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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러 차관/나홋카공단 임차료와 상계/정부 추진

    ◎오호츠크해 조업료도 적용/전투기 등 무기도입은 부적절 판단 정부는 러시아가 경협차관의 원리금 상환 방법으로 제시한 구소련제 군사무기 도입이 부적절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고 대신 현재 조성중인 러시아 연해주지역내 나홋카 한국공단 후보지의 임차료,오호츠크영해 조업료등으로 상계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특히 나홋카지역의 한국공단 조성을 위해서는 일정 규모의 부지구입이 필요함에 따라 이 대금으로 상계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8일 『국방부가 최근 러시아의 전투기·미사일 도입을 검토한 결과,우리 무기체제와 대미 군사관계를 등을 고려할 때 도입할만한 무기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전하고 『조만간 관계부처간 최종협의를 거쳐 러시아측에 이를 공식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쇼힌 러시아부총리가 김영삼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경협차관 원리금 상환 방법으로 전투기·미사일등 군사무기로의 상계처리를 요청한 이래 그동안 국방부가 러시아정부의 제의를 검토해 왔다』면서 『따라서 새로운 상계방안을 부처간 협의중인데,나홋카공단 후보지 매입대금으로 상계 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같은 검토결과를 관계부처인 외무·재무·상공자원부에 통보했으며,이에따라 이들부처는 조만간 실무협의를 갖고 러시아정부와 원리금 상환문제를 재론키로 했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관계자는 『나홋카공단 조성이 후보지 구입문제로 난항을 겪고있다』고 지적,『토지구입대금으로 상계하는 방안을 러시아측도 정동 구제정러시아공관 부지문제가 있어 반대할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한·러시아 양국은 연해주 나홋카경제특구에 1백만평 규모의 양국 협력공단을 조성키로 합의해 놓은 상태이다.이 사업에는 전력·용수문제등을 포함,7억∼8억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정부 관계자들이 나홋카공단 후보지 투자환경개선 문제등을 우리정부와 논의키 위해 다음달 초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30일 러시아 잔여분 경협차관 제공을 중단키로 했는데 미상환 대러시아 차관은 현금 10억달러와 현물 4억7천만달러등 모두 14억7천만달러에 이른다.
  • 한­CIS 종교인들 서울서 「민족과 종교」 토론

    ◎10∼15일 앰배서더호텔서… 양측 지도자 70여명 참석/강제이주 중앙아 한인 신변보호 등 논의/인류 공생·공영 촉구 「서울선언문」채택 민족과 종교.구소련 붕괴이후 이데올로기의 소멸과 함께 국제관계에 최고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들 문제를 놓고 한국과 CIS(독립국가연합)의 종교인들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한국종교협의회(회장 이재석)가 10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21세기를 향한 한국과 CIS종교인의 협력」 주제로 개최하는 한·CIS종교회의는 CIS측 20여명,국내 10여개 종파 50여명등 양측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지난해 모스크바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회의는 특히 CIS의회가 최근 러시아정교회의 입김으로 외국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제한하는 종교자유법개정안을 통과시켜 종교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구소련 붕괴후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민족및 종교간 분쟁으로 이 지역 한인들의 신변과 장래가 크게 우려되는 시점에서 열린다는 측면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의 중점토론과제는 ▲종교간 갈등과 마찰의 해소방안 ▲스탈린 통치당시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중앙아시아지역 한인들의 신변보호문제 ▲CIS내 외국종교의 선교활동보장문제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13일 개최되는 전체회의및 분과회의.제1분과는 「한국과 CIS종교의 당면과제」,제2분과는 「민족주의문제와 종교의 역할」로 나누어 토론한다.또한 토론 중간에 「러시아의 각종교 선교현황」 「중앙아시아에 있어서의 민족문제와 평화」 「중앙아시아의 민족및 종교간 갈등과 한인의 미래」등 CIS의 종교상황에 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그리고 회의 마지막날인 14일에는 종교의 사회공동체와 인류공동체내에서의 공생·공영·공의를 촉구하는 「서울선언문」을 채택한다. CIS측의 주요참석인사는 러시아정교회의 최고지도자인 야로슬라블교구의 플라톤대주교(러시아 인민최고회의 대의원)를 비롯하여 카자흐공화국 이슬람교회장 라트벡 하지 니산바이 무프티,키르키스공화국 대통령종교담당보좌관 듀스페코프 아지즈벡 키릭베코비치,카자흐공화국 알마아타 고려일보 조영환사장등과 러시아의 개신교·로마가톨릭·불교대표들이 포함돼 있다. 한국측에서는 이재석종협회장·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김경수성균관장·임운길천도교종무원장·조정근원불교서울사무소장등 각 종파대표와 윤이흠(서울대)·황선명교수(명지전문대)가 참가한다.
  • 한­러 군사교류 본격화/러 함정 3척 31일 부산에 첫 입항

    ◎우리구축함 2척 새달 20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한국과 러시아 해군함정이 사상 처음으로 블라디보스토크항과 부산항을 상호방문한다. 또 이양호합참의장이 다음달 5∼12일까지 7박8일간 러시아를 공식방문,양국군의 상호이해와 우의증진방안등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국방부는 25일 한·러시아 양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11월 체결한 「93 한·러 군사교류양해각서」의 합의사항에 따라 두나라 해군함정이 상호 교환방문하고 이합참의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 함정이 상대국을 공식방문하기는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사상 최초이다. 우리 해군 함정 2척은 오는 9월20일 상오 경남 진해항을 떠나 22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3박4일간 정박한다. 특히 방문단장인 해군1함대 이수용소장은 체류기간중 러시아태평양함대사령부를 방문,브리노프상장(대장)과 양국군간 우호증진방안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연해주지사와 블라디보스토크시장도 예방할 계획이다. 우리 방문단은 1천5백t급 한국형 구축함 2척에 승무원 2백85명과 군악·의장·참관요원 1백17명등 모두 4백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함참의장은 오는 9월5일부터 12일까지 러시아를 방문,모스크바에 있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총참모대학원,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사령부와 하바로프스크의 극동군관구사령부를 둘러볼 예정이다. 한편 러시아 해군함정 3척은 오는 31일 상오 부산에 입항,우리 해군함대의 주관아래 환영식을 갖고 4박5일동안의 공식일정에 들어간다.
  • 한인 부부 탄 항공기/러 비행중 강제착륙/신원확인뒤 출국

    【모스크바 연합】 한국인 부부가 탑승한 한 소형 민간항공기가 며칠전 러시아 연해주 해역 상공을 비행하다 영역 침범기 요격에 나선 러시아 극동방공군소속 공군기들에 의해 강제 착륙됐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이 민간비행기는 러시아 민간항공국이 인가한 러시아영공비행허가를 갖고 있었으나 민간항공국이 사전에 이를 방공군에 통보하지 않아 착오로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방공군 당국은 이 부부의 관련 서류를 조회,사전에 러시아 민간항공국으로부터 영공비행허가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귀국조치했다. 그러나 한국인 부부의 신원및 탑승했던 비행기 기종과 비행목적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 구소,대일전쟁 피하려 한인 무장해제/러 가제타지,비밀문서 인용보도

    ◎레닌,“독립군부대 활동 전면중지” 명령/20년이후 항일무장투쟁 결정적 타격 일제시대 무장독립 투쟁사의 큰 획을 그었던 재러시아 한인 독립군부대들이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던 레닌정부에 의해 강제로 무장해제된 경위가 처음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 일간 로시스카야 가제타지는 21일 레닌비밀문서보관소의 자료를 인용,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정권이 처음에는 연해주 한인을 이용,극동에서 세계혁명의 불길을 지피려 했다가 이를 포기하고 오히려 한인 독립군부대들의 활동을 전면 중지시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다음은 이 신문 보도의 요약이다. 1차대전 직전 남우수리지방 국경관할 판무관은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한인 밀집지역인 연해주 포시에트(현재의 하산지역)를 추후 여러 구실을 달아 보호령으로 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10월혁명 이후에도 이러한 우려는 계속 남아 있었다.1919년2월 작성된 비밀경찰 체카(KGB전신)의 보고서는 당시 수많은 한인들이 소련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스파이로 취급당해 마구 구속되는 등 엄청난 탄압을 받았음을 지적했다. 이때 체카의장인 크세노폰토프는 모든 산하기관에 긴급지령을 내려 「한인들이 반일투쟁에 동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모든 구속자를 면밀히 조사해 석방하라」고 지시했다.이와 관련,레닌에게 제출된 한 보고서에는 「1919년 1·4분기중 극동에서의 노동단체 운영비및 선동요원 활동비로 20만루블을 외무부에 배당해야 한다」고 돼있고 이 문서에 레닌이 친필로 「내각에 회부할 것」이라는 메모를 적어 놓았다.당시 외무차관 카라힌은 이 문서에 다시 「외무부는 모스크바 보고슬로프스키가 6번지에 있는 한인민족연합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이 단체의 신문발행을 지원하고 한국에 선동요원을 밀파하며 1인당 왕복여비조로 1만루블을 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볼셰비키들은 1920년 들어(한인을 동원해)극동에서 세계혁명을 불붙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오히려 한인 무장조직을 반일투쟁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치체린 외무장관은 1921년 6월10일 공산당중앙위서기 몰로토프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당시 러시아를 근거지로 활동중인 대부분의 한인 독립군부대들의 활동중지를 제의했다.레닌도 찬성했다.레닌정부는 그해 6월12일 결의안을 통과시켰다.이 결의안은 일본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있는 한 「한인부대들이 극동공화국내에 계속 체류하거나 극동공화국과 소비예트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의 이동은 금지된다.부대를 해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부대들이 일반의 눈에 띄게 해서도 안되며 특히 공개적인 대일투쟁은 금지된다」고 못박음으로써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 빛나는 전과를 자랑해 온 한인 독립군부대들이 졸지에 무장해제 당한 것이다.
  • 구소지역(민족주의시대의 교민정책:상)

    ◎중앙아 한인 연해주복귀 도와야/강제이주 56년… 회교권에 흡수 우려/원동에 재정착,자치주 실현 모색을 옛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끝나면서 세계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인「민족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옛 유고연방이 무너진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사이에 1년 넘게 전개되고 있는 전쟁,옛소련 연방국인 아제르비이잔내의 아르메니아인 처리를 둘러싼 유혈분쟁등 지구상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은「민족문제」가 주원인이다.「민족주의」시대를 맞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사계의 권위자인 서울대 이광규교수의 글을 3회에 나누어 싣는다. 독일과 월남이 통일된 이후 우리는 한 민족이 분단된 두 나라에 살고있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우리나라가 다른 민족을 국내에 갖지 않는 세계의 예외적인 민족인지는 모르고 있다.세계의 모든 나라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복합민족국가임에 비해 우리 나라는 단일민족국가라는 예외의 나라이다.따라서 오늘날 세계의 최대과제인 민족문제가 도처에서 야기되고 있어도 이를 절실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을 갖고 있다.이러한 불감증으로 인해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에 대해서도 별관심이 없는 것같다. 현재 세계는 미소의 양극화냉전체제가 사라지면서 경제적 블록화와 민족의식의 고양으로 야기되는 분쟁현상을 보이고 있다.민족의식은 민족의 권익과 인권문제와 결부되어 있기에 경제문제까지를 포함하는 중요한 문제로 될 것이다.말하자면 포스트­양극시대는 민족문제가 주류를 이룰 것이고 인류경쟁의 단위가 민족이냐 국가냐 하는 시대가 오며,문제의 핵심은 민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따라 우리도 세계 도처에서 야기되는 민족문제를 심각하게 느껴야 하며 재외동포를 포용할 수 있는 민족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재 구소련 영내에는 45만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이중 우즈베크공화국에 18만여명,그리고 카자흐공화국에 10만여명이 살고 있다. 원래 이들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영토인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었다.이들은 1860년부터 1919년까지 이곳으로 이주하여 여러 지역에서 자연림을 개간하고 벼농사에 성공하여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신한촌은 초기 우리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LA의 코리아타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곳이다. 연해주에 자리잡은 한인들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하여 1937년 현재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즈베크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겪었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현재도 암담한 운명 앞에 놓여있다.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최근 구소련 중앙아시아를 다녀온 국회의원도 그곳에 그냥 살게할 방법밖에 없으며 그곳 한인들도 그렇게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이들은 연해주로 다시 이주해야 한다.이를 위해 구소련의 한인들은 연해주에 자치주를 얻어야 한다.한인이 이곳에 자치주를 얻게되면 재구소 한인들은 한인으로 남을 수 있다.그렇지 않고 현재의 우즈베크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에 그대로 살게되면 이들은 한세대안에 소멸되어 버릴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우즈베크와 카자흐공화국은 현재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하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그 작업의 과정은 첫째가 국어를 사용하는 것이고,둘째가 역사를 조작하는 것이며,셋째가 경제적인 독립이고,넷째가 종교의 강화이다.특히 이들 나라가 진행시키는 것이 둘째와 셋째이고 이것이 어느정도 확고해지면 다음 단계는 회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것이다.회교는 예부터 칼과 코란밖에 없고 회교권에는 인권이나 민족은 별의미가 없는 개념들이다. 한인들은 이들 공화국이 담을 더 높이 쌓기 이전에 그리고 러시아가 금년 4월에 보인 것과 같이 국회에서 한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금년 6월에 있었던 성명그대로 러시아가 한인에게 보상을 하겠다고 할때 연해주에 자치주를 요구하여야 한다. 연해주에 자치주를 이룩하면 우리 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하여 러시아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그뿐만 아니다.두만강개발에 재러한인도 참가할 수 있어 함경북도,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 그리고 연해주한인자치주가 우리 민족이 번영하는 활동무대가 되며 이에 따라 우리 한인 5만명이 거주하는 사할린도 한인의 무대가 될 수 있다. 45만 재구소 한인이 중앙아시아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아니면 지구상에 모두 합하여도 7천만명밖에 안되는 우리 한인을 적절한 장소에 옮겨 한인으로 활력을 넣고,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를 확대할 것인가는 바로 눈앞에 있는 중요한 민족의 선택이다.
  • 오호츠크해 조업/러 금지활동 강화

    【모스크바 연합】 외국어선의 오호츠크해 조업을 금지하기 위한 러시아인들의 활동이 최근 강화되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29일 연해주 선박국소속 유조선들이 오호츠크해로 출어하는 외국 트롤어선에 대한 연료공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측의 이번조치는 명태잡이를 주로하는 중국과 폴란드어선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이들 외국어선단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연료공급을 받고있어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 대하장편소설 「텐산산맥」 출간 백한이씨(인터뷰)

    ◎“소련 해체 됐지만 한인 탄압 계속”/지난해 연해주등 돌며 한인 생활상 취재 『스탈린은 연해주의 한인들을 무자비하게 이주시켰습니다.비극이었지요.그런데 공산주의도 무너지고 소련도 해체됐지만 한인들에 대한 탄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오히려 더 큰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백한이씨가 최근 재러시아 한인들의 수난사를 그린 5권짜리 대하장편 「텐산산맥」을 펴냈다.그는 『내가 태어난 해가 바로 스탈린의 강제이주가 있었던 1937년』이라면서 『이 소설을 쓴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던 것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대하장편은 백씨가 지난해 구소련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성페테르부르크에서부터 한인들이 모여사는 알마아타 타슈켄트를 거쳐 하바로프스크등 연해주 일대를 돌며 직접 취재해 최근 완성한것. 『이 작품은 한말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재소한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담은 것입니다.나라잃은 백성의 항일투쟁기이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동족 사이 분열의 폐해를 짚어본 것이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일제하 카프문학운동에 참여하다 소련 땅으로 망명한 작가 조명희를 모델로 한 백명희. 『이 작품은 현재의 시점에서 끝을 맺고 있지만 아직 미완입니다.구소 한인들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문이지요.또 정치적 이유 이외에도 그곳에 살고있는 내또래의 중늙은이들까지 우리말을 거의 잊어버리는등 충격적인 기억이 많았던 만큼 쓸거리도 무궁무진합니다.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도 5권 분량은 되리라고 봅니다』 이 작품을 대하장편이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대하소설과는 달리 4권의 소설과 한 권의 장시라는 특이한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그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할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이런 체제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 이원규 대하소설 「거룩한 전쟁」(이작가 이작품)

    ◎항일의병 투쟁 다룬 본격 전쟁소설/문경대의병장 이강년 중심,10여년 활약 담아/2년동안 격전지 직접 답사 사실성 더해 이원규(46)의 대하역사소설 「거룩한 전쟁」(신구미디어간)은 유림주도의 항일의병투쟁을 소설화한 작품이다.한국근·현대사의 여명을 전쟁사적인 입장에서 파헤친 본격 전쟁소설이기도 하다. 전4부 12권 분량중 이번에 출간된 1부 3권의 소제목은 을미의병의 선봉장 이강년(1858∼1908)의 기병 격문 「누가 이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에서 따왔다.일천대가 넘었던 구한말의 의병진가운데 가장 극적인 투쟁을 전개한 이강년의 문경 의병진대를 중심축으로 잡아 최초 기병에서부터 10여년의 투쟁,그리고 간도독립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극사실주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속으로 찾아가서 독립전쟁의 탁월한 영웅들과 수많은 무명소졸들을 만났고 그 결과 이 시기의 역사가 패배와 굴종이 아니라 치열한 항쟁과 승리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거룩한 전쟁」1부에는 이강년 유인석 홍범도 신돌석 김수민 이인영등 의병사에 빛나는 주역들이 200여명의 또다른 역사실존인물들과 함께 등장한다.여기에 이형재·노광등 가상인물들이 가세,18 95년 이후 15년동안 지속된 의병전쟁사에 대한 소설적 재미를 돋운다.제1부 전3권가운데 상권에서는 경북 문경의 사대부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이강년이 을미년(1895)고향에서 소백산 포수들을 규합,기병해 고모산성등지에서 전투를 전개하다가 제천의 유인석이 이끄는 호서의병대와 합류하는 과정이 전개된다.이후 관군연합부대에 의해 패퇴,유인석진이 서북지방을 거쳐 서간도로 들어가는 과정과 함께 만주유민들의 고난사와 수전개척이 다뤄졌다.중권은 북간도에 진출해있던 유민들이 자생적으로 간도의병대를 조직하는 과정이,하권에서는 정미년(1907)군대해산과 더불어 일본수비대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의 기세가 꺾이고 생존자들은 북간도와 연해주로 흘러 들어가 재기하는 의병사가 역사보다 더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다. 이원규는 지난 84년 등단이래 88년 대한민국문학상신인상(침묵의 섬),90년 박영준문학상(황해),93년 동국문학상(천사의 날개)을 수상하면서 「우리 문단의 두터운 허리」로 각광받아 온 작가.이 작품집필을 위해 18년동안 몸담아온 고교교사직을 지난해 사직한뒤 배낭을 메고 중국으로 건너가 한달동안 만주일대를 배회하며 자료를 수집했다.91년 1차 답사에 이은 두번째 여행길이었다.작가는 또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년동안 소백산을 중심으로한 호서의병대의 격전지를 답사했다.당시 의병토벌에 쓰인 일본군 작전지도등 19 00년대 지도 100여본을 입수하는등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오는 95년 완간을 목표로 집필중인 제2부에서는 경술국치후 북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국경문제,홍범도의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어랑촌전투등 독립군의 투쟁을,3부는 임시정부계열의 민족주의파및 19 30년대이후 중국동북지역의 파르티잔투쟁을,마지막 4부는 해방과 분단을 거쳐 6·25발발까지의 숨가쁜 시기가 그려질 예정이다.역사소설의 공간적 지평을 넓힐 대작 「거룩한 전쟁」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맥을 대는 새로운 대하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러,“세바스토폴은 우리땅”/의회서 결의… 영토분쟁 악화

    ◎54년 할양… 소련붕괴후 반환 요구/우크라,스타트 비준 거부 새명분 러시아의회가 9일 크림반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령 세바스토폴시를 러시아영토라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양국간 영토분쟁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이날 의회는 「러시아흑해 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시가 러시아연방 영토임을 확인하는 결의안」을 찬성 1백66,기권 1의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대통령은 즉각 이 결의안을 『중대한 내정간섭행위며 헬싱키협정등 국제규약을 위반한 불법』이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이 결의안은 현재 논의중인 새헌법에 세바스토폴시를 러시아영토로 명시해넣도록 하고 이 문제에 대해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일체 배제한다는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바스토폴시는 1783년 러시아영토로 편입된뒤 지난 1954년 모스크바당국이 「선물」형식으로 우크라이나에 넘겨주었던 곳이다.그러나 91년말 소연방해체이후 러시아내 일각에서 과거의 영토이양절차에 법적근거가 없음을 들어 영토반환요구가 계속돼왔고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계이다. 러시아의회는 이와함께 『지난달 17일 옐친­크라프추크 양자간 합의한 흑해 함대 50대50 분할합의에 반대한다』는 결의안도 채택했다.이 결의안은 『흑해함대는 단일통합함대로 유지돼야 하며 함대의 지위변경은 국민의 의사에 의해 결정돼야지 양국 대통령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고 규정했다. 한편 러시아의회의 이번 결의안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은 물론 자국에 배치된 핵무기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긴장의 도를 더하고 있다.우크라이나의회는 지난 2일 당초의 비핵국가선언을 번복하고 자국영토에 배치된 구소련의 전략핵미사일 1백76기의 소유권이 자국에 있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러시아의회의 이번 결의는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의회에 상정돼 있는 START­Ⅰ(전략핵무기감축협정)의 비준과 우크라이나의 NPT가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점을 감안,이번 의회결의에 대해 러시아 국내에서도 다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우선 10일 모스크바에서 양국과 벨로루시등 3국간 경협,관계증진을 위한 총리회담이 개최되고 있는등 양국간 화해노력이 진행되는 시점에 급격히 채택됐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스베르들로프스크,연해주등 자치지역들의 공화국승격선언과 지방공화국들의 권한 확대요구로 헌법채택작업이 가뜩이나 답보상태에 있는데 세바스토폴시의 귀속문제까지 헌법내용에 포함시킬 경우 결과적으로 새헌법채택만 지연된다는 우려도 있다.옐친 지지세력인 개혁파 일각에서는 이런 점들을 들어 결의안을 채택한 의회의 「숨은 의도」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 연해주 한인 10만여명 거주/자치공 선포로 관심 고조

    ◎개발 잠재력 엄청… 경제 파장 클듯 러시아 극동 연해주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수도로 하는 자치공화국을 8일 선포,다시 주목을 받게됐다.연해주는 구한말 굶주림과 일제의 핍박을 피해 우리선조들이 정착한 한맺힌 땅이며 지금도 10여만명의 한인들이 이곳에 흩어져 살고있다.전체인구 2백30만명에 면적은 16만㎢. 물론 연해주가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떨어져나가더라도 불가분의 관계로 남겠지만 독자적인 국가체제 구성권 및 독립적 대외무역 결정권을 행사할 경우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권에 미칠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특히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엄청난 개발잠재력으로 인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이곳은 비탈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지형으로 우리의 부산과 흡사하며 지난해 6월에는 두 도시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총인구 68만명중 약 2천명의 한인들이 살고있는데 대부분이 교육수준이 높고 사무원 학자 의사등 지식층이 많은 편이다.한국 뿐만아니라 미국 인도 호주 등이 이미 이곳에 영사관을 개설했고 나홋카에 있는 일본·베트남 영사관도 곧 이 도시로 이전할 예정이다. 개방과 함께 이 도시에는 현재 2천여개의 회사,10개의 상품교환소,70여개의 은행 본·지점들이 들어섰으며 외국 투자무역사절단이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한국기업으로는 현대건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한편 러시아정부는 최근들어 스탈린 통치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한인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기로 확정,연해주는 이제 우리에게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앞서 지난 4월에는 37년의 강제추방당시 18만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에게 러시아당국이 정치적 명예회복조치를 취한바 있다. 연해주의 자치공화국 설립 움직임과 관련,현지언론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연해주의 「딴살림」선포 계획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고향인 스베르들로프스크와 볼로드가등이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자치공화국 움직임과 맞물려 러시아의 새 연방헌법이 조만간 채택되면 더욱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 러,「강제이주 한인」에 배상/최고회의 의결

    ◎액수·수혜대상등 구체논의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러시아 정부는 스탈린 통치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한인동포에 대해 지난 4월 정치적 명예회복조치를 취한데 이어 손해도 배상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옐친 대통령 직속 민족문제국가위원회(위원장 샤흐라이 제1부총리)의 최보리스 피압박민족담당주임은 6일 지난 37년의 강제추방당시 18만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이 받은 정신적·물질적인 피해를 배상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주임은 러시아 정부의 배상방침이 최고회의의 의결에 따른 것이라면서 그러나 구체적 배상액수와 수혜대상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회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최종결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러시아 최고회의는 지난 1일 「피압박민족 명예회복법」에 대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개정법에 따르면 강제이주당한 한인을 포함한 피압박민족과 각 개인이 받은 피해를 단계적으로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러」 연해주당국/자치공 선포 계획

    【모스크바 DPA 연합】 러시아 극동 연해주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수도로 하는 공화국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7일 보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신문들도 연해주가 러시아연방과 불가분의 관계로 남겠지만 독자적인 국가체제 구성권 및 독립적 대외무역 결정권을 행사할 것임을 선언하는 성명을 실었다. 크라스노예 즈나미야와 우트로 로시이등 현지 신문들은 연해주 당국이 완전한 영토권을 보유하고 연방권력기구들에 대해서도 전권대표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 국회 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중앙아의 한인사회:하)

    ◎회교권 여건 고려 국내교회 선교 신중을/자치주 거론은 무리… 공관설치 서둘러야 ▷우리정부 지원◁ 구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사라지면서 우리에게도 50여년 막혀 있었던 대륙이 열리게 되었다.연변,연해주,중앙아시아등 북방의 동포들과도 교류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50년 가까이 분단된 시대를 살며 좌익이다 우익이다,남이다 북이다,민주다 반민주다 하며 아옹다옹 다투고 민족역량을 엉뚱하게 소모하면서 꽤나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편하게 산 편이다.고향을 잃고 정착지마저 잃고 게다가 강제로 쫓겨가면서 식구마저 잃고 질기디 질긴 질경이처럼 살아남아야 했던 중앙아시아의 동포들에 비하면 말이다. 타슈켄트주 시장에서 만난 이주민 1세 동포 아주머니들은 모두가 우리말을 잘했다.그래도 오순도순 동포끼리 살면서 우리말은 잊지 않은 것이다.반찬거리나 하라며 풋고추를 건네주던 아주머니,어찌 그리 인심도 좋을까.사위는 김씨,며느리는 이씨하며 환하게 웃던 한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또 하나의 귀중한 「이웃」을 발견했다. 중앙아시아 방문기간 내내 우리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회교근본주의의 영향,탈러시아화 및 이슬람화 정책으로 인한 우리 동포의 불이익 사례,민족간 불균등과 차별정책으로 인한 피해,한국 교회의 선교활동이 미치는 영향,우리 동포들의 연해주 등지로의 이주 가능성,공관 설립의 필요성 등이었다.그러나 소연방 붕괴후 우리 동포들이 받고 있는 차별이나 불이익은 연초의 국내언론 보도처럼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자치주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었다.언어정책 등의 탈러시아화 경향으로 인한 우리 동포들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수십년에 걸쳐 피눈물로 건설한 정착지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만큼 심각하지는 않았고 대부분의 동포들이 실제로 이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민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조차 1% 정도의 인구를 가진,1백20여개 민족 중의 하나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러한 사정은 현재나 향후에 우리 동포들이 혹 겪을 수도있는 민족분규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한인들을 그 주요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다민족국가 내에 전반적인 민족정책의 부산물로 나타나게 되는 결과일 것이라는 의미이다.따라서 이 지역에서 한인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해당국가에 민족정책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자칫 내정간섭적 성격이 돌출되어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은 비이슬람 교인들에 대해서는 분명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이런 점에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의 지역과 인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한인들에게도 잠재적 위협요소인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한인들이 집중되어 있는 우즈베크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은 아직 이슬람이 종교로서보다는 민족전통의 문화로서의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양국 지도자들도 근본주의의 확산을 적극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다.따라서 장기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싶다.다만 아직도 내전이 계속되어 한인 동포들이 국경을 넘어우즈베크 등지로 피란해 오는 타지크공화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정말 신중하고 장기적인 대책도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은 한글 교육을 비롯한 여러가지의 자선사업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그러나 자칫 경쟁적인 선교활동이 한인동포의 장래에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는 없는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십자가도 걸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한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민족이라고 여겨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우리 교회의 선교활동이 부디 현지 실정에 맞게,우리 동포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 말까지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베크공화국에 설치키로 되어 있는 공관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설치되어야 한다.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공관 및 한국 교육원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각종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민족문화를 부흥시키는 동시에 남북 공관 사이에 상호 협조적이고 공정한 활동을 보장하여 아직까지도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각 한인단체들을 한데 아우르고 모든 동포들에게 통일된 조국의 상을 주어야 한다.이제 그곳에서도 통일의 기운을 싹 틔워야 하는 것이다.조국은 둘인데 어느 한 곳 제대로 도움주는 곳이 없다는 어느 동포의 푸념을 이제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 우즈베크공(중앙아의 한인사회:중)

    ◎국회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민족화합정책으로 이민초기 고충 해소/극면성 바탕 경제발전 기여… 자긍심 높아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약45만명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그들 가운데 3분의2에 달하는 30여만명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1937년,18만여명에 달하는 연해주 거주 동포들이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온 이후 그들은 황량한 박토 중앙아시아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역이었다.강제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형제들,아들 딸들이 죽었지만,그리고 이주된 후 창문도 없는 토굴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우리 동포들은 천부적인 근면성과 탁월한 농사 기술로 콜호스(Kolkhoz)라고 하는 수많은 협동농장을 건설했고 지역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농사를 지어냈다. 현재는 그곳의 정부나 공·사기업에 진출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포도 많이 있고 대학교수 등의 전문 인텔리들도 그곳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그들은 지금까지의 중앙아시아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고 대체로 중류 이상의 다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카자흐공화국에서 동포지도자들을 직접 만났을때 그들의 표정에서 한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마아타에서의 일정을 끝낸 우리 조사단은 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했다.우즈베키스탄의 국기가 선명히 그려진 아에로플로트기는 기내 방송을 러시아어에 앞서 우즈베크어로 시작하고 있었다.우즈베크공화국은 TV나 라디오 방송,상점의 간판이나 공문서 작성 등을 이미 우즈베크어로 공식화했다.총인구 2천만명중 70%에 달하는 우즈베크민족의 비율과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독재가 급속한 탈러시아화 및 우즈베크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사회발전 모델은 카자흐공화국과 마찬가지로 터키식의 발전방식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종교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인접한 이란 등지의 회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는 달리 온건하고 대중적인 성격의 종교문화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민족화합 정책과도 잘 부합하고 있었다.그러나 현지의 우리나라 교회들이 십자가를 옥외에 걸지 못할 정도로 타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통령 민족문제 담당 비서관 사이도프와 우즈베크 공화국 의회 국제외교위원장 지야모프를 차례로 면담했다.그들은 한결같이 한인들의 우수성과 근면성에 대해 칭찬하고 한인들은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으로서 다방면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잘 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민족화합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들은 올해 초 일부 국내언론에 보도된 우즈베크 민족주의자들이 금년내로 한인들에게 이 지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이에 대해 대단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또한 「재CIS 고려인연합회」가 자치주 추진과 관련하여 우즈베크 안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민족화합정책이 다민족국가에서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그들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족분규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한인인 블라디미르박이 회장으로 있는 치르치크시의 비철금속내열합금 공장과 지모페이황이 회장인 타슈켄트주의 폴리타젤 협동농장을 방문했다.그곳을 방문케된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우즈베크 정부의 배려때문이었다.우리동포들은 한결같이 몸집이 크고 건장해 보였다.지도급 인사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몸에 밴 듯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특히 우리는 폴리타젤 농장에서 1937년 강제이주후 눈물겨운 노력으로 정착지를 개간하고 훌륭한 터전으로 변화시킨 동포 1세들을 만날 수 있었다.칠순이 넘었음에도 아주 건강한 모습이던 그들은 인심 또한 후하여 농장에서 재배한 갖은 과일과 고기를 보드카와 함께 대접해 주었다. 사실 필자는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강제이주 초기의 파란만장한 신산고초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단,술자리에서의 어우러짐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마저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이유없이 즐겁고 흥겨운 마음을 확인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일일 것이다.안무혁 의원과 필자는 합금공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 칼을,폴리타젤 농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상을 선물로 받았다.우리 문화와 우리 풍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었으면 더 좋았으리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이미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인 것이다.
  • 국회 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중앙아의 한인사회:상)

    ◎카자흐공의 실상/평등정책 표방속 민족주의 부흥책 도모/일부대학·협동종장서 한인 추방하기도 구소련의 붕괴이후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민족주의의 발호,종파간의 분쟁으로 언제 또다시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실제로 타지크공화국에 거주했던 1만3천여명의 한인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인접국에서 난민생활을 해야만 했다.현재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는 구소련의 전체 한인 45만명 가운데 4분의3인 32만명의 한인들이 살고있다.국회 외무통일위 소속 안무혁(민자),이부영의원(민주)은 지난 4월30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한인 10만5천여명이 살고있는 카자흐공화국등 중앙아시아지역을 방문,한인들이 겪고 있는 수난의 실태를 살펴보았다.두의원은 5공 당시 권력과 재야운동권의 핵심이라는 상반된 경력에도 불구,「동반여행길」에 올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었다.이의원이 현지조사활동을 통해 체험한 한인동포들의 실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로 가기 위해 탑승한 아에로플로트 기내는 마치 우리나라 70년대의 시외버스 속 같았다.좁은 좌석에다 때묻은 시트며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기내를 가득 메웠다.우리민족같은 인상을 지닌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1백20여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저렇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아무 분란없이 한 공동체에서 오순도순 살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우리는 단일 민족임에도 남북이 갈린데다 남쪽에서마저 호남이다,영남이다 하며 가르는 판이지 않은가.이제 소연방이 붕괴하면서 여러 민족들을 한데 묶었던 사회주의라는 울타리도 급격히 무너져 내리면서 탈러시아화,민족주의화 흐름이 독립국가연합(CIS)내 곳곳에 팽배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바로 이 흐름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우리 한인동포들도 이제 새롭게 변화된 삶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특히 지난 1월에서 3월 사이에는 타지키스탄의 내전 상황과 민족 차별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의 실태가 보도된 바 있다. 「중앙아시아 한인동포 실태 조사반」이라는 명칭으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의 공식적인 파견 임무를 띤 안무혁의원(민자당)과 필자 그리고 한백연구재단의 정영국박사 등 우리 일행의 중앙아시아 행은 바로 그들의 변화된 생활과 그곳 현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서울을 떠나기 전 언론에서 안무혁의원과 필자의 동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하기도 했지만,지난 시기 냉전으로 세계가 얼어 붙고 군사 독재로 숨죽여야 했던 시절 한반도 남쪽 한켠에 갈라져 살던 우리가 위정자건 재야운동가건 어디 북방의 동포들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있었던가.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인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5시간여를 날아 알마아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31일 이른 아침이었다.가랑비가 간간이 뿌리고 있었다.우중충한 하늘이 정착지를 위협 당하는 동포들의 암담한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떠나기 전부터의 우리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변화된 사회속에서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동포들의 불안한 삶과 미래에 가 있었다. 카자흐공화국은 총인구1천7백여만명 중 44%에 이르는 카자흐인을 비롯,1백2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며 우리동포들은 10만5천여명이 살고 있다.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민족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따라서 표면상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카자흐공화국은 다른 한편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부흥을 도모하는 2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나자르바예프대통령 경제고문인 방찬영 박사가 설립한 「카자흐스탄 과학,경영 및 전략센 터」에서 만난 사투발딘 교수는 카자흐인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몽골지역에 거주하는 15만명 정도의 카자흐인들 중 작년에 5만명을 이주시켜 왔다고 전했다. 한인들과 카자흐민족은 각기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시장충돌이 없다는 것도 카자흐민족과의 관계가 상호 조화의 관계라는 하나의 예로 제시되기도 했다.우리가 만나본 카자흐공화국 라크마디예프 문화성 장관이나 토카예프 외무차관 역시 이해관계에서 대립이 없음을강조하고 한인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교 근본주의의 흐름은 중앙아시아에 인접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지에 상존해 있어 언제 확대될지 모르는 형편이고 타지크에서 내전이 발발하듯이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미쳐 종파간의 분쟁이 정권 쟁탈의 위기상황으로 비화되거나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카자흐인들이 효율적인 적응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민족분규는 우리동포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는 1920년대 초 연해주에서 「레닌의 기치」로 출발했던 한글신문 「고려일보」를 방문했다.정영환 사장 역시 민족간의 불평등으로 우리 동포들이 당장 피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으나 몇몇 대학이나 협동농장 등에서 한인이 쫓겨나는 사례가 있음을 지적하고 장기적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변화에 따라 한인 동포들이 불이익을 받을 상황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았다. 고려일보는 매우 전통있는 신문이지만 1년전부터 카자흐정부 보조금이 폐지된 후로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었다.얼마 못가 파산하리라는 추측들이 있었다.한달 운영비 약 8천달러만 지원받는다면 건재할 것이었다.정부나 민간차원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 한반도·중국 동북부·만주까지 통치(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3)

    ◎대표적 유물 비파형동검 고르게 출토/전통·재야학자사이 문헌해석 논쟁 해결 고조선이 중국 북부와 만주·내몽고·연해주를 통치한 동방의 대제국이었는지,평양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북부와 중국 동북부의 요령지방 일대에 형성된 작은 나라였는지는 70∼80년대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소국이었음을 주장하는 전통사학자나 대제국이라고 강변한 재야사가측 모두 문헌해석에만 의존한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을 서술한 사료는 우리측 문헌과 중국측 기록을 합하더라도 현재 10여종이 남아있는데 불과하다.더욱이 학자마다 각 사료에 대한 가치평가가 엇갈리는데다 믿을만하다고 공인된 사료에 대해서도 자구별 해석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사료가운데 고조선을 기록한 최고의 문헌인 삼국유사의 경우 고려 후기에 쓰여졌고,그 내용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전통사학자들에게 외면당할 정도였다. 「고조선 평양중심설」은 조선 후기 한백겸·정약용등 실학자들이 우리의 역사지리를 연구하면서부터 시작돼 70년대 중반까지 통설로 인정됐다.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전통사학자들이 국내사료를 무시하고 중국측 문헌에만 의존,고조선의 영역을 축소시켰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전통사학자들은 재야사가들이 「대제국설」의 근거로 제시하는 「단기고사」 「규원사화」 「환단고기」등을 후대에서 조작한 위서로 판단,사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료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평행선을 긋는 동안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토대로 한 「이동설」이 제시됐다. 즉 고조선이 초기에 중국 요령지방에서 형성돼 점차 인접한 사회들을 통합하면서 만주와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이 중국 서북부 일대와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발견된다는 점을 들고,청동기문화를 가졌던 고조선이 중국 서북부와 한반도에서 단일 문화권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했다. 비파형동검은 요령지방에서 많이 출토돼 요령식동검이라고도 불리는데,검의 날과 손잡이 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시킨 형태여서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중국식동검과는 확연히 구분된다.한반도에서는 충남 부여 송국리의 석관묘에서 출토되는등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루 발견되고 있다. 비파형동검은 한국형동검(일명 세형동검)으로 발전했으며 이들 동검은 우리의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 청동기문화 위에 성립한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중국 동북부와 만주일대,한반도를 세력범위로 하였다. 이같은 학설을 뒷받침하는 연구성과가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 고조선 영역 논쟁(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2)

    ◎대제국설·평양중심설 맞서/전통사학자,“요하부근서 쫓겨 내려와”/재야사가들,「정사」확인 행정소송까지 1987년 2월26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강당.학술대회장답지 않게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날은 정문연이「한국 상고사의 제문제」를 주제로 연 학술대회의 둘째날.회의는 첫날 발표된 고조선의 성격·세력범위등 주제에 대한 강평과 종합토론순으로 이어졌다.강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8백여명의 방청객이 몰려 열기를 더했다. 토론이 시작되자 20여명이 질문순서를 놓고 마이크를 빼앗느라 몸싸움이 벌어졌다.질문은 고조선에 대해「전통적인」해석을 내린 학자들에게 집중됐다.『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퍼부어졌고 노골적인 인식공격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박당한 학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은채 침묵만 지켰다.이날의 사건은 고조선 해석을 둘러싸고 70∼80년대 전개된 「전통」 사학자와 재야사가들과의 논쟁의 결정판이었다. 당시 「고조선」 논쟁에서는 학문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학설들이 무분별할 정도로 다양하게소개됐다.따라서 「고조선」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논쟁의 과정,시대적 분위기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영토범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중국의 요하 동쪽에 자리잡아 중국세력과 대치하다 전국시대때인 기원전 3천년쯤 연나라에 쫓겨 청천강 이남으로 내려와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이 학설은 그러나 70년대 중반이후 재야사학자들로 부터 격렬한 도전을 받게 된다.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씨를 비롯한 재야사학자들은 76년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했으며 78년 정부를 상대로 정사확인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이들은 소장에서 『고조선은 중국의 산동성과 만주·내몽고·연해주를 지배한 동방의 대제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이같은 내용을 국사교과서에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81년에는 국회 문공위에서 국사공청회가 열려 재야사학자들이 목청을 한껏 높였다.85년에는 경주의 한 약종상이 국사학계의 태두인 이병도박사(89년 작고)를 「일본의 문화간첩」이라며 서울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재야사학자들의 공격표적이 되었던 한 국사학자는 당시를 『권위주의 정부가 주체의식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사회 일각의 국수주의,젊은이들의 낭만주의가 복합돼 우리의 상고사를 확대해석하려는 이상현상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정사확인청구소송」에서 「정문연 학술대회 소동」에 이르는 일련의 논쟁과정은 「고조선의 제문제」가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이는 또 역사학계가 우리의 상고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야사가들의 활약은 87년 「6·29」민주화선언 이후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은 아직도 조용한 가운데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 러시아 한인(외언내언)

    러시아인들은 그곳 한인들을 카레스케라 부른다.한인스스로 고려인이라 자칭한데 연유한다.공산 소련때부터 그리 불렀다니 일제에 나라잃고 해방후엔 분단·대립됐던 조국의 비극을 말하는것 같다.조선인도 아니요 한국인도 아닌 하필이면 고려인인가.광복과 통일의 염원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러시아 한인이민의 시작은 1863년 보리고개때부터다.가난과 기아의 한인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땅에 정착한 것이 효시다.월경자가 늘어나자 러시아측은 설득과 처벌의 위협으로 귀환시키려 했으나 돌아가도 굶어죽거나 처벌받을수 밖에 없다며 버티는 그들을 어쩔수 없었다. 강인한 이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수공업을 일으켜 기어이 러시아정부의 신임을 얻었으며 1917년엔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의 한인이 22만5천여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일제가 조국을 강점하자 독립군을 일으켜 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이들은 그러나 또한차례 시련을 겪게 된다.스탈린의 강제이주인 것이다. 스탈린은 연해주 한인들을 「불온인민」으로 낙인찍어 37년 9월부터 4개월간 18만이나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이주시킨 것이다.나치스의 유태인호송을 연상시키는 화물열차에 실려가면서 기아와 질병으로 희생된 자가 무릇 수천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망국민의 수모요 비운이었다. 오늘의 구소련 중앙아시아일대 거주 한인들이 바로 그들이며 그 후예인 것이다.러시아의회가 31일 통과시킨 「러시아한인 명예회복법」은 바로 그들의 수난과 수모에 대한 56년만의 공식사죄요 명예회복조치인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법이 러시아한인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정작 강제이주민의 뿌리가 있는 중앙아 우즈베크(18만)와 카자흐(10만) 한인에게도 연해주 이주자격등 같은 사죄와 명예회복조치가 있었으면 한다.이들지역은 지금 유혈분쟁의 위기에 처해있다.러시아와 관계공화국의 배려가 있어야 할것이다.
  • 한인 명예회복법안 통과/러 의회/중앙아동포 연해주이주 허용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 최고회의 민족원(하원)은 31일 스탈린시대 중앙아시아로 강제추방당한 한인들의 정치적 명예회복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재러시아 한인 명예회복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최종 확정되기 위해서는 최고회의 상원격인 공화국원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적 관례로 보아 통과가 확실시됨에 따라 사실상 채택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 러시아는 지난 37년의 한인 강제추방과 관련,56년만에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한 셈이며 앞으로 50만 한인민족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고려인연합회의 김영웅회장은 이 법안통과에 따라 50만 한인들의 오랜 숙원인 명예회복문제가 해결됐으며 그동안 묵시적으로 허용돼온 연해주 이주가 법적으로 보장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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