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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영 내무 충주 문화회관 ‘새마을 운동’ 특강 요지

    ◎새마을 운동은 ‘통일·세계화’ 주역 조해영 내무부장관은 20일 충북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새마을지도자 1천3백여명을 대상으로 ‘새마을운동의 방향’을 주제로 특강했다. 다음은 특강요지다. 새마을운동은 크게 3단계로 활동시기를 나눌 수 있다. 1기는 지난 70년 새마을운동이 태동한 때 부터 80년대 중반까지로 가난의 굴레를 벗는데 힘을 집중했다. 당시 ‘하면 된다’는 새마을정신이 뿌리내려 민족중흥의 기틀이 마련됐다.이에 힘입어 지난 70년 22만원에 불과하던 농가소득이 지난해 2천1백79만원으로 85배가 늘어났다.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2기로 구분할 수 있다.이 시기는 새마을운동의 침체기이다.이는 새로운 환경에 운동방향과 실천덕목을 맞추지 못한 탓이다.3기는 21세기에 전개될 미래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탈산업사회,정보화 지방화세계화 시대를 맞아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꽃피워나가느냐는 실로 중요한 과제이다. ○21세기형 전략 도출 미래의 새마을운동은 현재의 시련을 극복하는데서 방향이 정해지게된다. 우리나라에 직면한 도전은▲경제적 어려움의 해결 ▲국토환경 가꾸기 ▲윤리도덕 및 사회질서 확립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원봉사 활성화 ▲안보와 통일 준비 등으로 집약된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자금지원은 우리 경제가 그동안 극심한 ‘거품’에 빠져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어려움은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으나 근검절약 자주자립의 새마을정신이 퇴색되면서 빚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민족이 현재의 난관을 이겨내고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21세기형 추진 전략을 도출해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새마을운동은 우선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전제하고 통일 초기의 북한개발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통일후 북한개발 검토 현재 북한 전역이 무분별한 산지개발로 파헤쳐진 상태임을 감안,통일 초기에 식목사업 수로개발 경지정리 농로확충사업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에서 연해주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 보인다.공산주의 체제에서 생활한 사람들에게 잘사는 길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새마을운동의 세계화가 추진돼야 한다. 새마을운동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했으나 경제개발에 실패한 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새마을운동은 저개발국에서 중간단계로 올라선 한국에서 자생한 운동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새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의 경우 미국식 경제개발 방식의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은 한국 만의 운동이 아니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앞으로 새마을지도자들은 새마을운동을 세계 각국에 수출해 우리 민족이 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끝으로 새마을운동은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찾아내는데 노력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듯 21세기는 전원생활 재택근무 정보공유의 시대이다. ○세계 각국 수출 검토를 따라서 푸른 숲과 맑은 물,깨끗한 공기,다정한 이웃들이 있는 복지타운 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이 높아진다.이 일을 새마을운동에서 해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새마을운동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거 민족중흥의 기수였으나 요즘 10년간 침체 국면에 빠져있는 새마을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다. 21세기 태평양시대를 주도해 ‘Pax Koreana’(한국에 의한 세계질서 구축)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국민들 마음 속에 잊혀진 새마을의 ‘하면 된다’는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새마을지도자들은 새마을운동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어 2000년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소명을 지니고 있다.
  • 강원대 카자흐·키르기스 대학생에 ‘뿌리’심어주기

    ◎한인3세 대학생 20명 초청 ‘조국 연수’/지난 여름방학기간 50여일간 함께 숙식/산업시찰·고적지·양로원·휴전선도 방문 강원대는 지난 여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한인 3세 대학생 20명을 초정해 우리말을 가르치고 발전된 조국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고향할머니도 만나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한인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지 60년이 되는 해라 더욱 뜻깊은 행사였다. 한인 학생들은 강원대 교수진에게 읽기 쓰기를 배웠고 전통악기도 다뤄봤다.우리 역사와 문학 강의를 들었고 ‘신기한’ 컴퓨터도 익혔다.경주 등 전국의 고적지와 울산 등 대단위 공단을 돌아봤다. 이들 곁에서 50일동안 도우미로 애를 쓴 심완주군(22·정치 3년)은 이를 일기를 적어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심군은 일기에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서 온 심순녀양이 같은 고향에서 알고 지내다 영구 귀국한 김재순 할머니(76)를 우연히 만나 기쁨을 나눌 때 눈물이 핑돌았다”고 적었다. 학생들은학교측이 용돈으로 내준 10만원을 은행에 입금시키면서 내내 미심적은 눈초리로 은행원를 쳐다보더니 이름까지 적기도 했다.어떤 친구는 백화점을 쇼핑할 때 화려함에 크게 놀라더니 이내 돈을 다 써버렸다. ○나이트클럽선 댄스상도 휴전선을 방문했을때 모두 숨을 죽이고 북쪽을 응시하는 눈초리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춘천 인근 낚시터에서 쓰레기 청소에 나서 30분만에 대형 쓰레기봉투 25개를 다 채워고선 “끌끌“ 혀를 차기도 했다. 심군은 또 이들의 촌티를 벗어주려고 나이트클럽에 데려갔으나 모두 춤의 도사여서 되레 충격을 받기도 했다.한 친구는 무대를 석권하다 못해 즉석에서 댄스상까지 받기도 했다. 경포대에서는 인솔 교수인 진장철 교수(정치학과)가 큰 맘 먹고 회를 시켰으나 아무도 먹지 않아 심군이 이를 처리하는라 애를 먹었다. 심군은 “이들이 돌아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그대로 전할 파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한붕괴 대비책 서둘러야(사설)

    북한의 위기상황이 날로 악화돼 이제는 체제붕괴가 시간문제라고 한다.1∼2년내에 붕괴되리라고는 볼 수 없지만 향후 5년을 전후하여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본사가 26일 주최한 제3회 국제포럼에서 주제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개진한 견해다.북한 조기붕괴론은 우리에게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난민문제를 비롯한 새로운 관련대책 수립의 시급성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문제제기라고 본다. 북한이 붕괴하리라는 전망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그러나 이번 포럼에서처럼 그 시한이 명료하게 거론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특히 앞으로 3년후부터는 북한이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다는 가설은 사뭇 충격적이다.붕괴의 형태는 군부 쿠데타에 의한 김정일정권의 축출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내전의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따라서 우리가 서둘러 수립해야할 대책은 예측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북한에서 내전이 발발할 경우 북한주민의 약 10%에 해당하는 2백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그들은 1차적으로 중국의 동북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로,2차적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탈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한다.이러한 대량 난민문제에 대해 정부는 아직 뚜렷한 대비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우리의 단독대책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일본 및 국제사회기구 등과 연대한 공동대책의 수립을 지금부터라도 강구해 나가기를 바란다. 이번 포럼에서 우리가 주목할 또 하나의 대목은 거의 모든 주제 발표자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사실이다.북한체제의 내구력 소진으로 정권유지가 더이상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김정일이 자포자기식 최후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김정일의 남침준비는 황장엽씨에 의해서도 폭로된 바 있지만 이에 대비한 안보태세의 확립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명제임을 다시 일깨워준 포럼이라고 하겠다.
  • 제3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제1주제­북한의 국가역량

    ◎북한,언제까지 버틸수 있나 지난 95년 창간 50돌 기념행사로 ‘서울신문국제포럼’을 시작한 서울신문은 26일 서울신문프레스센터 20층 컨벤션센터에서 제3회 국제포럼을 개최한다.‘북한,언제까지 버틸수 있나’를 주제로 한 이번 국제포럼에는 한·미·일·러시아의 저명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현재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북한의 국가역량과 내구력을 진단하고 점검한다.발표 논문 6편의 내용을 간추린다. ◎김정일 지도체제 현황과 장래­김학준 인천대 총장/북 현황·미래 냉정한 진단 시급한때/예측가능한 모든 상황 대비한 정책 수립 긴요 김정일정권의 장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예측과 시각이 있다. 첫째,국방부를 포함한 미국 군부는 김정일정권이 이미 붕괴의 과정에 들어섰으며,아무리 길게 잡는다해도 2002년께에는 군부 쿠데타에 의해 퇴진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아무리 길게 잡아도 3∼4년안에 무너지게 되며 결국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가 해체된다는 결론이다. 둘째,반면에 미국의 국무부를 포함한 외교분야의 기관들은 앞으로 5년안에 김정일정권을 존속시키면서 북한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그러나 북한이 일단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밑바탕부터 흔들려 5년안에 김정일정권의 퇴진과 북한이라는 국가의 와해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셋째,중국은 표면적으로는 김정일정권이나 북한이라는 국가가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내심으로는 북한의 상황 전반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일본 역시 내부적으로는 북한에서 몇해안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면 급격한 변화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꼭 이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대체로 행정력의 전반적 마비와 군사력의 결집성 약화가 겹쳐진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물론 그 개연성은 약하지만 민중반란의 개시와 확대같은 것도 포함된다. 넷째,북한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내전이 전개될 수 있으며 북한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약 2백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다.그들은 1차적으로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로 탈출하려고 할 것이고 2차적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원유를 공급해주는 1차적인 원인이 거기에 있다.일본은 약 30만명 정도의 난민이 일본으로 유입되리라고 예상한다. 다섯째,북한이 국가의 수준에서 붕괴하는 경우 한국에 의한 북한의 즉각적 접수나 흡수통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미국은 북한을 일정기간 국제관리 아래 두려고 할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 ‘친중 괴뢰정권’을 세우는 방안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미국과 중국은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일정한 범위의 완충지대를 두자고 제의할 지 모른다. 여섯째,한국으로서는 그러한 상황이 닥쳐왔을때 북한의 접수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관철해야할 것이다.만일 그 목표가 실현된다면 북한을 ‘특수관리지역’ 또는 ‘특별행정구’로 설정해야 할 것인지,또는 한국의 행정지역으로 곧바로 통합시켜야할 것인지 결정해야할 것이다. 일곱째,김정일정권은 자신이 존망의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는 경우,대남 무력도발을 시도할 개연성이 있다.이렇게 볼때 앞으로 몇해가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덟째,주변 열강을 상대로 한국에 의한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한반도에,주변열강에,동북아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꾸준히 이해시켜야 한다.특히 중국을 이해시키고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지원토록 움직이게 만드는 외교가 필요하다.이집트주재 북한대사 일가의 미국 망명으로 북한 ‘붕괴론’이 다시 거론되는 시점이다.우리로서는 냉정히 북한의 현황과 미래를 진단하는 가운데 민족적으로 가장 슬기로운 정책을 세워야 하겠다. ◎북한의 외교·국방정책­다케사다 히데시 일 방위청 방위연구소 교수/강력한 군사력 무기 협상주도 모색/주한미군 철수는 평양정권의 일관된 정책목표 북한은 대외정책면에서 모순투성이 처럼 보일 정도로 강온 양면정책을 써왔다.현재의 북한체제를 보면 김정일비서 1인에 의해 정책이 운영된다고 보아야 한다.즉 외교와 군사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는 모든 정책이김정일비서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매파적 정책과 비둘기파적 정책이 혼재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에 달려있다.북한에는 국제적 협조를 통해 김정일비서의 정책을 담당하는 인물과 군사력 강화를 통해 김정일체제를 지탱하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어 파벌이나 권력투쟁,정책대립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김정일비서가 독점적으로 정책을 입안,결정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수 없다. 김정일비서의 최종 정책목표는 북한체제에 의한 한반도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즉 주체사상에 의한 한반도통일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목표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이러한 최종목표 달성을 위한 중간목표와 최종목표 사이엔 모순되는 내용도 있는데 중간목표는 주한미군의 감축과 철수,북한 자신의 군사력 강화,중국­러시아와의 군사협력관계의 유지등을 포함하고 있다.그러한 중간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당면정책은 도중의 경과적인 정책이긴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개선,외국의 경제지원 수용,일본으로부터의 식량지원 집착,4자회담의 추진,주한미군문제 논의시작 등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의,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남한과의 대화 등에 개별적으로 응해왔다.그 결과 북한은 각국의 미묘한 정책차이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상대방과 교섭을 시작한 후 타결을 결코 서두르지 않는 가운데 교섭의 재료를 양보용으로 조금씩 푸는 교섭의 테크닉도 갖추고 있다.이같이 북한은 외교와 군사가 결합된 정책을 취해왔다.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을 단시간에 공격하기에 충분하다.북한은 체제붕괴 직전의 자살행위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나 군사력이 열세로 바뀌고 있어 통일을 위한 전쟁은 불가능할 것이다.다만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에 의한 새로운 시나리오는 있을수 있다.즉 서울을 인질로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미국의 개입을 저지한다는 전략이다.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보유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사용이 가능한 모든 무기를 갖추고 있다.또 외국에서 북한무기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일부 무기는 수출시장의 요청에 부합할 수 있는 품질과 기술을 갖추었다고 생각해도 좋을것이다.북한의 군사력은 그 자체가 ‘언젠가 사용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적어도 ‘언젠가는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은 외교상 교섭의 무대에서 상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난 94년 미­북한 합의이후 급속히 높아졌다.북한이 외교 중시의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일북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되고 4자회담 예비회담이 진전돼 미북교섭이 진행될 때 그러한 시각은 한층 더 일반화되겠지만 북한정책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외교면의 자세변화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력 실태및 외교와 군사의 관계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북한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외교와 군사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세우고 있다’는 견해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북한의 경제력 실상과 전망­전홍택 KDI 연구조정실장/식량·에너지 부족… 구조적 어려움 심화/수년안에 어떤정책 펴느냐 따라 경제회생 판가름 80년대 후반부터 침체를겪고 있던 북한 경제는 옛 소련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대외경제관계의 급속한 붕괴로 90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이후 96년까지 7년연속 실질 GNP가 감소하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남한을 비교기준으로 하여 북한 생산물에 남한가격을 적용한 구매력 평가 GNP는 96년 2백14억달러,1인당 GNP는 9백1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GNP의 4분의1 수준이므로 일반주민의 1인당 GNP는 통상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북한은 97년중 약 2백만t의 곡물이 부족하며 가뭄피해로 98년이후에는 곡물부족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식량난이 북한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면 에너지난은 북한 산업의 커다란 장애요인이다.1차 에너지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석탄의 생산량은 96년엔 89년의 절반이하로 떨어졌으며 원유도입량은 89년의 36%,전력생산은 89년의 73%에 불과하다.북한이 부족한 연간 2백만t의 곡물을 추가 수입하기 위해 필요한 외화는 5억달러,연간 1백50만t의 원유를 수입하는데 소요되는 외화는 2억달러수준으로 모두 7억달러 정도의 외화만 있으면 식량난및 에너지난은 단기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그러나 북한의 수출액은 7억3천만달러(남한으로의 수출을 포함하면 9억1천만달러)에 그치고 있어 구조적인 경제난을 타개하려면 중국수준의 개혁·개방과 이를 통한 수출산업의 육성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경제난은 대외충격에 의한 일시적,부분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체제와 정책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경제전반적 현상으로 지금까지의 미온적이고 부분적인 대응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북한경제의 향방은 앞으로 수년내 북한이 어떠한 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첫째 북한이 기존 정책기조를 고수하는 경우이다.즉 남한당국을 배제하고 남북한간 긴장관계를 지속시켜 대내통제에 활용하는 한편 개혁없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중심의 제한적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경제난 타개가 불가능하며 경제상황은 계속악화될 것이며,그에 따라 일반주민의 고민이 고조되고 엘리트계층의 분열이 초래돼 김정일정권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그러나 현재와 같은 소원한 남북한 관계가 계속되는한 김정일정권의 붕괴가 순조로운 흡수통일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만일 김정일 실각후 정치적 안정이 이뤄질 수 있다면 다른 사회주의 정권이 지속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여 북한 내부에 심각한 분열과 혼란이 초래되는 경우 외세가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북한의 경제난 해소는 물론 지속적 경제성장도 가능할 것이다.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에 비해 속도와 범위에 차이가 있을수 있겠지만 핵심골격은 유지돼야 할 것이다. 세째 현재의 루마니아처럼 북한이 개혁과 현상유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일관성 없는 개혁을 추진하는 경우 경제난은 어느정도 회복되겠지만 본격적인 경제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이는 경제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므로 북한은 다시 어려운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조해녕 내무 화랑연수원 ‘새마을 운동 방향’ 특강 요지

    ◎통일대비 ‘새마을 운동’ 새 전략을/지도자들 연해주 진출… 탈북자 지원 활동 바람직 조해령 내무부장관은 28일 경북 경산군 와촌면의 청소년 수련시설인 화랑연수원에서 대구 경북지역 새마을지도자 3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마을운동의 방향’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다음은 특강 요지다.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여러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금수강산의 모습 회복,파괴된 윤리와 도덕의 복원 및 법질서의 존엄성 유지와 사회질서 확립,소외된 이웃에 대한 봉사정신 고양,통일 준비,태평양시대를 주도하는 일,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을 과제로 꼽을수 있다. 우선 경제적 어려움은 해마다 2백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적자와 1천억달러가 넘는 외채 총액에서 알 수 있다. ○어려움 극복 의지 결핍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으로 고임금과 고금리,고물류비용,고지가 등이 꼽힌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이들 지표가 아니고 이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이는 사회전반에 걸친 낭비적 소비풍조와 근로의욕의 저하로 대변된다. 따라서 새마을에서는 지난 3월부터 국민저축운동을 시작했다.이 운동은 건전소비생활과 국내자본 내자조달,저축률 상승을 통한 국민정신 건강을 목표로 한 것이다. 다음으로 새마을은 국토환경 가꾸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그러나 요즘 수질오염과 오존등 대기오염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질서 확립운동도 우리 새마을의 몫이다. 성폭력,학교폭력과 함께 교통무질서가 대표적인 퇴치대상들이다. 새마을은 또 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자원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지금까지 이같은 일들을 중점적으로 펼치면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왔다. ○삶의 질 새모델 개발을 앞으로 2천년대를 맞아 통일에 대비한 새로운 운동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마을지도자들이 연해주에 진출하고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는 태평양시대에 세계중심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높여야 한다. 또 21세기에는 재택근무 전원생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푸른 숲과 맑은 물,깨끗한 공기,다정한 이웃의 복지타운을 개발해야 한다. ○21세기으 유일한 대안 지난날 새마을운동은 민족중흥의 기수였으나 최근 10년간 다소 침체를 겪고 있다.이는 2천년대를 준비하는 진통이라고 본다. 끝으로 조국이 새마을지도자들을 다시 부르고 있다는 점을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21세기에는 새마을운동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신을 갖고 조국의 미래를 개척하는 새마을운동의 횃불을 힘차게 들어주기를 당부한다.
  • 러,한·미·일과 안보관계 강화/외교국방정책평의회 건의

    ◎“중­북한 군사협력 가능성 대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정책평의회’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국과 안전보장 파트너가 되도록 관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단기적(3∼5년)으로는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가 없지만 중기적(5∼10년)으로는 러시아 남부 이슬람국가 및 바이칼지역과 연해주 지방에서 중국과의 심각한 대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이 장래 러시아의 안보상 최대의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중국이 북한과 군사협력을 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한국 미국 일본 등과 안보 파트너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일본은 북방영토 문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공격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태평양함대 등 러시아 극동병력의 대폭 삭감을 제안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연변의 ‘조선족 만들기’(송화강 5천리:32·끝)

    ◎“조선족 희망은 연변에” 공동체의식 확산/교수·상공·언론인들 민족문화 뿌리찾기 선도/인물·역사·정치·경제 등 총괄 ‘두만강’ 4집 출간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사회는 무심히 꺾어 땅에 꽂은 버들개지가 마치 숲을 이루듯 형성되었다.정책적이거나 의도적인 이민정책에 따라 이주한 것이 아니라,호구지책이 어려워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다.수백년동안 인적이 끊긴 청나라 봉금구역으로 숨어들어 터전을 잡기 시작한 조선족은 끝내 오늘과 같은 민족사회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그 조선족은 지금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민족속의 한갈래 민족으로 자리잡았다.그러나 다원일체 사회라는 중국에서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소수민족이다.이들 소수민족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체민족인 한족에 동화될 수 밖에 없다.그것은 필연적이다.더구나 최근에는 개방화 물결을 탄 인구 대이동에 따라 민족간의 통혼이 잦아졌다.이는 한족과의 동화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연해주 조선족근로자 20만 그런저런 이유로 민족성이나 민족문화를 지키기가차츰 더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다.중국의 주체민족인 한족은 늘어나고 소수민족의 증가속도는 늘 뒤떨어졌다.그런데 요즘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민족집거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족들이 야금야금 먹어들고 있다.연변사회과학원 김종국 원장은 이를 경계하면서 조선족이 타민족에 동화하는 현상을 비극으로까지 규정했다. 조선족이 선진민족으로 일어설 수 있는 관건은 민족경제 발전이다.어느 지역이든 민족기업이 많이 들어서면 조선족이 몰려들 수 밖에 없다.민족기업인 창녕그룹이 본거지를 하얼빈에서 진황도로 옮기자 많은 조선족이 따라갔다.러시아 연해주지구 한국기업에도 조선족들이 몰려있다.지난 1990년 연해주지구 조선족 근로자들이 10만명이었으니까,지금쯤은 20만명선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요즘 조선족 지식인들은 민족집거지 건설이 자연발생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반드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더구나 연변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있다.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지리적 여건에서 그 당위성을 찾는다.이는 한반도 통일을 대전제로 할때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말을 기억하고 뜻깊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연변에 가야 한다.조선족 사회에 기여하지 않고는 다른 곳이 아무리 잘된다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대기업으로서 중국 연변에 가는 것은 기업인의 의무다.절대로 돈을 가지고 올 생각은 말고,또 장삿속으로 돈을 빼갈 생각도 하면 안된다.중국시장은 훗날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연변을 잘 살게 한 다음 돈을 벌어야 한다.” 연변을 우선 키워야 한다는 여론은 확산되고 있다.북경대 안상태교수는 “조선족의 희망은 연변에 있다”면서 “연변이 잘 되어야 민족이 산다”고 말했다.조선족 유동인구를 연변으로 끌어들이려면,한국기업과 조선족기업이 많이 들어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느긋한 농사를 일거리로 한곳에 어울려 살았던 농촌집거구는 일찍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시장 우리에 큰 도움” 그런데 불행하게도 조선족들에게 결집력이 없다.그 결집력을상실한 이유는 우선 민족문화의 뿌리가 약해진데 있을 것이다.명절이 희미하게 퇴색한지 오래이거니와,조상을 숭배했던 양속마저 사라지고 있다.이는 이국타향에서 똘똘 뭉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자생적 민족공동체 의식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선족사회 한모퉁이에서는 민족혼과 민족문화 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를테면 민족교육을 위한 출편사업인데,‘두만강 총서’간행이 그것이다.연변지역의 인물과 역사,정치와 경제,문화 분야에 초점을 맞춘 ‘두만강’은 이미 4집을 내놓았다.준비기간을 거쳐 4집을 간행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교수와 작가들이 집필에 참여하고,출판자금은 연길시 백광무역상사 김선회 사장(40)이 대주고 있다. 조선족의 민족적 자존과 정신적 역량을 길러주리라는 기대감에서 간행한 ‘두만강’은 길림성은 물론 요령성과 흑룡강성에도 많은 독자를 두었다.‘사자가 이끄는 양떼는 양이 이끄는 사자를 이긴다’는 이야기가 있다.아무쪼록 ‘두만강’이 조선족이라는 양떼를 이끄는 사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행사업에 참여한 인사들이 바라는 소망이다.주간을 맡고 있는 연변방송국 문학부 김길련 부장(64)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족사회는 사실상 심각한 격변기를 맞고 있습네다.그래도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 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디요.우리 조선족이 스스로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키는 일이 될 것입네다.”
  • 발해사 재인식(송화강 5천리:31)

    ◎92년 대규모 ‘무덤떼’발굴 연구 본격화/무기류 등 2천여점 출토/중 10대 고고발굴로 평가 중국에서 발해사 연구는 사실상 도외시 되어왔다.그런데 90년대 들어 시각이 바뀌어 발해사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에 걸쳐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칠색송어장 부근에서 발굴한 발해무덤떼가 그 계기를 이루었다.국가 관계기관으로부터 1995년 중국 10대 고고발굴로 평가된 이 무덤떼는 이른바 칠색송어장무덤군으로 호칭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용암언덕 모래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돌무덤을 비롯,벽돌무덤,돌과 벽돌을 함께 써서 축조한 무덤 등 형태도 다양했다.4만㎡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발굴한 유적은 323기의 무덤과 7기의 제단으로 되어있다.생활용품과 무기류,말갖춤,장신구를 포함한 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323기·제단 7기 그러나 관광객들이 쉽사리 대할수 없는 유물이다.칠색송어장무덤군 출토유물 뿐아니라 중국에서 다른 발해유물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관광객들에게 개방한 유물이있다면 발해진 중앙대가에 자리한 흥륭사 경내의 석조유물 정도가 고작이었다.남대묘라고도 부르는 흥륭사 용암돌담을 돌아 큰 대문옆 쪽문을 들어서면 가지가 휘휘 늘어진 고목이 길손을 맞았다.300년을 자랐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는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그 나무밑에서 쉬노라니 큰 돌거북 대석구가 첫눈에 들어왔다.지난 1976년 8월12일 발해진 발해소학교 울안 1.2m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데,이 절로 옮겨온 것이다.높이 58㎝,길이 1m의 돌거북은 높이 32㎝,길이 1.36m의 대석에 올라앉았다.돌거북은 희한하게도 용머리와 용발을 했다.그러니까 용두용족의 거북인 것이다.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인 돌거북이 왜 용머리와 용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절 맨 뒤쪽에 들어앉은 대웅보전 앞뜰에는 석등탑이 우뚝했다.용암을 쪼아서 만든 석등탑은 높이가 6m에 이르고 있다.기단은 4개의 큰 돌을 이어서 붙여 놓았다.그리고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다.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이 승려를 서천에 보내 불경을 구한 뒤에 세웠다는 석등탑은 애절한 전설도 간직했다.문왕대에 만든 걸작의 대석불도 이 절에 있다.옛 기록을 보면 석불의 높이는 3길이었다.그런데 건륭연간인 960∼963년 사이에 불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지금은 복원되어 1963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모셔놓았다.이 석불 역시 전설을 안고 있다.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하나가 살았다.하루는 고기를 싣고가는 수레에 웬 스님이 올라탔다.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스님이 오간데가 없었다.고기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사라졌던 지점에 이르렀을때 근엄한 여래석불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바로 오늘날 흥륭사의 대석불이라는 이야기다.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석불앞에 넙죽 엎드렸다.이는 석불에 얽힌 전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물고기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길에 여래석불을 만났던 어부는 그 자리에 넙죽이 엎드려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발해유적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그러나 길림성 화룡시 정효공주묘와 같은 중요 고분벽화는 감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유적보호를 위해 일반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이와는 달리 누구라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바위그림이 흑룡강성 해림시 임구현 고려정촌에 있다. 고려정촌은 목단강시에서 75㎞가 떨어졌다.본래는 조선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조선족이 모두 마을을 떠났다.그래서 한족 70가구가 사는 한족 마을이 되었다.조선족과 큰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려정촌이라 불렀던 마을이다.하지만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고 우물마저 메워버렸으니,고려정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무색하게 되었다. ○흥륭사 대석불 전설 역사는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옛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그래서 역사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만,읽고 가꾸는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한다는 집념의 사람들이 있다.흑룡강성 벌리현 향수향 행선촌 최금산선생과 임승환선생이 그들이다.두 분은 3년여에 걸쳐 대하역사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을 합작으로 탈고했다.조사비 등 10여만원의 돈을 들인 이 대하소설은 10부작으로 2백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최선생은 경박호변 남호두가고향이고 임선생은 상경용천부가 고향이니까 모두 발해진 태생이라 할 수 있다.최선생은 대흥구 중학교를 다닐때 학자였던 하숙집 주인때문에 발해와 인연을 맺었다.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2년동안이나 들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새로웠다는 최선생은 ‘발해연의’를 100회나 쓴 적이 있다.그리고 임선생은 조선족과 만족,몽골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속에 남아있는 발해설화와 신화 80여편을 수집 정리한데 이어 ‘발해전’120회를 썼다. ○대하소설 합작 탈고 그들은 발해라는 고대왕국을 소재로 이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쉽사리 합작을 약속했다.두 분의 대하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은 고왕 대조영이 698년 오늘의 요령성 조양땅인 영주에서 나라를 세워 926년 망하기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그렸다.오늘의 중국 동북3성은 물론,러시아의 연해주와 한반도 동북부를 잇는 영토확장을 위해 숨가삐 달린 발해의 영욕이 담겨있다.자그마치 300명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하소설은 발해의 정치,군사,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나홋카 입주 한국기업 흑자때까지 50% 감세/한·러 부총리 합의

    한국과 러시아는 연해주 나홋카 자유경제지역내에 조성될 한국공단 입주기업에 대해 러시아가 이들 기업이 이윤을 낼때까지 부가세의 50%를 감면해주기로 합의했다.또 대러 경협차관중 지난 93년말로 만기가 된 3억9천1백만달러를 농축우라늄 알루미늄 및 전기동,헬기 등으로 상환하고 4백50만달러는 한.러 과학기술정보교류센터의 사무실 및 숙소부지로 상계하기로 했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과 올레그 시수예프 러시아 부총리는 8일 상오 과천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제1차 한·러 경제공동위원회를 가진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 새로운 봉사활동(외언내언)

    우리의 이민사는 부푼 꿈과 희망으로 시작됐다기보다 절망의 조국을 한으로 간직한채 떠나면서 시작됐다.첫 이민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진출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다.이 무렵 함경도를 휩쓴 대흉작이 닥치자 수많은 우리 농민들이 연해주지역과 북간도로 농사를 짓기위해 떠난 것이다.초기엔 여름이면 두만강을 건너가 농사를 짓고 가을이면 귀환하는 품팔이 농사꾼들이었으나 이들이 현지에 계속 눌러앉아 터전을 잡으면서 옛소련과 중국에의 이민이 시작된다.제정러시아정부의 한 자료에 따르면 1858년 함북출신 한일가씨가 포세트지방에 정착하면서 한국이민이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세계 120개국에는 5백30만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있다.정치·경제·예술·체육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오늘의 우리 해외동포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까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또 그 윗대 할아버지세대의 눈물과 땀과 피가 밑거름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초기 이민을 떠났던옛소련과 중국 동포들의 얘기는 처절하기까지 하다.특히 일제의 침략은 이 두 지역의 우리 동포들에게도 지울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두려워한 스탈린이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던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일과 수많은 항일투사들이 중국 곳곳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피흘린 독립투쟁이 그것이다.그 후예들이 지금 옛소련에는 약 45만명,중국에는 2백여만명이 살며 발전한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들을 위로하고 모두 한핏줄임을 확인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달려간다고 한다.포항 한동대학생 105명과 교직원 13명이 여름방학을 맞아 5일부터 한달동안 연변과 우즈베키스탄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이들은 또 베트남 하노이도 찾아 월남전이 남긴 라이 따이얀들도 위로하겠다고 한다.연변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까레리스키,베트남의 라이 따이얀,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 북에 6∼7월 남침설 팽배/WP지 보도

    북한군이 오는 6·7월쯤 남한을 공격한다는 루머가 북한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여행객의 말을 인용,워싱턴포스트가 9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이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사는 북한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다룬 특집기사에서 『북한에는 오는 6·7월 남한과의 전쟁 루머들이 나돌고 있으며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전쟁을 대비한 땅굴파기와 은신처 마련을 독촉하고 있다』고 기차편으로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익명의 북한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그러나 이 여행객은 북한이 주민들을 전쟁준비에 몰아 세우는 것이 진짜 전쟁준비를 위한 것인지,아니면 기아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루기 위한 전술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나진선봉 사업추구센터」 경비/한국,15만∼20만달러 지원

    우리 정부가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건립되는 「나진선봉 투자진흥 및 사업추진 센터」경비의 일부를 지원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27일 『정부가 작년 4월 두만강유역개발계획사업(TRADP)과 관련해 유엔개발계획(UNDP)측에 기탁키로 협정을 맺었던 1백만달러에 대해 최근 우리정부와 UNDP 양측이 그 투자대상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측이 합의한 투자대상은 ▲북한 러시아 중국의 투자진흥 및 사업추진센터지원 ▲훈춘지역 환경영향 평가사업 지원 ▲러시아 연해주 투자포럼 지원 ▲TRADP 관련 워크숍 지원 등이다. 이에 따라 북한 나진선봉지역에 건립되는 「나진선봉 투자진흥 및 사업추진 센터」건립 및 운영경비를 우리측이 일부 지원하게 됐다.지원규모는 15만∼20만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 러 노동자 수십만 총파업 돌입/주요도시 특수경찰 배치

    ◎체불임금·연금 지급 요구 러시아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된 27일 러시아 주요 도시 대부분에 특수 경찰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가두시위에 들어가는등 파업열기가 고조되고있다고 인테르 팍스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연해주 프리모르예 지역에서 약 15만명이,하바로프스크에서 9만명이 시위를 벌였으나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5천여명의 시위대들이 붉은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내중심가를 행진하면서 체불임금과 연금 지급을 요구했다. 이번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 독립노조연합은 러시아 전체의 체불임금규모가 약 50조루블(미화 90억달러)에 달한다며 27일 하루동안 전국적으로 약 2천만명의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및 연금 지급을 요구하는 총파업과 가두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부총리와 함께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달중으로 체불임금 지급을 위해 11조8천억루블(21억달러)를 지급하고 탄광 노동자들의 급여와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6조4천억루블(11억달러)의예산을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파업에는 파업 참가율이 예상보다 낮아 독립노조연합의 경고와 같은 전국적인 대규모 총파업이 실행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 계봉우 선생 미공개 자료집 발간

    ◎민족사 연구 큰업적·독립운동에도 가담/독립운동 실상·문학적 열정 그대로 담아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신채호에 견줄만한 근대 역사가로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북우 계봉우(1990∼1959)의 미공개 자료집이 나왔다.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가 계선생의 자서전과 문학관계 기록을 정리해 엮은 「북우 계봉우 자료집 1」편이 그것으로 선생의 독립운동 실상과 문학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함흥 출신인 북우는 민족사 연구에 몰두,자서전 「꿈속의 꿈」(1940∼1944)과 중등 교과서격 저서 「조선역사」(1912)를 비롯해 한국사 개설서인 「조선역사」를 펴내는 등 의욕적인 연구활동을 벌인 인물.30여년을 연해주와 만주,상해,중앙아시아 등지를 전전하며 직접 독립운동에도 참여해 국사·국어학계에서 새롭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애국지사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자료집은 지난 95년 한국을 방문한 계선생의 4남 계학림씨가 독립기념관측과 계선생 관련 책자의 판권을 독립기념관측이 갖는다는데 합의해이루어진 첫 결실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선생이 1910년 북간도로 망명한뒤 참가한 독립운동 내용이 생생하게 기록된 자서전 「꿈속의 꿈」과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뒤 수집한 문학자료집인 「조선문학사」로 짜여져 있다.이 가운데 「꿈속의 꿈」중에서는 한인사회당과 상해파 공산당의 독립운동 내용,청산리 전투 직후 연해주로 집결한 독립군 상태 등이 눈에 띠는 부분이다.또 「조선문학사」는 당시 선생이 강제 이주된 뒤 탄압속에 다양한 형식의 문학적 자료들을 직접 수집,분류한 보기드문 문학사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 망명 시기·방법·장소 선택 큰몫/김덕홍의 역할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행로에 함께 동행한 김덕홍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황이 워낙 거물이어서 김의 존재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지만 이번 망명과정에서 김이 결정적인 몫을 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한에서 김의 공식적인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그러나 이번 망명과정에서는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라는 그의 겸직 직함이 보다 유용하게 활용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광무역은 주로 한국의 폐지나 자투리 옷감을 수입,컵받침이나 생활 장식품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 일을 해온 일종의 무역회사.통일원에 따르면 여광무역은 국내의 유수 대기업들과 연해주농장을 개발하는 사업을 검토하기도 했으며 시베리아 벌목공 등 북한의 대외 인력송출도 담당해왔다.따라서 사장을 맡고 있는 김은 활동의 영역이 국제적 사업이었던 만큼 대외적 행동반경과 운신의 폭이 넓었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정치적 지위상 감시와 활동폭을 제한당할 수밖에 없는 황비서가 망명을 결심한 후부터 김은 황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대리인과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망명의 시기와 방법의 선택은 물론이고 누구를 만나 도움을 청할지,망명장소는 어디를 택할지 등 최종적인 망명결행까지의 은밀한 활동이 모두 그에 의해 추진됐을 것이다. 특히 95년 4월부터 북경에서 체류해온 김은 업무상 우리 기업인들과 자주 접촉,한국내 사정을 소상하게 파악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황과의 동반망명 결심을 하게되고 이후 노령인 황의 망명길에서 충직한 손과 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러,유조선 3척 한국 발주/사할린 원유 올부터 수출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 극동 사할린에서 채굴되는 원유와 가스가 올해부터 해외로 선적,수출될 것이며 이를 위해 러시아 선박회사측이 한국조선소에 원유수송선 3척을 주문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5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연해주해운회사는 한국조선소에 4만5천t급 유조선 3척을 주문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 호은 김규식 장군의 딸(송화강 5천리:12)

    ◎박해·모진 가난속 넝마주이로 생 마감/독립운동하던 부친 자객들에 피살/5남매중 홀로 남아 남편도 잃고 “박복한 삶”/“독립운동가 자손” 한때 아들도 억울한 옥살이/어려운 살림에 상지시에서 “가장 유명한 거지”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김규식이라는 두 독립운동가를 만날 수 있다.우사 김규식(1881∼1950년)과 호은 김규식(1882∼1931년)이 그들이다.두 분은 모두 동만주와 북만주,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우사 김규식은 광복이후 남한에서 건국 기초작업에 참여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졌지만 호은 김규식을 아는 이들은 흔치 않다.말하자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독립운동가인 것이다. 호은 김규식은 오늘의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에서는 김규식 장군으로 더 유명했다.1910년 경술국치때 만주로 망명한 그는 흑룡강성 주하현 하동에서 최후를 마쳤다.흑룡강성 연수에서 학교를 꾸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인재를 양성하던 중에 교사를 초빙하러 하동에 왔다가 죽음을 맞았다.이붕해라는 사람 집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그 집자리는 지금 온데간데 없고 논으로 변했다.논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전주가 말없이 서있다. 그를 죽인 사람들은 한족총연합회 경비대원 유희춘 등 5명의 흉한들이었다고 한다.그들은 장군의 시신을 마을앞으로 흘러가는 마의하에 던졌다.그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으나 광복을 전후한 시기에 아들 넷은 모두 죽었다.세째 현이(1912∼1931년)는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고 집을 나갔다가 주하현 석두자하에서 피살되었다.맏아들 현욱(1901∼1931년)은 밖에 놀러나간 아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나갔다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둘째인 현성(1904∼1946년)과 넷째인 현윤(1919∼1945년)은 병사했다. 그렇게 아들 넷은 세상을 떴다.장군의 혈육이라고는 딸 하나가 달랑 남게되었다.지난 3월 흑룡강성 상지시에서 80살 노령으로 모진 삶을 마감한 김현태 할머니다.그 할머니를 만난 일이 있다.독립운동가 오수암 의사의 딸 오금손 여사와 연변사회과학연구원 강용권 선생(서울신문 12월5일자 11면)과 동행한 자리에서 만났다.일행은 목단강시에서 기차를 타고상지시로 갔다.상지시 민족사무위원회 책임동지의 안내로 할머니가 사는 집을 찾았다. ○마을앞 하천에 시신버려져 상지시 시교에 있는 집은 낮은 벽돌집들이 촘촘히 들어앉은 줄집이었다.집은 아주 비좁았다.한족식 가옥구조라서 봉당이 크고 온돌이 작은데다 부엌까지 따로 있기 때문에 집은 한마디로 북통만했다.살림이라고는 낡은 식탁과 궤짝 몇개가 있을 뿐 흔한 흑백TV 수상기 하나가 안보였다.김현태 할머니는 손님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아들 김무위(63)의 부축으로 간신히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허리가 잔뜩 굽어서 지팡이를 놓으면 금새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도 총기가 좋아서 지나간 일들을 또렷이 기억해냈다.한국에서 찾아온 손님 오금손 여사의 아버지 오수암 의사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는 판이니 자신의 아버지 김규식 장군의 죽음을 어찌 잊겠는가.이제 눈물도 메말랐을 법한데 연신 눈물을 흘렸다.눈물을 훔치는 손이 삭정이처럼 앙상했다.한참만에 눈물을 거둔 할머니는 옛날을 이야기했다. ○낡은 식탁·궤짝살림 전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고 둘째 오빠와 같이 하동으로 갔디요.마의하 물에서 며칠을 지냈으니 시체가 말이 아닙데다.집을 나가실때 입은 옷을 보고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네다.얼굴은 못 알아보게 부어있습데다.명주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새옷을 갈아 입힌 뒤 입관을 했디요.그리고서리 마의하 버들방천에서 화장하고 유골은 물에 뿌렸수다.묘소도 없디요』 김현태할머니는 광복 이듬해 남편 김순철과 사별했다.지난 1974년에 작고한 어머니(주명수)와 아들(김무위)을 데리고 어렵게 살았다.한국 같으면 독립운동가 자손이면 대접을 받았겠지만 중국은 사정이 달라 오히려 박해를 받았다.아들 김무위는 한때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나와 이혼녀와 늦장가를 들었다.그리고 쌍둥이 손자를 보았다.그러나 며느리는 쌍둥이를 낳아주고 집을 나가버렸다. 일가는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상지시에서 김규식 장군의 딸로 소문난 연유도 알고보면 가장 유명한 거지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모자는 아침 일찍부터 넝마를 주웠다.장군의 외손자인 김무위는 끼니를 지어 먼저 모친을 대접하고 그 다음 한창 먹성좋은 쌍둥이를 먹이고 나면 자기 배를 채울 것은 늘 없게 마련이었다.한번은 배가 하도 아파서 병원엘 갔더니 창자가 붙어서 그렇다는 진단을 받은 일도 있다. 오금손 여사는 김현태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일가족을 식당으로 불렀다.식당에서 한상을 차려내왔지만 그들 일가족은 음식을 축내지 못했다.난생 처음 대한 기름진 요리가 비위를 거슬렸던 것이다.오여사는 다음날 중국돈 500원과 옷 한벌씩을 건네주고 작별했다.그런데 이듬해 오여사는 김현태 할머니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생전에 한번 더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자마자 오여사는 부랴부랴 중국을 찾았다.자식도 없이 연금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처지로 버거운 것이었지만 다시 할머니를 만났다.현금도 얼마 내놓고 밀가루와 쌀을 듬뿍 사놓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독립운동 연락책으로 활동 오금손 여사는 김현태 할머니 생애에서 처음으로 생활의 깊은 구석까지를 보살펴준 사람이었다.두 여인의 아버지들이 일찍 이청천장군 휘하의 투사로 한 배를 탔던 동지들이라 할수 있다.특히 김현태 할머니는 어린 시절 오여사의 오수암 의사에게 무기보관장소를 연락해주는 등 실제 독립운동을 도왔다.그래서 두 독립운동가의 딸들은 남다른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이러한 사실이 강용권 선생의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손자 쌍둥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학비를 감면해주었다. 강용권 선생도 현금 200원과 한국에서 출판한 「만주 항일유적 답사기」를 할머니 아들 김무위에게 보내주었다.그로부터 석달이 지나서 이런 답장이 왔다. 「선생님이 보내신 돈과 책을 잘 받았습니다.아깝고 쓰라린 것은 선생님의 서신을 받기 3일전 불쌍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사흘만 더 사셨어도 선생님의 저서를 보시고 기뻐하셨을 텐데….선생님,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틈 나시면 소식주시기 바랍니다.그렇게 해주신다면 더 이상 고마운 일이 없겠습니다」 그 김무위의 편지가 오던날 독일국적의 한국인 안풍길씨(65)가 연길 강용권 선생 사무실에 들렀다.그는 독일에 간 한국인 광부 출신이었는데 역시 독일에서 간호원으로 일했던 함청자여사와 동행했다.부부는 편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그들 부부는 중국돈 1천원을 내놓고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 유가족들이 사회 무관심속에 사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지금은 좋아졌다고 하나 더 관심을 가져야지요.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이 근근덕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방법이 있으면 도와줘야 합니다』
  • “최 영사 시신서 독극물 검출”

    ◎정부,러에 수사결과 발표 촉구키로 정부는 5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 영사 피살사건과 관련,러시아측에 최 영사의 사체 부검결과등 수사결과를 조속히 발표하도록 촉구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러시아측은 그동안 최영사 부검결과를 알려달라는 우리 정부 요청에 대해 법의학적,생화학적 검사등 여러 측면에서 검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종합적인 결과가 나온후 한국측에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총영사관에 근무하다 지난 10월1일 피살된 최덕근영사의 시신에서 통상적으로 북한 무장간첩이 소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독극물이 검출됐다고 일본 언론들이 5일 보도했다. NHK방송은 이날 믿을만한 러시아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최영사의 시신에서 네오스티그민 구로마이드라는 독극물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NHK는 이 독극물이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치사량이 10g이며 지난 10월 붙잡힌 북한 무장간첩이 소지하고 있던 독극물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밝혀졌다고 말했다.
  • 러 태평양함대 방첩부대/북한 마약밀매사업 확인

    【블라디보스토크 연합】 러시아 태평양함대 방첩부대는 13일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마약 밀매업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귀순자 허창걸씨의 증언을 확인했다. 방첩부대는 허씨가 지난 11일 한국에서 폭로한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서 북한은 대부분의 마약을 극동 연해주지방을 통해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방첩부대는 북한이 지난 70년대부터 마약을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93년에는 김일성이 아편농장을 운영하도록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 “우리고장 중요 문화유적 알리자”/지방단체 주최 학술회의‘봇물’

    ◎단양 「수양개와 그 이웃들」에 4개국 학자들 참여/성남·양양이어 서울 관악문화원도 준비 최근 지방문화단체가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본격개막한 지방자치시대에 걸맞는 이같은 현상은 확산되는 추세.이들 학술회의는 주로 고장의 중요 문화유적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기획되었다.지역 역사성 및 전통성을 문화유적을 통해 밝히고 이를 세계화한다는 의도가 깔렸다. 충북 단양향토문화연구회(회장 김재호)는 올해 제1회 국제학술회의를 마련했다.「수양개와 그 이웃들」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는 4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26∼27일 단양수양개유적관에서 열렸다.주제로 내놓은 수양개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남한강변에 자리한 20만년전의 구석기유적.지난 1983∼85년 발굴한 이 유적에서는 3만여점의 석기와 함께 석기제작소 50군데를 찾아냈다. 단양지역에는 수양개유적 말고도 구낭굴유적을 비롯,상시동굴유적 따위의 구석기시대 동굴유적들이 널려 있다.그래서 이번 학술회의 주제를 「수양개와 그 이웃들」로 잡았다.이번 학술회의에서 수양개유적은 주변 동아시아 구석기유적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좀돌날몸돌(세석인석핵) 슴베찌르개(유경첨기)와 같은 수양개유적 출토 석기모양을 통해 북한의 평양 만달리,시베리아 연해주지역 우수티노브카,중국 호두량 구석기유적과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단양 국제학술회의는 수양개유적을 발굴했던 충북 대박물관이 거들어 주었다.지방문화단체와 그 지역 대학기관이 협력한 케이스.주제 발표자로 충북대박물관장 이윤조 교수,중국 요녕성고고문물연구소 고옥재 부소장,러시아과학원 N I 드로츠도프 교수와 니나 크노넨코 박사,탄자니아 다르에 살람대 P T 마사오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경기도 성남문화원(원장 이형하)은 지난 10∼11일 성남시민회관에서 제1회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주제는 「남한산성의 현대적 재조명」이었는데 4개국 학자 9명이 주제발표자로 나왔다.논평 및 토론자들을 합하면 모두 36명의 학자가 참가한 셈이다.이 회의에서는 360년전에 쌓은 남한산성의 역사성은 물론 남한산성활용방안도 논의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조유전 관장은 약정토론에서 남한산성 기본축을 중심으로 한 활용방안을 제시했다.조선시대 산성공간 재현과 민족수난극복사박물관 건립을 제의한 조관장은 여러 사례를 예로 들었다. 국제학술회의를 처음 연 지방문화단체는 강원도 양양문화원(원장 고경재)으로 올해 이미 2차 학술회의를 열었다.양양문화원이 국제학술회의 때 떠올리는 유적은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유적.지난 18∼19일 한국신석기연구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2차 회의에는 5개국 학자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서울 관악문화원도 내년쯤 관악산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 계획이다.이밖에 여러 문화원들도 향토사와 연관한 국제학술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황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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