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 내라는 전화를 받고(朴康文 코너)
그 날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며칠 전 오후 바쁜 시간에 무슨 복지재단인가에서 온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나절 내내 그랬다.
그 기관은 내가 한달쯤 전에 지로로 3만원을 보내 준 데였다.전화기 속 목소리는 고맙게 잘 받았다고 말했다.감사 인사로 끝나는 줄 알았더니만,말이 길었다.머리 속이 일 생각으로 가득차 있던 참이라 건성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요점은 연하장 한 묶음을 보낼 테니 3만 몇천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듣고 있노라니 스멀스멀 불쾌감이 기어 올라왔다.바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3년째,그 기관 직원의 전화가 있은 뒤에 책 몇권과 지로용지가 오고,그 때마다 나는 3만원씩 보냈다.책은 아동용이라 젊은 부원에게 주거나 제사때 오는 조카들에게 나눠 주었다.이 곳 아니라도 내가 조그마한 도움을 주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한해에 3만원씩을 더 낸다고 해서 부담이 크게 느는 것은 아니니까,올해도 또냐고 투덜대면서도 돈을 내기로 약속하고는 했다.
○상대방 마음 헤아려야
결국 돈을 내면서 투덜거려 보는 것은,적은 액수의 돈이라 해도 남의 돈을 얻어내는 것인데 사무실에 앉아 전화 한통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다.지로로 보내니까 영수증이야 절로 남기는 하지만 고맙다는 엽서 한 장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 오던 터에,날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기 속 음성이 연말연시 다가오니 도움을 달라고,그것도 바쁜 시간에 그러니 유쾌하지 못해 전화를 끊었고,끊고나니 마음이 무거웠다.생각해 보면,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돈 내라고 전화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사정이야 알 바 없으되,어쩌면 적은 인원에 엽서 다룰 만한 일손도 없고,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일일이 인사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조그마한 정성을 보태라고 했다가 전화선을 통해 느낀 내 싸늘한 태도에 그 직원은 마음이 상해 한숨을 쉬고 그 시각 이후 내내 기분이 언짢았을지 모른다.
그래도,다시 한편 생각하면,모금하는 데도 예절이랄까 법도랄까가 있어야 할 것 같다.돈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전화를 곧바로 하고 다음에도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말해 놓으면,다음 번 모금때 한결 부드러울 것이다.돈 달라고 전화할 수 있다면,잘 받았다는 전화는 왜 못할까.
○적은 돈에도 소중함 있어
그리고 거듭 성금을 내는 이한테는 기관장 명의의 인쇄된 편지라도 보내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한다. 푼돈 내면서 무슨 대단한 요구냐고 할지 모르지만,보통사람의 적은 돈도 귀히 여겨야 하는 것이 모금기관의 태도다.
우리나라만큼 모금을 자주 하는 나라도 사실 드물다.선진국이라면 국고가 맡을 지출인데,우리는 일반 국민들이 대신하는 것이 많다.국가 재정이 빈약하고 사회복지제도가 갖춰지지 못해서지만,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하다.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도 모금 운동을 우리만큼 벌이지 않는 것을 보면,남 돕기에 선뜻 잘 나서는 우리 국민의 심성 때문인 듯도 하다.
올해는 그 복지재단 직원의 말대로 어려운 사람이 많아졌다.다시 그가 전화해 오면 이웃돕기 모금을 위한 연하장을 사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