했지만 그보다 사람 냄새 나는 맛집, 노포(老鋪·대를 이어 내려온 가게)를 좋아하는 거지요.   그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긴 세월 국밥을 끓여내 묵은 때가 진하게 묻은 타일, 하루에 수십 수백 그릇의 국밥을 잉태하던 듬직한 무쇠솥, 요새 웰빙족들이 알면 난리가 날 귀여운 퍼런색 플라스틱 국장, 이젠 어떤 것 위에 올려져도 진이 다 빠져 초연할 것만 같은 나무 솥뚜껑, 오로지 국물맛과 토렴에만 집중하시는 아주머니까지 모든 게 사라져간다.’ 좋은 요리란 뭘까. 그런 맛을 부르는 서늘하고도 알싸한 가을바람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주식(酒食)9단 서울맛집 유랑’ 작가 이영승씨

    [저자와의 차 한잔] ‘주식(酒食)9단 서울맛집 유랑’ 작가 이영승씨

     ‘개화의 짜장면이 조자룡이 휘두르는 군더더기 없이 모범적인 청홍검의 칼날이라면 신승관의 짜장면은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는 관운장의 청룡도와 같달까.’  짜장면 맛이 이렇게 비유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점심에 두 곳을 다녀왔다. 개화는 서울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쪽에, 신승관은 북창동 깊은 골목에 있다. 직선 거리로 400m쯤 떨어진 두 집의 짜장 맛이란, 당대를 호령한 두 호걸의 범상치 않은 기상을 빼닮았다. 신승관이 조금 깔끔했고 개화가 여러 맛이 반짝이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신문과 방송을 타거나 대형 문고의 베스트셀러 추천 없이도 일주일 만에 재판에 들어간 ‘주식(酒食)9단 서울맛집 유랑’(출판사 올)을 쓴 이영승(38)씨를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만났다. 책에 쓴 대로 약간 무서움이 느껴지는 첫 인상.  지면에 실릴 사진부터 급하게 찍은 뒤 한 식당으로 옮겨 보리굴비로 점심을 들었다. 한창 때 친구와 10시간 동안 소주 스무 병을 비웠다고 책에서 털어 놓았던 술꾼과 2시간 동안 꾸덕한 굴비를 뜯어 안주삼아 술잔을 털었다.    Q. (기자보다 열한 살 아래라 별로 그렇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실례지만 정말 나이들어 보이네요. 좋아하는 음식으로나 그걸 표현하는 문체로 보나 마흔쯤은 됐을 것이라 짐작했는데요.  A. 네. (남들이) 애늙은이라고들 합니다.  Q. 그런데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사신 분이 어떻게 꾸덕하다는 표현도 알고 그래요.  A. 2006년 무렵 식도락동호회 다인포유와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처음엔 낯도 가리고 해서 피하기도 했는데 술은 워낙 좋아했으니까 술자리 있다고 하면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하나둘 블로그를 시작하길래 구경하곤 했죠. 마침(? 6년동안 사랑했던 여인도 떠나고 해서) 나도 한번 해보자 시작하게 된 거죠.  연배가 한참 위인 사부들이나 형님, 누님들과 어울려 음식먹는 법을 배우게 됐지요. 그때야 술먹는 재미가 거진 다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어지고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해서 ‘사진 참 못 찍네’ 이렇게 구박맞기도 하면서 열심히 블로그 질 했어요. 이게 뭐가 맛있어요, 제가 그러면 그분들은 씩 웃으면서 너도 나중에 알게 돼, 이러시더라고요. 정말 그대로 됐고요. 그런 분들과 어울리면서 그런 말과 표현도 배우고,  Q. 주식9단이란 블로그 명(名)은 어떻게.  A. 당시 모임의 한 누님이 제 이력을 보고 술 주에 음식 식, 주식 9단이라 하지 그러냐고 하세요. 음 괜찮네, 하고 쓰게 됐죠.  Q. 책 제목을 검색해보니 신문 등에선 전혀 소개되지 않았는데도 인터넷에선 상당히 많이 소개됐더군요. 상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맛이라고.  A. 그런 건 아니고. 정반대로 누가 뭐라고 하든 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솔직하게 글로 풀어내려 하는 것뿐이지요. 이제 블로그는 그만 둘 생각인데 그동안 제가 7년 동안 발품팔아 돌아다니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했다는 생각에 고맙고 그렇더라고요.  Q. 블로그는 왜 정리하는데요.  A. 처음엔 많은 이들이 몰려와 글 읽고 댓글 달고 그러면 신나서 또 카메라 챙겨 떠나곤 했지요. 뭣도 모르고 그랬어요. 한없이 교만해지고. 입맛도 간사해지고.  다른 블로거들이 공짜로 밥 먹거나 터무니없는 대가를 원하는 경우도 봤어요. 저도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게 싫어 손사래를 치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 오천명씩 들어와 제 글 읽고 그러니 제가 뭐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도 싫고. 제가 자꾸 그런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이제 그만 두려고 하지요.  Q. 책은 잘 나가나요.  A 전 관심없어요. 2년 전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을 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내 주제에, 하는 생각에 몇 차례 고사하다 지난해 초 시작해 올해 초 책을 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쳤어요. 그런데 출판사 쪽에서 다른 책 일정도 있고 맛집 얘기를 다뤘으니 봄과 여름보다는 가을에 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이번에 나오게 된 겁니다.  Q. 그런데 관심없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A. 제가 7년 가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고 그 성과를 한 데 모아 정리했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출판사가 제 책 때문에 돈 많이 벌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얼마 전 재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어요.    증권사 펀드매니저, 투자자문사 대표를 거친 그는 지금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일을 하고 있다. 승부근성이 있어 보였다. 주위에선 한번 빠져든 일에는 무섭게 빠져드는 그의 성격대로 책이 나왔다는 평을 한다고 했다. 서른다섯 가지 음식의 역사나 식재료의 유래로 글머리를 열고 서울의 맛집 다섯 곳을 꼽은 뒤 음식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냈다. 어릴 적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가 중학교 2학년 가을, 청계천 들러 ‘빽판’ 사들고 간절히 구하던 Keith Jarret의 앨범이 폐점하는 음악카페 가면 있을 것이라는 말 듣고 난생 처음 찾아간 명동에서 난생 처음 명동칼국수를 먹고 행복했던 추억 등이 동시대를 산 이들에게 즐거운 삽화로 다가온다. 술친구와 해장술 푼 사연, ‘빠돌이’로 한창 놀 때 순대해장국 먹은 사연 등 쿡쿡 거리고 읽을 객담도 빠뜨릴 수 없다. 혼자 지내는 이들을 위한 레시피를 곁들인 것도 눈에 띈다.    Q. 어느 정도로 열심이었나요.  A. 블로그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울 안의 화상(華商)이 하는 중국집 서른다섯 곳을 모두 돌아보겠다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석달을 중국 음식만 먹으니 입에서 느끼한 맛이 떠나질 않았던 적도 있지요. 동호회에서나 누군가 어디가 맛있더라, 하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달은 신용카드 청구서가 천만원을 넘은 적도 있었고요.  Q. 출간 시기가 늦춰지면서 가격이 올랐다든지, 재개발로 문을 닫거나 이전했다든지 해서 다시 점검했을 것 같은데요.  A. 음식별로 다섯 집씩 골랐으니 모두 175곳이 소개됐는데 맨 앞의 TOP PICK은 한 번씩 다 돌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집들의 절반 정도도 다시 확인했어요. 값뿐만아니라 내가 표현한 내용이 진짜로 맞나 의심스러워 다시 찾기도 했고요. 사진을 다시 찍은 곳도 여러 곳인데 음식 사진이란 게 차라리 옛것이 좋은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Q. 그렇게 다섯 곳씩 고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어느 메뉴를 가장 고민했나요.  A. 짜장이었습니다. 이품(서대문구 연희동)이냐 개화냐를 놓고 한참 고민했어요.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메뉴이고 모두들 ‘거기에서 거기 아냐’ 생각하기 쉬워서요. 골라놓고 보니까 동전던지기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멏 갈피만 들춰보면 그의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참 꼼꼼한 성품을 알 수 있다. 6000원 남짓으로 포만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김치찌개집부터 정말 소중한 이에게 대접하고 싶은 값비싼 코스 요리까지 망라했다. 기자도 가끔 찾는 하동관 주인의 면면이 바뀐 사연,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주인 가계도 등등 “아는 척 좀 할 수 있게” 두루 꾸며 놓았다.    Q. 결국 책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뭘까요.  A. 사람이 음식 맛의 절반을 넘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전라도 구례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더니 갓김치 등 여염집에서 먹는 반찬을 내주시더라고요. 죄송하기도 하고 해서 탕수육을 시켜 소줏잔을 부딪히고 있자니까 이번엔 홍어회를 내오시더라고요. 중국집에서 홍어회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푸하하.  그런데 몇 년 뒤 그 집을 찾았더니 없어졌더라고요.  요 뒤 배춧국을 잘 끓이던 ‘내강’도 주인 부부가 나이 들어 도저히 못하겠다고 두손 들어 버렸어요. 저도 책에 담지 못했는데 얼마 전 들렀더니 주인도 바뀌고 메뉴도 여러 가지로 늘었는데 너저분하기만 하더라고요.  Q. 그런 집 중에 인사동 ‘할머니 칼국수’와 ‘유진식당’도 있어요. 책에 써놓은 것을 보니 반갑더라고요.  A. 유진식당 어르신은 저희들 가면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했어요. 가끔 큰아들이 말 안 듣는다고 푸념도 늘어놓으셨지요.  Q. 그래도 요즘은 마음잡고 가게를 보는 것 같던데요. 그런데 얼마나 드나들면 그렇게 주인과 대화가 통하게 돼요.  A. 아, 저희가 워낙 시끄러워서요. 그냥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보면 그런 얘기도 주고받게 돼요. 그건 그렇고 하여간 그런 식당들이 개발 논리에 떠밀려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죠. 인사동 칼국수집만 해도 체인점을 낸다 하면서 예전같지 않은 것 같고요.  Q. 에필로그로 왕십리 해장국집 ‘대중옥’에서 느낀 소회를 풀어냈어요. 그런데 왜 날짜가 그렇게 한참 전인 거지요.  A. 2010년 12월 31일이라고 돼 있죠.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느낌이 좋아 그대로 책에 옮겼어요. 대중옥은 강남으로 옮겼는데 그 집도 한 번 가봤어요. 아무래도 그 때 맛이 살아나지 않더라고요. 깔끔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맛집을 좋아하는 세상의 흐름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쩌다 한번, 이런저런 이유로 고급스럽게 접대할 일이 있을 때 찾아갈 만한 집을 소개하긴 했지만 그보다 사람 냄새 나는 맛집, 노포(老鋪·대를 이어 내려온 가게)를 좋아하는 거지요.    그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긴 세월 국밥을 끓여내 묵은 때가 진하게 묻은 타일, 하루에 수십 수백 그릇의 국밥을 잉태하던 듬직한 무쇠솥, 요새 웰빙족들이 알면 난리가 날 귀여운 퍼런색 플라스틱 국장, 이젠 어떤 것 위에 올려져도 진이 다 빠져 초연할 것만 같은 나무 솥뚜껑, 오로지 국물맛과 토렴에만 집중하시는 아주머니까지 모든 게 사라져간다.’  좋은 요리란 뭘까.  그런 맛을 부르는 서늘하고도 알싸한 가을바람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영화 ‘26년’ 마침내 베일 벗다

    영화 ‘26년’ 마침내 베일 벗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족들의 복수극을 그린 문제작 ‘26년’이 22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 작품은 현대사를 바탕으로 전직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데다 수차례 제작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터라 안팎으로 관심을 모았다. 대선이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개봉한 ‘남영동 1985’와 함께 어떤 영향력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26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에 대한 시대정신과 치밀한 복수 액션극이라는 오락적 요소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계엄군에게 학살된 희생자 2세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은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에 대해 공분을 느끼고 역사적인 단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극을 이끌어간다. ●과감한 상상력 더한 ‘그 사람’ 향한 복수극… 29일 개봉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면서 시작된다. 이 장면을 통해 당시 가족을 잃은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는 효과를 일으킨다. 미술감독 출신으로 처음 연출에 도전한 조근현 감독은 “기존에 1980년 광주를 다룬 영화가 많은데 도입부에 애니메이션을 넣어 차별화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2세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조직 폭력배 곽진배(진구),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현직 경찰 권정혁(임슬옹) 등이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이경영)와 그의 비서 김주안(배수빈)에게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장광)을 타깃으로 한 극비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전직 대통령이 예우를 받으며 철통 경호를 받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연희동 저택의 침투 과정과 겹겹이 쌓여 있는 완벽한 경호를 뚫기 위한 주인공들의 다층적인 암살 계획이 탄탄한 스토리와 함께 전개된다. 여기에 뚜렷하고 개성적인 인물 캐릭터들도 눈길을 끈다. 거칠지만 정감 있는 성격의 행동대장 진배, 마음의 상처 때문에 한없이 차가워진 저격수 미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혁 등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극초반 다소 이음매가 헐거운 부분이 있지만 주인공들이 결국 ‘그 사람’과 대면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확실한 긴장감을 준다. 특히 연희동의 집단 결투 장면과 크레인에 오른 미진의 원거리 저격 장면 등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전 감독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사과를 스스로 하면 좋겠지만, 안 되면 단죄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서 상식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의미로 작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5년간 수차례 제작시도 번번이 무산 이 영화가 처음 제작 시도를 한 것은 지난 2008년. ‘29년’이라는 제목으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촬영 준비를 마쳤지만 촬영 열흘 전 갑자기 투자가 취소되면서 끊임없는 외압설에 시달렸다.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당시 소문으로만 떠돌던 청와대 외압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개봉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교롭게 대선과 시기가 겹치게 됐다.”면서 “대중들이 역사적 실체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26년’은 순제작비 46억원이 대기업이 아닌 개인 투자자로 이뤄졌고 그 가운데 7억원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으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배급 역시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소 배급사 인벤트 디를 통해 진행한다. 제작 과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최 대표는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촬영을 하고자 유족 측의 동의를 얻었지만 관계 당국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배우가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출연 배우들은 정치적인 선입견보다는 영화 자체의 본질에 관심을 더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4년 전 ‘29년’에 이어 ‘26년’에도 출연을 확정한 진구는 “이 영화는 선동용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내용으로 교육용 영화에 가깝다.”면서 “정치색보다는 오히려 슈퍼 히어로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혜진은 “이 작품이 운명으로 다가왔고, 유가족들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더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2AM’의 임슬옹은 “가장 현실적이고 색깔 있는 캐릭터로 그동안 갈고닦은 연기력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였고 또래인 10~20대 관객에게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사람’ 역의 장광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자료화면을 보면서 흡사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면서 “5·18과 8·15를 헷갈린다는 요즘 세대가 잊혀진 과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최근 관객층의 주류로 떠오른 3040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할 만한 소재로 당시 복수극으로서 카타르시스 효과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정치 의식을 심어주기는 힘들겠지만 30~40대에게는 잊혀진 과거에 대한 기억과 시대 의식을 충분히 일깨워 주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악성 민원인 여러분 자칫하단 ‘악소리’ 나요

    지난 1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주민센터에 술취한 민원인이 술병을 들고 들어와 신분증도 없이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요구했다. 여직원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답했지만 민원인은 키스를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키스해 달라”… “감방 가봤다” 협박 3월 연희동 주민센터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 판정을 위한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요구하는 여직원에게 “성폭력 범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한 경험이 있다.”며 협박하고, 하루 10차례 이상 전화해 괴롭힌 사례가 있었다. 심지어 6월에는 구청 민원실에서 해결 불가능한 사안에 격분, 직원에게 “칼로 쑤셔 버리겠다.”고 폭언한 사례도 있었다. 서대문구는 1일 이 같은 악성 민원인 사례를 담은 ‘공무원 인권 침해 사례 및 공무원 인권 보호에 대한 내부 인식 조사서’를 발간하고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에는 서대문구 공무원직장협의회와 ‘직원 인권보호 선언식’을 가졌다. 두들겨 맞는 민원공무원<서울신문 6월 13일 자 1·2면>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실태를 확인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공무원 응답자 80% 고성·폭언 경험 직원 설문조사와 107건의 악성 민원인 사례를 담은 조사서에 따르면 공무원 응답자의 80%(831명 중 665명)가 고성과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35%(290명)는 멱살 잡기, 밀치기, 뜨거운 물 뿌리기, 흉기 겨누기 등의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 현재 부서가 불합리한 고성과 폭언, 폭행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직원은 57%(476명)에 달했다. 이에 따라 구는 전화 폭언에 대한 경고 시스템과 인근 경찰 지구대와의 핫라인 개설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심각한 폭력에 대해서는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청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공무원 인권보호 선언은 불친절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을 보호하겠다는 게 아니라 업무 장애를 일으키는 악성 민원을 최대한 줄여 다수의 시민에게 정성을 다해 서비스를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여성 장애인 출산휴가 기간 ‘배려’ 해야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가 함께 하는 8월 의정모니터에는 모니터요원들이 현장 곳곳을 누비며 발굴한 시정 개선 의견이 53건 접수됐다. 19일 모니터 심사위원회는 이를 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서울시와 산하기관에 전달했으며 이 중 5건을 우수 의견으로 선정했다. 이철호(38·노원구 중계4동)씨는 “여성 중증장애인의 출산 경험률이 96.7%에 이르는 데에서 보듯 출산을 원하는 장애인 가정은 많은데 출산휴가를 쓰기가 쉽지 않다.”며 “일괄적으로 출산휴가를 3개월로 산정할 게 아니라, 장애 여성은 장애 특성을 감안해 출산휴가 기간을 산정하는 심사·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명순(54·동작구 흑석동)씨는 “식당과 길거리 포장마차에 가보면 ‘오뎅, 닭도리탕’처럼 일본식으로 잘못 표기된 메뉴판은 지적해주고 올바른 표기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을 작성·배포해 우리 정체성을 찾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박재한(24·동작구 사당3동)씨는 “지하철6호선 공덕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구간에는 계단만 설치돼 있어 여행용 캐리어를 가지고 이동하기가 어렵다.”며 “캐리어를 끌 수 있는 비탈길을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한 공항 이용객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난희(40·강서구 화곡본동)씨는 “현재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물건 담을 봉투로 판매하고 있다.”며 “이를 확대해 일반 중·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쓰레기봉투에 물건을 담아 팔면 소비자들도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고 관련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 자연환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8월에는 ‘한강 수상시설 이용 활성화 방안’이 지정 주제로 제시됐다. 이에 조정훈(39·서대문구 연희동)씨는“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뗏목이나 나룻배 체험시설과 더불어 장터를 조성하면 전통문화체험 기회뿐 아니라 경제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렇게 달라졌어요 지하철역 은행·우체국 입점 적극 검토 지난 7월 의정모니터를 통해 제시된 의견에 대해 서울시 및 시 산하기관은 타당성을 따져 시책 추진에 반영하거나 장기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역에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은행과 우체국을 유치해달라.”는 의견에 대해 “현재 유사 시설을 운영 중”이라며 “계약기간 종료 후 시중은행 등이 입점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시 교육청은 “EBS와 입시정보 책자를 통해 고입·대입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의견에 대해 “현재 각 부서에서 시기에 따라 안내 책자를 배부하고 개인별 맞춤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며 “향후 EBS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고 회신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천주교, 올바른 신앙찾기 나섰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신앙의 해’(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를 앞두고 한국 천주교가 올바른 신앙 찾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1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와 춘천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와 본당, 단체가 ‘신앙의 해’와 관련한 각종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평신도들도 심포지엄과 평신도대회 등 다채로운 ‘신앙 쇄신’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되살리기 의미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교리서 반포 20주년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로운 복음화’를 모토로 제정한 시기. 갈수록 삶과 신앙의 괴리 현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가톨릭 전례와 의식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정한 일종의 캠페인 행사랄 수 있다. 한국 천주교는 신앙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초점을 맞춰 ‘신앙의 해’ 기간중 신앙 쇄신 운동을 중점적으로 벌여 나갈 방침이다. 청소년 세대의 급속한 감소와 노인세대의 폭발적 증가, 성사 생활과 신앙교육 참여 감소가 대세인 만큼 위기 극복을 위한 사목활동과 신행의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교구, 새달 본당 회장단 연수 서울대교구는 9월 12일 본당 회장단 연수를 통해 최일선에서 사목하고 있는 지역 본당 회장단에 ‘신앙의 해’와 관련한 안내와 특강을 실시한다. 이와 관련해 사목국을 중심으로 교구·본당별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교구는 10월 9∼12일 사제연수회를 열어 바른 신앙 찾기와 관련한 사제단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며 대구대교구도 현재 진행 중인 교구 시노와 연계해 새 시대에 맞는 새 복음화 전략을 집중적으로 도출할 예정이다. 교구가 사제연수나 특강에 치중한다면 각 본당은 좀 더 구체적인 교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 성북동본당은 9월 5일부터 본당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함께 읽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읽기반’을 운영하며 서울 연희동본당은 9월 중 교리서에 대한 강좌를 실시한 뒤 10월 14일 ‘가톨릭 교회교리서’를 내용으로 한 교리경시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회장 최홍준)는 ‘신앙의 해’ 개막일에 맞춰 10월 11일 ‘평신도사도직과 공의회’란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11월 9∼10일 대구에서 ‘신앙의 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주제로 평신도회의도 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홍대 옆 들여다보기

    홍대 옆 들여다보기

    ‘사람 많은’ 유흥가로 변해 가는 듯한 ‘홍대 앞동네’의 풍경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넘쳐나는 인파를 피해, 사라진 문화를 찾아 홍대의 변두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STREET 홍대 옆 자마이카왕-강렬한 이국적인 매력을 뽐내는 ‘자마이카왕’은 남미 특유의 분위기와 레게, 스카 음악에 취해 볼 수 있는 레게 바이다 홍대 옆 들여다보기 ‘사람 많은’ 유흥가로 변해 가는 듯한 ‘홍대 앞동네’의 풍경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넘쳐나는 인파를 피해, 사라진 문화를 찾아 홍대의 변두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그들의 발길이 향한 길 끝에는, 북적거리는 홍대 중심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매력들이 오롯이 숨어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백선영 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Area 01 홍대옆 상수동 & 당인동 두 개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곳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홍대 중심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지만, 상수동과 당인동 일대는 신기할 만큼 시간이 더디게 가는 동네다. 오래된 연립주택과 아파트, 작은 원룸 건물만이 즐비하던 이곳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홍대 복합문화공간의 상징인 ‘이리 카페’가 이사를 오면서부터이다. 이후 작은 카페와 밥집들이 와우산 3길 주변에 하나둘씩 들어서게 되었고, 상업화되어 가는 홍대를 아쉬워하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 주는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했다. 조용한 골목에 드문드문 들어선 개성 넘치는 밥집과 술집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딱 90년대 홍대의 모습이 이곳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오래도록 골목을 지킨 터줏대감들과 새롭게 둥지를 튼 젊은 이주민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스스럼없이 공존하는 모습 또한 이곳의 매력 중 하나다.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깨를 볶아 참기름을 짜는 기름집 바로 옆에 원두를 볶아 커피를 내리는 카페가 있고, 디카를 들고 골목을 구경하는 이방인과 길가에 앉아 쉬던 할머니가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며 지나치는, 두 개의 시간이 얽혀 만들어 내는 묘한 풍경이 일상이 되어 흐르는 곳. 그리고 그 풍경이 이끄는 대로 그저 발길을 옮기기만 하면 어느 새 이 동네와 친해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의 사랑방 이리 카페 한쪽에서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수다를 나누고 한쪽에서는 클럽 DJ가 노트북으로 열심히 믹싱 작업을 하며, 홀로 집필에 몰두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 산울림소극장 근처에 자리했다가 3년 전 지금의 상수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후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들락거리며 쉬어가는, ‘예술인들의 아지트’다. 물론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찾아와서 편하게 쉬어갈 수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엄청난 양의 디자인 서적, 화보집, 소설, 시집, 각종 잡지들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커피와 차, 간단한 식사까지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고 생맥주와 안주류도 판매해 간단히 술 한 잔 하기에도 좋다. 부정기적으로 낭독회나 공연, 사진전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37-4 영업시간 오전 11시~새벽 1시(일요일 새벽 2시) 문의 02-323-7861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갤러리와 카페의 멋스러운 동거 그문화 다방 & 갤러리 이리 카페와 더불어 상수동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꼽히는 곳. 일러스트 작가와 콘텐츠를 연구하는 아트콘텐츠그룹 ‘엠큐피엠’이 운영하는 갤러리 겸 카페로, 차를 마시며 각종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오른쪽은 갤러리, 왼쪽은 카페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약 한 달 주기로 교체되는 전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커피와 차 등 음료는 물론이고 샌드위치, 피자, 맥주, 위스키에 이르기까지 주류도 충실한 편. 그중에서도 직접 삶은 국산 팥과 근처 참기름 집에서 공급받은 미숫가루로 만드는 팥빙수는 꼭 맛봐야 할 메뉴이다. 직접 구워내는 수제 호두타르트와 고소한 쿠키도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이곳의 마스코트인 ‘검둥이’를 꼭 만나 볼 것.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해서 손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기스타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 28-9 1층 영업시간 낮 12시~새벽 1시(일요일 오후 1시~밤 10시) 문의 02-3142-1429 www.artetc.org 전국의 명품 막걸리 다 모여라 무명집 송명섭막걸리, 대대포막걸리, 산이막걸리를 아시는지? 이곳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브랜드 막걸리가 아니라 전국의 장인들이 솜씨를 발휘해 만든 명품 생막걸리를 두루 맛볼 수 있는 막걸리펍이다. ‘제대로 만드는 안주와 술만으로 승부한다’는 주인장의 고집은, 일일이 직접 마셔 보고 선정한 최고의 막걸리 리스트와 함께 음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차돌박이 버섯잡채, 홍어삼합, 해물 김치 반반전 등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직접 만들어 낸 안주들은 어느 것을 주문해도 만족스럽다. 실내를 잔잔히 채우는 70~80년대 추억의 가요들은 30~50대 손님들에게 훌륭한 술친구가 되어 주며, 미대 출신의 주인장이 직접 인테리어 한 감각적인 분위기의 실내는 20대의 감성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하다. 그 때문일까? 이곳의 단골들은 연령 폭이 무척 넓은 것이 특징이다. 어떤 막걸리를 마실지 고민된다면 가장 인기 있다는 제주 한라봉막걸리와 김해 봉하막걸리, 해남 산이막걸리를 선택해 보자.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29-7 2층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2시 문의 010-2722-0119 재활용 예술의 끝판왕 앤트러사이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오래된 공장 건물이 이토록 멋진 카페로 재탄생할 줄을.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지붕과 보수가 시급해 보이는 허물어진 벽, 녹슨 철문으로 만든 테이블, 오래된 컨베이어 벨트 등 폐기해야 할 것 같은 각종 소품들로 대담하게 멋을 낸 앤트러사이트는 홍대에서 가장 독특한 카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쪽에 자리한 창고에서는 매일 원두를 로스팅하는데, 커피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약배전(약하게 볶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7가지 원두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데 꼭 맛봐야 할 메뉴이다. 치즈스테이크 샌드위치와 직접 구워내는 크랜베리 스콘도 맛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왔다면 맥주 한잔으로 더위를 식혀 보자. 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57-6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2시(주말 오전 9시~밤 11시) 문의 02-322-0009 T clip. 이곳도 놓치지 마세요 카페 코알라 테이크 아웃 아메리카노가 단돈 2,000원! 샷 추가도 무료인 착한 카페. 이태리식당 달고나 테이블이 5개뿐인 작은 파스타집이지만 언제나 줄서서 먹어야 하는 인기 맛집. 카페 스톡홀름 유럽풍의 외관이 근사한 카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운영한다. 쇼낸 심야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제대로 된 일본식 요리와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이자카야. 탐라식당 고기국수, 멜튀김, 몸국 등 생소한 제주도 음식을 두루 내놓는 식당이다. LP愛 해바라기 카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 LP음악이 흐르는 카페이다. 바 상수리 ‘바 다’를 운영하던 오너가 새로 차린 칵테일 바. 가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해찰하기 좋은 곳 뭐 그리 대단할 건 없다. 길은 비밀을 알려주지도, 거창한 철학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홍대 주변을 천천히 해찰하는 자들은 시시껄렁한 골목 사이에서 영감을 흡수한다.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느라 우회하는 만큼 세상은 넓어진다. Area 02 홍대옆 연희동 은근슬쩍 떠오르는 문화예술의 보금자리 ‘연희동’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대부분은 고급 주택가나 전직 대통령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고, 맛있는 중국요리집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희동의 이미지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연희동을 이야기할 때, ‘문화예술’이라는 단어를 빼놓으면 이곳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조용한 주택가에 불과했던 연희동에 예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서울문화재단에서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을 오픈한 2009년 말의 일이다. 비슷한 시기를 전후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홍대를 빠져나온 작가들의 작업실과 크고 작은 문화 공간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낮은 단독주택들 사이사이로 감각적인 외관의 갤러리들이 거짓말처럼 들어서면서 어느새 연희동은 홍대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대안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연희동의 명소들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연희동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사러가 마트’를 출발점으로 잡는 것이 좋다. 거미줄처럼 뻗은 골목에 보일 듯 말듯 숨어 있는 독특한 외관의 갤러리, 아트스튜디오,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마치 동네 주민처럼 산책하며 둘러보는 것이 제대로 된 공략법이다. 높은 빌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산책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요소이다. 골목 산책을 끝낸 후 ‘궁동공원’에 오르는 것도 잊지 말 것. 그곳에서 연희동이 품은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예술가의 비밀 아지트로 놀러 오세요 갤러리 싱킹강 드로잉 작가 강일구씨가 작가와 대중이 스스럼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자신의 집을 개조해 오픈한 비영리 갤러리 겸 쉼터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유쾌하면서도 따스한 예술세계에 빠져 볼 수 있는 곳이다. 지하에는 작가의 작품 30~40점이 전시된 갤러리와 영화나 LP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 룸, 세미나실이 자리하고 있고 아슬아슬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3층의 다락방으로 올라가면 작가의 아담한 작업실이 펼쳐진다. 공간들을 차례로 둘러본 후 지하의 휴식 공간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행들과 원하는 만큼 쉬고 놀다가 가면 된다. 각자 먹을 음식을 준비해 가서 조리해 먹을 수도 있으나 술 반입은 금지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방문을 원하는 날로부터 최소 3일 전에 미리 이메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개관시간 오후 7시30분~밤 12시 문의 ilgook@hanmail.net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근사한 나만의 작업공간을 갖고 싶다면 더 미디엄 언뜻 보기엔 멋진 카페처럼 보이는 이곳은, 미디어 아트 관련 일을 하는 에이전시 ‘더 미디엄’의 사무실이자 갤러리, 아카이브, 회원제로 운영되는 오피스 카페의 4가지 테마를 지닌 복합공간이다. 조용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개인 공간 혹은 작은 사무실이 필요할 경우 회원 등록을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월 회비 20만원을 내면 1일 드립커피 1잔이 제공되며, 여기에 6만원을 더하면 점심식사가 포함된다. 작업기간이 짧다면 주 단위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프린터와 스캐너, 팩스, LCD 모니터, 프로젝터 등 기본적인 사무기기도 갖춰져 있으며 미리 얘기하면 작은 회의나 미팅을 열 수도 있다. 통유리로 된 실내는 밝으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이며, 한쪽에 자리한 서재에서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각종 예술서적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32-27 3층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문의 070-4084-8965 www.themedium.co.kr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갤러리 카페 카페 129-11 번지수를 카페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한 이곳은 차를 마시며 예술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갤러리 카페이다. 주인장의 동생인 배준성 작가와 더불어 김남표, 장펑 등 국내외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카페 벽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천장에 가득 붙어 있는 삼나무 조각들은 동적인 흐름을 표현한 작품인 동시에 도심에서 삼림욕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주인장의 아이디어. 특히 혼자 온 손님이 독서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치한 1인용 테이블이 특색 있다. 동네 카페 치고는 메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인데 직접 시켜서 먹어 보면 비싸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다른 카페에 비해 양이 무척 넉넉하며 어떤 음료를 시키더라도 잔이 비면 즉시 아메리카노 커피를 리필해 준다. 런치 메뉴로 제공되는 프렌치 토스트와 소시지, 달걀, 음료가 함께 나오는 프렌치 토스트 세트가 인기 있으며 흑임자 빙수, 유기농 두유 녹차 셰이크는 둘이 먹어도 넉넉할 만큼 양이 많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9-11 영업시간 오전 11시~밤 11시 문의 02-325-0129 T clip. 이곳도 놓치지 마세요 카페 포르 편안한 분위기의 갤러리 카페이자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에스프레소 하우스 가정집을 개조한 분위기의 로스팅 카페. 테라스 공간이 예쁘다. 뱅센느 민트색의 외관이 돋보이는 카페. 블루베리 팬케이크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코미치 앙증맞은 인테리어와 귀여운 소품이 사랑스러운 카페. 테이크아웃시 40%를 할인해 준다. 베어리버거 최근 오픈한 따끈따끈한 수제 버거집. 패티를 참숯에 구워내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김뿌라 연남동의 유명 스시집이 최근 이곳에도 오픈했다. 저렴하고 맛있는 오늘의 생선초밥(1만5,000원)이 대표 메뉴. 민스 키친 모던한식 레스토랑.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한식 메뉴를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10년간 참회의 편지 보냈지만… 같은 경찰에 3번 붙잡힌 절도범

    “냉대 속에 버려진 못난 제 가슴을 형님의 따뜻한 마음이 훈훈하게 덥혀 줍니다.” 2003년 1월 서울 서대문경찰서 강력5팀장 공수한(52) 경위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2002년 그가 검거했던 절도범 강모(47)씨가 영등포구치소에서 보낸 편지였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잡힐 때마다 경위에게 편지 강씨는 당시 경사이던 공 팀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꼬박꼬박 편지를 보냈다. 전주교도소로 이감된 강씨는 그해 8월에 보낸 편지에서 “범죄가 항상 마이너스인 것을 알면서도 다시 이곳에 있는 것을 진심으로 후회합니다.”라고 밝히며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 공 팀장도 짬짬이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강씨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강씨는 2006년 특수강도 혐의로 다시 서대문경찰서에서 검거됐다. 2006년 11월 강씨는 공 팀장에게 또다시 반성의 편지를 보냈다. “형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벌레만도 못한 동생, 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강씨가 괘씸할 법도 했지만 공 팀장은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라며 답장을 보냈다. 부모도 없고 형제와도 교류가 끊긴 그에게 영치금도 넣어 줬고, 성경책·운전면허교재 등도 보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난 5월 8일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식당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자가 음식을 주문한 뒤 직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카운터에 있던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 현장에 출동한 공 팀장은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강씨였던 것. 식당에 남긴 범인의 지문도 강씨의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강씨는 세 차례에 걸쳐 금반지 등 500만원 상당을 훔쳐 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오갈 데 없어 또다시 절도”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출소 후 오갈 데도 없이 살면서 돈 버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다시 범죄에 손을 댔다고 진술했다. 10여년간 강씨는 반성의 편지를 27통이나 보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 팀장은 “강씨가 검거됐을 때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못 했다.”면서 “이번에는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전두환 수갑찬 포스터 그린 화가 결국…

    전두환 수갑찬 포스터 그린 화가 결국…

    서울서부지검 형사2부(부장 장영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거리에 붙인 화가 이하(44·본명 이병하)씨에게 경범죄처벌법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5월 17일 전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담장에 전 전 대통령 본인이 전 재산이라고 밝힌 29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수갑을 찬 채 들고 있는 그림을 그린 포스터를 붙였다. 이씨는 경찰에 붙잡혀 즉결심판에 넘겨졌지만 서울서부지법은 “표현의 자유 등 논란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검사가 기소하면 정식 재판을 통해 다뤄야 한다.”면서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이후 이씨를 약식 기소했다. 이씨는 이전에도 정치인들을 풍자한 그림을 거리에 붙였다. 지난해 말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나치로 묘사한 포스터를 종로 거리에 붙였으며, 지난달 28일에는 부산 동구 거리에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풍자한 포스터를 붙여 부산진경찰서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대학강사 박정수씨는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가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아 논란이 됐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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