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연평도
    2025-12-16
    검색기록 지우기
  • 남극
    2025-12-16
    검색기록 지우기
  • 암호화폐
    2025-12-16
    검색기록 지우기
  • 추리소설
    2025-12-16
    검색기록 지우기
  • 스트리밍
    2025-12-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40
  • [백지연의 생각의 창] 마음과 마음이 닿는 길

    [백지연의 생각의 창] 마음과 마음이 닿는 길

    며칠 전 고양시에서 열린 다큐영화 정기 상영회에서 ‘하늘색 심포니’(박영이 감독ㆍ2016)를 관람했다.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 졸업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오는 여정을 담은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평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진전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분위기를 새삼 실감하게 했다.여행지로서의 북한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영화가 보여 주는 평양 시가지와 공원, 학교, 유원지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직접 그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는 조국을 찾아온 학생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는 시민들, 평양 시내와 학교, 백두산, 신천과 판문점의 역사적 현장을 돌아보는 학생들의 모습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아낸다. 폐쇄된 국가, 고립된 국가로서의 북한에 대한 관습적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는 삶의 활기가 화면을 뚫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남과 북이라는 분단된 현실을 바라보며 ‘경계인’으로서의 운명을 자각하는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 생각하는 통일이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각종 차별과 경계에 막혀 온전하게 소통되지 못했던 분단 현실, 그리고 앞으로 모색해야 할 통일의 실질적 과정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가득한 요즘 ‘하늘색 심포니’가 일깨우는 재일 조선인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절실한 현재적 문제로 감지되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핵심적으로 환기되는 쟁점 중 하나는 고교 수업료 무상화로부터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일본 정부의 차별적 방침이다. 연평도 해전, 천안함 사건 이후로 강화된 일본 내 소수자 차별과 극우 테러의 위협 속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은 이중적인 적대와 차별을 겪고 있다. 이는 재일 조선인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 ‘국가가 소수자 민족교육의 권리를 탄압’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영화와 더불어 ‘차별을 딛고 꿈꾸는 아이들-조선학교 이야기’(지구촌동포연대 엮음, 선인, 2014)에서도 “북과 일본, 남과 일본, 그리고 남과 북을 잇는 귀중한 존재”로서의 조선학교 학생들의 경계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홋카이도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학교’ (2006) 이후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문화운동, 그리고 오사카조선학교 럭비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60만번의 트라이’(2014) 등을 통해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 사회에 소개되고 있다. 몽당연필 등 시민단체와 민간 교류 차원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흐름도 최근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실질적 움직임은 매우 협소하다. 평양과 대동강, 학교와 놀이공원, 백두산과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여행에서 만난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마음을 담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가 흐른다. 영화에서는 누군가에게 ‘잘해 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는 격려와 환대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예로 비무장지대에 사는 민간인들의 삶은 어떻게 보호되는가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대한 어른의 답변은 분단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소통과 대화로 다가온다. 이국 땅에서 여러 가지 차별적 현실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건네는 ‘가슴을 쭉 펴고’ 늘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살아나가라는 말이 주는 울림 역시 뭉클하게 다가왔다.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라는 조선학교의 슬로건은 경계인이 차별적 현실을 딛고 가는 연대와 상생의 문제를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본 후 가장 깊은 여운으로 남은 단어는 ‘진뜻’(참뜻의 북한말)이다. 조선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부모에게 전달하는 감사 편지의 한 대목인 “이제서야 그 진뜻을 알 것 같다”라는 말이야말로 마음과 마음이 닿아 만들어 내는 변화의 기운을 암시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한반도 대전환의 기운 속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와 통일의 길 역시 서로 ‘진뜻’을 알고 나누려는 나날의 일상적 실천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 ‘남북화약고’ 옹진군 16년 만에 진보 단체장 탄생

    ‘남북화약고’ 옹진군 16년 만에 진보 단체장 탄생

    북한 도발 시달려 보수 성향 강해 안보 불안 해소 기대감 표심 반영 “평화로운 조업 환경 조성 등 총력”백령도 앞바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서해 5도에서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에 시달려 보수 성향이 매우 짙은 인천시 옹진군에 더불어민주당 장정민(48) 후보가 13일 당선됐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 조건호 군수가 당선된 이후 16년 만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힘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옹진군은 민선 4∼6기 자유한국당 전신 한나라당 소속인 조윤길 군수가 3선을 해 대표적인 보수 텃밭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비록 이번에 장정민 당선자가 김정섭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467표 차로 신승을 거두었지만, 늘 안보 불안에 시달려 온 주민들이 진보정당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둬들였다는 점에서 상전벽해다. 지난날 민주당 후보가 내민 명함을 주민들이 외면할 정도로 선거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곳 주민들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전국을 물들인 노무현 정부 때도 북한에 대한 의심의 눈길로 보수 후보를 당선시켰다. 심지어 민선 5기 땐 민주당이 옹진군을 ‘당선 불가’ 지역으로 분류해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아 조윤길 군수가 무투표 당선됐다. 6기 때도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아 무소속 후보 1명만이 조 군수와 대결을 펼쳤지만 참패했다. 따라서 이젠 주민들이 최근 북한에 대한 시각을 바꿔 비핵화 및 남북 대화에 담긴 진성성을 받아들여 진보정당인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킨 것이라는 풀이도 가능하다. 특히 4·27 때 합의한 북방한계선(NLL) ‘평화수역’ 조성과 맞닿은 곳이어서 진보 단체장 탄생에 대한 염원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장 당선자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깃든 서해 평화수역 조성 계획이 한반도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완성되면 안보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표심에 반영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백령도는 지역 어민이 우선 되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조업환경 조성과 백령공항 조기 건설, 중국∼백령 항로 추진에 온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장 당선자는 세 차례에 걸쳐 군의원을 지낸 만큼 주민 요구사항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연평도 북쪽 NLL 해상에는 ‘파시’(波市·바다 위에서 열리는 시장)를 만들어 남북한 수산물 교역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어민들은 해상 파시를 통해 NLL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한 수산업도 활성화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文, 무연고 묘지 참배·의사자 호명… “평범한 국민이 나라 지탱”

    文, 무연고 묘지 참배·의사자 호명… “평범한 국민이 나라 지탱”

    현직대통령 최초로 무연고 묘 찾아 “국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릴 것” ‘시민의 용기’가 국가 원동력 강조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도 참석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선 것도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 보통의 국민들이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은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가족과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과 의로운 삶이 바로 대한민국을 지탱한 힘이었음을 강조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무연고 묘지를 참배해 국가 유공자를 국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리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올해 현충일 슬로건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에도 이런 의미가 담겼다. 428030은 현충원을 비롯한 10개의 국립묘지에 안치된 안장자 수다. “2006년 아이를 구하고 숨을 거둔 채종민 차량정비사,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를 돕다 숨진 어린이집 금나래 교사와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황지영 행정인턴, 2016년 화재 현장에서 이웃을 대피시키고 숨을 거둔 대학생 안치범씨….” 문 대통령은 먼저 이들을 차례로 호명하며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평범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독립유공자나 참전용사 등 전통적 개념의 애국자처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는 거창한 뜻을 품진 않았으나,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자 한 평범한 시민의 ‘일상의 용기’가 바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원동력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애국의 의미를 확장하며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무연고 묘지를 찾은 것도 의미가 깊다. 추념식 10여분 전에 현충원에 도착한 문 대통령 내외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김기억 육군 중사 등이 안장된 무연고 묘지로 먼저 발걸음을 했다. 문 대통령은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으로부터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자녀도 없고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서 가족이 없는 분들의 무연고 묘소가 많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무연고 묘지가 몇 기가 있는지 등을 묻고 헌화,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결코 그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에 헌신했던 믿음에 답하고 국민이 국가에 믿음을 갖게 하는 국가의 역할과 책무”라며 “모든 무연고 묘소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념식을 마치고선 곧장 현충원에서 열린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장으로 향했다. 지난 3월 유기견 구조활동을 벌이다 교통사고로 숨진 김신형 소방장과 김은영·문새미 소방사가 이곳에 안장됐다. 문 대통령은 독도의용수비대 묘역과 세월호 승무원 순직자 3명이 안장된 의사상자 묘역, 천안함 46용사 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묘역을 차례로 찾아 묵념했다. 추념식장에는 가수 최백호씨의 음성으로 김민기 작곡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직업군인의 애환을 담아낸 곡인데도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유신체제에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배우 한지민씨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낭송했다.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란 시구에 이날 현충일 행사의 의미가 함축됐다고 볼 수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잊지 않겠다” 문 대통령, 현직 첫 무연고 묘지 참배

    “잊지 않겠다” 문 대통령, 현직 첫 무연고 묘지 참배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선 것도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 보통의 국민들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가족과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과 의로운 삶이 바로 대한민국을 지탱한 힘이었음을 강조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무연고 묘지를 참배해 국가 유공자를 국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리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올해 현충일 슬로건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에도 이런 의미가 담겼다. 428030은 현충원을 비롯한 10개의 국립묘지에 안치된 안장자 수다.  2006년 아이를 구하고 숨을 거둔 채종민 차량 정비사,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를 돕다 숨진 어린이집 금나래 교사와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황지영 행정인턴, 2016년 화재 현장에서 이웃을 대피시키고 숨을 거둔 대학생 안치범씨.  문 대통령은 먼저 이들을 차례로 호명하며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평범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며 “대한민국은 결코 그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독립유공자나 참전용사 등 전통적 개념의 애국자처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는 거창한 뜻을 품진 않았으나,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자 한 평범한 시민의 ‘일상의 용기’가 바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원동력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애국의 의미를 확장하며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무연고 묘지를 찾은 것도 의미가 깊다. 추념식이 열린 10시보다 10여분 정도 앞서 도착한 문 대통령 내외가 먼저 찾은 곳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김기억 육군 중사 등이 안장된 무연고 묘지였다.  문 대통령은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으로부터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자녀도 없고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서 가족이 없는 분들의 무연고 묘소가 많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무연고 묘지가 몇 기가 있는지 등을 묻고 헌화, 참배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추념식에 앞서 무연고 묘지에 먼저 들른 것을 두고 유가족이 없어 잊혀가는 국가유공자를 국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추념식을 마치고선 현충원에서 열린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에 발걸음을 했다. 지난 3월 유기견 구조활동을 벌이다 교통사고로 숨진 김신형 소방장과 김은영·문새미 소방사가 이곳에 안장됐다. 문 대통령은 독도의용수비대 묘역과 세월호 승무원 승직자 3명이 안장된 의사상자 묘역, 천안함 46용사 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묘역을 차례로 찾아 묵념했다.  추념식장에는 가수 최백호씨의 음성으로 김민기 작곡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직업군인의 애환을 담아낸 곡인데도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유신체제에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배우 한지민씨가 낭송한 이해인 수녀의 시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에 이날 현충일 행사의 의미가 함축됐다고 볼 수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문 대통령 “애국과 보훈에 보수·진보 따로 없다”[전문]

    문 대통령 “애국과 보훈에 보수·진보 따로 없다”[전문]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을 맞아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우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 아끼는 마음을 일궈낸 대한민국 모든 이웃과 가족에 대해 큰 긍지를 느낀다”며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지키고자 할 때 우리 모두는 의인이고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애국영령과 민주열사 외에도 어린이를 구조하다 숨진 자동차 정비사, 교통사고 피해자를 돕던 중 사망한 어린이집 교사, 화재 현장에서 이웃을 대피시키다 숨진 대학생 등 의사자들을 차례로 호명했다. 이를 통해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한편, 보훈의 외연도 넓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저는 오늘 무연고 묘역을 돌아보았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김기억 중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며 “대한민국은 결코 그 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과 경찰의 유해 발굴도 마지막 한분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의 유해발굴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군 등 해외 참전용사들의 유해도 함께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얼마나 많은 그리움을 안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보고 싶은 사람을 가슴 깊숙이 품고 계신 분들을 여기 오는 길 곳곳에서 마주쳤습니다. 저는 오늘 예순세 번째 현충일을 맞아, 우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하며, 유가족께 애틋한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이 평범한 하루를 살며 만들어온 역사입니다. 아침마다 대문 앞에서 밝은 얼굴로 손 흔들며 출근한 우리의 딸, 아들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일궈온 역사입니다. 일제 치하,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선 것도,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 보통의 국민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들이었습니다. 이곳, 대전현충원은 바로 그 분들을 모신 곳입니다. 독립유공자와 참전용사가 이곳에 계십니다. 독도의용수비대,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전사자, 천안함의 호국영령을 모셨습니다. 소방공무원과 경찰관, 순직공무원 묘역이 조성되었고 ‘의사상자묘역’도 따로 만들어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2006년, 카센터 사장을 꿈꾸던 채종민 정비사는 9살 아이를 구한 뒤 바다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2009년,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황지영 행정인턴과 어린이집 금나래 교사는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돕다가 뒤따르던 차량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6년, 성우를 꿈꾸던 대학생 안치범 군은 화재가 난 건물에 들어가 이웃들을 모두 대피시켰지만 자신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유가족들에게는 영원한 그리움이자 슬픔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용기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의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하루가 비범한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평범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에게 가족이 소중한 이유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곁에서 지켜줄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국가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도 모든 것을 국가에 바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저는 오늘 무연고 묘역을 돌아보았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김기억 중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믿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물둘의 청춘을 나라에 바쳤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고 없는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그 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돌볼 것입니다. 모든 무연고 묘소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에 헌신했던 믿음에 답하고, 국민이 국가에 믿음을 갖게 하는, 국가의 역할과 책무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보훈은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존경입니다. 보훈은 이웃을 위한 희생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훈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기본입니다. 우리 정부는 모든 애국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훈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잘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제 독립유공자의 자녀와 손자녀까지 생활지원금을 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지난 1월, 이동녕 선생의 손녀, 82세 이애희 여사를 보훈처장이 직접 찾아뵙고 생활지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석, 국무령,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20여 년간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분입니다. “이제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여사님의 말씀이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 정부는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고 보훈 예산규모도 사상 최초로 5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1월부터, 국립호국원에 의전단을 신설하여 독립유공자의 안장식을 국가의 예우 속에서 품격 있게 진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생존해계신 애국지사의 특별예우금도 50% 올려드리게 되었고, 참전용사들의 무공수당과 참전수당도 월 8만 원씩 더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근조기를 증정하는 훈령도 제정했습니다. 6월 1일 첫 시행되는 날, 국가유공자 김기윤 선생의 빈소에 대통령 근조기 1호를 인편으로 정중하게 전달했습니다. 8월에는 인천보훈병원이 개원합니다. 국가유공자들이 가까운 곳에서 의료와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강원권과 전북권에도 보훈요양병원을 신설하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전문재활센터를 건립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시에 설치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복원은 중국 정부의 협력으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내년 4월까지 완료할 계획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과 경찰의 유해발굴도 마지막 한 분까지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의 유해발굴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미군 등 해외 참전용사들의 유해도 함께 발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모든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법령도 정비했습니다. 지난 3월, 구조 활동을 하던 세 명의 소방관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교육생이었던 고 김은영, 문새미 소방관은 정식 임용 전이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했는데도 신분 때문에 차별받고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두 분을 포함해 실무수습 중 돌아가신 분들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소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했습니다. 오늘 세 분 소방관의 묘비 제막식이 이곳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눈물로 따님들을 떠나보낸 부모님들과 가족들께 각별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의 진정한 예우는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분들의 삶이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선대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을 기억하고 애국자와 의인의 삶에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들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 되고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국가유공자의 집을 알리는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별로 모양도 각각이고 품격이 떨어지는 곳도 있습니다. 정부가 중심 역할을 해서, 국가유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저는 오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 아끼는 마음을 일궈낸 대한민국 모든 이웃과 가족에 대해 큰 긍지를 느낍니다.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지키고자 할 때 우리 모두는 의인이고 애국자입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 영령과 의인, 민주열사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겠습니다. 가족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6월 6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급변 한반도… 김영철 최고 실세로

    김영철(72)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현 한반도 국면에서 북한의 대외 전략을 지휘하는 최고 실세로 평가된다. 그가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 땅을 밟는다면 김 위원장의 ‘원톱’ 격으로 부상한 그의 위상이 재확인되는 셈이다. 김 통전부장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1962년 북한 인민군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 근무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인민군 소좌 시절에는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로 근무하며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겪기도 했다. 1989년 인민군 소장 계급인 인민무력부 부국장 시절 남북 고위당국자 회담 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남북 회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 남북 고위급 회담 북측 대표, 1992년 남북 고위급 회담 군사분과위 북측 위원장 및 남북군사공동위 위원, 2006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 2007년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북측 대표 등 다양한 남북 회담에 대표로 참여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의전, 경호 실무자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을 맡으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이버 테러 등 대남 도발과 공작 사업의 주모자로 지목됐다. 김 통전부장이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했을 당시에는 이와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남 전략과 정보 라인을 맡은 김 통전부장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현 미 국무장관)과 함께 ‘남·북·미 3각 정보 라인’을 구성하며 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특히 그는 대남, 정보 분야뿐 아니라 외무성의 업무인 대중, 대미 외교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김 위원장의 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4·27 남북 정상회담뿐 아니라 5·26 남북 정상회담에도 김 위원장의 배석자로 참석하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현 남북관계 개선의 키맨 역할을 하고 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재보궐 출마 의사 번복한 날 북·미회담 결렬.. 또 ‘손학규 징크스’

    재보궐 출마 의사 번복한 날 북·미회담 결렬.. 또 ‘손학규 징크스’

    바른미래당 손학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의사를 밝힌 24일 북·미회담 결렬이란 메가톤급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손학규 징크스’가 또 재연된 모습이다.전날까지 송파을 전략공천 거부 의사를 밝혀 왔던 손 위원장은 6·13지방선거 후보등록 첫 날인 이날 돌연 출마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이에 여론조사 경선에서 1위를 한 박종진 예비후보의 공천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유승민 공동대표와 손 위원장 전략공천을 주장하는 박주선 공동대표·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대립하며 바른미래당은 이 지역 공천 논의를 25일로 미뤘다. 손 위원장이 여의도 정치에 복귀할 뜻을 밝힌 이날 뉴스는 그러나 오후 11시 10분쯤 미국 측의 북·미회담 취소 소식이 전해지며 주목받지 못하게 됐다. 손 위원장이 정치적 결단을 하는 날에는 더 큰 일이 발생한다는 이른바 ‘손학규 징크스’가 또 벌어진 셈이다. 그 간 손학규 징크스는 셀 수 없이 많이 벌어졌다. 2006년 10월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해 기자회견을 한 날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7년 3월 한나라당 탈당 결단을 내린 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일이었다. 2010년 11월 정권의 민간인 사찰 특검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에 나선 이튿날엔 북한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다. 2014년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2년 만인 2016년 10월 정계복귀를 선언했지만, 며칠 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지난해 대선 뒤 미국으로 떠났다 같은해 12월 귀국한 날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발생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손 위원장은 지난해 국민의당 대선 경선 도중 영화 ‘광복절 특사’를 패러디한 포스터(사진)를 선보였는데, 여기에 ‘손학규가 결단하는 날엔 무언가가 터지는 웃픈 현실’이란 자조적 문구를 삽입한 바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서해 지키는 해병부부 17쌍

    서해 최전방에서 남편과 아내가 함께 ‘군인의 길’을 걸으며 영토와 영해를 수호하는 해병대 부부가 모두 17쌍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부애와 전우애로 똘똘 뭉쳐 서북도서와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일 해병대사령부에 따르면 백령도에는 모두 10쌍의 해병대 부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병 6여단 한대흠(27) 중위와 정승현(26) 중위 부부도 백령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남편 한 중위는 2012년 백령도 전차중대 전차조종수(해병 1124기)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15년 해병대 장교로 다시 입대해 현재 백령도에서 두 번째 근무 중이다. 결혼 준비 중 아내인 정 중위의 백령도 전출이 먼저 결정되자 결혼식을 미뤘으나 전우들의 노력으로 한 중위가 백령도에 배치돼 지난 2월 화촉을 밝혔다. 해병 연평부대에도 부부 7쌍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공병 부사관 부부인 김곤(37) 상사와 이혜정(29) 하사는 연평도에 구축되는 작전·병영시설물에 대한 점검과 인사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상사가 연평부대에 배치되자 이 하사는 연평도 근무를 지원했다.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어 연평부대의 ‘쌍둥이 가족’으로 통한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北, 서해 해안포 운용 사실상 중단

    확성기 철거 이어 긴장 완화 조치 우리 軍도 탄력 운용… 군축 주목 북한 군이 ‘판문점 선언’ 이후 서해 해안가에 설치한 해안포 운용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전방 확성기 철거에 이은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우리 군도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에 배치한 K9자주포와 다연장포 등의 북한 해안포 대응 무기체계를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의 이 같은 조치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와 ‘단계적 군축’의 첫 시범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9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군의 서해 해안포 동굴진지 문이 판문점 선언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 군은 예전에는 동굴진지 문을 수시로 열어 해안포를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판문점 선언 이후에는 해안포를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북한 군 해안포 동굴진지는 육안으로도 확인되는데 지난달 말 이후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면서 “작전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인지, 아니면 긴장 완화를 위해 해안포 운용을 중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연평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거론한 점에 비춰 보면 서해 해안포 운용 중단 지시가 내려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환담하면서 “(남쪽으로) 오면서 보니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 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우리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을 봤다”며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 군은 백령도와 마주 보고 있는 장산곶과 옹진반도 등에 구형 76㎜ 해안포와 130㎜ 대구경 해안포 등 4종의 해안포 1000여문을 동굴진지에 은폐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11월 23일에는 연평도에 170여발의 해안포와 방사포를 발사해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해병부대원 2명이 전사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사설] 서해 NLL 평화수역 지정, 北 태도가 관건이다

    국방·통일·외교·해양수산부 4개 부처 장관이 그제 연평도와 백령도를 찾아 남북 정상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지대화 합의와 관련한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나온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다. 그동안 서해 NLL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렸다. 1, 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등 숱한 남북 무력 대결이 펼쳐졌고, 전면전으로 번질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NLL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하고,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교류 활성화 등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대남ㆍ대북 비방 확성기 철거와 달리 NLL 평화수역 지정은 직접 무력 충돌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고,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신뢰성을 전 세계에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3년 8월 30일 NLL 설정 이후 야간 어로 금지 등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아 온 어민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는 크다. 우리 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던 중국 어선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평화수역 지정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하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합의, 발표한 ‘10·4선언’에도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 선포가 들어 있었지만, 기준선을 유엔군이 설정한 NLL로 할지, 아니면 북측이 설정한 ‘서해 경비계선’으로 할지를 놓고 이견만 노출하고 무산됐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문에 NLL을 그대로 쓰는 등 태도 변화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달 열리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연평도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NLL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결국 NLL의 평화지대화는 북한 태도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북측이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원한다면 먼저 실체적 존재인 NLL의 인정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서해 NLL에서의 남북 간 긴장완화 조치와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한 번의 군사당국자 간 회담에서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군사 회담과 별개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NLL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는 방안도 선택지에 넣었으면 한다.
  • 조명균 “서해 NLL 기본 유지… 평화수역은 군사회담 통해 설정”

    조명균 “서해 NLL 기본 유지… 평화수역은 군사회담 통해 설정”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5일 처음으로 함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한 주민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연평도와 백령도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 NLL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한 남북 간 후속 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첫 조치다.송 장관은 연평도 주민 간담회에서 “다 결정해서 선물하러 온 건 아니고 무슨 요구를 하시는지 듣고 북한과 얘기할 때 반영하려고 (왔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공동어로수역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야간 조업 규제 완화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단속 문제 등을 제기했다. 또 서해 5도 어민만 이용할 수 있는 어장 확보와 육지와 연결하는 여객선 항로 단축 등도 요청했다. 성도경 연평도 선주협회장은 “연평도 주민들은 전쟁 이후 두 번의 연평해전과 피폭으로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산다”며 “야간 조업, 유사시 사격훈련 통제 등 많은 규제를 받았다. 규제를 완화해 주시고 어민들의 힘든 점을 반영해 정책을 세워 달라”고 호소했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군사적 문제만큼은 남북이 모두 절대 무력행위를 안 한다는 전제가 붙고 그다음에 NLL이든 공동해역이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송 장관은 “정부 입장이 딱 그렇다. 대통령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지만, 장관들은 장기적 계획을 위해서는 선행 과정이 먼저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겠지만 장밋빛 환상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며 “공동수역 얘기도 과거에 (북측과) 잘 진행이 안 됐다. 먼저 국방장관 중심으로 저쪽(북측)이랑 군사회담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NLL 문제에 대해 “서해 NLL은 기본을 유지하는 게 전제”라면서 “(남북) 공동어로든 평화수역이든 NLL선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NLL은 완전히 남북 관계가 달라지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NLL을 손대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건 1992년 남북 기본 합의서에 합의된 내용이고 다시 논의하기 전까지는 NLL을 건드리지 않는다”며 “공동수역, 평화수역은 군사회담을 통해 북과 설정할 것이고 통일부, 국방부, 해수부 모두 긴밀히 협의해 안을 잘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은 군사적 긴장을 해소해 남북이 자유롭게 어업활동을 하면 중국은 물론 제3국 선박이 안 올 수 있게 되겠지만 그 전에는 중국에 불법 어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관들은 이날 연평도·백령도 주민들과 차례로 간담회를 갖고 연평부대와 해병6여단을 방문해 작전 현황을 청취했다. 서해 NLL 평화수역 조성 문제는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서해 NLL은 ‘한반도 화약고’… 北, 1999년 연평해전 이후 본격 무력 도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화’는 우발적 충돌 방지와 안전한 어로 활동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방·외교·통일·해양수산부 등 4개 부처 장관이 지난 5일 처음으로 함께 서북도서를 돌아본 것도 그 후속 대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 NLL 동해보다 무력충돌 가능성 커 두 정상 간 이 같은 합의 이면에는 서해 NLL에서 동해 NLL이나 육상의 군사분계선(MDL)보다 남과 북의 무력충돌 가 능성이 월등히 높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도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서는 이른바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NLL을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인 셈이다. 정전 후 20여년간 서해 NLL을 인정하고 준수해 왔던 북측이 서해 NLL 무력화에 나선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다. NLL 설정 당시 해군력이 괴멸됐던 북측은 서해상에서 실효적 지배선 훨씬 이남으로 NLL을 설정한 유엔군사령부 조치를 내심 반기며 받아들였지만 1960년대 이후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북측은 경비정 60여척을 동원해 1973년 10월부터 같은 해 말까지 43차례에 걸쳐 서해 NLL을 침범하는 등 ‘서해 사태’를 도발해 NLL 무력화를 시도했다. ●최근까지 서해 NLL 일대 긴장감 지속 1999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무력 도발에 나서는 등 서해 NLL 일대를 분쟁 수역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99년 6월 15일 첫 번째 연평해전을 일으켰고, 같은 해 9월에는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삼은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듬해 3월에는 서해 5개 도서(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출입 시 북측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북측은 제2 연평해전(2002년 6월), 대청해전(2009년 11월),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연평도 포격(2010년 11월) 등 잊을 만하면 대형 도발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남측도 서해5도 사수 등을 명분으로 2011년 6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해 대응하는 등 서해 NLL 일대의 긴장감은 최근까지도 지속됐다. 북측은 무력도발과는 별도로 남북 군사회담 등의 계기를 이용해 새로운 해상불가침경계선 설정을 요구해 왔다. 2007년 ‘10·4 정상선언’ 후속 협상 과정에서도 NLL을 서해 공동어로수역의 기준으로 삼을지 여부를 놓고 남북은 팽팽하게 맞섰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국방부 ‘판문점 선언 이행 TF’ 구성… 남북군사회담 준비

    오늘 국방장관 등 연평도·백령도 방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국방부는 ‘판문점 선언 이행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고 국방·통일·외교·해양수산부 장관은 5일 연평도와 백령도를 방문해 주민대표 간담회를 갖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를 준비하는 TF가 구성될 예정”이라며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의 조언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TF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국방부 실·국장과 합동참모본부 주요 인사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우선 판문점 선언의 첫 이행조치로 시작된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대북 확성기를 늦어도 이번 주말까지 모두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북측도 최전방 지역의 대남 확성기와 전단 살포 시설의 철거 작업을 이번 주 내 끝낼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또 이달 중 열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 국방장관회담 등도 준비할 계획이다. 장성급회담 남측 대표로 내정된 김도균(육사 44기·소장)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도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보임했다. TF는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 조성,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군사적 보장 방안 등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을 구체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지난해 7월 구성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TF’ 활동을 지속하면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판문점 선언 이행 추진위원회’의 총괄 간사를 맡아 남북 관계 발전 분과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중심으로 비핵화·평화체제 분과를 뒷받침하는 TF를 구상 중이다. 송 장관, 조 장관과 함께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서해 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해수부는 해양경찰을 통해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을 지원하고 외교부는 이 같은 평화수역에 대해 주변국의 협조를 구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외교·안보·해수부 장관이 함께 가서 긴장 상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남북 어민들이 평화롭게 어로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소통을 위한 답사”라고 설명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훈풍 부는 접경지대] ‘공동 어시장’ 꿈꾸는 서해 NLL

    [남북정상회담 훈풍 부는 접경지대] ‘공동 어시장’ 꿈꾸는 서해 NLL

    정상회담 후 中 불법조업도 줄어 4·27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로 합의하자 인천 옹진군 서해5도민들은 안전과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박태원(58) 연평도 어촌계장은 “이번 기회에 남북 충돌의 고리를 끊고 어민들의 숙원사업인 NLL 인근 해역에서의 조업이 가능해지길 바란다”면서 “그동안 어민들이 요구해 온 남북 공동 파시(波市) 등도 실현될 기대감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어민들은 연평도 남서방에 조성된 어장에서 꽃게 등을 잡고 있으며, 섬 북쪽 NLL 해상에서는 군사적 위험 때문에 조업이 금지돼 있다. 연평도 주민 박정숙(53·여)씨는 “연평도 피격사건 때 전쟁이 난 줄 알고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피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두 정상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전 세계인 앞에서 공언한 만큼 이제는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해빙 효과인 듯 중국어선 불법조업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연평도 해역에서 조업을 펼친 중국어선은 지난 27일 15척, 28일 13척, 29일 13척, 30일 19척으로, 예년 하루 평균 100여척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중국어선들이 낮에 우리 해역에서 고기를 잡다 밤이면 북한 수역으로 도망가곤 했는데 이제 그 수법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을 코앞에서 접한 백령도 주민들의 감회도 남다르다. 강은미(58)씨는 “천안함 사건 당시 꽃다운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면서 “다시는 그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나왔다. 요식업을 하는 정윤희(51)씨는 “서해5도에서 남북이 충돌하거나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관광객이 줄어하는 현상이 되풀이돼 왔다”면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文 “온 세계에 큰 선물하자”… 金 “새 역사 신호탄 쏘자”

    文 “온 세계에 큰 선물하자”… 金 “새 역사 신호탄 쏘자”

    文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 金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 찍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된 환담에 이르기까지 두 정상 간 만남이 이날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며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님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판문점 자유의집 브리핑과 녹취록 등으로 정리한 두 정상의 주요 대화 내용.●군사분계선에서 ‘깜짝 월경’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하 김) (남측으로 넘어온 뒤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며)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다 靑 초청 문 오늘 보여드린 전통 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 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 ●의장대 사열 후 예정에 없던 사진 촬영 김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 문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평화의집 로비에서 ‘북한산’ 그림 보며 김 이것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 문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金 “새벽잠 설치지 않게 확인하겠다” 문(김중만 작가의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을 소개하며)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이다. 여기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ㅁ’이 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거기에 ‘ㄱ’을 특별히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의 ‘ㅁ’은 문재인의 ‘ㅁ’, 맹가노니의 ‘ㄱ’은 김 위원장의 ‘ㄱ’이다. 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보회의) 참석하시느라 새벽잠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 되셨겠다. 문 김 위원장이 특사단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김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원래 평양에서 대통령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게 더 잘됐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도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걸 봤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분단선이 높지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나. ●“김여정 제1부부장은 남쪽에서 스타” 문 (환담장에 걸린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와 ‘일출봉’ 그림을 보며) 나는 백두산에 안 가봤다. 중국으로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 김 대통령께서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께서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문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겼는데 10년 세월에 그리 실천을 하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서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다. 김 위원장의 큰 용단으로 10년간 끊어진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 김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큰 합의를 해 놓고 10년 이상 실천하지 못했다. 대통령을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친서와 특사로 사전에 대화해 보니 마음이 편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문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됐다.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아 잘할 것이다. 제가 시작한 지 1년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 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 문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김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다. 문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수습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하고, 특별열차까지 배려했다고 들었다. 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해서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문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돼야 한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회담 전 환담장서 두 정상의 모두 발언 김 역사적인 이 자리에 오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오늘 걸어오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번영, 북남 관계가,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그런 순간에 이런 출발점에 서서,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기 왔다. 오기 전에 보니까 오늘 저녁 만찬 음식 갖고 많이 얘기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 대통령께서 편한 맘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웃음),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문 한반도의 봄이 한창이다. 이 한반도의 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두 사람, 어깨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도 그렇게 통 크게 대화를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우리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자, 오늘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그동안 10년간 못다 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文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 김 내가 말씀드리자면 고저 비행기로 오시면 제일 편안하시니까. 우리 도로라는 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편하다. 제가 오늘 내려와 보니까 이제 오시면 이제 공항에서 영접 의식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다. 문 그 정도는 또 남겨 놓고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웃음). 김 오늘 여기서 다음 계획까지 다 할 필요는 없다(웃음). 문 아주 오늘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서 아주 우리 남북의 국민에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선물이 될 것 같다. 김 많이 기대했던 분들에게 물론 이제 시작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 오늘 첫 만남과 오늘 이야기된 게 발표되고 하면 기대했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판문점공동취재단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남북, 종전 넘어 평화협정 합의… 예상 밖 파격 결실

    남북, 종전 넘어 평화협정 합의… 예상 밖 파격 결실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은 예상 못한 큰 결실을 맺었다. 특히 핵심의제인 비핵화 부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합의했다.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에 합의했다는 대목은 미국과 이미 물밑 조율을 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불가침 재확인, 연내 종전 선언, 핵 없는 한반도 실현, 평화협정, 미·중과 함께하는 3자 또는 4자회담 개최 등을 비핵화 합의 사항으로 전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명문화한다는 청와대의 목표를 크게 뛰어넘은 파격적 결과다. 문 대통령의 제안을 김 위원장이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종전 선언은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으로 시작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만족할 만한 비핵화 로드맵이 타결될 경우 오는 7월 27일에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모여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 로드맵 협의를 위해 5월 말과 6월 초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도 충분히 달성됐다는 평가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합의’는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수용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부문에서는 한국 측이 제안한 비무장지대(DMZ)의 비무장화를 북한이 수용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DMZ에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지만, 남북은 현재 감시초소(GP)를 구축하고 그 안에 병력 및 중화기를 두면서 정전협정을 사실상 위반하고 있었다. DMZ을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분단의 상징을 평화의 시발점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군사적 충돌 중단과 어로 활동 보장은 기대 이상의 성과다. 제1연평해전(1999년), 제2연평해전(2002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2010년) 등이 여기서 일어났다. 남북 관계 발전 의제 중에는 8월 1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재개에 합의하면서 빠르게 고령화되는 이산가족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 이후 2년 6개월째 중단 상태다. 지속적인 만남의 기회를 만든 것은 3대 의제에서 거둔 성과만큼 중요하다. 판문점이나 서울·평양에 설립할 것으로 예상됐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성 지역에 설치키로 했다. ‘개성공단’을 살리려는 북측의 제안으로 보인다. 5월 중의 장성급 군사회담 및 향후 국방장관회담에서는 DMZ 비무장화를 실무선에서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경협)도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보이지만, 한·미가 북의 비핵화 이전에 경제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합의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됐던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의 연결 및 현대화로 가능성을 남겨 두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영상] 2018 남북정상회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1차 브리핑 전문

    [영상] 2018 남북정상회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1차 브리핑 전문

    오늘 두 정상이 MDL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시작한 이후부터 환담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남북 정상이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하면서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나”라고 대화를 하셨습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하면서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께서 예정에 없던 MDL을, 북측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의장대 행렬을 하면서 “외국도 전통의장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런데 오늘 보여준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이어 의장대 사열이 있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의장대 사열이 끝나고 양측의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나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예정에 없던 포토타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집으로 이동을 한 후에 평화의 집 로비 전면에 걸린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 그림을 보면서, 김 위원장이 “이건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라고 질문 했고, 문 대통령께서는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정상은 9시 48분경 환담장에 입장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환담장 뒷 벽에 걸려있는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래는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이다. 여기에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미음이 들어가 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거기에 기역을 특별하게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는 ‘미음’은 문재인의 미음, ‘맹가노니의’ ‘기역’은 김 위원장의 기역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웃으면서 “세부에까지 마음을 썼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느냐”라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새벽에 차를 이용해 개성을 거쳐 왔다. 대통령께서도 아침에 일찍 출발 하셨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저는 불과 52키로미터 떨어져 있어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라고 답했고,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고 화답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불과 200미터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 원래 평양에서 문 대통령님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 더 잘됐습니다. 대결의 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오는데 도로변에 많은 주민들이 환송을 해 주었다. 그만큼 오늘 우리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성동 주민들도 다 나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 어깨가 무겁다.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환담장 앞편에 걸린 ‘장백폭포’ ‘성산일출봉’ 그림을 가리키면서 “왼쪽에는 장백폭포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주도 성산일출봉 그림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나는 백두산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영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겨 있는데 10년 세월 동안 그리 실천하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다.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을 못했다. 오늘 만남도 그 결과가 제대로 되겠나느라는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짧게 걸어오면서 정말 11년이나 걸렸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야 못해질 수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대통령님을 제가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친서와 특사를 통해 사전에 대화를 해보니 마음이 편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석한 김여정 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는 아주 스타가 되었다”라고 말했고, 큰 웃음이 있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 할 것이다.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가 시작한지 이제 1년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웃음이 있었고, 임종석 준비위원장은 “살얼음판을 걸을 때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고 거들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라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수습하시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김 위원장께서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도 하시고, 특별 열차까지 배려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님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윤영찬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김정은의 거침없는 직설화법…민감한 탈북자, 연평도도 언급

    김정은의 거침없는 직설화법…민감한 탈북자, 연평도도 언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탈북민, 연평도 등 북한에 불리하거나 민감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을 구사했다.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1층 환담장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과 가진 환담에서 “대결의 상징인 장소(판문점)에서 많은 사람이 기대를 갖고 보고 있다”면서 “오면서 보니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우리의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판문점 브리핑에서 전했다. 김 위원장이 “오면서 보니…”라고 말한 것은 남측 언론 등을 통해 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서해 최전방 연평도 주민들을 가리켜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이라고 언급한 것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연평도에는 지난 2010년 11월 북한의 포격이 있었던 만큼 남북 간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탈북민 문제의 경우 지난 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거론한 적이 있지만,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남쪽의 국정원과 통일부는 왜 자꾸 탈북자를 끌어들이느냐”며 자신들에 대한 ‘비방중상’을 비난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우리 측의 대응이 반복되던 과거도 다시 꺼내 들었다. 문 대통령에게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초 방북한 우리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도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전매특허’와도 같아진 ‘치부 솔직히 드러내기’는 오늘 환담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不備·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음)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면서 “평창올림픽 갔다 온 분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사회의 문제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북한 체제의 ‘금기’를 깨는 데 거침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남측의 상대적으로 우수한 점까지 거론하는 파격을 보인 것이다. 그는 작년 조선중앙TV로 전국에 중계된 육성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한 해를 보냈다”며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해는 中어선과의 전쟁터… 늘 목숨 걸어”

    “서해는 中어선과의 전쟁터… 늘 목숨 걸어”

    “1년 중 6개월 바다 위에서 생활 불법조업선, 쇠창살 등 위협 심각 3000~5000t급 지도선 도입을” “서해는 말 그대로 전쟁터입니다.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 수십척에 포위 당했다가 목숨을 걸고 빠져나온 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지난 28년간 어업지도단속 업무에 몸담으면서 우리 바다를 지켜 온 공로로 최근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김형배(57)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어업지도과장. 그는 26일 “중국 어선들이 우리 지도선의 단속에 저항하면서 단속원의 승선을 막고 흉기로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해 늘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바다 사나이다. 1990년 해수부 어업관리사무소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어선 안전과 불법 조업을 지도·단속하는 일을 해 왔다. 그는 “초기엔 우리 어민들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게 주요 업무였지만 2000년대 들어 남획에 대한 어민들의 인식도 개선돼 상당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건수는 감소했지만 중국 어선들이 더 조직적이고 흉포화되고 있어 그만큼 단속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중국 어선들은 백령도와 연평도, 제주 남쪽 이어도에 이르는 바다에서 기상 악화 시나 밤 시간대를 노려 어종을 가리지 않고 싹쓸이 한다. 김 과장은 중국 어선에 맞서 싸우는 선봉장이다. 지난해 4월 과장 부임 이후 총 89척의 중국 어선을 나포해 약 51억원의 담보금을 징수했다. 그는 “바다 위에서 밤잠 없이 노력한 직원들이 이뤄 낸 성과”라고 공을 돌렸다. 어업감독 공무원들은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크고 피로도가 높다. 김 과장은 “월평균 15~20일은 배에서 살고 하루 3교대로 일한다”면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이 발견되면 근무 시간이 따로 없다. 직원 모두가 투입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한 해 평균 6개월이나 집을 떠나 있는 그는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특히 밤마다 TV를 켜고 자는 게 습관이 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고 질서 있는 바다를 만드는 게 김 과장의 목표다. 그는 “현재 500~1000t 규모의 지도선 대신 3000~5000t급 전천후 국가지도선이 도입되면 중국 불법 조업을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며 “부산과 목포, 제주에 있는 어업관리단을 총괄할 본부가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통일센터’ 1호 인천에 들어선다

    탈북민 정착 등 남북교류 사업 2022년 16개 시도 확대 설치 남북 해빙 무드가 급격히 진전되는 가운데 남북교류 등 통일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센터가 인천에 들어선다. 통일부는 26일 “인천시를 통일센터 시범설치 지역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마감한 시범 운영기관 신청에는 인천·강원·부산·광주가 접수했다. 통일센터는 시범 운영을 거쳐 2022년까지 연차적으로 16개 시도에 설치된다. 통일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구축하기 위해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통일센터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을 위해 운영되는 지역 하나센터와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통일교육센터 등을 통합, 운영한다. 여러 기관이 수행하는 통일 분야 지원 기능을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통일센터는 남북교류 협력사업, 탈북민 정착지원(취업·상담), 이산가족 상담 등을 담당한다. 또 시민을 대상으로 통일 관련 포럼·세미나·강연을 개최하고, ‘북한자료실’을 설치해 거점 통일교육시설로 활용할 예정이다. 인천시는 통일센터를 올 하반기에 송도국제도시에 개소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옹진군에서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격사건 등이 발생했고, 논현동에 국내 최대의 탈북민 집단거주지(1950명)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위로